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비로소 가치 있게 살 수 있다

지금 너희는 모두 본분 이행으로 바쁘다. 모두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고 증거하는 훈련을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하고 있다. 영화를 만들어 하나님을 증거하든, 찬양을 불러 하나님을 증거하든, 너희의 이런 본분 이행이 패괴된 인류에게 가치가 있지 않으냐? (가치 있습니다.)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이냐? 바로 사람들이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과 진리를 읽고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자신이 피조물 중 하나임을 깨닫고 창조주 앞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많은 일들을 간파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삶에 무력감을 느끼며, 삶이 무의미하고 허무하여 어떠한 정신적 지주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말씀에 그 답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 이 세월 동안, 너희는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었으며 어느 정도 진리를 이해했다. 이제 너희가 이행해야 하는 본분은 바로 하나님 말씀으로 그들을 일깨워 그들의 잘못된 사상과 관점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이해하고 세상의 어둠과 사악함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그들이 참도를 구하고 창조주를 찾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말씀을 읽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들이 진리를 일부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행한 구원 사역을 볼 수 있게 되어,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하나님을 믿은 후 얼마나 많은 진리를 이해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해 왔는지 너희는 마음속으로 똑똑히 알고 있다. 수많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이방인들이 지금 모두 참도와 구세주를 찾고 있다. 그들은 사람이 왜 살아가는지, 왜 죽는지, 삶의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 사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등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너희가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을 증거하여 자신들을 창조주 앞으로 인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너희가 이행하는 본분이 정말 의미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해야 하니, 이런 체험을 많이 할수록 너희가 이해하고 무장해야 할 진리와 해야 할 일도 늘어난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매우 좋은 기회이다. 본분 이행 중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너희는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앙망해야 한다. 다들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구하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 하나님 말씀 속에 너희가 이해해야 할 진리가 너무 많으니, 많이 묵상하고 교제하면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에게 의지하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없다. 너희는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한 후 바로 경륜을 세웠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창조주를 증거하는 어떠한 중대한 책임과 사명도 맡지 않았다.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비교적 은밀하고 단순했다. 하지만 말세가 되자 달라졌다. 창조주가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며 하나님 경륜의 비밀을 풀어 주었다. 하지만 패괴된 인류는 무감각하고 우둔해져 마치 마음의 눈을 가린 것처럼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너희의 책임이 중대하다고 하는 것이다! 왜 중대하다고 하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과 진리를 전파하는 것 외에도, 창조주를 모든 피조된 인류에게 증거하는 더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 복음을 듣는 모든 피조된 인류를 창조주의 앞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의미를 그들이 깨닫게 하고, 피조된 인류로서 마땅히 창조주의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창조주의 말씀을 듣고, 창조주가 선포한 모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모든 사람이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성과를 얻으려면, 하나님 말씀을 몇 단락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겠느냐? 찬양을 몇 곡 부를 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겠느냐? 한 가지 측면의 업무만 수행해서 충분하겠느냐? 충분하지 않다. 그러니 너희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다양한 방법과 형식으로 창조주의 행사, 주재, 안배를 증거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창조주 앞으로 인도하여 그들이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고 순종하게 할 수 있다. 이 책임이 크지 않으냐? (책임이 큽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어떤 태도로 자신의 본분을 대해야 하겠느냐?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하면 되겠느냐? 보고도 못 본 척 대충 해도 되겠느냐? 건성으로 노력하며 불성실하게 하면 되겠느냐? 미루거나 대충 하면 되겠느냐?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전력을 다해 해야 합니다.) 전력을 다해 해야 한다. 사람이 갖고 있는 에너지, 경험, 식견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무엇을 해야 가장 의미가 있겠느냐? 이방인은 모르겠지만, 너희는 어느 정도 알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맡긴 일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너희가 이행하는 이 본분들은 가치가 있다! 즉각적인 효과나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를 거둘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러한 일을 잘해 놓으면 인류에게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공헌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한 증거는 어떤 것보다 귀중하며 가치가 있으니 영원히 간직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따르는 각 개인의 선행으로, 기념할 가치가 있다. 사람의 일생에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은 전부 헛된 것이며 기념할 가치가 없다. 네가 경천동지하는 큰일을 하고, 하늘과 달에 올라가 봤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네 과학 연구의 성과가 인류에게 약간의 이익과 도움이 되었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이 모든 것은 다 없어질 것이다. 없어지지 않는 유일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오직 하나님에 대한 증거만이, 창조주를 증거하는 모든 작품들, 간증, 그리고 사람의 선행만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들은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너무나 가치 있다. 그러니 너희는 원대한 계획을 펼치고 대담하게 실행해야 한다. 어떤 사람과 일, 사물의 구속도 받지 말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여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심혈을 본분 이행에 쏟아부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일이니, 아무리 많은 고통을 겪는다 하더라도 너무나 가치 있는 것이다!

지금 너는 하나님을 따라가며, 하나님 말씀을 듣고, 창조주가 맡긴 일을 받아들이고 있다. 때로는 좀 어렵고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모욕 당하고 연단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나쁜 일이 아니고 좋은 일이다. 네가 결국에는 무엇을 얻겠느냐? 진리와 생명을 얻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너에 대한 창조주의 인정과 긍정을 얻게 된다. 하나님이 “네가 나를 따르니, 너는 내가 선정한 사람, 내가 기뻐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게 된다. 하나님은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눈에는 네가 피조물이라고만 말한다. 이는 네가 헛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인정하는 것이니 대단한 것 아니겠느냐? 이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만약 사람이 사탄을 따르면 무엇을 얻겠느냐? (멸망입니다.) 멸망하기 전에 사람은 무엇으로 변하느냐? (마귀가 됩니다.) 사람이 귀신이 된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재주를 배우고, 많은 돈을 벌고, 많은 명예와 이익을 얻고, 많은 물질과 대우를 누린다 하더라도, 또 세속에서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사람의 내면은 나날이 패괴되어 점점 사악해지고 더러워져, 갈수록 더 거역하고 위선적이게 된다. 결국에는 산 귀신, 비인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창조주의 눈에 어떻게 보이겠느냐? 그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끝낼 수 있는 것이냐? 이러한 사람에 대한 창조주의 관점과 태도는 무엇이냐? 반감을 갖고, 역겨워하고, 혐오하고, 포기하며, 마지막에는 저주하고 징벌하며 멸망하게 한다. 사람이 서로 다른 길을 걸으니, 마지막에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어떤 길을 택하겠느냐?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선택은 옳은 길을 선택한 것이며, 이로써 광명의 길로 나가게 된다. 사람이 평생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려면, 진정 창조주의 앞으로 돌아오려면, 진정 창조주의 곁으로 돌아오려면, 전심전력을 다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영광스럽게 해야 한다. 딴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이번 생에 세속의 부를 얻고 출세하며 가문을 빛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탁월하게 뛰어나 존중받는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얻고자 다투지 않습니다. 저는 그 길을 가지 않고 그저 단촐하게 하나님을 따르겠습니다. 저의 인생과 에너지를, 그리고 저의 미약한 능력, 은사, 재능을 모두 본분 이행에 쓰겠습니다. 이 모두를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설령 이 과정에서 남들에게 멸시당하거나, 때로는 책망과 훈계를 받기도 하고 형제 자매들에게 오해를 받을지라도, 또는 하나님의 시련과 연단으로 제가 많은 고통을 받아 이번 생에서 육체적으로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고 고독하다 해도, 저는 이것들을 감수하겠습니다. 저는 저의 온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이런 결심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이런 결심이 있다면 많은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 만약 이런 결심도 없으면서 소망만 있다면, 일회성 의욕과 열정일 뿐이다. 이래서는 원동력이 없어서 안 된다. 어떤 사람은 때로 본분을 이행하느라 바빠 끼니를 거르거나 잠을 적게 자 안색이 안 좋아지면 ‘이래서는 안 돼. 아무리 일이 바빠도 나도 좀 쉬어야지. 나이 먹기도 전에 늙어 버릴 수는 없잖아. 내가 이렇게 큰 고통을 받을 수는 없어. 건강을 지키는 게 중요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상은 어떠하냐? 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육체를 자신의 본분과 하나님이 맡긴 일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해 약간의 고통도 원치 않고, 약간의 고통에도 거북이처럼 잔뜩 움츠러들고 원망의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지 않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리더가 지금 어떤 일이 매우 급하다고 할 때, 그는 “그건 제가 상관할 일들이 아니죠. 그것 때문에 고생하고 싶지 않아요. 전 관심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이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간사하다. 또한 잔꾀를 부리고 진실하지 않으니, 진심으로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또한 자신을 하나님에게 바쳤다고 주장하지만, 입으로 말만 할 뿐 실질적인 일을 전혀 하지 않으며, 어떤 고통도 감수하지 않고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며 축복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때 약간의 육체적 고통도 감수하기 싫어한다. 특히 젊은 사람은 외모를 중시해 안색이 초췌해지거나 피부가 푸석해지면, 또는 흰머리를 발견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자신이 늙고 못생겨질까 봐, 배우자를 못 찾을까 봐, 가정을 이루지 못할까 봐 늘 걱정을 한다. 이런 사람이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며 대가를 치를 수 있는지, 그 본분 이행이 합격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보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진심이다. 때로 사람은 ‘마음을 바쳤으니 됐어. 그런 마음만 있으면 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며, 전혀 변화가 없다. 하나님은 이것을 어떻게 보겠느냐? 하나님은 너의 소망을 보면서, 동시에 너의 실제 행동을 살펴본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을 감찰한다. 네가 소망과 결심을 갖고 실제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면, 가끔 좀 나약해도 하나님은 네가 진정으로 포기한 것이 아니며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볼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진리, 공평, 공의,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는 것을 볼 것이니, 하나님이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입으로는 번지르르하게 말을 잘 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진리를 전혀 실행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기만 한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입으로 그렇게 말을 하며 옆 사람을 응대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듣기는 좋지만, 사실 그는 내심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결코 그가 말한 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기가 생각한 대로,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행동한다. 여기에 차이가 나지 않느냐? 이런 차이를 하나님이 볼 수 없겠느냐? 하나님이 감찰하니 매우 잘 볼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이 간사하고 잔꾀를 부릴 때, 그는 하나님이 모르고 신경도 안 쓰고 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렇겠느냐? 하나님은 잔꾀를 부리는 사람과 정직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겠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이 두 유형의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지, 너희는 알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사람을 축복하시고, 간사한 사람을 혐오하십니다.) 정직한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느냐? 정직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직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 성과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에게 깨우쳐 주시며, 정직한 사람은 쉽게 진리를 이해하고 실제에 진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돌보십니다. 정직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견해들은 모두 맞다. 그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렇다면 지금 너희는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한,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와 그 차이점을 알겠느냐? 정직한 사람도 때로 어리석은 일을 하기도 하고 나약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깨우침, 인도, 보호를 받으니 곳곳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그를 징계, 책망, 훈계하거나 그에게 시련과 연단을 주어 그가 변화하고 성장하도록 한다. 말을 하거나 일을 할 때 잔꾀만 쓰는 사람, 본분을 이행할 때 늘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리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가 없어 진흙탕 속이나 어둠 속에 사는 것과 같다. 아무리 찾고 노력해도 빛을 보지 못하고 방향을 찾지 못한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영감과 하나님의 인도가 없어 벽에 많이 부딪힌다. 심지어 어떤 일들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드러난다. 그들을 드러내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들이 그들을 분별하고 어떤 사람인지 간파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모두 봉사자들이다. 그들이 봉사를 마치고도 진실한 변화가 없다면, 드러나고 도태되기 시작한다. 악한 행위를 많이 저지른 사람들은 징벌도 받아야 한다. 마치 이방인처럼 온갖 종류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모독하는 말과 참람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고 사탄에게 넘겼다. 사탄에게 넘겨졌는데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보호가 없으면, 사탄은 그를 괴롭히고 그의 몸에 역사한다. 그는 귀신에 들려 귀신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결국은 악령에게 괴롭힘 당해 죽어야만 끝이 난다. 하나님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하지 않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역사는 바로 사람의 마음에 감동과 깨우침을 주고 인도하여 사람 내면의 내적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착한 사람은 더욱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선호한다. 이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진리 추구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만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으며, 자주 스스로를 반성해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을 수 있고, 일이 임했을 때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위해 노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역사하여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주고, 인도하고, 축복해 준다.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사람의 경우, 하나님은 그들을 한쪽에 방치해 둔다. 만약 악한 일을 많이 저지르고 교회 사역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교란하는 분란 분자와 악인이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겠느냐? 하나님이 그를 드러내고 사탄에게 넘기면, 그가 못된 짓을 하기 시작해 그의 진실한 모습이 폭로된다.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말을 하며 이간질을 한다. 마치 소란을 피우는 어릿광대처럼 나쁜 짓을 많이 저질러 교회에서 방해하고 교란한다. 하나님의 선민이 진리를 이해하여 그를 분별하고 폭로할 수 있을 때, 그는 제명되고 출교된다. 이것이 그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냐? (그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본분에 집중하지 않았을 때의 결말이다. 사람이 정도를 걷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탄과 잡귀신에게 사람을 넘겨준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완전히 끝나게 되며, 구제 불능이라 버려진다. 드러난 후에야 그는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못된 짓을 했어? 내가 방해하고 교란했어? 왜 난 모르고 있었던 거지?’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한다. 하나님이 환경을 안배해 그들을 드러내고 도태시키려 하면, 그들은 매우 빨리 드러나고 도태된다. 한두 번의 일로 악인이라는 것을 발견해 그를 처리할 수도 있다. 어떤 일들은 하나님이 직접 하지만, 어떤 일들은 힘을 쓰는 잡귀신, 사탄, 악령을 이용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선민을 온전케 하고 도와주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악인을 드러내고 도태시키는 것이다. 만약 네가 관념으로 판단해 이는 하나님이 행한 일이 아니며,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하지 않고, 이런 일들은 하나님이 배치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 모든 일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너희는 체험을 통해 이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만 마음은 여전히 세상에 머물러 있다. 비록 본분을 이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부자가 되고자 하여 마음이 늘 불안하고 달갑지 않다. 때로는 하나님 집을 떠나고 싶어 하지만, 복을 얻지 못해 재난 속에 떨어질까 두려워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있을 뿐이다. 때로는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기도 하고 원망의 말을 하기도 한다. 비록 악행을 많이 저지르지는 않지만, 좋은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그의 이런 행동들을 하나님이 모르겠느냐? (알고 계십니다.) 사람은 알고 있느냐? 많은 경우에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본분을 이행하느라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고통을 견디고 대가를 치르니 여전히 그 사람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때로 다소 연약하고 사람과의 왕래를 좋아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하나님은 알고 있고, 이에 적절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때가 되면 그를 병에 걸리게 하고, 그러면 그는 병 때문에 본분을 이행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그가 본분 이행의 대오에서 제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나쁜 일입니다.)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는 너희는 환난, 질병, 고통이 닥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본분 이행을 지체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환난이나 질병이 닥치면 잘됐다고 생각한다. ‘본분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와 핑계가 생겼네.’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은 나쁜 일이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원하지 않아서, 그를 인정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이런 방식으로 그를 정리해 버린 것이다. 정리된 후에는 오히려 병이 낫는다. 병이 다 나은 후,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자신의 삶을 살고 큰돈을 벌러 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이 사람은 결말이 없고, 이제 이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서 사라지고, 더 이상 구원받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그를 예정하고 선택하기는 했지만, 이미 그때부터 하나님은 그를 혐오하여 버렸다. 다시는 이런 사람을 구원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하나님 집에서 그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게 된다. 그 순간부터 그는 구원받을 기회를 잃은 것이다. 그가 무엇을 하든, 어떤 태도를 보이든, 하나님은 더 이상 그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겠느냐? 이 사람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하기 전, 사람은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산다.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한 후, 사람은 하나님 집에 와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산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할 때, 하나님이 이 사람을 제거하면, 이 사람은 어디로 돌아가겠느냐? (사탄의 권력 아래로 돌아갑니다.) 그는 다시 사탄의 권력 아래로 돌아간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사탄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너에게 넘기겠다.’라는 의미이다. 사탄이 다시 그를 받아들여 그는 사탄의 영역으로 돌아가게 되며, 더 이상 구원받을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다시 사탄에게 넘긴 후, 이 사람은 무엇을 잃겠느냐? 그 결과와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너희는 잘 알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 도태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절대로 사람의 일시적인 과오로 인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고 쉽게 사람을 도태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한 후,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느냐? (구원받을 기회를 얻습니다.) 또 무엇을 얻느냐? (진리를 얻습니다.) 맞다. 물론 진리를 얻어야만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해 그를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하나님 집으로 데려오면, 사탄이 감히 하나님에게 조건을 제시할 수 있겠느냐? 사탄은 감히 어떤 조건도 제시할 수 없으며,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이 사람은 나의 것이다. 너는 더 이상 그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라고 하면, 사탄은 얌전히 이 사람을 포기한다. 이 사람의 의식주와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 있으며, 하나님의 눈앞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사탄도 이 사람을 건드리지 못한다. 이는 무슨 의미겠느냐? 바로 이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어떤 외부 세력의 교란과 잠식도 없으며, 이 사람의 매일매일의 기쁨, 슬픔, 고통이 모두 하나님의 감찰 아래에 있고, 또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재난이나 재앙이 오게 되면, 하나님이 그것에게 그를 피해 가라고 하면 그는 무사하게 된다. 그러나 이방인들이나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그들의 운명대로 된다. 죽을 운명이라면 죽고, 재난을 겪을 운명이라면 재난을 겪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바꿀 수 없고, 누가 누구를 구할 수도 없다. 재난이 내릴 때, 많은 사람들에게 재난이 임하게 되는데 왜 너에게는 그런 재앙이 닥치지 않겠느냐? 이는 바로 하나님의 보호 때문이다. 사탄, 마귀, 악령은 감히 너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가 네 앞으로 오면, 마치 금지 구역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하고, 마치 “이 사람은 건드려서는 안 된다.”라는 글귀를 보는 듯하며, 마치 하나님이 정한 천상의 규율을 보는 듯해 그는 감히 너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러면 너는 보호받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너는 잘 살아왔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으며,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보호받은 것이다. 하지만 방금 언급한 그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도 느끼지 못하고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는 “이 몇 년 동안 평화롭게 살았는데, 이건 아마도 내 팔자가 좋고 운이 좋아 사탄 마귀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였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보답할 줄도 모른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도 않고, 방해하고 교란하며 나쁜 짓만 한다. 하나님은 그의 일관된 태도를 보고, 그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한다. 그에게 많은 시간과 기회를 주었음에도 그는 회개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사람을 구제 불능이라고 말하고, 결국은 그를 사탄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한다. 이 사람이 가치 없는 천박한 사람이라 하나님이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도태시키면 누가 가장 기뻐하겠느냐? 사탄이 가장 기뻐한다. 사탄은 “내 진영에 작은 귀신, 공범이 하나 더 늘었구나. 잘됐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멍청하게 두려운 줄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사탄의 품으로 돌아간다. 사탄은 이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하겠느냐? (짓밟고 해칩니다.) 사탄은 사람을 해치는데 너무나도 능하다. 어떤 사람은 귀신 들리고, 어떤 사람은 이상한 질병에 걸리며, 또 어떤 사람은 갑작스럽게 비정상적으로 변해 마치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귀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탄은 종종 이런 식으로 사람을 해치고 집어삼킨다. 그의 행동은 계략과 사악함에 기반하며, 다양한 수단을 사용해 사람이 복종하도록 유인하여 사람을 해치고 집어삼킨다. 바로 이런 성격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탄이 사람을 해치는 수단이 이것들뿐이겠느냐? 절대 아니다.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해치고, 능욕하고, 짓밟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밖에도 더 음험하고 악독한 수단들이 많은데, 이는 모두 패괴된 인류가 직접 체험한 것이다. 사람이 사탄에게 넘겨진 후, 일부 사람들은 갑자기 굉장히 똑똑해진다. 수완을 특히나 잘 발휘하고, 갑자기 출셋길이 열려 승승장구하며, 승진하고 부를 쌓게 된다. 이는 좋은 일이냐 아니면 나쁜 일이냐? (나쁜 일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좋은 일인데, 어째서 나쁜 일이라고 하는 것이냐? (이는 사탄의 계략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승진하고 부를 쌓으며 승승장구한 그는 몇 년 지나지 않아 거물이 된다. 돈, 지위, 명망이 생기고, 윤택한 생활을 하게 되고, 완전히 세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때 그가 여전히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겠느냐?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하겠느냐? 그의 마음속에 여전히 하나님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참도에서 벗어나, 완전히 사탄에게 사로잡혀 가게 된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 집의 사람이 아닌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 완전히 끝장난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여전히 하나님의 보호가 있을 수 있겠느냐? (있을 수 없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사는 동안 그는 어떤 상태이겠느냐? 매일 살지 죽을지 모르고, 외출할 때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모르며, 그의 마음에는 평안도 기쁨도 없으며, 그저 공포, 불안,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게 된다. 하나님을 배반한 결과를 알기 때문에 그는 매일 불안에 떨며 산다. 그들은 언제 재앙이 닥칠지, 벌을 받을지 모른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혐오하여 버린다면,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느낀다. 어둠 속에서 살며 갈 곳을 잃고, 걸음걸음이 다 그렇게도 어렵고 무서우니 사는 것이 정말 고통스럽다고 말이다. 너는 그가 고통스럽게 사는 것이 명예와 이익을 좇고 세상을 추구하여 편안한 생활을 하며 이방인의 길을 걷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일단 그를 버리면, 하나님은 더 이상 그를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그는 사탄의 권력 아래에 속하게 되고 즉시 어둠 속으로 떨어지게 된다. 사람이 어둠에 빠지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마음에 평안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함께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이 세상 모든 곳이 공포, 함정, 기만으로 가득 차 있고,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살기가 더 힘들다고 느낀다. 이것이 그가 세인들 사이에서 갖고 있는 지위에 달려 있겠느냐? 그가 얼마나 큰 능력과 권력을 갖고 있는지에 달려 있겠느냐? 아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하나님에게 도태되는 사람은 모두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되어 인간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그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각종 살아 있는 마귀가 날마다 너를 해칠 것이다. 아예 살 수가 없는데, 정말 사는 게 죽느니만 못하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보호할 때, 사람은 마음속으로 편안함, 평안함, 즐거움을 느낀다.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정상 인성의 모든 활동에 종사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정상적이고 규칙적이며, 사람의 마음은 자유롭고 여유롭다. 사람이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잃게 되면, 이런 느낌은 모두 사라진다. 그리하여 사람은 그저 자신의 능력, 재주, 사상, 처세 철학에 따라, 그리고 혈기에 따라 주변의 모든 사람과 일, 사물에 대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주변의 모든 사람과 일, 사물에는 모두 어떤 것들이 있느냐? 나쁜 놈, 악인, 큰 마귀, 작은 마귀, 악령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이런 더러운 귀신이 모여 사는 곳에서 살면, 사람의 삶이 편안하겠느냐? (편안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고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 때에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대하지만, 일단 하나님이 버리고 나면 사람이 후회해도 이미 늦다. 그건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큰 재앙인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지배, 보살핌, 보호 아래에 살 때에만 진정한 행복이 있고,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한, 깊은 내면의 평안과 기쁨이다. 사람은 일단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잃게 되면, 깊은 내면의 고통, 걱정, 근심, 불안, 공포가 점점 커진다. 마음이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고 스스로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그까짓 능력과 힘이 얼마나 되겠느냐? 네가 혼자 마주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네가 마주하는 것은 각종 더러운 귀신과 악령이다! 겉으로는 형상을 갖춘 피와 살이 있는 다양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모두 사탄에 속하며, 그들은 사탄, 다양한 악령, 더러운 귀신에게 조종당한다. 한 사람이 얼마나 능력이 있어야 이것들을 마주할 수 있겠느냐? 그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평안과 기쁨을 가질 수 있겠느냐? 아무리 큰 인물이라 해도,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해도, 그가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이 세상에서 살면 그는 마음속으로 무엇을 느끼겠느냐? 그가 혼자 조용히 있을 때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해 생각해 보면, 매번 일이 닥칠 때마다 매우 어렵게 직면했으며, 그 모든 일을 처리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그는 사람의 힘과 수단으로 그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했는데, 이는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큰 인물은 그런 고통을 겪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사실 큰 인물의 고통이 훨씬 더 크다. 평범한 사람이 마주하는 것은 작은 생활권이지만, 큰 인물이 마주하는 것은 더 큰 생활권이기 때문에, 더 큰 고통과 괴로움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이 즐겁겠느냐? (즐겁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일단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잃게 되고,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면, 어떤 날들을 마주하게 되겠느냐? 혈혈단신으로 고독하게 모든 더러운 귀신과 악령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날은 견디기 힘들다! 언제든지 상대방의 총에 죽을 수도 있고, 상대방의 계략으로 죽을 수도 있다. 그는 매우 지치고, 고통스러우며, 견디기 힘든 삶을 살아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믿으며 항상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중요시해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이 더 자유로우니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가 늘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언젠가는 그 결과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창조주의 손안에서 사람은 무한한 평안, 기쁨, 축복, 보호, 보살핌을 즐긴다. 하지만 만약 사람이 인성과 양심이 없다면, 이것들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버리면, 사람은 그 즉시 어둠의 고통이 다가온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때서야 그는 과거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 집과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었는지를 철저히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네가 “하나님을 떠난 것을 후회해요. 제가 다시 하나님을 믿어도 될까요?”라고 하면, 하나님이 기회를 주겠느냐?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여전히 너를 원할 수 있겠느냐? 너는 사탄을 좋아하지 않느냐? 너는 마음속으로는 사탄을 좋아하면서도 하나님을 따르며 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동의할 수 있겠느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자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런 일들을 묵상하고 확실히 알아야 한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 기쁨, 평안을 가질 수 있는지, 사람에게 어떤 것들이 평생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것들인지 등을 말이다. 이런 일들을 생각해야 한다. 네가 올바른 일과 진리를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네게 더 많이 깨우쳐 주고 인도해 준다. 그리하여 네가 깨닫고, 알고, 보게 한다. 또한 진리 실행과 진입에 있어 네가 점점 더 많은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게 한다. 그러면 너의 믿음이 더 커지지 않겠느냐? 네가 늘 게으르고 반발하며, 늘 진리에 반감을 갖고 싫어한다면,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싫어하고 늘 방탕하려 하고 하나님을 떠나려 한다면, 하나님의 인도, 보살핌, 보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강요하겠느냐? 네가 이런 태도라면 하나님은 분명 너를 깨우쳐 주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너는 믿음을 잃게 된다. 믿을수록 힘이 없고, 원망의 말을 하고, 관념과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문제를 만들게 된다. 일단 문제를 만들어 교회 사역을 교란하면, 하나님 집에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고 바로 제명하거나 출교할 것이니, 하나님을 믿는 너의 여정이 끝나게 된다. 이건 누구를 탓해야 하느냐? (자신을 탓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결국 이러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속담처럼 네가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또한 세상의 길을 선택해 사탄을 따르며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너를 버리고 포기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원, 말씀, 진리 생명은 무상으로 사람에게 주어진다. 너에게 돈을 요구하거나 너와 거래하지 않는다. 그런데 너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원망의 말을 하고 교회 사역을 교란한다면 이건 화를 자초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은 분명 너를 포기할 것이다. 이는 당연한 죗값이다. 이렇게 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했는데, 네가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억울해하며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너는 세상의 진흙 구덩이로 돌아가 네 마음대로 살아라! 하나님이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고, 이로써 사람의 결말이 정해질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하나님을 원하지도 않는데, 왜 하나님은 그를 죽게 하지 않는 걸까요?”라고 말을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느냐?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독해 이렇게 말한다. “그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를 저주하고 징벌한 후 파멸시켜야 해요!”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겠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일생이 어떠할지는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았으며, 하나님은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의 운명, 종착지, 결말은 이미 하나님이 정해 놓았다. 그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은 원래 그의 운명대로 그가 자연스럽게 살게 하며, 그를 사탄에게 넘기면 끝인 것이다. 마지막에 그의 삶이 끝나 그의 결말을 정해야 할 때 다시 정한다. 하나님은 이 모든 규칙을 깨트리지 않는다. 사람의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은 매우 이성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와 다르다. “네가 나를 따르지 않으면, 너를 괴롭혀 죽이겠다!”라는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음험하고 흉악하다. 이는 어떤 성품이냐? 이는 강도 특성으로, 바로 강도나 건달의 성품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나를 따르지 않으면 사탄에게로 돌아가라. 앞으로 우리 관계는 끊어질 것이며, 나의 보호와 보살핌을 너는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것이다. 네 몫의 복은 없다.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네 마음대로 선택해라!”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고 강요하지 않는다. 사탄처럼 네가 원하지 않는데도 끝도 없이 늘 너를 통제하고 붙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원칙을 가지고 일을 한다. 사람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요구하지만, 강요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피조물로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없다.

2017년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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