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공격한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통제하는 세 번째 수단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배척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고, 정의와 광명을 좋아하며, 진리 교제를 좋아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구하는 형제자매들과 자주 교제한다. 적그리스도가 그런 이들을 보노라면 화가 치민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모두 눈엣가시로 여기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그가 공격하고 배척하고 비난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적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고 눈에 잘 띄는,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수단으로만 그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밖에도 진리를 교제하는 방식을 택하고 글귀와 도리를 말하여 사람을 판단하고 공격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그것을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고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 이런 ‘정당하고 합리적인’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인용해 남을 판단하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나님 말씀을 인용해 사람을 폭로하고 판단하는 것이 가장 흔한 방식이다. 이렇게 말하는 방식은 겉으로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품은 속셈은 사람을 도와서 유익을 얻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폭로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폄하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순전히 이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출발점은 문제가 있다. 이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그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하는 것임을 눈 밝은 사람들은 알아챌 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이 사람들이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그의 무엇에 걸림돌이 되겠느냐? (사람들이 그를 꿰뚫어 보고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진리를 사랑하는 이 사람들이 그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그가 어떤 나쁜 짓을 하든 이 사람들이 모두 분별할 줄 알고, 그의 본질을 간파할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그를 폭로하고, 적발하고, 고발하여 그를 정죄하고, 버리고, 그를 교회에서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그는 지위와 권력을 영원히 잃어버리고 복받을 가망이 완전히 사라진다. 그러므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를 제외하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는, 겉보기에 정당해 보이는 이런 방식으로 공격하고 판단하는 것 외에도 비상한 수단으로 그들을 대하기도 한다. 비상한 수단에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그는 리더 일꾼의 일시적인 과오를 틀어쥐고, 그 배경이 무엇이든, 사람에게 인식이 있든 없든, 회개할 수 있든 없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확대 해석해서 판단하고 정죄하여 사람을 제명해 버린다. 적그리스도는 화근은 철저히 없애야 한다며 그들을 교회에서 제명하면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악인과 적그리스도는 모두 리더 일꾼의 약점을 잡는 데 능하다. 일단 약점을 잡으면 사람을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로 정죄하는데, 이는 결코 가벼운 죄명이 아니다! 리더 일꾼은 하나님의 선민이 뽑은 사람인데 너는 어째서 늘 리더 일꾼의 약점만 잡는 것이냐? 약점을 잡는 네 목적이 무엇이냐? 네가 그를 대신해 리더가 되고 싶은 것이냐? 악인이 리더 일꾼에게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라는 죄명을 씌우고 실례를 들어 하나님의 선민들이 그것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여기게 만든다면 골치 아프게 되는 것이다. 그 리더 일꾼들은 아주 쉽게 교회에서 제명된다.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라는 죄명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일단 죄명이 성립되면 곧 정죄된다. 그러면 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생애는 끝이다. 이는 멀쩡한 사람을 망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이 얼마나 큰 악행이냐! 또 적그리스도가 그 틈을 타서 리더로 선출되어 교회를 통제한다면 하나님의 선민들이 적그리스도에게 통제되지 않겠느냐? 이 교회는 적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다! 악인과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배척하는 또 다른 수단은 없느냐? 권력을 쥐고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진리를 추구하는 형제자매를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보내 사역하게 하는 사람이 있지 않으냐? “새로 세운 교회에 처음 믿는 형제자매들이 많은데 모두가 기반이 없고 지혜가 부족하니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그들을 양육하고 공급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새 신자들은 이상(異象) 측면의 진리를 깨달은 당신 같은 사람의 양육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파견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적그리스도는 자기한테 화근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내 버린다. 사실상 정말로 그가 교회를 이끌고 공급하도록 보낸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 그곳은 환경이 열악하고 위험한 곳이다. 그는 그 사람을 위험한 곳으로 보내 교회 사역을 하도록 하고, 그가 큰 붉은 용에게 잡혀가길 간절히 바랐다. 그 사람이 잡혀간다면 자기 지위를 위협할 사람이 없어지므로 그가 교회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수단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새 신자를 양육하는 데 적합하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파견 보냈다. 그리하여 그의 음험한 속셈을 아무도 알아챌 수가 없었다. 그가 이렇게 한 건 아주 교묘하지 않으냐? 그런데도 형제자매는 이렇게 안배하는 적그리스도가 똑똑하고 지혜로우며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결국 그의 속임수에 넘어갔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방법은 겉보기에 정당해 보여서 누구도 사실 진상을 확실히 알지 못했고, 결국 사람들은 미혹되었다. 그에게 미혹된 사람들은 여전히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이 이치에 맞고, 사역을 생각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속셈을 아무도 간파하지 못한다. 적그리스도는 무척 사악하지 않으냐? 그는 위험한 곳이면 어디든 너를 보낸다. 그러면서 속으로 ‘너는 진리를 추구하잖아? 나랑 해보겠다는 거야? 넌 항상 나를 분별하고 꼬투리를 잡잖아? 좋아, 이 일로 널 손봐 주겠어. 네가 잡혀간다면 아주 좋지. 네가 영영 재기하지 못하도록 말이야!’라고 말한다. 교회에서 적그리스도의 모함과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틀림없이 상대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박해와 배척을 당할 때 적그리스도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들은 항상 설교를 듣고 진리도 조금 깨달았어. 이들이 설교를 못 듣게 하는 건 안 되지. 설교는 누구나 들을 수 있게 된 거라 그들이 못 듣게 하려 해도 마땅한 이유가 없어. 하지만 설교를 듣게 하면 그중에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내용도 많은데, 자꾸 들어서 깨닫고 분별이 생기면 나한테 좋을 게 없잖아? 내가 리더 자리에서 내려오는 건 시간문제가 아니겠어? 그럴 순 없지. 미리 손을 써야겠어.’ 적그리스도는 이런 속셈이 생기면 곧 행동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없을 것이다. 어째서 적그리스도가 목적을 달성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피해를 당한 것이겠느냐? 이 한 가지 원인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즉, 그 사람들은 비록 진리를 사랑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는 마음도 조금 있고, 진리를 추구하려는 바람도 조금 있었지만, 너무 나약한 데다 진리를 깨닫지 못해 분별력이 없고, 너무 어리석어서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고 적그리스도를 감히 폭로하지 못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가 먼저 손을 써서 해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어째서 그런 결과와 결말을 마주하게 된 것이겠느냐? 그것은 적그리스도에게 해코지를 당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이 일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겠느냐? 리더 일꾼을 대할 때는 마땅히 어떤 태도를 보여야겠느냐? 그가 하는 일이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한다면 순종해도 되지만,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순종해선 안 된다. 그럴 때 너는 폭로하고 반대하며 다른 의견을 내도 된다. 그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거나 악행을 저지르며 교회 사역을 교란해 거짓 리더, 거짓 일꾼 또는 적그리스도로 드러날 경우 너는 그를 분별하고 폭로하고 고발하면 된다. 하지만 어떤 하나님 선민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유달리 나약하여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가 억압하고 괴롭힐까 봐 원칙을 견지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는 “리더가 저를 출교하면 저는 끝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이 저를 폭로하거나 저버리게 한다면 저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게 되죠. 제가 교회에서 출교되면 하나님도 저를 원치 않으시고 구원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믿은 것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이는 터무니없는 생각 아니겠느냐?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있겠느냐?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가 너를 출교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너를 출교한다는 의미겠느냐?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가 너를 괴롭히고 출교한다면 그것은 사탄이 한 짓으로,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직 교회와 모든 하나님 선민이 함께 결정한 일만이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과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 원칙에 완벽히 부합한다. 이런 식의 제명이나 출교라야 하나님 뜻에 부합한다. 설마 네가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에게 출교된다고 해서 그것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의미겠느냐? 그것은 사탄, 적그리스도에게 박해당한 일에 속하며,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네가 구원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 어떤 사람도 네가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을지 결정할 자격은 없다. 이 일은 확실히 알아 두어야 한다.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가 너를 출교한 것을 하나님이 너를 출교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오해한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오해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또한 어느 정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고 무지한 행동 아니겠느냐?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가 너를 출교한다면 너는 왜 진리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냐? 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찾아 분별하지 않는 것이냐? 왜 윗선에 보고하지 못하는 것이냐? 이는 네가 하나님 집에서는 진리가 권세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네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없고, 너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네가 하나님의 전능을 믿는다면 어찌하여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의 보복을 두려워하느냐?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가 네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겠느냐? 네게 분별력이 있고,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의 행동이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찌하여 진리를 깨달은 하나님 선민과 이 일에 대해 교제하지 못하느냐? 입이 있는데 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느냐?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를 왜 그렇게까지 두려워하느냐? 이는 네가 겁쟁이이자 못난이이며, 개만도 못한 사탄의 노예라는 의미이다.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의 협박 앞에서 감히 윗선에 보고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사탄에게 결박되어 있고, 네가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와 한마음이라는 뜻이다. 이는 사탄을 따르는 것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어디 하나님의 선민이겠느냐? 그야말로 인간 말종이다.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와 한마음인 사람은 절대 좋은 작자일 리 없다. 그들은 모두 악을 행하는 자에 속한다. 이런 자는 천성적으로 마귀의 앞잡이이고, 개만도 못한 사탄의 노예로, 구제 불능이다.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는 것을 보고도 감히 일어나 폭로하지 못하고,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워하며, 심지어 적그리스도를 두둔하고 그에게 복종하는 자들은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 아니겠느냐? 진리 원칙을 뻔히 알면서도 어긴다면, 심지어 악인이나 적그리스도와 결탁하여 패거리를 짓는다면 이는 사탄의 공모자,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 마지막에 악인, 적그리스도와 한패로 취급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적그리스도를 따르고 그의 공모자, 앞잡이 노릇을 한다면 너 스스로 무덤을 파고 죽음을 자초하는 것 아니겠느냐? 또한,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반면 하나님의 원수인 적그리스도에게 무릎을 꿇고 빌붙어 그 결과 적그리스도에게 농락당하고 해를 입는다면 그것은 네가 자초한 일이다. 이는 당연한 결과 아니겠느냐? 네가 적그리스도를 네 주인이자 리더, 의지처로 여긴다면 이는 사탄에게 빌붙고 사탄을 따르는 것이며, 치우치게 행하여 자기 길로 나아가고 옆길로 빠진 것이며, 돌아올 수 없는 길에 오른 것이다. 적그리스도를 대할 때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겠느냐? 그를 폭로하고 그와 싸워야 한다. 한두 명의 힘으로 역부족이라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몇 명이 함께 그를 제명할 때까지 고발하고 폭로해야 할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의 대교구 몇 군데에서 하나님의 선민들이 힘을 모아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를 파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는 의사 결정팀의 팀장이었지만, 그들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파면되었다. 하나님의 선민들이 상부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진리 원칙에 근거하여,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걸핏하면 형제자매를 괴롭히며 함부로 못된 짓을 하면서 하나님 집의 사역을 교란하는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고 제때 처리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의사 결정팀에서 쫓겨났고 어떤 이는 교회에서 출교되었는데, 매우 훌륭한 처사이다! 이는 하나님의 선민들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일부 하나님 선민들은 진리를 깨닫고 어느 정도 분량을 갖췄으며, 더 이상 사탄의 통제와 우롱을 당하지 않고 용기 있게 일어나 사탄의 사악한 세력과 싸웠다. 이는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 세력이 교회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노골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못한다. 그랬다가 정체가 드러나면 그들을 감독하고 분별하고 저버리는 사람이 나온다. 다시 말해,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사람의 지위와 명망, 권력은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그런 사람은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주동적으로 진리를 구하고 교제하며,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리더 일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하고 돌아보기 시작하고, 사람은 과연 누구를 따라야 할지, 어떤 모습이 사람을 따르는 것이고 어떤 모습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하며, 몇 년간 이런 진리를 모색하며 체험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얼마간 진리를 깨닫고 분별력을 갖추게 되면 어느 정도 분량이 생기게 된다. 매사에 진리를 구할 수 있다면 이는 바로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이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고 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고, 좋은 현상이다. 어떤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 못하면서 방해와 교란을 일삼고, 교회 생활이 평온하지 못하게 혼란을 일으키자 형제자매들이 모두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결국 그를 버렸다. 이것이 옳은 일이냐? (옳은 일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리더로 선출된 후, 처음에는 형제자매들이 “그를 리더로 뽑았으니 우리가 그의 사역에 잘 협조해야 합니다.”라고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잘못 뽑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데 열정만 있을 뿐 영적인 이해력이 없고 치우쳤으며, 교만하고 독선적이어서 일이 생기면 사람들과 상의하지 않았다. 또한, 무슨 일을 하든 원칙을 따르지 않은 채 제멋대로 나쁜 짓을 일삼다 결국 안전상의 위험을 초래하는 바람에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계속 붙잡히고 교회 사역이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반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치를 따지고 변명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결국, 사람들이 또 그를 파면했다. 이런 상황을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옳으냐? (옳습니다.) 아주 옳다! 이 사람을 처리한 뒤에 곧바로 다른 사람을 뽑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모두가 봤을 때 그 거짓 리더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었다. 이는 모두가 분별력이 생기고 성장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나님 선민의 생명이 자라는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이다. 이는 아주 정상이다. 너는 사람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설교를 들었으니 모두가 분별력이 생겨 리더 일꾼을 뽑을 때는 뽑는 족족 제대로 된 사람, 그 자리에 굳게 서는 사람을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로 그렇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진리 원칙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두뇌 회전이 빠르고 언변이 뛰어나며 은사가 있는 사람만 집중적으로 뽑는다. 하지만 뽑고 난 뒤 시간이 좀 지났을 때 그들이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되면 비로소 분별력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다음부터는 다시는 그런 사람을 뽑지 않게 된다. 그러면 리더 일꾼을 뽑을 때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겠느냐? 정해진 규정은 없으며, 옳은 사람인지 아닌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관건이다. 요컨대 어떤 부류의 사람이든 간에 그가 악인이나 적그리스도라면 선출해서는 안 된다. 선출하는 순간 너 스스로를 구덩이에 빠뜨리게 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방금 이야기하던 주제,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공격한다’로 돌아와 보자. 이 주제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다 다루지 않았느냐?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어떻게 배척하고 공격하느냐? 그들은 늘 합리적이고 정당해 보이는 방식, 심지어는 진리로 변론하는 방식을 통해 남의 약점을 잡아 공격하고 정죄하고 미혹하려는 목적을 이룬다. 예를 들어,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파트너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준 높은 설교와 영적인 이론을 거론하면서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보도록 미혹한다. 이를 통해 그의 파트너나 사역자를 깎아내리고 억압하여 사람들이 그의 파트너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자질이나 재능은 그만 못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심지어 “우리 리더의 설교는 정말 대단해. 아무도 비교할 수가 없다니까.”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나온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에 대한 이런 평가를 듣고 무척 흡족해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은 나의 파트너야. 당신은 어느 정도 진리 실제를 갖추고 있는 것 아니었어? 그런데 왜 당신이 말하는 내용은 내가 말하는 것보다 더 뛰어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거야? 이번에는 철저히 망신을 당했겠지. 능력도 안되면서 감히 나와 겨루려고 하다니!’ 이는 적그리스도의 마음속 말이다. 그의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갖은 방법을 동원해 다른 이를 억압하고 깎아내리며 뛰어넘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그와 협력하는 사람을 그는 다 이런 식으로 대한다. 그는 무엇을 하든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중심에 두며,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숭배받으려 한다. 누가 그를 뛰어넘어도 안 된다. 누구든 그보다 훌륭하면 그에게 폄하되고 배척당하고 억압당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이 모든 수단에는 속셈과 목적이 들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권력과 지위를 지키고, 하나님 선민들 마음속 자기 지위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의 이런 행동 방식과 행위는 하나님 집 사역에 방해와 교란이 되며, 교회 생활을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는 모습 중 가장 흔한 것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이런 악행 외에 더 비열한 짓도 저지른다.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약점을 잡으려고 항상 궁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 음행을 저질렀거나 과오를 범한 사람들이 있으면 적그리스도는 이러한 약점을 잡아 상대를 공격한다. 또 기회가 생겼을 때 그들을 모욕하고 폭로하고 비방하며, 그들에게 꼬리표를 붙여 본분 이행에 대한 열정에 타격을 줌으로써 그들을 소극적으로 변하게 한다. 게다가 하나님의 선민들이 그들을 차별하고 회피하고 저버리게 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전부 고립시키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들이 전부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져서 더는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지도, 예배에 참석하기를 원하지도 않게 되면 적그리스도의 목적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더 이상 그들의 지위와 권력에 위협이 되지 않고, 감히 그들을 고발하거나 폭로할 사람도 없어 적그리스도는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가 교회에서 가장 증오하는 자는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특히 정의감이 있어 용감히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고발하는 사람이다. 적그리스도는 이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기꺼이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을 보면 원한과 증오를 품을 뿐 사랑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든, 그들이 어떻게 연약해지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든 적그리스도는 도와주거나 붙들어 주지 않고 방치할 뿐만 아니라 마음 한편으로 몰래 기뻐한다. 만약 누군가 한때 그를 질책하고 폭로한 사람이라면,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남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며, 갖가지 죄명을 덮어씌워 훈계하고 정죄함으로써 그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다. 결국, 본분을 이행할 수 없을 정도로 소극적인 상태에 빠뜨리면 적그리스도는 득의양양해하면서 남의 불행을 몰래 기뻐하기 시작한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일에 가장 능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공격하고 정죄하는 것은 적그리스도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악을 행하면서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진리를 추구하는 이 사람들이 수시로 설교를 들으면 언젠가 내 모든 행위를 꿰뚫어 볼 것이고, 그러면 틀림없이 나를 폭로하고 대신하게 될 거야. 그들이 본분을 이행하면 내 지위와 명성, 명예는 위협받겠지. 먼저 손을 써야 해. 틈을 봐서 약점을 잡아 그들을 교란하고 정죄해야지. 그렇게 그들을 소극적으로 변하게 하고 본분을 이행할 마음을 없애 버리면 좋을 텐데! 또 리더 일꾼과 그들의 사이를 이간질해서 리더 일꾼이 그들을 혐오하고 멀리하면서 다시는 중요하게 여기거나 발탁하지 못하게 해야겠어. 그럼 그들은 진리를 추구할 생각도, 본분을 이행할 생각도 들지 않겠지. 계속 소극적인 상태로 있으면 좋을 텐데!’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이루려는 목적이다. 적그리스도, 악인이 간계를 써서 너를 해하고 정죄하고 모욕할 때 너는 분별할 수 있겠느냐? 사탄의 간계를 간파할 수 있겠느냐? 너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분별해야 한다. ‘그의 저 말은 언뜻 듣기에는 맞는 것 같아. 그런데 그의 말을 들으면 왜 소극적으로 변하고, 본분을 이행하기가 싫어지는 걸까? 왜 하나님께 의혹이 생기는 거지? 그의 말에 문제가 있는 걸까? 왜 부정적인 작용을 하는 거지? 나는 왜 그의 말을 듣고 나면 하나님께 오해와 관념이 생기고 순종하기 싫어지는 걸까? 예전의 열정과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려는 의지가 왜 사라진 거야?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서도 갑자기 의혹이 생기면서 이상(異象)이 분명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왜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으면서 어느 정도 고난을 겪었는데도 아무 성과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마음속이 어두워져.’ 이는 좀 비정상적인 상태이다. 왜 표면적으로 옳은 것 같은 말을 들으면 이런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너는 그 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럼 어떤 말을 들으면 이런 반응이 나타나겠느냐? 어떤 말을 들으면 하나님에게 의혹이 생기겠느냐? 먼저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적그리스도가 한 그런 말은 모두 사람을 미혹하며, 뱀처럼 사람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저버리도록 유혹하는 것이지 공급해 주거나 도움을 주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말은 어디에서 왔겠느냐? 사탄 마귀에게서 왔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정죄하는 적그리스도의 이런 말을 너희는 분별할 수 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할까 봐 두려워하고,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 일어나서 하나님을 따르면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리를 구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는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민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들어서는 순간 생명의 성장 속도는 빨라지고, 그에 따라 사람의 분량도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또 진리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권세를 잡고 생명이 될 때 적그리스도의 종말이 도래하며, 그러면 그들이 정죄되고 드러나 도태되고 철저히 버려지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가장 증오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원수로 보고, 공격하고 협박할 대상, 증오하고 저버리고 해치고 짓밟을 대상, 나아가 미혹할 대상으로 본다고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고 통제하고 농락할 방도가 없고, 자기 멋대로 또 공개적으로 그들을 배척하거나 공격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적그리스도는 옳은 말, 듣기 좋은 말 등 회유책으로 그들을 끌어들여야만 한다. 만약 그들이 그를 따르지 않고 이용당하지 않는다면, 그는 갖가지 비열한 수법으로 그들을 배척하여 소극적이고 연약해지게 할 것이며, 심지어는 그들이 더는 기꺼운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하고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할 것이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주된 악행 중 하나이자 적그리스도 본성 본질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 본성의 특징은 무엇이겠느냐? 음험하고, 교활하며, 악독한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교회에서 권세를 잡으려는 야심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늘 미혹하고 배척하고 공격하는 수법을 씀으로써 차마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목적을 달성하는 한편,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두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지며 믿음이 식고 하나님을 오해하게 한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오해와 원망을 품으면 더 이상 진리를 추구하지도, 기꺼이 본분을 이행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적그리스도에게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첫째, 아무도 그들의 지위를 위협하지 않게 된다. 둘째, 이 올바른 사람들이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져서 하나님을 멀리하는 순간, 그는 교회에서 활개를 치며 사람들을 미혹하고 속박하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통제하여 하나님 선민들이 그를 따르고 옹호하고 그에게 굴종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적그리스도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행동이 본분 이행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그들의 행위는 어떤 성질이겠느냐?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한다는 말은 모호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고 하나님에게 구원받는 것을 교란하고 가로막는다. 적그리스도는 누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보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마음속으로 증오한다. 어느 정도로 증오하겠느냐? 누가 진리를 추구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그를 따르거나 숭배하지 않고 그와 같은 길을 걷지 않으면, 그는 그 상대를 공격하고 배척하고 억누르며, 없애 버리지 못해 안달한다. 이 정도로 증오한다. 요컨대, 적그리스도의 이러한 태도에 근거하여 우리는 그가 리더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행동 방식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교제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을 양육하고 그들에게 공급해 진리를 얻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방해하는 것이며, 교회 사역을 무너뜨리고 망치는 것이고,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는 길에 이르는 것을 막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선민들을 나쁜 길로 이끌어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함으로써 이루려는 최종 목적이다.
하나님의 선민은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반드시 분별하고, 폭로하고, 고발하고, 저버려야 한다. 그래야 확실히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사람을 미혹하여 리더 자리에 오르든 그는 네 리더가 아니다. 너는 그를 인정해서는 안 되고, 그의 인도를 받아들여서도 안 되며, 그를 분별하고 저버려야 한다. 그는 네가 진리를 깨닫도록 도와줄 수 없고, 붙들어 주거나 공급해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이다. 그는 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이끌어 줄 수 없기에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없다. 또 네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도록 이끌어 주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그러니 너는 마땅히 그를 분별하고 폭로하고 저버려야 한다. 그의 모든 행동은 너를 미혹하여 그를 따르게 하기 위한 것이고, 네가 그의 패거리에 들어오게 하기 위한 것이며, 교회 사역을 망치고 교란하는 한편, 너를 끌어들여 그와 함께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너를 지옥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만약 분별하지 못한 채 그가 리더이니 그에게 복종하고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진리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받고 싶다면 큰 붉은 용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큰 붉은 용을 분별하고 큰 붉은 용의 추악한 몰골을 간파하고 큰 붉은 용을 철저히 저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관문 역시 통과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원수만이 아니라 하나님 선민의 원수이기도 하다.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모르면 쉽게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회유되어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서게 되고, 하나님께 저주받고 징벌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철저하게 실패한다. 구원에 이르기 위해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우선 진리를 많이 깨달아야 하고, 적그리스도의 본질과 성품, 적그리스도의 길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믿으면서 확실히 사람을 숭배하거나 따르지 않게 되고, 길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다.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증거하게 된다. 혹자는 “저는 지금 이런 측면의 진리를 갖추지 못했는데 어쩌죠?”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얼른 진리를 갖추고 사람과 일을 간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적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드시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가 저지르는 모든 일의 배후 음모와 수단, 속셈과 목적을 간파해야 한다. 그러면 너는 그에게 미혹되거나 통제되지 않고 굳게 설 수 있으며, 평온하게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는 길을 착실히 걸어 나갈 수 있다. 적그리스도,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네가 매우 위험하고, 또 쉽게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사로잡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너희 가운데 일부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걸림돌, 방해물, 원수일지도 모른다. 너희는 이를 인정하느냐? 어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직면하고 인정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나 사실 교회에서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일은 실제로 존재하고 늘 존재해 왔다. 그저 사람이 분별하지 못했을 뿐이다. 적그리스도,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당하거나 적그리스도에게 고통과 괴롭힘을 당하고 배척당하고 억압당하고 학대당할 것이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네 그 작은 생명까지 얼마 안 가서 시들 것이다. 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도 공의롭지 않아! 하나님이 어디에 있지? 이 세상에는 정의나 광명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그런 일도 없고. 일해서 돈이나 벌고 생계나 유지해야지!” 너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떠나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된다. 네가 구원받을 희망이 철저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사탄을 꿰뚫어 보고 간파해야 하는 것이며, 일어나 사탄을 폭로하고 버리는 용기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사탄은 어디에 있겠느냐? 바로 네 옆, 네 주변에 있으며, 어쩌면 네 마음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네가 사탄 성품으로 살아간다면 너도 사탄에 속한 자라고 할 수 있다. 영계의 사탄이나 악령은 네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현실 생활 속의 사탄이나 살아 있는 마귀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진리를 싫어하는 자는 모두 악인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리더 일꾼은 모두 거짓 리더이고 적그리스도이다. 그들은 사탄, 살아 있는 마귀가 아니겠느냐? 어쩌면 이런 자들이 네가 숭배하고 앙망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너를 이끄는 사람일지도 모르며, 네가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앙모하고 신뢰하고 기다리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너에게 있어 그들은 네가 진리를 추구해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자 방해물이며, 바로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이다. 그들은 너의 인생과 네가 걷는 길을 통제할 수 있으며, 네가 구원받을 기회를 망칠 수 있다. 네가 분별하지 못하고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언제든 미혹되고 사로잡힐 것이다. 그럼 너는 몹시 위험해질 것이다. 만약 이 위험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너는 사탄의 희생양이 되고 말 것이다. 어찌 되었든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어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미혹되어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되는데, 이는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스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허풍 아니겠느냐? 만약 누가 봐도 분명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이빨을 드러내고 나쁜 인성을 보이며 악을 행한다면 당연히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무척 경건하고 말투가 온화하며 사람도 좋아 보이고,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는 적그리스도라면, 너는 그를 분별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할 수 있겠느냐? 만약 분별하지 못한다면 너는 분명 그에게 탄복하고 호감을 가질 것이다. 그럼 그의 행위와 사상 관점, 행동 방식, 나아가 진리에 대한 이해 방법은 반드시 네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치겠느냐? 너는 그를 부러워하고 모방하고 본받고 따를 것인데, 이는 네 생명 진입에 영향을 줄 것이고, 진리를 추구하고 실제에 진입하는 것,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진실로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따르는 것 등에 영향을 줄 것이다. 결국, 그는 네 우상이 되어 네 마음속에서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럼 너는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 정도로 미혹되면 네가 구원받을 희망은 막연해진다. 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이미 망가졌으며, 너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잃고 위험한 경계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네게 화겠느냐, 복이겠느냐? 당연히 재난이지 절대 복이 아니다. 몇몇 적그리스도가 사소한 일에서 너를 도와 약간의 이점을 안겨 주거나 글귀와 도리로 너를 지도해 줄 수는 있어도 네가 그에게 미혹되어 그를 숭배하고 따르는 순간 문제는 심각해진다. 너는 스스로를 망치고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는 사탄도, 악인도 아닙니다. 영적 인물 같아요.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요.”라고 하는데, 이 말이 성립하겠느냐? (성립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느냐?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을 인도하고 도와주고 공급해 줄 때 다음과 같은 영향과 이로움을 준다. 즉, 너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구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구하는 법을 배우게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가까워지게 한다. 반면, 네가 적그리스도와 점점 더 친근한 관계가 되어 그의 모든 말이나 계획을 그대로 따른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나쁜 길에 들어서고, 스스로를 망치게 된다. 적그리스도와의 관계가 가까워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멀어진다. 그로 인한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그는 너를 그의 앞으로 데려갈 것이고, 너는 하나님을 멀리하게 될 것이다. 네 마음속에는 우상이 생기는데, 네가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에 관념을 품거나 하나님 말씀이 네 우상을 드러낼 때, 너는 즉시 하나님을 거역하고, 심하게는 대적하고 배반할 것이며, 네 우상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다.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어떤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가 교체되거나 출교되면 그의 졸개, 앞잡이들이 그를 위해 불평을 터뜨리고 원망을 쏟아 내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소극적으로 변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도 있다.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지 않더냐? 어째서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되겠느냐? 그는 “리더조차 교체되고 출교되었는데 평범하게 따르는 저 같은 사람에게 어떤 희망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이는 헛소리 아니겠느냐? 그의 말을 통해, 그는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며, 적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미혹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혹된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적그리스도는 그가 숭배하는 우상이 되고, 그의 조상 같은 존재가 된다. 그의 조상이 출교되었는데 그가 어찌 물러서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는 오직 적그리스도의 말만 들으며, 이미 적그리스도에게 완전히 통제되어 적그리스도의 모든 언행을 옳게 보고,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며 순종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집의 누구든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정죄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집에서 출교되는 순간, 적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교회를 떠난다. 이것이 바로 ‘나무가 쓰러지면 원숭이가 사방으로 흩어진다’는 것이다. 이 일은 적그리스도들이 사탄의 종이자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러 온 존재임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 하나님의 선민에게 간파당하고 폭로되고 버림받는 순간,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생애도 끝난다.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띄는 특징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누구 말도 듣지 않고 오직 적그리스도의 말만 듣는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된 그들은 하나님 말씀도 듣지 않는다. 그들이 주인으로 인정하는 존재는 오직 적그리스도뿐이다. 이는 미혹당하고 통제된 것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만이 적그리스도를 위해 불평을 터뜨린다. 적그리스도가 폭로되고 드러날 때,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를 대신하여 초조해하고 눈물 흘리고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변호한다. 이때 그들은 하나님마저 잊어버린 채 하나님에게 기도하지도,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 오직 적그리스도를 위해 불평을 터뜨리고 머리를 쥐어짤 뿐 하나님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겠느냐? 그들이 믿는 존재는 과연 누구겠느냐? 여기에서 완전히 드러난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든, 이루려는 목적은 오직 하나, 사람들을 이끌고 사람들의 주인이 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순순히 그를 따르고 그에게 순종하게 해서 결국 그를 하나님으로 대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바울이 걸었던 길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바울은 마지막까지 사역한 후 마침내 그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마음속 말을 했다. 그가 이 말을 한 목적은 주를 믿는 모든 사람이 그를 본받고 따르며, 그를 하나님으로 대하게 하는 것이었다. 바울의 이 말에는 이런 목적이 있지 않겠느냐? 만약 적그리스도가 사역해서 정말 모두가 그를 숭배하고 그에게 순종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지위를 잃게 될 것이고, 사람들의 마음은 적그리스도에게 점령당할 것이다. 바로 이런 결과이다. 네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될까 봐 걱정되지 않는다고,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될까 봐 두렵지 않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그것은 헛소리이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언제나 사람을 숭배하고 따르면 부지중에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서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몇 년 동안 믿었어도 체험 간증이 전혀 없는 것,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된 것,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를 따른 것의 마지막 결과이다. 너는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 사실을 바꿀 수도 없다. 이는 사람이 감전됐을 때 전기 충격을 받는 것과 같다. “나는 믿지 않을 거고, 두려워하지도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이 네가 믿고 안 믿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않고의 일이겠느냐? 일단 감전되면 ‘찌릿’ 하고 전기 충격이 온다. 믿지 않아도 소용이 없다. 믿지 않는다는 것은 무지한 것이고, 무책임한 소리다. 그러므로 네가 적그리스도를 따르길 원하든 원치 않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늘 명리와 지위에 골몰한다면 이미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또한, 그 결과는 조금씩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다. 이는 필연적인 일이다. 적그리스도의 행동은 사람들을 그들 앞으로 데려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통제와 지배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얻으려고 하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의 모든 선민을 통제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선민들을 손아귀에 틀어쥐면 그는 암거래 브로커가 된다. 적그리스도는 무엇으로 사람을 통제하려는 목적을 이루겠느냐? 그들은 사람이 숭배하는 영적인 도리를 이용하고, 사시이비한 이론을 이용하며, 이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패괴된 심리를 이용하여 과장하고 사탕발림하며 사람들을 미혹한다. 요컨대, 그들이 한 말은 모두 글귀와 도리이고 텅 빈 이론이며, 사시이비한 것들과 진리에 어긋난 것들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사람은 누구나 미혹당하고 만다. 최소한 한동안 미혹당한 후에야 정신을 차릴 텐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적그리스도의 본모습이 드러난 후로, 그때는 후회해도 늦다.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성령 역사를 잃었다. 그것은 그들이 마음속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사람을 따랐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고 한쪽에 내버려둠으로써 그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다.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적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한쪽에 내버려두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선민들이 정신을 차리고,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고 폭로하여 철저히 저버리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적그리스도의 마지막 날이 도래할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모든 행동은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 해치는 것 아니겠느냐? 그는 자기 혼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미혹하고 통제하여 진리를 추구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또 자기 혼자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미혹하여 그를 따르게 한다. 여기에서 적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전혀 없고,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지위와 권세를 도모함으로써 하나님에게 대항하고, 하나님의 선민을 두고 하나님과 겨루며, 마지막에는 독립 왕국을 세워 하나님과 공존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적그리스도는 성육신 하나님의 철천지원수이며, 하나님이 파멸해야 할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당하고 통제된다면 이는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가장 위험한 일일 것이다. 사람이 이미 적그리스도를 따르고 완전히 적그리스도의 편에 서 있다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적대하는 사람에 속한다. 그런 사람의 결말이 어떠할지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공격하는 것, 이 측면에 관해서는 거의 다 교제했다.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공격하는 목적과 속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 수단,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적그리스도를 대할 때 지녀야 할 행동 방식 등 이 몇 가지 측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교제했으나 아직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앞으로의 교제에서 구체적인 상황이나 사례를 근거로 이러한 측면의 진리를 더 언급하게 될 것이다. 이런 구체적인 내용을 교제할 때, 일반적으로 설교를 듣는 사람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느냐? 집중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되, 딴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측면의 진리에는 다 구체적인 말과 정의, 구체적인 내용과 실행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각 항목의 내용마다 서로 다른 각도와 방식으로 진리와 관련된 개념적인 것들, 사람이 깨달아야 할 진리와 실행해야 할 길을 설명하므로 묵상하고 교제하여 잘 이해해야 수확을 거둘 수 있다. 지금 이런 세부적인 교제를 통해 본분 이행과 관련된 진리 원칙은 사람의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해 능력이 없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기가 정말 힘들다. 진리를 깨닫는 것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다. 이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길이 생기며, 진리 실행을 훈련할수록 실행 과정에서 길이 넓어지고, 더 정확하게 원칙을 파악하게 된다. 반면, 네가 이런 구체적인 교제를 듣지 않은 채 그 두루뭉술하고 개념적인 것들만 이해한다면, 진리를 실행할 때 속수무책이 될 것이며, 진리 원칙을 구할 때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고 아무리 해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자세히 정의하고 규범화하고 범위를 축소하고 진리를 구체화하면, 나중에 실행할 때 훨씬 자유로워진다. 세부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네게 공책을 한 권 사오라고 시킬 때 내가 공책의 사이즈나 두께, 가격 등 간단한 조건만 말해 준다면, 너는 그 원칙을 파악하고 실행하기가 조금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공책의 구체적인 색상, 치수, 장수, 구체적인 격식, 종이 품질 등 세부 내용을 모두 알려 준다면, 너는 더 구체적으로 원칙을 파악하게 되지 않겠느냐? 만약 내가 더 구체적으로, 네게 종이를 한 장 주고 그 종이의 품질과 두께, 색상, 칸 크기, 칸 수와 똑같은 것을 사 오라고 하거나 그 종이를 기준으로 각 규격의 차이가 얼마인지 등을 모두 자세히 정해 준다면, 공책을 구매할 때의 선택 범위가 더욱 줄어들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원칙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고, 실행하기가 점점 더 쉬워지지 않겠느냐? 이것이 네 실행에 도움이 되겠느냐, 아니면 교란이 되겠느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실 도움이 될 것이다. 각 측면의 진리를 더욱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말해 주었으며, 구체적인 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구체적인 행동과 실행 방법까지 전부 자세히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네가 실행하지 못한다면, 이는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이다.
지금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얻고 온전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중요하다. 지금 나는 다음과 같은 수준까지 말했다. 합격한 본분 이행 측면의 진리를 본분 이행 인원에 따라 여섯 부류로 나누었다. 부류마다 다시 구체적인 범주로 나누고, 또다시 작게 분류해서 자세히 교제했다.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고 이렇게 진리를 교제하면 너희가 진리를 더 잘 깨닫고 실행 과정에서 더욱 원칙이 생기겠느냐, 아니면 원칙을 찾기가 더 어렵겠느냐? (더욱 원칙이 생깁니다.) 더 잘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너희에게 도움이 되며, 너희가 점점 더 모호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명확해진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었는지에 달려 있다. 정말 자질이 좋고 영적인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점점 더 명확해진다고 느끼겠지만, 자질이 떨어지고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도달하지 못한 채 들으면 들을수록 모호해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들으면 들을수록 모호해집니다. 마치 내면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라고 말한다. 생명 진입에 관해 너무 상세히 설명할 경우, 체험이 없고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은 도달하기가 무척 힘들다. 상세히 설명할수록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은 점점 더 쉽게 멍해진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여기에는 몇 가지 상황이 있다. 한 가지 상황은, 영적인 이해력이 없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즉, 이 부류의 사람은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구체적인 내적 상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것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바로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마지막 방법 하나만 남아 있다. 즉,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상세히 알려 주는 것이다. 마치 로봇에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실행 명령어를 따르게 하는 것처럼 규례를 지키게 하면 된다. 이런 방법은 이 부류의 사람에게는 성과를 낼 수 있다. 이 방법 외에 다른 건 없다. 나는 지금 이 마지막 방법을 쓰고 있다. 즉, 가장 상세하게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나는 네게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하고 처리해야 할지 직접 알려 줘서 규례를 지키게 한다. 너에게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없기에 내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내적 상태가 완전히 같지는 않고 대동소이하다. 만약 너희가 한 사람 한 사람 구체적으로 분명히 말해 달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게 돌볼 수 없다.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 너무도 많기에 영적인 이해력이 있고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너희가 가서 이 측면의 사역을 해야 한다. 나는 이미 사역을 할 만큼 했고, 여기까지밖에 할 수 없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행하는 모든 사역과 말씀은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고 닿을 수 있다. 정상 인성의 사유와 반응을 지닌 사람들에게 행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적을 나타내진 않으시나요?”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이적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런 일은 모두 실제적으로 행해야 한다. 하나님이 세 단계 사역을 한 것처럼 말이다. 처음 율법을 반포하여 인류의 삶을 이끈 것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 사역을 한 것까지, 또 말세에 육신을 입고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진리를 선포한 것까지 모든 단계는 실제적으로 행하였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마주해서 말씀하고 사역했다. 여기에 이적은 없다. 가장 큰 이적은 바로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고 사역하는 것이며, 게다가 어떤 방식을 쓰든 마지막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온전케 하고 얻는 것이다. 이 일은 시간문제일 뿐 분명히 이루어진다. 이것이 가장 큰 이적과 기사이다. 이것 외에, 하나님은 어떤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진리를 사람 마음에 만들어 주지 않는다. 지금 이런 진리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교제하고 있다. 만약 네가 이해 능력을 지니고 정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진실로 마음을 쓰고 공을 들인다면 진리를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 원칙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진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오랜 세월 설교를 듣고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냐?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영적인 이해력이 전혀 없고,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도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네가 정말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며, 진리 추구에 공을 들여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원인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을 믿은 세월이 짧은 데다가 설교를 많이 못 듣고 체험도 적어서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 또한 하나의 원인이다. 하지만 네가 정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믿은 햇수가 쌓여 감에 따라 진리도 점점 많이 깨닫게 될 것이며, 영적인 분량 역시 점차 자랄 것이다.
어떤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든 한두 마디 말로 완벽하게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모호하게 말하면 요즘 사람들에게는 도리이자 하나의 이론이 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람이 듣고 이해하며, 받아들인 후에 실행 과정에서 원칙으로 삼게 할 수 있겠느냐? 더 구체적으로, 더 자세하게 말해야 한다. 이야기를 해 주든 진리를 교제하든, 혹은 실행의 내용에 관해 다루든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너희에게 이롭다. 그래서 나는 늘 머리를 쥐어짜 너희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사례를 들어 더 잘 알아듣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진리를 하나하나의 사건에 실체화하며, 내가 교제하는 진리와 이야기하는 모든 사건을 결합함으로써 너희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으로 남게 한다. 그리하여 너희가 자신에게는 그런 행위가 없었는지, 자신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인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지, 그런 내적 상태에 빠진 적은 없었는지 대조해 보게 한다. 그리고 이런 진리를 듣는 동시에 끊임없이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마치 직접 그 상황에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야기를 해 주고 사례를 드는 이유이다. 혹자는 이야기만 들었다 하면 지겨워하며 “또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저를 세 살배기 어린애로 아시는 건가요?”라고 하는데, 네가 나이는 많아도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서는 아직 세 살도 안 됐을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너희를 세 살도 안 된 어린아이로 취급하는 것은 모욕이 아니며, 조금도 과하지 않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조차 너희를 과대평가한 것이다. 세 살배기 어린애는 어른에게서 가위는 날카로우니 만지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그것을 원칙으로 기억해 두고 만지지 않으며, 심지어는 가위와 비슷한 도구나 칼 등을 전부 만지지 않는다. 그 아이는 그것들이 다 날카로운 도구임을 알고 있고, 이 원칙을 파악하고 있다. 그럼 사람은 몇 번의 연이은 실행과 체험 속에서 원칙을 찾을 수 있느냐? 하나님이 행사하는 뜻과 너에 대한 요구,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느냐? 정상인의 지능을 갖췄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럼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리 설명해 줘도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주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한 측면으로는, 이는 지나치게 시끄러운 생활 환경과 관계가 있다. 사람은 번잡한 일, 얽매인 것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읽어 볼 마음이 안 생기고 진리에 공을 들이지 못한다. 이것이 한 측면의 원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사람이 진리를 갈망하고 좋아하는 정도가 너무 낮다. 만약 10점을 만점으로 하면, 지금 너희가 진리를 좋아하는 것은 기껏해야 3~5점 정도일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마지막까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얻지 못하는 더 큰 이유는 바로 스스로 공을 들이지 않고 마음을 다하지 않으며, 마음속으로 진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진리를 좋아하는 정도가 부족하며, 약간의 흥미만 있을 뿐 좋아한다고까지는 할 수 없다. 다만 세상에서 너무 많은 좌절과 고통을 겪어 살아갈 방도가 없는 데다가 하나님이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하고 매일 진리를 교제하며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풍부하게 예비하는 것을 보고 역시 하나님이 좋다고 생각하며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정도의 흥미가 있을 뿐이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 시간이 더 많겠느냐? 번잡한 일들에 잔뜩 얽매이고, 갖가지 감정 관계, 인간관계, 지위와 허영, 사회의 흐름 등 일들에 점령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먹고 입고 꾸미는 것, 육적인 즐거움에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붓는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시간을 이런 일들에 허비하면서도 말로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라고 듣기 좋은 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돌아보면, 하나님은 수없이 많은 말씀을 하고 무척 오랜 시간 사역했지만 사람은 진리를 얻지 못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이 진리를 이토록 많이 선포하는 것을 보고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에 공을 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오랜 세월 믿고도 진리와 생명을 얻지 못하고 결국 도태된다.
2019년 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