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새 삶을 시작하다

말레이시아 주이츄

저는 헤어 디자이너이고 제 남편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말레이시아에서 열렸던 ‘감귤 던지기’ 행사에서 처음 만나 1년 뒤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축도를 들으며 저는 벅찬 감동을 느꼈고, 하나님께 ‘이 사람이 한결같이 저를 아끼고 보살피는 저의 평생 동반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신혼 생활이 시작되면서 저희 부부 사이에 조금씩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새벽 4시면 나가서 채소를 팔고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고 저는 밤 10시가 넘어 퇴근을 했기 때문에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았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할 때면 남편이 오늘 일은 어땠는지, 기분은 괜찮은지 물어봐 주고, 관심과 애정으로 저를 이해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남편은 TV나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어떤 때는 왔냐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마치 없는 사람 취급했습니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저의 실망감은 말할 수 없이 컸고, 남편에게도 조금씩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손님과 다툼이 일어 짜증도 나고 속이 상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인데 남편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무신경하게 대답 한 번 하더니 또다시 휴대폰만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남편의 모습에 너무나 속이 상해 “당신은 무슨 꿔다 놓은 보릿자루야? 나한테 관심 좀 가져 주면 안 돼?”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화내는 저를 보고는 더 이상 상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이 말을 안 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어떻게든 말을 하게 하려고 계속 잔소리를 퍼부어 댔지요. 그러자 갑자기 남편이 소리를 버럭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저는 더 화가 나고 분해서 남편과 계속 말씨름을 했습니다. 결국 남편이 입을 다문 뒤에야 다툼이 끝났습니다. 또 한번은 제가 남편에게 직장에서 있었던 억울한 일을 토로했는데, 저를 위로해 줄 줄 알았던 남편이 냉정하게도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당신은 어떻게 다른 사람 탓만 하는 거야? 당신한테 문제가 있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고?”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불끈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 남편과 언쟁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내가 어쩌다가 이런 사람이랑 결혼한 거지? 내 심정을 이해해 주기는커녕 위로 한 마디 없잖아!’라는 원망만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이후로 저는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거의 꺼내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회사 일을 물어보던 남편도 제가 대답하기 귀찮아하자 차츰 물어보지 않게 되었지요. 그렇게 저희 둘의 공통 화제는 점점 사라졌습니다. 고민거리가 생기면 저는 친구를 찾아가 털어놓았고, 가끔은 새벽이 되어야 집에 돌아올 때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집에 늦게 와도 신경을 쓰지 않았고, 어쩌다 집이 숙소냐며 핀잔만 줄 뿐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섭섭했고 남편에게 불만만 더 쌓여 갔습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저희는 수시로 대립하고 언쟁을 벌이며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더는 이렇게는 못 살겠다 생각한 저는 남편과 한 번 대화를 나눠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저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혹시 내가 싫어? 왜 늘 나를 본체만체하는 거야?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그냥 말해.” 남편이 아무 대답이 없어 제가 꼬치꼬치 물었더니 남편은 귀찮은 듯 버럭 고함을 치며 “매일마다 뭐가 그렇게 물어볼 게 많아? 그만 좀 하라고! 짜증나 죽겠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저는 남편과 옥신각신하며 언성을 높였고, 다투던 중 남편이 밀치는 바람에 그만 소파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손찌검까지 하자 저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사람이 내가 그렇게 공들여 고른 남편이라고? 이게 내가 기대했던 결혼 생활인 거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그 후로 저는 더 이상 남편에게 어떤 희망도 걸지 않았습니다.

2016년 4월, 우연한 기회에 한 자매님이 저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자매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했습니다. 그 사랑에 감동받은 저는 주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가 목사님께 남편과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자 목사님께서는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을 바꿔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이 행하신 것처럼 타인을 포용하고 인내하려고 해 보세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스스로부터 변화하기 위해 퇴근하면 일찍 집에 돌아가 집안 살림을 챙겼고, 가끔씩 저를 본체만체하는 남편 때문에 화가 날 때에는 주님께 ‘저에게 포용하고 인내할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어떤 때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해 남편과 다투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화해하고 갈등을 풀기 위해 제가 먼저 다가갔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제 모습을 보고 남편도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희 부부 사이에는 다툼 대신 대화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주님이 주신 구원에 저는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저와 남편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수시로 다투곤 했습니다. 특히 상대방이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저나 남편이나 둘 다 포용하거나 인내하지 못해 싸움이 격화되곤 했습니다. 매번 다투고 나면 저는 매우 괴로워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포용하고 인내하라고 하셨는데 실천으로 잘 옮겨지지가 않습니다.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하면 불만만 커집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후, 저는 교회에서 열리는 모임에도 적극 참석해 실천의 길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교회 모임의 팀장에게도 도움을 청해 보았지만 그는 “저희 부부도 자주 싸우곤 하는걸요. 바울조차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8)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늘 죄를 짓고 또 죄를 자백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죠.”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을 듣고 ‘우리 부부는 정말 평생을 다투며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에 망연자실해졌습니다.

2017년 3월, 줄곧 과묵한 편이었던 남편이 갑자기 말이 늘면서 말씀 가운데 깨달은 내용들을 자주 저에게 교제해 주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남편의 교제에는 빛 비춤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변하고 하는 말에 식견까지 갖춘 듯한 남편의 모습이 좀 의아해서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남편의 라인(LINE)에서 한 그룹 채팅창을 발견한 저는 다짜고짜 남편에게 온라인상에서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남편은 진지한 얼굴로 현재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이미 돌아오셨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한다며, 그분이 수백만 자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지금 말세에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고 계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건 성경의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란 말씀이 이루어진 것으로, 우리도 하나님의 현현 사역을 구해 하나님 음성 듣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맹목적으로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고수하며 진리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고,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리기만 하다간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없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소식을 들은 저는 놀라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습니다. 곧이어 인도의 한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돌아오신 주님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면 우리 모두 겸허한 마음으로 구하고 열심히 알아봐야지, 관념과 상상에 얽매여 경솔하게 단정 지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이 돌아오신 주님이시라면, 제가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겸허히 알아보도록 저를 이끌고 인도해 주세요. 만약 아니라면, 제 마음이 당신과 멀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세요. 아멘!’

기도를 마친 저는 성경을 펼쳤습니다. 계시록 3장 20절의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는 구절을 읽는데 제 마음에 갑자기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저를 향해 당신이 돌아오실 땐 우리를 향해 문을 두드리겠다고 알려 주시며, 그러니 누구든지 당신의 음성을 들으면 문을 열라고 당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신랑의 음성을 듣고 서둘러 맞이하러 나가는, 성경에 기록된 슬기로운 처녀와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6장 12절에서 13절의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라는 말씀도 생각이 났습니다. 이 성경 구절들을 묵상하다 보니 감격으로 마음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이제 보니 주께서 다시 오실 때 음성을 발하여 우리에게 진리를 내려 주시겠다고 일찍이 말씀하셨어.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곧 음성을 발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돌아오신 예수님이 맞다는 말일까? 만약 정말 주님이 돌아오셔서 진리를 선포해 사람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거라면, 우리에겐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희망이 있어. 그럼 우리 부부 사이의 문제 역시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져서, 서둘러 남편에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과 연락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예배 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저에게 주님의 재림 방식, 주님의 새로운 이름과 돌아오신 주님이 하시는 사역 등에 관한 진리를 성경과 연결 지어 교제해 주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의 교제에 저는 진심으로 탄복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쉴 새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가 하나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깨우쳐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형제자매들의 교제를 들으면서, 저는 점차 인류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근본 취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세 단계 사역, 향후 인류의 결말과 종착지 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알아보는 기간에 저는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고 또다시 모종의 일들로 남편과 다투었습니다. 그렇게 다투고 난 후 자책감에 괴로워하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왜 늘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는 걸까?’ 이 문제는 저를 참 곤혹스럽게 했습니다. 어느 예배에서 저는 한 자매님에게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저와 남편은 늘 다투기만 하고, 평화롭고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걸까요?” 자매님은 저에게 하나님 말씀을 찾아 주었습니다. 『사람이 속량받기 전에 이미 사탄의 많은 독소가 사람 안에 심어져 있었다. 사람은 수천 년 동안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고, 내면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것은 그저 속량받은 것에 불과하다. 즉, 비싼 값을 치르고 사람을 사 온 것이다. 하지만 사람 내면에 있는 독성은 제거되지 않았다. 이렇게 더러운 사람은 변화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님을 섬길 자격을 가질 수 있다. 심판하고 형벌하는 이번 단계의 사역으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패괴된 본질을 완전히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완전히 변화되어 정결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주어진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 벗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 제물이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겨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 다시 성육신하여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시작했다. 이 사역은 인류를 더 높은 경지로 인도했다.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얻고, 진정으로 빛 속에서 살며, 진리와 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서문> 중에서)

자매님은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태초에,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서 행복하게 살았어요. 다툼도, 고통도 없었지요. 근데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 나무의 실과를 먹은 후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신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을 잃어버리고 사탄의 권세 아래 살게 되었지요. 그로부터 괴롭고 슬픈 나날이 시작되었어요.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사탄에 의해 점점 더 깊이 패괴되고 있고, 사탄의 패괴 성품으로 가득해요. 모두들 너무나 교만하고, 이기적이며, 간사하고, 제멋대로죠. 매사 자기중심적으로 굴고, 다른 이에게 자신의 말을 강요하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다투고 싸워요.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에, 부부 간에도 서로 포용하고 인내하지 않아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죠. 가장 최소한의 양심과 이성마저 없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을 체험하고, 주님께 기도하며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자기도 모르게 죄를 짓고 하나님께 대적해요. 예수님은 단지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만 하셨지, 인류를 철저히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은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들여 그저 더 이상 죄에 속하지 않게 된 것으로, 주님 앞에 나와 기도드릴 기회를 얻어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고 죄가 사해진 것뿐이에요. 하지만 우리의 패괴 성품은 정결케 되지 못했고, 죄짓는 본성도 여전히 우리 내면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죄짓는 본성을 해결하려면 말세에 하나님께서 다시 오셔서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을 하셔야 해요. 오늘날, 하나님은 이미 다시 성육신하셔서 말씀을 선포하심으로써 심판과 정결의 사역을 하고 계세요. 그렇게 우리가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철저히 구원받도록 하시는 거죠.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따르면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추구하며, 말씀을 실천해 패괴 성품이 점차 변화되어야만,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고, 사람들과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어요.”

하나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를 통해 그제야 저는 우리가 늘 죄를 짓고 뉘우치는 상태로 살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은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으로,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써 단지 죄 사함만 받았을 뿐, 죄짓는 본성은 여전히 내면에 뿌리 깊게 박혀 있고 사탄 성품은 결코 정결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역시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포용과 인내를 실천하고 싶지만 남편의 말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벌컥 화를 내 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해도 자신이 다스려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사역을 하지 않으신다면,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다시 성육신해 오셔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고 성실히 진리를 추구하면 성품이 변화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감동을 받은 저는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신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번 단계의 사역에서 말씀을 선포해 우리를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신다는데, 말씀이 어떻게 우리의 패괴 성품을 심판하고 정결케 한다는 말일까요? 저는 제 이런 의문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이 또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하고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점을 더더욱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훈계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없으며,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어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어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탄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고 패역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또한 사람의 패괴된 본질과 근원을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사역 성과는 심판 사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사실, 심판 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길과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이어서 자매님은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 사역을 하시는지 명확히 알려 주고 있어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세요. 우리의 패괴 본성과 본질, 사탄 성품을 겨냥해 말씀으로 이것들을 직접적으로 밝혀내고 해부하시지요. 하나님은 또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 내야 하는지,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 성품 변화를 이뤄야 하는지, 어떻게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우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는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고 어떤 사람을 내치시는지 등의 내용을 명확하게 알려 주고 계세요. 또 하나님은 사람과 사물, 상황을 마련하셔서 우리를 책망하고 훈계하시고, 시련과 연단을 주시며 우리의 패괴 성품을 드러내세요.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와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알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얼굴을 마주해 말씀하시며 우리의 사탄 패괴 성품, 패역과 대적, 그릇된 마음가짐, 관념과 상상을 하나도 남김없이 드러내시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제야 본성과 본질 안에 교만함, 간사함과 교활함, 이기심과 비열함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죠. 사탄의 패괴 본성에 의해 살아가는 우리는 사탄의 성품만을 드러낼 뿐 사람다운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아요. 그렇게 마음 깊이 자신을 혐오하고 증오하게 되면 더 이상 사탄의 권세 아래 살며 사탄의 우롱과 괴롬힘을 받고 싶어 하지 않게 되죠. 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질과 거스를 수 없는 공의 성품을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어 진리를 실천해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길 원하게 되지요. 우리가 진리를 실천할 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우리를 향해 나타나요.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험함에 따라, 우리는 자신의 패괴 본성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고, 하나님이 선포하신 진리도 갈수록 더 잘 이해하게 돼요. 그러면서 한층 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싶어지고,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천해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고 싶어지죠. 패괴함이 드러나는 것도 점점 줄어들고 진리를 실천하는 것은 점점 쉬워져요. 그렇게 점차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길을 걷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가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도록 구원하는 아주 좋은 약이자, 우리 패괴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진실한 사랑임을 마음 깊이 인정하게 됐어요. 만약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지 못할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는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세에 하시는 심판과 형벌의 사역은 참 실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패괴 성품이 변화되길 원한다면 확실히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죄를 짓고 뉘우치길 반복하는 악순환 속에 살며 영원히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저를 양육하시고, 상황을 마련해 저를 심판하고 형벌하셔서 제가 자신을 알게 되고 패괴 성품도 빨리 변화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길 원했습니다.

그렇게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안배하시는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자매님이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결혼에 대한 장밋빛 환상이 가득하기 마련이다. 여성은 백마 탄 왕자를, 남성은 백설공주를 배우자로 원한다. 이러한 환상들은 각자 결혼에 대해 나름의 조건과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결혼은 삶의 중요한 관문이다. 결혼은 운명에서 비롯되고, 운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결혼은 사람의 의지와 취향에 기반하지 않고, 그 어떤 외부 조건의 영향도 받지 않으며, 오롯이 두 사람의 운명, 결혼할 두 사람을 위해 창조주가 예정하고 안배한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결혼 후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은 배우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배우자와 연관되며, 그 배우자의 인생 여정 역시 자기 짝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그 운명과 연관된다. 즉, 사람과 사람의 운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삶의 사명이나 역할을 온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완수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출생은 거대한 관계망과 닿아 있고, 한 사람의 성장도 복잡한 관계망과 연결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결혼 역시 거대하고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존재하고 유지된다. 결혼은 이 관계망 속 모든 사람과 관련을 가지며 그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결혼은 태어난 가정, 성장 배경, 외모, 나이, 자질과 재능 등의 다양한 요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는 두 사람의 공동 사명과 관련된 운명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가 지배하고 안배한 사람의 운명 가운데 결혼이 이루어지게 되는 유래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말씀을 다 읽고 자매님은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의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구와 가정을 꾸리게 될지 역시 일찍이 정해 놓으셨어요.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롭게 안배하신 거예요. 하나님은 두 사람의 사명에 따라 각자의 배우자를 정하시지,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외모와 자질을 고려하지 않으세요. 하지만 패괴 성품의 지배를 받는 우리는 배우자에게 늘 갖가지 요구를 늘어놓으며 상대가 자신의 뜻에 따라 주길 바라죠.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리 마음속에는 여러 불만이 생겨나 다투고, 화를 내고, 심지어 원망으로 가득 차 하나님께 불만과 오해를 품기도 해요. 그렇게 두 사람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되죠. 이러한 고통은 다른 사람이 초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로 인한 것도 아니에요. 바로 우리가 교만한 패괴 성품에 따라 살기 때문에 초래된 고통이죠. 이런 패괴 성품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주재에 반항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지 못하게 해요.

자매님의 교제를 들으며 저는 남편과 함께했던 시간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늘 불만이 가득했고, 제 기준에 이를 것을 요구했습니다. 저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아껴 주며 살뜰히 보살펴 주길 바랐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을 원망하며 남편 탓을 했습니다. 늘 남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그와 냉전을 벌이며 상대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제가 얼마나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늘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타인의 감정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은 저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을 뿐이었습니다. 그 역시 자신의 생각과 좋아하는 바가 있었을 텐데, 저는 그가 원하지도 않는 일을 강요하며 늘 제 위주로 행동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는 그렇게 많은 갈등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과거 스스로의 행동이 너무나 후회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엔 제가 주님의 복음을 자신에게 전해 주었고, 이제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저에게 전해 주게 되었다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나큰 은총이자, 놀라운 안배였습니다. 우리는 가장 복받은 사람이었는데도 저는 감사한 줄 모르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안배해 주신 결혼 생활에 순종하긴커녕 걸핏하면 하나님을 원망했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너무도 교만하고 이성이 없었습니다! 말씀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제 결혼 생활을 괴롭게 만든 근본 원인을 찾았고, 마음도 굉장히 홀가분해졌습니다. 저는 앞으로 살면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앙망하며 교만한 사탄 성품을 버리고 남편과 화목하게 지내길 원합니다.

그 후, 저와 남편은 늘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나누며, 힘이 닿는 데까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려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 말씀의 양육을 받으며, 일이 닥치면 하나님 말씀에 따라 그분의 뜻을 구했습니다. 패괴 성품을 드러내거나 다툼이 생기면,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와 스스로를 반성하고 알아 갔습니다. 이렇게 실천하자, 남편과 저는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다툼도 점점 줄어들어 가정은 화목해졌고 생활은 점점 더 보람차졌습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점은, 저보다 진리를 더 잘 깨닫는 남편이 자주 저와 하나님 말씀에서 깨달은 바를 교제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패괴 성품을 드러낼 때, 남편은 저에게 진리를 교제해 주고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 주었습니다. 저는 남편의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해 보면, 저는 여전히 저였고, 남편은 여전히 남편이었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진리를 조금 깨달았을 뿐인데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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