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다
저는 2019년 9월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나중에는 예배팀 팀장으로 선출됐는데, 형제자매들은 제가 이해도 빠르고 자질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얼마 안 있어 또다시 복음 집사로 뽑히자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복음도 전하고 예배도 진행하면서 매일 바쁘게 지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제 교제를 듣기 좋아했고, 교회 리더도 제가 일을 잘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무척 기분이 좋았고, 제 자질이 확실히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의 우러름을 받으려고 하나님 말씀도 더 많이 읽고, 하나님 집 영화와 하나님 말씀 낭송 영상도 많이 봤습니다. 그렇지만 글귀와 도리를 이해해서 자신을 자랑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하나님 뜻을 깨닫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배 때는 가급적 두루두루 꼼꼼히 교제해서 다들 제가 많이 안다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설령 잘 모르는 내용도 교제해 가며 무엇이든 다 아는 척했습니다. 리더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아주 강한 척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하나님 사역에 대해 관념이 있었지만 그 사실을 말했다가는 리더가 제가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고 생각할까 봐 리더가 알지 못하게 일부러 제 관념을 숨겼습니다.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인 것은 죄다 거짓 이미지였던 것입니다.
몇 개월 뒤에 저는 교회 리더로 선출되어 복음 사역을 주로 담당하게 됐습니다. 이 사역을 감당하려면 자질도 있어야 하고, 분별력과 사역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교회에서 저 말고는 그런 조건을 가진 사람이 없었고, 제가 이 본분을 맡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선출됐기 때문에 저는 자신을 남들과 다른 사람, 교회에서 가장 열심히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좋아하고 눈여겨보시는 사람, 교회에서 특별한 사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복음 사역을 담당한 것을 가지고 마치 교회 대문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도 되는 양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제가 결정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교만해져서 저를 남들보다 높은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고 형제자매들은 그 명령을 집행하는 사람, 내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 사역에서도 늘 제가 결정하고 제 마음대로 했습니다. 제가 사역 능력이 있고, 원칙을 잘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 생각이나 의견은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형제자매들을 존중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평범한 자질로 팀장을 하는 자매를 우습게 여긴 나머지 자매의 본분 이행 효과는 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교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을 제 아래로 보고 함부로 꾸짖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의 실행법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자매가 있었는데,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원칙도 교제해 주지 않고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결국, 소극적으로 변한 자매가 저와 협력하지 않으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예배 시간에 리더가 사람들에게 어려운 점이 없는지 물어보는 자리에서 그 자매가 직접 말했습니다. “플라비엔 형제님이 문제 좀 있는 것 같아요. 진리도 교제하지 않으면서 꾸짖기만 하고, 매번 저를 너무 심하게 꾸짖었어요.” 여러 형제자매도 나서서 제가 함부로 사람들을 꾸짖는다고 성토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제 교만한 태도를 폭로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교만하고 사람들을 속박한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형제자매 중에는 제가 사역을 점검할 때 너무 호되게 몰아붙인다면서 문자를 보내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형제님,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좋지 않아요. 형제자매들을 소극적으로 만들 거예요.” 형제자매들은 또 제가 말할 때 너무 권위적이고 저 자신을 형제자매들과 동등한 위치에 놓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저에게 타격을 받아서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여러 번 지탄을 받고 책망을 받다 보니 콧대 높았던 저는 자존심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저를 좋아하시고 눈여겨보신다고 생각했었는데, 사람들이 저를 폭로하고 버리는 것을 보고 저는 기가 죽고,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추구할 동력도 잃어버려서 본분도 형식적으로만 이행했습니다. 또 형제자매들의 사역도 체크하지 않고, 그들의 어려운 점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소홀히 하며,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한 자매가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보내 주었는데, 제 내적 상태에 딱 들어맞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류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사람의 본성은 변질하기 시작하여 사람은 점차 정상인의 이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더는 사람의 위치에 서서 사람이 되려 하지 않고, 야심으로 가득 차 사람의 자리를 넘어섰으며, 그럼에도 더 높이 넘어서려고 한다. 더 높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겠느냐? 바로 하나님을 넘어서고, 하늘을 넘어서고, 모든 것을 넘어서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이런 성품을 드러낼 수 있는 근원은 무엇이겠느냐? 결국, 사람의 본성이 너무 교만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교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다. ‘교만’, 이 단어에는 부정적인 어감이 있다. 누가 교만함을 드러낸다면 사람들은 그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며, 극도로 교만한 자를 본다면 분명 악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누구도 이 단어가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사실상 사람은 모두 교만하고, 패괴된 인류는 누구나 이러한 본질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조금도 교만하지 않습니다. 저는 천사장이 되려고 한 적 없고, 하나님을 뛰어넘으려는 생각이나 모든 것을 뛰어넘으려는 생각도 해 본 적 없습니다. 지금까지 아주 성실하고, 분수를 지키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이 말은 틀렸다. 사람은 교만한 본성, 교만한 본질을 갖고 있으니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생기며,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또한, 자신을 높이거나 증거하는 일도 저지를 수 있다. 너는 자신이 교만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만약 너에게 교회 하나를 맡겨 혼자 이끌게 한 다음, 내가 너를 훈계하지 않고 하나님 집에서도 너를 지적하거나 도와주는 자가 없다면, 너는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는 사람들을 너의 발밑으로 데려와 너에게 순종하게 할 것이다. 심지어 너를 우러러보고 앙망하게 할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본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순전히 자연적으로 유로하는 것이다. 너는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필요도 없고, 또 다른 사람이 일부러 너에게 가르쳐 줄 필요도 없으며, 너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고 통제할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상황이 형성되는데, 네가 하는 모든 것은 사람들이 너를 높이고 칭찬하고 숭배하고, 너에게 순종하게 하고, 모든 일에서 너의 말을 듣게 하는 것이다. 너에게 리더가 되게 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국면이 만들어져 바꿔 보려고 해도 안 된다. 그런 국면은 왜 형성되는 것이냐? 바로 사람의 교만한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 교만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교만하고 잘난 체하거나 독선적인 사람은 독립 왕국을 세우고, 자신의 방식대로 행하며, 다른 사람들을 자기 손안으로, 자기 품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사람이 그런 교만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데, 그런 교만한 본성의 본질이 곧 사탄의 것이고 천사장의 것임을 의미한다. 사람의 교만함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어진다. 하나님을 한쪽에 제쳐 두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모두가 자기 말을 듣게 하려고 한다. 그러면 천사장이 되는 것이다. 너에게 그런 사탄의 교만한 본성이 있으면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는 없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너를 악인으로 여겨 내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교만한 본성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제가 그동안 걸어온 모습을 돌이켜 봤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 자질도 훌륭하고 교제도 잘한다면서 모두에게 칭찬받고 격려받았습니다. 거기다 몇 번이나 발탁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 저를 특별한 사람, 다른 형제자매들보다 뛰어나고 남을 관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교만하고 방자한 본성과 지위를 추구하는 야심은 스스로에 대해 착각하도록 저를 부추겼습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눈여겨보시는 사람, 남들과는 다른 독보적인 사람이라고요. 자신을 이렇게 바라보면서 저는 사람들을 꾸짖고 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형제자매들을 통제해서 다들 제 말을 듣게 하였습니다. 바로 천사장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했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책망받고 버림받고 나서야 제가 생각만큼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아주 대단하고, 하나님께서도 저를 눈여겨보신다는 것은 다 제 상상이었습니다.
며칠 후 저는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해부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지위를 얻고 자신의 야심을 채우고 교회를 통제하고 하나님이 되겠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어떤 대가도 치른다. 밤을 지새우고 꼭두새벽에 일어나길 밥 먹듯 하며 온갖 노력을 기울여 밤낮없이 설교 연습을 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말한 훌륭한 부분을 기록하는데, 바로 도리로 무장해 심오한 설교를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날마다 어떻게 심오한 설교를 할지를 고민하는데, 어떤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 선민의 탄복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데에 가장 유용하면 그런 하나님 말씀을 선택해 외운다. 그런 다음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해석해야 자신의 고명함과 높은 수준을 보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그는 몇 번이고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 학생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듯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누군가 설교를 잘한다 하면 어떤 빛 비춤을 설교하며 어떤 이론을 설교하는지 그들은 모두 수집하고 정리해 자신의 설교로 바꿔 버린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노력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렇게 노력하는 이면에는 어떤 속셈과 동기가 있는 것이냐?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줄줄 외우고 자유자재로 응용하여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영적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히 여기며,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보이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사람들 가운데서 일부 사람들의 우러름과 숭배를 받을 수 있다.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며 어떤 고생을 한다 해도 다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0조(7)> 중에서), 『적그리스도 부류의 행위의 본질은 바로 끊임없이 갖가지 수법과 방식으로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시키고, 다른 이들을 미혹하고 우롱하며,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사람들이 그들을 따르고 숭배하게 하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 인류를 두고 하나님과 다투려는 의도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바로 그들이 인류를 두고 하나님과 다투지 않더라도, 사람들 가운데서 지위와 권세를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설령 어느 날 자신들이 지위를 두고 하나님과 다투고 있음을 의식하고는 조금 삼갈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명예와 지위를 추구할 것이다. 일부 사람만 찬성하고 고개 숙여도 당당하게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요컨대, 적그리스도가 하는 모든 행동은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과적으로 사람을 미혹해서 자기를 숭배하고 따르게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이다. 사람을 통제하고, 교회에서 지위와 권력을 차지하려는 그들의 야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바로 영락없는 적그리스도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5조 사람을 미혹하고 회유하고 위협하고 통제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 적그리스도는 남에게 칭찬받고 숭배받기 위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수고를 통해 거짓 이미지를 심어 주고 사람을 미혹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바로 그러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껏 명예와 이익, 지위를 추구하느라 오로지 남들의 우러름을 받기 위해서만 행동했습니다. 많은 시간 하나님 말씀을 읽고, 심지어 한밤중까지 깨어 있었던 목적은 바로 도리를 많이 이해해서 자신을 과시하고 또 남들에게서 높은 평가와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폭로한 이런 모습들을 저는 모두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하나님께 이미 정죄되어 곧 도태될 것만 같아서 속이 바싹 타들어 갔습니다. 그렇지만 적그리스도로 분류되어 출교될까 봐 형제자매들에게 제 진실한 내적 상태를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 앞에서는 애써 근심을 감췄지만,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것처럼 마음은 극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마침 그 시기에 적그리스도 한 명이 드러나 출교되었습니다. 그 적그리스도는 표면적으로는 자신을 바치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 말씀을 찾아 형제자매들에게 교제해 주었지만, 정작 본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을 만나면 소극적인 것을 퍼뜨렸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부인하며 참도를 알아보려는 사람들을 교란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저에게도 그와 같은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저 역시 자주 하나님 말씀을 찾아 형제자매들에게 교제해 주지만 저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하나님 뜻을 구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데 신경 쓰기보다는 자신의 총명함에 의지해서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폭로한 적그리스도의 모습들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도 적그리스도가 돼서 출교당할까 봐 몹시 두려웠습니다. 제가 본성이 좋지 않아서 쉽게 형제자매들을 미혹하고 통제하다가 언젠가는 그 적그리스도처럼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니까 공포감이 더욱 커졌습니다. 복받을 희망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원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 반대도 무릅쓰고 계속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분을 이행하고, 내 미래도 포기하고, 집 떠나 외지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이렇게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데 결국 지옥에 떨어져 벌받는구나. 이런 결말일 줄 진작 알았으면 이렇게 헌신하고 애쓰지나 말걸. 그랬으면 적어도 죽기 전에 육의 즐거움이라도 누릴 수 있잖아.’ 당시 저는 오로지 자신의 종착지만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하나님을 경계하고 오해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런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다가는 반드시 드러나고 출교되겠다 싶어서 리더 직위를 사직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저의 본모습을 알면 비난받고 책망받을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형제자매들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도 없었고, 더 이상 협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형제자매들과는 아주 멀어졌습니다. 그 후 저는 고향에 돌아가 복음을 전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가족에게 핍박받고 저지당하면서 더욱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비록 여전히 예배에는 나갔지만, 형식적으로만 참석할 뿐 마음은 아주 나약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갈 데까지 갔다는 생각에 결국 교회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교회를 떠나자 무척 허전했습니다. 온종일 방에 틀어박힌 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족들도 더 이상 핍박하지 않고, 몸도 아주 편안했지만 마음은 근심으로 가득하고 가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해서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걱정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지옥도 무섭고 죽는 것도 무서웠습니다. 이런 우려를 극복해 보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회 과학 분야 책도 많이 보면서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들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시달림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 찬양을 듣고 말씀을 읽었는데, 하나님 말씀이 제 양심을 두드리며 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있어 자주 패괴 성품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또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다. 한동안 지나면 그에게서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자는 구원받을 수 있는 대상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4조 자신을 높이고 증거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면 사람의 패괴된 내적 상태를 드러내고 정죄하는 말씀을 보고 자주 관념과 오해가 생겨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겨냥한 거라고, 하나님은 자신을 포기하고 구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소극적으로 변해 대성통곡을 하면서 더는 하나님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이는 하나님을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면 하나님을 규정하지 마라. 너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포기하는지 모르며,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서 사람을 포기하고 또 어떤 상황에서 사람을 한쪽에 내버려 두는지 알지 못한다. 여기에는 전부 원칙과 배경이 있다. 너는 이 세부적인 일에 관해 밝히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예민해져서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로 자신을 규정짓는다. 이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할 때 주로 사람의 어떤 면을 정죄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고 드러내는 것은 사람의 패괴 성품과 패괴 본질이다. 하나님이 정죄하는 것은 사람의 사탄 성품과 사탄 본성이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다양한 태도와 행동이다. 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자신만의 속셈과 목적을 품고 있는 것을 정죄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죄가 사탄 성품이 있는 사람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점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깨닫는 능력이 없는 것이고, 정신병자와 다름없는 사람이니, 늘 이것저것 의심하며 하나님을 오해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사람을 정죄하는 말씀을 듣고는 하나님은 사람을 포기했다고, 구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로 인해 소극적으로 변해 자포자기하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자신을 포기한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포기한 것은 무엇보다 치명적이다. 이는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잠 10:21)라는 구약 성경의 구절이 이루어진 것이다. 자포자기는 가장 어리석은 행위이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규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 그건 어떤 한 사람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견해를 선포한 것이다. 이는 전부 진리와 원칙에 속하는 말씀이지, 어떤 한 사람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이 화를 내고 분노할 때 한 말씀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한다. 이 말씀은 곧 진리이며, 나아가 원칙에 속한다. 사람은 이것을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한 목적은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원칙을 알게 하기 위함이지, 절대 어떤 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최후의 종착지나 상과 무관하며, 최후에 내리는 벌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단지 심판하거나 책망하는 말씀이고,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말씀이고, 사람을 깨우치고 지적하는 말씀이다. 또, 하나님의 마음속 말씀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심판의 말씀 한마디에 쓰러지거나 하나님을 저버리기도 한다. 이런 자는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고 말도 안 통하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 하나님은 가끔 사람을 멀리하기도 하고, 반성하라는 의미에서 한동안 방임하기도 하지만, 이는 사람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이지 결코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악인이나 불신파, 적그리스도를 포기한다. 어떤 사람은 “저에게 성령 역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성령의 깨우침이 없는데, 혹시 하나님께서 저를 포기하신 것은 아닙니까?”라고 한다. 이는 착각으로, 여기에서도 성품의 문제가 드러난다. 또한, 이것은 억지다. 늘 자신만의 이치를 따지고 난폭하게 굴며 조금의 이성도 없는 것이다. 이는 성품 문제 아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너를 포기했다고, 너를 구원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네 결말을 규정했더냐? 하나님은 그저 네게 화가 나서 한마디 했을 뿐이다. 그런데 너는 왜 하나님이 너를 포기하고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냐? 네가 가끔 성령의 역사를 느낄 수 없어도 하나님은 말씀을 읽을 권리를 박탈하지 않았고, 네 결말을 정하지 않았으며, 네가 구원받는 길도 막지 않았다. 그런데 괴로울 게 뭐가 있느냐? 자신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고 마음가짐과 생각, 관점에 문제 있으며 마음 상태가 비뚤어졌는데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는 않고 늘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책임을 다 하나님께 미룬다. 나아가 “하나님이 저를 원하지 않으시면, 저도 하나님을 믿지 않겠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억지를 부리는 것 아니냐? 공연한 트집을 잡는 것 아니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관념을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1)>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 내면에 적중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버리거나 정죄하신 것도 아니고, 제 결말을 정하신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실, 제가 사탄에 의해 어느 정도 패괴되었는지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적당한 때에 형제자매들이 저를 드러내도록 허락하셨고, 또 말씀으로 제 패괴 성품과 제가 걷고 있는 잘못된 길을 폭로하셨습니다. 그래야 제가 자신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달라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 훈계, 책망은 모두 저를 정죄하고 도태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자신을 진정으로 인식하고 진실로 회개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기만의 편견과 관념에 사로잡혀 하나님 뜻을 곡해했습니다. 제게 적그리스도의 모습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저를 원하지 않으시고, 제 운명은 분명 멸망된 사람들과 같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는 사람이 교회에 머물러 있으면 언젠가는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 눈에는 제 모든 행동이 정상이었습니다. 제게 적그리스도의 모습과 성품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적그리스도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태시키고 징벌하시는 대상은 적그리스도 본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본성 본질이 사악해서 진리를 싫어하고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나쁜 짓을 저질러도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명망과 지위를 지킬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래도 자신이 너무 깊이 패괴되었음을 의식할 수 있고, 또 제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회개의 기회가 있습니다. 단지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있을 뿐,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미워하는 적그리스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패괴 표출을 근거로 저를 정죄하신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저를 구원하려 하시며 제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 속에 살면서 하나님이 저를 도태시키시려는 줄 알고 직위를 사직하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교회에 남아 있으면 계속 교회 사역을 방해해 더 무거운 벌을 받게 될까 걱정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원하시지 않는 이상 어떤 노력도 물거품이 될 터이고, 이 세상에서 육의 쾌락을 누리지 못한다면 제겐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제가 한 행동을 돌이켜 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평생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데도 막상 심판과 폭로가 임하게 되자 저는 소극적으로 변하고 타락해 하나님의 구원을 부정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개인의 이익을 선택해서 세상으로 돌아가 육을 즐겼으니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저는 크게 뉘우쳤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마치 죽음에서 부활한 것처럼 삶의 희망을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나 일과 같은 모든 사적인 계획을 내려놓고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을 부르고, 말씀 낭송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니 마치 처음부터 다시 하나님 믿는 길을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서서히 하나님의 긍휼을 다시 얻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즐거움을 느끼며 내면은 평온과 기쁨을 되찾았습니다. 저는 교회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생겨났습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저를 받아들여 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몇 주 후,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단계의 사역이 시작되고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고 늘 돈을 벌고 연애 상대를 만나며 부자의 삶을 살려고 하다가 교회를 떠난 사람이 있었다. 뜻밖에도 그는 몇 년 유랑한 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후회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이는 그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니 좋은 일이다. 그에게는 아직 구원받을 기회와 희망이 있다. 만약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방인과 같아지면 완전히 끝난 것이다. 진심으로 회개할 수 있다면 희망이 있으며, 이는 귀한 일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든지,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든, 미워하든, 혐오하든 저주하든 상관없이 언젠가 사람이 돌아설 수 있다면 나는 무척 위안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조금이라도 있고, 사람의 이성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았으며, 인성을 완전히 잃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밑으로 돌아오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정말로 하나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 하나님 집을 떠났다 하더라도 돌아올 수 있다면, 마음속에 하나님 집이 있다면, 나는 다소 그립기도 하고 위안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안타까울 것이다. 돌아와 진심으로 회개할 수 있다면 나는 더없이 기쁘고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 사람이 돌아왔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잊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여전히 그리워하기에 돌아온 것이다. 그때 만났을 때 무척 감동을 받았다. 떠날 당시 그는 분명 소극적이고 내적 상태도 좋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아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음을 증명하지만 앞으로 그가 계속 나아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사람은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은혜시대에 예수는 사람에게 긍휼과 은혜를 베풀었다. 그는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그 한 마리를 찾으러 간다고 했다. 이는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행동 방식도, 규례도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는 행동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성품이고, 마음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교회를 떠난 지 반년이나 일 년이 되었든, 혹은 그가 얼마나 연약해지고 얼마나 오해를 했든, 나중에 깨우칠 수 있고, 깨달아 돌아설 수 있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길로 되돌아올 수 있으면, 나는 무척 위안을 얻고 소소한 기쁨을 느낄 것이다. 지금 이렇게 속된 세상, 사악한 시대에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으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은 퍽 마음에 위안이 되는 일이고 감격스러운 일이다. 마치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다. 자식이 효자이든 아니든 그 자식이 부모를 부모로 보지 않고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네 마음은 어떠하겠느냐? 늘 마음속에서 자식을 내려놓지 못하고, 언젠가 자식이 돌아와 얼굴 한번 볼 수 있기를 바라는데, 어쨌든 자식이니 그럴 수 있다면 그를 아끼고 기른 것이 헛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늘 이런 생각을 품고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인데, 하나님은 오죽하겠느냐? 길 잃은 자 바른길로 되돌아오고, 탕자가 돌아오길 더욱 바라지 않겠느냐? 지금은 사람의 분량이 작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내면에 진정으로 믿으려는 뜻이 전혀 없거나 불신파라면, 그런 자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 감동한 나머지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마주 보고 말씀하시는 기분이었고,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대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에 저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벼이 사람을 정죄하거나 치지 않으십니다. 말세에 성육신하신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은 제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저를 버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패괴 성품, 제가 가는 잘못된 길 때문에 제게 모습을 감추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이고, 또한 그것은 저를 징계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동안 저는 하나님에 대해 관념과 오해를 품었습니다. 항상 제 입장에 서서 마치 진리를 깨달은 것처럼 하나님 뜻을 제 관념으로 대신했습니다. 비록 제가 이렇게 거역했지만 하나님은 제 약점을 이해하시고 제가 어디서 넘어지고 실패할지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제 상상을 초월합니다. 제가 깨달을 때까지 하나님은 한 걸음 한 걸음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도를 포기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에 책임을 지십니다. 하지만 사람 역시 반드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 같은 겁쟁이를 좋아하지 않으시고, 의지가 있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열심히 진리를 추구해서 자신을 바꾼다면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제게 패괴 성품을 고칠 기회가 있고, 구원받을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 뜻을 깨닫고 난 뒤, 소극적이고, 또 하나님을 오해하던 제 내적 상태가 바로잡혔습니다.
그 뒤에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심판 사역에 대해 조금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너희를 심판하고 형벌하고 정죄하지만, 그것은 너희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죄하고 저주하고 심판하고 형벌하는 것 모두 너 자신을 알게 하고 너의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며, 더욱이 너의 몸값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일은 공의롭고 그의 성품에 따라 한 것이며, 그의 사역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자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계획에 따라 한 것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다. 네가 만약 자신의 지위가 낮다는 것과 자신이 패괴되었고 패역하다는 것만 알 뿐, 하나님이 지금 너에게 하는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려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너는 체험할 수 없고 계속 나아갈 수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치거나 멸망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 저주하고 형벌하고 구원하러 온 것이다. 6천 년 경륜이 끝나기 전, 즉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내기 전에,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사역은 모두 구원을 위한 것이며,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온전케 하여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복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하든, 그것은 모두 사람에게 있는 사탄의 옛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함으로써 즉, 사람이 생명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명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형벌이나 심판, 저주가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반드시 긍휼과 자비가 있어야 하고, 더욱이 위로의 말씀도 있어야 하며,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무궁한 축복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축복과 은혜를 내려 감동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사람을 구원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구원은 거래적인 구원일 뿐이다. 하나님이 백배로 주는 전제하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이름을 빛내고 영화롭게 하는 것은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것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친히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구원 방식은 하나님이 모든 긍휼과 자비를 다 베풀고 더 나아가 자신의 전부를 사탄에게 넘겨줌으로써 전 인류와 맞바꾸는 것이었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지금은 너희를 구원함에 있어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마지막 때이므로 긍휼과 자비가 아닌 형벌과 심판의 방식으로 더 철저하게 인류를 구원한다. 따라서 너희는 형벌, 심판, 무자비한 매질만 받게 된다. 하지만 너희는 그 무자비한 매질 속에 징벌은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아무리 엄할지라도 너희에게 임하는 것은 그저 무정해 보이는 말들뿐이며, 나의 분노가 아무리 클지라도 너희가 받는 것은 여전히 꾸짖는 말일 뿐, 너희를 해치려는 뜻도, 너희를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뜻도 전혀 없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냐? 너희도 알다시피, 지금의 공의로운 심판이나 무자비한 연단과 형벌은 모두 구원을 위한 것이고, 지금 각기 부류대로 나누려고 하든 아니면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려고 하든, 모든 말씀과 사역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무자비한 연단도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엄한 말씀이나 채찍질은 모두 정결케 하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서야 제가 하나님의 심판 사역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처음 하나님 사역을 받아들였을 때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더 많이 누리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누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에 만족하면서 제가 하나님의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존재, 특별하고 완벽한 존재인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그런 엄한 심판은 받으면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엄한 말씀이 제 패괴를 드러내고 제 적그리스도 성품을 드러냈을 때 하나님이 저를 도태시키시려는 줄 알았습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패괴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엄한 심판과 형벌만이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고,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사람을 완전히 구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되고, 너무나 교만하고 방자하여 하나님께서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깨우쳐 주셔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제가 사탄에 의해 패괴된 자신의 추한 모습을 알 수 있고, 진정으로 자신을 미워하며 사탄을 저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여전히 저를 완벽한 존재,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로 여기며, 자신을 돌아보고 진리를 구하며 스스로를 반성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저 죽을 때까지 계속 적그리스도의 잘못된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고통은 전혀 받지 않고 하나님의 총애만 받으려 했습니다.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만을 영원히 누리려 했습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하나님께 정결케 될 수 있겠습니까? 제 무지와 이기심 때문에 저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심판 사역 이면에 숨겨진 사랑과 구원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 무지와 이기심으로 무거운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나님 심판 형벌 사역의 중대한 의미를 알고 난 뒤,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고자 하는 믿음이 되살아났습니다. 저는 제 관념에 맞고 안 맞고를 떠나 하나님 사역은 저를 정결케 하고, 제 패괴 성품을 변화시켜서 저를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철저하게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심판과 형벌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 읽고 나서 하나님의 요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진정한 피조물이 되어 그분의 주재와 공급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인식하고 증거할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사실, 제 지위나 형제자매들의 지위는 모두 같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어떤 은사와 재능을 주시더라도, 혹은 리더가 되도록 제게 기회를 주시더라도 그것이 제 지위가 형제자매들보다 높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패괴된 사람입니다. 이런 은사와 재능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자신을 뽐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자기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깨닫고 나니 실행 길이 생기고 마음도 훨씬 가볍고 자유로웠습니다. 얼른 교회로 돌아가 본분을 계속 이행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하려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저는 컴퓨터와 휴대폰에서 하나님을 믿는 일과 무관한 것들은 모두 삭제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님을 따르고 싶었습니다. 며칠 후, 저는 교회로 돌아왔고, 계속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의식적으로 형제자매들과 협력하고, 문제가 생길 때면 항상 형제자매들에게 견해와 의견을 물어보면서 다 같이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다시는 혼자서 결정하거나 제 생각을 형제자매들에게 강요하는 일 없이 모두 함께 의논하고 검토했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저를 과시해서 우러러보게 한다든가 사람들을 통제하려 시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잡는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형제자매들과 같이 진리 원칙을 구하는 법을 배워 나갔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훨씬 편안했습니다.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체험하고 나서 저는 제 패괴 성품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하나님의 사역,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고 내면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은 사람을 정죄하고 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사랑과 구원임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은 빛이요, 사람을 구원하는 빛이고, 사람에게 가장 좋은 축복이며, 가장 큰 은혜이자 가장 좋은 보호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