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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상 (2)

은혜시대에 전한 것은 회개의 복음인데,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지금은 구원을 얻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정복과 온전케 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한다. 아무도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온 집안이 복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고, 한 번 구원을 얻으면 영원히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없는데, 이것은 낡아 빠진 것이다.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것이기에, 그를 믿는 자라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를 믿기만 하면 속량되었고,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또 천천히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사람이 완전히 예수에게 얻어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에 속하지 않고 죄가 사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가 당시에 많은 사역을 하였어도 제자들은 알지 못하였고, 그가 많은 말씀을 하였어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당시에 예수 자신이 해석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가 떠난 몇 년 후에 마태가 그를 족보에 나열하였고, 다른 사람도 사람의 뜻이 담긴 사역을 많이 하였다. 그때에는 사람을 온전케 하거나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천국의 복음을 가져오고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는 한 단계 사역을 위한 것이었기에, 십자가에 못 박힌 후 그의 사역은 전부 끝났다. 그러나 이 단계의 정복 사역은 반드시 더 많은 말씀을 해야 하고, 더 많은 사역을 해야 하며, 또한 많은 과정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예수가 이전에 한 사역이나 여호와가 한 사역의 심오한 비밀을 다 열어 놓아 모든 사람이 다 분명하고 밝히 알고 믿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말세 사역인데, 말세는 사역을 마무리하고 끝마칠 때이기 때문이다. 이 단계 사역에서 너에게 여호와의 율법과 예수의 구속을 밝히 알게 하는 것은 주로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사역을 알게 하고,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의의와 실질을 터득하게 하며, 예수가 한 많은 사역과 예수가 한 많은 말씀의 목적, 더 나아가 성경에 대한 너의 맹목적인 숭배까지 알게 하기 위한 것인데, 이런 것을 다 꿰뚫어 보게 하는 것이다. 너에게 예수가 그때 한 것과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것을 알게 하고, 모든 진리, 생명, 길을 알게 하고 보게 한다. 예수는 그 단계 사역에서 왜 전체 사역을 마무리하지 않고 갔느냐? 그것은 그 단계 사역은 마무리하는 사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가 한 말씀도 끝났고, 십자가에 못 박힌 후 그의 사역도 그에 따라 전부 끝났으며, 그 단계는 이 단계처럼 반드시 할 말을 다 하고 모든 사역을 다 마무리해야 사역을 끝마치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그 단계 사역에서 많은 말씀을 속속들이 다 하지 않았고, 밝히 말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다 했는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가 하는 것은 말씀의 직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떠났다. 그 단계는 주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한 것이므로, 이 단계와는 다르다. 이 단계 사역은 주로 마무리하고, 마당을 깨끗이 하고, 모든 사역을 끝마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을 끝까지 다 하지 않으면 사역을 끝마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단계는 말씀으로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예수는 자신이 한 많은 사역을 사람들이 다 알지 못하였어도 조용히 떠났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잘못 해석하고도 아주 옳다고 여기며 틀린 줄도 모른다. 마지막 이 단계에서는 사역을 철저히 끝마치고 마무리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깨닫게 하고 알게 한다. 사람 내면의 관념과 속셈, 잘못된 터득 방식, 여호와의 역사에 대한 관념, 예수의 역사에 대한 관념, 이방인에 대한 견해, 치우치고 그릇된 모든 점을 다 돌려세워 사람에게 모든 인생의 바른길을 알게 하고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을 알게 하고 모든 진리를 알게 하면, 이 단계 사역은 끝나게 된다. 여호와가 한 사역은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고 시작이며, 이 단계 사역은 사역을 끝마치는 것이고 결말이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선민 가운데서 하였고 가장 거룩한 곳에서 천지개벽을 하였으며, 마지막 단계는 가장 더러운 국가에서 하여 세상을 심판하고 시대를 끝마친다. 첫 단계는 가장 광명한 곳에서 역사하였고, 마지막 단계는 가장 흑암한 곳에서 역사하여 이 흑암들을 몰아내고 광명을 가져와 이 사람들을 다 정복한다. 가장 더럽고 가장 흑암한 곳의 사람을 정복하여 모든 사람들이 입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고 참 하나님임을 시인하고 심복구복하게 하는 이 사실로 전 우주를 정복하는 사역을 하는데, 이 단계 사역은 대표적인 의의가 있다. 이 시대의 사역을 다 하면 6천년의 경영 사역이 철저히 끝나게 된다. 가장 흑암한 곳의 사람을 이미 정복하였다면, 그 외의 곳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므로 오직 중국의 정복 사역만이 대표적 의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모든 흑암 세력을 대표하고, 중국 사람은 육체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하고 혈기에 속한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중국 사람은 큰 붉은 용에게 가장 심하게 패괴되고,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며, 인성이 가장 비열하고 가장 더럽다. 그러므로 전체 패괴된 인류의 전형적인 대표이다. 그렇다고 다른 국가가 다 좋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관념은 다 같다. 비록 외국인의 소질이 좋을지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들 역시 대적할 것이다. 왜 유대인도 대적하고 거역했겠느냐? 왜 바리새인도 대적했겠느냐? 유다가 왜 예수를 팔았겠느냐? 당시에 많은 제자들은 예수를 알지 못하였다. 사람은 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에도 그를 믿지 않았겠느냐? 사람의 패역은 다 같은 것이 아니냐? 중국 사람을 가져다 모델로 할 뿐인데, 정복한 후에는 모형과 표본으로 만들어 참고물로 한다. 왜 늘 너희를 내 경영 계획의 부속물이라고 하겠느냐? 사람의 패괴, 더러움, 불의, 대적, 패역, 이런 것들이 중국 사람에게서 가장 전면적으로 드러나고, 온갖 모양으로 드러난다. 한 방면으로는 소질이 낮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생활과 사상이 뒤떨어졌으며, 생활 습관, 사회 환경, 출생 가정이 다 좋지 않고 다 가장 뒤떨어졌다. 이 사람들은 지위도 낮아 이곳에서 역사하면 대표성이 있는 것이다. 시범 사역을 전면적으로 하면 이후에 사역을 전개하기에 더 편리하게 된다. 이 단계 사역을 이루게 되면 이후의 사역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이 단계 사역이 이루어지고 큰 공이 철저히 이루어지면 온 우주의 정복 사역도 철저히 끝나게 된다. 사실, 너희들 가운데서 하는 사역이 성공되면 전 우주의 사역이 성공된 것과 같다. 왜 너희에게 모형과 표본이 되라고 하는지, 그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람들에게는 패역이면 패역, 대적이면 대적, 더러움이면 더러움, 불의면 불의가 있는데, 이들은 인류의 모든 패역을 다 대표하였다. 이 사람들은 정말 간단치 않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을 정복의 모델로 삼는 것이다. 물론, 정복한 후에는 표본과 모형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첫 단계 사역을 한 것은 가장 대표적인 의의가 있다. 이스라엘 사람은 가장 성결하고 가장 얕게 패괴된 인류이기에 그 땅에서 천지개벽을 한 것은 가장 의의 있다. 인류의 선조는 이스라엘 땅에 있었고 또한 이스라엘은 하나님 역사의 발원지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 그 사람들은 가장 성결하였고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역사하면 가장 좋은 효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성경에 두 시대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는 율법시대의 사역이고 하나는 은혜시대의 사역이다. 구약에는 여호와가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에게 한 말씀과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이 기록되어 있고, 신약에는 예수가 유대에서 한 사역이 기록되어 있다. 왜 중국 사람의 이름은 없느냐? 그 원인은 앞 두 부분 사역을 모두 이스라엘에서 하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은 선민에 속하고, 여호와의 역사를 처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가장 얕게 패괴된 인류였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제사장 옷을 입고 제사장 화관을 쓰고 늘 성전 안에서 섬겼는데, 그들은 처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한 사람들이고 또한 하나님의 최초의 역사 대상이었다. 그들은 전 인류의 표본과 모형에 속하고, 성결의 표본과 모형, 의인의 표본과 모형에 속한다. 욥, 아브라함, 롯 또는 베드로, 디모데 등등의 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이고, 가장 성결한 표본과 모형이다. 이스라엘은 인류 중에서 가장 일찍 하나님을 경배한 국가이고, 거기에서 나온 의인 역시 가장 많다. 그들에게 역사한 것은 그 후에 온 땅에서 인류를 더 잘 경영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의 ‘행적’과 여호와를 경배하면서 행한 의를 기록하여 은혜시대에 이스라엘 외의 사람들의 표본과 모형으로 삼았는데, 그들이 한 것으로 몇천 년의 사역을 오늘날까지 유지하였다.

창세 이후 첫 단계 사역을 이스라엘에서 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땅에서 한 사역의 발원지이고, 하나님이 땅에서 한 사역의 근거지이다. 예수가 사역을 한 범위는 온 유대였다. 그가 역사하는 기간에 유대 외의 사람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유대 외에서는 전혀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역을 중국에 가져왔는데, 역시 이 범위 내에서만 할 뿐이다. 이 단계에 중국 밖에서는 전혀 따로 사역을 전개하지 않는다. 밖으로 확장하는 것은 이후의 사역이다. 이 단계 사역은 예수의 그 단계 사역을 이어서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예수가 구속 사역을 하였고, 이번 단계는 잇는 사역을 하는데, 구속이 완성되었으므로 이번 단계에서는 성령으로 잉태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번 단계 사역은 지난번의 사역과 다르고, 중국은 이스라엘과 더욱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가 구속 사역을 하자 사람들은 다 예수를 보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방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미국, 영국, 러시아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데, 중국에는 왜 그렇게 많지 않을까? 그것은 중국이 가장 심하게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도를 가장 늦게 받아들이게 되어 지금까지 100년도 되지 않는데, 미국이나 영국에 비하면 차이가 많은 것이다. 마지막 이 단계 사역을 중국이란 이 땅에 시행한 것은 사역을 끝마치기 위한 것이고, 또한 모든 사역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를 주로 칭했다. 당시에 그들은 여호와를 한 가족의 주인으로 여겼고, 이스라엘 온 땅은 하나의 대가족이 되어 모두 그들의 주 여호와를 경배하였다. 여호와의 영은 때때로 사람에게 나타났고, 사람에게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였으며, 구름 기둥과 음성으로 그들을 인솔하여 생활하게 하였다. 당시에는 영이 이스라엘에서 사람에게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여 직접 인솔하였는데, 사람이 본 것은 구름이었고 들은 것은 천둥소리였다. 바로 그렇게 몇천 년 동안 그들을 인솔하여 생활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만이 계속 여호와를 경배하였다. 그들은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이지 이방인들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여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어쨌든 여호와가 그들 가운데서 거의 4천 년이나 역사하였으니 말이다. 중국, 이 땅에서 몇천 년이나 깊이 잠들었던 이 인간쓰레기들은 지금에 와서야 천지 만물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창조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복음이 외국에서 전해져 들어왔기 때문에 그 봉건적이고 반동적인 머리들은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조상 ― 부처님 ― 을 배반하는 대역무도한 인간쓰레기라고 여긴다. 더 많은 봉건적인 머리들은 ‘중국 사람이 어찌 서양인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이것은 조상을 배반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긴다. 오늘날까지 발전해 오면서 사람은 일찍이 여호와가 바로 너희들의 하나님임을 잊었고, 창조주를 뒷전에 버려두었다. 사람은 ‘진화론’, 즉 사람은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어 온 것이고, 대자연은 일찍부터 있었던 것이며, 인류가 누리는 좋은 음식은 모두 대자연이 준 것이고, 사람의 생사존망에는 모두 법칙이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더욱이 많은 무신론 학자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고 여긴다면 미신을 믿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학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체할 수 있느냐? 과학이 인류를 주재할 수 있느냐? 이런 국가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가로막음이 너무나 심하다.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대적하고 있지 않느냐?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사역으로 예수의 사역에 대조해 보고는 맞지 않으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이 보기에 왜 맞지 않았을까? 한 방면으로는 예수가 새로운 사역을 하였기 때문이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당시 예수가 역사를 시작하기 전에 그에게 족보를 써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를 위해 족보를 써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러면 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느냐? 만약 마태가 몇십 년 앞당겨 예수를 위해 그 족보를 써 주었더라면 예수가 그렇게 큰 핍박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예수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한 족보를 사람이 보았어도 그를 핍박하지 않았을 것인데, 아쉽게도 족보를 너무 늦게 써 놓았다. 그렇지 않으냐? 또 아쉽게도 성경에는 두 단계의 사역만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는 율법시대의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은혜시대의 사역이며, 하나는 여호와의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의 사역이다. 만일 대예언자가 오늘날의 사역을 모두 미리 예언해 놓았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성경에 ‘말세 사역’이란 한 부분이 더 기록되었더라면 더욱 좋지 않겠느냐? 구태여 사람이 지금 이렇게 많은 고통을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정말 너희를 억울하게 하였구나! 한스러운 것은 이사야와 다니엘이 말세의 사역을 다 예언해 놓지 않은 것이고, 나무랄 것은 신약의 그 사도들이 두 번째 성육신 하나님의 족보를 미리 나열해 놓지 않은 것이다. 너무나 유감스럽게 하였구나! 너희가 여러 곳에서 근거를 찾아 깊이 없는 자잘한 말을 조금 얻게 되어도 맞게 대조해 볼 수 있을지는 모른다. 너무나도 난처하게 하였구나! 하나님이 왜 이렇게 은밀히 역사하는지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으나 부인하지도 못한다. 이것을 어떡하겠느냐? 일편단심으로 따를 수도 없고 의혹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많은 ‘총명한 재자(才子)’들이 ‘시험해 보자’라는 태도를 가지고 따른다. 너무나 다루기 어렵구나! 당시에 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게 예언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더라면 더 쉽지 않았겠느냐? 당시에 요한이 하나님 나라 생활의 내막을 보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인데, 아쉽게도 그가 본 것은 ‘이상(異象)’일 뿐 땅에 실제화된 진실한 사역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사람을 유감스럽게 하였구나! ‘하나님은 어떻게 된 영문일까? 왜 이스라엘에서 잘 사역하시다가 오히려 방향을 바꿔 중국에 오시고, 게다가 반드시 말씀이 육신 되어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역사하고 생활하셔야 할까? 하나님은 정말 사람의 뜻에 맞지 않게 역사하셔! 사람에게 미리 알려 주시지 않았을 뿐더러 형벌과 심판이 갑자기 닥치게 하시다니, 정말로 이해되지 않아!’ 첫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었을 때, 사람에게 모든 내막을 미리 알려 주지 않아 하나님이 이미 적지 않은 고통을 받았는데, 설마 그가 잊었단 말인가? 왜 이번에도 여전히 사람에게 알려 주지 않는가? 현재 성경이 66권밖에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만일 한 권의 책이 더 있어 말세 사역을 다 예언해 놓았더라면 사람은 그것으로 충분히 납득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여호와, 이사야, 다윗마저도 오늘날의 사역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늘날과 더욱 멀리 떨어져 4천여 년이란 사이를 두었다. 예수도 오늘날의 사역을 완전하게 예언하지는 않고 조금만 말하였으므로 사람은 아직도 충분한 근거를 얻지 못하였다. 네가 이전의 사역을 오늘날에 가져와 대조한다면 어찌 맞게 대조해 볼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한 그 단계 사역은 이스라엘에 비추어 한 것이니 오늘날에 가져오면 더욱 대조가 되지 않고 맞게 맞추어 볼 수도 없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니다. 너는 소질과 각 방면이 다 부족한데, 그들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있겠느냐? 너는 지금은 하나님나라시대이고 이전의 율법시대나 은혜시대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쨌든, 너는 공식에 맞추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은 네가 공식에 맞춘다고 찾을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예수가 태어나서 29년 동안 어떻게 생활하였는지, 성경에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이 전혀 기록되지 않았는데, 너는 예수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이 어떠했는지 알고 있느냐? 설마 예수가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이 없이 태어나자마자 바로 서른 살이었겠느냐? 너는 아는 것이 너무 없다. 그러므로 함부로 의견을 내놓지 말라. 너에게 좋을 것이 없다! 성경에는 다만 예수가 서른 살 전에 세례를 받고 성령께 이끌려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은 것이 기록되었는데, 4복음서에는 예수의 3년 반 동안의 사역만 기록되었다. 예수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기가 기록되지 않았다고 그에게 어린 시절과 청년 시기가 없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가 초창기에 사역을 하지 않았고 그저 정상 사람으로 지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정상 사람으로서 서른세 살까지 지냈는데, 청년 시기가 없었을 리가 있겠느냐? 어린 시절이 없었을 리가 있겠느냐? 그가 11~12살, 17~18살을 거치지 않고 단번에 서른세 살 반으로 될 수 있었겠느냐? 사람은 다 초자연적으로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없다! 물론 성육신 하나님은 정상이고 평범한 인성을 갖고 있지만 또 신성과 불완전한 인성으로 직접 역사한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사람은 지금의 사역에 대해 그리고 예수의 사역에 대해서까지도 의혹의 태도를 취한다. 두 차례 말씀이 육신 되어 하는 사역은 서로 다르지만 그 실질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 물론 네가 4복음서에 기록된 것을 본다면 차이가 클 것이다. 네가 어찌 예수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기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 네가 어찌 예수의 정상 인성을 알 수 있겠느냐? 어쩌면 네가 오늘날의 하나님의 인성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예수의 인성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하였고 더욱이 알지도 못하였다. 마태가 기록해 놓지 않았더라면 너는 예수의 인성에 대해 전혀 몰랐을 것이다. 혹시 내가 너에게 예수 생애의 ‘행적’을 알려 주고 예수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기의 생활의 내막을 알려 준다면 그때에 너는 “아니에요! 그분은 그렇지 않으실 거예요. 그분에게는 연약이 있을 리 없고, 인성은 더더욱 있을 수 없어요!” 하면서 고개를 저을 것이고, 심지어 크게 아우성을 칠 것이다. 네가 예수를 모르기 때문에 나에 대해 관념이 생기게 된 것이다. 너는 예수가 너무나 신비로워 전혀 육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어디까지나 사실이다. 아무도 사실의 진상을 어기며 말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것은 진상에 직면하여 말하는 것이지 추측도 아니고 예측도 아니기 때문이다. 너는 마땅히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오를 수 있고 더욱이 지극히 낮은 곳에 은밀히 거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은 너의 머리로 그려낸 분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 구상해 낸 개인의 하나님도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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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심복구복(心服口服):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함.

② 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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