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법에 관한 말씀

415) 진정한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창조주가 누구인지, 사람이 왜 창조되었는지, 피조물의 직책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 창조주를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창조주의 뜻과 마음의 소리와 요구를 알고 이해하고 깨닫고 헤아려야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창조주의 도를 행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냐? 어떻게 악에서 떠날 것이냐?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의미하는 것도, 숨고 멀리하고 숭상하고 미신하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 앙모하고 숭경하고 신뢰하고 이해하고 헤아리고 순종하고 헌신하고 사랑하는 것이며, 조건도 불평도 없이 경배하고 보답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으면 진정한 앙모도, 신뢰도, 이해도, 헤아림도, 순종도 없으며, 단지 두려움과 불안, 의심, 오해, 회피, 그리고 멀리함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으면 진정한 헌신과 보답도 없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으면 진정한 경배와 복종도 없으며, 맹목적으로 숭상하고 미신할 뿐이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으면 하나님의 도를 행할 수도, 하나님을 경외할 수도, 악한 일을 멀리할 수도 없다. 반면, 사람이 종사하는 모든 활동과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거역과 대적, 비방과 논단으로 가득할 것이며, 또한 진리를 위배하고 하나님 말씀의 참뜻에 어긋난 악행으로 가득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면, 진실로 따르고 의지할 수 있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의지해야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이해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진실로 이해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진실로 헤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진실로 헤아려야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해야 진정으로 헌신할 수 있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헌신해야 조건도, 불평도 없이 보답할 수 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고, 이해하고 헤아리고, 순종하고, 헌신하고 보답해야 진정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알 수 있고, 창조주의 신분을 알 수 있다. 진정으로 창조주를 알아야 진정으로 경배하고 복종할 수 있으며, 진실로 창조주께 경배하고 복종해야 진정 악행에서 벗어나고 악에서 떠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전 과정이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의 모든 내용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이다> 중에서

416) 먼저 하나님의 성품은 위엄과 진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아무에게나 죽임을 당하는 온순한 양이 아니고, 사람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꼭두각시는 더더욱 아니며, 사람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공기도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본질을 거슬러 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거슬러 노하게 한다’는 것은 아마 한 마디 말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생각 때문일 수도 있으며, 어떤 악랄한 행위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어떤 아주 온화한 행위, 사람의 관점에서나 사람의 도덕 윤리적 관점에서 봤을 땐 넘어갈 수 있는 행위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학설이나 이론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네가 일단 하나님을 거슬러 노하게 하면 너의 기회는 사라져 버리고, 그에 따라 너의 마지막 날도 다가오게 된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걸핏하면 하나님을 거스르게 될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하나님의 도를 어떻게 행해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일단 네 마음속에 하나님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생기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인지 알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417) 하나님의 본질에는 사랑이라는 요소가 있어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푼다. 하지만 사람은 그의 본질에 존엄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잊어버린다. 그에게 사랑이 있다고 해서 사람이 그를 제멋대로 거슬러도 아무 느낌과 반응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에게 긍휼이 있다고 해서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원칙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고 진실로 존재하는 분이지, 사람이 상상해 낸 목석이나 어떤 물체가 아니다. 그가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마땅히 매 순간 그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태도를 중시하며, 그의 느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상상으로 하나님을 규정해서는 안 되고,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라는 바를 하나님께 강요하여 사람의 방식과 상상대로 사람을 대해 달라고 해서도 안 된다. 네가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을 거슬러 노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노를 시험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존엄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이 심각성을 알았다면 너희 모두 조심스럽게 행하고, 말하며, 하나님을 대할 때 부디 신중하고 또 신중하며 조심하고 또 조심하기를 권고한다! 하나님의 태도가 어떤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함부로 말하지도, 일을 하지도 말며, 함부로 딱지를 붙이지 말고, 함부로 결론짓는 일은 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 기다리면서 구해야 한다. 이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행실이다. 네가 우선 이렇게 행할 수 있고 이런 태도를 갖출 수 있다면, 하나님은 네가 무지몽매하고 사리를 모른다고 탓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는 너의 태도로 인하여 너를 기억하고 인도해 깨우쳐 주거나 혹은 어리고 무지한 너에게 관용을 베풀어 줄 것이다. 그와 반대라면, 함부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며 정의를 내리는 너의 오만불손한 태도 때문에 하나님은 너를 정죄하고 징계할 것이다. 나아가 너에게 벌을 주거나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 결론은 아마 너의 결말과 관련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너희 모두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대함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일해서도 안 된다.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해 봐야 한다. 단순한 일일지라도 마음속으로 많이 되새겨 보고 많이 생각해 봐야 한다. 네가 정말 언제 어디서나 매사에 이런 원칙에 따라 실천하고, 특히 네가 모르는 일에서도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너를 인도하며 실천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418) 그래도 행정 법령의 내용을 잘 파악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분명히 알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지 않으면 너희는 입을 단속하지 못하고 함부로 지껄이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되어 어둠 속에 떨어질 것이며, 성령의 함께함과 빛을 잃게 될 것이다. 너희는 일을 할 때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네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응을 받게 된다. 너의 말과 행동에는 원칙이 없지만, 하나님의 행사와 말씀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네가 보응을 받는 것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득죄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많이 거슬렀다면 너는 분명히 지옥의 자식일 것이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단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몇 번 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 있느냐? 하나님 눈에 너는 이미 속죄 제물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네가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른 것이 한 번이 아닌 데다가 회개하려는 태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람을 벌하는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은 하나님을 따를 때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얼마간 하긴 했어도, 나중에 책망과 인도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패괴를 발견하고 실제의 정상 궤도에 들어서 지금까지 착실히 행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마지막에 살아남을 사람들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사람은 정직한 자다. 네가 정직한 데다가 원칙 있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또 일을 함에 있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너의 ‘믿음’은 합격일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르기 쉽다. 많은 사람이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만,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알지 못할뿐더러 하나님 말씀에 내포된 뜻은 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좋은 마음이 종종 하나님의 경영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심한 자는 하나님 집의 문밖으로 쫓겨나 하나님을 따를 기회를 잃고 지옥에 떨어져 하나님의 집과는 무관하게 된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 집의 사역을 무지한 호의로 대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진노를 유발한 사람들이다. 사람은 다 양반 나리를 받들던 수작을 하나님 집에서도 부리며 자기 뜻대로 휘두를 망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품이 양이 아니라 사자 같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처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들은 다 하나님과 ‘소통’이 되지 않는데, 이는 하나님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과 다르기 때문이다. 너는 수많은 진리를 깨달아야만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 갈 수 있다. 그러한 앎은 글귀나 도리가 아니라 너와 하나님이 서로의 마음을 알게 해 주는 보배가 될 것이고,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너의 앎에 실제가 결여되고 진리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열심만 가득한 너의 섬김은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훈언 3칙> 중에서

419)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두려워할 수 없고, 무심하게 넘기거나 얼버무리고, 더욱이 구제 불능일 정도로 모독하게 된다.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이 물론 아주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을 아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파고들어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걸 보면, 너희는 내가 반포한 행정 법령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쉽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되는데,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노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네가 최종적으로 얻는 결과는 행정 법령을 범하는 것이다. 너는 지금, 하나님의 본질을 인식하면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면 동시에 행정 법령 자체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행정 법령에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성품이 행정 법령 속에 모두 구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성품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420) 하나님은 살아 있는 하나님이다. 어떤 일에 부딪히면 사람들은 각기 다른 행실을 보인다. 하나님은 사람의 각기 다른 행실에 따라 다른 태도를 취하는데, 이는 그가 목석도 아니고 공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태도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태도를 알아 가면서 조금씩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조금씩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다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을 쉽게 규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더 이상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게 되면 하나님을 쉽게 거스르지 않을 것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너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알게 해 줄 것이다. 이로써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더 이상 자신이 알고 있는 글귀의 이치나 이론을 하나님께 씌우지 않고,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을 보지 못하고 짐작하지도 못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의 행위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볼 수도 있다. 이는 사람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부분이다. 만약 네가 속으로 늘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고 해 보자. ‘내가 여기에서 이렇게 하는 걸 하나님이 아실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하나님이 아실까? 아실 수도 있고 모르실 수도 있을 거야.’ 네가 한편으론 이런 관점을 가진 채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또 한편으론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한다면 언젠가는 하나님을 거슬러 노하게 할 것이다. 너는 이미 위험한 경계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으면서도 진리 실제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은 더더욱 모르며, 생명과 분량이 전혀 자라지 않는 사람, 얕디얕은 수준의 도리밖에 지키지 않는 사람 말이다. 그렇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그들은 지금껏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고, 하나님의 존재를 직시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보면 기뻐하겠느냐? 마음에 위로가 되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고 하나님을 대하는지, 사람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을 공기처럼 여겨 뒷전에 미뤄 두지 말고, 네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 있고 확실히 존재하는 하나님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는 셋째 하늘에서 할 일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시각각 사람들의 마음과 모든 언행을 감찰하고 있으며, 너의 행실과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감찰하고 있다. 너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기 원하든 원치 않든 너의 모든 행위와 마음과 생각은 다 하나님 앞에 놓여 있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고 있다. 너의 일거수일투족으로 인해, 너의 태도로 인해 하나님은 끊임없이 너에 대한 견해를 바꾸고 있고, 너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일부 사람들에게 충고하고자 한다. 자신을 하나님 손안의 귀염둥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를 매우 총애하고 하나님에겐 네가 없으면 안 된다고 착각하지 말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고정불변이라고 착각하지도 말아라. 꿈꾸지 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의롭게 대한다. 그는 아주 신중하고 엄숙하게 정복 사역과 구원 사역을 행한다. 이것이 그의 경영이다. 그는 모든 사람을 엄격하고 진지한 태도로 대한다. 사람을 애완동물처럼 어르고 달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총애나 지나친 애정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긍휼과 관용은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방임이 아니다. 반대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아끼고, 가엾게 여기며,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긍휼과 관용에는 그의 기대가 깃들어 있으며, 그의 긍휼과 관용은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밑천이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분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분이다. 사람에 대한 그의 태도에는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은 바뀔 수 있는 것이지 절대로 규례가 아니다. 인류에 대한 그의 마음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점차 바뀌고 달라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질은 변함이 없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아마 너는 이 일을 그리 심각하지 않게 여기면서 너의 고정 관념으로 하나님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상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일은 너의 관념과 정반대이다. 네가 자신의 관념으로 하나님을 가늠하는 순간, 너는 이미 하나님을 거슬러 노하게 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네 상상대로 행하지 않을 것이고, 절대로 너의 말처럼 일을 대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신중하게 대하라고 일깨워 주고자 한다. 또한 범사에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 곧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원칙에 따라 실천하는 법을 배우라고 일깨워 주고자 한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태도에 관한 일을 대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올발라야 하고, 분별이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며 성실히 구해야 한다. 네가 믿는 하나님을 장난감처럼 여겨 함부로 판단하거나 결론을 내리거나 오만불손한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고 너의 결말을 정하는 과정에서 너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든, 심판과 형벌을 주든 결론적으로 너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너의 태도와 인식에 달려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421)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마음속에 늘 하나님이 있고,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조심스럽고 신중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르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지, 자신의 성미대로 행하거나 내키는 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도의 품위에 맞지 않는 일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도처에서 위세를 부리거나 거들먹거리며 다른 사람들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이는 가장 패역한 행위이다. 집안에 가법이 있고 나라에도 국법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집은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더욱 엄격한 기준이 있지 않겠느냐? 더욱 행정 법령이 있지 않겠느냐? 사람은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지만, 하나님의 행정 법령은 사람이 마음대로 ‘고칠’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이며, 사람을 치는 하나님이다. 설마 사람이 이런 것들을 모른단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 중에서

422)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던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을 베풀어 주고 진리를 알려 주었다. 이 진리들은 사람이 지키고 행해야 할 도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게 하는 도이다. 또한 사람이 삶 속에서, 인생 역정 속에서 실천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을 선포하는 목적이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포된 것으로 사람은 마땅히 이를 지켜야 하고, 지키면 생명을 얻게 된다. 만약 하나님의 이 말씀을 지키지 않고 실천하지 않고 삶 속에서 살아 내지 못한다면 그는 진리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결말이 없어진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423) 하나님의 도를 행한다는 것은 외적인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 일이 닥쳤을 때 먼저 그것을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 하나님이 너에게 맡긴 책임이나 사명으로 여기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이 닥쳤을 때 너는 그것을 하나님이 너에게 준 시련으로 여겨야 한다. 일이 닥쳤을 때 네 마음속엔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에게서 온 일이니 어떻게 해야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노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을지 생각해야 한다. … 하나님의 도를 행하려면 우리 곁이나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일단 우리의 입장에서 중요한 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무시하지 말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어떠하냐? 너에게 이런 태도가 있다면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해 준다. 너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너에게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고 싶다는 이런 소망이 있다면, 네가 실천해 내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다’라는 이 기준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일이나 평소 사람들이 아예 언급하지 않는 일은 작은 일로 여기고 진리의 실천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일이 닥치면 가볍게 생각해 그냥 흘려보낸다. 사실 이런 일이 닥쳤을 때가 바로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때이다. 또한 너는 이런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더더욱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너의 곁에서 너의 언행을 관찰하고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저는 왜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네가 느끼지 못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도를 가장 중요한 도로 삼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는 하나님이 사람의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에 기반해 사람에게 행하는 미묘한 사역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너는 정말 부주의한 사람이구나! 무엇이 큰일이고 무엇이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것과 관련된 일에는 크고 작음의 구분이 없다. 이 말을 너희는 받아들일 수 있느냐? (네.) 사람이 보기에 매일 닥치는 일 중에 어떤 일은 아주 크고 어떤 일은 아주 작다. 흔히 사람들은 큰일을 아주 중요한 일로 간주하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막상 큰일이 주어져도 사람의 분량이 작고 자질이 부족한 탓에 하나님의 뜻에 이르지 못하고,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하며, 가치 있는 실제적 인식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가 하면 작은 일은 무시하면서 조금씩 흘려보낸다. 그렇게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검증받고 시련받을 무수히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네가 계속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너를 위해 마련한 사람과 일, 사물과 환경을 소홀히 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고 인도하려는 것을 네가 날마다, 더 나아가 매 순간 저버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너에게 어떤 환경을 마련해 너를 은밀히 관찰하고 네 마음과 모든 생각을 감찰한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하려고 하는지를 본다. 만일 네가 경솔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도,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한 번도 참답게 대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너는 하나님이 너를 위해 마련한 환경에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너에게 주어진 사람과 일이 진리나 하나님의 뜻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너에게 이렇게 여러 차례 환경과 시련을 주었음에도 너에게서 아무런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느냐? 너에게 수차례의 시련이 주어졌음에도 네 마음이 하나님을 크게 높이지 않고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지도, 하나님이 준 시련이나 검증으로도 여기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내려 준 기회를 지속적으로 밀어내고 흘려보낸다면 그것은 엄청난 패역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로 슬퍼하겠느냐? (슬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너희는 또 크게 놀랄 것이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늘 슬퍼하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하나님께서 슬퍼하지 않으신다고? 그럼 하나님은 언제 슬퍼하시는 거지?’ 어쨌든 하나님은 이 일에서는 슬퍼하지 않는다. 그러면 앞서 언급했던 사람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사람이 하나님이 주는 시련과 하나님의 검증을 밀어내고 도피하려 할 때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 태도만을 취한다. 어떤 태도일까?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이런 사람을 증오하고 버린다. ‘증오와 버림’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석할까? ‘증오’에는 극도로 혐오하고 미워한다는 의미가 있다. ‘버림’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 있어서는 ‘포기한다’는 뜻이다. ‘포기’가 어떤 뜻인지 너희는 다 알고 있겠지? 결론적으로 ‘증오와 버림’이란 하나님이 위에서 말한 일들을 행하는 사람에게 취하는 마지막 반응이자 태도로, 사람에게 크게 혐오감과 반감을 가져 포기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도를 전혀 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며 악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에 대해 하나님이 내린 최종 결단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424) 욥이 보여 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순종은 인류의 모범이 된다. 그의 순전함과 정직함은 사람이 갖춰야 할 최고 수준의 인성이었다. 욥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로 인해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하나님께 순종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그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거두어 가도 전혀 원망하는 바가 없었으며, 게다가 땅에 엎드린 채 하나님이 자신의 육체를 당장 거두어 갈지라도 원망 한마디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욥의 이러한 모든 행동은 순전하고 정직한 인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욥은 순수하고 정직하며 선하기에 자신이 체험하고 느낀 하나님의 존재를 굳게 믿으며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을 토대로 욥은 하나님의 인도와 만물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행사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생각과 행실, 태도와 일 처리 원칙을 자신에게 요구하고 규범화했다. 그것이 오랜 세월 지속되면서 욥은 자신의 체험으로 인해 하나님께 진실하고 실제적인 경외심을 갖게 되었고, 아울러 악에서 떠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욥이 지킨 ‘순전함’의 유래이다. 욥은 정직하고 단순하며 선량한 인성을 갖췄고,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악에서 떠난 실제 체험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탄의 이 같은 공격 속에서도 굳게 설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시련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고 만족스러운 답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425) 욥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을 직접 체험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경외심과 시련 속에서의 증거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귀하게 보았고, 기뻐했으며, 칭찬했다. 사람들 역시 부러워했고, 경탄했으며, 칭찬이 자자했다. 그의 일생은 위대하지 않고 평범했다.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평범한 수십 년의 세월 속에서 보통 사람이 얻지 못한 하나님의 도를 얻었고, 보통 사람이 체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큰 능력과 주재를 느끼고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보통 사람보다 총명하지도, 막강한 생명력을 지니지도 않았으며,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갖추지 못한 진솔함과 선함, 정직함, 그리고 공평과 공의와 긍정적인 것을 사랑하는 인성과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애증이 분명하고 정의감이 있었으며, 강한 의지와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이 행한 모든 비범한 일들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위대함과 거룩함, 공의로움을 보았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보살핌과 은총, 보호를 보았으며,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존귀함과 권병을 보았다. 욥이 일반 사람들은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순결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고, 마음이 하나님께 속해 있었으며, 창조주에게 끌렸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욥의 추구에 있다. 그는 완벽한 사람,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했으며,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자,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 악에서 떠난 자가 되고자 했다. 욥은 하나님을 본 적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도 없는 상황에서 그러한 것들을 갖추고 추구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그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과 그 지혜를 깨달았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은 없지만, 그는 사람에게 복을 주고 그 복을 거두어 가는 행사가 모두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그가 지나온 세월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지만,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의 일상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는 데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의 눈에 하나님의 행사는 만물의 운행 법칙 가운데 충만했으며, 하나님의 주재 역시 사람의 삶 속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행사의 무소부재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평범한 나날 속에서,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비범하고 오묘한 행사를 보고 체험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기묘한 안배를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숨겨진 모습’과 ‘침묵’은 욥이 하나님의 행사를 체험하는 데 어떤 방해도 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도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욥의 일생은 평범한 삶 속에서 만물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욥은 평범한 나날 속에서, 만물 가운데 침묵하고 계시지만 만물의 운행 법칙을 주재하면서 전하는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 이를 통해, 사람이 욥과 같은 인성을 갖추고 욥처럼 추구하면, 그와 같은 경험과 깨달음을 얻고, 욥처럼 하나님의 만물 주재를 이해하고 깨닫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지도, 말씀하지도 않았지만,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가 될 수 있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거나 말씀하지 않아도 사람은 만물 가운데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행사와 주재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큰 능력과 권병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또한,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사람이 얼마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게 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426)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 사이에는 매우 밀접하면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연관성이 있으며, 이 둘의 관계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악에서 떠나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해야 하며,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을 진실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 싶으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해 하나님의 채찍질과 징계, 형벌과 심판을 겪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대면하고, 하나님과 마주해야 하며,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사람, 일, 사물과 각종 환경을 마련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하나님과 마주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대면하려면 반드시 먼저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 고통을 감내하려는 의지, 악한 일을 멀리하려는 결심과 용기, 그리고 참된 피조물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면 너는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네 마음은 점점 더 순결해질 것이다. 또한, 너의 인생과 삶의 가치는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과 함께 점점 더 의미를 갖게 되고, 점점 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너는 창조주가 더 이상 수수께끼가 아님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창조주가 너를 피해 숨거나 얼굴을 가린 적이 없고, 너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더 이상 네가 밤낮으로 그려도 느낄 수 없었던 그분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분명히 너의 곁을 지키고 있고, 너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있으며, 네 운명을 주관하고 있다. 그는 아득한 하늘 끝이나 구름 사이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주변에서 너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다. 그는 너의 모든 것이자 너의 유일한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은 너에게 사모의 마음이 들게 하고, 그리워하게 하며, 가까이하게 하고, 앙모하게 하며, 잃을까 두려워하게 하고, 더는 포기하려고도 거역하려고도 하지 않게 하며, 멀리 떠나거나 숨으려고도 하지 않게 한다. 너는 오직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에게 순종하며, 그가 네게 준 모든 것에 보답하고 그의 권세 아래에 돌아와 복종하기만을 원하게 된다. 너는 더 이상 너에 대한 그의 인도와 공급, 보살핌과 보호를 거절하지 않고, 너에 대한 그의 주재와 안배에 저항하지 않게 된다. 너는 오로지 그의 곁을 따르고 그와 함께하기를 바라며, 그를 너의 유일한 생명이자 유일한 주, 유일한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이다> 중에서

427)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가장 먼저 깨닫는 것은 측량할 수 없고 지혜로우며 또 놀랍다는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고, 그가 하는 사역의 비밀이 사람의 사유로 닿을 수 없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다만 그의 요구에 다다르고 그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 그를 뛰어넘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의 사역은 사람의 사유나 상상을 초월하고,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스스로도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지만, 그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새로운 길을 열어 사람을 더 새롭고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인도했으며, 그로 인해 인류는 새로운 진전과 시작을 얻게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느끼는 것은 탄복이 아니다. 탄복뿐만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경외와 사랑이며, 하나님의 기묘함을 느끼고, 그가 하는 사역과 말씀을 사람은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 사람은 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느낌을 받곤 한다. 충분히 깊게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 그리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의 지혜로움과 기묘함을 느낄 수 있다. 그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무궁무진한 힘이 생겨난다. 두려움이나 어쩌다 한 번씩 생기는 추앙심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깊이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형벌과 심판을 체험한 사람은 또 그의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을 느낀다. 그의 사역을 아무리 많이 체험한 사람이라도 그를 측량하지 못한다. 진실로 그를 경외하는 사람은 모두 그의 사역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으며, 사람의 관념을 일축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사람에게 원하는 것은 완전한 탄복이나 외적인 순종이 아니라 진실한 경외와 순종이다. 이렇게 많은 사역에서 진실한 체험을 한 사람들은 전부 그에게 탄복을 넘어선 경외심을 갖게 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그의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통해 그의 성품을 보았으며, 그로 인해 그에게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의 경외심과 순종을 자아낸다. 그의 어떠함과 성품이 피조물과 같지 않고, 피조물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으로, 피조물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의 경외와 순종을 받을 자격이 있고, 사람에게는 그런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을 체험하고, 또 그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는 사람은 다 경외심을 갖게 된다. 그에 대한 관념을 내려놓지 않는 사람들, 즉 그를 아예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일말의 경외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른다고는 하나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천성이 패역한 자들이다. 그의 이러한 사역이 이루려는 성과는 바로 피조물로 하여금 창조주에게 경외심을 갖고, 그를 경배하며, 조건 없이 그의 권세 아래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역으로 이루려는 최종 성과이다. 이러한 사역을 체험하고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고, 여태까지의 패역에 전혀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분명 도태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가 그저 탄복하거나 경원시하는 것에 그치고, 사랑이 조금도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온전케 될 조건이 결핍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사역을 했음에도 사람의 진실한 사랑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람에게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얻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인정은 더더욱 받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심판을 겪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 자는 본성을 고치지 못하는, 극도로 악랄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모두 도태되고 징벌받을 대상이며, 또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과 똑같이 징벌을 받게 된다. 그들이 받는 고통은 심지어 불의를 행한 사람이 받는 고통보다 더 크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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