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정과 의를 지킬 때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선생님은 제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은혜를 알고 보답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른바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부터 이 말을 제 처세의 원칙으로 삼았고 특히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을 때는 더더욱 최선을 다해 상대방에게 배로 갚고 보답하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게 되었고, 친척과 친구들도 제가 정이 많고 의리가 있다고 하며 저와 어울리고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여전히 이렇게 형제자매들과 어울렸고, 이렇게 처신하는 것이야말로 양심이 있는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저는 비로소 이런 전통문화와 사상 관념들이 진리가 아니며 우리가 처세와 행실에서 가져야 할 기준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8년 9월, 저는 리더로 있으면서 실제 사역을 하지 못해 교체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무척 소극적이고 나약했습니다. 행정 사역을 맡고 있던 류잉 자매가 저에게 하나님의 여러 말씀을 보내주며 붙들고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마음 깊이 감동하였습니다. 류잉 자매가 저를 얕잡아 보기는커녕 오히려 격려하고 도와주었다고 느꼈습니다. 이후 류잉 자매는 제게 행정 사역을 안배하기도 하고 저를 많이 배려해 주었으며, 평소 본분과 관련된 일에서는 제 생각과 관점을 적극적으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류잉 자매가 저를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에게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교회 리더가 저에 대한 평가를 알아볼 때는 한 형제자매가 저를 오해하는 말을 했습니다. 류잉 자매는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그 자리에서 저 대신 사실을 밝혀 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류잉 자매가 더욱 고마웠고, 그녀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서서 저를 위해 말해 주어 제 이미지를 회복시켜 주었다고 느꼈습니다. 비록 겉으로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젠가 기회를 찾아 그녀에게 제대로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류잉 자매는 실제 사역을 하지 못해 교체되었고, 저는 팀장이 되었습니다. 류잉 자매의 사역을 파악할 때 저는 그녀가 종종 일에 집중하지 않고 건성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매에게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류잉 자매님, 본분을 이행할 때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하세요?” 그녀는 제 말을 듣고도 반성하지 않고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습니다. “아휴, 제가 나이가 많아서 기억력이 안 좋아요.” 그 후로도 협력하는 자매가 류잉 자매가 여전히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는 것을 보고 몇 번 지적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시간을 내어 제대로 지적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내가 막 교체되었을 때 내적 상태가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류잉 자매는 나를 상냥하게 붙들고 도와주었어. 지금 그녀도 막 교체된 상황인데, 내가 이 시점에서 그녀의 문제를 폭로하면 그녀가 나를 너무 인정머리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게다가 그녀가 막 교체된 터라 내적 상태가 좋지 않고 마음이 딴 데로 가 있는 것도 이해할 만해. 아무래도 내가 사랑으로 도와주고 천천히 회복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게 좋겠어.’ 그 후로 류잉 자매가 본분에서 어떤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저는 협력하는 자매와 함께 그 일을 직접 처리했고, 어떤 일은 그녀가 잊어버릴까 봐 자주 일러 두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제도 자주 하면서 자매의 내적 상태를 살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내적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습니다. 몇 번 사역을 논의할 때 그녀가 내놓은 제안은 모두 원칙에 맞지 않아 많은 형제자매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우겨 대며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강요했습니다. 이로 인해 몇 번의 사역 논의가 거기서 막혀서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그녀에게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곧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체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속으로 무척 힘들 거야. 이럴 때 내가 자매의 문제점을 드러낸다면 그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 아니겠어? 관두자.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깨닫겠지.’ 그래서 저는 아무 지적도 하지 않았고 그저 가능한 한 그녀가 사역 논의에 적게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반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은근히 저를 비난하며 자신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고 꾸짖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않자 저는 눈 딱 감고 그녀에게 몇 마디 했습니다. “자매님은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이에요. 자신을 잘 돌아보셔야 해요.” 그때 그녀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지고 목소리도 가라앉은 것을 보며 순간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내가 너무 심하게 대했나? 예전에 자매가 내게 여러 모로 도움을 준 것을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 행동한 게 너무 인정머리 없는 건 아닐까?’ 저는 자신을 탓했습니다.

며칠 후, 류잉 자매의 업무를 주로 저와 제 동역자가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책임자가 그녀의 본분 이행 상황에 대해 저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마음이 조금 불안해졌습니다. ‘내가 자매의 상황을 사실대로 보고하면, 자매가 교체될 가능성이 크겠지. 생각해 보면 내가 사무 사역을 하게 된 것도 다 자매가 안배해 준 덕분이야. 자매는 평소에도 나한테 잘해 주고, 중요한 순간에도 날 도와줬어. 만약 내가 팀장으로 있는 동안 자매가 교체된다면, 나보고 양심도 없고 정도 의리도 없는 사람이라고 원망하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그녀의 사역을 지켜주기 위해 그녀의 일부 모습을 객관적으로 적으면서도 일부러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막 교체된 후 내적 상태가 좋지 않아 나타난 것이며, 본인도 의식적으로 바로잡으려 하고 있음.” 그 후로도 그녀가 교체되지 않게 하려고 저는 예배에서 몇 번 특별히 그녀의 내적 상태에 맞춰 교제하며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전처럼 건성으로 대했고 본분을 이행할 때 문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한 번은 누구도 상의도 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은 물품들을 구매했습니다. 게다가 가격도 평소 사용하던 것보다 훨씬 비쌌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화나서 그녀를 책망하고 싶었지만 인정에 못 이겨 화를 꾹꾹 억눌렀습니다. 이번은 그냥 넘어갈 테니, 본분을 이행할 때 조금 더 신경 쓰라고만 얘기했습니다. 그녀가 시원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은 형제자매들로부터 계속 류잉 자매의 사역 문제에 대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정말 그녀를 꾸짖고 책망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녀를 마주하면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몇 번이나 말을 꺼내려다가 결국 삼키고 말았습니다. 그 후, 책임자가 와서 류잉 자매의 본분 이행 상황을 확인하고 팀 내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원칙에 따라 판단한 결과, 자매가 사무 사역을 맡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책임자는 저에게 가급적 빨리 자매를 교체하라고 했습니다. ‘팀장에서 막 교체된 데다 지금 본분도 조정을 받게 되면 자매가 얼마나 충격이 클까!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 순간, 자매가 전에 저를 도와주었던 장면들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며칠 동안 그녀를 교체해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며칠 밤을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고, 마치 제가 교체당한 것처럼 괴로웠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자매가 나를 도와줬는데, 이제 내 손으로 자매를 교체하고 그녀의 모습을 폭로해야 하다니. 자매가 나를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원망하지 않을까?’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책임자더러 류잉 자매와 교제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뒤에 숨어서 말을 아꼈고, 심지어 핑계를 대고 나타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속셈이 비열하고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은 진퇴양난의 상태에 빠졌습니다. 고통 가운데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류잉 자매를 교체하는 게 옳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걸까요? 하나님, 저의 문제가 도대체 무엇인가요? 저 자신을 인식하도록 저를 이끌어 주세요.”

저는 기도를 마치고 묵상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교체할 때는 이렇게 괴롭지 않았는데, 왜 류잉 자매를 교체할 때는 이렇게 우유부단할까?’ 구하는 중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정이 너무 많다. 매일 말하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항상 정에 이끌려 살아간다. 이 사람에게도 정을 주고 저 사람에게도 정을 주며 매일같이 정을 베풀고, 매사 정에 파묻혀 살아간다. … 이 사람에게는 정이 바로 치명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모든 일에서 정에 휘둘려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도 없으며 또한 항상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있다. 정이 바로 그의 최대의 약점이자 치명적인 부분이다. 정은 이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고 망칠 수 있다. 정이 너무 많은 사람은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없다. 정이 많으면 육만 돌볼 수밖에 없는데, 어리석은 바보다. 이런 사람의 본성은 바로 정이 너무 많은 것으로, 그는 정에 이끌려 살아간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감정은 어떤 특징을 보이느냐? 그것이 긍정적일 리는 없다. 육적인 관계에 집중하고 육적인 기호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편을 들고 잘못을 감싸 주고 익애하며 오냐오냐하고 방임하는 것, 이런 것은 전부 감정에 속한 것들이다. 어떤 사람은 감정에 너무 치우쳐서 어떤 일이 닥치든 정에 휘둘린다. 마음속으로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못하며, 나아가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도 못한다. 늘 감정의 속박을 받는다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감정 때문이다. 그들은 감정을 몹시 중요하게 여기며, 1순위에 둔다.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겠느냐? 그럴 리가 없다. 감정의 본질이란 무엇이냐? 바로 패괴 성품의 일종이다. 감정적인 모습을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하자면 편들기, 감싸기, 육적인 관계 지키기, 불공정함 등을 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감정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류잉 자매를 교체하는 일이 그토록 고통스럽고 어려웠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지나치게 정에 치우쳐 있고, 늘 정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류잉 자매가 예전에 저를 도와준 적이 있고, 저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본분을 대충 이행해서 사역을 그르치고, 여러 차례 교제해도 고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녀를 훈계하고 책망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체면을 상하게 하면 원망을 들을까 두려워 가볍게 한 마디만 하고 유야무야 넘어갔습니다. 그녀가 잘못된 관점을 고집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따르고 순종하도록 강요하는 바람에 몇 번 사역 논의가 가로막히는 등 이미 교란이 벌어졌는데도 저는 여전히 그녀를 폭로하거나 책망하기를 망설였습니다. 책임자가 류잉 자매의 사역 상황을 파악하고자 할 때 저는 그녀가 교체될까 두려워 사실을 숨긴 채 그녀는 지금 잘못을 바로잡고 변화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책임자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책임자를 현혹하려 한 것입니다. 또한 류잉 자매가 본분을 원칙대로 이행하지 않아 교회의 자금을 낭비하는 것을 보면서도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그녀를 감싸고 넘어가 주었습니다. 지금 그녀를 교체하고 그녀의 문제를 드러내야 할 상황에서 저는 이 일을 책임자에게 떠넘기고 싶어 했습니다. 지나치게 정에 이끌리고, 진리를 실행한 증거는 전혀 없었습니다. 류잉 자매를 옹호해서 그녀가 나를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원망하지 않게 하려고 저는 계속해서 그녀를 편들고 묵인하며 교회 사역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에 얽매여 살면서 육을 돌보고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사랑하고 돕는 행동이고, 그것이 정과 의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처세 철학을 따르는 것이었고, 교회의 이익을 해치면서까지 류잉 자매에게 좋은 소리를 듣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한 모든 행위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너무 비열하고 사악했습니다! 저는 후회했습니다. 감정에 치우쳐 일하는 것은 교회 사역을 모해하는 일이어서 하나님께서 혐오하십니다. 계속 이렇게 정에 이끌려 진리를 실행하지 않다가는 언젠가 하나님게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잠시 후 묵상을 했습니다. ‘왜 나는 정을 따르며 진리 원칙에 어긋나는 짓을 이토록 많이 저지를까?’ 구하는 중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속셈은 내적 상태에서 뚜렷한 한 부분으로, 가장 흔히 보이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사람은 거의 다 자신의 생각과 속셈을 갖고 있다. 이런 생각이나 속셈이 생겨도 사람은 아주 정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을 위한 것으로, 자신의 체면이나 이익을 위한 것이고, 혹은 무언가를 덮어 감추거나 자신의 무언가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때 너는 그 속셈이 어디서 비롯되었으며, 왜 그런 속셈이 생겼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 집에서 네게 교회의 인원을 정리하는 사역을 시켰는데,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건성으로 임하고 몸을 사리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원칙대로라면 그에게 처분을 내려야겠지만 그와 너는 사이가 좋다. 그럼 너는 어떤 생각과 속셈을 품겠느냐? 너는 어떻게 실행하겠느냐? (자신의 취향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그 취향은 어떻게 생겨났겠느냐? 그가 너한테 잘해 주었기 때문에, 혹은 너를 위해 어떤 일을 해 주었기 때문에 너는 그에게 호감이 생겼고, 이럴 때 그를 보호하고 변호해 주려 할 것이다. 이것이 감정의 작용 아니겠느냐? 너는 그에게 정을 느끼기에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라는 식으로 양면 수법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좀 더 열심히 해야 해요. 더는 대충 해서는 안 돼요. 고생도 좀 해야 해요. 이건 우리 본분이잖아요.” 다른 한편으로는 너는 “그 사람 많이 좋아졌습니다. 본분 이행 효과도 전보다 좋아졌습니다.”라고 상부에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네 속마음은 이랬다. ‘이건 내가 그 사람을 달래서 그렇게 된 거지, 안 그랬으면 그대로였을 거야.’ 그리고 너는 계속 ‘그 사람은 나한테 잘해 주는데, 내가 그 사람을 제명할 수는 없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너에게 이런 속셈이 있다면 이것은 어떤 내적 상태이냐? 이는 개인의 감정적인 관계를 지킴으로써 교회 사역에 해를 입히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겠느냐? 이런 행동이 순종적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순종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반항하는 것이다. 네게 임한 일, 또는 네가 해야 할 사역에 대한 네 생각에 주관적인 판단이 있는 것인데, 거기에는 감정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 너는 정에 휘둘려 일을 처리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렇게 한 것이 공정하다고, 다른 사람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생각대로 일을 처리한다. 이렇게 사역을 하면 에누리해서 하여 사역 성과에 영향을 미치며, 교회 사역에 피해를 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정에 휘둘려 일을 처리한 결과이다. 만약 성찰하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를 발견할 수 있겠느냐? 영원히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런 식의 행동이 옳지 못하며 순종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줘야지. 내가 도와줘서 그가 좋은 방향으로 달라진다면 제명할 필요도 없어. 하나님은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잖아?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니까 나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동해야 해.’라고 생각한 후 자기 방식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다. 너는 자기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고도 마음이 편하며 진리를 실행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 과정에서 너는 진리에 따라 실행한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취향이나 속셈에 따라 행한 것이냐? 너는 완전히 자신의 취향, 속셈을 따라 행한 것이다. 전반 과정에서 너는 소위 호의와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감정, 처세 철학을 동원하여 얼버무렸고 중용의 길을 택했다. 겉으로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것 같지만 사실 속으로는 정에 휘둘린 것이다. 또한, 상부에서 알게 될까 봐 절충적인 방식으로 사람 마음을 회유하고 누구의 미움도 사지 않고 사역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들의 중용의 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이 하나님을 대할 때 갖춰야 할 태도>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저는 왜 제가 류잉 자매에게 분명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를 폭로하지 않고 감싸주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녀에게 좋은 소리를 듣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제 안에는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 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처세의 원칙으로 삼았고,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정과 의를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면 그 은혜에 배로 보답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어 남들에게 비난받고 미움받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류잉 자매가 저를 도와주고, 배려해 주고, 제 편을 들어주자 그녀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류잉 자매가 본분을 다하지 않고 대충대충 처리하는 것을 보고 저는 원칙을 어기고 교회의 이익을 해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를 폭로하고 책망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제가 계속해서 맹목적으로 사랑을 베풀며 교제로 그녀를 도와주고, 거짓말을 해 가며 그녀가 교회 사역을 소홀히 하고 교란한 사실을 감추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한 이유는 사람들이 제가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 인정이 있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비로소 이런 생각과 관점이 모두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기준 삼아 살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행동과 처신에서 아무런 원칙이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제 마음대로 행동하며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 않았고, 심지어 교회 사역을 가로막고 하나님을 대적하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실천하지 않고 여전히 이런 것들로 살아간다면 표면적인 행위가 아무리 좋아 보이고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낸다고 해도 하나님 눈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그 순간 저는 사탄의 이런 터무니없고 비열한 사상 관점에 대해 조금 분별이 생겼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탄에서 나온 것, 진리에 어긋난 것이고, 사람의 이익과 욕망이 섞여 있는 것이고, 사악하고 추한 것이라 제가 처신과 행동의 준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며칠 후, 저는 또 다른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이 일의 성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네 본분을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탄의 처세 철학, 사탄의 음모와 계략을 진리로 여겨 준수하고 실행했다. 이는 사탄에게 순종하고 사탄 철학에 기대 살아가는 것 아니냐? 너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너는 완전히 망나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쳐 놓고 오히려 사탄의 말을 진리로 여겨 실행하다니, 이는 진리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 집에서 사역하지만 네가 일을 처리하는 원칙은 처세 철학과 사탄의 논리이다.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냐? 이런 자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심히 욕되게 하는 사람이다. 이 성질은 무엇이냐? 이는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정죄하고 공개적으로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런 성질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탄의 헛소리와 사탄의 처세 철학이 교회에서 횡행하게 했다. 너는 사탄의 공범자가 되어 사탄이 교회에서 일을 저지르고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도록 도왔으니 문제의 성질이 아주 심각하지 않으냐?(<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1 무엇이 진리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니 가슴이 찔렸습니다. ‘망나니’, ‘진리를 배반하다’ ‘하나님을 심히 욕되게 하는 사람’, ‘사탄의 공범자’ 와 같은 말들이 날카로운 칼처럼 제 마음을 찔렀습니다. 저는 이런 전통 문화와 사상 관점에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것은 단순히 일시적으로 정에 이끌려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교회 이익을 지키지 않은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본분에 대해 충성심이 없는 것이고,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 성질은 너무 심각합니다! 이 점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무척 아프고 두려웠습니다. 사탄의 사상 관점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성질은 이토록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한참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류 전체에서 어떤 인종에서든 진리가 권세를 잡고 있지 않다. 그 인종에서 생겨난 사상과 전통문화, 그들이 받아들이는 교육과 가지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뛰어나고 오래되고 신비롭든,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런 것들은 다 진리가 아니고 진리와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전통문화 속의 도덕관이나 시비, 잘잘못, 선악을 판단하는 관념은 진리와 비교적 비슷한 것 같아요.” 견해가 비슷하다고 해서 뜻이 비슷한 것은 아니다. 패괴된 인류의 견해는 사탄에게서 비롯됐기에 영원히 진리가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다. 따라서 사람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아무리 비슷해도 진리가 아니고 진리가 될 수도 없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다. 비슷하다고 해도 그저 견해와 언어의 표현 방식이 비슷한 것이지, 사실상 그런 전통 관념은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일부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비슷할지 몰라도 그 근원은 다르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주에게서 비롯됐고 전통문화의 그런 말이나 사상 관점은 사탄 마귀에게서 비롯됐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전통문화의 그런 사상 관점이나 명언은 인류가 공인하는 긍정적인 것이에요. 설사 거짓말이나 허튼소리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몇 백 년, 몇 천 년을 굳게 지킨다면 진리가 되지 않을까요?” 절대 그럴 리 없다. 이런 관점은 마치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했다는 말처럼 황당하다. 전통문화는 영원히 진리가 될 수 없다. 문화는 문화일 뿐이고, 아무리 고상하더라도 그저 패괴된 인류 사이에서 생겨난 일종의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것일 뿐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이라고 해서 진리나 준칙인 것은 아니고, 그저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것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긍정적인 것의 이면에서 전통문화가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이겠느냐, 아니면 부정적이겠느냐? 그것이 인류에게 가져오는 영향은 소극적이고 부정적이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1 무엇이 진리인가> 중에서), 『인류는 이런 전통문화에 의해 영향받고 마비되고 패괴되고 있는데 결국 어떤 결과를 불러오겠느냐? 인류가 전통문화에 의해 미혹되고 속박되고 얽매여 자연스레 학설이나 정신이 만들어지고, 인류는 그것을 창도하고 퍼뜨리고 널리 전파하여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한다. 결국, 그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모두가 이런 사상과 정신을 인정하고 이런 사상에 의해 패괴되도록 한다. 일정한 수준까지 패괴되면 사람은 더 이상 시비를 구별하는 관념을 가지지 않게 되고,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사악함인지 분별하려 하지 않게 되며,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사물인지도 분별하려 하지 않게 된다. 심지어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과연 사람인지 아닌지도 명확히 알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지 못하는 변태적인 사람도 많아진다. 이런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겠느냐? … 사탄의 철학 법칙, 사탄의 사상과 소위 정신이 인류 전체를 다 미혹시키고 패괴시켰다는 것을 증명한다. 미혹과 패괴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느냐? 사람들이 모두 사탄의 황당한 이론과 헛소리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사탄을 받들고 따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나 창조주의 말씀은 알아듣지 못한다. 창조주가 어떤 말씀을 하든,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든, 얼마나 명백하고 실제적으로 말씀하든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고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다. 모두 무감각하고 우둔해졌고 생각과 정신이 다 혼란스러워졌다. 왜 혼란스러워졌겠느냐? 사탄이 교란한 것이다. 사탄이 사람을 철저히 패괴시킨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1 무엇이 진리인가> 중에서) 예전에 저는 오직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같은 말밖에 몰랐습니다. 이런 사탄의 처세 철학은 진리와 상반되는 것이고 정상 인성이 갖춰야 할 것이 아닌데도 보기에 양심과 윤리 도덕에 부합하는 전통 문화 사상, 이를 테면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와 같은 비교적 문명적이고 고상해 보이는 전통 도덕에 대해 분별이 없었습니다. 이런 말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고 전통 관념에서 말하는 좋은 사람이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전통 문화와 사상에 대해 분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사물로 여겨 받들고 실행했습니다. 만약 그것에 반하면 속으로 죄책함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비난과 질타를 받을까 봐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이런 사상 관점의 영향력 아래서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오직 인정만을 따지고, 원칙은 무시하며,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은혜를 베풀면 설령 그가 나쁜 사람, 악인이라 해도, 설령 그를 돕는 것이 악인을 감싸는 것이라 해도, 은혜를 갚아야 하고 도와야 합니다. 겉으로는 양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멍청하고 어리석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속셈과 목적이 있으며 자신의 좋은 이미지와 명성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게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무척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겉치레에 불과할 뿐,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전혀 아닙니다. 이런 사탄의 철학과 도리를 고수하다 보면 우리는 점점 더 교활하고, 간사하고, 이기적이고 사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상하고 정당해 보이는 이런 전통 문화와 속담은 설을 입힌 포탄과 같아서 그럴싸하고 사람의 도덕 윤리에 부합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리와 맞서는 것이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이런 전통 사상에 기대어 살면서 언제나 사람들을 대할 때 양심을 중시하고 은혜에 보답하려고 하면서 정작 선악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지 못하고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많은 진리를 선포하시고, 사람이 실행해야 할 각 방면의 진리를 매우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밝히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따라 처신하고 행동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증거할 수 있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사람과의 육적인 관계만을 지키려 했을 뿐, 진리를 구하지 않고, 교회의 이익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인식하고 나니, 제가 한 모든 행동에 자책감이 들고 후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탄 독소에 기대어 사느라 진리를 어기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너무나 많이 저질렀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께 회개하고, 진리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 후 저는 묵상했습니다. ‘전통 문화와 사상 관점에 따라 사는 것이 진정 좋은 인성이 아니라면 과연 어떤 게 좋은 인성일까?’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정확한 판단 기준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성이 좋다는 것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중용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견지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미움받을 일을 하지 않는 것, 여기저기 비위를 맞추고 능란한 처세술을 보여 주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것, 이런 것은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럼 어떤 기준이겠느냐? 하나님을 대할 때나 진리를 대할 때 순종할 수 있고, 본분이나 각종 사람과 일을 대할 때 모두 원칙이 있어야 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모두가 눈으로 보고 마음속으로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기에 모든 사람의 실제 상황을 알고 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속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성이 좋다고 하면서 다른 이의 험담을 하는 법도 없고, 다른 이의 이익에 손해를 입히지도, 다른 이의 재물을 탐하지도 않는다고 내세운다. 심지어 이해 갈등이 생길 때면 자신이 손해를 보면 봤지 남에게서 이득을 챙기지 않아, 모두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리며, 늘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해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지 않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분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버린 적이 없고 심지어는 악인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도 폭로하지 않으며, 어떤 원칙도 없다. 이는 어떤 인성이냐? 이는 인성이 좋은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그가 살아 내는 것과 드러내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가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그의 내적 상태는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만약 그가 자신의 명리를 위하는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뛰어넘고, 하나님 집의 이익과 하나님을 헤아리는 마음을 능가한다면, 이런 사람이 인성을 지닌 사람이겠느냐? 이는 인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저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진정으로 인성이 좋은 사람은 중용의 길을 걸으며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누구나 옹호하고 찬성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보다는 진리를 좋아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는 사람, 본분 이행에 책임을 다하고, 진리 원칙을 고수하고, 교회 사역을 지키는 사람이 진정으로 좋은 사람입니다. 만약 사람들과의 관계, 자신의 명예와 이익만을 지키며 사람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더라도, 본분 이행에서 하나님께 충실하지 않으며 교회 사역을 해치는 대가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려 한다면, 그런 사람은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합니다. 표면적인 행위가 아무리 사람의 윤리 도덕에 부합한다고 해도, 그것은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고, 진리에 맞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이런 전통 문화와 사상 관점을 따르며 저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위장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점점 이기적이고, 간사하고, 사악해졌습니다. 제가 한 일들은 모두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보호하고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어떻게 사람다운 모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살아 낸 것은 온통 마귀의 성질이었습니다. 과거에 저는 다른 사람에게 인성이 있느냐를 평가할 때는 늘 관념과 상상을 따랐습니다. 이는 전혀 진리에 부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인간의 기준에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이후 며칠은 어떻게 하면 진리 원칙에 맞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실천할 수 있을지 묵상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와 다른 이의 관계는 육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기초 위에서 맺어진 것으로, 육적인 왕래는 거의 없으나 영적으로 교제하고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공급하게 된다. 이 모든 행함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초 위에서 이뤄지며, 사람의 처세 철학으로 유지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부담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또한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 없이 하나님 말씀의 원칙에 따라 실행하면 된다. … 사람 간의 정상적인 관계는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한 것을 기초로 이뤄지는 것이지, 사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육적인 관계만 있을 뿐인데, 이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이것은 모두 정욕의 방종으로, 하나님이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을 대하고 하나님 사랑을 기반으로 형제자매들과 지내면서 진리와 생명에 관계된 일에서 서로 돕고 붙들어주어야 하고, 육적인 처세 철학을 따르지 말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류잉 자매는 예전에 저를 도와준 적이 있으나 이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하심이니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인식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공로를 자매 개인에게 돌리고 언제나 그녀에게 고마워했습니다. 자매와의 관계가 모두 육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고, 행동과 처신이 전혀 하나님 뜻에 부합하지 않고 아무런 원칙이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형제자매가 실패나 좌절에 직면하고 소극적인 상태나 나약함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말을 교제하며 돕고 붙들어주는 것은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 것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일관되게 본분을 건성으로 무책임하게 수행하고, 심지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사람은 제제해야 하고, 폭로하고 책망하거나 교체해야 합니다. 감정에 이끌려 이들을 두둔하고 감싸면 안 됩니다. 정과 의를 베풀더라도 원칙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류잉 자매는 교체된 후에도 본분 이행에 무책임하고 태만하게 임하며 자신의 문제에 대해 진정한 인식도 없었습니다. 제가 하나님 말씀에 빗대어 그녀의 태도와 문제의 성질을 교제하고 해부함으로써 그녀가 스스로를 잘 돌아보고, 또 회개하고 변화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녀에게 사랑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고, 교회 사역에도 유익이 됩니다. 여기까지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이 한순간 편안해졌습니다. 더 이상 사람과의 사이에서 육적인 관계를 지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류잉 자매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와 여러 행동을 폭로하고 그녀의 본분을 조정했습니다. 교제를 마치고 제 마음은 편안해졌습니다. 류잉 자매 역시 저를 미워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였습니다. 자매는 이번에 이렇게 교체되고 폭로되지 않았다면 아직도 자신이 이렇게 하면 방해와 교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이번 처분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자매의 말에 저는 속으로 오직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야 사람이 참된 유익과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또한 꽤 문명적이고 고상해 보이는 전통 문화는 설령 아무리 많은 사람이 치켜세우고 추앙한다 해도 진리가 아니며, 모두 치우친 것이고 사악한 것이어서 남을 속이고 자신을 해칠 뿐이란 것을 진정으로 깨달았습니다. 오직 진리만이 우리의 처신과 행동의 준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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