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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과 신분에 관하여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임 받으려면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예전에 한 사역(구약ㆍ신약)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오늘날에 하는 사역에 대해서는 더욱 인식이 있어야 한다. 6천 년의 3단계 사역에 대해 모두 인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너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할 때,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너는 전할 수가 없다. 그들은 너에게 당신들의 하나님이 성경에 대해, 구약에 대해, 예수가 당시에 하신 사역과 말씀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분(하나님)이 성경의 실정을 말하지 못하셨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고, 말하셨다면 인정하겠다고 할 것이다. 예수도 처음에는 그의 제자들과 구약에 대해 많이 말하였다. 이는 그들이 본 것이 다 구약이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이 써낸 것이다. 너희가 복음을 전하려면 성경의 실정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에 대해서는 훤해야 한다. 즉, 여호와가 한 사역에 대해 훤해야 하고, 또 예수가 한 사역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가장 관심을 갖는 문제이다. 그들은 이 두 단계 사역에 대해 잘 모른다. 복음을 전할 때, 먼저 현재의 성령 역사에 대해 말하지 마라. 그들은 이 단계 사역에 닿지 못한다. 그 까닭은 너희가 추구하는 것 ―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성령 역사를 인식하는 것 ― 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이 두 방면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 네가 먼저 높은 것을 말한다면 그들은 닿지 못한다. 그 까닭은 아무도 이런 성령 역사를 체험한 적이 없고, 또 이런 사역은 전례가 없어 사람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체험하는 것은 이전의 낡은 것들이고, 또 가끔 성령 역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현재 역사나 하나님의 현재 뜻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계속 그런 낡은 실행 방식대로 행하기 때문에 새 빛과 새것은 전혀 없다.

예수 시대에 성령은 주로 예수에게서 역사하였다. 성전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던 그 사람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충실하게 여호와를 섬겼고 성령 역사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당시의 뜻을 종잡지 못하여 이전의 낡은 실행 방식대로 여호와께 충성하였을 뿐, 새 인도는 없었다. 예수가 새 사역을 가져왔지만, 성전 안에 있었던 그 사람들에게는 새 인도나 새 사역이 없었다. 성전 안에서 섬기는 것은 이전의 낡은 실행 방식을 유지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들은 성전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새 진입이 있을 리가 없었다. 예수는 새 사역을 가져왔으나 성전에 들어가 사역하지 않고 성전 밖에서만 사역하였다. 하나님은 사역 장소를 바꾸어 성전에서는 더 이상 사역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성전 안에서 섬기는 것은 기존 상태만 유지하는 것이었을 뿐, 새 사역과는 무관하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교계 인사들도 여전히 성경을 숭배하고 있다. 네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그들은 성경으로 논쟁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이 성경에 대해 말할 때 네가 어안이 벙벙해져 말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너희가 흐리멍덩하게 믿는다고 여길 것이다. 그들은 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조차 모르면서 무슨 하나님을 믿느냐며 너희를 깔보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들이 믿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왜 당신들에게 구약은 어떤 것이고 신약은 또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지 않습니까? 그분이 영광을 이스라엘에서 동방으로 가져왔다면 왜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을 모르십니까? 왜 예수님이 한 사역을 모르십니까? 당신들이 모른다는 것은 그분이 알려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예수의 두 번째 성육신이라면 왜 이런 것을 모르십니까? 예수님은 여호와께서 하신 사역을 아시는데, 그분은 왜 모르십니까?” 그때가 되면 그들은 너에게 이런 것들을 물을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은 이런 것들뿐인데 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이제 성경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이는 너희가 오늘날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하나님 사역을 따라오면서 직접 보았고, 또 3단계 사역에 대해서도 이미 명확히 보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내려놓고 연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연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까닭은 그들이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한 사역과 이전에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했던 사역에는 어떤 구별이 있나요? 다윗도 주로 불렸고, 예수님도 주로 불렸잖아요. 그들이 했던 사역은 달라도 호칭은 같은데, 왜 그들의 신분이 다르다고 하시나요? 요한이 본 것은 이상(異象)이고, 또한 성령에게서 온 것이며, 성령이 하려는 말씀을 한 것인데, 왜 요한의 신분이 예수님의 신분과 다르다고 합니까?” 예수가 한 말씀이 완전히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완전히 하나님을 대표하여 사역하였기 때문이다. 요한이 본 것은 이상에 속할 뿐, 요한은 완전히 하나님을 대표하여 사역할 수 없다. 요한, 베드로, 바울도 많은 말을 하였고 예수도 많은 말씀을 하였는데, 왜 그들의 신분은 구별이 있는가? 그 주요 원인은 그들이 한 사역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가 대표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고, 그의 사역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한 것이며, 또한 새 시대의 사역이고, 아무도 한 적이 없었던 사역이다. 그는 새로운 활로를 열었으며, 여호와를 대표하고 하나님 자신을 대표한다. 그러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다윗이 무엇이라고 칭함 받았든지 그들은 피조물의 신분을 대표하였을 뿐이고, 예수나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한 사역이 아무리 많고 행한 이적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들은 피조물일 뿐, 하나님의 영을 대표할 수는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거나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사역한 것이고, 예수나 여호와가 전개한 시대 안에서 사역한 것이지 그 외의 사역을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결국 피조물에 불과하다. 구약에서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을 하였고 예언서를 썼지만 아무도 그들을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가 오자, 그가 말씀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영이 그를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였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아마 이제는 알고 있겠지! 예전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여러 서신을 쓰고 많은 예언을 하였는데, 후세 사람들은 그중 일부만 선택하여 성경에 넣었고 또 일부는 소실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들이 한 말이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왜 좋은 것도 있고 좋지 않은 것도 있는가? 왜 선택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가? 정말 성령의 말씀이라면 사람이 선택할 필요가 있겠는가? 왜 예수의 말씀과 사역이 4복음서에 각각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가? 그것은 기록한 사람의 실수가 아닌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바울이나 신약의 다른 저자가 쓴 서신과 그들이 했던 사역에 사람의 뜻에서 기인한 것이 있고, 또 사람의 관념이 섞여 있다고 하시는데, 그럼 당신(하나님)이 오늘날 하신 말씀에는 사람의 불순물이 전혀 없습니까? 사람의 관념이 전혀 없습니까?” 하나님이 하는 이 단계 사역은 바울이나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한 사역과 완전히 다르다. 이는 신분만이 아니라 주로는 하는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울은 두드려 맞아 주의 앞에 엎드러진 후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역한 사람이다. 그는 보냄 받은 사람이어서 여러 교회에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는 예수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는 주 예수의 이름을 받들고, 주의 보냄을 받아 사역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와서 사역할 때는 그 누구의 이름을 받들어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을 대표하여 사역할 뿐이다. 하나님은 직접 사역하지, 사람처럼 온전케 되는 과정을 거치거나 어떤 사람이 가르친 기초에서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이 단계 사역은 자신의 체험을 말하여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의 속성에 따라 사역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여자, 형벌시대, 죽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등의 사역을 하였는데, 이런 것은 이전에 한 적이 없는 사역이고, 이 시대에 하는 사역이지 사람의 체험이 아니다. 나의 말 중에 어떤 것이 사람이 체험한 것인가? 다 직접 영에서 온 것이고, 다 영의 말씀이 아닌가? 네가 자질이 너무 부족해 밝히 보지 못할 뿐이다! 내가 말하는 실제적인 생명의 진리는 길을 이끄는 것이고, 이전에 아무도 말한 적이 없던 것이다. 이전에는 아무도 이 길을 체험한 적이 없고, 또 아무도 이 실제를 알지 못하였다. 내가 말하기 전에는 아무도 그런 말이나 그런 체험을 얘기한 적이 없고, 또한 아무도 그런 세부적인 것을 얘기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내적 상태를 짚어 드러낸 적도 없다. 오늘 내가 이끌고 있는 이 길은 이전 사람이 이끈 적이 없는 길이다. 사람에게서 온 것이라면 더 새로운 길이 있을 수 없다. 예를 들면, 바울이나 베드로는 예수가 길을 이끌기 전에는 자신의 체험이 없었고, 예수가 길을 이끈 후에야 그의 말씀과 이끈 길의 기초에서 체험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많은 체험이 있게 되어 그런 서신들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체험은 하나님의 사역과 다르고,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의 관념이나 체험으로 얻은 인식과는 다르다. 현재는 내가 새 길을 이끌고 새 사역을 하고 있기에 요한과 선지자들이 한 말이나 그들이 한 것과 같지 않다고 거듭 말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체험한 다음 다시 너희에게 말해 주는 것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 했다면 벌써 너희를 지체시키지 않았겠는가?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말했던 인식도 매우 높지만, 그들이 말한 것은 소위 영적인 사람들의 기초에서 말한 것이다. 그것은 길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체험에서 온 것이고, 사람의 깨달음과 인식에서 온 것이다. 어떤 것은 사람의 관념이고, 어떤 것은 사람이 종합해 낸 경험이다. 현재 내가 사역하는 성질은 그들과 완전히 다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인도를 받은 적이 없고, 다른 사람을 통해 온전케 되는 것을 겪지도 않았다. 또한, 내가 했던 말과 교통은 어떤 사람의 것과도 다르고, 지금까지 아무도 말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너희는 누가 사역하든지 다 내가 한 말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다. 이런 말씀과 사역이 없다면 누가 이런 것(기여자, 형벌시대…)을 체험할 수 있고, 누가 인식을 말할 수 있겠는가? 설마 네가 아직도 이런 것을 밝히 보지 못한단 말인가? 어느 단계의 사역이든 내게서 말씀이 나오기만 하면 너희는 내 말에 따라 교통하기 시작했다. 모두 내가 한 말에 따라 사역한 것이지 너희 중 누가 생각해 낸 길이 아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네가 이렇게 간단명료한 문제조차 밝히 보지 못한단 말인가? 이 길은 어떤 사람이 생각해 낸 것이 아니고, 어떤 영적인 사람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 낸 것도 아니라 새 길이기 때문에 예수가 말한, 때가 지난 많은 말씀까지 폐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천지를 개벽하는 사역이고, 새로 가업을 세우는 것이며, 내가 하는 사역과 말은 다 새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새 사역이 아닌가? 예수가 당시에 사역한 것 역시 이러하였다. 그가 한 것은 성전 안의 사람들이 한 것과 달랐고, 바리새인들이 한 것과도 같지 않았으며,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과도 달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고도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아닌지를 감히 확정하지 못하였다. 예수는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교훈하고 가르친 것은 다 새것이고, 구약의 옛 선지자들이 말한 것과 달랐다. 이런 까닭에 사람들은 확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힘들어 하는 부분이다. 이 단계의 새 역사를 받아들이기 전에 너희 많은 사람들이 간 길은 이전 영적인 사람들의 기초에서 실행하고 진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내가 하는 사역은 크게 다르다. 그래서 너희는 이 사역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이전에 어떤 길을 갔든, 누구의 밥을 먹었든, 누구를 너의 ‘아비’로 인정하였든, 내가 새 사역을 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이상, 나를 따르는 자는 내가 말하는 대로 해야 한다. 네가 어떤 ‘재벌 자식’이든 너는 나를 따라와야지 이전의 실행 방식대로 계속해서는 안 된다. 너는 ‘양아비’를 퇴위시켜야 하고, 네 하나님 앞에 가서 네가 얻어야 할 몫을 구해야 한다! 너의 모든 것이 내 손에 있으니 네 ‘양아비’를 너무 맹신하지 말라. 그는 너를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 오늘 하는 사역은 가업을 새로 세우는 것이다. 오늘 말하는 것은 이전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시작한 것임이 아주 분명하다. 네가 만약 사람이 스스로 세운 것이라고 말한다면 너는 구제 불능일 정도로 눈이 먼 것이다!

이사야, 에스겔, 모세, 다윗, 아브라함, 다니엘, 이들은 이스라엘 선민의 지도자나 선지자에 속하는데, 왜 하나님으로 불리지 않았는가? 성령은 왜 그들을 증거하지 않았는가? 왜 예수는 사역하고 말씀하자 성령이 증거하였는가? 왜 다른 사람은 증거하지 않았는가? 똑같이 사람이고 육신이며, 또한 주로 불렸다. 그가 어떻게 불리든 그가 하는 사역이 그의 속성과 본질을 대변하고, 그의 속성과 본질이 그의 신분을 대변한다. 호칭은 그의 본질에 관련되지 않고, 그가 나타내고 살아가는 것이 그의 본질을 대변한다. ‘주’로 불리는 것은 구약에서 극히 평범한 일이니 어떻게 불려도 된다. 그러나 그의 본질과 고유한 신분은 영원토록 변할 수 없다.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사람을 미혹하는 자들 중에도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가?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하지 못하고, 본래부터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며, 미혹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신분이 없기 때문이다. 다윗도 열두 지파에서 주라고 불리지 않았는가? 예수도 주라고 불렸지만, 왜 예수만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불렸는가? 예레미야도 ‘인자’로 불리지 않았는가? 예수도 ‘인자’로 불리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예수만 하나님을 대표하여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는가? ‘본질’이 같지 않은 까닭이 아닌가? 그들이 한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호칭이 뭐가 중요한가? 예수도 ‘인자’로 불렸지만, 그는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이었고, 정권을 담당하고 구속 사역을 완성하는 분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예수의 신분과 본질은 그와 같이 ‘인자’로 불리는 사람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 증명된다. 오늘 너희 중에 누가 감히 성령께 쓰임 받은 사람이 한 말이 모두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누가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네가 이렇게 말한다면 왜 에스라의 예언서와 옛 선지자들이 쓴 책을 다 빼 버렸는가? 모두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면 왜 너희는 감히 제멋대로 선택하였는가? 너에게 성령 역사를 선택할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이스라엘의 많은 이야기를 그들이 빼 버렸는데, 네가 이전에 기록한 그런 책들이 모두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여긴다면 왜 일부 책들은 빼 버렸는가? 모두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면 다 남겨서 많은 교회 형제자매들에게 배포해 보게 해야지 사람의 뜻을 첨가해 함부로 빼거나 선택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렇게 했어야 옳은 것이다. 바울과 요한, 그들의 체험에 자신의 깨달음이 섞여 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체험과 인식이 사탄에게서 왔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깨달은 것에서 왔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당시에 현실적으로 체험한 것에 근거하여 인식하였는데, 누가 감히 그런 것이 완전히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만일 4복음서가 완전히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면, 왜 당시에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이 네 사람이 예수가 한 사역에 대해 말한 것이 서로 다른가? 믿어지지 않으면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아라. 베드로가 주를 세 번 부인한 내용도 다 다르고 각기 ‘특색’이 있다. 식견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성육신 하나님 역시 사람인데, 그분이 하신 말씀이 완전히 성령에게서 온 것일 수 있겠습니까? 바울과 요한에게 사람의 뜻이 섞여 있다고 하는데, 설마 그분이 하신 말씀에는 섞여 있지 않단 말입니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눈이 멀었고 식견이 없다! 4복음서를 잘 보아라. 예수가 한 일과 말씀에 대해 그들이 기록한 것을 좀 보아라. 그야말로 사람마다 다 다른데, 제각기 자신의 견해가 있다. 만일 책의 저자가 쓴 것이 완전히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같아야 하고 통일적이어야 하는데, 왜 서로 다른 부분이 있는가? 이런 것에 대해 밝히 보지 못한다면 너무나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너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하면 어떻게 증거하겠는가! 너의 그런 인식 방식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 너에게 “요한과 누가가 기록한 것에 사람의 뜻이 섞여 있다고 하는데, 그럼 당신들의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는 그런 것이 없나요?”라고 물을 텐데, 네가 명확히 말할 수 있겠는가? 예수가 한 말씀을 듣고 예수가 한 사역을 보았던 누가와 마태는 자신의 인식을 말했는데, 그것은 예수가 한 사역의 일부를 회고록처럼 기록한 것이다. 너는 그들의 인식이 완전히 성령의 계시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성경 기록 외에도 그들의 인식보다 더 높은 영적인 인물의 많은 인식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후세 사람에게 채택되지 않았는가? 그들 역시 성령께 쓰임 받은 것이 아닌가? 너는 알아야 한다. 오늘 하는 사역은 예수가 한 사역의 토대 위에 나 자신의 깨달음을 더한 것이 아니고, 예수의 사역을 배경으로 삼아 나의 인식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는 당시에 무슨 사역을 하였는가? 나는 오늘날 무슨 사역을 하는가? 내가 하는 것과 말하는 것은 이전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가는 길은 이전 사람들이 간 적이 없었던 길이고, 역세 역대의 사람들이 간 적이 없었던 길이다. 그것은 오늘날 열려진 것이다. 이것은 영의 역사가 아닌가? 이전에 인도했던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한 것은 다른 사람의 기초에서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다르다. 예수 단계의 사역도 마찬가지로 그 자신이 새 활로를 연 것이다. 그는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면서 회개해야 하고, 죄를 자백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예수가 사역을 마친 후에 베드로와 바울이 예수의 사역을 계승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승천한 후, 그들은 그 영의 보냄을 받아 십자가의 진리를 전하기 시작하였다. 설사 바울이 말한 것이 매우 높다고 할지라도 예수의 기초에서 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인내하고, 사랑하고, 고난받을 것, 머리에 쓰고, 세례를 받을 것, 지켜야 할 규례 등을 가르쳤는데, 이런 것 역시 예수가 한 말씀의 기초에서 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새 활로를 열 수는 없었다.

예수가 당시에 말씀하고 사역할 때, 그는 규례를 지키지 않았고, 성경 구약의 율법에 따라 하지도 않았다. 그는 은혜시대에 해야 할 사역에 따라 하였다. 그는 그가 가져온 사역에 따라 하였고, 그 자신의 계획에 따라 하였으며, 그의 직분에 따라 사역한 것이지 구약 율법에 따라 사역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일을 할 때 구약 율법에 따라 하지 않았다. 그가 사역한 것은 선지자의 말을 응하게 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은 분명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러 오거나 의도적으로 옛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하는 것은 옛 선지자의 예언에 엇나가지 않고, 이전에 한 사역에 방해가 되지도 않는다. 그가 사역을 할 때 가장 뚜렷한 점은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는 선지자나 예언자가 아니라 ‘실천가’이다. 그는 아주 실제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여 새 기원을 열고 새 사역을 전개한다. 물론, 예수가 한 사역도 구약 옛 선지자의 말이 적지 않게 응한 것이고, 현재에 하는 사역 역시 구약 옛 선지자의 예언이 응한 것이다. 나는 더 많은 사역을 해야 하고, 너희에게 더 많은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너와 그 ‘오래된 누런 달력’을 펼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사역과 말씀은 성경 장절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는 그 사역이 너희에게 그리 큰 의의와 가치가 없고, 너희를 도와줄 수도 없으며, 변화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새 사역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어느 장절을 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령 하나님이 땅에서 역사하는 것이 그저 성경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하게 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말해 보아라. 성육신 하나님이 큰가, 아니면 옛 선지자가 큰가?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옛 선지자를 지배하는가? 너는 이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는가?

당시에 예수가 정식으로 직분을 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 역시 그를 따르는 제자들처럼 때로는 성전에서 예배하고, 찬송하고, 찬미하고, 구약성경을 보았다. 그가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왔을 때에 영이 정식으로 ‘그의 몸에 임하여’ 역사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신분과 해야 할 직분을 드러내었다. 그 이전에는 그의 신분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 없었는데, 마리아 외에는 요한조차 몰랐다. 그가 세례를 받을 때는 29세였다. 예수가 세례를 받자 하늘이 열리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있었다. 그가 세례를 받은 후부터 성령이 이렇게 그를 증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세례를 받지 않은 29세 전에는 정상인의 생활을 하였다. 정상적으로 식사할 때는 식사하였고 잠도 자고 옷도 입었으며, 타인과 다른 점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물론, 이것은 사람이 육안으로 본 것이다. 그 역시 때로는 연약하였고 때로는 어떤 일을 밝히 볼 수도 없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그의 나이와 그의 총명, 지혜는 함께’ 자라났던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평범한 정상 인성이 있고, 그는 정상인과 특별한 차이가 없으며, 그에게도 정상인의 성장 과정이 있고 특별함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있었다. 세례를 받은 후 그는 시험을 받기 시작하였고, 연이어 직분을 하고 사역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능력도 있고 지혜도 있고 권세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세례를 받지 않으면 성령이 그의 몸에 역사하지 않는다거나 성령이 그의 몸에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정식으로 역사하지 않았을 뿐, 세례를 받기 전에도 성령은 그의 안에 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시간의 제한을 받고, 더구나 정상인은 정상인의 성장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계속 그의 안에 거하고 있었다. 그가 태어날 때에는 다른 사람과 달리 샛별이 나타났었다. 또 그가 태어나기 전에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마리아가 한 남자 아기를 낳으리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느니라고 알려 주었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때는 성령이 역사하기 시작한 때이지, 성령이 그에게 막 임한 때가 아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의 몸에 임하였다는 것은 그가 직분을 하기 시작한 것을 놓고 말한 것이다. 그에게는 그 전에도 하나님의 영이 있었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역은 시작하지 않았다. 영은 경솔히 역사하지 않고 세례받는 방식으로 그를 증거하였다. 물에서 올라오자 영이 정식으로 그의 몸에서 역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이 직분을 하기 시작하였고, 구속 사역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예표한다. 즉, 은혜시대가 정식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하든지 다 때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는 세례를 받은 후에도 원래의 그 육신이었지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그는 사역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신분을 나타냈을 뿐이고, 게다가 그는 권세와 능력이 가득하였다. 이전과 다른 것은 이 부분뿐이다. 신분이 달라진 것, 즉 지위에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이 증거한 것이지 사람이 한 사역이 아니다. 사람은 처음에 몰랐다. 성령이 그렇게 증거하고 난 후에야 조금 알게 된 것이다. 성령이 증거하기 전에 예수가 매우 큰 사역을 하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자신이 증거하지 않는다면, 그가 한 일이 아무리 커도 사람이 그의 신분을 알 리는 만무하다. 사람이 육안으로는 밝히 볼 수 없기에 반드시 성령이 증거하는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성육신한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성령이 증거한 후에도 계속 이전처럼 역사하고 아무런 구별이 없다면 효과가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 주로 성령이 역사하는 부분을 선명하게 하려는 것이다. 성령이 증거한 후에는 반드시 성령이 사람에게 그가 하나님이고, 그의 몸에 하나님의 영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어 하나님이 증거한 것이 틀림없음을 분명히 보게 하는데, 이것도 증거가 정확하다는 것을 실증한다. 이전의 사역과 이후의 사역이 같다면 그의 성육신 직분을 두드러지게 할 수 없고, 성령의 역사 부분을 두드러지게 할 수 없다. 그러면 선명한 구별이 없는 까닭에 사람은 성령 역사를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성령이 성령의 증거를 지켜야 하므로, 증거한 후에는 반드시 그의 몸에 지혜와 권능을 나타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전과 달라야 했다. 물론, 이것은 세례의 효능이 아니다. 세례는 의식에 불과한 것으로, 세례받는 방식으로 그가 직분을 시작하는 시간을 나타냈을 뿐이다. 그런 사역은 하나님의 큰 능력과 성령의 증거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성령이 성령을 증거한 이상 끝까지 책임진다. 예수가 직분을 하기 전에는 그도 각처에서 말씀을 듣고 설교하고 복음을 전하였다. 하지만 어떤 큰 사역은 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직분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한 육신에서 낮추고 은밀히 거하고 있는 하나님 자신은 때가 되지 않으면 아예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례받기 전에 그가 역사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성령이 정식으로 ‘그의 몸에 임하여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에게 아직 사역할 능력과 권세를 주지 않은 것이다). 설사 그가 자신의 신분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후에 할 사역을 할 수가 없으므로 반드시 세례받는 날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간이기에 아무도 어길 수 없는 것으로, 예수 본인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사역에 엇나갈 리가 없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낮추는 일면이고, 또한 하나님의 사역에 법칙이 있는 일면이다. 그의 영이 역사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그의 사역에 참여할 수가 없다. 다른 하나는, 그가 세례받기 전에는 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이어서 일반 정상인과 아무 구별도 없었던 것이다. 이것도 성육신 하나님 육신의 초자연적이지 않은 한 면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은 하나님 영의 배치를 어기지 않고 순서 있고 절차 있게 아주 정상적으로 사역한다. 그의 사역에 권세와 능력이 있게 된 것은 세례받은 후부터였다. 다시 말해, 설사 성육신하였다고 하더라도 어떤 초자연적인 행동이나 정상인의 성장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없었다. 예수가 미리 자신의 신분을 알고, 또 세례받기 전에 곳곳에서 크게 사역하고, 정상인들과 다르게 비범함을 보였다고 하자. 그러면 요한이 사역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다음 단계 사역도 전개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한 것이 잘못된 것으로 증명되고, 사람은 하나님의 영과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이 하나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고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사역은 세례받은 후에 한 사역으로, 3년 동안의 사역을 가리킨다. 성경에 세례받기 전의 사역이 기록되지 않은 것은 그가 세례받기 전에는 사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사람이었고, 보통 사람을 대변할 뿐이었다. 그가 직분을 하지 않았을 때는 정상인과 완전히 같아서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29세가 되었을 때에야 예수는 자신이 한 단계 사역을 완성하러 온 자임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그 자신도 몰랐던 것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전혀 초자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열두 살 때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마리아가 그를 찾으니, 그는 “모친,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어린아이처럼 한마디 하였을 뿐이다. 물론, 그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는데 전혀 특별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의 특수함은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어느 유치한 아이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을 따름이다. 겉모습으로 보기에 그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본질은 특별하고 남달랐다. 참으로 그의 몸에서 성령이 역사함을 느끼고, 그가 하나님 자신임을 느끼게 된 것은 그래도 세례받은 후였다. 33세가 되던 그해에야 그는 참으로 성령이 그에게서 십자가의 사역을 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2세 때에는 실정을 조금 알고 있었다. 이는 마태복음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기록된 것과 같다. 그는 자신이 하려는 사역을 미리 알고 있었거나 태어나자마자 완전히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된 시간이 있었다. 성령은 그에게서 점차적으로 역사하였고, 과정이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자신이 하나님이고, 그리스도이며, 성육신한 인자임을 알고,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왜 이전에는 사역하지 않았겠는가? 왜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가 해야 할 직분을 알려 준 후에야 고민하고 슬퍼하며 또 그 때문에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겠는가? 왜 요한이 예수를 위해 길을 예비하고 그에게 세례를 베푼 후에야 예수는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깨닫게 되었겠는가? 그것은 이 모든 것이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한 사역임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그가 깨닫고 또 할 수 있기까지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육신한 하나님의 육신이어서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은 한 흐름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은 창세부터 지금까지 단계 단계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길을 예비하는 자가 없다면 뒤에 올 사람도 없고, 뒤에 올 사람이 있는 이상 길을 예비하는 자도 있게 마련이다. 사역은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한 단계가 한 단계를 이은 것으로, 길을 여는 자가 없다면 사역을 전개할 수 없고, 하나님이 앞으로 역사해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 단계도 엇나가지 않는다. 다 순서에 따라 이어져 형성된 한 흐름이고 한 영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길을 여는 사람이든 이어 가는 사람이든, 하는 일로 그들의 신분을 결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은가? 요한은 길을 열었고, 예수는 이었다. 그렇다고 예수의 신분이 요한의 신분보다 낮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여호와가 예수 전에 역사하였다고 너는 여호와가 예수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길을 예비하거나 잇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역하는 본질과 대표하는 신분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 말이 맞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려는 이상, 그는 반드시 길을 예비하는 사람을 일으켜 역사한다. 요한은 처음에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고 전도하였다. 요한은 처음부터 이 진리를 말했는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는가? 말을 한 순서에 따른다면, 요한이 천국의 복음을 먼저 전하였고 예수가 나중에 하였다. 사람의 관념에 따르면 요한이 새 길을 열었으니 요한이 예수보다 커야 당연하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도 그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통해 길을 열고 주의 길을 예비하였을 뿐이다. 그는 예수를 위해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므로 예수의 사역을 대체할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도 성령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가 길을 이끌었다. 여호와의 사역은 구약 전체 시대를 대변하였고, 이스라엘에서 한 전체 사역을 대변하였다. 모세는 땅에서 조금 수호했을 뿐이다. 그의 사역은 인성 협력에 속한다. 당시에는 여호와가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여 모세를 부르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모세를 일으켰으며, 사람들을 광야로 인도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게 한 것이지, 모세가 스스로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 여호와가 친히 지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이라고 불릴 수 없다. 모세도 율법을 정하기는 하였지만 그 율법은 여호와 자신이 모세에게 말하게 하여 반포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도 계명을 정하였고, 게다가 구약 율법을 폐하고 새 시대의 계명을 정하였는데, 왜 예수는 하나님 자신인가? 이는 같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에 모세가 한 사역은 시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새 길을 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여호와가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그에게 지시하여 하게 한 것이다. 그는 쓰임 받은 사람일 뿐이다. 예수가 왔을 때에 요한은 이미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하였고, 천국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성령은 처음에 그렇게 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오자마자 바로 그 자신의 사역을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한 사역은 모세의 말과 사역과는 매우 큰 구별이 있다. 이사야도 똑같이 그렇게 많은 예언을 하였는데, 왜 그는 하나님 자신이 아닌가? 예수는 그렇게 많은 예언을 하지 않았는데도 왜 하나님 자신인가? 당시에 아무도 감히 예수가 한 사역을 전적으로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였고, 전적으로 사람의 뜻에서 온 것이라고도 말하지 못하였으며, 아무도 감히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한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였다. 그런 일들은 사람이 분석할 수 없는 것이다. 이사야가 그런 사역을 하고 그런 예언을 한 것도 성령에게서 온 것이다. 직접 그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묵시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는 사역을 얼마 하지 않았고, 그렇게 많은 말씀이나 예언도 하지 않았으며, 사람이 보기에 별로 높은 진리를 가르치지도 않은 것 같지만, 그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이것은 사람이 설명할 방법이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요한을 믿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이사야나 다윗을 믿은 사람도 없으며, 그들을 하나님이라고 칭한 사람도 없었다. 즉,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칭하였을 뿐, 다윗 하나님이나 요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증거와 그가 담당했던 사역과 그가 했던 직분에 근거하여 구분한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큰 인물들인 아브라함, 다윗, 여호수아, 다니엘, 이사야에서 요한과 예수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한 사역에서 너는 누가 하나님 자신이고, 어느 부류의 사람이 선지자에 속하고 어느 부류의 사람이 사도에 속하는지 분별해 낼 수 있다. 누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이고, 누가 하나님 자신인지는 그들이 한 사역의 본질과 유형에 근거하여 분별하고 확정하는 것이다. 네가 이런 것마저 분명히 분별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가 하나님인 것은 그렇게 많은 말씀과 사역을 하였고, 특히 많은 이적을 행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요한도 그렇게 많은 일과 말을 하였고, 모세 역시 그런데, 그들은 왜 하나님으로 불릴 수 없었는가? 아담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한 자이다. 그는 피조물이라고 칭함 받았을 뿐, 왜 하나님이라고 칭함 받지 못하였는가?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하나님은 오늘날 그렇게 많은 사역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럼 모세도 그렇게 많은 말을 하였으니 그도 하나님 자신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너는 그에게 “하나님이 왜 당시에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증거하고 요한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증거하지 않으셨겠어요? 요한이 예수보다 먼저가 아닌가요? 요한이 한 사역이 큰가요, 아니면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큰가요? 사람이 보기에는 요한이 한 것이 크고 예수님이 하신 것이 작은데, 그러면 왜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요한을 증거하지 않으셨겠어요?”라고 반문하여라. 오늘날에도 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 당시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때는 여호와가 구름 속에서 그에게 말씀한 것이지, 그가 직접 말한 것이 아니다. 바로 여호와가 직접 인도한 것이다. 이것이 구약 때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이다. 모세에게는 그 영과 그 속성이 없기에 그는 그 사역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한 것과 예수가 한 것은 크게 다르다. 이는 행한 사역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인가, 아니면 선지자나 사도인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인가 하는 것은 사역의 성질로 분별하면 의문이 없을 것이다. 성경에는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대 이래, 큰 인물들 중 성경을 해석한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면 너는 그들을 다 어린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너는 그들이 해석한 것이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성경 해석가’일 뿐이다. 그들에게 어린양의 신분이 없는데 어찌 일곱 인을 뗄 자격이 있겠는가?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라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온 것은 일곱 인을 떼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 일은 별 필요가 없기에 사역을 하면서 겸하여 할 뿐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사역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겠는가? 6천년의 사역에 또 ‘어린양이 성경을 해석하는 시대’를 더할 리가 있겠는가? 그는 새 사역을 하러 왔다. 이전의 사역은 조금 밝힐 뿐이다. 사람에게 6천년 사역의 실정을 깨닫게 하면 되지 지나치게 많은 성경 장절을 해석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사역이다. 너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일곱 인을 떼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 사역을 하러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할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강림하는가?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강림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하나님을 믿는 너의 믿음에 과정이 하나 빠졌다. 그것은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되기만 하였을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에서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직접 이어받을 수 없다.

이 단계의 새 사역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너희 이 대단한 전도자, 설교자, 성경 해석가 그리고 소위 말하는 영적인 위인들이 어느 지경까지 발전되어 갈지 모른다! 이 단계의 새 사역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너희가 말하는 것은 여전히 다 낡아 빠진 것들이 아니겠는가? 그런 것들은 보좌에 오르거나 왕이 될 분량을 예비하는 것, 자기를 버리거나 자신을 극복하는 것, 인내하거나 모든 일에서 공과를 배우는 것, 겸손하거나 사랑하는 이런 것들인데, 이것은 옛 노래를 반복해 부르는 것이 아닌가? 포장만 바꾸고 내용은 바꾸지 않는 격이다! 머리에 쓰고 떡을 떼거나 안수기도하거나 병을 고치거나 귀신 쫓는 것인데, 무슨 새 사역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무슨 발전과 앞날이 있을 수 있겠는가? 네가 그렇게 이끌어 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규례를 고집스레 지키거나 해 오던 대로 계속해 나갈 것이다. 너희는 자신이 하는 사역이 대단히 훌륭하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고대의 그 ‘늙은이들’이 남겨 놓은 유전과 유훈인지 모른단 말인가? 너희의 언행은 그 늙은이들의 유언이 아닌가? 그 늙은이들이 임종 전에 남긴 부탁이 아닌가? 너는 너희가 한 것이 역대의 사도와 선지자를 뛰어넘고, 심지어 만유를 능가한다고 여기는가? 이 단계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위트니스 리의 ‘왕이 되어 보좌에 앉기를 추구하는 것’을 숭상하는 너희 사역을 제지시켜 기고만장한 기세를 꺾어 놓고, 이 단계 사역을 간섭할 수 없게 하였다. 이 단계 사역이 없다면 너희는 갈수록 더 깊이 빠져 구제 불능이 될 것이다. 너희들 가운데에는 낡아 빠진 것들이 너무나 많다! 현재의 사역이 너희를 끌어왔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다면 너희는 어디로 갔을지 모른다!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면, 너는 왜 새로운 것을 찾지 않는가? 왜 계속 그 낡아 빠진 것들을 지키고 있는가?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성령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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