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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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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 성육신의 진리와 심오한 비밀 방면의 대표적인 말씀

1. 성육신이란 바로 하나님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이고, 하나님이 육신의 형상으로 피조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라고 한 이상, 일단은 반드시 육신이어야 하고, 그것도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다. 사실,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의 함의는 바로 육신에서 역사하고 육신에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실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2. 하나님 성육신을 그리스도라고 칭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줄 수 있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것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고,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으면서도 그리스도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짜이다. 그리스도란 땅에서 하나님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땅에서 사역을 전개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역사를 완성하는 하나님만의 특유한 육신을 가리킨다. 이 육신은 아무나 대신할 수 있는 육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사역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육신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할 수 있는 육신이며, 하나님을 충분히 대표할 수 있는 육신이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육신이다. 그리스도로 사칭하는 자들은 조만간 다 넘어질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비록 그리스도라고 자칭하지만, 그리스도의 실질은 전혀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진짜와 가짜는 사람이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답하고 하나님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3. 성육신한 하나님을 그리스도라고 칭한다.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인데, 이 육신은 육체에 속하는 그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다. 같지 않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혈기에 속하지 않는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이 있는데, 그의 신성은 어떤 사람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에서의 모든 정상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인성이든 신성이든 다 천부의 뜻에 순복한다. 그리스도의 실질은 영이자 신성이므로, 그의 실질 자체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다. 이 실질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방해할 리가 없으며, 그는 자신의 사역을 허무는 일을 할 리가 없고 자신의 뜻에 어긋나는 말을 할 리도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4. 바로 그가 하나님의 실질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피조된 어떤 인류보다 높고,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는 어떤 사람보다 높다. 이런 연고로 그와 같이 사람의 외형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인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오직 그만이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피조된 인류이다. 똑같이 인성을 갖추었지만 피조된 사람은 인성 외에 다른 것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 성육신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서 인성 외에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신성이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상으로 볼 수 있고, 또한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신성은 사람에게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신성은 인성이 있는 전제하에서라야 발표하는 것이고, 또한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신성이다. 지금까지 사람이 가장 측량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바로 성육신 하나님의 실질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이렇게 많은 말을 한 후에도 너희 다수의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에 대해 여전히 수수께끼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성육신되었다고 한 이상, 그의 실질은 바로 인성과 신성의 결합이다. 이 결합을 하나님 자신이라 칭하고, 또한 땅에 있는 하나님 자신이라 칭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5. 성육신한 하나님의 육신이 하는 말씀은 영의 직접적인 발표인데, 발표하는 것은 영이 이미 했던 사역이다. 육신이 겪지 않았고 보지도 못하였지만 발표하는 것은 여전히 그의 소시이다. 왜냐하면 육신의 실질은 영이고 발표하는 것은 영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설사 육신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영이 이미 했던 사역이다. 성육신된 후에, 육신에서의 발표를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의 소시를 인식하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그가 하는 사역을 보게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6. 하나님은 성육신된 이상 그의 실질을 육신에 실제화하여 그의 육신이 족히 사역을 담당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 된 기간에는 그리스도의 역사가 하나님 영의 모든 역사를 대신하고, 게다가 말씀이 육신 된 기간의 전체 사역은 그리스도의 역사를 핵심으로 한다. 그 외에 어느 한 시대의 사역도 섞여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된 이상 육신의 신분으로 역사하고, 육신에 온 이상 육신에서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한다. 하나님의 영이든 그리스도이든 어쨌든 다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직분을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7. 하나님은 육신에서 역사해도 여전히 육신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을 잃지 않고 진심으로 하늘의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으며, 그의 신분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다. 단지 그가 땅에 와서 피조물이 되어 피조물의 외형을 갖게 되었고 원래보다 인성이 더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가 하늘의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소시(所是)로서 사람이 모방할 수 없다. 그의 신분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육신의 각도에 서서 경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한다”라는 이 말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도 그의 소시인데, 사람에게 요구하기 전에 그는 이미 그렇게 행하였다. 그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만 요구하고 자신은 오히려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할’ 리가 없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다 그의 소시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8. 하나님 자신에게는 패역의 성분이 없고, 하나님의 실질은 선한 것이다. 그는 모든 미와 선의 발표이고, 또한 모든 사랑의 발표이다. 설령 육신에 있는 하나님이라고 해도 아버지 하나님께 거역하는 일을 하지 않고, 그 자신을 희생한다고 해도 기꺼이 원하며 아무런 선택도 없다. 하나님에게는 독선적이거나 자고(自高)한 성분이 없고, 교만하고 자대(自大)하거나 간사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런 것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에게 사탄과 같은 속성이 있게 된 까닭은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고 사탄의 속성은 없다. 하나님이 육신에 거할 때, 사역이 얼마나 힘들고 육신이 얼마나 연약하든지 그는 하나님 자신의 사역에 방해되는 일을 할 리가 없고, 더욱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거역할 리도 없으며, 차라리 육신이 고통을 받을지언정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않는다. 마치 예수가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과 같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있지만, 그리스도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선택이 없다. 비록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 있지만 여전히 육신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육신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한다. 이것은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9. 하나님의 실질 그 자체가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또 자신의 권병에서 비롯된 모든 것에 순복할 수 있는데, 영의 역사이든 아니면 육신의 역사이든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은 만물의 권병이고, 하나님의 실질이 있는 육신도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육신에 있는 하나님은 또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모든 사역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떠한 사람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권병이지만 그의 육신은 또 자신의 권병에 순복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한다”는 데에 내포된 뜻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10.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발표가 그의 실질을 결정한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부탁을 완성할 수 있고, 진심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으며, 진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그의 실질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의 자연적인 유로도 그의 실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자연적인 유로라고 하는 까닭은 그가 발표한 것이 모방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교육하거나 수년간 양성한 결과가 아니며, 그 자신이 배운 것이나 꾸며 낸 것도 아니라 원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11. 하나님이 성육신된 것은 단지 육신에서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지, 사람에게 자신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행하는 사역으로 자신의 신분을 실증하고, 자신의 유로로 자신의 실질을 실증한다. 그의 실질은 근거 없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신분은 자신이 빼앗아 온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한 사역과 그의 실질로 결정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12. 비록 성육신 하나님의 겉모습이 사람과 똑같고, 또한 사람의 지식도 배우고, 사람의 언어로 말하며, 심지어 어떤 때는 사람의 방식을 쓰거나 사람의 논법을 인용하여 자신의 뜻을 표현하지만, 인류를 대하고 일을 대하는 그의 실질은 패괴된 인류와 절대로 같지 않고, 또한 그가 서는 각도와 높이는 그 어떤 패괴된 인류도 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이기 때문에 그 자신이 입은 육신에도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 갖추어져 있고, 그의 마음과 인성에서 발표해 낸 것도 다 진리이다. 패괴된 인류에게 있어, 육신이 발표한 것은 다 진리의 공급이자 생명의 공급이다. 그런 공급은 단지 어느 한 사람만 상대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상대한 것이다. 패괴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마음속에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관련이 있는 그 몇 명뿐이고, 자신이 관심을 갖고 걱정하는 사람도 단지 그 몇 명뿐이다. 재난이 닥치면 먼저 생각하는 것은 자기 집의 아이,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신의 부모이다. 상대적으로 ‘널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기껏해야 어떤 친척이나 괜찮은 친구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 이상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을까? 영원히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기에 모든 것을 단지 사람의 각도와 사람의 높이에 서서 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은 패괴된 인류와는 완전히 다르다.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그 육신이 얼마나 평범하든, 얼마나 정상적이든, 얼마나 낮든, 심지어 사람들이 얼마나 업신여기든, 그의 마음과 인류를 향한 태도는 아무도 갖출 수 없고 모방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영원히 신성의 각도에 서서, 창조주의 높이에 서서 인류를 관찰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실질로, 하나님의 마음 상태로 인류를 대하고 있다. 그는 절대로 보통 사람의 높이에서, 패괴된 사람의 각도에서 인류를 대할 리가 없다. 사람은 인간의 안목으로 인류를 바라보고, 사람의 지식과 사람의 규례, 사람의 학설 등등을 가늠 기준으로 삼아 인류를 바라본다. 그 범위는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범위이고, 패괴된 인류가 닿을 수 있는 범위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안목과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가늠 기준으로 삼아 인류를 바라본다. 그 범위는 사람이 볼 수 없는 범위이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과 패괴된 인류가 확연하게 다른 부분이다. 그 다른 점은 각자의 실질로 인해 결정된 것인데, 바로 그 다른 실질로 각자의 신분과 지위가 결정된 것이고, 사물을 대하는 각자의 각도와 높이도 결정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13. 그리스도의 신성이 모든 사람보다 높으므로 그는 피조물 중에서 최고의 권병인데, 그 권병은 바로 신성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소시이다. 이 성품과 소시로 그의 신분이 결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인성이 얼마나 정상이든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고, 그가 어느 각도에 서서 말씀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든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14.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육신이다. 하나님의 영은 지고지상하며, 하나님의 영은 전능하고 거룩하고 공의롭다. 그러면 마찬가지로 그의 육신도 지고지상하며 전능하고 거룩하고 공의롭다. 이러한 육신은 공의로운 일만 하고 인류에게 유익한 일만 하며 거룩하고 휘황하고 위대한 일만 할 뿐, 진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은 할 리가 없고 하나님 영을 배반하는 일은 더더욱 할 리가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한 가지 매우 심각한 문제―배반 (2)>에서 발췌

15. 하나님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분이고 아주 실제적인 분이므로 그 육신이 영에서 왔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을 증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 실질의 일면이다. 육신이 형상 있는 영에서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과 ‘사람’ 가운데 있는 육신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가리킨다. 차이점은 주로 영에 있다. 그리고 형상이 있는 영은 신성이 정상 인성에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안에서 정상적으로 역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초자연적이지 않고 인성의 제한을 받지도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영의 형상이란 완전한 신성을 가리키고 또한 인성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본래 성품과 고유한 형상을 말씀으로 된 육신에서 완전히 살아낼 수 있는데, 정상적이고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위엄과 진노도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9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 발췌

16. 그가 성육신하여 생활하고 역사한 것은 모두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단계는 직분을 시작하기 전의 생활인데, 보통 사람의 가정에서 생활하고 극히 정상적인 인성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사람의 정상 생활의 윤리와 법칙 그리고 사람의 정상적인 필요(먹고, 입고, 자고, 거하는 것)가 있고, 사람의 정상적인 연약이 있으며, 정상인의 희로애락이 있다. 즉, 첫 번째는 신성이 아닌 완전히 정상적인 인성에서 생활하면서 정상인의 모든 활동에 종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직분을 시작한 이후의 생활인데, 여전히 정상 인성의 외형이 있는 보통 인성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그는 외적으로 초자연적인 것들이 전혀 없고, 직분하는 것을 생활로 한다. 이때의 정상 인성은 완전히 신성의 정상적인 역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직분을 할 때의 정상 인성이 이미 충분히 직분을 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생활은 정상 인성에서 직분을 하는 생활이다. 즉,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생활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17. 성육신의 의의는 평범한 정상 사람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을 하는 것으로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 된 것은 하나님의 영이 육신이 된 것인데, 바로 하나님이 육신이 된 것이다. 육신이 하는 사역은 바로 영이 하는 사역이다. 영이 하는 사역은 육신에 실제화되어 육신을 통해 발표된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 외에는 아무도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을 대신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오직 말씀으로 된 하나님 육신의 이 정상 인성만이 신성의 역사를 발표할 수 있고, 그를 제외한 사람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만약 하나님이 첫 번째로 왔을 때, 29세 이전에 정상 인성이 없고, 태어나자마자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말할 줄 알자마자 하늘의 말을 하며, 태어나자마자 천하의 일을 통찰하고, 사람의 마음속 생각과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을 다 알아낸다면, 그런 사람은 정상인이라고 할 수 없고, 그런 육신은 육신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그런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성육신된 의의와 실질은 없게 된다.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가 ‘말씀’이 ‘육신’ 된 것임을 증명하고, 그에게 정상인의 성장 과정이 있는 것은 그의 육신이 정상임을 더욱 증명한다. 게다가 그의 역사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이고, 또한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되었음을 충분히 실증할 수 있다. 사역의 필요로 하나님은 육신이 되었다. 다시 말해, 이번 사역은 반드시 육신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상 인성에서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는’ 전제이다. 이것은 두 차례 말씀이 육신 된 내막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18. 예수는 33년 반 동안 세상에 있었다. 그는 33년 반 동안 시종일관 정상 인성을 유지했는데, 다만 3년 반 동안의 직분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그가 아주 비범하다고 느꼈고, 또 이전보다 훨씬 초자연적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사실, 예수가 직분을 하기 전이든 후이든 그의 정상 인성은 변하지 않았는데, 시종일관 같은 인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직분을 행한 전후의 차이로 인하여 그의 육신에 대해서도 사람에게 두 가지 서로 다른 견해가 생겼을 뿐이다. 사람이 어떻게 보든지 하나님의 성육신은 시종일관 그의 고유한 정상 인성을 유지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육신된 이상, 그는 육신에서 살고 그것도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가 직분을 하든 하지 않든, 육신의 정상 인성을 배제(원문: 取締)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성은 육신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19. 성육신의 인성은 육신의 실질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인성이 없는 육신은 존재하지 않고, 또한 인성이 없는 사람은 비인류이다. 그리하여 육신의 인성은 말씀으로 된 하나님 육신의 고유한 속성이 되었다. 누가 “하나님이 육신이 되면 오직 신성만 있고 인성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논법이고, 또한 성육신이 되는 원칙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는 직분을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인성의 외형이 있는 신성에서 살면서 역사하는데, 그때의 인성은 전적으로 신성이 그 정상 육신에서 역사할 수 있도록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하는 것은 인성 속에 있는 신성이고, 신성이 역사하는 것이지 인성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신성은 인성에 가려진 신성이기에 그 실질은 여전히 완전한 신성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지 인성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하는 것은 이 육신이므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육신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이 되어 사람의 외형과 사람의 실질이 있고, 더욱이 하나님의 실질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20. 하나님이 인성에서 역사할 때, 많은 방식, 많은 말씀, 많은 진리는 다 인성의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뜻도 나타내 사람에게 이해하게 하고 인식하게 하였다. 사람이 이해한 것과 인식한 것은 조금도 틀림없이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신분과 지위에 갖추어진 실질과 소유소시를 대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성육신한 인자는 최대한 가장 정확하게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다 발표한다는 것이다. 인자의 인성은 사람과 하늘의 하나님이 교제하고 소통하는 데의 가로막음과 장애물이기는커녕, 오히려 인류와 창조주가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경로이고 다리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1. ‘하나님’이 ‘육신’에서 나타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영의 모든 역사와 말씀을 정상 인성에 의해 하는 것이고, 성육신에 의해 하는 것인데, 바로 하나님의 영이 인성 역사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육신 중에서 신성의 사역도 하는 것이다. 성육신의 하나님에게서 너는 하나님의 인성에서의 역사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신성 역사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더 실제적인, 하나님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제 의의이다. 네가 만약 이것을 꿰뚫어 보았다면 너는 하나님의 각 부분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으며, 신성 역사를 너무 지나치게 중요시하지도 않고 인성에서의 역사를 너무 가볍게 보지도 않으며, 극단으로 가지도 않고 굽은 길을 걷지도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제 하나님의 함의는 생생하게 살아 계시고 실제적인 하나님을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신성의 역사와 영의 지배를 받는 인성의 역사를 육신을 통해 발표하는 하나님을 뜻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22. 성육신된 인자는 인성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발표하여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달해 주었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 발표를 통해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계에 있는 하나님을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형상이 있고 뼈와 살이 있는 하나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육신된 인자는 하나님 자신의 신분, 지위, 형상, 성품, 소유소시 등등을 모두 구체화하고 인성화하였다. 비록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말하면, 인자의 겉모습은 어느 정도 국한성이 있지만 인자의 실질과 소유소시는 완전히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표할 수 있는데, 단지 발표하는 형식상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인자의 인성이든 아니면 신성이든 다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표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은 그 기간에 육신의 방식으로 역사하고, 육신의 각도에서 말씀하고, 인자의 신분과 지위에 서서 인류를 마주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는 실제적인 말씀과 역사를 접촉하고 체험하는 기회가 있게 하였을 뿐이다. 또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성과 자신을 낮춘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여 주고, 그와 동시에 또 사람에게 하나님의 참됨과 실제에 대해 기초적인 인식과 기초적인 정의도 있게 하였을 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3. 하나님이 땅에 와서 신성의 사역만 하는 것은 하늘의 영이 성육신한 하나님에게 부탁한 것이다. 그는 와서 곳곳에서 말씀하기만 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데, 주로 사람에게 공급하고 훈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역사 원칙으로 한다. 그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나 사람 생활의 사소한 부분 같은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의 주요 직분은 영을 대표하여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이 실제적으로 육신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진리를 내놓기만 할 뿐, 사람의 사역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과 쓰임받는 사람의 실질상 구별>에서 발췌

24.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을 때, 사람은 하나님이 했던 많은 말씀들을 깨닫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말씀들은 완전한 신성에서 오고, 그 말씀을 했던 각도와 배경은 사람이 볼 수도 닿을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또한 사람이 볼 수 없는 영계에서 발표해 낸 것이고, 육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꿰뚫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육신한 후, 인성의 각도에 서서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기에 영계의 범위를 벗어났고 초월했다. 하나님은 사람이 관념으로 상상한 것이나 사람의 생활 속에서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는 일들이나 혹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과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 말이나 인류가 장악하고 있는 지식으로 신성에 가지고 있는 자신의 성품과 뜻 그리고 자신의 태도를 표현하여,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달할 수 있는 정도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요구 기준을 이해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성에서 역사하는 방식과 원칙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5. 하나님은 성육신함으로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 인성에서 아주 적절한 비유로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표현하였다. 그 마음의 소리는 하나님 자신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이 그 시대에서 하고자 하는 사역을 대표하였고, 또한 은혜시대에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 자신의 태도도 대표하였다.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그 태도에서, 하나님은 각 사람을 한 마리 양에 비유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일 양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하나님이 모든 대가를 아끼지 않고 그 양을 찾는다고 한 것은 하나님이 당시에 성육신하여 사람에게 했던 역사의 원칙을 대표한다. 하나님은 이런 비유로 당시에 사역하고자 했던 결심과 태도를 묘사하였다. 이것이 말씀으로 된 하나님 육신의 ‘우세한’ 부분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지식을 이용해 인성의 언어로 사람에게 말씀함으로 자신의 바람을 표현할 수 있었고,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심오한 신성의 언어를 인성의 언어와 방식으로 사람에게 해석해 주거나 ‘통역’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해 주고,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데에 유리하다. 그 밖에, 하나님은 또 사람의 각도에서 사람의 언어로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이 알기 쉬운 방식으로 사람과 대화할 수 있으며, 심지어 사람의 언어와 지식으로 말씀하고 역사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이 친절하고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도 알게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26. 그가 땅에 오면 정상 사람의 생활을 지내는 것이 아니고, 정상 사람의 생활이 있게 된 후에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사람의 가정에서 출생하기만 하면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뜻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고 혈기도 띠지 않고 사회성이라고는 더 말할 나위도 없으며, 사람의 사유와 관념에 관련되지 않고 사람의 처세 철학과는 더욱 연관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고, 역시 말씀이 육신 된 실제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과 쓰임받는 사람의 실질상 구별>에서 발췌

27.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은 식견도 있고 이지도 부족하지 않으며, 그의 인성은 아주 정상인데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사람의 육안으로 전혀 그에게서 특별한 인성을 찾아볼 수 없고, 다른 사람과 다른 인성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초자연적이지 않고, 조금도 특별하지 않으며, 그에게는 높은 문화나 지식 그리고 높은 이론도 없다. 그가 말하는 생명과 그가 이끄는 길은 이론이나 지식으로 얻은 것이 아니고, 처세의 경험이나 가정 교육으로 얻은 것도 아니며, 모두 영이 직접 행한 사역, 즉 말씀으로 된 육신이 행한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에서 발췌

28. 성육신의 인성은 육신에서 하는 신성의 정상적인 역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는 정상 인성을 유지하는 것이고 또한 육신의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는 바로 육신에서 하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육신에 정상 인성의 사유가 없다면 하나님이 육신에서 역사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육신에서 해야 할 사역은 영원히 완성될 수 없다. 성육신 하나님은 비록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가 있지만, 그의 역사에는 사람의 사유가 전혀 뒤섞여 있지 않다. 그는 정상 사유가 있는 인성에서 역사하고, 사유가 있는 인성의 전제하에서 역사하는 것이지,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를 발휘하여 역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거하고 있는 육신의 사유가 얼마나 높든, 그의 역사에는 여전히 논리학이나 사유학이 뒤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그의 사역은 육신의 사유로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신성의 역사가 인성에서 직접 발표된 것이다. 그의 사역은 모두 그가 해야 할 직분이고, 어느 단계도 그의 머리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29.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그가 비록 육신으로 있지만, 그의 인성은 육체에 속한 사람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에게는 특정된 성격이 있는데, 이 성격 또한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신성은 연약이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연약이란 그의 인성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 연약은 어떤 상황에서는 신성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범위가 있고 기한이 있는 것이지 끝없이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신성의 사역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인성이 어떠한지를 상관치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30. 그리스도의 인성은 완전히 신성의 지배를 받는다. 인성에서의 정상 생활을 제외하고 인성에서의 모든 활동은 신성의 영향을 받고 있고, 또한 신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리스도에게 인성이 있다고 해도 신성의 사역과 서로 방해되지 않는 까닭은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이 인성은 비록 처세에 미숙한 인성이지만, 신성의 정상 사역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의 인성이 패괴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은 직접 신성의 지배를 받고, 또한 그에게 일반 사람보다 높은 이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인성은 신성이 지배하여 역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성이고, 신성의 사역을 가장 잘 발표할 수 있는 인성이며, 신성의 사역에 가장 잘 순복할 수 있는 인성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31. 그가 땅에 온 주요 목적은 역사하는 것이다. 땅에서 역사하려면 반드시 정상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성의 위력이 얼마나 크든지 그의 고유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인성이 비록 매우 중요하지만 인성은 결코 그의 실질이 아니다. 그의 실질은 신성이다. 그러므로 그는 땅에서 직분을 시작할 때 자신의 신성의 소시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그의 인성은 다만 육신의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여 신성이 육신에서 정상적으로 역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역의 전부를 지배하는 것은 신성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32. 하나님은 영이어도 구원 사역을 할 수 있고, 사람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구원 사역을 할 수 있다. 어떻게 말씀하든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사역을 하는데, 그는 방해하거나 가로막지도 않고, 더욱이 서로 모순되는 사역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과 육신이 하는 사역의 실질은 같은 것이며, 영이든 육신이든 모두 하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하나의 사역을 경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영과 육신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두 가지 속성이 있지만 그 실질은 모두 같은 것으로, 다 하나님 자신의 실질과 신분이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33. 인성에서 역사하는 것은 영의 지배를 받는다. 그것은 사람 육체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접촉하게 하고 하나님이 실제적이고 정상적이라는 것을 보게 하며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이 육신에, 인간 세상에 와서 사람과 함께 생활하고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신성에서 역사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공급하고 모든 것을 정면에서부터 인도하고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영이 육신에서 나타났음을 진실로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34. 하나님의 영이 인성에서 역사하는 데는 과도 단계가 있다. 인성 방면을 온전케 하는 것을 통해 인성으로 하여금 영의 지배를 받을 수 있게 한 후에 뭇 교회를 목양하고 공급할 수 있게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는 정상적인 한 방면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네가 만약 하나님이 인성에서 하는 역사 원칙을 꿰뚫어 보았다면 하나님이 인성에서 하는 역사에 대해 쉽게 관념이 생기지 않게 된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의 영은 틀릴 리가 없고 오차가 없이 정확하며, 하나님은 일을 잘못할 리가 없다. 신성 역사는 인성에 방해를 받지 않고 직접 하나님의 뜻을 발표하며, 온전케 함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부터 직접 오는 것이다. 그러나 신성에서 역사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정상 인성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해내는 것이다. 마치 정상 사람이 하는 것처럼 조금도 초자연적이지 않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땅에 와 주로 육신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발표하고, 육신을 통해 하나님 영의 사역을 완성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35. 하나님이 어느 시대에, 어느 곳에 성육신하든, 그가 육신에서 역사하는 원칙은 변할 수 없다. 그는 말씀으로 된 육신이지만 또 육신을 벗어나 역사할 수 없고, 말씀이 육신 되었으나 육신의 정상 인성에서 역사하지 않는 일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가 없게 되고, ‘말씀’이 육신 된 의의는 더욱 없게 된다. 더구나 하나님이 성육신된 것은 오직 하늘의 아버지(즉, 영)만 알고, 그 외에는 육신 자신도 모르고 하늘의 사자도 모른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은 더없이 정상적이 되었고, 또한 확실히 ‘도’가 육신 되었고 ‘말씀’이 육신 되었으며, 육신은 ‘정상이고 평범한’ 사람을 의미하고 있음을 더 잘 나타낸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36. 하나님이 성육신될 때는 그에 따라 한 단계 사역을 가져오고, 그 시대에 발표할 성품과 구체적인 사역 항목을 가져온다. 그 시기에 인자는 하나님이 그 시대에서 할 역사 범위를 중심으로 사역하는데, 더 많이 하지도 않고 더 적게 하지도 않는다. 인자가 하는 말씀마다 하는 사역마다, 모두 그 시대와 관련된다. 인자가 사람의 방식과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든 아니면 신성의 언어로 표현하든, 어떤 방식과 어떤 각도를 사용하든, 그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인지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인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서로 다른 각도로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깨닫고 알고 이해하게 하며, 사람을 구원하는 자신의 사역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37. 두 번째의 성육신은 완전한 육신으로 정복 사역을 하고, 완전한 육신으로 사탄을 패배시킨다. 오직 육신이 완전히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육신이라야 완전한 정복 사역을 할 수 있고, 힘 있는 증거를 해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육신에 있는 하나님의 실제와 정상으로 말미암아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지 초자연적인 이적과 계시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하는 직분은 단지 말씀을 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한다. 즉, 영이 육신에 실제화된 사역은 바로 말씀을 하는 것이고 육신의 본직 사역은 바로 말씀을 하는 것인데, 이것으로 사람을 완전히 정복하고, 드러내고, 온전케 하고, 도태시키는 목적을 이룬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38.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새 시대를 개척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새 시대를 전개하는 동시에 옛 시대도 이미 끝냈다. 하나님은 처음이자 나중이다. 스스로 사역을 전개하였으니 스스로 옛 시대를 끝마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을 패배시키고 세상을 이기는 증거(證据)이다.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할 때마다 모두 한 차례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새 사역을 시작하지 않으면 당연히 옛 사역도 끝나지 않는다. 옛 사역이 끝나지 않았으면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오직 하나님 자신이 와서 사람들 가운데 또 새로운 사역을 해야만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벗어날 수 있고,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시작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영원히 낡은 시대에 살게 되고, 영원히 사탄의 오래된 권세 아래에 살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39. 하나님이 성육신된 까닭은 그의 역사 대상이 사탄에게 패괴된 육체에 속한 사람이지, 사탄의 영이 아니고 육체에 속하지 않은 어떠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육체가 패괴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육체에 속한 사람을 그의 역사 대상으로 한 것이다. 더욱이 사람은 패괴된 대상이기 때문에 그가 어느 단계의 구원 사역을 하든지 모두 사람을 택하여 그의 유일한 역사 대상으로 한 것이다. 사람은 속된 인간이고 혈기에 속하며,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데는 더 좋은 역사 효과에 도달하기 위하여 사람과 같은 속성을 가진 육신이 되어 사역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육체에 속하고 또한 죄를 이기는 능력과 육체에서 벗어날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것도 반드시 육신이 되어 역사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40. 사람의 육체는 사탄에게 패괴되었고, 가장 심하게 기만을 당했으며, 육체는 심히 해를 입은 대상이다. 하나님이 친히 육신에서 역사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구원의 대상이 육체에 속한 사람이고, 사탄도 사람의 육체를 이용해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탄과의 싸움이 사실은 사람을 정복하는 사역이고 동시에 사람은 또 구원받을 대상이다. 그러므로 성육신하여 역사할 필요가 아주 큰 것이다. 사탄이 사람의 육체를 패괴시켜 사람은 사탄의 화신이 되었고, 하나님이 패배시킬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사탄과 싸우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모두 땅에서 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이 되어 사탄과 싸워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41. 사람의 육체는 가장 심하게 패괴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었는데, 심지어 공개적으로 대적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 패괴된 육체는 그야말로 매우 완고하며, 육체의 패괴 성정은 다루기 가장 어려운 것이고 변화시키기 가장 어려운 것이다. 사탄은 사람의 육체에 와서 방해하고, 사람의 육체를 이용해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파괴한다. 따라서 사람은 사탄이 되었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 사람을 구원하려면 먼저 사람을 정복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도 손 놓고 있지 않고(원문: 不甘示弱) 육신에 와서 그가 하려는 사역을 하고 사탄과 싸움을 전개하는데, 그 목적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고 그를 거역한 사탄을 패배시키고 훼멸시키려는 것이다. 사람을 정복하는 사역으로 사탄을 패배시킴과 동시에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는데, 이것은 일거양득의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42. 그가 육신에서 역사하는 것도 사실은 육신에서 사탄과 싸우는 것이고, 육신에서 역사하는 것은 영계에서의 사역을 하는 것인데, 그는 영계에서의 사역을 전부 땅에 실제화하였다. 정복하는 것은 그를 거역하는 사람이고, 패배시키는 것은 그를 적대시하는 사탄의 화신이며(물론, 역시 사람이다), 결국에 구원을 받는 것도 역시 사람이다. 그리하여 그는 더더욱 피조물의 외형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였다. 그래야 사탄과 실제적인 싸움을 하여 그와 같은 외형이 있는, 그를 거역하는 사람을 정복할 수 있고, 그와 같은 외형이 있는, 사탄에게 해를 입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그의 원수는 사람이고, 정복할 대상은 사람이며, 구원할 대상도 역시 피조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반드시 사람이 되어야 하였다. 그러면 그의 사역은 매우 편리하게 되어 사탄을 패배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를 정복할 수도 있고, 더욱이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43.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직접 영의 방식으로, 영의 신분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의 각도에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피조된 사람의 외형을 취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역시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전혀 그에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그가 피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도’를 육신(직역: 그가 입으려는 육신)에 가져와야만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도’를 친히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듣고 보고, 나아가 그의 도를 얻어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성육신되지 않았다면, 혈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고, 또한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격살당할 것이고, 또는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는 연고로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혀 갈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44. 구원받는 사람에 대해 말하면, 영의 사용가치는 육신의 사용가치보다 훨씬 못하다. 영의 역사는 전 우주에 보급되고 산천 호수에 파급될 수 있으나, 육신의 역사는 그와 접촉하는 각 사람과 더욱 효과적으로 관련될 수 있고, 또한 형체가 있는 육신은 사람의 이해와 신임을 더욱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의 실제 행사에 대한 인상을 더욱 깊어지게 할 수 있다. 영의 역사는 신묘막측하여 범속한 사람이 예측하기 어렵고, 보기는 더욱 어려워 다만 근거 없이 상상할 뿐이다. 육신의 역사는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또한 풍부한 지혜가 있는데, 범속한 사람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 지혜를 직접 깨달을 수 있어 풍부한 상상을 펼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육신의 하나님이 역사하는 정확성과 실제적 가치이다. 영은 다만 사람들이 보지도 못하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영이 깨우쳐 주거나 감동을 주거나 인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유가 있는 사람을 놓고 말하면, 영의 이런 역사는 사람에게 명확한 뜻을 줄 수 없고, 감동이나 대체적으로 비슷한 뜻만 줄 뿐이지 말로 지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역사는 이와 크게 다르다. 육신이 역사하면 정확한 말씀의 인도가 있고, 명확한 뜻이 있고 명확한 요구 목표도 있으므로 사람이 모색할 필요도, 상상할 필요도, 더욱이 추측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육신이 역사하는 명확성인데, 영의 역사와 크게 다르다. 영의 역사는 일부 유한한 범위에만 적합할 뿐, 육신의 역사를 대체할 수 없다. 육신이 역사하여 사람에게 정확한 목표를 요구하고 또 사람이 인식을 얻는 그 실제 가치는 영이 역사하는 정확성과 실제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45.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간절히 사모하는 각 사람에 대해 말하면, 영의 역사는 사람에게 감동이나 묵시만 줄 뿐이고, 기묘막측(奇妙莫測)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신기한 느낌만 줄 뿐이며, 위대하고 비범하고 사람이 모두 앙모하면서도 도달하지 못하고 닿지 못하는 느낌만 줄 뿐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영은 아득히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어 마치 매우 멀리 떨어져 있고 또한 영원히 서로 같을 수 없는 듯하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간격이 있는 듯하다. 사실상, 이것은 영이 사람에게 주는 착각일 뿐이다. 이 착각은 다만 영과 사람이 동류가 아니고, 영과 사람이 영원히 한 세계에서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 영은 사람이 갖추고 있는 어떤 것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해 말하면, 영은 사람의 필요가 전혀 아니다. 그것은 영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사역을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신의 역사는 사람에게 실제적인 추구 목표를 주고, 명확한 말씀을 주며,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느낌을 주고, ‘보잘것없고’ ‘평범한’ 느낌을 준다. 사람이 비록 두렵다고 느끼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래도 상당히 접촉하기 쉬운 것이다. 사람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므로 아득히 멀리서 바라볼 필요가 전혀 없다. 이 육신은 사람에게 아득히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측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이 육신은 사람과 같은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46. 패괴된 사람에게는 오직 정확한 말씀, 명확한 추구 목표,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역사만이 가장 가치 있는 역사이다. 오직 현실적인 역사와 시기 적절한 인도만이 사람의 취향에 맞고, 오직 실제적인 역사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된 성정에서 구원해 낼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47. 육신에서 역사하는 최대의 장점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말씀과 정확한 부탁을 남길 수 있고, 인류에 대한 그의 정확한 뜻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가 육신에서 한 모든 사역과 전 인류에 대한 그의 뜻을 이 도를 받아들이는 각 사람에게 더 정확하고 더 실제적으로 전해 줄 수 있다. 육신의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게 되어서야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하고 함께 생활하는 사실을 참으로 실현하게 되었고,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을 듣는 이 소망을 실현하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48. 영이 하는 사역은 묵시(원문: 隱含)적이고 난측(難測)하며, 또한 사람에게 간담이 서늘케 하여 접근하기 쉽지 않게 하므로 직접 구원 사역을 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고, 직접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데에도 적합하지 않다.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그래도 영의 사역을 사람과 가까이하는 다른 한 가지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즉,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하나님이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이 되어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성육신되어 영의 사역을 대신해야 한다. 이 역사 방식은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더없이 적합한 것이다. 이 3단계 역사 중에서 두 단계 역사는 육신이 한 것이다. 이 두 단계 역사는 또 경영 사역의 가장 중요한 일환이어서 두 차례 성육신은 서로 보완하고 서로 완벽하게 하는 것인데, 첫 번째 성육신은 두 번째 성육신을 위해 기초를 닦은 것이다. 다시 말해, 두 차례 성육신은 일체로 된 것이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 두 단계 사역을 성육신의 신분으로 역사한 까닭은 이 두 단계 사역이 전체 경영 사역에 있어 실로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차례 성육신의 역사가 없다면 전체 경영 사역은 정체될 것이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도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49. 3단계 역사 중에서 오직 한 단계 역사만 영이 직접 한 것이고, 그 외의 두 단계 역사는 모두 성육신 하나님이 한 것이지 영이 직접 한 것이 아니다. 영이 한 율법 사역은 사람의 패괴 성정을 변화시키는 데에 관련되지 않고,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도 관련되지 않는다. 육신이 한 은혜시대와 하나님나라시대의 사역은 모두 사람의 패괴 성정과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관련되고, 육신이 한 사역은 모두 구원 사역 중에서 중요하고 결정적인 사역이다.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는 성육신 하나님의 구원과 성육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가 더욱 필요하다. 인류는 성육신 하나님의 목양, 돌봄, 양육, 양성, 심판, 형벌이 필요하고, 성육신 하나님의 더 많은 은혜와 더 큰 구속이 필요하다. 오직 육신에 있는 하나님만이 사람의 지심인(知心人)이 될 수 있고, 사람의 목자가 될 수 있으며, 사람에게 그때그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오늘날이나 이전에 말씀이 육신 되어야 할 필요성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50.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도, 접촉할 수도 없는 영이다. 하지만 사람은 다 육체에 속한 피조물이고 사람과 하나님은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있고, 게다가 서로 다른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은 육체에 속한 사람과 아예 맞지 않아 전혀 ‘수교’할 수 없다. 게다가 사람은 영이 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피조물이 되어 그의 원래 사역을 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오를 수도 있고, 피조된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 영으로 될 수 없고, 더욱이 지극히 낮은 곳에 낮출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성육신을 예로 들면, 오직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을 구속할 수 있지 하나님의 영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속죄제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직접 육신을 입고 사람의 속죄제가 될 수 있지만, 사람은 직접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한 속죄제를 가져올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 사이를 몇 번 더 왕복해야지’, 사람에게 하늘에 올라오게 해 이 구원의 은혜를 받아 가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타락되었고, 또한 하늘에 전혀 올라갈 수 없으며, 더욱이 속죄제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친히 사람들 속에 와서 사람이 전혀 완성할 수 없는 그런 사역을 해야 하였다. 매번 말씀으로 된 육신은 모두 너무나 필요하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한 단계라도 직접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억울함을 참고 모욕을 당하면서 말씀이 육신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51. 심판하는 것은 패괴된 사람이고 육체에 속한 사람이지 사탄의 영을 직접 심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판 사역을 영계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서 진행하는 것이다. 사람의 육체가 패괴된 것을 심판하는 사역을 하기에는 오직 육신의 하나님만이 가장 적합하고, 육신의 하나님만이 가장 자격이 있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심판한다면 주도면밀하게 할 수 없고, 또한 사람이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그것은 영은 사람과 대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하나만으로도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없고, 더욱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을 분명히 보게 할 수도 없다. 오직 육신의 하나님이 인류의 패괴를 심판해야만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킬 수 있다. 똑같이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이지만 육신의 하나님은 사람의 불의를 직접 심판할 수 있다. 이것은 그가 본래부터 거룩하다는 것을 상징하고, 또한 뭇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상징한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사람을 심판할 자격과 조건이 있다. 그에게는 진리와 공의가 있기 때문에 사람을 심판할 수 있지만 진리와 공의가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52. 하나님의 영이 이 사역을 한다면 사탄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영은 본래부터 범속한 인간보다 위대하다. 하나님의 영은 본래부터 거룩한 존재이고, 본래부터 육체를 능가하는 존재이다. 영이 직접 이 사역을 하면 사람의 모든 패역을 심판할 수 없고, 사람의 모든 불의를 드러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념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도 한데, 사람은 영에 대해 본래부터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은 사람의 불의를 더 잘 드러낼 수 없고, 더욱이 사람의 불의를 확실하게 들춰낼 수도 없다. 성육신 하나님은 그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의 원수이다. 그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대적을 심판하는 것을 통해 인류의 패역을 모두 들춰냈는데, 육신이 하는 사역은 영이 하는 사역보다 도달하는 효과가 더욱 뚜렷하다. 그러므로 전 인류를 심판하는 사역은 영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53. 육신에 살고 있는 각 사람에 대해 말하면,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데는 추구 목표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데는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실제 모습을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오직 성육신 하나님만이 도달할 수 있고,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육신만이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되어야 할 필요성이고, 모든 패괴된 인류의 필요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54.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 영의 역사는 사람에게 더 많은 증거와 역사한 사실을 남겨 놓을 수 없으므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참모습을 볼 수 없고, 영원히 막연하고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을 신앙할 것이며, 영원히 하나님의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을 듣지도 못할 것이다. 사람이 상상한 것은 어쨌든 텅 빈 것이어서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대체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과 그 자신의 역사는 사람이 연기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육신되어 사람들 가운데 와서 친히 역사해야만 하늘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역사를 땅에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인식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인데,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55. 왜냐하면 내가 성육신된 그 목적은 주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육신에서의 내 신성의 행사를 보게 하고 실제의 하나님 자신을 보게 함으로써 사람 마음속의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의 자리를 없애 버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 사람의 먹고 입고 자고 거하고 행하는 것이 있고, 정상 사람의 말과 웃음이 있고, 정상 사람의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신성의 실질도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실제의 하나님’이라고 칭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부가: 제1편 말씀>에서 발췌

56. 하나님이 육신에 온 것은 주로 사람으로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보게 하기 위한 것이고, 형상이 없는 영을 육신에 실제화하여 사람들이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그에게 온전케 된 사람이야말로 그의 살아냄이 있는 사람이고 그에게 얻어진 사람이며 그의 뜻에 맞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만약 하늘에서만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고 실제적으로 땅에 오지 않는다면,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다만 텅 빈 이론으로 하나님의 행사를 전할 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실제가 되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주로 하나님이 얻으려는 사람을 위해 푯대를 세우는 것이고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을 만질 수 있고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진실로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57.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지 사람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 풍부하든지 하나님의 실제와 정상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이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형상과 소시(所是)를 전부 공포해야만 사람이 그를 더 실제적으로 알 수 있고,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이 효과는 육체에 속한 사람은 아무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이 역사 효과도 역시 하나님의 영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58.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직접 말씀한다면, 사람은 모두 ‘음성’ 앞에 순복하게 되므로 말씀으로 드러낼 필요 없이 사람은 모두 엎드러지게 될 것이다. 마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빛에 엎드러진 것과 같다. 하나님이 또 그렇게 한다면, 사람은 영원히 말씀의 심판으로 자신의 패괴를 인식하여 구원받는 이 목적에 이를 수 없게 된다. 오직 말씀이 육신 되어야만 말씀을 각 사람에게 직접 전해 줄 수 있기에 귀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말씀을 듣고 말씀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말씀으로 이르게 되는 효과이다. 영이 나타나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실제적이면서도 비범한 사역으로 사람의 깊은 곳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던 옛 성정들을 완전히 들춰내어 인식하게 하고 변화되게 한다. 이런 것은 다 말씀으로 된 육신이 하는 실제적인 사역인데, 아주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아주 실제적으로 심판한다. 따라서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효과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말씀으로 된 육신의 권병이고 성육신한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59. 말씀이 육신 된 까닭은 육신도 권병을 지닐 수 있고, 또한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도록 아주 실제적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는 모든 권병을 지닌 하나님의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보다 훨씬 실제적이고, 역사 효과도 뚜렷하다. 그것은 말씀으로 된 육신이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신의 외형은 권병을 지니고 있지 않아 사람이 가까이할 수 있지만, 그의 실질은 권병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도 그의 권병을 보지 못한다. 사람은 그가 말씀하고 역사할 때에도 그의 권병을 발견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그가 실제적으로 역사하는 데에 더욱 유리하다. 그의 이런 실제적인 역사는 모두 효과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비록 사람은 다 그가 권병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거스를 수 없는 그의 일면과 그의 진노를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은밀한 권병, 은밀한 진노, 공개한 말씀을 통해 그가 말씀하는 효과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어조와 말씀의 준엄함, 말씀의 모든 지혜로 사람을 심복구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권병이 없는 듯한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순복하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것 또한 말씀이 육신 된 다른 한 방면의 의의이다. 즉, 그것은 더 실제적으로 말씀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말씀의 실제로 사람에게서 효과를 보게 하여 하나님 말씀의 위력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이 이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전혀 효과를 볼 수 없고, 죄악된 사람을 완전히 구원하지도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60.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다 부득이한 것이고, 다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이다. 단지 사람에게 보여 주고 사람의 시야를 넓혀 주기 위한 것뿐이라면, 그는 절대로 쉽사리 인간 세상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땅에 온 것은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고, 그의 더 큰 사역을 위한 것이고, 사람을 더 많이 얻기 위한 것이며, 와서 시대를 대표하고 와서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인데, 그것도 육신을 입고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이며, 더욱이 전 인류의 삶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것은 다 그의 경영에 관련되고, 전 우주의 사역에 관련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된 것이 사람에게 그의 육신을 알게 하고 시야를 넓혀 주기 위한 것뿐이라면, 그는 왜 각국을 다니며 일주하지 않겠느냐?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적합한 정착지를 택하여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시작하였다. 이 육신만으로도 상당히 의의가 있는데, 그는 시대 전체를 대표하고, 또 시대 전체의 사역을 전개하며, 그는 옛 시대를 끝마치는 분이자 새 시대를 전개하는 분이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에 관련되는 큰일이고, 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한 단계 사역의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3)>에서 발췌

61. 오늘 네가 이 사람을 경배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영을 경배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을 아는 데에 있어서 최소한도로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육신에 의해 영의 실질을 인식하게 되고, 영이 육신 중에서 하는 신성 역사와 인성 역사를 인식하게 되며, 아울러 육신 중에서의 모든 말씀과 발하는 음성을 받아들이게 되고,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육신을 지배하고 어떻게 육신 중에서 그의 큰 능력을 나타내는지를 보게 된다. 육신을 통해 사람에게 하늘의 영에 대한 인식이 있게 되었고, 실제 하나님 자신이 사람들 가운데 나타난 것으로 인해 사람 관념 속의 막연한 하나님 자신을 제거하게 되었으며, 사람이 실제 하나님 자신을 경배하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순복의 성분이 첨가되었고, 하나님 영의 육신 중에서 하는 신성 역사와 인성 역사를 통해 사람이 계시를 받고 목양을 받고 생명 성정이 변화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영이 육신에 왔다는 실제 함의이다. 주로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접촉하고 의지하게 하여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62. 하나님이 지극히 낮추어야만, 즉 말씀이 육신 되어야만 사람은 그의 지기가 될 수 있고, 그의 지심인(知心人)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본래 영이고, 그토록 위대하고 또 측량하기 어려운데, 사람에게 어찌 그의 지기가 될 자격이 있겠는가? 오직 하나님의 영이 육신에 임하여 사람과 같은 외형이 있는 피조물이 되어야만 사람이 그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그에게 실제로 얻어질 수 있다. 그는 육신에서 말씀하고 역사하면서 사람과 고락을 함께하고 환난을 함께 겪으며, 같은 세계에서 생활하면서 사람을 보호하고 인도하여 정결함을 받게 하고, 그의 구원과 축복을 받게 한다. 사람은 이런 것을 얻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만 그의 지기가 될 수 있다. 그래야 실제적이다. 만약 사람이 그를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면 어찌 그의 지기가 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텅 빈 도리가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흡족해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63. 첫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였는데,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한 것이다.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한 것이다. 하지만 사탄의 패괴 성정은 여전히 사람 안에 존재한다. 두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더 이상 속죄제가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해 온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그리하여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완전히 정결케 되고, 성정이 변화되어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히 성결해지는 것이다. 율법시대가 끝난 뒤, 은혜시대부터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말세에 인류의 패역을 심판 형벌하는 사역을 하여 인류를 완전히 정결케 한 다음에야 구원 사역을 끝마치고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3단계 사역 중, 두 차례만 성육신으로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였는데, 그것은 3단계 사역 중에 한 단계만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는 사역이고, 나머지 두 단계 사역은 모두 구원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육신해야만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 있고, 인간 세상의 고통을 겪을 수 있으며, 정상 육신으로 살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피조된 사람에게 필요한 실제적인 도를 공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사람이 간구하여 하늘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모두 혈기에 속하고, 하나님의 영을 볼 수도 없고 더욱이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사람이 접촉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다. 그래야만 사람이 모든 도와 진리를 깨닫게 되고,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다.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사람의 죄를 제거하기에 충분하고, 완전히 정결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하나님이 성육신된 의의를 온전케 하였다. 이로부터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는 두 번째로 성육신된 후에 또다시 세 번째로 성육신되는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모든 경영이 이미 끝났고, 마지막 때의 성육신이 이미 그가 택한 사람을 완전히 얻었고, 마지막 때의 사람이 다 각기 부류대로 되었기에, 그는 또다시 구원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고, 육신으로 되돌아와 역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64. 당시에 예수는 남성으로 왔고, 이번에는 여성으로 왔다. 여기에서 너는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고 여자를 만든 것은 모두 그의 사역을 위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은 임의로 육신을 입을 수 있는데, 그 육신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다. 성별이 남자든 여자든 일단 말씀으로 된 그의 육신이기만 하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다. 가령 예수가 여성의 신분으로 나타났다면, 다시 말해 당시에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 단계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면, 지금 이 단계의 사역은 남성으로 바꾸어 해야 하는데, 여전히 사역을 완성할 수 있다. 어느 단계에 한 것이든 다 의의가 있고, 두 단계 사역은 중복되지도 않고 모순되지도 않는다. 당시에 예수가 역사할 때 독생자라고 칭했는데, ‘자(子)’라면 남성을 말한다. 이 단계에서는 왜 독생자라고 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역의 필요에 따라 예수와 다른 성별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는 사역을 할 때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아주 자유롭게 한다. 하지만 어느 단계든 다 실제적인 의의가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두 차례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였다>에서 발췌

65. 이 단계에 성육신이 고난을 받든지 직분을 하든지, 그것은 모두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마지막으로 말씀이 육신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두 번만 성육신할 뿐, 세 번 하지는 않는다. 첫 번째의 성육신은 남성이고 두 번째의 성육신은 여성으로, 사람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 육신의 형상을 이미 완전케 하였다. 더군다나 성육신의 두 차례 사역은 이미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을 끝마쳤다. 첫 번째의 성육신에게 정상 인성이 있는 것은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단계도 역시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이지만 그 의의는 첫 번째와 달라 첫 단계보다 더 깊고, 그가 사역하는 의의도 더 깊다. 하나님이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된 것은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단계 사역을 철저히 끝마치면 말씀이 육신 된 모든 의의, 즉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이 철저히 끝나게 되므로 더 이상 육신이 할 사역이 없게 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이후에 또다시 육신에 와서 역사할 리가 없다. 인류를 구원하고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성육신의 사역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쉽게 육신에 오지 않을 것이다. 육신에 와서 사역하는 것은 하나님이 육신이고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으며, 인류를 구속할 수 있고, 인류를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사탄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66. 예수의 그 단계 역사에서는 왜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지 않았다고 하겠는가? 바로 말씀이 전부 육신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한 사역은 단지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의 일부분이다. 그는 구속 사역만 했을 뿐, 사람을 완전히 얻는 사역은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세에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이 단계 사역도 평범한 육신에서 하는 것이고, 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하는 것인데, 그에게는 비범한 인성이 조금도 없다. 즉,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된 것인데, 하나님의 신분이 있는 사람이 역사하고, 완전한 사람이 역사하며, 완전한 육신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3단계 사역에서 모두 두 차례 말씀이 육신 되었고, 또한 두 차례 말씀이 육신 되어 한 사역은 모두 시대를 전개하고 새로운 사역을 하는 것이다. 두 차례의 성육신은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 사람의 육안으로는 두 육신이 하나의 근원임을 전혀 알아낼 수 없다. 물론, 이는 사람의 육안이나 사유로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실질은 본래부터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한 사역의 근원은 본래 하나의 영이기 때문이다. 두 차례 성육신의 근원이 하나인지의 여부는 육신의 출생 연대나 출생지 또는 육신의 기타 조건에 근거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발표한 신성의 사역에 근거해 결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 성육신의 사역에서는 예수가 한 사역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매 차례 역사하는 것은 순서에 따라 규정대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길을 개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사람 마음속에 있는 첫 번째 육신의 인상을 깊게 하거나 확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속에 있는 첫 번째 육신의 형상을 보충하고 완전(원문: 完善)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을 깊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사람 마음속에 있는 모든 규례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그릇된 형상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 자신이 한 어느 단계 사역만으로도 하나님에 대해 완전하게 알 수 없는데, 일부분만 인식할 수 있을 뿐 완전하지는 않다. 비록 그는 자신의 모든 성품을 발표하였지만 사람의 터득 능력이 유한하여 그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여전히 완전하지 못하다. 사람의 말로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다 밝히 말할 수 없는데, 하물며 한 단계 역사만으로 어찌 하나님을 다 밝히 말할 수 있겠는가? 육신의 사역은 정상 인성에 가려져 있기에 사람은 다만 그의 신성의 발표에서 그를 알 수 있을 뿐, 그의 육신의 외형에서는 그를 알 수 없다. 그는 육신으로 와서 서로 다른 역사를 통해 사람에게 그의 역사가 단계마다 모두 같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그래야만 육신에서 하는 그의 사역을 전면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 한 범위 내에 규정하지 않게 된다. 비록 두 차례의 성육신이 한 사역은 서로 같지 않지만, 육신의 실질은 같고 사역의 근원은 같다. 다만 두 차례의 성육신은 서로 다른 두 단계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게다가 두 시대에 나타났을 뿐이다. 어쨌든,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의 실질은 같고 그들의 근원은 같다. 이것은 그 어떤 사람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67. 예수가 한 단계 사역을 한 것은 단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라는 실질을 응하게 한 것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영이 육신과 함께하므로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말씀으로 된 육신이 하나님의 영과 함께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말씀이 육신 된 예수가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임을 더욱 증명할 수 있다. 이번 단계 역사는 바로 “말씀이 육신 되었다”라는 이 말에 내포된 뜻을 응하게 하였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에 내포된 뜻을 더욱 깊게 하였으며, 또한 너에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이 말씀까지도 확신하게 한다. 다시 말해, 창세부터 하나님께 말씀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하였으니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그의 말씀의 위력과 권병(역주: 권세)을 더욱더 나타내어 사람에게 그의 모든 도를 보게 하는데, 곧 그의 모든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하는 사역이다. 너는 이런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네가 육신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육신과 말씀, 육신과 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것인데, 이것이 해야 할 간증이고, 모든 사람이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두 번째 성육신의 사역인데, 마지막 한 번의 성육신으로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고,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전부 다 철저히 하고 발표하여 하나님이 육신에 있는 시대를 끝마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4)>에서 발췌

68. ‘하나님’이란 성령, 그 영, 일곱 배로 강화된 영, 만유를 포괄한 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이다. 그것도 보통 사람이고 극히 평범한 사람이며, 남성일 뿐만 아니라 또한 여성인데, 같은 점은 다 사람에게서 난 것이고, 다른 점은 성령으로 잉태된 것과 사람에게서 났으나 직접 영에서 온 것이다. 같은 점은 성육신 하나님이 모두 아버지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것이고, 다른 점은 하나는 구속하는 사역이고 하나는 정복하는 사역이라는 것이다. 똑같이 아버지 하나님을 대표하지만 한 분은 자비와 긍휼이 가득한 구속주이고, 한 분은 진노와 심판을 만재(滿載)한 공의로운 하나님이다. 한 분은 구속 사역을 개척한 대원수(大元帥)이고, 한 분은 정복 사역을 이루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다. 한 분은 시작이고, 한 분은 끝이다. 한 분은 무죄한 육신이고, 한 분은 구속을 완성하는, 사역을 계속 이어 가는, 본래 죄에 속하지 않는 육신이다. 같은 한 분의 영이지만 서로 다른 육신에 거하고, 또 서로 다른 곳에서 출생하였으며, 또한 몇천 년이란 간격을 두었지만, 하는 사역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서로 보완하므로 동시에 함께 논할 수 있다. 같은 사람이지만 한 사람은 남자아이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여자아이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해 너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서 발췌

69. 하나님의 실질은 신실한 것이어서 말한 대로 하고, 하는 대로 이룬다. 그는 신실한 분이다. 그가 사람에게 한 모든 것은 다 진실한 것이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대가를 치르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실제적으로 대가를 치르고, 사람의 고통을 감당하고 사람을 대신해 고통을 받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실제적으로 체험한다. 사람들 가운데 와서 생활하면서 이런 고통을 감수하고 이런 고통을 직접 눈으로 본 후, 전 우주 위아래의 모든 만물로 하나님이 한 것이 다 맞고, 다 공의롭고, 다 현실적이라고 말하게 하는데, 이것이 유력한 증거이다. 그 밖에, 훗날 아름다운 처소가 있게 하는데,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이 하신 것이 사람에 대해 확실히 사랑임을 찬미할 것이다. 그가 인간 세상에 온 것은 아무렇게나 한번 와서 좀 역사하고 말씀한 후 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인간 세상의 고통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 세상에 와서 사람이 되고 정상 사람으로 낮추어 인간 세상의 고통을 체험하는데, 이런 고통을 다 체험한 후에야 떠나게 된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이렇게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이것으로 하나님을 찬미하여 사람들에게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선한 면을 보게 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 된 이 방면의 의의에서 하나님의 아름답고 선한 실질을 볼 수 있다. 그는 어떤 일을 하든 다 진실하게 하고, 말을 해도 다 진실하고 신실하게 한다. 그가 하려는 일은 실제적으로 다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하면 실제적으로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신실한 하나님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말씀이 육신 된 두 번째 방면의 의의>에서 발췌

70. 성육신 하나님이 육신에 온 까닭은 전적으로 패괴된 사람의 필요로 인한 것인데, 사람의 필요이지 하나님의 필요가 아니다. 이 모든 대가와 고통은 다 인류를 위한 것이지 하나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득실과 보수라는 말이 없다. 그가 얻는 것은 나중에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원래부터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인류를 위해 행한 모든 것과 지불한 모든 대가는 더 많은 보수를 얻기 위하여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류를 위하여 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71. 왜 말씀이 육신 되었겠느냐? 이전에 하나님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인류를 구원한다고 말씀한 적이 있다. 말씀이 육신 된 여기에 모든 사랑이 들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인류가 극도로 하나님을 거역하여 이미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득이하게 말씀이 육신 되어 인류를 위해 몸을 바치고 모든 사랑을 바쳤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가 인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성육신 될 리가 없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천둥 치며 직접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를 발하면 인류가 땅에 쓰러질 것인데, 성육신하여 이렇게 큰 공력을 들이고,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고, 이렇게 큰 굴욕을 당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뚜렷한 예이다. 그는 자신이 고통받고 굴욕당하고 저버림받고 핍박받을지라도 인류를 구원하며, 이러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구원하러 왔는데, 이것이 사랑이 아니냐? 만약 공의만 있어 인류에 대해 끝없는 미움이 가득하다면, 그가 성육신 되어 사역할 리가 없다. 하나님은 인류가 극도로 패괴되었을 때에 멸절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고 인류에 대해 지극히 큰 사랑이 있기 때문에 성육신하여 극도로 패괴된 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에서 발췌

72. 하나님나라시대에서 성육신 하나님은 말씀을 하여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정복한다. 이것이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말세에 온 것은 바로 이 사역을 위한 것이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제적인 의의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단지 말씀만 하는데, 사실로 임하는 것은 아주 드물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질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말씀을 하는 것은 바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 즉 ‘말씀’이 ‘육신’에 온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말세에 이 사역(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이 사역)을 이루려고 하는데, 이것은 전체 경영 계획 중의 제일 마지막 항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반드시 땅에 와서 그의 말씀을 모두 육신에서 나타내야 하는데, 오늘날 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이후에 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하나님이 온전케 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마지막 때의 사람의 귀착지, 어떤 사람들이 구원받고 어떤 사람들이 멸망하는지 등등 마지막 때에 해야 할 이런 사역을 다 명확하게 말씀하였다. 이런 것은 모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제적인 의의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전에 반포한 행정과 헌법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멸망하고 어떤 사람들이 안식에 들어가는지에 대한 말씀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은 말세에 주로 이 사역을 완성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이 예정한 사람은 어디에 속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어디에 속하는지, 자민(子民)과 뭇 아들을 어떻게 나누는지, 이스라엘은 어떠하고 애굽은 어떠한지를 알게 한다. 이후에는 이런 말씀들이 다 일일이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이 빨라졌으므로, 각 시대에 하려는 것, 말세에 성육신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과 하려는 직분을 모두 말씀하는 방식으로 사람에게 공개한다. 이런 말씀은 모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제적 의의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73.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주로 ‘말씀이 육신 된’ 이 사실을 성취하기 위한 것인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에서 발하고(구약 모세 시대에 하나님이 직접 하늘에서 음성을 발한 것과는 다르다), 그다음 천년하나님나라시대에서 일일이 이루어지게 하여 사람이 볼 수 있는 사실로 이루어 조금의 차이도 없이 직접 사람에게 보여 준다. 이것이 하나님이 성육신된 지극히 큰 의의이다. 바로 육신으로, 또한 말씀으로 영의 사역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났다’는 진정한 함의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전 우주를 정복하는데, 말씀으로 된 그 육신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으로 전 우주 위아래의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말씀(원문: 道)’이 육신 된 것이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이다. 아마 사람이 보기에는 하나님이 대단한 사역을 한 것 같지 않겠지만, 하나님이 말씀을 발하기만 하면 사람은 다 *심복구복할 것이고 다 아연실색할 것이다. 사실이 없는 것으로 사람은 다 크게 떠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은 입을 가릴 것이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반드시 이룬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찍이 정해 놓은 계획이고, 말씀이 땅에 왔다는 이 사실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천년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에서 발췌

74. 이번에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서 역사하고,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데, 행하는 사역은 모두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람을 정복하는 것으로, 또한 너희를 온전케 하는 것으로 사탄을 패배시킨다. 너희가 굳센 간증을 해내면 이것도 사탄을 패배시키는 상징이 된다. 사람이 먼저 정복되고 마지막에 철저히 온전케 되는 것은 다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사탄을 패배시킴과 동시에 전 인류를 구원하여 이 공허한 고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전 우주의 사역을 하든, 혹은 중국에서 하는 사역이든, 모두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으로 전 인류를 구원하여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처소로 이끌어 들어간다>에서 발췌

75. 하나님은 정면으로 사람을 인도하는데, 그의 생명은 생수이고 무한량이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킬 대로 패괴시켰지만 결국에는 생명수가 사람을 온전케 하기에 사탄은 끼어들어 역사할 수가 없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완전히 얻을 수 있게 된다. 사탄은 지금도 굴복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과 승부를 겨루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는 “나는 반드시 사탄의 모든 흑암 세력과 권세를 이길 것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 육신에서 하려는 사역이고, 또한 말씀이 육신 된 의의이다. 즉, 사탄을 패배시키는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을 완성하여 사탄에게 속하는 모든 것들을 모조리 멸절시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전 인류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발전해 왔는지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76. 그가 육신에서 역사하여 사람에게 얻게 하는 것은 사람이 그의 정상 인성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의 십 배, 몇십 배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나 그런 관념은 마지막에 그가 한 사역으로 다 파묻힐 것이다. 사역이 도달한 효과, 즉 그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그에 대한 관념의 양을 훨씬 뛰어넘게 된다. 그가 육신에서 하는 사역은 상상할 수 없고, 짐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육신은 육체에 속한 어떤 사람과도 같은 육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형은 서로 같아도 실질은 전혀 다르다. 그가 육신이었기에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수많은 관념이 생기게 되었지만 그의 육신은 사람에게 수많은 인식을 얻게 할 수 있는데, 심지어 그의 육신은 그와 비슷한 외형이 있는 그 어떤 사람이든 정복할 수 있다. 그가 사람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외형을 가진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완전히 측량할 수 없고, 아무도 그를 완전히 알 수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77. 그리스도가 땅에 와서 비록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여 역사할 수 있지만 그가 땅에 온 목적은 사람에게 그의 육신의 형상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식견을 넓히게 하려는 것도 아니라, 사람이 그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아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신의 기능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육신에서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사람에게 그의 육신의 실질을 완전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78.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은 성육신의 형상으로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이 있는 성육신 하나님이 한 사역으로 공개하는 것인데, 그(他ㆍ她)가 한 사역으로 사람에게 그의 형상을 나타내고 그의 성품을 공개한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성육신되어 하려는 사역의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2)>에서 발췌

79. 만인에게 나타내는 것은 그의 공의로운 성품과 그의 모든 행사일 뿐, 그가 말씀으로 된 두 차례 육신의 형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그의 성품으로만 나타낼 수 있을 뿐, 성육신의 형상으로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인에게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지, 하나님이 두 차례 성육신했던 형상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의 형상으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두 차례의 형상이 합해져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2)>에서 발췌

80. 성육신 하나님은 ‘여호와의 뒷모습만 인류에게 나타내던’ 시대를 끝마쳤고, 인류가 막연한 하나님을 신앙하던 시대도 끝마쳤다. 특히, 마지막 한 차례 성육신 하나님의 역사는 전 인류를 모두 더 현실적이고, 더 실제적이고, 더 아름다운 시대로 이끌어 들어갔다. 율법과 규례의 시대를 끝마쳤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하나님,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 경영 계획 사역을 펼치고 인류의 심오한 비밀과 처소를 펼쳐 보이는 하나님, 인류를 창조하고 경영 사역을 끝마치는 하나님, 몇천 년이나 숨겨 왔던 하나님을 인류에게 공개하여 막연한 시대를 철저히 끝마치고, 전 인류가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시대를 끝마치고, 전 인류가 사탄을 섬기던 시대를 끝마치고, 전 인류를 참신한 시대로 완전히 이끌어 들어간 것이다. 이런 사역은 모두 육신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을 대신하여 역사한 성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81.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역사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있는 형상이 있는 육신이 되었는데, 형상이 없는 영이 아니라 사람이 접촉할 수도, 볼 수도 있는 육신이다. 그러나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대다수가 모두 형상이 없으면서도 자유 형상이 있는 비육신인 하나님이다. 그리하여 성육신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대다수 사람들의 원수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82. 비록 이 육신으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을지라도 이 육신이 그의 사역을 다 마칠 때에는 그와 적대되던 그 사람들이 더 이상 그의 원수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증인이 되는데, 그에게 정복된 증인이 되고, 그와 합하고 그와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증인이 된다. 그는 사람에게 육신이 하는 사역의 중요성을 알게 할 것인데, 사람은 사람이 살아가는 의의에 대한 이 육신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고, 사람의 생명이 진보하는 데에 대한 이 육신의 실제 가치도 알게 될 것이며, 더욱이 이 육신은 사람이 떠날 수가 없는 생명의 샘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83. 육신의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육신의 하나님은 사람을 철저히 정복할 수 있다. 사람은 육신의 하나님에 대해 대적에서 순복으로, 핍박에서 수용으로, 관념에서 인식으로, 저버림에서 사랑으로 바뀌는데,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의 역사 효과이다. 사람은 모두 그의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되고, 모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통해 그를 점차 알게 되며, 모두 대적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정복되고, 모두 그의 형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의 생명의 공급을 받게 된다. 이 모든 사역은 육신의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지 하나님이 영의 신분으로 하는 사역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84. 이 육신이 사람이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까닭은 그의 내적 실질이 어떤 사람과도 다르기 때문이고, 그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신분이 어떤 사람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 육신이 인류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까닭은 그가 사람이고 더욱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며, 그가 평범한 육신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가 그와 함께 땅에서 생활하는 패괴된 사람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이 사람이지만 성육신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 말하자면 가치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영이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영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잘 증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보다 더욱 철저하게 인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육신은 비록 평범하고 정상이지만 인류에 대한 그의 공헌과 인류의 생존에 대한 의의를 말하자면 아주 보배로운 것이고, 이 육신의 실제 가치와 의의는 어떤 사람도 짐작할 수 없는 것이다. 육신은 비록 사탄을 직접 멸할 수 없지만 그는 역사하는 방식으로 인류를 정복할 수 있고, 사탄을 패배시켜 철저히 그의 권세 아래에 굴복시킬 수 있다. 하나님은 성육신되었기 때문에 사탄을 패배시킬 수 있고,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다. 그는 사탄을 직접 멸하지 않고, 성육신되어 역사하면서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를 정복한다. 그러면 피조물 가운데서 그 자신을 더 잘 증거할 수 있고, 패괴된 사람을 더 잘 구원할 수 있다.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탄을 멸하는 것보다 더 좋은 증거가 되고 더욱 설득력이 있다. 육신의 하나님은 사람이 창조주를 알아가는 데에 더 이롭고, 피조물 가운데서 자신을 더 잘 증거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85. 이번에 온 하나님은 영체가 아닌 아주 평범한 몸으로 역사한다. 그 몸은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몸이며, 또한 하나님이 다시 육신을 입고 돌아온 몸이고, 아주 평범한 하나의 육신이다. 너는 그에게서 남다른 점을 볼 수 없으나,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었던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작디작은 육신이 바로 하나님의 모든 진리의 말씀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의 담당자이며, 또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인식하게 하는 발표이다. 너는 하늘의 하나님이 몹시 보고 싶지 않았는가? 너는 하늘의 하나님이 몹시 알고 싶지 않았는가? 너는 인류의 처소가 몹시 궁금하지 않았는가? 그는 너에게 아무도 알려 주지 못했던 이 모든 비밀을 알려 줄 것이고, 또한 네가 깨닫지 못한 진리도 알려 줄 것이다. 그는 너를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대문이자, 새 시대로 들어가게 하는 인도자이다. 이런 평범한 육신에게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심오한 비밀이 아주 많다. 그의 모든 행사는 네가 분명하게 측량하지 못하지만, 그가 행한 사역의 모든 목표에서 너는 그가 사람이 생각하는 평범한 육신이 아님을 충분히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말세에서의 하나님의 뜻을 대표하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비록 네가 그의 말씀이 천지를 진동하는 듯함을 들을 수 없고, 그의 두 눈이 불꽃 같음을 볼 수 없으며, 그의 철장(鐵杖)의 다스림을 받을 수 없지만, 너는 그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노하고 있음을 들을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이 인류를 긍휼히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고, 더욱이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의 정도 느낄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아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에서 발췌

86. 하나님이 말세에 행하는 사역으로 사람은 땅에서 하늘의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두 번째로 육신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비록 사람이 오늘날 보는 것은 사람과 다름없이 눈과 코가 있는 아주 보잘것없는 하나님이지만, 최종에 이르러 하나님은 너희에게 이 육신의 존재가 없다면 천지가 크게 변하고 이 사람의 존재가 없다면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혼돈하며, 인류가 모두 기근과 온역 가운데서 살게 된다는 것을 보게 할 것이다. 또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일찍이 사람을 모두 지옥에 멸했을 것이고, 이 육신의 존재가 없다면 너희는 영원한 괴수이고 영원한 시체임을 보게 할 것이다. 이 육신의 존재가 없다면, 온 인류는 큰 재난을 피하기 어렵고, 말세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징벌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이런 평범한 육신이 강생하지 않았다면, 너희는 살려야 살 수도 없고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다. 이 육신의 존재가 없다면, 오늘날 너희는 진리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 수 없으며, 오히려 죄업이 무거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을 것이다. 너희는 알고 있는가? 만약 하나님이 육신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 누구에게도 구원받을 기회가 없고, 또한 이 육신이 오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옛 시대를 벌써 끝마쳤을 것이다. 이러한데도 너희는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이 평범한 사람이 너희에게 이렇게 유익한데도 너희는 왜 기뻐하지 않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아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에서 발췌

87. 너희는 하나님이 육신 가운데 살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생존할 기회를 얻은 것인데, 이 모든 복은 이 평범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만국이 모두 이 평범한 사람에게 경배하고, 이 작디작은 사람에게 감사하고 순복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가져온 진리와 생명과 길이 온 인류를 구원하였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갈등을 완화시켰으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단축시켰고,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소통시켰으며, 또한 그가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얻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평범한 사람이 네가 믿고 앙모할 만한 가치가 없단 말인가? 이런 평범한 육신이 그리스도라고 칭함받을 자격이 없겠는가? 이런 평범한 사람이 사람들 가운데서의 하나님의 발표가 될 수 없겠는가? 사람에게 재난을 면케 해 준 이러한 사람이 너희가 사랑하고 붙들 만한 가치가 없단 말인가? 만약 너희가 그의 입으로 발표한 진리를 저버리고 또 그가 너희들 가운데서 거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너희의 결말은 무엇이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아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에서 발췌

88. 하나님이 말세에서 하는 사역은 모두 이 평범한 사람에게 의지한다. 그는 너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줄 수 있고, 더욱이 너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이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여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겠는가? 그의 진리가 너희를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하게 하기에 부족한가? 그의 행사가 너희를 눈으로 탄복하게 할 수 없는가? 아니면 그가 이끄는 길이 너희가 걸어갈 가치가 없는가? 도대체 어느 한 가지가 너희로 그에 대해 반감을 갖게 하고, 그를 저버리고 피하게 하는가? 진리를 발표하고 진리를 공급하는 자도 이 사람이고, 너희에게 행할 길이 있게 하는 자도 이 사람이다. 너희가 아직도 이러한 진리 가운데서 하나님 역사의 발자취를 찾을 수 없단 말인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아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에서 발췌

89. 예수의 역사가 없었다면, 인류는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의 성육신이 없다면, 십자가에서 내려온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하고, 영원히 새로운 시대로 들어갈 수 없다. 이러한 평범한 사람이 오지 않았다면, 너희는 영원히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볼 기회도 없고, 자격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모두 일찍이 멸망되었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너희를 너그럽게 용서하였고, 너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었다. 어쨌든 내가 마지막으로 알리고자 하는 것은 역시 그 한 마디이다. 말씀이 육신 된 이 평범한 사람은 너희에게 지극히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미 사람들 가운데서 행한 매우 큰 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아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에서 발췌

90.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고, 우리를 위하여 침식도 편하게 하지 못했으며, 우리 때문에 울고, 우리 때문에 탄식하며, 우리 때문에 병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의 처소를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굴욕을 참고 있었지만, 우리의 무감각과 우리의 패역은 그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였다. 이러한 소시소유(所是所有)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것이고, 또한 패괴된 어떠한 사람도 갖추지 못했고 이르지 못한 것이다. 그에게는 일반인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가 있으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는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분 외에는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고 광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며, 그분 외에는 하나님이 창세부터 오늘날까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심오한 비밀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며, 그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고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부탁을 발표하고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는 새 시대와 새 기원을 개척하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역사를 가져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으며, 막연함 속에서 지내던 우리의 삶을 끝냈고, 우리 전인(全人)으로 하여금 구원받는 길을 철저히 보게 하였다. 그는 우리 전인을 정복하고, 우리의 마음을 얻었다. 그 시각부터, 우리의 마음은 지각이 있게 되었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하였다. ‘이 평범한 사람, 이 작디작은 사람, 우리 가운데서 생활하고 계시면서도 우리에게 오랫동안 버림받았던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오매불망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 예수가 아닌가? 이분이야! 바로 이분이야! 이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야! 이분이 바로 진리, 길, 생명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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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소시(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②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④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⑤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⑥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⑦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⑧신묘막측: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오묘하다.

⑨심복구복(心服口服):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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