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App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제20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

하나님은 전 인류를 창조하고 또 전 인류를 오늘까지 이끌어 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사를 다 알고 있다. 그는 인간 세상의 고통도 알고 있고, 인간 세상의 행복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날마다 전 인류의 삶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고, 더욱이 전 인류의 연약과 패괴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인류를 모두 무저갱에 처넣거나 전부 다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일을 할 때 언제나 원칙이 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법칙을 파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를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즉시 어조를 바꾸었는데, ‘긍휼’과 ‘자비’로 바뀌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또 즉시 어조를 바꾸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생닭과 같아 입을 대기 어렵게 하였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첫마디가 중복된 적이 없고, 또한 ‘어제’ 말씀했던 원칙대로 말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어조도 같지 않았고, 말씀의 내용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람은 더욱 갈피를 잡을 수 없었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고,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말씀의 어조와 방식으로 사람의 관념을 분산시키는 것은 사탄을 어리둥절하게 하여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하는 과정에 ‘독약을 탈’ 기회가 없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일을 기묘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리벙벙해져 거의 자기 집 문도 찾지 못하게 되거나 언제 밥을 먹어야 하고 언제 쉬어야 하는지도 몰라 했는데, 정말로 ‘침식을 잊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에 이르렀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사람에게 노를 발하면서 진심을 내놓도록 강요하였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살짝 풀어 주기만 해도 사람은 즉시 ‘순복’하면서 태만해진다. 이것은 사람의 비천한 부분인데, 달래면서 가서는 안 되고, ‘때리면서’ 가고 ‘끌고’ 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본 사람들 중, 자각적으로 곧장 나를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 다른 사람에게 떠밀려 내 앞에 오고 대세를 따른 것이지, 대가를 치르고 시간을 들여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은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사도와 인솔하는 사람의 사역이 없었다면, 모든 사람은 벌써 사방팔방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그러기에 역대 이래 사도와 선지자들이 부족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 부분의 말씀에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전 인류의 삶의 상황을 요약했다. “사람의 삶에는 뜨거운 열정이 전혀 없고, 삶 속에는 사람다운 냄새가 전혀 풍기지 않으며, 광명이 전혀 없는데도, 사람은 늘 자신과 타협하며 일생을 허비하고 가치 없이 흘려보낸다. 그러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의 날이 다가오면 사람은 그대로 한을 품은 채 죽어 간다.” 등등 위에서 말씀한 것은 전부 이 부류에 속한다. 왜 하나님이 오늘까지 인류의 삶을 이끌어 왔으면서도 또 인간 세상의 삶의 공허함을 폭로했겠느냐? 그리고 왜 모든 사람의 일생은 “총총히 왔다가 또 총총히 떠나간다.”라고 개술했겠느냐? 그러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계획이고 다 하나님의 명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한 측면으로는 신성에서의 삶 외의 것은 다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임을 내비쳤다. 비록 하나님이 전 인류를 창조하였지만 그는 전 인류의 ‘삶’을 진정으로 감상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인류가 사탄의 패괴 아래에서 생존하도록 내버려 둘 뿐이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인류를 훼멸하거나 구원함으로써 땅에서 공허하지 않은 삶에 이르게 하는데, 이는 모두 하나님 계획 중의 항목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의식 속에는 늘 소망이 하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무고하게 죽기를 ‘달가워하는’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소망을 얻게 된 사람은 오직 말세의 사람들뿐이다. 지금의 사람들은 여전히 돌이킬 수 없는 공허함 속에서 살고 있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소망을 기다리고 있다. 즉, “내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을 땅 아래로 누를 때, 사람은 즉시 산소가 부족하여 거의 생존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이는 모두 내가 영광받는 그날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지금의 상태인데, 모두 ‘진공’ 속에서 살고 있어 ‘산소’가 부족하기에 호흡 곤란을 초래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의식 속에 있는 ‘소망’으로 전 인류의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전부 ‘출가하여 중이 되고’, 그로부터 인류는 멸절되어 일단락을 지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오늘까지 생존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실정이다. 사람은 ‘이 법칙’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모두 ‘죽음이 두 번째로 자신에게 임할까 봐 심히 두려워하는’ 원인을 모르고 있다. 사람으로서, 계속 살아갈 용기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죽을 용기가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한을 품은 채 죽어 간다”라고 말씀했는데, 이것이 인간 세상의 실정이다. 어떤 사람은 앞날 때문에 좌절하여 죽을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의 생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가정의 갈등 때문에 죽을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또 ‘애지중지하는 것’에 마음이 걸려 여전히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혼인에서 타격을 받아 죽을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의 여러 정형이다. 망망한 인간 세상에서 바라보니 끝없이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비록 사람들이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후련하다고 말로 ‘어물쩍 넘기지만’ 먼저 죽었다가 다시 오는 ‘시범’을 보여 산 사람에게 ‘죽는 것이 후련하다’는 ‘누림법’을 소개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사람은 다 천박한 존재라 뻔뻔스러우며 ‘말한 대로 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누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영들이 육신에서 생존하며, 또 얼마나 많은 영들이 땅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의 내 나라의 복을 누릴 기회는 없었다.”라고 말씀하였다. 오늘날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이 창세부터 예정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그 영들이 말세에 육신에서 생존하도록 안배하였다. 최후에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얻으려고 이들을 ‘시님’에 안배하였다. 이들 영의 실질이 ‘천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설마 사람의 영 안에 나에 대한 인상이 전혀 없단 말이냐?”라고 말씀하였다. 사실, 사람은 육체에서 살면 영계의 일을 전혀 모르는데, 이 간단한 말씀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볼 수 있다. 즉, “사람이 나에게 경계의 뜻이 담긴 눈빛을 보내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했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마음은 계속 진노와 심판을 수반한 슬픔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땅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은 산속의 야인 같다”라고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반드시 모든 사람이 망망대해에서 내 곁으로 헤엄쳐 와 육지의 모든 풍부함을 누리게 됨으로 바닷물에 삼켜질 위험에서 벗어나는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인데, 대세의 흐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이 완성된 상징이다.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땅에 임했을 때는 모든 사람이 다 사람의 원래 모양으로 회복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는 보좌 위에서 누리며, 나는 뭇별 속에서 생활한다. 천사는 나에게 새 노래와 새 춤을 바치며 더 이상 자신의 ‘연약’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내 앞에서는 더 이상 천사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고, 더 이상 나에게 고충을 하소연하는 사람도 없다.”라고 말씀하였는데, 하나님이 완전히 영광받는 날이 사람이 안식을 누리는 날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사람은 더 이상 사탄의 방해 때문에 바삐 보내지는 않고, 세상은 더 이상 발전해 나가지 않을 것이며, 사람은 모두 안식 속에서 살 것이다. 왜냐하면 해, 달, 항성 등등 천우의 ‘뭇별’이 모두 바뀌고, 하늘과 땅의 산과 물이 모두 변화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변화되고 ‘하나님’도 달라졌기 때문에 만물도 모두 변화될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 경영 계획의 최종 목적이고 최후에 이루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한 목적은 주로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행정을 모른다. 하나님이 하는 모든 것은 다 그 자신이 지배하고 안배하기에 어떠한 사람의 간섭도 원하지 않고, 사람으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안배이지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게 한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거나 생각하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모두 하나님이 홀로 조종하는 것이기에 사람의 뜻이 조금이라도 섞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관여하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인데, 설령 아주 조금일지라도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질투하는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영은 이 방면에 특히 민감한 것 같다. 그러므로 간섭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하나님의 타오르는 불길이 즉시 그의 몸에 임하여 그를 불 속의 잿더미가 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은사’를 제멋대로 발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은사에 속한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은사’는 순전히 하나님을 위해 힘쓰는 것인데,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매우 증오하며 물러서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흔히 생명이 없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쉽게 관여하거니와 사람들에게 쉽게 발견되지도 않는데, 그것은 ‘은사’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역대로 은사에 속한 모든 사람은 굳게 선 적이 없었는데, 그것은 그에게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항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각성하지 못하고 부지중에 나의 형벌 속에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육신에 있는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였다. 혈과 육에 속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에 있을지라도 사탄의 결박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가 있었던 적이 없다. 정욕 때문이든, 연모 때문이든, 환경의 안배 때문이든, 하나님이 가장 증오하는 것은 바로 사람 사이의 비정상 관계이다. 그러므로 그런 관계 때문에 하나님 입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생기가 충만한 살아 있는 것들이지 사망에 젖어 있는 죽은 것들이 아니다. 내가 내 나라에 앉아 있는 이상, 나는 온 땅의 사람들이 나의 검열을 받도록 지휘할 것이다.”라는 이런 말씀이 나오게 되었다. 하나님이 전 우주 위에 있을 때, 날마다 혈과 육으로 이루어진 사람의 일거일동을 관찰하면서 하나도 놓친 적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사이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사람에게 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 자신의 모든 행위를 살펴보라고 권고하는데, 그것은 너에게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기호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존재가 되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언행에서, 모든 삶 속에서 사탄에게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

① 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 명정(命定): 명하여 정함.

③ 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④ 시님: 원문은 진나라(秦國).

이전 말씀:제19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

다음 말씀:제21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