4. 외삼촌이 출교된 후

제 외삼촌은 중의사였어요. 제가 10살 때 갑자기 계속 각혈을 했는데, 다행히 외삼촌의 응급 처치로 살아났어요. 그 일로 저는 외삼촌을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했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외삼촌에게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어요. 2008년에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면서 우리 가족은 큰 슬픔에 빠져 있었는데, 그때 외삼촌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줬어요. 우리는 그렇게 의지처가 생겼고 진리를 추구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됐죠. 그러니 저는 외삼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어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엄마 혼자 자식 3명을 공부시키기 어렵게 되자 외삼촌은 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셨어요. 저는 삼촌 집에서 먹고 자면서 신앙생활도 하고 삼촌한테서 의술도 배우며 지냈어요. 저는 몸이 허약한 편이었는데, 삼촌이 자주 이것저것 해 주시면서 건강을 챙겨 줬고 정말 친딸처럼 대해 줬죠. 그러니까 저한테 외삼촌은 너무 고마운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전 삼촌한테 무슨 어려움이 생기면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어요.

그러다 2011년에 교회에서 외삼촌을 악인으로 판정한 일이 있었어요. 삼촌은 교만하고 생트집을 잡고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었고 누구든 조금이라도 문제점을 짚어 주면 앙갚음을 했고 자주 리더 일꾼들을 공격하고 정죄했어요. 또 형제자매들과 리더를 이간질하면서 교회 생활과 사역에 심한 훼방을 놓았는데, 형제자매들은 하도 억눌려서 다들 삼촌을 몹시 꺼려할 정도였어요. 주변에서 여러 번 교제를 해 주었지만 삼촌은 전혀 회개하지 않았기에 교회에서는 출교하기로 결정을 했죠. 그때 리더가 출교 동의서에 서명할 건지 물어봤는데, 정말 갈등을 많이 했어요. 외삼촌의 행태는 정말 너무 뚜렷했어요. 심지어 저도 삼촌에게 타격받아 운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정작 서명을 하려니 삼촌이 알게 되면 절 어떻게 볼까 걱정이 됐어요. 그래도 제가 어렸을 때 절 살려 줬던 사람이고 우리한테 복음도 전해 주고 저한테 의술도 가르쳐 준 사람이잖아요. 삼촌은 저한테 잘해 주셨는데, 제가 삼촌을 출교하는 것에 동의한 걸 알면 정말 배은망덕하다고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때 리더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읽었는데, 정말 많이 느끼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 또한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 은혜시대에 예수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했다. 은혜시대에 벌써 이 말씀이 있었고, 오늘날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라는 말씀은 더욱 명확하고 단도직입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하나님이 한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이 말씀을 들으니까 가책이 느껴졌죠. 외삼촌에게 악인의 모습이 이렇게 뚜렷한데도 제가 서명을 하지 않으면 그건 악인이 교회에서 훼방을 놓도록 방종하는 거잖아요? 저는 감정에 휘둘릴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 하는 게 맞잖아요. 그래서 서명을 했어요.

2012년에 교회는 외삼촌에 대한 출교를 고지했는데, 저는 외삼촌 얼굴을 제대로 못 보겠더라고요. 나중에 삼촌은 제가 동의한 걸 알고 분별이 없는 바보 멍청이라며 질타했어요. 저는 삼촌의 태도가 자기 악행을 반성하거나 인식하는 게 전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동의서에 서명한 제가 너무 매몰차고 배은망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본분의 필요로 외삼촌 집을 떠나게 됐죠. 더 이상 외삼촌을 마주할 일은 없었지만 외삼촌의 질타가 계속 마음에 남는 거예요. 그 후에 좀 큰 일이 생기면서 외삼촌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는데, 그로 인해 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짓을 하게 됐죠.

2016년 말 즈음이었어요. 제가 객지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중이었는데, 폐렴, 폐수종으로 상태가 안 좋아 형제자매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죠. 나중에 삼촌이 병원에 오셨는데, 앞뒤로 혼자 뛰어다니면서 치료비도 다 내주고 절 챙겨 줬어요. 제가 혈압이 떨어지면 여기저기 혈 자리를 눌러 가면서 지압도 해 주셨고요. 퇴원 후에는 탕약을 지어 주면서 몸 회복을 도와줬고요. 제가 삼촌을 출교하는 거에 동의했는데도 삼촌은 여전히 저한테 잘해 주시니까 미안한 마음이 배가 됐어요. 그런데다 삼촌은 자기가 출교된 후 몇 년 동안 그래도 계속 복음을 전했다면서 여러 명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도 했다고 했어요. 또 복음을 전하다 큰 붉은 용에게 잡혀 집을 수색당하고, 중의원 영업도 정지당하면서 10만 위안 넘게 손해를 보게 됐는데, 그렇게 큰 붉은 용의 박해에도 삼촌은 하나님 말씀 책을 보관하는 집 정보를 발설하지 않았다고 했어요. 다만 큰 붉은 용이 사진을 보여 주면서 형제자매를 지목하라고 했을 때에 리더를 맡은 자매를 딱 한 명 확인해 준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 자매는 삼촌을 출교시킨 리더였어요. 삼촌은 그런 얘기를 하면서 마지막에는 또다시 저보고 양심이 없다고 하면서 자기는 저를 정말 친딸처럼 생각하고 아빠처럼 챙겨 줬는데, 저는 냉형 동물처럼 인정머리 없이 굴었다고 했어요. 그 얘기를 또 꺼내니까 정말 삼촌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동정심도 생기는 거예요. 마침 얼마 전에 윗선 리더한테서 과거 출교됐던 사람들 중에 회개한 모습을 보이고 계속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으면 교회에서 다시 받아 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게 생각났죠. 전 바로 외삼촌을 생각했어요. 전 삼촌이 비록 출교된 사람은 맞지만 그래도 그동안 계속 복음을 전했고 큰 붉은 용의 조사에서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으니 교회에서 다시 받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복음을 전하며 힘쓰는 것으로라도 속죄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렇게 될 경우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좀 많이 교제해 주면 조금씩 지난날의 악행을 반성하면서 회개하고 변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회에서 정말 삼촌을 다시 받아 준다면 삼촌은 제가 양심적인 사람이고 배은망덕한 조카가 아니란 걸 알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이런 생각이 스치는 순간, 저는 삼촌에 대한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얼른 리더에게 편지를 보냈죠. 삼촌이 그동안 잘해 온 모습들을 다 작성해서 보냈는데, 삼촌이 경찰에게 리더가 누군지 발설한 것과 제 앞에서 원망했던 말, 저를 훈계했던 안 좋은 말들은 쏙 빼 버렸어요. 나중에 리더가 제 외삼촌이 교회에서 받아줄 정도가 되는지 사람들을 보내 확인했어요. 며칠 후 한 자매님이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자매님 외삼촌을 만나 그동안 반성하면서 깨달은 게 있는지 물어봤더니 펄쩍 뛰면서 이제 보니 당신들은 사실 조사를 하러 나온 게 아니라 리더들끼리 편을 들고 감싸 주려고 하는 거라고 하면서 우릴 때릴 기세로 달려들었어요. 다행히 자매님 외숙모가 계속 말렸어요. 하지만 자매님 삼촌은 그것도 모자라 지난 일들을 막 들추면서 꼬투리를 잡고 리더를 공격하고 비판하기만 했어요. 보니까 반성이 전혀 안 돼 있어서 교회에서 받아 줄 수 없겠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자매님은 저보고 삼촌의 본질을 분별해야 한다고 교제를 해 줬고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물어봤어요. 삼촌의 그런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할 말이 없었어요. 확실히 다시 받아 줄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나중에 제 문제에 맞춰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서 봤는데, 그때 이 말씀을 읽었어요.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은 모두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그저 성품이 패괴된 것에 그치는 데 반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들은 사탄의 패괴 성품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본성 자체가 이미 극도로 악독해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은 언행에서만 사탄의 패괴 성품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영락없는 사탄 마귀이다. 그들이 하는 짓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며,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을 방해하고,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파괴하는 것이다. 양의 탈을 쓴 이리들은 언젠가 모두 쫓겨날 것이다. 그런 사탄의 종들에게는 가차 없이 내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는 다 사탄과 손을 잡은 자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 중에서), 『사탄은 누구이고 마귀는 누구이며 하나님의 원수는 또 누구더냐? 바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그 무리들 아니더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 아니냐?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나 진리가 없는 자들 아니더냐? 복만 받으려 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는 자들 아니더냐? 네가 오늘날에도 이 마귀들과 손잡고 그들을 양심과 사랑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사탄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 아니겠느냐? 마귀와 한통속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오늘날에 이르렀는데도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한결같이 사랑과 긍휼만 강조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이런 부류가 맞이하는 결말은 더욱 비참할 것이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원수이다. 네가 원수에게도 양심과 사랑을 베푼다면 정의감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 내가 증오하고 반대하는 자와 네가 오히려 마음이 통해 그들을 사랑이나 사적인 감정으로 대한다면 패역 아니겠느냐? 고의로 대적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런 자에게 진리가 있겠느냐? 원수를 양심으로 대하고 또 마귀를 사랑으로 대하며 사탄에게도 긍휼을 베풀려고 한다면, 고의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 아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정말 크게 심판받았어요. 삼촌은 출교된 지 몇 년이 된 사람인데, 조금이라도 양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정말 남에게 상처 주고, 교회 생활과 사역에 훼방 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그렇게 많이 한 것에 대해 가책을 느낄 게 분명하고, 잘 반성하면서 회개하고 뉘우치는 게 정상이죠. 특히 그 시기에 저랑 형제자매들이 교제하면서 짚어 줬지만 전혀 자기 자신을 인식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몇 년 동안 저를 미워하고 리더는 더 미워했어요. 자기가 출교된 게 다른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를 출교시킨 리더에 대해 앙심을 품고 경찰에게 사진 속 인물을 확인까지 해 준 거예요. 나중에는 리더를 거짓 리더이자 적그리스도라고 정죄하며 자기 편견을 계속 퍼트리기도 했어요. 이처럼 외삼촌의 실체는 악인이라 본성적으로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했죠. 절대 회개하거나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 영락없는 악인을 두고도 저는 양심적으로 대하고 은혜를 갚으려고 했고, 심지어는 좋은 말로 삼촌을 감싸 주면서 교회에서 받아 주기를 희망하고 있었어요. 저는 정말 눈멀었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이는 사탄의 환심을 사는 것으로, 악인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잖아요?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알게 됐는데, 그때 교회에서 삼촌을 받아 주면 절대 안 되겠다는 걸 더 깊이 느꼈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고생 끝에 큰 공을 세웠든, 대단한 관록을 가지게 되었든, 나의 곁을 따랐든, 명망이 자자하든, 태도가 나아졌든 관계없이, 네가 나의 요구를 따르지 않았다면 영원히 나에게 칭찬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너희가 서둘러 온갖 생각과 계획을 완전히 지우고 나의 요구를 진지하게 대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모든 사람을 잿더미로 만들어 나의 사역을 끝낼 것이다. 그러면 기껏해야 나의 오랜 사역과 고난이 무(無)로 돌아갈 뿐이다. 나는 나의 원수와 사악한 기운을 풍기며 사탄의 본모습을 가진 자들을 나의 나라, 다음 시대로 데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과오는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공의로운 성품을 느꼈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원칙이 뭔지 알게 됐어요. 윗선 리더는 과거 출교됐던 사람들 중에 계속 하나님을 믿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회개하는 모습이 보이는 사람은 교회에서 받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저는 외삼촌의 겉면만 보고 대조를 했어요. 삼촌은 출교된 후에도 계속 복음을 전했고 큰 붉은 용에게 잡혔을 때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으니까 자기반성이 조금 안 돼도 충분히 받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근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정신이 들었죠. 하나님께서 사람을 판단하는 데에는 기준이 있고, 교회에서 사람을 받아 주는 것에도 원칙이 있었어요. 특히 악행으로 제명이나 출교된 사람은 자신의 악행을 제대로 뉘우치는지, 참된 회개와 변화가 있는지를 봐야 하는 거였어요. 그게 안 되면 절대로 교회에서 받아 줄 수 없었어요. 삼촌이 출교된 후에 계속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좋은 행실이 있기는 했지만 과거 본인이 벌인 악행과 패괴된 자기 본성에 대해서는 반성하면서 깨달은 게 전혀 없었어요. 주변에서 아무리 짚어 주고 교제해 주고, 책망하고 까발려도 조금도 각성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반성하라고 말한 사람을 적대시했고 리더에 대한 편견을 퍼트리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교회 생활을 방해했죠. 그런 영락없는 악인이자 마귀인 자가 출교되는 건 온전히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 주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하신 말씀처럼 말이죠. “나는 나의 원수와 사악한 기운을 풍기며 사탄의 본모습을 가진 자들을 나의 나라, 다음 시대로 데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근데 저는 그런 사람이 다시 교회에 복귀할 수 있게 좋은 말을 해 줬으니 그건 하나님과 맞서는 거잖아요? 이걸 깨닫게 되니까 정말 제가 너무 진리를 모르고 무지몽매한 사람이란 걸 보게 됐어요.

나중에 건강을 회복해야 하는 관계로 자주 외삼촌 집에 다니게 됐는데, 삼촌의 상태는 더 심해졌어요. 리더를 판단할 뿐만 아니라 거만하게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까지 판단했어요. 그걸 통해 정말 삼촌은 진리를 증오하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본질을 가졌다는 걸 보게 됐어요. 그리고 전에 그런 삼촌을 위해 좋은 말을 했던 사실을 생각하니 너무 자책감이 들고 후회가 됐어요. 그때 저 자신을 돌아봤어요. ‘그런 영락없는 악인인데도 나는 왜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걸까?’ 전에는 원인을 찾지 못했는데, 나중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그 근원을 찾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도덕적 행위에 관한 말은 사람이 이 사회, 이 인류 가운데서 다해야 할 책임이 과연 무엇인지 알려 주지 않는다. 그저 이런 방식으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속박하고 강요할 뿐, 사람이 원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사람에게 닥친 일이 어떤 상황, 어떤 배경에서 벌어진 것인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고대 중국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무척 많았다. 예를 들어, 굶어 죽을 지경이 된 거지를 어떤 집안에서 거두어 먹여 주고 입혀 주고 무예나 각종 지식을 가르쳐 준 다음 그가 성인이 되면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악행, 살인 등 그가 원치 않는 일을 시키는 것이다. 그가 입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그가 그들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가 압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들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좋은 일이겠느냐, 나쁜 일이겠느냐? (나쁜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전통문화에 물들어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볼 때, 그가 악을 행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며 살수가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 악을 행하고 남을 죽이는 짓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의 내면 깊은 곳을 본다면, 주인의 지시대로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보은의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특히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사상에 물들고 지배된다. 그가 일하는 방식과 방법, 그리고 의도와 출발점은 분명 이런 것들에 통제될 것이다. 이런 일이 닥쳤을 때,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이 집안에서 나를 구해 줬으니 나는 이 집안에 은혜를 입은 거야. 은혜에 보답해야지, 배은망덕하게 굴어서는 안 돼. 내 목숨은 저들이 구해 준 거니까 저들을 위해 바쳐야 해. 저들이 뭘 시키든 해야 한다고. 설령 그게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일지라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온 힘을 다해 보답해야 해. 이렇게 큰 은혜에 보답하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겠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집안사람들이 살인이나 나쁜 일을 시킬 때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어떤 의문도 품지 않는다. 그럼 그의 이런 행위와 행동, 어떤 의문도 품지 않는 태도는 전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생각과 관점에 지배된 것 아니겠느냐? 그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덕행의 준칙을 이행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사례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이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원칙이 없습니다.) 사실, 보은하는 사람에게도 원칙이 있다. 그의 원칙은 바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보답해야 하며, 보답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고, 정죄당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라는 말이 있는데, 하물며 이는 물 한 방울의 은혜가 아니라 목숨을 구해 준 은혜이니 더더욱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보은의 원칙이 무엇인지, 보은의 마지노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목숨을 그 집안사람들이 구해 주었으니, 마땅히 그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그들이 무엇을 시키든, 심지어 그것이 악을 행하고 남을 죽이는 일일지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그런 보은은 원칙과 선을 잃어버리고 악인의 앞잡이가 되는 행위로, 스스로를 망치는 짓이다. 그의 그런 보은 방식이 옳으냐? 당연히 옳지 않다.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알게 됐죠. 제가 외삼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속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건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와 같은 덕행의 사상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자신이 힘들 때 상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거나 위기에 빠졌을 때 목숨을 구해 줬으면 그 은혜는 영원히 기억해야 하고 나중에 꼭 갚아야 양심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는 건 배은망덕한 인간성 없는 사람이니 사람들한테 배은망덕하다며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의 엄마 쪽을 보면 그랬죠. 엄마는 5남매였는데,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안 좋았대요. 큰 외삼촌을 공부시킨다고 막내 삼촌과 엄마는 모두 학교를 그만뒀죠. 결국 큰 외삼촌은 철밥통 직업을 갖게 됐고 집에서는 큰 외삼촌이 형제들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거라고 기대했어요. 근데 큰 외삼촌은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자기 모친을 부양하는 것도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주변 친척과 친구들 모두가 큰 외삼촌을 배은망덕하다며 손가락질했어요. 그런 영향하에 자란 저는 꼭 양심적이고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마인드의 영향으로 저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했고,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보답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제 처사가 진리 원칙에 어긋났어도 구분하지 않고 그저 저한테 은혜를 베푼 사람은 잊지 말고 어떻게든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제가 외삼촌을 대할 때 그랬어요. 출교에 동의하는 서명을 할 때 외삼촌은 제 생명의 은인이고 말세 복음까지 전해 준 고마운 사람이라 생각하고 또 저를 친딸처럼 챙겨 주기까지 했으니 그 은혜 때문에 저는 서명하는 걸 고민하게 됐죠. 서명하면 배은망덕한 양심 없는 사람이 될까 봐요. 물론 그 당시에 동의는 했지만 양심엔 찔리고 늘 미안했어요. 그리고 제가 객지에서 본분을 이행하다가 아팠을 때 삼촌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병원비도 내주고 곁에서 돌봐 줬는데, 그러니 미안한 마음이 더 강해졌어요. 그래서 윗선 리더가 교회로 복귀시킬 수 있는 사람에 관한 원칙을 교제한 걸 기회 삼아 삼촌에 대한 은혜를 갚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동안 삼촌이 자기 악행을 돌아보며 반성한 게 없다는 것도 알고, 출교된 거에 앙심을 품고 큰 붉은 용 앞에서 자기를 출교시킨 리더를 지목한 걸 알면서도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마인드에 지배받다 보니 리더에게 삼촌을 위해 좋은 말을 해 줬고 나쁜 행태는 덮어 줬어요. 삼촌이 교회로 복귀하면 저의 미안함을 메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전통 사상에 묶여서 저는 선악과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했고 처사에 원칙도 없고 최저선도 지키지 못했어요. 지금은 교회가 악인과 적그리스도, 불신파를 정리하면서 교회를 정결케 하는 단계인데, 저는 악인에게 양심을 베풀고 은혜를 논하며 악인을 교회로 복귀시키려고 했어요. 그건 악인의 앞잡이가 되어 악행을 하는 것으로, 방해 역할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저의 처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거지가 은혜를 갚기 위해 살인도 저지르는 사례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었어요. 이걸 알게 되면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전통적 덕행의 해악을 제대로 인식하게 됐어요. 그건 온전히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망언이었죠.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전통문화의 관점은 반드시 분별해야 한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의 골자는 ‘은혜’에 있다. 여기에서 ‘은혜’를 어떻게 봐야겠느냐? 이는 어떤 측면의 은혜겠느냐? 어떤 성질의 은혜겠느냐?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 이런 문제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절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에 속박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사람의 관념에서 ‘은혜’란 무엇이냐? 작은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네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누군가가 너를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피죽도 못 먹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네게 밥 한 그릇을 주는 것, 갈증으로 죽을 것 같을 때 물 한 병을 주는 것,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한 번 부축해 주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 은혜에 속한다. 한편, 큰 은혜는 네가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누군가가 너를 구해 주는 것이다. 이는 목숨을 구해 준 은혜에 속한다. 네 목숨이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가 너를 도와 죽음에서 구해 준다면, 이는 목숨을 구해 준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이 모두 사람이 생각하는 ‘은혜’이다. 이런 은혜는 물질적이고 사소한 은혜의 범주를 넘어선, 크나큰 은혜에 속한다. 이는 금전이나 물질로 가늠할 수 없는 것으로, 감사의 말 몇 마디로는 상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럼 이런 식의 판단이 정말 정확하겠느냐? (정확하지 않습니다.) 왜 정확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냐? (사람은 전통문화에 근거해 이 일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의 대답은 도리이고 이론이다.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의 본질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적인 말로 표현한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겠느냐? 묵상해 보아라. 얼마 전, 인터넷상에 다음과 같은 동영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사람이 지갑을 떨어뜨렸는데,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옆에 있던 강아지 한 마리가 보고는 지갑을 물고 그를 따라갔다. 하지만 그 사람은 강아지가 자기 지갑을 물고 있는 것을 보고 강아지가 훔쳤다고 생각해서 흠씬 두들겨 패 주었다. 이 일이 황당하지 않으냐? 그 사람의 품격은 개보다 못하다! 그 강아지가 한 일은 사람의 도덕적 기준에 완전히 부합한다. 다만 사람은 말을 할 줄 알아 “지갑이 떨어졌어요!”라고 외칠 수 있었겠지만, 강아지는 사람의 말을 할 줄 모르니 조용히 지갑을 물고 따라갔을 따름이다. 개조차 전통문화가 제창하는 좋은 행위를 실행할 수 있다. 그럼 사람은 어떠하냐? 사람에게는 양심과 이성이 있다. 사람은 처음부터 이러한 것들을 갖고 태어났으니 이런 일들을 더더욱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양심이 있는 한, 노력하거나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이 아주 간단히 이런 책임과 의무를 해내고 타인에게 도움과 이로움이 되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일의 성질을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은혜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은혜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는데, 보답을 논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럴 필요는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이 너를 구하려는 것이면 어떤 사람을 통해 봉사하게 하든 너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은혜를 완전히 사람에게 돌리거나 심지어 보은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다른 이에게 바쳐서는 안 된다.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 속의 ‘은혜’에 대해 새로운 인식과 정의를 알게 됐어요. 저는 원래 사람이 어려움이나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보내거나 목숨을 구해 주면 정말 큰 은혜를 입은 것으로 가슴에 새겼다가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까 그건 은혜라고 할 수 없더라고요. 그건 사람의 본능에 속한 거라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었어요. 저의 외삼촌의 경우가 그렇죠. 본인이 의사니까 제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저를 구해 주는 건 당연한 거고 그게 삼촌의 책임인 거죠. 무엇보다 저의 숨결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고, 저의 생사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거지 사실 삼촌이 저를 살 수 있게 구해 준 건 아니잖아요. 또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 엄마 혼자 저희 남매를 뒷바라지한다고 힘들어할 때 삼촌이 저를 집에 데려가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의술을 가르쳐 주고, 몸이 안 좋으면 영양 보충도 해 주고, 제가 아플 때 병원에서 챙겨 주기도 했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하심이니까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는 게 당연한 거죠. 그리고 외삼촌이 저희에게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준 것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하심이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게 맞잖아요. 이걸 깨달으니 외삼촌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사라졌어요.

이번 일을 체험하면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전통 사상이 얼마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건지, 얼마나 사람을 옥죄고 해치는 건지 알게 됐어요. 이걸 몰랐으면 전 은혜에 보답한답시고 계속 원칙 없이, 선을 지키지 않고 임의대로 처신하면서도 하나님께 대적하고 있다는 걸 몰랐을 거예요.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저를 깨워 주신 거예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이전: 3. 복음 전도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책임

다음: 8. 병통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얻게 되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32. 마음의 자유와 해방

스페인 미부『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정결케 되고 성품이 변화되며 의미 있는 삶을 살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려면,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징계와 매가 떠나지 않게 함으로써 사탄의 지배와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아야...

설정

  • 텍스트 설정
  • 테마

색상

테마

폰트

폰트 사이즈 조정

줄 간격 조정

줄 간격

페이지 너비

목차

검색

  • 페이지 내 검색
  • 도서 내 검색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