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더 이상 본분을 가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막 믿기 시작했을 때, 교회의 몇몇 형제자매가 리더로서 자주 사람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어려움이 생길 때면 그들을 찾아 진리를 구하곤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저는 무척 부러워습니다. 이러한 본분을 이행하면 어딜 가서든 사람들의 존중과 우러름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접대와 행정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들은 그저 뒤에서 열심히 일하고, 두각을 드러내지도, 체면이 서지도 않고, 우러러 봐주는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드러낼 수 있는 본분을 이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흐른 뒤 저는 교회 리더로 발탁되었습니다. 어떤 예배 장소를 가든 형제자매들이 열정적으로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부러워하는 눈빛을 볼 때면 제 마음은 흐뭇했고,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비록 리더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크고, 사역도 비교적 과중했지만, 아무리 고되고 지쳐도 위축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저의 소질이 부족하고, 사역에 원칙이 없으며, 자주 자기 뜻대로 행동하고 규례를 지키는 데 그쳐 교회 사역에 손실을 줬고, 결국 교체되었습니다. 이후 리더가 저를 찾아와 교회 행정 사역을 이행하는 것에 대해 의논하며 제 의견을 물었습니다. 사실 저는 조금 내키지 않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행정 사역은 교회의 여러 잡무를 처리하는 거야. 힘들게 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잖아. 형제자매들이 이 사실을 알면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진리의 실제가 없어서 행정 사역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본분이란 저희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이라고 생각하니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했고, 저는 어쩔 수 없이 동의했습니다.
이후 저는 본분을 이행하러 나갈 때마다 친한 형제자매들과 자주 마주쳤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어떤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지 물으면 대답하기가 난감했습니다. 제가 행정 사역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혹시 저를 무시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두려워하는 것마다 족족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 번은 한 자매의 집에 가서 전동차를 빌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대화 중 제가 지금 행정 사역을 하고 있다고 말했더니, 자매가 놀라서는 “어쩌다가 행정 사역을 하게 됐어요? 저는 문서 사역을 하는 줄 알았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너무도 난처해서 일부러 화제를 돌렸고, 몇 마디 형식적인 인사를 나눈 뒤 서둘러 자리를 떠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자매가 제가 행정 사역을 한다는 말을 듣고 난 뒤 놀란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너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자매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저의 소질이 부족해서, 진리 실제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 본분을 이행한다고 여기는 건 아닐지 걱정되었습니다. ‘나를 무시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함께 본분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가끔은 급히 보내야 할 우편물을 질질 끌다가 형제자매들이 제때 받지 못한 적도 있었고, 종종 이것저것 실수를 저질러 형제자매들로부터 ‘너무 대충한다’, ‘책임감이 없다’라는 책망을 들으며, 본분을 좀 더 진지하게, 정성을 다해 이행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저는 반성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 본분에 거부감만 커졌습니다. 예전에 리더를 맡았을 때는 하나님 말씀의 책과 우편물은 모두 행정 사역을 하는 사람이 제게 직접 가져다줬었는데, 이제는 이런 것들을 내가 직접 형제자매들에게 동분서주하며 전달해야 한다니, 마치 지위가 한순간에 너무 낮아진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수록 마음은 점점 더 힘들어졌고, 마음속은 너무도 답답했습니다.
하루는 아침에 제가 전동차를 타고 가던 중 배터리가 닳은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도중에 전동차를 밀고 가야만 했습니다. 무심코 전동차의 속도 조절 손잡이를 돌렸더니 갑자기 전동차가 앞으로 튀어 나갔고, 저는 반응할 틈도 없이 전동차에 끌려 넘어졌습니다. 그 순간 입이 전동차의 앞부분에 부딪혀 이가 흔들리고, 얼굴은 여기저기 멍이 들었으며, 다리도 다쳤습니다. 집에 돌아와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요즘 제가 계속해서 행정 본분을 거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스스로 알 수 있도록, 그리고 순종할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세요.” 기도를 마친 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늘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말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럼 본분은 어떻게 생기는 것이겠느냐? 크게 보자면,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영 사역으로 인해 생긴다. 작게 보자면, 하나님의 경영 사역이 사람들 가운데서 전개되면서 여러 가지 사역이 생기는데, 그러한 사역은 사람이 협력하고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에게 책임과 사명이 생기게 되고, 그 책임과 사명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본분인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이 협력해야 하는 각종 사역이 바로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그렇다면 본분에는 상하 귀천이나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겠느냐? 그런 차이는 없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과 관계가 있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필요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이 곧 사람의 본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의 상하 귀천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하나님이 맡겨 주신 부탁이고 하나님 집의 사역이긴 하지만, 이런 일을 하면 남들이 깔볼 거야! 체면이 서는 일은 남들보고 하라고 하고, 티 나지 않고 뒤에서 힘을 내는 일은 나한테 시키네. 이건 불공평하잖아! 난 이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야. 난 체면도 세우고 이름도 날리는 본분을 맡아야 해. 이름을 날리거나 체면을 세우지 못한다 해도 내게 이득이 되고 몸이 편한 본분이어야 돼.” 네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 태도가 옳은 것이냐?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고르는 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본분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본분을 거절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습이다. 그 안에는 개인적인 취향과 바람이 섞여 있다. 네가 자신의 이익과 체면 등 갖가지 요소를 고려하면, 그것은 순종하는 태도로 본분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저의 내적 상태를 폭로했습니다. 본분을 대하는 저의 태도와 관점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본분을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으로 등급을 매기면서 리더를 맡거나, 문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니 그런 본분은 아무리 고되도 기꺼이 감당하려 했습니다. 반면 힘들지만 드러나지 않는 본분은 맡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본분은 낮고 하찮아 보여서 사람들에게 얕보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의 지배를 받는 중에 리더가 제게 행정 사역을 맡기자, 그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낮은 사람처럼 보이고, 제 체면을 잃는 것 같아 마음속으로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으려 했고, 본분을 대충 이행했으며 무책임하게 대했습니다. 저의 관점은 정말로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패괴 성품이 강하고, 자질이 부족함에도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지도 않았습니다. 곳곳에서 개인의 이익과 체면만 고려하고, 기호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며, 본분을 이용해 개인적 이익을 채우려고만 했습니다. 이런 모습에 인성이라고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실로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입니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어떤 태도로 본분을 대해야 하느냐? 첫째, 분석하지 말고, 누가 안배한 것인지 따지지도 말고,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이 너에게 맡긴 본분이니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상하 귀천을 논하지 말고, 어떤 성질의 본분인지, 그 본분을 이행하면서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앞에서 하는 일인지 아니면 뒤에서 하는 일인지 등을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한 가지 태도는 순종하고 자발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본분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탁하신 것이고,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의무이자 책임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행하는 본분이 드러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의 우러름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피조물로서 마땅히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충성을 다 하는 것이 본분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이며 이성입니다. 생각해 보면, 행정 본분은 비록 눈에 띄지 않지만, 하나님 집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 만약 누군가 책이나 우편물을 보내지 않으면 형제자매들이 제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못하고, 일부 사역이 제때 이행되지 않으면 교회 사역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제가 이 본분을 맡았으니 제 책임으로 여기고 완수해야 합니다. 이런 점을 깨달은 저는 마음속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남들이 저를 우러러볼 수 있을지 없을지 상관없이, 저는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후, 저는 본분에 모든 정성과 마음을 쏟았습니다. 매일 우편물을 주고받을 때마다 신중하게 확인하고, 마음을 다해 처리했습니다. 때로는 함께 일하는 자매가 외출해야 할 때, 그녀가 맡고 있는 범위에서 전달해야 할 것이 있을 때, 제가 자발적으로 도와주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렇게 진지한 마음으로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고 나니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또 형제자매들이 저에게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 물을 때, 저는 당당하게 ‘행정 사역을 이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2016년 6월 리더가 저에게 몇몇 자매들 접대를 맡기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본분은 이행하고 싶지만, 접대는 매일 주방에서 일하고 그릇을 다루는 일이라, 만약 친한 형제자매들이 내가 지금 접대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면 나를 어떻게 볼까? 나를 얕보지는 않을까?’ 저는 급히 리더에게 왕윈 자매가 이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 게 더 적합할 것 같다고 추천했습니다. 그러자 리더는 왕윈 자매는 최근 몸이 좋지 않아서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이 본분을 맡는 것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 더 이상 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접대하는 동안 저는 자매들이 본분에 관한 사역 지식과 경험을 교제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저는 그런 본분을 이행하는 자매들이 부러웠습니다. 반면 저는 대게 밖에서 그들의 거처를 지키고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저 자신이 낮은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음속으로 불편한 감정이 일었습니다. 때때로 음식을 준비할 때, 마음이 산만해져서 간을 너무 세게 하거나 소금을 깜빡하고 넣지 않는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어떤 자매는 매운 음식을 못 먹자, 한 자매가 사랑의 마음으로 ‘매운 양념이 안 된 음식을 미리 담아주면 좋겠다’고 말해 주었을 때, 저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전에 내가 리더였을 때는 항상 내가 남들에게 일을 시켰는데, 지금 접대 본분을 하면서는 남들로부터 우러름도 못 받고, 오히려 지시를 받아야 한다니.’ 마음이 울적해졌습니다. 가끔 자매들이 본분에 바빠서 저에게 생활용품 사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할 때, 제가 마치 누군가에게 부려진 심부름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후에 이런 내적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언제나 이런 내적 상태에 휘둘리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매우 고통스러웠고, 제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에 물들었고,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뒤처진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일말의 가치도 없는 삶, 저속한 풍속과 생활, 이러한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심하게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심하게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사탄은 국가 정부, 유명 인사와 위인들의 교육과 가르침을 통해 사람을 패괴시키며, 그들의 마귀적인 말들은 사람의 생명 본성이 되었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사탄의 명언으로, 이미 모든 이의 내면에 침투해 생명이 되었다. 이 밖에 처세 철학에 관한 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각국의 전통문화를 이용해 사람을 교육하고 미혹하고 패괴시킴으로써 끔찍한 재난의 망망대해로 빠뜨리며, 사람은 결국 사탄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멸망당하고 만다. … 사람의 삶과 행위, 사람됨에는 아직도 사탄의 독소가 많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처세 철학, 일 처리 방식, 사람의 좌우명에는 모두 큰 붉은 용의 독소가 가득하며, 이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사람의 뼛속과 핏속에 흐르는 것은 모두 사탄의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가 본분을 고급과 저급, 귀함과 천함으로 나누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제가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마음을 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그리고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사탄의 독소에 깊이 물들고 패괴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사탄 독소로 살아가다 보니, 명예와 이익, 지위를 추구하고, 사람들이 저를 우러러봐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체면이 서고 훌륭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저는 사탄의 철학 관점에 따라 하나님 집의 본분을 대했습니다. 리더를 맡거나, 문서 본분, 영상 제작 본분과 같은 재능과 특기가 필요한 본분은 남들이 우러러볼 것이라고 여겼으며, 반면 힘을 써야 하는 접대와 같은 본분은 저급한 것으로 취급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의 지배를 받으면서, 본분을 사람들이 우러러주지 않으면 대충 하고 집중하지 않았으며, 우편물 전달도 하나씩 놓쳤고, 사역을 그르쳤습니다. 음식을 할 때도 자매들이 먹을 수 있는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제 마음대로 만들었습니다. 자매들이 물건을 사달라고 부탁하면, 심부름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일부러 시간을 끌었습니다. 사탄의 독소가 제 마음 깊숙이 뿌리내려 본성이 되어 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이기적이고 비열해졌으며, 인성도 없어졌습니다. 저는 본분을 제 체면과 지위를 만족시키는 수단으로 여겼고, 본분 이행의 기회를 통해 형제자매들로부터 우러름과 찬사를 받고자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속이고 대적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 내적 상태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더 이상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지 않겠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며, 당신께서 저를 인도하여 실천의 길을 찾게 해주세요.”
이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진리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나이와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본분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각자 하는 업무가 다를 뿐, 자격 유무를 나누지는 않는다. 진리 앞에서 모든 사람은 겸허한 마음과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이는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이성이자 태도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8)> 중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많은 일을 하고 큰 사업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뭔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착실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아주 위대해지는 것도, 존귀해지는 것도, 어떤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도 필요하지 않다. 또 하나님은 너에게서 그 어떤 놀라움을 보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다 필요 없다. 하나님은 오로지 네가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하기만을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했으면 바로 행하고, 듣고 깨달았으면 이행하고, 들었으면 마음속에 새기고, 그리고 실행해야 할 때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생명과 실제가 되고 그 말씀을 살아 내기를 원할 뿐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만족한다. … 본분 이행은 사실 어렵지 않다. 본분 이행에 충실하고 본분 이행에 합격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목숨을 바친다거나 무슨 특별한 일이나 곤란한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성실하고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 분부대로 하면 된다. 자기 뜻을 갖지 말고, 자기 경영을 하지 말고 진리 추구의 길을 가면 된다. 여기까지 도달하면 기본적으로 사람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면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중에서) 사실 하나님 집에서는 누가 리더를 맡든, 문자 본분을 이행하든, 아니면 접대나 행정 사역을 이행하든, 그저 분담하는 일의 차이일 뿐, 높고 낮음, 귀함과 천함의 차이는 없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부탁을 받은 것이며, 피조물로서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은사나 특기를 두고 특정 본분을 이행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 않으시며, 반대로 어떤 본분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경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하는지, 본분을 대할 때 충성스럽고 순종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교회에서 저에게 접대 본분을 맡긴 것은 제가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남들이 저를 우러러보든 그렇지 않든 저는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가져야 할 이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크든 작든 그들이 모두 창조주의 주재 아래에서 살도록 정해졌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여하신 기능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마치 평범한 풀 한 포기처럼, 그것이 큰 나무와 크기를 비교하거나 꽃들과 아름다움을 다투지 않고, 그저 정직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만약 이 풀처럼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착실하게 살며,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도록 추구할 수 있다면, 지위를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집에서 리더를 맡는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진리를 교제하고 형제자매들을 도우며, 그들의 생명 진입의 실제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고, 그들이 하나님 말씀의 실제로 들어가도록 이끄는 사람입니다. 접대 본분도 결코 낮은 사람의 본분이 아니라,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하여 가정 내 환경을 잘 지킴으로써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안정적으로 하고, 이로 인해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힘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제 마음에 해방감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에게 어떤 본분을 이행할지 안배하는 것은 모두 각자의 장점과 분량, 자질에 따라 배치된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리더로 일한 적도 있고, 문자 본분을 이행한 적도 있지만, 제 부족한 자질로 인해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그 본분을 이행하기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주제도 모르고 늘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남들의 우러름을 추구했습니다. 정말 비이성적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저에게 접대 본분을 맡긴 것은 제 자질과 가정 환경에 따른 배치였습니다. 이 본분이 제게 딱 맞았습니다. 비록 접대 본분을 이행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지는 못했지만, 진리 추구에 대한 저의 잘못된 관점과 패괴 성품이 드러나면서 진리를 추구하게 되었고, 자신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값진 수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마련해 주셔서 저를 정결케 하고 변화시켜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기를 원하며, 접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그 후, 저는 음식을 만들 때 진입의 원칙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매들의 건강에 이로운 요리법이라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자매들이 본분이 바쁘지 않을 때는 제 일을 도와주며, 저를 심부름하는 존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본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자매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교제해 주고 도왔으며, 우리는 각자의 본분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자매들과도 더 원만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기꺼이 접대 본분을 맡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수확과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이 제게 미친 결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