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전염병 감염 후의 성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처음 받아들였을 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 말세 사역이 끝날 때 큰 재난을 내려 선을 보상하고 악을 징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모든 사람은 재난으로 멸망할 것이고, 반대로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받아 정결케 된 사람들은 재난 중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아남아 하나님나라로 인도받아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얻는 것은 최고의 복이니, 이 천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를 소중하게 여겨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겠어.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 나는 살아남을 자격을 얻게 될 거야.’ 그래서 저는 일을 내던진 채 복음을 전하며 본분을 이행하게 시작했습니다. 재난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보면서 이 중요한 시기에 사전에 선행을 많이 쌓아서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면, 하나님나라 복음 확장에서 공로를 쌓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모든 에너지를 복음을 전하는 데 쏟았으며, 매일을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바쁘게 지냈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구역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점차 많아지면서 잇따라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보니 제 마음은 뿌듯했고, 복음 사역에서 자신의 공로가 아주 크다고 여겼습니다. 전염병이 터지고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며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도 제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했으니, 아무리 큰 재난이라도 저에게는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전염병에 감염되면서 지난 몇 년간 본분을 다했던 것의 속셈과 그 속에 섞여 있던 불순한 의도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21년 5월 초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열이 나고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에 걸린 줄 알아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다가 증상이 일주일이나 지속되고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걸 본 한 자매가 저의 증상이 코로나 증상과 매우 비슷하다며, 코로나에 감염된 것일지도 모르니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때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매일 본분을 이행하느라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지내고, 고통을 감내하고 대가를 치렀으며, 본분을 이행한 성과도 꽤 나쁘지 않아. 악을 행하거나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 적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코로나에 걸릴 수 있겠어?’ 그러나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제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가 확진된 것입니다. 저는 넋을 잃고 집으로 돌아왔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나는 계속 본분을 이행했는데, 어떻게 코로나에 감염된 거지? 형제자매가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나를 어떻게 볼까? 분명 하나님께 죄짓는 일을 해서 하나님께서 벌하신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나는 악을 행하거나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지 않았어.’ 작년에 코로나가 발발한 이후로 전 세계의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지금 저도 코로나에 감염되었으니 이대로 죽게 되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의 사역이 곧 끝나려 하는데, 제가 만약 이 시점에 죽게 되면 지난 시간 헌신했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요?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복이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 할수록 괴로웠습니다. 이 병을 어떻게 겪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코로나에 걸린 것은 당신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안에 당신의 선하신 뜻이 있을 줄 믿습니다. 당신께서는 결코 실수를 하시지 않으니, 혹시 제가 어디서 당신을 거역하고 대적한 것이 있습니까? 오늘 제가 코로나에 걸린 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모두 당신의 주재와 안배가 있음을 믿습니다. 저는 당신의 뜻을 구하고 자신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다만 지금은 제가 어디에서 당신의 성품을 거스른 것인지 알지 못하니, 부디 제가 어느 부분에서 잘못을 했는지 알도록 이끌어 주세요. 저는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그 이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병이 찾아오면 어떻게 겪어야 하느냐? 하나님 앞에 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구하고, 자신이 한 어떤 일이 진정 진리에 어긋나는지, 자신에게 아직 해결되지 않은 패괴가 어떤 것이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없다. 사람은 고통을 통해 단련받아야만 방종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다. 고통이 생기면 늘 기도하느라 옷이나 음식, 즐거움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마음속으로 내내 기도만 하면서 그동안 잘못하거나 진리에 어긋나는 부분은 없었는지 성찰하기 마련이다. 대개 큰 병이나 희귀한 질병으로 크게 고통받는 경우, 그건 우연이 아니다. 네가 병이 나거나 건강한 것에는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진리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이 적시에 주신 깨우침을 통해 제가 전염병에 감염된 것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닌,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하심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자신을 철저히 반성해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불평하는 말을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 후 집에서 격리하는 며칠 동안, 제 안에 있는 타락한 성품이 드러나면 형제자매들과 낱낱이 분석하고 드러내어 제 자신을 인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하고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몸 상태가 어떻든지 간에 저는 온라인으로 복음을 전하며 본분을 다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몸이 훨씬 좋아진 것을 느꼈습니다. 기침도 거의 안 하고 체온도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며 에너지와 체력도 잘 회복 되었습니다. 저는 기뻤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순종하고 회개하는 태도를 보시고 저를 돌보시고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습니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습니다. 기침도 멈추지 않았고 이어서는 고열이 나기 시작했으며, 온몸에 힘이 축 빠졌습니다. 제 마음에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확진된 이후로도 나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여전히 본분을 이행했는데, 왜 병이 더 악화되는 거지? 이 병은 현재 치료 약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분명 죽게 될 거야.’ 죽음을 생각하니 저는 너무 두렵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난 십여 년을 돌아 보면, 저는 가정을 떠나 사업을 포기하고, 매일 아침 일찍부터 늦은 밤까지 본분을 다하며 많은 고난을 겪었고, 큰 대가도 치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조금도 기억해 주시지 않는 것일까요? 제가 만약 죽게 된다면,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풍경도 보지 못하고 천국의 복을 누릴 수 없게 될 텐데… 저는 생각하면 할수록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여전히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본분의 일이 많아졌다 하면 속으로 짜증이 났고, 대충 빨리 끝내고 쉬러 가고 싶었습니다. 이전에는 본분을 이행하느라 늘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며, 하나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하나님께서도 저를 지켜주지 않으셨습니다. 이제는 제 자신을 좀 더 생각하고, 몸을 잘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걱정하거나 무리하게 되면 병이 더 나빠질 테니까요. 예배를 드릴 때 다른 형제자매들이 힘차게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저는 말만 하면 기침이 나고,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만 읽어도 숨이 차서 힘이 드니 제 마음은 몹시 불안했고 속으로 이치를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평소에 본분 이행에도 나름 열심이고, 꽤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임했어. 어떤 형제자매들은 나보다 본분을 덜 열심히 이행하는데도 다들 건강하게 하고 있어. 왜 하필 나만 코로나에 걸린 걸까? 이게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시련이라면 교회에는 나보다 더 열심히 추구하는 형제자매들이 있는데, 그들은 왜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는 걸까? 만약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 것이라면 나는 악을 행하거나 교회 사역을 방해하거나 교란한 적도 없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을 한 적도 없어! 하나님, 저는 지금도 여전히 본분을 이행하고 싶습니다. 저도 이 본분을 좋아하고, 아직 충분히 다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계속 살아서 이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지금 제가 이행하고 있는 본분은 중요한 본분입니다. 저는 아직 당신을 위해 봉사할 수 있습니다. 부디 저를 보호해 주시어 계속해서 살아서 당신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제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피조물인 네가 무슨 근거로 하나님에게 요구하느냐? 사람은 하나님에게 요구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것은 가장 비이성적인 일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며,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다. 공의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를 둘로 나누는 것, 고생한 만큼 분배하는 것, 일한 만큼 돈을 주는 것, 노력한 만큼 얻는 것, 이것은 공의가 아니라 그저 공평하고 합리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령 욥이 하나님을 증거한 후에 하나님이 그를 멸했다면 이것은 공의일까? 사실 이것 역시 공의이다. 어째서 그것을 공의라고 하겠느냐? 공의에 대해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일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한다면 하나님은 공의롭다고 말하기가 매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자신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공의롭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때 하나님이 욥을 멸했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공의롭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이 패괴되었든 안 되었든, 사람의 패괴가 깊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이 사람을 멸할 때 사람에게 그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하느냐? 무슨 근거로 사람을 멸하는지 설명해야 하느냐? 하나님이 그가 정한 규칙을 사람에게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 필요 없다. 패괴된 사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아무런 가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든 다 합당하고, 다 하나님의 안배다. 하나님이 네가 눈에 거슬려 넌 증거를 다 했으니 쓸모없어졌다며 널 멸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냐, 아니냐? 이것 역시 공의다. …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은 다 공의롭다. 그것을 깨닫지 못할지라도 마음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거나 관념을 가진 일에 있어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가장 비이성적인 태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나니 하나님께서 제게 직접적으로 책망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 드러낸 것이 결국 하나님께서 불공평하고 공의롭지 않다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께 흥정하고 이치와 조건을 따지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제 자신이 오랜 기간 본분을 이행하며 고생하고 대가를 치렀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어서 하나님께서 저를 재난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모두 저의 관념과 상상일 뿐 전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주이시고, 저는 피조물입니다. 제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비롯하고, 저의 생명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운명을 어떻게 주관하시고, 제가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일입니다. 피조물인 저는 순종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제게 하나님께 이치와 조건을 따질 자격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어온 이 수년 동안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진리의 양육과 공급을 누렸는데, 감사하는 마음이 조금치도 없었습니다. 현재 전염병에 걸려서 죽음의 위협에 직면했는데도, 저는 하나님께 따지고 대적하며, 하나님께서는 공의롭지 않다며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제게 조금의 양심과 이성이 있었던 것일까요? 생각하면 할수록 자책감이 들고 부끄러워져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너무 이성이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의 피조물이고, 당신의 모든 주재와 안배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당연한 도리입니다. 당신께서 제게 코로나가 닥치는 것을 허락하셨고, 죽음의 위험이 있을 수 있음에도 저는 순종하기는커녕 당신께 따지고 불평하며 살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성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너무 패역적이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제 자신을 잘 반성하고, 당신께 회개하고 싶습니다.”

다음 며칠 동안, 제가 하나님께 불평하고 오해했던 것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에서 깊은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병세가 악화된 후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고 소극적이고 게으름을 피우며, 본분을 대충 이행하며 질질 끌기만 했던 것을 떠올리니 더욱더 죄책감과 불안함이 커졌습니다. 평소에 병이나 재난이나 병이 없을 때는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다면서 피조물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하심에 순종해야 한다고 떠들어댔었는데, 왜 아픔이 닥치자 제게 그렇게 많은 패역과 거역이 드러났던 것일까요? 묵상하면서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애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없고 베풂과 연민만 있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3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 대가를 치르며 수고하면 하나님이 축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교회 사역을 하면 교회를 위해 또 어떤 사역을 했었는지, 하나님 집을 위해 어떤 공을 세웠는지, 형제자매에게 어떤 일을 처리해 주었는지 세어 보고, 이런 일을 가슴에 새겨 두어서 나중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어떤 은혜와 축복을 줄지 지켜본다. 과연 이렇게 한 보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편하게 말이다. 어째서 그는 속으로 늘 이런 일들을 따지는 것이냐? 그가 마음속 깊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무엇이냐? 그는 하나님을 처음 믿을 때부터 복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설교를 몇 년을 들었든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먹고 마셨든, 도리를 얼마나 이해했든 그는 복을 받고자 하는 욕망과 속셈은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본분에 충실한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라고 하면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저랑 상관없어요. 제가 추구할 바가 아니거든요. 제가 추구해야 하는 건 싸울 땐 싸우고, 힘쓸 땐 힘쓰고, 고생할 땐 고생하는 겁니다. 제가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면 하나님은 제게 상을 베풀어 주시고 저를 살아남게 해 주실 겁니다. 하나님나라에서 면류관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보다 높은 위치에 서겠죠. 적어도 두세 개 고을은 맡기실 거예요.” 적그리스도가 무엇보다 관심을 갖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하나님 집에서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도 복을 받고자 하는 그의 속셈과 욕망은 끊어 낼 수 없다. 이런 자가 바로 바울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이런 적나라한 거래 속에 사악하고도 흉악한 성품이 들어 있지 않겠느냐? 어떤 종교인들은 말한다. “우리 세대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이니 우리는 복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고하고 대가를 치렀으며 고배도 마셨습니다. 심지어 체포되고 수감되어 형을 산 사람도 있어요. 우리가 이토록 고생하고 설교도 많이 들어서 성경 지식을 이렇게나 쌓았는데 언젠가 복을 받지 못한다면 셋째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께 따질 겁니다!” 너희는 이런 말을 들어 본 적 없느냐? 그들은 무슨 담력으로 하나님에게 따지러 셋째 하늘에 올라간다는 말을 하느냐? 듣기만 해도 두렵지 않으냐? 누가 감히 하나님에게 이치를 따지겠느냐? … 이런 사람이 천사장이 아니냐? 사탄이 아니냐? 네가 누구에게 이치를 따지든 하나님에게 따져선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 복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 하나님이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네가 복받을 조건을 충족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주지 않는다고 하나님에게 이치를 따져선 안 된다. 전 우주, 전 인류를 모두 하나님이 다스리고 하나님이 결정하는데 너같이 미미한 사람이 감히 하나님에게 이치를 따지다니 어쩜 그리도 자기 분수를 모르느냐? 자기가 누군지 거울로 비춰 보지도 않고 감히 창조주에게 언성을 높이며 대드니 제 무덤을 파는 꼴이 아니냐? “언젠가 복을 받지 못한다면 셋째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께 따질 겁니다.” 이는 대놓고 하나님에게 고함치는 말이다. 셋째 하늘이 어떤 곳이냐?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다. 감히 셋째 하늘에 가서 하나님에게 따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찬탈이자 반란’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말씀하신 이 일이 적그리스도와 무슨 상관이죠?” 관계가 대단히 깊다. 셋째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에게 따지려는 사람은 모두 적그리스도이고, 오직 적그리스도 같은 부류의 사람만이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말을 가슴 깊이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이 밝히신 것을 통해 저는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제야 오랜 기간 고생하며 대가를 치른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복을 누리기 위해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재난을 피하는 수단으로 여겼고, 하나님과 거래하는 교환 수단이나 자본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마음속으로 자신이 얼마나 일을 했고, 복음을 전해서 몇 사람을 얻었으며, 어떤 고생을 하고,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를 자주 헤아리곤 했습니다. 그럴수록 자신의 공로가 있다고 여기며, 재난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남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제가 전염병에 걸리자, 마음 속에는 불평과 오해로 가득했습니다. 병고 속에서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할지 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잘 보여서 하나님의 환심을 사고, 하나님께서 저를 보호해 병이 빨리 낫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병이 점점 악화되는 것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 실망하고 낙담하며, 하나님께서 저를 보호하지 않으신다고, 하나님께서는 제게 불공평하다고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드러났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모두 복을 받기 위한 것이었고, 하나님을 이용해 제 자신이 복을 받으려는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거래하고, 하나님을 속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이기적이고, 너무나 간사했습니다! 저는 은혜시대의 바울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유럽 대부분을 돌며 수많은 고난을 겪고,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그의 헌신과 노력은 모두 천국에 들어가 상을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7~8) 바울의 말속에는 만약 하나님께서 그에게 면류관을 주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은 불공정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종교계의 사람들도 바울의 이러한 말에 큰 영향을 받아 주님의 이름으로 사역을 하고 고생을 하는 이유가 모두 천국에 들어가 복을 받는 것이고, 만약 복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과 따지려 합니다. 제 모습도 그들과 같은 것이 아닌가요? 이것을 깨닫는 순간 저는 두려웠습니다. 제가 적그리스도처럼 복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께 따지고, 대항할 줄은 몰랐습니다. 만약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제 안에 이토록 심각한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는 줄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이때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예로부터 사람에 대한 내 요구는 매우 엄격했다. 네 충성심에 다른 속셈이나 조건이 있다면, 나는 너의 그 소위 충성심을 차라리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람이 저의를 지닌 채 나를 기만하고, 조건을 내밀며 뭔가 얻어 내려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나에게 변함없이 충실하고, 무슨 일을 하든 오직 ‘믿음’을 위해, 그리고 ‘믿음’을 검증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감언이설로 나의 환심을 사려는 것을 미워한다. 나는 언제나 너희를 진심으로 대했으므로 너희 또한 나를 참된 믿음으로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저는 하나님의 성품이 공의롭고 거룩하여 범할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역을 하시어 사람을 구원하시는 목적은 사람의 진실한 마음과 충성심을 얻기 위함입니다. 만약 사람이 헌신하는 과정에서 불순한 속셈과 거래, 속임수를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헌신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께서 혐오하고 증오하시는 대상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죄하십니다. 바울처럼 결국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옥에서 중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거래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본분을 이행했으니 하나님께서 저를 미워하고 증오하시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오늘 제가 전염병에 걸린 것은 제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비열한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 제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거룩함을 보도록 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이 병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피조물로서 창조주 앞에 왔으면 마땅히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이는 지극히 올바른 일이며, 사람이 이행해야 할 책임이다. 창조주는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하는 이런 전제하에 인류 가운데서 더 큰 사역을 하고, 사람에게 한층 더 깊은 사역을 했다. 그것은 어떤 사역이겠느냐? 바로 인류에게 진리를 공급하여 인류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얻게 하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정결케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인생의 바른길을 걷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더는 사탄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완전히 구원받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본분을 이행하게 하여 최종적으로 이루려는 성과이다. 그러므로 본분 이행 과정에서 하나님은 너에게 한 가지 일만 꿰뚫어 보거나 일부 진리만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여 얻게 되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하는 데만 그치는 것도 아니다. 네가 정결케 되고 구원받아 마지막에는 창조주의 얼굴빛 속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본 저는 매우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피조물로서 마땅히 져야만 하는 책임이자 의무이고, 더욱이 사람이 진리를 얻고 성품 변화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여러 환경을 마련해 사람의 패괴 성품을 드러내십니다. 또한 말씀의 심판으로 밝히시고, 책망이나 징계는 우리가 자신의 패괴 성품에 대해 인식하고 변화가 생겨서 더 이상 사탄의 패괴와 모해를 받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고심입니다! 돌이켜보면, 오랜 시간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여러 환경 속에서 저의 많은 패괴 성품이 드러났고, 자신의 패괴 성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생겼습니다. 그 덕분에 자신을 미워하고 회개하고 변화하기 시작했고, 조금은 사람다운 모습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저는 이렇게 많은 것을 얻었음에도 감사할 줄도 몰랐습니다. 오히려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재난을 피하는 조건과 자본으로 여겼고, 하나님을 속이고 이용하는 대상으로 간주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비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셨는데도, 저는 소중히 여기지 않고, 오직 복을 어떻게 받을지, 어떻게 재난을 피하고 천국에 들어가 상을 받을 지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사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결심했습니다. 더 이상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 말씀의 한 구절을 통해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이 내게 질병의 고통이나 내 뜻과 다른 어떤 일이 닥치게 허락하셔도, 하나님이 어떻게 하셔도 나는 순종해야 한다. 피조물로서의 위치에 제대로 서야 한다. 먼저 순종과 관련된 진리를 실행하여 실천에 옮기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제를 살아 내야 한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부탁과 내가 이행해야 할 본분을 팽개쳐서는 안 된다. 마지막 숨이 붙어 있는 한 내 본분을 지켜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네게 이런 다짐과 내적 상태가 있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너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은 내게 숨결을 주셨어. 또 지난 세월 동안 내게 공급하고 보호해 주셔서 많은 고통을 겪지 않게 하셨고, 수많은 은혜와 진리를 베푸셨지. 나는 역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진리와 비밀을 깨달았고, 하나님에게서 너무도 많은 것을 얻었어. 그러니 하나님께 보답해야 해! 예전에 나는 분량이 작고 개념이 없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만 했지. 앞으로는 하나님께 보답할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내가 아직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힘을 다 바쳐야 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해. 그래서 하나님께 그동안 내게 헛되이 공급하신 것이 아님을, 성과가 있음을 보여 드려야 해. 그리고 내게서 위안을 얻으시게 해야지. 더는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하거나 실망시켜 드려선 안 돼.’ 이런 생각이 어떠하냐? 목숨을 구하려 하거나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면서 ‘병이 언제 나을까? 병이 나으면 본분을 잘 이행하고 충성을 다해야지. 병이 있는데 어떻게 충성을 다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지 마라. 숨이 붙어 있는 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지 않겠느냐? 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을 수 있느냐? 또 숨이 붙어 있고 제대로 사고를 할 수 있는 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기 쉽지만, 막상 그 일이 정말로 닥치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진리를 추구하고 늘 진리에 공을 들이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할지, 어떻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할지를 많이 생각해야 한다. 피조물이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말씀만 들으면 피조물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야 한다. 하나님이 네게 이렇게 많은 진리와 길, 생명을 베풀어 준 것은 네가 살아 내고,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라는 것이다. 이는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일로, 너의 책임과 의무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묵상해야 실행할 길이 생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저는 피조물입니다. 저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병을 제게 허락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니, 제가 죽든 살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피조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이성입니다. 또한 본분은 피조물로서 지켜야 할 의무이니,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환경에 처하든 제가 숨을 한 번이라도 쉴 수 있을 때에는 제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누렸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지금 제가 아직 살아있는 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본분을 다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매일 마음속으로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해 하나님을 흡족게 할지 고민했습니다. 협력하는 자매는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많은 원칙을 아직 잘 알지 못했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자주 발생했습니다. 저는 온라인에서 그녀를 도우며 지도해 주었습니다. 평소에도 저는 자주 하나님 앞에서 차분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고,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비록 여전히 기침을 하고 열이 나기도 했지만, 더 이상 병에 얽매이지 않았고, 앞으로 죽을지 살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과 제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는 하나님의 주재와 예정에 달려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루를 더 살게 하신다면, 그 하루 동안 본분을 잘 이행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려고 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죽음을 허락하시는 날이 온다면, 저는 기꺼이 순종하고 더 이상 불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밤, 저는 계속 기침을 멈출 수 없었고, 목에는 가래가 가득했으며, 고열에 시달리고 온몸이 쑤셨습니다. 침대에 누웠지만 너무 괴로워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들 수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 이제 죽는 건 아닐까? 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죽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앞으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어나 컴퓨터를 켰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의 수명은 하나님이 정해 놓았다. 이 병이 의학적으로는 죽을병이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네 수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면, 너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이 있고 네 사명이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면, 설령 죽을병에 걸려도 너는 죽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 너를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네가 기도하지 않고 진리를 구하지 않아도, 열심히 치료하지 않고 심지어 치료가 늦어지더라도 죽을 수가 없다. 특히 하나님의 부탁을 받은 사람이 아직 그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다면, 어떤 병에 걸리든 바로 죽지 않으며, 사명을 완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야 한다. 네게 이런 믿음이 있느냐? … 사실, 네가 병이 나아서 죽지 않으려고 흥정하든, 아니면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어서 흥정하든, 하나님이 보기에 네가 본분을 이행할 수 있고 쓸모가 있으며 하나님이 너를 쓰기로 마음을 정했다면 너는 죽어서는 안 된다. 너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사람이 터무니없이 굴고 온갖 악행을 저질러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될까 봐 걱정된다. 그러면 빨리 죽게 된다. 수명이 단축되는 것이다. 사람의 수명은 창세전에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았다. 사람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한다면, 병이 있든 없든, 건강이 좋든 나쁘든, 하나님이 정해 놓은 나이까지 살 수 있다. 네게 이런 믿음이 있느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느낄 수 있었고, 마음이 따뜻해졌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세에 태어나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 덕분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의 수명을 정하셨다면, 제가 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죽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 두시기로 하셨다면, 죽을병에 걸려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앞날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저는 운명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따라야 합니다. 제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하나님께 제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침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시고. 이렇게 많은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진리를 깨닫고 사람으로서 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길이 헛되지 않음을 느낍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긍휼과 구원 덕분입니다! 단지 제 패괴가 너무 깊어서 항상 당신을 거역하고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진리를 제대로 추구하지 않고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면서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지도 못했습니다. 당신께 조금의 위로조차 드린 적이 없으니 정말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앞으로 제가 당신의 사랑에 보답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진리를 열심히 추구하며 본분을 다해 당신을 만족하게 해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날 밤 저는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 보니 온몸이 가벼웠습니다. 마치 병에 걸린 적이 없었던 것처럼 목도 편안했고 가래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저는 서둘러 체온을 재 보았더니,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이것이 모두 저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보호하심이란 걸 알았습니다. 전염병에 감염된 후 제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모습이 많이 드러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저를 돌보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여러 달이 지났지만 저의 체온은 여전히 정상입니다. 그 후로 병이 재발하지 않았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회복되었습니다. 이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저를 놀랍게 보호하고 구원하신 덕분입니다. 이번 전염병 감염을 통해 저는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려는 마음에 있는 온갖 속셈이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제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비열한 속셈임을 깨닫게 되었고, 저 자신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을 실제로 체험하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주재와 지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 병을 겪으면서 약간의 연단과 고통을 받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습니다. 이것은 안락한 환경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돌아보면 제가 얻은 것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가 가득 차게 됩니다. 하나님, 구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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