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해결하기 힘든 교만
2020년, 저희 교회는 복음 사역 성과가 좋지 않아서 복음 집사가 교체되었고, 그 후 제가 복음 집사에 발탁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불안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나를 선택했다는 것은 내가 잠재력이 있다는 뜻이야. 몇 년째 복음 전도 훈련을 해도 아직 복음 집사를 못 해 봤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어. 열심히 해서 모두에게 내 실력을 좀 보여 줘야지.’ 그 후로 저는 형제자매와 함께 복음 전도에 협력하며 예전 사역에서 드러난 오류를 계속 정리하여 바로잡고, 잘 모르는 문제도 늘 다른 사람에게 구하고 교제했습니다. 얼마 후 복음 사역이 확실히 좋아지는 기미가 보였습니다. 리더가 더욱 분발하라며 저희를 격려하고, 형제자매들도 제가 두뇌 회전이 빠르고 자질도 훌륭하다고 칭찬하자, 저는 허영심이 한껏 충족되었습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복음 사역은 내가 일궈 낸 거야. 내 자질이 전 복음 집사보다 훨씬 나은 것 같군.’ 저는 우쭐한 나머지 제가 엄연히 교회 복음 사역의 대들보,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교만해지기 시작해서, 형제자매들의 의견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슨 일이든 혼자 결정했습니다. 사역을 의논할 때, 모두가 통과를 시킨 사안이 저에게서 거부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저는 늘 제 생각이 옳다고 여기며 기필코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부정하고 제 뜻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한번은 저희가 교계의 한 목사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소식을 전해 들은 전 복음 집사가 저에게 그 사람은 성품이 교만하고 이해도 조금 치우쳐서 참도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먼저 전도를 하는 게 어떠냐고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콧방귀도 끼지 않았습니다. ‘그 목사는 주님을 오래 믿어서 종교 관념도 많은 테니 한번에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게다가 당신이 교체되었다는 건 이 본분을 나만큼 이행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지금은 내가 복음 집사이고 전도 경험도 많으니 이번에도 꼭 성공할 거야!’ 그런데 그 목사와 며칠 교제해 보니 역시 관념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러자 리더와 파트너 형제자매 모두가 제안했습니다. “아무래도 일단 멈추고 잘 구해 보는 것이 좋겠어요. 우선은 다른 복음 대상자부터 전도하시는 건 어떨까요?”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지금 내 사역 능력을 의심하고 있잖아? 게다가 지금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내가 얼마나 못나고 무능해 보이겠어?’ 리더가 만류해도 저는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리더이고 나보다 본분을 오래 이행하긴 했지만, 업무 능력과 실제 경험은 아무래도 내가 더 낫지. 당신 건의가 반드시 맞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저는 그 목사에게 교제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목사는 복음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도들이 참도를 고찰하지 못하게 교회를 봉쇄해 버렸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리더의 폭로와 책망 앞에서 감히 반박도 못하고, 그저 제가 너무 교만해서 복음 사역을 가로막고 방해했다고 순순히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실패와 좌절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속으로는 그것이 단지 한 번의 사소한 실패일 뿐, 제 사역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며칠 얌전히 있다가 그 후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여전히 내 식대로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지 않았습니다. 사역에 관해 토론할 때 다른 사람들이 제 말을 따르지 않으면 속으로 불쾌하게 생각하며 자주 사람들에게 기분 나쁜 티를 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다들 제 눈치를 보며 억눌린 기분으로 생활했고, 갈수록 본분 이행 성과가 떨어졌습니다. 제 성품이 너무 교만하다고 리더가 여러 차례 책망하고, 저를 호되게 해부하고 폭로했지만, 저는 책망을 받을 때만 잠시 자제하고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예전 버릇이 튀어나왔습니다. 제 성품이 너무 교만해서 본분을 제멋대로 이행하는데다 책망과 훈계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래서 교회 사역에 방해가 되자, 결국 리더는 저를 교체시켰습니다.
교체된 일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제게 임한 것이고, 마땅히 이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저는 속으로 좀 의기소침했습니다. 최근 6개월간 그토록 많은 훈계와 책망을 받고도 제 패괴 성품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짓고, 패되 성품도 달라질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식사 시간에 형제 두 사람과 마주쳤는데, 제가 교체된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은 각자의 체험을 얘기하며 저를 붙잡아 주고 도와주었습니다. 자기들도 전에 본분을 이행할 때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독단적이었지만, 교체된 일로 인해 비로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스스로를 반성하고 자신들의 패괴된 실체를 조금은 인식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뉘우치며 자신을 미워하고, 다시는 사탄 성품으로 살지 않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채찍질과 징계가 없이는 자신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회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두 형제의 진솔한 교제에 저는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제들을 통해 저를 격려하고 도와주고 계셨습니다. ‘더 이상 소극적으로 지내서는 안 돼. 열심히 스스로를 반성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자.’
그 뒤로 저는 의식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읽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 자기 뜻대로만 행하고, 자신의 상상에 근거해 행동하고, 늘 제멋대로 굴며 진리를 실행하는 길을 가지 않는다. 제멋대로 구는 것이란 어떤 것이겠느냐? 일이 닥쳤을 때 자신이 생각한 대로 행하는 것이다. 심사숙고하거나 구하는 과정도 없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마음을 움직이거나 생각을 바꾸지 않고, 심지어는 진리를 교제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관점을 고수하며, 다른 사람의 말이 옳아도 듣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해 자신의 뜻을 고수할 뿐이다. 설령 네 생각이 옳을지라도 다른 이의 의견을 참고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너는 조금도 참고하는 법이 없다. 이는 지나치게 독선적인 것 아니겠느냐?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네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누군가 질책하며 “당신이 한 일은 진리에 부합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너는 이렇게 말한다. “진리에 부합하지 않아도 저는 이렇게 할 겁니다.” 또한, 너는 그가 그 일을 합당하다고 생각하도록 이유까지 댄다. 그가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방해하는 것이며, 교회 사역에 불리합니다.”라고 꾸짖어도 너는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계속 자신만의 이치를 펼친다.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는 꼭 이렇게 할 겁니다.” 이는 어떤 성품이겠느냐? (교만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함이다. 교만한 본성은 너를 제멋대로 하게 한다. 너는 교만한 성품이 있기에 함부로 행동하며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내가 본 바에 의하면, 본분을 이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 좀 있으면 교만해지고, 특기가 있으면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경험에만 의지하며 현 상태에 안주한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듣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는 보잘것없는 그것이 바로 진리이고 지극히 높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무슨 성품이냐? 이것이 바로 교만한 성품이다. 그런 사람은 지나치게 비이성적이다. 교만한 성품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따를 수 있겠느냐? 이는 더 어렵다. … 어떤 사람은 늘 자신을 드러내는데, 다른 사람이 눈에 거슬려 그에게 교만하다고 질책하면 승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능력과 수완이 있다고 여긴다. 이는 어떤 성품이냐? 지나치게 교만하고 독선적인 성품이다. 이렇게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이 진리를 갈망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느냐? 만약 계속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면, 그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분명 불가능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을 아는 것은 성품 변화의 기초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말씀이 폭로한 바가 바로 제 실제 내적 상태였고, 제가 바로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를 구하지 않고 본인 상상과 기호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교만하고 방자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복음 전도를 오래 해서 경험이 쌓이고 사역도 좀 성과를 거두자 우쭐대며 그것을 내 밑천으로 여기고, 내가 팀에서 가장 자질이 뛰어나고, 문제를 보는 시선도 남들보다 정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멋대로 날뛰며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기 이론을 근거로 내세우며 반박했습니다. 마치 자기 혼자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고, 남들은 모두 식견도 생각도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정상인의 이성이 있었겠습니까? 제가 교계 목사에게 복음을 전하던 때를 떠올려 보면, 리더와 파트너 형제자매들은 저에게 그 목사가 성품이 교만하고 이해가 치우쳐서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면서, 우선은 다른 사람을 전도하는 게 어떠냐고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경험도 있고 사람 보는 눈도 정확하다고 믿고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가 사람에 대해 분별이 없고, 복음 전도에 있어서도 원칙에 진입하지 못해서 복음 사역에 심각한 영향을 준 일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명백한 실패에 부딪히고도, 여전히 스스로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그것을 일시적인 실수로 치부했습니다. 정말로 너무나 무감각했습니다! 이제야 저는 하나님 말씀 덕분에 자신의 문제를 명확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실패한 것은, 제가 너무나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자신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조금은 이성적이고 주제를 알았더라면, 진리를 구하며 형제자매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사람들과 잘 협력할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복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저 자신이 미웠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자신만만했을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이 진리를 갈망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느냐? 만약 계속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면, 그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분명 불가능하다.” 지나치게 교만한 사람은 정말 본분을 이행할 수 없음을 그제서야 조금 깨달았습니다. 속으로 진리를 갈망하지 않으면 일이 닥쳐도 적극적으로 진리를 구하지 않게 됩니다. 설령 일시적으로 사역을 좀 수행하더라도, 사탄 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저에 대한 인식이 피상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매우 감사했습니다. 이것은 교체되기 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 채찍질과 징계에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로 며칠간, 저는 형제자매와 본분 이행에 집중적으로 협력하며 원칙에도 많이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또다시 예전 버릇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제 관점이 옳다고 확신하는데 형제자매가 제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면, 혈기가 폭발해서 참지 못하고 형제자매들과 말다툼을 벌이곤 했습니다. 늘 사람들을 설득시켜 제 뜻대로 하려 했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다른 사람의 관점에도 취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을 보면 속으로 또 뉘우치는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성품에 얽매이는 삶을 반복하는 것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저는 그 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저를 깨우치고 이끌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께서 사람의 교만한 본성을 폭로하시는 말씀을 찾아 먹고 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교만하고 독선적인 것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탄 성품이며,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결케 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다 교만하고 독선적인 성품이 있어 늘 스스로 옳다고 여긴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보든, 자신의 관점과 태도가 올바르고 다른 사람의 말은 자신이 말한 것보다 좋지도 옳지도 않다고 여기며, 자기 의견을 고집하면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것이다. 설령 다른 사람의 말이 옳고 진리에 부합할지라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겉으로만 들을 뿐 받아들이는 법이 없다. 막상 실행할 때가 되면 여전히 자기 뜻대로 행동하며, 늘 자기 말이 옳고 이치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네 말이 옳고 이치에 부합할 수도 있고, 또는 네 행동 역시 올바르고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네가 드러내는 성품은 무엇이겠느냐? 교만하고 독선적인 성품 아니겠느냐? 이런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면 본분 이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 진리 실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 교만하고 독선적인 성품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큰 화를 초래하지 않겠느냐? 분명 그러할 것이다. 이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사람의 그런 태도를 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너무나도 잘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할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사람의 모든 언행을 지켜본다. 하나님이 네 이런 태도를 보고 어떻게 말씀하겠느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할 것이다. “너라는 사람은 강퍅하구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모르는 상황에서 자기 의견을 고집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의견을 고집하며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너는 지독한 고집불통이니 곤란하다. 누가 의견을 내든 너는 소극적이고 반발하는 태도로 대하며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속으로 완전히 반발하고 차단하고 거부한다면 너라는 사람은 너무도 터무니없이 그릇된 자이다. 너는 너무나 다루기 어렵다!” 왜 다루기 어렵겠느냐? 네가 나타내는 것은 행동 방식이나 행위상의 잘못이 아니라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다루기 어려운 것이다. 어떤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겠느냐? 너라는 사람은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한다. 진리를 증오한다고 정의 내려지면 하나님은 너를 곤란하다고 본다. 하나님은 너를 혐오하여 버리고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으니 몹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고집 세고, 걍팍하고, 교만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정상적인 이성을 갖춘 사람은 실패를 몇 번 겪고 드러나면 어느 정도 자제할 수 있고, 일이 닥치면 많이 생각해 보고 구하며 감히 자신의 관점을 지나치게 고집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이성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실패를 거듭해도 느끼는 바가 없습니다. 미음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신을 내려놓지 못해 남들 의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설사 다른 사람이 한 말이 옳다고 생각해도 완고하게 자기 의견을 고집합니다.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복음 집사를 맡던 때를 떠올려 보면, 제가 확신하는 일에서는 누구도 제 생각을 쉽게 흔들 수 없었습니다. 가끔 다른 사람이 한 말이 옳다고 인정하더라도 흔쾌히 순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당신들 말도 일리가 있지만, 내 말은 더 일리가 있어. 당신들보다 더 충분한 이유와 근거가 있고, 관점도 더 정확하고 깊이가 있는데, 내가 왜 당신들 말을 들어야 하지?’ 이렇게 저는 늘 사람들에게 끝까지 고집을 부렸습니다. 옳건 그르건 남들 말이 제 뜻에 맞지 않으면 절대 수긍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자기 중심적이지 않습니까? 저는 늘 사람들이 저에게 순종하고 따르길 바랐고, 스스로를 높이고 받들었습니다. 이것은 자기 뜻을 진리로 간주한 것이 아닙니까? 예전에는 단지 제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고만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항상 고집 세고, 걍팍하고, 교만해서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하신 말씀을 본 순간, 저는 그제서야 제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식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제게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 집 사역을 책임지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 의견들을 받아들이고 사람들과 함께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면, 이것은 저에게도 교회 사역에게도 모두 유익이 됩니다. 하지만 저는 사리분별을 못 해서 그 의견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물론, 언제나 제가 옳다고 우기며 사람들이 제 말을 듣도록 강요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의 건의를 받아들이면 제 무능과 무지가 드러나고 제 위신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저는 긍정적인 사물을 전혀 좋아하지 않고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자기를 고집하며 어느 누구와도 협력하지 못한다면, 결국 하나님께 도태되고 모두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설령 네 업무가 가장 뛰어나고 기술적으로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그 역시 하나님이 네게 베풀어 준 은사이므로, 너는 본분 이행에 네 특기를 발휘해야 한다. 네 기술과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혼자서는 사역을 해낼 수 없다. 모든 이가 기술과 업무를 습득한다면 본분 이행에 더 큰 효과를 거둘 것이다. 뛰어난 사람도 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이들이 도와서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해낼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도 교만해서는 안 되고, 남들과 의논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해서도 안 된다. 모두가 육을 저버리고 자기 생각과 관점을 내려놓은 뒤 모든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해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체험 인식과 경력, 식견에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에게 있는 그 부분을 발휘하기를 바라시지, 대단한 사람,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며 혼자서 사역을 짊어지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사역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때로는 자기 뜻만 고집하다가 교회 사역을 쉽게 방해하고 교란하기도 합니다. 형제자매가 다같이 합심해서 조화롭게 협력하고, 함께 하나님을 의지하며 진리를 구하고,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를 얻고, 각자의 주특기를 모두 발휘해야 본분이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을 인식한 뒤로 다른 사람의 의견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며 남들에게서 장점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마음가짐을 바꾸자 주변 형제자매들이 모두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두 제가 갖추지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는 일이 닥치면 열심히 하나님 뜻을 헤아리며 진리를 구하고,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공과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진지하게 대하며 책임 있게 이행하고, 원칙을 위해 열심히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록 자질은 평범하지만 겸허하게 형제자매들에게서 배우고 다른 사람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들였고, 얼마 후에는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비교해 보니, 저는 비록 겉보기에 은사와 자질은 좀 있었지만,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진리 원칙을 구하는 일은 소홀히 하고, 힘을 써서 사역하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늘 자신의 두뇌와 지식으로 옳고 그름을 분석하고, 은혜와 자질에 기대어 일을 처리하느라 하나님의 이끄심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은사에 힘입어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얻었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스스로 월계관을 쓰고 자신의 능력과 자질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성품은 점점 교만하고 건방지게 변하고, 안하무인으로 사느라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었습니다. 매일 밖으로만 분주했지 자신의 패괴 성품을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생명도 자라지 않아서, 결국 본분을 이행할 때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교만하고 건방지게 굴면서 자신을 고집하는 것이 얼마나 큰 손해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며칠이 지나 하나님의 교제를 보니 마음이 더욱 밝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끊임없이 생명이 자라고 생명 성품의 변화를 이루려면, 반드시 본분 이행 과정에서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체험하면서 자신을 진실로 인식해야 변화가 시작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체험해야겠느냐? 임하는 모든 일에서 먼저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순종하는 마음은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이자 사람이 갖춰야 할 첫 번째 조건이며, 이는 더없이 중요하다. … 사람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나 진리에 대한 이해가 너무 얕아서 하나님 앞에서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어떤 규칙이겠느냐? 네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든, 얼마나 높은 지위를 지니고 있든, 얼마나 큰 능력이 있든, 피조물인 이상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원칙은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창조주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저는 예전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럼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아도 되겠느냐? 큰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너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다. 너의 첫 번째 직책은 바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절대적으로 순종해야지, 너 자신의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최고의 진리 아니겠느냐? 이는 최고의 진리이자 가장 기본적인 진리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을 10년, 20년 믿으면서도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 기본적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어찌하여 그렇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데 가장 중요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진리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람이 또 무슨 진리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 창조주가 누구인지 알고 그의 앞에 나오기를 원하면서도,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너의 직책이자 의무, 본분이며,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이성과 본능임을 모른다면, 하나님을 믿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네가 진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헛소리 아니겠느냐? 네가 이해한 것은 모두 공허한 도리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너는 하나님을 연구하고, 하나님에 대해 관념과 오해를 품으며, 하나님을 의심하고 판단하는 한편, 하나님과 논쟁하고 대항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패괴 표출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들이 모두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사람이 드러내는 각종 패괴 성품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저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매일같이 형제자매가 제시하는 다른 관점이나 의견, 책망과 훈계, 비판과 질책, 본분에서의 어려움과 좌절, 실패 등, 자기 뜻에 맞지 않는 사람과 일, 사물을 만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아닐까요?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 일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순종하는 것이며, 그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공과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뜻에 맞지 않는 일들을 모두 골칫거리, 장애로 치부하고, 속에서 반발과 짜증, 거부를 가장 먼저 표출했습니다. 또한 왜 사람들이 제 관점이 찬성하지 않는지, 제 관점이 과연 진리에 부합하는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간혹 억지로 자신을 부정하고 다른 사람의 건의를 받아들일 때도 속으로 화를 꾹꾹 참으며 마지 못해 받아들이는 등, 최소한의 순종의 자세도 없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언제나 교만한 성품에 기대어 제멋대로 굴며 독단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고, 하나님께 일말의 순종도 없었습니다. 이런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저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진리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순종하는 과정에서 자기 뜻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제 교만한 성품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니다.
그 뒤로 형제자매들과 협력할 때면, 저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람들과 조화롭게 협력하는 진리에 진입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일이 닥쳤을 때는 제 뜻에 맞든 안 맞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며 순종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형제들이 의견을 제시하면 규정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토론하고 구했습니다. 사역을 의논할 때, 형제자매가 제시한 의견이 제 뜻과 맞지 않으면 속으로 동요하긴 했지만, 하나님께 기도드리면서 제가 우선은 순종할 수 있게 보호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또한 형제자매의 건의에서 취할 만한 점이 있으면, 비록 그 건의가 그렇게 완벽하거나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다같이 그 주제에 관해 교제하고 토론했습니다. 모두 한 마디씩 주고받으면서 교제할수록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모든 일에서 진리에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정말 하나님의 인도와 행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밝아지고 즐거웠고, 다른 사람에게서 장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전에 억지를 쓰며 자기를 고집하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이 작은 변화는 저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저는 다시는 자신을 규정하지 않을 것이고,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 진리를 향해 노력하면 패괴 성품은 반드시 변화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