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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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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과 하나님 이름과의 관계 방면의 대표적인 말씀

1.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에는 시대마다 발표하는 진정한 성품이 있고,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시대에 따라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율법시대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류를 인솔하는 사역을 하였고, 땅에서 첫 단계 사역을 전개하였다. 그 단계 사역은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고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솔한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솔한 것은 땅에서 하나님이 사역할 근거지를 펼치는 것이었다. 그 근거지로 이스라엘 이외의 사역을 확장하였는데, 이스라엘에서 밖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 후의 사람은 모두 점차적으로 여호와가 하나님이고, 여호와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였고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였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사역을 밖으로 확장한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여호와가 땅에서 역사한 첫 번째 성지이다. 하나님이 제일 처음 땅에서 역사한 것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한 것인데, 그것은 율법시대에 한 사역이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고,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하며 그의 사랑, 그의 긍휼, 그의 구원으로 각 사람을 동반하고 있다. 사람은 오직 예수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해야만 평안과 희락을 얻을 수 있고, 그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그의 지극히 크고 지극히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그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그를 따르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고 죄사함을 받았다. 은혜시대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이었으므로 은혜시대의 사역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한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는 구약성경을 벗어나 새로운 사역을 하였는데, 그의 사역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끝났다. 이것이 예수가 한 모든 사역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에는 여호와가 하나님의 이름이었고, 은혜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을 대표하였으며, 말세에는 그의 이름이 전능하신 하나님, 곧 전능자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인솔하고,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얻으며, 최종에는 시대를 끝마친다. 각 시대에서, 각 단계 역사에서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2. 은혜시대는 예수의 이름을 기점으로 하여 시작된 것이다. 예수가 직분을 시작할 때는 성령이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기 시작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고,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그를 믿는 사람이 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한 것이었고, 사역한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었다. 구약의 율법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주로 한 사역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 뒤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 이상 여호와라 부르지 않고 예수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성령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을 하기 시작하였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3. ‘여호와’, 이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역사할 때 내가 취한 이름이다. 그 원뜻은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고, 또 사람을 인도하여 생활하도록 하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의 선민)의 하나님이고, 큰 능력이 있고,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킨다. 그 본뜻은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구속하는 속죄제라는 것이다. 그는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 분이고 은혜시대를 대표한 분인데, 단지 경영 계획 중의 일부분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고, 모세의 하나님이며,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 족속을 제외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하여 제단 위에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의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바란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었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낸 속죄제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 이름은 은혜시대로부터 온 것이고, 또한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 것이다. 예수 그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이 거듭나서 구원 얻게 하기 위해 있게 된 이름이고, 또한 전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있게 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그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표하고 은혜시대를 대표한 것이고, ‘여호와’ 그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있게 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역사에서 나의 이름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 대표적인 의의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마다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표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에 대한 존칭이고,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표하는데, 은혜시대에 구속된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구주’는 이미‘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에서 발췌

4. 예수가 한 사역은 예수 이름을 대표한 것이고, 은혜시대를 대표한 것이다. 여호와가 한 사역은 여호와를 대표한 것이고, 또한 율법시대를 대표한 것이다. 그들이 역사한 것은 하나의 영이 서로 다른 두 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다. 예수가 한 사역은 은혜시대만 대표할 뿐이고, 여호와가 한 사역은 구약 율법시대만 대표할 뿐이다. 여호와는 다만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백성을 인솔했고, 이스라엘 외의 각 족속도 인솔했다. 신약 은혜시대에 예수가 한 사역은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 이름으로 역사하여 시대를 이끈 것이다. …비록 서로 다른 두 이름으로 불렸지만 한 분의 영이 두 단계의 사역을 한 것인데, 사역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이름이 다르고 사역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시대도 다르다. 여호와가 오면 여호와 시대이고, 예수가 오면 예수 시대이다. 그러므로 한 번 오면 불리는 이름이 하나 있고,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며,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는데, 하나의 이름은 새로운 출로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분이고,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歷史)는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한다. 6천년 경영 계획을 끝마치려면 반드시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해야 한다. 날마다 새로운 사역을 하고, 해마다 새로운 사역을 해야 하며,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고 신기원을 개척하고 더 새로운 사역과 더 큰 사역을 개척해야 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이름을 가져오고 새로운 사역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5. 너희도 알다시피 지금은 이미 말세가 되었는데, 예수가 오면 설마 여전히 예수라고 불릴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앞으로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알려 주었는데, 그가 왔을 때, 결과는 메시아라고 불리지 않고 예수라고 불렸다. 예수는 자신이 다시 올 것이고 간 그대로 온다고 하였다. 예수가 그렇게 말한 것은 분명하지만, 너는 예수가 어떻게 갔는지를 보았느냐?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갔다고 해서 여전히 친히 흰 구름을 타고 사람들 가운데 오겠느냐? 그러면 계속 예수라고 불리지 않겠느냐? 예수가 재림할 때는 벌써 시대가 바뀌었는데, 계속 예수라고 불릴 수 있겠느냐? 설마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로만 불러야 한단 말이냐? 설마 더 이상 새 시대에 새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단 말이냐? 단 하나의 ‘사람’ 형상과 하나의 특정된 이름이 하나님의 전부란 말이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6. 사람이 말세에도 구주 예수가 강림하기를 바라고, 또한 예수가 유대에 있던 그 형상을 그대로 지니고 강림하기를 바란다면, 전체 6천년 경영 계획은 구속시대에 머물러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또한 말세가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것이며, 시대가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주 예수’는 다만 인류를 구속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고, 내가 취한 ‘예수’, 그 이름은 단지 은혜시대의 모든 죄인을 위해 있게 된 것이지 전 인류를 끝내기 위해 있게 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여호와ㆍ예수ㆍ메시아는 모두 나의 영을 대표하지만, 이 몇 이름은 나의 경영 계획 중의 서로 다른 시대를 대표할 뿐 나의 전부를 대표하지 않는다. 땅에 있는 사람이 부르는 나의 이름은 나의 모든 성품과 소시를 전부 다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고, 다만 서로 다른 시대에 나에 대해 다른 호칭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시대, 즉 마지막 시대가 올 때, 나의 이름 또한 바뀌게 된다. 여호와라고 칭하지 않고, 예수라고도 칭하지 않으며, 메시아라고는 더욱 칭하지 않고, 큰 능력이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라고 칭하는데, 이 이름으로 전체 시대를 끝마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구주’는 이미‘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에서 발췌

7.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러면 왜 여호와의 이름이 또 예수가 되었는가? 메시아가 오리라고 하였는데 어째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왔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어찌 바뀔 수 있었는가? 그런 것은 이미 했던 사역이 아닌가? 설마 하나님이 오늘날 새로운 사역을 할 수 없단 말인가? 어제의 사역도 바뀔 수 있었고, ‘여호와’의 역사도 ‘예수’가 이을 수 있었는데, ‘예수’의 사역을 또 다른 사역으로 바꾸어 이어 갈 수 없겠는가?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로 바뀔 수 있었는데, ‘예수’의 이름도 바뀔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다. 다만 사람의 머리가 너무 단순한 탓에 초래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 그의 역사가 어떻게 변하든, 또한 그의 이름이 어떻게 변하든, 그의 성품과 지혜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면 너의 식견은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너는 예수, 이 이름이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이니 하나님은 영원히 예수라고 해야 하고 다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너는 ‘예수’, 이 이름이 율법시대를 끝마치고 마지막 시대도 끝마치는 이름이라고 자신 있게 확정할 수 있겠는가? 누가 ‘예수’의 은혜가 시대를 끝마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8.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가 어찌 서로 다른 시대에 같은 사역을 할 수 있겠느냐? 그가 어찌 낡은 것을 지키겠느냐? ‘예수’, 이 이름은 구속 사역으로 인해 불린 이름인데, 말세에 예수가 재림할 때에도 이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느냐? 또다시 구속 사역을 할 리 있겠느냐? 여호와와 예수는 하나인데, 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겠느냐? 그것은 사역하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냐? 단 하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전부를 다 대표할 수 있겠느냐? 그러기에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고, 이름으로 시대를 대체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이름도 하나님 자신을 완전히 대표할 수 없고 시대성을 띤 하나님의 성품만 대표하기 때문에, 사역을 대표할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에 적합한 이름을 하나 택하여 전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다. 여호와 시대든 아니면 예수 시대든 다 이름으로 시대를 대표한 것이다. 은혜시대가 끝나고 마지막 시대가 도래하여 예수도 이미 왔는데, 그가 어찌 또 예수라고 불릴 수 있겠느냐? 그가 어찌 또 예수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올 리가 있겠느냐? 너는 예수가 나사렛 사람의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잊었느냐? 너는 ‘예수’가 인류의 구속주일 뿐이라는 것을 잊었느냐? 그가 어찌 정복하고 온전케 하는 말세의 사역을 담당할 리가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9. 바로 하나님의 이름과 하려는 사역과 서로 다른 형상으로 시대를 구분하고 시대를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사역은 그의 시대를 대표하고, 그의 각 시대의 사역을 대표한다. 가령 하나님이 각 시대에 하는 사역이 다 같고 다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면, 사람은 어떻게 인식하겠느냐? 하나님은 여호와라고만 불려야 하고, 여호와라고 불리는 분만이 하나님이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인식할 것이다. 혹은 하나님은 예수일 수밖에 없고, 예수란 이름 외에는 더 이상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없고, 예수 외에는 여호와도 하나님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전능한 것은 틀림없지만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하는 하나님이라고 여긴다. 또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는 하나님이므로 그를 예수라고 불러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면 너는 규례를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을 한 범위 내에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시대마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 불리는 이름, 지니는 형상, 하는 각 단계의 사역은 지금까지 전혀 규례를 지키지 않았고 전혀 제한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여호와이면서도 예수이고 또한 메시아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의 사역이 점차 바뀌면서 그의 이름도 상응하게 바뀌었는데, 어느 한 이름도 그를 완전하게 대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불리는 이름은 다 그를 대표할 수 있고, 각 시대마다 하는 사역은 다 그의 성품을 대표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0.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고 하는데, 그 말도 맞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이 영원불변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의 이름이 바뀌고 사역이 바뀌었다고 하여 그의 실질이 바뀌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다. 이것은 영원불변한 것이다. 네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이 끝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는 것만 안다. 그러나 하나님이 또 항상 새롭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그의 사역이 영원불변하다면, 그가 오늘날까지 인류를 이끌어 올 수 있었겠느냐? 그가 영원불변한 하나님인데, 왜 이미 두 시대의 사역을 하였겠느냐? 그의 사역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의 성품을 점차적으로 사람에게 나타내는 것인데, 나타내는 것은 모두 그의 고유한 성품이다. 처음에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에게 감춰진 것이었고, 그가 지금까지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않아 사람은 그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역사로 사람에게 자신의 성품을 점차적으로 나타내는데, 이렇게 역사한다고 하여 시대마다 성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끊임없이 바뀐다고 하여 하나님의 성품도 끊임없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역하는 시대가 다름으로 인해 하나님이 자신의 고유한 모든 성품을 점차적으로 사람에게 나타내어 하나님을 알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에게 원래 특정된 성품이 없었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시대가 다름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도 점차적으로 바뀐다는 것은 그릇된 터득이다. 하나님은 고유한 특정된 성품, 곧 자신의 소시를 사람에게 나타내는데, 시대가 다름에 따라 나타내는 것이지, 한 시대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발표해 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항상 새롭다’는 이 말은 하나님의 사역을 놓고 말한 것이고, ‘하나님이 영원불변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고유한 소유소시를 놓고 말한 것이다. 어쨌든 너는 6천년의 사역을 어느 부분에 지정해 놓거나 한 마디 고정된 말에 못 박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러면 사람이 우매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하나님의 사역은 한 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마치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대체할 수 없고, 하나님이 또 예수의 이름으로도 역사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고 있는 상징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1.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기묘,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위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는 영원불변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고 끊임없이 심화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항상 새롭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게 되고, 시대마다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게 되며, 시대마다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자신의 새로운 뜻과 새로운 성품을 보게 한다. 새 시대에 사람이 새로운 성품의 발표를 보지 못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아 놓지 않겠느냐? 그것은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2. 예수 이름,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해 밝히 설명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만일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바꿀 리가 없기에 하나님은 예수라고 할 수밖에 없고 더 이상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면, 이 말이야말로 모독인 것이다! 말해 보아라. 단지 ‘예수’라는 이름,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많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지만, 그 많은 이름 중에서 어느 이름도 하나님의 전부를 개괄할 수는 없고, 어느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많지만, 그 많은 이름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전부 밝히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너무나 풍부해서 그야말로 다 인식할 수가 없다. 사람은 인류의 언어로 하나님을 다 개괄할 수가 없다. 인류는 얼마의 유한한 어휘로 사람이 인식한 하나님의 성품, 즉 위대, 존귀, 기묘, 난측(難測), 지고지상, 거룩, 공의, 지혜 등등을 개괄할 뿐이다. 너무나도 많다! 이 몇 개의 유한한 단어로는 사람이 본 유한한 하나님의 성품마저도 다 묘사해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기엔 하나님에게 많은 이름이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에게는 또 이름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시(所是)는 너무나 많고 사람의 언어는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특정한 단어와 특정한 이름만으로는 전혀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할 수 없다. 그러면 말해 보아라. 하나님의 이름이 고정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이처럼 위대하고 거룩한데, 너는 하나님이 시대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러므로 각 시대마다 하나님 자신이 친히 역사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시대에 부합되는 이름으로 자신이 하려는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갖춘 특정한 이름으로 그 시대의 하나님 성품을 대표하는데, 하나님이 인류의 언어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영적 체험이 많은 사람, 하나님을 직접 본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의 특정한 이름으로는 하나님의 전부를 다 대표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직접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이 되면, 하나님은 여호와라고도 하지 않고 예수라고도 하지 않고 메시아라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창조주’이다. 그때에는 그가 땅에서 취한 이름이 모두 끝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땅에서 하는 사역이 끝나게 되고, 그에 따라 그의 이름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물이 다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가 계속 아주 합당하면서도 불완전한 이름으로 불릴 필요가 있겠느냐? 너는 지금도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따지고 있느냐? 네가 아직도 하나님을 여호와라고만 해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아직도 하나님은 예수로만 불려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3. 하나님은 본래 이름이 없었는데 사역을 해야 하고 인류를 경영해야 했기에 하나의 이름이나 두 개의 이름 또는 더 많은 이름을 취했을 뿐임을 너는 알아야 한다. 그가 어느 이름으로 불리든 다 그 자신이 자유로 택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피조물인 네가 규정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 자신의 이름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따라, 인류의 언어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사람이 개괄할 수는 없다. 너는 다만 “하늘에 하나님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은 하나님이라고 하고 큰 능력이 있는 하나님 자신이시며 너무나 지혜로우시고 너무나 높고 크시며 너무나 기묘하시고 너무나 신비로우시고 너무나 전능하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 더 말하고자 해도 말할 수 없고 그 정도밖에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예수 이름 하나만으로 하나님 자신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 말세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그가 역사하지만,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바뀌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14. 나는 여호와라고 칭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아라고 불린 적도 있다. 또한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 구주 예수라고 부른 적도 있다. 오늘날,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알고 있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온, 시대를 끝마치는 하나님이고, 나의 모든 성품을 만재하고 권병과 존귀와 영광을 가득 지니고 땅끝에서 일어선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도 없고, 나를 안 적도 없고,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분이 바로 말세에 사람들에게 나타났지만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는 아주 실제적으로 나타나 사람들 가운데 거하고 있는데, 마치 뜨거운 해 같고, 또 마치 불꽃 같으며,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다. 나의 말에 심판받지 않을 일인일물(一人一物)은 없고, 불사름 속에서 정결케 되지 않을 일인일물은 없다. 최종에 만국은 반드시 나의 말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되고, 또한 나의 말로 말미암아 산산이 부서진다. 이런 것으로 말세의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바로 다시 돌아온 구세주이고, 전 인류를 정복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보게 하고, 또한 내가 사람의 속죄제가 된 적이 있으나 말세에는 만물을 불사르는 해의 불길이 되었음을 보게 하며, 또한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해라는 것도 보게 한다. 이것이 내가 말세에 하는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취하고 또 이런 성품을 지닌 까닭은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뜨거운 해이자 불꽃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고, 나, 유일한 참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나의 본래 모습, 즉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만이 아니고 구속주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창해 속의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구주’는 이미‘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에서 발췌

15. 전능하신 하나님―하나님 나라의 군왕이 증거된 후로 하나님의 경영 범위는 온 우주에서 이미 전면적으로 펼쳐졌다. 중국에서만 하나님이 이미 나타났다고 증거된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각 나라, 각 지역에서 다 증거되었다. 그들은 모두 이 신성한 이름을 부르짖고 갖은 방법을 다해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구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서 교회에서 협력하며 섬기고 있다. 성령은 이렇게 기묘하게 역사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8편 말씀>에서 발췌

16.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아주 확실하고 아주 완전한 하나님 자신임을 보게 한다. 사람마다 *심복구복하며, 어떤 사람도 감히 더 이상 대적할 수 없고 감히 더 이상 논단할 수 없으며 감히 더 이상 비방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저주가 즉시 임하고 화가 그에게 내려 슬피 울며 이를 갈면서 멸망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만민으로 하여금 다 알게 하고, 우주 땅끝 집집마다 알려지며, 사람마다 알게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유일한 참 하나님이니 모두가 줄곧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데, 금방 말할 줄 아는 아이까지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큰 소리로 부른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35편 말씀>에서 발췌

(전편 하나님 말씀을 발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예수가 성육신한 그 사실이 있게 된 후부터 사람은 비로소 하늘에 아버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아들도 있고 더욱이 영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사람의 전통 관념으로는 하늘에 이런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삼일(역주: 삼위일체) 하나님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이런 관념을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세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통 관념이 상당히 심각한 그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 부분, 즉 성부, 성자, 성령인 것이다. 오직 그 세 부분이 합쳐져야만 하나님의 전부가 되고, 성부가 없으면 하나님의 전부가 아니고 성자나 성령이 없어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관념으로는 성부나 성자를 단독으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고, 오직 성부, 성자, 성령이 합쳐져야만 하나님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지금까지 모든 종교적인 신도들과 따르고 있는 너희 각 사람을 포함해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인식하는 것이 도대체 옳은지 그른지는 아무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희는 하나님 자신의 일에 대해 항상 흐릿하기 때문이다. 설사 관념적인 인식일지라도 너희는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모르는데, 그것은 너희가 종교적인 관념에 너무 심각하게 전염되었고, 종교적인 전통 관념을 너무 깊이 받아들여 아주 심하게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일에 있어 너희도 심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 왜냐하면 삼일 하나님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전통 관념이고 그릇된 인식이다. 여러 세기를 지나오면서 사람은 모두 이렇게 사람 머리의 관념으로 상상해 낸, 또한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낸,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고 있다. 오랫동안 많은 영적 위인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참뜻’에 대해 해석했지만, 해석한 자들도 위격이 다른 삼일 하나님에 대해 두리뭉실하여 분명하게 해석할 수 없었고, ‘하나님’의 ‘구조’에 대해 사람은 모두 어리둥절하였다. 그 어떤 큰 인물도 분명하게 해석할 수 없었다. 대다수는 다 도리상이나 문자상으로는 넘어갈 수 있지만, 그 내포된 뜻을 완전하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것은 사람 마음속의 이런 ‘위대한 삼일 하나님’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하나님이 누워 있는 곳에 도대체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집’에 도대체 몇 만 세대 또는 몇 억 세대가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또 하나님의 고유한 구조는 도대체 몇 부분으로 되어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운 좋게 하나님의 처소에 가서 유람한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주요하게 조사할 것은 바로 성부의 연세가 얼마이고, 성자의 연세는 또 얼마이며, 성령의 연세는 도대체 얼마인지, 그리고 그들 각자의 모습이 어떻고,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나뉘고 또 어떻게 합하여 하나가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이처럼 오랫동안 아무도 이런 일들을 다 조사해 낼 수 없어 모두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것은 하늘에 올라가 유람한 후에 전 인류에게 ‘조사 보고’를 하여 삼일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열심 있고 경건한 모든 교계의 신도들에게 그 사실의 진상을 통보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에게 그런 관념이 있다고 해도 다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누가 성부 여호와 자신이 인류를 창조할 때에 성자 예수를 데리고 다니지 말라고 했는가? 만일 그들이 당시에 모두 여호와로 불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탓하려면,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일시적인 실수로 성자와 성령을 곁에 불러다 놓지 않고 자신이 혼자 역사한 것을 탓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동시에 역사하였다면 하나가 되지 않았겠는가?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의 이름만 있고 은혜시대에 예수의 이름이 없거나 혹은 은혜시대에 여전히 여호와로만 불렸다면, 하나님이 인류에 의해 분리되는 고통을 받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물론 이 모든 것 또한 여호와를 탓할 수는 없다. 탓하려면, 그 성령이 수천 년 동안 계속 이렇게 역사하면서 여호와라고도 불리고, 또 예수라고 불리기도 하며, 또 무슨 성령이라고 불리면서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하여 도대체 누가 하나님인지 모르게 한 것을 탓해야 한다. 만일 성령이 스스로 역사한다면 모양도 형체도 없고, 더욱이 예수라는 이런 이름 같은 것도 없으며, 사람이 만질 수도 없고, 더욱이 볼 수도 없으며, 단지 천둥 치는 소리만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역사하면 인류에게 더욱 유리한 것이 아닌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사람의 관념이 쌓여서 산이 되고 또 모여서 바다가 되어 오늘의 하나님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였는데, 그야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이다! 전에는 여호와, 예수 그리고 그들 사이의 성령, 이 세 분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는데, 오늘 또 ‘전능자’ 한 분을 더하고 그 역시 ‘하나님의 일부분’이라고 하니, 그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어느 위격에 얼마나 오랫동안 섞여 있고 숨겨져 있었던 분인지 누가 알겠는가? 이것을 사람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삼일 하나님만 해도 사람이 일생 동안 해석해야 하는데, 오늘 또 한 분의 ‘사일(四一) 하나님’까지 왔으니 이것을 또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너는 해석할 수 있겠는가? 형제자매들아! 너희는 이런 하나님을 어떻게 오늘까지 믿어 왔는가? 나는 정말 너희에게 탄복한다. 삼일 하나님만 해도 너희가 감당하기에 벅찬데, 오늘의 사일 하나님까지 이처럼 굳게 믿다니! 너희보고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는데, 참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참 대단하구나! 사람으로서 ‘네 분의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도 않는데, 너희는 이것이 기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가? 너희가 이렇게 큰 표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몰라보았구나! 사실,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삼일 하나님’은 전 우주 위아래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버지도 아들도 없고, 더욱이 아버지와 아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도구가 성령이라는 이런 학설도 없다. 이것은 모두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그릇된 논리이다! 그러나 이 그릇된 논리 역시 ‘근원’이 있는 것이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너희 사람들의 ‘머리’ 또한 단순하지 않고, 너희가 구상하는 것도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합당하고 교묘하며, 심지어 어떤 사탄도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쉽게도 모두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그릇된 논리일 뿐이다! 너희는 사실의 진상을 전혀 보지 못하였다. 너희는 단지 추리하고 상상한 후에 일련의 이야기를 편집하여 사람들의 신임을 사취하고, 또 가장 멍청한, 머리가 나쁘고 이지가 없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루어 너희의 위대하고 저명한 그 ‘전문가 학설’을 믿게 할 뿐인데, 그것이 진리인가? 그것이 사람이 마땅히 깨달아야 할 생명의 도인가? 다 허튼소리이다! 거기에 합당한 말은 한 마디도 없다! 오랫동안 ‘하나님’은 너희에게 이렇게 나뉘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너희가 한 세대 한 세대를 거치며 더 세밀하게 나누다 보니, 이젠 공개적으로 한 분의 하나님을 세 분의 하나님으로 나누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 사람은 하나님을 다시 함께 합칠 수가 없게 되었다. 그것은 너희가 하나님을 너무나 세밀하게 나누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일찌감치 이 사역을 하지 않았다면, 너희는 언제까지 제멋대로 날뛸지 모른다! 이대로 나누어 간다면, 하나님이 여전히 너희의 하나님일 수 있겠는가? 너희가 그래도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는가? 너희가 그래도 본래의 뿌리를 찾아 돌아올 수 있겠는가? 내가 한발 늦게 왔더라면 너희는 예수와 여호와, 이들 ‘부자’를 이스라엘로 쫓아 버리고 너희 자신을 하나님의 일부분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지금이 말세인 것이 다행이다! 간신히 오늘까지 기다려 내가 친히 이 단계 사역을 하게 되어서야 ‘하나님 자신’을 나누는 일을 제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너희는 하나님을 나눌수록 더 심해졌을 것이고, 심지어 너희들 가운데 있는 모든 사탄을 너희의 상 위에 놓고 봉양했을 것이다. 이것은 다 너희의 수단인데, ‘하나님’을 분할하는 수단이다! 이제 너희는 또 나누겠는가?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하나님은 도대체 몇 분인가? 어느 하나님이 와서 너희를 구원하는가? 너희가 날마다 기도하는 하나님은 큰 하나님인가, 둘째 하나님인가, 아니면 셋째 하나님인가? 너희가 날마다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느 하나님인가? 아버지인가, 아니면 아들인가? 아니면 영인가? 말해 보아라. 너희는 도대체 누구를 믿고 있는가? 그러면서도 말끝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데, 사실 너희가 믿는 것은 모두 다 너희의 ‘머리’이다! 너희들 마음에는 하나님이 아예 없다! 그러나 너희의 머릿속에는 오히려 많고 많은 ‘삼일 하나님’이 있다! 너희들이 말해 보아라. 그렇지 않은가?

삼위일체 논법에 따라 3단계 사역을 따져 보면 세 분의 하나님이 행한 사역이 같지 않으므로 그들은 곧 세 분의 하나님이다. 만약 누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확실히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삼위일체인지 해석해 보아라. 성부란 무엇인가? 무엇을 성자라 하는가? 무엇을 성령이라 하는가? 성부는 바로 여호와인가? 성자는 바로 예수인가? 성령은 또 무엇인가? 아버지는 영이 아닌가? 아들의 실질 역시 영이 아닌가? 예수가 행한 사역은 바로 성령이 한 것이 아닌가? 당시에 여호와가 행한 사역도 예수와 같은 한 분의 영이 행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에게 몇 분의 영이 있을 수 있는가? 만일 너희의 말대로 성부, 성자, 성령이 삼위일체라면 바로 세 분의 영인 것이다. 세 분의 영이면 하나님이 세 분이 되는데, 그렇다면 유일한 참 하나님이 아니다. 그런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고유한 실질이 있을 수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고 시인하는데, 그에게 어떻게 아들이 있고 또 아버지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다 너의 관념이 아닌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고 하나님의 위격 역시 오직 하나이며 하나님의 영은 오직 한 분이다. 바로 성경에 “성령이 하나이고 하나님도 하나이다”라고 기록된 것과 같다. 네가 말한 성부와 성자의 존재 여부를 떠나 어쨌든 하나님은 오로지 한 분이고 게다가 너희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여기고 있는 그들의 실질도 다 성령의 실질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바로 한 분의 영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성육신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살 수도 있고 또한 만유를 초월할 수도 있다. 그의 영은 만유를 포괄하는 영이고 또한 무소부재(無所不在)하는 영이다. 그는 육신에 거할 수 있고 동시에 전 우주 위아래에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이 모두 하나님을 유일한 참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상,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니 아무도 함부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의 영이고 위격도 하나밖에 없는데, 바로 하나님의 영인 것이다. 네가 말하는 성부, 성자, 성령에 따른다면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닌가? 성령도 다르고 성자도 다르고 성부 또한 다르며 그들의 위격도 각기 다를 뿐만 아니라 실질도 다른데, 어떻게 한 분인 하나님의 각 부분일 수 있겠는가? 성령이 영이라는 것은 사람이 쉽게 이해한다. 그렇다면 성부는 더욱 영인 것이다. 그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적도 없고 성육신한 적도 없으니, 사람 마음속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그도 틀림없이 영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이 영은 성령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가? 아니면 아버지의 영과 성령의 관계인가? 그들 두 영의 실질은 같은가? 아니면 아버지가 성령을 도구로 삼아 사용하는 것인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성자와 성령은 또 무슨 관계인가? 영과 영의 관계인가, 아니면 사람과 영의 관계인가? 이것은 모두 해석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그들이 한 분의 영이라면 세 위격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소유한 것은 한 분의 영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의 위격이 서로 다르다면 그들의 영은 강하고 약한 것이 있기 때문에 한 분의 영이라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성부, 성자, 성령이란 이 말은 가장 그릇된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을 나누는 것이다. 세 조각으로 잘려진 하나님에게 각자의 지위가 있게 되고 각자의 영이 있게 되는데, 여전히 한 분의 영, 한 분의 하나님일 수 있겠는가? 네가 말해 보아라. 천지 만물은 성부가 창조한 것인가, 성자가 창조한 것인가, 아니면 성령이 창조한 것인가? 어떤 사람은 그들이 공동으로 창조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성령이 인류를 구속한 것인가, 성자가 구속한 것인가, 아니면 성부가 구속한 것인가? 어떤 사람은 성자가 인류를 구속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성자는 실질상 또 누구인가? 하나님의 영이 성육신한 것이 아닌가? 육신이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한 것은 피조된 사람의 각도에 서서 말한 것이다. 너는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모르는가? 그의 안에 있는 것은 성령이다. 네가 어떻게 말하든지 그는 여전히 하늘의 하나님과 한 분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영이 성육신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무슨 성자라는 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모두 한 분의 영이 행한 사역이고, 모두 하나님 자신이 행한 사역이다. 즉, 하나님의 영이 행한 사역이다. 하나님의 영은 누구인가? 바로 성령이 아닌가? 예수에게서 역사한 것은 성령이 아닌가? 만일 성령(하나님의 영)이 역사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행한 사역이 하나님 자신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그 당시 예수가 기도할 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단지 피조된 사람의 각도에 서서 부른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영이 평범한 정상 사람을 입었기에 피조물의 외형이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의 안은 하나님의 영일지라도 그의 겉모습은 여전히 정상 사람이다. 즉, 예수 자신이 말한 것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말하는 ‘인자’가 된 것이다. 인자라고 한 이상,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다(남자든 여자든 다 사람의 외형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아버지라고 한 것은 바로 너희가 처음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과 같은 것이며, 피조된 사람의 각도에서 부른 것이다. 너희는 예수가 너희에게 가르쳐 주어 외우고 있는 주기도문을 기억하고 있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는 모든 사람에게 다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였다. 그가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한 만큼 그도 너희와 평등한 위치의 각도에서 하늘의 하나님을 칭한 것이다. 너희가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한 이상 예수도 자신을 너희와 평등한 위치의 사람, 하나님이 땅에서 택한 사람(하나님의 아들)으로 본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너희가 피조물이기 때문이 아닌가? 땅에서 예수의 권병(역주: 권세)이 얼마나 크든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는 여전히 성령(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인자이고 땅의 피조물 중 하나에 속하였다. 그가 사역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했는데, 그것은 단지 그가 자신을 낮추고 순복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하늘 위의 영)을 그렇게 칭했다고 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영의 아들이라고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선 각도가 다를 뿐이지, 위격이 다른 것은 아니다. 위격이라는 그런 그릇된 논리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는 육신의 제한을 받는 인자여서 영의 모든 권병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피조물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했었다.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세 번 기도한 것과 같다. 십자가에 오르기 전에 그는 단지 유대인의 왕이고 인자이며 그리스도였을 뿐, 영광의 몸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피조물의 각도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하는 자를 성자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예수가 너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준 그때부터 너희도 다 ‘성자’가 되지 않았겠는가? 만일 너희가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말해 보아라. 너희가 칭하는 ‘아버지’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만일 예수를 가리킨다면, 예수의 ‘아버지’는 또 너희의 누구인가? 예수가 떠난 후로 아버지와 아들이란 그런 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말은 다만 예수가 성육신한 그동안에만 적용될 뿐, 그 외에 너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할 때는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관계인 것이다. 어느 때를 막론하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논법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천고에 보기 드문 그릇된 논리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또 <창세기>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을 연상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인류를 지었다고 말씀한 이상 ‘우리’는 둘 이상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라고 말씀한 이상 한 분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추상적으로 ‘위격’이 같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말에서 성부, 성자, 성령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성부와 성자는 어떤 모양이고, 성령은 또 어떤 모양인가? 설마 세 형상을 합친 그 형상을 따라 오늘날의 인류를 만든 것인가? 그렇다면, 사람의 형상은 성부를 닮았는가, 아니면 성자를 닮았는가, 아니면 성령을 닮았는가? 도대체 하나님의 어느 위격을 닮았는가? 사람이 하는 이런 말은 전혀 맞지 않고 통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한 분의 하나님을 몇 분으로 나눈 것일 뿐이다. 당시에 모세가 <창세기>를 쓴 것은 창세후 인류가 있게 된 다음 쓴 것이다. 처음 세상을 창조할 때 모세라는 그 사람은 아예 없었다. 모세가 성경을 쓸 때는 시간이 오래 지난 뒤였는데, 그가 하늘의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했는지 알 수 있었겠는가? 그는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구약성경에는 그 무슨 성부, 성자, 성령이란 말이 없고 유일한 여호와, 참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만 기록되어 있다. 시대가 달랐기 때문에 하나님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렸지만 하나의 이름이 하나의 위격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에게 수많은 위격이 있게 되지 않겠는가? 구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의 역사이고, 율법시대에 하나님 자신이 한 시작의 역사이며, 있으라고 하면 있게 되고 세워지라고 명하면 세워지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여호와는 자신이 성부로 와서 역사한다고 말한 적이 없고, 또한 성자가 와서 인류를 구속할 것이라고 예언한 적도 없다. 예수 때에 이르러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전 인류를 구속한다고 말하였을 뿐, 성자가 온 것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시대가 다르고 하나님 자신이 하려는 사역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경지에서 역사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대표하는 신분도 달랐던 것이다. 사람들이 여호와를 예수의 아버지라고 여겼지만 예수는 인정하지 않고 “우리는 본래 아버지와 아들로 나누어지지 않느니라. 나와 하늘의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느니라. 아들을 본 자는 하늘의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라고 말했다. 어떻게 말하든지, 아버지든 아들이든 다 한 분의 영이고 위격의 구분이 없다. 사람이 말하기만 하면 복잡해지는데, 위격이 다르다고도 하고, 아버지, 아들, 영의 관계라고도 한다. 사람이 위격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물질화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누는데, 그것은 모두 참고할 가치가 전혀 없는 사람의 상상이지 현실이 아니다! 네가 만일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몇 분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네가 또 성부는 누구냐고 물으면, 그 사람은 성부는 하늘에 계신 그 하나님의 영이고, 모든 것을 주관하는 분이며, 하늘의 총책이라고 말한다. “그럼 여호와는 영이 맞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말한다. 네가 성자는 누구냐고 더 물으면 그는 당연히 예수라고 말할 것이다. “예수는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디로부터 오셨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예수님은 마리아가 낳은 분이고, 성령으로 잉태된 분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 그분의 실질도 역시 영이 아닌가요? 그분이 행하신 사역 역시 성령을 대표하는 것이 아닙니까? 여호와는 영이시고, 예수의 실질도 역시 영이시며, 말세의 이 단계도 더 말할 것 없이 여전히 영이신데, 또 무슨 서로 다른 위격이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영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영의 사역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요?” 이렇게 말하면 위격의 구분이 없게 된다. 예수는 그때에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므로 의심할 바 없이 예수의 사역도 성령의 사역이다. 첫 단계 여호와의 역사에서 그는 성육신하지 않았고 사람에게 나타나지도 않았으므로 사람은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높고 크든지 그는 영이고, 처음에 사람을 창조한 하나님 자신이며, 하나님의 영이다. 그가 구름 속에서 사람에게 말씀했지만 단지 영이어서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의 영이 육신에 오고, 유대에 성육신해서야 사람들은 처음으로 성육신한 하나님의 형상이 유대인의 형상임을 보게 되었는데, 그분이 여호와라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즉 여호와의 영으로 친히 잉태되었기에, 강생한 예수는 여전히 하나님 영의 화신인 것이다. 당시에 사람들은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의 몸에 임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예수 자신이 전적으로 사용하는 영이 아니라 성령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영이 성령과 분리될 수 있겠는가? 만일 예수는 예수이고 성자이며 성령은 성령이라면, 어찌 하나일 수 있겠는가? 그러면 사역을 할 수가 없다. 예수 안의 영과 하늘의 영 그리고 여호와의 영은 모두 하나인데, 성령이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영이라고도 하며, 일곱 배로 강화된 영이자 만유를 포괄하는 영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의 영은 매우 많은 사역을 할 수 있다. 그는 세상을 창조할 수도, 홍수로 세상을 멸할 수도 있고, 전 인류를 구속할 수도 있으며, 더욱이 전 인류를 정복할 수 있고 멸할 수도 있다. 이 사역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이지 어느 한 위격의 하나님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은 여호와라고도 할 수 있고, 예수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한 전능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주이고 그리스도이며, 인자가 될 수도 있다. 그는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으며, 모든 우주 위에도 있고 만인 가운데도 있는데, 하늘과 땅의 유일한 주관자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이 사역은 하나님의 영이 스스로 한 것이다. 하늘에서 한 사역이든 아니면 육신에서 한 사역이든, 다 그의 고유한 영이 한 것이고 다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어서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하늘의 피조물이든 땅의 피조물이든 다 그의 전능한 손에 장악되어 있다. 그는 하늘에 있는 영이라고 해도 하나님 자신이고, 사람들 가운데 육신으로 있다고 해도 여전히 하나님 자신이다. 비록 그의 이름이 무수히 많다고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 자신이며, 다 하나님 영의 직접적인 발표이다. 십자가 위에서 전 인류를 구속한 것은 그의 영이 직접 역사한 것이고, 말세에 각 나라와 각 지역에 분명하게 알리는 것도 역시 그의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이다. 어느 때든, 하나님은 오로지 전능하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칭하고, 만유를 포괄하는 하나님 자신이라고 칭할 뿐, 위격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성부, 성자, 성령이란 논법은 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에는 오직 한 분의 하나님만 있다!

하나님의 경영 계획은 모두 6천년이다. 사역이 다름에 따라 세 개의 시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시대는 구약 율법시대이고, 두 번째 시대는 은혜시대이며, 세 번째 시대는 마지막 시대에 속하는 하나님나라시대이다. 각 시대마다 대표하는 신분이 다른 것은 단지 사역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즉, 사역의 필요로 인한 것이다. 제1단계는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였다. 제2단계의 구속을 완성하는 사역은 유대에서 하였는데, 구속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독생자라고 하였다. 이것은 모두 사역의 필요로 인해 정한 것이다. 말세에 하나님은 이방 사역을 확장하고, 이방인을 정복하는 사역을 하여 그의 이름이 이방인 가운데서 크게 높임을 받게 하고, 사람을 인도하여 인생의 모든 바른길을 알게 하며, 모든 진리와 생명의 도(道)를 깨닫게 할 것이다. 사역은 다 한 분의 영이 한 것이기에 비록 선 각도가 다를지라도 사역의 성질과 원칙은 다 같은 것이다. 네가 그들이 행한 사역의 원칙과 성질을 보면, 모든 사역은 다 한 분의 영이 한 것임을 알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또 “성부는 성부이고, 성자는 성자이며, 성령은 성령인데, 마지막에 그분들이 합쳐져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그들을 어떻게 하나로 합치겠는가? 성부와 성령을 어떻게 하나로 합쳐야 하는가? 만약 원래 둘이라면 어떻게 합치든지 여전히 두 부분이 아닌가? 합친다고 하면 다른 두 부분이 함께 모여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이 하나의 전체가 되기 전에는 두 부분이 아닌가? 영이 한 분이면 한 분의 실질이니 두 분의 영을 한 분으로 합칠 수 없다. 영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며 물질세계의 것과 같지 않다. 사람이 보기에는 ‘성부가 한 분의 영이고, 성자가 한 분의 영이며, 성령이 또 한 분의 영인데, 세 분의 영을 물 세 컵을 한데 합치는 것처럼 합치면 하나의 전체가 되면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긴다. 이것은 그릇된 해석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나누는 것이 아닌가? 성부, 성자, 성령을 어찌 하나로 합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성질이 다른 세 부분이 아닌가? 또 어떤 이는 하나님은 분명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지 않았냐고 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라”라고 한 것은 당연히 하나님이 한 말씀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인데, 단지 다른 각도에 서서 자신을 증거한 것이고, 하늘에서 영의 각도로 말씀으로 된 육신을 증거한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성육신이지 하늘에 있는 그의 아들이 아니다. 너는 알기나 하는가?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라고 한 예수의 말은 원래 영이 하나임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저 성육신한 것 때문에 하늘 위아래로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여전히 하나이다. 어쨌든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이다. 시대가 다름으로 인해, 사역의 필요로 인해, 그리고 경영 계획의 절차가 같지 않음으로 인해 사람이 그를 부르는 것도 달랐다. 제1단계에서 역사할 때는 여호와라고만 불렀는데, 여호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목자였다. 제2단계에서는 성육신 하나님을 주님, 그리스도라고만 불렀다. 그러나 당시에 하늘의 영은 다만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지 하나님의 독생자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이런 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 어찌 독생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성육신하였기에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불린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이란 관계가 형성되었는데, 단지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예수가 기도한 것은 육신의 각도에서 한 것이다. 그가 이런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을 입은 이상, 그는 육신의 각도에서 말한 것이다. “나의 외형은 하나의 피조물이다. 내가 육신을 입고 땅에 온 이상, 하늘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는 다만 육신의 각도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의 본분이었고, 하나님의 영이 성육신하여 갖추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가 육신의 각도에서 아버지께 기도했다고 해서 그를 하나님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비록 그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신이다. 왜냐하면 그는 다만 영이 성육신한 것일 뿐, 실질은 여전히 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 자신인데 왜 기도할까?’라고 여기는데, 기도하는 까닭은 다만 그가 성육신 하나님이고 육신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이지 하늘에 계시는 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보기에 ‘성부, 성자, 성령은 다 하나님이고, 이 셋이 한데 합쳐져야 유일한 참 하나님으로 불리고 능력이 아주 크다.’라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그래야 일곱 배로 강화된 영이시고, 성자가 와서 기도하신 것은 바로 그 영에게 하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사실상, 그는 피조물의 각도에서 기도한 것이다. 왜냐하면 육신은 불완전하여 육신에 오게 되면 완전하지 않고 많은 연약함이 있고, 육신에서 역사할 때는 아주 큰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아버지 하나님께 세 번 기도한 것이다. 세 번 기도하기 전에도 여러 번 기도한 적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기도하고, 혼자 산에 올라가서도 기도했으며, 어선에서도,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기도했고, 떡을 뗄 때에도, 사람에게 축복할 때에도 기도했다. 그가 왜 그렇게 했겠는가? 그는 영에게 기도한 것인데, 육신의 각도에서 영에게 기도한 것이고, 하늘의 하나님에게 기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기에 그 단계 사역에서는 예수가 성자가 된 것이다. 왜 이 단계에서는 기도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그가 가져온 것이 말씀의 사역이고 말씀의 형벌, 심판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도할 필요가 없고, 그의 직분은 말씀만 하는 것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고, 사람에 의해 집권자들에게 넘겨지지도 않으며, 직접 역사하기만 하면 된다. 예수가 그때 기도한 것은 천국이 임하기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고, 훗날의 사역을 위해 기도한 것이다. 이 단계에는 천국이 이미 임했는데 또 기도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가 하는 것은 시대를 끝마치는 사역이어서 더 이상 새로운 시대가 없는데, 다음 단계를 위해 기도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럴 필요가 없겠지?

사람의 말에는 모순되는 곳이 많이 있는데, 물론 그것은 다 사람의 관념이다. 만일 그것을 따지지 않는다면 너희는 모두 옳다고 여길 것이다. 설마 삼위일체 하나님과 유사한 그런 말들이 다 사람의 관념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사람은 완전하게 인식하는 자가 없고 모두 불순물이 있으며 사람의 뜻이 너무나 많은데, 이것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을 피조물은 전혀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사람의 생각은 너무나 많은데, 모두가 논리와 사유에서 온 것이므로 진리와는 서로 대립된다. 너의 논리로 하나님의 사역을 철저히 분석할 수 있겠는가? 여호와가 행한 사역을 전부 투철하게 알 수 있겠는가? 사람인 네가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겠는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이 영원에서 영원까지 바라보겠는가? 네가 태고의 영원부터 이후의 영원까지 바라볼 수 있겠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태고의 영원부터 이후의 영원까지 바라보겠는가? 너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네가 무슨 자격이 있어 하나님을 해석하는가? 너는 무엇에 근거하여 해석한 것인가? 네가 하나님인가? 천지 만물은 하나님 자신이 창조한 것이다. 네가 창조하지도 않았는데 뭘 함부로 해석하는가? 지금도 너는 삼일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그러면 너는 너무 피곤하지 않은가? 그래도 네가 한 분의 하나님을 믿고 세 분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다. 그래도 좀 홀가분한 것이 좋다. 왜냐하면 ‘주의 짐은 가벼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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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소시(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②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③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④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⑤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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