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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야 하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236.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길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길이냐? …하나님께 순복하기를 추구하는 것인데, 그것도 온전히 순복하고 절대적으로 순복하는 것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경외심이 있고, 어떤 거짓도 하지 않고, 대적하거나 거역하지 않으며, 마음은 완전히 정결하여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순복하는 길이다. 그것은 절대적이지 상대적이 아니며, 그 어떤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나이가 얼마인지에 상관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계획 중에서 가장 큰 수혜자이다>에서 발췌

237.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냐? 어떻게 악에서 떠날 것이냐?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알 수 없는 공포에 떨거나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거나 멀리하거나 숭배하거나 미신하는 것이 아니라, 앙모하고 숭경하고 신뢰하고 이해하고 헤아리고 순복하고 헌신하고 사랑하며, 조건이나 불평 없이 경배하고 보답하고 귀복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면, 참으로 하나님을 앙모하지도 신뢰하지도 못하고, 참으로 이해하지도 헤아리지도 순복하지도 못하며,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기만 하고, 의심하고 오해하고 회피하고 멀리하게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면, 참으로 헌신하거나 보답하지 못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면, 참으로 경배하거나 귀복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미신하게 될 뿐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도를 준행할 수 없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으며, 악에서 떠날 수 없다. 반대로, 사람이 종사하는 모든 활동과 행위에는 하나님에 대한 거역과 대적이 가득하고, 하나님에 대한 훼방과 논단이 가득하며, 진리를 어기고 하나님 말씀의 참뜻을 어기는 사람의 악행이 가득하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게 되면 하나님을 진실로 따르고 의지할 것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의지해야 참으로 알고 이해할 수 있으며,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이해하면 진실로 헤아릴 것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헤아려야 진정 순복할 수 있으며, 사람이 하나님께 진정 순복해야 진정 헌신할 수 있고, 사람이 하나님께 진정 헌신해야 조건이나 불평 없이 보답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의지하고, 참으로 이해하고 헤아리고, 참으로 순복하고, 참으로 헌신하고 보답할 수 있어야, 진정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을 알 수 있고 창조주의 신분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진정 창조주를 알아야 참으로 경배하고 귀복할 수 있다. 사람이 창조주께 진실로 경배하고 귀복해야 참으로 악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즉, 악에서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전반적인 과정이고,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모든 내용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에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238. 각 시대에,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할 때 사람에게 얼마의 말씀을 베풀어 주고 얼마의 진리를 알려 주는데, 그런 진리가 바로 사람이 지켜야 할 도이고, 사람이 준행해야 할 도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하는 도이고, 또한 사람이 삶 속에서, 인생의 역정에서 실행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을 발표하는 목적이다. 그런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발표되었으니 사람은 마땅히 지켜야 한다. 사람은 그 말씀을 지키면 생명을 얻게 된다. 만약 하나님의 그런 말씀을 지키지 않고 실행하지 않고 삶 속에서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러면, 사람의 결말은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역사의 효과를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239. 하나님의 도(道)를 준행하는 것은 겉면으로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그 일이 임했을 때, 먼저 그것을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 하나님이 너에게 맡겨 준 책임이나 너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 일이 임했을 때, 너는 그것을 너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으로 여겨야 한다. 그 일이 너에게 임했을 때, 너는 마음속에 기준이 하나 있어야 하는데, 그 일은 하나님에게서 왔고, 네가 어떻게 해야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노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겠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역사의 효과를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240.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매우 긴밀하면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연관이 있는데, 양자의 관계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악에서 떠나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경외심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경외심이 있으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으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고, 하나님의 채찍질과 징계를 겪고,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겪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하고 하나님과 마주해야 하며, 하나님께 인ㆍ사ㆍ물과 여러 가지 환경을 배치해 주어 너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 기회가 있게 해 달라고 구해야 한다. 하나님과 마주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하려면 반드시 먼저 단순하고 진솔한 마음을 갖추어야 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져야 하며, 고난받으려고 하는 심지가 있어야 하고, 악에서 떠나려고 하는 결심과 용기를 갖추어야 하며, 진정한 피조물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면, 너는 하나님과 갈수록 가까워질 것이고, 너의 마음은 점점 순결해질 것이며, 너의 인생과 삶의 가치는 네가 하나님을 알아감에 따라 더욱더 의의 있게 되고 더욱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241.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려면, 우리 곁에서,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은 그 어떤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설령 작은 부차적인 일이라 해도 우리에게 임하기만 하면, 중요시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든 아니든, 그것을 놓치지 말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어떠하냐? 너에게 이런 태도가 있다면 하나의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즉, 너의 마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너에게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싶은 소망이 있으면, 네가 실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그 기준과 멀지 않은 것이다.

흔히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일, 평소에 아예 언급하지 않는 일은 작은 일로 여기고, 진리 실행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며, 그런 일이 닥치게 되면 가볍게 생각해 보고는 흘려보낸다. 사실, 그 일이 임했을 때는 네가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어떻게 악에서 떠나야 하는지에 대한 공과를 배워야 할 때이다. 또한 너는 그 일이 너에게 임했을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더욱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너의 곁에서 너의 일언일행을 관찰하고, 너의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역사의 효과를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242.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데에 관련된 일에는 크고 작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을 너희는 수용할 수 있느냐? (있습니다.) 매일 임하는 일 중에, 사람이 보기에 어떤 일은 아주 크고 어떤 일은 아주 작은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큰일을 아주 중요한 일로 여기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큰일에서 사람은 분량이 작은 것으로 인해 또한 소질이 부족한 것으로 인해 흔히 하나님의 뜻에 이르지 못하고, 아무런 계시도 얻지 못하며, 가치 있는 어떤 실제적인 인식도 얻지 못한다. 반대로 작은 일에서는 다 소홀히 하고 조금씩 흘려보낸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검증받을 기회, 시련받을 기회를 많이 놓치게 된다. 네가 계속 하나님이 너를 위해 배치한 인ㆍ사ㆍ물, 하나님이 너를 위해 배치한 환경을 그렇게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것은 네가 날마다, 심지어 시시각각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고 인도하는 것을 저버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역사의 효과를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243. 너희는 일상생활 가운데서 어떠한 일을 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고, 어떠한 일을 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느냐? 너희는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한 사람을 미워할 때 ‘내가 저 사람 좀 혼내 줘야지, 좀 괴롭혀야지, 보복 좀 해야지.’라고 궁리를 하는데,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매우 끔찍하다! 너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일을 저지를 수 있는데 이 성품이 매우 악랄하고 매우 심각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것은 정상 인성에 있는 것이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일을 저지르고 보복해서 자신의 목적과 의도를 달성한다면 이것은 끔찍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미워만 하는데, 미워하다 그만두며 한동안 지나서도 그 사람과 마음이 맞지 않으면 멀리하고 피한다. 하지만 자신의 본분에 영향을 주지 않고 정상적인 대인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어떠한 일도 저지르지 않는데 그것은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에게 미워하는 생각과 나쁜 마음은 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기에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을 노하게 할까 봐 두려워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는 전혀 일을 저지르지 않고 정도에 지나치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며 이런 일에서 하나님을 노하게 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슨 표현이냐? 처신함에 원칙이 있고 공적인 일은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것이다. ‘내가 비록 이 사람과 성격이 맞지 않아서 이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것이고 같이 일을 하면서 공적인 일은 공정하게 처리하며 본분으로 분풀이를 하지 않고 본분에 손실을 가져오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으로 분풀이를 하지 말아야지.’ 이것은 무슨 표현이냐? 이것이 바로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좀 더 좋다면,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결점이나 약점이 있는 것을 봐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다른 사람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그의 비위를 거슬리게 했거나 그의 이익에 손해를 준 적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면 이것은 더욱 좋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함에 있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방면의 정형>에서 발췌

244.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일을 함에 있어 사람에게든 아니면 하나님에게든 다 똑같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사람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이냐? 그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어떤 때 사람을 조금 미워하는 마음이 있고 기분이 언짢을지라도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일을 해선 안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상케 하는 일을 해선 안 돼. 이렇게 사람을 대하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고 진리에 부합되지도 않아.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생각한 대로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럼 그가 하나님에 대해서는 어떠하겠느냐?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하신 이 일이나 그 일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것을 보고 생각해 보더니 ‘그분은 하나님이시니까 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돼.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을 해선 안 돼.’라고 한다. 하나의 생각이 그를 지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상케 하는 일을 하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존엄 있는 삶을 살게 된다>에서 발췌

245. 실속 있는 사람이 되고 실제적으로 일을 하고 매사에 기도를 떠나지 않고 항상 하나님 앞에 오고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근본의 근본이다! 우리의 생명이 얼마나 크고 분량이 얼마나 크든지, 진리의 실제에 얼마나 진입했든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되고 하나님을 멀리해서는 안 된다! 네가 “저는 하나님을 너무 멀리는 떠나지 않을 테니 좀 돌아다니다 오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면 이는 무슨 말이냐? 이 일에는 멀거나 가까운 것이 없다. 너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이미 하나님을 멀리한 것이다. 여기에는 실제의 거리가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멀리하면 어떤 결과가 생기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멀리하면 수시로 사탄에게 노략당한다. 그다음에는 일을 하고 말을 함에 유로하는 것이 다 무엇이냐? 이때면 사람이 일을 틀리게 하고 패역을 유로할 것이고 방해를 할 것인데 수시로 사탄에게 이용당하고 노략당할 위험이 있다. 이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시시로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가지 태도이다. 네가 이 태도를 갖춰야 비로소 하나님이 너를 잘못된 길을 걷지 않도록 보호해 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되어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된다>에서 발췌

246.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고, 따라서 악에서 떠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서로 연관성이 있다. 네가 마음을 항상 하나님 앞에 두고 산다면, 너는 단속을 받게 되어 많은 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으므로 정도를 벗어난 일, 방탕한 일, 하나님이 증오하는 일을 하지 않고, 이지가 없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안정하지도 않고, 일이 임하면 기도하지 않고, 늘 충동적이고, 항상 자기 뜻대로 하고, 항상 천성적인 것을 드러내고, 항상 자신의 교만한 성정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징계도 받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도 없다면, 이런 사람은 마음을 항상 사탄 앞에 두고 살며, 사탄에게 제어받고,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는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전혀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악에서 떠날 수 없다. 또한, 이런 사람은 악한 짓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마음에 생각하는 것은 다 악한 것이기에 다 진리와 무관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원문: 道)과 무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만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에서 발췌

247. 늘 하나님 앞에 와서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인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요 근래 우리가 자주 말하던 화제는 무엇이었느냐? 순복에 대한 공과를 말하지 않았느냐? (맞습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배치해 준 모든 환경과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에 순복하려면, 늘 기도해야 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며, 늘 하나님 앞에 안정하고 방종하거나 방탕하지 말아야 한다. 일이 임하면 가장 기본적으로 먼저 안정해야 한다. 안정해서 무엇을 하느냐? (기도로 찾고 구합니다.) 안정한 다음에 빨리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고, 기다리고, 찾고 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가 아니냐? 하나님을 경외하는 좋은 정형이고 좋은 시작이 아니냐? (맞습니다.) 너에게 그런 마음이 있고 그러한 협력과 실행이 있으면, 너는 보호받을 수 있어 시험에 들지 않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득죄하지 않고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가로막지 않으며, 하나님의 증오를 유발하지 않게 된다. 네가 그런 실행이 있고, 늘 그런 정형에서 살며, 늘 그런 정형으로 하나님 앞에 안정하고 하나님 앞에 와야 자신도 모르게 시험을 멀리하고 악한 일을 멀리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만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에서 발췌

248.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네가 사는 것은 진리가 있고 정말로 존엄이 있고 인격이 있는 것이다. 너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이 없으며 일을 함에 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흐리멍덩하며 오락가락하고 어떤 원칙도 알지 못하면서 열심뿐이라면 네가 아무리 체면을 중히 여겨도 안 되고 역시 어떤 존엄도 없으며 하나의 멍텅구리이다! 이런 사람은 가치가 있느냐? 역시 가치가 없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 네가 얼마나 높은 도를 듣고 얼마나 많은 도리를 알든지 간에 결국에는 진리를 추구하는 데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근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인데, 관건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존엄 있는 삶을 살게 된다>에서 발췌

249. 너에게 어떤 생각과 규정이 있기 전에, 너는 우선 하나님이 너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본 다음, 너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정해야 한다. …네가 계속 너의 관념과 상상을 고집한다면, 그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아주 분명하다. 그 결과는 하나님이 너를 혐오하여 포기하는 것이다. 그 원인은 네가 늘 하나님 앞에서 관록을 내세우고, 하나님과 겨루고, 하나님과 논쟁하려고 하면서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며,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원하지도 않고, 구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네가 그런 관점을 버리고 또 지난날의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아 하나님의 요구대로 따르며, 지금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실행하고, 어디서든 하나님을 높이고, 자신만의 상상, 관점, 생각으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으며, 어디서나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이해하고 알아가면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한다면, 그야말로 너무나 좋은 것이다! 그런 것은 네가 곧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에 들어서게 됨을 뜻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역사의 효과를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250. 나는 이 자리에 있는 각 사람에게 일 처리를 조심스럽게 하고 말도 조심스럽게 하며, 하나님을 대하는 일에서는 부디 신중하고 또 신중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기를 권고한다! 하나님의 태도가 어떤지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일도 함부로 하지 말며, 함부로 막 씌우지도 말고, 함부로 결론 짓는 일은 더욱 하지 말며, 기다리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것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표현이다. 네가 우선 이렇게 할 수 있고 먼저 이런 태도를 갖출 수 있다면, 하나님은 네가 무지몽매하고 사리를 모른다고 탓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하나님께 득죄할까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려고 하는 그런 태도로 말미암아 너를 기억하고 인도해 주고 깨우쳐 주거나 혹은 어리고 무지한 너를 관용해 줄 것이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너의 오만불손한 태도로 인해, 곧 함부로 하나님을 논단하고 함부로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고 정의를 내리는 것으로 인해, 너를 정죄하고 징계하며 심지어 징벌하거나 너에게 결론을 지어 줄 것이다. 그 결론은 아마 너의 결말에 관련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너희 각 사람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아주 신중하게 대해야지, 말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되고 일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된다. 네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설령 단순한 일일지라도 마음속으로 많이 되새겨 보고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역사의 효과를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251.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마음속에 늘 하나님이 있고, 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일을 처리할 때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고,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성미대로 하거나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성도의 품위에 맞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의 명의를 내걸고 도처에서 제멋대로 날뛰어서는 안 되고, 도처에서 허세를 부리며 다른 사람을 기만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가장 패역한 행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에서 발췌

252.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성품에는 위엄과 진노가 있으며, 하나님은 사람에게 마음대로 죽임을 당하는 양이 아니고, 더욱이 사람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꼭두각시도 아니며, 사람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공기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실질을 건드려 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건드려 노하게 하는’ 이것은 아마 한 마디 말 때문일 수도 있고, 한 가지 생각 때문일 수도 있으며, 한 가지 악랄한 행위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아주 온화한 행위 때문일 수도 있고, 사람이 보기에 사람의 도덕이나 윤리상에서 넘어갈 수 있는 한 가지 행위나 학설, 이론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네가 일단 하나님을 노하게 한다면, 너는 기회가 없어지고 그에 따라 너의 마지막 날도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무서운 일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다면, 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늘 하나님을 거스르게 될 것이다. 만약 네가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데에 어떻게 진입해야 할지도 모르게 된다. 일단 네 마음속에 하나님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역사의 효과를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253. 하나님의 실질은 변함이 없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상황에서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뚜렷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아마 너는 어떤 일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너의 관념으로 하나님은 마땅히 이렇게 할 것이라고 상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일은 정반대이다. 네가 자신의 관념으로 하나님을 가늠할 때는 이미 하나님을 노하게 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네가 상상한 것처럼 하지 않을 것이고, 그 일을 절대로 네가 말한 것처럼 대할 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너에게 네 주변의 매사를 신중하게 대하고, 범사에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곧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원칙에 따라 실행하는 법을 배우라고 일깨워 준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태도에 관한 일을 대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확실해야 하고, 반드시 분별이 있는 사람들과 교통하며 참답게 찾고 구해야지, 네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장난감으로 삼아 함부로 논단하거나 함부로 결론을 내리거나 오만불손한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역사의 효과를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254. 하나님은 살아 있는 하나님이다. 어떤 일에 부딪히면 사람에게는 각기 다른 표현들이 나타나는데, 사람의 각기 다른 표현에 따라 하나님은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목석이 아니고 공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태도는 사람이 알아야 할 가치가 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태도를 알아가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야 한다. 조금씩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때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이해하게 될 때면 하나님을 쉽게 규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더 이상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게 될 때는 하나님을 쉽게 거스르지 않을 것이고, 부지중에 하나님은 너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알게 해 줄 것이다. 이로써 너는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있게 되고, 더 이상 자신이 장악한 글귀 도리나 이론을 하나님께 씌우지 않고, 항상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역사의 효과를 어떻게 알 것인가>에서 발췌

255. 욥은 바른 삶을 살았다. 욥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탐욕이 더해지거나 누림을 좋아하거나 생활의 질을 중시하지 않았으며, 또한 겸손한 자세로 일을 하고 겸허한 됨됨이를 갖추었으며, 하나님 앞에서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했으며, 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되돌아보았고, 또한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욥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일찍 일어나 자녀들을 위해 번제를 드렸다. 말하자면,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일을 하지 말기를 바랐던 것이다. 즉, 욥에게서 풍부한 물질은 그의 마음을 차지하지 못했고,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리도 대체하지 못했다. 자녀들을 위한 것이든 아니면 자신을 위한 것이든, 욥이 평소에 행하는 것은 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일’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서 말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실행으로 옮겼는데, 일상생활의 작은 것에서도 다 묻어났다. 우리는 욥의 그런 실제 표현에서 그의 진솔함을 볼 수 있고, 정의를 좋아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는 욥의 실질을 볼 수 있다. 욥이 늘 ‘그의 자녀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했다’는 뜻은 욥이 자녀들의 행위에 동의하지도 칭찬하지도 않았고, 마음속으로 싫어하고 마음속으로 그들의 죄를 정했다는 것이다. 욥은 자녀들의 행위가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임을 확신했다. 그러므로 욥은 늘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 와서 죄를 자백하라고 했던 것이다. 욥의 그 행위는 또 우리에게 욥의 인성의 다른 한 면을 보게 한다. 그것은 욥이 늘 죄를 짓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사람들과 동행하지 않았고, 그들을 멀리하고 피했다는 것이다. 설령 그들이 욥의 자녀일지라도 그들과의 혈연관계로 인해 자신의 사람됨의 원칙을 버리지 않았고, 또한 감정으로 인해 그들의 죄행을 놔두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죄를 자백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관용을 얻으라고 권고했고, 또한 그들에게 누림을 탐하는 일로 하나님을 저버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욥이 사람을 대하는 원칙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원칙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이 열납하는 것을 좋아했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증오했으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좋아했고, 악한 일을 행하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일을 행하는 사람을 증오했다. 욥의 애증은 욥의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났는데,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의 눈에 비친 욥의 정직함이다. 물론 이것도 우리가 알아보려고 하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하는 욥의 진실한 인성의 유로와 살아냄에 관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56. 욥은 진솔하여 만물이 다 여호와의 수중에 주재되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고, 그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그 인식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기를 원하고 순복할 수 있었으며, 그 순복으로 더욱더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그 경외로 더욱더 실제적으로 악에서 떠나게 되었다. 나중에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으로 말미암아 순전하게 되었고, 그 순전함으로 지혜가 있게 되었고, 또한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57. 비록 우리는 성경에서 욥이 겪은 시험의 유래를 알게 되었지만, ‘당사자’인 욥은 그 일을 알고 있었을까? 욥은 한낱 평범한 사람이니 자신의 배후에서 발생한 이야기를 당연히 몰랐다. 단지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심과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으로 욥은 하나님의 시련이 자신에게 임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을 뿐이다. 욥은 영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고, 또 그 시련의 배후에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욥은 어떤 일이 닥치든, 순전함과 정직함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 일을 대하는 욥의 태도와 반응을 분명히 보고 있었다. 하나님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나님이 본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의 마음이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시련을 받기까지, 욥의 마음이 늘 하나님에게 열려 있었고 하나님 앞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욥은 자신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포기하지 않았고,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버리지도 않았고 등지지도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가장 기쁘고 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58. 성경에는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라고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욥이 여러 종류의 가산과 자녀들을 잃었다는 소식을 후에 보인 첫 반응이다. 일단, 욥은 놀라움을 표하지 않았고, 당황스러움도 표하지 않았으며, 분노나 증오는 더욱 표하지 않았다. 보다시피, 욥은 속으로 이미 그 모든 재앙은 우연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더욱이 보응이나 징벌이 임한 것도 아니라, 자신에게 여호와의 시련이 임한 것이고, 여호와께서 재산과 자녀들을 거두어 가려고 한 것임을 확신했다. 그때의 욥은 마음이 아주 평온했고, 또한 아주 맑았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한 인성이 있었기에 자신에게 임한 재앙에 대해 이성적으로, 자연적으로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분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겉옷을 찢었다’는 것은 그가 적신(원문: 赤身肉體)이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뜻하고, ‘머리털을 밀었다’는 것은 욥이 갓난아이처럼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는 것을 뜻하며, ‘땅에 엎드려 경배했다’는 것은 욥이 알몸으로 세상에 왔으니 여전히 아무것도 없이 갓난아이처럼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임한 그 모든 일을 대하는 욥의 그 같은 태도는 그 어떤 피조물도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여호와에 대한 욥의 믿음은 신뢰의 범위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와 순복이었다. 욥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것에 감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거두어 가는 것에도 감사를 드릴 수 있었고, 더더욱 자신의 목숨을 포함해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돌려 드릴 수도 있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59. 하나님에 대한 욥의 경외와 순복은 인류의 본보기가 되었고,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인성의 최고봉에 이른 것이다. 욥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참된 존재를 체험했다. 욥은 자신의 체험으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했고, 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두어 가도 아무 원망도 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그 시각 자신의 육체를 거두어 가도 기꺼이 원하고 아무런 원망도 없다고 아뢸 수 있었다. 욥의 그 모든 표현은 다 욥의 순전하고 정직한 인성으로 인한 것이다. 다시 말해, 욥은 단순하고 진솔하고 착했기 때문에 자신이 체험하고 느낀 하나님의 존재를 굳게 믿고 동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기초에서, 욥은 하나님이 인도한 것이나 자신이 만물 중에서 본 하나님의 행사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과 행위, 표현과 일 처리하는 원칙을 규범화했다. 오랜 시일이 지나, 욥은 자신의 체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진실하고 실제적인 경외심이 생겼고, 그와 동시에 악에서 떠나게 되는 정도에 이르렀다. 이것이 욥이 지킨 ‘순전함’의 유래이다. 욥은 진솔하고 단순하고 착한 인성을 갖추었으며,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악에서 떠나는 실제 체험과 ‘주신 자도 여호와, 취하신 자도 여호와’라는 인식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욥은 사탄의 그런 악랄한 공격에서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었고, 또한 하나님의 시련이 올 때에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고 하나님께 만족스러운 답변을 드릴 수 있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60. 여기에 욥의 가장 대표적인 말이 있는데, 그것은 욥이 사탄을 이긴 증거이다. 욥은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라고 말했다. 이 말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욥의 태도이다. 이어서 욥은 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말했다. 욥의 이런 말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기에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실증했으며, 하나님의 칭찬은 틀린 데가 없고, 하나님이 칭찬한 그 사람은 의인이라는 것을 실증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이 말은 욥이 하나님을 위해 한 증거이다. 이런 평범한 말 한마디가 사탄을 매우 두려워하게 했고,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했고, 허둥지둥 도망가게 했으며, 더더욱 속수무책이 되게 했다. 또한 욥의 그 말 한마디에서 사탄은 여호와 하나님의 행사의 기묘와 위력을 느끼게 되었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도가 권세 잡고 있는 사람의 비범한 매력을 보게 되었으며, 더욱이 작디작은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키기 위해 나타낸 강대한 생명력도 보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61. 지나간 몇십 년의 삶 속에서, 욥은 여호와의 행사를 보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도 받았다. 그런 축복에 욥은 더욱더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고, 더욱더 빚진 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욥이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에게서 그토록 큰 축복을 받고, 그토록 많은 은혜를 누리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욥은 마음속으로 항상 기도하면서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랐고, 그와 동시에 또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위대함을 증거할 기회도 있기를 바랐으며, 하나님이 자신의 순복과 믿음을 인정할 때까지 자신의 순복을 검증하고 더욱이 자신의 믿음을 정결케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때에 그 시련이 닥친 것인데, 욥은 스스로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었다고 인정하며 그런 기회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욥은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욥 평생의 가장 큰 소원이 실현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회가 온 것은 욥의 순복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검증을 받을 수 있고, 동시에 정결함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 더욱이 욥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뜻한다. 욥은 그런 믿음과 추구가 있었기에 그 시련에서 더욱 순전하게 되었고, 또한 그 시련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욥은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에 더욱더 감사했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행사를 더욱더 찬송했으며, 또한 더욱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앙망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위대함과 거룩함을 간절히 사모했다. 비록 욥이 그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지만, 욥의 경험과 체험을 놓고 말하면, 욥의 믿음과 인식은 이미 아주 큰 진보가 있었고, 이전의 것을 초월해 있었다. 즉, 욥의 믿음은 커졌고, 순복에는 목표가 있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는 더 깊은 진보가 있게 되었다. 비록 그 시련으로 욥의 심령과 생명은 새롭게 되었지만, 욥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늦추지도 않았다. 욥은 그 시련에서 자신이 얻은 수확을 헤아려 보았고, 자신의 부족함과 결점도 성찰해 보았다. 그와 동시에, 욥은 또 묵묵히 기도하면서 다음에 올 시련을 기다렸다. 그 이유는 욥이 자신의 믿음과 순복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경외심이 하나님이 주는 또 다른 시련에서 승화되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62. 욥의 아내가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고 권하였는데… 아내의 권고에 욥은 순전함을 버리고 하나님을 욕하기는커녕 오히려 아내에게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고 말했다… 거기에서 욥의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실이 실증을 얻었다. 욥을 귀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시험을 받고 더 나아가 온몸에 악창이 나기까지 했을 때,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 아내와 친지들이 모두 권고한 그때에도 여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욥은 어떤 시험이 오든, 얼마나 큰 환난과 고통이 닥치든, 설령 죽음이 닥친다고 해도 하나님은 저버릴 수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는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보다시피, 욥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위치가 가장 중요했고, 오직 하나님뿐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라는 욥에 대한 평론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욥은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욥은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노를 사는 일도 하지 않았다. 욥은 마음과 하는 말이 일치하였는데, 입으로만 찬송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본 욥의 진정한 모습이고, 또한 하나님이 욥을 귀하게 여긴 원인이기도 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63. 사탄이 손을 뻗쳐 욥의 뼈를 상하게 했을 때, 욥은 마귀의 손아귀에 있었다. 욥은 벗어날 수가 없고 반항할 힘도 없어 몸과 영혼이 초강도의 극심한 고통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 ‘극심한 고통’에 욥은 육체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미소한 존재라는 것과 무기력하고 연약하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이 인류를 염려하고 보살피는 그 심정도 깊이 깨닫고 이해했다. 욥은 마귀의 손아귀에 있을 때, 속된 인간이 그토록 무기력하고 연약하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는 허리를 굽혀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치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고 감춘 것을 느끼는 듯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욥을 완전히 사탄의 손에 넘겼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은 욥을 위해 눈물을 흘렸고, 욥을 위해 더욱 마음 아파하였으며, 욥의 아픔으로 인해 아파하고 욥의 슬픔으로 인해 슬퍼하였다… 욥은 하나님의 아픔을 느꼈고, 하나님의 애틋한 마음도 느꼈다… 욥은 더 이상 자신 때문에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고, 더 이상 자신 때문에 하나님을 눈물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았으며, 더욱이 자신 때문에 하나님이 고통받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각 욥은 그 속된 육체에서 애써 벗어나고만 싶었고, 더 이상 그 육체가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아픔을 참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하나님이 더 이상 자신의 아픔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욥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욥은 육체의 아픔을 참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께 심려를 끼쳐 드릴까’ 염려하는 고통도 참아야 했다. 그 이중적인 아픔은 하나는 육체에서 온 것이고, 하나는 심령에서 온 것이었다. 그것으로 욥은 가슴이 찢어지고 터질 것만 같은 고통을 감당하였고, 또한 속된 인간의 극한이 그토록 사람을 어찌할 수 없게 하고 무기력하게 한다는 것도 느꼈다. 그런 상황에서 욥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강렬해졌고, 그에 따라 사탄을 증오하는 마음도 더욱 강렬해졌다. 그 시각 욥은 자신이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지언정, 자신이 존재하지 않을지언정,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욥은 자신의 육체를 미워하기 시작했고, 자신을 싫어하고 자신이 태어난 날을 싫어하고 심지어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까지 싫어하기 시작했다. 욥은 더 이상 자신의 생일과 출생에 관련된 모든 것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욥은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던 것이다.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 그 날이 캄캄하였었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마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취지 말았었더라면”(욥 3:3~4), 욥의 말에는 자신에 대한 증오가 섞여 있었다.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 또 자신 때문에 하나님이 고통받는 것에 대한 자책감과 빚졌다는 생각도 섞여 있었다. “그 날이 캄캄하였었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마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취지 말았었더라면”, 이 두 구절은 그때의 욥의 심정을 최고로 표현했으며, 또한 각 사람에게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완벽하게 나타냈다. 동시에 욥이 소원한 것처럼, 욥의 믿음과 순복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그 시각 진정 승화되었다. 물론 그 ‘승화’는 하나님이 이루려고 예상했던 효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64. 욥은 처음 시련을 받을 때,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빼앗겼다. 하지만 욥은 그것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았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노를 사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욥은 사탄의 시험을 이겨 냈고, 재산과 자녀 그리고 몸 이외의 모든 것을 잃는 시련을 이겨 냈다. 즉, 욥은 하나님이 거두어 가는 일에 순복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이것은 욥이 사탄의 첫 번째 시험 속에서 나타낸 표현이자 또한 욥이 하나님의 첫 번째 시련에서 한 간증이다. 두 번째 시련에서, 사탄은 손을 뻗쳐 욥, 본인을 괴롭혔다. 욥은 비록 전에 없던 아픔을 겪었지만, 그 간증은 오히려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욥은 자신의 강직함과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순복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또 한 번 사탄을 물리쳤고, 욥의 표현과 간증은 다시 한 번 하나님에게 인정되고 열납되었다. 그때의 시험에서 욥은 실제 표현으로 사탄에게 선고했다. 즉, 육체의 아픔은 그 자신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복을 바꾸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앗아 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욥은 죽음이 닥친다고 해서 하나님을 욕하지 않고, 자신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버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욥의 의연함은 사탄을 작아지게 하였고, 욥의 믿음은 사탄을 두려워하게 하고 간담이 서늘해지게 하였으며, 사탄과 결사전을 펼치는 욥의 기세는 사탄을 침통하게 하였다.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에 사탄은 더 이상 욥의 몸에 손댈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욥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였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는 것도 포기하였다. 그것은 욥이 세상을 이기고 육체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죽음도 이겼음을 뜻하고, 완전히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뜻한다. 욥은 그 두 차례의 시련에서 간증을 굳게 섰고, 순전함과 정직함을 실제적으로 살아내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자신의 생존 법칙의 범위도 넓히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65. 욥이 감당한 육체의 아픔이 극에 다다랐을 때,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오는 보살핌을 느끼게 된 욥은 저도 모르게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게 되었다. 그 표현은 욥이 미리 계획해 놓은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하나님을 향한 헤아림과 깊은 사랑이 자연적으로 유로된 것이다. 욥의 그 ‘자연적인 유로’는 하나님을 향한 헤아림과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욥이 자신을 증오함으로 인해, 차마 하나님을 고통받게 할 수 없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욥의 헤아림과 깊은 사랑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때의 욥은 자신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앙모하고, 갈망하고, 그리워했던 것을 다 헤아림과 깊은 사랑의 경지로 승화시켰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복과 경외심도 헤아림과 깊은 사랑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욥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하나님에게 상처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하는 그 어떤 태도도 허용하지 않았으며,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께 그 어떤 괴로움과 슬픔, 심지어 불쾌함을 드리게 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보기에 욥은 비록 여전히 지난날의 그 욥이었지만, 욥의 믿음과 순복,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하나님에게 완전한 만족과 누림을 얻게 했다. 그때의 욥은 하나님이 이루려고 예정한 순전함에 이르렀으며, 하나님 눈의 명실상부한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 욥은 의로운 행실로 사탄을 이겼고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섰으며, 순전함을 얻었고 자신의 생명 가치를 승화시키고 초탈시켰으며, 또한 더 이상 사탄에게 공격당하지 않고 시험당하지 않는 사람의 첫 사례가 되었다. 욥은 의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참소당했고, 또 의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시험당했으며, 의로 말미암아 사탄의 손아귀에 넘겨졌고, 의로 말미암아 사탄을 이기고 사탄을 물리치고 간증을 굳게 섰다. 그때부터 욥은 더 이상 사탄에게 넘겨질 수 없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욥은 진정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고, 빛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사탄이 엿보거나 해치는 일이 없는 하나님의 축복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욥은 하나님이 보기에 진정한 사람이 되었으며 자유로워졌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66. 욥의 간증은 또 후세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었다. 그 깨우침은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야만 하나님을 위해 굳세고 드높은 간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굳세고 드높은 간증을 해야만, 영원히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아래에서 살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 구원받은 것임을 알게 했다. 욥의 인성 품격과 인생의 추구는 구원받기를 추구하는 각 사람이 본받아야 하는 것이고, 욥이 평생 동안 살아낸 것과 시련 속에서 보여 준 표현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道)를 추구하는 각 사람에게 귀중한 자산이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67. 그것은 욥의 마음이 순결하고 하나님에게 숨기는 것이 없으며, 욥의 인성이 진솔하고 착하고 정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성을 갖추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도(道)를 준행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권병과 큰 능력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다. 그런 사람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화복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기에 사람의 걱정은 무지몽매한, 이지 없는 표현이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사실에 대해 의심의 태도를 갖고 있는 표현이자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욥의 그런 인식은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68. 욥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도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지도 못했지만, 욥이 하나님을 경외한 것과 시련 속에서 한 간증은 누구나 다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기쁨과 칭찬을 받았으며, 사람들의 부러움과 인정을 받았고, 더욱이 사람들에게서 찬탄도 받았다. 욥의 일생은 평범했지 위대하지 않았다. 여느 평범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른 것은 그 평범한 몇십 년의 세월에서, 욥은 일반 사람들이 얻지 못한 하나님의 도(道)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일반인이 체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주재를 체험하고 깨달았던 것이다. 욥은 그 어떤 일반인보다 총명하지 않았고, 초강력 생명도 갖고 있지 않았으며, 더욱이 사람이 볼 수 없는 ‘특이한 재능’도 없었다. 하지만 욥은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갖추지 못한, 진솔하고 착하고 정직하고 공평과 공의를 좋아하고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인성 품격을 갖추었으며, 애증이 분명하고 정의감이 있고 굳세고 의연하고 생각이 세밀하였다. 그리하여 욥은 평범한 나날에서 하나님이 행한 모든 비범한 일들을 보았고, 하나님의 위대함, 하나님의 거룩함, 하나님의 공의로움도 보았으며,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보살핌과 은총과 보호를 보았고, 지고지상한 하나님의 존귀와 권병도 보았다. 욥이 일반인이 얻지 못한 것들을 얻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원인은 그에게 순결한 마음이 있고, 마음이 하나님께 속하고, 마음이 창조주에게 끌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인은 욥이 추구한 것 때문이다. 욥은 완벽한 사람이 되고, 순전한 사람이 되고, 하늘의 뜻에 따르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기를 추구했던 것이다. 욥이 갖춘 것과 추구한 것은 모두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지 못한 배경에서 한 것이다. 욥은 비록 하나님의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지혜도 느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지 못했지만, 사람에게 베풀어 주고 거두어 가는 일은 다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욥이 보낸 세월은 보통 사람들과 별다른 점이 없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삶은 욥이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일을 알아가는 것에 영향을 주지 못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는 것에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욥의 눈에는 만물의 운행 법칙 속에 하나님의 행사가 충만했고, 하나님의 주재도 사람의 생활 속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욥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행사가 어디에나 다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욥은 자신의 평범한 나날 속에, 삶의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비범하고 기묘한 행사를 보고 체험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기묘한 안배도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이 ‘감추고’ ‘침묵’하는 것은 욥이 하나님의 행사를 체험하는 것을 가로막지 못했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것을 인식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욥의 일생은 평범한 삶 속에서 만물 가운데 숨겨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욥은 평범한 나날을 보내면서, 만물 가운데서 침묵을 지키지만 또 만물의 운행 법칙을 주재하면서 발표하는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깨달음을 얻었다. 보다시피, 사람이 욥과 같은 인성을 갖추고 욥처럼 추구한다면, 욥과 같은 체험을 할 수 있고 그런 인식을 얻을 수 있으며, 욥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일에 대한 깨달음과 인식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지 않고 말씀하지도 않았지만,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였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었다. 즉,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고 말씀하지 않은 전제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만물 중의 행사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일만으로도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고,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권병만으로도 충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일이 욥 같은 그런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따르는 일반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비록 논리적으로 추리한 것일지라도 사물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269. 욥은 일생 동안 가치 있게 살았지 않았느냐? 욥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사람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욥은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인류를 대표하여 사탄 앞에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간증을 하였고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하였으며, 하나님이 구원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고 모델이 되어 인류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면 사탄을 완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게 하였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욥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이 보기에 욥의 삶의 가치는 사는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하고 찬송하여 자신에게서 하나님이 위안을 얻게 하고 누릴 것이 있게 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욥의 삶의 가치는 또한 살아 있는 동안 겪은 그 시련에서 사탄을 이기고, 하나님을 위해 사탄 앞에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드높은 간증을 하고,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서 영광을 얻도록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위안을 얻게 하고,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에 결과가 보이게 하고 희망도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욥의 간증은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사역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사탄을 수치당하게 할 수 있는 선례를 열어 놓았다. 이런 것이 욥의 삶의 가치가 아니냐? 욥은 하나님의 마음에 위안을 얻게 하였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영광 얻는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였으며, 하나님의 경영 계획으로 하여금 거기에서 완벽한 시작이 있게 하였다. 그리고 욥의 이름은 그로부터 하나님이 영광을 얻은 상징이 되었고, 인류가 사탄을 이긴 표가 되었다. 욥이 일생 동안 살아낸 것과 사탄을 이긴 위대한 업적은 영원히 하나님께 귀하게 보이고,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후세 사람들에게 존경받게 되었고 본이 되었다. 욥은 마치 흠 없고 눈부신 빛나는 보석 같아 영원히 하나님께 소중히 여겨지고, 또한 사람이 소중히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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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귀복(歸服): 돌아와 복종함.

②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③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④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⑤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⑥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⑦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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