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사람을 보는 것의 중요성
저는 왕쉐와 알고 지낸 지 3년이 넘은지라, 그녀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와 만나면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자신은 자주 사람을 의심하고, 남의 시선과 의견을 무척 신경 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마음이 옹졸하고, 남의 의도를 추측하기를 좋아하며, 다른 사람의 눈빛 하나, 말투 하나, 심지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도 오랫동안 힘들어한다고 했습니다. 자신도 그러고 싶지 않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상태들이 표출된다며, 자신은 심하게 패괴되었고, 너무나 간사하며, 인성이 없다고 했고, 체면과 지위에 무척 연연하는 자신이 밉다며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스스로 뉘우치고 자신을 증오하는 왕쉐의 모습에 저는 그녀가 정말 변화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 방면의 패괴 성품이 심각한 점이 그녀에게 치명적인 부분인 것 같아 변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고 과정이 좀 필요해 보였습니다. 저는 그녀를 조금 더 이해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아무리 본분 때문에 바빠도 그녀가 저와 얘기하려고 찾아오면 저는 하던 사역을 내려놓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항상 격려와 위로를 해주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평소 왕쉐의 교제를 들어보면 하나하나 사리에 맞고, 자신을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녀의 문제를 지적할 때마다 그녀는 상대가 자신을 마음에 안 들어 한다고 여기며 소극적이 되었고, 그런 상태가 매번 반복될 뿐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녀가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건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런 상태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 그녀는 적잖이 털어놓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교제를 해주었는데도, 지금까지 몇 년이 지나도록 그녀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책임자가 우리의 새신자 양육 사역 중 발생한 문제를 정리해, 우리가 어떤 새신자를 대하는 데 있어 사랑과 인내심이 부족하고, 새신자가 비정상적으로 예배를 하는데도 즉각 교제하며 붙들어주지 않았으며, 너무 무책임하게 굴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책임자는 모든 양육 인원들에게 말한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의 문제를 특정해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왕쉐는 책임자가 자신을 폭로해 자기 체면을 상하게 했다고 말하고는, 예배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한 형제가 자질이 좀 부족한 형제자매들을 만나면 공평하게 대하지 못할 때가 있다며 자신의 상태에 대해 교제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체험과 인식, 그리고 그 후 어떻게 변화하여 진입했는지도 교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교제를 들은 왕쉐는 그가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라 생각해, 그가 자신을 자질이 부족하다고 싫어하며 무시한다고 여겼습니다. 그 일로 며칠 동안 소극적인 상태가 된 왕쉐는 그 형제에게 편견을 품고는 그를 서먹서먹해하며 상대하기 싫어했습니다. 또 한 번은 사역에 대해 상의하는 자리에서, 책임자가 왕쉐의 새신자 양육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쉐는 갑자기 울면서 뛰쳐나가더니 한참 후에야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굉장히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아무 말도 없이 한편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저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평온해지지 않아 예배에 교란을 받았습니다. 결국 할 수 없어진 책임자가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해주고 나서야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그 후, 리더는 왕쉐를 찾아 그녀의 체면과 지위에 대한 마음이 너무 강한 것을 지적하며,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기를 달래주고 자기 위주로 행동해 줘야 겨우 본분을 이행하려 한다고 교제해 주었습니다. 왕쉐는 리더의 교제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책임자가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이지 않고 불공정하게 보고했다고 했다가, 또 자신의 본성은 너무 처치 곤란이라 자신도 변하고 싶지만 변할 수 없다고 했다가, 이런저런 말을 하던 왕쉐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저는 정말 구제 불능이에요. 어째서 이런 본성을 보이는 걸까요? 다른 사람은 다 저보다 잘나서, 저처럼 마음이 복잡하지 않잖아요? 하나님께서는 왜 저에게 좋은 본성을 주지 않으신 걸까요?” 그녀의 말을 듣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억지를 부리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네. 어떻게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왕쉐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보니, 한동안 상태가 좋지 않던 마당에 체면과 지위가 건드려지자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았습니다. 상태가 달라지며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왕쉐가 누구를 만나든 상대의 안색을 살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냉담하거나 말투나 태도가 좋지 않다고 느끼면, 왕쉐는 상대가 고의로 자신에게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평소 그녀와 지낼 때 저의 어떤 말이 그녀에게 상처를 줘서 그녀를 소극적으로 만들고 괴롭게 할지 몰라 각별히 조심했고, 이는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지내는 것이 너무 답답해서 그녀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저의 패괴도 적지 않으니 왕쉐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여길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그녀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고 포용하고 배려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 자신을 억누르며 왕쉐와 정상적으로 지내려고 노력했고, 최대한 그녀의 체면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후, 왕쉐가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억지를 부리며 교회에서 아무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 못하자, 리더는 그녀를 교체하고는 격리시켜 반성하도록 안배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는 다소 놀랐습니다. 왕쉐는 비록 체면과 지위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고, 남을 잘 의심하는 성격이었지만,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기꺼이 교제하려는 사람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격리시켜 반성하도록 안배하다니요? 그 후 예배에서 리더는 왕쉐에 대한 형제자매들의 평가를 읽어주었고, 하나님 말씀과 연관해 그녀의 모습을 해부해 주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왕쉐에 대해 어느 정도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일을 할 때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궤변과 사설만을 늘어놓고, 사리 분별이 되지 않고, 흉악한 성품으로 가득 차 있다. 아무도 그와 교류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아무도 그와 진리를 교제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화를 자초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속마음을 터놓으려 해도 조심스럽고 겁이 난다. 그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그의 뜻에 맞지 않는 말을 해서 그에게 덜미가 잡히고 무지막지하게 질책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런 자는 악인 아니겠느냐? 살아 있는 귀신 아니겠느냐? 성품이 흉악하고 이성이 건전하지 못한 자는 전부 살아 있는 귀신이다. 살아 있는 귀신과 교류하다 한순간 방심하면 화를 자초하게 된다. 교회에 이런 살아 있는 귀신이 있다는 것은 큰 골칫거리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악을 쓰며 난리를 치고 분풀이를 한 뒤에는 사람다운 말을 하고 사과도 하지만, 그 후에도 변하지는 않는다. 언제 또 기분이 나빠져 악을 쓰고 난리를 치며 궤변을 늘어놓을지 모른다. 그가 악을 쓰고 분풀이할 때마다 그 대상이 다르고 게다가 분풀이의 근원이나 배경도 다르다. 즉, 그는 어떤 일에서든 분풀이할 수 있고, 어떤 일에서든 불만을 느낄 수 있으며, 어떤 일이든 악을 쓰고 횡포를 부리는 방식으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무섭고 골치 아픈 일이다! 이런 정신병자 같은 악인은 언제 미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나는 이런 사람을 가장 증오한다. 이런 사람은 있는 대로 다 정리하고 전부 제명해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을 상대하고 싶지 않다. 이런 사람은 생각이 흐리멍덩하고 성품도 사나우며 머릿속에 온통 궤변과 마귀적인 말만 들어 있고, 일이 닥치면 혈기로 분풀이한다. … 자신에게 적잖은 문제가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법이 없고, 누구와 교제해도 자신에 대한 인식을 말하지 않는다. 또 자신의 문제와 관련될 때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시선을 돌려 남을 비난하고, 모든 문제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잘해 주지 않아서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된 거라고 원망하기도 한다. 마치 자신이 악을 쓰고 난리를 피우고 트집 잡는 것은 다 다른 사람이 야기하고 초래한 것인 양, 전부 다른 사람의 잘못인 양, 자기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고 정당방위라는 양 말이다. 그는 불만이 생기면 원망을 터뜨리고 헛소리를 하며, 궤변만 늘어놓는다. 마치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잘못인 것처럼, 오직 자신만이 선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모두 나쁜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그가 아무리 악을 쓰고 난리를 피우고 궤변을 늘어놓아도 사람들은 그가 좋다고 말해야 한다. 또 그는 악행을 저지른 후에도 다른 사람이 폭로하고 질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네가 그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지적한다면 그가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니, 너는 편히 지낼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는 어떤 사람이냐?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다.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모두 악인에 속한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26)>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은 억지를 부리는 부류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모조리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자신의 이익을 건드리면, 그는 억지를 부리고 떼를 쓰며 흉악한 성품을 표출해, 사람들이 감히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형제자매와 교회 생활을 심각하게 교란시킵니다. 왕쉐는 일관되게 이런 식으로 행동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면,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따지지 않고, 자신을 반성하지도 않고, 오직 그 말을 한 사람의 말투와 태도만을 살피고는, 조금이라도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바로 시비를 걸었습니다. 거부감을 느끼고 상대에게 편견을 품은 채 그가 자신을 건드리고 무시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울면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 다들 그녀를 피하거나 양보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임자는 예배에서 우리가 새신자를 양육하는 데 있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리해 주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오류를 바로잡고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쉐는 책임자가 일부러 자신을 건드리려고 옛날 일을 들추어내는 것이라 여겨, 책임자에게 편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형제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교제하며,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형제가 자신을 싫어하고 무시한다고 여겨 그를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책임자가 그녀의 본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지적하자, 그녀는 울고불고하며 자신의 불만을 표출해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들 자기를 부드럽게 달래주고 자기 뜻에 따라주어야 겨우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왕쉐는 줄곧 이런 식으로 행동했습니다. 누가 자기 체면을 상하게 하고, 이익을 건드리기만 하면, 왕쉐는 바로 상대에게 편견을 품고, 자신을 대하는 상대의 태도가 나빠 자기가 소극적이 되었다는 식으로 말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억지 부리는 사람이 바로 왕쉐 아닙니까? 이것들을 인식한 후에야 왕쉐의 문제가 비단 남을 잘 의심하고 체면과 지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억지를 부리는, 어처구니없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스스로를 반성했습니다. 평소 늘 사람들을 찾아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얘기하고 자신의 패괴에 대해 솔직하게 교제하던 모습, 예배 때 자주 자신을 해부하던 모습, 그리고 자신의 패괴에 대해 얘기하면서 무척 후회하며 통곡하던 모습을 보며 저는 왕쉐가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이런 인식은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요?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며, 왕쉐의 자기 인식이 어떤 것이었는지 비로소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혹자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교제하면 쉽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마귀이자 살아 있는 사탄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합니다. 저는 독사이고 악인이니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이것이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겠느냐? 그저 모호한 말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왜 예를 들어 설명하지 않겠느냐? 왜 자신이 저지른 추한 일을 가져와 해부하고 솔직히 털어놓지 못하겠느냐? 분별력이 없는 자들은 이런 말을 듣고 ‘이게 바로 스스로에 대한 참된 인식이구나. 스스로 마귀나 사탄이라고 인식하고, 또 자신을 저주하다니 이 얼마나 높은 경지인가!’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 특히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이런 말에 미혹되어 그를 순수하고 영적인 이해력이 있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리더 자리에 앉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막상 한동안 접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는 남들의 상상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매우 가식적이고 간사하며 위장과 가장에 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크게 실망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지 판단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그가 어떻게 말하는지만 봐서는 안 된다. 그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진리를 참으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진실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주된 부분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진실한 인식을 말하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행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그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은 듣기 좋고 알아듣기 쉽게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그런 모습으로 살지도 않는다면 바리새인이 되는 것이며 외식하는 자이다. 결코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교제할 때는 잘 이해한 것 같지만 패괴 성품을 드러낼 때는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이겠느냐?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겠느냐?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아니고, 입으로만 자신에 대한 인식을 떠드는 사람은 모두 영적인 척하는 자이고 사기꾼이다. 어떤 사람은 글귀와 도리는 아주 분명하게 얘기하지만 그의 영 안의 내적 상태는 무감각하고 둔하며, 지각이 없고 어떤 문제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가 무감각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때로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영적으로 꽤 예민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는 즉시 자신을 인식하며 이렇게 말한다. “방금 저는 어떤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되새겨 보니 그건 간사한 것이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별이 없는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부러워하며 말한다. “저 사람은 패괴를 드러내는 순간 바로 깨닫네요. 게다가 솔직하게 교제하기까지 하고요. 반응 속도가 정말 빠르고 영적으로 참 예민한 것 같습니다. 저보다 훨씬 낫죠. 이런 사람이 바로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에요!” 이것이 정확한 판단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을 보고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겠느냐? 상대가 어떤 말을 내뱉는지만 보면 안 된다.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보아야 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인데, 이것이 핵심이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면 이는 그가 진실로 자신을 인식했다는 의미이다. 진실로 자신을 인식한 사람은 모두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며,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곧 진실로 자신을 인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알아야 진리 추구에 유익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패괴를 표출한 후에는 수치심을 느끼며, 그 후에는 진실로 회개하고 변화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입으로는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자신은 마귀 사탄이라 하며 인식이 매우 깊은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막상 책망과 훈계가 닥치면, 조금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반성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한사코 이치를 따지고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자신을 인식한 듯 보여도 모두 거짓입니다. 왕쉐는 평소 사람들과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얘기할 때 자신은 체면을 중요시하고, 다른 사람의 어투나 태도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또 자신은 매우 간사하고 남을 쉽게 의심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언뜻 보면 그녀는 매우 단순하게 털어놓으며, 자신의 패괴를 잘 파악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거기다 무척 뉘우치고 자신을 미워하는 마냥 말하며 울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왕쉐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왕쉐는 자신의 이런 면모에 대해 줄곧 이야기해 왔으면서 지금껏 변화한 게 없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저는 왕쉐의 자기 인식은 그저 구호처럼 형식적으로 하는 말일 뿐, 진정 마음으로부터 진리를 받아들여 자신의 패괴를 반성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평소 입으로는 늘 그럴듯한 말로 자신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자신은 인성이 좋지 않고, 너무 간사하고 악독한 적그리스도라 지옥으로 떨어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자신에 대한 인식이 매우 깊은 듯 보이지만, 막상 형제자매들이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그녀를 책망하고 훈계할 때면, 그녀는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거부하고 반감을 품었습니다. 심지어 울고불고하며 억지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늘 시시비비를 가지고 논쟁하고, 형제자매들이 정상적으로 예배하고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도록 교란하면서, 교회 생활과 교회 사역을 심각하게 교란하였습니다. 예전에 저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분별력이 없어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미혹되어 그녀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말 어리석고 우매했습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왕쉐는 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말로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여 상태를 바꾸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다른 사람을 하소연할 대상으로 여기며, 상대에게서 위안을 얻어 자기 마음의 불편함을 덜고 싶어 그러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그 사람을 교란시키는 행위였습니다. 이번에 왕쉐가 교체되지 않고, 그녀의 행동을 해부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여전히 그녀를 분별하지 못하고, 그녀를 형제자매로 여겨 인내심을 가지고 포용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녀에게 미혹당하고 속으면서도 여전히 몰랐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사람과 일을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함을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고, 왕쉐가 사람을 미혹하는 수단과 속셈, 목적에 대해 조금 더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어떻게 분별해야 하겠느냐? 한편으로는 그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지, 자신을 반성하고 진실로 뉘우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다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진리를 인정하기만 할 뿐 진리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고 실행하지도 않는다면, 어떤 이들의 말처럼 “나는 모든 진리를 다 알고 있지만 실행할 수가 없다.”와 같은 상황이라면 이는 그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는 충분한 증거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도 인정하며, 회개하고 싶고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 후에 아무런 변화도 없고, 예전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한다. 그가 자신에 대한 인식을 얘기하는 것은 농담을 하거나 구호를 외치는 것과 다름없다.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가장 주된 점은 뉘우치는 태도가 없다. 더욱이 단순하게 자신의 패괴를 솔직히 털어놓음으로써 진실로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형식적이고 보여 주기식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척할 뿐이다. 이런 사람은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사람이 자기 인식을 말하는 것은 모두 형식적인 것이고, 위장이자 기만이며 영적인 척하는 것이다. 어느 간사한 사람은 남들이 자기 인식에 대해 교제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모두 마음을 털어놓고 자신의 간사함을 분석하는데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모두들 내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 나도 형식적으로 말해야 해!’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간사함을 심각하게 말하고 과장되게 말해서 사람들에게 그가 무척 심도 있게 인식했다는 인상을 준다. 모두들 그의 말을 듣고 그가 진실로 자신을 인식한 줄 알고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자 그는 속으로 무척 폼이 난다고 느끼며 으쓱한 기분이 든다. 그는 이렇게 형식적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위장과 기만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그가 이렇게 하고도 양심의 평안이 있겠느냐? 이것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간사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냐? 자기 인식을 말로만 떠들며 아무리 높고 잘 인식해도 나중에 예전 그대로 패괴 성품을 드러내고 변화가 조금도 없다면, 이것은 진실로 자신을 인식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고의로 위장하고 기만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이방인과 똑같다는 증거다. 그가 이렇게 자신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것은 그저 대세를 따르고 모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말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면 그의 자기 인식과 자기 분석은 기만적인 것이 아니겠느냐? 그것이 진실한 자기 인식이겠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가 마음에서 우러나서 자신을 활짝 열고 자신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단지 형식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거짓되고 기만적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말을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자기 인식에 대해 말하면서 일부러 과장하여 말하고 자기 문제를 심각하게 얘기함으로써 남들의 감탄과 부러움을 사는 효과를 얻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사적인 속셈과 목적이 섞여 있다. 그는 이렇게 하면서도 죄스러운 마음이 없고, 위장하고 기만하고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기만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지각하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몹시 강퍅한 것이 아니냐? 그가 죄스럽다고 느끼지 않으면 뉘우칠 수 있겠느냐? 진실로 뉘우치는 마음이 없으면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진실로 뉘우치는 마음이 없으면 진실로 회개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에게 뉘우치는 마음조차 없으면서 자신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 아니냐? 위장하고 기만하는 것이 아니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알아야 진리 추구에 유익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왕쉐의 행동이 생각났습니다. 그녀는 평소 사람을 찾아가 (자기)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매번 예배마다 하나님 말씀과 관련지어 자신을 반성하며 인식하였고, 어떤 말씀이 매섭다 싶으면 바로 자신에게 적용시켰습니다. 겉으로는 자신에 대한 인식이 매우 깊고, 무척이나 후회하며 자신을 증오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거짓 모습으로,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오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이렇게 자기 인식이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을 용기 있고 솔직히 털어놓는 사람으로 여기도록 사람들을 미혹하고 기만했습니다. 그렇게 남들이 자신을 분별하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우러름을 샀습니다. 또한, 왕쉐는 패괴를 표출했을 때면 적그리스도를 폭로하신 하나님 말씀과 자신을 대조하며 자신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며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지위가 이미 자신의 생명이 되었으니, 회개하지 않는다면 지위 때문에 죽을 거라고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환경이 닥쳐 그녀의 체면과 지위를 건드리면 그녀의 고질병은 다시 발작했고, 그런 상태에 대해 몇 년이나 교제하고 인식했는데도 조금도 변하지를 않았습니다. 리더 일꾼은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고 여러 차례 교제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반발심을 품고 걸핏하면 억지를 부리며 사람들과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녀가 아무리 겉으로는 자신을 깊이 인식하는 것처럼 보이고, 후회하며 눈물을 흘려도, 모두 사람을 속이는 거짓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는 목적은 자신의 지위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닥친 일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진리를 구하는 것을 볼 때면, 왕쉐는 그 일에서 그 사람의 장점을 배우지는 않고, 그는 태생적으로 본성이 좋은 거라고 치부했습니다. 자신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쉽게 남을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좋은 본성을 주지 않은 탓이라고 하며, 자신의 사탄 성품을 증오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다고 하며, 하나님께 원망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여기서 왕쉐의 본질은 무척이나 황당무계하고 어처구니없는 마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의 폭로가 없었더라면, 저는 여전히 그녀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대했을 것입니다.
한 예배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집의 사람이며, 진정한 형제자매이다. 네 생각에 하나님 집에서 늘 예배드리는 사람은 모두 형제자매이냐? 꼭 그렇지는 않다. 형제자매가 아닌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냐?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모두 악인이자 양심과 이성이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구원 대상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성이 없고 본연의 일을 하지 않으며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한다. 또한 사탄의 철학대로 살아가며 잔꾀를 부리고 사람을 이용하고, 속이고, 기만한다. 그들은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 집에 섞여 들어온 것은 순전히 복을 받기 위해서다. 왜 그들을 불신파라고 하느냐? 그것은 바로 그들이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해 교제하기만 하면 바로 흥미를 잃고, 속으로 싫어하며, 귀 기울이지 않고, 재미없다고 느끼며, 앉아 있지를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분명히 불신파이자 이방인이다. 너는 절대로 그들을 형제자매로 대해서는 안 된다. … 진리에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그럼 그들은 무엇으로 살아가겠느냐? 분명 사탄의 철학으로 살아가면서 그저 얕은꾀나 꿍꿍이를 부리고, 정상 인성의 삶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진리를 구하는 법이 없다. 그저 사람의 간계와 사람의 수단, 처세 철학으로 모든 일을 처리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척 피곤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형제자매라고 할 수 없다. 오직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형제자매다. 그렇다면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모두 이방인이다.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저버리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사람들은 모두 교회에 섞여 들어온 이방인이다. 만약 그들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다면, 그들은 사탄의 심부름꾼이니 제명하고 도태시켜야 한다. 절대로 그들을 형제자매로 대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사랑을 베푼다면 어리석기 그지없고 무지몽매한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진정한 형제자매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그들에게는 진리를 실행한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깊고 대단한 인식을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을 이해한 만큼 실행합니다. 비록 잘못을 저지르거나 패괴를 표출할 때도 있고, 소극적이 될 때도 있지만, 책망과 훈계나 좌절과 실패가 닥치더라도 진리를 추구함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고 진리를 구해 자신을 반성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면서 조금씩 바뀌어 가고 변화해 갑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형제자매입니다. 반면,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형제자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성이 좋지 않고, 온갖 악을 행하며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한다면, 그들은 악인이나 적그리스도 부류에 속하므로, 더더욱 형제자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설령 아직 교회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 집에 섞여 들어온 거짓 신도일 뿐으로,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믿어도 결국 하나님에 의해 드러나 도태되게 됩니다. 왕쉐는 겉으로는 큰 악을 저지르지 않은 것 같지만, 그녀의 행동은 온통 다른 사람의 생각을 교란하고, 남들의 본분 이행을 방해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거기다 일관되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아무리 교제하며 도와주어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심지어 이치를 따지며 논쟁을 벌이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여기서 왕쉐는 조금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싫어하는 본성을 가진 마귀 부류에 속한 사람이지, 절대 형제자매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저는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분별할 줄 몰랐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면 다 형제자매인 줄 알고 형제자매로 대했고, 무조건 배려하고 포용했으며, 분별없이 호의를 베풀고 도와주며 붙들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쓸데없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습니다. 정말이지 우매하고 어리석었습니다. 이번에 왕쉐가 교체되고 격리되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무척이나 공의로우심을 보았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하나님 집에 버티고 있을 수 없고, 결국 하나님에 의해 드러나 버립니다. 동시에, 저는 하나님의 애쓰시는 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일, 사물을 배치하셔서 제가 공과를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다시는 (이런 것들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진리에 더욱 힘써서,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사람과 일을 보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사람이 되고 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