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전문가’ 신분을 내려놓고 느낀 자유로움

저는 과거에 병원 정형외과의 부주임 의사였습니다. 40년간 성실하게 근무했고, 임상 경험도 비교적 풍부했던 저는 환자와 동료들에게 의술을 인정받았고, 가는 곳마다 우러름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가 남들 보다 우월하고 남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교회에서 리더나 집사 역할을 맡은 형제자매들이 예배를 열어 사람들에게 진리를 교제해 주며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보거나, 문서 사역이나 영상을 제작하는 형제자매들을 볼 때면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을 수 있는 본분을 이행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접대나 행정 사역은 영 눈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런 본분들은 눈에 띄지 않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저런 본분은 이행할 수 없어. 나는 사회적 지위가 있고 문화적 소양이 있으니 본분을 이행하려면 내 신분과 지위에 걸맞은 본분을 이행해야 해.’

2020년 춘절이 지나고, 교회의 리더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문서 사역을 맡고 있는 자매님 몇 명이 안전하게 지낼 곳이 없어요. 장웨이 자매님이 하나님을 믿는 건 주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 자매님 집이 비교적 안전할 텐데, 그 자매님들을 섬겨줄 수 있을까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외과 주임이나 되는 사람이야. 나 같은 전문가급 인사가 형제자매들을 접대하는 일을 하면서 매일 부엌살림이랑 씨름하며 부뚜막이나 지켜야 하다니. 이건 완전히 보모나 하는 일이잖아?’ 저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접대보다 체면이 안 서는 본분이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는 좀 지위가 있거나 기술적인 본분을 안배해 줘야지. 그래야 체면이 서지! 나에게 자매들의 접대 일을 맡기는 건 인재를 썩히는 일 아냐? 만약 내가 전문가라는 지위를 내려놓고 누리지도 못한 채 집에서 남들 밥이나 하고 있다는 걸 가족이나 친구들이 알게 된다면, 턱이 빠지도록 웃을 거야.’ 저는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비록 그 본분은 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당시 교회에는 섬김의 집이 급하게 필요했고, 그런 중요한 상황에서 리더의 제안을 거절하는 건 너무 인성이 없는 일이라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직 분량이 작고 깨달은 진리도 적은 제가 앞으로 문서 사역을 하는 자매들과 늘 함께 지내며 그녀들에게 많이 배운다면, 저도 문서 사역에 안배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자매들을 섬기는 것 역시 일시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병원에서의 수익이 좋지 않아 저도 더는 일 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병원을 그만두고, 흔쾌히 본분을 맡았습니다.

과거에는 일하느라 바빠 직접 요리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제가 자매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자 열심히 요리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음식을 다 만들고 나면 식탁에 차리는 일이 하기 싫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남을 시중드는 일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저는 늘 남이 해준 밥을 먹었습니다. 어느 과를 가든 동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저와 대화를 나눴고, 제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존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같이 앞치마를 두르고, 기름이 튀어 얼룩진 옷을 입은 채, 기름 범벅이 된 냄비와 식기들을 닦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러는 동안 자매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너무 괴롭고 답답했습니다. ‘마음을 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비슷한 사물끼리 어울리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밥하고 접대하는 일은 힘을 들이는 일로, 결코 남들과 동등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고, 가슴에 돌이 하나 얹힌 것처럼 답답한 기분이 들어 이 본분을 오래는 이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예전에 의학 논문을 쓴 적도 있었고, 업계의 인정도 받기도 했어. 내 글 솜씨는 결코 나쁘지 않으니 만약 좋은 체험 간증문을 몇 편 써내 보인다면, 리더도 분명 나를 인재로 여겨 문서 사역에 안배할 지도 몰라.’ 그래서,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잠자리에 들며 체험 간증문을 썼습니다. 자매들이 저의 글을 보고 좋다고 말해주자, 저는 기뻐하며 제가 쓴 글을 리더에게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리더가 저를 문서 사역에 안배하지 않자 저는 무척 실망했습니다. 점차 저는 글쓰기에 적극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교회에서 영상 제작 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영상 제작은 기술이 필요한 본분이잖아. 이번에 기회가 왔으니 영상 제작 기술을 배우면 내게도 내세울 만한 장기가 생기는 거야.’ 그래서 저는 시간을 쪼개어 부지런히 영상 제작 기술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탓에 저의 작업 속도는 젊은이들과 비교할 수도, 그들을 따라갈 수도 없었습니다. 이 희망 역시 깨져버린 저는 낙심했습니다. 보아하니, 저는 ‘고급’ 본분들과는 인연이 없고, 그냥 이런 힘쓰는 일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어쩐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며칠 동안, 저는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무엇을 하든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습니다. 요리할 때 이것저것 잊어버리기도 하고, 칼질을 하다 손을 베거나, 요리 도중 손을 데기도 했습니다. 숟가락이나 냄비 뚜껑을 놓쳐 큰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요란한 소리를 들은 자매들은 얼른 하던 일을 멈추고 와서 뒷정리를 도와주었습니다. 자매들의 본분에 영향을 준 것을 본 저는 자책감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괴로움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자매들을 접대하려 하니, 제가 남들보다 열등하게 느껴져 너무 억울하고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체험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부디 저를 이끌어 주세요.’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의 상하 귀천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하나님이 맡겨 주신 부탁이고 하나님 집의 사역이긴 하지만, 이런 일을 하면 남들이 깔볼 거야! 체면이 서는 일은 남들보고 하라고 하고, 티 나지 않고 뒤에서 힘을 내는 일은 나한테 시키네. 이건 불공평하잖아! 난 이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야. 난 체면도 세우고 이름도 날리는 본분을 맡아야 해. 이름을 날리거나 체면을 세우지 못한다 해도 내게 이득이 되고 몸이 편한 본분이어야 돼.” 네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 태도가 옳은 것이냐?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고르는 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본분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본분을 거절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습이다. 그 안에는 개인적인 취향과 바람이 섞여 있다. 네가 자신의 이익과 체면 등 갖가지 요소를 고려하면, 그것은 순종하는 태도로 본분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바로 저의 내적 상태를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신분과 지위가 있는 전문가급 인물이라고 여겼고, 어디를 가나 존중과 우러름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을 자본으로 삼아 스스로를 남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형제자매의 접대 일을 맡기자, 저는 전문가의 신분을 잃게 됐다는 생각에 서러워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로 저는 그제야 접대라는 사역을 굉장히 낮은 일로 여겼던 이유는 제가 늘 이방인의 관점으로 본분을 대했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본분을 높고 낮음, 귀함과 천함으로 나누고 등급화했으며, 얼굴을 드러내고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기꺼이 본분은 이행하려 하고, 소리 없이 묵묵히 일해야 하는 본분은 눈에 차지 않았습니다. 이런 관점들이 저를 꽁꽁 묶고 있어, 저로 하여금 본분 이행이 달갑지 않도록 만들었고, 심지어 본분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의 마음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분명 저의 얼굴을 드러내고 이름을 남기기 위해,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제 취향대로 본분을 가려내고 선택하려 했습니다. 정말이지 이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내려놓고 성실히 본분을 이행하겠노라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의식적으로 저의 내적 상태에 관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셨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마음을 내려놓고 자매들을 접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일어난 어떤 일로 제 마음은 다시 요동쳤습니다. 제가 접대한 한 자매가 교회 리더로 뽑히자 저는 무척 부러웠습니다. ‘문서 사역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좀 봐. 멋지기도 하면서 얼굴도 드러낼 수 있고, 거기다 교회 리더까지 할 수도 있잖아.’ 그러다 다시 형제자매를 접대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 두각을 드러낼 기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매일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저에게서는 늘 요리를 볶다 밴 기름 냄새가 났습니다. 특히 매번 나가서 식재료를 살 때마다, 저를 알아본 누군가 이렇게 훌륭한 의술을 가지고 왜 병원에서 일을 안 하냐고 물어올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매번 집을 나서면 고개를 푹 숙인 채 벽 밑에 붙어 걸어 다녔고, 집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느 자리에 있든 항상 앞자리에 서 있었고, 자주 무대 위에 올라 연설을 했으며,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했던 게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남들이 볼까 두려워, 식재료도 몰래 사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생각할수록 괴로웠고, 저도 모르게 예전에 사회에서 누렸던 영광이 떠올랐습니다. ‘전문가’, ‘주임’, ‘교수’ 같은 이런 호칭들이 무척이나 그리워, 저도 모르게 종종 과거를 되새겼습니다. 상사의 인정, 동료의 칭찬, 환자들의 지극한 대접을 받으며 참 체면이 살고 스스로 영예가 높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토종닭이 되어버린 봉황 신세였습니다. 이 본분 이행은 언제쯤 끝이 날까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쓰려왔습니다. 맛있게 식사를 하는 자매들을 보면서도 저는 밥을 넘길 수가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이 쏙 빠졌습니다. 그때, 원장이 갑자기 저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으로 돌아와 달라고 했습니다. 제 마음은 다시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병원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던 과거의 삶을 되찾을 수 있고, 전문가로서의 품위도 회복할 수 있어. 하지만 접대도 무척 중요해. 나는 집에서 자매들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데, 병원으로 돌아가면 본분을 이행할 수 없어.’ 저는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늘 과거의 지위와 영예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자신을 인식하고 순종할 수 있게 이끌어 주세요.’

진리를 추구하던 중,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 출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묵상해 보아라. 어떤 태도를 가져야 옳겠느냐? 먼저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이 이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진리를 깨달아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 하나님은 한 사람의 출신 가정이나 사회적 지위 그리고 후천적인 학력과 그가 사회에서 쌓은 부를 어떻게 바라보겠느냐? 네가 무슨 일이든 하나님 말씀에 따라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일을 바라보는 네 관점과 하나님의 뜻에는 분명 괴리가 있을 것이다. 그 괴리가 크지 않다면 작은 오차일 뿐이니 문제 되지 않겠지만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위배된다면 진리에 부합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엇을 얼마나 주는지는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지위를 갖는지도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지 절대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힘들고 가난하게 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구원의 희망이 없겠느냐? 그가 신분이 낮은 사회 하층민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지 않겠느냐? 그의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설마 하나님 눈에도 그의 지위가 낮겠느냐?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것은 무엇과 관련되느냐? 그가 걷는 길, 그의 추구, 진리를 대하고 하나님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관련된다.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고 가정 형편이 궁핍하며 학력도 좋지 않은 한 사람이 착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보기에 그 사람의 신분이 높겠느냐, 아니면 낮겠느냐? 귀하겠느냐, 아니면 천하겠느냐? 귀하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한 사람의 신분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은 무엇에 달려 있겠느냐? 바로 하나님이 어떻게 보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본다면 너는 값지고 귀하므로 귀중한 그릇이겠지만,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진심으로 헌신하지 않는 모습을 하나님이 본다면 너는 쓸모없고 귀하지 않을 테니 비천한 그릇일 것이다. 네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네 신분은 높아질 수 없다. 설령 너를 옹호하고 추앙하며 숭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너는 천한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째서 사람을 이렇게 보겠느냐? 사회적 지위가 높고 많은 사람에게 추앙받으며 심지어 위엄과 명망을 자랑하는 이토록 ‘존귀’한 사람이 어째서 하나님의 눈에는 비천해 보이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보는 관점과 사람이 사람을 보는 관점은 어째서 정반대인 것이냐?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사람과 대립하겠느냐?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자 공의이지만 사람은 패괴된 인간이라 진리나 공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판단할 땐 하나님의 기준이 있다. 진리가 바로 하나님의 판단 기준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1)>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 고통의 근원은 제가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해 일을 보지 않고, 대신 사탄의 관점으로 높고 낮음, 귀함과 천함, 등급의 개념으로 본분을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사회적 지위, 명망, 학력, 이뤄낸 업적 등을 성공의 판단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관점들의 지배를 받은 탓에 저는 스스로를 매우 높고 존귀하게 여겼고, 저 자신을 신분과 지위가 있는 전문가급 인물로, 남다르고 우월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이런 관점을 고수해 리더 일꾼이나 높은 기술 수준을 요하는 본분은 높게 보고, 접대나 행정 사역은 보잘것없고 지위가 낮은 일이라고 여겨, 저의 몸값과는 맞지 않는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리더가 저에게 자매들의 접대를 맡기자, 저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었고,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로 인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잘 자지 못했으며, 마음이 불안하고, 살도 쏙 빠져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으로 저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지위의 높고 낮음을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자본이나 학력도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어떠한 길을 걷고 있는 지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학위와 명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싫어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천한 사람입니다. 만약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진리를 얻는다면, 아무런 지위가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대상이 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저를 추켜세우고 지지해 준다고 해도, 저에게 아무리 높은 지위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 푼의 가치도 없습니다.

나중에 저는 왜 이런 관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체면이 서는 본분을 추구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탄은 명예와 이익을 가지고 사람의 생각을 지배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만 사로잡혀 이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고, 치욕을 참고, 명예와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워 놓았다. 족쇄가 채워진 사람은 족쇄에서 벗어날 능력이나 용기가 없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족쇄를 차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인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신하며, 갈수록 사악해지고 있다. 이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이 사탄의 명예와 이익에 넘어가 파멸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이 밝히신 것을 통해 저는 사탄이 ‘명예’와 ‘이익’으로 저를 고통스럽게 얽매고 단단히 묶어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학교의 교육, 그리고 사회의 영향 때문에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 ‘마음을 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와 같은 사탄의 황당무계한 철학이 일찌감치 제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명예와 이익, 지위를 소유하는 것을 인생의 바람직한 목표로 삼았고, 명예와 이익, 지위가 있으면 사람들의 우러름과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교회에서든 저는 늘 등급과 지위를 중요시했고, 열심히 기술을 익혀 무리에서 더 높은 지위와 명망을 가지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제 존재의 가치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명예와 이익, 지위를 얻지 못할 때면, 앞날이 암담했고, 너무나 괴로워 본분을 이행할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지위와 명예, 이익은 마치 족쇄처럼 시시각각 저를 통제하여, 제가 저도 모르게 하나님을 멀리하고 저버리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형제자매들을 접대하는 일이 보잘것없어 보여도, 이런 환경을 통해 저는 제 안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추구와 관점을 인식하여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명예와 이익의 족쇄를 벗어날 수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애쓰시는 마음을 깨달은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무척이나 후회하고 자책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런 환경을 마련해 저의 잘못된 추구 관점을 드러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회개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지위와 명망을 추구하지 않고, 순종하고 성실히 본분을 이행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병원의 요청은 사양하고, 계속해서 집에 남아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 위인, 유명인, 위대한 사람,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을 원하겠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 (착실하게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되는 사람을 원합니다.) 그렇다. 또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을 사랑하길 추구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역시 맞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는 이들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받아들여야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있다> 중에서), 『사람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어떤 본분을 이행했는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얻었는지, 최종적으로 자기 장래와 운명을 고려치 않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배치에 따르며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될 수 있는지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이며, 이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판단한다. 이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으니 너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이 기준을 마음에 굳게 새기고 어떤 경우에도 다른 방법을 찾거나 다른 비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구원받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으며,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원하시는 게 아니라, 성실하게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비록 제가 세상에서는 어느 정도의 신분과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진리에 대한 이해는 매우 얕았습니다. 리더 일꾼이나 문서 사역을 하려면 진리를 깨달아야 하지, 단순히 지위가 있고 지식과 교양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땅히 이성을 갖추고 제 능력에 맞는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현재 저의 집이 접대를 하기에 적합하니, 성실하게 자매들을 접대하며 진리를 잘 추구하는 것이 바로 제가 갖춰야 할 이성이었습니다. 사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단지 호칭이 다르고 사역하는 항목이 다를 뿐, 피조물이라는 신분과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신을 너무 높고 존귀하게 여겼고, 전문가나 명의를 자처하며 마치 제가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늘 형제자매를 접대하는 일은 지위가 낮다고 여겼고, 영예롭고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했습니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며 성실하게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고, 심지어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대적했습니다. 이성이 조금도 없을 만큼 교만했습니다. 욥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는 동방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지위와 명망도 높았으나, 그런 높은 지위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고, 지위가 주는 영예에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지위가 있든 없든,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가장 높은 분으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욥의 이성입니다. 비록 제가 욥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저는 욥을 본받아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기를 추구하고 싶습니다. 제가 더 이상 명예와 이익, 지위를 추구하지 않게 되자, 저의 마음가짐 역시 바뀌었습니다. 모든 본분이 다 중요하고, 어느 본분 하나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접대를 하는 사람이 없다면, 형제자매들이 안심하고 본분을 이행할 환경이 없게 됩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의식적으로 저를 저버리기로 결심하고, 정성껏 매 끼니를 잘 챙기고, 자매들의 안전을 지켜 그녀들이 안심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점차 저와 자매들 간에 등급의 차이가 있다고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할 때면 마음속으로 찬송을 흥얼거렸고, 일이 끝나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했으며, 차분하게 저의 체험과 수확을 되새기고 체험 간증문을 쓰면서 매일을 충실하게 보냈습니다. 이렇게 사니 무척 편안하고 마음도 참 가벼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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