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5)

우리는 지난번에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가 지닌 부정한 측면의 음란함, 문란함, 방탕함이라는 세 가지 구체적인 모습에 관해 교제했다. 이는 사람이 정욕 측면에서 보이는 부정한 모습들이다. 이런 부류의 주된 문제는 정욕을 대하는 태도가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의 마지노선을 넘어설 정도로 몹시 방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종 환경에서 자신의 정욕을 제약하거나 절제하지 않고 제멋대로 방탕하게 군다. 그런데 유독 방탕한 사람들이 있다. 방탕함은 기본이고, 거리낌 없이 한술 더 뜨는 것이다. 심지어 복음을 전파할 때 정욕을 채울 기회를 엿보거나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이성에게만 복음을 전하다가 적당한 이성이 보이면 공세를 펼친다. 그리고 온갖 방식과 수단으로 상대방을 유혹하고 꾀며, 비열한 수법으로 자기 목적을 이루기까지 한다. 이들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이런 모습을 보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짓을 저지른다. 단순히 음란한 생각만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복음 전파의 기회를 틈타 복음을 전한다는 미명 아래 정욕을 채우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들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면서 여러 연령대, 여러 상황의 사람에게 똑같은 짓을 한다. 대답해 보아라. 이런 사람이 보이면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그가 계속 복음 전파의 본분을 이행하게 해야겠느냐? 아니면 내쫓고 복음 전파의 본분을 중단시켜야겠느냐? (그를 내쫓아야 합니다.) 쫓아내면 아쉽지 않겠느냐? 그가 한 사람을 더 얻을 수 있다면 어쩌겠느냐? (그가 계속 복음을 전하게 놔둔다면 그로 인한 결과가 더 심각할 겁니다. 음란한 짓을 저지르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짓이 됩니다.) 말해 보아라. 이 부류가 온종일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정욕에 관한 일뿐이다. 그런데 그가 복음을 전한다고 사람을 얻을 수 있겠느냐? (얻을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간혹 몇 사람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짓 또한 할 수 있을 테니 이런 사람을 쓰면 득보다 실이 크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내쫓는 것이 아쉽겠느냐? (아쉽지 않습니다.) 이런 부류가 변할 수 있겠느냐? 그의 문제가 쉬이 해결되겠느냐? (해결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것은 본성 본질에 관한 문제라서 변하지 않습니다.) 음욕으로 가득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그의 내면에 살고 있는 마귀가 그 사람의 육체를 이용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짓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양심과 이성에 부합하는 말로 권면하고 경고한다고 해서 그의 본성 본질을 바꿀 수 있겠느냐?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럼 진리를 교제해서 그를 도와주면 이런 측면의 문제가 해결되겠느냐?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를 책망 훈계하거나, 감독할 사람을 구하고 환경을 바꿔 주어서 정욕을 방종하게 풀어 놓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그 안의 마귀 성품이 해결되겠느냐?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인 그의 모든 행동에는 인성이 없다. 이는 그의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네가 아무리 진리를 교제하고 권면하며 도와주어도 그의 본성 본질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먼저, 진리를 싫어하는 것은 마귀의 본성 본질이므로 그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편, 마귀에게서 환생한 사람은 양심과 이성이 없어 자신의 악행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수치스러워하지 않으며 후회하거나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정상인에게 있어야 할 수치심과 염치가 그에게는 없다. 또 그는 인성의 도덕과 인륜,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존엄과 염치를 모른다.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설사 그럴듯한 도리에 관해 떠들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그가 정상 인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저 위선을 떨고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런 부류에게 어떤 진리를 교제해 주든 그들의 본성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런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도록 할 것 없이 제명하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만약 그를 도태시키고 제명해 버리면 그가 하나님 집에서야 정욕을 방종하게 풀어 놓거나 사역을 교란하지 않겠지만 이방인들한테 가서 그런 짓을 할 텐데 그러면 이 또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를 하나님 집에 머물게 하고 감독할 사람을 구해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맞는 말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어디가 틀렸느냐? (그를 하나님 집에 남겨 두는 것은 형제자매를 괴롭히는 일이자,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입니다. 이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를 세상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세상엔 사탄, 마귀가 너무 많아서 아무리 교란해도 마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사탄, 마귀인데 해를 끼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이런 관점이 실상에 부합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관점이 맞다. 정욕을 방종하게 풀어 놓는 부류는 마귀이다. 그를 하나님 집에 남겨 두어서 형제자매를 괴롭히게 해서는 안 된다. 그가 사회에서 무슨 짓을 하든 하나님 집과는 상관없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인성이 없는 마귀이니, 마귀들끼리 아무리 싸워도 하나님 집 사역을 교란할 일은 없을 것이다. 본래부터 사탄의 족속인 그들은 사탄과 한패이다. 이미 수천 년간 자기들끼리 싸우고 괴롭혀 왔는데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자기들끼리 괴롭히는 것은 그들 스스로 원하는 바로, 죽이 잘 맞는 것들끼리 유유상종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집은 이런 부류를 원치 않는다. 마귀의 부류는 정당한 일을 하지 않고, 양심과 이성도 없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교란하거나 망치고 무너뜨리는 짓만 한다. 그들은 사람에게 이로운 일은 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을 괴롭히는 일만 할 것이다. 설사 얼마간 힘쓰는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득보다는 실이 크다. 이런 부류는 겉으로 보면 무척 성실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기회가 생기는 순간 엄청나게 나쁜 짓을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부류를 곧바로 제명 처리해야 한다. 그가 힘쓰는 일이나 옳은 일을 얼마간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진실하게 회개했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나아가 그의 본성 본질에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의 현 상태가 어떻든 그 허상에 미혹되어서는 안 되며, 그가 어떤 사역을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신뢰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는 마귀의 본성 본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 교회 생활을 하든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이며, 모두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설령 그가 잠깐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일거수일투족, 언행 하나하나는 네 마음과 정서를 어지럽히고 나아가 네 관점까지 좌우할 것이다. 마귀가 사람 곁에 있으면 이런 결과가 빚어진다. 가령 최근 네 내적 상태가 나쁘거나 다소 소극적으로 변했을 때, 혹은 복음에 반하는 유언비어를 듣고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생겼을 때 네 주위에 마귀가 하나 있다면, 너는 밤에 수시로 악몽을 꿀 수 있다. 심지어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내적 상태가 긍정적으로 고무되기는커녕 갈수록 마음이 침체되고 어두워질 것이다. 또 그와 가까이 지낼수록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느껴지지 않고, 그를 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하나님을 믿는 것이 따분하게 느껴질 것이다. 더 나아가 그의 모든 언행이 네 생각에 영향을 줄 것이고, 주위의 사람과 일을 대하는 네 관점과 태도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패괴된 사람을 접하거나 그들과 소통할 때는 다르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귀 부류가 사람 곁에 있을 때는 그의 위해가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그가 사람에게 끼치는 위해와 위협이 시시각각 존재한다. 겉으로는 네게 무척 상냥하게 굴어서 너를 싫어하지 않는 것 같고, 너를 판단하거나 공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사람이 아닌 마귀인 이상 그의 이야기와 행동, 말과 행동거지는 네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영향은 무의식적으로 생기기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는 사람 중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 특히 제멋대로 정욕을 방종하게 풀어 놓는 사람들이 보인다면 관용을 베풀어 문제를 키우지 말고 즉시 척결하고 제명해야 한다. 사람은 복음 전파 팀원이 한 명 늘어나면 그만큼 여력이 생기는 셈이니 사람 하나 더 있는 게 좋은 일인 줄 알지만, 마귀가 하나 늘어나는 것이라면 낭패다. 사람이 한 명 늘어날 경우, 자질이 조금 떨어져서 단순한 사역밖에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마귀처럼 교회 사역을 교란하거나 망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귀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겉보기에 말솜씨가 청산유수 같아서 자질에 따라 특정 분야의 사역 책임자를 맡을 수도 있겠지만, 본성 본질로 볼 때 절대 사역을 제대로 이행할 리 없으니 엉망으로 사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귀가 하는 짓이라고는 죄다 방해하고 교란하며 망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부류의 악행은 곧바로 폭로하고 분별해서 하나님의 선민들이 마귀의 악행을 알아차리고 분별하게 해야 한다. 다만, 그가 마귀라는 것을 알아차리거나 의식하지 못해 그를 정상인으로 여긴다면, 간혹 부정한 감정이나 사사로운 욕망을 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내키지는 않지만 그를 남겨두고 계속 관찰해라. 하지만 그가 가끔 부정한 감정이나 사사로운 욕망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즐거워하고 음란한 사람처럼 어딜 가나 좋아하는 이성을 찾아 정욕을 방종하게 풀어 놓는다면, 또 집어삼킬 영혼을 물색하는 마귀처럼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괴롭힌다면, 그가 접하는 사람마다 그에게 교란당하고, 그가 가는 곳마다 이런 문제가 뒤따른다면, 이는 사람의 소행이 아니라 마귀의 소행이 분명하다. 마귀는 최대한 빨리 제명해서 후환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가끔 잘못을 저지르거나 자제력을 잃을 때가 있다. 심지어는 최소한의 인성도 지키지 못하는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습관적으로, 혹은 재미로 하는 일이 아니다. 또한, 사람은 잘못이나 과오를 저지르고 나면 후회와 죄책감, 수치심이 들어서 다음에 같은 환경이나 일에 처할 때 시험을 피할 수 있으며, 뉘우치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마귀는 절대 뉘우치는 법이 없으며 회개할 줄도 몰라서 회개하는 법이 없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며 공격하는 마귀의 본성이 변한 적이 있더냐? 단 한 번도 없다. 하나님이 인간을 아무리 오래 주재하고 경영해도,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고 지혜로우며 권병을 지니고 있는지 아무리 나타내도, 사탄은 불복하면서 계속 하나님에게 대든다. 사탄은 항상 하나님에게 패하면서도 계속 하나님에게 대들고 하나님을 공격하며 대적한다. 그러니 어떤 사람의 본성 본질이 마귀라면 그의 부정한 본성 본질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부정함이 바로 그의 본래 모습이자 기호이고 본성이기 때문에 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교회에서 이런 부류를 목격하든 최대한 신속하게 폭로하고 분별한 다음 제명해라. 마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지 마라. 그래야 교회 사역에 도움이 되고, 하나님의 선민에게도 유익하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어야겠느냐? 네 생각에 마귀가 아닌 정상적인 사람이 틀림없다면, 일시적인 연약함 때문에, 혹은 특수한 환경 때문에 과오를 저지르긴 했지만 나중에 후회하거나 심지어 자기 뺨을 때리며 스스로를 미워하는 등 양심이 작동한다면 이런 사람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된다. 하지만 마귀는 기회만 생기면 정욕을 방종하게 풀어 놓는다. 이는 그의 본성에 의한 것이니, 마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지 말고 최대한 빨리 척결하고 제명하고 출교시켜야 한다. 이것이 이 부류를 대하는 원칙이자 최선책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그는 마귀의 부류 중 나이를 제법 먹은 사람이 정욕에 사로잡히는 것을 보아도, 남들이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 주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았음을 그 자리에서는 인정할지 몰라도 나중에는 자기 마음대로 한다. 그러고는 ‘마귀는 어쩜 저렇게 정욕이 강할까? 나이를 저렇게 많이 먹고도 어떻게 저렇게 나쁜 생각만 하는 거지? 저 사람은 상습적으로 저런 짓을 하고 항상 저런 모습을 보이던데 어떻게 염치도 없는 걸까? 왜 조심할 줄 모르지?’라고 의아해한다. 이는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을 그토록 오래 믿었는데도 사람의 본성 본질에 따라 사람을 대할 줄 모르고, 마귀의 본성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모르다니 정말 어리석고 무지하지 않으냐? 마귀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존재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그의 본성 본질이 바로 마귀인 것이다. 마귀의 ‘음란함, 문란함, 방탕함’에 관한 모습 중 하나가 바로 정욕에 사로잡히는 모습이다. 육신이 죽을 때까지 계속 정욕에 사로잡히니 몇 년을 살든 그들은 변함없이 이런 부류이며, 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보아라. 그는 나이도 많고 겉으로는 정욕에 사로잡히는 부류처럼 보이지 않지만 내면에 마귀가 살고 있어 육체의 나이나 성별,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정욕에 사로잡힌다. 그의 가족이나 부모와 꼭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유전자의 문제가 아닌, 그 내면의 본성 본질 문제다. 그에게 부정한 본성 본질이 있다면 그의 속성은 마귀로 정해진다. 그의 본성 본질이 이미 드러났고, 그의 속성은 본인의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이 부류는 과거 어떤 직업에 종사했든, 현재 나이가 몇이든, 언변이 어떻고 선천적 조건이 어떻든, 이 모든 것은 그의 속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의 겉모습만 본다면 거기에 미혹당하기 쉽다. 그래서 “점잖은 모습에, 교양 있고 말도 고상하게 하는 걸 보면 예의와 염치를 아는 사람일 텐데 어떻게 그런 사악한 짓을 할 수 있겠어요? 정욕에 얽매이는 부류 같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너는 이 일을 간파하지 못한 채 믿기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을 갖는다면 너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다! 마귀는 어떤 육체를 입든 마귀의 일을 할 수 있다. 겉모습이나 외모가 어떻든, 나이가 몇이고 성격이 어떻든 그는 본성대로 행동한다. 그의 겉모습, 나이, 교육 수준과는 상관없고, 종교적 배경과도 상관없으며, 종족과는 더더욱 상관없다. 당연히 가정 환경과도 무관하다. 그가 이런 짓을 하고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은 그 본질과 본성 때문이다. 그러니 이상하게 여기거나 믿기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라. 또 한편으로는 어리석은 짓도 하지 마라. 그를 살려서 그가 변화하고 진리를 사랑하게 되어 정상 인성의 궤도로 돌아오도록 늘 포용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회개할 기회를 주려 하지 마라. 아직도 마귀의 부류를 도와주고 살릴 생각을 한다면 너는 너무나도 어리석은 사람이다. 너는 이런 부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런 부류를 대하는 원칙을 모르며 진리와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만약 그에게 부정한 본성 본질이 있다는 것을 보고도 그가 회개하도록 돕고자 한다면 이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 너는 하나님의 말씀에 진실로 순종하지 않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너는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 피상적인 현상으로만 각 유형의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판단하려 하며, 오로지 자신의 열정과 선의로만 행동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생각과 관점이자 패역의 모습이다. 정욕에 사로잡히는 부류를 척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의 본질에 따라 대해라. 네 생각에 이런 부류가 틀림없다면 회개할 기회를 줄 필요 없이 제명 처리하는 것이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개의치 마라. 마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젊어서부터 그런 놈이었고, 중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런 부류이다. 노년이 되어도 그가 나이가 많다고, 늙었다고 생각해 주지 마라. 그는 변함없이 그런 놈일 것이다. 대답해 보아라. 젊은 여자를 꿰차는 칠팔십 대 노인네, 혹은 어린 남자를 찾는 육칠십 대 노파가 있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사회에는 이런 기이하고 이상한 일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가 늙은 후에야 정욕에 사로잡혔겠느냐? (아닙니다.) 젊어서도 그랬고 평생 그런 놈이었다. 이런 일을 이방인은 어떻게 표현하느냐? 능력 있다며 멋지다고 한다. 이 얼마나 완곡한 표현이냐? 이런 일이나 이런 부류를 ‘멋지다’, ‘보헤미안’, ‘삶을 즐길 줄 안다’, ‘세속을 초월한다’는 단어나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판단할 때 이방인이 사용하는 용어나 말은 전부 역겹다. 그들은 이런 일을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면에서부터 올바른 말로 규정할 줄 모른다. 이방 세계와 이 인류 자체가 부정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문제의 근원을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일을 규정하는 그들의 관점은 얄팍하고 터무니없으며 사악하고, 본질과 동떨어져 있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가 지닌 부정한 측면의 ‘음란하고, 방탕하며, 문란한’ 모습에 관해서는 교제를 마쳤으니 이제 부정한 측면의 또 다른 모습인 기이함에 관해 교제하겠다. ‘기이함’이라는 단어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분명 기이함의 구체적인 모습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기이함 외에도 초자연적, 극단적, 비정상적이라는 몇 가지 측면의 모습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사탄, 마귀의 부류가 지니고 있는 부정한 모습이다. 기이함, 초자연적, 극단적, 비정상적이라는 몇 가지 모습을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혹은 남들과 접하면서 수시로 목격할 수 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경우부터 짚어 본 후 일반적인 경우를 살펴보겠다. 어쨌든, 어떤 측면의 모습이든 부정한 측면의 본성 본질과 관련된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항상 방언을 하는 것, 특히 예배 시간에 기도할 때 기이한 방언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민족의 언어도 아니라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이때는 본인이 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영에 지배되어 있는 상태로, 그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배워 본 적도 없고 가르쳐 준 사람도 없는데 어떤 장소에서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방언을 할 때는 능동적일 때가 있고 수동적일 때도 있으며,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할 때가 있고 무의식중에 할 때가 있다. 기이하지 않으냐? 방언을 마친 후 다시 해 보라고 하면 다시 하지 못하고,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봐도 모른다. 이것이 한 가지 경우다. 한편, 정상인에겐 들리지 않는 소리를 자주 듣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주위의 누군가가 자기에게 하는 말을 듣는데 남들에겐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사실 그는 정체불명의 생명체와 대화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워낙 대화에 심취해 있으니 중간에 그의 말을 끊거나 대화에 끼어들 수도 없다. 더구나 허무맹랑한 말을 하고 두서나 이유도 없이 갑자기 말을 쏟아내니 옆에서 보고 있으면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 이런 모습은 정말 기이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 부류는 항상 이상한 것들, 물질세계에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죽은 친척이 자기에게 손짓하거나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인사를 건네는 것까지 본다. 이런 것을 보고 나면 그는 몹시 흥분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수시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눈앞에서 자기를 꽁꽁 묶는 것을 보고 몸부림치며 “이거 놔! 난 안 가! 아무 데도 안 갈 거야!”라며 마구 소리를 질러 댄다. 옆에 있던 사람이 왜 그러냐고 물어도 그는 자기에게 말을 거는 것도 모른 채 계속 몸부림치면서 “하나님,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친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놀라 달아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는 옆 사람에게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못 봤냐고 묻는다. 하지만 정상인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혹여 보인다면 낭패인데 그에게는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평소 웃고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무척 조용했던 사람이 무슨 연유에서인지 갑자기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온몸에 땀이 나도록 울다가 웃다가 또 시끄럽게 구는 것이다. 심지어는 갑자기 뱀처럼 바닥을 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리처럼 걷는 사람도 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짐승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의 표정이나 자세, 행동거지는 영락없는 짐승으로, 사람과는 딴판이다. 걸핏하면 이런 모습을 보이니 기이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기이한 모습이 초자연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모습은 무척 초자연적이다. 초자연적인 것은 비정상으로, 자연적인 상태,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난다. 즉, 보통 수준에서 벗어나 보통 사람의 정상적인 모습과 달리 이상해지는 것이다. 이를 기이함, 초자연적, 비정상적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모습은 극단적인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기이함, 초자연적, 비정상적이라는 성질 면에서 봤을 때 이는 부정함의 본질로서, 정상적으로 육에 속하는 패괴된 인간의 모습에 부합하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육에 속하는 인간은 인간의 본능, 자유 의지, 정상적인 사고와 이성 그리고 정상 인성이 가지고 있는 각 측면의 능력에 제한과 제약, 통제를 받는다. 하지만 마귀 부류가 보이는 이 기이하고 초자연적이며 비정상적인 모습은 이미 정상 인성의 본능, 자유 의지, 능력, 정상적인 사고나 이성의 범위를 벗어났다. 다시 말해, 정상 인성의 통제를 떠나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통제 불능이라는 것은 평상시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말이다. 정상인이라면 표출해서는 안 될 비정상적인 모습이나 행동을 그에게서 볼 수 있다. 즉, 그는 정상적인 이성과 사고 혹은 자유 의지에 통제되지 않고 외부의 것이나 어떤 악령의 조종, 명령을 받아 정상 인성에서 벗어나는 짓, 다른 사람은 간파할 수 없고 난해해하며 심지어 소름 끼치는 짓을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기이함, 초자연적, 비정상적이라고 한다. 말해 보아라. 이것이 부정한 모습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기이한 모습들은 부정하다고 하기에 충분하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기이한 모습은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항상 누군가가 자기에게 하는 알 수 없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이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또 마음속에서 자기와 대화하면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는 지시가 시도 때도 없이 들리기도 한다. 정상인에게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그는 “길을 지나가는 한 무리의 군대를 봤어요. 일이천 명까지는 아니지만 사오백 명은 됐어요. 대포랑 탱크도 있었고요. 규모가 어마어마했다고요!”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자기 눈에만 보인다. 우리는 그가 본 것이 과연 사실인지, 그것이 영계에서 비롯된 현상인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이 그에게만 보이는 것은 심상치 않다. 어째서 심상치 않다고 하겠느냐? 왜 그것을 부정한 측면의 모습이라고 하겠느냐? 주변 환경이든, 주위 사람이나 일이든, 하나님이 지은 정상인의 모든 감각기관이 느낄 수 있는 것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본능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보고 듣고 냄새 맡는 것이든 아니면 육체가 느낄 수 있는 것이든 거기엔 모두 한계가 있다. 여기서 한계란 무엇이겠느냐? 물질세계라는 범위에 제한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감각기관을 사람에게 주었겠느냐? 영적 세계에서 비롯된 긍정적인 것이든 아니면 부정적인 것이든 물질세계에 속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사람의 생활이나 감각기관을 교란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물질세계에서 사람이 영위하는 생활의 질서나 규칙이 지장받지 않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물질세계에 사는 사람이 육체적 감각기관의 범위를 뛰어넘어 물질세계 이외의 그 어떤 것도 보거나 듣거나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는 네가 정상적으로 살아가도록 물질세계 이외의 모든 생명체의 교란으로부터 네 정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사람의 정신이 정상인 이상, 사람의 자유 의지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고, 판단력도 정상일 것이며, 인간이 지닌 각 측면의 선천적 조건도 망가지지 않고 원래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망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느냐? 그것은 바로 네 신경계나 감각기관 그리고 자질 등 각 측면의 선천적 조건이 육적 생활의 범위 안에서 모두 정상적이고 건전하다는 뜻이다. 정신이 정상일 경우, 사람의 이런 측면이 모두 정상이고 기존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감각기관이 육체가 이를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어 아무런 구속 없이 느끼게 된다면 정신에 문제가 생기고, 물질세계 이외의 것에 영향받고 망가지며 교란당할 것이다. 그러면 신경에 문제가 생기고 정신 착란이 일어나게 된다. 사람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느냐? 정신병에 걸리고 발작하며 헛소리를 지껄일 것이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울부짖으며 난동을 부릴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완전히 버려진다. 버려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느냐? 또 다른 무언가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정신을 교란하고 망가뜨려서 정상적인 이성에 마음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에 조종당하는 것이다. 사람이 다른 어떤 것에 조종당할 때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의학적으로 말하면 정신 분열이다. 정신이 분열되면 그 사람이 정상인이겠느냐? (아닙니다.) 더는 정상인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사역하지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하나님이 준 자유 의지, 정상적인 사고, 양심과 이성은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하느냐? 사람의 정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의 정신을 보호하는 역할이라면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물질세계 이외의 것, 물질세계 이외의 그 어떤 소리나 형상에도 교란당하지 않게 사람의 신경과 이성을 정상적인 상태로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평온하게 하나님을 믿고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으며 신변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는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기이하고 초자연적이며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점철된 사람들은 정상인의 자유 의지, 정상적인 사고,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기이한 것이나 형상을 보고, 보통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거나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며 기이한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일의 본질을 이해하거나 간파하지 못한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로, 인간에 속하지 않는다. 사탄이 후천적으로 그를 사로잡은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마귀에 속하는 부류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 마귀에 속하는 사람의 정신은 태생적으로 정상이 아니다. 즉, 그의 자유 의지, 사고, 이성이 모두 건전하지 않다는 말이다. 설사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그는 정상 인성의 것을 갖추지 못할 것이다. 평소 병이 도지지 않았을 때의 그를 보아라. 그래도 정상적으로 말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곧 그가 정상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런 기이한 모습이 있다는 것은 그가 정상인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마귀라는 의미이다. 그의 이런 괴상하고 초자연적이며 비정상적인 모습은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물든 게 아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비롯되었겠느냐? 타고난 것이다. 그의 속성은 마귀이다. 속성이 마귀라는 게 무슨 뜻이겠느냐?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이 부류가 선천적으로 마귀에게서 환생했다는 뜻이고, 둘째는 이 부류가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영을 지니고 있지 않았고 나중에는 마귀에게 정복당했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이 부류의 본성 본질은 사람이 아니라 마귀이다. 또한, 그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감각기관, 각 측면의 선천적 조건이 정상인의 그것과 차이가 나고 구별된다. 감각기관의 측면에서 보면 그는 정상인이라면 느끼지 못하는 것,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을 늘 느낀다. 육체의 본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가 하는 일이나 말, 그의 모습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정상 인성 본능의 범주에서 벗어나 초자연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초자연적이란 무엇이냐? 육체의 본능을 초월하는 것이다. 육체의 본능이 이를 수 있는 범위를 정상인은 뛰어넘을 수 없지만 그는 가볍게 뛰어넘어 버린다. 육체의 본능에 통제나 제한을 받지 않으니 자연스레 기이하고 초자연적이며 비정상적인 행위, 행동을 표출하게 된다. 이제 이런 부류의 본질을 확실히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그럼 이런 부류가 부러우냐? (부럽지 않습니다.) 부러워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저분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 좀 보세요. 우리는 방언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죠. 더군다나 저분은 배우지 않아도 몇 개 국어를 해요. 병에 걸리는 일도 없고요. 며칠 굶어도 허기를 못 느끼고, 며칠 안 자도 피곤한 줄 모른다니까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저 녀석은 능력이 있어요. 통찰력과 예견 능력이 탁월하고 박학다식하죠. 관상도 보고 점도 칠 줄 알고요. 어떻게 생겼든 상대의 운명을 한눈에 알아본다니까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밤이 되면 자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는 사자가 되어 저승에 간 거랍니다.” 어떤 사람은 이 부류가 가진 능력을 부러워한다. 이런 부류를 부러워하다니 어리석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남다른 능력을 갖춘 초자연적인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저희는 별다른 능력이 없어요. 마법이라도 조금 부릴 줄 알면 좋을 텐데 말이죠. 날이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을 때 손만 한 번 휘저으면 아이스크림 몇 개가 생기는 거죠. 초콜릿 맛, 딸기 맛 등 먹고 싶은 맛은 다 있는 거예요.”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느냐?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느냐? 유치한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면 자연스레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정상적인 사람에게 인생을 경험하고 체험하게 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여러 굴곡과 실패를 맛보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주재를 체험하고,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올바르지 못한 태도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바른길로 돌아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게 한다. 인생에 관한 이런 경험과 체험이 생기면 창조주가 인간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창조주가 인간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신뢰하며 순종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바른길로 돌아와 바람직한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실제와 동떨어진 생각을 따르며 살지 마라. 그것은 절대로 현실이 될 수 없다. 초자연적이고 기이하며 비정상적인 것은 사탄, 마귀의 전매특허로서 정상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니 언제든 초자연적인 사람, 남다른 능력이 넘치는 사람이 되려 하지 말고, 자신의 본능이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지도 마라. 그저 착실하게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네 본분을 잘 이행해라. 이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마귀의 부류가 지닌 기이한 측면의 모습이 대략적으로 파악되었느냐? 이는 가장 심각한 모습으로, 이 부류가 정상인과는 다른 부류임을 명확하게 느끼고 의식하게 해 준다. 그가 정상인의 무리에 있으면 무척 별나 보인다. 그리고 이 별나 보이는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그의 행동거지와 일상의 각 측면 모습이 대단히 기이하고 초자연적이며 비정상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즉,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그는 육체의 본능에 의한 각 측면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신의 비이성적인 행동도 절제하지 않는다. 마치 전혀 지각하지 못하는 것 처럼, 악령에 씐 사람처럼 말이다. 이는 마귀가 지닌 부정한 측면의 본성 본질로서 사람이 버려야 할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 이런 초자연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은 부러워해서도 안 되고 추구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전부터 초자연적인 사람이 되거나 초자연적인 일을 하는 것을 추구할 생각이었다면 당장 그 생각을 접어라. 뉘우치기만 하면 되니 이런 사람이 될 생각은 하지 마라. 네가 그런 길을 걸어서 마귀가 네 정신을 비집고 들어간다면 하나님은 너를 원치 않을 것이고 너는 버려질 것이다. 왜 버려진다고 하겠느냐? 마귀가 너를 정복해서 정신을 조종하면 네 말로는 좋지 않을 것이다. 마귀는 너를 정복하는 순간, 너를 방해하고, 네 마음과 생각을 교란하며, 네 일상과 각 유형의 사람, 일에 대한 사고 과정에 관여하기 시작할 것이다. 너는 그것의 방해를 거부하지 못해 서서히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결국 고분고분해질 것이다. 마귀가 너를 완전히 조종하는 순간, 너라는 사람은 의학적으로 정신 분열로 규정되며, 하나님 집은 네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면 너는 끝장이고 버려지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정신 분열로 규정된 사람이 정상인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겠느냐?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어떻게 보겠느냐? (인간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너를 사탄에게 사로잡힌 사람으로 본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추상적일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사탄이 네 마음을 조종하고 네 마음속에서 왕 노릇을 해서 네가 사탄의 꼭두각시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사탄에게 사로잡힌 것이다. 사람이 사탄에게 사로잡히면 사탄의 부류와 다를 바 없이 순식간에 기이하고 초자연적이며 비정상적으로 변한다. 이런 사람은 구제 불능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마귀의 부류가 지닌 기이한 측면의 모습을 분별한 다음 이런 부류를 가까이하지 말고 멀리하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짓을 하든 관여하지 말고 따지지도 마라. 예를 들어, 그가 네게 전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것에 관해 말한다면 그 목적은 네게 접근하고 너를 유인하는 데 있다. 그러니 네가 호기심을 가지고 한결같이 부러워하고 추구한다면 몹시 위험해질 것이다. 왜 위험하다고 하겠느냐? 이는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유인하는 것이며 집어삼킬 영혼을 물색하고 있는 것이다. 사탄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부러워한다면 시험에 빠지게 된다. 그 틈에 사탄이 네게 쉽게 역사하니 위험한 것이다. 무방비 상태로 사탄에게 접근하다니 어리석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 너를 보고 사탄이 건달처럼 희롱하고 꾀는데도 거부하지 않는다면 사탄은 네가 묵인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한층 심하게 굴 것이다. 사탄의 부류가 말하는 이런 기이한 일, 초자연적이고 비정상적인 일에 대해 네가 늘 호기심을 품고 물어보거나 알아본다면 이는 이런 일에 반감을 품기는커녕 흥미를 느낀다는 방증 아니겠느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이런 일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은 사탄이 보기에 네가 하나님이나 진리, 긍정적인 것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탄은 무척 기뻐하면서 자연스레 ‘우호적’인 손을 선뜻 내밀며 네게 공을 들이려 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위험해진다. 그러니 이런 부류를 만나면 섣불리 접근하거나 흥미를 갖지 말고 그들을 분별하고 경계하며 멀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접근하지 않고 흥미도 갖지 않은 채로 어떻게 그들을 분별할 수 있나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적진에 들어가지 않고 어찌 지피지기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맞는 말이냐? 전염병이 돌 때 일부 과학자나 연구자는 필히 전염병과 접촉해서 연구해야 하며, 그 결과 전염병에 걸려 죽기도 한다. 그러니 기이하고 초자연적인 모습을 지닌 마귀 부류는 반드시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대비가 과할지언정 그에게 너를 해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현명한 실행 방법이다. 그에게 흥미를 갖거나 그와 접촉하며 가까워지지 말고, 또 한편으로는 기이하고 초자연적인 모습을 추구하거나 모방하지도 마라. 이 또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무척 초자연적이고 기이하며 비정상적인 사람과 자주 접하면서 무방비 상태로 그들의 영향을 받아 익숙해진다면 은연중 그들의 기이한 모습이 네 마음과 기억 속에 남겨져서 너도 모르게 그것을 추구하고 본받고자 할 것이다. 이는 더 위험한 신호이다. 네가 추구하고 모방하려 해서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진다면, 이는 사탄이 네 마음속에 들어와 너를 조종하고 정복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스스로를 사탄에게 바치는 꼴이다. 이 경우, 사탄이 순식간에 너를 조종할 텐데 그러면 너라는 사람은 완전히 망가지지 않겠느냐? 생각해 보아라. 사람이 하나님에게 마음을 바치는 것은 정말 어렵지 않으냐?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권세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하나님은 쉬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주도권을 잡지 않는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는 사역은 사람의 선천적 조건을 바탕으로, 양육하고 목양하며 깨우치고 빛을 비추고 인도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여기에 징계와 채찍질, 형벌과 심판이 더해진다. 이와 동시에 사람이 객관적 환경에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나님의 사역과 각 측면의 진리를 서서히 인식하도록 여러 환경을 배치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상 인성의 사고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사람의 마음속에 뿌리내려 사람의 생명이 되게 함으로써 하나님에게 얻어지게 한다. 이 모든 것에 과정이 있다. 하지만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것은 다르다. 왜 사탄의 본질이 부정하다고 하겠느냐? 그것은 강제로 사람을 정복하고 조종한다. 이 부분은 사탄의 본질이 부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이것이 실증이다. 네가 마귀의 부류가 되는 것을 추구하고, 기이하고 초자연적이며 비정상적인 모습이나 행동, 능력을 추구하려 한다면 네 마음은 사탄에게 활짝 열릴 것이다. 이는 마음속으로 ‘제게 들어오세요. 당신의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제 모든 것을 조종하셔도 됩니다.’라고 사탄에게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탄이 네게 뭐라고 하겠느냐? “네가 내 말을 듣고 네 마음의 주도권을 준다면 너는 네가 갖고자 하는 모든 것을 습득할 것이고, 기이하고 초자연적인 것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넌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을 뛰어넘게 된다.”라고 할 것이다. 사람이 기이하고 초자연적이며 비정상적인 행동이나 모습 혹은 능력을 추구하는 것은 사탄과 대화하는 것과 같으며, 마음속으로 사탄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네가 이런 기이하고 초자연적인 것을 추구한다면 사탄이 순식간에 네 마음속에서 일할 것이다. 그때부터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더는 정상인처럼 정상인의 생각이나 관점, 태도를 갖지 못하고 180도로 돌변하게 된다. 진리를 대하는 정상인의 태도와는 완전히 다르게 진리를 싫어하고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진리를 싫어하고 적대시하는데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얻을 수 없다. 사탄에 사로잡혔으니 말이다. 그러니 사람은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기이하고 초자연적이며 비정상적인 모습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말고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대해라. 다시 말해, 그의 이런 모습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흥미를 느끼거나 그를 가까이하지 말고 더욱이 몰래 부러워하거나 탄복해서는 안 되며, 나아가 추구하거나 모방하지도 마라. 그보다는 이런 부류를 멀리하면서 분별하고 분명한 입장을 취하여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마귀의 부류가 지닌 기이한 측면의 모습 중 가장 심각한 모습에 관해 교제했다. 이 모습들은 사람이 분별하기에 수월한 편이다. 심각하기로는 여기에 버금가는 모습들이 더 있다. 바로 일상에서 항상 극단적인 생각과 관점, 극단적인 행위와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늘 정상 인성의 허용 범위에서 벗어나게 행동한다. 예를 들어 말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스스로 뺨을 때리는 것도 모자라 스스로 징벌을 내려 낮엔 끼니를 거르고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육체를 징벌하고 이를 통해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결심을 나타낸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요. 우선 하나님 말씀에 따라 반성하고 인식한 다음 실행의 원칙과 길을 찾아야 차츰 변화할 수 있습니다. 어떤 측면의 패괴 성품이든 하루 이틀 만에 변화시킬 순 없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죠. 다 과정이란 게 있는 거랍니다.”라고 권면한다. 이게 맞는 말이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실행하지도 않는다. 그는 진리 원칙에 따라 각 측면의 문제를 대하지 않고 극단적인 수단을 취한다. 어느 정도로 극단적이냐? 늘 자해하는 방식이나 자학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극단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남들을 대하고 각종 일도 극단적인 방식으로 대한다. 예를 들면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바쁘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시간을 들여 머리를 자르거나 감는 게 너무 귀찮다는 생각에 아예 삭발해 버렸다. 그리고 머리 깎는 주기를 늘리려 모발이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게 머리에 화학약품도 발랐다. 극단적이지 않으냐? 남들이 보면 그녀는 대머리인 남자 같은데 목소리나 체형은 또 여자 같아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도무지 분간되지 않는다. 다른 형제자매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그가 여자라는 것을, 머리는 귀찮아서 밀어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분별력이 없는 어떤 사람은 이런 사람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감탄한다. “저분 좀 보세요. 보통 사람은 저렇게 육체를 져버리겠다는 결심을 할 수 없죠. 진심으로 육체를 증오하는 분이에요. 육체를 사랑하지 않겠다는 것을 정말 실제 행동으로 옮긴 거죠! 언젠간 저도 그녀처럼 삭발하겠어요.” 이걸 본받는 사람도 있다니! 같은 부류가 아니냐? 동지를 만나더니 이 일을 분별하기는커녕 극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본받으려 한다. 극단적인 사람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대답해 보아라. 극단적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이상한 기질을 보이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 이상한 기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겠느냐? 정상 인성에 이런 이상한 기질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상 인성 속에는 왜 이런 이상한 기질이 없겠느냐? 사람이 정상 인성의 사고나 양심과 이성을 지니고 있어 무슨 일이든 정상적이고 긍정적이며 실제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든, 싫어하는 일이든, 어떤 일을 하든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극단으로 치닫는 부류의 사상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데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면 그는 어떻게 해야 충성을 다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고생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한다. 매일 식사하는 것도 규례를 지킨다. 쌀이 몇 톨인지, 채소가 몇 개인지 세어가면서 먹는다. 옷도 해어지면 기워 입다 보니 남들이 보면 고행승 같다. 남들은 매일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을 자는데 그는 고작 두 시간만 잔다. 그러고는 자기에게 고생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니 본인이 누구보다 충성스럽다고 생각한다. 그가 늘 이렇게 극단적인 생각과 행위를 하는 쪽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정상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예컨대 그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다가 말실수나 잘못된 어휘 선택으로 남들에게 비웃음을 사서 망신을 당하면 ‘다신 이 단어를 쓰나 봐라. 여기서 끝이 아냐. 내 흠을 잡지 못하게 평생 저 사람을 보지 않을 거고, 그와 말을 섞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지킬 수 있다. 그 어떤 극단적인 행동이나 사상과 관점도 그는 평생 지킬 수 있다. 그리고 누구의 권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이렇게 지키는 데는 이유와 근거가 있다. 그는 이것이 진리에 순종하는 모습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자 충성스러운 모습인 줄 안다. 대답해 보아라. 이런 사람은 골치 아프지 않으냐? (골치 아픕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쉬우냐? (함께 지내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왜 이렇게 행동하겠느냐? 극단적인 사상에 의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는 이런 극단적인 행동과 모습을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여겨서 이런 행동을 고집하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생각과 관점이 이 부류의 이런 행동의 근원이 아니겠느냐?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속으로 정죄하고 업신여기며 경시한다. 예를 들어 앞서 이야기한 삭발한 여자는 삭발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참나, 머리를 그렇게 기르고 온갖 스타일로 꾸미고 다니다니, 허영심도 강하셔라.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나 보네! 나 좀 보라고. 이렇게 오랫동안 삭발하고 다니면서도 남들에게 놀림당할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 난 허영심이 없거든. 당신들은 머리를 그렇게 기르는 데다가 자주 감기까지 해야 하니 얼마나 시간 낭비야! 그럴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읽고, 본분을 이행하면 얼마나 좋아!’ 그녀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까지 한다! 이런 부류는 하나님의 말씀을 몇 번을 듣고 설교를 몇 년을 들어도 무엇이 진리인지 깨닫지 못하면서 극단적인 생각은 수도 없이 한다. 수많은 극단적인 생각에 이끌려 극단적인 행위와 행동, 경향을 수도 없이 보인다. 그런 다음 자기를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것이 부정함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 바로 부정함이다. 대답해 보아라. 이런 극단적인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어찌 극단적인 모습을 부정하다 하겠느냐? (이 측면의 모습은 정상인의 사고에 부합하지 않고 정상인이 갖추어야 할 행위나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모습은 정상인의 사고나 모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현실이나 정상 인성이 갖추어야 할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생활과 동떨어졌다. 그들은 과격한 방식으로 각종 일을 대한 다음 이런 극단적이고 과격한 생각과 관점, 행위는 긍정적인 것으로 정의하면서 진리는 부정적인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다른 사람의 눈과 귀를 흐리고 시비를 전도시키는 게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과 귀를 흐리고 시비를 전도시키며 개념을 바꿔치기 하는 것이 바로 부정함이다. 네가 아무리 정상 인성, 양심과 이성, 정상인의 사고, 각종 일에 대해 정상인이 갖춰야 할 사상과 관점에 관해 교제해 줘 봤자 그는 듣지 않을뿐더러 속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황당무계하고 기이하며 정상 인성의 궤도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행위, 나아가 사상과 관점에 관해 자기만의 결론을 내리고 직접 실행에 옮긴다. 또 이를 기준으로 모든 사람과 일을 판단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극단적인 생각과 관점, 행위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것은 부정적인 것, 자신의 극단적인 생각과 관점, 행위에 부합하는 것은 죄다 긍정적인 것, 즉 진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남들의 눈과 귀를 흐리는 게 아니냐? 이것이 시비를 전도시키고 개념을 바꿔치기하는 게 아니냐? 이것이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가 지닌 또 한 측면의 부정한 모습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결코 긍정적인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대신 긍정적이지 않은 것이나 부정적인 것을 취한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이 이를 본받고 모방하게 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한다. 그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 역시 한 측면의 극단적인 행위이다.

마귀의 부류에게는 또 한 측면의 모습이 있다. 바로 진리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비정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일을 파고드는 것을 좋아한다. 완벽하게 영적인 이론과 주장을 정리하려 하고, 심지어 이런 초자연적인 일의 근거를 연구하여 그것을 진리, 일상적인 행동의 지표, 방향, 목표로 삼아 각 유형의 사람과 일에 대응하고 이를 판단하려고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는 전날 어떤 꿈을 꿨는지, 주변에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심상치 않은 조짐은 없었는지 떠올려 보고는 거기에서 자신의 운을 판단할 근거를 찾으려 한다. 항상 이런 것만 추구하는 것이다. 특히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을 만나면 그는 그 사람이 불길한 사람이라 그런 부류와 접하면 자신의 양기가 빨리고 자기에게 불운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부류를 만나고 나면 늘 자기 이마가 거뭇해지지는 않았는지, 혈색이 나빠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려 거울을 본다. 그는 평소에도 자신의 운이 어떤지 고민한다. 틈만 나면 달력에 적힌 운수를 찾아보거나 인터넷 운세를 검색해 본다. 또 꿈을 꾸거나 남들로부터 미신에 관한 속설을 들으면 자기 운의 길흉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만 절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주변의 사람이나 일을 대하지 않고, 진리를 바탕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대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비정상적인 느낌만 찾아 헤맨다. 예를 들어 오늘 그가 노래할 때 몸이 안 좋으면 ‘내가 노래하지 못하게 하나님이 막으시는 건가?’라고 생각한다. 또 오늘 노방전도를 나가기로 다른 사람과 약속해서 시간과 장소를 분명히 정해놨으면서 영적인 느낌을 받으려 기도한다. 기도하고 나서 몇 분이 흘러도 아무런 느낌이 없으면 태양에 이상 현상은 없는지 하늘을 올려다보고, 밖에 까치나 까마귀가 울지는 않는지 귀를 기울여 오늘의 운세를 판단한다. 노방전도가 순조로울지, 사람을 얻을 수 있을지 말이다. 이 방법이 시원치 않으면 그는 동전을 던져서라도 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앞면이 나오면 전도가 순조로워 사람을 얻을 것이고 뒷면이 나오면 전도가 순탄치 않아 사람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이런 걸 근거로 나갈지 말지를 정한다. 이런 부류는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 진리를 근거나 실행 원칙으로 삼을 줄 모른다. 그러기보다는 늘 미신에 관한 속설, 이상한 느낌이나 현상으로 사람과 일을 판단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일을 대하며, 혹은 자기가 실행해야 할 원칙을 결정한다. 늘 이런 허무맹랑하고 기이하며 해괴하고 초자연적인 느낌만 찾고, 그런 느낌으로 행동하고 생활하기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외출하다가 검은 고양이를 보면 재수 없다고 생각해서 일을 그르치더라도 외출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일을 보러 외출하는 길에 차가 고장 나면 하나님이 막는 거라고, 오늘은 운이 나쁘다고, 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외출하다가 관을 보면 오늘 밖에서 돈 좀 벌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부류는 무슨 일이든 늘 미신 같은 얘기를 근거로 삼으려고만 하고 진리를 근거로 한 정확한 실행 원칙은 지니고 있지 않다. 남들이 아무리 교제하고 하나님 집이 아무리 사역해도 그는 진리 원칙대로 생활하고 사역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수도꼭지가 갑자기 고장 나 물이 새는 등 간혹 집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면 그는 나쁜 징조일 거라 의심한다. 어쩌다 바람이 불어 창문이 열리거나 유리가 깨지면 ‘바람이 비정상적으로 불다니, 재앙의 징조인 것 같아. 나가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또 집을 나설 때 눈이 오면 “제가 나가자마자 눈이 오는 것 좀 보세요. ‘길 떠나는 귀인은 눈보라를 부른다’라고들 하잖아요. 우리가 귀인인가 봐요!”라고 한다. 헛소리가 아니냐? 무슨 일이든 이런 해괴하고 터무니없는 속설을 근거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예를 들면 외출할 때 가방끈이 문고리에 걸리면 이런 상황에 해당하는 속설이나 유의 사항이 있을 거란 생각에 당장 달력을 뒤지다가 이 시간에 나가서 일을 보는 것과 관련된 속설을 찾아낸다. ‘만사가 풀리지 않을 땐 외출을 삼가라.’ 그는 ‘만사가 풀리지 않는다는 건 되는 일이 없으니 집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잖아. 이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복이야. 하나님께서 지켜주셨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에서도 근거를 찾다니 황당하지 않으냐? 어떤 상황이든 다 그에 맞는 속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이하지 않으냐? 그는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기이한 현상으로 보는데 그 ‘기이한 현상’을 온갖 기이한 속설을 근거로 처리한다. 그가 온갖 기이한 속설로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대하니 이런 부류와 함께 생활하다 보면 그가 몹시 기이하다는 느낌이 든다. 느닷없이 살벌하고 소름 끼치는 말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밤중에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데 그는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자료를 찾고 점을 봐서 그 시간에 개가 짖는 것과 관련하여 어떤 속설이 있는지 꼭 알아보려 한다. 네가 그와 어느 정도 접촉하고 왕래하고 나면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분명 터무니없는 말에 늘 교란당할 것이다.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평안이나 기쁨이 없이 그처럼 안절부절못할 것이며, 무슨 일이든 속설을 찾아보려 하니 그러는 동안 마음속에 하나님은 없고 오직 미신의 속설만 남을 것이다. 이렇게 악령이나 사탄, 마귀에게 교란당해 사람의 생각이 불안해지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사라지며 사고가 혼란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정상 인성의 모습이 사라지고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의 질서, 규율이 이런 혼란한 생각과 말에 엉망이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이런 부류는 그 일을 기이한 속설로 해석하여 결국 황당무계하고 해괴한 방식으로 대한다. 이것이 바로 부정함이다. 심지어 리더에게 책망을 받으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찌뿌둥하고 세수할 때 이마가 거뭇하던데 결국 오늘 책망을 받는구나. 거봐, 조짐이 있었잖아. 그러니 매일 틈만 나면 거울을 들여다봐서 이마가 거뭇해지면 조심해야겠어. 책망 받거나 일이 난관에 부딪혀서 잘 안 풀릴지도 몰라.’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하러 나갔다가 사모하고 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고, 진리를 교제하면 받아들일 수도 있는 괜찮은 복음 대상자를 만나면 하나님에게 감사한 나머지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어제 샘물에 발을 씻는 꿈을 꿨는데 샘물은 재물을 의미하고 재물을 얻는다는 건 복음을 전해서 사람을 얻는다는 걸 의미해. 그러니 오늘 사람을 얻은 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일이야. 하나님께서 일찍부터 징조를 보이셨잖아!’ 어떤 일이 생기든 어떤 느낌이 들든, 그는 항상 그 근원을 파고들어서 근거를 찾으려고만 한다. 어떤 사람은 ‘왼쪽 눈꺼풀이 떨리면 길하고, 오른쪽 눈꺼풀이 흉하다’는 미신을 믿어서 이를 근거로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판단한다. 그는 결코 진리에 힘쓰지 않고 진리를 구해 이를 근거로 여러 가지 일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온통 이런 기이하고 황당무계하며 해괴하다 못해 초자연적인 온갖 속설이나 생각과 관점,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으로 가득하다.

어떤 사람들은 겉으로는 정상처럼 보인다. 생활, 사역, 다른 사람과의 왕래 면에서 극단적이거나 초자연적이고, 기이한 모습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왕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의 생각과 마음속은 온통 황당무계하고 해괴하며 치우친, 사악한 조류에서 비롯된 온갖 미신의 속설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이런 속설을 근거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일을 판단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이고 하나님의 보호라는 것을 인식한 상태에서도 미신 같은 속설을 근거로 그 일은 물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까지 해석하려 한다. 이것이 부정함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게 많은 진리를 들은 그가 어째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로 문제를 바라볼 줄 모르며, 진리에 부합하는 말을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겠느냐? 그의 마음속에 왜 진리가 없고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 미신으로 가득 찼겠느냐? 이것이 부정함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심지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땅 위의 개미도 밟아 죽여서는 안 됩니다! 개미도 생명이에요. 개미를 밟아 죽였는데, 그 개미가 영계로 돌아가 하나님께 고하면 죗값을 치러야 할 겁니다.” “만약 당신이 물고기를 한 마리 죽였는데 물고기에 입이 생겨서 당신에게 말한다면 그건 당신을 규탄하는 내용일 겁니다! 그러니 당신은 물고기를 먹어서는 안 돼요. 먹으면 죗값을 치르게 될 겁니다! 닭이나, 개, 소, 돼지를 죽이는 건 모두 살생이에요. 나중에 죗값을 치러야 할 겁니다!” 이런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이 어디에서 왔겠느냐? 그 사악한 인간에게 듣지 않았겠느냐? 여기저기서 들은 말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그 말들을 최고의 지령으로 삼아 하나님의 뜻처럼 숭고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몇 년 동안 믿었는데도 뭐라고 하느냐? “닭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이번 생에 닭을 죽이면 다음 생에 닭으로 태어나 사람에게 죽임 당할 거예요. 그러니 살생하면 안 됩니다. 살생하면 죗값을 치르게 될 거예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 정작 닭을 먹을 때는 한 끼에 한 마리를 뚝딱 해치운다. 제정신이 아니지 않으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모피를 입어서는 안 됩니다. 짐승은 죽어도 그 영혼이 다 느끼거든요. 당신이 모피를 입는 건 짐승의 영혼을 걸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 짐승이 억울하게 죽기라도 했다면 당신을 찾아내서 당신에게 들러붙을 지도 몰라요. 당신에게 들러붙는다면 삶이 편치 못할 겁니다.” 대답해 보아라. 기이한 말이지 않으냐? (기이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모발 이식을 하는 사람을 보고서도 속설을 늘어놓는다. “당신이 심는 그 머리카락의 주인이 억울하게 죽어서 그의 영혼이 머리카락에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당신이 만약 그의 머리카락을 심는다면 그의 영혼이 당신을 따라다닐 겁니다.” 온갖 기이하고 해괴하며 터무니없는 속설이 이 부류의 머릿속에서는 그들의 보물이 된다. 즉, 그들의 지상 명령인 것이다. 그들은 이런 터무니없고 황당한 속설을 진리로 여기고 지키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있는 줄 안다. 그러고는 자기만 지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지키라고 알려준다. 그 사람이 준수하지 않으면 살벌하고 등골이 오싹한 말로 위협하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지키라고 겁박하니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에게 겁을 먹는다. 이런 해괴하고 황당한 말이 바로 사탄, 마귀가 인간 세상에 퍼뜨리는 유언비어와 황당한 논리다. 이는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와 자유 의지를 교란하고 조종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사탄, 마귀가 이런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통해 일부 사람을 차지하여 그들이 인간 세상에서 자기를 위해 봉사하게 하고 자신의 대변인, 온갖 해괴하고 기이한 사상의 집행자 노릇을 하게 만든다. 그러니 어떤 측면의 모습으로 보든 기이한 부류의 본성 본질은 사악하다. 그들은 진리를 눈곱만큼도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한 것을 최고로 숭배한다. 바로 이런 문제인 것이다.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해 늘 자기도 모르게 이런 기이하고 해괴한 속설의 영향과 미혹을 받는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고 나면 정상 이성과 정상적인 사고의 판단으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판단할 줄 알게 된다.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은 이를 깨닫고 지켜야 한다. 이런 해괴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통해 분별하고 판단하거나, 사람과 일을 대하는 방법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기이한 부류를 분별하고 나면 그들의 본질이 확실하게 파악되지 않겠느냐? 그들의 본질이 무엇이냐? 부정한 본질이다. 그는 하나님을 숭상하지 않고 사탄을 숭상한다. 한 측면의 진리에 관해 말하고,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을 받아들여야 하는데도 기이하고 해괴하며 황당무계하고 터무니없는 속설을 근거로 삼으려 한다. 그의 관점에서는 이런 해괴하고 황당무계한 속설과 관점이 진리와 하나님의 주재를 능가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부류의 본성 본질은 의심의 여지 없이 부정한 본질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탄의 생명에 의지해 살아가면서 진리가 아닌 사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떠받들고 추종하며 추앙하기 때문이다. 네게는 개인의 행동만 보이겠지만 그 행동을 배후에서 추동하는 것은 사탄, 마귀의 온갖 사상과 관점이다. 그는 겉으로 보면 사람이지만 사실 사탄, 마귀의 온갖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의 대변인이자 계승자이며 증인이다. 그가 증거하고 추종하는 것은 진리가 아닌 사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부정한 본성 본질의 모습이다.

대답해 보아라. 사람에게 천사가 보이는 게 좋은 일이겠느냐? 정말 천사를 볼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겠지만 만약 진짜 천사가 아니라 천사인 체하는 사탄이 네게 보이는 거라면 무척 위험하다. 만약 사탄이 천사인 체하면서 네게 나타난다면 이것이 네게 좋은 일이겠느냐? 나쁜 일이겠느냐? (나쁜 일입니다.) 왜 나쁜 일이라고 하느냐? 정상적인 경우 평범하게 태어난 육체가 천사를 볼 수 있느냐? (볼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이런 능력이 있느냐? (없습니다.) 확실하게 말하는데, 사람에게는 영계의 사탄이나 천사를 보는 능력이 없다. 하지만 네게 보인다면 어찌 된 일이겠느냐? 이는 육체의 능력이 조금 바뀐 게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이렇게 된 것이다. 육체의 능력에 범상치 않은 현상이 나타났다면 하나님이 바꾼 것이겠느냐?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 바꾼 것이겠느냐? 그것도 아니면 네가 직접 변한 것이겠느냐? (다른 것이 바꿨을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너를 바꿔주겠느냐?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역을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그의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의 능력을 바꾸어 천사나 영계의 일을 보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겠느냐? (그러지 않으십니다.) 확실하게 말하는데 하나님은 그러지 않는다. 사람이 구원받기 전에 하나님은 이런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 없는 확실한 사실이다. 사람 육체의 능력이 갑자기 바뀌어서 범상치 않은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바꾼 것도 아니고 스스로 변한 것도 아니라면 어찌 된 영문이겠느냐?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지 않고 너 스스로도 바꿀 수 없다면 유일한 가능성은 바로 사탄의 악령이 네게 한 짓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탄의 악령이 너를 미혹하고 조종하여 초자연적인 현상, 즉 정상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정상인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이 들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사탄이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네게 보여주는 목적이 무엇이겠느냐? 네 시야를 넓혀 주고, 영계의 존재를 믿게 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해주려는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사탄이 좋은 마음이나 의도로 네게 이런 짓을 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탄은 너의 이런 범상치 않은 능력을 이용해 네가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해서 영계에 대한 더 큰 관심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즉, 네게 유익과 재미를 조금 주고는 사탄이 곧이어 할 일을 네가 받아들이게 유혹하는 것이다. 사탄이 곧이어 무슨 짓을 하겠느냐? 사탄이 네게 진리를 내려주겠느냐? 생명을 공급하겠느냐? 아니다. 너라는 사람을 타락시키고 네 육체의 선천적 기능을 망가뜨리려 할 것이다. 그런 다음 너를 차지해서 너를 하나님 곁에서 빼앗아 네가 하나님을 버리게 할 것이다. 대답해 보아라. 사탄이 한 사람에게 천사를 보여주든, 영계의 어떤 현상을 보여주든 이것이 좋은 일이겠느냐? (아닙니다.) 만약 항상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이나, 자기 집 천장에 희고 순결하게 생긴 천사가 날아다니는 게 보이는데 그 천사가 늘 자기와 대화한다고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당장 멀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당장 멀리하고 그와 이야기하지 마라. 네가 만약 그 일에 흥미를 가지고 그와 이야기한다면 위험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당신은 위험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면 제정신이 아닌 거예요. 당신과 교류해선 안 되겠어요.”라고 하지도 마라.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으면 된다. 사탄, 마귀가 이미 그를 타깃으로 삼았거나 그자는 태생적으로 사람이 아닌 마귀인 것이다. 사람은 마귀와 교류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마귀와 교류한다면 그 말로는 오직 하나뿐이다. 마귀에게 잡아먹히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부류를 만나면 그들이 어떤 해괴하고 기이한 이야기를 하든 절대 호기심을 갖지 말고 당장 이런 부류를 멀리해라. 그들을 관찰하거나 연구하지 말고 바꾸려 하지도 마라. 더욱이 하나님을 믿게 하고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도 마라. 만약 그렇게 한다면 너는 어리석기 그지없다. 하나님은 마귀 같은 자를 원하지 않는데 네가 마귀 하나를 하나님 집에 데려다가 그에게 본분을 이행하게 한다면 교회 사역에 유익이 있겠느냐? 유익은커녕 교회 사역에 교란과 방해만 일으킬 것이다. 네가 선의로 그렇게 하더라도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을뿐더러 너를 정죄할 것이다. 이는 악행이니 절대 이런 짓은 하지 마라. 네가 잘 아는 사람이든 낯선 사람이든, 네 가족이나 혈육이든 아니면 친구이든, 그것도 아니면 함께 협력하는 형제자매든 그가 만약 늘 자기 집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이나 문틈으로 자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보인다거나, 자기에게 말씀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거나, 자기가 이기는 아들이나 장자, 들림 받은 대상이라고 느낀다면 이런 부류를 형제자매로 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너희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이런 부류를 형제자매로 여기지 마라. 어리석어서는 안 된다. 네가 어리석어서 이런 부류를 보고 ‘저분은 이기는 자, 장자시고 온전케 되신 분이야. 진리가 있는 분이니 친하게 지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너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쉽게 미혹될 것이다. 그러면 낭패다. 너는 사람을 분별할 줄 모르고 사람의 본성 본질도 꿰뚫어 볼 줄 모른다. 하나님이 그런 사역을 하겠느냐? 하나님은 사탄, 마귀를 구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하여 그가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며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은 하나님을 진실하게 인식하고 진실하게 경외하여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 구원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은 이런 사역을 한다. 진리 외에는 그 어떤 기이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나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도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이런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은 진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기만 할 뿐 절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사람이 구원에 이르고 악을 떠나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유일한 길은 바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 외에 다른 길은 없다. 극단적인 방식의 속설, 혹은 황당하고 해괴한 속설로 진리를 가장하거나 진리를 대신하여 구원받을 생각은 하지 마라. 그런 길은 통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부정한 모습에 관해서는 다 교제했으니 이제 마귀의 또 다른 측면의 모습인 악함에 관해 교제하겠다. 악함이라는 측면의 모습은 부정함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부정한 측면의 모습은 정상 인성의 사고, 양심, 이성 및 정상 인성의 본능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피조된 인간에게 정해 놓은 정상 인성 각 측면의 선천적 조건에 부합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다는 말이다. 전체적으로 비정상적이고, 초자연적이며, 극단적이고, 기이한 모습이다. 다시 말해 정상 인성의 이성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 이런 부류를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모습과 행위가 몹시 이상하고 그의 생각과 관점도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허나 이젠 교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근본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그의 본성 본질과 그의 속성이 마귀라는 데 있다. 부정한 측면은 대체로 이런 모습들이다. 반면 마귀의 악함은 단순히 일부 사람에게서 자주 보이는 겉모습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대하는 태도에까지 직결된다. 부정함보다 더 악랄하고 심각하다. 그러니 악한 측면의 모습은 진리를 대하는 모습을 근거로 규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먼저, 마귀의 부류는 진리를 적대시한다. 이것이 첫 번째 측면의 악한 모습이다. 두 번째 측면의 악한 모습은 진리를 적대시할 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진리를 공격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측면의 악한 모습은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것 외에도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리를 대체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악한 모습은 절대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 두 가지 모습을 바탕으로 진리를 대체하려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본질이다. 마귀의 악한 모습 중 많은 부분이 우리가 예전에 교제했던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지닌 부류의 모습과 똑같다. 이 측면에 관해서는 굳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될 테니 오늘은 주로 마귀의 악한 모습 중 진리를 적대시하고 진리를 공격하며 진리를 대체하는 세 가지 모습에 관해 해부하겠다.

먼저 진리를 적대시하는 마귀 부류의 모습부터 교제해 보자. 진리를 적대시하는 측면의 주제는 예전에 꽤 많이 교제했었다. 처음 접하는 주제가 아니다. 진리를 적대시하는 모습은 마귀의 부류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 그는 올바른 것, 인간의 양심과 이성에 부합하는 것 등 그 어떤 긍정적인 것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히 진리 원칙과 관련된 일은 더더욱 그렇다. 그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그냥 고개를 저으며 거부하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반감과 혐오를 품고 진심으로 증오한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로 증오하느냐? 진리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교제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눈에 거슬려한다. 단지 가볍게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시하는 것이다. 무엇을 적대시라고 하겠느냐? 아버지를 죽인 원수처럼 대한다는 말이다. 사실 네가 그와 깊이 왕래했다고 할 수는 없고 그 역시 널 잘 알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네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관해 교제하면 그가 반감을 품는 것이다. 글귀나 도리를 늘어놓는 사람에게는 반감을 품지 않으면서 자기에게 진리를 교제해 주는 사람에게는 죽도록 반감을 품는다. 마치 그를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이 정도로 증오한다. 구체적으로는 그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진리 원칙이나 하나님의 뜻에 관해 교제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싫증을 낸다. 핑계를 대고 자리를 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거리낌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버리는 사람도 있다.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옳은 말, 특히 진리에 부합하는 말을 들었을 때 갈급하지 않고 동의하지 않더라도 기껏해야 속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게 고작이다. 예의상 자리는 지킬 것이다. 그런데 사탄의 부류는 그러지 않는다. 그는 진리를 듣는 순간 마음속에 반감이 일고 어수선한 마음이 든다. 더는 참지 못하고 자리를 떠날 정도로 말이다. 자리를 뜰 수 없을 땐 인터넷 영상을 보거나 집중하지 못하고 딴청을 피운다. 혹은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의 눈부신 과거를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을 폄하하고 훈계한다. 결론적으로 네가 진리를 교제하면 반감을 품는다는 말이다. 그는 극도로 적대시하는 태도로 진리를 대한다. 네가 진리에 관해 교제하지 않고 행정 사역이나 사무 사역, 복음을 전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나 외부의 일 정도만 교제한다면 그는 자리를 지키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할 테니 화기애애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진리에 관해 교제하기만 하면, 특히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땐 그의 본질과 실상이 드러난다. 마음이 어수선해져서 더 들었다가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은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수록 그는 자기를 심판할 것처럼 느끼고 자기가 정죄되고 도태되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거라 느낀다. 또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수록 그는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속으로 반감을 품고 혐오한다. 네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가 심각하지 않으냐? 이런 부류에게 구원이 있겠느냐? 특히 진리를 실행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과 관련된 내용이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진실한 말을 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연습을 하겠지만 그는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에 반감이 들어 경멸하고, 증오한다. 그는 네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비천하고 자기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은 존귀하니 너보다 자기가 고상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어떤 관점이냐? 시비를 전도시키는 게 아니냐? 진리를 적대시하는 사람이 이렇다. 네가 진리나 어떤 측면의 원칙을 실행하는 것에 관해 교제한다면 그는 속으로 너를 경멸할 뿐 아니라 싫어할 것이다. 너를 비뚤어진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교회 사역에 관해 그와 이야기하고 싶어도 그는 늘 피하기만 할 것이다. 그는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공통의 관심사가 없다. 어떤 주제든 그와 얘기해도 되지만 단, 진리,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그가 이런 주제로는 이야기하기 싫어하니 말이다. 예를 들어 네가 그에게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방법에 관해 교제해 봅시다. 현 단계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죠.”라고 하면 그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고 마음에 극도의 반감이 든다. 심지어 불이라도 뿜을 듯한 눈으로 너를 적대시한다. 그는 사탄에게 충성할 때는 어떤 고생도 감수하면서 하나님이나 진리에 대해서는 반감이 대단해서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가 자기에게 진리를 교제해 줘도 듣지 않는다. 그에게 지식을 습득하고 명저에 관해 공부하라고 하면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자기가 굉장히 고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설교를 듣거나 진리에 관한 다른 사람의 교제를 들을 때는 학대나 심판이라도 받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 진리를 교제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한다. 그러니 이런 부류는 일상에서 사무적인 사역을 조금 하거나, 자신의 지위와 명예 그리고 복받고 득이 되는 일이나 조금 할 뿐,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묵상하는 법이 없다. 예배 때는 진리를 교제하지 않고 개인의 체험적 인식을 나누지도 않는다. 예배는 형식상 드릴뿐이다. 그에게 하나님 말씀이나 진리에 대한 인식에 관해 교제해 보라고 하면 한마디도 못 하면서 속으로는 반감을 품고 이런 생각을 한다. ‘하나님 말씀, 진리에 대한 교제는 주부들, 사회 하층민이나 하는 거야. 나 같은 인물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 나는 큰일, 큰 사역을 하는 사람이고, 큰 복을 받은 사람이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면 대들보나 기둥이 될 중추적인 인물이지. 당신이 뭔데? 교회에서 당신들이랑 함께 예배드리는 것도 나한테는 격이 떨어지는 일이라고!’ 얼마나 방종한지 저놈 좀 보아라! 그가 진리를 적대시하는 것은 진리와 관련된 모든 사람과 일을 적대시하는 것이고 진리와 관련된 행동과 말을 모두 적대시하는 것이다. 심지어 긍정적인 것마저 그는 적대시한다. 가령 네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야기한다고 가정해 보자. 교회 형제자매는 성도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 사역에서든 삶에서든 이성을 만날 때는 선을 지켜야 하고, 바르고 단정해야 한다. 무분별하게 꾀어서는 안 되고, 이성 관계나 혼인을 존중해야 한다. 이런 측면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 한다. 하나님 집은 성 해방을 권장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가 어떤 생각을 하겠느냐? ‘다 구닥다리 같은 생각이고 진부한 이야기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성도의 품위, 남녀 간의 구분 같은 소리를 하고 앉아 있어! 옛날 황궁에서는 황제가 황후 셋과 후궁 여섯을 거느렸다고. 얼마나 멋있어! 내가 능력이 되고 여건만 된다면 셋, 여섯이 뭐야, 열, 여덟을 거느리겠어!’ 그는 모든 긍정적인 것이나 올바른 말, 특히 진리의 말씀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상당히 반감을 품고 증오한다. 그러니 이들은 진리를 적대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진리와 긍정적인 것을 끊임없이 공격한다. 어떤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고 어떤 측면의 구체적인 하나님의 요구를 교제하든 그는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으로 비판하고 판단한다. 이 비판과 판단이 공격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리와 긍정적인 것을 받아들이든 그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 집이 권장하고 진리가 사람에게 실행하라고 요구하는 것들은 모두 구호이며 형식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정말 사람의 필요에 부합하는 것은 세상의 조류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조류가 권장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진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악함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따라서 그는 네가 어떤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든 자기 마음속으로는 진리를 적대시할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판단하고 공격하며 모독할 것이다. 예컨대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직하라고 요구하면 그는 정직한 사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정직한 사람이 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정직한 사람이 되어서 자기 속 얘기나 사생활을 남한테 알려주는 사람은 바보밖에 없어. 바보들이나 사실대로 말하고 자신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는 법이지. 난 바보가 아냐.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해. 남들이 간섭할 권리는 없어!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그걸 말하든 말든 다른 사람이 간섭할 권리는 없어. 내가 알리고 싶지 않은 건 궁금해하지 말라고!’ 이것이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마귀의 부류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실행하지도 않는다. 그는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온갖 사탄의 독이나 사탄에게서 비롯된 관점과 행동으로 진리를 대체하려 한다. 예를 들어 계략이나 거짓말, 온갖 술수, 혹은 고생하고 대가를 치른다는 허상으로 다른 사람을 미혹하거나 복을 받기 위한 하나님과의 거래 조건으로 삼는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정직한 사람이 되거나 본분에 충성할 필요가 없고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실행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많이 고생하고 많은 대가를 치르며, 사역을 많이 하면, 그리고 많은 선행으로 덕을 쌓고, 남들이 동조하고 우러러보는 일을 많이 해서 형제자매에게 신뢰받고 추앙받으며 옹호받으면 그 대가로 천국의 복을 받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너무 황당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진리를 판단하고 정죄하며 적대시하고 공격하든, 아니면 늘 사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으로 진리를 대체할 생각만 하든 이런 모습은 모두 진리를 대하는 마귀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어떤 모습이든 마귀의 악한 본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며 대체하는 것은 오직 마귀들만 할 수 있는 짓이다. 오직 마귀만이 진리나 하나님을 대할 때 이렇게 증오하고 판단하며 정죄하고, 오직 마귀만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미혹하고 기만하며 유혹하여 그들이 진리와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오직 마귀만이 어떻게든 사람의 신뢰와 옹호, 동조를 받아내 그들을 매수하고 통제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그로써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의 지위를 차지하려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리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대하는 마귀의 이런 태도에서 그것의 본질이 악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긍정적인 것이나 진리는 모든 피조된 인간이 동경하고 사랑하는 것이며 사람이 아끼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물론 피조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바른길을 가고, 그로써 악을 떠나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으려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구원에 이르려면 진리를 추구하고, 받아들이며 실행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다른 길은 없다. 설사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어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내면 깊은 곳, 사람의 주관적 바람을 보면 진리를 적대시하지는 않는다. 주관적 태도에 있어 사람은 진리를 적대시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진리를 공격하거나 어떻게든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으로 진리를 대체하려 하지도 않는다. 유독 사탄만 그럴 수 있다. 진리를 적대시하는 그의 본질은 큰 붉은 용과 다를 바 없다. 긍정적인 것이나 진리와 관련된 것이기만 하면 사탄은 죄다 부인하고 정죄하며 거부해 버린다. 설령 그 진리가 사탄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더라도 사탄은 적대시하고 증오한다. 본성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마귀에게는 악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진리는 그에게 원수이다. 원수가 무슨 뜻이냐? 영원히 화합할 수 없고 영원히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영원히 동지가 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큰 붉은 용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대단히 증오하고 적대시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욕하기만 하면 사회에서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괜찮다. 도둑질하든 강도질하든, 혹은 음란한 짓을 하든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네가 나쁜 놈들과 한패가 되어 어떤 나쁜 짓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며 바른길을 가는 것만큼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가 너를 체포하고 박해하며 너를 죽이기까지 해서 네가 존재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에게 너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여서 네가 존재하는 만큼 괴롭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너를 멸해서 네가 존재하지 않아야 그의 마음에 승리감, 안도감, 평안함이 깃드는 것이다. 마귀의 부류인 그들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는 큰 붉은 용이 진리를 증오하는 성질과 같다. 네가 만약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며 모든 일을 원칙대로 한다면, 그리고 입장을 가지고 원칙을 고집한다면 그는 네가 눈에 거슬릴 것이고 너를 증오할 것이다. 만약 그가 리더가 되어 권력을 쥐게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트집을 잡아 너를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네게 죄를 뒤집어씌워 정리해 버릴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모두 그에게 배척당해서 흐리멍덩한 얼간이나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한 사람만 교회에 남겨지면 그는 아무런 위협도 없어 안전하니 이제 좀 살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마귀의 부류는 진리를 적대시할 뿐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도 적대시한다. 본성이 악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귀에게 정죄되고 배척당하며 괴롭힘을 당하면 “그에게 미움을 산 것도 아닌데 왜 저를 눈에 거슬려할까요?”라고 한다. 어리석은 말이 아니냐?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사람을 분별할 줄도 모르는 게 아니냐? 그러면 큰 붉은 용이 그리스도인을 체포하고 박해하는 것이 그들이 법을 위반하고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겠느냐?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정치 활동에 참여해서 그들을 전복시켜 정권을 탈취하려 했기 때문이겠느냐? (모두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우리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들에 반대하거나 그들을 폭로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그들의 정권을 탈취하려 정치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탄압하고 체포하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을 숭상하고 경배하기 때문에 그들이 증오하는 것이다. 그들은 네가 자기를 배신했다고 생각한다. 네가 그들을 따르지 않고 경배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순종하지 않아서 너를 증오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너를 탄압하고 소멸시켜서 너를 없애겠다는 목적을 달성하려 하는 것이다. 악마인 그들은 진리를 적대시하는 본성 본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네가 하나님을 따르면 너를 적대시하고 증오하며 어떻게 해서든 너를 괴롭힐 것이다. 너를 없애고 하나님 곁에서 빼내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은 너를 그다지 적대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너를 짓밟고 패괴시키며 희롱하고 조종하는 것은 여전할 것이다. 그런데 네가 그들을 경배하고 따른다면 그들은 기뻐할 것이고 너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너 역시 그들과 함께 매장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탄을 경배하는 사람치고 말로가 좋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사탄의 본성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탄의 족속인 적그리스도 부류가 진리와 하나님을 왜 그리 적대시하겠느냐? 그들의 본성 본질이 얼마나 악한지 말해 보아라! 그들은 진리와 하나님의 역사, 그 모든 긍정적인 것이나 올바른 주장, 그리고 행동 방식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반감을 품고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능동적으로 악행을 저질러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데다가 온갖 유언비어와 황당한 논리를 퍼뜨려 진리와 긍정적인 것을 정죄한다. 이 같은 악인도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으려 하나님 집에 숨어 들어오지만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에 드러나 도태된다. 예를 들면 책망과 훈계를 받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잘못을 저질러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정상인은 스스로 반성할 줄 안다. 나쁜 속셈이나 패괴 성품 때문에 저지른 잘못이라면 진리를 구해 해결하고, 자질이 떨어져서 일을 꿰뚫어 보지 못했더라도 해결의 길을 능동적으로 찾을 수 있다. 자질이 좋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구해 지도를 받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양심과 이성의 인도나 규범을 통해 책망과 훈계를 올바로 대할 것이다. 하지만 마귀의 족속은 책망과 훈계를 어떻게 대하더냐? 마귀 자체가 진리를 적대시한다. 하지만 그의 사악한 본성 때문에 절대 적대시만 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진리를 정죄하고 진리에 대적하며 진리를 모독할 것이다. 따라서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그는 온 힘을 다해 변명하고 진리를 부인할 뿐 아니라 자기를 책망하고 훈계한 사람을 공격하고 정죄할 것이다. 그러고는 “하나님을 믿는 건 너무 어려워요. 우리처럼 자질이 떨어지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 쫓겨날 겁니다. 하나님 집 식구가 되는 게 참 쉽지 않네요!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살길이 없어요. 남들에게 괴롭힘당할 수밖에요. 사람들이 우리를 아무리 희롱해도 참아야 하죠. 누군 자질이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졌나요? 자질이 떨어진다고 아랫사람처럼 지내야 하다니요!”라는 말을 퍼뜨린다. 그는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를 반성하여 인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행 원칙이나 실행의 길을 구하여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가 정말 자질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자신의 원래 조건을 바탕으로 최대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충성을 바치겠느냐?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겠느냐? 그는 진리를 적대시하기 때문에 절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판단하고 헐뜯는 일에 더욱 몰두하는 것도 모자라 자기를 책망하고 훈계하는 사람을 속으로 몰래 저주할 것이다. ‘흥, 오늘 이 몸의 심기를 건드렸겠다? 언젠가 뜨거운 맛을 보여주지! 내 자질이 떨어진다고? 내가 하나님을 믿은 지가 몇 년인데. 이제 갓 하나님을 믿은 주제에! 이 몸을 마땅찮게 보다니, 언젠간 뼈도 못 추리게 해주겠어! 각오하라고!’ 보아라. 책망과 훈계를 당할 땐 미소를 머금고 잠자코 있지만 마음속은 분노와 증오, 저주로 가득하다. 어떤 사람은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수시로 원망하고 공격하며 판단한다. 책망과 훈계를 적대시할 뿐 아니라 자기를 책망하고 훈계하는 사람을 능동적으로 공격하기까지 한다. 자기를 책망하고 훈계하는 사람과 끝장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 몸집이 왜소해서 유약해 보이는 여자가 있었는데 정말 어떤 사람이 자기를 책망하자 발끈하며 말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고생하기가 어디 쉬운 줄 압니까? 제가 마땅치 않나 본데, 왕년에 제가 복음을 전할 땐 당신은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늙었다고 얕보나 본데, 잘 들어요! 어림도 없어요! 가서 물어보라고요. 이 몸이 누구한테 져본 적이 있는지.” 이런 성품을 가진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럴 리 없다. 그는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자기를 책망하고 훈계한 사람을 저주한다. 너무 악랄하지 않으냐? 사탄, 마귀의 부류는 괴상하고 능글맞으며, 교활하고, 간사하다. 그들은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한다. 자신의 악행이 탄로나 제명되고 출교당해 복받을 가망이 없어지면 그들은 절대 솔직하거나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고 술수를 써서 반항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리더 일꾼이 자기를 괴롭힌다는 거짓말을 지어내 자기를 위해 나서달라고 사람들을 선동하면서 의도적으로 교회 사역을 교란한다. 또 순종하는 척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 집이 저를 어떻게 대하든, 설령 저를 B조로 쫓아내거나 제명하더라도 저는 한결같이 본분을 이행하겠어요. 저는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언제까지나 저는 이 도를 부인하지 않고 본분을 포기하지 않겠어요.” 그는 거짓된 낯짝으로 사람들을 기만하여 자신이 마치 회개한 것처럼, 하나님 집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든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본분을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사실 그는 너를 속이고 농락하는 것이다. 그는 ‘훗! 나를 이용해 봉사하게 할 생각을 하다니. 어림없지! 내가 당신한테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건 다 형식적인 거야. 당신들을 가지고 논 거라고!’라고 생각한다. 그는 겉으로 제법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모습을 보여서 사람들이 자기가 본분을 이행하길 원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다 네가 정말 그에게 이행할 본분을 안배하면 그는 건성으로 임하면서 잘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너를 속인다. 심지어 너와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려서 그에게 맡겨야 할 일이 있는데도 열흘이 넘도록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한다. 일부 우둔한 사람들은 분별하지 못한 채 답답해한다. ‘그때 대답할 땐 본분을 이행하고 싶다며 안달이었는데. 거짓말 같아 보이지 않았어. 그런데 왜 지금은 그림자도 안 보일까?’ 내가 진실을 알려주겠다. 그는 사기꾼이며 마귀다. 마귀의 부류가 본분 이행을 무엇이라고 여기느냐? 하나님 집이 자기를 이용해 봉사하게 한다고, 자기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본분 이행을 대하는 마귀 부류의 마음가짐이다. 네게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고작해야 특정 분야의 업무나 조금 알 뿐이다. 하나님 집에 그 분야의 사역이 필요하다 한들 기껏해야 그 본분을 이행하기에 적합한 정도이다. 그 본분 이행을 통해 너를 판단하고 네게 본분 이행을 요청하는 것은 너를 높여주는 것인데 네가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은혜도 모르는 것이다. 마귀의 족속은 이토록 어처구니가 없다. 그가 본분 이행을 요청해서 교회가 사역을 안배해 주었더니 그는 그것을 보고 하나님 집이 자기를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네가 정말 교회에 이용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는 네게 행운이냐 불행이냐? (행운입니다.) 네게 화냐? 복이냐? (복입니다.) 왜 복이라 하느냐? (사람이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 것이기 때문에 복이라고 합니다.) 이 측면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높여준 것이다. 무엇을 높여준다고 하겠느냐? 네가 가지고 있는 업무상의 특기가 하나님 집 사역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네게 기회를 준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고, 구원받을 기회를 준 것이다. 이는 네가 복을 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네가 이 기본 조건을 갖추어야 차츰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여 구원에 이를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네게 쓸만한 점이 하나도 없다면 너는 하나님 집에서 폐물인데 하나님 집이 너를 거저 먹여 살리겠느냐? 하나님 집에 네가 이행할 수 있는 본분이 없다면 너에게는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정당하고 합리적인 매개와 기본 조건이 없는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 집에서 어떤 구체적인 사역에서도 유용하게 쓰이지 못한다면 이는 너와 하나님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기회가 없을 것이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려는 그 어떤 단계나 시기상의 사역을 받아들일 기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네게 구원받을 기회나 조건이 더 남아 있겠느냐? 만약 네게 이용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이 말이 이방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것이다. 아마도 ‘이용’이라는 말이 그들에게는 부정적인 단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 집에서 너를 누가 이용하는지 생각해 보아라. 이런 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너를 이용한다면 이는 네가 하나님에게 봉사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네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너를 높여주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회를 준 것이고, 하나님이 사람을 높여준 것이니 좋은 일이다. 하나님이 너를 존중하고 네게 기회를 주고자 한다는 증거다. 그러니 네가 하나님에게 이용되는 게 망신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손해라도 보는 일이겠느냐? 네게 손해겠느냐? 네가 인격을 상실하고 존엄을 잃게 했느냐? 그렇지 않다. 너는 얻은 게 더 많다. 이로 인해 너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에게 구원받을 기회가 생겼다. 조금도 손해가 아니라 대단한 득을 본 것이다. 하지만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는 그는 사탄이 자기를 아무리 이용하고 아무리 패괴시켜도 군말 없이 흡족해한다. 만약 정부 관료가 자기를 이용한다면 행운이라고, 일이 잘 풀린다는 생각에 그는 분별하지 않고 반항하지 않으며 대적하거나 거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본분을 이행할 사람으로 자기가 발탁되면 그는 그것이 봉사이자 목숨을 내건 일이라고, 교회가 자기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특정 분야의 업무 기술을 조금 알고 있어서 교회가 그녀를 해당 분야의 사역에 안배하면 그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기는커녕 엄청나게 반감을 품는다. ‘나를 이용하시겠다? 어림도 없지. 내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알고? 이 몸은 이 나이 먹도록 누구한테 이용당해 본 적이 없어. 날 이용한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고!’ 그렇게 조급하게 패괴될 것 없다. 본분을 이행하고 싶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본분을 이행하기 싫으면 하나님 집을 떠나라. 하나님 집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언제든 괜찮으니 가고 싶은 데로 떠나라.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리를 거저 베풀어 주었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고 생명을 공급해 주었다. 네게 한 푼이라도 바라더냐?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에게 이용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양심이 없고 은혜도 모르는 게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너를 이용해서 뭐 하느냐? 그렇지 않으냐? 네 목숨은 하나님이 준 것인데 널 이용해서 안 될 게 있겠느냐? 그럴 자격도 없느냐? 업무 좀 아는 게 대수더냐? 하나님이 굽실대며 공손하게 네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 너를 보좌에 받들어 모셔야겠느냐? 그래야 네 기분이 좋겠느냐? 정상 인성이 없는 사람은 본분 이행을 대할 때 올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이런 말만 늘어놓는다. “하나님 집이 절 이용하고 있는데, 전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요. 바보들이나 하나님께 기꺼이 이용당하죠!” 보아라. 정말 부정하고 악한 생각이 아니냐?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어렵지 않다. 제명하든지 B조로 보내든지 해서 정리하면 그만이다. 이용당할 게 그렇게 걱정되면 왜 아직까지 하나님 집에 붙어 있으면서 본분을 이행하고 싶다고 하느냐? 위선을 떨며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게 아니냐? 이용당할까 봐 걱정되나 본데, 하나님 집은 절대 너를 이용해서 본분을 이행시키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집은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지금은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때이다. 본분을 이행하고 싶은 사람은 남고, 이행하기 싫은 사람은 당장 교회를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마라. 하나님 집은 아무한테도 강요하지 않는다. 기꺼이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며, 본분 이행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사탄의 졸개이다. 본분을 이행해서 복을 받고자 하면서도 이용당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들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는 손해 볼까 봐 걱정만 한다. 늘 하나님 집이 자기를 이용해 잇속을 차려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리 분별도 못하지 않느냐? 네가 무슨 손해를 보았다고 그러느냐? 네가 만약 네 기술로 진리와 구원을 얻으려 한다면, 잘 들어라. 너는 얻지 못한다. 당치 않다. 너는 자격 미달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자 인간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탄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있어야만 사탄의 본성 본질을 지닌 옛사람에서 탈피할 수 있고,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가 있어야만 이 인류가 계속 생존하고 사탄의 운명을 끝낼 수 있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다. 세상 그 어떤 물질의 것이나 사람이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도 바꿀 수 없다. 사람의 목숨으로도 바꿀 수 없는데 하물며 그깟 기술로 바꿀 수 있겠느냐. 진리는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며 하나님 집은 진리나 생명을 파는 곳이 아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생명을 얻을 수 있겠느냐? 오직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종하며 충성과 진심을 하나님에게 바쳐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사탄의 사악한 본질을 지닌 부류의 성품은 몹시 악랄하다. 그들은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할 뿐 아니라 자신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로 진리를 대체하려 한다. 자기를 책망하거나 폭로하는 사람을 증오하고 공격하며 가만두지 않는 모습이 그들의 주된 모습이다. 이런 성품의 본질은 너무나도 악해서 그 어떤 맹수보다도 흉악하다. 호랑이나 사자의 경우 성질은 포악하지만 굶주리지 않았거나 자기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때는 너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해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마귀는 다르다. 네가 설사 그를 상대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지위에 위협이 되기만 하면 너를 가만두지 않고 능동적으로 공격할 것이다. 더군다나 네가 그를 폭로하거나 책망한다면 그는 더더욱 너를 공격하려 할 것이다. 그는 책망과 훈계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고 그 어떤 옳은 말이나 제안도 듣지 않을뿐더러 어떻게든 상대에게 반격해서 전세를 뒤집으려 할 것이다. 모든 싸움과 승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수동적인 태세에서 능동적인 태세로 전환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 규율을 지키지 않고 멋대로 구는데 아무도 어쩌지 못하고, 건드리지도 못한다면, 진리를 교제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책망하고 훈계하면 반항하면서 따지고 든다면, 또 자기를 폭로하는 사람을 증오하고 공격한다면 그가 바로 마귀이다. 어떤 사람은 사역하다가 잘못을 저지르면 아직 아무도 지적하거나 폭로하지 않았는데도 자기가 먼저 선수를 쳐서 어떻게든 핑계를 대며 변명한다. 자기가 사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데는 다 원인이 있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역을 망친 사람이 따로 있다면서 어떻게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해 자기 결백을 주장한다. 그리고 본인의 패괴 성품을 교제하고 해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얘기를 한다는 생각에 무척 예민하게 군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신의 체면을 지키고, 자기 잘못을 은폐하려 하면서 진리를 교제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려 하기까지 한다. 이런 사람은 절대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으며 회개는 더더욱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보다는 어떻게든 자기를 완전해 보이는 사람, 흠 없이 완벽해 보이는 사람, 절대 실수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으로 위장한다. 그가 말실수했든, 용어를 잘못 사용했든, 사역에서 오류나 빈틈을 보였든 아니면 패괴 성품을 표출하거나 자신의 꿍꿍이와 속셈이 발각되었든 그는 조짐이 안 좋으면, 목숨이 위태롭거나 종말이 임하는 등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어떻게든 변명한다. 이것이 그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심지어 그는 허상을 만들어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는 말이나 사람들을 매수하는 말로 주변 사람을 기만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본모습이나 자신의 결점, 흠을 알게 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실상이 발각되는 것 또한 몹시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는 결코 자기 자질이 떨어지고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나 표출된 패괴 성품은 더더욱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를 빈틈없이 철저하게 포장한다.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지키고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자기에 대해 훌륭하고, 흠 없이 완벽한 이미지를 갖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를 인성에 결함이 없는 사람,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며, 실행할 수 있는 사람, 고생하며 대가를 치를 수 있고 아무런 패괴 성품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건 사람이 아니라 마귀이다. 마귀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자기를 진리의 화신, 완벽한 이미지의 대언자로 위장한다. 부정하고 악하지 않으냐? 얼마나 오래 하나님을 믿었든 늘 자기를 완벽한 사람, 아무런 흠도 없는 사람으로 치켜세운다. 설사 소극적이거나 연약한 모습이 있고, 혹은 관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꽁꽁 싸맨 채 절대 표출하지 않는다. 자기를 폭로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증오하고 어떻게 해서든 괴롭히면서 온갖 방식과 술수로 이미지를 만회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변호하려 사람을 미혹하는 마귀적인 말로 시비를 전도시키고 옳고 그름을 뒤섞어서 분별력 없는 사람들을 미혹한다. 이로써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를 바꿔서 자신에 대한 규정을 재조명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부류가 바로 인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진정한 마귀이다. 마귀는 어떤 모습을 보이든, 각종 일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든, 어쨌든 그는 본성이 악해서 진리를 적대시할 것이다. 즉, 그는 내면 깊이 진리나 긍정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법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증오하는 게 그의 본성 본질이니 하나님이 어떤 말을 해도 그는 반감을 품는다. 그런데 너는 그가 반감을 품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겉으로는 그 역시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때문에 각각의 진리를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관점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나 자기 이익과 연관된 일이 일어나면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 집, 진리를 판단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공격하며 그 모든 긍정적인 것을 판단하는 등 자신의 악한 본성을 표출할 것이다. 그 순간 너는 진리를 받아들이길 원한다는 그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그는 내면 깊이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에 반감을 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위장하여 일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바리새인처럼 말이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진리를 적대시하고 판단하며 공격하기만 한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니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을 대충 읽어보고는 사람들에게 한 번 들려주고 만다. 그러다 막상 실제 사역을 할 때는 사역지침이 요구하는 원칙대로 실행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자신의 관념과 상상대로 한다. 심지어 자신의 지위나 명예에 유리해야 실행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명예나 이익, 지위에 불리하면 사역지침을 실행할 수 있는 자질이 있어도 실행하지 않는다. 왜 그러겠느냐? 사역지침을 실행해서 하나님 집이 그렇게 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자기한테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에게만 감사할 것이고, 자신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가 명예와 지위를 얻을 수 없고, 아무런 이득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한 측면의 원인이다. 또 다른 측면의 원인은 마귀에게 진리를 적대시하는 본성이 있어서 무슨 일이든 그는 진리 원칙이 아닌 자신의 야심과 욕망, 본능대로 한다는 것이다. 사탄의 본능이 무엇이냐? 악행을 일삼고 하나님에게 대적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기를 경배하게 한다. 사탄이 교회에 오는 목적은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망치는 것이다. 교회 사역을 혼란에 빠뜨리고 교란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한다. 자기 지위나 명예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며 망칠 수만 있으면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 집이 각지 교회에 매달 복음을 전해 얻은 인원수를 사실대로 정확하게 보고하라고 하면 그가 순순히 그렇게 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든 조작해서 허위로 보고할 것이다. 이번 달에 백 명을 부풀리고 다음 달엔 이백 명을 부풀릴 것이다. 만약 발각되지 않으면 다음에는 몇백 명 더 부풀릴 것이다. 그는 절대 사역지침대로 실행하지 않는다. 어떤 문제에 봉착하든 진리 원칙을 구하기는커녕 도덕적 마지노선도 지키지 않으며 처신한다. 이것이 마귀이다. 네가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 주어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양심적으로 지각하지도 않는다. 양심도 없는 놈이다. 하나님 말씀 서적을 어떤 사람에게 배부하고 어떤 사람에게 배부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에 관한 배부 원칙이 하나님 집 사역지침에 규정되어 있는데 그가 원칙대로 이행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겁니다.) 한 교회를 몇 사람이 세우고, 한 지역을 몇 교회가 세우는지, 한 교구를 몇 지역이 세우고, 각급 리더를 세우는 조건과 원칙은 무엇인지 사역지침에 규정되어 있는데 그가 원칙대로 실행하겠느냐? (실행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하나님 집 사역이나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 도움이 되는 그 어떤 사역도 하지 않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사역을 잘해서 형제자매의 생명이 자라나 그들이 나를 분별한다면 내가 설 자리가 있을까? 내 지위를 보전할 수 있겠어? 그러니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고! 내 마음대로 이행해야지. 하나님 집이 교회 하나를 오십 명이 세우라고 하면 나는 팔구십 명이 세우게 하고 말 거야. 교회 리더 선거는 어떤 실행 방식이 나한테 유리한지가 중요해. 선출된 교회 리더가 마음에 안들면 내 말을 잘 듣고 내게 복종하는 사람을 리더 자리에 앉히겠어.’ 그가 이렇게 사역하는데 정상적인 교회 생활이 가능하겠느냐? 천년만년이 지나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교회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 빠른 발전이 있겠느냐? 새신자가 속히 뿌리 내릴 수 있겠느냐? (그러지 못합니다.) 사탄의 족속인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는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 유익한 사역이라면 그게 뭐든 이행하지 않는다. 정신없이 바쁜 그가 뭘 하고 있는지 보아라. 그는 오로지 자신의 명예나 이익, 지위를 위해 행동한다. 자기에게 득이 되기만 하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제멋대로 한다. 그리고 자기가 품고 있는 모든 야심과 욕망을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최대한 실현하려 한다. 그는 절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교회 생활,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 교회의 질서, 하나님 집의 복음 사역 그리고 각 사역의 진전 여부, 순조롭게 진행되는지 여부는 모두 그의 관심 밖이다. 예를 들어 그에게 교회가 서적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부해야 하는지 알려주면 그는 ‘뭘 그렇게 까다롭게 해. 대충 배부하면 되지.’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교회에 서적을 보관하는 곳이 안전한지 물어보면 그는 “안전하든 말든 제 알 바 아닙니다. 어쨌든 서적을 둘 곳이 있으면 된 거죠.”라고 대답한다. 보아라. 위에선 정책을 세우고 밑에선 대책을 세우는 꼴이다. 그는 하나님 집의 그 어떤 사역지침이나 구체적인 실행 원칙도 실행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생각이나 방식대로 이행한다. 이것이 자기 방식으로 진리를 대신하는 게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선민이 이런 마귀의 손에 넘어간다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마귀가 제멋대로 구니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가 두목이자 터줏대감이며 주인이자 절대자이니 말이다. 하나님의 선민은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하려야 할 수 없고, 참도에 빨리 뿌리 내리려야 내릴 수 없으며, 각 진리에서 속히 발전을 이루려야 이룰 수 없다. 바람직한 일은 하나도 못 하는 것이다. 어떤 교회에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교란하는 일이 벌어지고, 혼란한 상황이 나타난다면 이는 그 교회의 리더가 실제 사역을 하지 못하는 허수아비라는 증거다. 처음 믿기 시작한 형제자매가 아직 뿌리도 못 내린 채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떠나고, 교회 생활도 혼란에 빠진다면 이는 거짓 리더가 실제 사역을 하지 않은 탓이다. 설마 거짓 리더가 실제 사역을 할 시간이 없겠느냐? (아닙니다.) 이런 본질적인 사역을 하고자 한다면 그에게 남아도는 게 시간이다. 그런데도 그가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마귀의 악한 본성이 드러난 것이다. 그는 오직 교회가 평안할까 봐 걱정이다. 교회가 난장판이 되기만을, 교회 사역이 혼란과 침체에 빠지길, 교회의 모든 사람이 악인과 적그리스도에 순종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모두가 적그리스도와 악인, 마귀에게 미혹되어 하나님을 따르지 않아야 좋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의도에 꼭 맞아떨어지니 기뻐하고 흡족해한다. 형제자매가 정상적으로 교회 생활을 하고 정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교제하고, 교회 생활을 할 때마다 어느 정도 수확이 있는 것을 보면 그는 불편해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늘 수확과 생명을 얻어서 서서히 성장할 경우 그를 분별하고 거부할 테니 그러면 그의 지위를 보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바라는 결과가 아니다. 그는 교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자기가 한 수 선보일 기회나 실력을 발휘할 여지가 생기고 물 만난 고기처럼 혼란 속에서 승리를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마귀의 간계가 아닐 수 없다! 그 어떤 진리 원칙이나 구체적인 사역지침도 마귀가 있는 곳에서는 실행되지 않는다. 형제자매가 사역지침을 알지 못해 본분을 이행할 길이 없고, 교회도 혼란에 빠졌는데 마귀의 족속인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는 이를 해결하기는커녕 내심 기뻐한다. 심지어 어떻게든 화근을 만들고 또다시 마귀나 적그리스도를 리더로 안배해서 교회를 다시 혼란에 빠뜨려 놓고는 더더욱 기뻐한다. 큰 붉은 용이 하는 짓과 다를 바 없지 않으냐? 큰 붉은 용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오직 당의 말을 듣고 당을 따르는 것만 허용한다. 그러면서 놀고먹으며 죄를 짓는 건 괜찮단다. 어떤 죄를 저지르든 제재하지 않는다. 사회에 건달, 부랑자, 매춘부가 늘어나고 사람들이 죄 속에서 죄의 향락에 빠져 살면 아무도 국가의 중요한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고 아무도 중국 공산당이 얼마나 많은 악행을 일삼는지 알아보지 않게 된다. 이를 관심 돌리기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중국을 통치한 큰 붉은 용의 가장 강력한 술수는 바로 온갖 사악한 조류와 사악한 사상 및 관점을 각국으로부터 국내로 들여오는 것이다. 그 후로 중국인은 성적으로 완전히 해방되었다. 사람의 사상이 개방되고 성에 대한 견해도 개방되었다. 온종일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만 하니 국민의 삶이 어떻겠느냐? ‘식욕과 성욕은 본성이라.’ 온 국민이 이 늪에 빠지니 정치와 지도자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지고 둔감해진다.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의지가 약해진다. 남자는 사업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고, 여자 또한 현모양처가 되겠다는 마음이 사라진다. 바른길을 가지 않고 정당한 일을 하려 하지도 않는다. 아무도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큰 붉은 용에게 맹종하니 이렇게 큰 붉은 용의 정권이 공고해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지배하기 쉽기 때문이다. 지배하기 쉽다는 게 무슨 뜻이겠느냐? 큰 붉은 용이 아무리 국민을 억압해도 군말하지 않고 참는다는 말이다. 현재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중국의 영화나 인터넷 영상 중 십중팔구가 모두 정욕이나 남녀 관계에 관한 내용인 걸 보아라. 이는 사람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데 그들은 어린이나 미성년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서양인들은 이런 측면을 엄격하게 관리해서 어린이나 미성년자를 보호하고 그에 대한 예방 조치를 마련해 놓았다. 현재 중국의 청소년들이 바로 이런 사회 환경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아직 어린 나이에 머릿속이 온통 정분이나 사랑, 성, 결혼과 같은 것뿐이니 너무나도 끔찍하다! 인간이 만약 이런 사회 환경 속에 살면서 사회 환경의 영향과 교육을 통해 그들의 정상적인 생리적 욕구가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타락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사람의 내면은 사악하고 타락하게 될 것이다. 사악하고 타락한 모습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이 이런 면에서 염치가 없거나 이런 측면에 대해 생각하는 염치의 기준이 낮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양심과 이성이 있어서 마음속에 넘어서는 안 될 선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 양심과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염치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이런 사회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생긴 그늘이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이제는 조금씩 벗어버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회 환경 속에서 자라난 사람의 경우 긍정적인 것, 정의, 바른길에 대한 내면의 의지나 결심, 혹은 동경이 다소 훼손되어 있다. 훼손되어 있다는 게 무슨 의미겠느냐? 그런 사회 환경의 영향과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긍정적인 것에 대한 동경, 빛과 정의를 추구하겠다는 결심, 끈기, 의지가 그 어떤 풍파나 좌절, 패배도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무척 약하다는 말이다. 마치 마약을 했던 사람처럼 말이다. 마약을 끊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마약의 독성이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좌절과 실패를 겪어 낙심하고 소극적으로 변하면 자기 신경을 마비시켜 생활의 여러 어려움에서 도피하고자 다시 마약에 손댈 가능성이 있다. 즉, 그가 단번에 영원히 마약 중독을 끊어내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중간에 재발해서 예전으로 돌아가 살면서 직면하는 모든 문제를 똑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것이다. 그런 사회 환경에서 자란 집단의 경우, 긍정적인 것과 빛을 동경하는 의지가 사탄에게 훼손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진리 추구에 대한 의지가 무척 약하다. 무척 약하다는 게 무슨 의미겠느냐? 비록 하나님을 따르긴 하지만 사회 조류의 애정관, 행복관 그리고 사악한 조류의 온갖 주장에 영향받을 수 있고 나아가 이것들에 얽매이고 속박받을 거란 말이다. 시도 때도 없이 배우자를 찾고 결혼 생활, 둘만의 세상을 꿈꾸며 세상의 사악한 조류로 돌아가 정욕을 방종하려 할 것이다. 이들은 너무나도 쉽게 다시 사악한 사상과 관점에 젖거나 조종당한다. 특히 사랑이나 결혼에 관한 영화를 보면 마음이 연약해지고 결혼과 사랑 속에서 삶을 즐기는 이방인을 부러워하면서 진리 추구나 본분 이행에 대해 의욕을 잃는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이런 실상을 보면 천신만고를 겪으며 지금까지 하나님을 따랐다고 해서 모두가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자기가 이미 온 힘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고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며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탄이 사람을 훼손시키고 남긴 후유증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위험하다.

계속해서 사탄의 악한 모습에 관해 교제하겠다. 마귀의 악한 모습은 너무나도 많다. 없는 데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떤 집단에서든 마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주로 진리를 바탕으로 마귀의 각종 악한 모습을 판단하고 마귀의 악한 본질을 규정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진리를 대하는 마귀의 각종 태도, 즉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며 대체하는 모습을 바탕으로 보면 이런 부류의 본성 본질은 악한 본질이고 마귀의 본질이다. 그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절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절대 진리를 긍정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왜 진리를 긍정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느냐? 그는 인성이 없는 마귀이기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기관이 없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겠느냐? 사악한 일, 하나님과 진리를 적대하는 일, 진리를 공격하고 대체하는 일이다. 이는 그의 사명이자 본성 본질에 의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니 결국 이런 부류는 교회에서 제명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 집에는 그들의 자리나 그들이 이행할 만한 본분이 없다. 그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 집에서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최소한 주관적으로는 진리를 적대시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진리를 부인하거나 하나님을 판단하고 공격하며 모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며, 의도적으로 진리를 대체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일도 당연히 없을 것이다.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며 대체하는 사탄, 마귀의 악한 모습은 사탄이 악한 본질을 지녔다는 것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그들은 교회에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선민이 점점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싫어하고 적대시하는 각 부류를 분별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마귀 부류의 본성 본질은 점점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에게 점점 뚜렷하고 정확하게 인식되고 분별 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점점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고, 점점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지도, 조화롭게 협력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결국 점점 도태되는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너희는 이런 부류가 도태되길 바라느냐? (바랍니다.) 그들이 점점 도태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첫째, 대다수 하나님 선민의 분량이 성장하여 마귀의 부류를 분별하게 되었고, 그들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형제자매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증거다. 둘째, 마귀의 부류가 한 짓이 점점 드러나 그들의 본성 본질이 폭로된다. 이로써 사람들이 그들의 봉사가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 그들이 교회에서 방해와 교란만 일으킬 뿐 바람직한 역할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을 도태시키고 제명하면 교회 사역이 정상적으로 진전되게 된다. 마귀의 부류는 인성이 없으니 짐승만도 못하다. 주인의 말을 들을 줄 알아서 주인의 수고를 덜어 주려 열심히 일하는 짐승도 있다. 짐승조차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이성을 마귀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네가 그를 이용해 본분을 이행하게 하려면 그를 감독할 사람까지 안배해야 한다. 그가 순순히 봉사한다면 좋겠지만, 그는 제대로 봉사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그를 감독한다고 해도 결국 지켜보지 못할 때가 있게 마련이다. 잠깐 한눈팔거나 허점을 보이기만 하면 마귀가 그 틈을 파고들어서 교회 사역에 혼란을 일으켜 골칫거리를 안겨 줄 것이다. 네가 몇 사람을 시켜 그를 감독하게 해도 결국에는 뒷수습할 사람을 더 구해야 한다. 그러니 너는 그를 이용해 본분을 이행하게 하면 손실이 막대해 득보다 실이 크다고, 그를 쓰면 너무 애를 먹고 분통 터진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일하는 것을 짐승이 일하는 것이라고 여겨서 정상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절대 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다 결국 이런 사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짐승이자 마귀이고, 짐승과 마귀는 절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된다. 마침내 이 사실을 간파하고 나면 두 번 다시 마귀를 쓰지 않기로 결심하고는 그를 정리해 버릴 것이다. 짐승이나 마귀가 사람이 될 수 있느냐? 불가능한 일이다. 큰 붉은 용이 칼을 내려놓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본성이 마귀라서 사람을 죽여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마귀는 사탄과 한패다. 너는 큰 붉은 용을 짐승이나 마귀 보듯 해야 마땅하다. 네가 만약 마귀를 사탄이나 큰 붉은 용과는 다르게 바라본다면 이는 네가 아직 마귀의 본질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네가 그를 여전히 사람으로 대하면서 그에게 인성과 쓸모가 있으니 아직 그를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회를 준다면 너는 어리석은 자이다. 또다시 그에게 속아 넘어갔으니 너는 이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면 마귀는 완전히 제명해야 한다. 인정사정 봐주어서는 안 된다! 자, 그럼 오늘 마귀의 악한 모습에 관한 교제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다시 보도록 하자!

2024년 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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