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5)
지난번 예배 때는 리더 일꾼의 직책 제5조에 대해 교제했는데, 교제를 통해 거짓 리더의 일부 모습과 행동 방식을 해부해 보았고, 해당 내용에 대한 교제를 마무리했다. 계속해서 리더 일꾼의 직책 제6조와 제7조를 교제하겠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냐? (‘제6조 자격을 갖춘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훈련의 기회를 얻고 되도록 빨리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한다’, ‘제7조 각 부류 사람의 인성과 특기에 따라 각 부류의 사람을 합리적으로 배치하고 써서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춰서 거짓 리더의 각종 행동 방식과 모습을 해부해 볼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같은 대항목의 내용으로, 교회가 각 부류의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하고, 쓰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선 하나님 집에서 자격을 갖춘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원칙에 대해 교제해 보자. 그러면 리더 일꾼이 이 사역을 할 때 어떤 원칙을 준수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본적으로 깨달을 수 있지 않겠느냐? ‘리더 일꾼으로서 우리는 이런 일을 자주 접해서 이 사역에 이미 익숙하고 경험도 어느 정도 있으니 당신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속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더 교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희가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교제할 필요가 없겠느냐? (교제해야 합니다. 저희는 이 방면의 원칙을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고, 일부 인재를 아직도 분별할 줄 모릅니다.) 대다수 리더 일꾼들이 이 사역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명확히 알지 못한다. 모색하는 과정에 있고, 정확한 원칙을 파악하지 못했다. 따라서 역시 세부적으로 교제할 필요가 있다.
제6조 자격을 갖춘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훈련의 기회를 얻고 되도록 빨리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한다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의미
하나님 집에서 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느냐?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것이 과학과 교육, 문학을 하기 위한 것이냐?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것은 첨단 제품을 만들어서 기적을 창조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인류의 발전사를 연구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인류의 앞날을 위해 무슨 계획을 세우는 것도 아님을 하나님 선민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집에서는 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것이냐? 너희는 알고 있느냐?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확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확장하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다. 또 어떤 게 있느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훈련할 기회를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 그 대답이 비교적 합리적이고, 아주 적절하다. 그러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더 많은 이들이 훈련할 기회를 얻고 되도록 빨리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방금 한 대답은 둘 다 옳고 정확하다.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일은 한 측면으로는 하나님나라 복음의 확장과 하나님 사역에 관계되고, 또 한 측면으로는 개인의 추구와 진입에 관계된다. 이 두 가지는 중요한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의미가 무엇이냐? 발탁되고 양성되는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역을 하느냐? 하나님 집에서 한 사람을 팀장이나 책임자, 혹은 교회 리더 일꾼으로 발탁하고 양성하는 것이 그에게 관직에 오르게 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하는 목적은 복음 사역, 문서 사역, 영상 사역, 양육 사역, 그리고 일부 사무 사역 등 교회 각 사역의 구체적인 항목이나 구체적인 사역을 책임지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 말씀의 진리 원칙,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에 근거해서 교회의 각 사역을 담당하여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해서 사역을 맡기는 일을 보면, 사람에게 직함이나 지위가 생긴다고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정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구체적인 사역, 다시 말해 하나님이 맡긴 부탁이나 책임이 따르는 본분과 의무를 담당할 수 있다. 이것이 리더 일꾼의 직책 제6조에서 언급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구체적인 의미와 정의이다. 따라서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하는 목적은 바로 각 부류의 인재를 양성해서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대로 교회의 각 사역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것이며, 사람이 교회의 여러 구체적인 사역을 담당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을 양성하고 훈련해서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진리를 교제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 사람들이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이끌어서 모두 참된 체험과 간증을 갖게 하는 것, 그런 다음 사람을 이끌고 양육하고 공급해서 교회의 각 사역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것, 아울러 하나님 선민들이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며 복음 전도 본분을 잘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실행 방식은, 한 측면으로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며 자신을 인식하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이끄는 것이고, 또 한 측면으로는 자신이 충성하고 순종한 실제 체험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도록 이끌고 양성함으로써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하는 것이다. 각 부류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에는 주로 이 두 방면의 실행의 길이 있다. 이것은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일에 관계된 구체적인 사역이자,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참된 의미이다.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각 부류의 인재가 갖추어야 할 조건
1. 리더 일꾼과 각 사역의 책임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
교회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각 부류의 인재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느냐? 어느 범위를 포함하느냐? 우선은 각 사역의 책임자를 맡을 수 있는 부류가 있다. 각 사역의 책임자에 대한 요구 기준은 무엇이냐? 여기에는 주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반드시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진리에 대한 이해가 치우치지 않고 순수하고 올발라야 하며,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쳐야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다. 자질이 뛰어난 사람은 최소한 영적인 이해력이 있어야 하고, 독립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일 줄 알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관념과 상상, 자신의 생각과 불순물,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기준에 도달하면 곧 하나님 사역을 체험할 줄 알게 된 것이며, 이것이 자질이 뛰어난 사람의 모습이다. 둘째, 반드시 교회 사역에 부담을 가져야 한다. 정말 부담을 가진 사람은 열정만 있는 게 아니라 참된 생명 체험이 있고,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고 문제를 어느 정도 꿰뚫어 볼 수 있다. 교회 사역에, 그리고 하나님 선민들에게 해결해야 할 어려움과 문제가 많은 걸 보면, 그런 게 눈에 보이면 그는 조바심을 낸다. 이것이 바로 교회 사역에 부담을 가진 것이다. 만약 자질이 뛰어나고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은 있지만 게으르고, 육적인 편안함을 탐하고,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 않으려 하고, 상부에서 기한 내에 완수하라고 명령을 내려서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야 겨우 사역을 좀 한다면 이런 사람이 바로 부담이 없는 사람이다. 부담이 없는 사람은 하나같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 정의감이 없는 사람이고, 무위도식하는 못난이다. 셋째, 반드시 사역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역 능력이란 무엇이냐? 간단히 말하면 사역을 배치하고 사람들에게 사역을 맡길 줄 알 뿐만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역 능력을 갖춘 것이다. 그 밖에 조직 능력도 있어야 한다. 조직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소집하는 데 특히 능하고, 능숙하게 사역을 조직하고 안배하며, 문제를 잘 해결하며, 사역을 안배하고 문제를 해결할 때 사람들이 입으로도 마음으로도 감탄하며 순종하게 만들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조직 능력이 있는 것이다. 정말 사역 능력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 안배한 구체적인 사역을 이행해 나갈 수 있고, 사역을 이행할 때는 신속하고 칼같으며, 모든 사역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집에서 리더 일꾼을 양성하는 세 가지 기준이다. 만약 이 세 가지 기준을 갖추었다면 흔히 얻을 수 없는 인재이니 즉시 발탁해서 양성하고 훈련해야 하고, 일정 기간 연습하면 사역을 맡을 수 있다. 자질이 있고, 부담을 가지고, 사역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역할 때는 누가 늘 신경을 쓰고 독촉할 필요가 없다. 그에게는 자발성이 있으며, 언제 어떤 사역을 해야 할지, 어떤 사역을 검사하고 감독해야 할지, 어떤 사역을 점검해야 하고 반드시 면밀히 지켜봐야 할지 알고 있다. 그는 속으로 이런 일을 다 알고 있다. 이런 사람은 사역할 때 상대적으로 믿음직스럽고, 믿을 만하고,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설령 문제가 좀 생겨도 아주 사소한 문제여서 대세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사역을 하면 하나님이 안심할 수 있다. 사역을 할 때 정말 혼자서 한몫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정말 사역 능력이 있는 것이고, 혼자서 한몫할 수 없고 늘 누군가 신경 써야 하고 누군가 지켜보며 관여해야 하고, 심지어 직접 가르쳐야 한다면 이런 사람은 자질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다. 자질이 보통인 사람은 사역 성과도 당연히 보통이어서 누군가 지켜보고 관여해야 일을 좀 할 수 있지만, 자질이 뛰어난 사람은 일정 기간 훈련하면 혼자서 한몫을 할 수 있다. 상부에서 어떤 사역을 맡기면서 일부 원칙을 교제할 때마다 그는 늘 원칙을 파악하고 그 원칙대로 이행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빈틈이나 편차도 그리 크지 않고, 마땅히 내야 할 성과에도 이를 수 있다. 이러면 사역 능력을 갖춘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 집에서 교회를 정리하고 적그리스도와 악인을 분별해서 교회에서 출교하라고 요구하면, 이 사역을 할 때 사역 능력이 있는 부류는 대체로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 한 명이 나타나고 드러나 제명되기까지는 최소 반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동안 그는 분별해 낼 수 있고, 진리를 교제해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해부함으로써 형제자매가 분별력을 가지고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함께 일어나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출교시킬 수 있도록 한다. 그의 사역 범위 내에서는 적그리스도나 악인이 나타나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미혹되지 않고 영향도 받지 않는다. 단지 소수의 머저리나 자질이 너무 떨어지는 사람만 미혹되는데, 이는 정상적인 현상이다. 자질이 뛰어나고 사역 능력이 있는 사람이 사역을 하면 이런 성과에 이를 수 있으며, 이런 사람이 바로 진리 실제가 있는 것이고, 합당한 자격을 갖춘 리더 일꾼이다.
방금 언급한 각 부류의 인재 중 첫 번째 부류는 각 사역의 책임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제시되는 첫 번째 요구는 바로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과 자질을 갖추는 것으로, 이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부담을 갖는 것이며 이는 필수적이다. 어떤 사람은 진리에 대한 이해가 일반 사람보다 빠르고, 영적인 이해력도 있고, 자질도 뛰어나며, 사역 능력도 있어서 일정 기간 단련하면 반드시 혼자서 한몫을 할 수 있지만,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으니 바로 부담이 없는 것이다. 그는 먹고 마시고 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며 이런 일들에 너무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에게 고생하며 대가를 치러야 하고, 조금 구속받아야 하는 구체적인 사역을 조금 시키면, 그는 힘이 빠지고, 여기저기가 아프거나 근질근질하고, 온몸이 편치 않다. 그는 자유롭고 산만하며, 제멋대로에다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방탕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다가 불현듯 생각나면 그제서야 사역을 조금 하지만, 사역이 조금 힘들고 고되면 금세 흥미를 잃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부담을 가진 것이냐? (아닙니다.) 게으르고 육적인 편안함을 탐하는 이런 부류는 발탁하고 양성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의 자질을 본다면 사역을 하나 담당하기에는 너끈하지만 아쉽게도 부담이 없다. 그는 책임지는 것, 번거로운 것, 신경 쓰는 것을 싫어해서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설령 일이 보여도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부류가 발탁하고 양성해야 할 대상이겠느냐? 절대 아니다. 반드시 부담을 가져야 발탁하고 양성할 수 있다. 부담을 가지는 것은 책임감이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책임감이 있다는 것은 인성 방면에 중점을 둔 것이고, 부담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한 측면의 기준과 관련되는 것이다. 부담을 가지면서 다른 두 가지 요건을 갖춘다면, 즉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사역 능력도 있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발탁하고 양성할 수 있는 부류이며, 이 부류는 각 사역의 책임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각 부류의 책임자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것에 관한 요구 기준이며, 이 몇 가지를 갖춘 사람이 바로 발탁하고 양성할 수 있는 대상이다.
2. 특별한 재능이나 은사가 있는 업무 인재가 갖추어야 할 조건
각 사역의 책임자가 될 수 있는 부류 이외에, 발탁하고 양성할 수 있는 또 다른 부류는 바로 특별한 재능이나 은사가 있거나 특정 업무 기술을 파악한 사람들이다. 이런 부류를 팀장으로 양성하는 일에서 하나님 집의 요구 기준은 무엇이냐? 먼저 인성 면에서 보자면, 긍정적인 사물을 비교적 좋아하고 악인이 아니기만 하면 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왜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습니까?” 각 팀의 팀장은 리더 일꾼도 아니고 양육 담당자도 아닌데 만약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기준을 내세운다면 너무 지나친 요구라서 많은 이들이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무 사역이나 전문 업무에 관련된 사역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요구가 불필요하고, 만약 이렇게 요구한다면 닿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기준을 낮춰야 한다. 업무를 이해해서 사역을 담당할 수 있고, 악을 행하지 않고 교란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 기술 업무에 능하거나 특기가 있는 이들 부류의 경우, 그들이 하나님 집에서 일부 기술적이거나 업무에 관련된 사역을 이행한다면, 상대적으로 인품이 점잖고 바르고, 치우치지 않게 이해하고, 기꺼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줄 알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이런 부류를 팀장으로 양성할 때 첫 번째 요구는 바로 긍정적인 사물을 비교적 좋아하는 것이고, 그다음으로는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무엇이 있느냐? (인품이 바르고, 악하지 않고, 이해가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인품이 발라야 하고, 악인이 아니어야 하며, 또 치우치지 않게 이해해야 한다. 어떤 이는 “그렇다면 그들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좋다고 볼 수 있을까요? 진리를 듣고 나면 진리 실제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이렇게까지 요구할 필요 없이 그저 이해가 치우치지 않는 것만 요구하면 그걸로 된다. 이해가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 사역할 때 좋은 점은 쉽게 일을 방해하는 짓이나 황당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우의 의상 색깔을 예로 들어 보자. 하나님 집에서는 의상이 단정하면서 색깔은 단조롭지 않고 다채로워야 한다고 관련 원칙을 수차례 교제했지만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듣고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며, 하나님 집의 이런 요구 가운데서 원칙을 찾지 못한다. 결국 고른 옷을 보면 죄다 칙칙한 회색 일색이다. 이것은 치우치게 이해한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치우치게 이해한 것이다. 긍정적인 사물을 비교적 좋아한다는 것은 주로 어떤 뜻이냐?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바로 진리에 부합하는 말과 일을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 말씀과 각 방면의 진리를 모두 받아들이고 그에 순종할 수 있으며, 본인이 실행해 낼 수 있고 없고를 떠나 최소한 속으로 반발하거나 반감을 품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부류는 좋은 사람들이고, 흔히들 올바른 사람이라고 한다. 올바른 사람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느냐? 이방인들이 좋아하는 악한 일, 그들이 좇는 사악한 흐름을 보면 반감과 역겨움, 혐오를 느낀다. 예를 들어, 이방 세계의 흐름 속에서는 다들 사악한 세력을 숭상하고, 많은 여자들이 부자와 결혼하거나 내연녀가 되고자 한다. 이는 사악하지 않으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런 일에 특히 염증을 느끼며, 어떤 사람은 “나 같으면 결혼 안 하고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거야.”라고 하며 그런 사람을 경멸하고 천시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사악한 흐름에 염증을 느끼고 혐오하며 이 사악한 흐름에 휘말린 사람을 경멸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사람은 비교적 올곧으며, 하나님을 믿으며 좋은 사람이 되고, 바른길을 걷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악에서 떠나고, 사악한 흐름과 이 세상의 모든 악행을 멀리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 길을 갈 수 있을지, 하나님을 믿는 것과 바른길을 걷는 것에 대해 얼마나 굳은 의지가 있는지는 상관없이 어쨌든 그는 마음속으로 빛 속에서 살길 갈망하고 공의가 권세 잡는 곳을 동경한다. 이런 올곧은 부류의 사람은 긍정적인 사물을 비교적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려는 사람은 최소한 바른 인성에 긍정적 사물을 좋아하는 인품을 지녀야 한다. 이는 업무 기술과 특기를 갖춘 부류의 인재를 발탁할 때 제시되는 첫 번째 요구 기준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고생을 감내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업과 사역을 위해 사욕, 육적 즐거움이나 편안한 생활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며, 심지어 자신의 미래까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좀 고생스럽거나 힘든 건 별것 아니라 여기며 자신이 하는 일이 의미 있는 일, 옳은 일이라 생각되면 기꺼이 육적 즐거움이나 이익을 내려놓아야 한다. 최소한 이러한 의지와 소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도 어떤 때는 육적인 편안함을 탐해 늦잠도 자고 좋은 것도 먹고 싶어 해요. 나가 돌아다니거나 놀고 싶어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잠깐 기분에 영향을 받아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대부분의 경우엔 고생을 감내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어요. 이것도 문제가 되나요?”라고 묻는다. 이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육적 즐거움을 완전히 내려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며 특수한 상황은 예외다. 종합해 보자면, 네가 한 가지 사역을 그에게 맡겼을 때, 그 사역이 크든 작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든 아니든, 또 그 사역에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든, 얼마나 많이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야 하든 네가 맡기기만 하면, 네가 지켜보고 관여하지 않아도 그는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다. 이런 부류는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는데, 이는 올바른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한 가지 모습이기도 하다.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진지하게 대할 수 있고, 특히 마음을 쏟고 세심하며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어떤 고생도 할 수 있고,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은 일을 처리할 때 신용을 지키고 남에게 믿음을 준다. 편한 것만 좋아하고 일하기를 싫어하고, 빈둥대고, 이익만 밝히며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하나님은 거짓말만 하며 사람들을 기만하거나 구슬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 맹세도 서슴지 않는 부류를 구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한다. 정직한 사람만이 신용을 지키고 본분을 대할 때도 충성을 다하며,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에게 구원받을 수 있다.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것이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두 번째 특성과 모습이다. 세 번째는 치우치게 이해하지 않는 것이다. 즉,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적어도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있고, 하나님이 말씀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그릇되게 이해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파란색이라고 하면 그는 검은색이라 이해하지 않고 네가 회색이라고 하면 그는 자주색이라 이해하지 않는 것, 이것이 가장 기본이다. 간혹 치우치게 이해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지적하면 받아들일 수 있고, 만약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순수하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은 모두 순수하고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이다. 네 번째, 악인이 아니어야 한다. 이 조항은 쉽게 이해되지 않느냐? 악인이 아니라면 최소한 한 가지는 해내야 한다. 즉, 하나님 집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원칙을 위배하고 일을 잘못해서 책망과 훈계를 받을 때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하며 반발하지도 않고 소극적인 것이나 관념을 퍼트리지도 않아야 한다. 그 밖에도 어떤 무리 안에 있든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고, 화목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한다. 누가 조금 듣기 거북한 말로 기분을 상하게 하더라도 따지지 않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하고, 누가 자기를 괴롭히더라도 악을 악으로 다스리지 않고 그저 지혜로운 방식을 택해서 멀리하고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비록 정직한 사람에는 이를 수 없지만, 최소한 비교적 착실하고 악을 행하지 않으며, 누가 자신에게 미움을 사더라도 보복하지도, 괴롭히지도, 억압하지도 않는다. 그는 독립 왕국을 세우지도 않고 하나님 집과 맞서지도 않고,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퍼뜨리지도 않고,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고, 방해하고 교란하는 짓도 하지 않는다. 이 네 가지 항목은 특기가 있거나 기술과 업무에 숙련된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할 시 그 상대가 갖춰야 하는 기본 조건이다. 이 네 가지 항목만 갖추면 기본적으로 어떤 한 가지의 본분을 책임질 수 있고 어떤 하나의 사역을 잘 이행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발탁되고 양성되는 인재가 갖추어야 할 조건 중에 어째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를 갖추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없습니까? 어째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충성심을 지지고,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없습니까? 혹시 빠뜨린 것은 아니십니까?” 너희가 볼 때 한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진리 실제에 진입했고,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에게 충성심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고, 또 하나님을 인식했고, 하나님에게 대적할 리 없고,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라면, 그래도 양성할 필요가 있느냐? 만약 정말 그런 수준에 이르렀다면 이것은 이미 양성해서 성과를 낸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따라서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기 위한 요구 조건에는 이런 사항이 없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패괴 성품이 가득한 사람들 가운데서 발탁하고 양성하려고 하기 때문에 발탁되고 양성되는 이 대상들은 진리 실제가 있을 리도 없고, 하나님에게 완전히 순종할 리도 없고, 더 나아가 하나님에게 절대적인 충성심이 있을 리도 없으며, 당연히 하나님에 대한 인식,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발탁되고 양성되는 각 부류의 인재들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바로 우리가 방금 언급한 몇 가지이며, 그것들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조건들이다. 몇몇 거짓 리더들은 말한다. “저희 편에는 발탁하고 양성할 만한 인재가 없습니다. 아무개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아무개는 일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 아무개는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무개는 충성심이 없고….” 결점을 한 무더기나 늘어놓는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의도는 무엇이냐? 마치 이 사람들이 발탁되고 양성될 수 없는 것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지 않고, 진리 실제도 갖추지 않은 등의 이유 때문이고, 반면 본인이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은 본인에게 이미 실제적인 체험이 있고, 본인은 진리 실제를 갖추었기 때문이라는 말인 듯하다. 그는 이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냐? 그의 눈에는 누구도 자기보다 못하고, 자기가 아니면 리더를 맡기에 적합한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거짓 리더의 교만한 성품이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하는 일에 대해 관념과 상상이 가득하다.
3. 사무 사역 담당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
조금 전에 하나님 집에서 중점적으로 양성하는 두 부류에 대해 언급했는데, 하나는 리더 일꾼이 될 수 있는 부류이고, 또 하나는 각종 업무 사역을 할 수 있는 부류이다. 그리고 한 부류가 더 있다. 무슨 특기나 업무 기술이 있다고 할 수는 없고, 높은 기술이 요구되지 않는 사역을 하는 부류, 즉 단지 교회에서 사무 사역을 좀 하면서 교회의 실질적인 사역 이외의 일을 하는 부류로, 바로 사무 사역을 하는 부류다. 이런 부류에 대한 하나님 집의 주된 요구는 무엇이냐? 가장 핵심적인 한 가지는 바로 그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팔이 밖으로 굽지 말아야 하고, 사탄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사교적인 인재여도 그렇고, 사회의 엘리트, 혹은 특별한 인재여도 그렇고 하나님 집을 위해 외교적인 사무를 처리할 때는 늘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집의 이익에는 어떤 것이 포함되느냐? 금전, 물질, 하나님 집의 명성과 명예, 교회의 명성과 명예, 그리고 형제자매의 안전 등이 있으며, 이 몇 가지 측면은 다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켜 낼 수 있다면 그는 정상 인성을 갖춘 것이고, 무척 올곧은 사람이고, 기꺼이 진리를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분별력이 없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은 인성이 악하지만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게 가능하겠느냐? (불가능합니다.) 악인이 어떻게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킬 수 있겠느냐? 그는 단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한 사람이 정말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면 그의 인격과 인성은 틀림없이 훌륭하고, 잘못될 리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만약 한 사람이 하나님 집을 위해 일하면서 팔이 밖으로 굽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고, 그럼으로써 하나님 집의 금전과 물질에 많은 손해를 입힐 뿐만 아니라 하나님 집의 명예, 교회의 명예에도 막대한 손상을 준다면 이런 자가 좋은 사람이냐? 이런 부류는 결코 좋은 인간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 집의 물질과 금전이 얼마나 큰 손실을 입을지는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방인들에게 잘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방인에게 뇌물을 주는 것도 모자라 이방인과 교섭할 때 계속 양보만 하면서 하나님 집을 위해 이익을 얻어 낼 줄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 집을 속여 가며 자기가 사역을 어떻게 잘했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어떻게 지켰다고 떠들어 대지만 사실 교회 사역은 이미 손해를 입었고, 이방인은 하나님 집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다 챙겼다. 어떤 이가 외부적인 일을 처리할 때 각 방면에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은 좋은 사람이냐, 아니냐? (좋은 사람입니다.) 그럼 이런 부류의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다른 일은 할 수 없고 사무 사역에만 적합하다면 하나님 집에서는 이런 사람을 발탁해야겠느냐, 말아야겠느냐? (발탁해야 합니다.) 사역 능력이 있고, 하나님 집에서 요구하는 원칙에 따라 할 수 있는 것 외에도,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면 자격을 갖춘 것이니, 이런 부류의 사람은 발탁해야 한다. 반대로, 하나님 집의 이익에 온통 손해를 입히고 형제자매의 안전에 잠재적 위험이 초래되며 하나님 집과 교회의 명성에 나쁜 영향과 결과를 가져오는 이런 사람들은 발탁하고 양성하는 대상이 아니며, 만약 이들을 발탁해서 썼으면 얼른 교체해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역할 때 늘 일을 낸다. 운전을 하면 사고를 내고, 일을 하면 죽을 쑤는가 하면, 시비를 일으켜 항상 누군가로부터 고소되고, 어떤 빈틈이 있어도 해결할 줄 모른다. 이런 부류는 지능이 낮고, 재수 없는 인간, 망종이다. 이런 부류가 팀장이나 책임자, 또는 리더 일꾼을 맡았으면 얼른 교체해야 하는 것은 물론, 교회에서 제명해야 한다. 이런 부류는 불길한 자이자 재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가 한두 명만 교회에 있어도 교회가 편안할 수 없다. 이런 부류는 악령이 들러붙어 있거나 전염병에 걸린 것과 같으니 누구든 그와 마주치면 재수가 옴 붙는다. 그러니 서둘러 뿌리까지 뽑아 버려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면상도 좋지 않다. 귀신 같은 얼굴, 간사한 얼굴에다 너무 추해서 이들과 마주치면 누구나 좋지 않은 징조를 느끼게 된다. 이런 부류는 반드시 교체하고 또 제명해야 교회가 평안하고 무사할 수 있다. 교회에서 각종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할 때는 반드시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분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 발탁하고 양성하는 다양한 사람들 중에는 교회 리더 일꾼이 되는 사람도 있고, 교회의 여러 업무를 책임지는 사람도 있고, 교회를 위해 일을 처리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몇 부류의 인재가 갖추어야 할 각종 조건을 모두 분명하게 교제했다. 그런 다음 어떻게 리더 일꾼을 선출하고, 또 어떻게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하는지에 관한 원칙들만 알면 교회의 모든 사역이 정상 궤도에 진입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이 사람들을 왜 인재라고 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인재란 바로 발탁하고 양성하는 대상을 가리킨다. 각기 다른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각기 다른 요구가 있고, 발탁하고 양성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이른바 인재라고 하는 이들이 방금 얘기한 그런 조건에 도달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사람들에게 진리 실제가 있는 수준, 순종할 수 있고, 충성심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라고 한다면 그건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인재는 단지 정상 인성에 갖춰져야 할 인품과 인격, 진리를 이해하는 자질을 갖춘 사람을 뜻하며, 그것으로 합당한 자격을 갖춘 셈이다. 이미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거나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이미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 있다는 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런 인재들이 대학생이나 박사, 또는 집안 배경이 좋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 또는 특이한 재주나 특별한 은사가 있는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발탁하고 양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업무 사역에 관계된 사람들 중 일부는 아마 전에 이런 업무를 해 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지만, 발탁되고 양성되기 위한 그 몇 가지 조건을 갖추고, 또한 배우기를 원하고 업무를 배우는 데도 능하기만 하면, 하나님 집에서는 발탁하고 양성할 수 있다. 내가 하는 이 말이 무슨 뜻이냐? 어떤 한 사람이 한 가지 업무 능력을 타고나야 발탁되고 양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그런 바람이 있고 그 방면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 나아가 이 방면의 업무 기초만 갖추고 있으면 발탁되고 양성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원칙이다.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각 부류의 인재가 갖추어야 할 조건에 대한 교제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다.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목적
이어서 하나님 집에서 왜 각종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지 교제해 보겠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 집에서 각종 인재를 바로 발탁해서 쓰면 되지 않나? 왜 또 한동안 양성하고 훈련해야 하지?’ 너희는 이해가 가느냐? 우선 리더 일꾼이 되는 부류에 대해 얘기해 보자. 왜 하나님 집에서는 이해 능력도 있고, 교회에 부담도 있고, 또 사역 능력도 있는 사람들을 발탁해서 양성하려는 것이냐? 그건 바로 그들이 비록 자질과 조건에서는 모두 기준에 부합하지만 아직 참된 체험이 없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데다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서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지는 더욱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한동안 훈련하면서 지도를 받아 본분을 이행할 때 원칙을 파악하고 참된 체험이 생겨야 정식으로 쓸 수 있다. 만약 그들에게 교회에서 형제자매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설교를 듣고, 교회 생활을 하고, 본분 이행을 연습하라고 한 다음, 생명이 자라고 나서야 그들을 발탁하고 양성한다면 발전이 너무 더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얼마나 믿어야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하게 된다는 말이냐? 이것이 교회 사역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 따라서 한 사람에게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과 사역 능력이 있고 부담도 있다면, 마땅히 발탁하고 양성해서 그에게 리더 일꾼 본분을 이행하는 연습을 하게 해서 그에게 부담을 더해 줘야 한다. 한편으로는 그가 자신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면서 또 특별한 상황이 닥칠 때는 그에게 진리를 교제해서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때로는 책망과 훈계도 해야 하고, 필요할 때는 징계도 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그가 많은 시련과 연단을 겪고 많은 고통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런 실제적인 훈련을 통해 그는 비로소 참된 발전을 이룰 수 있고, 또한 차츰 진리를 깨닫고 원칙을 파악할 수 있게 되어 하루빨리 리더 일꾼의 사역을 담당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리더 일꾼을 양성하고 훈련해야 효과도 더 좋고,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집의 사역에 유리하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는 더욱 유리한데, 그건 리더 일꾼에게 실제적인 체험이 생기면 하나님 선민을 직접 양육하고 그들에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집에서 한 사람을 리더로 발탁해서 양성하는 것은 곧 그 사람에게 더 많은 부담을 더해 주어 그를 훈련함으로써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진리를 향해 노력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그의 분량이 빨리 자랄 수 있다. 그에게 부담을 많이 줄수록 받는 중압감도 더 커지고 그만큼 더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결국 그는 사역을 잘 이행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된다. 그러면 구원받아 온전케 되는 정상 궤도로 들어서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함으로써 이루는 성과이다. 만약 이런 구체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진리 실제를 갖춘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구체적인 사역을 하는 것을 통해 그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자신이 은사를 빼면 어떤 진리 실제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자신이 빈곤하고 가련하다고 느끼게 하고, 자신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진리를 구하지 않으면 어떤 사역도 할 수 없음을 인식하게 하고, 또한 진실로 자신을 인식해서 진리와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쓰임 받기에 합당할 수가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한다. 이런 것들이 리더 일꾼을 양성하고 훈련하는 일에서 반드시 도달해야 할 성과이다. 이 몇 가지 방면에 인식이 생기면 사람은 비로소 착실하게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비로소 겸손하게 처신할 수 있고, 비로소 사역을 하면서 더 이상 자신을 뽐내지 않도록 보장할 수 있고, 비로소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할 수 있고, 차츰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한 사람을 리더로 발탁하고 양성하는 일은 그에게 다양한 사람의 내적 상태를 분별하는 법을 배우게 하고, 진리를 구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함으로써 다양한 사람들을 붙잡아 주고 그들에게 공급하면서 사람들을 진리 실제로 진입하도록 이끄는 일을 훈련하게 하고, 동시에 사역 과정에서 만나는 각종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는 법을 훈련하게 하고, 다양한 적그리스도, 악인, 불신파를 분별하고 처리해서 교회를 정리하는 사역을 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 이를 통해서 그는 사람과 일, 사물,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을 남들보다 더 많이 체험하게 되고, 그가 먹고 마시는 하나님 말씀이 점점 많아지고, 진입할 수 있는 진리 실제도 점점 많아지게 된다. 이는 훈련의 기회가 아니냐? 훈련의 기회가 많아질수록 그만큼 사람은 체험이 쌓이고 식견이 넓어져서 발전 속도도 더욱 빨라진다. 하지만 만약 그가 리더 사역을 하지 않으면 그가 접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개인적인 생활과 체험에 지나지 않고, 그가 인식할 수 있는 것 역시 개인의 패괴 성품과 각종 내적 상태에 지나지 않는데, 단지 개인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이다. 하지만 리더가 되면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일, 더 많은 환경을 접할 것이고, 그러면 그가 늘 하나님 앞에 와서 진리 원칙을 구하게 만들고, 그런 사람과 일, 사물은 은연중에 그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당연히 그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 위한 가장 유리한 조건이 되기도 할 것이니, 이는 매우 좋은 일이다. 따라서 똑같이 자질과 부담, 사역 능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평범한 신자는 천천히 진입하고, 리더 일꾼은 좀 빨리 진입한다. 사람에게는 진리 실제에 빨리 진입하는 것이 좋은 일이냐, 아니면 천천히 진입하는 것이 좋은 일이냐? (빨리 진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자질과 부담, 사역 능력이 있는 부류는 하나님 집에서 파격적으로 발탁한다. 다만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진리를 향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집에서 그를 억지로 발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일에 기초가 있고, 리더 일꾼이 될 조건을 갖추고, 진리를 추구해서 하나님에게 쓰임 받기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 집에서는 틀림없이 발탁하고 양성할 것이며, 그에게 리더 일꾼으로 훈련할 기회를 주어서 교회 사역을 하는 법을 배우고, 사람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고, 교회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처리하는 법을 배우고, 사역지침에 따라 각종 사역을 잘 이행하는 법을 배우도록 해 줄 것이다. 만약 훈련 기간에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고, 진리를 구해 각종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여러 부류의 사람을 대하고, 여러 부류의 사람을 분별하고 처리하는 법을 배운다면, 그렇게 해서 관련 진리 원칙을 파악하고 진리를 깨달아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이런 일은 보통 신자는 체험할 수도 없고 거둘 수도 없는 수확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 집에서 한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하는 것이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냐? 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갓 발탁되었을 때 어떤 사역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조금 갈피를 잡지 못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정상적인 상황이다. 태어날 때부터 무엇이든 다 할 줄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만약 네가 무엇이든 할 줄 안다면 너는 분명 가장 교만하고 방자한 사람이고,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을 텐데, 그래도 네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네가 만약 무엇이든 할 줄 안다면 그래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하겠느냐? 그래도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 문제를 해결하겠느냐? 결코 아닐 것이다. 반대로 교만하고 방자하게 굴며 적그리스도의 길을 갈 것이고, 권력과 지위를 다투며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을 것이고, 사람을 미혹하고 농락하는 한편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할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 집에서 너를 쓸 수 있겠느냐? 네가 만약 본인에게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을 안다면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 집에서 요구하는 대로 각 사역을 제대로 해야 차츰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있다. 하지만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는 이런 간단한 일을 대부분은 해내지 못한다. 그러면 하나님 집에서 너를 발탁하지 않고 양성하지 않는다고 탓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말씀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따르는 것도 못 하는데 하나님 집에서 그래도 너를 발탁하고 양성할 수 있겠느냐? (그러지 못합니다.) 어째서 그러지 못하느냐? 너를 쓰는 것이 너무나 위험하고, 너무나 골치가 아프고, 너무나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너를 쓰면 너는 사람을 자기 손안에 통제할 수 있고, 사람을 사악한 길로 인도할 수 있다. 이것이 너무 위험한 것이다. 너를 쓰면 네가 함부로 악행을 저지르며 사역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고, 또 너를 교체하고 너 대신 난장판을 수습해야 한다. 이것이 너무 골치 아픈 것이다. 너를 쓰면 너는 어떤 사역도 할 줄 모르고, 어떤 성과도 없고, 어떤 사역을 해도 항상 상부에서 독촉하고, 감독하고, 점검해야 하고, 어떤 일도 상부에서 개입해야 하는데, 그러면 왜 너를 쓰겠느냐? 너무나 신경이 쓰인다! 이런 사람은 절대 쓰면 안 된다. 양성해도 제대로 양성해 낼 수 없고, 많은 번거로움이 뒤따를 것이고, 다른 사람을 양성하는 데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면 득보다 실이 많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 하나님 집에서 발탁되어 쓰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속으로 불만을 품고 이런 말을 내뱉는다. “상부에서는 왜 늘 저를 못 보시는 걸까요? 하나님 집에서는 왜 계속 저를 발탁해서 양성해 주시지 않는 겁니까? 이건 불공평해요!” 그렇다면 먼저 본인이 말을 잘 듣는지,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는지를 판단해 보고, 그다음에는 본인이 하나님 집에서 리더 일꾼으로 발탁하고 양성하는 세 가지 조건인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 부담, 사역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판단해 보아야 한다. 만약 네가 이런 것을 갖추었다면 언젠가는 발탁되고 양성되고 쓰임 받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너를 발탁하려 하는 이상, 너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다. 어떤 요구이겠느냐? 너는 하나님 집의 원칙과 요구에 따라 일을 처리하며 무엇을 하라 하면 하고 어떻게 하라 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네가 우선 일을 원칙대로 처리하는 법을 배우고, 진리를 구하고 진리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조화롭게 협력하는 법을 배우도록 양성한다. 너를 양성하는 동안에는 너를 책망하고 훈계할 때도 있을 것이고, 엄하게 꾸짖을 때도 있을 것이고, 너에게 사역 진도를 물어볼 때도 있을 것이고, 네가 사역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알아볼 때도 있을 것이고, 네 사역을 검사할 때도 있을 것이고, 한 가지 일을 대할 때 너의 관점이 어떤 것인지 테스트할 때도 있을 것이다. 테스트하는 목적은 너를 곤란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지녀야 할 태도와 원칙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실행하는 것이 바로 연습이고 훈련이다. 훈련의 목적과 목표는 무엇이냐? 바로 사람에게 진리를 깨닫게 해 주려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는 목적은 바로 진리에 순종하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제자리를 지키며 충실하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각종 진리 실제에 진입해서 성품 변화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렇게 리더 일꾼을 훈련시킨다. 리더 일꾼이 진리를 깨닫는다면 그에게는 진리를 깨닫도록 하나님 선민을 이끌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리더 일꾼이 진리를 깨닫는 정도에 따라 그가 이끄는 사람들도 그만큼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희망이 있고, 리더 일꾼이 사역하는 과정에서 진리 원칙을 파악한다면 그가 이끄는 사람들도 사역하는 과정에서 원칙을 파악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따라서 훈련받는 리더 일꾼은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자질이 더 좋아야 한다. 먼저 그에게 진리 원칙을 이해시키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한 후, 그가 더 많은 사람을 이끌어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하고 더 많은 사람이 진리 원칙을 알게 한다. 이 방식이 어떠하냐? (좋습니다.) 이 부류의 사람은 높은 학식이 없고, 언변이 뛰어나지도 않으며, 과학 기술에 대해 잘 알거나 시사나 정치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어떤 업무에 정통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실행하고 체험할 수 있고, 진리 원칙을 찾아낼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고 진리 원칙을 지키도록 이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얘기하는, 리더로 발탁하고 양성하는 인재이다. 이것이 추상적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인재라고 하면 사회의 엘리트가 아닙니까? 사회에서 무슨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 무슨 사장이나 기업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정치를 했던 정객이나 재계의 인재, 혹은 예술계나 문학계의 인재가 아닙니까? 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 집에서 말하는 인재는 세상의 인재와는 다르다. 그 인재란 무엇을 말하느냐?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사람들을 진리 실제로 이끌 수 있고, 여러 부류의 사람을 분별할 줄 알고, 사람의 각종 내적 상태와 어려움을 해결할 줄 알고, 일이 닥쳤을 때 올바른 관점, 올바른 태도를 지니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있어야 할 관점과 태도를 갖춘 사람을 말한다.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외식하는 사람도 아니고, 고상한 말만 늘어놓고 고담준론만 떠드는 사람도 아니다.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을 인재라고 한다. 이것이 공허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리더 일꾼으로 발탁하고 양성하는 이런 부류의 인재에게 요구되는 이 몇 가지 조건은 매우 실제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너무나 실제적이다! 사람에게 높은 학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자질은 갖추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높은 학력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글자를 몰라도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 말씀을 읽으려면 어느 정도 받은 교육이 있어야 한다. 글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하지만 학력이 아주 높을 필요는 없다. 하나님 집에서 발탁된 사람 중에는 중학교를 졸업한 자도 있고, 대졸자도 있고, 박사생도 있다. 따라서 교육 수준에는 제한이 없다. 그 밖에도 사회적 지위에도 제한이 없다. 농부도 괜찮고, 지식인도 괜찮고, 사업을 하는 사람도 괜찮고, 가정주부도 괜찮은데, 어떤 부류도 다 괜찮다. 교육 수준과 사회적 지위에 제한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 요구되는 조건은 그 몇 가지이다. 이것은 합리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너무나 합리적이다! 이제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인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깨닫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 부담과 사역 능력 등 이 몇 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이 바로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대상이다. 이 조건을 채울 수 있으면 자격을 갖춘 것이다. 그 외 교육 수준, 가정 배경, 사회적 지위, 외모 등에 대한 요구는 그리 높지 않다. 이것이 리더 일꾼을 발탁하고 양성하는 방면에 관한 내용이다.
발탁되고 양성되는 기술 업무 인재가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조건에 대해서는 방금 다 교제했다. 즉,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치우치게 이해하지 말아야 하고, 충실하게 본분을 이행해야 하고, 불평 없이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야 하고, 최소한 악행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이 몇 가지 조건이 그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을 발탁하고 양성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마찬가지로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이나 구체적인 사역을 이행할 때 문제에 부닥치면 진리를 구해 해결하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진입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훈련되고 규범을 익히게 되는데, 이때는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세상 사람들의 그릇되고 황당한 관점을 바로잡고, 일부 유치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하나님 믿는 일에 대한 편견과 관념, 상상을 내려놓는 등, 이런 것들을 연습하게 된다. 물론, 어찌 되었든 연습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점차적으로 진리를 깨닫고, 순종을 배우고, 각종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배우는 과정에서 차츰 진리 원칙을 파악하고, 하나님을 믿는 게 무엇인지, 진리를 실행하는 게 무엇인지, 본분을 이행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인지 차츰 깨닫게 되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발탁되고 양성되면서 차츰 진입하는 것이다. 사람이 차츰 진입하는 과정이 바로 양성되는 과정이고, 양성되는 과정이 사실은 사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훈련을 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만약 네가 발탁되고 양성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신자로 있으면서 남들 따라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제하거나 찬양을 배운다면,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진정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며, 그러면 너는 합격한 본분 이행과는 거리가 멀다.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원칙을 파악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단지 도리와 구호를 좀 얘기할 줄 아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네가 지금 진리 실제에 아직 진입하지 않았고, 네 생명 진입이 더디다고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업무 사역을 하도록 이 사람들을 발탁하고 양성하는 목적과 목표는 그들이 진리 실제에 더 빨리 진입하도록 하고, 진리 원칙을 더 잘, 더 정확히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다. 진리 원칙을 파악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인재이다. 이런 부류의 인재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느냐? 바로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고,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줄 알고, 치우치게 이해하지 않고, 악인이 아니라는 바탕 위에 진리 원칙을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해서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조금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것이 이른바 두 번째 부류의 인재이다. 그들에 대한 요구도 역시 실제적이고, 또한 추상적이지 않고 충분히 구체적이다. 그렇다면 이 부류의 인재에게 사회의 엘리트여야 한다거나, 사회적인 경력이나 일정한 학력, 일정한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느냐? (아닙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결코 사람에게 사회적 지위와 명망을 요구하거나 무슨 학력이나 높은 학문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요구해 본 적이 없다.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할 때는 얼굴 생김새에 따르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외모가 잘났는지 못났는지를 보지 않는다. 이방인처럼 보이거나 외모가 추하고 사악한 부류를 발탁하지 않는 것 말고는, 그 나머지 조건은 방금 우리가 말했던 그 몇 가지인데, 이것이 가장 실용적이다. 이방인은 어떤 사람을 발탁할 때 우선 그 사람의 외모부터 살핀다. 남자는 잘생기고 관직자처럼 보여야 하고, 여자는 선녀처럼 아름다워야 한다. 또한 학력과 사회적 지위, 가정 환경, 수완 등을 비교한다. 학력이 높아도 수완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러면 결코 아무도 너를 발탁하지 않고 눈여겨보지 않을 것이다. 네가 학력이 높고 실제 능력도 있지만, 외모가 받쳐 주지 않고, 키도 작고, 아첨할 줄도 모르고, 보스를 가까이할 줄도 모르면 평생 발탁되고 양성될 생각은 접어야 한다. 너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들 사이에는 “천리마는 많지만 백락은 흔치 않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 말이 통하느냐?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금은 언젠가는 빛을 발한다.”라는 말은 성립되느냐? 일리가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을 우습게 알고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즐겨 한다. 언제나 빛을 발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야심이다.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각종 인재는 금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발탁하고 양성한다는 것은 단지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고, 사실상 하나님의 높여 줌이다. 일개 피조물인 네가 창조주 앞에서 금이란 말이냐? 너는 먼지에 불과할 뿐, 동이나 쇠붙이도 못 된다. 왜 금이 아니라 먼지라고 하는 것이냐? 사람에게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어서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님의 그 말씀은 모순이 아닙니까? 방금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한다는 조건만 갖추면 발탁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한 사람으로서 네가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말아야 하느냐? 네가 긍정적인 사물을 조금 좋아한다고 해서 금이 되는 것이냐? 빛을 발하려 하느냐? 네가 긍정적인 사물을 조금 좋아하는 것이 너에게 진리가 있다는 뜻이냐? 진리가 있어야 빛을 낼 수 있는데, 진리가 없는데도 빛을 낼 수 있느냐? 사실 피조물은 아무런 진리도 깨닫지 못한다. 인성을 조금 갖추고,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과 자질을 조금 갖추었다고 해서 그것이 처음부터 진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없으며, 인성이 바르든 선량하든 그런 건 다 진리가 아니라 단지 정상 인성에 갖춰져야 할 인품일 뿐이다. 따라서 빛을 발해야 한다는 소리는 하지 마라. 그렇다면 언제 빛을 조금 발할 수 있느냐? 사람이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 1:21)라고 했던 욥의 이 말을 할 수 있을 때, 사람은 빛이 조금 나고 빛 속에서 살게 된다. 네가 갖춘 진리 실제, 네가 깨달은 진리로써 타인에게 공급하고, 타인을 붙잡아 주고, 이끌 수 있을 때, 타인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고, 진리 실제로 이끌 수 있을 때, 그를 하나님에게 순종하게 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만들 수 있을 때 그때가 바로 한 사람이 빛을 조금 발하는 때이다.
하나님 집에서 양성하는 각 부류의 인재는 초자연적인 천재가 아니라 그저 패괴된 평범한 사람이다.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말씀을 따르며 순종할 수 있고, 또 일정한 자질만 있으면 하나님 집에서는 파격적으로 발탁하고 양성할 것이다. 파격적으로 발탁하고 양성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높여 줌이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양성과 훈련을 받아들이도록 네게 기회를 주어 네가 이 기간에 되도록 빨리 진리 실제에 진입해서 진리 원칙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본분 이행에 합격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집에서 말하는 인재라는 의미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도 고급스럽거나 격조 있거나 세련되지 않으며, 그저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가 있어 본분을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이행할 수 있고, 조금이나마 진심으로 대가를 치를 수 있고,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함부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 몇 가지 조건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을 이례적으로 발탁하고 양성해서 그들을 훈련시킨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냐?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느냐? 너무나 도움이 된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더라도, 똑같이 본분을 이행하더라도 비교해 보면 발탁되고 양성되는 사람이 역시 빨리 발전하고 수확도 많이 거둔다. 너희는 많이 얻는 게 좋으냐, 아니면 조금 얻는 게 좋으냐? (많이 얻는 것이 좋습니다.) 대부분이 역시 이런 바람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가끔 내가 어떤 팀과 생명 진입에 관한 일을 조금 교제하면, 따라서 듣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것은 대부분 역시 진리를 간절히 바라는 염원이 있고, 진리를 많이 깨닫기 원하고, 또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 원한다는 뜻이다. 처음에 내가 일부 사람들에게 교제했을 때 그들은 무척 무감각해서 한참을 얘기해도 반응이 없고, 심지어 웃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는데, 1~2년 접하다 보니 대부분은 모습이나 표정이 자연스러워지고 반응이 생기고, 나중에는 반응도 상대적으로 많이 빨라졌다. 이것은 죽은 사람에서 산 사람으로 바뀐 것이고, 영적으로 소생한 것이다. 이런 일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느냐?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네가 아무리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고,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죽은 사람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원래는 아주 멍청하고 어눌해서 세상에서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고, 지식도 별로 없고 식견도 보잘것없는데, 하나님을 믿으면서 많은 진리를 깨닫고 많은 일을 꿰뚫어볼 수 있고 사람답게 살게 된다. 이렇게 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산 사람이란 무엇이냐? 그건 네 육의 사활을 말하거나 육체가 움직일 수 있고 숨 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 진리에 대해 지각이 있고, 그에 대해 민감한 것을 말한다. 산 사람은 진리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반응이 있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지각이 있고, 길을 얻고, 계획과 목표가 생기지만, 죽은 사람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다. 따라서 하나님 집에서 한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하면 이 사람은 얻는 것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렇다면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해서 발탁되지 못하고 양성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많이 얻을 수 있느냐? 어떻게 해야 진리 실제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느냐? 그러려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는 법을 배워서 많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진리를 응용해서 사람을 분별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해서 되도록 빨리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하는데, 그렇다면 인재가 아닌 사람은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습니까?” 이 말이 맞느냐, 틀리느냐? (틀립니다.) 그렇다면 이 주제를 교제하고 나면 일부는 신이 나게 만들고, 또 일부 사람은 의기소침하고 실망하게 만들 수 있느냐? 이 일은 이렇게 보아야 한다. 발탁되고 양성되는 사람은 거만하게 굴지 마라. 너는 별로 내세울 것도 없고, 그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다. 하나님은 너에게 준 것이 많으면 그만큼 대가도 많이 치르게 한다. 하나님 집에서 파격적으로 너를 발탁하고 양성한다면 그것은 네가 치러야 할 대가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네가 이 고생을 감당할 수 있으면 네가 얻는 것도 당연히 많을 것이다. 만약 네가 “저는 그런 고생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한다면 너는 진리를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저는 얻고 싶어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도 저를 파격적으로 발탁하고 양성해 주지 않고, 저도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조건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네가 진리를 추구하며 진리를 향해 노력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너를 차별하지 않는다. 발탁되고 양성되는 이 사람들은 단지 그들의 자질 때문에, 그들의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먼저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먼저 진입한다고 해서 꼭 그들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들이 단지 먼저 조금 많이 얻을 수 있고, 조금 일찍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 것뿐이다. 발탁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보다 조금 뒤떨어지지만, 그것이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며,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한 사람의 추구가 어떤지에 달려 있다. 발탁되고 양성되는 사람들은 양성되는 과정에서 더 빨리 진리 원칙을 파악할 수 있고, 더 빨리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 집의 사역에는 도움이 된다. 따라서 자질이 훌륭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발탁하고 양성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누가 이런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고, 아울러 질투하거나 억압하는 대신 아끼고 보호하면서 발탁하고 양성할 수 있다면, 이런 것이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질투가 나서 이 사람들이 자기보다 낫고 자기를 뛰어넘을까 봐 배척하고 억압한다면, 그건 확실한 악행이고, 적그리스도가 가장 흔히 저지르는 짓이다. 악인과 적그리스도만이 형제자매를 공격하고 배척할 수 있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하는 것에 대해 지녀야 할 인식과 태도
지금까지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목적에 대해 교제했다. 발탁하고 양성하는 대상이 어떤 사역을 하든, 기술이 포함된 사역을 하든 일반적인 사역이나 교회의 사무 사역을 하든 어쨌든 사람이 진리 원칙을 깨달아 진리 실제에 진입하고 되도록 빨리 본분 이행에 합격해서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하는 것, 이것이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요구이기도 하고, 물론 교회 사역의 필요이기도 하다. 이제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의미를 깨달았느냐? 아직도 오해가 있느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 사람은 리더로 발탁되어 지위가 생겼으니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말이 맞느냐? (맞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리더가 되면 지위가 생겨요. 높은 곳은 그만큼 추운 법이고, 높이 올라가면 더 심하게 다치는 법이죠!” 이 말이 맞느냐? 명백히 틀린 말이다. 높이 오를수록 더 심하게 다친다는 말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냐? 야심과 욕망이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고,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은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례적으로 높여 주는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에게 이 부담을 더해 주어 그로 하여금 리더 사역을 하게 하는 것이다. “높이 오를수록 더 심하게 다친다.”라는 말은 이방인이 내린 결론이고, 이방인이 벼슬길을 추구한 결과를 형용한 말이다. 그 불신파들은 분별력이 없어서 이 말을 긍정적인 인물에 사용하는데, 이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또 이런 사람도 있다. “농촌에서 태어난 그가 지금 교회 리더가 된 것은 개천에서 용이 난 것입니다.” 이것이 맞는 말이냐? 이는 이방인들이 하는 마귀적인 말로, 하나님 선민에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정직한 사람, 마음씨가 선량한 사람, 하나님 집 사역을 지키는 사람을 축복하며, 이 사람들은 진리를 깨닫고 분량이 좀 생기면 언젠가는 발탁되어 양성과 훈련을 거친 뒤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를 대체하게 된다. 하나님 집에서 여러 차례 시련과 검증을 거치고, 일관되게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키는 긍정적인 인물은 누구나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을 이방의 마귀적인 말로 형용하고 표현한다면 그건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언제나 이방인들의 마귀적인 말로 하나님 집의 일을 형용하고 자신의 관점을 표현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릇된 사람이다. 그들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여전히 이방인의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고,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고도 진리를 하나도 얻지 못해서 여전히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일을 바라볼 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은 불신파에 해당하고 이방인에 해당한다. 한 사람을 리더 일꾼으로 발탁하거나 기술적인 사역의 책임자로 양성하는 것은 하나님 집에서 그에게 준 하나의 부담일 뿐이다. 이는 부탁이자 책임이며, 당연히 특수한 본분이자 기회이고, 파격적인 높여 줌이기도 하다. 사람은 내세울 것이 없다. 누군가 하나님 집에서 발탁되고 양성되는 것은 그가 하나님 집에서 특수한 신분이나 지위를 갖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며, 특별 대우나 총애를 누리게 되었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집에서 파격적으로 높여 준 후, 하나님 집에서 훈련을 받으며, 교회의 실질적인 사역들을 하는 훈련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생겼다는 의미이며, 이와 함께 그들에 대한 하나님 집의 요구 기준도 높아졌다는 뜻이다. 이는 사람의 생명 진입에 큰 도움이 된다. 누군가 하나님 집에서 발탁되고 양성되는 것은 장차 그가 엄격한 요구와 감독을 받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하나님 집에서는 그의 모든 사역을 엄밀히 검사하고 독촉할 것이고, 그 개인의 생명 진입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주목할 것이다. 이런 점들을 보면,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사람은 특수한 대우, 특수한 지위, 특수한 신분을 갖게 되는 것이냐? 절대로 아니다. 당연히 특수한 직급을 갖게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발탁되고 양성되는 사람이 본분 이행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밑천이 생긴 줄 알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시련과 환난이 임하였을 때 여전히 위험할 것이다. 사람은 분량이 너무 작으면 굳게 서기 어렵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리더로 발탁되고 양성되는 것은 직급이 생긴 것이니, 장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백성이 될 희망은 있어요. 저는 줄곧 발탁과 양성을 못 받고 있는데 그럼 백성이 될 희망이 없는 건가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틀렸다. 백성이 되려면 생명 체험이 있어야 하고, 반드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리더 일꾼이든 평범하게 따르는 자든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이 바로 백성이다. 리더 일꾼이라고 해도 진리 실제가 없으면 똑같이 봉사자이다. 사실, 발탁되고 양성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특수성도 없다. 다만 한 가지 남들과 다른 점은 진리 원칙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더 좋은 환경과 기회, 조건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설령 네가 한 사역 대부분이 업무에 관계된 것이라 해도 만약 규범화하고 점검하기 위한 진리 원칙이 없다면, 네가 이행하는 본분은 원칙에 맞지 않고 힘쓰는 것에 해당하고, 절대 하나님에게 칭찬받지 못한다. 발탁되고 양성되는 각 부류의 인재에 대한 하나님 집의 요구는 무엇이냐?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충실하게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최소한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받아들여 순종할 수 있어야 하나님 집에 의해 발탁되고 양성될 수 있다. 하나님 집의 양성과 훈련을 거친 사람은 관직을 맡거나 지도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우두머리가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설득시키는 일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다. 물론 업무 능력이 강해지거나 교육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명망이 더 높아져서 업무 기술을 다루거나 정치를 하는 세상의 명망 있는 사람들과 견줄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말씀을 살아 낼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된다. 훈련 기간에 진리를 깨닫고 진리 원칙을 파악할 수 있는 것, 나아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따르는지 알게 되는 것, 이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온전케 되는 데 너무나 유리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함으로써 도달하려는 성과와 기준이자, 발탁되어 쓰임 받는 사람이 거둘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이다.
어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때 비교적 책임감이 있고 하나님 선민들도 모두 칭찬해서 교회에서는 그를 리더 일꾼으로 양성한다. 지위가 생긴 후 그는 스스로를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집에서 왜 나를 중요하게 여기겠어? 아무래도 내가 당신들보다 나아서 그런 것 아니겠어?’ 이런 건 아이들이나 하는 소리가 아니냐? 유치하고, 가소롭고, 철이 없다. 사실 너는 조금도 남보다 뛰어나지 않다. 단지 네가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양성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네가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이 부탁을 잘 완수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형제자매들의 선출로 리더가 되거나 하나님 집에서 발탁되어 어떤 사역을 맡거나 어떤 본분을 이행하게 된 것은 그의 지위나 신분이 특수하다는 뜻이 아니고 그가 깨달은 진리가 다른 사람보다 많거나 깊다는 뜻도 아니다. 그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그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다. 사실상 그는 이런 것들에 다 이르지 못했다. 이는 그저 단순한 의미의 발탁과 양성일 뿐,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거나 검증한 것은 아니다. 그 발탁과 양성은 발탁만 된 것일 뿐, 양성된 게 아니다. 양성한 최종 결과가 어떨지는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지, 진리 추구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따라서 한 사람을 교회에서 리더로 발탁하고 양성하는 것은 단순한 의미의 발탁과 양성일 뿐이지, 그가 이미 리더로서 소임을 감당할 수 있고 합당한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 아니고, 이미 리더의 일을 맡을 수 있거나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도 아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이런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그저 상상에 따라 그런 발탁된 사람을 우러러보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발탁된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됐든 상관없이 그가 정말 진리 실제를 갖추고 있겠느냐?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가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을 시행할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사람에게 책임감이 있겠느냐? 충성심이 있겠느냐? 순종할 수 있겠느냐?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구할 수 있겠느냐? 그런 것은 모두 미지수다.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겠느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얼마나 크겠느냐? 일할 때 자기 뜻대로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 구할 수 있겠느냐? 리더 사역을 하는 동안 늘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겠느냐? 사람들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이끌 수 있겠느냐? 이런 것은 분명 해낼 수 없다. 훈련을 거치지 않고 체험이 너무 적기 때문에 이런 것을 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한다는 것은 그가 이미 진리를 깨달은 사람임을 뜻하지 않으며, 기준에 맞게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니다. 그렇다면 발탁과 양성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이냐? 그를 단독으로 발탁해 연습시키고 특수한 양육과 훈련을 거친 후 그가 진리 원칙, 각종 일을 하고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원칙과 방식 및 방법을 알게 하며, 또한 그에게 닥친 다양한 상황과 각 부류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고 다루어야 하나님 뜻에 부합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건지 알도록 하는 것이다. 위의 몇 가지로 봤을 때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인재는 발탁 및 양성 기간 혹은 그전에 충분히 사역을 담당하고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는 것이 맞느냐? 당연히 아니다. 따라서 이 사람들은 양성 기간, 피치 못하게 책망과 훈계, 심판과 형벌, 폭로 심지어 교체까지 겪게 될 것인데, 이는 아주 정상적인 일이다. 이것을 훈련이라 하고 양성이라 하는 것이다. 발탁 및 양성하는 이들에 대해 높은 기대를 하거나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불합리하고 그들에게 불공평한 일이다. 너희가 그들의 사역을 감독하는 것은 괜찮다. 그들의 사역에 문제가 있거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있으면 제기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도 되지만 판단하고, 정죄하고, 공격하고, 배척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단지 양성 기간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온전케 된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되고, 완전한 사람으로 봐서는 더더욱 안 되며,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으로 봐서도 안 된다. 그들도 너희와 같이 훈련하는 중이다. 너희와 다른 점은, 그들이 맡은 사역과 책임이 보통 사람보다 많고, 더 많은 사역을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으며, 일반 사람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르고, 더 많은 고생을 하며, 더 많이 마음을 쓰고,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하며,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더 많은 지적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힘도 더 많이 써야 한다. 본분을 이행하는 보통 사람보다 잠도 덜 자고, 좋은 것도 덜 누리고, 잡담도 덜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특수성이다. 이것 말고는 다른 사람들과 같다. 내가 한 이 말이 무슨 뜻이겠느냐? 바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각 부류의 인재에 대해 정확히 대해야 한다고 알려 주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혹한 요구를 해선 안 되고, 당연히 그들에 대해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견해를 가져서도 안 된다. 그들을 지나치게 우러러보고 앙망하는 것은 사람의 우둔함이고, 그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요구를 하는 것도 비인도적이고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겠느냐? 보통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문제가 생겨서 구해야 할 때면 그들과 교제하며 서로 장점을 배워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 그 밖에, 모든 사람에게는 리더 일꾼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고 진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감독할 책임이 있다. 이는 리더 일꾼이 합당한 자격을 갖췄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자 원칙이다. 만약 리더 일꾼이 일반적인 문제를 처리하고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직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만약 일반적인 문제조차 처리하거나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는 리더 일꾼 직책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니, 하나님 집의 사역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도록 서둘러 파면하고 다른 사람을 뽑아야 한다. 하나님 집의 사역에 지장을 주면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해가 될 것이니,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다.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서 발탁되고 양성되는 것은 훈련받을 좋은 기회를 얻은 것으로, 이는 좋은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높여 줌이자 은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본분을 이행해야 하느냐? 우선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은 바로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는 진리를 구해야 한다. 스스로 구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과 교제하며 구하면 된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좀 더 빠르고, 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혼자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묵상하는 데만 집중하여 진리를 깨닫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이는 너무 느리다. ‘먼 곳의 물로는 당장의 갈증을 풀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리에 있어 빠르게 성장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는 법, 많이 묻고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생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고, 제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는데, 이 두 가지 다 지체하지 않을 수 있다. 너는 그저 이제 막 발탁되었고 수습(修習) 기간에 있는 것이지 정말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를 갖춘 것은 아니다. 너에게는 아직 그런 분량이 없다. 그러므로 발탁되었다고 해서 진리 실제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이 아니다. 네가 사역에 부담을 갖고 있고,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췄기에 너를 발탁하여 양성하는 것뿐이다. 너는 이런 이성을 갖춰야 한다. 발탁되어 리더 일꾼이 된 후, 너는 높은 자리에 서서 자신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진리 실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형제자매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아는 척, 영적인 척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며,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꼴이다. 너는 사실대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상부에 물어보고 교제하면 된다. 이는 체면 깎이는 일이 아니다. 네가 물어보지 않아도 상부에서는 네 실제 분량을 알고 있고, 또 네게 어떤 진리 실제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구하고 교제하는 것은 네가 해야 할 일이고, 정상 인성에 갖춰져야 할 이성이며, 리더 일꾼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체면이 깎이는 일이 아니다. 네가 만약 리더가 되었는데도 아직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늘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고 상부에 물어보면 너무나 체면이 깎이는 일 같고 남들이 우습게 볼까 봐 두려워서 본인은 뭐든 이해하고 뭐든 아는 것처럼 위장하고, 본인에게 사역 능력이 있어서 교회 사역은 뭐든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일깨워 줄 필요도, 교제해 줄 필요도 없고, 어느 누가 공급해 주고 붙들어 줄 필요도 없는 것처럼 위장한다면 이것은 위험하다. 이는 너무도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비이성적이다! 자신의 주제조차 모르니, 이런 자는 바보 아니겠느냐? 이런 자는 사실상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며, 교체되고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따라서 갓 발탁된 리더 일꾼은 누구나 자신에게 진리 실제가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하고, 자기 주제를 알아야 한다. 네가 지금 리더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이 임명한 것이 아니라 리더 일꾼이 발탁한 것이고, 하나님 선민들이 선출한 것이며, 이것이 너에게 진리 실제가 있다거나 참된 분량이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 일을 이해하면 너에게 이성이 조금 생길 것인데, 이것은 리더 일꾼이 반드시 갖춰야 할 이성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도대체 어떻게 사역해야 하느냐? 어떻게 조화로운 협력을 실행해야 하느냐?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느냐? 이런 일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만약 패괴 성품이 표출된다면 얼른 진리를 구해 해결하도록 해라. 제때 해결하지 않아 사역에 영향을 준다면 그건 문제다. 만약 업무 지식에 익숙하지 않으면 역시 서둘러 배워야 한다. 일부 본분은 업무 지식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만약 진리만 깨닫고 업무 지식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 역시 사역 성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적어도 기본적인 업무 지식은 스스로 파악해서 이해해야 하고, 그러면 사역을 점검하고 지도하는 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업무에만 정통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사역을 해도 결함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과 협력도 해야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다. 네가 업무 기술에 정통하고 어떤 한 가지 지식에 정통하다는 것이 원칙에 따라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 구하고 교제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그것은 너희가 지켜야 할 원칙이다. 절대 위장해서는 안 된다. 너는 훈련, 양성 과정에 있으며, 패괴 성품이 있고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이 이런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아십니다.) 그렇다면 너희가 위장하는 것이 아주 미련하게 보이지 않겠느냐? 너희는 미련한 자가 되기를 바라느냐? (아닙니다.) 미련한 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으면 마땅히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이성이 있는 사람, 겸허하게 진리를 구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위장해서도 안 되고 외식하는 바리새인이 되어서도 안 된다. 네가 할 줄 아는 것은 단지 약간의 업무 지식에 불과할 뿐, 진리 원칙이 아니다. 너는 진리 원칙을 깨달은 바탕 위에 너의 업무적인 특기와 네가 숙지한 학문과 지식을 적절히 발휘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원칙이 아니겠느냐? 실행의 길이 아니겠느냐? 네가 이렇게 하는 법을 배우면 너는 실행할 길이 생기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절대 고집부리지 말고 위장하지도 마라. 고집과 위장은 모두 이성적인 행동이 아닌 가장 미련한 행동이다. 패괴 성품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은 다들 가장 미련한 사람이다. 진리를 구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슬기로운 사람이다.
교제를 통해 너희는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일에 대해 올바른 이해와 관점을 가지게 되었느냐? (그렇습니다.) 올바른 관점이 생긴 뒤 이 사람들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겠느냐? 그들의 장점은 물론이고, 인성, 사역, 업무 등 각 방면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결함과 부족한 점을 모두 바르게 대해야 한다. 그 외에도 리더 일꾼으로 발탁되고 양성되는 사람이든 각 부류 업무의 인재이든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고,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들이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누구도 위장하지 말고, 누구도 포장하지 말고, 솔직하게 교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못 하면 못 한다고 말해야 한다. 어떤 문제, 어떤 어려움이 있든 다 같이 교제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진리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아기이고, 누구나 빈곤하고 가련하고,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진리 앞에 순종하는 것이고, 겸허한 마음,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진리를 구하고 받아들이고, 그런 다음 진리를 실행해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현실 생활 속에서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된다. 모든 사람은 진리 앞에 평등하다. 발탁되고 양성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대단한 것이 아니다. 또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 시간이 비슷하다. 발탁되거나 양성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누구도 진리를 추구할 권리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추구하고 자질도 어느 정도 있어서 발탁되고 양성되는 거라면, 이는 하나님 집의 사역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 하나님 집에서는 사람을 발탁하고 쓸 때 왜 이런 원칙을 적용하겠느냐? 각 부류 사람은 자질과 인품이 다르고, 각자 선택하는 길도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결과 역시 달라진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구원받아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지만,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본분 이행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도태된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양성하고 쓸 때는 진리를 추구하는지,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지를 보고 결정한다. 그럼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 사람에게 등급의 차이가 있겠느냐? 각 부류 사람은 신분, 계급, 지위, 직급에 있어 당분간 등급의 차이가 없다. 적어도 하나님이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하고 인도하는 기간에 각 부류 사람의 등급, 신분, 계급, 지위에는 어떤 차이도 없다. 그저 사역 분담과 본분 역할이 다를 뿐이다. 물론 이 기간에 어떤 사람은 특수 사역을 하도록 파격적으로 발탁되고 양성되며, 어떤 사람들은 자질 문제나 가정 환경 등 다양한 이유로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 사람들의 계급이나 신분이 다른 이보다 한 등급 낮겠느냐? 그렇지도 않다. 모든 사람은 진리 앞에 평등하다. 사람은 누구나 진리를 추구하고 얻을 기회를 가지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합리적이다. 어느 때에 이르러야 사람의 신분, 가치, 지위가 명확히 구별되느냐? 사람이 끝까지 걸어갔을 때, 하나님의 사역이 끝났을 때, 구원받기를 추구하는 과정과 본분을 이행하는 기간에 한 사람이 드러낸 태도와 관점, 하나님을 대하는 갖가지 태도와 모습이 최후에 이르러 하나의 결론을 얻었을 때, 즉 하나님의 기록부에 완전하게 기록되었을 때 그때는 사람마다 결말과 종착지가 조금 다른 관계로 각자의 가치, 신분, 지위도 조금 차이가 난다. 그때가 되어야 이 모든 일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지만, 지금은 모두 똑같다. 알겠느냐? 너희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느냐? 바라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 않으냐? 자신이 어렵사리 끝내 그날에 이르게 되고 드디어 결과를 얻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자기가 제대로 걸어오지 못해서 도중에 넘어지고 실패하는 바람에 최후의 결말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자기가 상상하고 바라던 것보다 엉망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실망스럽겠느냐!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하지 마라. 그건 실제적이지 않다. 우선은 눈앞을 보아야 한다. 발아래 놓인 길을 제대로 걷고,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하고, 하나님이 네게 맡긴 본분과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가장 관건이고, 가장 중요하다. 당장 깨달아야 할 진리, 본분 이행의 원칙을 잘 깨닫고 분명하게 교제해서 확실히 알게 될 정도가 되는 것, 어떤 일을 하든 원칙이 무엇인지 분명하고 정확하게 아는 것, 확실하게 원칙을 위배하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방해와 교란을 저지르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를 입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당장 너희가 진입해야 할 것이다. 더 먼 얘기는 많이 할 필요도 없고, 많이 물을 필요도, 많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해도 소용없다. 그것은 너희가 생각할 게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어째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까? 지금 재난이 이렇게 큰데,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지금이 그럴 때냐? 재난이 크다는 사실이 네가 진리에 진입하는 데 영향을 주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재난이 이렇게 크다고, 내가 언제 너희에게 재난에 초점을 두고 예배하고 설교한 적이 있느냐? 나는 재난에 관한 일을 언급한 적이 없고, 늘 진리에 관해서만 얘기하며, 이로써 너희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뜻을 깨닫게 하고, 어떻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어떻게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지 깨닫게 한다. 지금 어떤 사람은 무엇이 진리 실제이고 무엇이 도리인지도 모른 채 매일 그까짓 글귀와 도리, 빈말만 떠들면서 자신이 진리 실제에 진입했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내가 다 조바심이 나는데, 정작 본인은 조바심은커녕 요원한 미래의 일까지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현실적이지 않다.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목적은 그 사람들을 열성분자로 만들려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그들을 무슨 대들보로 만들려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또한 발탁되고 양성되기 위한 조건을 갖춘 이 사람들에게 알맞은 환경과 더 유리한 조건 하에서 훈련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진리를 깨달아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게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도달하려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얻으려는 것이 아니겠느냐?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일에서 너희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냐? 계획과 절차가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비결을 하나 알려 주겠다. 간단하고 쉬운데다 빠르기까지 하다.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은 사실 간단하게 말하면 바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다. 진리를 실행하려면 우선 사람의 패괴 성품부터 해결해야 한다.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르겠느냐? 너희 입장에서 보면 가장 간단하면서도 빠르고 손쉬운 방법은 바로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는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고,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계획이 있느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획이 없고 그저 속으로 계속 저울질만 할 뿐, 언제부터 정식으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고, 비록 자신에게 건성으로 대하는 태도가 있다는 건 알지만 해결에 착수하지 않고, 어떤 구체적인 방안도 없다. 본분을 이행할 때 게으름을 피우고,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열심히 하지 않고, 책임감이 없는 것, 이런 게 다 건성으로 대하는 모습이다. 우선은 건성으로 대하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그다음은 자기 뜻대로 일하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라. 그 외에 간혹 말할 때 정직하지 않다든가 간사한 성품이나 교만한 성품을 표출한다든가 하는 문제는 당장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우선은 건성으로 대하고 자기 뜻대로 일하는 이 두 가지 문제부터 처리하는 것이 더 실제적이고 효과적이지 않겠느냐? 이 두 가지가 가장 쉽게 발견되지 않겠느냐? 해결하기 쉽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건성으로 대할 때 속으로 확실히 아느냐, 모르느냐? 네가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 스스로가 아느냐, 모르느냐? 네가 잔꾀를 부리고 약삭빠르게 이득을 보려 할 때 스스로가 아느냐, 모르느냐? (압니다.) 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 먼저 네가 쉽게 의식할 수 있는 문제, 속으로 지각하는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도록 해라.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는 것은 아주 명확하고, 또 흔히 볼 수 있는 문제이지만, 또한 해결하기 어려운 고질병이기도 하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열심히, 꼼꼼하게, 진지하게, 책임감 있게 대할 줄 알아야 한다. 착실하게, 하나하나 확실하게 이행하고, 최선을 다해 제대로 이행하고,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해내야 한다. 만약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원칙을 구하고, 원칙과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고, 공을 많이 들이더라도 제대로 해야 하고, 절대로 건성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실행해야 마음이 평온하고 양심의 가책도 없다. 건성으로 임하는 문제는 해결하기 쉽지 않으냐?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결할 수 있다. 우선 너는 하나님에게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제가 본분 이행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건성으로 대한다면 당신께서 징계해 주시고, 제 마음속에서 꾸짖어 주십시오. 또한 제가 건성으로 대하지 않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십시오.” 매일 이렇게 실행하면서 시간이 얼마나 걸려야 건성으로 대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갈수록 건성으로 대하는 내적 상태가 줄어들고, 본분 이행의 불순물이 줄어들고, 실제 효과도 좋아지고, 효율도 높아진다고 보장할 수 있는지 보아라.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지 않는 것이 자기 힘으로 가능한 일이냐? 건성으로 대할 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큰일이구나. 만약 정말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면 너희의 어려움이 참으로 크다! 너희는 어떤 일을 할 때 건성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느냐? 어떤 사람들은 먹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서 한 끼만 입에 맞지 않아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어떤 여자들은 꾸미고 화장하는 것을 좋아해서 머리카락 한 올도 그냥 두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장사에 능해서 돈 한 푼까지 계산하려 든다. 너희가 일을 할 때 만약 이런 진지한 태도가 있다면 건성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다. 먼저 건성으로 대하는 문제부터 해결하고, 그런 다음 자기 뜻대로 일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자기 뜻대로 일하는 것은 흔한 문제이며 스스로도 쉽게 의식할 수 있어서 조금만 반성하면 자기 뜻대로 일하는 것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너희는 이 두 가지 방면부터 착수하도록 해라. 하나는 건성으로 대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또 하나는 자기 뜻대로 일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1, 2년 내에 성과를 내도록 노력해서 어떤 일도 건성으로 하지 말아야 하고, 자기 뜻대로 하지 말고 자기 뜻이 섞이지 말아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너희가 본분 이행에 합격할 날이 멀지 않았다. 만약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너희는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기에 아직 이르다.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것이다.
지금까지 자격을 갖춘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조건과 목적, 그리고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일에 대해 지녀야 할 인식과 견해에 대해 교제했다. 또 한편으로는 발탁되고 양성되는 각 부류의 인재에 대해 지녀야 할 태도와 그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교제해 보았다. 이것이 제6조에서 마땅히 교제해야 할 문제들이다. 그러면 이제 제6조에 맞춰 거짓 리더가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사역을 어떻게 다루는지 폭로하고 해부하겠다. 이것이 우리가 주로 교제하려는 내용이다.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일을 대하는 거짓 리더의 태도와 모습
거짓 리더는 진리를 깨닫지도 못하고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 집에서 자격을 갖춘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이 중요한 사역도 엉망으로 이행하고 엉터리로 이행해 하나님 집의 요구에 전혀 도달하지 못한다. 자격을 갖춘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조건을 깨닫지 못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하고, 자격을 갖춘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의미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 사역을 기준과 원칙에 부합되게 하기가 힘들다. 거짓 리더가 사역하는 기간에 양성한 각 부류의 인재는 천태만상이다. 그들은 자격을 갖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절대 발탁하고 양성하면 안 될 사람들을 발탁해서 리더 일꾼을 맡기고, 그자들이 교회에 얹혀살고 하나님의 제물을 낭비하게 놔둔다. 거짓 리더가 모두 이런 식으로 일하다 보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정의감 있는 사람은 발아래 짓밟힌 채 발탁되거나 쓰임 받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그자들은 오히려 거짓 리더 눈에 이른바 인재로 비쳐서 발탁되고 양성되는 결과가 빚어진다. 그렇다면 거짓 리더는 이 사역을 할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예를 들어, 하나님 집 사역의 필요에 의해 외무를 처리할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면 어떤 사람을 찾아야 하느냐? 방금 우리는 몇 가지 조건을 열거했다. 즉, 사역 능력을 갖추고, 하나님 집에서 요구하는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할 수 있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거짓 리더가 이 원칙을 알겠느냐? 당연히 알 리가 없다. 그러면 그가 어떻게 찾겠느냐? 그는 생각한다. ‘누가 대외 업무를 할 수 있을까? 한 자매가 머리가 잘 돌아가서 반응도 빠르고 말도 잘하고 대인 관계도 잘하긴 하지. 말할 때 눈을 잘 굴리는데 일반 사람들이 그 속을 짐작할 수가 없어. 교회 리더가 되기에는 조금 적합하지 않지만 대외 업무를 맡기에는 제격이니 그 자매로 정하자. 다만 교육 수준이 좀 낮아서 이방인들이 얕잡아 볼까 걱정이군. 그럼 대학생을 한 사람 찾자. 학생회장을 했던 사람이 자매와 협력하는 거야. 이 사람은 비교적 영리한데 다만 사회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고 경력도 상대적으로 적은 게 흠이지. 그건 자매한테 배우면 돼. 둘 중 하나는 교육 수준이 낮고 하나는 높고, 하나는 사회 경험이 있고 하나는 없으니 이 둘이 협력하면 딱이잖아?’ 한 사람은 말도 잘하고 머리도 좋고 특히나 사회인 같아서 이방인과 접촉할 경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없다. 다른 한 사람은 교육 수준도 높고 사회적 지위도 있어서 이방인과 접촉하면 남들이 얕잡아보지 못한다. 거짓 리더가 사람을 고르는 이 두 가지 원칙이 어떠냐? 그는 말주변이 좋고 머리가 잘 돌아가고 반응이 빠르면 하나님 집을 위해 사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선발해서 쓰는 것이 적절하냐, 부적절하냐? (부적절합니다.) 어째서 부적절한 것이냐? (이런 사람은 비교적 교활한 경우가 많고, 남들에게 처세술을 쓸 줄 알고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만, 꼭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집을 위해 어떤 일을 처리하든 가장 기본적으로 사람이 마음이 발라야 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입담이 좋아서 죽은 사람도 말로 살려 낸다고 한들 그것이 그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겠느냐? 머리가 잘 돌아가고 말을 잘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겠느냐? (아닙니다.) 설령 그가 맹세한다 해도 소용이 없고, 네가 그에게 요구한다 해도 소용이 없다. 그에게 그런 인품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거짓 리더는 이런 것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 경력이 있고, 교활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고, 말 잘하고, 적당히 분위기를 맞출 줄 알고, 기회주의자나 사회인 같은 사람이 있으면 이런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사무 사역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잘못이 아니냐? 그것은 사람을 선발하는 원칙과 기준상의 잘못이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입담이 뛰어나서 누구에게 응수하든 죄다 거짓말이고, 아무리 맹세해도 고칠 수 없다. 일할 때는 자기 이익만 지키고, 특히 위험에 직면하면 자기부터 보호하지 하나님 집의 이익은 결코 고려하지 않으며, 그저 이방인과의 관계만 잘 유지할 수 있으면 그만이고,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상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형제자매의 안전 역시 그의 고려 대상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만 지킨다. 거짓 리더는 이런 사람을 꿰뚫어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런 부류가 하나님 집의 대외 업무를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하는데, 바보 같은 생각이 아니냐? 거짓 리더는 그 사람이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겨도 모르고 그를 중용하기까지 하고, 무슨 일이든 그 사람만 의지한다. 멍청하기 짝이 없지 않으냐? 말 잘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 마음 씀씀이가 바른 사람이냐? 네가 그와 친분을 맺지 않고 자세히 관찰하지 않을 때는 모른다. 그와 친분을 맺고 일을 처리할 경우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아닌지 보아라. 한 가지 일을 통해 검증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네가 한창 물건을 나르고 있는데 그는 보고도 도와주지 않다가 네가 일을 마치면 그제서야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이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혼자서 할 수 있습니까? 물어보셨다면 제가 아무리 바빠도 도와드렸을 겁니다. 너무 피곤해 보이세요. 이따가 식사 준비는 제가 할 테니 오늘은 안 하셔도 돼요.” 그는 말을 마치더니 사라져 버린다. 너는 피곤해 죽겠는데 밥까지 해야 한다. 네가 밥을 다 차리면 먹으로 나타난 그는 또 이런 소리를 한다. “음식 할 때 왜 저를 안 부르셨나요? 이렇게 피곤한데 밥까지 해 주시다니, 그럼 제가 뭐가 돼요? 이왕 다 해 놓으셨으니 먹긴 하겠지만 다음에는 제가 할게요. 앞으로는 일이 있으면 얘기라도 좀 해 주세요.” 이 일 하나로 그를 훤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는 입담이 좋아서 말도 잘하고 머리도 무척 잘 돌아가서 분위기를 봐 가면서 대처할 줄 안다.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을 뿐 실질적인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믿을 수 있겠느냐? 그에게 하나님 집의 사무를 맡기면 그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겠느냐? 교회의 명성과 명예를 지키고 형제자매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집의 재물, 하나님 집의 모든 이익이, 그가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려는 문제이겠느냐? 절대 아니다. 거짓 리더는 눈도 멀고 마음도 멀어서 이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는 문제를 볼 줄 모르고, 그저 글귀와 도리만 읊을 줄만 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지, 어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고 어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지, 무엇이 하나님 믿는 일에 뿌리가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이 뿌리가 없는지, 어떤 사람이 본분에 충실하고 어떤 사람이 충실하지 않은지, 그는 사리에 맞는 말만 하고 마치 아주 잘 이해한 것 같지만, 죄다 빈말과 도리에 불과하다. 그에게 정말 사람을 분별하게 했을 때 그는 눈도 멀고 마음도 멀어서 사람을 볼 줄 모른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도 그는 이런 부류를 꿰뚫어 볼 줄 모르고 중용하기까지 한다.
사람을 잘못 쓴 것도 이미 가증스러운 일인데, 거짓 리더는 한 술 더 떠서 더 가증스러운 일을 한다. 예를 들어 그가 한 사람을 잘못 쓴 경우, 그 사람이 책임자가 되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고,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그는 계속해서 쓰려 한다. 게다가 그 사람의 사역은 검사도 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한다.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고 의심 가는 사람은 쓰지 않는 거야. 내가 당신을 중요하게 여겨 발탁했으면 당신은 사역을 잘할 수 있으니, 과감하게 하면 돼. 나는 당신이 뭘 하든 지지할 것이고, 다른 사람이 반대해도 소용없어!’ 그는 사람을 잘못 쓴 것도 모자라 잘못을 끝까지 고수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거짓 리더들은 다들 눈먼 자들이다. 그들은 어떤 문제도 보지 못하고, 어떤 사람들이 악인인지, 불신파인지도 분별해 내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해도 지각이 없고, 머저리들을 중용하기까지 한다. 어떤 사람을 발탁하든 거짓 리더는 그들을 무척 신임하고 중요한 사역을 마음대로 맡겨서 결국 그들이 교회 사역을 엉망으로 하고 복음의 확장에 심각한 영향을 끼쳐 하나님 집의 이익을 손상시키게 놔두는데, 거짓 리더는 그러고도 짐짓 모른 체한다. 상부에서 그에게 묻는다. “네가 발탁한 그 사람은 사역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 이 사역에 적합하느냐? 교회 사역을 지키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느냐?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를 지키느냐, 아니면 교회 사역을 지키느냐?” 거짓 리더가 대답한다. “그는 교회 사역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을 믿은 지도 20년이나 된 사람인데 어떻게 자기를 지키려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겠습니까? 그는 아마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것입니다.” “지금 그 말이 확실하느냐? 그가 하는 사역을 검사해 보았느냐?” “검사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자기 이익을 지키지 말고 교회 사역을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고, 본인도 저에게 약속했습니다.” 너에게 약속한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는 하나님 앞에서 한 맹세도 못 지키는데, 너에게 약속하면 보장이 되느냐? 꼭 지킬 수 있느냐? 너는 그의 사역을 검사한 적도 없으면서 그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사람인지 어떻게 아느냐?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믿느냐? 이런 거짓 리더는 몹쓸 인간이 아니냐? 한 사람을 잘못 쓴 것으로도 이미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 후로도 잘못을 계속 밀어붙이면서 그의 사역을 물어보지도 알아보지도 검사하지도 않고, 또 감독도 관찰도 하지 않고, 그저 계속해서 그가 함부로 악행을 저지르도록 방치한다. 거짓 리더는 사역을 이런 식으로 한다. 어떤 사역에 사람이 부족하든 거짓 리더는 아무렇게나 한 사람을 안배해서 책임지도록 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는 사역을 검사하는 법이 없고, 현장에 가서 그 사람과 접촉하며 그를 관찰하고 알아보지도 않는다. 어떤 곳은 상황이 적절하지 않은 관계로 만나서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너는 그의 사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가 어떤 일들을 하고 어떻게 했는지 간접적으로 알아보고, 형제자매들이나 그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문의해 봐야 한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지만 거짓 리더는 문의조차 하지 않고, 그렇게 자신한다. 그의 사역은 그저 예배드리고 도리를 얘기하는 것이고, 예배를 마치고 사역을 안배하면 끝이다. 그는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더 점검하지도 않고, 알아보지도 않고, 살펴보지도 않는다. 네가 처음에 이 사람에 대해 잘 모를 때, 그의 자질과 겉으로 보이는 모습, 열정을 근거로 그가 이 사역에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그를 썼다면 그것도 맞다. 왜냐하면 누구도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간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발탁한 뒤에는 그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는지, 사역을 어떻게 하는지, 잔꾀를 부리고 건성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마땅히 점검하고 알아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것은 완전히 네가 해야 할 사역인데 너는 전혀 하지 않고 하나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게 바로 거짓 리더이니 교체되고 도태되어 마땅하다.
거짓 리더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다. 그들은 사람을 발탁해서 사역을 맡긴 다음, 도리를 조금 얘기하고 격려와 독려의 말 몇 마디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고, 구체적인 사역을 점검하는 법도 없고 참여하는 법도 없다. 만약 네가 자질이 부족하고 사람을 간파할 수 없다고 한다면, 너는 구체적인 사역을 점검하고 알아볼 수 있고, 완전히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거짓 리더는 사역을 아예 점검하지도 않고 알아보지도 않는다. 예들 들면, 서적 인쇄는 구체적인 사역의 하나인데, 거짓 리더는 이 사역을 한 사람에게 맡겨 책임지도록 한 후 반년 동안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결국 반년이 지나 책이 인쇄되었을 때는 전부 파본이어서 그야말로 엉망이 되어 버렸다! 거짓 리더는 바로 이렇게 구체적인 사역을 전혀 하지 않는다. 만약 책 한 권을 인쇄하도록 안배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먼저 적합한 사람에게 책임지도록 안배하고, 그런 다음 그의 사역이 과연 어떻게 되고 있는지, 그가 이 사역을 망치지는 않을지 감독하고 검사해야 한다. 반드시 감독하고 점검하면서 문제를 발견하면 곧바로 해결해야 확실히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거짓 리더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직책이 사람에게 도리를 얘기해서 깨닫도록 하는 것인 줄 알고, 도리만 깨달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리를 얘기하고 구호를 외치는 데만 열중하고, 구체적인 사역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거짓 리더의 경우, 그는 구체적인 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 아랫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그는 무엇을 하느냐? 그는 높은 곳에서 전체 상황을 지휘하며 관료가 된다. 어떤 사역이든 현장에 나가거나 참여하지는 않고, 사람들에게 원칙을 알려 주고 나서 사람들이 세부적인 문제나 구체적인 길을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구체적인 사역은 여러분이 하세요. 저는 모릅니다.” 그러니 아랫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그는 알지 못한다. 책임자가 도대체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고 담당할 수 있는지, 그의 인성이 어떤지,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본분 이행에 책임감이 있는지, 건성으로 임하거나 함부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사역을 지연시키지는 않았는지 등, 거짓 리더는 이런 것들을 모른다. 그는 이방의 행정직 간부처럼 빈둥거리며 다니고 그 어떤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는다. 거짓 리더가 있는 교회에서 거짓 리더는 어떤 책임자가 사역을 마비시켜도 모르고, 어떤 책임자가 독립 왕국을 세워도 모르고, 어떤 책임자가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놀고먹어도 모른다. 어떤 책임자가 자질이 너무 부족하고 이해도 치우쳐서 사역을 아예 할 줄 몰라도 그는 내버려둔 채 상관하지 않는다. 이 거짓 리더는 그저 허수아비일뿐, 유명무실하며, 리더의 실질적인 사역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이 거짓 리더는 아주 점잖아 보인다. 각 사역마다 책임자를 안배하고, 정기적으로 그들과 함께 예배도 드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한 곳에서 영 생활을 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고, 찬양을 배우고, 설교 원고를 쓰는가 하면, 심지어 어떤 거짓 리더는 일주일 동안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또 어떤 거짓 리더는 오로지 인터넷에서 온라인 예배만 드리고 결코 사역 현장에 나가 상황을 파악하지 않는다. 형제자매들은 오랫동안 그를 만나지 못해서 그의 생명 체험이 어떻게 되고 분량은 어떤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는 예배드릴 때 사무 사역만 처리한다. 구체적으로 각 책임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본인이 발탁하고 양성하는 사람이 그 사역에 적합한지,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가 어떤지, 세심하게 사역을 하고 참답게 대하는지, 소극적이고 건성으로 대하지는 않는지, 그 사람이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옳은 사람인지, 이런 일들을 거짓 리더는 일절 관여하지도 물어보지도 않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이 문제의 성질은 심각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업무를 알고 기술을 아는 인재들이 필요하며, 그들이 업무를 배워서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양성해야 한다. 너희 생각에 거짓 리더가 어떤 사람을 찾겠느냐? 그들은 대학을 나오고 부모를 따라 하나님을 믿는 젊은이들을 한데 불러모은 다음, 말 잘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에게 말한다. “하나님 집에서 여러분을 양성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예비군이고, 새로운 역량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에게 본분을 안배한다. 사실 이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해 본 적도 없고, 무슨 체험도 없고, 진리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거짓 리더는 그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좋아해 그들을 양성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특기를 근거로 해서 각자 배우기에 적합한 본분을 이행하도록 안배해 주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문서 사역을 안배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상 사역을 안배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동영상을 만들도록 안배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연기자를 하도록 안배해 준다. 이행할 본분이 있으면 그만이다. 거짓 리더는 이 사람들이 과연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알아보지 않고, 그들이 과연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떤 목표가 있는지도 파악하지 않는다. 결국 어떻게 되겠느냐? 일부는 도태되고 만다. 방탕하고 구속받지 않고, 세상의 흐름을 추구하고, 하루 종일 치장하는 데만 정신이 팔리고 함부로 사람들과 시시덕거리고, 버릇이 하나도 없고, 교양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자들은 명백하게 불신파이자 이방인이다. 그들이 본분을 이행할 때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어떤 일이든 건성으로 해도 거짓 리더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다. 이는 눈이 먼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눈이 먼 것은 무엇 때문이냐? 마음이 멀기 때문이 아니냐? 눈이 멀고 마음이 먼 것, 이것은 거짓 리더의 두 가지 특징이다.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어떤 사람도 꿰뚫어 보지 못하는 거짓 리더는 그야말로 눈뜬장님이다. 그는 속으로 어떤 사람, 어떤 일에도 분별력이 없고 관점이 없다. 어떤 일을 보고도 시비를 판별하는 능력도 없고, 태도도, 견해도, 정의도 없다. 그는 심각하게 마음이 멀었다. 거짓 리더는 모두 하나님을 오래 믿고, 자주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이런 불신파들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여기에서 거짓 리더는 자질이 너무도 떨어지며,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없고, 아무리 많은 진리를 들어도 소용이 없고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분명하게 증명된다. 그들은 눈과 마음이 어두워 사람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데 교회의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있겠느냐? 그는 말재간이 있는 사람을 인재라고 생각하며, 가무를 잘하는 사람도 인재라고 생각한다. 안경을 낀 사람, 대학을 나온 사람, 사회에서 지위와 재력을 갖춘 사람, 장사를 잘하고 사기를 잘 치는 사람, 사회에서 중요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바로 인재이니 하나님 집에서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사람들의 인품을 보지 않으며, 이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토대가 있는지 역시 보지 않고, 이들이 하나님과 진리를 대하는 태도는 더더욱 보지 않는다. 오직 사회에서 지닌 지위와 배경만을 본다. 거짓 리더가 이런 식으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것이 황당하지 않으냐? 거짓 리더가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것은 이방인과 같아서 전부 이방인의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것은 거짓 리더가 진리를 사랑하고 깨달은 사람이 아니고, 분별력이 전혀 없다는 충분한 증거이다. 거짓 리더는 너무나 허황되지 않으냐? 눈이 멀어도 보통 먼 게 아니다.
전에 한 거짓 리더를 만난 적이 있다. 내가 그와 얘기를 나눌 때 웃음꽃을 피웠지만 사역에 관한 일을 물었더니 그는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무감각해져서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 그 사람은 자질이 너무 떨어져서 쓸 수가 없었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이행하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그에게 무슨 일을 얘기하든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엊그제는 사역을 검사했고요.” 내가 말했다. “예배드리는 것 말고 다른 사역은 없느냐? 교회에 사역이 그렇게나 많은데 어째서 다른 일을 찾아서 하지 않느냐?” 그가 말했다. “리더 일꾼은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밖에 하지 않잖습니까? 예배 말고 다른 일은 없습니다. 저는 다른 일은 모릅니다!” 이것은 그가 리더를 맡으면 거짓 리더가 될 수밖에 없고, 실제적인 사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자질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질이 너무 떨어지면 눈이 멀고 마음이 멀게 된다. 눈이 멀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어떤 일을 보아도 세부적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두 눈은 그냥 장식이라는 뜻이다. 마음이 멀다는 것은 어떤 뜻이냐? 어떤 일이 닥쳐도 마음속에서 그 안에 담긴 문제를 의식하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파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런 것을 두고 마음이 멀었다고 한다. 마음이 멀면 완전히 끝이다. 거짓 리더는 이렇게 마음이 멀고 눈이 멀었다. 너희가 생각하기에 거짓 리더가 이 말을 들으면 속으로 기분이 언짢지 않겠느냐? 그는 생각한다. ‘내 눈이 이렇게 큰데도 나보고 눈이 멀었다고 하고, 내 마음씨가 이렇게 고운데도 나보고 마음이 멀었다고 하시는구나. 이건 별로 정확한 정의가 아니지 않아? 거짓 리더라고만 하면 됐지, 왜 거기다 눈이 멀고 마음이 멀었다는 말까지 덧붙이시나?’ 만약 그렇게 얘기하지 않으면, 그가 거짓 리더의 그런 자질만으로 자신의 자질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의식할 수 있느냐? (의식할 수 없습니다.)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눈도 멀고 마음도 멀다고 하는 것은 꼭 맞는 말이 아니냐? 예를 들어, 적그리스도가 교회에서 독립 왕국을 세우고 있는데 거짓 리더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은 정말 능력이 있군요. 전에 대학교수를 해서 하는 말도 일리가 있고, 언변도 뛰어나고,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주눅이 들지 않네요.” 바리새인이 독립 왕국을 세우는 것이 뻔한데도 칭찬을 하다니 이것이 눈먼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다 음정이 틀렸는데 네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이를 두고 눈이 멀었다고 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업무의 문제이지 자질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진리를 그렇게 많이 들은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조차 분별하지 못하고, 한 사람의 인성이 좋고 나쁜 것도 분별하지 못하고, 한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대상인지 아닌지도 분별하지 못하고, 한 사람이 불신파인지 아닌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지도 분별하지 못하고, 한 사람이 본분 이행에 충실한지 그렇지 않은지도 분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가 그동안 설교를 듣고 거둔 수확이 무엇이란 말이냐? 아무런 진리도 얻지 못한 것인데 이는 그가 눈먼 인간이란 의미이다. 거짓 리더는 이렇게나 눈이 멀었다. 그는 리더의 주요 사역이 설교라고 생각한다. 두세 시간 설교하면서 글귀와 도리를 떠들고 구호를 외쳐서 사람들의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리더로서 자격을 갖춘 것이고, 사역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고, 진리 실제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도 만족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무슨 논리이냐? 거짓 리더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자질이 너무 떨어지고, 눈도 멀고 마음도 멀기 때문에 각 부류 사람을 분별하는 능력은 절대 갖추지 못한다. 그는 각 부류 사람을 간파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각 부류의 사람을 합리적으로 쓸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나름의 방법이 있다. 원래 교사를 하던 사람은 설교를 하도록 안배하고, 대외 무역을 하던 사람은 사무를 하도록 안배하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통역을 하도록 안배하고, 얼굴이 두껍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복음 전도를 하도록 안배하고, 소심한 사람은 집에서 체험 간증문을 쓰도록 안배하고, 대범하고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연기자를 하도록 안배하고, 완장을 차고 싶어 하는 사람은 리더나 감독을 하도록 안배하는 식이다. 거짓 리더는 이렇게 사람을 쓰며, 원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거짓 리더가 책임지는 사역 범위 안에서는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발탁과 양성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묻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있고, 접대를 하도록 안배를 받은 사람도 있다. 사실 그들은 모두 자질도 있고 진리도 일부 깨달아서 리더 일꾼으로 양성될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드러내거나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거짓 리더는 그들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며, 만나 보지도 않고 알아보지도 않는다. 하나님 집을 위해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고, 단지 아첨하는 사람들을 구슬려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결국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발탁, 양성되지 못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 말 잘하는 사람, 아첨을 잘하는 사람, 명예와 이익과 지위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발탁된다. 심지어 사회에서 관직에 있었던 사람, 기업 대표를 했던 사람, 기업 관리를 공부했던 사람들도 모두 중용된다. 이런 사람들이 진심으로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어쨌든 거짓 리더가 책임지는 사역 범위 내에서는 모두 발탁되어 쓰임 받는다. 이렇게 사람을 쓰는 것이 원칙에 부합하느냐? 거짓 리더가 이런 사람들만 발탁하는 것은 이방 사회와 같지 않으냐? 거짓 리더가 사역하는 동안에는 착실히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 정의감이 있는 사람, 진리를 좋아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발탁, 양성되지 못하고 훈련 기회를 얻기 힘들다. 하지만 말 잘하고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아첨을 잘하는 사람, 명예와 이익, 지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중용된다. 이 사람들은 아주 영리한 것 같지만, 사실 이해 능력도 없고, 자질도 너무 부족하고, 인성도 좋지 않고, 본분을 대할 때도 진정한 부담감이 없어서 전혀 양성 가치가 없다. 그런데 정작 교회에서는 리더 일꾼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 결과 교회의 많은 사역이 지체되어 순조롭게 전개되지 못하고 진행도 더디고,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도 지체되어 시행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리더가 사람을 부당하게 쓴 일이 교회 사역에 초래한 영향과 결과이다.
대다수 거짓 리더는 모두 자질이 부족하다. 비록 겉으로 말은 잘하지만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이 조금도 없고, 심지어 영적인 이해력도 없다. 눈도 멀고 마음도 멀어서 어떤 일도 간파하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하고,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한다. 이것도 아주 치명적인 문제인데, 그들에게는 더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글귀와 도리를 조금 깨닫고 파악하고, 또 구호를 몇 가지 외칠 줄 알면 자신에게 진리 실제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역을 하고 어떤 사람을 선발해서 사용하든, 그들은 진리 원칙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교제하지도 않고,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과 원칙은 더욱 지키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 있고 언제나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결국 어려움을 만나고 특별한 상황을 만나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들은 또 자기가 사역을 오래하고 하나님 집에서 리더를 맡아서 충분한 경험이 있다고, 교회의 사역을 어떻게 운영하고 어떻게 진전시키는지 안다고 착각한다. 마치 이런 일들을 다 이해한 듯하지만 사실 전혀 사역을 할 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관념 상상에 따라, 자신의 경험 패턴에 따라, 자신의 규례에 따라 이렇게 마음대로 교회 사역을 하고, 그 결과 교회의 각종 사역을 뒤죽박죽,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참된 성과를 얻지 못한다. 만약 어떤 팀에 진리를 깨닫고 실제적인 사역을 조금 할 수 있는 사람이 한두 명 있다면 그 팀의 사역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 리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사역이 잘되는 이유는 그 팀에 좋은 사람 몇 명이 실제적인 사역을 조금 할 수 있어서 사역을 잘 유지하는 것이지, 거짓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좋은 사람 몇 명이 책임지지 않으면 어떤 사역도 제대로 안 된다. 거짓 리더는 사역을 전혀 못 하고 아무런 작용도 못 한다. 거짓 리더는 왜 교회 사역을 뒤죽박죽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냐? 첫째, 거짓 리더는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진리 교제로 문제를 해결할 줄도 모르고, 또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구하지도 않는다. 이는 문제가 쌓여서 교회 사역이 정체되는 결과를 낳는다. 둘째, 거짓 리더는 눈이 멀어 인재를 발견할 줄 모르고 각 팀의 책임자를 적절하게 조정할 줄 모른다. 이는 일부 사역이 적절한 책임자가 없어서 정체되는 결과를 낳는다. 셋째, 거짓 리더는 지나치게 관료주의적이어서 사역을 감독, 지도하지 않고, 사역의 취약한 부분에 있어 구체적인 사역에 참여하거나 도우며 지도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어떤 사역에서는 사역하는 몇 사람이 모두 새 신자들이라 기반도 별로 없고, 진리도 깨닫지 못하고, 해당 사역의 업무에도 별로 익숙하지 않고, 원칙도 잘 모른다. 거짓 리더는 눈이 멀어 이런 문제를 보지 못한다. 그의 생각에 사역은 누군가 하는 사람만 있으면 되고, 잘하고 못하고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는 교회 사역에서 취약한 부분이 있으면 점검하고 검사하고 지도해야 하며, 문제 해결에 직접 참여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고 그가 정상 궤도에 진입할 때까지 붙잡아 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그때는 너무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 거짓 리더는 이런 식으로 사역하지 않는다. 그는 사역을 누군가가 하고 있다는 것만 알면 신경 쓰지 않고, 그 사람이 사역을 어떻게 하든 관여하지 않는다. 사역의 취약한 부분이나 자질이 부족한 책임자가 책임지는 사역에 대해 그는 직접 도와주며 지도하지도 않고, 직접 사역에 참여하지도 않는다.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책임자가 하는 사역에 대해서는 더더욱 직접 검사하거나 지도하지 않고 그저 천하태평이 되어 설령 누군가 문제를 보고해도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거짓 리더는 이런 구체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 요컨대 거짓 리더는 실제적인 사역을 전혀 하지 않는 쓰레기이다. 그는 어떤 사역이든 책임자가 있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 위치에서 일을 맡아서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가끔 예배를 드리거나 일이 있을 때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거짓 리더는 사역을 이런 식으로 하고도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하고,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에게 감탄한다. ‘모든 사역이 다 문제가 없어. 인원도 다 배정했고, 담당자들도 있어. 나는 어쩜 이렇게 사역을 잘하고 어쩜 이렇게 유능한지!’ 뻔뻔하지 않으냐? 이 정도로 눈도 멀고 마음도 멀어서 어떤 일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어떤 문제도 발견하지 못한다. 사역이 마비된 곳이 있는데도 그는 즐거워한다. ‘형제자매들이 하나같이 젊은 친구들이라 다들 활력소가 되는군.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이 정말 정열적이야. 틀림없이 사역을 잘할 수 있을 거야.’ 사실 그 젊은이들은 다들 업무 기술을 잘 몰라서 현장에서 배워야 하는 풋내기들이다. 아직은 사역을 할 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몇 사람은 업무를 좀 알지만 정통하지도 않고 원칙도 파악하지 못해서 일을 마쳐도 반복해서 수정해야 하고, 심지어 다시 작업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몇몇 젊은이들은 훈련도 거치지 않고 책망과 훈계도 받은 적이 없는데, 불량 습성이 너무 심하고 무척 게으르고 편안함을 탐하고, 조금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다 조금만 고생해도 원망이 끊이지 않는다. 대다수가 건성으로 임하고 안일함만 누리려 하는 쓰레기이다. 이런 젊은이들은 진리를 자주 교제해 주지 않으면 절대 안 되고, 책망과 훈계가 없으면 더욱 안 된다. 이런 사람들은 지켜보고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면 절대 안 된다. 반드시 리더 일꾼이 직접 사역을 책임지고, 직접 지도, 감독해야 성과를 조금 낼 수 있다. 리더 일꾼이 사역 현장을 떠나고, 사역에 관심을 갖거나 관여하지 않으면 이런 사람들은 오합지졸이 되고 본분 이행은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하지만 거짓 리더는 이 일을 간파하지 못한다. 그는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간주하고 다들 말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생각해서 그들에 대해 마음을 푹 놓는다. 사역을 그들에게 안배하면 더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거짓 리더가 눈도 멀고 마음도 멀었다는 가장 좋은 증거이다.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한 거짓 리더는 어떤 일도 간파하지 못하고 어떤 문제도 발견하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괜찮게 생각한다. 그가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완장을 차고 지위의 복을 누릴까 하는 생각뿐이다. 거짓 리더는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하나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으며,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집에서 자신을 칭찬하고 발탁해 주기를 기다린다. 정말 뻔뻔하기 그지없다!
거짓 리더가 하는 사역은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고, 칭찬할 만한 점도 전혀 없다. 큰 방향에서 그는 원칙도 파악하지 못하고 구체적인 세부 사항은 더더욱 파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업무 능력이 뛰어나지만 인성이 너무 부족하고, 어떤 사람은 인성은 별문제가 없지만 자질도 부족하고 업무 능력도 부족한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쓰고 분배해야 할지, 이런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일을 거짓 리더는 더욱 모른다. 따라서 언제든 거짓 리더에게 자질이 괜찮은 양성할 만한 사람을 발견했느냐고 물어보면 그는 늘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대답한다. 이미 눈이 멀 대로 먼 거짓 리더가 발견할 수 있겠느냐? 네가 그에게 모 자매는 어떠냐고 물어보면 그 자매는 육적인 편안함을 탐한다고 대답하고, 모 형제는 어떠냐고 물으면 그 형제는 자주 소극적이라고 대답하고, 다른 사람은 또 어떠냐고 물어보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 짧아서 아직 기반이 없다고 답한다. 그의 눈에는 누구도 안 된다. 그는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결점, 과오만 볼 뿐, 그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원칙에 부합하는지, 발탁하고 양성할 만한 대상인지는 보지 않는다. 진정으로 발탁하고 양성하기에 적합한 사람은 보지 못하고 하나님 집의 요구와 원칙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오히려 아주 흔쾌히 빨리 발탁한다. 그는 교회의 부잣집 사모나 부자, 부잣집 자제들은 죄다 발탁하고, 세상에서 관직에 있었거나 말을 잘하는 사람, 술수에 능한 사람도 모두 발탁한다. 어쨌든 세상에 잘 알려지거나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발탁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람들만이 인재라고 생각하며 진정으로 이해 능력이 있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전혀 보지 못하고 한 명도 발탁하지 않는다. 거짓 리더에게 하나님 집을 위해 진정으로 자격을 갖춘 인재를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예를 들어, 하나님 집에서 지금 문서 분야의 인재가 필요하다고 해보자. 그가 책임지고 있는 교회에 이런 인재가 있어도 그는 그 인재를 제공하지 않는다. 왜 발탁하고 양성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그는 “이 사람은 대학 시절에 음란한 짓을 두 번 저질렀습니다. 결혼 후에는 저지르지 않았고요. 그를 발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그렇다면 네가 발탁한 재력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음란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보장할 수 있느냐? 그런 사람들이 더하지 않느냐? 어떻게 그걸 모르느냐? 거짓 리더는 영적인 체까지 한다. 마치 그도 원칙을 좀 아는 것처럼 핑곗거리를 이유로 내세우며 발탁하고 양성해야 할 그 사람들을 발탁하지 않는다. 그의 눈에는 누구도 자기보다 못하다. 결국 어떻게 되겠느냐? 거짓 리더가 발탁한 그 ‘엘리트’나 ‘인재’들이 굳게 서겠느냐? 우리는 그 사람들이 꼭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주로 거짓 리더가 사람을 대하는 원칙이 사람의 관념으로써 판단한 것이지 진리로써 판단한 것이 아니라고 폭로하고, 그가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하는 원칙이 그의 관념 상상과 그의 기호에 따라 완전히 이방인의 관점으로 판단한 것이지, 하나님 집의 요구 기준을 근거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폭로하는 것이다. 왜 거짓 리더가 이렇게 하겠느냐? 그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집의 요구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발탁해서 집중적으로 양성하고, 그들이 하나님 집의 중요한 사역을 담당하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 리더가 하는 사역이다. 너희도 한번 살펴보아라, 주위의 거짓 리더들이 이런 식으로 사역하고,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느냐?
거짓 리더는 언제나 한 가지 관점을 표출하는데, 그는 세상에서 지식을 갖춘 사람들, 지위가 있는 사람들, 관직을 맡았던 사람들은 다 인재라고 생각하고,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 집에서 양성하고 써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런 사람들을 무척 높이 평가하며 숭배하고, 심지어 그들을 친척이나 가족처럼 대한다. 그리고 늘 사람들에게 이들이 세상에서는 어떤 기업 총수였다느니, 정부 부문에서 기관장을 했다느니, 어떤 신문사에서 편집장을 했었다느니, 혹은 공안 부문에서 무슨 처장을 했다느니, 돈이 아주 많다느니 소개하면서 이 사람들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너희가 보기에 거짓 리더에게 자질이 있느냐? 영적인 체하는 존재로, 일을 간파할 수 없는 게 아니냐? 거짓 리더는 이 사람들이 모두 사회에서 인재이므로 이들이 하나님 집에 오면 하나님 집에서는 마땅히 이들을 양성하고 중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관점이 맞느냐? 진리 원칙에 부합하느냐? 만약 그 사람들이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고 양심과 이성도 없다면 하나님 집에서 양성하고 중용할 수 있겠느냐? 그들은 양성 자격이 충분하지 않다. 이방에서 인재라고 해서 하나님 집에서도 인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관직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이 거짓 리더들은 관직에 있는 사람을 무척 숭배한다. 그들은 세상에서 관직에 있던 사람, 지위가 있던 사람을 보면 주인을 만난 노비처럼 굽실거리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그들을 친부모, 친형제자매라고 부르지 못해 안달하면서 그들을 교회의 리더 일꾼으로 발탁하려고 한다. 너희가 볼 때 이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냐? 세상에서 지위도 좀 있고 명망도 좀 있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 집에서 리더 일꾼을 하기에 적합하겠느냐? 만약 그들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교만하고 방자한 성품으로 가득하다면 하나님 집의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되겠느냐? 지위와 명성만 보고 인품은 보지 않는다면, 이런 식으로 사람을 발탁하는 것이 원칙에 부합하느냐? 거짓 리더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발탁하고 쓰는지 아느냐, 모르느냐?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에서는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할 때 반드시 다음 세 가지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첫째, 반드시 인성이 있어야 하고,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둘째, 반드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셋째, 반드시 어느 정도의 자질을 갖춰야 하고 사역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발탁되고 양성될 수 있고, 후보자가 되고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자질과 능력을 갖춘 것만으로는 절대 안 된다. 인품이 1순위이고, 그다음으로 반드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며,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만약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악인이 발탁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므로 인성이 없는 사람은 절대 발탁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거짓 리더는 하나님 집의 요구를 무시한다. 그들은 사람을 선발해서 쓸 때 언제나 그 사람이 사회에서 지위가 있는지, 어떤 배경이고 어떤 신분인지, 고등 교육을 받았는지, 사회에서 명망이 높은지 낮은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이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할 때는 이런 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이 하나님 집에서 정한 원칙에 부합하느냐? 이것이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에 부합하느냐? 사회에서 지위가 있는 그 사람들은 다 어떤 사람들이냐? 모두 수단을 가리지 않고 권력과 지위를 다투는 사람들이고, 사탄에 속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하나님 집에서 권력을 잡는다면 하나님 집이 그래도 하나님의 교회이겠느냐? 거짓 리더가 사탄에 속한 사람들을 리더로 발탁하는 목적이 과연 무엇이냐?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발탁하고 쓰는 원칙에 부합하느냐? 이것은 대놓고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냐? 거짓 리더가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하는 데는 원칙이 없다. 이는 교회 사역을 가장 크게 방해하고 교란하는 짓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 방식이다.
거짓 리더는 자질이 너무 부족하고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없어서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듣고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순수하고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지도 못한다. 또 도리를 몇 년 얘기하든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닫지 못한다. 그야말로 죄다 허튼소리이고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는 도리를 조금 기억해서 도리를 좀 얘기할 수 있으면 자기에게 진리 실제가 생긴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가 하는 행동은 진리와 조금도 관계가 없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바리새인이다. 겉으로 볼 때 그들은 늘 사람들에게 설교해 주고 말도 정말 잘해서 마치 진리를 깨달은 것 같지만 그들의 행동은 모두 진리에 위배되고 저촉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고 교회 사역을 하고 있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 그들의 행위는 완전히 하나님과 맞서는 것이다. 거짓 리더는 결코 하나님 집을 위해 쓸모 있는 인재를 발탁한 적이 없다. 그들은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비교적 정직한 사람은 간과하고 무시하면서 오히려 아첨하는 사람,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 야심과 욕망이 있는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해서 교회에서 사역을 맡도록 한다. 결국 이 사람들이 일정 기간 사역하고 나면 교회의 각종 사역은 정체되어서 거의 마비 상태에 빠지고, 교회 사역은 거짓 리더의 손에서 망쳐진다. 거짓 리더 부류는 정말 가증스럽지 않으냐? 교체해야 하지 않겠느냐?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하루 지체되면 하나님 집 사역이 그만큼 지장을 받는다. 어떤 거짓 리더는 자신이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사직하려 하지 않고 늘 지위의 복에 연연하며 교회 사역에 해를 끼칠지언정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이는 전혀 이성이 없는 자가 아니냐? 거짓 리더는 이해 능력도 없고, 진정한 재능도 없고, 진리를 추구하는 자도 아니다. 그러면서 지위의 복을 누리는 뻔뻔한 자이다. 그러니 절대 발탁해서 양성하면 안 된다. 네가 생각하기에 너 자신이 자질이 너무 부족하고 옳고 그름을 분간할 능력이 없고,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없다면 절대로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방종해서는 안 되고, 어떻게 하면 교회에서 한자리 맡아서 리더가 될지 고민해서는 안 된다. 리더가 되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정직한 사람이 아니고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 리더가 된다면, 너는 적그리스도나 거짓 리더가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이든 거짓 리더이든 이들은 다 양심과 이성이 없는 자들이고, 악행을 저질러 교회 사역을 교란할 수 있는 자들이다. 적그리스도가 마귀 사탄이라는 말도 맞지만 거짓 리더 역시 좋은 인간은 못 된다.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없는, 후안무치한 자이다. 거짓 리더가 되어 교체되는 일이 명예스러운 일이냐? 그건 수치이자 오점이지 절대 명예스러운 일이 아니다. 만약 네가 교회 사역에 부담감이 있고 교회 사역에 참여하고 싶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진리를 깨달았는지, 진리를 교제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사역에 진실로 순종할 수 있는지, 사역지침에 따라 교회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만약 이 몇 가지에 이를 수 있다면 리더 일꾼 선거에 나가도 좋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사람이 최소한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 본인이 사람을 분별할 줄 아는지, 진리를 깨닫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지를 봐라. 만약 이런 요구에 이를 수 있다면 리더 일꾼이 되기에 합당하다. 만약 스스로 가늠할 수 없다면 주위에 너와 가깝고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된다. 만약 모두가 네 자질이 리더를 맡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현재 네가 맡은 본직 사역부터 잘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한다면 얼른 자기를 인식하도록 해라. 네 자질이 부족하다면 리더가 될 생각만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착실하게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도 괜찮다. 만약 네가 리더가 될 수 있다면, 네가 정말 그런 자질과 재능, 사역 능력이 있고 부담도 있다면 하나님 집에서 마침 이런 인재가 필요한 상황이라 틀림없이 너를 발탁해서 양성할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때가 있는 법이다. 발탁되고 싶은 너의 그 바람은 야심이 아니다. 하지만 리더가 되기 위한 자질과 조건을 갖춰야 한다. 자질이 부족한데도 늘 리더가 되려 하고, 중책을 맡으려 하고, 사역 전반을 책임지려 하고, 얼굴을 내밀려고 한다면, 너에게 알려 주겠는데, 그것은 야심이다. 야심은 재앙을 가져올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향상하려는 마음이 있고 진리에 공을 들이기를 원한다. 여기에는 문제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질이 있고 리더가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고 진리에 공을 들일 수 있다. 이건 좋은 일이다.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자기 본분을 잘 지키고 눈앞에 놓인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며 원칙에 맞게, 하나님 집 요구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 이것이 그에게는 더 좋고, 더 안전하고, 더 현실적이다.
리더 일꾼으로 선출되거나 발탁되어 양성되는 사람들도 요행 심리를 품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형제자매들이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선발하고 하나님 집에서 나를 발탁했어. 역시 난 능력도 좀 있고 남들보다 뛰어나. 금은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 법이지.’ 이런 게 좋은 생각이냐? 패괴 성품의 표출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네가 발탁, 양성되는 건 좋은 일이고 좋은 기회이다. 하지만 네가 이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을지는 네가 이 기회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렸고,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느냐에 달렸다. 하나님이 너에게 이 기회를 준 것은 네가 정말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말이 아니다. 아마 네가 남들보다 자질이 좀 좋거나 은사가 조금 있을 수는 있지만 생명 진입이 어떤지, 진리 실제가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의 패괴 성품은 다 마찬가지이고, 너 역시 패괴된 인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네가 만약 이 점을 인식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 집에서 너를 발탁하고 양성한 일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다. 너는 자신을 인재로 간주하고 대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진리 실제가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단지 네가 자질을 조금 갖춘 데다 진리에 공을 들일 수 있기 때문에 너를 훈련시키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수습 단계에 해당하며, 네가 과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양성할 가치가 있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이 기간 동안 검증한 후 네가 과연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마 너를 남게 해서 계속 양성할 수도 있고 탈락시킬 수도 있다. 네가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달렸다. 리더 일꾼을 발탁하는 일은 이렇게 이루어지니 잘 이해하도록 해라. 너 스스로가 인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집에서 너를 발탁하지 않고 양성하지 않는다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네가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집에 의해 쓰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너는 아무 일도 이룰 수 없다. 만약 네가 “하나님 집에서 저를 안 써 주면 사회로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사회에 나가서 한번 시도해 보아라. 누가 너를 발탁해 주는지, 네가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보아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너희에게 하나님 집에서 너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일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대해야 한다고 알려 주려는 것이다. 자질이 부족하거나 보통이어서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요구 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착실하게 자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면 된다. 네가 마음과 뜻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너를 서운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발탁되고 양성되는 일을 두고 다투지도 말고 거절하지도 말고 모든 걸 순리에 맡기도록 해라. 한편으로는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해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옳은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리더가 되면 좋은 점이 있느냐? 결국 거짓 리더로 규정되어 도태되고 나면 어떤 기분이겠느냐? 이것이 너희가 바라는 일이냐? (아닙니다.) 거짓 리더라는 꼬리표가 붙어서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이 사람은 거짓 리더였다고 수군대면 이건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그건 좋은 일이 아니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발탁되고 양성되는 일에 대해 사람은 올바른 이해와 올바른 태도를 지녀야 하고 이 일에서 진리를 구해야 한다. 자기 뜻대로 해서도 안 되고 야심과 욕망을 품어서도 안 된다. 만약 네가 스스로 자질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 집에서 한 번도 너를 발탁해 주지 않고 너를 양성할 계획도 없다면 낙담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진리를 추구해서 계속 노력하도록 해라. 너에게 분량이 좀 생겨서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게 되면 하나님 선민들이 자연스럽게 너를 리더로 선출할 것이다. 만약 네가 자신의 자질이 부족하고 앞으로도 발탁되고 양성될 기회가 없고 네 야심을 채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좋은 일이 아니냐? 그것은 너에게 보호가 되는 일이다! 네가 자질이 부족한데 눈이 먼 바보들이 너를 리더로 선출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너를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는 어떤 사역도 할 수 없다. 눈도 멀고 마음도 멀어서 손만 대면 방해가 되고 손만 쓰면 악행이 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자신의 본직 사역을 제대로 하는 것이 낫다. 그러면 최소한 웃음거리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고, 거짓 리더가 되어 남에게 손가락질당하는 것보다 낫다. 사람이라면 자기 분수를 알고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잘못된 길을 가고 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너희는 거짓 리더가 되길 원하느냐, 아니면 평범한 따르는 자가 되길 원하느냐? (평범한 따르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만약 형제자매들이 정말로 너를 뽑았다면 너는 한번 해볼 수는 있다. 어쩌면 형제자매들의 눈이 너 자신의 느낌보다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형제자매가 너를 괜찮게 본다면 너는 마땅히 전력을 다해야 한다. 만약 네가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도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속으로 걱정이 되어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사역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 리더 일꾼을 그만두도록 해라. 너무 곤란한 것이다. 계속하면 거짓 리더가 될 것 같으니 서둘러 사직서를 써서 이렇게 성명해야 한다. “본인은 자질이 부족한 관계로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리더를 계속한다면 분명 거짓 리더가 될 것이니 이에 사직을 신청하고 자리에서 내려오겠습니다.” 이것이 현명한 처사이고,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적절하다! 이성을 갖추는 것, 이것이 지위를 차지하고 거짓 리더가 되는 것보다 낫다. 본인이 자질이 좋지 않아 리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지위에 연연하며 이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왜 리더가 될 수 없지?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지? 누가 나를 위해 계획을 세워 주고, 그래서 리더라는 이 자리에 계속 머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알맞은 대체 인력도 딱히 없으니 내가 계속 리더를 하는 수밖에. 하루라도 리더 자리에 있으면 그 하루를 누리는 거야. 사역을 못해도 리더는 리더지. 리더를 하는 게 평범한 형제자매보다 나아. 하나님 집에서 교체하지 않고 형제자매들이 파면하지 않는 한 나는 사직하지 않겠어.’ 이렇게 하는 것이 적절하냐, 부적절하냐? (부적절합니다.) 왜 부적절한 것이냐? (그는 이성이 없습니다.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없으면서도 사직하지 않으면 교회 사역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교회 사역에 지장을 주고 남들에게도 자신에게도 해가 된다. 너는 리더가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 이는 많은 사람의 생명 진입이 너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그들이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걸어갈지가 너의 인솔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네가 잘 인솔해서 그들을 바른길로 이끌면 그들은 바른길로 들어설 수 있지만, 네가 잘 인솔하지 못하고 그들을 수렁으로 이끌어서 다들 너와 마찬가지로 바리새인이 된다면 너의 죄가 크다! 커다란 죄를 짓는다면 그것으로 끝이겠느냐? 하나님 편에서는 기록해 놓을 것이다! 너는 네가 자질이 부족한 거짓 리더이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한다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인책 사임하지 않고 뻔뻔스럽게도 자리를 차지한 채 다른 이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이것은 죄과로 하나님 편에서는 이를 기록해 둔다. 이것이 일단 기록되면 앞으로 너에게 좋겠느냐, 나쁘겠느냐? 너는 큰일이 날 것이다! 내가 너에게 실상을 말해 주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이런 일들을 기록할 것이다. 하나하나 똑똑히 말이다. 네가 구원받는 길에서 이렇게 심각한 일을 저지르면 너에게 막대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절대 그런 길을 가거나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거짓 리더가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일을 대하는 방법과 모습에 대해 대략적으로 교제해 보았다. 요컨대 거짓 리더 부류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다. 자질이 부족하고 눈과 마음이 멀어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또 각 부류의 사람을 간파할 수 없기 때문에 각 부류의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이 중요한 사역을 그들이 담당하지 못한다. 이렇게 그들은 교회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없고, 하나님 선민들의 생명 진입에도 많은 어려움을 몰고 올 것이다. 이 몇 가지 측면에서 볼 때 거짓 리더가 교회 리더를 맡는 것은 확실히 부적절하다. 또 일부 거짓 리더는 구체적인 교회 사역을 하지 않고, 구체적인 사역을 맡은 책임자와 접촉하지 않기 때문에 각 부류의 인재가 어떤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지, 어떤 사역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그들이 하는 사역이 원칙에 부합하는지 거짓 리더는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인재를 발탁하고 양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이 어떻게 교회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거짓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없는 주된 원인은 바로 자질 부족이다. 어떤 일도 간파하지 못하고, 무엇이 실제적인 사역인지도 모르고, 그러다 보니 교회 사역은 늘 정체 상태, 마비 상태에 처한다. 이것은 거짓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하나님 집에서는 교회에서 악인과 불신파를 정리하고 거짓 리더, 거짓 일꾼을 교체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왜 각종 악인과 불신파를 정리해야 하겠느냐? 이들이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고도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이미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왜 모든 거짓 리더, 거짓 일꾼을 교체해야 하겠느냐? 이들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절대 발탁해서 양성하지 않고, 쓸데없는 짓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교회 사역이 혼란에 빠지거나 마비되고, 놓여 있는 문제는 계속 해결되지 않아서 결국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이 늦어진다. 만약 이런 거짓 리더, 거짓 일꾼 및 교회를 교란하는 악인, 불신파를 모두 교체하고 제명한다면 교회 사역도 당연히 잘 풀리고, 교회 생활도 당연히 훨씬 나아져서 하나님 선민들은 정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고 싶어 하는 바이다.
2021년 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