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외해야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믿어도 변화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성령 역사를 얻고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가 아주 중요하다! 좀처럼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 때문이냐?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성령 역사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 때문이냐?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 경외심을 품은 사람이라야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으며, 자신이 잘못된 일을 하거나 잘못된 길을 갈까 봐 두려워하고, 선택이 필요한 일이 닥쳤을 때 사람에게 미움을 살지언정 하나님께 죄짓지 않고, 박해를 받을지언정 하나님을 떠나거나 배신하지 않는다. 욥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경지에 다다르려면 어떤 측면에서 체험을 시작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자신의 패괴 성품과 패괴 본질을 인식하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창조주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닫는 것은 더 쉽지 않다. 사람이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람의 패괴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그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어떻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가치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 있겠느냐? (모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무엇을 얻었겠느냐? 진리를 얻었겠느냐? 구원받는 길에 들어섰겠느냐? 하나님을 믿은 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교회 생활을 하고 본분을 이행한다면 그것이 하나님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 어떻게 길을 선택해야 창조주와 관련이 있는지, 너희는 알고 있느냐?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너희에게 부족함이 너무 많구나. 이는 너희 자신이 알지 못하는 많은 일에 있어서 진리를 구하고 교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너희의 교회 생활에 세부적인 면이 부족하게 되고 좋은 성과를 거둘 수도 없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으며 자주 쓰는 영적 용어나 표현을 항상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진지하게 대하지는 않고, 영 안으로 돌아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묵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 말씀들이 무슨 뜻일까? 실제 상황에 어떻게 적용시켜 맞춰 봐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 말씀들을 현실로 만들고, 내 실제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말씀들이 도리나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내 생활의 일부가 되고 내가 길을 가는 방향이 되도록 할 수 있을까? 하나님 말씀이 내 생활의 일부분이 되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너희가 이렇게 묵상할 수 있다면 세부적인 부분들을 많이 묵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평소에 거의 묵상하지 않기 때문에 입버릇처럼 말하는 진리 대부분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는 데 머물러 있다. 이처럼 글자적인 이해에 머물러 있으면, 그다음에 사람에게서 무엇을 볼 수가 있느냐? 늘 이런 영적 이론과 영적 용어, 영적 표현을 가지고 설교하지만 사람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실제적 측면은 볼 수가 없다. 지금 너희는 커다란 문제에 직면해 있다. 무슨 문제이겠느냐? 바로 너희가 도리를 조금 말하고, 영적인 표현을 조금 알고, 자신에 대해 인식한 경험을 조금 말할 수 있다고 해서 진리를 깨달았다고 착각하고,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어느 정도의 수준에 다다랐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사실 너희는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다. 너희를 붙들어 주고 공급해 주거나, 진리를 교제하여 길을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너희는 정체되고 타락하기 시작한다. 너희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할 수 없는데도 너희 마음속으로 스스로 우수하며 일반인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사실 너희는 아무런 분량도 없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도 못했다. 그저 글귀와 도리를 어느 정도 알고는 교만해진 것이다. 사람이 이런 내적 상태에 빠져 자신이 얻은 것이 있다며 답보 상태에 머문다면 어떤 위험성이 있겠느냐? 말솜씨가 좋은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가 정말로 나타나면 너희는 틀림없이 미혹되어 그들을 따라갈 것이다. 이것이 아주 위험하지 않겠느냐? 너희가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답보 상태에 머문다면 하나님에게서 떠나지 않겠느냐? 하나님을 배신하고 혼자 제 길을 가지 않겠느냐? 너희가 진리 실제가 없어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을 증거하고 과시한다면 너희는 여전히 위험 속에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너희가 이런 지경에 빠지면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내겠느냐? 우선, 교만하고 독선적인 성품을 드러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너희는 고참이라고 으스대며 거만하게 행세하지 않겠느냐? 남 위에 군림하여 훈계하려 들지 않겠느냐? 만약 이런 패괴 성품을 드러낼 수 있다면 하나님이 혐오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몹시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자신을 성찰할 줄 모르면 하나님에게 혐오받아 내쳐질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럴 가능성이 아주 크다. 예를 들어, 너희가 몇 년 동안 본분을 이행했지만 생명 진입에서 눈에 띄게 성장하지 못하고, 얄팍한 도리만 깨달았을 뿐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에 대해 진실한 인식을 갖지 못하고 새로운 진전도 전혀 없다면, 지금 너희의 분량으로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겠느냐? 어떤 패괴 표출이 있겠느냐? (교만하고 잘난 척합니다.) 교만하고 잘난 척하는 것이 더 심해지겠느냐, 그대로겠느냐? (더 심해질 것입니다.) 어째서 더 심해지겠느냐?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그 자격의 크기를 무엇으로 판단하는 것이냐? 몇 년 동안 그 본분을 이행했는지, 얼마나 많은 경험을 총결했는지에 따라 판단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다 보면 너희는 서서히 자격과 서열을 따지게 되지 않겠느냐? 가령 어떤 형제가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었고 그 본분을 이행한 기간이 가장 길다면 그의 발언권이 가장 강할 것이고, 어떤 자매가 자질은 어느 정도 갖췄지만 본분 이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본분을 이행한 경험이 부족하고 하나님을 믿은 기간도 짧다면 발언권이 가장 약할 것이다. 발언권이 가장 강한 사람은 ‘내가 이 정도 자격을 갖췄으니 내가 이행한 본분은 합격이야. 나는 이미 정점까지 추구했으니 더 이상 추구해야 할 것도 진입해야 할 것도 없어. 나는 본분을 제대로 이행했고 사역도 비교적 잘해 냈으니 하나님도 만족하실 거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답보 상태가 시작된다. 이것이 진리 실제에 진입한 모습이겠느냐? 이것은 정체된 것이다. 아직 진리 생명을 얻지 못했으면서 밑천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격과 서열을 따져 하나님이 상을 주길 기다린다면 이는 교만한 성품을 드러낸 것 아니겠느냐? 사람이 밑천이 없을 때는 조심하고 신중을 기할 줄 알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일깨우지만, 밑천이 생기면 교만해지기 시작한다.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기존 상태에 안주하게 된다. 이럴 때 사람이 바울처럼 하나님께 상과 면류관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과 하나님이 어떤 관계가 되겠느냐?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니라 순전히 거래 관계가 된다. 이렇게 되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게 되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 이것은 위험한 신호다.

하나님을 한쪽에 제쳐 놓고 자신이 하나님의 선민을 통제하며, 본분 이행의 장소를 적그리스도의 독립 왕국으로 만들고,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교회를 종교 조직으로 바꿔 놓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진리 생명의 진입이 있겠느냐?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고 섬기고 증거하는 사람이냐?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이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사람의 경영과 사람의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네가 사람의 경영과 사업을 아무리 잘한다 해도 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고 진리 추구를 멈추면 너는 하나님과 무관하지 않겠느냐? 이것은 아주 끔찍한 일이 아니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따름에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떠나서 사람의 사업과 경영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혼자서 자기 길을 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리더를 선출했는데, 그 리더가 글귀와 도리만 말할 줄 알고 자기 명예와 지위만 중시할 뿐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너희는 그가 글귀와 도리를 유창하게 말하는 데다가 그의 말이 구구절절 옳고 진리에 부합하는 것을 보고 매우 감탄한다. 그래서 그가 훌륭한 리더라고 여기고 뭐든지 그의 말대로 하다 보니 결국 그 리더를 따르고 그에게 완전히 순종하게 된다. 이것이 거짓 리더에게 미혹되고 통제당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그 교회는 거짓 리더가 우두머리인 종교 집단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 거짓 리더가 우두머리인 집단이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이 진실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겠느냐?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있겠느냐? 하나님과 무관한 무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할 수 있느냐? 너희가 말해 보아라. 거짓 리더를 따르거나 적그리스도에게 통제당하는 사람에게 성령 역사가 있겠느냐? 분명히 없을 것이다. 어째서 성령 역사가 없겠느냐?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지도 않으며, 거짓 목자와 적그리스도의 말을 따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고 그들에게 역사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 하나님에게 혐오받아 버림받고 성령 역사를 잃으면 그들이 하나님에게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받을 수 없으니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어느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든 간에,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느냐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지 아니면 사람을 따르는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지 아니면 종교 활동을 하고 사람의 사업과 경영을 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또한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추구할 수 있는지, 문제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진리를 구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것들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떤 길을 가는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아니면 진리를 버리는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대적하는지,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계속 감찰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교회와 모든 사람을 다 살펴보고 있다.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든 간에,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고 성령 역사를 잃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그들과 그들이 이행한 본분은 하나님의 사역과 완전히 무관해지고, 이런 교회는 종교 단체가 되는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종교 단체가 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그들이 아주 위험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어떤 일이 닥쳐도 진리를 구하지 않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행하지 않으며, 사람의 지배와 조종을 받는다. 심지어 본분을 이행하면서 한 번도 기도하지 않고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그저 사람에게 묻고 사람의 말만 듣고 사람의 눈치를 보고 일하며, 사람이 지휘하는 대로 따른다. 그는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는 것이 막연하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고, 단순하고 쉬운 방법을 찾는다. 사람의 말을 듣고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쉽다고 생각해 아예 사람의 말을 듣고 사사건건 사람에게 묻고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다. 결국 그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지만, 어떤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하고 행한 경험이 전혀 없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나는 참으로 궁금하다. 어째서 어떤 이들은 종교 단체에만 가면 그토록 쉽게 하나님을 믿는 일이 사람을 믿는 일로 바뀌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사람을 따르는 것으로 바뀐단 말이냐? 어째서 그렇게 빨리 돌변할 수가 있느냐?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는데도 어째서 모든 일에서 사람의 말을 듣고 사람을 따를 수가 있단 말이냐?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도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었던 적이 없고,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언제나 하나님과 무관하고 하나님 말씀과도 무관하다. 말하고, 일하고, 생활하고, 처세하고, 심지어 본분 이행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조차 그가 하는 모든 일과 행동, 더 나아가 그가 드러내는 모든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무관하고, 하나님 말씀과도 무관하다. 이런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기간으로 그 분량의 크기가 결정될 수 있겠느냐?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적인지 아닌지를 증명할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느냐는 그가 하나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는지, 하나님 말씀 속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너희가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을 믿으면서 종교 의식만 하고, 그저 몇 가지 규례만 지킨다면, 본분 이행과 일 처리는 형식적으로만 하고, 진리 원칙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또 진리를 교제할 때도 글귀와 도리만 떠들지 실제적인 인식이 없다면,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증거할 때 교제하는 말들이 모두 깊이가 없는 데다가 영적인 글귀와 도리를 떠드는 것으로만 사람에게 공급하고 붙잡아 준다면, 이것이 성과를 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을 때 겉으로 보기에 영적인 것만 추구하면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겠느냐? 이렇게 본분을 이행해서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이것이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대체 무엇이냐? 너희는 지금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설교도 많이 듣고, 또 많은 이치를 깨달았다. 물론 너희 중 일부는 진리 실제에 어느 정도 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희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 분량에 도달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느냐? 너희가 다시는 사탄에게 미혹되거나 사로잡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다시는 사람을 숭배하거나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절대로 되돌아가지 않으며 끝까지 하나님을 따를 것이고, 하늘의 막연한 하나님만 믿고 실제의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종교인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느냐? 너희가 성육신 하나님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고 있느냐? 진실로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인식하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느냐? 너희에게 하나님을 배신할 위험이 없겠느냐? 이런 것들을 너희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너희가 지금 믿는 방식과 관점, 내적 상태 가운데 어떤 것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과 유사하거나 비슷한 것이고, 똑같은 내적 상태에 있는 것이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규례로 삼아 지킨다면 종교 의식으로 변질되기 쉽지 않겠느냐? (그러기 쉽습니다.) 이런 종교 의식을 지킨다면 기독교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저 교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고 조금 더 앞서 있으며, 신앙적으로 조금 더 높고 깊을 뿐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종교 신앙, 신학 연구 또는 규례나 의식이 된다면, 이는 기독교로 변한 것이 아니겠느냐? 비록 교의가 새것과 낡은 것의 차이는 있지만, 진리를 모두 이치로 간주하여 이해하기만 하면 그만이고, 진리를 실행할 줄 모르고 더욱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줄도 모른다면, 네가 아무리 오랫동안 믿고, 아무리 많은 고통을 겪고, 아무리 많은 좋은 행위를 했다고 한들,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고 얻은 것이 아니고 진리 실제에도 진입하지 못했다면, 이것이 기독교의 믿음 방식이 아니냐?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행동하고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기독교 사람들과 비슷하거나 같은 관점이나 내적 상태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규례를 지키고 글귀와 도리를 갖추는 것입니다.) 규례를 지키는 것, 글귀와 도리를 말하는 것, 진리를 글귀와 도리로 여기는 것이다. 또 무엇이 있느냐? (생명 진입을 중시하지 않고 사역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힘만 내는 것을 중시하고 생명을 얻는 것과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은 중시하지 않는 것이다. 또 무엇이 있느냐? (겉으로 보이는 영적인 모습과 좋은 행위만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어느 정도 말한 것을 정리해 보면, 겉면의 좋은 행위를 추구하고 영적인 겉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려고 갖은 애를 쓰며,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과 사람이 비교적 찬성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척하고 외식하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서서 글귀와 도리를 떠들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며 영적 인물을 사칭하는 것이다. 하지만 처세와 본분 이행에 있어서 한 번도 진리를 구한 적이 없고, 사탄의 성품에 따라 살며, 무슨 일이 닥치든 하나님은 한쪽으로 제쳐 놓고 제 뜻대로 한다. 또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행한 적이 없고, 규례만을 지키며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여 어떠한 결실을 보고자 하는지 등을 모른다. 이런 진리의 세부적인 내용은 한 번도 진지하게 대한 적이 없고 물어본 적도 없다. 사람의 이런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모든 것이 외식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 실제 상태와 겉면의 행동으로 볼 때,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으며 외식하는 바리새인이자 불신파가 분명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아무리 오랫동안 믿는다고 한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경지에 다다를 수 없다면, 그런 사람들의 행동은 어떤 성질이겠느냐? 그들이 어떤 길을 갈 수 있겠느냐? (바리새인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온종일 무엇을 갖추고 있느냐? 글귀와 도리를 갖추고 있지 않느냐? 그들은 자신이 바리새인과 더 닮아가기 위해, 더 영적으로 변하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과 더 비슷해지기 위해, 온종일 글귀와 도리로 자신을 무장하고 포장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어떤 성질이겠느냐?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겠느냐?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고, 형식적인 과정을 밟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종교 의식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이 복을 받으려는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다. 이는 결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에는 교회당에서 소위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율법시대에 하나님을 믿었던 그 서기관, 바리새인과 지금 기독교, 천주교 교회의 목사, 장로, 신부, 주교가 무엇이 다르냐? 다시 말해, 여호와를 믿는 것과 예수를 믿는 것의 차이가 무엇이냐? 믿는 이름이 다르다는 것 말고 또 다른 차이가 있느냐? 여호와를 믿는 사람은 무엇을 지켰느냐?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믿었느냐? (율법과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성령 역사에 대해 알았느냐? 십자가를 짊어지는 길에 대해 알았느냐?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진리이자 길이자 생명이라는 걸 그들이 알았겠느냐? 그들에게 이런 개념이 있었겠느냐?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들은 설교를 그들이 알았겠느냐?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낙후되고 수구적이며 성령 역사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주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 사역과 발맞춰 따라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와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렸다.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완고하게 저항하며, 예수가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다. 결국 그들은 낙오되어 은혜시대에 의해 도태됐다. 은혜시대에 말한 구속, 십자가 구원, 회개와 같은 도를 그들은 전혀 모른다. 이것이 차이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은혜시대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느냐? 그들이 율법시대에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냐? 그들은 또 무엇을 알고 있느냐? 우선 성경을 보면 그들은 신약과 구약을 모두 본다. 또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이름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여호와라고만 부르지 않고 주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그들이 무엇을 실행하느냐?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인내하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사랑을 논하며, 계명을 지키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 고난의 길을 걷고, 또 죽은 뒤 천당에 가길 바란다. 많은 부분에서 율법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다르다. 그들은 성령 역사와 성령 충만, 성령의 인도와 기도를 논하고, 예수의 이름을 받들고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율법시대에 논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하나님에게 유대교와 똑같은 결론을 받게 되는데, 모두 종교 단체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 율법시대 유대교의 바리새인, 제사장, 서기관들은 명목상으로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도를 버리고 성육신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유대교이자 종교 단체에 속한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지금 예수를 믿는 이 사람들도 하나님은 그들을 종교 단체로 간주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교회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째서 하나님은 종교계를 이렇게 정죄하겠느냐? 종교 단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 특히 각 종파의 윗선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불신파다. 그들은 성육신을 믿지 않고, 진리는 더더욱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세 사역과 하나님이 어떤 진리를 선포했는지 구하거나 묻거나 잘 살펴보거나 받아들인 적이 한 번도 없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이 말세에 성육신으로 하는 사역을 직접 정죄하고 모독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그들이 명목상으로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악을 행한 사람이며,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전혀 무관하다고 한다. 또 그들을 하나님 말씀 밖의 이방인이라고 한다. 너희가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언젠가는 너희들도 종교 신자로 전락하지 않겠느냐? 종교계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왜 그렇겠느냐? 만약 너희가 이 점을 모른다면 너희가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비통한 일은 종교로 전락해 하나님께 도태되는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이것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이 점을 꿰뚫어 볼 수 없을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초창기 교회는 아주 기나긴 세월을 거치며 차츰 하나님이 생각하는 종교로 변하고 어떤 교파가 되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이겠느냐? 하나님 집의 사람들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집의 사람들이 아니다. 명목상으로 참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에게 종교인으로 규정된 사람들은 어떤 길을 걸었느냐?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하나님의 도를 준행한 적이 없고, 하나님을 믿었지만 한 번도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저버렸다. 또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사실은 하나님을 대적했다. 그들은 명목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믿고, 참하나님을 믿지만 실제로는 사탄, 마귀를 경배하고, 사람의 경영을 하고 사람의 독립 왕국을 세웠다. 이것이 그들이 걸은 길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걸은 길로 볼 때, 그들은 불신파이자 적그리스도 무리이며, 오로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기만 하는 마귀이자 사탄이다. 이것이 종교계의 본질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륜과 관계가 있겠느냐?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든 간에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하나님에게 교파나 단체로 규정되면, 하나님 편에서는 그들을 이미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들로 규정한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겠느냐?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가 없고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단체는 비록 명목상으로는 그들이 믿는 대상이 하나님이라고 해도, 그들이 따르고 순종하는 것은 종교 목사나 장로이기 때문이다. 종교 목사나 장로는 본질적으로 사탄에 속하고 외식하는 자들이므로 그들이 따르고 순종하는 대상은 결국 사탄이요, 마귀다. 비록 그들이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있어도, 사실상 그들은 사람의 조종을 받고, 사람의 지배와 통제 아래 있다. 그러면 본질적으로 말해서 그들이 따르고 순종하는 대상은 역시 사탄, 마귀이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악한 세력이며, 하나님의 원수다. 하나님이 이런 자들을 구원하겠느냐?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왜 구원하지 않겠느냐? 이런 자들이 회개할 수 있겠느냐? 그들은 회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분을 내건 채 사람의 사업과 경영을 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륜에 반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께 혐오받아 버림받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구원할 리 없고, 그들도 회개할 가능성이 없다. 그들은 사탄에게 사로잡혔으니 하나님은 그들을 사탄에게 넘겨준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느냐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느냐에 달려 있겠느냐? 사람이 어떤 의식을 지키고 어떤 규례를 지키느냐에 달려 있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의 행동 방식을 보겠느냐? 사람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보겠느냐? (보시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무엇을 보겠느냐? 하나님이 일부 사람을 선택하고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할 것인지 판단할 때 하나님의 판단 근거가 무엇이겠느냐? 바로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사람이 어떤 길을 가는지를 보고 판단한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준 진리가 지금처럼 많고 구체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도 하나님은 똑같이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었고, 또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진리를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는데도 하나님의 도를 준행할 수 없고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도 없다면 결국에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겠느냐? 결국 기독교, 유대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다. 네가 아무리 많은 설교를 듣고 아무리 많은 진리를 깨달았어도, 사람을 따라갈 수 있고 사탄을 따라갈 수 있다면, 결국 하나님의 도를 준행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혐오받아 버려질 것이다. 종교계에 있는 사람은 비록 많은 성경 지식을 말할 수 있고, 영적인 이치를 깨달았다 해도, 하나님의 역사에 순종할 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할 줄 모른다. 또한 진실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도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도 없다. 모두 외식하는 자로,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는 자들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교파이자 사람의 단체, 사람의 무리, 사탄이 기거하는 곳으로 규정하고, 사탄의 무리 또는 적그리스도 왕국으로 통칭하여 그들을 철저히 혐오하여 버린다.

지금 너희에게 급선무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본분 이행을 지체하지 말고, 또 한편으로는 가능한 한 빨리 구원받는 길에 들어서도록 노력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아주 끔찍한 일이다! 말세에 하나님이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마지막이자 금방 사라져 버리는 기회다! 가령 하나님이 한 사람을 규정하여 네가 하나님의 도를 한 번도 준행하지 않았으며 절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고 치자. 하나님이 너를 버리기로 결심하면 더 이상 꾸짖지도 않고 징계하지도 않으며 책망 훈계도 하지 않고, 또 심판 형벌도 하지 않고 철저히 너를 포기한다. 그때 너는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여긴다. 더 이상 너를 간섭하는 사람이 없고, 네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든 아무도 간섭하지 않으며, 네가 어떤 나쁜 짓을 해도 꾸짖지 않고, 충심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개인적인 야심과 욕망을 채우거나 교회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해도 꾸짖거나 징계하지 않는다. 심지어 네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관념을 가져도 꾸짖지도 징계하지도 않고, 네가 책망 훈계에 맞서고 반항하고, 뒤에서 판단하고 무너뜨리려 하고 사람들을 포섭해도 역시 꾸짖지도 징계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어떤 신호이겠느냐? 이것이 좋은 신호이겠느냐? 아무도 너를 간섭하지 않고 책망 훈계도 하지 않으며 하나님도 너를 꾸짖지 않는다. 너는 모든 것이 네 뜻대로 되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 하나님이 너를 포기하려고 할 때 너는 더 이상 꾸짖음이나 징계를 느끼지 못하고, 심판 형벌도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포기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그 사람에게는 결말이 없고, 구원받을 기회도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포기하면 우선 사람이 꾸짖음이 없다고 느끼게 한다. 날마다 제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고 복을 받았다고 착각한 채, 제멋대로 방종하고 타락하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아무리 방탕해도 꾸짖음도 징계도 없고, 불안하거나 불편한 느낌은 더더욱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꾸짖음과 징계에서 멀어지면 위험에 가까워진다. 그다음에는 어떤 길로 나아가게 되겠느냐? 타락하고 방탕하고 방종하기 시작하며 악행을 멈추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위험하다. 어떤 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근심 하나 없이 아주 윤택하게 사는 것 같지만,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그를 원치 않고 그를 버렸는데도 그 자신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종교계의 적그리스도들은 온종일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판단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행을 수없이 저지른다. 그들에게 지금 징계나 꾸짖음이 없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이미 그들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들은 크게 징벌받을 것이고,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이 사실에서 하나님의 뜻과 태도를 알 수 있지 않으냐?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지금 하나님을 따르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너희도 그들과 같은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그러면 너희는 위험해지고 그들과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점은 분명하다. 사람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지경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지금 해야 할 급선무는 무엇이냐?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 외에도 사람은 늘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묵상하고, 하나님의 징계와 인도를 받아들이고 순종의 공과를 배워야 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이 배치한 모든 환경, 사람과 일, 사물에 순종하고, 또한,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 항상 기도하며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실행할 길을 얻게 된다.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살고 늘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되 방종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이 닥치면 기본적으로 먼저 마음을 평온히 한 뒤 빨리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고 구하고 기다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 아니겠느냐? 하나님께 경외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협력하고 실행하면 보호받아 시험에 들지 않을 것이며,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다.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맹목적으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진리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증오받지도, 혐오받아 버림받지도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시험이 닥치면 전전긍긍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것이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이렇게 실행하면서 늘 이러한 내적 상태로 살아가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자신도 모르게 시험과 악행을 멀리할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거나 네 마음이 하나님 앞에 있지 않다면, 너는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네게 패괴 성품이 있고 너 스스로 자신의 패괴 성품을 통제하지 못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일단 네가 악행을 저지르면 방해와 교란이 되는데 그 결과가 심각하지 않겠느냐? 가벼우면 책망과 훈계를 받겠지만, 심하면 하나님께 혐오받아 버림받고 교회에서 출교될 것이다. 하지만 네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있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한다면, 너는 수많은 악행에서 떠날 수 있지 않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하나님께 죄를 지을까 봐 두렵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해 하나님께 혐오받을까 봐 두렵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정상적인 태도이자 정상적인 내적 상태가 아니겠느냐? 이런 두려움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이겠느냐?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네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악행을 보았을 때 곧 멀리하거나 피하게 된다. 그러면 너는 보호받을 수 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느냐? 악을 떠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간이 커지지 않겠느냐? 사람이 간이 커지면 구속받을 수 있겠느냐? (구속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구속받을 수 없으면 일시적인 충동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제 마음대로, 열성으로 또는 패괴 성품에 따라 행하는 일이 무슨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보기에 그것들은 모두 악행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며 그래야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음을 지금 너희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람이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으면 악행을 떠날 수 있다. 그런 사람만이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쉬운 일이겠느냐? 사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면 영영 그런 수준에 다다를 수 없다. 가령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본분을 이행해야 할 뿐 아니라 고통받고 대가도 치러야 하잖아.”라고 말한다면 너는 그 말을 듣고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그의 이런 말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너는 뭐라고 말하겠느냐?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게 말이야. 난 집을 떠나서 여러 해 동안 본분을 이행했어. 자식도 보고 싶고 어머니도 그리워하며 숱한 고통을 겪었는데 만약 복을 받지 못한다면 정말 억울할 거야!” 이 말 속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느냐? (없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 이런 말을 했다면, 이런 행동은 어떤 성질이냐? 하나님께 반항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공의로운 하나님임을 믿을 수 있겠느냐? 사람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도 없다면 악을 떠나기가 쉽겠느냐? (쉽지 않습니다.) 악을 떠날 수 없다. 그 사람이 “나는 가정도 직장도 다 버렸는데 복을 받지 못한다면 정말 억울할 거야!”라고 말했을 때 네가 곧장 “그러게 말이야.”라고 말을 받으면 이것이 어떤 행동이냐? 이것이 악을 떠나는 것이냐? 네가 “그러게 말이야.”라는 몇 글자를 입 밖에 낼 수 있다는 것은 너도 그 사람과 똑같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는 뜻이다. 원망하는 말을 입 밖에 내면 악을 행한 것이다. 너는 악을 떠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원망하는 말을 함으로써 악을 행한 것이다. 비록 작은 악이지만 역시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다. 오늘 작은 악을 해결하지 않으면 내일 하나님을 배신할 위험이 있다. 사람의 패괴 성품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이 사실을 너희가 똑똑히 알겠느냐?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든,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든 아니면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든 전부 악이다.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주 작은 일로도 너의 패괴 성품이 속속들이 드러날 수 있고 너라는 사람의 인격, 추구, 속셈, 심지어 네가 하나님께 품은 불만까지 다 드러날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한다.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해 버리고, 말한 뒤에는 사실이 된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악행을 멀리하지도 않으며, 악행을 보면 끼어들어 악인들과 한패가 되어 어울리는 사람이다. 만약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또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면, 너는 그 사람의 말에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그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무슨 뜻이겠느냐? 복을 포기하기 싫고 받고 싶지만 고통을 겪고 대가를 치르기는 싫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그가 원망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냐? 이 말 속에 원망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 그는 하나님께 불만과 원망을 품고 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너무 높다고, 복을 조금 준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진실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도 않으며 사람을 몹시 괴롭히기 때문에, 사람이 고통을 조금 겪고 복을 얻기가 정말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 속에 이런 뜻이 숨어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너는 그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느냐? 너희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대답하면 옳겠느냐? “우리가 이 정도 고통을 겪는 것이 뭐 그리 대수란 말이야?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셨는지 봐.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하늘에서 땅으로 오셨고, 성육신하셔서 자신을 낮추고 감추시며 사람들 가운데서 크나큰 굴욕을 겪으셨어. 또 사람을 구원하려고 생명까지 바치셨어. 하나님께서 겪으신 고통은 우리가 겪은 것보다 훨씬 커. 우리가 겪는 고통은 고통이라고 할 수도 없어. 게다가 우리는 고통을 겪어야만 해. 우리가 고통을 겪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함이잖아?” 이렇게 말하면 어떻겠느냐? 듣기에도 옳은 말이고 이치로 따져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간증이 있느냐? (없습니다.) 간증이 없다. 이것은 대충 이치로 사람을 설득하는 말일 뿐이다. 이 말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느냐? 문제를 해결하려면 너는 그와 어떻게 교제해야 하겠느냐? 너는 그렇게 원망하는 말을 듣고 속으로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그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분을 이행하고 고통을 조금 겪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기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런 마음이 든다. ‘달갑지 않으면 달갑지 않은 거지 나와 무슨 상관이야? 그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거지 나를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 내 이익과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이건 그와 하나님의 관계니까 그가 스스로 처리하겠지. 나와 무슨 상관이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반응할 것 같고 큰 잘못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런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군. 사실을 잔뜩 왜곡해서 말하고 있어. 이런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지. 구원받는 것은 아주 큰 일인데 조금도 고통받지 않고 가능하겠어? 또 사람이 무엇 때문에 고통받는 건데? 사람 자신의 패괴 성품 때문이잖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고통받게 하시는 것은 좋은 의도야. 사람에게 이롭다고. 사람이 온전케 되는 일이며,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야. 사람이 고통을 겪지 않으면 공과를 배울 수 없고 진리를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도 없어. 고통을 조금 겪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고 은총이지. 이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자 구원이야!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내가 저 사람과 교제해서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저런 말을 퍼뜨려 남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해야겠어. 이 일에 있어서 나는 하나님 편에 서서 말해야 해. 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고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게 만들어야겠어. 그가 하나님을 이렇게 오해한다면 하나님께 너무 억울한 일이잖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얼마나 큰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네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서 네가 옳은 말을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추호의 패역이나 원망도 없다. 이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서 진리를 얻었다. 입으로만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다. 네게 이런 인식이 있다면 너는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각별하게 마음을 쓰고 계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늘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할 뿐 하나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지. 조금 고통을 겪거나 하나님의 축복이 보이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마음속으로 거역하며 소극적으로 반항하지. 이것은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의 본성이 바로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임을 증명하는 거야.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고, 포기하고 헌신하는 것은 사람 자신이 구원받기 위함이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야. 네가 고통을 겪는 것은 네게 패괴 성품이 있기 때문이야. 진리를 얻으려면 고통을 겪어야 해. 듣기 싫은 말이겠지만 사람은 고통받아 마땅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고통을 더해 준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널 고통받게 한 것도 아니야. 네게 패역한 성품이 있는데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겠어? 너는 패괴 성품 때문에 고통을 겪는 거니, 그건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네가 만약 정말로 진리를 깨닫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면 소극적인 마음이 생기겠어?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겠어? 그래도 이런 고통을 받을 수 있겠어? 그러니까 사람이 어떤 고통을 겪든 그건 모두 패괴 성품 때문에 초래된 일이야. 남을 원망할 수 없고, 하나님은 더더욱 원망할 수 없어. 모두 자업자득이야. 고통을 겪지 않으면 너는 멸망할 것이고 징벌받을 거야. 너는 어떤 쪽을 선택하겠어? 하나님께서도 네가 고통받게 하고 싶지 않으시지만 고통을 겪지 않으면 네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겠어? 고통을 겪지 않으면 네가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겠어? 고통을 겪지 않으면 네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겠어?” 네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조금 알아들을 수 있지 않겠느냐? 우선 이 말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느냐? 진리에 부합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진리에 부합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말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악을 떠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무엇을 갖춰야만 악을 떠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악을 떠날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자연히 악을 떠나게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이들은 어떤 내적 상태에서 살겠느냐? 그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매일 기도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시간 맞춰 예배를 드리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는데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면 그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맞는 말이겠느냐? (아닙니다. 그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행동일 뿐입니다. 일할 때 진리를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늘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고 따라서 악에서 떠날 수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네가 늘 하나님 앞에 마음을 두고 산다면, 스스로를 단속하여 많은 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됨으로써 비이성적인 말, 선을 넘는 일, 방탕한 짓, 하나님이 증오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감찰과 징계를 받아들이면 많은 악행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이러면 악에서 떠나는 것 아니겠느냐? 만약 너희가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속은 항상 흐리멍덩한 상태에 있고,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또 진리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면, 또 매일 흐리멍덩하게 어떤 일도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그저 약간의 규례만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하게 할 수 없으며, 일이 닥쳤을 때 기도하거나 진리를 구하지 않고 늘 제 마음대로 처리하고, 사탄의 성품에 따라 살면서 자신의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감찰과 징계도 받지 않고 순종하는 마음도 없다면, 네 마음은 항상 사탄 앞에서 살면서 사탄에게 지배당하고 패괴 성품에 통제당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전혀 경외하지 않을뿐더러 근본적으로 악에서 떠나지 못한다. 설령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할지라도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전부 악한 것이며, 진리와 무관하고 진리에 위배되는 것들이다. 그러니 이런 자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 아니겠느냐? 이들은 하나님의 주재하에 있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마음을 하나님 앞에 두거나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한 적 없으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거나 자신을 주재하는 창조주로 대한 적도 없다. 또한,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 자신의 주라고 인정한 적도 없으며,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경배하려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그저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자신의 권리로 여기며,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거니 다른 사람은 결정권이 없다고.’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일종의 입버릇이나 의식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런 자는 불신파 아니겠느냐? 이런 자가 바로 불신파이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이런 자들은 전부 악을 행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온종일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악뿐인, 하나님 집의 인간 말종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하나님 집의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 집의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냐?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이름만 믿고 하나님이 그의 주이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 집의 사람들이겠느냐? 하나님이 창조주이자 진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겠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진리로 인식하고 그의 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런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겠느냐? 마음속 내적 상태가 어떠하겠느냐?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실행하겠느냐? (모든 일에서 진리를 찾을 것입니다.) 그것은 한 가지 측면이다. 또 어떤 행동을 하겠느냐?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모든 환경, 사람과 일, 사물에 순종하고, 그 속에서 공과를 배우고 진리를 얻을 것입니다.) (일을 처리할 때 감히 하나님께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태도도 나타날 것이다. 가장 주된 특징은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알든 모르든, 진리를 실행에 옮길 수 있든 없든,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함부로 말하지 않고, 일 처리가 냉철하며, 경박하거나 방탕하지 않고, 매우 침착하고, 기다릴 줄 안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지니고 있다. 이런 것들을 살아 내는 사람은 어떤 일이 닥치든 하나님 말씀과 결부하고 연관 지으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이러한 실제를 살아 내지 못한다. 그들의 성품은 분명 교만할 것이고, 구속받지 않아 방탕할 것이며, 온종일 희희낙락하면서 본분 이행에 마음을 쓰지 않을 것이다. 제멋대로 말하고 일 처리를 하며, 흉악하게 날뛰고, 무슨 일을 하든 몹시 경솔하고 조급해서 한눈에 봐도 이방인 같다. 이런 태도와 행동이 드러난다면 이것이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이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겠느냐? 절대 없을 것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 정죄받고 혐오받는 사람이다.

오늘 가장 중요한 화제에 대해 교제했는데 이 화제는 무엇과 관련이 있느냐? (구원받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구원받으려면 핵심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그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는지,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며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핵심은 그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받는 길이자 조건이다.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없고,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교제하지 못해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너는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받는 길이 너로 인해 막혔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으면, 네게 남는 건 죽음의 길뿐이다. 네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고, 입으로만 명목상으로만 하나님을 믿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 아무리 많은 글귀나 도리를 말할 수 있어도, 하나님을 믿어 아무리 많은 고난을 겪었어도, 아무리 큰 은사를 받았어도 소용없다. 네가 마음에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아무리 믿어도 소용없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너는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며, 너를 악을 행하는 자로 규정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과 무관하면, 하나님은 너의 주가 아니고 너의 하나님도 아니다. 네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네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지도 않으면, 네가 따르는 것은 마귀요, 사탄이다. 마귀와 사탄이야말로 너의 주인이다. 네가 매사에 자기 자신을 믿고, 자기 뜻을 따르며, 운명은 자기 손에 달렸다고 믿으면, 네가 믿는 것은 너 자신이다. 네가 말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너를 인정하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으면, 너는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고 징벌받고 도태되는 대상이 된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진리, 길, 생명임을 받아들여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모두 정죄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품어서야 되겠느냐? 사람이 늘 자기 관념과 막연한 상상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어서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절대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을 때는 반드시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으니 절대 요행 심리를 품지 마라. 이 주제를 교제하는 것이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겠느냐? 이것은 너희에게 울리는 경종이다.

너희는 이러한 도를 듣고 나면 진리를 깨달아 구원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에 열중하든 다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진리를 얻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며,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바른길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은 지 수년이 지나도록 늘 진리와 무관한 것을 추구하는 데 집중한다면, 너의 믿음은 진리와 무관하고 하나님과 무관하다. 네가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너의 주가 아니고 너의 하나님이 아니다. 네가 하나님이 너의 운명을 주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이 너를 위해 배치한 모든 것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이 진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네가 구원받을 희망은 사라진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가지 못하면 네가 가는 길은 멸망의 길이다. 네가 추구하는 것, 중시하는 것, 네가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요구에 근거한다면, 갈수록 자신이 창조주께 순종하고 창조주를 경배하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 너의 주이자 너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갈수록 너를 위한 하나님의 모든 지배와 안배에 달갑게 순종할 수 있다면,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점점 더 가깝고 정상적으로 변하고, 하나님에 대한 너의 사랑이 점점 더 순수하고 진실해진다면, 하나님에 대한 네 원망과 오해, 하나님에 대한 사치스러운 욕망이 점점 더 줄어들 것이고, 너는 완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된다. 이는 네가 이미 구원받는 길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구원받는 길을 가는 데는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 훈계, 심판과 형벌이 수반되어 네가 수많은 고통을 받을 것이지만,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네게 임한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복과 명리, 지위만을 추구하고, 징계와 책망, 훈계, 심판과 형벌은 한 번도 받지 않는다면, 비록 삶은 편하겠지만 네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도 깨지게 된다. 너는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는 것도 꺼리고, 스스로 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 이는 네가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이 아니라는 뜻이다. 네가 하나님의 사역을 일정 기간 체험하면, 갈수록 인류가 너무 깊이 패괴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기 너무 쉽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언젠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지르고 하나님께 죄지어 버려질까 봐 두려워진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너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 형벌을 떠난다면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 축복을 잃은 것과 같아 사람은 완전히 끝장난다고 생각한다. 그럼 점점 더 타락할 수밖에 없어 교계 사람처럼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적그리스도가 된다고 말이다. 너는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간구할 것이다. “하나님, 저를 심판하고 형벌해 주십시오. 제가 무슨 일을 하든 저를 감찰해 주십시오. 제가 한 일이 진리에 어긋나고 당신 뜻에 어긋난다면, 저를 엄중히 심판하고 형벌해 주시길 원합니다. 저는 당신의 심판과 형벌을 떠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야 할 올바른 길이다. 이 기준에 따라 너희 자신을 가늠해 보아라. 너희는 자신이 이미 구원받는 길에 들어섰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느냐? 너희는 그러지 못한다. 지금 너희는 아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많은 일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고, 책망 훈계가 닥쳐도 받아들이거나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너희가 구원받는 길에 들어서기까지 아직 멀었음을 증명한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구원받는 길에 들어서는 게 쉬우냐? 사실, 쉽지 않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한 적 없고,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 책망 훈계를 체험한 적 없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기 쉽지 않다. 그러면 구원받는 길에 들어서기 어렵다. 만약 네가 이 도를 다 듣고 진리임을 알았지만, 아직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는 길에 들어서지 못했고 또 네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언젠가는 그 길에 들어설 수 있을 테니 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관점은 어떠하냐? 이런 관점을 갖고 있다면 문제가 되고, 그 길에 들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 어떤 의지를 지녀야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겠느냐? 네가 “아휴, 난 아직 구원받는 길에 들어서지 못했으니 몹시 위험한 상태야! 하나님은 사람이 시시각각 하나님 앞에서 살며 많이 기도해야 하고, 경박하게 굴지 말고 마음을 평온히 해야 한다고 하셨어. 그럼 난 지금부터 실행해야겠어.”라고 말하며 이렇게 실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실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좋은 사람이 아니냐? 좋은 사람이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난 뒤에도 멍하니 아무 느낌이 없고, 관심도 두지 않고, 고집을 부리고, 얕보는 태도로 대하고, 들어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한다면, 이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어리석은 사람 아니겠느냐? 사람은 늘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데 속성법이 없느냐고 묻는다. 나는 없다고 말한 뒤 너희에게 이렇게 간단한 길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너희가 다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약간의 희망이 있다 해도 그 희망마저 별로 크지 않다. 구원받기 매우 어렵다. 어쩌면 언젠가 잠에서 깨어나 ‘나는 나이도 먹었는데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연의 일을 하지 않았어. 하나님은 사람에게 시시각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얼른 기도하자.’라고 생각하며 깨닫고, 본연의 일을 하기 시작한다면 이 또한 늦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너무 늦지는 마라. 너희가 70~80살 되어 몸이 말을 듣지 않고 기력도 없을 때 진리를 추구하면 너무 늦지 않겠느냐? 너희가 가장 좋은 시간을 의미 없는 일에 쓰느라 결국 진리를 추구하는 이 가장 중요한 일을 그르치고 놓친다면, 이는 너무 무지몽매한 것 아니겠느냐? 어리석기 짝이 없지 않겠느냐? 많은 사람이 참도인 줄 알고도 나중에 받아들이고 추구하려 하는데, 이런 부류의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는 진리 추구에 수십 년의 시간을 쏟아부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구원받을 최고의 시기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너희들이 지금 가장 시급히 실행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느냐? 바로 일이 닥치면 서둘러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하게 하며,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과 무관하고, 여전히 막연한 하나님을 믿으며 실제의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네가 그를 믿는다고 인정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너를 인정하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 아니겠느냐? 네가 어떻게 추구해야 네가 하나님 집의 사람이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임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또 강퍅하게 굴지 말고 거역하지 말고,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된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이 너의 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겠느냐? 서둘러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진리를 받아들이며, 실행하고 체험하며 실제에 진입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너희가 내가 교제한 이런 말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 말들을 생활 속에 활용해 생활의 지침이자 너희가 살아 내는 실제가 되게 할 수 있다면, 너희는 얻은 것이며, 오늘의 교제는 헛되지 않은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관건은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어야 하고, 일을 할 때 하나님 말씀을 따를 수 있으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크게 높이고 순종할 수 있고, 또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 놓고, 하나님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모습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믿는 실제가 있어야 한다. 너희가 도를 다 듣고 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고 진입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사람에게 변화가 생기고, 이 말이 사람에게 유익하여 사람의 내적 상태와 행로를 바꾸고 사람이 확실히 돌려진다면, 나는 그것을 보고 이 말을 한 것이 헛수고가 아니고, 사람이 마이동풍이 아니라 마음에 두고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보면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너희에게 어느 정도 말했는데도 너희가 듣지 않고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은 채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나는 너희를 보면서 마음이 괴로워지고 너희에게 반감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네가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을 해도 소용없고, 아무리 잘 보이려고 해도 소용없다. 너희의 행동은 모두 외식하는 것이므로 내 눈에 거슬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있으면 자연히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연히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2017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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