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본분 이행에 왜 책임지기를 두려워할까?
저는 원래 교회에서 양육 사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리더가 제게 저를 영상 사역을 맡도록 조정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1년 전에 영상 사역을 맡았었지만, 본분 이행에 성과만 급하게 내려다가 영상 사역에 지장을 주게 되었고, 결국 교체되었는데, 지금 또다시 내게 그 일을 맡기다니,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영상 사역을 맡으려면 단지 사역 능력만 필요한 게 아니라 관련 업무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하는데, 나는 부족한 점이 많고 자질도 평범해. 만약 그 일을 맡아서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지? 나는 이 본분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래서 저는 리더에게 예전에 제가 교체된 이유를 말해주었고, 저의 자질과 사역 능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말에 숨은 뜻은 결국 제가 이 본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면 리더가 다른 사람을 고려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리더는 오히려 저에게 지난 실패의 교훈을 잘 정리하고, 하나님을 의지해 이 본분을 잘 이행하라고 교제해 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매우 갈등했습니다. 저도 이 본분이 임한 데에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으므로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일을 잘하지 못해서 또 드러나고 교체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결국 마음을 굳게 먹고 이 본분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영상 사역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에 이 사역을 맡았던 자매도 나보다 자질과 능력이 뒤떨어지지 않았음에도 그녀조차 잘하지 못했는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양육 사역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성과도 괜찮은 편이어서 아무래도 이 본분을 이행하는 게 안전한 편이야. 하지만 영상 사역은 달라. 내게는 원래부터 난이도가 높은 데다, 전에 이미 어떤 과오를 범했기 때문에 만약 또 제대로 하지 못해서 사역에 방해와 교란을 초래하게 된다면 머지않아 도태될 거야.’ 저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담스러웠고, 진퇴양난의 상태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비록 말로는 영상 사역을 맡겠다고 대답했지만, 계속해서 양육 사역을 아직 인수인계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대며 미뤘습니다. 저는 이런 내적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저를 이끌어 저 자신을 깨닫고 이 내적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기도를 드린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대로 일을 했을 때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고,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려는지도 몰랐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명하여 그가 해야 할 일을 지시했을 뿐 많은 설명은 하지 않았다. 노아는 명대로 행했지 사사로이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대항하지 않았고 두 마음을 품지도 않았다. 그는 순진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그가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졌던 신념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부탁을 대함에 있어 그토록 명쾌하고 단순했다. 노아의 본질, 즉 그 행위의 본질은 순종이다. 의심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개인적 이익이나 이해득실을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다고 말씀하자 그게 언제냐고 묻지 않았고, 상세한 내용도 묻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왜 세상을 멸하는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명대로 행했을 뿐이다. 하나님이 무엇으로, 어떻게 지으라고 명한 대로 그는 일일이 행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려야겠다는 태도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했다. … 그는 단순하게 순종하고 명령대로 행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노아가 하나님의 부탁을 대하는 태도가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부탁이 노아에게 임했을 때, 노아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의심하거나 추측하지 않았고, 거절하거나 핑계 대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순수하게 하나님께 따르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그대로 행하며, 개인의 이익과 손실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했습니다. 제 자신이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떠올리며, 저는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리더가 저에게 영상 사역을 맡으라고 했던 순간, 제 마음은 의심과 경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상 사역은 난이도가 높고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본분을 회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영상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이번에 다시 이 본분이 임했을 때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이 본분을 받아들이고, 본분을 이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지난날의 부족함을 채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일에서 제 이익과 손실만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고 경계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 본분을 통해 저의 앞날과 운명을 빼앗으시려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저 자신이 정말로 양심도 없고 이성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아무 일이 없을 때는 늘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드리겠다고 말했지만, 막상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오자 오직 제 생각만 하고 조금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부끄러웠고, 더 이상 이 본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의 고민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간구하며, 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묵상 중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고,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해 조금의 인식이 생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교회에서 그에게 사역을 하나 맡기면 그는 우선 그 사역을 할 때 책임을 져야 하는지 따져 보고 책임을 져야 한다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본분을 이행하는 조건은 첫째, 한가해야 하고, 둘째, 바쁘거나 피곤하지 않아야 하며, 셋째, 무엇을 하든 책임지지 않아야 한다. 그는 이런 본분만 받아들인다. 이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약삭빠르고 간사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책임은 조금도 지려 하지 않고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머리가 깨질까 두려워하는 이런 사람이 무슨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 집에서 무슨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 집의 사역은 모두 사탄과 싸우는 일, 하나님나라의 복음 확장과 관련 있는데 책임이 따르지 않는 본분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보기에 리더를 맡으면 책임이 없겠느냐? 그의 책임이 더 크지 않겠느냐? 그는 더 많은 책임을 짊어져야 하지 않겠느냐? 사실 복음을 전파하고 증거하거나 영상을 만드는 등 어떤 사역을 하든 진리 원칙과 관련된 일이라면 다 책임이 있다. 본분 이행에 원칙이 없다면 하나님 집 사역에 영향을 끼칠 것이고 책임지는 걸 두려워한다면 아무 본분도 이행하지 못한다.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과연 간이 작은 것일까, 아니면 성품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 일에 대해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실, 이것은 간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자기를 위해 돈을 벌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일을 할 때, 그는 어찌 그렇게 간이 크단 말이냐?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나 하나님 집을 위해 일할 때는 눈곱만큼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사람은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가장 간교한 사람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 대해 진심이 전혀 없고, 충성심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책임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과감하게 중임을 맡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는 하나님 집 사역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앞에 나서서 용감히 나아가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핵심적인 사역을 보면 용감하게 막중한 책임을 짊어질 줄 알고, 고생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정예병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냐? 아니다. 그것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는 정의감도 책임감도 없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자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고, 진리를 전혀 안 받아들이는 자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는 구원받을 수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 마음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전에는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문제의 심각성을 그렇게 크게 느끼지 못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밝히신 내용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가장 이기적이고 교활한 사람이라는 것과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진심이 전혀 없으며, 만약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결국 하나님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니, 제가 바로 그런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분명히 영상 사역의 책임자가 최근에 조정되었고, 이 사역을 맡을 사람이 급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역과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현재 이 일을 맡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에 이 본분을 맡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 대신 자질이 부족하고 사역 능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며 본분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순간에 도망자가 되어, 교회의 사역을 전혀 지키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로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인성이란 없었습니다! 진정으로 인성이 있는 사람은 교회 사역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마음이 급해지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이를 지키려고 하지, 개인의 이익과 손실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어려움과 부족함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으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배우고 체험하며, 최선을 다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제 마음은 더욱 자책감이 들고 힘들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내가 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막는 것은 무엇일까?’ 반성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본분을 조정하는 일이 생길 경우, 교회의 결정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게다가 자신을 반성하고, 문제의 본질과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사람에게 도움이 많이 되고 또한 사람이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일은 평범한 사람도 밝히 알고, 올바르게 대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렇게 어려운 점도, 넘지 못할 장벽도 없다. … 본분을 조정하는 이런 간단한 일에 있어 사람은 마땅히 순종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하나님 집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하며, 무슨 일을 하든 힘이 닿는 대로 해내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는 일은 틀림이 없다. 이렇게 간단한 진리는 양심과 이성이 조금만 있는 사람은 다 실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적그리스도는 본분이 조정되는 즉시 이치를 따지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반항하고 속으로 불복한다. 그가 마음속으로 품은 것은 무엇이겠느냐? 추측하고 의심하며, 그다음 각종 방식으로 시험하는 것이다. 그는 말로 시험하고, 행동으로 시험하고, 심지어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협박과 회유로 다른 이가 실정을 말하고 참말을 내뱉게 한다. … 적그리스도는 왜 간단한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겠느냐? 그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는 법이 없고, 시종일관 자신의 본분, 명예, 이익, 지위를 복받을 희망이나 훗날의 종착지와 긴밀하게 연관 짓기 때문이다. 마치 그의 명예와 지위를 잃게 되면 복받거나 상받을 희망이 사라지고, 자기 목숨을 앗아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말이다. … 그래서 그는 하나님 집의 리더 일꾼을 경계하고, 다른 사람이 그를 분별하고 간파해서 교체할까 봐, 복받으려는 꿈을 망쳐 놓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는 명예와 지위를 반드시 지켜야 복받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복받는 일을 하늘보다도, 목숨보다도 크게 생각하고, 진리 추구나 성품 변화, 구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거나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되는 것,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 구원을 받는 일을 다 사소한 일, 언급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일로 생각하고, 복받는 일만 평생에 영원히 잊지 못할 일로 여긴다. 어떤 큰일이나 작은 일이 닥치든 복받는 것과 연관 짓고 조심하고 신중하며 자신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둔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적그리스도가 얼마나 악하고 간사한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단순한 문제도 그는 유난히 복잡하게 생각하고, 한 번의 본분 조정만으로도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복과 종착지에 연관시키려고 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오직 복과 이익을 얻기 위해 본분을 이행하며, 복을 받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결말과 종착지를 위해 모든 것을 계산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교회 사역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니, 제가 드러낸 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이었습니다. 본분의 정상적인 조정과 이동을 마주하며,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계산했습니다. ‘책임지고 있는 양육 사역은 그다지 어렵지 않고, 일도 익숙해져서 실수도 적고 드러날 가능성도 작아. 이 본분을 이행하는 게 비교적 안전하고, 복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 그런데 영상 사역은 어렵고, 많은 업무 원칙을 이해해야 해. 그리고 제대로 못 하면 금방 드러나고 교체될 거야. 게다가 이전에도 실패한 적이 있는데, 만약 또 문제가 드러나서 도태된다면, 복을 받는 희망도 사라져 버릴 거야.’ 제 본분 이행의 출발점이 이익과 복을 얻으려는 데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일에는 기꺼이 협력하지만, 불리한 일에는 거부하며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서나 자기에게 빠져나갈 길을 남겨 두며,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려 했고, 본분 이행을 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정말로 너무 간사하고 사악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한 피조물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창조주를 만족게 할 수 있는 것은 인류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며, 인류 가운데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져야 할 일이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어떤 일을 맡기든, 피조물은 마땅히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인류에게 행복한 일이자 영광스러운 일이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이는 무엇보다 아름답고 기념할 만한 일로, 긍정적인 사물이다. …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 이렇게 위대한 일이 적그리스도 부류에 의해 왜곡되어 거래로 변했고, 그들이 하나님 손에서 면류관을 받아 내고 상을 받아 내는 거래로 변했다. 이런 거래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의로운 일을 가장 추하고 가장 사악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한 짓이 아니냐? 이런 점을 보면 적그리스도는 사악하지 않으냐? 적그리스도는 너무 사악하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7)> 중에서) 피조물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일이자 가장 정의로운 일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이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하나의 거래로 왜곡해 버립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진심이 없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도 오직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 본질은 바로 불신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은 지 여러 해가 되었고,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수도 없이 먹고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추구 관점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본분을 대하는 제 태도 역시 적그리스도와 다를 바 없었고, 이 상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저 또한 하나님께서 혐오하실 것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자신을 반성하며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이 모두 진리라는 사실을 믿지 않고, 하나님 성품이 공의롭고 거룩하다는 사실도 믿지 않는다. 그는 사람의 관념, 사람의 상상에 따라 이 모든 것을 바라본다. 사람의 시선, 사람의 사고, 사람의 계략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대하고, 사탄의 논리, 사탄의 사고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규정한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관념과 반발, 패역이 가득하고 참된 인식이 전혀 없다는 건 아주 자명한 사실이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사랑을 물음표와 의혹으로 정의하며, 잔뜩 의문을 품고, 부정하고, 비하한다. 그러니 하나님의 신분에 대해서는 어떻겠느냐?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신분을 대표하거늘 하나님의 성품조차 이렇게 대하니, 하나님의 신분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이 바로 부인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질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6)>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셨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에서는 진리가 권세를 잡은 사실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점은 더욱 인정하지 않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항상 자신의 관념과 상상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대하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도 늘 의심과 부정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나님께 공정과 공의가 없다고 여깁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비방이자 모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속으로 매우 두려웠습니다. 제 모습을 돌아보니 적그리스도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을 바라보지 않았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믿지 않았으며, 오히려 책임이 클수록, 사역이 어려울수록 더 빨리 드러나게 된다고 그릇되고 터무니없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일을 잘 못하거나 실수하면 결국 교체되거나 도태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늘 뒤에 숨어서 어려운 일이나 중요한 본분을 맡지 않으려고 했고, 그렇게 하면 쉽게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교회에서 본분을 조정하는 데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사람의 일시적인 실수나 과오만을 보고 무분별하게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관된 모습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하십니다. 만약 인성이 좋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비록 사역 중에 조금의 실수가 있거나 일시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붙들어 주고 도움을 줍니다. 만약 자질이 부족하여 실제적인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 교회는 상황을 보고 적절한 본분을 배정해 줍니다. 반면, 지속적으로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거나 교란하고 방해하는 경우 여러 차례 교제와 도움을 받고도 끝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때야 비로소 교체됩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이전에 영상 사역을 맡았을 때 조급한 마음으로 일하다가 오히려 사역에 방해를 초래했고, 다른 사람들이 교제하고 도와주려 했음에도 바로 잡지 못해 결국에는 교체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제게 회개의 기회를 주어 제가 계속 본분을 이행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형제자매들을 보면, 그들도 사역 중에 여러 문제에 부딪히고, 사역의 난이도도 높지만 그들은 비교적 단순하고 성실하며 진리를 추구합니다. 실수나 문제가 드러나더라도 끊임없는 반성과 정리를 통해 점차 원칙을 파악하게 되고 본분도 더욱더 잘하게 됩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하나님 집은 진리가 권세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진심으로 헌신하는 사람에게는 과오가 있더라도 회개하고자 한다면, 하나님 집은 최대한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변화가 생긴다면 계속해서 발탁하여 양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증오하는 사람, 심지어 온갖 악을 행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에서 비로소 제명됩니다. 교회에서 저에게 영상 사역을 맡긴 것은 저에게 훈련할 기회를 주고, 저의 부족함을 채우도록 하려는 것이었지만, 저는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오해하고 경계하며 하나님의 집을 세상처럼 공정과 공의가 없는 곳으로 여겼습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모독 아닙니까? 이 생각에 이르자 저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자신이 너무나 패역하고, 양심과 이성이 없음을 깊이 한탄했습니다. 뼈저리게 후회하며 자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회개했습니다. 다시는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경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정직한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는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다. 둘째, 정직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모습은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네가 스스로 무척 정직하다고 말할지라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네가 “저는 자질이 부족해도 마음은 정직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본분이 주어졌을 때, 고생할까 두려워하고 잘 이행하지 못하면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 핑계를 대며 거부하거나 다른 이가 이행하도록 제안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그것은 분명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직한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반드시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며, 자신이 이행해야 하는 본분에 충성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측면의 모습이 있다. 하나는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육적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딴마음을 품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정직한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 너의 마음과 사랑을 전부 본분에 사용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며 보여 줘야 하는 모습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실행의 길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본분은 사람의 천직이자,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책임으로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저는 늘 진실한 마음으로 본분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며, 더 이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모하거나 계획을 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앞으로 본분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마음을 열고 최선을 다해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만약 제 자질과 능력이 부족해 사역을 잘할 수 없다면, 그때는 교회의 배치를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후, 저는 영상 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역의 과정에서 때때로 어려움과 실패도 있었지만, 더 이상 근심 걱정하지 않고, 형제자매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며 진리 원칙을 구했습니다. 그 덕분에 어려운 점도 점차 해결되었고, 실패 속에서도 공과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역이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은 정말 감동 받았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하나님 말씀 덕분에 이룬 성과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