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목차

제12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

만인이 주목하고 있을 때, 만물이 모두 바뀌어 다시 소생하고 있을 때, 모든 사람이 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부담을 받아서 중임을 짊어지기를 원할 때 동방번개는 즉시 발하여 동방에서 서방까지 비추어 온 땅으로 하여금 이 한 가닥 빛의 도래로 인하여 크게 놀라게 한다. 하나님은 이때에 또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이때에 하나님이 땅에서의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여 전 우주의 사람들에게 “동방에서 번개가 발할 때는 역시 바로 내가 음성을 발하고 말을 하기 시작할 때이다. 번개가 발할 때 전체 하늘이 다 밝게 비취고 모든 뭇별들도 변화가 생긴다.”라고 선고한다. 그러면 어느 때가 동방에서 번개를 발하는 때인가? 천지가 암담할 때는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고 이 세상을 보지 않을 때이고 역시 천하에 한차례 폭풍우가 덮칠 때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에는 모든 사람이 다 당황하여 간담이 서늘해지는 상태에 처하고, 우렛소리를 두려워하고 번개의 비춤을 두려워하고 더욱이 폭우의 침습(侵襲)을 두려워하며, 더 나아가 다수의 사람들이 눈을 감고 하나님이 노를 발하여 그를 격살하기를 기다릴 때 각종 상태의 발생에 따라 동방번개가 즉시 발한다. 즉 세계의 동방에서 하나님 자신이 증거되기 시작해서부터 역사를 시작하기까지, 신성이 온 땅에서 왕권을 잡기 시작하기까지는 동방번개의 빛줄기가 줄곧 전 우주를 밝게 비추는 것이며, 세상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로 될 때는 전 우주를 밝게 비출 때이다. 현재는 동방번개가 발하는 때이니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역사를 시작하고 또한 신성에서 직접 말씀한다. 하나님이 땅에서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기 시작할 때는 동방번개가 발하는 때라고 말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보좌에서 생수가 흘러나올 때 즉 보좌로부터 음성을 발할 때는 바로 ‘일곱 영의 말씀’이 정식으로 시작될 때이다. 이때에 동방번개가 발하기 시작하는데, 시간의 길고 짧음으로 인하여 조명하는 정도도 다르고 밝게 비추는 범위도 유한하다. 그러나 하나님 사역의 이동에 따라, 하나님 계획의 변동 즉 뭇 아들과 자민(子民)들 몸에서의 사역의 같지 않음에 따라 번개가 그 고유한 기능을 더욱더 발휘하기 때문에 전 우주 아래가 다 밝게 비취고 인간쓰레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6천년 경영 계획의 결정체이다. 하나님이 누리는 것이 바로 이런 열매이다. ‘뭇별’은 결코 하늘의 별 입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모든 뭇 아들과 자민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대표하기 때문에 또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뭇별’로 불린다. 이른바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신분과 지위의 변화를 가리킨다. 땅에 있는 사람에서 국도의 백성이 되고 또한 하나님의 함께함이 있으며 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신해 왕권을 잡게 되고 또한 안의 ‘독소, 불순물’은 하나님의 사역으로 인해 정결케 되며 최후에 하나님의 쓰임에 합당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데에 이른다. 이런 것은 이 말씀의 한 방면 의의이다. 하나님의 빛줄기가 온 땅을 밝게 비출 때 하늘 위와 땅 아래의 만물은 모두 각기 다른 정도로 변화가 생길 것이고 하늘 위의 별들도 변화될 것이며 태양과 달이 다시 바뀔 것이고 땅 아래의 사람도 따라서 바뀐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늘땅 사이에서 하는 사역이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할 때 물론 선민 이외의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때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정결케 하고 심판할 때인데,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침대에 푹 쓰러지거나 땅에서 격살되어 죽음의 지옥에 떨어진다. 하나님이 발한 음성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자신을 알기 시작한다. 만일 이렇지 않다면 사람은 모두 두꺼비 눈처럼 눈을 치뜨고 누구에게도 불복하고 누구도 자신을 알지 못하며 자신이 도대체 몇 개의 분동만큼 무거운지 모른다. 사람은 정말 사탄에게 어느 한 지경에까지 패괴되었다. 바로 하나님의 전능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추악한 몰골을 생동감이 있게 묘사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보고 나서 모두 자기의 진면목과 대조하게 하였다. 사람이 다 알다시피, 마치 자기 머릿속에 두뇌 분자가 얼마나 있는지 하나님이 다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데, 하물며 사람의 추악한 몰골이나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랴? “전 인류는 마치 깨끗이 정리된 듯하다. 모든 사람은 다 동방에서 나온 이 빛줄기에 비취어 본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고 두 눈이 어두침침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라는 이 말씀에서 어느 날엔가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 온 인류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거치고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전 인류의 사람을 하나하나 ‘처리’할 것이고, 하나도 놓아주지 않는다. 이래야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데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또한 마치 동물처럼 나의 빛 가운데서 도망쳐 산굴 속에 들어가 피신한다. 하지만 어떤 물질도 나의 빛 가운데서 말살된 적이 없다.”라고 말씀하였다. 사람은 모두 비열하고 비천한 동물이다. 사탄의 손아귀에서 생존하는 것이 마치 깊은 산속에 피난한 것과 같다. 그러나 만물이 다 하나님의 불꽃의 불사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설사 사탄 세력의 ‘수호’ 속에 있다 해도 어찌 하나님께 ‘잊혀질’ 수 있겠는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일 때 모든 사람의 갖가지 괴상망측한 모양이 또 하나님의 글에 묘사되었다. 하나님은 바로 사람의 필요에 따라, 사람의 심리에 따라 말씀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기에 마치 하나님은 심리학을 정통한 듯하고, 마치 하나님은 심리학자인 듯하고, 또 마치 하나님은 내과수술 전문가인 듯하였다. 그러기에 그가 ‘복잡한’ 사람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귀중함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음을 느끼게 되는데, 마치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천상계’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또 ‘초하(楚河)’ 양쪽에서 서로 마주 바라보는 듯하다. 쌍방은 그저 서로 마주 바라볼 뿐이다. 즉 땅에 있는 사람은 눈으로 하나님을 보고만 있을 뿐 자세히 연구할 기회가 없었다. 단지 하나님에 대해 그리운 마음만 남겼을 뿐이다. 마음속으로 늘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느끼지만 또 ‘하나님’의 ‘의절’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마음속의 고초를 하소연할 기회가 없었다. 마치 한 아리따운 아내가 남편 앞에 있어도 ‘남편’의 정직으로 인해 심정을 실토할 기회가 없는 것과 같다. 사람은 모두 자신을 아끼지 않는 천한 놈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유약’으로 인해, 사람의 ‘불자존’으로 인해 사람에 대한 나의 증오는 부지중에 얼마간 심해졌다. 이리하여 마음속의 노기는 자연히 생겼고, 생각 속에 마치 상처가 있는 듯이 사람에 대해 이미 희망을 잃었다. 그러나 또 “나의 날이 또 한 번 전 인류에게 임하였고 또 한 번 인류를 불러일으켜 인류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기점이 있게 하였기” 때문에 또 한 번 용기를 불러일으켜 전 인류를 정복하고 큰 붉은 용을 노획하고 큰 붉은 용을 패배시킨다. 하나님의 본뜻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단지 큰 붉은 용의 자손을 정복할 뿐이다. 이래야 큰 붉은 용을 패배시키고 큰 붉은 용을 전승한 것이라고 한다. 이래야 하나님이 온 땅에서 왕이 되어 권력을 잡는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하고 하나님의 큰 공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땅에서 새로운 시작이 있고 하나님이 땅에서 영광을 얻었음을 증명한다. 최후의 미경(美景)으로 인해 하나님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의 호방한 감정을 토로하였다. “나의 마음이 흔들리고 산도 나의 마음에 따라 리듬에 맞춰 기뻐 날뛰며, 물이 기뻐 춤을 추고 파도가 암초를 때리고 있는데, 나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계획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이미 이룬 것이고 하나님이 이미 예정해 놓은 것이며 바로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경력(역주: 체험)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한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국도의 앞날은 아름다운 것이고 국도의 군왕은 이긴 분인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혈연 관계가 없고 전부 신성한 요소이며, 온몸은 신성한 빛을 발산하고 있고 사람의 뜻이 전혀 섞여 있지 않으며, 온몸의 위로부터 아래까지 모두 공의로 충만하고 하늘의 기운으로 충만하며 매력적인 맑은 향기를 풍기고 있다. 마치 ≪아가≫의 양인(良人)처럼 뭇 성도보다 더 아름답고 옛 성인보다 더 높으며, 모든 사람 가운데의 표본이고 사람이 비교할 수 없고 사람이 정시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 하나님의 면모, 하나님의 형상은 아무도 이를 수 없고 누구도 겨룰 수 없으며 아무도 입으로 경솔하게 한바탕 찬미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궁무진하고 마치 끊임없이 솟아나는 원천과 같이 영원히 흘러 마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영 계획 중의 심오한 비밀은 누구도 측량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 있어서는 또 할 말이 끝이 없다. 하나님이 전 우주를 다시 바꾸고 철저히 변화시킬 것이라는 이 일을 하나님은 서로 다른 방식과 서로 다른 언어로써 여러 번이나 말씀했는데 점점 더 깊어졌다. “나는 모든 부정한 것들을 나의 눈에서 잿더미로 되게 할 것이고, 나는 모든 패역한 자식들을 나의 눈앞에서 소실되게 하여 영원히 존재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 번이나 이렇게 말씀하겠는가? 설마 하나님은 사람이 싫증을 느끼는 걸 염려하지 않는단 말인가? 사람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모색할 뿐이고 이 기회를 빌어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만 언제나 자신을 뉘우치는 것을 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사람에게 일깨워 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자신을 알게 하고 자기의 몸에서 사람의 패역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의 패역을 제거하는 데에 이르게 한다. 사람이 하나님이 ‘깨끗이 정리한다’고 말씀한 것을 보자 사람의 마음은 갑자기 긴장해지기 시작하고 근육도 마치 굳어진 듯하였고 즉시 하나님 앞에 돌아와 검토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을 알아갔다. 그 후, 즉 사람이 결심을 내린 후 하나님은 또 시기를 놓치지 않고 큰 붉은 용의 본질을 사람에게 깨달음으로써 사람이 직접 영계를 접촉하게 하였다. 심지(心志)의 작용으로 인해 열의도 따라서 작용을 일으켰는데, 이리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감정을 더 증진시켰다. 이것은 하나님의 육신에서의 역사에 더욱 유리하다. 이리하여 사람은 부지중에 지난 일을 회상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이전에, 오랫동안 사람은 모두 막연한 하나님을 믿었고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속은 시종 해방을 얻지 못했고 잘 누리지도 못했다. 비록 하나님을 믿었지만 생활에 법칙이 없었는데, 마치 믿기 전과 한가지인 듯했다. 생활 속에서 여전히 공허하고 희망이 없음을 느끼는데 그때의 믿음은 마치 짐이 된 듯하여 믿지 않는 것만 못했다.’ 오늘의 실제의 하나님 자신을 본 후로는 마치 하늘땅이 다 바뀐 듯이 생활 속에 또 광채가 더해져 더는 실망하지 않았고, 실제 하나님의 임함으로 인해 마음이 든든하고 영 안이 평안하여 무슨 일을 하든지 더는 뜬구름 잡는 것 같지 않았고 더는 목표없는 것을 추구하지 않았고 권술을 연마하는 데 방향을 정하지 않았다. 오늘의 생활은 더욱 아름답다. 의외로 국도에 들어가 자민이 되고 그 후에 … 사람은 속으로 생각할수록 즐겁고 생각할수록 만족하여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더욱 일어난다. 이리하여 부지중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우의(友誼)’를 증진시켰다. 사람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욱 알면 사람 몸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은 점점 하기 쉬워지고 더는 핍박과 강제가 아니라 순리를 따라 사람의 특유한 기능을 발휘하게 한다. 이래야 점차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비로소 하나님의 지혜라 하고 추호의 힘도 들이지 않고 사람의 본성에 따라 합당한 부분을 발휘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때 하나님은 또 “내가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왔을 때 사람은 부지중에 나의 인도 하에 오늘까지 오게 되었고 부지중에 나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노정을 도대체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를 누구도 알지 못하고, 앞으로의 길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더욱더 아는 사람이 없다. 오직 전능자의 보살핌 아래에 있어야만 길 끝까지 갈 수 있고, 오직 동방번개의 인도 아래에 있어야만 나의 나라의 문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라고 말씀하였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사람 마음속의 총개괄이 아닌가? 하나님이 말씀하는 데의 절대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입으로 말씀한 것이고, 하나님의 입으로 말씀한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에서 바란 것이다. 이것도 바로 하나님이 사람 마음속을 드러내는 가장 능한 부분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모두 심복구복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큰 붉은 용을 정복하여 이루려는 효과가 아닌가?

실제상, 많은 말씀에서 하나님의 본뜻은 글자 표면의 의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많은 말씀에서 하나님은 그저 일부러 사람의 관념을 돌리고 사람의 주의력을 돌릴 뿐이다. 하나님께 있어서 이런 말씀을 중요시하지 않으므로 많은 말씀은 해석해 줄 만한 가치가 없다.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되어 오늘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 때 사람의 힘도 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따라서 또 경고의 말씀을 제기하였다. 즉 자민에게 반포한 헌법이다. “땅에 있는 사람은 비록 별처럼 많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손금 보듯 환하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바다 모래알처럼 많지만 나에게 선택된 사람은 얼마 보이지 않고, 그저 나를 ‘사랑’하는 사람 이외의, 밝은 빛을 추구하는 사람들뿐이다.” 확실히, 입술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적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히려 아주 적어 마치 눈을 감고도 분명히 알아낼 수 있는 듯하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온 세계의 실제 상황이다. 이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때에 또 사람을 깨끗이 정리하는 이 사역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이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만족해 하는 것은 결코 오늘의 교회가 아니라 깨끗이 정리한 후의 국도임을 설명한다. 이때에 또 모든 ‘위험물’에게 하나의 경고를 제기했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몰라도 하나님이 역사하기 시작하면 이 사람들은 모두 국도 밖으로 제거될 것이다. 하나님은 여태껏 속인 적이 없는데, 그는 일을 함에 있어서 언제나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 이 원칙으로 한다. 만일 그가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백방으로 그를 깨끗이 정리해 내보내는 것으로 후환을 제거하려 하는데 이것을 ‘쓰레기를 정리하고 철저히 깨끗이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정을 공포할 때가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의 기묘한 행사를 소개하고 그의 내재적 소시를 소개할 때이다. 그러므로 그 후에 하나님은 또 “산 속에 수많은 맹수들이 있지만 나의 앞에서는 다 양처럼 온순하며, 바다 밑에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바닷속 신비함이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지상의 만물처럼 전부 드러나며, 하늘 가운데 사람이 이를 수 없는 경지가 있지만 나는 사람이 이를 수 없는 경지에서 여기저기 왕래한다.”라고 말씀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즉 비록 사람의 마음이 만물보다 간사하여 마치 사람의 마음이 사람 관념 속의 지옥처럼 ‘신비함이 끝없다.’ 설사 이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의 실정에 대해 손금 보듯 환하다. 만물 가운데서 사람이 맹수보다 더 흉악하고 포악한 동물이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어느 한 지경에까지 정복하여 누구도 감히 일어나 반항하지 못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실제상 하나님의 뜻에 따르면, 사람이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만물 속의 만물보다 더 복잡하여 사람을 난측(難測)케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눈에 두지 않고 그저 눈앞의 자그마한 벌레로 여길 뿐인데 아무렇게나 그것을 정복하고 언제든지 그것을 격살하고 닥치는 대로 그것을 형벌할 수 있고 마음대로 그것을 정죄한다.

오늘, 모든 사람이 다 흑암 속에서 생존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도래로 인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보고서 빛의 실질을 인식하게 되었다. 온 세상 가운데는 마치 큰 검은 솥을 온 땅 위에 엎어놓은 것처럼 모든 사람이 다 갑갑하여 하늘과 땅을 바꾸어놓으려 하지만 검은 솥을 들어올리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문득 깨닫게 되었고 모두 실제의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질문하는 말투를 채용하여 사람에게 물었다. “사람은 빛 가운데서 나를 안 적이 없고 어두운 세상에서 나를 보았다. 너희가 오늘 바로 이런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큰 붉은 용이 제멋대로 미친 듯이 날뛰며 최고봉에 이를 때 정식으로 육신에서 나의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영계의 실제 상황을 숨기지 않고 사람 마음속의 실정도 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여러 번이나 사람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자민으로 하여금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뭇 자민을 정결케 한다. 나의 행정이 엄격하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나에게 도태될 위험이 있다. 만일 전력을 다해 자신을 다스리지 않고 자기 몸을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반드시 내게 버림받는 대상이 되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바울처럼 직접 나의 손에서 형벌받아 해방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할수록 사람은 자기의 발걸음을 더 조심하게 되고 하나님의 행정을 더 두려워하게 된다. 이래야만 하나님의 권병을 발휘할 수 있고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낼 수 있다. 여기에서 바울의 일을 재차 언급한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여 형벌받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래야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이전의 하나님 앞에서의 심지가 하나님을 전혀 만족게 할 수 없었던 것을 돌이켜보게 함으로써 더욱 극도로 통회하게 하고 더욱 실제의 ‘하나님’을 알게 할 수 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의혹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은 육신에 있는 나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육체 속에서 살고 있는 자신도 알지 못한다. 여러 해 동안 사람은 줄곧 나를 기만하였고, 줄곧 나를 지나가는 손님으로 여기고 여러 번 …” 이 ‘여러 번’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한 실제를 사람에게 열거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형벌받는 실례를 보게 하였는데, 이것은 죄증이니 누구도 더는 변명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다 하나님을 가정 일용품으로 여겨 사용하는데 마치 가정의 ‘필수’인 듯 마음대로 가져와 사용한다.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알아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알아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은 더욱 없다.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속의 애물로 삼아 대한 적도 없고 모두 필요할 때 끌어오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한쪽에 버려두고 추호도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마치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은 하나의 ‘꼭두각시’와 같아 그의 지배대로 하고 그가 원하는 대로, 그가 생각하는 대로 하나님께 요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일 내가 말씀이 육신 되었을 때 사람의 연약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이 다 내가 말씀이 육신 된 이 일로 인하여 넋을 잃을 것이고 따라서 음부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씀한 것에 따르면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성육신 된 의의가 도대체 얼마나 큰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육신 중에서 전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지 결코 영계에서 전 인류를 훼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 될 때 아무도 알지 못했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의 연약을 상관하지 않고 말씀이 육신 될 때 천지개벽을 한다면 모든 사람이 다 훼멸되었을 것이다. 사람의 본성이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옛 것을 싫어함으로 인해 흔히 모두 즐거운 것이 있으면 고통을 잊고 모두 복 중에서 살면서 복을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 번 사람에게 오늘의 얻기 쉽지 않음을 소중히 여기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더 소중히 여겨야지 짐승처럼 ‘높은 곳에 올라 주인도 몰라서는’ 안 되고 복 중에서 살면서 복을 몰라서는 안 된다고 일깨워 주었다. 이리하여 사람은 모두 온순해지고 스스로 자랑하지도 않고 오만하지도 않게 되었으며 사람의 본성이 좋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사람에게 임한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은 모두 형벌받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더 이상 감히 무엇을 하지 못하였다.

─────────

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심복구복(心服口服):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함.

③소시(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