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단지 은혜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옳은가

2016년 말, 저희 아이가 계속 설사를 했습니다. 약을 많이 먹어도 듣지 않았는데, 제가 하나님을 믿은 지 며칠만에 아이의 병이 나았습니다. 얼마 후, 오랫동안 저를 괴롭히던 두통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좋아졌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 저에게 어떤 본분을 안배해도 최선을 다해 협력했습니다. 그때 남편은 제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막았지만, 저는 여기에 얽매이지 않았고,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면 앞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고, 구원받을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20년 4월, 저는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고, 더욱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몇 달 후, 하루는 식사를 마친 뒤 피곤함이 밀려오고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 혈압을 재 보았습니다. 그 결과, 최고 혈압이 160, 최저 혈압이 90으로 나왔습니다. 그 당시 저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전에는 고혈압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혈압이 이렇게 높지?’ 그래도 아직 젊으니,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고, 혈압도 분명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크게 개의치 않았고, 몇 가지 민간요법으로 치료했습니다. 2021년 3월, 약국에서 혈압을 재 보았는데 최고 혈압이 185, 최저 혈압이 128이었습니다. 의사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혈압이 이렇게 높으면 자전거 탈 때 조심하셔야 돼요. 넘어지면 큰일 나요.” 의사의 말을 들으니 저도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고혈압은 합병증이 많을 거야. 어떤 사람은 혈압이 높아 뇌출혈로 갑자기 죽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뇌경색에 걸려 쩔뚝거리며 걷게 돼. 또 마비 때문에 스스로 거동을 못하는 사람도 있어. 혹시라도 내가 넘어져서 반신불수라도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자 속으로 조금 원망스러웠습니다. ‘난 계속 본분을 이행해 왔는데, 혈압이 어떻게 이렇게 높지? 하나님은 왜 나를 보호해 주시지 않는 걸까?’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양쪽 어깨는 참을 수 없이 아팠고, 머릿속은 신경들이 팽팽히 당기는 것 같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끊어질 것처럼 무척 아팠습니다. 이러다가 언제 혈관이 터져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의사가 경추 질환이 심각해 두통이 생긴 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치료 후 상태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머리가 어지럽고 가끔씩 두통도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저는 다소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바치고 헌신했는데, 어째서 병이 낫지 않고 점점 심해질까? 이러다간 언제든 죽을 수도 있겠어. 역시 간단한 일만 하는 게 낫겠어. 리더처럼 힘든 일은 맡을 필요 없잖아. 그럼 병이 나을지도 몰라.’ 그 후로는 본분을 이행하긴 했지만, 걱정하고 근심하는 내적 상태로 살면서 본분에 아무런 부담도 갖지 않았고, 복음 사역에 성과가 없는 것을 보고도 원인을 정리해서 문제를 해결할 마음조차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몇 가지 민간요법을 쓰고 혈압약도 먹으니 혈압은 조금씩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바치고 헌신했지만 복은 못 받고 몸은 점점 나빠지기만 하니 리더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간단한 일만 하면 고생할 필요가 없으니 몸도 돌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 시기에 제 내적 상태가 나빴기 때문에 예배에서는 대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내용만 교제했고, 본분을 이행할 마음도 없어 복음 사역 성과는 계속 떨어졌습니다. 결국 윗선 리더가 저를 책망하며, 이렇게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교체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제가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했음을 알고 마음속에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스스로를 반성했습니다. 하루는 <질병이 찾아오면 하나님 뜻 구해야 한다>라는 하나님 말씀 찬양을 들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병이 찾아오면 어떻게 겪어야 하느냐? 하나님 앞에 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구하고, 자신이 한 어떤 일이 진정 진리에 어긋나는지, 자신에게 아직 해결되지 않은 패괴가 어떤 것이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없다. 사람은 고통을 통해 단련받아야만 방종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다. 고통이 생기면 늘 기도하면서 그동안 잘못하거나 진리에 어긋나는 부분은 없었는지 성찰하기 마련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진리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질병의 고통을 빌려 제가 스스로를 반성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게 하신 것은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고심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질병의 고통이 닥쳐도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할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어떤 패괴 성품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려고 하시는지, 하나님을 믿는 데 어떤 불순물이 있는지는 반성하지 않고, 늘 질병 속에서 소극적으로, 대항하며 살았고 복음 사역에 생긴 많은 문제들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본분에서 벗어나려고만 했습니다. 저의 성품이 너무 강퍅했고, 정말 너무 양심과 이성이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이렇게 강퍅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공과를 배울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세요.”

그 후, 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한 체험 간증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영상에 인용된 하나님의 말씀은 제 내적 상태와 딱 들어맞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로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재난을 피할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나님의 사역과 경영을 언급하면 그들은 입을 다물고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지루한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이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영에 관한 메시지를 들어도 건성으로 대할 뿐 보배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으며 더욱이 생명의 일부로 여겨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복을 받는 것이다. 그 외에 그들의 목표와 전혀 무관한 일은 귀찮아하며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어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정당한 목적이며, 또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의 상태가 이렇다. 그들의 목적과 속마음은 얼핏 들으면 아주 정당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하고 희생하고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며,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심지어 오랫동안 외지에 나가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미도 인생관도 바꾸고, 심지어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까지 바꾸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바꾸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꿈을 경영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며, 그 길이 얼마나 멀든,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까지 불사한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토록 끊임없이 바치게 하는 것이겠느냐? 그들의 양심이겠느냐?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이겠느냐?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겠다는 결심이겠느냐?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그들의 믿음이겠느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충성심이겠느냐? 아니면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는 그들의 희생정신이겠느냐?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심혈을 쏟아붓고 대가를 치를 수 있다니, 그야말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바쳤는지는 차치하자. 그들의 행위만 해도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를 수 있다니, 거기에 사람과 밀접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겠느냐? 여기까지 말하다 보니, 우리는 지금껏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즉,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애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없고 베풂과 연민만 있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3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본분 이행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고,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사역하고 있고, 겉으로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자신의 속셈을 품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이용하고 하나님과 거래하면서, 복을 받고자 하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를 되돌아보니, 저희 아이의 병이 낫고, 수년 동안 저를 괴롭혔던 두통도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고, 가족이 말려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제가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면 나중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고, 앞으로 구원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고혈압 진단을 받고서도 저는 본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늦은 밤까지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기꺼이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제가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께서 제 질병의 고통을 없애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병이 호전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자, 저는 오해하고 원망하며 복음 사역에 생긴 문제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리더 본분도 이행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동안 버리고 헌신했던 이유가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해 자기의 앞날의 복, 좋은 종착지와 결말을 맞바꾸려 한 것입니다. 저와 하나님 사이는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처럼 일종의 거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시련을 주든 하나님에 대한 충정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일단 하나님의 사역이 자기 육에 불리해지면 즉시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나간다. 이런 자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굳게 설 수 없는 자들이고, 복만 받으려 할 뿐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자신을 바칠 마음이 전혀 없는 자들이다. 이런 부류의 소인배들은 사역이 끝날 때 모두 ‘쫓겨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조금도 인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인간성이 없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은 편안한 환경에 있거나 취할 이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지만, 일단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결국 깨지게 되면 즉시 일어나 반항한다. 심지어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난날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대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악마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지 않는다면 마음속의 우환이 되지 않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복을 받든 화를 당하든 모두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욥이 시련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온 산의 말과 양을 약탈당하고, 자녀들은 모두 죽고, 자신도 온몸에 독한 종기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 1:21) 욥은 하나님께 진실한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시 제 자신의 모습에 비춰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인 후 아이의 병이 나았고, 수년간 저를 괴롭히던 두통도 나았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저는 열심히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제 병이 점점 심해지고, 제가 바라던 복을 받지 못했을 때는 즉시 태도를 바꿔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분에 아무런 부담을 가지지 않았고, 교회의 이익을 전혀 지키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로지 개인의 이익만 고려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이익을 얻고자 했습니다. 복을 얻지 못하자 소극적이고 태만하게 변해 하나님께 대항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열했는지, 얼마나 인성과 이성이 결여되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만약 여전히 이렇게 강퍅하게 살아간다면 결국에는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복받는 것이 정당한 추구 목표가 아니라면 정당한 추구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겠느냐?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모든 배치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사람이 갖추어야 할 추구 목표이다. 예를 들어, 너는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관념과 오해를 가지며 순종하지 못한다고 하자. 어째서 순종하지 못하겠느냐? 네 종착지나 복받으려는 꿈이 도전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고 괴로워하며, 본분을 내팽개치고 이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네 추구에 문제가 있어서이다.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서둘러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진리를 구해 패괴 성품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급선무이다. 너는 “나는 본분을 내팽개칠 수 없어. 피조물이 이행해야 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복받으려는 욕망을 내려놓아야 해.”라고 말해야 한다. 복받으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진리 추구의 길을 걸으면 한결 홀가분해지는데 소극적인 상태에 빠질 리 있겠느냐? 설령 가끔 소극적인 상태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그 일에 속박받지는 않을 것이며,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기도하고 싸우면서 네 목표를 복받는 것과 종착지를 추구하는 것에서 진리 추구로 바꿀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진리 추구는 피조물의 본분이야. 오늘 나는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았으니 가장 큰 수확을 얻은 거야. 이건 무엇보다 큰 복이야. 하나님께서 나를 원치 않으신다고 해도, 좋은 종착지가 없고 복받을 희망이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거야. 이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무슨 이유든 내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는 데 지장을 줄 수는 없어. 이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내 원칙이라고.’ 이러면 육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그런데도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면 어떻게 하죠?”라고 말하는데, 그럼 또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소극적인 상태에 몇 번을 빠지든 계속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데 신경 쓰고, 진리에 공을 들이면 소극적인 상태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게 된다. 그러면 언젠가 너는 복받으려는 욕망이 사라지고 종착지나 결말에 속박받지 않으며, 이렇게 사는 것이 한결 홀가분하고 자유롭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생명 진입이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복을 받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추구해야 할 목표도 아니고, 하나님을 믿으며 가야 할 길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진리를 구해 성품이 변화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진정한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전에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러다가 병이 점점 심해지자 복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좌절되었다는 생각에 소극적으로 변하고 대항했습니다. 겉으로는 본분을 내팽개치지 않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미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본분을 건성으로, 형식적으로 이행하면서 문제를 보고도 해결하지 않아서, 결국 복음 사역에 성과가 없었고, 형제자매도 소극적인 내적 상태로 살게 되어 교회 사역에 손해를 입혔습니다. 제가 걸은 길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길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는 복 받기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여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기를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욥처럼 말입니다. 욥은 복을 받든 화를 당하든 언제나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종했던,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잘못된 추구 관점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를 원합니다. 제 병은, 정상적으로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며 평소에 식단에 좀 더 주의하고 적당히 운동하면 됩니다. 제가 복받으려는 속셈과 관점을 내려놓자, 마음이 훨씬 편해지고 본분 이행에도 힘이 생겼습니다. 그 후 저는 복음 전파자들과 함께 오류와 문제를 정리하고, 그들의 사역을 점검하고 감독했고, 적합하지 않은 사람은 조정했습니다. 얼마 후, 복음 사역은 이전보다 성과가 좀 더 좋아졌습니다.

그 후, 혈압을 몇 번 측정했는데 뜻밖에도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척 기쁘면서도 조금은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돌아보니, 그동안 질병의 고통 속에 살면서 본분에 부담을 갖지 않아 사역에 손해를 끼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으시고 저에게 회개할 기회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정말 죄스러웠습니다. 그 뒤로 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추구하는 것은 다 나중에 복을 얻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으로, 모든 사람이 이러한 속셈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있는 패괴된 것들은 반드시 시련과 연단으로 해결받아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정결케 되지 않은 부분이 있고 패괴 표출이 있다면 반드시 그 부분에서 연단을 받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안배이다. 하나님은 환경을 마련해 네가 그 환경 속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자신의 패괴를 알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의도와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놓고 말하면 몇 년간의 연단과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은 생각과 마음속에서 패괴된 육체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탄 본성에 통제되는 부분이 있고, 자신의 욕망과 요구가 있다면 그 부분에서 고난을 겪어야 한다. 오직 고난 속에서만이 공과를 배울 수 있다. 즉,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수많은 진리는 다 고난과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편안하고 순탄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알게 되었습니다. 큰 병고를 겪는 것은 사람이 볼 때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고통을 통해 사람을 연단하고 정결케 하십니다. 이번에 제가 병에 걸린 것도 표면적으로는 제가 다소 고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이 질병의 고통을 통해 제 믿음에 섞인 불순물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이런 질병의 고통이 없었다면, 저는 자신의 복받기를 바라는 속셈과 불순물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속이고 하나님과 거래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되었을 것입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고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대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누렸습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이러한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는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서 진리를 선포하고 심판하는 사역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여러 가지 환경을 마련해서 사람을 연단하고 정결케 하십니다. 이를 통해 사람을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함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만 해서는 안 되며, 심판과 형벌을 받고 시련과 연단도 겪어야 하고, 패괴 성품이 변화되기를 추구하며 자신의 본분을 열심히 감당해야 합니다. 이번 병을 겪으면서 비록 고생도 약간 했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행하신 것이 모두 사랑이자 구원임을 체험했습니다. 또한 하나님 사역이 얼마나 지혜로운지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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