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 변화를 위한 실행의 길
성품 변화란 무엇이냐? 대부분의 사람은 잘 알지 못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성품 변화는 중요한 이상(異象)이다. 성품 변화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은 이제 막 창조되고 사탄의 패괴를 겪지 않은 인간이 아니라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사탄의 독소와 성품으로 점철된, 사탄과 똑같으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은 마치 암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그 과정이 복잡하지 않겠느냐? 수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화학 요법을 받아야 하고, 일정 기간 후에는 재검도 받아야 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그러니 성품 변화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사람이 상상하는 행위나 성격의 변화가 아니다. 성품 변화는 사람이 도달하고 싶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은 하나님 말씀에 분명히 설명되어 있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을 믿는 그날부터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 사람을 구원하여 어떤 성과에 이르려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진리를 추구하여 성품 변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는 잘못된 관점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착실하게 좋은 사람이나 법과 기율을 지키는 사람, 또는 좋은 일을 많이 해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믿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무골호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표면적으로 사람다운 모습을 보이고 교양과 인내심을 갖추는 것, 또는 경건한 겉모습에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 남을 도울 수 있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요컨대 사람의 관념과 상상 속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 이런 관념이 있으며, 이런 것들이 존재하는데, 이 또한 일종의 사탄 독소이다. 예전에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 중 성품 변화 문제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하나님 믿는 일을 낯설어했는데, 이는 선천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기독교를 몇 년 믿었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그때까지 이 측면의 사역을 하지 않았고, 이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와 행동 방식, 그리고 명백하게 잘못된 관점이 다소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일은 고생을 많이 하고, 좋은 것을 먹지 않고, 좋은 옷을 입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과거 서양 국가의 천주교 수녀들처럼 말이다. 그녀들은 하나님을 믿는 일이 평생 고통을 많이 겪고, 좋은 것을 적게 누리며, 돈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거나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다른 사람을 많이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들은 평생 고통을 겪는 것을 중시했기 때문에 좋은 음식을 먹지 않았고 좋은 옷도 입지 않았으며, 죽을 때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은 고작 몇 달러어치에 불과했다. 그녀들의 행적은 아마 전 세계에서 뉴스로 보도되었을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런 자가 바로 모두의 마음속 좋은 사람이고 선한 사람임을 의미한다. 또 이래야만 종교계가 인정하는 선행하는 사람이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며, 변화가 있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신앙이 있는 사람임을 의미한다. 그러니 아마 너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너희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으며 상스러운 말이나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사람, 겉모습만 봐도 하나님을 믿는 자 같은 그런 사람,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이제 막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의 심리 상태이다. 그들은 이것이 바로 성품 변화이며, 이런 자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관점이 옳으냐? 이제 막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만이 이렇게 유치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진리를 조금만 깨달아도 이런 생각은 일찌감치 사라지게 된다. 이런 관점이 여태까지 네 마음속에 아무리 깊이 뿌리를 내렸을지라도 너희는 이 관점의 잘못된 점과 치우친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얼마나 되든 그 잘못된 관점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 일을 통해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지, 대체 어떻게 해야 진정한 사람이 되는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열납하며 얻고자 하는지를 참으로 아는 사람은 몇 명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참도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 주관적인 생각들이 여전히 네 사상과 관점을 주도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저는 지금까지도 제가 변화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남편이 하는 일이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내거든요. 또 이방인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을 증오하게 되고요. 이는 여전히 패괴를 드러내는 것 아닐까요? 여전히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한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이 말이 어디가 잘못되었느냐?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만을 중시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말하는 성품 변화가 사람의 성격과 성질의 변화를 지칭하는 것이겠느냐? 절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품 변화가 곧 성격 변화이며, 잘 참고 절대 성질을 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성품 변화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틀려도 단단히 틀린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성품 변화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워졌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한 가끔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 닥치면 여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성질을 부리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반성하고 인식하며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회개할 수 있으니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해 보아라. 이런 변화가 성품 변화를 의미하겠느냐? 너희는 이런 내적 상태를 어떻게 분별하느냐? 성품 변화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느냐? 성품이 변화한 사람의 내적 상태와 태도는 어떻겠느냐? (성품 변화란 저희가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자신의 패괴 본질을 인식하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며, 그리하여 조금씩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품 변화는 성질을 부리지 않거나 제약받고 성질을 덜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품 변화와 상관없습니다.) 올바르고 순수하게 이해했다. 우선 내가 질문을 하나 할 테니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만약 네가 성품 변화를 이루고 진리를 깨달았다면 일을 바라보는 네 관점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것이다.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때, 패괴된 인간과 합할 수 있겠느냐? 합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마음속으로 사탄과 마귀를 증오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패괴된 인간에 대해 거부감, 반감, 혐오가 생기게 된다. 각종 부정적인 사물을 몹시 미워하게 되고, 마귀에 속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더더욱 원치 않게 되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깨달아 얻게 되는 성과이다. 네가 진실로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본성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패괴된 인간의 공통된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괴된 사람들을 혐오하게 된다. 그들의 그릇되고 터무니없으며 황당한 관점을 보면 그들과 접하기 싫어지고 반감을 갖게 되며 그들을 버리게 된다. 특히 종교계가 미친 듯이 성육신을 정죄하며 극단적으로 진리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적그리스도 세력을 혐오하고 완전히 버리게 된다. 만약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인식한 사람이라면, 자연히 하나님과 적대하는 그런 사람과 하나님을 거역하고 저버리고 배반하는 사람을 혐오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런 사람들과 합할 수 있겠느냐? 그렇기에 생명 성품에 변화가 생기면, 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나 이방인들에게 특히나 혐오와 반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패괴된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저 참으면서 지혜롭게 생활할 수밖에 없다. 진리를 깨달았고 성품이 변화했다고 해서 그들을 버리거나 떠날 수는 없으며, 그들을 무시하거나 그들 앞에서 큰 소리로 소란을 피워서도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되고 지혜롭게 굴어야 한다. 너희가 아직 잘 알지 못하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너희 중 일부는 성품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것이란 성질이 없어지는 것이며, 사탄 마귀에게도 웃음을 띠고 온화하게 대하는 것이라고, 이런 게 바로 성품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이해가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이런 식의 이해는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왜 옳지 않다고 하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고자 많은 말씀과 사역을 했는데, 그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 진리가 생각을 주도하고 진리를 생존의 좌우명으로 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생각 없는 목각 인형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며, 성질도, 정상적인 희로애락도 없는 식물인간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을 혐오할 수 있는 그런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제 너희는 하나님이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을 변화시키려는 것인지 분명히 알 것이다. 하나님은 많은 말씀을 하였고 수많은 진리를 선포하였다. 그는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고 각각의 사람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너희는 그가 어떤 모습의 사람을 만들고자 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 나는 많은 형제자매가 “저는 하나님을 이렇게 오래 믿었는데도 여전히 많은 외부적인 일에 속박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떤 자매는 “이방인이 입은 것을 보면 저도 입고 싶고, 누가 예쁘게 꾸민 것을 보면 더 보고 싶어요.”라고 하고, 어떤 형제는 “돈이 많고 부유한 집을 보면 저도 돈을 벌고 싶고, 예쁜 여자를 보면 더 보고 싶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성질을 부리고 싶어지고요. 이런 패괴 성품이 지금까지도 변화하지 않아 일이 닥치면 잡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야 통제할 수 있을까요? 언제 변화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한다. 너희의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너희가 성품 변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희는 오직 행위, 겉면의 행동 방식, 너희의 성질과 성격적인 면에서 스스로를 단속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는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없다. 자유롭게 말하거나 희로애락을 갖거나 성질을 부리는 등의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고 하나님의 어떤 말씀에서 그러더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더냐?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사람의 패괴 본질을 대거 폭로하고, 어떻게 사람의 패괴 성품을 인식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그런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있는지를 알려 줄 뿐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빠져나온 다음에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하여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사람이 되라고 알려 줄 뿐이다. 성품 변화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알게 된 후에도 계속 겉면의 행동 방식에 신경 쓰겠느냐? 계속 겉면의 이런 일들에 얽히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성품 변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영원히 성품 변화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영원히 성품 변화에 이르지도 못할 것이다. 특히 이제 막 종교계에서 넘어온 사람들의 경우,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아직 종교계의 사상 관념에서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영적인 사람, 경건한 사람, 겸손하고 인내하는 사람,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무골호인, 선행을 즐겨 하는 사람이 되고자 추구하는데, 이는 틀려도 단단히 틀린 것이다! 이런 영적인 사람이나 무골호인이 되고자 추구한다면, 너는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사람이다. 무골호인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자신을 인식하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무골호인이 되고자 추구한다면 영원히 진리를 얻을 수 없으며, 영원히 자신을 인식하고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없고, 영원히 하나님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품 변화에 이르려면 먼저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리 추구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성품 변화는 의식이나 규례상의 변화가 아니며 표면적인 차림새, 또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성격, 성질의 변화는 더더욱 아니다. 성격이 느긋한 사람을 성격이 조급한 사람으로, 또는 성격이 조급한 사람을 성격이 느긋한 사람으로 바꾸는 것도 아니고, 내향적인 사람을 외향적인 사람으로, 말이 많은 사람을 말이 없는 사람으로 바꾸는 것 역시 아니다. 성품 변화는 이런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요구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고 차이가 너무도 크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관념과 상상에만 기대어 일을 처리하게 되는데 결국 바른길에서 벗어나고 진실한 수확이 없이 몇 년의 세월을 허비하게 된다. 사람은 그때는 아직 하나님을 믿으면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몇 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하나님을 믿을 때 가장 주요한 것은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여 구원받는 것임을,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때야 하나님이 말하는 성품 변화는 표면적인 행위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우선 자신과 자신의 패괴 본질을 인식하고 사람의 본성 본질을 인식하는 데 애쓰며 근원을 찾고, 그런 다음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진리를 실행해 내어 하나님에게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생명 성품의 변화인 것이다. 너희는 이제 너희가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었음에도 성품에 변화가 없는 근원이 무엇인지 깨달았느냐? 그건 바로 너희가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여 이루려는 성과와 도달하려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방면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도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는 알아요. 하지만 스스로 자제를 못 해서 늘 자신이 좋아하거나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만 하게 돼요.” 네가 어떻게 주장하든 결국 그렇게 주장한다는 것은 네가 여전히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갖가지 관념과 상상이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성품 변화에 대해 얘기할수록 너는 성품 변화가 너에게서 점점 더 먼 것 같고, 성품 변화에 이르기가 어렵고 이르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느낌이 더 들게 된다. 성품 변화와 사람의 본성 본질을 폭로하는 일에 대해 얘기할수록 너희는 자신의 성품이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다는 느낌, 스스로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들지 않느냐? 내가 왜 너희에게 성품 변화에 대해 묻겠느냐? 사실 나도 너희가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저희를 일부러 괴롭히시는 것 아닙니까? 저희가 대답하지 못할 걸 아시면서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너희를 일부러 괴롭히는 게 아니라 너희가 질문 하나하나 다 마음속에 새기길 바라는 것이다. 내가 교제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 또는 주제 하나하나 모두 단순히 생각만 좀 해 보고는 깨달은 것 같다고 여겨 그냥 넘어가 버리면 안 된다. 내가 지금 교제하는 모든 말, 모든 방면의 내용은 전부 너희가 앞으로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그중 어느 것 하나도 빠져선 안 된다. 너희는 이런 것들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묻는 것은 너희도 자신의 마음속에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있지는 않은지 한번 반성하고 성찰해 보길 바라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일을 대할 때 사람의 관념과 그릇된 사상 관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하게 반성해 봐야 한다. 사실, 사람은 모두 생각과 사상이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일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상 관념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한번 성찰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는 종교계에서처럼 형식만 거치는 것이 아니다. 즉,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설교를 듣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겠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주제는 모두 인류가 나눌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의 주제이며 그 어떤 주제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금 얘기하고 있는 주제는 앞으로의 인류의 종착지에 관한 것이자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요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주제를 탐구하고 있고 이런 주제들을 매일같이 교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제했는데도 여전히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주제들을 지금까지 교제했는데도 여전히 교제를 끝내지 못했다. 그 어떤 주제도 완전히 다 말하거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생명에 관련된 일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설교를 많이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필기를 많이 한다고 해서, 유명한 구절들을 외우고 예배에 참석해서 이런 것들로 형제자매와 교제한다고 해서 끝나는 그런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말한 모든 방면의 진리는 다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이자 모든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진리라는 사실을 너는 중시해야 한다. 네가 만약 하나님이 왜 사람에게 성품 변화를 이루도록 요구하는지 깨닫는다면 너는 마음속으로부터 진리를 중시하기 시작할 것이고 진리에 닿도록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네가 성품 변화가 무엇인지 간파하지 못한다면 너는 진리를 사랑하지도, 중시하지도 않을 것이고 오히려 진리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결국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은 깨우쳐 주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모습을 감춘다. 네가 갈망하고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너를 깨우쳐 주고 너에게 역사하여 네가 각 방면의 진리에 대해 조금씩 분명하게 깨닫도록 할 것이다. 너희가 보기에 성품 변화라는 이 주제는 중요하겠느냐, 중요하지 않겠느냐? (중요합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너희는 지금 시급히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신이 진리가 없고 변화가 없어 재난이 닥치면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고 재난 속에서 고통받을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지금 깨달은 진리가 너무 적어 나중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시련을 줄 때 굳게 서지 못하고 넘어지게 되면 지금까지의 공로가 다 수포로 돌아가 버리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마지막 단계의 사역이기 때문에 사람이 만약 이 단계에서 구원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완전히 실패해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생애도 끝나 버려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다.
성품 변화에 이르고 싶다면 우선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조금 전에 나는 일부 사람들이 관념적으로 상상하는 성품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고, 너희들도 이런 사람들의 주장과 관점이 옳지 않고 잘못됐으며 하나님이 원하는 성품 변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너희는 성품 변화를 어떻게 인식해야겠느냐? 어떻게 해야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있겠느냐? 성품 변화에 이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만약 이 방면의 자질을 갖추지 않았다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인식할 수 없으며 결국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없다. 왜냐하면 성품 변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여러 가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 행위, 태도를 분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내적 상태를 대조해 보고, 그런 다음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고, 이런 패괴 성품들의 본질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그러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점차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있다. 너희가 보기에, 깊이 패괴된 인류가 만약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괴 성품을 인식할 수 있겠느냐? 인류가 깊이 패괴됐다는 진실을 깨달을 수 있겠느냐? 패괴된 인간은 모두 교육을 권장하고, 지식을 받아들이고 지식을 겨루고 있지만 인간 세상은 오히려 갈수록 사악해지고 어두워지고 있다. 이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도록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자는 누구겠느냐? 그래서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여 정결케 되지 않는다면 성품 변화에 이르러 사람다운 모습으로 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시고 폭로하시는 말씀은 읽고 싶지 않아요. 이런 말씀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괴롭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대하면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하면 성품 변화에 이르기 쉽겠느냐? 네가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말씀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다. 하나님 집에는 하나님 말씀 찬양과 체험 간증 영상이 있으니 보고 배우면 된다. 너는 그런 찬양을 많이 부르도록 해라. 찬양은 멜로디가 있어서 배우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쉽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 찬양을 부르는 법을 배우면 효과가 조금 더 좋고 일부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우선 이런 말씀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진리에 대한 자신의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데 흥미를 불러일으키기까지 해야 하니 사람은 도대체 하나님의 요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겠느냐? 찬양으로 사람의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하니 이는 사람이 정말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도 훌륭하기 때문에 어느 방면의 진리를 교제하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사람에게 이롭다. 그런데도 사람은 먹고 마시기 싫어하니 사람은 정말이지 하나님의 요구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우선, 매번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마다 하나님에게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도 성품 변화를 추구해서 좋은 종착지를 얻고 싶어요. 저는 재난에 빠질까 봐 두렵거든요. 저도 당신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고 싶지만 당신이 사람을 심판하고 폭로하시는 말씀은 너무 가혹해요. 그걸 보면 마음이 아파서 읽고 싶지 않아요. 제가 당신의 말씀을 깨닫고 당신의 말씀이 바로 제 생명에 필요로 하는 것이자 제가 얻어야 할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저를 깨우쳐 주시고 도와주세요.” 네가 만약 이렇게 성심성의껏 기도한다면 어느덧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여 네가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해 어려운 것으로 나아가며 점차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깨닫도록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게 좋아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었어요. 하지만 주로 어떤 진리들을 깨달아야 하는지, 어떤 진리 실제에 진입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추구해야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느냐? 우선 하나님의 말씀에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몇 번 읽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반드시 진지하게 여러 번 읽어야 하고 자주 묵상하고 교제해야 할 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제 체험이 있을 때까지 실행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밖에 명확하게 교제하지 못하는 주제들은 너희가 교제할 수 있는 정도로만 교제하면 된다. 도저히 명확하게 교제할 수 없는 주제는 우선 제쳐 놓고 너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금의 체험 정도로 이를 수 있는 주제를 먼저 골라 쉬운 것에서부터 어려운 것 순으로 교제하면 된다. 생명 진입은 간단한 일이 아닌데, 3년, 5년 믿었다고 해서 깊이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어른이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자라고 조금씩 쌓여 20~30년을 거쳐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 또한 그렇게 오랜 기간을 거쳐야 한다.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련된 진리는 평생에 걸쳐 체험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데, 스스로 성품 변화가 있는지는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요?” 이는 많은 형제자매가 관심을 갖는 문제이다. 갓난아이가 막 태어나면 어머니는 그에게 젖을 먹이고 그를 보살핀다. 그 아이가 자신이 언제 클지에 관심을 갖겠느냐? 그럴 리 없다. 왜냐하면 그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도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볼 필요 없다. 네 분량이 커지면 자연스레 깨달을 것이고, 네가 변화할 때가 되면 자연스레 변화할 것이다. 네가 체험하는 모든 단계, 모든 시기에 하나님은 네가 공과를 배울 수 있도록 어떤 일들을 하고 너에게 어떤 환경들이나 사람과 일, 사물을 마련해 준다.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 네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지, 지금 너는 또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아라. 그 둘을 대조해 보면 대체 자신에게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너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는 것, 많이 교제하는 것, 설교를 많이 듣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많이 공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관건이자 성품 변화에 이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도 읽지 않고 진리도 교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성령의 감동을 느낄지, 어떻게 해야 영 안에서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영적일지만 중시한다면 성과에 도달할 수 있겠느냐? 늘 이런 것들만 중시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 이런 것들은 모두 부차적이다. 그럼 무엇이 가장 중요하겠느냐?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설령 매일 예배드리고 종교 의식을 아무리 잘 치른다고 해도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진리를 실행해 내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진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떠나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고 이방인에 속한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행위를 해도 너는 구원받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 공들인다면 너는 공을 들이는 만큼 수확을 거둘 것이다. 그 수확이 도대체 얼마나 클지는 네가 따질 필요도, 가늠할 필요도 없으며, 관심을 가질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것은 너의 책임이 아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할 것이고, 네가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에게 설명해 주고 너를 깨우쳐 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누군가 또 “하나님은 언제 저에게 시련을 주실까요? 저는 과연 굳게 설 수 있을까요? 제 성품은 도대체 얼마나 변화했을까요? 하나님은 저에게 확답을 주실 수 없는 걸까요?”라고 묻는다면 이는 전혀 사리 분별을 못하는 말이다. 너는 이런 것들에 관심 가질 필요 없다. 언젠가 너에게 분량이 생기고 너의 성품에 정말로 변화가 있다면 어떤 환경이 닥쳐도 너는 이겨 내고 올바르게 대할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이 요구하는 방식에 따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도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겉면의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변화이고, 성품과 본질의 변화이다.
성품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고 몇 년 체험한다고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초반에 나쁜 버릇을 고칠 때부터 자주 실패하고 넘어져서 이렇게 생각한다. ‘글렀어. 난 구제 불능이야. 성품 변화는 이제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내가 변화할 수 있을 리 없어. 이 정도로 작은 결점과 나쁜 습관을 바꾸는 것도 이렇게나 어려운데 성품 변화는 더 어렵지 않겠어?’ 그는 소극적으로 변하고 자신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려고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를 책망하고 훈계하면 그는 바로 반감을 가지고 소극적으로 변하여 본분도 이행하려고 하지 않고 진리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이는 어떤 내적 상태이겠느냐? 이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너희도 이런 적이 있었느냐? 너희는 자신이 생명 체험의 과정에서 늘 소극적이고 연약하며 실패하고 넘어질까 봐 두려우냐? 두렵든 두렵지 않든 성품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품 변화는 인류의 패괴 본성이라는 근원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는 것으로, 사람이 환골탈태하며 완전히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암에 걸려 종양이 자라면 수술대에 올라 그 종양을 잘라 내야 하는 것처럼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고 매우 복잡한 과정이 있다. 성품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너는 아마 많은 일을 겪고 나서야 진리를 조금 깨닫고 한 방면의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과 일, 사물, 여러 환경을 체험하고 굽은 길을 많이 걷고 나서야 미세한 변화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변화가 얼마나 생기든 그 변화는 귀중한 것이고, 하나님은 그 변화를 소중히 여기고 기념한다. 왜냐하면 네가 고생도 많이 하고 대가도 많이 치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기 때문에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소망하는지 알고 있고, 사람의 연약함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으며,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는 더더욱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실제의 하나님을 따르려면 이런 의지가 있어야 한다. 즉, 아무리 커다란 환경이 임하더라도,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아무리 연약하고 소극적이 되더라도 성품 변화에 대해서 믿음을 잃으면 안 되고, 하나님이 한 말씀에 대해서도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을 줬으니 사람은 그 약속을 받을 의지와 믿음, 끈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겁쟁이를 싫어하고 의지가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설령 네가 많은 패괴를 드러냈어도, 설령 네가 굽은 길을 많이 걸었더라도, 혹은 과오가 많고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있다 하더라도, 혹은 종교계에 있었을 때 하나님을 대적한 적이 있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마음을 품었던 적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이런 것 등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직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언젠가 변화할 수 있는지만을 본다. 성경에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있는데, 어째서 예수가 그런 비유를 들었겠느냐?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은 진실하며, 하나님은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와 변화할 기회를 준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이해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과 패괴된 정도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사람이 넘어지거나 실패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마치 어렸을 적 걸음마를 배울 때 신체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고, 발이 걸리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도 모든 사람을 잘 안다. 그는 모든 사람의 어려움과 연약함, 필요를 알고 있다. 더욱이 사람이 성품 변화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고, 어떤 연약함이 생겨나고, 어떤 실패를 겪을지 잘 알고 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한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연약하더라도 네가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이 도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성품이 변화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너에게 성품이 변화될 기회가 있다면 살아남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살아남을 희망이 있다면 하나님께 구원받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품 변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성품 변화를 위해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아주 깊이 패괴되었습니다. 진리란 무엇인지 모르고 성품 변화란 무엇인지는 더더욱 알지 못합니다. 당신의 구원과 도움, 공급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당신의 말씀을 깨닫고 실행할 수 있는지 알게 해 주시고, 제가 당신의 말씀을 깨닫고 체험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말씀을 저의 생활에 적용하여 생활 속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일거수일투족, 마음가짐 하나하나, 하는 일 모두에 당신의 깨우침과 인도가 있게 해 주십시오. 저는 그러기를 바라고 그러기를 갈망합니다. 저는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 내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삶으로써 당신을 흡족하게 할 수 있길 갈망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너무 많이 패괴되었고 아직 스스로 인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저를 드러내시고 도와주시고 저에게 공급해 주세요. 저에게 지금 필요한 건 바로 그것입니다.” 너는 이렇게 기도해야 하고 이런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이렇게 기도하고 나면 너의 마음과 너의 생활은 너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의 의지는 네가 어떻게 기도하고 구하는지에 따라 변하고, 하나님도 그에 따라 너의 의지를 실현시켜 주기 때문이다. 너는 늘 실패를 두려워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실제로 무슨 일이 닥치기도 전에 너는 두려워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네가 성품 변화라는 일에 대해 의지도, 믿음도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선, 성품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이토록 깊이 패괴되었는데, 너희가 보기에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된 지는 이미 몇천 년이나 되었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남김없이 드러났고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사람이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사탄의 본성은 사탄과 비교했을 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하나님과 적대되는 정도에 이르렀고, 진리,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사람은 관심이 없고 반감을 가지며 혐오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사람이 이 정도로 패괴되고 무감각해져 진리를 깨닫는 것만 해도 쉽지 않고 성품 변화에 이르는 것은 더욱 어렵다. 성품 변화는 행위를 바꾸는 그런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품 변화라는 일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고 올바른 태도로 대해야 한다. 엉뚱한 생각을 하며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있어요. 하나님의 그 많은 말씀을 계속 먹고 마셔 왔고요. 하나님께서 사역을 조금 더 하시고 이적과 기사를 조금 더 행하시면 제가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관점은 비현실적이고, 그저 사람의 상상일 뿐이다. 사람의 관념과 상상대로라면 하나님은 심판 사역을 할 필요도 없고, 이토록 많은 말씀을 하여 인류의 패괴를 폭로할 필요도 없으며, 사람에게 시련과 연단을 줄 필요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의 경륜에서 하나님은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겠느냐, 아니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탄과 싸우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탄과 싸우시는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러니 앞으로는 “하나님은 왜 사탄을 멸하지 않으실까요?”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말은 하지 마라. 사탄의 패괴가 없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고자 이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할 수 있었겠느냐? 우리가 오늘날 이토록 많은 진리를 얻을 수 있었겠느냐? 만약 사탄의 패괴가 없었다면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경륜은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이 말세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온전케 하여 그들이 살아남도록 할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한 무리의 사람들을 얻기 위해 사탄과 싸우는 것이다. 전적으로 우리 이 무리의 사람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 성육신하여 사탄과 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경륜의 취지와 핵심은 바로 진정한 사람 한 무리를 얻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이다. 이로써 하나님을 믿고 성품 변화를 이루고, 온전히 하나님이 사랑하고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너희에게 성품 변화에 이르는 길이 있느냐? 성품 변화는 어떤 것들이 변화되는 것인지 너희는 인식하고 있느냐? 너희는 평소에 이 방면의 진리를 교제한 적 있느냐? 조금 전 우리는 성품 변화는 겉면의 행위, 행동 방식 또는 규례의 변화도, 성격의 변화도 아니라고 교제했다. 그럼 성품 변화란 도대체 무엇이겠느냐? 너희는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우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성품이 변화되기를 바라는지, 어떤 것이 변화되기를 바라는지 깨닫고 이해해야 한다. 성품 변화는 행위나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유식하고 박식하게 만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성품 변화는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통해 모든 사람의 사상 관점을 바꾸고, 사람에게 진리를 깨닫도록 하여 일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한 가지 방면에서는 그렇고 다른 한 가지 방면에서는 사람이 처신하는 원칙을 바꾸는 것, 즉 사람의 인생관을 바꾸는 것이다. 또 다른 방면에서는 사람의 뿌리 깊은, 사람이 드러내는 사탄의 본성과 사탄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성품 변화에는 대체적으로 이 세 가지 방면이 있다.
우선 성품 변화의 첫 번째 방면인 일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대해 얘기해 보자. 사람의 사상 관점이란 모든 일에 대한 사람의 견해를 말한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너무도 깊이 패괴되어 그릇되고 황당한 사상 관점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우선 사람이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겠다. 너희는 지식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과학은 어떻게 인식하느냐? 지식과 과학이 진리이겠느냐? 지식과 과학이 사람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여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도록 할 수 있겠느냐?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도록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도록 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구원받고 좋은 종착지를 얻도록 할 수 있겠느냐? 전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지식은 사람의 일생에서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지식은 이 세상에서 귀중한 것이고 사람은 유식할수록 지위가 높아지고 급이 높아지며 고귀하고 교양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여 지식이 풍부해지면 모든 것, 즉 지위, 금전, 좋은 직업과 좋은 진로를 다 갖게 되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지식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지식이 없으면 무시당하고 차별받을 뿐 아니라 아무도 너와 사귀거나 어울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지식이 없으면 하층 사회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지식을 무척 숭배하고 유독 높이 평가하며 매우 중요하게, 심지어 진리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저에게 지식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도 지식과 문자를 통해 말씀하시지 않나요?” 이는 서로 별개의 일이다. 내가 지금 말하는 지식은 인류의 역사, 지리, 정치, 문학, 현대 과학기술, 또는 어느 방면의 기능과 과목 등을 가리킨다. 사람은 이런 것들이 어느 방면의 특기라고 생각하고, 지식이 있으면 이 세상에서 자리 잡을 수 있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지식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튼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사람이 가진 한 방면의 사상 관점일 뿐이다. 옛말에 “책 만 권을 읽는 것은 만 리 길을 걷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무슨 뜻이겠느냐? 바로 네가 책을 많이 읽을수록 견문을 넓힐 수 있고, 형통하게 되고, 어느 무리에 있든 남들이 우러러볼 것이며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이런 사상 관점을 가지고 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을 못 다니고 대학 졸업장을 갖지 못한 사람은 평생 아쉬움을 느낀다. 그래서 자신의 후손은 반드시 공부를 많이 시켜서 대학에 진학시키고 고학력자로 만들 것이며, 더 나아가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겠다고 결심한다. 모든 이들이 이런 식으로 지식을 갈망하고 바라보며 생각하고 대한다. 그래서 많은 부모가 전력을 다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심지어 가산을 탕진해서라도 자식을 기르고 자식을 공부시킨다. 심지어 아이를 어느 정도로 가르치는 부모도 있겠느냐? 밤에 세 시간만 자게 하고 자식에게 계속 공부하고 책 읽으라고 강요할 뿐 아니라 옛날 사람들처럼 머리를 대들보에 묶어서라도 잠을 쫓으라며 잠을 못 자게 한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늘 이런 이야기가 있어 왔고 이런 비극이 발생해 왔다. 이는 사람이 지식을 갈망하고 숭배하여 생긴 결과다. 내가 이런 말들을 하면 너희는 아마 상당히 반감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 중 일부는 지식이 뛰어나고 학력도 높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너희의 학력이 높은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너희가 이 일을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이제 너희에게는 사탄에 속하는 것을 올바르게 대하고 이해하고 인식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너희에게 자식을 길러 대학에 진학시키고 그가 학위를 취득한 뒤 좋은 직업을 구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너희를 제한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나의 관점을 말하는 것이고 패괴된 인류가 지식을 얼마나 숭상하는지 폭로할 뿐이다. 지금 너의 지식수준이 얼마나 높든, 학벌과 학력이 얼마나 뛰어나든 내가 지금 얘기하는 것은 지식에 대한 사람의 관점과 지식에 대한 나의 관점이다. 너희는 하나님이 지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아느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인류의 과학이 발달하기를 바라고 인류가 과학 지식을 더 많이 깨닫기를 바라지 사람이 너무 뒤떨어져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지만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봉사하도록 이용하는 것이지 이런 것들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보기에 얼마나 좋든 이런 것들은 모두 진리가 아니며 진리를 대체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도 말씀에서 간혹 유가 학설이나 사회 과학 같은 지식 방면의 관점과 견해들을 언급하긴 하지만 그저 상징적으로 일부 언급하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 말씀의 행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인류의 지식을 혐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의 이런 지식들 속에는 간단한 문구나 도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일부 사상 관점이 포함돼 있고, 사람의 황당무계함, 편견, 그리고 사탄의 독소도 포함돼 있다. 어떤 지식들은 심지어 사람을 현혹시키고 패괴시키기도 한다. 이런 지식들이 바로 사탄의 독소이자 악성 종양으로, 사람이 일단 받아들이고 파악하면 사탄의 독소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악성 종양이 되어 온몸으로 퍼질 수 있다. 만약 하나님 말씀의 치료, 진리의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람은 죽게 된다. 그래서 배운 지식이 많을수록, 파악한 지식이 많을수록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 어렵고 오히려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한다. 왜냐하면 지식은 모두 사람이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으며 대부분 다 사람의 생활과 관련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학교에서 지식은 많이 배울 수 있지만 지식의 출처, 그리고 지식과 영적 세계와의 관계는 조금도 명확히 볼 수 없다. 사람이 배우고 파악하는 지식은 대부분 다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에 위배된다. 특히 유물론과 진화론은 모두 무신론의 궤변과 사설에 속하므로 의심할 여지 없이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황당한 이론이다. 만약 네가 역사책들, 명인의 저서와 위인전기들을 읽거나 어떤 분야의 과학 기술을 배우면, 너는 무엇을 얻게 되느냐? 예를 들어, 사람이 물리를 배워 일부 물리 원리와 뉴턴의 학설 혹은 다른 학설들을 익혔다고 해 보자. 사람이 이것들을 배워 마음에 새기면 이것들의 통제를 받는다. 이것들은 네 내면에서 너의 생각을 주도한다.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너는 ‘하나님 말씀에는 어째서 지구 인력에 대한 이야기가 없지? 왜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지? 달에 공기가 있는지, 지구의 산소는 얼마나 되는지 하나님은 어째서 이러한 것들을 말씀하지 않으실까? 하나님은 이것들을 밝혀 주셔야 해. 이것들이야말로 밝힐 필요가 있는 것이고, 인류에게 말씀해 주셔야 하는 것들이야.’라고 여기게 된다. 네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너는 진리와 하나님 말씀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고, 네가 배운 지식 이론을 주요한 위치에 둘 것이다. 너는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대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지식적인 것은 사람에게 그릇된 감각을 주어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만든다. 너희가 믿든 안 믿든, 너희가 오늘 이를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언젠가 너희는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지식은 사람을 멸망으로 이끌며, 사람을 지옥으로 이끌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너희는 간파할 수 있느냐?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너희 중 지식을 아주 많이 갖춘 사람, 학력이 아주 높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풍자하거나 비꼬는 것이 아니고 그저 사실을 얘기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너희가 이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이 방면에 대해 인식하라는 것이다. 지식이라는 것은 너에게 머리와 생각을 써서 하나님이 하는 모든 것을 분석하고 대하도록 한다. 지식은 네가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는 데 방해물이자 장애물이 되고, 너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만들고, 네가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너는 이미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겠느냐? 어떤 지식들이 실용적이고 어떤 지식들이 사탄에게서 비롯된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인지 분별해야 한다. 만약 네가 받아들인 것이 모두 무신론의 지식, 엉터리 지식이라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가로막을 것이고, 너와 하나님의 정상적인 관계뿐 아니라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교란할 것이며, 너의 생명 진입도 방해할 것이다. 너는 이렇게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옳다. 이 주제에 대해 너희는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나는 일부 형제자매의 학력이 꽤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너희를 공격하는 것도, 너희를 비꼬거나 배척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 갑자기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몇 마디 언급한 것은 그저 너희에게 일깨워 주려는 것이지, 너희 중 학력이 높거나 지식과 소양이 좀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너희를 곤란하게 하거나 너희를 소극적이고 의기소침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려던 게 아니다. 너희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 한시름 놓을 수 있겠다.
이토록 많은 내용을 교제하였으니 이제 너희도 성품 변화를 이루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성품 변화는 사람이 도리를 깨닫고 규례를 좀 지킨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먼저 자신을 인식해야 하고, 너의 사상 관점에서부터 반성할 수 있어야 하며, 네 마음속에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는 사상 관점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하나님이 혐오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헤칠 수 있어야 한다. 너는 자신의 사탄 본성의 문제, 그리고 네가 평소에 드러내는 여러 사탄 성품을 인식하고 있느냐? 그것들을 진실하게 해부해 낼 수 있느냐? 패괴된 인간은 모두 사탄 성품을 갖고 있고,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수많은 그릇된 사상 관점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똑같이 내면에 진리와 적대되는 일부 패괴된 것들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하나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진리에 부합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인정하는 문제들이다. 조금 전에 나는 어떻게 사람의 지식을 인식해야 하는지, 왜 사람의 지식에는 황당무계하고 그릇된 것들이 많다고 하는지에 대해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언짢아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픈 곳이 건드려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너희의 수많은 그릇된 관점은 바로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런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지식들로 인해 그릇된 사상 관점이 생겨났고, 또한 그것은 너희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졌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그릇된 관점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진리를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울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진리를 받아들이길 바란다. 설령 너희가 마음속으로는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고 받아들이려고 시도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너희는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하나님의 요구와 점점 더 가까워질 것이다. 만약 이렇게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지도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는다면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언제까지나 그저 구호에 불과할 것이고, 너희는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오늘 내가 지식에 대한 견해를 조금 얘기하여 너희를 아주 거북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만약 너희의 기분이 언짢았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너희는 어쨌든 이런 현실들을 직면해야지 회피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만약 현실을 회피한다면 너의 사상 관점 속에 존재하는 것이 그른 것인지 옳은 것인지 언제 알 수 있겠느냐? 너는 알 수가 없다. 너도 언젠가는 이런 사실들을 직면해야 한다. 이방인이 “못생긴 며느리도 언젠가는 시부모를 뵈어야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이제 하나님을 믿는 네가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려면, 생명 진입을 하고 성품 변화에 이르고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너는 이런 사실들을 직면해 공과를 배워야 하고, 약간의 괴로움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싶은데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열지 못하고, 다음에 또 같은 일이 닥쳐도 삼사일 동안 괴로워하고 여전히 입을 열지 못하지만 또다시 같은 일이 닥치면 어느덧 너는 자신의 사상 관점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님이 한 말씀을 인정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고 조금의 거짓도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나님이 인간을 가장 잘 알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진실하게 인정하게 된다. 언젠가 네가 이 정도로 체험하게 되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선 것이고 생명 성품 변화의 정상 궤도에 들어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하나님이 하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기에 말씀을 들으면서 괴롭지도 않을 것이고, 하나님이 폭로하는 모든 사실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반감을 갖지도 도피하지도 않고 정상적으로 직면할 것인데, 이는 네가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진입했다는 증거이다. 오늘 우리는 소소하게 첫머리를 열었고 작은 실험을 하나 진행했다. 너희는 기분이 조금 언짢았을 것이고 조금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개의치 않으니 너희도 개의치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말씀은 이보다 더 가혹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약 정말로 너희를 심판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이보다 더 가혹할 것이다. 패괴된 인간, 그러니까 정상적인 인성을 갖추지 않은 인간, 막무가내인 인간, 눈을 부릅뜨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정죄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을 본다면 하나님이 좋은 태도로 말씀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좋은 태도로 사람을 폭로할 수 있겠느냐? 그럴 리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상당히 가혹하고 준엄하며 가차 없이 정곡을 찌를 것이다! 너희가 오늘 교제한 이 정도의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는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좋은 시작을 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성품 변화의 첫 번째 방면에서 우리는 사상 관점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작은 예시를 하나 들어 다들 알고 있는 지식 방면의 주제에 대해 얘기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교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언짢아할 사람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의 기분을 고려하여 조금만 이야기했는데, 아주 완전하고 분명하게 말하지도 않았다. 너희가 체험하는 과정에서 이 방면의 진리를 천천히 묵상하고 천천히 구하며 지식이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앞으로 이 방면의 주제를 또 교제할 수도 있는데, 그때는 너희가 마음속으로 괴롭지 않길 바란다. ‘나를 일부러 괴롭히는 거 아니야? 나를 두고 하는 말 아니야?’라고 느끼지 않길 바란다. 그런 마음과 생각들이 없길 바란다. 우리 첫 번째 방면은 우선 여기까지 교제하도록 하자.
다음으로는 성품 변화의 두 번째 방면인 인생관에 대해 교제하겠다. 너희의 인생관은 무엇이냐? 너희의 생존 원칙은 무엇이냐? 너희는 조금이라도 인식하고 있느냐? 원칙은 있느냐? 마음속으로 파악하고 있느냐? 다시 말해,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느냐? 너의 인생관, 그리고 인생의 방향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이 되길 추구하는 것입니다.) (남은 반평생 동안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알아 가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께 구원받는 것입니다.) 너희가 한 말들은 모두 상당히 훌륭하다. 이는 모든 사람이 마음속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데 남몰래 힘쓰고 있고, 모두 하나님을 따르면서 진리를 얻기로 결심했으며, 마음속에 처신에 대한 올바른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또한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음속이 비어 있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동안 너희는 발전했는데 그것이 바로 변화이다. 최소한 이방인처럼 “세상을 사는 데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이제 이 말을 내뱉지 못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는다면 너희는 그 사람에게 반감을 가지고 그를 싫어할 것이다. 너희가 지금 진리에 진입한 정도가 어떻든, 너희는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잘 따라야 하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알고 있어야 한다. ‘기왕 하나님께서 그의 경륜의 취지와 비밀, 그리고 사람을 구원하려는 뜻을 우리에게 드러내셨고,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도 모두 보게 되었으니 우리가 계속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건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한 일이고 하나님께 죄스러운 일이야!’ 너희가 이런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은 너희의 영이 이미 소생했고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어쨌든 본분을 이행하는 너희의 열성을 보면 너희는 모두 하나님이 요구하는 방향과 목표를 향해 열심히 추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다. 너희가 추구하는 관점에 어떤 차이가 있든, 모두 비교적 실제적인 것이고 상상이나 공론은 없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진실로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관점 아니겠느냐? 더 이상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혐오하지 않도록 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노하여 계속해서 노를 표출하지 않도록 하는 것, 하나님의 마음이 위로받도록 하는 것, 아브라함처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인생관 아니겠느냐? 이것이 사람이 가져야 할 인생관이다. 이런 인생관, 이런 생각이 너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네가 이런 방향을 향해 추구하면 세상의 금전, 지위, 명리와 같은 시험과 유혹이 조금 줄어들지 않겠느냐? 네가 이 방향을 향해 노력하고 실행하며 체험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덧 너의 마음속에서 네 생명의 좌우명이자 네 생존의 근원이 되고, 너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은 너의 생명이 되고 네 안에서 네 인생의 길이 된다. 그때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너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니 너의 인생관이 무엇인지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느 방향을 향해 추구하고 있느냐? 옳은 방향이냐? 올바른 길이냐? 너는 하나님의 요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 만약 네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추구한다면 방향은 옳은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비뚤어진 길을 조금 걷더라도, 혹은 조금 연약하거나 실패하더라도 다 상관없다. 하나님은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고, 네 생명이 자랄 때까지 너를 계속 붙들어 줄 것이다. 네 생각에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느냐?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의지가 있으며 정직한 사람을 좋아한다. 하나님은 네가 우매하고 연약해도, 지혜롭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추구하지 않는 것을 혐오하고, 진리를 깨닫고도 실행하지 않는 것을 혐오하고, 네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영혼 없는 짐승처럼 인생에서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도 없는 것을 혐오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너의 이런 태도를 혐오한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고 성품 변화에 이르려면 어떤 인생관을 가지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 인생 목표는 하나님에게 크게 쓰임 받는 사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이 좋겠느냐? 좋긴 하지만 사람의 분량에는 한계가 있고 사람의 자질과 조건 역시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네가 이 목표를 추구하는 게 옳긴 하지만 너에게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이 가져야 할 인생관은 바로 진리, 인성, 그리고 양심과 이성을 갖춘,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 즉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올바른 추구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이제 진정한 사람 아닙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이다. 코와 눈이 있는, 형상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보면 아직 진정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여전히 부족한 게 너무 많으며 깨달은 진리 역시 너무 적다. 진정한 사람, 진리와 인성을 갖춘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진리를 추구하고 얻어야 한다. 이는 개인의 실행 방면의 일이다.
성품 변화의 세 번째 방면은 사탄의 본성이다. 이는 우리가 가장 잘 인식하고 파악해야 하는 것이고, 성품 변화와 관련된 가장 주요한 방면이다. 사탄의 본성은 바로 사람의 패괴 성품이자 패괴 본질이다. 이 방면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이 방면에 대한 폭로가 가장 많다. 게다가 이 방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가혹하기도 하고 방식도 다양한데, 직접 폭로하고 심판한 것도 있고,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일부 방식을 통해 완곡하게 말한 것도 있다. 그러나 어찌 됐든 어떤 방식, 어떤 말투로 말하든 결국 하나님이 폭로하는 것이 사람의 본질이라는 사실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다. 사탄의 본성에 관해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장 전형적인 방면을 얘기했는데, 하나님은 두 편에 걸쳐 이 방면의 일을 폭로했다. 사탄의 본성 가운데 대표적인 본질이 무엇인지 너희는 알고 있느냐? (배반의 본성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 <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1>, <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에서 폭로한 배반의 본성으로, 이는 사탄 본성의 대표적인 전형이다. 나머지 방면들, 예를 들어 사람의 독선, 교만, 간사, 또는 사람의 사악, 대적 등은 모두 말씀 한 편 한 편마다 조금씩은 언급했지만 특정 주제에 대해 그 방면의 진리를 말씀 한 편에서 전문적으로 설명한 적은 없었다. 오직 ‘배반’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하나님은 두 편에 걸쳐 말씀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사람의 배반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배반은 하나님의 성품을 직접 거스르는 것으로, 하나님이 가장 증오하는 것이자 저주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배반의 본질을 어떻게 해부하고 대하겠느냐? 하나님은 분명 사람의 배반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증오하며 혐오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를 배반하는 것 역시 혐오한다. 배반은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사탄 본성이다. 사람의 배반의 본성은 그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겠느냐? 사탄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이 방면의 성품도 인식해야 한다. 배반의 근원은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사탄의 본성이 바로 배반이다. 사람이 일을 할 때 드러내는 성품은 하나님에게는 모두 배반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왜 이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이 일을 말하겠느냐? 바로 사람의 배반은 장소나 시간도 가리지 않고 항상 일어나는 일이며, 사람의 행위와 태도가 어떻든 사람의 본성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하나님에게 반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는 하나님에게 반발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싶지 않아요!” 너는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네 내면에는 배반의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배반의 본성이 있기에 너는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을 끝까지 따르지도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너의 생명으로 삼지도 않을 것이다. 배반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든,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먹고 마셨든, 하나님을 얼마나 인식하든 너의 본성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면,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으로 삼지 않는다면,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 방면의 진입이 없다면 언제까지나 너의 본질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너에게 성품 방면의 변화가 없다면 너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도 하나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깨달을 수도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도 싶고요. 이런 저를 두고 어떻게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네가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며, 네가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었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의 배반의 본성이라는 방면의 진리는 조금 심오하기 때문에 너희가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달으려면 아직 한동안 더 체험해야 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행하는 모든 일은 다 진리에 위배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이다. 너희는 아마 이 말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저희는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합니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저희는 많은 일들을 했는데,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따라, 사역지침에 따라 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한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어째서 늘 저희의 열의를 꺾으시는 거죠? 저희가 간신히 가정과 일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는데 어째서 또 저희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렇게 말하는 목적은 좋은 행위를 조금 했다고 해서, 무언가를 조금 버렸다고 해서, 고생을 좀 했다고 해서 사람 내면의 배반의 본성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인식하게 하려는 것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고생을 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다 필요한 것이지만 네가 고생할 수 있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고 해서 네 내면에 패괴 성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 내면의 생명 성품은 진실로 변화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흡족게 하거나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려면 아직 한참 멀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불순물이 너무 많이 섞여 있고 패괴 성품을 너무 많이 드러낸다. 리더 일꾼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이게 무슨 의미이겠느냐? 바로 그들이 일부러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부러 진리를 어기고 기어코 자신의 뜻에 따라 자신의 의도와 목적에 이르려 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독립 왕국을 세우려고 하며,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려고 한다. 하나님을 섬기지만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뜻이다. 이제 깨달았느냐?
우리 ‘배반’이라는 주제는 여기까지 교제하도록 하자.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사탄 본성의 특징이 바로 교만하고 잘난 체하는 것이다. 사람은 곳곳에서 교만을 드러내고 나타내기도 한다. 스스로 억제하려고 해도 억제하지 못하고 수시로 드러내고 분출하는데, 사람 스스로도 어쩌지 못한다. 분출하고 나면 또 후회하고, 후회하고 나서 다음에는 분출하지 말자고, 드러내지 말자고 결심하지만 여전히 통제하지 못한다. 왜 그런 것이겠느냐? 왜냐하면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지 않았고 사람의 패괴 성품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패괴 성품은 절대로 사람 내면에서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일이 닥치면 사람은 자연스레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데, 이는 모두 사람의 교만하고 잘난 체하는 성품으로 초래된 것이다. 네가 진리를 많이 깨닫고 진리를 실행할 줄 알며 진리 원칙을 파악한다면, 갈수록 진리를 실제적으로 깨닫고 하나님을 인식하며 하나님의 요구에 가까워지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다면 너의 교만한 성품은 점차 줄어들고 사라질 것이고, 생명 성품이 변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에야 사람의 배반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다고 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진정으로 구원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007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