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정의 속박을 어떻게 벗어났나
2020년 11월, 리더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몇 년째 하나님을 믿는 엄마가 계속 예배에 제대로 안 나오고 계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돈 버는 일에만 열심이고, 어쩌다 예배에 나와도 졸기만 하고, 평소 하나님의 말씀도 안 읽고, 설교도 안 듣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방인과 같아서 불신파의 모습이 비교적 뚜렷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지금 엄마의 상황을 알아보며 제명 대상인지를 파악하는 중이라며 엄마에 대한 평가를 좀 써 달라고 했습니다. 편지를 읽고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교회 리더가 오해하는 거 아냐? 엄마가 하나님을 믿는 동안 겉보기엔 꽤 열심이었잖아. 가끔 생활이 곤란한 형제자매도 도와주곤 했는데 아무렴 제명이야 당하려고?’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교회에서 사람을 제명하는 데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일관되게 보이는 태도와 본성 본질에 따라 결정되므로 절대 억울한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밖에서 몇 년 본분을 이행하다 보니 엄마가 교회에서 어떤 안 좋은 모습을 보였는지도 모르고 해서 우선은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저는 엄마와 같이 있을 때 엄마 태도가 어땠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집에 갈 때마다 엄마에게 내적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면 엄마는 항상 저를 피하고, 평소에 하나님 말씀도 잘 안 읽고 설교 교제도 잘 안 들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게 중요하다고 교제하면 말로만 알았다고 하고, 좀 지나면 또 그대로였습니다. 돈 버느라 예배도 제대로 안 나갔고요. 제가 여러 번 교제해도 엄마는 달라지지 않았고, 자기 두 손에 의지해야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기만 했습니다. 또 사소한 일로 아빠와도 자주 다퉜습니다. 아빠가 조금 강한 어조로 얘기하여 엄마 체면이 깎이면 앙심을 품고 있다가 이방인들처럼 욕설을 내뱉으며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어떻게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 내는지 교제하면 듣지도 않고 본인은 못 참겠다고만 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믿음은 하나님께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른 시간이 얼마나 되었든 그들의 생각과 관점은 바뀐 적이 없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처세 원칙과 방식을 지키고 있고, 이방인과 같은 생존 법칙과 신념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믿은 적이 없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려고 한 적도 없고,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취미로만 믿을 뿐이고, 하나님을 정신적 의지처로만 여길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은 알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진정한 하나님의 모든 것은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들은 관심을 가지려고도,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늘 ‘하나님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하는 강렬한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고,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입으로만 인정하면서 그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그 어떤 실제적인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진짜 현명한 것이라고 여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볼까?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인으로 여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불신파는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으로, 그들의 본성 본질은 진리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엄마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진리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언행이 이방인과 같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불신파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런 엄마의 태도를 사실대로 써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엄마는 제가 하나님 믿는 것을 계속 지지해 주었습니다. 식구들이 아무리 반대하고 공격해도 엄마만큼은 저를 보호해 주면서 제가 맘 놓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제가 밖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특히 제가 아팠을 때 병원에 데려가서 그 연세에도 계단을 오르내리며 저 대신 접수하고 약을 받아 주었습니다. 또 집에 갈 때마다 먹을 것도 사 주시고, 옷도 사 주었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니 엄마에 대한 평가를 써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괴롭고 갈등이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엄마 딸인 내가 제출하는 평가가 그만큼 설득력이 있을 거야. 근데 만약 엄마 태도를 사실대로 쓰면 교회에서 제명될 가능성이 더 커지잖아. 진짜 제명되기라도 하면 엄마가 하나님 믿어 온 인생도 끝나는 거 아냐? 그것도 그렇고, 내가 엄마의 그런 불신파 같은 태도를 글로 써서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면 분명 상처받고, 또 나보고 배은망덕하고 양심도 없다고 하실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괴롭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고통 속에서 저는 하나님께 제가 올바른 입장을 굳게 지킬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습니다. 그때 마침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이 닥칠 때마다 네게는 그것이 큰 시련이고 네가 하나님을 증거해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한다. 겉으로 봤을 때 큰일이 아닌 것 같아도, 일단 그런 일이 닥치면 너라는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겠지만, 하나님 사랑하기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네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자요, 진리도 생명도 없는 쭉정이임을 보여 줄 것이다! 일이 닥칠 때는 언제나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야 할 때이다. 지금 네게는 큰일이 닥치지 않아 별로 크게 증거한 것이 없겠지만, 일상의 사소한 부분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제자매들이 탄복하고, 가족이 탄복하고, 주위 사람들이 탄복하게 해라. 언젠가 이방인이 와서 네 모든 행위에 탄복하며 하나님이 행한 것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오면, 너에게 간증이 있게 될 것이다. … 네가 큰 사역을 하지는 못해도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고정 관념을 내려놓지 못해도 너는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이 실제 체험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해도 너는 자신의 실제 분량과 실제 행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며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에 대한 실제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지금 엄마에 대한 평가를 쓰라는 것은 진리 원칙에 관련된 일입니다. 저는 마땅히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이 일에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며, 정에 이끌리지 않고,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엄마의 실제 상황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모녀간의 정 때문에 엄마에게 불신파의 모습이 많이 보여도 글로 쓰지 못하고, 엄마가 교회에서 제명당해 구원받을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이 역시 올바른 입장에 서지 못하고, 증거하지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 편에 서서 교회 사역을 지키지 못하고, 정에 이끌려 엄마를 감싸려 하다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교회에서 적그리스도나 악인, 불신파가 드러나면 저는 항상 앞장서서 그 일을 처리했습니다. 형제자매에게 정리 사역의 의미를 교제하고, 부정적인 사물은 날카롭게 폭로해서 교회 사역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엄마 일 앞에서는 정에 이끌려 모녀 관계를 지키느라 원칙에 어긋나게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제게서 진리 실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정에 너무 연연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깨달으니 괴로움이 다소 누그러졌습니다. 저는 서둘러 평가서를 작성해서 리더에게 넘겼습니다.
다음 날, 설교 교제에서 하나님을 3~5년 믿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교란하거나 방해한 게 아니라면 잠깐은 제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보고 한 줄기 희망이 생겼습니다. ‘엄마는 그저 진리를 추구하지 않은 것뿐이지 명확하게 교회 사역을 교란하거나 방해한 건 아니야. 이런 상태면 엄마한테도 아직은 회개의 기회가 있는 것 아닐까? 지금 교회 리더가 엄마 상황을 잘 모르고 있진 않을까? 그렇다면 엄마가 전에 형제자매들을 열심히 도와주던 일들을 편지로 쓰든가, 아니면 엄마한테 교제 좀 해 달라고 부탁해서 엄마가 교회에 남아 봉사라도 할 수 있으면, 어쨌든 제명되는 것보다야 낫잖아.’ 저는 현지 교회 리더에게 서둘러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니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습니다. ‘엄마가 요즘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도 모르잖아. 지금도 평소에 하나님 말씀도 안 읽고, 예배 시간에 계속 졸기만 한다면, 교회에 남아도 형제자매들이 예배드리는 데 방해만 되지 않을까? 내가 지금 교회 리더한테 편지 쓰려는 것도 정에 이끌려서 엄마를 두둔하려는 거잖아. 하지만 엄마가 정말 제명되면 구원받을 기회가 아예 사라지는 건데.’ 저는 괴로워 곧바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 그릇된 내적 상태를 인식하고 정에 이끌려 행동하지 않게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보았습니다. 『정과 관련된 문제에는 무엇이 있느냐? 먼저 자기 가족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들이 한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있다. ‘그들이 한 일’, 물론 여기에는 가족들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 일, 뒤에서 남을 판단한 일, 그 외 불신파의 행동 등이 포함된다. 너는 이런 일을 공정하게 대할 수 있느냐? 평가서를 써야 한다면, 너는 정을 배제하고 그들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느냐? 이는 자기 가족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그 밖에, 너는 너와 비교적 잘 맞는 사람 혹은 너를 도와주었던 사람에게 정을 갖고 있느냐? 그의 행위, 사람됨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고 정확하게 대할 수 있느냐? 만약 네가, 그가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행위를 발견했다면, 즉시 이를 보고하거나 폭로할 수 있느냐? 또한, 너는 너와 비교적 가까운 사람 혹은 마음 맞는 사람에게 정을 갖고 있느냐? 이들의 모든 행위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와 정의 및 처리 방식을 갖고 있느냐? 교회에서 원칙에 따라 너와 감정적으로 얽혀 있는 이들을 처리할 때, 만약 그 처리 결과가 네 관념과 맞지 않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하겠느냐? 순종할 수 있느냐? 뒤에선 여전히 그들과 얽혀 있고, 그들에게 미혹당하고, 심지어 그들의 부추김으로 그들을 위해 설명하고 변명하고, 그들 대신 나서 주겠느냐? 너는 네게 은혜를 베풀어 준 이를 위해 진리 원칙을 저버리고 하나님 이익을 외면한 채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줄 수 있느냐? 이건 정과 관련된 여러 측면의 문제가 아니냐?』(<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2)> 중에서), 『예를 들어, 네 친척이나 부모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악을 행하고 교란했거나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아 현재 제명되었다고 치자. 그런데 너는 그들에 대한 분별력이 없고 왜 제명되었는지 몰라서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사랑이 없고 불공평하다며 하나님 집을 자꾸 원망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그들이 도대체 어떤 부류인지 판단해야 마땅하다. 만약 네가 정말로 진리를 깨달았다면 그들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요, 하나님이 행하는 것은 전부 옳으며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는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할 수 있을 것이며, 친척이나 부모 대신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을 것이다. 너희의 혈연관계를 찢어 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규정하고, 네가 분별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이 무엇 때문에 도태되었는지 알게 하려는 것이다. 만약 네가 마음으로 정말 똑똑히 알게 되었다면, 네 관점이 올바르고 진리에 맞는다면, 너는 하나님과 같은 편에 설 수 있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님 말씀에 완전히 합하게 된다. 만약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사람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계속 육적인 관계에 입각해, 그 각도에서 사람을 바라본다면 너는 영원히 육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들을 네 가족처럼 대하고, 심지어는 형제자매보다 더 가까이할 수도 있다. 그러면 가족을 바라보는 네 관점이 하나님 말씀과 모순되고, 더 나아가 충돌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네가 하나님과 같은 편에 설 수 없을뿐더러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까지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우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님 말씀에 부합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받아들이고, 사람의 전통 관념을 포기하고, 어떤 사람이나 일을 대하든 네 견해와 관점이 항상 하나님과 같아야 하며, 진리에 부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면 네 관점과 네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하나님과 맞서지 않게 된다. 또한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다시는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얻으려는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바울의 본성 본질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은 말씀에서 육적인 정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은 진리를 실행할 수 없다고 폭로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가족을 공평하고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고, 언제나 혈연관계를 지키려고 가족을 두둔하고 감싸느라 교회 이익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폭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서야 제 내적 상태를 조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엄마의 본성 본질이 불신파에 속해서 이미 교회 생활에 교란과 방해가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진리를 실행해서 엄마의 태도를 폭로하고 교회 사역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정에 연연한 나머지 엄마가 교회에서 제명당하면 구원받을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릴까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엄마를 위해 이치를 따져 가며 변론을 하려 했습니다. 특히 평소에 엄마가 제게 잘해 주던 게 생각나서 엄마의 태도를 폭로하지 않고, 두둔하고 감싸려고 했습니다. 설교 교제를 들었을 때 저는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제명하고 출교하는 원칙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글귀에 매달리고 제게 유리하게 적용하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관용을 베풀어 엄마를 교회에 남게 하면 혹시 구원받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정리 사역을 하는 것은 교회를 정결케 해서 형제자매들이 좋은 교회 생활 환경 속에서 사탄에게 교란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저는 정에 이끌려 엄마를 지키려고 교회 사역과 형제자매들의 생명이 해를 보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패괴된 저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등과 같은 사탄 철학을 따르며 살았습니다. 저를 지금껏 길러 주었으니까 또 제가 본분 이행하는 것을 지지해 주었으니까 엄마에게 안 좋은 태도가 아무리 많아도 다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딸이 되어서 엄마가 교회에서 제명당하는 것을 눈뜨고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불효막심한 일이라 여기고,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으면 엄마를 위해 교회에 남길 기회를 손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는 것 아니겠습니까? 엄마는 하나님을 몇 년째 믿으면서도 그동안 하나님 말씀도 사랑하지 않고, 예배도 제대로 안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세상을 좇고 돈만 추구했습니다. 심지어 진리를 추구할 생각은 별로 없고, 믿을 건 돈밖에 없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또 전에 하나님을 10년 넘게 믿은 노부부가 악행을 저질러 교란하고 방해했기 때문에 교회에서 제명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는 형제자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공적으로 하나님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저분들도 제명되는데, 이러다 나도 언젠간 제명되겠어요.” 저는 엄마에게 교회에서 사람을 제명하는 데는 원칙이 있고, 그 사람의 일관적인 태도와 본성 본질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교제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반성은커녕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엄마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도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 진실한 믿음도 없는 불신파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엄마의 본질을 바라보지 않고,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제 관점만을 고집했습니다. 엄마가 비록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교란하거나 방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교회에 남아서 봉사하면 구원받을 기회는 아직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불신파는 겉으로는 악을 행하지 않았더라도 본성 본질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싫어하기 때문에 설령 교회에 남아서 아무리 하나님을 믿어도 생명 성품이 변화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패괴 성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고, 언젠가는 도태됩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도 너무 잘못됐습니다. 불신파가 교회에 남아 있으면 이방인들과 같은 관점을 퍼뜨려 하나님 말씀, 하나님 요구와 맞서게 됩니다. 그러면 진리를 잘 모르고 분량이 작은 형제자매들은 이를 잘 분별하지 못해 쉽게 교란되고 미혹되어 소극적이고 나약한 상태로 지내고, 심한 경우 믿음이 약해져서 하나님을 떠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불신파는 전혀 하나님 집의 사람이 아니고, 형제자매가 아닙니다. 그들의 본질은 마귀 사탄의 본질이고, 하나님과 맞서는 본질입니다. 따라서 불신파를 즉시 제명하지 않고 교회에 남겨 두는 것은 해악이나 다름없습니다. 엄마는 하나님을 그토록 오래 믿었으면서 평소에 하나님 말씀도 안 읽고 실행은 더더욱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교제해도 세상과 돈만 추구했습니다. 본성은 진리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또 불신파의 관점을 퍼뜨리고, 관념을 퍼뜨려 교회 생활을 교란한 적도 많았습니다. 엄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 해도 진정한 회개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마귀에 속하는 그런 사람을 아직도 변호하며 교회에 남게 하려 했다니, 저는 정말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했고, 마음이 완악했습니다.
저는 또 이런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그가 부여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란 생명체를 세상에 데려왔다. 그리하여 사람은 부모와 가족이 생기면서 외로움에서 벗어났다. 사람은 이 물질적인 세상을 본 후부터 하나님이 정한 운명에 따라 살아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이 생명체 하나하나를 밑받침해 주어 ‘어른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살아가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부모의 길러 준 은혜라고, 사람의 생명의 본능을 밑거름으로 하여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가 자신의 ‘생명’을 부여했는지,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며, 생명의 본능이 어떻게 기적을 일구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저 음식이 생명 연장의 근본이고, 의지력이 사람의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며, 머릿속의 신념이 사람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밑천이라고 알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이 부여한 생명을 이렇게 헛되이 허비하고 있다…. 밤낮으로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아무런 가망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계획한 사역을 할 뿐이다. 그의 바람은 언젠가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 불현듯 생명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든 것을 베풀면서 치른 대가와 사람이 마음을 되돌리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인류 생명의 근원이시고, 제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제가 커서 어른이 될 때까지 저를 보살피고 지켜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후에도 하나님은 제게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 앞으로 나와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받아들이게 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진리와 삶의 의미를 깨닫고, 어떻게 해야 사람답게 살고, 삶의 길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사랑이자 구원입니다. 엄마는 그저 이 물질세계에서 저를 키워 주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보호자일 뿐입니다. 엄마가 저에게 잘해 준 것도 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엄마를 존중하고 자식의 의무를 다해야 하겠지만 진리 원칙에 관계된 일은 정에 이끌려 처리하면 안 됩니다. 마땅히 진리를 실행해서 엄마가 드러내는 불신파의 여러 가지 모습을 폭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양심과 이성이자 제가 실행해야 할 진리 원칙입니다. 제가 육적인 정에 이끌려서 행동하고, 불신파에게 양심과 사랑을 앞세우고, 엄마를 감싸고 두둔하면서 전혀 교회 사역을 고려하지 않고, 형제자매들의 교회 생활이 교란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진리 원칙을 어겨 가며 엄마와의 관계를 지킨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양심이 없는 것이고, 배은망덕한 짓입니다! 이 점을 깨닫고 저는 마음이 아주 자유로워졌습니다.
얼마 후 고향에 볼일이 있었는데 내려간 김에 집에도 들렀습니다. 저녁에 서로의 근황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엄마는 자신이 교회에서 제명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교제하자 엄마는 거기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화제를 딴 데로 돌렸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전혀 뉘우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교회에서 엄마를 제명하는 것은 전적으로 원칙에 부합한다는 것을 더욱 확신했습니다. 2개월 후, 저는 현지 교회 리더한테서 엄마에 대한 평가를 보완해 달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태도가 제명당할 만큼은 아니라는 건가? 그런 거라면 당분간은 교회에서 제명되지 않을 거라는 얘긴가? 그렇지만 두 달 전에도 엄마가 회개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는데 이걸 교회 리더한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창 망설이는데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설령 진리 생명을 얻지 못했더라도, 최소한 말하거나 일할 때 하나님 편에 설 수 있고,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해 볼 때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버려둔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고, 마음이 편치 않아서 속으로 말할 것이다. ‘가만히 앉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일어나서 목소리를 내야 해. 책임을 다해야지. 나서서 이런 악행을 폭로하고 저지해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해 보지 않도록 수호하고, 교회 생활이 교란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해.’ 진리가 네 마음에서 생명이 된다면 너는 그러한 용기와 다짐을 갖는 걸로 끝이 아니라 그 일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위해 네가 짊어져야 할 그 책임을 다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너는 네 본분을 이행한 것이다. 네가 너의 본분을 자신의 책임과 의무로 삼고, 하나님이 맡긴 일로 대하며, 이렇게 해야 하나님에게 부끄럽지 않고 양심도 떳떳하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정상 인성의 인격과 존엄을 살아 내지 않겠느냐? 네가 행한 바는 바로 하나님이 말씀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다. 너는 이 말씀의 본질을 행한 것이고, 이 말씀의 실제를 살아 낸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고, 정상적인 교회 생활의 질서를 유지해야 하며, 교회에서 드러난 적그리스도, 악인, 불신파가 있다면 나서서 폭로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저는 욥을 떠올렸습니다. 욥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라고 하자 욥은 하나님 편에 서서 아내를 어리석은 여자라고 꾸짖었습니다. 진솔하고 정직한 욥은 애증이 분명했고 정에 이끌려 살지 않았습니다. 저도 육을 저버리고 아는 대로 실제 상황을 모두 폭로해서 불신파를 하루빨리 교회에서 제명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집에 갔을 때 목격했던 엄마의 태도를 모두 써냈습니다. 얼마 후 교회에서 엄마를 제명하기로 했다는 서신을 받았는데, 열거된 모습 중 일부는 제가 제출한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이 일에서 정에 이끌려 간증을 잃어버리지 않았기에 마음이 무척 편안하고 홀가분했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든, 어떤 사람을 도태시키시든 모두 그 사람의 본성 본질 및 일관적으로 드러난 태도를 근거로 하시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완전히 드러낸다는 점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정에 이끌리면 안 되고,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하나님 뜻에 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수확과 인식을 얻을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