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3)
지난번에 우리가 교제한 주제는 ‘어떻게 사람을 분별하고 바라보아야 하는가’와 관계가 있었다. 이 주제 역시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조금은 특수해서 사람의 앞날과 운명이라는 중대한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다른 측면의 진리를 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이는 몇몇 사람들에게 그다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으며, 그들은 이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후 마음속에 굉장히 큰 파장이 일 것이다. 반면, 무감각한 사람에게는 그 파장이 다소 작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이 주제에 관해 교제하고 나면 하나님의 선민들은 사람을 분별하고 각종 일을 간파하는 데 얼마간 도움을 받아서 어느 정도 식견이 넓어지고 분별력이 생기게 된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난번에 짐승에서 환생한 사람의 모습과 특징들에 관해 교제하였다. 그렇다면 이 부류의 주된 특징에는 어떤 게 있었느냐? (지난 시간에는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의 네 가지 특징에 관해 교제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치우치게 받아들이는 것, 두 번째는 대단히 무감각한 것, 세 번째는 굉장히 멍청한 것, 네 번째는 몹시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이 네 가지가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의 본질적인 특징들이다. 그렇다면 너희는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의 본질적인 모습이 과연 무엇인지 정리해 보았느냐? 이 부류의 겉모습이나 언행, 인성 등 각 측면의 모습을 볼 때, 위 네 가지 특징과 관련된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그들은 진리를 대할 때, 그리고 자기 인성의 양심과 이성을 대할 때 어떤 특징을 보이겠느냐? 물론 이런 것들은 대체로 치우치게 받아들이고, 무감각하며, 멍청하고, 어리석다는 네 가지 특징에 포함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너희가 실생활에서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모습들을 바탕으로 이 네 가지 특징을 구체적으로 해석해 보자. 너희가 알고 있는 모습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느냐? 예를 들어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는 몹시 무감각하다. 네가 단순히 상징적인 예만 들어서 그의 문제를 지적한다면, 그는 그 문제를 몇 번이고 지적받아도 알아듣지 못한다. 네가 “이 일은 당신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라고 확실하게 말해야 그는 그것이 자기에 관한 말임을 의식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와는 상관없는 남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고 스스로 굉장히 훌륭한 줄 안다. 이것이 무감각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콕 집어서 말해 줘야 그나마 반응을 보이는데, 그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느냐? (그는 반응이 굼뜨고 하나님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문제를 지적해 줘도 정작 그가 깨닫는 것은 하나의 도리나 규례일 뿐입니다. 그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모르니, 긍정적인 진입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해 능력이 없는 것이다. 무감각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남들이 하나의 내적 상태를 지적하면 그는 그것이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자기가 과연 그런 내적 상태를 지니고 있는지, 자기에게 정말 그런 문제가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한다. 설사 자기가 며칠에 한 어떤 행동이나 말, 모습이 지적받고 있는지 안다고 하더라도 그가 이해하는 것은 그저 하나의 일, 하나의 주장, 한마디 말에 불과하다. 그러고는 무식하게 외워 버린다. 그렇게 외우고 난 뒤에는 규례를 지키며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규례를 평생 지킨다. 누가 교제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데, 소 열 마리가 끌어당겨도 그를 돌려놓을 수는 없다. 중간에 시간과 지리적 여건, 사람과 일 등에 변화가 생겨서 이 일은 이제 예전처럼 하면 안 된다고, 그래서 방법과 전략을 바꿔야 하지만 사실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고 알려주어도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제가 몇 년 동안 이렇게 실행해 왔는데 무척 좋았어요. 오래전에 리더 일꾼이 교제해 준 대로 실행하고 있는 건데 왜 바꿔야 하죠?” 그는 근거까지 제시하지만, 사실 자기가 몇 년 동안 규례를 지켰는지 스스로도 전혀 알지 못하고 의식하지도 못한다.
치우친 측면의 특징을 볼 때,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는 대부분 치우친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사고방식도 정상인과 다른데, 별나고 이상한 생각을 하고, 심지어는 예상을 뛰어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에 문제를 그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기에, 그들의 생각에 경악할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대체로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생각하지만,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는 매우 이상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 항상 기이하고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깜짝 놀라게 된다. 만약 네가 그의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고찰한다면, 그 사고방식이 매우 이상하고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부류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보니 실생활에서 본분을 이행하든, 사람들과 어울리든, 혹은 어떤 환경이나 사람, 일을 만나든, 괴상한 생각을 해서 많은 사람과 화합하지 못한다. 마치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생명체가 아닌 다른 세상에 사는 존재 같으니, 너는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문제에 관해 생각할 때 종종 정상 인성의 사고 범위를 벗어나고 정상적인 사고의 궤도에서 이탈한다. 그 결과, 모두가 문제를 생각하는 그의 방식이나 입장, 원칙이 무척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문제를 다 같이 고찰하거나 교제하는 자리에 그가 함께 있는데, 많은 사람이 분별하지 못하고 주관이 없거나 진리 원칙을 깨닫지 못했다면, 늘 그의 치우친 생각과 관점으로 인해 사고가 정체되거나 정상적인 토론이 교란당하고 끊어질 것이다. 결국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토론이 진행됨에 따라 그가 제시한 관점이 바른길에서 벗어나 있으며 객관적이거나 실제적이지 않고 무척 별난 데다가 심지어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몹시 괴상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정상인은 함께 이야기하면 할수록 점점 열기가 더해지고 내용이 이해되며 주제가 심화한다. 그런데 그가 끼어들기만 하면 엉뚱한 이야기를 해대니 다른 사람들은 할 말이 없어지며, 모두 그가 하는 말이 너무 괴상하게 느껴져서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게 된다. 대화의 주제가 그렇게 끊기고 마는 것이다. 이 부류는 비록 ‘특별하고 남다른’ 생각과 관점을 지니고 있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제시하는 관점과는 항상 차이가 있다. 그의 생각과 관점은 정상 인성의 사고 범위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논의의 대상이 무엇이든 남들에게 도움이나 유익이 되지는 않고 방해, 교란, 훼방, 파괴의 성질만 띤다. 그가 말하지 않으면 모두의 생각이 더 뚜렷해지니 차라리 낫다. 그런데 그가 끼어들어 제안만 했다 하면 모두가 그 말을 듣고 교란당하고 방해를 받으니 논의 중인 주제가 어그러져 버린다. 정말 자질이 좋은 사람은 문제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수 있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 문제 해결의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다. 최소한 다른 사람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 의미 있고 값진 제안을 할 수 있다. 그 후 모두가 합당하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면 자질이 좋은 사람의 제안은 요점을 잘 파악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일을 밝히 알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다. 만약 그가 말하지 않는다면 사흘 동안 다 같이 씨름해도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똑같이 특별하고 남달라서 다른 사람의 관점과 다르지만, 자질이 좋은 사람이 제시하는 관점은 사람들이 문제의 본질을 간파하는 데 도움을 주고, 막막할 때 올바른 방향과 실행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치우친 부류는 다르다. 그의 관점과 치우친 사고방식은 언제나 사람들이 일에 관해 토론하거나 정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 훼방을 놓고 교란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어느 교회, 어떤 분야의 사역이든 짐승에서 환생한 치우친 부류가 함께하면 교란과 방해가 생기기 쉽다. 또 모두가 그 사람을 끔찍하게 싫어해서 ‘당장 그를 쫓아냈으면 좋겠어. 사람을 너무 성가시게 하잖아! 맨날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면서 자기가 되게 대단한 줄 알지. 사실은 다 궤변인데 말이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처음에는 그를 숭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눈치를 채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은 딱히 고견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온종일 여기에서 허세만 부리고 대단한 사람인 척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가 제시하는 관점이나 생각은 너무 엉터리에요. 처리해야 할 문제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요.” 사람들은 이렇게 그를 싫어하고 그에게 반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런 부류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기술적 업무의 성격이 강한 사역들을 책임지거나 중요 사역들을 담당할 경우, 얼마 안 가 사람들의 반감을 사고 만다. 그가 제시하는 관점과 요구는 늘 아리송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감을 잡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평범하게 따르는 사람이라서 지시와 명령을 듣기만 한다고 해도, 그가 하는 일에는 늘 오류가 있어서 리더 일꾼과 주변 사람들이 체크하고 감독해야 한다. 자칫 한눈이라도 팔았다간 실수가 나오니, 다른 사람이 늘 그를 도와 바로잡고 보완하며 수습해 주어야 한다. 결국에는 이 부류가 구제 불능이란 것을 모두가 깨닫고 “그는 여기에서 교란만 일으키니 모두가 편할 날이 없네요. 그를 내보내면 안 될까요? 그에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고 해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처음에는 그에게 인내심을 갖고 ‘모두가 형제자매야. 다들 분량이 크지 않고 진리도 깊이 깨닫지 못했잖아. 서로 붙들어 주고 도와주어야 해.’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분량이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질과 이해력이 문제라는 것을 간파하게 될 것이다. 그는 얄팍하게 이해하고 유치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치우치게 받아들인다. 일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생각과 관점이 모두 정상적인 사고 범위에서 벗어나다 보니 항상 다수의 의견과 충돌하는 것이다. 그는 남들의 말이 옳아도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 말해도 듣지 않는다. 그가 옳다고 단정 지은 것은 소 열 마리를 데려다가 끌어당겨도 돌려놓을 수 없다. 그는 사리 분별이 되지 않기에, 그가 사상과 관점 속에서 좋다고 여기는 것은 정상 인성의 사고를 가진 사람의 눈에 치우치고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관점은 유치하고 저급하며 무가치하다. 또한, 그것은 결코 정상 인성의 사고에서 나올 수 없는 생각과 관점이다. 그렇기에 이 부류는 많은 사람과 화합하지 못한다. 화합하지 못하는 이유는 패괴 성품 때문이 아니며, 생활 습관이 다르거나 말이 통하지 않아 생기는 거리감 때문도 아니다. 물론 그가 악행을 저지르거나 괴상한 행동을 해서도 아니다. 주요 원인은 그의 인성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 때문이다. 즉 치우침, 무감각함, 멍청함, 어리석음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과 화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악인이나 적그리스도 부류 역시 많은 사람과 화합하지 못하긴 매한가지지만, 똑같이 화합하지 못한다고 해도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와는 본질이나 현상 면에서 차이가 있다.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다른 사람과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본질이 악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는 정상 인성의 사고와 지능, 양심과 이성을 갖추지 못했기에 남들과 화합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상인은 그와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오직 원칙적인 것과는 무관한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대화의 범위가 무척 협소해진다.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는 어쨌든 악마가 환생한 부류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과는 차이가 있다. 그도 생물의 한 부류이니 큰 원칙과 무관한 상황에서 일상생활이나 본분을 이행할 때는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교제하며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원칙과 관련될 때, 혹은 길을 택하는 것과 관련될 때면 많은 사람과 도무지 맞는 구석이 없으니 함께 지낼 방법이 없다. 예를 들어 네가 이 부류와 일상적인 주제에 관해 대화한다고 해 보자. 어떤 밥과 반찬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요리해야 맛있는지 등이나 고향 일에 대해 대화하는데, 대화가 진행될수록 말이 많아지고 열기를 띤다면, 이것이 서로 합한다는 의미겠느냐? 두 사람이 같은 부류라는 의미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서는 알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이유와 관점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사상, 관점, 진리 원칙, 인생관, 가치관, 사람이 걸어가는 길, 추구하는 바 등의 주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 두 사람의 사상과 관점, 사고방식이 점점 갈려서 서로 다른 궤도에 오르게 되면 대화를 이어가지 못한다.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그가 치우치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 처음에는 꽤 똑똑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이야기가 모두 글귀나 도리일 뿐이고 그가 거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에 대한 마음속 감정이 전과 달라진다. 그렇게 친밀하지 않아지고 거리감이 생겨 유형이 구분되는 것이다. 보아라. 너희는 가정생활이나 자신의 과거, 놀고먹는 것, 취미, 관심사 등 일상의 범주에 속하는 주제에 관해서는 같이 대화할 수 있지만, 사상 관점, 진리 원칙, 인생관, 가치관, 인생의 길, 하나님과 본분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는 대화를 이어가지 못한다. 그에 대한 네 시각이 변했고 너에 대한 그의 시각도 변했으며, 네 마음속에 그에 대한 반감이 생겨났고 그의 마음속에는 너에 대한 거리감이 생겨났다. 또 그는 너를, 너는 그를 싫어하게 되어 점차 둘의 사이가 멀어졌으며, 공통 관심사가 사라져 사람 간의 유형이 갈라졌다. 따라서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에 대한 구별은 사람의 이해 능력이 어떤지, 정상인의 양심과 이성이 있는지, 정상적인 사고와 지능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에 관해서는 더 이상 구체적으로 교제하지 않겠다. 이제 우리는 다른 두 부류에 관해 교제한 다음 다시 세 부류를 비교할 것이다. 이렇게 비교함으로써 이 세 부류를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가 차츰 명확하고 분명해질 것이다.
지난번에 사람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고 했다. 이 세 부류를 어떻게 구분했느냐? 사람의 근원에 따라 구분한다. 첫 번째는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 두 번째는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 세 번째는 사람에게서 환생한 부류이다.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의 특징에 관한 교제를 마쳤으니, 이제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특징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너희가 떠올릴 수 있는,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주된 특징은 무엇이냐? (진리를 적대하고, 하나님을 적대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약간 두루뭉술하다. 그들의 본질적인 모습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들의 일상적인 표출과 삶에서 보이는 구체적인 모습을 통해 이 부류의 특징이 무엇인지 정리해야 할 것이다. 특징이란 무엇인지 아느냐? 특징이란 이 부류의 본질을 나타내는 모습으로서, 이 부류의 특징을 지닌 이상, 이 부류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이 부류라면 당연히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특징이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특징을 떠올려볼 수 있겠느냐? (이 부류는 진리를 몹시 싫어하고 증오해서 진리를 들으면 눈에 핏발을 세우며 반감을 품습니다.) 진리를 보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반감을 품는 것은 구체적인 모습이다. 또 무엇이 떠오르느냐? (이 부류는 사악하고 음험합니다. 이것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비슷했다. (악랄하고 교만한 것도 있습니다.) 악랄하다는 것도 구체적인 모습의 한 측면이다. 이 밖에, 교만한 것은 패괴된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징이다. 이런 특징은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짐승에서 환생했거나 사람에게서 환생한 두 부류 역시 가지고 있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사람은 구체적인 사탄의 패괴 성품들 외에 인성 면에서 어떤 구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느냐? 일상에서의 표출이나 말과 행동에서 주로 어떤 특징을 보이느냐? (흉악함을 보입니다.) 흉악함은 그중 하나이다. 또 무엇이 있느냐?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짐승에서 환생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본질적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둘의 특징은 전혀 다르다.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의 특징은 치우치고, 무감각하며, 멍청하고, 어리석다는 것이다. 왜 이 몇 가지의 특징이 있겠느냐? 이 몇 가지 특징은 이 부류의 본질이 사람의 특징에 못 미치고, 사람이 갖추어야 할 지능과 사고방식에 못 미친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형적인 특징들은 이 부류가 짐승에서 환생했음을 입증한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짐승에서 환생한 부류와 다르다. 그의 특징은 무엇이냐? 마귀에게서 환생했다는 것은 마귀가 사람으로 변했다는 뜻이다. 그 내면의 본질은 마귀이다. 비록 그는 짐승이 아니고, 어리석거나 무감각하지 않으며, 어쩌면 치우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사람인 것도 아니다. 그는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마귀에게서 환생했다면 분명 마귀의 본질적인 실체에 완전히 부합하고 똑같아서 다른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특징이 무엇이겠느냐? 첫 번째 특징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거짓말이든 얼굴을 붉히거나 떨지 않고 무척 태연하고 천연덕스럽게 한다. 허점이나 빈틈이 전혀 없어서 어떤 말이 진실이고 어떤 말이 거짓인지 아무도 분별할 수 없다. 두 번째 특징은 나쁘다는 것이고, 세 번째 특징은 너희가 방금 말했다시피 악하다는 것이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특징은 세 가지이다. 짐승에서 환생한 사람의 특징보다는 하나 적지만 사람에 대한 이 부류의 살상력과 유해성은 짐승에서 환생한 사람이 가져오는 피해나 파괴력보다 훨씬 크다. 그는 마귀이며, 마귀가 사람을 해치는 것은 짐승이 사람을 해치는 수단보다 그 정도가 훨씬 심하기 때문이다. 마귀는 선천적으로 사람을 괴롭히고, 유린하며, 마비시키고, 미혹하고, 해친다. 본성 본질이 그렇다. 짐승은 맹수만 아니면 대체로 사람에 대한 살상력이 그리 크지 않다. 오직 몇몇 짐승만이 사람에게 유해하고, 본능에 따라 인육을 먹거나 사람을 해칠 뿐이다. 마귀는 그렇지 않다. 마귀에는 큰 마귀, 작은 마귀의 구분이 없고, 어떤 유형의 마귀인지 구분할 필요도 없다. 마귀라면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사람을 해치는 것은 다 똑같다. 다르다고 한다면 수단이나 방식 정도겠지만, 마귀의 본질을 볼 때 영원히 사람을 해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가 그를 건드렸든 건드리지 않았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그의 본성 본질이다. 그와 가까워지는 순간, 또 삶의 크고 작은 일에서 그와 엮이는 순간, 너는 해를 입을 것이다. 네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가 있으며 그를 분별한다면, 그에게 해를 입는 정도는 상대적으로 경감되겠지만 분량이 작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며 진리와 생명이 없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해를 입을지 가히 짐작이 될 것이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네게 해를 끼치고, 너는 그가 해하는 만큼 고스란히 해를 입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가 사람에게 끼치는 해악이다. 보아라. 마귀가 정권을 잡으면 그를 옹호한다고 할지라도 너는 해를 입을 것이고, 그를 옹호하지 않고 반대한다고 할지라도 해를 입을 것이다. 그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그의 권세 아래 있으며 하나님을 따르면서 진리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온전히 얻어지지 않는 이상, 너는 영락없이 마귀에게 패배하여 피해자가 된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는 큰 마귀의 경우다. 한편,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현실의 작은 마귀나 마귀 종류에 속한다. 그와 함께 생활하는 순간 가장 자주 보게 되는 일은 바로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모습이다. 너는 늘 그에게 기만당하고 속아 넘어간다. 그의 어떤 말이 사실이고 어떤 말이 거짓인지 몰라 ‘그 사람 말이 사실일까? 거짓말일까? 또 나를 속이고 있는 거 아냐? 그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 어떻게 분별하지?’와 같이 교란당해 매일 마음이 편치 않다. 보아라. 그와 함께 생활하면 심각하게 해를 입는다. 그가 늘 거짓말로 너를 어지럽게 교란하니 매일 마음이 불안하며, 기쁘거나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무슨 일이든 괴이하게 처리한다. 그는 뒤에서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한 뒤 시간이 지나면 사실을 말하지 않고 다른 소리를 한다. 네 앞에서는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네 험담을 하니, 그 결과 너와 다른 사람 사이에는 심리적 거리감이 생겨 서로가 서로를 안 좋게 보게 된다. 사실 너희 둘은 전혀 친하지 않아서 상대방을 잘 모르는데 이 악마가 중간에서 거짓말로 이간질하는 바람에 원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너는 악마에게 희롱당하면서 영문도 모른 채 마귀의 말이 사실인 줄 알고 그가 너에게 잘해준다고 생각한다. 보아라.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은 남을 이 정도로 희롱할 수 있다. 그는 언제나 거짓말을 하고 네 앞에서 제멋대로 지껄이면서 이간질하고 과장하며 근거도 없이 함부로 유언비어를 날조한다. 또 네 마음을 어지럽히고 편치 않게 만드니 항상 분별하고 조심해야 한다. 너는 ‘아무개가 나에 관해 어떤 험담을 했을까? 아무개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라며 교란되어 혼란스러워지고, 네 생활의 리듬과 규칙, 현재의 상태가 헝클어진다. 분량이 작고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또 아직 진리를 얻지 못했다면, 너는 늘 그에게 제약받을 것이며, 심지어 그의 거짓말에 미혹되고 교란당하며, 속박되고, 얽매일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 보자. “아무개가 그러더군요. 당신 같은 사람도 리더가 되었냐고요. 사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닌데 무슨 낯으로 진리를 교제하냐고 그러던데요!” 사실 그 사람은 전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다. 너는 그의 이 한마디에 연약해져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한다. ‘하나님, 저는 확실히 분량이 작아서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사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어요. 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은데 그러자니 충성심이 없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이렇게 네가 사역을 해 나가지 못할 정도로 교란한다. 설령 사역을 한다고 해도 소극적인 정서로 임해 서서히 교회 사역에 부담이 없어지다가 결국 사역을 마비시키게 된다. 이것이 교란당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부류와 함께 생활하고 지내며 사역하는 것은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그들의 말에는 거품이나 불순물, 사사로운 생각이나 꿍꿍이가 너무 많으며 죄다 거짓뿐이니, 항상 분별해야 한다. ‘그의 어떤 말이 사실이고 어떤 말이 거짓일까? 대체 그는 뒤에서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일을 하지 않은 거지?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까? 그는 앞으로 반드시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자신을 발탁한 하나님 집의 뜻에 부응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그 말이 진심일까? 자기가 한 맹세와 피력한 의지대로 이행할까?’ 그의 모습을 보면 네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연이어 떠오른다. 너는 늘 그가 무섭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신뢰가 가고 일리가 있다. 그런데 밤에 잠을 자다가 그가 마귀의 얼굴로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는 꿈을 꾸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가 과연 사람일까? 그가 하는 말 중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이지? 왜 나는 간파하지 못하는 걸까? 이런 부류는 너무 무서워!’ 너는 그가 무섭고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사역을 점검해 보면 대체로 나쁘지 않고, 그가 하는 말을 들어 보면 빈틈이 없다. 즉 그를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이다. 네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의구심이 들어서 그가 나쁜 짓을 계획할 수 있을 것 같고, 그가 하는 말이 사실이 아닌 과장인 것 같다. 어쩌면 언젠가 거짓말하는 그의 본성이 폭로되어서 당시 네가 그에 대해 가진 의구심과 느낌이 옳았음이 증명될 수도 있다. 그가 하는 말은 듣기 좋고 믿음이 가지만 죄다 거짓이고 기만이다. 뒤에서는 그 어떤 실질적인 사역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부류를 믿을 수 있겠느냐? (믿을 수 없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를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다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무척 순수하고 바르게 이해하며, 말하는 것도 제법 그럴듯해서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겉으로는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를 수도 있어 보이니 너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잘못 봤나 봐. 내가 너무 소인배처럼 굴었나 보다. 한 번만 더 그를 믿어 보자. 어쨌든 아직까지 그를 대신할 사역 적임자를 찾지 못했으니 한 번만 더 그를 써 보자고.’라고 생각해 계속 그를 쓰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결과는 똑같아서 그에게 속았음을 알게 된다. 그는 말은 그럴싸하게 하지만 사실 뒤에서는 실질적인 일은 하지 않고 자기 일만 신경 쓴다. 그는 한 달 동안 복음을 전해서 열 사람을 얻으면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굳이 쉰 명을 얻었다고 말한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거짓말쟁이인 것이다. 네가 매번 그를 믿고 쓴다면 번번이 속아 넘어갈 것이다. 결국 손해 보는 사람은 누구겠느냐? 물론 이런 일을 체험함으로써 사람에 대한 분별력이 커지고 식견이 넓어지며 경험이 늘어나고 사람을 볼 줄 알게 되겠지만 진정으로 손해 보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교회 사역이다. 대답해 보아라.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본성 본질이 사람에게 미치는 피해가 크겠느냐, 크지 않겠느냐? (클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크겠느냐? 너를 미혹할 수 있겠느냐? (그렇습니다. 저는 미혹되고 이용당할 것입니다.) 미혹되고 이용당하며 교란되어 조종당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어려서 경험이 없고 진리를 깨닫지 못해 일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그에게 조종당할 것이다. 그에게 조종당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느냐? 꼼짝없이 그에게 통제되고 손과 발이 묶여서 문제를 생각하는 방식이나 생각과 관점이 모두 그에게 영향을 받거나 좌우된다는 말이며, 다음 단계에서 어떻게 할지 정할 때 완전히 그의 계획대로 실행한다는 말이다. 그가 파 놓은 함정에 철저히 빠져 버리는 것이다. 이것을 조종당한다고 한다. 그는 몰래 모의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너를 음해한다. 네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무엇을 간파하지 못하는지, 어떤 일을 분별하고 어떤 일을 분별하지 못하는지, 네 마지노선은 어디인지, 널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어떤 말로 미혹할 수 있는지 그는 다 꿰뚫어 본 후 결국 네 결점과 빈틈을 이용해 거짓말을 날조하여 너를 속인다. 너는 속으로 그가 하는 일이 옳지 않고 그의 말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거짓말임을 분명히 알지만 이에 대응할 지혜가 없다. 괴로운 마음이 들어도 어쩔 도리가 없어 그에게 끌려다닐 뿐이다. 이것이 그에게 조종당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결국 일이 발전하는 방향, 나아가 마지막 결과에 이르기까지 전부 그의 계획에 따라 전개되니 그에게 조종당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너는 일이 진행되는 방향을 제어할 능력이 전혀 없어, 완전히 그에게 끌려다니는 것이다. 그는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 이루려는 일, 이용하고 싶은 사람, 원하는 방식이 있으면 종국에 뜻을 이룬다. 이것이 그에게 조종당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대답해 보아라.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본성을 볼 때, 그들이 하나님 선민들, 특히 교회 사역에 미치는 피해가 크겠느냐, 작겠느냐? (클 것입니다.) 피해가 엄청나다! 그렇다면 각 개인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는 것 외에, 사람에게 또 어떤 심각한 피해를 주겠느냐? (마귀에게서 환생한 사람이 하는 일은 주위 사람에게 심각한 교란을 일으킵니다. 예전에 이런 자를 접해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있는 곳이면 암투와 자리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거리감이 생기고 형제자매도 내면의 어두움을 느꼈지요.) 그것이 바로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서로 시기하고 다투어 혼란에 빠지게 하니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그렇다면 나중에 다들 이 마귀를 분별했느냐? (그렇습니다.) 정리해서 쫓아냈느냐? (정리해서 쫓아냈습니다.) 쫓아낸 후 모두가 결론을 정리해 보았느냐? 그가 거짓말을 하면서 주로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보였는지, 어떤 거짓말을 무엇을 위해 했는지, 어떤 식으로 했는지, 뉘앙스는 어땠는지, 이루려는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이런 구체적인 방식과 모습에 대해 정리해 보았느냐? (정리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거짓말을 밥 먹듯 했는데, 그의 말은 시비가 헷갈리고 옳고 그름이 전도되는 성질을 띠고 있어서 긍정적인 사람을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부정적인 사람을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그는 누군가를 질투하거나 싫어하면 근거도 없이 죄를 뒤집어씌우고는 형제자매들이 그 사람을 적대하도록 선동해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좋은 사람이나 본분 이행에 성과가 있는 사람은 탄압하면서, 자기를 좋게 봐 주고 자기에게 아부하는 사람을 발탁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적그리스도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주된 방식에는 어떤 것이 있었느냐?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고, 사실을 부풀리며, 남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시비를 제멋대로 조작하며, 이간질하는 것이 있었다. 또 무엇이 있었느냐? (갈등을 부채질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갈등이 심화되도록 부채질한다. 고집부리기 싫어하고, 누군가와 원한을 맺기 싫어해서 원래 잘 지내던 사람들도 그는 중간에서 부채질하여 싸우게 만들며, 둘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기뻐한다. 자신의 음모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부류는 어떤 집단에든 존재한다. 사람은 누구나 패괴 성품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환생한 부류가 이런 짓을 하겠느냐?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겠느냐? 그는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와 어떤 차이가 있느냐? (정상적인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습니다.) 그렇다. 그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서 처신할 때 양심의 제약을 받는다. 도덕적으로 패괴된 일, 인격의 존엄을 상실한 일, 남은 물론 자기에도 해가 되는 일을 그는 하지 않는다. 양심이 있기에 최소한의 선이란 게 있고 행동도 제약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에게 양심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겠느냐? (악랄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랄한 마음, 사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거짓말을 밥 먹듯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괴로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왜 괴롭지 않겠느냐? 그는 마귀이고, 양심이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악행을 일삼아도 괴로워하거나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어디에서도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며 소란을 일으키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평안하고 즐겁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면 씁쓸해하고 괴로워한다. 왜 괴로워하겠느냐?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대로 일하면서 정상 인성 속에서 살아가느라 자기를 경배하지 않으니 사람들 속에서 자기가 돋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니 그는 ‘이런 생활은 따분하고 재미없어!’라고 생각한다. 그가 따분하지 않고 재미있으며, 체면을 차리고 존재감 있게 살아가려면 말썽을 일으키고 나쁜 짓을 하며 사람들을 동요시켜 소란이나 혼란을 야기해야 한다. ‘풍파를 일으킨다’는 말이 있지 않더냐? 이런 부류는 어디에서든 풍파를 일으키기를 좋아할 뿐, 분수를 지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람은 누구나 분수를 지키려 하고 평온한 삶을 살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하기를 원하지, 풍파를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분수를 지키지 않는다. 왜 분수를 지키지 않겠느냐? 이 부류의 내면에는 마귀가 살고 있는데, 마귀는 어딜 가든 사람들 사이에서 나쁜 짓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네가 그를 건드리거나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았는데 자기 혼자 말썽을 일으킨다면 이는 풍파를 일으키는 것이다. 어떤 집단에 이런 부류가 있을 경우, 멀리서 바라보거나 이들의 상황을 알아보면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누가 누구와 갈등이 있다는 둥, 누가 누구와 반목하여 서로 상대하지 않는다는 둥, 누가 누구와 사역에서 충돌한다는 둥, 누가 자리를 놓고 다투기만 하면서 사역할 땐 수습하기 바쁘다는 둥 이런 말들이 수시로 들린다. 어떤 교회는 온통 뒤죽박죽이고 평안할 날이 없어서 사람들이 늘 화목하게 지내지도, 조화롭게 협력하지도 못한다. 이런 곳에는 마귀가, 심지어는 여러 마귀가 교란하고 있는 것이다. 한 교회에 교란하는 마귀가 몇이든,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서 진리 원칙대로 행동하고 싶어 하는 나머지 사람은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그러다 각종 마귀가 정리되면 함께 교회 생활을 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비록 한 몸처럼 단결된 상태라고 할 순 없지만 사람들은 적어도 이곳 사람들은 정이 있고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이곳에는 이상한 분위기가 없고 인간미가 느껴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상한 분위기가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할 때 눈빛은 물론이거니와 말투나 분위기까지 이상하다. 그들은 대화할 때 눈길을 주고받지 않는 데다가 대화도 짧게 하고, 속 얘기를 하려 하지 않는다. 마치 서로 간에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로 소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교류하지 않고 속으로 미워하는 그들이 바로 피해자일 수도 있다. 그들이 피해자든 가해자든, 어쨌든 그 집단에는 마귀가 섞여 있어 사람의 마음을 교란하여 어지럽히고 평온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함께 생활하면 늘 뜻대로 되지 않고, 순조롭지 않다고,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겠다고 느낀다. 물론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은 더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무리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본분을 이행하면 항상 기분이 좋지 않고 사람과 사람 간에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는 마귀가 교란하고 있어서 모두가 속박당해 기분이 불쾌한 것이다.
마귀의 교란을 심하게 체험한 사람들은 대체로 마귀에게 조종당한다. 마지막에 이들을 보니 한두 달 만에 어쩜 그리 안색이 안 좋아졌는지, 마치 농락당한 사람 같았다. 이것이 성령이 역사하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느냐? 이들이 왜 그렇게 이상해 보였겠느냐?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니 역시나 문제가 있었다. 마귀 둘이 이들을 통제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로 통제했겠느냐? 그 마귀들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러면서 상부가 내린 사역 지침, 상부가 교제한 원칙은 전혀 시행하지 않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이 두 마귀가 방해하는 바람에 아무도 선뜻 의견을 내지 못했고 문제를 보고하지도 못했다. 어떤 사람은 나중에 이 두 마귀를 언급하기만 해도 화가 나서 울먹였다. 왜 처음부터 폭로하지 않았겠느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일어나 마귀를 폭로할 엄두를 내지 못했으니, 그 마귀의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이냐? 그는 겉으로 보면 사람이지만, 본질은 마귀이다. 이런 부류는 어딜 가도 사람들이 두려워한다. 그를 만나기만 하면 공포감이 엄습해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만약 어린아이가 이런 사람을 본다면 놀라서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온순한 사람이 이 부류를 보면 어느 정도로 두려워하겠느냐? 그의 근처만 가도 숨을 제대로 못 쉬고 큰 소리로 말도 못 하며 심지어 급히 자리를 피해 돌아갈 것이다. 그가 사역 지침대로 사역을 시행하지 않는 것을 보고 누가 “그렇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상부에서 교제한 원칙에 어긋나잖아요.”라고 한마디 했다. 그러자 마귀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는 제 말이 법입니다. 얌전히 굴지 않으면 당신이 하나님을 믿든 말든 지금 당장이라도 출교시키겠어요!” 그 사람은 놀란 나머지 낯빛까지 변해서 더는 의견을 내지 못하고 울며 말했다. “제가 말실수했어요. 절 어떻게 생각하셔도 할 말이 없으니 제발 제명하지 마세요!” 나머지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 정말 대단하네요. 엄청난 권력입니다. 자기한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출교시키잖아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기회는 쉽게 얻을 수 없어요. 그에게 출교당하면 우린 어디 가서 하소연하나요? 그럼 끝장 아닌가요? 구원받는 것도 가망이 없지 않을까요? 절대 의견을 내면 안 되겠어요. 한순간의 부주의로 출교당할 순 없죠.” 보아라. 이 정도로 두려워한다. 결국 마귀를 폭로할 때가 되어서야 어떤 사람은 마귀가 어떻게 이간질하고 편 가르기를 했는지 폭로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마귀가 어떤 황당한 이론으로 사람들을 미혹했는지 폭로한다. 사실 마귀가 악행을 저지를 당시부터 알아보았지만 아무도 선뜻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반항하지도 못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할 때 울기까지 해서 불쌍해 보인다. 그런데 마귀가 조종하고 통제할 때는 왜 반항하지 않았겠느냐? 그때는 왜 무력했겠느냐? 상부가 마귀를 처리하려 하니 그제야 힘이 나는구나. 대답해 보아라. 이렇게 분량이 작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돌봄과 보살핌, 보호가 없다면 마귀에게 해를 입고 끝장나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사탄, 마귀가 괴롭히면 두려움에 온몸을 벌벌 떨며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아라. 얼마나 놀랐으면 그러겠느냐! 상부가 그 두 마귀를 폭로하고 처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들은 마침내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들은 몇 개월 동안 마귀에게 통제당하며 사탄의 권세 아래 살았고 어둠에 빠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 하소연해도 묵묵부답이고, 땅을 향해 통곡해도 소용이 없었으니 삶이 너무 불쌍했다! 마침내 그 두 마귀를 제명하니 모두가 해방되어 기뻐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상부에서 그 두 마귀를 제명했지만, 저들이 또다시 마귀가 악행을 저지르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분별할 수 있을까? 상부가 나서서 그 일을 해결할 필요 없이 그들 스스로 마귀를 파면할 수 있을까? 다 같이 마귀를 폭로하여 그의 모든 악행을 정리한 후 파면하고, 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며, 본분을 이행할 때도 그에게 속박받지 않고 그를 교회에서 몰아낼 수 있을까?’ 그들의 분량을 살펴보니 아마도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고생하려는 의지도 있으며 충성스럽게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지만, 너무 유약하다. 작은 마귀가 하나 나타나서 교란하면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구차해지고 두려움에 떨며 그에게 통제당한 채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나는 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만약 하나님이 사람을 보살피지 않고 걱정해 주지 않으며 돌보지 않는다면 이런 부류에게는 살길이 없을 것이다. 현실 생활에서 발생하는 이런 일을 보아라. 각종 마귀의 행위, 그들의 목적과 일을 처리하는 수단, 방식은 대체로 일치해서 분별하기 쉽다. 하지만 각종 마귀가 튀어나와 방해하고 교란하면서 하나님 선민을 속박하고 통제하며 얽매고 해치면 선뜻 나서서 반항할 사람은 몇 안 된다. 아무도 이 마귀들을 자발적으로 폭로하고 파면하지 못하고, 교회에서 정리하지도 못해서 그 마귀들이 하나님 선민을 통제하면서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망치도록 놔둔다. 이 불쌍한 사람들은 그저 인내할 뿐이다. 괴로운 마음에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통곡하고 눈물을 흘려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그 사람들은 지혜로운 방식도 없고 진리를 강력한 무기 삼아 마귀에 맞서 싸움으로써 그를 척결하지도 못한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고, 그렇게 할 엄두를 내지 못하며, 마귀와 싸울 용기조차 내지 못한다. 어느 교회에 악인이나 마귀가 나타나 사람을 통제하거나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참는다. 그러다 결국에는 하나님 집이 나서서 각양각색의 마귀들을 척결하고 이 마귀들의 운명을 끊어 놓는다. 그로써 형제자매가 보호받고 정상적으로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여 교회의 각 사역이 체계적으로 진전된다. 이는 다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고, 하나님 집이 구체적인 사역들을 손수 안배하고 지도하여 이 어리고 무지하며 연약한 사람들이 악인이나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거나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것이다. 대답해 보아라. 진리를 깨닫지 못한 우매하고 무지한 이들이 얼마나 불쌍하냐? 거시적으로 보면 인류 전체가 사탄에게 패괴되며, 구체적인 생활 환경을 보면 각종 마귀로부터 교란과 통제를 받고 피해를 입는다. 분량이 작고 기초가 부실한 사람은 악인이 교란하는 상황에 놓이면 이를 꿰뚫어 보지 못한 채 교회에는 악인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고 인간미가 없다는 생각만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기 싫어서 ‘차라리 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게 낫겠어. 교회는 왜 이런 사람이 머물도록 허용하는 걸까?’라고 생각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이 일에서 공과를 배울 줄 모른다.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지 모르며, 진리 원칙으로 대할 줄 모른다. 그리고 참된 형제자매와 연합하여 마귀에 맞서 싸울 줄도 모른다. 이는 분량이 작은 자 아니냐? 불쌍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가 일상생활에서 보이는 첫 번째 특징은 거짓말에 인이 박였다는 것이다. 나이나 성별, 출신, 믿음의 기간을 떠나 하는 말마다 거짓말이 섞여 있고 거짓말을 끝없이 늘어놓으며 거짓말에 인이 박였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마귀에게서 환생한 자다. 사람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패괴 성품을 지니고 있으며, 패괴 성품 속 간사함과 사악함이 거짓말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거짓말은 마귀에게서 환생한 사람의 거짓말과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만약 거짓말에 인이 박였다면 이는 그 사람의 본질이 사람이 아닌 마귀임을 십분 증명한다. 사람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절대 거짓말에 인이 박이는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비록 사람도 거짓말로 간계를 부릴 때가 있지만 사람이 하는 거짓말은 그저 정상적인 패괴 성품의 표출로서 개별적인 일에서 이따금 하는 약간의 거짓말일 뿐이다. 사람이 하는 거짓말은 마귀가 하는 거짓말과 표면적으로는 똑같을지 몰라도 본질적으로 보면 차이가 있다. 마귀는 거짓말할 때 결코 자책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자기를 위해 거짓말하고 기만한 일이 마음 먹은 대로 되면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한 번의 거짓말이 통하지 않으면 그는 더욱 박차를 가해 더 많은 거짓말을 하고, 더 고도화된 기만의 수법으로 더 많은 사람을 속인다. 하지만 정상적인 패괴 성품을 지닌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나면 양심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껴서 낯을 들고 살아갈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자기가 속였던 사람을 다시 만나면 조금 미안해한다. 만약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했다고 시인하고 앞으로 다시는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사실만을 이야기하겠다고 약속하라고 한다면 당장 그의 분량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는 자기가 한 거짓말 때문에 부끄러움, 죄책감, 불안감을 느껴서 속으로 참소받을 것이다. 하지만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거짓말에 인이 박여서 거짓말하고 나서도 참소받지 않고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어째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겠느냐? 마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하나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속으로 참소받는 것은 사람의 정상적인 지각인데, 그는 마귀라서 이런 지각이 없다. 그렇기에 그는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도 모자라 박차를 가하기까지 한다. 변함없이 계속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결국 언제까지 거짓말을 하겠느냐? 육의 생명에 붙어 있던 숨이 끊겨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어야 거짓말이 끝난다. 그런데 그의 내면에서 거짓말을 하는 마귀의 영이 또다시 다른 사람으로 환생하면 그 사람이 이어서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는 마귀의 본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이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사람은 누구든 속이고 무슨 거짓말이든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일에서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데다가 거짓말을 하는 수법이 굉장히 교묘해서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간파하지 못한다. 보아라. 늘 거짓말하는 사람은 정상인이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무척 자연스러워서 다른 사람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너는 그의 말이 사실인 줄 안다. 네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면 그는 속으로 너를 비웃을 것이다. ‘멍청한 녀석, 농담도 사실인 줄 알다니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군!’ 다음에 다시 만나도 그는 거짓말로 너를 농락하면서 그 거짓말을 들은 네 반응을 지켜볼 것이다. 네가 또다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더 좋아하고 더 큰 성취감을 느낄 것이며 자신의 처신이 통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자가 사람이겠느냐? 그에게 사람의 지각이 있겠느냐? 사람의 양심은 있겠느냐? 없을 게 분명하다. 그는 자신의 거짓말이 먹힐수록 흡족해하고 기뻐하며 성취감을 느낄 것이고, 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길 것이다. 또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농락하지도 않은 날에는 그 하루가 왠지 불편하고 허무하게 느껴져 다른 사람을 속일 기회를 엿볼 것이다. 예를 들어 사이가 좋고 본분을 이행할 때 조화롭게 협력하는 두 사람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져서 이런 생각을 한다. ‘이간질을 해 봐야겠어.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둘 사이를 좋아지려야 좋아질 수 없도록 틀어지게 만드는 거야.’ 그는 두세 마디 말로 두 사람을 계략에 빠뜨려 그들이 부딪히고 충돌하여 예전처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마귀는 기뻐하고 더없이 즐거워한다. 교회 안에 숨어 있는 마귀는 맘껏 이런 짓을 한다. 이방의 마귀는 형제자매를 잔인하게 체포할 때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따르지 않겠다고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신하기만 하면 기뻐한다. 네가 뭘 하든 상관없다. 네가 먹고 마시며 계집질하고 도박하든, 방화하고 살인하며 약탈하든 어떤 범죄를 저지르든 상관없이 하나님을 믿지만 않으면 기뻐하는 것이다. 마귀가 사람들 속에서 하는 일이 사탄이 영계에서 하는 일과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 비슷한 점이 있지 않겠느냐? 누가 하나님을 믿으며 바른길을 가면 그는 굉장히 증오한다. 그리고 누가 진리를 추구하거나 늘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며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보면 화를 내고 원수로 여긴다. 이는 질투하는 게 아니라 증오하는 것이다. 망쳐 놓으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가 취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거짓말로 사람을 기만해서 교란하고 미혹하며 타락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그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건만, 그래도 그는 너를 타락시킨다. 네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고 소극적으로 변하며 연약해져서 본분을 이행하려 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않게 되어 그의 목적이 이루어지면 그는 기뻐하며, 마음속 근심도 사라진다. 이는 마귀가 하는 일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마귀가 거짓말에 인이 박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하다. 그 누구든, 어떤 종족에서 살아가든, 외모가 어떻든, 키가 크든 작든, 살이 쪘든 말랐든, 잘생겼든 못생겼든, 교육 수준이 어떻고 성격이 어떻든, 은사가 크든 작든, 특기가 있든 없든, 취미와 관심사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에게 하나의 특징이 존재하는 한,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이 절대 변하지 않는 한, 그것이 이따금 하는 거짓말이나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면, 어떤 일에서 꼭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없는데도 그럴 필요가 있든 없든 어떤 상황이나 어떤 배경, 어떤 일에서든 거짓말을 하고 사실을 날조하며 암암리에 얄팍한 수를 쓰려고 한다면, 이런 작자가 바로 영락없는 마귀이다. 절대 그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지 말고, 그의 감언이설을 믿지도 마라. 설령 그가 의지를 표하고 저주의 말로 맹세한다고 해도 믿지 마라. 그는 사람이 아니라 마귀이기 때문이다. 마귀가 맹세한들 그것은 순간적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사람을 기만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는 결코 자기가 맹세한 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를 믿는다면 너는 우매하고 마귀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어떤 일에서도 거짓말을 할 수 있기에 그가 하는 맹세 역시 거짓말이다. 그는 결코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고, 모든 사람의 행동에 따라 돌려준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또 하나님이 이룰 수 있는 일도, 하나님의 존재도 믿지 않기 때문에 자기 기분과 필요에 따라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아 남을 속이려는 목적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특징이자 그의 특성이며 물론 그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 점을 확실히 알겠느냐? (확실히 알겠습니다.)
짐승에게서 환생한 사람은 패괴 성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거짓말에 능하다. 하지만 남들이 질책하면 그도 어느 정도는 속으로 인정할 줄 안다. 다만, 인정하기는 해도 짐승의 특성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어떻게 하는 것이 거짓말하지 않는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원칙에 따라 이행하는 것인지 시종일관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앞으로는 더 이상 거짓말하지 않고 사실을 말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막상 실행하면 굼뜨고 미련해서 사람들이 보고는 “이렇게 진리를 실행하는 게 어디 있나요? 이런 건 또 처음 보네요. 정말 대단한 식견이군요!”라며 비웃는다. 마치 짐승이 두 발로 서서 사람처럼 직립 보행하는 것처럼 어색하고 괴상한 것이다. 짐승에게서 환생한 사람 중에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 자도 있지만 정확한 실행 원칙을 찾지 못해 엉터리로 실행하다가 웃음거리가 된다. 남들은 웃긴다고 생각하는데 그 자신은 정직한 사람이 되어 간다고 생각하니, 황당하지 않으냐? 만약 그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거짓말이나 교활한 궤변을 늘어놓지 않고 변명하거나 따지지 않으면 돼요. 이것이 정직함입니다. 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거나 과오를 범했다면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됩니다. 누가 진리에 부합하는 말을 하면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고요. 비이성적인 행동이나 황당한 일은 하지 마시고요.”라고 알려줘도 그는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다. 대답해 보아라. 이 부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바로 정상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짐승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마귀에게서 환생한 사람과 차이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디에서 차이가 나겠느냐? (그가 치우치게 실행하는 이유는 마귀의 성품을 가진 마귀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된 이유는 자질이 없어서 사람이 갖추어야 할 정상적인 사고나 이성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그는 자질이 미치지 못한다.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도 주관적으로는 진리를 실행하고자 하지만 원칙을 파악하지 못하고 규례만 지킬 줄 알기 때문에 무척 극단적이고 어리석으며 멍청하게 실행한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려 해도 온몸에 가시가 돋은 고슴도치 같은 그의 성품 때문에 손을 댈 수가 없다.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 주어도 그는 알아듣지 못하고 이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고, 5, 6년간 도와주고 붙들어 주어도 글귀와 도리나 조금 이해할 뿐 진리를 실행하지 못한다. 자질이 형편없는 것이다. 이런 멍청한 사람이 또 온 힘을 다해 역겨운 일을 하는데, 그것이 뭔가 중요한 일, 큰 일과 무관할 때는 예의상, 그리고 체면상 마지못해 그와 대화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일과 관련되어 본분 이행이나 사역에 관해 이야기하면 이상하고 불쾌한 느낌이 들고, 그가 맞서거나 반대하여 너를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이런 부류는 정당한 일에 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으니 상대해 주어서는 안 된다. 그를 상대해 주기에는 다른 일이 너무 많을뿐더러 중요한 일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그가 그릇된 논리,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한껏 늘어놓는다면 사람들은 듣고 역겨워할 것이다. 이런 부류는 또 어떤 치우친 일을 하더냐? 그는 어떤 이성에게 호감이 생기거나 사사로운 감정, 욕망이 생기면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이런 일은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예배 시간에 이 일을 공개적으로 언급한다. 그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그 이성은 듣고 거북해하고 괴로워하며, 얼굴이 빨개진다. 또 네가 그를 저지하면 그는 괴로워하며 이렇게 말한다. “제가 속 얘기를 털어놓고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는데 당신이 무슨 근거로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까? 이건 제 권리예요! 겨우 용기 내서 이 얘기를 꺼냈는데 막아서다니요! 하나님도 막지 않으시는데 당신이 뭘 믿고 저를 막는 거죠? 하나님께서도 제게 정직한 사람이 될 기회를 주셨는데 당신은 저를 무시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하는군요. 제가 이 일을 마음속에 숨긴 채 말하지 않으면 사실을 은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간사한 사람 아니겠냐고요. 그러면 정직한 사람이 아닌 거죠. 제가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겠어요?” 보아라. 모두가 듣고서는 거북해하고 민망해하는데도 그는 시시콜콜 떠들어대고, 너는 그를 제지하지 못한다. 이런 일에 관용을 베풀고 인내해야겠느냐? 아니면 진리 원칙을 교제해서 그를 제지해야겠느냐? (진리 원칙을 교제해서 그를 제지해야 합니다.) 일단 사랑으로 그를 도와주면서 앞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은 삼가 달라고 권면한다면 그가 알아듣고 받아들이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부류가 바로 치우친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좀 어리석은 데다가 이성마저 온전치 못하니 제지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사사로운 감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어서 간혹 어떤 이성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 이성에 대한 생각을 품을 수 있다. 이는 혼자 인식하면 될 일이며, 만약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면 둘만 있는 자리를 최대한 줄이거나 피해야 한다. 정상적인 인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혜로운 방식으로 원칙에 따라 이 일을 대할 것이다. 이런 일은 단순히 정직한 사람이 되는 실행 원칙으로만 처리해서는 안 되고, 거기에 지혜로운 원칙을 더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하지만 짐승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이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라서 사람들 앞에서 털어놓는 것이 정직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며, 그런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른다. 그에게 있어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곧 규례와 형식을 지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겠느냐? 자신은 물론 상대방과 모든 사람을 골치 아프게 만든다. 상대방은 이 일 때문에 영향을 받고 속박받아 대응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다른 모든 사람도 이 일을 듣고는 약간 민망해할 것이다. “듣고 있자니 남의 사생활을 캐는 것 같고, 그렇다고 안 듣자니 그가 한사코 이야기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야 정직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아요.”라고 말이다. 보아라. 모두가 이 일을 난감하고 골치 아픈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답해 보아라. 이 사람은 골칫거리 아니겠느냐? 원칙을 교제해 주어도 그는 받아들이기는커녕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정직한 사람이 되어 무엇이든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되면서 저는 이 정도 일도 말하면 안 되는군요. 제가 이렇게 하는 것도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요? 무슨 근거로 제게 말할 권리가 없다는 겁니까?” 너는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그것이 사람들 앞에서 교제하기 적절한 일이겠느냐? 이 부류는 일을 밝히 알지 못해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원칙을 모르며, 그래서 결국 모두를 몹시 난처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그를 따라 할 수도 있다. “저분 좀 보세요. 저런 일까지 교제하다니, 의지가 정말 대단하네요. 정말 정직한 분이군요!” 순수하고 옳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듣고 난 후 그의 실행이 올바르지 않고 치우쳤음을 안다. 하지만 네가 도와주려 할 때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말을 하겠느냐? “당신은 절 도와줄 수 없어요. 저는 당신과 다르게 받아들이거든요. 저는 이렇게 실행할래요.” 이를 어쩌겠느냐? 그를 도와줄 수 있겠느냐? (도와줄 수 없습니다.) 네가 만약 정말 그를 돕는다면 이는 그를 방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는 받아들이기는커녕 너와 부딪히고 충돌할 것이다. 골칫거리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짐승에게서 환생한 부류 역시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가 거짓말을 하는 모습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이 둘은 거짓말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고 취하는 방식도 다르다. 마귀 부류는 거짓말이 탄로 나면 어쩔 수 없이 겉으로는 자신의 거짓말을 인정하지만 한편으로는 당당하게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혹은 거짓말을 한 것은 옳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입장을 밝히지만 뒤에서는 전혀 변하지 않으며 예전처럼 거짓말하고 기만한다. 그는 절대 거짓말을 사악한 짓, 부정적인 사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생존 비결인데 어찌 버릴 수 있겠느냐? 거짓말에 인이 박인 부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해. 모든 일을 남들이 알게 되고 통제하게 될 텐데 그러면 내 자아가 있겠어? 사는 게 의미 있을까? 존엄은 있겠어? 또 모든 일을 사실대로 말하면 삶이 얼마나 시시하고 무미건조해지겠어! 일이 있든 없든 거짓말을 해야 해!’라고 생각한다. 어떤 관점에서 보든, 그가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거짓말은 그의 본성의 자연스러운 표출이다. 결론적으로,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이 마귀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는 확실한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부류는 절대 진리를 받아들여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을뿐더러 하나님이 말씀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경시하는 마음을 품는다. 구체적인 일에 직면했든 아니면 구체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든, 그는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경시하고 비꼬며 반감을 가지고 혐오하는 태도를 취한다.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하나님의 요구와 처신의 원칙을 경멸의 태도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마음속 깊이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모자라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을 대놓고 반대하며 거부한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거짓말에 인이 박인 특징이 무척 명확하다. 가까이에서 그를 접하거나, 사역이나 삶에서 그와 왕래하고 교류하며 어울리기만 하면, 거짓말에 인이 박인 그의 특징이나 실체가 하나하나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류를 분별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다른 사람이나 일에 대한 그의 생각과 관점이 어떤지 살펴볼 필요도 없다. 그저 거짓말에 인이 박인 사람이라는 점만 봐도 이를 토대로 백이면 백, 그는 사람이 아닌 마귀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짓말에 인이 박인 사람이 마귀가 아닐 가능성이나 구원받을 희망은 1퍼센트도 없는 건가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럴 가능성은 절대 없다고 대답하겠다. 거짓말에 인이 박인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모두 마귀이며, 1퍼센트의 가능성도 없다. 알겠느냐?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깊이 패괴되고, 사회의 사악한 흐름에 너무 심하게 영향을 받아서 거짓말에 인이 박인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인간의 양심과 이성이 매몰되거나 마귀에게 완전히 동화돼서 거짓말에 인이 박인 사람은 없을까요? 형제자매가 한동안 도와주고 붙들어 주고, 그도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면 양심이 점점 되살아나고, 이성도 차츰 회복될 거예요. 그러면 변해서 거짓말에 인이 박이는 일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알려주겠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다. 0.0001%의 가능성조차 없다. 그래서 거짓말에 인이 박인 자는 결코 사람이 아니라 마귀이며, 정상적인 인성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이 점은 확실하며, 예외나 특수한 경우는 없다. 이것을 분명히 꿰뚫어 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처리할 때 하나님 집의 이익과 형제자매를 지키기 위해 이방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등 실제와 다르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고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다. ‘여태까지는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일을 두고 거짓말을 할 수 있지? 이렇게 중요한 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다면 마귀가 아닐까?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허상이 아닐까?’ 이런 인식법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어떤 점이 옳지 않으냐? 이 일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올바르겠느냐? (그는 그 사람이 행동하는 동기와 거두고자 하는 성과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누가 사실과 다른 말을 했는데 그것이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 집의 이익과 형제자매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이는 거짓말이 아니라 일종의 지혜입니다. 그는 거짓말과 지혜를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너는 거짓말의 성질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가 어떤 원칙을 바탕으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살펴보아라. 만약 그가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원칙을 지키기 위해 사실과 다른 말을 했다면 이는 거짓말이 아니라 지혜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가 일상에서 거짓말에 인이 박인 사람인지 살펴보아라. 만약 그가 단지 한 가지 일에서만 거짓말을 했다면 너는 그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나 거짓말에 인이 박인 사람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가 한 가지 중대한 사안에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사실과 다른 말을 했다고 해서 그를 거짓말에 인이 박인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이는 치우친 행동이다. 이렇게 사람을 규정하고 바라보는 것은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어떤 일에서 자신의 체면과 명망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으나 대부분의 일에서는 거짓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면, 설사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얼마 후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이런 자 역시 거짓말에 인이 박인 사람으로 규정할 수 없다. 오직 마귀에게서 환생한 사람만이 거짓말에 인이 박인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거짓말에 인이 박였다고 하시는데, 그도 사실을 말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물건 하나를 샀는데 다른 사람이 얼마짜리냐고 물으면 사실대로 말하더라고요. 이 일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어찌 그를 보고 거짓말에 인이 박였다고 하십니까?” 사생활이나 이익, 지위, 체면과 관련이 없다면 그가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 그도 거짓말을 하면 지치니, 괜히 힘 빼지 않으려고 자질구레한 일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어떤 일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거나 사소한 일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거짓말에 인이 박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중대한 사안에 대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묘사하며 설명할 경우, 자신의 이익, 명예, 지위, 앞날, 책임과 관련되거나 자기 관점과 관련될 경우,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그의 말에 거품이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진실하고 믿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라. 만약 그의 말에 거품이 너무 많아서 그야말로 시비를 전도하고 없는 말을 지어낸 거라면, 다시 말해 남에게 뒤집어씌우면서 자기가 저지른 나쁜 짓을 남이 했다고 하고 남이 한 좋은 일은 본인에게 돌린다면, 또 일을 잘못하면 자신의 책임이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말로 발뺌하면서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면, 사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혹은 위험해질까 두려워 이행하지 않고 거짓말로 제법 합리적인 이유를 대면서 실상을 은폐하여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다면 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모두 거짓말이고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이나 책임, 체면, 지위 등과 관계가 있을 때면 그는 늘 거짓말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접대 가정에 70위안을 들여 의자를 사 준 다음 돌아와 청구하려다가 이런 생각을 한다. ‘이번에 다녀오느라 너무 힘들었는데 맨입으로는 안 되지. 어떻게든 30위안은 더 받아야겠어. 이 30위안은 인건비랑 수고비야.’ 그래서 그는 의자 사는 데 100위안을 썼다고 말한다. 보아라. 거짓말을 하지 않았느냐? 그가 왜 거짓말을 했겠느냐? (이익을 더 취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익을 더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형제자매와 함께 본분을 이행하다가 서로 잘 지내는 사람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아무도 나와 친구가 되려 하지 않아. 다들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나는 당신 둘 사이에서 말을 부풀려서 이간질하겠어.’ 그는 그 중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무개가 그러더군요. 당신은 스스로 교육 수준이 높은 줄 아는데,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 어떻게 작문을 못하냐고요.” 그러고는 다른 사람에게 가서 또 이렇게 말한다. “아무개가 당신은 키는 크지만 몸매가 균형 잡히지 않아서 상체랑 하체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가 이 몇 마디로 두 사람을 이간질하니, 그 둘이 다시 만나면 그가 이간질한 말이 떠올라 서로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고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에게는 어떤 이득이 있겠느냐? 겉으로 보면 그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소원해져서 사이가 나빠진 걸 보면 그는 마음이 편해지고 질투가 사라지며 자기에게 득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일에서도 거짓말을 하려 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남은 물론 자기한테도 손해 아닌가요? 그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하면 당신이 중간에서 이간질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요? 그럼 자기도 심각한 피해를 보는 거잖아요?” 그가 그걸 신경이나 쓰겠느냐?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두 사람이 갈라서기만 하면 그는 질투심이 사라지고 자기가 득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마귀의 행동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마귀는 이렇게 행동한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도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일에 관해서는 사실대로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에게 거짓말하는 본성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대한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자기 체면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되기만 하면,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면, 혹은 어떤 이익을 쟁취하고 어떤 목적을 이루려 하기만 하면, 어떤 일을 하려는 속셈이 있기만 하면, 그는 반드시 거짓말이라는 방식을 통해 그 일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에 인이 박인 것이다. 의식주에 관한 일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평소에는 자질구레한 일로 머리를 쥐어짜면서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욱이 그의 눈에 전혀 같은 차원, 같은 등급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그런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으며, 그런 사람을 농락하고 조종해도 별다른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귀에게는 이런 특징도 있다. 너는 평범한 소시민이니 그는 네 지능이 별로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는 그와 어울리고 싶어도 어울릴 수 없고 어울릴 엄두도 못 낸다. 그는 그다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를 상대하지 않는다. 마귀가 사람을 가지고 놀 때는 타깃을 고른다. 그와 함께 생활해도 너는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하거나 그가 어떤 일에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마귀인 이상 분명 거짓말을 할 것이다. 그것이 마귀의 천성이다. 그가 너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너를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여겨서일 수 있다. 그는 ‘참나! 나는 거짓말할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내가 자기를 가지고 놀까 봐 걱정하네. 자기가 뭔데?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네가 안중에도 없으며, 거짓말은 고사하고 네게 말을 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네가 어떤 멍청이에게 아무개랑 사이가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그는 “우리는 그 사람보다 한참 부족하죠. 그 사람은 우리보다 자질도, 머리도 좋은걸요. 우리는 미천해서 그 사람만큼 고귀하진 않으니, 그 사람은 우리 같은 사람과 사귀는 걸 원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답할 것이다. 멍청이도 이런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마귀가 어떤 사람을 잘 가지고 놀고, 어떤 사람과 잘 싸우는지, 어떤 사람을 잘 미혹하고 이용하며 조종하는지 살펴보자. 그에게도 기준이 있고 일정한 범위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가 한 집단을 고를 경우, 그들은 자기와 마찬가지로 암투를 벌이고 간계를 부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과 함께 지낼 때 즐겁고 재미있으며, 성취감을 느낄 테니 말이다. 따라서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를 대할 때는 거짓말에 인이 박인 특징과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 그가 네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서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란 의미는 아니며,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본성이 없다는 의미도 아니다. 만약 그가 너와 깊게 왕래하지 않고 너를 상대하지도 않는다면, 그는 너를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평범한 신도, 즉 가정주부나 농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너는 그의 안중에도 없다. 네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존심에 상처가 나는 일, 머리를 쓰기도 아까운 일이니 거짓말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이런 부류를 어떻게 간파해야겠느냐? 그가 거짓말에 인이 박인 마귀라면 그의 본성이 이런 경우는 아니더라도 다른 적당한 경우에 표출될 것이다. 그가 네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그가 거짓말하지 않을 거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에게 마귀의 본질이 있는 이상, 거짓말을 하는 본성은 반드시 표출될 것이며, 그는 숨기지 못할 것이다. 잘 숨기든 그렇지 않든, 얼마나 표출하든, 거짓말을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항상 거짓말을 한다면 그는 결코 사람이 아니며, 마귀이다. 진정한 사람이라면 수시로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수시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째서 수시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겠느냐? 거짓말을 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양심에 참소를 받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엄청난 거짓말을 해서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면 평생 역겨워할 것이며 마음속으로 거짓말에 반감을 품기 시작해, 불필요한 경우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거짓말은 점점 줄어든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받기 때문에 같은 유형의 잘못이 재발하지 않게 스스로를 제약할 것이고, 결국 그런 잘못은 저지르지 않게 된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마귀는 하지 못한다. 그는 거짓말을 해도 죄책감이 들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싶을 때 제약받지 않는다. 어떤 것도 그를 제약하지 못한다. 환경도 그를 제약할 수 없고, 그 어떤 신분이나 지위를 가진 사람도 그를 제약하지 못한다. 물론 진리 역시 그를 제약할 힘이 없다. 사람의 폭로도 그를 제약할 수 없으며, 더욱이 진리는 그에게 종이에 쓰여 있는 글자, 다시 말해 도리와 규례로 보이기 때문에 그를 전혀 제약하지 못한다. 제약받지 않으니,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표출이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필요에 따라 온갖 거짓말을 하며, 이것이 바로 그의 본성이다. 이 점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본성을 어떻게 간파할 수 있겠느냐?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보아라.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저 인간은 거짓말에 인이 박였고, 거짓말이 끝도 없어요.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떨지도 않으면서 거짓말을 한다니까요. 무슨 일에서든 거짓말을 할 수 있어서 그의 말은 아무도 선뜻 믿지 않아요.”라고 한다면 그를 사람이 아닌 마귀로 규정해도 된다. 이렇게 많이 교제했는데,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거짓말에 인이 박인 특징을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겠느냐? ‘거짓말에 인이 박인 사람은 곧 마귀이다’라는 법칙과 정론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거짓말에 인이 박인 첫 번째 특징이 분명하게 교제되었느냐? (그렇습니다. 분명해졌습니다.) 이 내용들은 받아들이고 깨닫기 수월할 것이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이 부류는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다만, 예전에는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정상적인 패괴의 표출로만 여겼는데, 이제는 거짓말을 하는 이 부류의 본성이나 모습이 왜 변하지 않는지 교제를 통해 알게 되었을 뿐이다. 사실 속성에 의해 본성이 결정되기에 이 부류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런 부류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런 부류는 교제해서 도와줄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책임자를 맡고 있다면 교체해야 하고, 이미 악을 행하는 모습을 보여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기 시작했다면 정리할 사람은 정리해서 교회에 하루라도 더 있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마귀라는 놈은 거짓말에 인이 박였기 때문에 분명히 변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마귀에게 은사가 조금 있거나 특정 분야에 특기가 있는데 봉사하고 싶어 한다면 그의 봉사를 이용해도 된다. 하나님은 만물의 봉사를 이용해 사역한다. 큰 붉은 용이 바로 봉사만 하는 존재이자 부각물 중 하나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지혜롭게 사역해야 한다. 이 역시 한 측면의 원칙이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가 봉사하고자 하거나 봉사에 적합하다면 그의 봉사를 이용해라. 만약 그가 봉사도 못 하거나 득보다 실이 커서 손해가 막심하다면, 하나님 집에서 그를 써 봤자 긍정적인 효과는커녕 오히려 쫓아다니면서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러면 봉사에 적합하지 않으니 그에게서 봉사자의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원칙적입니다.) 원칙에 따라 대하면서 분별할 땐 분별해야 하지만, 처리하는 방법은 지혜로워야 하고 원칙이 있어야 하며 실제 상황에 따라야 한다. 이런 일에 관해 교제하는 목적은 너희에게 분별력을 길러 주고, 각 부류의 본질이 어떤지 분명히 알게 하며, 사람의 본질에 따라 그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구원받을 수 있는지 분명히 하게 하기 위함이다. 단, 너더러 마귀의 부류로 규정된 사람들을 일률적으로 제명 처리하라는 것은 아니다. 원칙과 하나님 집 사역의 필요에 따라 마귀의 봉사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라는 것이다. 만약 어떤 마귀들이 “제가 마귀라고 생각하면서 제 봉사만 이용하려 하시는군요. 구원받지 못한다면 전 봉사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한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기꺼이 봉사하지 않는다면 내보내야 합니다.) 봉사조차 하기 싫어한다면 당장 내보내라. 어떤 마귀들은 이렇게 말한다. “제 봉사를 이용하고 싶어 하시는데 어림도 없습니다. 저는 봉사해 주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 집에서 빈둥댈 겁니다. 일할 때는 대충 형식적으로만 하고 열심히 하지 않을 거라고요!” 이런 부류가 보이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정리해 내보내야 합니다.) 마귀가 확실할 경우 당장 정리해 버리면 된다. 자비를 베풀지 마라. 만약 어떤 마귀들이 그래도 솔직하며 스스로 거짓말에 인이 박인 마귀라는 것을 안다면, 본성 때문에 정직한 사람이 되지 못해 구원받을 수는 없지만 여러 해 동안 진리를 들어서 하나님을 따르고 마지막에 복을 받고자 하며 하나님 집에서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한다면, 교란하지 않고 그에게 적합한 일이 있을 경우, 봉사할 기회를 주어도 된다. 창조주가 준 본분은 어떤 속성의 피조물이든 모두 자신의 본분으로 대해야 한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사탄, 마귀라고 할지라도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한다면 하나님도 박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모든 피조물을 대하는 하나님의 원칙이다. 네가 스스로를 피조물이라고 생각한다면, 네 속성이 무엇이든 창조주를 경배하고 창조주의 권세 아래 복종하여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자 한다면, 설령 마지막에 좋은 결말이나 종착지가 없더라도 기꺼이 봉사한다면, 안 될 것도 없다. 하나님은 거절하지 않으며, 봉사할 기회를 주어서 네가 그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타고난 속성이 나빠서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구원받을 희망이 없다면, 저는 아예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봉사하지도 않을래요! 저를 이용해 봉사하게 하고 싶어 하면서 마지막에는 당신들만 복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고 제 몫은 없다고요? 그럼 안 믿고 말 거예요!” 그렇다면 잘 됐다. 마귀가 떠나겠다는데 보내 주어라. 만약 그가 가지 않는다면 그를 제명해도 이는 완전히 원칙에 부합한다. 어떤 마귀들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거짓말에 인이 박였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누구에게나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하나님께도 거짓말을 했지만, 하나님 집이 봉사하라고 하든 부각물이 되라고 하든, 절 어떻게 대하든, 다시 말해 저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아도 저는 원망하지 않았어요. 제가 마귀인 걸 어쩌라고요? 제게 어떤 봉사를 시키고 어떤 힘쓰는 일을 시키든 기꺼이 할게요.” 이런 사람은 수용하겠느냐? (수용하겠습니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수용해도 된다. 구원의 희망이 한 줄기라도 있는 한 수용해야 한다. 그가 자신이 마귀라는 것을 인정하든 말든, 적어도 자신에 관해 인식이 있고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며 조금이라도 순종한다면 수용할 충분한 조건이 된다. 그가 본분 이행에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부류를 대하든, 설령 그의 속성을 분별했다고 할지라도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서 원칙에는 딱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귀라면 모두 거부하고 제명해야 한다는 것, 마귀라면 모두 지옥에 간다는 것이 유일한 원칙은 아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주재하고 만물의 봉사를 이용한다. 그러니 어떤 것이 봉사할 수 있는지, 어떤 봉사를 어떻게 하는지, 어떤 단계에서 봉사하고 얼마나 오래, 어느 정도로 봉사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필요 없고, 어떤 상황에서 계속 써도 되는지 등에는 모두 원칙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 사람은 이 일을 혈기로 대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원칙을 구해야 한다. 모두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고 원칙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되, 마땅히 해야 하는 방식대로 해라. 원칙을 어기거나 맹목적으로, 아무 근거도 없이 일시적인 기분으로 한 사람에게 처분을 내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모두 진리와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신중하지 못한 태도이며, 엄밀히 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습이기도 하니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거짓말에 인이 박인 첫 번째 특징에 대해서는 거의 다 교제했고, 각 측면의 원칙도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두 번째 특징은 ‘부정(不正)함’이다. ‘특징’이라고 한다면 일시적인 것이 아닌, 그의 본질 속에서 항상 표출되는 모습이다. 물론 이는 그 사람이 기대어 생존하는 것으로서 그의 생존 비결의 원천이고, 생존 방식과 수단의 원천이며, 생각과 관점의 원천이자 그가 표출하는 성품과 말, 생각, 관점의 본질적인 발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마귀 부류가 지닌 ‘부정한’ 측면의 특징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있겠느냐? 무엇이 부정하냐? 부정하다는 의미의 ‘사(邪)’라는 글자는 보통 어떤 글자와 함께 붙어 다니느냐? (‘악(惡)’과 붙은 ‘사악’이 있습니다.) 또 무엇이 있느냐? [사성(邪性, 부정한 심성)이 있습니다.] 사성, 사정사욕(邪情私欲, 부정한 감정과 정욕)이 있다. 또 어떤 모습이 부정하냐? 괴상함과 비정상적인 것이 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괴상하고 비정상적인 것 외에 또 무엇이 있느냐? (엉큼하고, 간교하며, 용의주도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느낌이 듭니다.) 대체로 그런 것들이 해당한다. 괴상하고, 음험하며, 교활하고, 엉큼하고 간교하고 용의주도하다. 이것들은 모두 부정한 모습이자 특징이다. 그렇다면 마귀가 어떤 일에서 이런 특징을 보이겠느냐? 사람이 생각하는 성품 측면이나, 처신하는 수법에서 드러나는 괴상함, 음험함, 교활함 등 외에 본질적인 면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부정함은 무엇이냐? 바로 사람의 부정한 감정과 정욕이다. 이런 부정함은 음란함이라고 해야 한다. 부정하다는 것은 육의 정상적인 생리 욕구나 생리 반응이 아닌 음란함을 말한다. 이 역시 부정하다고 한다. 방금 말한 괴상함, 음험함 등은 성품 측면의 것이고, 음란함은 육적인 측면의 부정함이다. ‘음란함’이라는 단어가 딱 알맞지 않으냐? (알맞습니다.) 더 알맞은 말로는 ‘방탕함’이 있다. 이방인은 늘 어떤 사람을 두고 얌전해 보이는데 음탕하다고 말한다. 이는 모두 부정한 감정과 정욕 측면에 대한 것이다. 음란함, 방탕함 말고 더 있느냐? (천박함은 어떻습니까?) 천박함은 아니다. 천박함과 음란함에는 차이가 있다. 천박함은 사람의 존엄, 인격과 관련되고, 음란함과 방탕함은 주로 사람의 태도와 관련되는 문제이다. 방금 부정함의 두 가지 측면을 말했는데 한 가지는 성품 측면이고 다른 한 측면은 육적인 정욕 측면이다. 또 하나의 측면은 바로 이 부류에게 항상 환청이나 환각이 생겨서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는 늘 이런 말을 한다. “하나님께서 제게 계시하셨어요. 오늘 아침 6시에 동쪽으로 가야 해요. 거기에 제가 만날 복음 대상이 있거든요.” “어제 저녁에 꿈을 꿨는데 오늘 두 형제자매가 우리 집에 올 거예요.” 그는 걸핏하면 환청과 환각이 생겨서 늘 영적인 꿈, 이상(異象)이나 갑자기 떠오르는 말에 따라 살아간다. 또 특별한 일이라도 일어나면 비정상으로 변해서는 몹시 극단적으로 행동한다. 어느 날은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기도하거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어느 날은 남들은 다 쉬고 있는 밤에 자지 않고 굳이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찬송을 배우려 한다. 남들이 식사하거나 사역하는 시간에는 잠을 자고 남들이 쉬는 시간에는 반대로 활력이 넘치니 늘 비정상적이고 정상인과 다르다. 이 역시 부정한 측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정상적인 모습을 설명할 적절한 단어가 있느냐? 이 사람은 겉보기엔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일을 처리하거나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늘 무척 치우쳐 있고 극단적이다. 그는 아무리 교제해 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며, 때로는 환청이나 환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선명한 목소리나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하라는 이상한 생각이 내면에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든 진리와는 무관하고 심지어 규례를 지키는 것에도 이르지 못한다. 이런 부류를 표현하는 단어가 없겠느냐? (떠오르지 않습니다.) ‘기이하다’라는 단어가 적절한지 생각해 보아라. 그의 겉모습이나 행동을 보면 무척 괴상하고 비정상적이다. 항상 호들갑을 떠니 말이다. 네가 만약 그를 정죄하면서도 그에게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지적하지 못한다면, 또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는데 그가 조금 별난 모습을 보인다면 그를 잘 꿰뚫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그의 말을 들어 보면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뒤에서 관찰해 보면 그의 행동이 참 별나고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다지 좋은 징조가 아니며, 그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나중에 그가 기도할 때 방언하는 모습이나 평소 마치 다른 사람과 대화하듯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 그리고 실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참 소름 끼친다. 이 역시 부정한 측면의 모습이다. 이 측면을 일단 ‘기이하다’라는 단어로 표현해 보자. 결론적으로 마귀의 부류가 지닌 부정한 모습을 우리는 총 세 가지 측면으로 정리했다. 한 가지는 육의 그릇된 감정과 정욕이고, 한 가지는 늘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서 무척 기이하다는 것이며, 또 한 가지는 성품에 관한 측면으로, 괴상하다는 것이다. 괴상함이란 어떤 이가 어느 수준으로 간사하고 교활해서 보통 사람은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다. 그와 함께 있으면 항상 걱정되고 우려되며 두렵다. 그에게 속아 넘어갈까 봐, 이용당할까 봐, 그의 함정에 걸려들까 봐 늘 걱정이 된다. 이런 부류는 무척 음험하고 교활하다. 네 앞에서는 매너 있고 점잖지만 뒤에서는 널 음해하고 너와 한참을 경쟁하는데도 너는 알지 못한다. 그러다 알게 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서 다행이야.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그의 손에 놀아났을 거야. 어쩌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라!’ 이것이 바로 이런 마귀의 사악한 점이다. 이런 부류를 왜 부정하다고 하겠느냐? 겉으로는 분간하기가 정말 쉽지 않아서 그가 하려고 계획하는 일과 매일 내뱉는 말을 보아야 한다. 그러면 이 부류의 그릇된 본질과 본성을 충분히 꿰뚫어 볼 수 있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매일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 예를 들어 어떤 자매가 리더로 발탁되면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이도 어린 계집애가 리더가 되다니, 나보다 뭐가 잘나서? 예전에는 그녀를 무시하고 알랑방귀 뀌는 일도 없었지. 좋은 관계를 맺지도 않았고. 하지만 이제 그녀는 리더가 되어서 내 직속상관이 되었으니 아부를 떨어야겠어. 생활면에서나 물질적인 면에서 혹은 정신적인 면에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살펴봐야지. 이 방법이 먹히지 않아서 그녀와 친분을 쌓지 못하면 유화책을 쓸 거야. 그녀와 이야기할 때는 부드럽고 고분고분하고 착하게 굴어야겠어. 일단 어떤 수법이 통하는지 보자. 아부가 통하는지, 아니면 행패를 부리는 악인처럼 구는 게 통하는지 말이야. 그녀가 먹는 걸 좋아할까? 노는 걸 좋아할까? 옷을 좋아할까? 아니면 액세서리를 좋아할까? 뭘 좋아할까? 그녀에 대해서 고민 좀 해 보고 접근하고, 아부하면서 관계를 다져야지. 입에 발린 소리 좀 해야겠어.’ 누가 리더가 되든 그는 어떻게 리더와 가까워져서 좋은 관계를 맺을지 궁리한다. 그 자매가 리더가 되기 전에는 무슨 말을 하든 수긍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앞으로는 매주 한 번씩 예배하도록 해요.”라는 자매의 말을 들으면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른 교회는 두 번씩 예배하는데 우리는 한 번만 하다니. 뭐 때문에 당신 말대로 해야 하지? 당신이 뭔데?’ 하지만 이제 그 자매가 리더가 되었으니 그녀가 한마디 하면 반응이 사뭇 달라져서, 예전처럼 반박하지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매님 말씀이 곧 진리죠!” 그는 겉으로는 순종할 수 있는 사람처럼 고분고분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한다. ‘당신이 뭘 알아? 리더가 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 사역은 원래 내가 하던 건데 지금은 당신이 리더라니. 좋다 이거야. 리더가 결정하는 거니까 일단 받아들이겠어. 하지만 뒤에서 어떻게 할 지는 내가 결정해. 당신을 가지고 놀아 주지!’ 어떤 사람이 리더로 뽑히고 나서 그에게 물었다. “당신 교회에서는 리더를 뽑을 때 원칙대로 선출하나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고민했다. ‘만약 원칙대로 뽑는다면 내가 리더로 당선될 수 있을까?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순 없지.’ 그래서 그는 “원칙대로 뽑습니다. 저는 두 차례 교회 리더를 했는데 원래는 또 맡을 생각이 없었어요. 재임하면 형제자매들이 이의를 제기할까 봐 걱정돼서 기권했거든요. 그런데도 결국 형제자매들은 절 뽑았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요. 언젠가 새로운 리더가 뽑히면 양보해야죠.”라고 말했다. 말은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런데 그가 정말 그렇게 하겠느냐? 절대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그는 거짓말로 너를 가지고 놀면서 최대한 그럴싸한 말, 너를 흡족하게 해서 속일 수 있는 말, 너를 미혹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상부 리더에게는 어떻게 알랑방귀를 뀌고 환심을 살지, 어떻게 리더를 미혹해서 자기를 중시하고 발탁하게 할지 고민한다. 만약 발탁되지 못하면 어떻게 리더를 속여서 예전에 하던 사역에서 자신의 허점이나 오류, 실수, 몰래 저질렀던 과오, 기만적 행동을 알지 못하게 할지, 어떻게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을지 등에 관해 고민한다. 이것이 인성이 갖추어야 할 모습이겠느냐? 이것이 긍정적이냐, 아니면 부정적이냐? (부정적입니다.) 어느 정도로 부정적이냐? 사람들이 사역을 체크하고 점검하기 전부터 그는 속으로 미리 계략을 세워 놓는다. 진작에 생각을 다 해 놓고 한참 전부터 이 일에 관한 생각만 하는 것이다. 대답해 보아라. 괴상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부류는 사람한테는 사람의 말을 하고 마귀한테는 마귀의 말을 한다. 그리고 리더에 따라 다른 말을 한다. 리더가 여자면 선녀라고 칭찬하고, 남자면 잘생겼다고, 미남이라고 칭찬한다. 이것이 괴상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부정함의 가장 큰 특징이다. 리더를 대하는 그의 이런 태도나 모습은 무척 괴상하고 음험하다. 그의 내면세계는 대단히 복잡하고 생각도 무척 많은데 무엇 하나 긍정적인 것이 없다. 그는 인성, 진리, 바른길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어떻게 하면 리더에게 아부해서 잘 보일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지위를 보전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계속 어영부영 교회에 얹혀살면서 남몰래 밥만 축내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가 속으로 계산하고 계획하며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온통 이런 문제들뿐이며 하는 짓이라고는 죄다 잔꾀를 부리는 것뿐이다. 게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양심에 참소받는 법도 없다. 그는 어떤 집단에 들어가서 한 번 훑어보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저 가정주부들은 식견이 없으니까 나에 대한 분별력이 있을 리 없어. 내가 술수를 써도 하나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설사 알아차린다고 해도 날 무너뜨릴 수는 없겠지. 미꾸라지 주제에 무슨 힘이 있겠어. 걱정할 게 못 돼. 그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지. 나머지 사람들 중 하나는 교회 리더고 하나는 하나님을 믿은 지 꽤 오래된 자매, 또 하나는 젊은 자매인데 심리학을 전공한 대학생이라지. 이 사람들은 나한테 꽤 위협이 될 수 있어. 누구부터 손을 쓰지? 누구랑 먼저 왕래해서 포섭할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이랑 한편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신망을 쌓을 수 있지? 누가 내 편이고 누가 적일까? 누구와 친해지고, 누구를 멀리하고 경계해야 할까? 이런 문제는 천천히 신중하게 생각하고 고민해 봐야 해.’ 며칠 지켜 보고 나면 누가 교류해서 결탁해야 하는 대상인지, 누가 끌어들이고 이용해도 되는 대상인지, 누가 자기에게 적대적인 세력인지, 누가 진리를 깨닫고 원칙을 지키는 경계해야 할 사람인지 등을 분명하게 파악한다. 그러고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나를 분별하는 사람은 경계해야지, 미움을 사면 안 돼. 너무 깊게 교류해서도 안 되고. 그런 사람은 반드시 멀리 해야 한다고. 꼬리를 밟혀서 간파당하지 않게 말이지. 그 앞에서는 반드시 입조심을 해야 해. 그가 교회에서 나를 폭로하고 해부할 꼬투리를 잡게 해서는 안 돼. 형제자매들이 나를 분별하면 정리해서 내보내려고 할 텐데 그건 안 되지!’ 그는 매일 이런 생각만 한다. 누구와 어떻게 싸워야 유명해지고, 체면이 설지, 누구와 어울려야 손해 보지 않고 득 볼 수 있을지, 어떤 일에서 손해를 보면 어떻게 만회할 수 있을지 하루 종일 고민하는 것이라고는 이런 일들뿐이다. 심지어 누가 어떤 눈빛만 비쳐도 그는 온종일 고민한다. ‘어제 나를 보는 아무개 눈빛이 예사롭지 않던데 무슨 의미일까? 나를 분별했나? 이건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니야. 내 어떤 문제를 알아차린 걸까? 당분간 조심해야겠어. 꼬리를 밟히지 말아야지. 그리고 남의 눈빛에서 단서를 잡아내는 법을 배워야겠어. 대강대강 넘기지 말고 말이야. 요새 자꾸 눈꺼풀이 떨리는 걸 보니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조심해야지. 문제가 생기면 안 돼. 여차했다간 정리될 수도 있으니 말이야.’ 겉으로 보면 다른 사람과 왕래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무 문제도 알아차릴 수가 없다. 삼시 세끼를 먹고, 자고, 일하는 것들이 모두 정상적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과 생각은 비정상적이다. 어떤 모습이 비정상적이냐? 남들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무척 괴상하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삶은 어둡다. 그는 모든 일을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고민하고 계산하고 계획하며 사전에 모의한다. 그의 마음은 명예나 이익에 대한 다툼, 음해, 비교, 질투, 싸움, 보복 등으로 가득하며, 진리는 전혀 구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일을 처리하든 떳떳하고 정당하게 사람들 앞에서 소통하지 못하고 은밀히 몇 사람을 모아 음모를 꾸미며 자신의 일을 처리한다. 이런 사람은 교회마다 존재한다. 과묵한 그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얼굴빛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침묵을 택하며, 결코 경솔하게 입장을 밝히는 법이 없다. 겉으로는 남들과 이야기할 때 예의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속내를 밝히지도 않으며 누구와도 진심으로 대화하지 않는다. 누구와 교류하든 속내를 밝히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 설사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매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가족도 모르는데 하물며 남은 어떻겠느냐? 설령 네가 그의 절친이나 죽마고우, 오랜 친구, 함께 일하는 좋은 동료라고 할지라도 그가 무슨 심산인지 알지 못한다. 아무도 그를 헤아릴 수 없다. 그가 어떻게 말하든, 어떻게 일을 처리하든, 누구도 그를 꿰뚫어 보지 못한다. 하지만 간혹 그도 몇 마디 할 때가 있다. “아무개가 저보다 낫긴 하지만 그게 별건가요? 언젠가 제가 넘어설 겁니다. 두고 보세요!”라고 말이다. 이 ‘두고 보라’는 말에는 숨은 뜻이 있으니, 바로 매일 신경 쓰고 염두에 두면서 준비하고 고민할 거라는 뜻이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속은 용솟음치는 물결처럼 평온하지 않다. 그가 어떤 일을 생각하겠느냐? 만약 떳떳하고 정당한 일, 즉 인생의 바른길, 진리의 실행, 양심에 따른 행동, 처신법,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법 등의 긍정적인 일을 마음속으로 늘 생각하고 구하며 묵상하고 성찰하고 인식한다면, 사람의 내면은 지극히 평온하고 평안하며 기쁠 것이다. 또한, 살아갈수록 괴상해지는 게 아니라 정상적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이 이런 긍정적인 내적 상태로 살아간다면 수시로 주위 사람, 비교적 친밀한 사람들과 영적으로 접촉하고 교류할 것이다. 하지만 마귀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죄다 괴상한 것뿐이다. 괴상함이란 정상인이 볼 수 없는 무형의 것, 다른 종류의 것, 어두컴컴한 구석에 숨어 있어 사람이 발견하기 어렵고, 감지하기 어려운 것으로, 정상인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어두컴컴한 구석은 바로 마귀의 내면세계이다. 그들의 마음속은 이런 괴상한 것으로 가득해서 매일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남들에게 계략을 꾸미고 술수를 쓰고, 지위나 체면, 발언권을 놓고 다툰다.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죄다 이런 것뿐이다. 그에게 지금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길이 있는지 물어보면 그는 질문에 답하지도, 너를 상대하지도, 이 일을 언급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의 내면은 이런 부정적이고 괴상한 것으로 가득하며, 그가 생각하는 것은 죄다 이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간혹 어쩔 수 없이 기술 업무 분야의 문제에 관해 약간 생각하기는 하겠지만 사역이나 생활의 필요로 인해 잠깐 생각할 뿐, 해당 분야의 자기 사역이 끝나면 이내 그런 괴상한 일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누구의 은사가 나보다 크지? 내 어떤 면이 그보다 낫고 그의 어떤 면이 나보다 못하지? 누가 저번에 나와 대화하면서 의도적으로 나를 폄하하는 것처럼 말했지? 누구랑 누가 예전에 얼마 동안 정상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것 같던데, 왜 그런 거지? 둘 사이에 갈등이나 문제가 생기면 내가 그 틈에서 이익을 챙길 수 있을까? 둘 중 하나가 나한테 득이 되고 도움이 돼서 그와 잘 지내고 싶은데, 나를 전혀 상대해 주지 않아.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내가 그 틈을 타서 이 기회에 그와 친분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고민한다. 그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죄다 긍정적인 것과 아무 관계 없는 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무관하다. 이런 부류가 무섭지 않으냐? (무섭습니다.) 네가 그와 왕래한다면 이는 마귀와 왕래하는 것과 같다. 네가 그를 음해하지 않아도 그는 매일 너를 음해하고 지켜보면서 몰래 너를 분석하고 연구할 것이다. ‘그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나를 겨냥해서 한 말 아닌가? 내가 어떻게 응수하면 그가 날 간파하지 못할까? 어떻게 응수해야 나한테 유리하지? 내가 제대로 응수하지 못하면 그가 나를 멍청하고, 속이기 쉽다고 생각하거나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가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조금 더 떠봐야겠어.’ 늘 그의 음해 속에서 살아간다면 네 마음이 편하겠느냐? (불편할 것입니다.) 마치 바로 옆에 보이지 않는 마귀가 있는 것처럼 너는 평안함과 기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와 왕래하면 한 가지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늘 불안한 느낌 말이다. 불안한 게 정상이다. 정상인에게는 직감이나 육감이 있어서 마귀나 다른 존재가 주위에 있으면 불안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비록 너는 그를 모르고, 대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그와 함께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늘 불안하다. 이는 그가 선의를 갖고 있지 않고, 너를 음해하며 너에게 노리는 것이 있음을 증명해 주기에 충분하다. 너는 그의 정탐 속에서 살아가고, 그는 매일 너를 연구한다. 이런 상황은 옆에 호랑이나 사자를 두는 것보다 더 너를 불안하게 만든다. 설사 그것이 사나운 맹수라고 해도 너는 전혀 불안하지 않겠지만, 주변에 마귀가 있다면 그에게는 부정한 본성 본질이 있기 때문에 너는 불안할 것이다. 이 불안감은 영적인 감각이다. 마귀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귀가 주관적으로는 그렇게까지 너를 해칠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너를 늘 음해하고 정탐하니, 너는 영적으로 불안할 것이다. 주위에 마귀가 있으면 너는 절대 평안과 기쁨 속에서 살 수 없다. 그가 마귀가 아니거나 네게 충분한 분량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충분한 믿음이 있으며, 생명으로 삼은 진리가 있는 경우여야만 그로부터 어떤 위협이나 영향도 받지 않을 것이고, 불안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 외에는 마귀가 늘 정탐하면 너는 불안해질 것이다. 그러다 점점 어떤 지경에 이르겠느냐? 그에게 반감을 품고 그를 경계할 것이며 교란당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일에서 곤란을 겪고 속박을 받으며 얽매이게 될 것이다. 그가 옆에 있으면 너는 행동하고 말할 때 늘 그의 눈치, 기색, 태도, 견해를 살펴야 한다. 심지어 항상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왜 그를 꿰뚫어 보지 못할까? 어째서 그의 속을 모르겠지? 왜 그의 웃음이 동조하는 웃음이 아닌 것 같지? 난 왜 이렇게 겁을 먹은 걸까? 왜 이렇게 그의 영향을 받는 걸까?’라며 고심할 것이다.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하면 이런 부류와 함께 지내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의 영향을 받아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가 일상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표출과 내면의 생각을 보면 그들이 부정한 본질을 지니고 있다고 규정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와 깊게 교류하지 않는다면 그의 내면세계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부류를 분별하는, 가장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방식과 방법이 있다. 즉, 이런 부류는 외관상 특징이 하나 있다. 그는 늘 사악한 눈빛과 간교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그 사악한 눈빛에는 초점이 없다. 그다지 맑고 깨끗한 눈빛도 아니고, 정직하고 진지한 눈빛도 아니다. 그 눈빛을 보면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의 눈빛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네가 추측하도록 돌려 말한다.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오해하게끔 네게 암시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성동격서로 속이려 하며, 네가 이해한 것은 그의 진짜 생각이 전혀 아니다. 그는 너를 농락하고 가지고 놀려는 것이다. 너는 그의 눈빛에서 진짜 뜻을 읽어내지 못한다. 초점이 없고 유리된 그 눈빛은 긴가민가한 느낌을 주며, 그의 눈빛을 보면 문득 마음속에 의구심이 생겨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틀린 게 아닐지 의심하게 된다. 그의 눈빛을 보지 않는다면 너는 네 생각이 옳다고, 네가 받아들인 것이 순정하고 진리 원칙에 부합한다고, 마땅히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결연한 신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마주 보거나 그가 사악한 눈빛으로 노려보면 너도 모르게 몸서리칠 것이다. 비록 분명하게 말은 안 했지만 그의 그 사악한 눈빛이 일종의 심리적 암시를 통해 너를 미혹함으로써 순간적으로 ‘내가 잘못 말했나? 내가 잘못했나? 뭘 잘못했지?’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분명 어떤 일이나 한 측면의 원칙을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또 그렇게 이행하는 것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와 눈이 마주치자 외려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이런 눈빛이 바로 마귀의 눈빛이다. 이것이 한 가지 측면으로, 그의 사악한 눈빛이 네게 의구심을 품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그의 사악한 눈빛 속에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업신여김이다. 너는 어리고 경험이 일천하며 이력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을뿐더러 인간적 결함까지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자신감이 사라져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그 즉시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자기가 보잘것없고 그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그 앞에서 작아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눈빛이다. 이런 사악한 눈빛은 사람의 생각을 교란할 때도 있고 사람의 자신감을 교란할 때도 있으며, 소극적이고 침체되는 느낌을 줄 때도 있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를 분별할 때 그의 눈빛을 관찰해서 분별해 본 경험이 없다면 그가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정상적으로 소통하는지를 보아라. 만약 정상적으로 소통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여러 사람과 교류할 때 한 가지 원칙만 고수한다. 즉 말을 아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그가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그의 정확한 생각과 관점을 쉽게 파악하지 못하고, 그가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늠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는 아무 생각이나 관점이 없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진짜 생각을 마음속에 숨기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가 간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느냐? 그는 간사한 미소를 띠고 항상 가식적인 웃음을 짓는다. 네 면전에서는 가식적인 웃음을 짓지만, 돌아서면 웃음기를 지우고 정색한다. 섬뜩하고 무서운 부류다. 이런 자가 바로 마귀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예를 들어 네가 그와 어떤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네 관점을 다 밝혔는데도 그는 본인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간사한 미소만 보인다. 간사한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너는 그의 그 미소가 네게 동조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부정한다는 뜻인지 알 수 없고, 그가 과연 네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는 “헤헤” 하고 웃기만 할 뿐, 네 말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네 말을 이해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그 미소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도리가 없다. 반응은 했지만 반응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가 반응하지 않았으면 이해하지 못했다고 짐작할 텐데, 이렇게 반응하니 오히려 혼란스러운 것이다. 너는 그 미소가 비웃음, 업신여김, 조소인지, 아니면 동조나 인정인지 알 수가 없다. 다시 그에게 본인의 관점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그는 또다시 “헤헤” 하고 웃다가 “됐어요. 됐어.”라며 갑자기 정색한다. 이런 반응은 은연중 네게 큰 압박이 된다. 분량이 작아서 바른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올바른 생각과 관점을 가지지 못한다면 너는 그에게 제압당할 것이다. 그러니 그의 이런 미소를 간사한 미소라고 하고, 그의 괴상함과 교활함을 간사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관점을 쉽사리 비치지 않는다. 말할 때 한 마디는 너무 적고, 두 마디는 너무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관점을 분명하게 밝히거나 구체적인 의사를 보이는 것은 실패이자 실수이니, 네가 알아서 짐작하도록 웃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이다. 네가 바라는 대로, 네가 추측하고 싶은 대로 추측하라는 것이다. 단, 최소한 그가 적대적이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의 목적은 이루어진 것이다. 간교하고 주도면밀하며, 교활하고 간사한 늙은 여우와, 음험하고 간사하며 술수가 악랄한 부류를 관찰해 보아라. 그들은 말수가 적고 표정도 많지 않지만 눈빛과 웃음이 부정하다. 보통의 패괴된 인간이나 짐승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를 피하고 싶어도 피하지 못하니 이런 부류와 왕래하는 것을 꺼린다.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무섭고 소름 끼친다. 왜 소름 끼치겠느냐? 그는 사람이 아닌 마귀이고, 마귀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과 교류하면서 상대방을 소름 끼치게 하지 않는다. 정상인에게는 양심과 이성이 있어서 행동에 맺고 끊음이 있고 선이란 게 있기에, 기껏해야 화를 내며 욕을 하거나 약간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고 자존심을 좀 상하게 할 뿐이다. 하지만 마귀는 다르다. 그는 욕을 하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지만, 너를 해치고 몰래 미혹할 궁리를 한다. 그리고 네가 제 발로 빠지도록 함정을 판다. 네가 함정에 빠지면 그는 위에서 너를 조롱하며 좋은 사람인 척 말한다. “제가 구해 줄게요! 어쩌다 빠지셨어요? 보통 사람들은 여기에 구덩이가 있는 걸 다 아는 줄 알았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무골호인이 되어 네게 인정받으려 한다. 무서운 사람 아니냐? 너를 노리고 판 함정인데 네가 아니면 누가 빠지겠느냐? 그는 네가 함정에 빠지길 기다렸다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구해 주면서 “왜 빠지셨어요?”라고 묻는다. 너를 조롱하면서 한편으로는 자기가 함정을 팠다는 사실을 모르게 하는 것이다. 또 분명 자기가 해쳤으면서 자기에게 고마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부정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부정하다!
모두가 보았다시피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가 늘 하는 짓이 있으니, 바로 마귀는 듣기 좋은 말로 남에게 환심을 사는 데 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일하고 있는 게 보이면 방에 숨어서 지켜보다가 일이 다 끝난 후 튀어나와 이렇게 말한다. “어머나, 일하면서 왜 안 부르셨어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었는데. 같이 해요. 혼자 고생하지 마시고요. 앞으로 일이 있으면 부르세요. 제가 거들게요. 저한테는 어려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 말을 들으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또 비록 그가 도와주진 않았지만 그런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해 줬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듣기 좋은 말로 너를 속인 것이다. 보아라. 그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그렇다면 그의 말이 거짓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다음에도 네가 일을 다 끝냈을 때 와서 “일하면서 왜 안 부르셨어요? 매번 안 부르는 걸 보니 정말 절 남이라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저한테는 편하게 하세요.”라며 또 듣기 좋은 말을 한다면, 그리고 이런 일이 두세 번 반복된다면 너는 알게 될 것이다. 사실 그는 네 일을 돕고 싶지 않으며, 그저 듣기 좋은 말로 너를 속여서 환심을 사려한다는 것을 말이다. 막상 정말 일이 생겨서 도움이 필요할 땐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냐? 이런 자는 마귀이지, 절대 사람이 아니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누구를 만나든 듣기 좋은 말로 사람을 속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머릿속이 온통 못된 생각뿐이니 사람이 아닌 마귀인 것이다. 이런 부류와 왕래할 가치가 있겠느냐? 그를 상대해서는 안 된다. 살아가다 보면 이런 부류가 있지 않더냐? (있습니다.) 그는 이 일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이면서 남들을 속인다. 이것이 바로 사악한 심성이다. 그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부정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그중 한 가지 모습이 괴상함이다. 다들 분별력이 조금 생기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이 부류는 무척 교활하고 괴상하며 음험하고 간사하다. 만약 그의 모습을 정상적인 패괴 표출로 생각하고 그를 형제자매로 여겨서 도와주고 붙들어 준다면 이는 우매한 모습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우매한 짓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는 사람이 아닌 마귀이다. 네가 도와주고 붙들어 줄 대상이 아니란 말이다. 그는 속으로 무엇이 진리인지 알고 있고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는 것으로 그칠 뿐, 스스로 그렇게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지 않고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실행하지도 않는다. 실행하고 싶어도 실행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실행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에게 어떤 심산이 있고 무슨 계획이 있는지 보아라. 긍정적인 것, 긍정적인 생각이나 관점과 관련된 생각은 하나도 없다. 진리를 실행할 생각도, 바른길을 갈 생각도 없다. 그렇기에 그는 마음속으로 진리 원칙을 전혀 구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지 구하지 않으며, 충성을 다하고 진심을 바쳐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가 계획하는 것은 죄다 괴상한 일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어떤 계획을 세우든 그건 그의 내면세계의 일입니다. 분별하기가 쉽지 않죠.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털어놓고 교제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겉보기엔 참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맡은 일을 감당하느라 바빠 보이고요. 어찌 그를 괴상하다며 마귀라고 규정하십니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은 사악한 눈빛과 간사한 미소를 조금 흘렸을 뿐입니다. 그 사람이 내면세계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가 꿰뚫어 볼 수는 없다고요.” 그렇다면 그 사람이 마귀란 걸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느냐? 사람의 생각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 그가 표현하지 않으면 볼 수 없고 알 수도 없어 분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든, 내면세계에서 무엇을 지향하고 계획하든, 그는 분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다. 그럼 결국 그는 그렇게 살아내고 그런 모습을 드러낼 테니,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사람들은 그가 하는 일을 보고 접할 수 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어떤 속셈, 어떤 음모, 어떤 계획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꾸미고 계획하며 생각하는 일은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는 그것을 실행에 옮겨 사람들 앞에서 어떤 일을 할 테니 그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질 때면 볼 수 있지 않겠느냐? 분별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의 모습을 봐도 이런 부류를 어떻게 분별하고 규정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렵지 않다. 이 부류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으니 그 특징을 통해 분별하면 된다. 첫 번째 특징은 행동할 때 자기 생각대로만 하고 진리 원칙을 전혀 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혼자 계획을 미리 짜 놓고 완전히 자신의 방안, 생각, 의도대로만 행동할 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지 않는다. 더욱이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역 지침대로 이행하지도 않는다. 이런 모습들이 보인다면 마귀가 완전히 폭로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깨닫고 진리 원칙을 이해하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까 다른 사람과 상의할 필요가 없는 걸 수도 있죠.”라고 하는데, 이 말도 틀렸다. 이는 일을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마귀가 하는 언행 하나하나가 너희에게는 난관이다. 그가 형제자매의 의견을 구하든 말든 너는 그가 하는 일의 목적과 동기, 취지, 원칙이 자신의 명예, 지위,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교회 사역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분간해야 한다. 또한 최종적으로 거둔 성과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켰는지, 많은 사람에게 손실이나 피해, 고통을 야기했는지, 아니면 유익을 가져다주었는지도 분간해야 한다.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는 무슨 일이든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한다. 이것이 마귀에게서 환생한 부류의 또 다른 특징이다. 그의 눈에 자신의 이익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며, 그는 마치 장사꾼처럼 이익을 가장 중요시한다. 누구의 이익을 가장 중요시하겠느냐? 마귀의 이익을 가장 중요시한다. 만약 어떤 일을 해서 자신의 이익과 체면, 지위, 명예 혹은 물질, 금전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는 절대 주저하지 않고 그 일을 끝까지 관철하고 해낼 것이다. 설령 윗선 리더나 형제자매의 반대라는 벽에 부딪혀 진행하지 못한다고 해도 우회 전략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상대와 장애물을 제거하여 자기가 하려는 일을 해 나갈 것이다. 그는 절대 봐주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지킨다. 이러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가 꾸미고 준비하며 계획한 것이 방안이든, 수단이든, 조치든, 절차든 모두 계산된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이익뿐이며, 그의 마음은 온통 이익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누구를 이용할지, 누구에게 접근하고 누구를 멀리할지, 누구를 지지하고 누구에게 반대할지, 그리고 누구를 제거할지 모두 자기 이익에 따라 계획한다. 그가 하는 사역과 본분 이행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는 적그리스도에 속하는 것이고 마귀의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부류는 대단히 주도면밀해서 매일 이런 일에 관해 궁리한다. 교회 사람 전부를 파악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느냐? 교회 모든 사람의 처지, 각 사람의 실질적인 문제나 고충을 모두 정확하게 파악하면 적당한 시기에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누구든 봐주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다. 그가 교회 사역을 이행한다는 미명하에 개인적인 일을 하면서 제 주머니를 채우니,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교회 사역과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이다. 그는 모든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 하나님 집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사적인 이익을 우선시하는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 이러면 확실히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그 행동 방식과 최종 결과를 보면 그는 사람이 아닌 마귀이다. 보아라. 그는 온종일 말을 거의 하지 않고 관점을 밝히지 않지만, 실은 어떻게 하면 제 주머니를 채울 수 있을지 매일 궁리한다. 그는 겉으로는 매우 조용하고 고상하고 유약하며 똑똑하고 말수도 적어 보이지만, 마음속에서는 강과 바다를 뒤엎을 만큼 파도가 세차게 일렁인다. 그는 이 일들을 모두 계획해 놓았다가 행동할 때가 되면 자기가 생각해 놓은 방안대로 진행한다. 그 결과, 결국 자기가 사전에 계획한 것을 이룬다. 이는 마귀의 소행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소행이다. 이러면 간파할 수 있지 않겠느냐?
작년 복음 사역에 그렇게 큰 문제가 생긴 것은 몇몇 마귀 및 그들의 일 처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 마귀들은 일할 때 진리 원칙을 전혀 구하지 않는다. 상부에서 사역을 맡기면 그 자리에서는 잘 수락하지만 교회에 가서는 엉망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않아 하나님의 제물과 복음 사역, 교회 생활에 손실을 입힌다. 그래서 여러 측면에서 손실이 발생할 뿐 아니라 교회 사역에도 혼란을 준다. 너는 마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간파하지 못하고, 그가 원칙을 구했는지 구하지 않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일할 때 조짐을 보이면 그의 일 처리 방식과 근본이 옳지 않다는 것을, 오롯이 자기 자신을 과시하고 자기 뜻대로 행하며 제멋대로 독립 왕국을 세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더구나 마귀 무리는 하나님 집의 이익은 지키지 않고 서로를 보호한다. 큰 마귀가 무슨 짓을 하든 그 졸개들과 작은 마귀들이 온 힘을 다해 아첨하고 추앙하니, 큰 마귀는 제멋대로 설치고 작은 마귀는 그를 따르면서 알랑방귀를 뀌며 맞장구를 친다. 그런데도 그의 본질이 마귀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성질이 무엇인지, 이루려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아라. 만약 그 일의 성질이나 결과가 무척 심각하다면 마귀의 소행이라고 판단해도 된다. 예를 들어, 복음을 전해 얻은 사람의 수를 허위로 보고한 일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숫자를 허위로 보고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지 않나요? 사실대로 보고해야죠. 얻은 사람 수대로 보고해야지, 어떻게 허위로 보고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백 명을 얻어 놓고 천 명이라고 보고하고, 천 명을 얻어 놓고 만 명이라고 보고할 수 있죠?”라고 물으면 이 거짓 리더는 뭐라고 하겠느냐? “무슨 일이 있어도 이렇게 보고해야 합니다. 다들 그렇게 해요. 이것이 성령의 흐름이라고요!”라고 한다. 너희는 이 말을 분별할 수 있느냐? 숫자를 허위로 보고하고 거짓으로 보고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을 기만하는 짓인데 어찌 성령의 흐름일 수 있겠느냐? 이것은 사악한 흐름이다. 성령은 사람에게 거짓말하라고, 숫자를 허위로 보고하라고 한 적이 없다. 오직 마귀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너희는 분별할 수 있겠느냐? 이런 황당한 말을 하는 거짓 리더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이 거짓 리더 역시 마귀의 부류에 속한다. 이 일을 간파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마귀가 하는 말임을 분별할 수 있겠느냐? 오직 사탄, 마귀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만약 이 일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너무나도 분별력이 없는 것이다. 만약 짐승에게서 환생한 부류라 간파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서 사람의 영이 없기 때문이다. 네가 정말 분별력이 있어서 이 일을 간파할 수 있다면 네 책임을 다하였느냐? 나서서 이 일을 저지하고 폭로하였느냐? 너는 “간파했지만, 저는 지위가 낮아 입김이 약하고 영향력도 없습니다. 저지하거나 폭로할 엄두를 낼 수가 없다고요!”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너는 머저리이다! 너는 네 입장을 지키지 않았고, 굳게 서서 증거하지 못했으니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이 아니다. 사람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너는 멍청이이고 머저리이다. 대답해 보아라. 하나님이 머저리를 좋아하겠느냐? (좋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게 생명을 주고 진리를 공급하며 네가 일상에서 사탄에게 괴롭힘당하지 않게 지켜 주기까지 하는데 결국 너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탄을 따르며 악을 행했다. 마귀 무리 속에 살면서 사탄이 해악을 입히게 내버려두고 사탄의 진면목을 똑똑히 보았으면서도 폭로하지 않았으니, 제 무덤을 판다는 말은 너의 이런 행동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 너는 사탄에게 농락당해도 싸다. 하나님은 네게 진리를 공급하여 분별력을 키워 주었다. 분별력이 생겼는데도 눈과 귀를 닫고 모르는 척하며, 나서서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를 폭로하지 않는다면 너는 머저리이다! 사람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은 너는 책임을 방기한 인간쓰레기이고 머저리이며 밥이나 축내는 밥버러지이다! 마귀가 복음을 전한 숫자를 허위로 보고하라고 강요하는 수법은 무척 명확할 테니 분별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너를 발로 차거나 주먹으로 한 대 때렸다고 해 보자. 그가 너한테 왜 그러는지,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 분별하지 못하다가 이윽고 그가 칼로 네 목을 찌르고 나서야 ‘이 사람이 날 죽이려 하는구나!’라고 깨닫는다면 얼마나 어리석겠느냐? 그가 너를 발로 차고 네게 악의를 품었는데도 너는 그가 악인이라는 것을 분간하지 못한 채 “당신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저를 발로 차시나요? 인성이 있긴 하세요?”라고 따지기만 한다. 아무 까닭 없이 너를 발로 찬다면 악인 아니겠느냐? 악인에게 따져 봤자 소용이 있겠느냐? 그가 만약 칼부림이라도 한다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때 가서 아무리 살려 달라고 소리쳐 봤자 이미 늦었다. 넌 죽은 목숨이다. 대답해 보아라. 그 사람은 분량이 얼마나 작고, 얼마나 우둔한 것이냐! 사탄을 만나면 수동적으로 굴지 말고 능동적으로 공격해야 한다. 늘 수동적으로 굴면서 그가 네 목숨을 앗아가고 나서야 대응하고 하나님의 가호를 빈다면 이는 너무도 수동적이고 미련한 짓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의 문제를 보고할 때, 무척 복잡하게 보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선뜻 소속 교회에 보고하지 못하고 타지 교회에 가서 보고한다. 소속 교회의 누군가가 고자질해서 악인이 알게 되면 자신을 괴롭힐까 봐 두려운 것이다. 분량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구나. 하나님을 믿는데도 악인과 마귀가 그렇게 무서우냐? 마귀의 위세가 그렇게 대단하더냐? 마귀가 네 목숨을 끊을 수 있겠느냐? 네 운명을 마귀가 쥐고 있느냐? 왜 그리도 그를 두려워한단 말이냐? 그는 일개 악인일 뿐인데 너를 어쩔 수 있겠느냐? 백만 번 양보해서, 나라에는 법이란 게 있는데 무서울 것이 무엇이냐? 여기는 마귀가 판치는 중국이 아니라 민주 법치 국가이다. 하물며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있는데 그가 너를 어쩔 수 있겠느냐? 일부 사람은 리더 일꾼의 문제를 보고하고 겁을 먹어 이렇게 된다. 이는 믿음이 작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머저리에 겁쟁이인 그들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 하나님이 준 숨결마저 아까울 지경이니, 짐승에게 주는 것만 못하다. 짐승도 궁지에 몰리면 사람을 물 줄 아는데 너는 이런 배짱조차 없이 살아가니 유약하기 짝이 없다! 어떤 사람은 악인을 만나면 선뜻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는 않지만 지혜를 발휘해서 교회 사역을 지킬 줄 안다. 악인의 문제를 상부에 보고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악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의지를 품고 있다. ‘당신이 악인이라고 해도 무섭지 않아. 나는 당신이 악행을 일삼으면서 하나님 집 사역을 교란하고 망쳐 놓지 못하게 할 거야. 당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게 목숨을 걸고 당신과 싸우겠어. 당신이 날 어쩌겠어? 그래 봤자 죽이기밖에 더 하겠어? 그래도 내 숨이 붙어 있는 한 끝까지 싸울 거야!’ 너희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느냐? 머저리들에겐 이런 믿음이 없다. 그들은 마귀가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마귀나 적그리스도가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생각을 한다. ‘폭로하고 고발하면 안 돼.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문제 삼아 봤자 좋을 거 없잖아. 내 한 몸 건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악인을 폭로했다가 그에 의해 교회에서 출교당하고,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기회마저 박탈당하면, 또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완전히 도태되는 것 아니겠어?’ 그는 악인에게 보복당할까 봐 폭로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하나님 선민에 대한 큰 붉은 용의 광적인 탄압과 박해도 두려워할 테니 체포당하면 유다가 되어 하나님을 배신할 것이 뻔하다. 그러니 교회에서 악인을 두려워하고 악인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봐도 폭로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은 사탄에게 항복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네게 진리를 공급하고 믿음을 주며 오늘까지 너의 삶을 지켜 주었다. 그리고 너는 하나님이 준 숨결로 호흡하며 하나님이 네게 공급한 진리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다. 이렇게 좋은 교회 생활 조건 속에서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는 너는 하나님 집에서 악인이 교란하는 것을 보고 분별까지 했으면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너는 대체 뭐 하는 놈이란 말이냐? 살아갈 자격도 없다! 소속 교회의 일을 소속 리더에게 보고하지 못하고 타지 교회까지 가서 보고하니 이런 배짱으로 큰일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증거하여 이기는 자가 되겠다고 하는구나. 너는 아무것도 아니며, 짐승만도 못하다! 개도 주인을 지킬 줄 안다. 낯선 사람만 오면 주인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될까 봐 기를 쓰고 짖어 댄다. 어떤 개들은 사람이 발로 차면 나동그라질 정도로 덩치가 작은데도 겁도 없이 필사적으로 짖는다. 주인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심지어 어떤 개들은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주인을 지킨다. 그런데 사람이 이런 믿음조차 없으니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경비견보다 못하구나. 죄다 쓸모없는 놈들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을 거저 누리고 아무런 보답도 하지 않으면서 당연하다는 듯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겨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교회 사역이 교란당하고 망쳐지는 것을 보아도 괴로운 마음이 들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짐승보다 못한 것이다. 경비견에게도 훨씬 못 미친다. 앞으로 마귀를 또 만나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만약 그를 간파하지 못하겠다면, 슬쩍 웃는 그가 어떤 나쁜 짓을 저지를지, 그의 눈빛 속에 어떤 사악한 생각이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다면, 우선 그를 관찰하면서 그를 감독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된다. 그리하여 그가 몰래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짓을 하는지, 자기 패거리와 무슨 계획을 꾸미는지 살펴보아라. 애초에 그의 모든 음모와 계략의 싹을 잘라 버려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실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 집을 위해 이 문을 지키겠어. 이곳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는 거야. 이 일을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좌시할 수 없어. 마귀와 끝까지 싸울 거야!’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라고 한다. 이는 나대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께 의지해 이 일을 하는 거야. 어떤 마귀든 내가 있는 한, 일이 잘 풀리거나 뜻대로 될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하나님 집을 대신해서 내가 이 문을 지키고 형제자매와 하나님 집의 이익, 사역을 지킬 테니까. 그 누구도 교란하거나 망칠 생각은 마. 누구든 교란하거나 망치는 게 보이면 봐주지 않겠어. 교체할 사람은 교체하고 출교시킬 사람은 출교시키고 제명할 사람은 제명할 거야. 절대 인정사정 봐 주지 않겠어!’ 너희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느냐? (있습니다.) 너는 사람이나 짐승과는 제법 잘 싸우지만 마귀와 싸우라고 하면 겁을 먹고 꼬리를 만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러면 너는 끝장이며, 가망이 없다. 넌 진리를 얻지 못하고 구원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마귀와의 싸움은 진정한 싸움이며,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는 싸움이다. 이기는 자, 성도,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싸워야 하고 반드시 입장을 취해야 하며 반드시 결심하고 의지를 다져야 한다. ‘마귀와 끝까지 싸우겠어. 우리가 공존하는 일은 없을 거야. 절대 두려워하지 않고, 물러서거나 위축되지도 않겠어!’ 너희에게는 이런 결심이 있느냐? (이제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분량이 너무 작아서 권세와 지위를 가진 사람, 특히 흉악하고 교활하고 간사하며 음험하고 간교한 사람을 만나면 두려워한다. 그자가 마귀라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받들고 달래고 굽실거리면서 절대 미움을 사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 폭로는 더더욱 엄두도 못 낸다. 그는 마귀, 사탄을 보면 감히 어떤 원칙도 지키지 못하며, 성도의 품위 역시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이런 사람과 관계를 잘 다져서 한편이 되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교회 사역이 진전되지 않는다고요.”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그들이 하나님 집에서 그 어떤 좋은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마귀와 적그리스도로 규정되어서 출교시키고 제명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참을성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자기가 그들을 이기지 못할 거란 생각에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걱정하면서 그들에게 고립되어 농락당할까 봐 걱정한다. 그들에게 대응할 지혜가 없고 그들과 싸울 분량이 충분치 않으니 계속 물러서고 양보하며 타협하기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석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면 교회 사역이 마비되고 교회 생활도 혼란에 빠지고 만다. 그는 악인과 마귀가 교란하는 것을 똑똑히 보고, 그 지역 토박이가 교회에서 설쳐 대는 것을 보아도 폭로하고 처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며, 자신의 안위나 지위, 명성, 이익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한다. 네 지위나 명성, 생명의 안위가 왜 그리 중요하냐? 하나님 집의 모든 사역이 네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냐? 백만 번 물러나서, 하나님에게 충성하며 위험을 좀 무릅쓴다 한들 하나님이 너를 지켜 주지 않겠느냐? 네가 지혜롭게 원칙대로 일하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데 하나님이 너를 사탄에게 넘겨서 그들이 제멋대로 유린하고 해를 끼치게 하겠느냐? (그러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아끼기도 부족한데 어찌 사탄에게 넘길 수 있겠느냐? 네 믿음이 과거 베드로처럼 너무 작구나. 예수가 바다 위에서 “오라” 한 것은 물 위를 평지라고 생각하고 걸어오면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걸어갈수록 두려움을 느끼고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하나님이 오라고 한 것은 너를 책임지고 지켜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네가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다. 만에 하나 네 생명이 위험해진다면 어떻게 응해야겠느냐? 기꺼이 하나님에게 목숨을 바치면 되지 않겠느냐? 그리 대단한 것도 없다! 마귀가 그리도 무섭더냐?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탄압하고 체포하는데도 너는 믿음을 지켰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교회에 작은 마귀 몇몇이 나타났다고 무서워 벌벌 떨면서 그들을 따라 부득불 악을 행한다. 이는 증거를 잃어버린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특정 교회의 특정 사역 환경 덕분에 마귀가 목적을 달성하고 교회 사역을 마음껏 엉망진창으로 어지럽히는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형제자매가 본분을 이행하기에 적절한 환경이 사라진다. 이는 일부 사람이 이런 마귀들을 간파하고도 나서서 싸우기는커녕 제 한 몸 건사하기 위해 사탄, 마귀와 타협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또 이는 마귀가 악행을 저질러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귀가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것을 간파하고도 그와 싸우지 않고 그를 폭로하지 않는다면, 이는 마귀가 악행을 저지르도록 방임하는 것 아니겠느냐? 만약 마귀가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신속히 그를 폭로하고 처리하며 저지한다면 피해나 혼란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 집의 사역과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 득이 되는 일 아니겠느냐? 그런데 왜 너는 그렇게 하지 않느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것이다. 네가 어느 한 직급의 리더 일꾼이든, 아니면 평범한 신도이든 마귀가 악행을 저질러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것을 간파하고도 그를 폭로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않았다면, 굳게 서서 증거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너는 멍청이이며 살아갈 자격이 없다! 사람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준 숨결로 호흡할 자격이 없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이 일에서 사람이 어떻게 해야겠느냐? 네가 어떤 부류의 마귀와 마주하든, 그 마귀가 부정하든 악하든 음험하든 악랄하든 교활하든, 또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그들이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것을 보고 분별했다면 마땅히 나서서 그를 폭로하고 저지해야 한다. 이것이 네 직책이다. “어떻게 말해야 그를 저지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대해라. 우선 그를 화나게 만들지 마라. 단도직입적으로 폭로해서 그를 화나게 하지 말고 그의 음모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저지해라. 최대한 교회 사역을 먼저 지키고, 하나님 집의 이익부터 보호해야 한다. 그런 다음 기회를 봐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나 리더 일꾼을 찾아가 마귀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상의해라. 이 사역은 반드시 지혜롭게 이행해야 한다. 사탄과 싸우고 사탄, 마귀의 악행을 저지하여 형제자매의 분별력을 키워 주며 형제자매와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키는 한편, 최대한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 만약 정말 위기나 곤경에 직면해야 한다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안위나 뒷일은 생각하지 마라. 이는 교회 사역에 필요한 일이고 네 직책이니, 그렇게 해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이 네게 준 생명에 부끄러울 것이고, 그렇게 오랫동안 공급해 준 하나님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마귀를 대함에 있어 사람은 이런 입장을 취해야 한다. 너는 하나님이 손수 지은 피조물이다. 네가 사람의 부류든 다른 생물의 부류든, 현재 네 신분이 사람이자 피조된 인간인 이상 피조된 인간의 직책을 회피하지 말고 감당해야 한다. 만약 제물을 훔쳐 먹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상관하지 않으면서 “그에게 미움을 살까 봐 걱정됩니다. 제가 그를 폭로해서 미움을 산다면 그가 뒤에서 해코지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저와 끝장을 보려 할 겁니다. 그는 악인이잖아요. 그를 폭로하고 신고할 엄두를 못 내겠어요!”라고 말한다면 끝장이다. 이런 자는 머저리이다. 책임을 다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럼 책임을 다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기회를 봐서 익명으로 리더에게 쪽지를 보내라. 이 사실을 리더에게 낱낱이 알려서 제때 처리하고 저지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손실 없이 제물을 잘 지킬 수 있다. 리더는 누가 보고했는지 알 필요가 없다. 하나님만 알면 된다. 그렇다면 제물을 보호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이냐? 올바른 마음가짐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제물에 손실이 생기지 않게 잘 지키고, 악인이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네 책임이다. 하나님 집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집의 이익과 형제자매, 하나님 집의 사역, 하나님의 제물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라거나, 남의 미움을 사라거나, 곤경에 처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뜻이 아니다. 악인이 두렵고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사는 것이 두렵다면 익명으로 문제를 보고해도 되고, 익명으로 악인과 마귀를 폭로해도 된다. 그러면 표면적으로는 익명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책임과 의무를 다한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책임 방기가 아니다. 너는 그것이 네 책임이며 그 책임을 다해서 하나님 집의 사역과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선행이고 하나님이 기억할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겠다. 마귀와 싸울 때는 그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 마귀에게 승리하여 하나님 집의 이익과 교회의 각 사역, 교회 생활,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원칙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마귀와 싸울 때는 그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마라. 책망과 훈계의 방식을 취해도 되고, 폭로의 방식을 취해도 되며, 물론 본분에서 해임하거나 경질하는 방식을 취해도 된다. 이 밖에, 상의하고 위로하는 방식으로 그를 진정시켜도 된다. 여러 지혜로운 방식으로 마귀를 제재하는 동시에 교회의 각종 사역을 지키는 것이 바로 지혜이다. 속으로 그가 마귀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를 어떻게 대하든 잘못은 아니다. 그는 진정한 형제자매도, 진정한 사람도 아니며, 하나님이 택한 대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사탄에게 부역하여 교회를 교란하러 하나님 집에 온 자이다. 마귀를 대할 때 너는 이런 태도를 지녀야 한다. ‘당신이 교란한다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겠어. 당신이 망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야! 교란하거나 망치지 않고 교회에서 조용히 지낸다면 당신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하지만 악행을 저지르려는 움직임이나 언사를 보인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어! 못된 짓을 하거나 황당한 이론을 퍼뜨리고 싶다면 나라는 관문부터 넘어야 할 거야. 내가 당신을 가만히 놔두는지 지켜보라고. 그러니 교회 사역을 교란할 생각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이는 마귀를 대할 때 지녀야 할 태도이자 원칙이며, 사람이 지녀야 할 증거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왜 진리를 선포하고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하려 하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생명으로 삼을 진리를 얻게 해 주는 한편, 마귀를 분별하고 척결하며 사탄, 악마를 완전히 저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람은 그렇게 많은 진리를 듣고 그렇게 많은 진리를 공급받았는데도 마지막에 마귀가 악행을 저지르고 교란하는 일이 일어나면 분별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마귀를 어느 정도 분별하지만 폭로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마귀를 처리할 엄두는 더더욱 내지 못한다. 참 쓸모없는 자이다. 너는 증거하지 않았고 하나님 편에 서지도 않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깨닫는 목적은 마귀에게서 떠나 그를 거부하고 하나님에게 진실로 순종하며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부탁을 잘 완수하는 데 있다. 마귀는 하나를 발견하면 하나를 제명하고, 둘을 발견하면 둘을 제명해야 하며, 교회를 정결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 사탄, 마귀가 철저히 치욕을 입고 더는 교회 사역을 교란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세상에서 어떻게 교란하든 우리와는 상관없다. 그가 세상에서 어떤 불법적인 일을 하든, 어떤 나쁜 짓을 하든, 누구와 싸우든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 우리가 간섭하거나 알아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관심조차 없다. 다만 한 가지, 하나님 집에서 그렇게 교란하면 안 된다. 그러면 그를 처리하고 저지하며 제명해야 한다. 리더 일꾼이 먼저 나서서 이 사역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리더 일꾼은 마땅히 미루지 말고 책임져야 하며, 그다음이 각 책임자와 팀장 그리고 평범한 형제자매들이다. 모두가 이런 분량과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 집에서 그렇게 하는 건 공작이 아닌가요? 사람을 괴롭히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는 자가 있는데, 사람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마귀를 괴롭히는 것이다. 마귀는 괴롭혀 마땅하다. 우리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 형제자매는 패괴된 모습을 표출하지만 정상인이다. 양심이 있고, 이성이 있으며 일을 처리하고 처신하는 데 선이 있다. 설사 진리 추구나 생명 진입이 미진하고 분량도 작아서 진리 실제를 얼마 갖추지 못했을지라도 우리는 포용하고 인내하면서 올바로 대하고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마귀는 이런 원칙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가 봉사하길 원한다면 그의 봉사를 이용하고, 그가 봉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가차 없이 제명 처리해라! 이것이 마귀를 대하는 원칙이다. 형제자매가 연약하고 패괴 성품을 표출하는 것은 포용심과 이해심으로 양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마귀는 형제자매가 아니다. 소극적인 말, 무책임한 말만 할 뿐,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퍼뜨려 사람을 미혹하거나 교란하고 방해한 것이 아니라면 용서하고 눈감아 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가 나쁜 짓을 하고, 악행을 저지르며 세력을 키우려 하는 것이 보인다면 그를 폭로하고 제재해야 한다. 제재할 수 없다면 바로 제명해라. 마귀 부류는 교회라는 곳이 굴러먹기 좋은 곳, 사회처럼 누구든 풍파를 일으킬 수 있는 곳인 줄 아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교회는 하나님 선민이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는 장소지, 마귀가 풍파를 일으키거나 자기 일을 하면서 본인의 꿈을 실현하는 곳이 아니고,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채우는 곳도 아니다. 마귀가 본인의 일을 하려 한다든가, 자기만의 독립 왕국을 세우려 한다든가,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망치려 하는 낌새를 보이고 본색을 드러내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원칙대로 처리해라. 형제자매들이 일어나 마귀와 싸워야 한다. 절대 주저하거나 봐주지 마라. 자꾸 마귀를 봐준다면 이는 제 무덤을 파는 것이다. 그는 늘 교회에서 사람을 미혹하고 교란하며 교회 사역을 망칠 테니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며 쌓았던 네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며칠도 안 돼서 마귀에게 미혹되고 교란당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 진리를 얻으려면 자발적으로 일어나 마귀와 싸우고 겨루어야 한다. 그가 본색을 완전히 드러내고 추악한 실체를 드러내면 그를 폭로하고 그의 본질을 규정한 다음 정리해서 내쫓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민이 해야 할 일이고 감당해야 할 책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기는 자가 지녀야 할 증거이다. 이것을 깨닫고 영원히 잊지 마라. 사탄,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형식적으로 그와 확실하게 선을 그으라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근본적인 옳고 그름에 관한 문제, 원칙적인 문제, 길을 선택하는 문제, 하나님 집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일어나 마귀와 싸우고 그의 악행을 저지하여 하나님 집의 이익과 형제자매의 정상적인 본분 이행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모든 하나님 선민들의 의무이다.
마귀의 본질을 지닌 부류의 두 가지 모습, 즉 거짓말에 인이 박이고, 부정한 것에 관한 교제가 거의 다 이루어지지 않았느냐? 이 부류에 대해 취해야 할 관점과 입장 그리고 사람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다음으로 어떤 문제에 부딪히겠느냐? 우리가 교제한 모습과 표출을 가지고 어떻게 이들과 대조하고, 그 후에는 이들의 본질을 어떻게 분별하고 간파하느냐 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분별하고 나면 각 부류가 과연 어떤 속성인지 마음속에서 명확해지고, 사람을 대하는 원칙도 점점 정확해져서 우매한 짓이나 미련한 짓을 하지 않게 된다. 혹은 우매한 짓이나 미련한 짓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교제하고 다음에 또 보자.
2024년 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