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정직한 사람이 되어 거둔 수확
어느 날 예배 후 리더가 제 담당 교회의 새 신자 양육 효과가 어떤지 물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요 며칠 그 교회 사역 체크를 제대로 못 해서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데, 어떻게 말해야 하나? 모른다고 했다가 리더나 다른 사역자들한테 실제 사역을 안 했다는 말을 들으면 무슨 망신이야! 그러지 말고 아는 데까지만 얘기해야겠다. 우선 이번은 어떻게든 넘겨야지.’ 저는 얼른 대답했습니다. “그쪽 사역은 안배도 다 했고, 인원도 추가했어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리더가 말했습니다.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닌데,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는군요. 그건 간사한 행동이에요. 잘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고 그다음에 얼른 확인하면 되는 건데, 왜 그렇게 빙빙 돌려서 말해요? 그러면 안 되죠.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인정할 줄 알아야죠!” 그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얼굴이 다 화끈거렸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완전 체면 구겼네. 모두에게 밑바닥을 내보이고 말았으니.’ 사실 리더 말에 일리가 있었지만 순종하기가 싫었습니다. ‘적당히 좀 하지. 나중에 내가 가서 하면 되잖아? 꼭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나무라야 하나?’ 마음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런 상황이 생기니 자꾸 반감이 생기고 순종하기가 힘듭니다. 스스로를 인식하고 공과를 배울 수 있게 깨우침과 빛 비춤을 주십시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 사탄에게 어떤 질문을 했는지 살펴보자. “네가 어디서 왔느냐”라는 말씀은 직설적이지 않으냐? 숨겨진 다른 뜻이 있느냐? 어떤 숨김도 없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이다. 만약 내가 너희에게 “네가 어디서 왔느냐?”라고 물으면 너희는 어떻게 답할 것이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냐? 너희는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다고 답할 것이냐? (아닙니다.) 너희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물음에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사탄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느냐? (참 터무니없고 간사하다고 느껴집니다.) 나는 어떻게 느꼈는지 아느냐? 나는 이 구절을 볼 때마다 혐오감이 든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을 한 것이냐? 이 말은 대답이 아니다. 결과가 없다. 하나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이 구절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사탄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너희는 그 답을 얻었느냐? (얻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사탄 간계의 ‘교묘함’이다. 그 누구도 사탄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길이 없다. 다 듣고 나서도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는데, 사탄은 대답을 끝내고 스스로 훌륭하게 답했다고 여긴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혐오스럽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제 이 말을 혐오하게 되었구나. 사탄은 말할 때 하나의 특징이 있다. 사탄이 한 말은 상대가 갈피를 못 잡고 영문을 모르게 만든다. 어떨 때는 속셈을 갖고 일부러 말하는 것이고, 어떨 때는 사탄이 자신의 본성에 지배받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드러내게 되는데, 입을 열면 그런 식으로 말이 나온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아예 생각할 필요도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것은 이런 허튼소리로 대답하여 어디서 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게 만든다. 너희 중에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느냐? 어떤 식으로 말하는 것이냐? (불분명하고 모호하게 말하며 정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이런 대화법을 어떤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 ‘성동격서’(聲東擊西)와 ‘진위를 구분 못 하게 한다’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자신이 어제 무엇을 했는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을 때, 네가 그에게 “어제 어디 갔었어요? 어제 당신을 봤는데요.”라고 물으면, 그는 어디에 갔는지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어제요, 하루 종일 정말 피곤했어요!”라고 할 것이다. 그가 너의 말에 대답을 했느냐? 대답은 했다. 하지만 원하는 답을 주지는 않았다. 이것이 바로 화법의 ‘교묘함’이다. 너는 늘 그의 뜻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으며, 그가 하는 말의 근원과 속셈을 알 수 없다. 또한 그가 무엇을 피하려는 건지 알 수 없다.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음험하다고 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4>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사탄의 말과 행동에는 속셈과 간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떳떳하지 못한 목적을 감추기 위해 말을 에둘러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아주 음험하고 간사하죠. 사탄은 하나님이 물으시는 말에 애매모호하게 답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겨워하고 증오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 그 교회의 새 신자 양육 상황을 잘 모르면서도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고 동문서답식 답변으로 리더에게 혼란을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질문에 답변은 했지만 리더가 사정을 파악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 체면과 지위 때문에 실제 사역을 하지 않은 사실을 리더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또 자리에 있던 형제자매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대놓고 헷갈리는 말을 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기만했습니다. 제가 드러낸 것은 사탄의 성품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평소 형제자매들과 지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간혹 누가 업무 관련해서 물어볼 때 저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대로 말하면 상대가 얕잡아 볼까 봐 이렇게 반응하곤 했습니다. “그 부분이 해결이 안 된 건 단순히 업무 문제만이 아니에요.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닌가요? 아니면 충분히 공부하고 교류하지 않았던가요.” 얼핏 보면 제가 형제자매들 질문에 대답한 것 같지만 사실 그런 식의 대답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님을 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질문했던 형제자매는 제가 이렇게 반문하면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저를 붙잡고 질문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 결점도 드러나지 않았고요. 제가 항상 간사한 행동으로 남들을 기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체면과 지위 때문이었습니다. 차라리 거짓말을 할지언정 체면을 구길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제 교활하고 간사한 본성, 진리를 싫어하는 본성을 완전히 드러내는 일입니다. 거짓말하고 속이면서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모두를 속이고 기만해서 다들 제가 사역도 할 줄 알고 본분도 잘 이행한다며 우러러본다고 한들, 하나님이 저를 인정하지 않고 증오하신다면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 순간 저 자신이 아주 빈곤하고 가련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루 종일 바쁘게 뛰어다니기만 했지 결국 솔직한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고, 간사한 성품 역시 그대로이고, 진리 실제도 전혀 없어. 오늘 이렇게 엄한 책망과 훈계를 받게 된 것이 나를 일깨우고 경고해 준 것이구나!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 하나님께 회개하자.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직한 사람의 실제를 살아 내야 해.’
그 후 저는 평소 제 정직하지 않은 모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 보고, 이를 성찰하고, 돌이키고, 달라지기로 결심했습니다. 반성하는 동안, 최근에 제가 사역을 정리하면서도 간사하게 행동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비교적 꼼꼼하고 완벽하게 처리한 사역은 자세히 기록하고, 대충 처리하거나 별로 효율적이지 않았던 사역은 대략적으로만 적거나 해당 사역의 진행 상황을 아예 기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효과가 별로인 사역이 하나 있었는데, 사역을 결산할 때가 되자 고민이 되었습니다. ‘사실대로 적으면 다들 날 어떻게 볼까? 내가 이만한 일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다고, 사역 능력도 없다고 하지 않을까?’ 이것저것 따져 본 다음, 해당 사역 진행 상황은 적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모를 테고, 어쩌면 제가 너무 바빠서 기록하는 것을 깜빡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꾸만 위장하고 기만하다니 저는 너무 간사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하나님을 믿는 동안 많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그만큼 수고하고 대가도 치렀지만 진리를 실행하기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체면과 지위만 생각하느라 결국 지금까지도 말과 행동에서 정직한 사람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용기조차 갖추지 못했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가련했어요! 가끔 스스로에게 묻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그토록 많은 말씀을 나도 꽤 보고 읽었는데, 과연 어떤 말씀의 실제를 살아 냈지? 사역을 사실 그대로 결산하는 것도 못 하는데, 끝까지 따른다고 한들 이런 식이면 도대체 뭘 얻을 수 있을까?’ 저는 이미 스스로가 위험한 지경에 다다랐다고 느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언제든 하나님께 도태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 깊이 패괴되었습니다. 체면과 지위를 지키려고 항상 거짓말로 남을 속였습니다. 제가 진실되게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도록 깨우치고 빛 비춰 주십시오.’
그런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리더 일꾼인 너희들은 하나님 집에서 너희 사역을 알아보거나 감독할까 봐 두려우냐? 하나님 집에서 너희 사역의 허점과 오류를 발견하고 너희를 책망할까 봐 두려우냐? 상부에서 너희의 실제 자질과 실제 분량을 파악한 후 너희를 달리 보고 발탁하지 않을까 봐 두려우냐? 만약 네게 이런 두려움이 있다면, 이는 너의 속셈이 교회 사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명예와 지위를 위해 사역하는 것임을 의미이며, 너에게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있다는 의미이다.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있으면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을 수 있고, 적그리스도가 행하는 모든 악을 너 역시 행할 수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 집의 감독 사역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부에서 어떻게 물어보고 알아보든 숨기는 것 없이 아는 그대로 착실하게 보고할 수 있다면, 네가 한 말이 옳든 옳지 않든, 네가 어떤 패괴를 드러냈든, 설령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냈을지라도 너를 적그리스도라고 규정짓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네가 자신의 적그리스도 성품을 인식하는지, 진리를 구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있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적그리스도 성품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고, 문제가 발생하면 덮고 속이면서 책임을 미루려고 하며, 책망과 훈계가 임했을 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런 사람은 적그리스도와 다를 바가 없다. 어째서 네게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직면하지 못하는 것이냐? 어째서 참된 마음으로 대하면서 “상부에서 제 사역에 관해 물어보면 아는 만큼 대답하겠습니다. 설령 제가 저지른 잘못이 탄로 나 상부에서 더 이상 저를 쓰지 않는다고 해도, 지위를 잃게 된다고 해도 저는 이 일에 대해 분명히 말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냐? 하나님 집에서 네 사역을 감독하고 알아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네가 진리보다 지위를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성품 아니겠느냐? 그 무엇보다 지위를 소중히 여기는 것,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다. 너는 왜 그렇게 지위를 소중히 여기느냐? 지위가 네게 어떤 이점들을 가져다주느냐? 만약 지위가 네게 재앙과 어려움, 난감함과 고통을 가져다준다면 지위를 소중히 여기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지위가 가져다주는 이점은 매우 많다. 다른 이의 선망과 존경, 우러름, 아첨, 감탄과 경모의 눈빛 그리고 지위가 가져다주는 우월감과 우선권 등은 네 체면을 세워 주고 몸값을 높여 준다. 이 밖에도 다른 이들이 누리지 못하는 지위의 복과 특별 대우를 누릴 수 있는 것 등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네가 감히 상상조차 못 하고 꿈에 그리던 것들이다. 너는 이러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냐? 만약 실속 없는 지위라면, 어떤 실제적인 의미도 없고 그 지위를 지켜 봤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면, 이런 상황에서 지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어리석지 않겠느냐? 네가 육적인 이익과 누림 같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명리와 지위는 너를 옭아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위를 소중히 여기고 추구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무엇을 해결해야겠느냐? 먼저 지위의 복을 누리기 위해 악을 행하고 기만행위를 하며, 속이고 숨기고 하나님 집의 감독과 관여, 추궁을 거부하는 것이 어떤 성질의 문제인지 파악해야 한다. 이는 공공연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하는 행위가 아니냐? 지위의 복을 탐하는 것의 성질과 결과를 파악한다면 지위를 추구하는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지위의 복을 탐하는 것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자신에게 순종하도록 한다(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제가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로 남을 속일 수 있었던 이유가 체면과 지위를 너무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명예와 지위를 위해, 제가 사역 상황을 체크하지 못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잔꾀로 수작을 부리고, 얼렁뚱땅 넘겨서 남을 속이려 했습니다. 남들한테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리더인 것처럼 보이려고 사역을 결산할 때 저의 결점을 감추고, 잘한 것만 내세우고 그렇지 않은 것은 숨기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제 진짜 모습을 알면 더 이상 저를 우러러봐 주지 않고, 그러면 지위가 주는 우월감을 더는 누릴 수 없을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지위를 소중히 여기는 것,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출교된 적그리스도들을 떠올려 보니 다들 본분을 이행할 때 명예와 지위만 추구하느라 몰래 수를 써서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그 결과 교회 사역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교란한 것이 드러나 출교된 것입니다. 또 지위의 복을 탐한 일부 거짓 리더들은 본분을 이행할 때 수단을 써서 자신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은 상황을 감추어 결국 교회 사역에 지장을 초래했습니다. 복음 사역을 담당했던 어느 자매도 당시 다른 사역을 동시에 담당하면서 잔꾀를 부려 양쪽 모두를 속였습니다. 이쪽에는 다른 본분 때문에 바쁘다고 하고, 또 저쪽에는 복음 사역 때문에 바쁘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양쪽 사역을 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매는 나중에 드러나 도태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실패의 교훈이 모두 나한테는 경각심을 주는 일이 아닐까? 내가 계속 내 명예와 지위를 위해 수작을 부리고 남을 속인다면, 그건 남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속이는 바보 같은 짓이야. 하나님은 모든 걸 감찰하시는 분이고,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셔. 하나님 집에는 정직한 사람만이 굳게 설 수 있어. 간사한 사람은 언젠가는 드러나 도태되고 말지. 그런데 난 하나님을 믿으면서 정직한 사람이 될 생각은 하지 않고 위장하기만 하고, 남한테 거짓된 모습만 보였어. 몇몇 사람들을 속였지만 하나님의 감찰에서 벗어날 수 없어. 결국에는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되지 않겠어?’ 그 순간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요구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고, 범사에 하나님 감찰을 받아들여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늘 마음속에 있는 말, 솔직한 말, 숨김이 없는 말을 하고 진솔하게 행동하며, 본분을 이행할 때도 건성으로 임하는 법이 없다면, 진리를 깨닫고 실행할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진리를 얻을 희망이 있다. 어떤 사람이 늘 자신의 마음을 포장하고 감추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다 그를 종잡을 수 없게 한다면, 또한 거짓된 모습으로 남들을 속인다면, 몹시 위험하며 문제가 되고 진리를 얻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한 사람의 일상생활과 언행을 보면 그의 앞날이 어떨지를 알 수 있다. 만약 언제나 꾸미고 거드름을 피운다면, 그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니 언젠가 드러나고 도태될 것이다. … 사람이 항상 마음을 열지 않고 감추거나 숨기며, 착실한 척하고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으려 든다면, 또 남들이 꿰뚫어 볼 수 없고 다 그를 탄복하게 한다면, 이런 사람은 매우 어리석지 않으냐? 이런 사람은 누구보다 어리석다! 사람의 진면모는 언젠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살아간다면 걷는 길이 어떤 길이겠느냐? 바로 바리새인의 길이다. 외식하는 사람은 위험하지 않겠느냐? 이런 자는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말해 보아라. 이런 자가 위험하지 않겠느냐? 바리새인에 속하는 자가 걷는 길은 다 멸망의 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매사에 늘 감추고, 숨기고, 꾸미는 것은 잘못된 길입니다. 끝까지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멸망될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지금부터 성품 변화를 추구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고 하나님께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의 모든 행동, 일거수일투족, 모든 마음가짐과 반응 하나까지도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평소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형제자매들과 교제하고, 교회 생활을 하는 등의 영 생활, 나아가 협력하며 섬기는 일까지 모두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실행해야 너의 생명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된다. 하나님의 감찰을 받는 과정은 사람이 정결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수록 너는 더 정결케 되고 하나님의 뜻에 더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방종함에 빠지지 않고 마음을 항상 하나님 앞에 두고 살 수 있다. 또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수록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 있고 육을 저버릴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감찰을 받는 것은 사람이 실행해야 할 길이라고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맞는 사람을 온전케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실행 길을 찾았습니다. 바로 하나님 감찰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수작을 부리고 남을 속이려 드는 그런 속셈과 생각은 하나님 감찰을 받아들여야 쉽게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도 점점 단순하고 정직해지고, 쉽게 진리를 실행하고 자기 본분을 이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스스로를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 범사에 하나님 감찰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역을 결산할 때가 되면 정직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 감찰을 받아들이자고, 다 끝내지 못한 일도 사실대로 기록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리더가 사역 상황을 다시 알아볼 때, 저는 의식적으로 사실대로 말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다른 형제자매들이 잘 모르는 사안에 대해 물어볼 때도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고 나니 마음이 아주 편안했습니다. 저는 의식적으로 하나님 감찰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고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책망과 훈계가 아니었더라면 제 패괴 성품을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실제에 진입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아무리 하나님을 오래 믿고, 본분을 많이 이행하고, 수고를 많이 했더라도 패괴 성품이 전혀 변화되지 않아서 끝까지 하나님을 믿더라도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께 틀림없이 도태될 것입니다.
이번 책망과 훈계를 계기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제 교활하고 간사한 사탄 성품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