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일꾼의 직책(21)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를 구분하는 법

진리를 대하는 태도를 근거로 구분한다

오늘도 계속해서 리더 일꾼의 직책에 관한 내용에 대해 교제하겠다. 본격적으로 교제하기 전에 우선 이전에 교제했던 적그리스도에 관한 주제, 즉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자와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가진 자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이 두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을 상기해 보자. 먼저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분별하는지에 대해 교제해 보자. 이 주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선 적그리스도 부류가 보이는 두드러지고 특징적인 모습을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네가 단시간 안에 그가 전형적인 적그리스도이며, 절대 적그리스도 성품만 가지고 있거나 적그리스도의 길만 걷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면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수 있게 되고 더이상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거나 속박되거나 통제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가지고 있는 부류와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부류, 이 둘의 두드러진 차이가 무엇인지 반드시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부류를 분별하려면 우선 그들의 주된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지위를 차지하고 남 가르치길 좋아하는 등 적그리스도가 평소에 표출하는 패괴만 파악할 줄 알고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은 분별할 줄 모른다. 그래서야 되겠느냐? (안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적그리스도의 가장 두드러진 모습이 바로 교만하고 방자한 것이라며, 교만하고 방자한 사람은 다 적그리스도로 규정한다. 과연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왜 옳지 않겠느냐? 교만하고 방자한 것은 적그리스도의 가장 두드러진 모습이 아니라 패괴된 인류라면 다 가지고 있는 패괴 성품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다 교만하고 방자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데, 만약 교만하고 방자한 사람을 모두 적그리스도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를 한눈에 똑똑히 인식하고 이 두 부류의 본질이 다르다는 것을 분별하여 다르게 대할 수 있게 해 주는 적그리스도의 본질적인 모습은 무엇이냐? 이 두 부류는 특정 부분에서, 예를 들어 행동 방식이나 행위, 성품의 측면에서 비슷하거나 유사한 부분이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세심하게 관찰하거나 진지하게 구분하지 않으면, 혹은 마음속으로 이 두 부류의 성품과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고 분별하지 않으면 이 두 부류를 같은 부류로 대하기 쉽다. 심지어 적그리스도를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로,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를 적그리스도로 여기는 등, 이런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쉽다. 그렇다면 누가 적그리스도이고 누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인지 근거를 기반으로 분별할 수 있도록 하는 이 두 부류의 주된 특징과 차이는 무엇이겠느냐? 이 주제가 낯설지 않을 테니 너희가 한번 말해 보거라.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를 구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진리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로 구분하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그들의 인성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대할 때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증오하고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가 방해하고 교란하는 악행을 얼마나 저질렀든, 그에게 어떻게 교제하고 그를 어떻게 책망하고 훈계하든 그는 인정하지 않고 죽어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반면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원칙을 파악하지 못할 때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지만,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진리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으며 뉘우치고 회개할 줄 압니다. 진리를 대하는 태도로 보면,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진리를 증오하는 것이지만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인성으로 보면, 적그리스도는 악인에 해당하고 양심과 지각이 없으며 염치를 모르지만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는 양심과 지각이 있고 염치를 압니다.) 두 가지 측면의 특징을 말했는데, 이런 내용은 예전에 교제한 적이 있지 않으냐?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가 진리를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두드러진 특징을 보이는 모습 중 하나이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싫어하고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말씀이 바로 진리라는 것을 죽어도 인정하지 않고, 네가 진리를 어떻게 교제하든 속으로 반항하고 싫어하는 데다가 너를 욕하고, 비웃고, 멸시하며 경멸하는 태도로 대한다. 진리를 적대시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반면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의 특징은 무엇이냐?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말해,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졌지만 어느 정도 양심과 이성을 갖춘 사람은 진리를 교제하면 관념을 바꾸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며 책망과 훈계를 받아도 순종할 수 있다. 즉,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 요컨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는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 하나님의 징계와 깨우침을 받아들이는 것, 혹은 형제자매가 책망하고 훈계하며 도와주고 붙들어 주는 것 등을 통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순종할 수 있다. 이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반면 적그리스도는 다르다. 적그리스도는 누가 진리를 교제하든 듣지도 않고 불복하며, 죽어도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만 보여서 그를 어떻게 책망하든 소용없다. 아무리 분명하게 진리를 교제해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속으로 반발하고 싫어한다. 이렇게 진리를 증오하는 성품을 가진 그가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겠느냐? 그럴 리 없다. 따라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적이자 구제불능인 사람이다.

인성을 근거로 구분한다

방금 너희는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를 분별하는 또 다른 특징도 하나 언급했다. 그건 바로 인성이다. 이 특징에 대해서도 누가 다시 교제해 보겠느냐? (적그리스도의 인성은 특히나 악랄해서 그는 사람을 억압하고 괴롭히며 악을 얼마나 행하든 회개할 줄 모릅니다.) 그렇다. 적그리스도의 주된 특징이 바로 인성이 악랄하고 염치를 모르며 양심과 이성이 없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악행을 얼마나 저지르든, 교회 사역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히든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도,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나님 집에서 그를 폭로하든, 형제자매가 그를 책망하고 훈계하든 그는 얼굴이 빨개지거나 심장이 두근두근하지도 않고 속으로 자책하거나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인성 측면에서 보이는 모습으로, 주된 특징은 양심과 이성, 염치가 없고 성품이 지극히 흉악한 것이다. 누가 그의 이익을 건드리면 그 사람을 판단하고 괴롭히며, 복수심이 유독 강해서 아무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친한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적그리스도는 이토록 흉악하다. 반면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는 패괴를 얼마나 표출하든 반드시 악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성에 어떤 결함과 부족함이 있더라도, 어떤 실수를 저지르고 어떤 면에서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그는 나중에 자신을 반성하고 교훈을 얻을 줄 안다.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속으로 뉘우칠 줄 알고, 형제자매가 비난하거나 폭로하면 당시에는 어느 정도 변명하면서 인정하지 않으려 하더라도 사실 속으로는 이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복종하고 있다. 이는 그가 그래도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만회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잘못을 저지르거나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그의 양심과 이성이 모두 작용하여 지각할 수 있으며, 무감각하지도 않고, 고집을 부리며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 일도 없다. 그 밖에도 이런 부류는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동정심이 있고 선량해서, 다양한 일이 닥쳤을 때 그들이 드러내는 인성 측면의 특징을 가장 적절하고 평이한 말로 설명하자면 바로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남이 호된 말로 책망하더라도 기껏해야 마음속에 살짝 반감을 품을 뿐 인성과 태도로 보면 그래도 염치를 알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이성으로 어느 정도 스스로를 구속할 줄 안다. 만약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실을 입히거나 어떤 형제자매에게 피해를 입히면 속으로 계속 괴로워하고 하나님에게 죄스럽다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사람들은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이런 모습을 표출한다. 설사 이런 일들이 발생한 뒤에 바로 보완하지 않거나 올바르게 선택하고 실행하지 않더라도 이런 부류는 속으로 지각하고 있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은연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데다가 얼마 후에는 내적 상태가 전환되어 진실로 회개하고 깊이 뉘우친다. 당초 올바르게 선택하고 실행하지 않았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이런 모습이 바로 패괴된 인류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적그리스도 부류는 특별하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마귀라서 악을 행하고 죄를 범한 뒤 시간이 얼마나 지나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그들은 끝까지 죽기로 대들고 고집불통이다.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는 일반적인 책망과 훈계을 받아도 순종할 수 있고, 호되게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당시에는 변명하면서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지만 나중에는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뉘우치고 회개할 수 있다. 설사 누가 인성이 없다며 그를 비웃고 판단하더라도 속으로는 괴롭지만 반항하지 않고 그 사람을 적으로 대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잘못했으니 남들이 어떻게 대하든 할 말이 없지.’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이런 모습을 표출한다. 어쨌든 이런 표출이 바로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나 패괴 성품을 가진 자가 보이는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와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이 두 가지 내적 상태가 보이는 서로 다른 모습을 통해 어떤 부류가 악인이나 적그리스도에 해당하는지, 어떤 부류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지고 있을 뿐 악인은 아닌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진실로 회개하는지를 근거로 구분한다.

방금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측면의 차이를 언급했다. 첫 번째 측면은 진리를 대하는 태도이다.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바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인데, 이 측면에서 두 부류는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두 번째로, 이 두 부류는 인성 측면에서도 두드러진 본질적 차이를 보인다. 이 두 측면의 특징은 몹시 두드러지고 두 부류는 서로 완전히 다르다. 이 두 가지 측면의 차이 이외에 또 한 가지 측면이 있는데, 바로 악을 행한 뒤 회개하는 모습이 있고 없고의 차이이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사람을 괴롭히고 혼내거나, 독립 왕국을 세우거나,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거나, 제물을 횡령하는 등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설사 직접 폭로되더라도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는데 회개할 수 있겠느냐? 그는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다. 그는 악을 행한 사실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맞는 말에도 대항하고 반항할 뿐 결코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걸었는지 스스로 반성하거나 ‘나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다니 너무 위험해. 회개해야 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속에는 절대 이런 생각이 없고, 그는 인성 안에 이런 것을 갖추고 있지 않다. 따라서 적그리스도의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든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진실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는 무리에서 나서기를 좋아하고 권력과 이익을 다투며 사람들을 괴롭히고 혼내는 데다가 패거리를 지어 교회를 분열한다. 그가 권력을 잡으려는 목적은 바로 교회에 얹혀살고 독립 왕국을 세우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믿은 지 3년, 5년이 지났을 때 다시 봐도 그는 여전히 그런 모습과 특징을 가지고 있고 아무런 변화도 없다. 8년, 1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하나님을 믿은 지 20년이 지나면 바뀔 수도 있죠!” 그가 바뀔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바뀌지 않는다. 그는 일부 사람과 접촉하든 많은 사람과 접촉하든 그런 모습을 보이고, 일반적인 본분을 이행하든 리더 일꾼이 되든 그런 모습을 보인다. 그는 결코 회개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으며 끝까지 한 길만 걷는다. 그는 절대 회개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반면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 중 일부는 악인은 아니지만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고, 교만, 간사함, 이기심과 비열함 등 여러 패괴를 표출하기도 하고, 인성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고 두각을 나타내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으려 하며 리더 일꾼이 되어 권력을 잡으려는 야심과 욕망도 가지고 있다. 패괴된 인류는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적그리스도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를 겪으며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아 갈수록 이런 패괴 성품을 덜 표출한다. 왜 갈수록 덜하겠느냐? 진리를 깨달은 그가 그런 행위와 모습이 패괴 성품을 표출하는 것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양심에 지각이 생겨서 자신이 깊이 패괴되었고 확실히 자신에게는 사람다운 모습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려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고, 또한 어떻게 해야 그런 패괴 성품을 벗어버리고 패괴 성품의 결박에서 헤어 나와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모습이냐? 점차 회개하고 있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는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고 자신의 여러 내적 상태를 이해하게 된다. 동시에 자신의 인성 본질을 인식하여 갈수록 양심에 지각이 생기고, 자신이 깊이 패괴되어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져서 속으로 자신을 혐오하게 되고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점차 회개한다. 회개하는 동시에 일부 경미한 변화가 발생하는데, 그런 경미한 변화는 행위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원래 그는 누가 그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폭로하면 반감을 품고 부끄러워 화를 내며 자신을 위해 해명하는 것은 물론, 애써 각종 핑계와 이유를 찾아 자신을 옹호했다. 그런데 끊임없이 체험하는 과정에서 그는 그렇게 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런 내적 상태와 행동 방식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올바른 말을 받아들이고 사람들과 조화롭게 협력하며, 일이 닥쳤을 때도 사람들과 함께 구하고 교제하는 법,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화목하게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회개하는 모습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뒤 자신이 표출한 일부 적그리스도 성품과 행위, 모습에 대해 점차 참된 인식이 생기고, 그러면서 점차 패괴 성품을 벗어버리고 예전의 잘못된 생활 방식, 명예나 지위에 대한 추구를 내려놓은 채 진리 원칙대로 행동하고 처신하며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진리를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돌아서고 회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것들은 다 끊임없이 회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앞으로 그의 내적 상태는 분명 점점 더 좋아질 것이고 체험이 깊어지면서 분량도 갈수록 성장할 것이다. 일이 닥치면 자신을 반성할 줄 알게 되고, 좌절과 실패를 겪든, 책망과 훈계를 받든 모두 하나님 앞에 가져가 하나님에게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는 자신의 패괴된 내적 상태와 대조해 보고 분석하고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일이 닥쳤을 때 패괴를 표출하거나 잘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을 반성하고 배반할 줄 안다. 그런 문제를 의식할 수만 있다면 그는 끊임없이 진리를 구해 해결하고 회개할 수 있다. 비록 그 속도는 무척 느리고 효과도 미미하겠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계속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부류는 언제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자발적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는 태도와 내적 상태를 가지고 있다. 그 역시 남들과 명예와 지위를 다투고 적그리스도의 모습과 행동 방식을 좀 표출할 때도 있지만 책망과 훈계, 심판과 형벌, 혹은 하나님의 징계를 좀 체험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패괴 성품을 벗어버리고 변화할 것이다.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주요하고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런 부류가 마음속으로 패괴 성품과 자신이 걸은 잘못된 길을 반성하고 인식하여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돌아서는 것이 그에게 가져오는 변화와 성장, 수확은 작고 진전도 느리며 심지어 그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그렇게 3년, 5년 체험하면 그도 자신에게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고 그의 주변 사람도 알아차릴 수 있다. 어쨌든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부류와 적그리스도는 서로 다르다. 이 측면의 주된 특징은 무엇이냐?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부류는 회개할 줄 압니다.) 그는 잘못을 저지르고 과오를 범하거나 책망과 훈계, 심판과 형벌, 채찍질과 징계를 받으면 회개할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이 잘못했거나 실수를 저질렀음을 의식했을 때도 자신을 반성할 수 있고 내면에서 뉘우치고 회개하는 태도를 보인다.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와 적그리스도는 이런 부분에서 서로 완전히 다른 특징적인 차이를 보인다.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의 차이를 정리하다

적그리스도 부류가 바로 살아 있는 사탄이다. 그는 살아 있는 한 사탄이고 사람이 볼 수 있는 마귀 사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의 본질적 차이가 무엇인지 정리해 보자. 한 가지 측면은 진리를 대하는 태도이다. 적그리스도는 결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도 입으로는 하나님 말씀이 진리이고 긍정적인 사물이며 사람에게 이로운 말이자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준칙이니, 사람은 마땅히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인정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결코 실행해 내지는 못한다. 그는 왜 실행하지 못하느냐? 마음속으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고 하지만 그는 다른 속셈을 품고 있다. 그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신의 실상을 숨기고 사람들을 미혹하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글귀와 도리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해서 마음속으로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진리를 실행해 내지 못하는 것은 마음속으로 결코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해 진리 실제에 진입하려 하지 않는다. 반면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라고 해서 반드시 적그리스도인 것은 아니다. 그중 일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 올바른 말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에 순종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적그리스도 본질을 가진 부류는 진리를 적대시하고 저버리지만,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들 중 일부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사역을 몇 년 체험함으로써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어느 정도 변화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실행해 내지는 못하지만 진리는 좋고 옳은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다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거나 진리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실행하려 할 때 좀 힘들고 어려울 뿐이다. 따라서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졌지만 양심과 이성이 좀 있는 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최소한 마음속으로 진리에 거부감이나 반감을 품거나 진리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대다수 사람이 이런 내적 상태에 놓여 있고 진리를 대할 때 이런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말하면 미화하는 것도,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상당히 객관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 밖에, 인성 측면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즉, 양심과 이성, 그리고 인성의 선악으로 구별하는 것이다. 인성이 악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특히나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불신파나 적그리스도이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별로 사랑하지 않고 진리에 관심도 없으며 남이 진리를 교제하면 졸기나 하고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부류는 인성이 악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거나 혼내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뜻과 진리 원칙, 하나님 집의 규정을 교제하면 그는 들을 수 있고 진리를 받아들여 진리에 닿도록 노력하려 한다. 그러나 반드시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리더가 된다면 진리를 깨닫도록 너를 이끌어 주거나 너를 하나님 앞에 데려갈 수는 없지만, 결코 너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부류의 인성이다. 어쨌든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부류는 인성이 그다지 악하지 않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리도 받아들일 수 있는 반면, 적그리스도는 양심과 이성이 없는 데다가 인성도 특히나 흉악하다.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는 양심과 지각이 있고 이성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서 어떤 일들은 이성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 집의 요구를 어떻게 대할지, 형제자매를 어떻게 대할지, 일부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을 대할 때 어떻게 선택하고 어느 편에 설지 등에 대해 그래도 구분할 줄 알고, 최종적으로 양심에 따라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이런 부류는 인성이 그다지 악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마음씨도 고운 편이다. 또 다른 측면의 차이는 방금 교제했듯, 흔히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부류 중 일부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르면 반성할 줄 알며 회개하려는 마음이 있는 반면, 적그리스도는 결코 이 두 가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고집불통이라는 점이다. 그는 진리를 싫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며 인성이 지극히 흉악하기 때문에 이런 부류를 돌아서서 회개하도록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사람이 진실로 회개할 수 있는지 여부는 주로 그가 양심과 이성을 갖추었는지, 진리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부류는 인성이 악하지 않고 양심과 이성을 어느 정도 갖추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리를 좀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잘못을 저지르거나 과오를 범했을 때도 책망과 훈계를 거치면 회개할 수 있다. 따라서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는 구원받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 반면 적그리스도는 구제불능이고 마귀 사탄에 해당하는 족속이다. 이 몇 가지 특징이 바로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의 본질적인 차이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상당히 객관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보이는 이 몇 가지 측면의 특징에 대해 우리가 교제한 세부적인 모습들은 다 객관적이고 사실에 부합하며 폄하하는 요소는 없다. 하나님 선민들도 직접 접하고 겪어 보았을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부류이다. 우리는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사람이 보이는 모습도 여럿 폭로했는데, 모두 사람이 볼 수 있고 사실에 부합하며 미화하는 요소는 없다.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는 인성에 결함과 흠이 많고, 정도는 다르지만 여러 패괴 성품을 표출한다. 사람마다 눈에 띄는 상징적인 모습들로 이런 패괴 성품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특히나 교만하고 어떤 사람은 유독 꾀가 많고 간사하며 어떤 사람은 남달리 강퍅하고 어떤 사람은 유별나게 게으르다. 이런 것들이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가 보이는 모습이자 이런 부류가 지닌 인성의 특징이다. 이런 부류는 마음씨가 좀 곱고 속된 말로 심지가 좀 바르지만 일이 닥치면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실을 입은 것이 뻔히 보여도 사람에게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워 겁쟁이가 되고, 사탄 철학에 기대 살아가며 진리 원칙을 고수하려 하지 않는다. 비록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하나님에게 미안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무골호인이 되기로 한다. 왜 그렇겠느냐? 그는 자신이 생존하고 살아가려면 반드시 사탄 철학에 기대야 한다고, 그래야만 자신을 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골호인이 되어 진리를 실행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그도 속으로는 그렇게 하면 비양심적이고 인성을 상실한 것이며 사람도 아니라고, 집 지키는 개만도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책하고 나서 다시 일이 닥쳐도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그렇게 행동한다. 그는 늘 연약하고 결핍돼 있다. 이는 무엇을 증명하겠느냐?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부류는 비록 적그리스도는 아니지만 인성에 확실히 문제와 결점이 있어서 분명 적지 않은 패괴를 표출한다.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사탄에게 심하게 패괴된 자이고 그야말로 하나님이 말씀하는 사탄의 후예이다.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가 적그리스도보다 나은 부분이 무엇이냐? 정확히 말해,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졌지만 적그리스도 본질은 없는 부류는 각종 사탄의 패괴 성품을 표출하긴 하지만 결코 악인은 아니다. 평소에 자주 말하듯, 심하게 간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다. 단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려 하며, 책망과 훈계를 거치면 진리를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순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악인이 아니라서 하나님에게 구원받을 희망은 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기준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3년, 5년 믿으면 조금이나마 변화하고 성장하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8년, 10년 믿어도 전혀 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20년을 믿어도 큰 변화 없이 기존 모습 그대로인 사람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관념을 고수하며 한사코 내려놓지 않지만 단지 하나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 집의 여러 규정에 구속받기 때문에 큰 실수를 범한 적도, 하나님 집에 심각한 손실을 입히는 악행을 저지른 적도, 큰 재앙을 초래한 적도 없는 것일 뿐이다. 분명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들 모두가 결국 하나님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대부분은 봉사자에 해당할 것이고, 그중 일부는 도태될 게 분명하다. 어떤 상황이든 그들은 악인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그들 모두 인성이 좋지 않다. 그들의 결말과 종착지도 분명 서로 다를 것이다. 그것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자신의 길을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달려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모순이 생겨요. 이런 부류는 돌아서고 회개할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내 말은 이런 부류가 일정한 배경이나 서로 다른 환경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3년, 5년 믿으면 살짝 변화하고 10년, 20년 믿으면 크게 변화하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10년, 20년 믿어도 믿은 지 얼마 안 됐을 때와 똑같아서 입으로는 계속 “저는 회개해야 해요.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고요!”라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말이다. 다만 양심과 지각이 있어서 마음속에 돌아서고 회개하려는 염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염원한다고 해서 진리를 실행하거나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염원한다는 것은 그저 진리에 반항하거나 진리를 싫어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진리를 비난하지 않으며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모독하는 모습이 없다는 것일 뿐, 진실로 순종하여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다거나 육을 저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배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실제로 그렇다. 인성 안에 양심과 이성, 회개하려는 마음이 좀 있다고 해서 패괴 성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는 비록 적그리스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 측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고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는 인성 측면과 진리를 대하는 태도 측면, 그리고 회개하는 정도에서 당연히 적그리스도보다 훨씬 낫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이 적그리스도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가 아니다. 그게 기준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인성이 어떤지, 양심과 이성이 있는지, 진리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는지,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인지, 진리를 얻어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이게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하나님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제시했고, 그런 요구로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들을 평가하는데, 그 목적은 그런 자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이해되지 않느냐? 우선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적그리스도 성품을 얼마나 가졌든 진리를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적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해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진리에 반감을 품지 않고 진리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해서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양심과 이성을 좀 갖추었고 상대적으로 심성이 고우며 적그리스도보다 인성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적그리스도의 인성이 아니다. 적그리스도는 나쁜 짓을 얼마나 저지르든 결코 인정하지도, 회개하지도 않고 늘 똑같이 행동하며 결코 뉘우치지도 않고 끝까지 하나님에게 대항한다.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 중 일부는 진심으로 돌아서고 회개하려 하지만 조금 돌아섰다고 해서 진실로 회개한 것은 아니다. 회개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해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제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저는 적그리스도보다 낫고 적그리스도보다 덜 패괴됐겠네요.” 옳은 말이냐? 잘못 이해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와 적그리스도는 패괴 성품은 같지만 본성 본질이 다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옳은 말 아니냐? (그렇습니다.) 어디 한번 설명해 보거라.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와 적그리스도는 둘 다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 다 교만하고 사악한 성품을 가지고 있고 지위도 추구하지만 인성 본질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부류는 어느 정도 양심과 지각이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진리를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반면 적그리스도 본질을 가진 부류는 인성 본질이 악독하고 양심과 지각이 없는 데다가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며 회개할 줄도 모릅니다.) 똑같이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적그리스도 본질을 가진 자는 적그리스도나 원수로 규정하느냐? (주로 그가 진리를 대하는 태도를 근거로 규정한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데, 진리를 증오하는 것은 사실 하나님을 증오하는 것입니다.) 또 있느냐?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마귀에 해당합니다.) 본질이 마귀에 해당하는 부류에게 구원받을 희망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이런 부류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니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럼 똑같이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는데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과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이냐? 패괴 성품으로 말하자면 두 부류는 똑같다. 그렇다면 왜 적그리스도는 구원받을 수 없는 반면, 적그리스도 성품만 가졌을 뿐 적그리스도 본질은 가지지 않은 부류에게는 구원받을 한 줄기 희망이 있는 것이냐?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는 적그리스도와 달리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적대시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그다지 사랑하지는 않지만 진리에 반감을 품지 않을 뿐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리를 받아들여 조금씩 변화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의 인성 안에는 조금이나마 양심이 있어서 적그리스도처럼 그렇게 염치없지는 않습니다.) 구원받을 희망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게 바로 본질적인 차이이다. 본질을 보면 적그리스도 부류는 구제불능이고 구원받을 희망이 없으며 구원하려 해도 구원할 수 없다. 그는 변하지 못한다. 그는 사탄의 패괴 성품을 가진 일반적인 부류가 아니라 마귀 사탄의 생명 본질을 가진 부류로, 이런 부류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반면 패괴 성품을 가진 일반적인 사람의 본질은 무엇이냐? 단지 패괴 성품을 가졌을 뿐 그들은 어느 정도 양심과 이성을 갖추었고 진리를 좀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진리가 그들에게 어느 정도 작용하기 때문에 이런 부류는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 하나님은 이런 부류를 구원한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지만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부류는 구원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비교적 객관적이다. 최종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건 사람이 진실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며 진리에 순종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런 부류는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럼 적그리스도 부류는 왜 구원받을 희망이 없겠느냐? 그는 적그리스도이고 사탄의 본성에 해당하며 진리를 적대시하고 하나님을 증오하는 데다가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런 자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지 사탄 마귀는 구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구원하지 진리를 증오하는 인간 말종은 구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니 이해되지 않느냐? (이해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제하는 것은 일부 사람이 치우치게 이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를 구분하고 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니 안전하다고, 정말로 피난처에 들어왔으니 앞으로는 절대 제명되거나 출교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 이해한 것 아니냐?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희망은 사람이 스스로 붙잡아야 한다.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적그리스도와 다르고 진리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인성이 적그리스도보다 조금 낫고 양심을 어느 정도 갖추었으며 마음씨가 상대적으로 곱다면, 남을 해치지 않고 잘못을 저질러도 회개할 줄 알며 돌아설 수 있다면, 단지 이런 몇 가지 조건만 갖추었다면 그저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추었을 뿐이다. 적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그리스도는 아니더라도 너는 여전히 패괴된 인류인데, 패괴된 인류가 모두 구원받을 수 있느냐?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설사 적그리스도나 악인이 아니더라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추구하는 사람을 구원한다. 사람의 패괴 성품은 하나님을 적대한다. 패괴 성품이 존재하는 한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고 배반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인도,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 징계와 징벌 등이 필요하다. 이런 하나님의 사역 중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의 사역이 필요한 한편 사람이 협력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하고 고생을 견디고 대가를 치를 줄 알아야 하며 진리를 깨달은 뒤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구원받을 희망을 가진 채 구원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며 베푸는 복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나 간단하다. 자, 이것으로 이 주제에 대한 교제를 마치겠다.

제13조 하나님의 선민이 적그리스도의 교란, 미혹, 통제, 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적그리스도에 대해 분별하고 마음속으로부터 버릴 수 있도록 한다.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교란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리더 일꾼이 반드시 해야 하는 몇 가지 사역

이어서 핵심 주제를 교제하겠다. 리더 일꾼의 직책 제12조는 교제를 마쳤으니 이번에는 제13조인 ‘하나님의 선민이 적그리스도의 교란, 미혹, 통제, 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적그리스도에 대해 분별하고 마음속으로부터 버릴 수 있도록 한다.’에 대해 교제하도록 하겠다. 제13조는 리더 일꾼이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 교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났을 때 리더 일꾼은 어떤 사역을 해야 하느냐? 우선 이 조항에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리더 일꾼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때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에게 교란, 미혹, 통제,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직접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어떻게 교란하고 미혹하고 통제하고 해치는지에 대해서는 예전에 적잖이 교제한 바 있다. 그런 내용은 오늘 교제하려는 주요 주제가 아니다. 오늘 교제하려는 중점 내용은 리더 일꾼이 적그리스도의 그런 행위와 행동 방식을 마주했을 때 어떤 직책을 다해야 하는지, 어떤 사역을 해야 하나님 선민들이 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는지 등이다. 우선, 하나님 선민들이 적그리스도에게 교란, 미혹, 통제, 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리더 일꾼의 직책 중 하나이다. 직책 중 하나란 무슨 뜻이겠느냐? 리더 일꾼이 하는 여러 사역 중, 하나님 선민들이 적그리스도에게 교란과 해를 당하지 않고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은 중요한 사역이자, 피할 수 없고 책임을 미룰 수도 없는 사역이라는 것이다. 리더 일꾼은 이를 소홀히 여기지 말고 중시해야 한다. 교회 생활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도록 지키는 것은 중요한 사역으로, 교회의 여러 사역 중 으뜸이며, 그것은 교회 리더의 직책이기도 하다. 리더 일꾼 본연의 사역은 하나님 선민들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사탄과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교란하고 미혹하며 하나님의 선민들을 놓고 하나님과 다툴 때, 리더 일꾼은 하나님의 선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앞에 나서서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분석하고 분별하고 꿰뚫어 본 뒤 그가 정체를 드러내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교회에서 제명하여 하나님 선민들이 적그리스도에게 통제되고 해를 당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리더 일꾼이 교회에서 사역할 때 마땅히 다해야 하는 책임이다. 그럼 방지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어떻게 방지해야겠느냐? ‘방지’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일의 발생을 최대한 저지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무엇이냐? 사건의 발생을 저지하면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 사건을 처리할 때 리더 일꾼의 주된 사역은 바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들을 교란하고 미혹하고 통제하고 해치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는 것이다. 하나님 선민들이 적그리스도에게 해를 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보호하는 것이 바로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핵심 사역이자 우리가 제13조에서 교제하며 이해해야 하는 내용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 선민들을 보호할 수 있겠느냐? 적그리스도가 저지르는 몇 가지 악행을 저지해야 한다. 저지하는 방식은 다양한데, 예를 들면 폭로, 책망 훈계, 분석, 제한이 있다. 또 무엇이 있겠느냐? (출교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단계이다. 형제자매가 아직 분별력이 없어 그가 적그리스도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리더 일꾼이 먼저 그가 적그리스도임을 발견하여 그대로 출교시킬 경우,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관념을 갖고 판단하게 될 것이고 몇몇 사람은 고꾸라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사역은 무엇이냐? 방금 내가 몇 가지를 언급했느냐? (폭로, 책망 훈계, 분석, 제한을 언급하셨습니다.) 너희는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는 것을 저지할 좋은 방법을 알고 있느냐? 감독하는 것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효과적이고 원칙에 부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를 대할 때 어떻게 해야 적절하겠느냐? 적그리스도에게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들 통하겠느냐? (통하지 않습니다.) 왜 통하지 않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싫어하고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시련과 연단, 심판과 형벌로 대하는 방식은 부적절하다. 게다가 하나님도 그들에게 그런 사역을 하지 않으니 이 말은 부적절하다. 그러니 이 방식이 통할 리 없다. 그럼 대체 어떤 방식을 취해야 적절하겠느냐? 적그리스도에게 심각하게 해를 당한 수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적그리스도를 몹시 원망하며, 그를 심판하고 정죄하고 공개적으로 징벌해야 한다고, 적그리스도가 교회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죄를 인정해 철저히 치욕을 당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해 보아라. 이런 방식을 취해도 되겠느냐? (안 됩니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본질을 놓고 보자면, 그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사실 지나치지 않다. 마귀는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다. 벌레 한 마리를 눌러 죽이듯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 리더 일꾼이 그렇게 하는 목적은 언뜻 정당해 보이고,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행동 방식에는 문제가 있지 않으냐? 그게 리더 일꾼 직책 범위 내의 사역이냐? 그렇게 하는 게 과연 원칙에 부합하겠느냐? (원칙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명백히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원칙은 어디에서 비롯되느냐? (하나님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그렇다. 적그리스도와 마귀를 겨냥한 행동일지라도 그 행동 방식은 원칙과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 리더 일꾼이 이 사역을 하는 것은 직책을 다하는 것이지, 집안일이나 사적인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1. 폭로

적그리스도를 처리하고,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해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해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은 리더 일꾼의 직책이다. 그 목적은 하나님 선민이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지, 사람을 괴롭히고 혼내며 기회를 틈타 누군가를 공격하여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고, 운동을 벌이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몇 가지 사역은 무엇이겠느냐? 첫 번째는 폭로이다. 폭로의 목적은 무엇이냐? (사람들의 분별력을 키워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나님 선민이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분별하고 마음속으로 그를 떠나 그에게 미혹당하지 않도록 하며, 적그리스도가 미혹하고 통제하려 할 때 사람들이 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그를 내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폭로는 아주 중요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폭로는 아주 중요하지만, 정확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폭로해야겠느냐? 무엇을 근거로 해야겠느냐? 함부로 죄를 덮어씌워도 되겠느냐? 근거 없이 함부로 정죄해도 되겠느냐?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정확하게 폭로하여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겠느냐? (악을 행한 사실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폭로하는 한편,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분별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그 두 가지 측면 중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사실을 근거로 해야 하는데, 적그리스도가 표출한 잘못된 말과 행동 방식, 터무니없는 사상과 관점으로 그의 본질을 판단하고 규정해야 한다. 이 밖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분별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어떤 말씀을 근거로 해야겠느냐? 어떤 말을 찾아야 가장 명쾌하게 한마디로 정곡을 찌를 수 있겠느냐? (적그리스도를 들춰내는 말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 적그리스도를 들춰내는 말들을 찾아 폭로하고 대조해야 적절하고 치우치지 않으며 딱 맞아떨어진다. 그러면 형제자매들이 듣자마자 이해하여 곧장 그 자를 분별할 수 있을 것이며, 경계심이 생겨서 속으로 그를 분별하고 이렇게 반감을 품을 것이다. ‘이런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구나! 예전에 나를 도와주고 내게 득이 되는 일을 해 줘서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분석하고 교제하면서 그의 외식하는 모습과 적그리스도 본질이 폭로되니 위험한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됐네. 하나님 말씀은 참 정확하게 폭로하네!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말도 듣기 좋게 하고 행동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본질을 폭로해 보니 그가 확실히 적그리스도라는 걸 알겠어.’ 사람의 사상이 변한 것으로 보아, 리더 일꾼은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사역을 할 때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교란하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 선민이 적그리스도에게 통제되고 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직책을 이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실제로 그중 한 가지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역은 무엇이냐? 폭로이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것은 리더 일꾼이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기 위해 해야 하는 사역 중 하나이다. 우리는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몇 가지 사역에 규모나 성과에 따라 순서를 매기지 않고, 일단 ‘폭로’라는 사역을 먼저 교제할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폭로하는 데는 악만 행하며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속셈과 목적 및 그로 인한 결과를 폭로하는 것, 리더 일꾼을 하면서 교회의 실질적인 사역은 전혀 하지 않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도 방치하는 모습을 폭로하는 것, 자신을 전혀 인식하지 않고 결코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는 데다가 글귀와 도리만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추악한 몰골을 폭로하는 것, 사람들 앞과 뒤에서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폭로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 몇 가지 측면을 철저히 폭로해 적그리스도가 사탄과 악마의 정체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 리더 일꾼이 해야 할 중요한 사역이다. 그럼 이 사역을 하려면 리더 일꾼이 무엇을 갖춰야겠느냐? 우선, 어느 정도 부담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리더 일꾼은 이 책임을 맡으면 속으로 자주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은 적그리스도야. 그런데 몇몇 형제자매는 수시로 그를 찾아가 질문하고 그와 가깝게 지내. 그와 사이가 아주 좋다고. 그가 미혹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그를 무척 숭배하고 있어. 어떡하지?’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측면의 하나님 말씀을 늘 의식적으로 찾으며 그 측면의 진리로 무장한다. 그런 다음 하나님에게 때를 예비해 달라고 구하거나 스스로 적절한 때와 기회를 찾아 형제자매에게 이 일을 교제한다. 이 일을 자신의 부담이자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중요한 사역으로 여겨 늘 예비하고 구하며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인도해 달라고 빈다. 계속 이런 마음과 상태인 것을 두고 부담을 가졌다고 한다. 이렇듯 부담을 가지고 한동안 예비한 다음 시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려 최소 두세 사람이 적그리스도를 진실로 분별할 수 있을 때가 되어야 폭로를 시작할 수 있다. 적그리스도 같다고 느낌으로만 규정할 뿐, 실제로는 대체 적그리스도인지 아닌지 아직 꿰뚫어 보지 못했다면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이 사역을 할 때는 분명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가 있다. 이는 실질적인 사역을 하는 것이고 리더 일꾼의 직책을 다하는 것이다.

2. 책망 훈계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사역을 하고 나면 형제자매들도 어느 정도 분별력이 생기겠지만, 적그리스도는 완전히 폭로되기 전에 더 많은 일을 벌여 형제자매를 미혹하고 교란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그를 숭배하고 우러러보고 추종하게 하고,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좀처럼 진입하지 못하게 하며, 그들의 생명 진입이 지체되고 큰 해를 입도록 할 것이다. 그렇기에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두 번째 사역은 바로 적그리스도가 형제자매를 미혹하고 교란할 때, 혹은 말과 행동이 눈에 띄게 진리 원칙에 위배될 때, 증거를 잡아 적시에 나서서 그들을 책망 훈계하며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그들의 악행을 폭로하여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의 몰골을 분별하고 꿰뚫어 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고 하나님 집 사역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이다. 리더 일꾼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보고도 못 본 체할 것이 아니라 적시에 기회를 잡고 사건을 정확히 찾아낸 다음 직접 나서서 적그리스도를 책망 훈계해야 하며, 그의 행동 방식, 야심과 욕망, 본질을 정확히 폭로해야 한다. 물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 정확하게 규정해 형제자매가 똑똑히 알게 해야 하고 그 자신에게도 알려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를 분별하지 못하고 속임을 당하지는 않는다는 것, 적어도 일부는 그의 행동과 그가 숨기고 있는 야심, 욕망, 그리고 그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을 그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물론 적그리스도를 책망 훈계하는 목적이 단지 말로써 그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형제자매의 분별력을 키워 주는 한편 적그리스도의 악행들을 제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그를 제재하여 그가 사람들을 미혹하고 교란하는 일을 할 때 우려하고 두려워하게 하며 제재받고 어느 정도 제약받아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게 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 집에는 진리가 있고 진리가 권세를 잡으며, 행정 법령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 집에서 함부로 날뛰고 제멋대로 행동하거나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고 하나님 선민을 해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제멋대로 못되게 굴며 교회 사역을 교란하거나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 손해를 입히면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알려야 할 것이다. 리더 일꾼은 적그리스도를 적시에 책망하고 훈계하는 동시에 직접 나서서 적그리스도를 폭로함으로써 사람들이 분별력을 키워 적그리스도의 야심과 욕망, 속셈과 목적을 꿰뚫어 보게 해야 한다. 물론, 이는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은 모두 리더 일꾼이 마땅히 고려해야 하는 것이자 직책 범위 내에서 해야 하는 사역으로, 소홀히 하거나 건성으로 해서는 안 된다. 리더 일꾼은 교회에서 적그리스도 부류를 발견하면 그들의 언행과 그들이 뒤에서 퍼뜨리는 황당한 이론을 시시각각 경계해야 하고, 그들을 책망 훈계하며 폭로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선민들이 적그리스도에게 교란되고 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사역 중 하나이다.

3. 분석

리더 일꾼이 다음으로 해야 하는 사역은 무엇이겠느냐? 분석이다. 분석과 폭로는 거의 비슷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다. 분석에 대해 말하자면, 단순히 한 가지 사실과 실상, 혹은 배경을 폭로하는 간단한 일이 아니라 규정의 문제와 관련된다. 즉, 적그리스도 성품이라는 근원과 본질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가 하나님과 진리를 대하는 태도, 본분과 하나님 집 사역을 대하는 태도뿐 아니라 그가 퍼뜨리는 황당한 이론들의 출발점이나 그 속셈, 목적이 무엇인지,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도 분석해야 한다. 또한 그의 사상과 관점, 언행, 그가 표출해 내는 성품과 모습으로 그의 본질이 대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과 대조하고 설명하여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눈앞의 적그리스도가 대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하나님은 그 부류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규정하는지 확실히 알게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형제자매에게 적그리스도를 떠나고 내쳐야 할 뿐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행동거지, 행위, 말, 관점에 미혹되지 않도록, 적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계하고 떠나고 내치며 심지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알려야 한다. 폭로나 책망 훈계 등 다른 사역과 마찬가지로, 분석의 목적 또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교란하고 해치는 것을 저지하는 데 있으며, 또한 하나님 선민들이 적그리스도에게 해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 있다.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교란하는 실상과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똑똑히 알게 되면 하나님 선민은 더 이상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지 않을 것이다. 일부 머저리나 우매한 사람이 속으로 계속 그들을 우러러보고 숭배하며 그들과 접촉하고 가깝게 지낸다고 해도, 적그리스도는 더 이상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고 우매한 사람에게만 일을 좀 벌일 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생명 진입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리더 일꾼이라면 이 정도에는 이르러야 한다. 즉,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기꺼이 본분을 이행하려는 사람과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정상적으로 교회 생활을 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적그리스도의 미혹과 교란에 대비하고 적그리스도를 내칠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고 교란하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여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는 성과를 완전히 이루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제대로 사역을 하고 확실하게 말을 해도 일부 우매한 자, 자질이 떨어지는 자, 무지몽매한 자는 적그리스도를 내치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 계속 우러러보고 앙망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적그리스도를 내치게 되었으니 그렇게 한 것만으로도 리더 일꾼은 이미 하나님 선민을 최대한 보호한 것이고, 완전히 성과를 이룬 것이다. 그런 멍청이들은 진리를 어떻게 교제해 주든 알아듣지 못한다. 그나마 봉사라도 할 수 있는 자들이 있다면 좀 보살피고 도와주며 더 사랑을 주고 인내심을 보이는 등 더 포용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성의를 다한 것으로, 그렇게 사역하면 원칙이 있는 것이다. 이 기준에 이를 수 있는 리더 일꾼이 많겠느냐?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하나님 선민을 보호해라. ‘최대한’이란 무슨 뜻이냐? 깨달은 진리 원칙을 가능한 한 많이 교제하되, 이미 파악한 증거, 즉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는 온갖 모습을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대조한 다음 교제하고 분석하여 형제자매가 사실의 실상을 똑똑히 알 수 있도록, 적그리스도 부류의 본질을 분별하고 꿰뚫어 보도록, 적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알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중요한 사역이다.

4. 제한

그 다음 사역은 무엇이냐? 제한이다. ‘제한’은 하기 쉬운 사역으로, 특별한 방법을 취해 제한의 효과를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적그리스도는 늘 글귀와 도리를 이야기하며 자신을 높이고 때로는 남을 비하한다. 예배 시간엔 언제나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고 하나님 집에서 어떤 기여를 했는지 증거한다. 게다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들이 어째서 자신을 우러러보는지, 자신이 어째서 남보다 우월하고 남다른지 등에 대해 말하며 자신을 증거한다. 리더 일꾼은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적그리스도의 온갖 악행을 있는 힘을 다해 제한해야지 그들을 계속 방임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발언 시간과 논의하는 주제를 제한해야 한다. 또한, 작은 선심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이간질하거나 관념과 소극적인 말을 퍼뜨리는 등 적그리스도가 사람들의 앞이나 뒤에서 하는 행동에 대해 리더 일꾼은 귀머거리나 장님처럼 굴지 말고 적그리스도의 행동을 적시에 파악해야 한다. 사람들을 미혹하고 교란하는 행위가 보이면 적시에 폭로하고 분석해야 할 뿐 아니라 적그리스도가 곳곳에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교회 사역을 교란하지 못하게 제한해야 한다. 이는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중요한 사역 중 하나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단지 책망과 훈계, 폭로와 분석만으로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제한할 수 없다. 그는 사탄, 악마이기 때문에 손발이 묶여 있지 않고 입이 막혀 있지 않는 한 황당한 이론들과 사람을 교란하는 마귀적인 말들을 퍼뜨릴 것이다. 따라서 리더 일꾼은 적시에 행동을 취해 그를 제한해야 한다. 특히 그가 황당한 이론을 퍼뜨려 사람들을 미혹하고 교란할 때는 적시에 중단시키고 저지해야 하며, 하나님 선민이 분별력을 가지고 적그리스도의 낯짝을 똑똑히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리더 일꾼이 마땅히 해야 하는 실제적인 사역이다.

5. 감독

적그리스도를 제한한 다음에는 감독해야 한다. 적그리스도 부류가 뒤에서 누구를 미혹하고 어떤 황당한 이론과 마귀적인 말을 퍼뜨리는지, 큰 붉은 용 편에 서서 그들과 협력하며 일을 벌이지는 않는지, 종교계와 결탁하지는 않는지, 적그리스도와 한패인 자들과 뒤에서 수작을 부리지는 않는지, 하나님 집의 중요한 정보들을 팔아넘기지는 않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리더 일꾼은 이런 책임도 다해야 한다. 적그리스도의 못된 짓이 드러나기 전에도 리더 일꾼은 ‘세상물정 모르는 샌님’처럼 굴어서는 안 되고 뱀처럼 영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일단 이런 부류가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발견하면 그를 제명하고 출교시킬 수 있는 시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엄밀한 감독으로 그가 계속 악을 행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의 모든 언행을 하나님 선민의 감독 하에 두어야 한다. 적그리스도는 권력을 사랑하고 세력 있는 사람과 사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적그리스도가 뒤에서 늘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지, 종교인들과 접촉하지는 않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몇몇 적그리스도는 종교계의 목사나 장로와 자주 왕래하고, 심지어 정부의 통일전선공작부와 접촉하는 사람도 있다.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하면, 리더 일꾼은 못 본 체하지 말고 적그리스도 부류를 경계하며 주의하고 대비해야 한다. 만약 적그리스도가 사람들을 미혹하고 끌어들이는 자신의 수법이 하나님 집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악행이 이미 폭로되었다는 것, 자신이 좋은 결과를 얻을 리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어느 정도로 악해질지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마음속에 이런 부류가 적그리스도라는 확신이 들면, 긴장을 풀지 말고 그를 엄밀히 감독하고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이게 네 책임이다. 왜 이렇게 해야겠느냐?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고, 적그리스도가 교회와 형제자매에게 불법적인 일을 저질러 해를 끼치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서이다. 또 항상 제물에 관한 상황을 캐묻는 적그리스도도 있다. “하나님 집의 돈은 누가 관리하나요? 장부를 기록하는 사람이 누구죠? 분명하게 기록하나요? 횡령하지는 않을까요? 교회의 돈은 어디에 보관하나요? 이런 일들은 사람들에게 공개해서 모두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하지 않나요? 하나님 집의 재산은 얼마나 되죠? 가장 많이 헌납한 사람은 누구예요? 왜 저는 이런 일들을 모르죠?” 그는 하나님 집의 재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목적이 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같이 재물을 탐낸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리더 일꾼은 어떻게 해야겠느냐? 우선 제물을 잘 관리해야 한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 보관해서 절대 적그리스도의 속셈과 목적이 이루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안돼. 적그리스도가 일을 꾸미고 있어. 교회의 재물을 노리고 있다고. 큰 붉은 용과 결탁해서 수작을 부리고, 교회의 재물을 가로채고 약탈하려는 것일 수도 있으니 당장 옮겨야 해!’라고 바로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 집의 재물을 누가 관리하는지 그가 알지 못하게 하는 한편, 재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안전상의 위험이 있다고 느꼈다면 재물을 보관하는 곳과 재물을 관리하는 사람을 당장 옮겨야 한다. 이는 리더 일꾼이 신경써야 하고 해야 하는 사역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리더들은 적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은 부담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하나님 집의 돈에 관심을 기울일 줄도 아니까 그에게 책임을 맡기고 장부를 기록하는 데 참여시키자.’ 이는 유다가 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제물을 잘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제물을 적그리스도에게 팔아넘겼으니 이는 제2의 유다가 된 것이다. 이 리더 일꾼은 어떠냐? 악인이 아니냐? 마귀가 아니냐?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제물과 형제자매를 적그리스도에게 넘기기까지 했다.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있는 곳에서 리더 일꾼이 단서를 발견하면 반드시 조사를 진행해야 하고 구체적인 사역을 해야 한다. 그중 ‘감독’은 필수적인 사역이다.

리더 일꾼이 하는 감독 사역은 특수 임무나, 스파이 활동이 아니다. 단지 책임을 다하는 것일 뿐이다. 신경을 많이 쓰고 주의를 많이 기울여 관찰하는 것, 적그리스도가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눈여겨보는 것이다. 그가 악을 행해 교회를 교란하는 낌새를 보이면 되도록 빨리 대응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절대 그가 목적을 이루게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적그리스도가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는 것이고 물론 교회 사역을 지키고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게 바로 리더 일꾼이 직책을 다하는 모습이다. 감독은 특수 임무를 몇 사람에게 안배해 스파이처럼 추적하고 미행하고 감시하거나 집을 수색하고 고문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는 반드시 적그리스도의 상황을 제때 파악해야 한다. 그를 분별할 수 있거나 그를 잘 아는 형제자매와 그의 가족을 찾아가 그들에게 적그리스도의 근황을 캐묻고 알아봐도 된다. 이는 모두 사역하는 방법이 아니겠느냐? 리더 일꾼이 직책 범위 내에서 해야 하는, 하나님의 요구와 원칙에 부합하는 사역들을 한다면 이는 직책을 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직책을 다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적그리스도가 교란하고 방해하는 짓을 최대한, 가능한 한 저지함으로써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해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리더 일꾼의 직책이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에 관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는 것 아니겠느냐? 이런 행동 방식이 사람의 소임을 다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렵겠느냐? (어렵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해야 한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할 것이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배치하고 인도할 것이다. 우리는 이 일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 뒤에는 하나님이 있다. 그리고 마음속에 하나님 뿐만 아니라 진실된 믿음도 있다. 이는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은밀히, 사람 곁에서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늘 지켜보고 있고, 언제 어디서나 도와주고 지켜 주며 보호해 준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의식하고 마음속으로 느끼거나 하나님 말씀에서 보게 된다면, 혹은 주변 사람이 일러 주거나 하나님이 어떤 신호를 보내고 조짐을 보여 주어 네가 그 안에서 메시지를 얻게 된다면 너는 그 일을 해야 한다. 그건 하나님이 네게 한 부탁이다. 너는 나 몰라라 하거나 수수방관하지 말고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너는 로봇이 아니니 주관이 있고 생각이 있다. 일이 발생했을 때 너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것이고 틀림없이 느끼고 의식할 것이다. 그러면 그 느낌과 의식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고, 그것을 살아 내어 행동으로 옮겨라. 그러면 너는 직책을 다한 것이다. 의식할 수 있는 일에서는 네가 깨달은 진리 원칙대로 실행해야 한다. 그러면 너는 능력껏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리더 일꾼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실행할 수 있으면 하나님은 흐뭇해할 것이다. 하나님은 왜 흐뭇해하겠느냐? 하나님은 그런 리더 일꾼을 이렇게 평가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직책을 다하고 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 본연의 사역을 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6. 출교

우리는 리더 일꾼의 직책 제13조에서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몇 가지 구체적인 사역을 열거해 보았다. 그것은 바로 적그리스도를 반드시 폭로, 책망과 훈계, 분석, 제한, 그리고 감독하는 것으로 이런 기본 원칙들에 대해서는 교제를 마쳤다.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리더 일꾼이 어떤 구체적인 방식을 취하든 적그리스도를 대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그 밖에, 이 몇 가지 사역을 하는 주된 목적은 바로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나님 선민이 이미 어떤 사람을 적그리스도로 공인하고, 적그리스도가 늘 사람들을 미혹하고 통제하려 하며 적그리스도가 존재하는 한 평안할 날이 없고 교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별하고 꿰뚫어 본다면 모두가 한 목소리로 적그리스도를 교회에서 제명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적그리스도를 폭로, 책망과 훈계, 분석, 제한, 감독하는 것을 훈련할 수 있도록 그를 남겨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리더 일꾼이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겠느냐? 어떤 리더 일꾼은 말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저의 책임 방기 아닌가요? 그런 과정을 거쳐야 리더로서 제 존재감이 드러나니 이런 사역은 꼭 해야 해요. 형제자매가 동의하든 말든 일단 적그리스도를 남겨 둬야겠어요. 우선 제가 그를 폭로한 다음 책망하고 훈계하고 분석해서 그가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형제자매가 더욱 확신하게 말이죠. 그런 뒤에 만장일치로 그를 제명하고 출교시키면 성과가 더 좋지 않겠어요?” 결국 그 기간 동안 적그리스도가 또 관념을 퍼뜨려 사람들을 미혹하고 교회 사역을 교란하기 시작해 사람들의 마음이 동요하니 아예 예배에 오려 하지 않는 사람도 생긴다. 리더 일꾼이 자신의 결심을 밝히고 자신이 책임을 방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겉으로만 형식을 차리고 꾸물거리며 사역한 결과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고 교회 생활의 질서도 교란하였다. 하나님 선민의 진리를 추구하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야 적그리스도를 제명하는 방식이 바람직하겠느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느 부분이 잘못됐느냐? (규례를 지키고 형식만 차립니다.) 리더 일꾼이 이 몇 가지 사역을 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이 적그리스도를 아직 분별하지 못해 그에게 몹시 미련을 가지고 있을 경우 적그리스도를 교회에서 출교시키려고 하면 하나님 집이 사람에게 매정하고 불공평하며, 원칙없이 일을 처리한다며 불평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일부 머저리는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영향을 받아 적그리스도를 따라서 같이 떠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럴 때 리더 일꾼은 일련의 본질적인 사역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적그리스도를 책망하고 훈계하며 하나님 말씀으로 폭로하고 분석함으로써 형제자매가 실질적으로 공과를 배워 결국 적그리스도를 분별하도록 하는 것이다. 언젠가 그들은 말할 것이다. “저 사람은 너무 가증스러워요. 악인이고 적그리스도임이 틀림없으니 당장 정리해 버립시다!”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형제자매가 이런 목소리를 낸다면 뒤이어 제한하고 감독하는 사역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럴 필요 없이 곧바로 출교시키면 된다. 리더 일꾼이 이 정도까지 사역했다면 하나님 선민이 적그리스도에게 해를 입지 않게 보호하는 성과를 이미 이룬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입증하겠느냐? 한편으로는 그 교회의 형제자매가 분별력과 자질, 정의감을 갖추었다는 증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리더 일꾼이 실제적인 사역을 할 줄 알거나 혹은 그 적그리스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행동하고 인성이 몹시 나쁘고 사악한 나머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켜 제명을 재촉해 준 덕분에 리더 일꾼이 그를 처리하는 수많은 과정을 생략하게 됐다는 증거이다. 수고를 던 셈이 아니냐? 이런 상황에서 그를 제명하고 출교시킨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더구나 리더 일꾼은 이것 말고도 해야 할 사역이 아주 많다. 적그리스도를 출교시킨다고 해서 모든 일이 완전히 마무리되겠느냐? 그렇게 네가 대단한 과업을 이룬 것이 되겠느냐? 아직 멀었다! 해야 할 다른 사역이 남아 있다. 리더 일꾼은 적그리스도를 처리하고 하나님 선민이 적그리스도에게 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 외에도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해 패괴 성품과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해결하도록 책임지고 이끄는 등의 여러 중요한 사역을 해야 한다. 다만 그런 사역을 하는 와중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적그리스도를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이니, 우선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해결한 다음 다른 측면의 진리를 교제해야 하는 것 뿐이다. 만약 적그리스도가 교란하는 일이 발생함에 따라 다른 사역도 가로막히거나 방해를 받아 진행하기 어려워지고, 형제자매의 생명 성장, 교회 생활의 질서, 본분 이행의 환경이 적그리스도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는다면, 당연히 눈앞의 가장 큰 재앙과 화근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적그리스도를 제명하고 처리한 다음에야 다른 사역이 정상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어느 교회에 등장한다면, 형제자매는 단시간 내에 서둘러 그를 분별해서 한 목소리로 “적그리스도는 물러가라!”라고 해야 한다. 그럼 리더 일꾼은 수고를 많이 덜지 않겠느냐? 네가 속으로 기뻐하지 않겠느냐? 너는 “적그리스도와 마귀를 제한하지 못할까 봐, 그에게 미혹되고 해를 입는 형제자매가 생길까 봐, 제 분량이 미약해서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폭로하지 못하고 그런 일들을 철저히 분석하지 못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돼요.”라고 하지만, 이제는 걱정할 필요 없다. 형제자매의 말 한마디에 일이 해결되고 리더 일꾼의 ‘부담’도 가벼워지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 너는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교회에서도 분명 이런 상황이 발생할 텐데,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측면의 주제를 적지 않게 다루기도 했고, 형제자매 또한 리더 일꾼과의 수준 차가 생각보다 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그들 역시 스스로 진리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출 것이다. 그들이 힘을 합쳐 함께 표결해 적그리스도를 출교시킨다면 그건 잘된 일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리더 일꾼은 이 일로 상심하거나 낙담하고 소극적으로 변할 필요가 없다. 적그리스도라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나서도 이어지는 모든 사역은 리더 일꾼에게 여전히 험난한 검증일 것이며,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모든 사역 또한 전부 리더 일꾼의 직책, 자질, 사역 역량 측면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적그리스도가 교란할 때 거짓 리더가 보이는 모습

리더 일꾼의 제13조 직책 ‘하나님의 선민이 적그리스도의 교란, 미혹, 통제, 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적그리스도에 대해 분별하고 마음속으로부터 버릴 수 있도록 한다.’에 대해 교제를 마쳤으니, 다음으로는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사역을 참조하여 리더 일꾼의 직책을 다할 수 없는 부류인 거짓 리더의 모습을 분석하고 폭로해 보자. 이 사역을 할 때 리더 일꾼은 해야 할 사역이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질을 갖춰야 할 뿐 아니라 마음을 쏟아야 하고 세심하고 진지해야 하며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부담을 헤아려야 하고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려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 등을 갖춰야만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다. 그런데 거짓 리더는 이와 완전히 반대이다. 그들은 인성 안에 이런 것들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들도 어느 정도 자질을 갖추고 있고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과 적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자질이 조금 떨어져서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철저하게 분별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눈에 띄게 악을 많이 행하는 적그리스도는 분별할 줄 알 수도 있다. 또는 적그리스도 본질과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의 차이도 확실히 분별하지 못하고 꿰뚫어 보지 못할 정도로 자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거짓 리더는 결국 두 가지 모습을 보이는데 하나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표면적이고 사무적인 사역만 좀 하며 실제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특징과 모습은 거짓 리더가 제13조의 사역을 할 때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어서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교제해 보자.

1. 사람에게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처리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교란하고 미혹하고 통제하고 해칠 때 거짓 리더가 가장 먼저 보이는 모습은 부작위이다. 부작위란 무엇이냐?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이면에는 다 이유가 있는데, 주로 사람에게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워 감히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리더 일꾼이 되고 나면 위세를 부리며 이렇게 생각한다. ‘나도 지위가 생겼어. 교회에서 직위에 올랐으니 형제자매의 기본적인 생활을 다 돌봐야 하고 형제자매가 하는 말이 진리와 성도의 품위에 부합하는지 분별해야 해. 형제자매가 하나님에게 진심인지, 영 생활은 정상적인지,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를 하는지, 평소 예배 시간에 정상적인지 등을 다 관리해야 한다고.’ 거짓 리더는 이런 문제들에만 관심을 갖는다. 형식적으로는 리더 일꾼의 직책을 다하는 것 같지만 본질적이고 원칙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심지어 적그리스도가 나타났을 때 거짓 리더는 어두운 곳에 숨어 침묵하며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모르는 체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한 척한다. 적그리스도가 어떤 황당한 이론을 퍼뜨리든 못 들은 척하고,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교란하고 미혹하고 통제할 때도 모르는 체한다. 마치 그런 정보들이 그의 앞에서는 전부 사라지기라도 하듯 말이다. 그는 일부 평범한 형제자매도 분별해 낼 수 있는 적그리스도조차 분별할 줄 모르는 척하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꿰뚫어 보지 못하겠어요. 잘못 출교시키면 어떡해요? 형제자매를 오해하면 어떡하죠? 그리고 하나님 집에서도 봉사할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온갖 핑계를 대며 리더 일꾼의 직책을 다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를 처리하지도 않고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에게 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일부 거짓 리더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계속 적그리스도를 폭로해서 만일 그가 형제자매를 선동해 저를 공격한다면 다음 선거 때 아무도 저를 뽑지 않을 테고 저는 리더가 되지 못할 거예요. 저는 적그리스도만큼 세력이 크지 않다고요!” 거짓 리더는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고 신변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는 책임은 조금도 다하지 않고, 적그리스도가 형제자매를 해치는 것을 결코 최대한 저지하지도 않는다. 그는 무골호인이고 겁쟁이이며 이기적이고 비열한 소인배라서 형제자매는 보호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보호할 때는 생각에 빈틈이 없다. 적그리스도를 처리해야 한다고, 적그리스도를 책망하고 훈계하며 폭로하여 형제자매에게 분별력을 키워 줘야 한다고 하면 그는 극도로 두려워하며 자신의 지위를 지키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그렇게 하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 선민의 이익은 전혀 돌보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명성, 자신의 신변 안전과 가족의 안전만 고려하며 자칫 적그리스도에게 미움을 사서 적그리스도가 매정하게 돌변해 자신에게 복수할까 봐 몹시 두려워한다.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도 사실 어느 정도 자질을 갖추고 있다. 그들의 자질과 식견으로 볼 때 그들도 마음속으로는 누가 적그리스도인지 똑똑히 알고 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에게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는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성품을 보고 감히 미움을 사지 못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 집과 하나님 선민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도 불사하며, 눈을 뻔히 뜨고 형제자매를 적그리스도의 수중에 넘겨 적그리스도가 제멋대로 미혹하고 통제하고 해치게 한다. 거짓 리더는 그저 가끔씩 뒤에서 비교적 성실하고 인성이 좋으며 그에게 아무 위협도 되지 않는 사람에게 “저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예요. 사람들을 미혹하는 나쁜 사람이죠.”라고 말할 뿐 모든 형제자매 앞에서, 적그리스도 앞에서는 결코 적그리스도에게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한다. 적그리스도의 어떤 악행이나 본질을 폭로할 용기가 전혀 없다. 심지어 예배 시간에 적그리스도가 한두 시간 동안 자기 혼자 떠들어도 그는 감히 끽소리도 못하고, 적그리스도가 책상을 치며 눈을 부라리면 숨도 한 번 못 쉰다. 그가 사역하는 범위에서 분량이 미약한 사람, 인성이 나약한 사람, 진리를 추구하려 하지만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적그리스도의 악행을 나서서 폭로하고 분별할 수 있는 리더 일꾼이 없어서 고통받는다. 그들은 적그리스도가 교회에서 함부로 날뛰고 제멋대로 굴며 교회 생활을 교란하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손쓸 길이 없다. 그런데도 거짓 리더는 실제적인 사역은 전혀 하지 않고, 하나님 선민을 위해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도 않는다. 형제자매가 곤경에 빠져도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의 악행을 폭로하고 제한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감히 바른말도 한 마디 못한다. 설사 그가 양심에 찔리고 약간의 가책을 느껴서 뒤에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눈물 두어 방울을 흘리더라도, 이튿날 예배 시간에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집 사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불평하고 함부로 판단하며 심지어 에둘러 가며 하나님을 판단하고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퍼뜨리는 걸 보면 그는 옳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신경쓰지 않는다. 설사 적그리스도가 제물을 마구 쓰는 것을 봐도 그는 방치하는 태도를 보일 뿐 적그리스도를 조금도 폭로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전혀 자책하지 않는다. 참으로 무책임하다! 양심이 조금이나마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힘이 미약하다고 느끼더라도 분량이 좀 있고 분별력을 좀 가진 형제자매와 힘을 합쳐 이 일을 교제하고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할 것이다. 그러나 거짓 리더에게는 그런 결심과 용기가 없고 그런 책임감은 더더욱 없다. 심지어 그는 형제자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적그리스도는 너무 흉악해서 미움을 샀다가는 정부에게 보고할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믿을 수 없게 되겠죠. 적그리스도는 교회의 예배 장소도 다 알고 있으니 그를 건드리면 안 돼요.” 그야말로 적그리스도에게 무장 해제 상태로 투항하고 사탄과 타협하며 용서를 비는 꼴이다.

거짓 리더는 자신을 보호하는 것 외에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거나 하나님 선민이 적그리스도를 분별하도록 하는 등의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사역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책임은 조금도 다하지 않으면서 늘 형제자매가 그를 리더로 뽑기를 바라며, 이번 임기를 마치고 나서 다음 임기에도 뽑히고 싶어 한다. 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구제불능이 아니냐? 이런 부류가 리더가 될 자격이 있겠느냐?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네게 양떼를 맡겼는데 산짐승이 나타나자 중요한 순간에 네가 자신을 보호할 생각만 하고 양떼는 산짐승에게 넘겨 버린 채 겁쟁이가 되어 피할 곳이나 안전한 곳을 찾아 숨는다면 양떼는 결국 화를 입어 일부는 물려 죽고 일부는 흩어질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서슴없이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것을 보고도 리더가 자신의 체면과 지위, 밥그릇을 보전하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방관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결국 대다수의 하나님 선민은 미혹되어 무력감을 느끼고 소극적으로 변하며 연약해질 것이다. 심지어 적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혀 끌려가거나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그런데 리더 일꾼이 이에 대해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고 양심에도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런 리더 일꾼에게 인성이 있겠느냐? 그는 자신을 보전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 선민을 적그리스도에게 넘겨 적그리스도가 마음대로 미혹하고 해치고 짓밟게 내버려두는 것도 감수한다. 이는 어떤 리더이냐? (거짓 리더입니다.) 이는 사탄의 앞잡이가 아니냐? 그는 대체 어느 편에 선 사람이냐? 그를 거짓 리더로 규정하더라도 이 문제의 본질은 거짓 리더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체포되고 혹형을 당한 뒤 유다가 되어 형제자매를 큰 붉은 용에게 넘겨 해를 당하게 하는 것처럼, 여기에는 형제자매를 팔아넘기는 성질이 좀 있다. 그렇다면 거짓 리더가 하나님 선민을 적그리스도에게 넘기는 것은 어떤 성질이냐?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참으로 가증스럽지 않으냐?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와 비교해 보면 겉보기에는 진리에 반항하는 뜻이 없는 것 같다. 진리도 좀 교제할 수 있고 이해 능력도 좀 있으며 진리를 어느 정도 실행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개중에 일부는 고생을 견디고 대가를 치를 줄도 안다. 그래서 하나님 집에서는 하나님의 양떼를 그에게 맡기지만, 악인이나 악마가 나타났을 때 그는 자신의 생명으로 전력을 다해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전력을 다해 자신을 보호하고, 형제자매를 방패로 내세워 자신의 안전이나 이익과 맞바꾼다. 이 얼마나 비열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냐! 겉보기에 그는 인성에 큰 문제가 없고 사람을 사랑하며 남을 도와준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기꺼이 대가를 치르려 하고 어떤 고생도 견딜 줄 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만 하면 생각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행동을 한다.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교회 생활을 교란하든 그는 상관하지 않고, 적그리스도에게 공격당하고 배척당하고 해를 입는 사람이 얼마나 많든 그는 방관한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 선민을 완전히 적그리스도의 관할로 넘겨 적그리스도가 제멋대로 미혹하고 해치게 둔 채 아무 사역도 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가 정리되어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그는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 대해 교제한다. 자신이 연약하고 겁이 많고 두려워하며 이기적이고 간사하다고,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하나님 선민을 잘 보호하지 못해 하나님과 형제자매를 실망시켰다고 인식한다. 그는 마치 깊이 뉘우치고 돌아서며 회개할 줄 아는 것 같지만, 적그리스도가 다시 나타나면 예전과 마찬가지로 또 다시 형제자매를 적그리스도에게 떠다민 채 자신은 안전한 곳을 찾아 숨는다. 비록 그는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거나 해를 입지는 않지만 직무를 유기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배반한다. 본분과 하나님 선민을 대하는 그의 태도, 그리고 그의 진면목도 철저히 드러난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때마다 그는 하나님 편에 서서 적그리스도와 끝까지 싸우지도 않고,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기 위해 해야 할 말과 해야 할 사역을 좀 하여 양심의 평안에 이르지도 않는다. 나아가 리더 일꾼의 직책을 다하기 위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지도 않는다. 거짓 리더는 순전히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지위가 해를 입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 하나님 선민의 사활은 나 몰라라 한다. 자신의 명예와 이익, 지위가 해를 입지 않기만 하면 된다. 누가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지, 누가 적그리스도를 출교시키는지,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와 같은 일들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듯 그는 관심을 보이지도 않고 신경쓰지도 않는다. 적그리스도가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하나님 선민을 해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모함하고 괴롭혀도 그는 방관한다. 그에게 이런 일들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의 지위를 해치지만 않으면 된다. 이런 부류는 어떠냐? 평소에 보면 그는 인성도 나쁘지 않고 사역도 좀 할 줄 안다. 책망과 훈계를 받아도 자신을 인식할 줄 알고 뉘우치려는 마음이 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교란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는다. 정의감은 조금도 없고 적그리스도와 싸울 용기조차 없다. 그는 마귀 사탄을 보면 타협하고, 악인이 교란하는 걸 보면 멀리 돌아간다. 악인과 적그리스도를 대하는 태도로 보아 그는 대체 어떤 길을 걷는 것이냐? 이는 문제를 아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부류는 겉보기에는 적그리스도가 아닌 것 같지만 그가 악인과 적그리스도의 행동에 대해 드러내는 태도가 바로 적그리스도 성품이다. 성질이 매우 악질적이다. 자신의 직책을 포기하고 하나님 선민을 팔아넘겼다고 할 수 있으니, 이 성질도 아주 심각하지 않으냐? 교회 사역과 하나님의 부탁을 대할 때 그들이 충성심을 조금이라도 보이느냐? 책임지는 태도를 조금이라도 보이느냐? 그들에게 언제 부탁을 하고 사역을 맡기든 그들은 사람에게 미움을 사지 않고 자신을 잘 보호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이는 그들이 처신할 때 지키는 최고 기준이자 그들의 행동 원칙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우선 이런 부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 적그리스도를 처리하는 사역에서부터 살펴보자.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가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겠느냐?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있겠느냐?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부류는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없다. 그들은 양심과 이성이 없기 때문에 교회 리더의 사역을 맡을 자격이 없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해치는 것을 최대한 저지할 수도 없고, 가능한 한 그 책임을 다하고 그 사역을 잘해 하나님 선민을 잘 보호할 수도 없다. 그들은 자질이 떨어져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안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점으로 보아 사람에게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워하는 이 부류는 결코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없다. 이런 리더 일꾼이 많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일이 닥치지 않았을 때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어다니며 바빠서 머리도 빗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영적인 경지에 이른 것 같지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그는 자취를 감추고 온갖 핑계를 대며 도피할 뿐 적그리스도를 처리하지는 않는다. 이는 어떤 성질이냐?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고 신뢰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의 편에 서며 교회 사역이 악인과 적그리스도에게 교란당하고 파괴당하는 것을 뻔히 보고도 방관하니, 차라리 집 지키는 개가 더 쓸모 있다. 이게 거짓 리더의 한 부류이다.

2.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모른다.

또 다른 부류의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났을 때 적그리스도의 성품과 본질이 무엇인지, 어떤 모습을 보이고 무엇을 표출하는지, 형제자매를 어떻게 교란하는지, 어떤 말과 사상 관점, 행위가 형제자매를 미혹하고 교란할 수 있는지, 적그리스도가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고 해를 입을 수 있는지 등과 같은 문제를 분별하지 못한다. 형제자매를 미혹해 끌고가고, 교회에서 분리해 나가 따로 예배하며 독립 왕국을 세우고, 하나님 집의 인도와 사역지침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하나님 집의 어떤 안배나 지도에도 순종하지 않을뿐더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각종 요구에는 더더욱 순종하지 않는 등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는 적그리스도의 일련의 행동을 거짓 리더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안의 단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적그리스도의 그런 언행과 사상 관점이 사람에게 끼치는 교란, 미혹, 해는 더더욱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는 그런 부정적인 영향들을 보지 못하고 어떻게 분별하는지도 모른다. 일부 평범한 형제자매도 식견이 많으면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고 느끼고 의식할 수 있지만 거짓 리더는 유달리 꿰뚫어 보지 못한다. 설사 아무개가 뒤에서 사람을 미혹하는 어떤 일들을 하고 패거리를 짓는다고 누가 일러 줘도 거짓 리더는 저지하며 말한다. “그런 말을 퍼뜨리면 안 돼요. 교란하지 마세요. 사람들과 관계가 좋아서 함께 모여 서로 교제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자유를 줘야죠!” 그는 여전히 꿰뚫어 보지 못한다.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관찰하고 구해도 되고, 진리를 깨달아 어느 정도 분별력이 있는 형제자매와 함께 교제해도 되지만 리더 일꾼은 독선적이라서 형제자매가 일깨워 줘도 받아들이지 않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리더지 당신이 리더야? 나는 리더로 뽑혔으니 분명 보통 사람보다 진리를 더 많이 깨달았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왜 다른 사람을 뽑지 않고 나를 뽑았겠어? 이게 바로 내가 당신들보다 낫다는 증거라고. 나이가 당신들보다 많든 적든 나는 분명 당신들보다 자질이 뛰어나.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내가 먼저 발견해야 해. 당신들이 먼저 발견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내가 발견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결국 적그리스도가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많이 퍼뜨리고, 공개적으로 하나님 집 사역지침을 배척하는 것은 물론 공개적으로 교회와 하나님 집, 상부의 사역지침에 대들고 대항한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형제자매를 그의 곁으로 끌어들여 따로 예배하고 따로 그 혼자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인도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니 교회에서 자질이 가장 떨어지는 사람조차 이런 자가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야 거짓리더는 비로소 인정한다. “이런, 저 사람은 적그리스도네요. 제가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요? 아니에요. 사실은 예전에 발견했는데 형제자매가 분량이 작아서 분별하지 못할까 봐 말하지 않은 것뿐이에요.” 그는 자신을 위해 그럴듯한 거짓말까지 꾸며낸다. 분명 그 자신이 무감각하고 우둔하며 자질이 떨어져서 분별하지 못하는 바람에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에게 그토록 많은 해를 당했는데도 그는 자책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형제자매가 허튼소리를 한다는 둥, 유언비어를 날조한다는 둥, 사람을 오해한다는 둥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는 어떤 리더이냐? 멍청하기 그지없지 않으냐? 이런 부류의 리더는 결코 교회 사역을 담당할 수 없다. 그도 항상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기도하고 예배하고 설교를 듣는 것은 물론 영 생활 노트나 간증문도 쓰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공을 많이 들이는 것만 같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할 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결합해 진리를 구할 줄 모르며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은 더더욱 모른다. 거짓 리더는 평소에 한두 시간 동안 설교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이나 자신의 체험을 교제할 때는 청산유수처럼 끝도 없이 말한다. 그러나 적그리스도가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퍼뜨리며 형제자매를 미혹하고 교회 사역을 교란할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사역도 하지 않는다. 그는 사전에 주의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분별하도록 인도하지도 않는다. 적그리스도가 방해하고 교란하는 사실을 목격하더라도 폭로하고 분석하지도, 책망하고 훈계하지도 않는다. 그 어떤 사역도 하지 않는다. 이런 부류는 무엇이 문제이냐? (자질이 몹시 떨어집니다.) 자질이 떨어지면서도 자신은 영적인 사람이고 좋은 리더라고,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데다가 부끄러움도 모른 채 자신은 리더 일꾼의 직책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가정과 육적인 누림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사실상 그는 책임감 없고 양심과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상당히 무감각하고 우둔한 전형적인 거짓 리더이자 명실공히 외식하는 바리새인이다. 그는 도리를 이야기하고 구호를 외칠 줄 아는 것은 물론 누가 질문하면 청산유수로 이론을 늘어놓으며 사람을 미혹하지만, 사실상 진리 원칙은 결코 명확히 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가 이해 능력이 있고 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누가 그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구해도 진리에 부합하는 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속으로 뻔히 알면서도 좋은 리더인 척, 영적인 사람인 척하려 한다. 파렴치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대다수 거짓 리더가 가지고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이자 공통적인 폐단은 바로 파렴치한 것이다. 그는 리더의 지위나 직함을 가지고 있고 영적인 이론을 이야기할 줄 알면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설교를 듣고 하나님 집의 영상을 보는 일에 남보다 시간을 더 많이 들인다면,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많이 교제한다면 자신이 리더 일꾼의 사역을 하고 리더 일꾼의 직책을 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서슴없이 미혹하고 교란하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는 직접 보고도 어쩌지 못하고, 어느 측면의 하나님 말씀으로 적그리스도를 대조하고 분석해야 형제자매가 분별력을 키우고 마음속으로 적그리스도를 버리며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지 않게 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도 마음속으로 조금 당황할 때가 있지만 여전히 자신은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길고 설교를 많이 들었으니 보통 사람보다 진리를 더 깨달았고 말솜씨가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는 늘 자신을 과시한다. “저는 영적이고 설교도 할 줄 알아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교란하는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적그리스도를 대조하고 분별할 줄은 모르지만 제가 해야 할 사역과 해야 할 말은 다 했으니 형제자매가 알아들을 수 있으면 된 거죠!” 최종적인 성과가 어떤지,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는 성과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그도 속으로 명확히 알지 못하면서 똑똑한 체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척한다. 결국 글귀와 도리는 많이 이야기하지만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그는 진리를 교제하여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분석하지는 못하면서 글귀와 도리만 이야기하며 자신을 위해 해명하고 변명한다. 그가 한두 시간 말하면 사람들은 멍해져서 갈피를 못 잡게 되고 원래 깨달았던 것도 모호하게 알게 된다. 시종일관 형제자매를 적그리스도의 미혹에서 구출해 내지 못하고,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를 분별하여 마음속으로 적그리스도를 버리게 하지도 못하며, 한결같이 형제자매를 보호하는 성과에 이르지 못한다. 그는 이런 결과를 보더라도 계속 리더 신분을 자처하고, 자신을 낮추어 사람들과 함께 진리를 구하거나 상부에 보고해 답을 구하고 해결하지도 않는다. 이는 머저리가 아니냐?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위장을 하려 한다. 위장은 무슨 위장을 하느냐! 리더를 못하겠으면 하나님 선민을 해치지 말고 한쪽으로 물러나 있어라! 네가 위장하는 틈을 타 적그리스도는 사람들을 교란하고 통제하는 악행을 수없이 저지르고 수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해친다! 이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하나님 집에서는 이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일부 리더 일꾼은 적그리스도에 관한 사건을 처리할 때 그 어떤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고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도 모른다. 적그리스도가 형제자매를 미혹하고 통제하는 동안 결코 적그리스도의 악행과 본질을 진정으로 폭로한 적도 없고 명확히 말하지도 못한다. 나중에 일부 분별력을 갖춘 하나님 선민이 적그리스도를 폭로해 내어 출교시키면 거짓 리더는 그것이 자신의 공로라고 생각한다. 거짓 리더가 출교당하고 나면 그는 이렇게 정리해서 한바탕 도리를 읊는다. “보세요. 적그리스도가 말하고 행동하면 교회 생활이 비정상이 되고 사람이 교란당해요. 사람의 생명도 해를 입죠. 적그리스도에게 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행동 방식과 말, 인성, 본질 등을 분별하고 깨달아야 해요.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가 교회에 나타나서 행동하며 추태를 보이게 하시고 적그리스도를 드러내셨어요. 이는 우리가 진리를 무장하고 분별력을 키우며 최대한 빨리 분량을 성장시키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죠! 이제 우리는 다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수 있고 그에게 속박당하지 않아요. 다들 그를 버릴 수 있다고요.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죠!” 거짓 리더는 마지막에 거드름을 피우며 상황을 정리하기까지 한다. 마치 그가 적그리스도를 출교시키는 일에서 실제적인 사역을 많이 하고 꽤나 큰 대가를 치르기라도 한 것처럼, 상당히 큰 역할이라도 한 것처럼 군다. 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아니냐? 그는 분명 처음부터 끝까지 적그리스도가 무엇인지 분별할 줄 모르면서,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사람을 미혹하는지, 하나님 선민에게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적그리스도의 성품 본질이 무엇인지와 같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신이 꽤나 큰 사역을 한 것처럼 위장한다. 분명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를 분별해 내어 교회에서 출교시킨 것이고 그는 리더 일꾼이 해야 하는 역할을 하지도, 리더 일꾼의 직책을 다하지도 않았으면서 상황을 정리하며 공로를 자신에게 돌리려 한다. 마치 일찍이 계획해 놓기라도 한 듯, 그가 한 일이 성과를 거두었고 큰일을 성사했다고 형제자매에게 알린다. 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아니냐? 웬 거드름을 피우며 말하느냐? 실제적인 사역은 전혀 하지도 않으면서 거드름을 피우며 말하다니, 네가 큰 붉은 용의 관료이냐? 이는 바리새인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구호를 외치고 도리를 이야기할 줄 만 알지 일이 닥쳤을 때는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고 아무런 실행 길도 없다. 그저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으며 함부로 규례에 맞출 뿐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일이 지나가면 그제서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좋은 사람인 척하고, 후안무치하게 공로를 자신에게 돌린다. 이게 바로 전형적인 바리새인이다. 도리를 이야기하고 구호를 외치고 힘을 좀 들이며 고생을 좀 견딜 줄 아는 것 외에는 아무런 실제적인 사역도 못하면서 영적인 사람인 척하니 이게 바로 바리새인이다.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바로 이런 본질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 앞에서 도리를 그렇게 많이 읊을 수 있으면서 왜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처리하지는 못하느냐? 청산유수로 몇 시간 동안 설교할 수 있고 말솜씨도 특히나 뛰어나면서 왜 실제적인 문제, 특히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는 일이 발생하면 처리하지 못하고 멍해져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냐? 왜 이렇겠느냐? 자질이 몹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는 어느 정도로 자질이 떨어지느냐?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 그는 소양도 있고 사고력도 있으며 외부의 일을 처리할 때는 꽤나 영리하고 법률도 좀 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일, 영적인 일, 여러 측면의 본질적인 문제에 관한 것은 분별할 줄 모른다. 어떤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아무런 진리 원칙도 찾지 못한다.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는 태연하게 굴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설치고 다니는 말성꾼이나 뜨거운 가마 속의 개미처럼 가련한 꼴을 보인다. 때때로 유독 정중하고 진지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는 진지하지 않을 때는 정상이지만 진지해지면 오히려 우습다. 그는 진지해지면 허튼소리와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말, 상관없는 말만 하면서 정색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우습지 않을 수 있겠느냐? 누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해 그에게 답하라고 하면 그는 멍해져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특히 난감해한다.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꽤나 많은데, 그들은 주로 자질이 떨어지고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머저리 같은 모습을 보인다.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영적인 일이나 진리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앞뒤가 꽉꽉 막혀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저는 영적이에요.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됐고 깨달은 진리도 많죠. 당신들은 믿은 지 얼마 안 된 초보라서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했으니 믿음직스럽지 않아요.”라며 사칭하고, 늘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됐고 진리를 깨달았다고 자처한다. 이런 부류는 가증스럽고 가소롭다.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가 보이는 모습은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3. 적그리스도의 보호막 역할을 맡는다.

또 다른 부류의 거짓 리더는 더욱 괘씸하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폭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보호막 역할까지 하며 사랑으로 도와준다는 이유로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고 교회 사역을 교란하도록 내버려둔다. 적그리스도가 아무리 황당한 이론을 많이 퍼뜨려 사람들을 미혹해도 그들은 반박하거나 폭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적그리스도에게 자유롭게 관점과 의견을 표현할 기회를 준다. 하나님 선민이 어떤 교란, 미혹, 피해를 당하든 그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설사 어떤 사람들이 “저들은 적그리스도이고 하나님 집에서 제한하는 대상이니 발탁하고 양성해서는 안 돼요. 보호해서는 더더욱 안 되고요. 저들이 해치는 바람에 형제자매는 이미 크게 고통받았어요. 이제 저들과 결판을 내고 저들을 철저히 폭로하고 처리할 때가 됐어요.”라고 제안해도 거짓 리더는 오히려 직접 나서서 적그리스도들을 두둔한다. 그들의 나이, 하나님을 믿은 햇수, 이전의 공로 등을 고려하면서 각종 핑계를 찾아 적그리스도를 옹호하고 변호한다. 상부 리더가 사역을 검사하거나 적그리스도를 처리하려 할 때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한 사실을 형제자매가 상부에 보고하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 교회를 봉쇄하는 수법을 써서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교란하고 있다는 것을 상부 리더가 알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분별력을 갖춘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를 폭로하지도 못하게 막는다. 핑계가 무엇이고, 목적이 무엇이든 거짓 리더가 적그리스도의 보호막 역할을 맡는다면 결국 그들은 그와 동시에 적그리스도의 이익은 보호하고 교회와 하나님 선민의 이익은 팔아넘기는 것이다. 그들은 ‘적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 집에서 말할 권리가 있다’, ‘예전에 어떤 위험한 본분을 이행한 적이 있으니 하나님 집에서는 그들이 예전에 세운 공로를 고려해야 한다’ 등 각종 핑계로 적그리스도를 보호하면서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를 분별하지 못하게 하고, 상부 리더가 적그리스도의 갖은 악행을 알아 보지 못하게 한다. 나아가 그 자신도 적그리스도를 폭로하지 않고, 적그리스도를 책망하고 훈계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적그리스도들은 그의 가족이나 그와 사이가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그가 숭배하거나 감정적으로 내려놓기 어려워하는 사람일 가능성은 더 크다. 어떤 상황이든 그런 부류가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그들의 악행에 대해 변명하며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대하도록 하고 심지어 다양한 방식으로 적그리스도에게 각종 황당한 이론을 퍼뜨려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교란할 기회를 준다면, 이런 모습들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보호막 역할을 맡는 것이다. 일부 거짓 리더는 다른 방면에서 실제적인 사역을 조금 했을 수도 있지만 적그리스도를 대하는 일에서는 하나님 집의 요구대로 적그리스도를 처리하지 않는다. 게다가 하나님집의 요구대로 리더 일꾼의 직책을 다하여 적그리스도가 교회에서 관념과 소극적인 감정,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퍼뜨리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지도 않고 늘 적그리스도가 이야기하는 그럴싸한 도리, 혹은 지식이나 사탄 철학에서 비롯된 주장과 말을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 옹호한다. 이런 모습이 다 적그리스도의 보호막 역할을 맡는 것이다. 물론 일부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가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세력을 보고 그들을 처리하지 않기도 한다. 그는 말한다. “대다수 형제자매는 사회의 하층민이고 세력도 없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적그리스도이고 인성이 악하긴 하지만 세상에서 권세를 가진 능력자이죠. 형제자매나 교회가 위험에 직면했을 때 나서서 우리를 보호해 줄 대단한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그가 나쁜 짓을 좀 저질러도 일일이 따지지 말고 눈감아 주자고요.”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가 두각을 나타내고 결정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기꺼이 적그리스도의 보호막 역할을 맡으려 한다. 거짓 리더는 이런 일도 저지를 수 있다. 또 일부 거짓 리더는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이렇게 말한다. “일부 적그리스도는 사회에서 지위와 세력을 가진 명망 높은 사람이에요. 우리 교회에도 그런 사람이 두 명 있죠. 적그리스도이긴 하지만 그들을 제명하면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 능력자가 없다고 생각할 거고 종교인들은 우리를 무시할 테니 우리는 그들을 내세워 체면을 세워야 해요. 그러니 저 둘은 우리 교회의 보물이죠. 어느 누구도 그들을 분별하거나 제명해선 안 돼요. 저들을 보호해야 한다고요.” 이는 무슨 논리냐? 그는 적그리스도를 인재로 여기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를 보호한다.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머저리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적그리스도가 교회에서 제멋대로 굴도록 내버려둔다면 그 리더 일꾼이 바로 거짓 리더이다. 적그리스도나 악인이 어떤 식으로 황당한 이론을 퍼뜨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든, 긍정적인 인물을 공격하고 배척해 얼마나 많은 하나님 선민을 해치든 거짓 리더는 내버려둔 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을 보전하기만 하면 된다. 거짓 리더는 주로 이런 모습들을 보인다. 적그리스도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든 그는 형제자매가 분별하고 버릴 수 있도록 폭로하고 분석하고 제한하는 게 아니라 적그리스도를 반려동물처럼 키우고 벼슬에 오른 나리처럼 모시고 보호하며 적그리스도에게 길을 터 주고 적그리스도가 나댈 수 있게 각종 기회를 마련해 준다. 그들은 적그리스도에게 충분히 자유를 누리게 해 주는 동시에 누구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이냐? (하나님 선민의 이익을 희생시킵니다.) 거짓 리더는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적그리스도가 교회에서 주인 노릇을 하게 하고 형제자매는 적그리스도의 소와 말, 노예가 되어 그에게 부림당하게 한다. 또한 그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말과 사상 관점, 그의 통제를 받아들이게 한다. 심지어 그가 해를 입혀도 받아들이게 한다. 이게 바로 거짓 리더가 하는 사역이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해치는 것을 그들이 최대한 저지하고 있느냐? 리더 일꾼의 직책을 다하고 있느냐?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는 사역을 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이유가 무엇이든 적그리스도에게 길을 터 주고 적그리스도가 제멋대로 굴도록 내버려두면서 아무런 사역도 하지 않는다면, 그 리더는 바로 거짓 리더이다. 왜 거짓 리더라고 하겠느냐?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통제할 때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에게 온갖 해를 당하게 내버려둠으로써 하나님의 부탁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 집에서 네게 하나님의 양, 즉 하나님 선민을 맡겼는데 네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으니 너는 하나님의 부탁을 맡을 자격이 없다! 원인이 무엇이든, 이유가 어떻든 리더를 맡는 기간 동안 적그리스도의 보호막 역할을 하느라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에게 온갖 교란, 미혹, 통제, 해를 당하도록 했다면 너는 천고의 죄인이다. 왜냐하면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모르는 것도,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적그리스도가 사탄 마귀라는 것을 속으로 뻔히 알면서도 하나님 선민이 폭로하고 분별하지 못하게 한 데다가 형제자매가 그의 말을 따르고 그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순종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는 완전히 진리와 배치되는 것이다. 이는 천고의 죄인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너는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을 보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적그리스도를 리더 일꾼의 자리로 끌어올려 반려동물처럼 키우며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의 호령을 듣도록 했다.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 선민을 네게 맡기는 것은 그들을 적그리스도의 노예나 너의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사탄이나 적그리스도와 싸우고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고 버릴 수 있게 하나님 선민을 인도하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에 하나님 선민이 정상적으로 교회 생활을 하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도록, 진리 실제에 진입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며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정도 책임조차 다하지 못한다면 네가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있느냐? 너는 적그리스도를 보호하려 하는데, 적그리스도가 네 조상이나 우상이라도 되느냐? 설사 그와 혈연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너는 진리 원칙을 고수해 ‘대의멸친’해야 하고, 마땅히 리더 일꾼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고 분별하고 버리며, 적그리스도가 해치지 못하도록 최대한 전력을 다해 형제자매를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는 것이며, 그래야만 합당한 자격을 갖춘 리더 일꾼이라고 불릴 만하다. 리더 일꾼이 다해야 하는 책임도 다하지 않고 기꺼이 적그리스도의 보호막 역할을 맡는다면 그게 천고의 죄인이 아니고 무엇이냐? 적그리스도의 보호막 역할을 맡는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에 관해서는 여기까지 교제하도록 하겠다. 분명 이런 부류를 거짓 리더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들에게 결코 억울한 일이 아니다. 이는 명실상부한 거짓 리더가 보이는 모습이다.

4.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된 사람을 나 몰라라 한다.

거짓 리더가 보이는 또 다른 모습은 더욱 분노를 자아낸다. 일부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적그리스도를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지만 적그리스도를 즉시 처리하지는 못한다.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고 버릴 수 있도록 적그리스도의 온갖 행위에 근거해 적그리스도의 악행과 본질을 폭로하고 분석하지도 못한다. 이로써 이미 리더 일꾼의 직책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일부 형제자매가 미혹되어 적그리스도를 추종할 때도 거짓 리더는 자신과 무관한 일인 듯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 밖에도, 그는 마음속으로 전혀 자책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고, 하나님이나 형제자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늘 이런 ‘전형적’인 말을 한다. “저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돼도 싸요! 분별력을 갖췄어야죠. 설사 적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저들은 하나님 집에서 제명해야 할 대상이에요.”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돼도 전혀 자책하지 않고 마음의 빚도 지지 않는 데다가 반성하거나 회개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게다가 그 형제자매들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돼도 싸다는 비인간적인 말까지 한다. 이 말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릴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부류가 인성을 갖추었겠느냐? (갖추지 않았습니다.) 인성을 갖추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럼 그는 왜 그런 말을 하겠느냐?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우선은 책임을 전가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마비시키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끌려간 건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저와는 상관없죠.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니 미혹되어 끌려가도 싸요!’ ‘그래도 싸다’란 무슨 뜻이냐? 그런 사람들은 응당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고 해를 입어야 하며, 그들이 적그리스도에게 어떤 대우를 받든 마땅하고 그들이 적그리스도를 추종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뜻이다. 그 뜻인즉슨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라서는 안 되고 적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잘못됐고 하나님이 그들을 택한 것도 잘못됐으며 그들은 하나님 집에 들어가더라도 적그리스도가 데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뜻이 아니겠느냐? 형제자매를 비방할 뿐 아니라 하나님도 모독하려고 하니, 이런 부류는 괘씸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참으로 괘씸하다! 그는 책임을 전가하고 그가 형제자매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실상을 감추는 것 외에도 적반하장으로 그런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돼도 싸고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이 악랄하기 그지없는 그의 인품을 드러낸다! 그는 적그리스도처럼 직접 형제자매를 교란하고 미혹하고 억압하지는 않지만 형제자매나 하나님이 맡긴 부탁, 하나님 집이 그에게 맡긴 양떼를 대하는 태도로 보면 그의 마음은 몹시도 냉혹하고 매정하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역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대가를 치르고 협력해야 하고 수많은 인력과 물자를 들여야 할 뿐 아니라 그 안에는 하나님의 심혈이 담겨 있다. 하나님이 여러 사람, 일, 사물과 환경을 마련하여 사람을 하나님 앞에 데려오는 것이다. 거짓 리더는 이런 것들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누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돼 끌려가든 “그래도 싸요!”라는 한 마디로 설명한다. 이렇게 모든 사람의 노고와 하나님의 심혈을 헛수고로 만든다. 그에게서는 모든 게 사라져 버린다. ‘그래도 싸다’는 무슨 뜻이냐? 이런 뜻이다. “그러게 누가 당신더러 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했나요? 그는 하나님을 믿을 자격이 없는데 그에게 복음을 전한 건 당신 잘못이에요. 누가 그더러 적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했나요? 저는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적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한 적도 없어요. 그 스스로가 기어코 따르려고 한 거죠. 그는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게 어울려요!” 이는 어떤 인성이냐? 그에게 마음이 있겠느냐? 그는 냉혈한이고 집 지키는 개만도 못한데 리더가 된 것이다. 그는 자격이 없다! 너희는 분별력을 갖춰야 한다. 어떤 사람이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너무 매정하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를 리더로 뽑아서는 안 된다. 멍청하게 굴지 마라! 그는 최선을 다해 손실을 만회하거나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된 사람을 되돌리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런 악랄한 말을 하니, 참으로 악독하다! 이런 부류의 문제는 보통의 거짓 리더에 비해 성질이 더 심각하다.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모습을 근거로 그는 인성이 없고 리더 일꾼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는 양다리나 걸치는 소인배이다! 그는 하나님이 맡긴 부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이 어떤 사역을 해야 하는지도 지각하지 못하며 양심과 이성에 따라 대하지도 않는다. 그는 하나님 선민의 리더가 될 자격도,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일 자격도 없다. 특히 거짓 리더는 하나님 선민을 사랑하지 않아서 형제자매가 미혹될 때 위험에 빠진 그들에게 더욱 위해를 가하고 ‘그래도 싸다’라는 말까지 내뱉는다. 동정심이라고는 없다. 이런 사람은 누가 재난을 당하거나 곤경에 빠진 것을 봐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위해를 가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고 예전처럼 리더 역할을 한다. 파렴치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형제자매가 아니라 이방의 어떤 좋은 사람이 마귀에게 해를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자 피조물로서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정심을 가질 것이다. 하물며 형제자매처럼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해를 입는다면 응당 더욱 가슴 아파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고 하나님 선민을 해치는 동안 아무런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악행과 본질을 폭로하거나 분석하지도 않으며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고 마음속으로부터 적그리스도를 버리도록 하는 것에 부담을 가지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는 이 일에 아무런 책임감도 갖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사람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끌려간 뒤에도 그는 ‘그래도 싸다’라는 냉혹하고 매정한 말을 내던지니 참으로 분통이 터진다! 책임을 전가하는 데다가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마비시키기 위해, 하나님에게 정죄되지 않기 위해 이런 비인간적인 말을 내뱉으니 괘씸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네가 어떻게 말하든 너는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고 네 사역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이게 바로 거짓 리더의 모습이다. 네가 아무리 회피해도 회피할 수 없다. 너는 거짓 리더이다.

일부 거짓 리더는 형제자매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끌려간 뒤에도 냉혹하고 매정하며 무책임한 태도로 그들은 미혹되어 끌려가도 싸다고 말할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 집에서 사역지침을 내려 그들 중 인성이 비교적 좋고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책임을 다해 최대한 그들을 되돌리라고 요구하더라도 여전히 아무런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는다. 설사 일부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가겠다고 요구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사람의 생명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 아끼지도 않고, 미혹된 형제자매들을 최대한 되돌리지도 못한다. 그들은 이런 책임을 다하지도 못하고 다하지도 않는다. 하나님 집에서 사역지침으로 그 사역을 제대로 하라고 거듭 요구하더라도 거짓 리더는 여전히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며 아무 사역도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예전에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격리되거나 제명된 일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해 정상적으로 교회 생활을 할 수 없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분명 여러 측면에서 하나님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돌아올 수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사랑으로 돕고 인내심을 가지고 붙들어 주면 진리를 깨달아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고 버릴 수 있다. 이들은 돌이킬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리더 일꾼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을 시행하지 않으며 이런 사람들의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밖에서 떠돌고 있다. 이런 리더 일꾼들은 갖은 핑계로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을 무시한다. 그들은 심지어 교회로 돌아오고 싶어 하고 교회가 받아들이는 조건에도 부합하는 형제자매들조차 거들떠보지 않고 온갖 핑계를 찾는다. 그런 사람들의 인성이 나쁘다는 둥, 안전상의 위험이 있다는 둥, 치장을 좋아한다는 둥, 육을 누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둥, 지위를 좋아한다는 둥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온갖 핑계와 이유를 대며 그들이 교회로 돌아오는 것을 거절한다. 이런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어 방향을 잃은 것이 거짓 리더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들은 아무런 책임감도, 아무런 양심이나 지각도 없다. 이는 거짓 리더들이 그런 사람들을 되돌리는 것이 어렵고 위험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마음속으로 그러고 싶지 않고 동의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여러 측면의 원인으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 집의 이 사역지침을 결코 조금도 시행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가 보이는 모습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 집에서 맡긴 그 어떤 사역에 대해서도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협력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그의 직무 유기를 폭로하면 자신을 위해 변호하기도 한다.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을 변호하는 말들로 자신이 직무를 유기한 실상을 감춘다.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더욱 괘씸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어쨌든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해치는 일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직무를 소홀히 하여 아무런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고, 하나님 집이 요구하는 이 사역의 그 어떤 세부 사항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는 고생을 견디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으며 그저 제멋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한다. 하고 싶으면 좀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며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과 하나님 집에서 그에게 맡긴 직책이나 책임, 나아가 하나님의 뜻과 요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런 부류는 인성과 양심을 갖추지 않은 산송장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추구하는 인생의 중요한 일을 인성을 갖추지 않은 사람에게 책임지도록 맡길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가 설사 너를 적그리스도에게 넘기지 않더라도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선민을 미혹하고 해칠 때 그가 과연 최선을 다해 적그리스도와 싸우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류는 냉혈한이고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리더가 된다.

거짓 리더도 때로는 형제자매에게 관심을 갖고 어떤 물건이 부족한지, 먹고 사는 것은 어떤지 등을 물으며 생활적인 측면에서 꽤나 세심하게 챙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탁과 형제자매의 생사존망, 진리 원칙에 관한 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누가 요구하든 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의 육적인 누림과 일상 생활, 복지와 관련된 일만 좀 처리한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모순된 말이네요. 그 사람은 매정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매정한 사람이 남을 위해 그런 일들을 처리하려고 할까요?” 매정한 사람이 과연 선의를 품고 사람들을 위해 그런 일들을 처리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일부 매정한 사람도 정말로 그런 일들을 처리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 이유는 사람들을 위해 일을 처리하는 동시에 자신을 위해 일을 처리하므로 그 자신도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어떤 일을 처리하는데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한다면 그가 그래도 일을 처리하는지 한번 살펴봐라. 그는 곧장 태도가 돌변해 일을 처리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을 위해 일을 처리해 주고 사람들의 이익을 도모할 때 누구의 돈을 쓰느냐? 하나님 집에서 돈을 낸다. 하나님 집의 돈을 마음껏 쓰는 게 그의 특기이다. 그 자신이 이득을 얻는데 어떻게 일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는 사람들을 위해 이익을 챙기는 동시에 사실은 자신을 위해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사람들을 위해 이익을 챙기려는 그런 선심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만약 정말로 사람들을 위해 이익을 챙기는 것이라면 사심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 집의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늘 자신을 위해 이익을 챙길 뿐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가 사람들을 위해 일을 처리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남들이 그를 우러러보며 “이 사람은 우리를 위해 이익을 챙겨 줘요. 있는 힘을 다해 우리의 이익을 보호한다고요. 우리는 부족한 게 있으면 그에게 해달라고 요구해야 해요. 그가 있으면 우리는 그 어떤 억울한 일도 당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그에게 감사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명예도 얻고 이익도 얻으니 그가 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느냐? 그가 사람들의 이익을 도모했지만 아무도 그가 한 일인지 모르고 다들 하나님에게 감사할 뿐 어느 누구도 결코 그에게 감지덕지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가 그 일을 처리하겠느냐? 그는 분명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본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런 부류는 어떤 일을 하든 본성 본질을 남김없이 드러난다.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교란할 때 그들은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기 위한 실속 있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방금 우리는 하나님 선민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고 해를 당한 뒤에도 거짓 리더가 여전히 나 몰라라 하고 하나님 선민을 되돌리는 방법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무와 책임도 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느낌과 기분, 이익만 고려하는 것에 대해 교제했다. 그는 책임을 다하거나 짊어지는 게 아니라 미루고 회피한다. 심지어 하나님 선민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되고 난 뒤에 그 사람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판단하며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가 가장 괘씸하다. 우리가 다룬 거짓 리더의 이 몇 가지 모습은 상당히 역겹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언급한 이 부류야말로 인성이 없는 냉혈한이자 사람 탈을 쓴 짐승으로, 인간으로 분류할 수 없고 짐승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왜 책임을 다하지 않느냐? 이런 부류는 인성과 양심,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책임과 의무도, 사랑이나 인내심도, 동정심이나 형제자매를 보호하려는 생각도 없다. 그는 이런 것들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인성에 이런 것들을 갖추지 않았다면 인성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네 번째 부류의 거짓 리더가 보이는 모습이다.

거짓 리더의 직책 제13조에서 폭로하려는 거짓 리더의 네 가지 모습은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이다. 물론 이 네 가지와 비슷한 다른 모습들도 더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네 가지만으로도 거짓 리더가 이 사역을 할 때 보이는 온갖 모습과 그들의 인성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가 몇 가지로 나누었든 결국 이 네 가지에서도 거짓 리더가 보이는 두 가지 두드러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거짓 리더가 보이는 가장 두드러진 두 가지 모습이다. 거짓 리더의 인성과 자질이 어떻든, 그가 진리를 어떻게 대하든 결국 이 두 가지 모습은 네 가지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 오늘 리더 일꾼의 직책 제13조를 통해 거짓 리더를 폭로하는 내용은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부록 문답

질문이 더 있느냐? (하나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예배가 시작될 때 하나님은 저희에게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와 적그리스도의 차이가 무엇인지, 적그리스도 본질의 전형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물어보셨는데요. 그때 저희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고,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간단한 글귀와 도리들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측면의 진리에 대해 교제하신 지도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저희가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습니다. 한 측면에서 보면 저희 스스로가 그 진리들에 공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일 테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적그리스도를 많이 접해 본 적이 없다 보니 실제로 대조해 가며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그 진리들에 별로 진입하지 못했고, 적그리스도에 대해서도 그다지 분별력이 없으며, 저희가 가지고 있는 적그리스도의 성품과 모습 중 대조해 보지 못한 것들도 많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어느 측면의 진리든, 어느 정도 진실한 경험과 체험을 통해 진실로 인식하게 되어야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새길 수 있다. 진리를 얻는 과정은 이런 것이다. 네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경험 속에서 체험한 것으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오늘 적그리스도에 관한 주제를 교제할 때 나는 가장 먼저 너희에게 그 내용을 복습하도록 했고, 너희는 몇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너희가 떠올릴 수 있는 부분 중 일부는 너희에게 이론에 불과하다. 물론, 적그리스도의 몇 가지 모습은 많게 혹은 적게 대조가 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경험해야 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설교를 들을 때 아무리 잘 이해한 것 같아도 그저 이론이나 도리적인 면에서 이해한 것일 뿐 진리를 인식한 것은 아니다. 그럼 언제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반드시 그런 일들을 경험해야만 어느 정도 실질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실질적인 환경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도 적그리스도에 관한 주제를 교제하기 전에 한 번 복습하고 간단하게 힌트를 준 다음, 리더 일꾼의 직책이든 거짓 리더의 여러 모습이든 교제하는 것이다. 최소한 너무 공허하게 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단지 그 이유이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여러 모습에 대해서는 너희가 어느 정도 겪어 봐야 한다. “하나님께서 실질적인 사람, 일, 사물을 어느 정도 마련해 주시지 않으면 저희가 어디 가서 겪어 보죠? 저희가 직접 찾아 나설 수는 없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따로 찾을 필요는 없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적그리스도를 맞닥뜨렸을 때 전력을 다해 하나님 말씀과 대조해 보는 것이다. 그의 외적인 표출과 주장, 행동 방식과 성품, 사상과 관점, 나아가 처신 방식과 생활 방식 등을 앞서 다룬 적그리스도의 열다섯 가지 모습과 최대한 많이 대조해 보아라. 사람은 늘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 기억력에 의존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진정으로 몸소 체험해 낸 것들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말할 수 있는데, 얼마나 많이 말하든 기억이 아닌 경험과 경력, 체험에 의존한다. 그 부분이 가장 진리에 가깝고 사실과 실상에 가깝다. 그것은 직접 체험해 낸 것이다. 이 밖에,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거나 지식에 해당하는 것들은 마음속에 선입견으로 몇 년을 존재하든 진리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을 때, 그런 것들은 도태되고 버려진다. 그러나 진리에 가깝거나 진리에 부합하는 것들은 몸소 체험해 낸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이야말로 가치가 있다. 오늘 제기한 문제들을 너희가 분명히 이해했든 이해하지 못했든, 적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류의 주제에서는 분명 너희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너희 모두 적그리스도의 미혹과 교란을 어느 정도 겪어 봤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분별력을 갖추었을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악을 행하고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일을 맞닥뜨렸을 때, 그 진리들이 너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 말들은 환경이 닥쳤을 때만 효과를 발휘한다.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겪어 보지 않고 단지 머리로만 적그리스도의 일부 행동 방식을 상상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상상력이 좋다 한들 반드시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환경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자신의 사상과 관점, 자신이 과거에 접했던 이론들, 예전에 알던 몇몇 도리나 방법으로 그런 일들을 마주하고 처리하며 최종적으로 다양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는 여러 이론을 순수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있기만 해도 괜찮다. 혹자는 “그럼 적그리스도를 맞닥뜨리기 전에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시는 게 무슨 소용이 있죠?”라고 말하는데, 소용이 있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말씀들이 책으로 발간되지 않았느냐? 그런 말씀들을 하루 이틀 만에 다 경험하고 간파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책으로 발간하는 목적은 너희를 구원하는 데 있다. 즉, 너희가 그런 말씀을 자주 읽고 진리를 깨달아 나중에 다양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적그리스도에 관한 사건이든 자신의 성품 변화에 관한 고충이든, 하나님 말씀을 읽고 생명을 공급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하나님 말씀은 바로 네가 그런 일들을 경험하고 처리하며 그런 측면의 진리에 진입하는 원천이 될 것이다. 사람이 설교를 들을 때의 이해 정도는 실제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뜻하지 않는다. 당시에 이해하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경험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너희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경험해 낸 것, 인식한 것이야말로 진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이 기억하는 것이나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은 대부분 진리와 무관한 도리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진리는 무엇에 중점을 두느냐? 경험과 진입에 중점을 둔다. 어느 측면의 진리이든 사람이 실제로 경험하고 체험하면 결국 진리가 맺은 열매를 수확할 수 있고 생존의 길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만약 내가 예배를 시작하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간다면 너희는 미처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래서 나는 먼저 질문하는 방식을 택한다. “적그리스도 본질을 가진 자와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기억나느냐?” 먼저 이렇게 질문하는 목적은 너희를 당황하게 하거나 너희가 추한 모습을 보이게 하는 게 아니라 너희에게 힌트를 준 다음 돌이켜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조금씩 떠올린다. “저번에는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적그리스도의 인성이 어떤지 교제했습니다.” 일부 내용은 이미 기억에 깊이 새겨졌을 것이다. 그런 내용은 그런 일을 겪을 때 활용해야 하고, 실행의 지침과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당시에 듣기는 했어도 네게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않은 내용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 것들도 경험해야 하는데, 네가 경험할 때 그런 말씀을 다시 먹고 마시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수확이 더 크다. 인상이 남았든 그렇지 않든, 그런 일들을 경험하고 나면 모든 내용이 하나로 합쳐질 것이다. 그럼 당시에 기억한 도리들은 경험을 통해 실질적인 인식으로 변하고 네 수확이 된다. 당시에 아무 인상도 남기지 않았던 것들은 한 번 경험한 후 인상을 조금 남길 수 있겠지만 그것은 감성적인 인식에 불과하다. 그 감성적인 인식은 도리의 수준에 머물 뿐이지만, 네가 다음에 다시 비슷한 일을 겪을 때 너를 지도해 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실행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경험하려면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 질문을 들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게 창피한 일이냐? 창피한 일이 아니다. 너희가 갑자기 내게 어떤 질문을 하면 나도 그 질문이 무슨 뜻인지, 어느 측면의 진리에 관한 것인지 그 자리에서 고민해 봐야 한다. 이렇듯 사람의 머리와 생각은 반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익숙한 것일지라도 오랫동안 접하지 않다가 갑자기 접하면 반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깊이 있게 경험한 것이라도 며칠이나 몇 년 만에 다시 접하면 반응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하물며 적그리스도의 주제에 대해 너희는 글귀와 도리를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현실 경험 속 적그리스도와 대조하지 못하며 기본적으로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너희는 그 진리들을 실행하고 경험해야 하며,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과 정확성에 확증을 얻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예전에 적그리스도 부류는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다고 교제한 바 있다. 네가 그 말을 기억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 부류가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끝까지 대항하려 하며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인정하지 않죠. 그는 진리를 싫어합니다.” 너는 이 말을 그저 도리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거나 이 말에 인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 정도의 감성적 인식만 있는 것이다. 너는 무의식적으로 이 말이 옳다고 느낀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하는지, 어떤 본성에 지배받는지 등을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하나님 말씀과 대조하고 맞춰 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폭로한 내용이 사실임을 설명할 수 있겠느냐? 그러려면 네가 적그리스도 본인을 직접 보거나, 그를 관찰한 사람이 적그리스도의 언행에 대해 네게 얘기해 줘야 한다. 그러면 결국 너는 깨닫는다. ‘하나님 말씀은 정말 실질적이고 한 치의 오차도 없구나. 저 사람은 몇 번이나 적그리스도로 규정되어 교체됐어. 지금은 출교되거나 제명되지 않았지만 그의 모습과 표출로 보면 그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야. 적그리스도 성품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도 가지고 있다고. 그야말로 영락없는 적그리스도야!’ 어느 날 그가 출교되면 너는 속으로 확신한다. ‘하나님 말씀은 너무도 정확하구나! 적그리스도 성품을 가진 사람은 변할 수 있지만 적그리스도 본질을 가진 사람은 변하지 않아.’ 이 말이 네 마음속에 뿌리내린다. 단순히 기억하고 살짝 인상을 가지게 되거나 감성적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아. 그는 하나님에게 끝까지 대항하려 한다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지 않고 그런 사람에게 사역하지 않으시는 거였어. 어쩐지, 그는 본분을 이행해도 좀처럼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지 못하고 전혀 성장하지도 않는 데다가 자기 고집만 내세우려고 하더라. 그야말로 적그리스도가 틀림없어!’ 하나님 말씀의 정확성에 확증을 얻으면 너는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정말이지 진리가 분명해. 이 말은 옳다고. 아멘!’ 아멘을 외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나님 말씀이 모든 사물을 판단하는 준칙이자 진리이며, 이 시대가 끝나고 이 인류가 사라져도 하나님 말씀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인식했다는 뜻이다. 왜 사라지지 않겠느냐?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영영 변하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폭로하는 하나님 말씀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시대가 끝나고 패괴된 인류가 사라진다 해도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사실의 진상이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이 네가 보고 접하는 사실에 부합하고 들어맞는다고 느끼고 마음속으로 확증을 얻는다면, 단순히 하나님 말씀이 분명히 옳고 틀리지 않다고 느낄 뿐만 아니라 직접 보고 몸소 경험하고 체험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 아멘이라고 외칠 것이다. 그때 내가 다시 “적그리스도 본질을 가진 자는 어떤 모습을 보이겠느냐?”라고 물으면 네 마음속의 인식이 곧장 튀어나올 것이다. 그것은 인상도 아니고 기억한 말도 아니고 의식이나 감성적인 인식도 아니다. 너는 곧바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결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죽어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논리성이 좀 떨어져서 갑자기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너는 그 의미를 안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그런 존재이고 영원히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해 봤고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은 다 체험하고 경험해 내야 한다.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수확도 얻을 수 없다.

2021년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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