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자녀의 출세만 바라다 아들을 고통에 빠뜨리다

중국 샤오슈(小秀)

어렸을 적 저희 집에는 5남매가 있었고 그중 저는 장녀였습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타지에서 장사를 하셨기에 집에 관련된 모든 일은 어머니 혼자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무척 힘겹고 고단해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에 저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만 다닌 후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했습니다. 저는 늘 허리가 쑤시고 아플 정도로 힘들었고, 이런 생활이 너무 고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 사촌 동생이 대학교에 합격하자 온 가족이 무척 기뻐했고, 부모님도 늘 그 애가 장래가 촉망된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나는 이번 생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으니 성공할 방법이 없지만,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인재로 키워서 흙먼지를 마시며 힘들게 농사짓는 이 고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할 거야. 친척과 이웃들의 부러움과 우러름도 받고 우리 집안도 빛내게 할 거야.’

결혼 후 저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셨고, 아이들도 가끔 어머니를 따라 예배에 가고 기도를 드렸으며 어머니께 글을 가르쳐 드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로지 아이들 공부만 생각했기에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 신앙생활만 하세요. 아이들 공부에 방해되게 데리고 예배 다니지 마시고요.” 나중에 저도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지만, 아이들의 성적을 무척 중요하게 여겨 예배도 가끔 형식적으로만 참석했습니다. 아이들이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게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저와 남편은 타지로 가서 폐품을 수거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고, 허리가 아프고 등이 쑤셔도 쉴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아이들이 꼭 제대로 공부하게 해서 좋은 대학에 보내고 밝은 미래를 열어 줘야지. 그러면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보람이 있을 거야!’

한번은 아이들을 보러 집에 갔다가 아들 성적이 떨어졌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아들을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내가 밖에서 돈 버는 게 쉬운 줄 알아? 폐품 수거하는 일은 사람들도 무시한단 말이야. 내가 이 고생하는 게 다 너희 때문 아니니? 공부도 제대로 안 하고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아들은 울면서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어머니가 두 아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아이들 성적이 떨어질까 걱정이 되어, 아이들 학교 근처에 집을 얻어 작은 장사를 하며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 몇 년간 저는 온 마음과 정신을 아이들에게 쏟아부었습니다. 아이들을 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해 학업을 아주 엄격하게 관리했고, 조금의 자유도 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화장실에 오래 있어도 빨리 나오라고 재촉했습니다. 때로 아이들이 밖에 나가 놀거나 TV를 보며 쉬고 싶어 하면 저는 이렇게 쏘아붙였습니다. “네 외삼촌을 봐라. 명문대에 가서 번듯한 직장 구하니까 친척과 이웃들이 전부 우러러보잖아. 너희도 외삼촌을 본받아야지. 지금 고생 안 하고 지식을 더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 좋은 삶을 살겠니? 속담에도 ‘고생을 해 봐야 뛰어난 사람이 된다’고 했어.” 심지어 때로는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묶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면서’ 공부했던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두 아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엄마, 그만하세요. 그 말씀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어요. 걱정 마세요, 꼭 대학에 합격할게요!” 그때 저는 매일 아침 5시면 일어나 밥을 지었고, 오후에는 아이들 시간을 아껴 주려고 직접 학교에 밥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와 숙제를 할 때면, 게으름을 피울까 봐 자주 밤 12시까지 곁을 지켰습니다. 생활 면에서도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음식을 챙겨주었습니다. 붕어탕이 뇌에 좋다는 말을 듣고 자주 끓여 주었고, 두뇌 발달에 좋다는 우유와 영양제도 사주었습니다. 매일 토종란을 하나씩 꼭 먹게 했고, 아이들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사다 먹였습니다. 오직 자녀들이 더 똑똑해져서 좋은 성적을 받게 하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두 아이도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성적이 눈에 띄게 올랐습니다. 딸은 마침내 대학에 합격했고, 아들은 고등학교 모의고사에서 늘 상위권이었습니다.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이대로라면 아들이 명문대에 가는 건 문제없겠어.’ 그 후로 저는 아들을 더욱 엄격하게 관리했습니다.

대학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아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정신적으로 극도로 긴장한 나머지 밤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결국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열이 나고 기침도 했는데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소용이 없었고, 성적도 곤두박질쳤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제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계속 공부를 시키자니 아이의 몸이 버텨 내지 못할까 봐 겁이 났지만, 중요한 시기가 코앞인데 아들의 병은 나을 기미가 없고 성적마저 떨어지니 걱정이 앞섰습니다. ‘만약 수능을 망치면 아들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까? 혹시라도 대학에 떨어지면 내가 지난 몇 년간 들인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거 아닌가? 안 돼. 아들이 좋은 성적을 받아서 밝은 미래를 열게 하려면 추가로 더 공부를 시켜야 해.’ 그 후, 저는 매일 아들 침대 머리맡에 앉아 공부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제가 쳐다보는 것을 본 아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아빠가 되면 엄마처럼 교육하지 않을 거예요. 농구도 하고 탁구도 치게 자유를 줄 거예요.” 아들의 그런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아팠지만, 아들이 나중에 출세해서 좋은 삶을 살게 하려면 이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병이 좀처럼 낫지 않는 것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만약 수능 때까지 병이 낫지 않으면 분명 실력 발휘에 영향이 있을 텐데. 혹시라도 시험을 망치면 그간의 노력이 허사가 되잖아? 친척과 이웃들이 비웃을 게 뻔해. 그렇게 많은 공을 들였는데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 저는 아들의 병을 하루빨리 낫게 하려고 여기저기 병원과 약을 수소문했지만, 아들의 병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 시름에 잠겨 한숨만 내쉬었고, 온통 아들의 병이 언제 나을지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저는 제가 크리스천이니 이런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러러봐야 한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병이 낫지 않습니다. 수능이 코앞인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부디 제 아들의 병이 빨리 낫도록 지켜 주십시오.” 어느 날 밤 산책을 나갔다가 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자매님은 제게 요즘 상태가 어떤지 물었고, 저는 제 고통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 제게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아이의 공부나 병세는 하나님께 맡겨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게 해야 해요.” 자매님은 또 제게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며, 너는 너 자신을 주관할 수 없다. 자신을 위해 아무리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사람은 스스로를 주관하지 못한다. 네가 너 자신의 미래를 알고 네 운명을 주관할 수 있다면, 너를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피조물로서 평생 얼마나 고생하고 얼마나 복을 누릴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이라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며 앞날과 운명, 명예와 이익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녀도, 돈을 아무리 많이 벌고 학력이 아무리 높아도 자신과 다른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출세하고 가문을 빛내며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제가 이루지 못한 꿈을 모두 자녀에게 걸고 아이들에게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학습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남편과 저는 죽기 살기로 일해서 돈을 벌었고, 몸이 망가져도 일을 계속했습니다. 아이만 출세할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보람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저는 아이들에게 조금의 자유도 주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극도로 긴장해서 잠을 못 자도 감히 말하지 못했고, 심지어 기침을 하며 아플 때조차 저는 아들을 지켜보며 공부를 시켰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준 것은 모두 정신적인 압박이었고, 아들을 못 견딜 만큼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아들을 제 손안에 통제하며 아이의 운명을 바꾸려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들의 앞날을 하나님께 맡기고, 아들이 대학에 가든 못 가든 순리에 따르며 더는 아들에게 압박을 주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며칠 후, 저희 집 3층에 사는 남자아이가 고3 학업 스트레스로 갑자기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되어 밤낮으로 부모에게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부모님 탓이에요! 다 부모님 탓이라고요!”라고 소리치며 욕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예전에 제가 아들에게 공부하라고 윽박지르던 모습들이 영화처럼 눈앞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만약 제가 계속 이렇게 아들에게 공부하라고 윽박지르면 아들도 저 아이처럼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더는 이렇게 아이를 닦달하면 안 돼!’ 그 후부터 저는 정상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셨고, 더는 아들에게 공부하라고 윽박지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아들이 뜻밖에도 명문대에 합격하자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지식 속에는 모두 무신론적인 사상 관점이 들어 있고, 지식을 많이 배울수록 더 많은 사탄의 독소가 주입되며, 이런 것들은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여 결국 하나님의 구원을 잃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앞으로 몇 년 더 대학을 다니며 사탄의 황당한 논리가 수없이 주입되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에, 저는 아들이 돌아오면 예배에 더 많이 참석하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게 해서 하나님과 너무 멀어지지 않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었고, 어머니와 함께 기도하고 예배드렸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오로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만을 바랐고, 아이들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올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재난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보니,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없으면 어느 날 재난에 휘말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복음을 전해 하나님 앞으로 데려오고 싶었고, 명절이나 휴일에 아이들이 돌아올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아이들도 듣고 싶어 하기는 했지만, 예배를 드리자고 하면 아들은 싫어하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저 너무 바빠요! 제가 여기까지 온 게 쉬운 줄 아세요? 열심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어떻게 좋은 삶을 살겠어요? 지금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번듯한 직장 구하기도 쉽지 않아요.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저 지금 대학원에 박사 과정까지 밟고 있잖아요. 이게 엄마가 꿈에 그리던 거 아니었어요? 저는 이제 곧 성공해서 좋은 삶을 살게 될 텐데, 저를 위해 기뻐해 주셔야죠. 어째서 지금은 딴사람처럼 변해서 자꾸 제 발목을 잡으세요?” 아들의 말을 듣고 저는 마음이 아팠지만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이 한 말은 모두 제가 예전에 매일같이 아들 귀에 대고 주입했던 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금 아들은 매일 논문 때문에 새벽 1시가 넘도록 잠을 자지 못했고 20대인데도 머리가 벗겨졌습니다. 아들이 너무 힘겹게 사는 것을 보니 마음이 조급하고 괴로웠습니다. 그저 당시에 아이를 그렇게 교육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저 자신을 원망할 뿐이었습니다. 이제 아이를 인재로 키워냈지만, 결국 아이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그 후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머리를 쥐어짜며 아이에게 지식과 명예, 이익을 추구하게 하고, 자녀를 인재로 키우는 데에만 몰두했는데, 결국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을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었을까?’ 하루는 묵상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모 혹은 집안 어른이라면 누구나 자녀에게 저마다 조금씩 다른, 크고 작은 기대를 품고 있다.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 처신하기를 바란다. 학교에서 열등생이 아닌 우등생, 수재가 되어 선생님과 동급생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란다. 시험 성적은 늘 80점 이상이기를 바라는데 만약 60점을 받으면 때리고, 60점도 못 받으면 벽을 보고 반성하게 하거나 벌로 오래 세워 두거나 밥을 안 주거나 잠을 안 재우거나 TV를 못 보게 하거나 컴퓨터를 못 쓰게 하거나 사 주기로 했던 좋은 옷과 장난감을 안 사 준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에게 갖가지 기대를 품고, 자녀에게 커다란 희망을 건다. 다들 자녀가 굵직한 인물이 되고 출세 가도를 달려 조상과 가문을 빛내기를 바란다. … 그렇다면 부모의 이러한 바람은 알게 모르게 자녀에게 무엇으로 작용하겠느냐? (압박감입니다.) 압박감이 되고 또 무엇이 되느냐? (짐이 됩니다.) 압박감이 되고 일종의 족쇄가 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으므로 자신들의 기대에 맞추어서 자녀를 가르치고, 인도하고, 교육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이 기대하는 것을 위해 자녀에게 투자를 하거나 그 어떤 대가든 치른다. 자녀가 학교에서 수재이자 뛰어난 학생으로서 시험을 볼 때마다 90점 이상을 받아 1등을 하고, 아무리 못해도 5등 안에는 들기를 바라는 부모를 예로 들겠다. 부모가 이렇게 말하고 나면 아이가 그 목표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 자기들도 어느 정도 희생하지 않겠느냐? (맞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목표를 실현하게 만들기 위해서 아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복습하고 교과서를 외우면 자기들도 일찍 일어나 함께하고, 더운 날에는 아이에게 부채질을 해 주고 시원한 음료를 준비해 주거나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먹인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에게 콩국, 꽈배기 튀김, 달걀을 준비해 준다. 특히 시험 기간에는 아이에게 긴 꽈배기 하나와 달걀 두 개를 주면서 먹고 100점 받기를 바란다. 만약 네가 “못 먹겠어요. 달걀은 하나만 먹을래요.”라고 하면 “뭘 모르는구나. 달걀을 하나만 먹으면 10점밖에 못 받으니까 하나 더 먹어. 힘내서 이 달걀까지 먹으면 100점 받을 거야.”라고 한다. 아이가 “방금 일어나서 안 들어간단 말이에요.”라고 하면 “안 돼. 꼭 먹어야 해! 착하지, 엄마 말 들어. 다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먹으렴.”이라고 한다. 그러면 아이는 고민하다가 이런다. “엄마는 나를 정말로 사랑하시는구나. 다 나를 위해서 저러시는 거니까 먹자.”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달걀이지만 사실상 삼키는 것은 무엇이냐? 압박감, 달갑지 않은 마음이다. 음식이 좋고 어머니의 기대가 아주 크니 인성과 양심상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러한 사랑에 반항해야 하고 그러한 방식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 특히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특별한 기대를 건다. 자녀가 그들을 넘어서기를 바라고, 그들 세대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더더욱 바란다. 무용가가 되고 싶었던 부모를 예로 들겠다. 본인 성장기의 시대적 배경 또는 당시의 집안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자기는 결국 무용가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부모는 그 꿈을 네게 투영한다. 기본적으로 네게 학교에서 반드시 상위권을 차지해야 하고 명문대에 붙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거기에 더하여 너를 무용 학원에 등록시켜 학과목 외에 여러 가지 무용을 배우게 한다. 학원에서 열심히 배우고 집에서도 열심히 연습해 무용 학원 내의 에이스가 되라고 하고, 그리하여 결국에는 명문대에도 붙고 무용가도 되라고 한다. 네게 주어진 선택지는 무용가가 되거나 명문대에 들어가 석사, 박사 학위를 따는 것이다.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 두 가지 길뿐이다. 그들의 기대는 한편으로는 네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에 들어간 다음 두각을 나타내어 앞길이 유망하고 찬란하기를 바라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네가 대신 이루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부 혹은 미래의 직업 측면에서 너는 동시에 두 개의 짐을 지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들이 너를 위해서 치른 모든 대가에 보답하며, 훗날에 두각을 나타내어 그들을 호강시켜 줘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젊었을 때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 그들의 꿈을 대신 이루어 줘야 한다. 힘들지 않겠느냐? (힘듭니다.) 어느 쪽 짐이든 네게는 벅차다. 어느 쪽 짐이든 모두 너를 숨 막히게 짓누른다. 특히 지금처럼 경쟁이 극도로 치열한 시대에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갖가지 요구는 말 그대로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고 잔인무도하다. 그야말로 생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이를 뭐라고 하느냐?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 이방인들이 어떤 표현을 쓰든 간에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똑똑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은 가스라이팅이라 하고 우리는 뭐라고 하느냐? (멍에, 짐이라고 합니다.) 짐이라고 한다. 짐이라는 것이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것이냐? (아닙니다.) 이는 별도의 것이다. 다시 말해 네가 따로 하나를 더 짊어진 것이다. 너라는 사람과 일체가 아니다. 그것은 너의 몸, 마음, 영이 갖추고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것이다. 그것은 외부에서 온 것이지 너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제가 바로 그렇게 아이를 교육했습니다. 어릴 적 농사일로 온갖 고생을 다 한 것은 어렸을 때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제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며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에 합격하고, 장래에 좋은 앞날을 맞이하며, 출세하여 가문을 빛내기를 바랐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저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압박을 가했습니다. 원래 아이들은 어렸을 때 기도하고 예배드리기를 좋아했지만, 저는 공부에 방해될까 봐 어머니가 아이들과 예배드리지 못하게 했고, 놀아야 할 때도 놀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이의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저는 아이를 꾸짖고 잘못된 사상을 주입하며 압박했습니다. 아들이 수능 스트레스로 병이 났을 때도 저는 성적에 영향이 있을까 봐 매일 아들을 지켜보며 게으름을 피울까 걱정했고, 시험을 망쳐 그간의 노력이 허사가 될까 봐 염려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너무나도 큰 정신적 압박을 주었습니다! 겉으로는 아이를 위한 것이었지만, 사실은 아이가 명문대에 합격하고 출세하여 제 체면을 세워주고, 저의 이상과 소원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무거운 짐과 압박감을 안겨 주었고,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족쇄처럼 아들을 옭아맸습니다. 지금 아들은 비록 이상적인 명문대에 합격했고, 제 소원도 이루어져 체면도 서고 허영심도 채워졌지만, 아들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이제 아들에게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들은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피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매일 명예와 이익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명예와 이익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인간관계를 관리하느라 몹시 힘들고 고단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들을 오늘날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는 어린 자녀에게 항상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에 가고 석사, 박사도 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찾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이루는 거야. 그럼 그 후로는 편하게 살 수 있단다.”라고 가르쳤다. 아이는 네 가르침과 격려 속에서, 그리고 네가 주는 갖가지 압박 속에서 네가 만들어 준 궤도대로 살아가고 추구했으며, 네가 바라는 대로 당시 네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지금 너는 하나님을 믿고 일부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올바른 사상 관점을 갖게 되었다. 네가 이제 와서 아이에게 그런 것들을 추구하지 말라고 하면, 그는 도리어 반박할 것이다. “지금 제가 이렇게 하는 건 당신이 바라던 것 아닌가요? 제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가르치셨잖아요? 또 그렇게 요구하셨고요. 그런데 이제는 왜 또 그러지 말라는 거죠? 제 행동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저는 지금 당신이 원하시던 대로 하고 있고, 누리고 있어요. 그러니 기뻐하고 흡족해하고 자랑스러워하셔야죠!”라고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심정이겠느냐? 울어야겠느냐, 웃어야겠느냐? 후회하지 않겠느냐? (후회할 것입니다.)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아이가 어릴 때 네가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즐거운 어린 시절을 선사했더라면, 어떤 압박도 주지 않고,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거나 고위 공무원, 부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명리와 지위를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고 평범하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했다면, 많은 돈을 벌고 누리며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요구하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면 된다고 했다면, 단순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면 족하다고 했다면 어쩌면 하나님을 믿게 된 부모의 사상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 그는 더 즐겁게 살아갈 것이며, 그렇게 큰 삶의 스트레스도, 사회로부터 오는 수많은 압박감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명리니 뭐니 하는 건 얻지 못했겠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행복하고 평온하고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미성년자일 때부터 부모의 거듭된 충동질과 종용, 그리고 압박 속에서 한결같이 지식을 배우고 재물과 명리를 추구해 왔다면, 결국 명리와 지위를 얻고 누리면서 잘살고 돈도 많이 벌겠지만 삶이 무척 피곤할 것이다. 너를 만날 때마다 피폐한 몰골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집이나 부모 곁에 돌아갈 때만 가식의 가면을 벗고 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뿐, 문밖으로 나가면 다시 가면을 써야 한다. 너는 그의 피폐하고 딱한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프겠지만, 그를 돌아오게 할 힘이 전혀 없으며, 이미 돌이킬 수도 없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네 가르침과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어릴 때부터 스스로 알고 추구한 것이 아니다. 이는 너의 가르침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자식의 그런 얼굴, 그런 생활 상태를 보면 괴롭지 않겠느냐? (괴로울 것입니다.) 하지만 네게는 힘이 없으니 후회와 괴로움만 남을 뿐이다. 너는 아이가 사탄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돌아올 수 없다고, 네게는 돌이킬 힘이 전혀 없다고, 이는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네가 아이를 망쳤고 네 잘못된 사상 교육과 인도가 아이를 잘못된 길로 이끌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후회만 남을 것이다. 자식이 고생하며 이 사악한 사회에 패괴되고 삶에서 비롯된 각종 압박을 견디는 것을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면서도 아무 방법이 없으니 그저 “집에 자주 들르렴. 맛있는 거 해 주마.”라고 말할 뿐이다. 네가 해 준 밥을 먹는다고 무슨 문제가 해결되겠느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그는 이미 사상이 성숙하고 형태를 갖췄으니 손에 들어온 명예와 지위를 놓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렇게 곧장 나아갈 뿐 돌아올 수는 없다. 이는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그릇되게 지도하고 잘못된 사상을 주입해 야기한 나쁜 결과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중에서) 저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고, 괴로워서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들이 어렸을 때는 무척 순수해서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었고, 외할머니를 따라 함께 하나님을 믿고 예배드리고 싶어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모든 게 다 쓸모없고, 오직 공부만이 최고다’, ‘마음을 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운명은 자기 손에 달려 있다’와 같은 사탄의 사상 관점에 따라 출세하고 가문을 빛내기를 추구했고, 아들에게도 이런 사상을 주입하여 아들을 지식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아들은 하염없이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며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는 아이가 사탄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돌아올 수 없다고, 네게는 돌이킬 힘이 전혀 없다고, 이는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네가 아이를 망쳤고 네 잘못된 사상 교육과 인도가 아이를 잘못된 길로 이끌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후회만 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제하신 것이 바로 지금의 제 심정이었습니다. 아들이 집에 올 때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읽어 주고 싶었지만, 아들은 늘 반박하며 온갖 핑계를 대고, 오히려 제가 자기 발목을 잡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들은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특히 아들이 매일 명예와 이익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젊은 나이에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하며, 매일 지친 몸을 이끌고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지도 교수의 생각과 취향을 파악하느라 골머리를 앓는 모습을 볼 때면 더욱 그랬습니다. 아들은 교수가 좋아하는 것에 따라 비위를 맞추고, 그들 앞에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라도 잘못해서 교수에게 찍혀 앞길에 지장이 생길까 봐 조심했습니다. 매일 가면을 쓰고 너무나 힘겹게 살아가는 아들을 보니, 아들이 오늘날 이 지경이 된 것은 다 저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지식을 추구하라고 부추겨 아들을 망친 것입니다. 이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한 행동은 아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아들을 고통에 빠뜨린 것이었고, 아들을 제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제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형제자매들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며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그런 사탄의 독소에 얽매이지 않아 편안하고 즐거우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제 마음은 더욱 후회로 가득 찼습니다. 만약 제가 아들에게 그런 사상 관점을 주입하지 않았다면, 아마 아들은 지금처럼 명예와 이익을 좇고 출세하기 위해 이렇게 고통스럽고 무력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만 하면 몹시 후회되고 제 자신이 증오스러웠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아이가 대학에 가기를 바랐고, 그토록 집착했을까? 문제의 근원은 무엇일까?’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탄은 명예와 이익을 가지고 사람의 생각을 지배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만 사로잡혀 이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고, 치욕을 참고, 명예와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워 놓았다. 족쇄가 채워진 사람은 족쇄에서 벗어날 능력이나 용기가 없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족쇄를 차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인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신하며, 갈수록 사악해지고 있다. 이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이 사탄의 명예와 이익에 넘어가 파멸한다. 지금 보니 사탄의 이런 음흉한 속셈이 가증스럽지 않으냐? 오늘은 너희가 아직 사탄의 음흉한 속내를 간파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명예와 이익이 없으면 삶이 끝난다고 생각하고, 명예와 이익이 없으면 앞으로 방향과 목표를 찾을 수 없고 칠흑같이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탄이 명예와 이익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미혹하고 해치며 오직 명예와 이익만을 좇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어릴 적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돈을 벌러 나갔다가 온갖 고생을 하고 남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지식이 많고 명망 있는 사람들이 어디를 가나 존경받는 것을 보고 그들을 부러워하면서 제가 무시당하는 것은 모두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걸고, 제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들이 대신 이뤄 주기를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모든 시간과 대가를 바쳤고, 몹시 고되고 힘들게 살았으며, 아들에게도 고통과 괴로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나중에 비록 아들이 명예와 이익을 얻었지만, 하나님과는 점점 더 멀어졌고,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추구했던 명예와 이익은 바로 사탄이 저와 아들에게 씌운 보이지 않는 족쇄였습니다. 사탄은 명예와 이익으로 우리를 유인하고 미혹하여 오직 명예와 이익을 위해 분투하게 하고, 진리를 추구할 마음은 갖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기꺼이 사탄을 위해 고통받았고,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부인하다가 결국 사탄에게 삼켜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음험한 속셈과 간계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삼촌의 아들은 대학에 합격했지만, 부모님은 전공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인맥을 동원해 전공을 바꿔 버렸습니다. 결국 아이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정신병을 앓게 되어 지금은 혼자 생활조차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학업 실패로 농약을 마시거나 투신자살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참담한 교훈 하나하나가 제게 일깨움과 경고를 주었습니다. 사실 사람의 일생이 가난할지 부유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명예와 이익은 우리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고, 우리를 고통의 심연으로 끌고 갈 뿐입니다.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것을 보니 너무나 증오스러웠습니다! 동시에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이끄심, 인도하심을 통해 고통의 근원을 찾았고,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의 해악과 결과를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그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또한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고심을 깨달았고, 더는 사탄에게 조롱당하고 해를 입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명예와 이익의 족쇄에서 벗어나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는 길을 갈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또 어떻게 자녀를 교육해야 하는지에 관해 하나님 말씀 속에서 올바른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아이가 어릴 때 네가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즐거운 어린 시절을 선사했더라면, 어떤 압박도 주지 않고,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거나 고위 공무원, 부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명리와 지위를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고 평범하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했다면, 많은 돈을 벌고 누리며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요구하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면 된다고 했다면, 단순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면 족하다고 했다면 어쩌면 하나님을 믿게 된 부모의 사상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 그는 더 즐겁게 살아갈 것이며, 그렇게 큰 삶의 스트레스도, 사회로부터 오는 수많은 압박감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명리니 뭐니 하는 건 얻지 못했겠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행복하고 평온하고 안정적이었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자녀를 교육하는 올바른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자녀를 교육할 때 자녀에게 지식을 추구하고, 지위와 명예, 출세와 부를 추구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되며, 그저 자녀가 즐겁고 건강하게, 심리적 압박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기만 바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 또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저와 제 자녀들은 모두 피조물이며, 우리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평생 어떤 운명으로 어떤 길을 갈지는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달려 있으며, 저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의 운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읽어 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아이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느냐 없느냐는 모두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저는 그저 제 본분과 책임을 다하며 제가 해야 할 일을 잘하면 됩니다. 사물을 보는 제 관점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도 모두 하나님 말씀이 이룬 성과입니다. 이제 저는 오로지 진리를 잘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 살며, 제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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