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정에 휘둘려 사람을 대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감정의 본질이란 무엇이냐? 바로 패괴 성품의 일종이다. 감정적인 모습을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하자면 편들기, 감싸기, 육적인 관계 지키기, 불공정함 등을 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감정이다. 사람이 감정이 있어 감정에 기대 살아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하나님은 왜 사람의 감정을 가장 혐오하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늘 감정에 얽매여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나 그러지 못하기에 감정으로 고통받는다. 또 수많은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도 실행하지 못하는데, 이 또한 감정에 얽매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지만 마음속으로 늘 가족을 그리워하고 밤낮으로 생각하느라 본분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문제 아니겠느냐? 어떤 이는 누군가를 짝사랑하는데, 마음속에 오직 그 사람뿐이라 본분 이행에 지장을 준다. 이 또한 문제 아니겠느냐? 또 어떤 이는 누군가에게 탄복하고 그 사람을 숭배한다. 다른 사람 말은 안 듣고 오직 그 사람 말만 듣는데, 심지어 하나님이 한 말씀마저도 듣지 않는다. 설령 누가 진리를 교제해 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직 그 사람의 말, 그 우상의 말만 들을 뿐이다. 이 밖에도 어떤 사람은 마음속에 우상이 있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우상에 대해 말하거나 터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누가 그 우상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 화를 내면서 어떻게든 변호해 주려고 하고, 그 주장을 뒤집어 놓으려고 한다. 또 자신의 우상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걸 용납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우상의 명성을 지키면서 잘못된 것도 맞다고 하며, 사람들이 사실을 말하지도, 폭로하지도 못하게 한다. 이는 불공정한 것인데, 이것을 가리켜 감정이라고 한다. 감정의 대상이 가족에만 국한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감정의 적용 범위는 무척 넓다. 그것은 하나의 패괴 성품으로, 가족 간의 혈연관계라는 범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 대상은 상사일 수도 있고, 네게 은혜를 베풀거나 도움을 준 사람일 수도 있고, 너와 가장 사이가 좋거나 마음이 맞는 사람일 수도 있고, 네 동향 사람이나 친구일 수도 있으며, 네가 앙모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감정을 떨쳐 버리는 것이 부모나 집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겠느냐? 그렇게 간단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감정을 떨쳐 버리는 게 그렇게 쉽겠느냐? 많은 사람이 30살쯤 되면 독립적으로 살아가면서 별로 집을 그리워하지 않으며, 40살 정도가 되면 완전히 정상이 된다. 사람은 미성년자일 때 집을 무척 그리워하면서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한다. 아직 독립적으로 생존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과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은 정상으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일을 하는 태도와 관점에 감정의 불순물이 섞여 있는 것이 바로 감정의 문제가 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정과 관련된 문제에는 무엇이 있느냐? 먼저 자기 가족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들이 한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있다. ‘그들이 한 일’, 물론 여기에는 가족들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 일, 뒤에서 남을 판단한 일, 그 외 불신파의 행동 등이 포함된다. 너는 이런 일을 공정하게 대할 수 있느냐? 평가서를 써야 한다면, 너는 정을 배제하고 그들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느냐? 이는 자기 가족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그 밖에, 너는 너와 비교적 잘 맞는 사람 혹은 너를 도와주었던 사람에게 정을 갖고 있느냐? 그의 행위, 사람됨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고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느냐? 만약 네가, 그가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행위를 발견했다면, 즉시 이를 보고하거나 폭로할 수 있느냐? 또한, 너는 너와 비교적 가까운 사람 혹은 관심사가 같은 사람에게 정을 갖고 있느냐? 이들의 모든 행위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와 정의 및 처리 방식을 갖고 있느냐? 교회에서 원칙에 따라 너와 감정적으로 얽혀 있는 이들을 처리할 때, 만약 그 처리 결과가 네 관념과 맞지 않는다면 너는 어떻게 대하겠느냐? 순종할 수 있느냐? 뒤에선 여전히 그들과 얽히고, 그들에게 미혹당하고, 심지어 그들의 부추김으로 그들을 위해 설명하고 변명하고, 그들 대신 나서 주겠느냐? 너는 네게 은혜를 베풀어 준 이를 위해 진리 원칙을 저버리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외면한 채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주고 어떤 희생도 감수하며 도와주겠느냐? 이건 정과 관련된 여러 측면의 문제가 아니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정이란 결국 가족이나 친척과 관련된 것 아닙니까? 결국, 자기 부모, 형제자매, 그리고 집안사람, 이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아니다. 정과 관련된 범위는 매우 넓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과 비교적 친한 친구나 절친을 평가할 때조차 공정하지 않아서 사실을 왜곡해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절친이 본분을 이행할 때 본분 이행에 힘쓰지 않고 늘 부당한 일을 저질러도, 그는 그 절친이 놀기를 좋아하는 편이고 인성이 성숙하지 않아 아직 안정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이 말에 정이 담겨 있지 않으냐? 이는 정을 담아 하는 말이다. 하지만 만약 그와 상관없는 사람이 본분에 힘쓰지 않고 부당한 일을 저지른다면, 그는 비교적 심하게 말할 것이며, 심지어 그 사람을 정죄할 것이다. 이는 정에 치우쳐 말하고 일 처리하는 모습 아니겠느냐? 정에 치우쳐 살아가는 사람이 공정할 수 있겠느냐? 올곧은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정에 치우쳐 말하는 사람은 무엇이 문제이겠느냐? 왜 공평하게 사람을 대하지 못하겠느냐? 왜 진리 원칙에 따라 말하지 못하겠느냐? 한 입으로 두말하며 늘 사실의 진상에 근거해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악하다. 말도 공정하지 않고, 오직 정에 치우쳐 말하며, 자기 자신만을 위해 말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말하지 않으며, 하나님 집 사역을 위해 고려하지 않고, 오직 개인의 감정과 자신의 명리와 지위만을 지키는 것,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질이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식으로 말한다. 항상 이상하게 말하며 방해와 교란을 일삼는다. 육적 기호와 이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며, 정에 치우쳐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전혀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다. 정에 치우쳐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진리 실제가 전혀 없다.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된다면 분명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일 것이다. 그들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온갖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데, 반드시 도태되고 징벌을 받게 된다.

―<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2)> 중에서

감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가장 흔한 것은 누가 네게 은혜를 베풀었거나 네가 누군가와 사이가 좋으면 항상 그를 두둔하고 변호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 친구가 나쁜 짓을 했다가 남에게 들키면 너는 그를 위해 이렇게 변호한다. “그는 그런 일을 할 리 없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입니다. 이건 틀림없이 누군가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한 겁니다.” 이것이 공정한 말이냐?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어떤 사람과 갈등이 조금 생겨서 속으로 그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가 어떤 일에 대해서 옳고 원칙에 부합하는 말을 했다고 치자. 그런데 네가 그걸 듣고 싶지 않다면 그것이 어떤 태도이겠느냐?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네가 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겠느냐? 너는 마음속으로 그의 말이 옳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에게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옳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듣기 싫은 것이다. 이것이 무슨 문제이냐? (감정에 지배당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적인 색채를 띠는 것이다. 항상 취향과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말이 아무리 좋고 아무리 옳아도 그는 듣지 않는다. 반대로 그와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말이 맞든 틀리든, 진리에 부합하든 말든 모두 듣는다. 이것이 취향과 기분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에게 이런 성품이 있으면 그의 말과 행동이 이성적일 수 있겠느냐?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종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감정에 통제당하고 기분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그는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데 영향을 받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종하는 데 영향을 받는다. 그러면 그가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진리에 순종할 수도 없는 것은 무엇의 영향을 받은 것이겠느냐? 무엇의 통제를 받은 것이겠느냐? 바로 감정과 기분이다. 이런 것들이 그를 통제하고 그를 속박한 것이다. 네가 진리를 최우선에 두지 않고 사적인 관계와 개인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면 감정이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된다. 그러므로 네가 감정에 따라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 둘의 관계가 좋은지 나쁜지 관계없이, 또 사람의 말이 부드러운지 엄한지 관계없이 그의 말이 진리에 부합하기만 하면 너는 반드시 듣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만약 네가 이렇게 말했다고 치자. “그가 교제하는 말이 진리에 매우 부합하고 또 그는 체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요란하게 떠벌리고, 너무 교만해서 보기에 거슬리고 불편합니다. 그래서 그가 옳은 말을 해도 저는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이것이 무슨 성품이냐?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것도 감정이다. 네가 자기 취향과 기분에 따라 사람과 일을 대하는 것인데, 이것이 모두 감정이고, 감정에 속한 것이다. 감정에 관련된 것은 패괴 성품에 속한다. 패괴된 사람들에게는 모두 감정이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감정에 통제당한다.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면 감정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아주 어렵다. 어떤 이들은 거짓 리더를 두둔하고, 적그리스도를 감싸고, 악인을 위해 변호한다. 여기에 모두 감정이라는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 물론 어떤 것들은 본성이 너무 악한 것과 관계가 있다. 이런 문제들은 반드시 자주 교통해야 분명해진다. 어떤 이들은 “나는 가족과 친구에 대해서만 조금 감정이 있을 뿐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감정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정확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네게 작은 혜택을 베푼다면 너는 곧 감정이 생길 것이다. 그저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지,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감정이다. 감정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기 매우 어렵고, 감정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이 하나님에게 순종하기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길> 중에서

어떤 이는 정이 너무 많다. 매일 말하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항상 정에 이끌려 살아간다. 이 사람에게도 정을 주고 저 사람에게도 정을 주며 매일같이 정을 베풀고, 매사 정에 파묻혀 살아간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 세상을 떠나면 그는 사흘간 곡을 하고 땅에 묻지도 못하게 하면서 죽은 사람에게도 정을 준다. 지나치게 정에 이끌리기에 이 사람에게는 정이 바로 치명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모든 일에서 정에 휘둘려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도 없으며 또한 항상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있다. 정이 바로 그의 최대의 약점이자 치명적인 부분이다. 정은 이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고 망칠 수 있다. 정이 너무 많은 사람은 진리를 실행할 수 없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없다. 정이 많으면 육만 돌볼 수밖에 없는데, 어리석은 바보다. 이런 사람의 본성은 바로 정이 너무 많은 것으로, 그는 정에 이끌려 살아간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사람 간의 정상적인 관계는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한 것을 기초로 이뤄지는 것이지, 사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육적인 관계만 있을 뿐인데, 이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이것은 모두 정욕의 방종으로, 하나님이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너의 영에 감동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늘 너와 마음이 맞는 사람이나 중시하는 사람과 교제하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이 찾고 구하는데도 네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편견을 갖고 입을 다물어 버린다면, 이는 네가 감정대로 행하는 사람이며, 너와 하나님 사이에는 전혀 정상적인 관계가 없음을 증명한다. 그것은 네가 하나님을 기만하고, 자신의 추한 모습을 덮어 가리는 행위이다. 설령 네가 인식을 좀 말할 수 있을지라도 의도가 불순하다면 네가 하는 모든 것은 사람의 입장에서만 좋아 보일 뿐, 하나님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육으로 행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부담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왕래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한 사람인 것이다. 그때는 네가 사람들과 어떻게 접촉하든 그것이 처세 철학과는 무관하고,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일을 할 때면 항상 자신의 마음가짐이 올바른지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정상인 것이다. 이것이 최소한의 기준이다. 네가 자신의 마음가짐을 살펴 올바르지 못한 속셈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옳은 사람이 된 것이다. 이는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이미 정상적이며, 네 모든 행동이 너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감정이나 개인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일 처리 원칙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떠한가> 중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대하라고 했느냐? (공평하게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공평이란 무엇이냐? 사람을 진리 원칙에 따라 대하는 것이지, 사람의 겉모습이나 신분, 지위, 지식 유무에 따라 대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취향과 감정에 따라 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어째서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을 대해야 공평한 것이겠느냐? 많은 사람이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이방인이 이해하는 공평함이 진정한 공평함이겠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공의롭고 공평하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대할 때 어떻게 요구하는지, 여기에 바로 공평함이 있고, 이를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므로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을 대해야 비로소 공평하다. 교회에서 사람에게 어떻게 요구하고,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그가 이행할 수 있는 본분을 안배해 주고, 그가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란할 경우, 제명해야 할 것은 제명해야 한다. 너와 관계가 좋아도 안 된다. 이것이 공평으로,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원칙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된다. 이것은 사람됨의 원칙과 관련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깨달을 수 있어야 영적인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다> 중에서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 또한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만약 네 부모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믿는 것이 올바른 길이고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사람일 것이며,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증오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도 당연히 그들을 혐오하고 증오할 것이다. 너는 이런 부모를 혐오할 수 있겠느냐?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욕한다면, 틀림없이 마귀이자 사탄일 것이다. 너는 그들을 증오하고 저주할 수 있겠느냐? 이는 다 현실적인 문제이다. 네 부모가 네가 하나님 믿는 것을 막는다면, 너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라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대해야 한다. 은혜시대에 예수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했다. 은혜시대에 벌써 이 말씀이 있었고, 오늘날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라는 말씀은 더욱 명확하고 단도직입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하나님이 한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욥은 자녀를 어떻게 대했느냐? 욥은 그저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했을 뿐이다. 자녀에게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교제해 주었지만, 자녀가 이를 들을지 또는 순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욥의 태도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이었다. 또한 억지로 복종시키지도 않았으며 그들의 생활에 간섭하지도 않았다. 사상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욥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길을 가는지 간섭하지 않았다. 욥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 말을 아꼈을 리가 있느냐? 분명히 이런 말들을 모두 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듣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욥은 어떤 태도를 취하였느냐? ‘저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길을 걸을지는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고 또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감동시키지 않으시면 저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통곡하며 눈물 흘리거나 금식 혹은 어떤 고통을 받거나 하는 일들을 하지 않았다. 욥은 어째서 이런 일들을 하지 않았느냐? 이것들이 전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는 행위가 아니고 사람의 뜻에서 나온, 억지로 나서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자녀가 그와 같은 길을 걷지 않을 때, 욥은 이런 태도를 취했다. 그렇다면 자녀가 죽었을 때, 욥의 태도는 어떠했느냐? 울거나 소란을 피웠느냐? 상심했느냐? 성경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없다. 자녀의 죽음 앞에서 그가 비통하고 괴롭지 않았겠느냐? (비통하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혈육의 정이라는 관점에서 자녀의 죽음에 그는 분명 약간 상심했겠지만, 여전히 하나님께 순종했다. 그가 순종한 모습은 어떠했느냐? 그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 자녀들을 주셨으니, 그들이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사람의 목숨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거둬 가시려 하면 거둬 가실 수 있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거둬 가신다고 하면 거둬 가실 것이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는 무슨 말로 귀결되느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 1:21)이다. 욥은 자녀에게도 이런 태도를 취했다. 자녀가 살아 있든 죽었든 욥은 줄곧 이런 태도였다. 그의 실행 방법은 정확했다. 그의 모든 실행 방법과 각각의 일들을 대하는 그의 관점, 태도, 내적 상태는 모두 순종하고, 기다리고, 구하고, 그리하여 인식하게 되는 이런 상황과 내적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만약 어떤 일을 할 때 이런 태도가 없다면, 자기 뜻이 매우 강하고 모든 일에 개인의 속셈과 이익을 가장 중시한다면, 이는 진실한 순종이겠느냐? (아닙니다.) 이러면 진실한 순종을 볼 수 없으며, 진실한 순종에 이를 수도 없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순종하는 실행 원칙> 중에서

또 굳세고 기개가 있어야 하며 굳게 서서 나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일어나서 나를 위해 말하고, 누가 뭐라고 하든 두려워하지 말고 오로지 내 마음을 만족게 하며, 누구에게도 속박받지 말고 내가 너에게 나타낸 것을 내 뜻에 따라 지체 없이 행해야 한다. 네 심정이 어떠하냐? 괴롭지 않으냐? 그것은 네가 잘 알 것이다. 어째서 일어나 나를 위해 말하지 못하고 내 부담을 생각하지 못하느냐? 말없이 꼼수를 부리는 것을 나는 다 훤히 알고 있다. 내가 너를 뒤에서 호위하며 너의 방패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내 손안에 있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너무 정에 치우친 것이 아니냐? 한시라도 빨리 정을 떨쳐 버려야 한다. 나는 정을 생각하지 않고 공의를 실행한다. 교회에 이롭지 않다면 네 친부모라도 예외는 아니다! 내 뜻을 너에게 나타냈으니 못 본 척하지 말고 아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 마음을 다해 따르면 늘 내 손으로 보호해 줄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남편, 아내가 두려워 속박받지 말고 내 뜻이 이루어지게 해라.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9편> 중에서

각국 정세는 상당히 혼란스럽다. 하나님의 채찍이 땅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땅의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볼 수 있는데, ‘물은 포효하고, 산은 무너지고, 강은 붕괴된다’는 것은 땅에서 채찍질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로써 “땅의 가정은 모두 ‘파탄’되고, 땅의 나라는 ‘분열’되며, 더 이상 ‘부부가 함께 모이는’ 날도, ‘모자가 재회하는’ 때도, ‘부녀가 만나는’ 시간도 없을 것이다. 땅의 모든 옛 모습은 나에 의해 깨질 것이다.” 이는 땅에 있는 모든 가정의 상황이다. 물론 전부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그런 상황이라는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 흐름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앞으로 처하게 될 상황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는 말씀의 형벌을 받고, 이방인이 재난을 겪은 후,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가족 관계에 묶이지 않고 하나님나라에서 충성을 다하는 시님(원문: 秦國) 사람이 될 것임을 예시한다. 그러기에 더 이상 ‘부부가 함께 모이는’ 날도, ‘모자가 재회하는’ 때도, ‘부녀가 만나는’ 시간도 없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은 ‘가족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산산조각 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마지막 사역이다. 하나님은 전 우주로 이 사역을 확대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참에 ‘감정’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사람에게 ‘밝혀’ 하나님의 뜻이 모든 사람의 가정을 깨뜨리는 것임을 보여 준다. 이는 하나님이 형벌로 전 인류의 모든 ‘가정 분쟁’을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땅에서 마지막 부분의 사역을 마무리할 수 없다. 마지막 부분의 말씀은 인류의 최대 약점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사람은 모두 ‘정’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어떤 사람도 피하지 않고 전 인류의 마음속에 숨겨진 비밀을 드러냈다. 왜 감정을 떨쳐 버리지 못하느냐? 그것이 양심의 기준보다 높단 말이냐? 양심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느냐? 감정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느냐? 하나님의 눈에 감정은 하나님의 원수다. 설마 하나님이 이를 명확히 말씀하지 않았단 말이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 해석ㆍ제28편> 중에서

지금 추구하지 않는 자와 추구하는 자는 종착지가 다른 두 부류의 사람이다. 진리를 알고 실행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 대상에 속하지만, 참도를 알지 못하는 자는 마귀이자 원수이며, 천사장의 후예이자 멸망될 대상이다. 막연한 하나님을 경건하게 믿는 신자 또한 마귀 아니겠느냐? 사람의 양심이 올바를지라도 참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모두 마귀이고, 그 본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참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전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수많은 고난을 받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멸망될 대상이다. 세상을 버리려 하지 않고, 부모나 육적인 즐거움에 연연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이자 멸망될 대상이다. 성육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 전부가 마귀로서 훗날 더더욱 멸망될 대상이다. 믿으면서도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는 자,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는 자들 또한 모두 멸망될 대상이다. 살아남는 사람은 전부 연단의 고통을 겪고 굳게 선 사람이고, 진정으로 시련을 겪은 사람이다. 반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모두 원수이다. 즉, 이 흐름 안에 있든 밖에 있든 하나님의 성육신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적그리스도라는 말이다! 사탄은 누구이고 마귀는 누구이며 하나님의 원수는 또 누구더냐? 바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그 무리들 아니더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 아니냐?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나 진리가 없는 자들 아니더냐? 복만 받으려 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는 자들 아니더냐? 네가 오늘날에도 이 마귀들과 손잡고 그들을 양심과 사랑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사탄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 아니겠느냐? 마귀와 한통속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오늘날에 이르렀는데도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한결같이 사랑과 긍휼만 강조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이런 부류가 맞이하는 결말은 더욱 비참할 것이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원수이다. 네가 원수에게도 양심과 사랑을 베푼다면 정의감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 내가 증오하고 반대하는 자와 네가 오히려 마음이 통해 그들을 사랑이나 사적인 감정으로 대한다면 패역 아니겠느냐? 고의로 대적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런 자에게 진리가 있겠느냐? 원수를 양심으로 대하고 또 마귀를 사랑으로 대하며 사탄에게도 긍휼을 베풀려고 한다면, 고의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 아니겠느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물론이고, 예수만 믿고 하나님이 마지막 시대에 성육신한 것을 믿지 않는 자들, 입으로는 성육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악을 행하는 자들은 전부 적그리스도이며, 멸망될 대상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한 사람이 주를 믿으면 온 가족이 복을 받는다.”라는 옛말은 은혜시대에나 적용되는 것일 뿐, 사람의 종착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단지 은혜시대 그 단계에만 적용될 뿐이다. 이 말의 함의는 그저 사람이 누릴 평안과 물질적 축복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 주를 믿는다고 해서 온 가족이 구원을 얻는다는 말도 아니고, 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해서 온 가족이 덩달아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도 아니다.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은 모두 자신의 본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 자신의 공통적 본질에 근거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나라에는 아예 이런 견해나 규정이 없다. 누군가 마지막에 살아남았다면 그가 하나님의 요구대로 했기 때문이고, 살아남아 안식을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적합한 종착지가 있다. 그 종착지는 본인의 본질에 근거해 정해지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자녀의 악행을 부모에게 더할 수 없고, 자녀의 의를 부모가 공유할 수도 없다. 또한 부모의 악행을 자녀에게 더할 수도 없고, 부모의 의를 자녀가 공유할 수도 없다. 저마다 자신의 죄를 감당하고 각자의 복을 누릴 뿐, 그 누구도 다른 이를 대신하지 못한다. 이것이 공의이다. 사람은 부모가 복을 받으면 자녀도 복을 받을 수 있고, 자녀가 악을 행하면 부모도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람의 생각이자 일 처리 방법일 뿐,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행한 일의 본질에 따라 합당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죄를 짊어지거나 다른 사람을 대신해 징벌받을 수 없다. 이것은 절대적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도 자녀를 대신해 의를 행할 수 없고,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한다고 해도 부모를 대신해 의를 행하지는 못한다. 이것이 바로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라는 말의 참뜻이다. 그 누구도 자녀를 넘치게 사랑한다고 해서 악을 행한 자녀를 데리고 안식에 들어갈 수는 없다. 또한 그 누구도 자신이 의를 행한다고 해서 그의 아내(또는 남편)를 데리고 안식에 들어갈 수도 없다. 이것은 행정 규정이므로 그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의를 행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의를 행하는 사람이고, 악을 행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악을 행하는 자이다. 의를 행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살아남을 사람이고, 악을 행하는 자는 마지막에 멸망될 대상이다. 거룩한 자는 거룩할 뿐 더럽지 않다. 더러운 자는 더러울 뿐 거룩한 부분이 전혀 없다. 설령 악을 행하는 자의 자녀가 의를 행하는 사람이고 의인의 부모가 악을 행하는 사람일지라도, 악인은 다 멸망할 것이고 의인은 다 살아남을 것이다. 믿는 남편과 믿지 않는 아내, 믿는 자녀와 믿지 않는 부모는 서로 맞지 않는 두 부류로서 본래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안식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혈육의 정이 있겠지만, 안식에 들어가고 나면 더 이상 혈육의 정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본분을 이행하는 자와 그러지 않는 자는 본래 원수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하나님을 증오하는 자는 본래 적대되며, 안식에 들어가는 자와 멸망하는 자는 서로 합할 수 없는 두 부류의 피조물이다. 본분을 이행하는 피조물은 영원토록 살아남겠지만, 그러지 않는 피조물은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네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피조물로서 너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함이냐? 네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하기 위함이냐? 믿지 않는 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하기 위함이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은 정말 올바른 것이냐? 너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느냐? 너는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냐? 너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느냐?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자신의 온 힘을 다하지 못하는 자는 모두 멸망의 대상이다. 지금 사람과 사람 간에는 육적인 관계와 혈연관계가 존재하지만, 나중에는 전부 깨질 것이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본래 합하지 않고 서로 적대된다. 안식을 얻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다. 패역한 자들이 모두 멸망하면 땅에는 더 이상 가정이 존재하지 않을 텐데, 부모가 어디에 있고 자녀가 어디에 있으며, 부부 관계는 또 어디에 있겠느냐! 이런 육적인 관계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본래 합할 수 없으므로 단절될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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