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딸의 체포로 드러난 나

2023년 10월 14일 저녁, 한 자매가 저에게 신광교회의 리더가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깜짝 놀라 ‘아! 설마 내 딸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에 서둘러 메신저를 열었다가 ‘민징이 체포되었어요….’라는 메시지를 봤습니다. 저는 순식간에 온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속으로 ‘내 딸이 정말 체포되었다니! 그 경찰들이 어찌나 사악하고 비열한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잔인하게 박해한다던데. 내 딸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내 몸으로 낳은 우리 딸인데, 어찌 딸아이가 고통받는 걸 두고 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심장은 칼로 난도질을 당한 것 같았고 딸을 대신하여 그 고통을 받을 수 없는 저 자신이 너무 미웠습니다. 더욱 걱정되는 건 제 딸이 교회 리더라는 것을 경찰이 알기라도 한다면 분명 딸에게 교회 상황을 밀고하라고 강요할 것이었습니다. 아무 말 하지 않는다면 경찰이 제 딸을 때려 불구로 만들거나 죽이진 않을까요? 불구로 만들어 버리면 아직 어린 제 딸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요? 제 딸을 때려 죽인다면 저는 영원히 딸을 잃게 될 것입니다. 제 딸은 예배드린 지 이제 막 2년이 조금 지나 아직 많은 진리를 깨닫지 못했는데, 어찌 하나님은 제 딸이 경찰에 체포되도록 허락하셨을까요? 게다가 제 딸은 일도 내팽개치고, 결혼도 포기한 채 모든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그런 제 딸을 지켜주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던가요? 제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생겨났고 생각할수록 괴로웠으며 눈물도 끊임없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내적 상태를 바꾸려고도 했지만,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저와 협력했던 두 자매는 경찰에 체포된 후 경찰이 그들에게 리더 일꾼을 밀고하라고 강요했고, 강제로 그들을 세뇌해 결국 모두 하나님을 배반하여 유다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경찰은 분명 제 딸에게 밀고하라고 강요할 것입니다. 경찰이 제 딸도 세뇌해 딸이 미혹되어 유다가 된다면, 구원받을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될 것입니다! 속으로 ‘하나님은 왜 제 딸을 지켜주지 않으셔서 딸이 이런 상황을 겪게 하신 건가요?’라며 원망의 말을 뱉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조심하지 않은 접대하는 자매도 원망스러웠습니다. 자매가 위험한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즉시 대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며칠간 저의 내적 상태는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으며 본분을 이행할 마음도 나지 않았습니다. 파트너 자매가 하나님 말씀을 교제해 주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저도 모르게 늘 잡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이렇게 계속 지내면 본분이 지체되고, 제 생명도 손해를 입는다는 것을 알아 하나님 앞으로 와서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딸이 체포되어 저는 소극적이고 나약해졌습니다. 당신을 원망하고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게 부디 저를 이끌어주세요.’

그 후 파트너 자매가 저에게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는 것들과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종종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오해는 어떻게 생겨나느냐? 사람은 어째서 하나님에게 오해가 생기느냐? (사람의 이익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유대인이 유대 땅에서 쫓겨난 그 사실을 알고 서글픔을 느낀다. ‘처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너무나 아끼셨어. 그들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해 홍해를 건너게 하셨고, 또 만나와 마실 샘물도 주셨어. 그런 다음 또 친히 율법을 반포해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가르치며 그들을 이끄셨지. 사람에게 정말 사랑이 가득했으니 그 시대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했겠구나! 그런데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님 태도가 180도 달라질 수 있나?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로 간 거지?’ 사람의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 순간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과연 사랑일까? 예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던 태도는 어째서 전혀 안 보일까?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하나님은 과연 사랑이 있는 걸까?’ 이렇게 오해가 생겨난다. 그렇다면 사람이 오해가 생겨난 배경은 무엇이냐? 설마 하나님이 한 일이 사람의 관념 상상에 맞지 않아서, 그 사실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냐?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규정하기 때문이 아니냐?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이 사랑이니까 당연히 사람을 보살피고, 지켜 주고, 은혜와 축복도 내려 주셔야 해.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지! 나는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시는 게 마음에 들어. 특히 사람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걸 보니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겠어. 그 시대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야! 나도 그중 한 명이었으면 좋았을걸.’ 거기에 도취된 너는 하나님이 그 순간 나타낸 사랑을 최고의 진리로 생각하고 하나님 본질의 유일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하나님을 네 마음속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이 그 순간 행한 모든 것을 최고의 진리라고 규정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이자 사람이 제일 존경하고 경외하는 부분이고,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하나님이 그렇게 행한 것 자체는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네가 규정하는 바람에 그 일은 네 마음속에서 관념이 되고, 하나님을 규정하는 근거가 되어 네가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마치 하나님의 사랑이 긍휼과 보살핌, 보호, 인도, 은혜, 축복과 같은 것 외에 다른 것은 없고, 하나님의 사랑은 그 정도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너는 어째서 그런 면을 그토록 애지중지하느냐? 네 이익과 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너의 어떤 이익과 관계가 있느냐? (육적인 즐거움과 편안한 생활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에게서 그런 것들만 바란다. 다른 것들, 이를테면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고, 버리고, 헌신하고, 심지어 목숨을 내던지는 것 등은 원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 보호, 인도만을 누리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 본질의 유일한 상징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유일한 본질로 규정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게 한 사실에서 하나님이 행한 일들이 사람이 관념을 품게 된 근원이 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것이 인류가 하나님에게 관념을 품게 된 배경이다. 이런 관념이 생긴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성품을 진실로 인식할 수 있겠느냐? 인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해와 관념이 생겨날 게 뻔하다. 이것은 사람의 인식이 너무나 단편적이고 진실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관념 상상과 사욕으로 분석하고 해석한 사랑이자 인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실한 본질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게 긍휼과 구원, 보살핌, 보호를 베풀어 주고 간구를 들어주는 것 말고 또 어떤 것이 있느냐? (채찍질과 징계, 훈계와 책망,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이 있습니다.) 맞다. 하나님의 사랑에 해당하는 것은 너무나 많다. 매질, 징계, 꾸짖음, 심판, 형벌, 시련, 연단…. 이런 것이 모두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래야 비로소 전면적이 되고, 진리에 부합하는 사랑이 된다. 이런 걸 인식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성찰할 때 자신의 치우친 면을 인식하고, 자신의 잘못된 점을 훌륭히 반성할 수 있지 않겠느냐? 네가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려면 진리를 구해야 한다. 사람은 진리를 구하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없앨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없애면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깨달아야 하나님의 행사를 알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전 깨달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에 대한 오해 속에 살았던 것은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규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관념과 상상 속에서 긍휼과 자애, 보호와 축복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핍박과 환난, 시련과 연단은 제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딸이 체포되자 저는 원망의 말을 내뱉으며 하나님을 오해했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에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저는 경찰의 추적으로 집을 떠났습니다. 그때 아이가 어렸는데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딸이 하나님을 믿은 후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자 저는 저희 가족 모두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고 여기며 때가 되면 모두에게 좋은 결말과 종착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더더욱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속으로 하나님께 매우 감사드렸습니다. 오늘날 딸이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고, 박해를 견디다 못해 유다가 되고,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될지도 모르자 저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구심을 품으며 제 딸을 지켜주지 않으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속으로 하나님께 오해가 생겼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저에게 이로운지 아닌지에 따라 판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을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안하도록 보호해 주시어 저희 가족에게 이로우면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맞이한 환경이 제 관념에 부합하지 않고, 저희 가족에게 불리할 때면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긍휼과 자비, 보호와 축복이라 여겼는데 이는 저의 관념과 상상으로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긍휼과 자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도 있습니다. 제 딸이 체포된 일이 겉으로는 나쁜 일처럼 보이지만, 만약 딸이 진리를 구해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다면, 딸의 믿음과 고통을 감내할 의지가 온전케 될 것이고 이는 딸에게 있어 사실 좋은 일인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딸이 체포된 일로 하나님에 대한 저의 관념과 상상, 무리한 요구가 모두 드러나 제가 저 자신의 패괴함과 불순함을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을 믿을 때 은혜와 축복을 추구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을 체험하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 하며, 진리를 얻어 패괴함을 벗어 던지고 성품의 변화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든 모두 구원이자 사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 문제에 대해 계속 구했습니다. 딸이 체포되고 저는 속으로 늘 하나님께 요구하고 원망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성질의 문제일까요? 구하던 중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일부 어리석은 부모들은 인생과 운명을 밝히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인식하지 못해 자녀를 대하는 일에서 쉽게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다. 예를 들어, 자녀가 독립한 후 특수한 일을 만나거나 고난과 큰 사고가 닥친 경우가 그렇다. 어떤 이는 병으로 고통받고, 어떤 이는 소송에 휘말리며, 어떤 이는 이혼하고, 어떤 이는 사기당한다. 또 어떤 이는 납치당하거나 남에게 해를 입거나 구타당해 죽음에 직면하기도 하며, 심지어 어떤 자녀는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한다. 이렇게 특수하고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대다수의 부모는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부모의 신분을 지닌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을 하겠느냐? 이런 일을 전해 듣고 남의 일처럼 행동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가 하룻밤 새에 머리칼이 하얗게 세고,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며, 낮에는 밥을 넘기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 싸맬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하염없이 울어서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고 눈물마저 말라 버린 채 하나님을 믿는 자신을 봐서 자기 자식을 지켜 달라고, 아이에게 은총과 축복을 내려 달라고, 빠져나갈 길을 열어 주어 아이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부모로서 인성적인 연약함과 유약함, 그리고 자녀에 대한 정이 전부 드러난다. 또 무엇이 드러나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패역이 드러난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 자식에게 어떤 재앙도 닥치지 않게 해 달라고, 설령 재앙이 닥치더라도 그 아이가 죽지 않고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악인에게 해를 입지 않게 해 달라고, 병세가 심해지지 않고 호전되게 해 달라고 구하고 기도할 것이다. 이는 무엇을 구하는 것이냐? (하나님, 그의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며, 또 원망이 들어 있습니다.) 먼저 그는 자기 자식에게 그런 일이 닥친 것에 몹시 불만을 품고, 제 자식에게 그런 일이 닥치지 않게 해야 했다며 하나님을 원망한다. 불만 속에 원망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 후에는 하나님에게 생각을 바꾸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자기 자식이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 평안해지게 해 달라고 구한다. 병에 걸렸다면 낫고, 소송에 휘말렸다면 그 상황이 마무리되고, 화를 당했다면 화근이 사라지게 해 달라고, 즉 모든 것이 평화롭고 순조롭게 해 달라고 말이다. 이런 기도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패역한 모습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의 말에 담긴 속내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도 좋지도 않으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네 자식이고 너는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은 그에게 그런 일이 닥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다른 사람의 자식과는 달리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하나님을 믿는 너를 봐서라도 하나님은 그를 축복해 줘야 한다고 말이다. 또 만약 하나님이 그를 축복해 주지 않는다면 너는 괴로워하고 울고 소란을 피우며 하나님을 따르지 않을 거라고, 그가 죽는다면 너도 못 산다고 말이다. 이런 의미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항의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항의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식의 불행 앞에서 부모는 하나님께 비이성적인 요구를 하고, 하나님이 당연히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여기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는데 이는 하나님께 항의하는 것임을 폭로하셨습니다. 제가 바로 그런 내적 상태였습니다. 저는 딸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알자마자 바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제 딸을 고문하고 학대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딸이 형제자매를 밀고하여 유다가 되어 좋은 결말이 없을까 봐 더 걱정하며 저도 모르게 ‘어쨌든 제 딸이 일도 내팽개치고 모든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는데, 하나님은 왜 제 딸을 보호하지 않으셨나요!’라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했으니, 정말 비이성적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매일 어떤 환경에 놓일지는 하나님의 주재 안배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주재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딸이 체포되자 하나님께 무례하게 굴며 대항했습니다. 파트너 자매가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해 주어도 듣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제 내적 상태가 해결되지 않다가, 정말 제 딸에게 무슨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전 분명 원망의 말을 내뱉고 심지어 하나님께 대들고 하나님을 배반할 것입니다!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거액의 재산과 자녀들을 모두 빼앗기고 자신의 온몸에도 독창이 났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재산과 자녀를 주신 것임을 알았던 욥은 빼앗긴 것에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음을 알고 원망하거나 이치를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 안배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기까지 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딸이 체포되자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와 하나님의 권병에 의심을 품고 무작정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요구하고 이치를 따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자 저는 더 이상 하나님께 거역하고 대적하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제 딸이 어떻게 되든, 고문을 받든 말든, 좋은 결말과 종착지가 있든 없든, 저는 원망하지 않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할 것입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보기에 자식과 부모의 생명은 독립되어 있다. 그들 간에는 종속 관계도, 상하 관계도 없으며, 당연히 소유와 피소유의 관계는 더더욱 없다. 그들 각자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그들 각자의 운명 역시 하나님이 주재한다. 그저 부모가 자식을 낳았으며 자식보다 나이가 많고, 자식은 부모보다 나이가 어린 것뿐이다. 사람은 이런 관계, 이 표면적인 현상에 근거하여 자녀를 부모의 부속품이나 사유 재산으로 여긴다. 이는 근원적으로 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으로, 육적으로, 감정적으로 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 논법과 입장은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중에서), 『부모는 한 사람의 삶에서 출산과 부양의 책임을 지고, 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형식적으로 제공할 뿐이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오직 창조주의 정하심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미래는 운명으로 정해져 있으며, 그 누구도 좌지우지할 수 없다. 부모조차 자식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 운명에 관한 한 모든 사람은 독립적이고 각자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부모는 자식의 운명을 막을 수도 없고, 자식이 현생에서 맡은 역할을 해내는 데 힘을 보태 줄 수도 없다. 즉,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환경에서 성장할지, 이는 현생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일 뿐, 그것이 운명을 결정할 수 없고, 어떤 운명 속에서 사명을 완수하게 될지도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는 한 사람이 현생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없고, 가족들 역시 그가 현생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 자신의 사명을 어떻게 완수하게 될지, 어떤 생존 환경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지는 완전히 현생의 운명에 달려 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딸이 제 몸으로 낳은 제 신체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딸을 저의 ‘소유물’로 여겼습니다. 이 생각은 틀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이 숨결을 주셨으며 부모는 단지 자녀를 낳아 성인이 될 때까지 기르면 사명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독립적입니다. 부모와 자녀도 각자의 운명이 있고 조물주께서 정해주신 궤적에 따라 살며 자신의 사명을 이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계속 딸의 육적인 고통을 걱정하며 어미로서 딸을 대신하여 고통받고 싶어 했던 것은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인식이 없었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일생에서 어떤 일을 겪고 어떤 고통을 받으며 어떤 역할을 할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놓으셨습니다. 제 걱정과 우려는 쓸데없는 것으로 아무리 걱정해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딸의 앞날을 결정할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이번에 딸이 체포되어 만약 딸이 자신의 이익을 보전하고자 비굴하게 살아남으려 형제자매를 팔아넘겨 유다가 되어 출교된다면, 그 역시 딸의 본성 본질과 걸어온 길로 결정되는 것이며, 이는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자, 순식간에 제 마음이 확 밝아졌습니다. 이제 제가 실행해야 하는 것은 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 안배에 순종하며 마음을 사역에 쏟아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저는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시는 사역이 바로 사람을 온전케 하시고 사람을 드러내어 도태시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붉은 용을 이용하여 봉사하게 함으로써 교회를 정결하게 하십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중국 공산당이 어떤 계략을 쓰든, 어떤 황당한 유언비어를 날조하든 미혹되지 않으며 하나님을 부인하지도, 배반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합니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나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은 이러한 환경에서 드러나 도태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악조건의 환경을 통해 사람을 검증하십니다. 굳게 서서 증거하는 자는 알곡이고, 굳게 서서 증거하지 못하는 자는 가라지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검증하시는 과정 중 하나이자 하나님 역사의 지혜입니다. 지금 제 딸이 체포되어 이런 검증을 견딜 수 있을지, 증거할 수 있는지는 평소 어떻게 진리 추구를 했는지에 달려있으며, 딸의 본성 본질 및 딸이 선택한 길과 관련 있습니다.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다면 그건 딸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반한다면, 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의로우십니다. 여기까지 깨닫자,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가벼워졌습니다.

이제 딸이 체포된 지 두 달이 넘었습니다. 아직 딸의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했지만, 저는 딸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이 일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게 아직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있음을 귀하게 여기고 제가 해야 할 사역을 잘 이행하며 제 본분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딸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내려놓으니, 마음도 본분 이행에 쏟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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