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분을 올바르게 대하는 법을 배우다

중국 류창(劉强)

저는 평범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지켜본 어머니는 늘 밥을 하고 청소하셨고 아빠가 밥을 하거나 가사를 하는 건 본 적이 없어요. 외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어요. 가끔 외할머니가 외출하시면 외할아버지는 굶을지언정 밥은 하시지 않았어요. 밥하는 건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셨거든요. 다른 집들도 대부분이 “바깥일은 남자가,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라는 말을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여자는 집에서 밥하고, 남자는 밖에서 분주히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결혼 후에는 모든 가사를 당연하다는 듯이 아내가 도맡다 보니 가끔 저한테 가사를 조금 도우라고 하면 싫었어요. 밥 짓고 가사를 하는 건 여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2020년 여름에 리더가 본분을 이행하는 팀이 있는데 접대해 줄 사람이 없어서 급하게 찾고 있다면서 접대해 줄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제가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접대를 해 본 적도 없고 밥도 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 싶었죠. 근데 급하다고 하니까 일단 대답은 했어요. 접대하는 동안 저는 매일 주방을 중심으로 돌았어요. 그러니까 ‘이건 자매들이 할 일인데, 왜 나한테 시키지? 그리고 남자가 장 보러 가고 가끔 야채 장사랑 흥정도 해야 하니 이건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장 보러 갈 때면 사람들이 무시할까 봐 고민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 매번 너무 오래 있고 싶지 않아 서둘러 다녀오곤 했죠. 가끔 몇몇 형제들이 반찬이 짜거나 싱겁다고 말하면 너무 체면이 없어 보였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죠. ‘가사나 밥을 하는 건 다 아내가 하는 일이라 난 해 본 적이 없어! 더구나 나는 남자라고. 이건 여자들이 하는 일인데, 내가 잘 못하는 것도 정상이지, 왜 날 생각해 주지 못하지?’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언제까지 이 본분을 이행해야 하나.’ 싶으면서 가슴 한 켠이 시려왔어요. 평소에 다른 형제님들이 사역에 관해 웃고 떠들어도 저는 기쁘지 않았고, 어깨에 무거운 돌을 메고 있는 느낌이 들면서 언제면 이 본분을 이행하지 않아도 될까만 바랐죠. 그때는 밥하는 거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고 아침마다 국수만 좀 삶아 줬죠. 보니까 형제님들이 조금밖에 먹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입맛에 안 맞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그 당시에는 배추가 많았는데, 저는 삶아서 먹는 것밖에 할 줄 몰랐어요. 형제들이 잘 안 먹어도 신경 안 썼고요. 전 그저 배추는 어떻게 요리해도 맛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죠. 나중에 그 형제님들은 본분상 다른 곳으로 조정되어 떠났어요. 근데 책임자는 저에게 계속 접대 본분을 맡겨 줬어요. 너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아니, 나 같은 상남자한테 왜 계속 접대를 하라고 하는 걸까?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건 원래 자매가 해야 할 일인데, 남들이 보면 형제가 어떻게 이런 본분을 이행하냐고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그럼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남들보다 열등한 것 같더라고요. 한동안은 너무 체면이 안 서는 것 같아서 내적 상태가 많이 안 좋았어요. 본분을 내팽개치자니 이성적이지 못한 것 같고, 이 본분을 계속하자니 어떻게 이행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뭘 해도 적극적이지 않았고 마음을 쏟지 않았어요. 위생적인 면에서 청소할 게 보여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냥 보고 넘길 수 없어 청소를 해 주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어요. 그리고 교회에서 가져다준 음식 재료도 제때에 말리지 않아 결국 곰팡이가 펴서 버리는 일도 생겼죠. 리더가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 그러더라고요. “식재료에 곰팡이가 폈네요. 형제님이 마음을 들여서 말려야 하는 건 말리고, 빨리 먹어야 하는 건 제때에 소비하고 했으면 낭비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이런 문제가 터졌으니 본분에 임하는 본인의 태도를 반성해 보셔야겠어요.” 리더가 그렇게 말하니까 죄책감이 들었어요. 확실히 제가 마음을 쏟지 않아서 음식이 상한 거잖아요. 하지만 전 또다시 스스로를 위해 핑계를 댔어요. 저는 ‘원래 집에서 이렇게 뭘 말리고 하는 건 엄마랑 아내가 했던 거라 난 해 본 적이 없어. 근데 나한테 이런 걸 하라고 하니 정말 체면이 말이 아니야.’라고 생각했죠. 저는 뭔가 수모를 당하는 것 같았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저 리더가 다른 본분을 안배해 주기만 바랐죠. 그때는 너무 소침해져서 기도해도 할 말이 없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봐도 빛 비춤이 없었어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고 마음이 답답했어요.

예배 시간에 한 자매님이 제 내적 상태가 안 좋은 걸 보고 배워야 할 공과가 무엇인지 반성해 보라고 일깨워 주었어요. 어느 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어요. 『본분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부탁이 바로 사람이 이행해야 하는 본분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무엇을 맡기면, 그것이 바로 네가 이행해야 하는 본분이다. …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제대로 정확하게 찾아야 한다. 이런 사람만이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런 다음에 착실하게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본분을 이행하면 사람의 마음이 평안하고 평온해진다. 그러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요구에 따른 본분 이행을 할 수 있다.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으며,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할 수 있고,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 네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올바른 마음가짐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본분을 이행한다면, 성령이 역사하여 이끌고 인도해 줄 것이다. 또한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하려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완벽하게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내게 된다. 사람의 생명은 모두 본분을 이행하면서 점차적으로 성장한다.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오래 믿어도 진리와 생명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만을, 자신의 능력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만을 축복한다. 네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든, 너는 그것을 자신의 책임과 본분으로 받아들이고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요구한 대로 하면 된다. 하나님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제대로 이행하라고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해야 마음을 다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까 사람은 어떤 부탁을 받게 되든 모두 자신의 책임과 본분으로 간주하고 마음과 뜻을 다해 잘 완수해야 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겠다는 태도로 본분을 이행해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근데 저는 접대 본분은 그저 자매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저는 형제니까 이런 본분을 할 게 아니니 저한테 접대하라고 하는 건 저를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잘못된 관점을 갖고 있다 보니 저는 본분에 참답고 책임지는 태도로 임하지 않았어요. 형제님들을 접대할 때 저는 맨날 국수랑 배추만 삶아 줬어요. 형제들이 잘 안 먹을 때 저는 형제들이 맛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요리 형식을 바꿀 생각도 안 했고, 청소도 제때에 하지 않았어요. 교회에서 보낸 음식물도 제때에 관리를 못 해서 폐기 처리 하게 됐었죠. 이걸 어떻게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본분을 대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이건 분명 마음을 쓰지 않은 거고 건성으로 임한 거잖아요. 교회에서 본분 이행할 기회를 줬지만 저는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계속 불만을 품고 반발하면서 건성으로 어물쩍 넘겼어요. 하나님께 너무도 큰 상심과 실망감을 안겨 드렸어요. 이런 상황에서 빨리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잃을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이걸 깨닫게 되면서 앞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면서 마음을 다해 접대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때부터 밥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청소도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접대에 관한 일들은 최선을 다해서 했어요.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좀 보면서 자주 반발심을 품었던 문제의 근원을 조금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네게 본분 하나를 이행하게 한다면 원래는 순종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얼마나 순종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형제인 너에게 매일 형제자매를 위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게 한다면 너는 순종할 수 있겠느냐?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깐은 순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랜 기간 네게 이 본분을 이행하게 한다면 순종할 수 있겠느냐? (가끔은 순종할 수 있겠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순종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불순종이다. 그러면 어째서 불순종하게 된 것이겠느냐? (사람의 마음속에는 바깥일은 남자가,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전통 관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밥을 하는 것은 여자의 일이고 형제가 밥을 하면 체면을 구긴다고 생각하므로 쉽게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역할 분담에 성차별이 있는 것이다. 남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남자들은 밖에서 열심히 일해야 해. 요리나 설거지 같은 건 여자들이 해야 할 일이잖아. 우리 남자들에게 시키면 안 되지.’ 하지만 지금처럼 특수한 환경에 처해서 너에게 시킨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는 어떤 어려움을 해결해야만 순종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너는 성차별을 타파해야 한다.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 같은 건 없다. 이렇게 먼저 역할을 분담해 놓아서는 안 된다. 어떤 본분을 이행할지를 성별에 따라 구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집에서 살림살이하면 그렇게 역할을 분담해도 되겠지만 지금은 본분에 관련된 것이니 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이해하고 이 본분을 받아들여서 네 안의 옳지 않은 관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는 남자이긴 하지만 교회의 일원이고 하나님에게는 피조물입니다. 성별을 따지지 않고 교회에서 저에게 안배한 일을 하겠습니다.” 우선 잘못된 관점을 내려놓은 뒤 자신의 본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기만 하면 진실로 순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누군가 음식이 짜거나 싱겁다고 한다면, 또는 어떤 음식이 맛없어서 먹기 싫다고 하거나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면 너는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러면 너는 기분 나빠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사내대장부인 내가 이렇게 많은 형제자매에게 밥을 해 주는데 지적질이나 당하다니 정말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이럴 때면 순종하기 싫어지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모든 불순종은 네가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못하도록 패괴 성품이 드러나 말썽을 일으킬 때 나타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생명 진입이 있다> 중에서), 『남자는 이렇게 남성 우월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남성 우월주의가 심각한 일부 사람은 아이 돌보기, 방 정리, 빨래나 설거지, 청소 같은 일을 무시해서 하려 하지 않는다. 한다 해도 마지못해 하는 식이다. 남들에게 무시당할까 걱정하면서 ‘맨날 이런 일이나 하고 있으니 이러다 아줌마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한다. 이는 어떤 사상 관점에 지배된 것이겠느냐? 이는 사상에 문제가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상엔 문제가 있다. 생각해 보아라, 어떤 지역에는 하루 종일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하는 남자가 있다. 여자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그는 밥을 차리고 말한다. “먹어 봐. 다 당신이 좋아하는 거라 맛있을 거야.” 여자는 태연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고, 남자는 태연하게 밥을 차리면서도 자기가 가정주부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앞치마를 풀고 밖으로 나가면 여전히 남자가 아니냐? 어떤 지역의 사람은 남성 우월주의가 굉장히 심각하다. 이는 가정에서 비롯되는 교육과 영향 때문에 네가 잘못 길들여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는 너를 해롭게 한 것이냐 아니면 너를 구한 것이냐? (해롭게 한 것입니다.) 너에게 해를 끼친 것이다. … 부모가 주입한 이런 사상 관점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생활의 규칙과 연관되고 사람에 대한 잘못된 견해와도 관련된다. 한마디로 말해, 이는 모두 사람의 사상 측면에 대한 가정의 영향인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과정이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곤란과 불편을 초래하든, 근본적으로 보면 부모의 사상 교육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4)>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제가 왜 접대 본분에 대해 답답해하고 괴로워하면서 순종이 없었는지 알게 됐어요. 그건 바로 “바깥일은 남자가,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라는 잘못된 관점 때문이었어요. 예전에 농사할 때 어머니와 아내가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빨래하고 밥하고 가축을 먹이느라 정말 바쁘게 지냈지만, 저는 그걸 뻔히 보면서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그냥 빨래하고 밥하는 걸 포함한 가사는 모두 여자가 할 일이고 남자는 돈 벌어 가정을 건사하면서 바깥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남자가 가사를 하면 못난 거고 남들한테 무시받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관점을 갖고 살다 보니 저는 가사 분담은 거의 하지 않았고 가족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도 부족했죠. 하나님을 믿은 후에 저한테 접대 본분을 이행하라고 하니 저는 청소하고 빨래하고 장 보고 밥하는 건 자매들이 할 본분이기 때문에 형제한테 이런 걸 맡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남성 우월주의 사상에 영향받아 접대 본분을 대할 때 반발심을 품고 마음을 쓰지 않았어요. 시장에 나가 야채를 구입하고 값을 흥정하면서 좋은 걸 싸게 사는 건 매우 정상적인 거잖아요. 근데 전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고 남들이 무시할까 봐 걱정했어요. 또 밥할 때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지 형제들의 입맛에 맛는지는 아예 고려하지 않았어요. 제가 반발하는 태도로 본분을 대하다 보니 해야 할 청소도 제대로 안 했어요. 전 정말 인성과 이성이 없었어요. 이런 남성 우월주의 사상 때문에 저는 왜곡된 사고를 갖게 됐어요. 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거라 상하 귀천이 없고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잖아요. 그럼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고 제 책임으로 간주해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기면서 본분에서 충성하며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려야 하는 거죠. 근데 저는 “바깥일은 남자가,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라는 사상과 관점을 근거로 살다 보니 그저 제 기분만 생각하고 제 책임과 본분에 대해서는 아예 고려하지 않았고 순종의 자세가 전혀 없었어요. 그게 하나님께 대항하는 게 아니겠어요? 이걸 깨닫게 되니까 너무 후회되고 자책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죠. ‘하나님, 저는 ‘바깥일은 남자가,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라는 사상과 관점에 지배받아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 바람에 순종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계속 하나님께 맞서기만 했습니다. 정말 너무 이성적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회개하겠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가늠하시는 기준에 대해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성별에 대해 특수하게 얘기한 적이 없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하나님이 지었으며,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말로 풀자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요구를 하지 않고, 언제나 동일하게 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네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네 인성 본질이 무엇인지, 어떤 길을 걷는지, 어떤 태도로 진리를 대하는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 등을 보고자 하며, 이 몇 가지 기준으로만 사람을 판단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택하고 양성하여 한 가지 본분을 이행하게 하고 책임을 맡길 때, 그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발탁하고 쓸 때, 네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보는 게 아니라 양심과 이성을 갖추었는지, 자질이 합격점에 이르렀는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떤 길을 걷는지 등을 본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할 때도 네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보지 않는다. 만약 여성이라면 하나님은 네가 현명하고 어질고 정숙하고 유덕한지, 말 잘 듣는 여자인지를 보지 않는다. 만약 남성이라면 하나님은 네게 남성적인 강건한 기질이 있는지를 보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전부 하나님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기 때문에 사람의 성별에 차별을 두고 대하지 않으신다는 걸 알게 됐어요.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성차별이 없었어요. 하나님은 똑같이 그들을 사랑하고 보호하셨지 어느 한쪽을 차별하시는 게 없었어요. 말세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는 것도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시는 거고 국가나 민족,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으셨어요. 그리고 겪어 보니까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발탁해 쓰는 것도 성별을 보지 않고 오직 진리를 사랑하는지, 양심과 이성이 있는지를 보고, 어떤 길을 가는지를 보더라고요. 절대 리더 일꾼은 다 형제여야 하고, 접대 본분은 다 자매들이 해야 한다는 건 없었어요 제가 아는 형제님도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데, 평소에 시간이 날 때면 형제님은 하나님 말씀 보는 걸 중시했고 예배 시간에 마음을 터놓고 자신의 상태와 어려움에 대해 교제를 나누곤 했어요.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진리를 구하면서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려고 했고요. 그 형제님은 본분을 이행하는 데 성별에 구애받지 않았어요. 이처럼 제가 터무니없는 남자 우월주의적 관점을 갖고 살았던 건 참으로 그릇되고 극단적인 거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거더라고요. 이런 진리를 깨닫게 되니까 저는 남자 우월주의 사상에 대해 분별하게 됐고 그걸 진심으로 내치고 싶었으며 접대 본분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떻게 접대 본분을 잘할 수 있는지 더 명확하게 알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간에, 실행해야 하는 진리와 알아야 하는 원칙은 모두 동일하다. 너희가 리더 일꾼이 되든, 접대해 요리를 하든, 아니면 바깥 일이나 힘을 들여 일을 하든, 이행하는 본분은 각기 다르더라도 따라야 하는 진리 원칙은 모두 같다. 바로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장 중요하고 주된 원칙이 무엇이겠느냐?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함으로써 본분 이행이 합격점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 예를 들어, 형제자매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이 네 책임이고, 그것이 네 본분이라면, 너는 이 일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겠느냐? (진리 원칙을 구해야 합니다.) 진리 원칙을 어떻게 구할 것이냐? 이것은 실제와 진리에 관한 문제다. 너는 어떻게 하면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 이것이 어떤 측면의 진리에 관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 단계로 우선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먹으려고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내 본분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 측면이다. 두 번째 단계는 무엇이겠느냐? (어떻게 하면 음식을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잘한다는 기준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요구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다. 하나님의 요구가 바로 진리이자 기준이며 원칙이다.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하는 것이 한 측면의 진리다. 우선 너는 이 측면의 진리를 생각한 뒤에 ‘하나님께서 내게 이 본분을 이행하게 하셨어. 그러면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기초가 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할 수 있을까? 바로 건강에 좋고, 맛있고,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먹고 난 다음 몸에 해롭지 않은 것은 세부적인 문제다. 네가 이 원칙에 따라 음식을 만들면 네가 만든 음식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만든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겠느냐? 네가 이 일에서 이 측면의 원칙을 구하고 하나님이 부여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다면 옳은 것이고, 네 본분을 잘 이행한 것으로, 합격점에 도달한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원칙을 구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까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모두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마음과 힘을 다해 잘 완수해야 한다고 하셨더라고요. 저처럼 접대 본분을 하는 경우에 밥을 제대로 잘 못해서 사람들이 잘 안 먹거나 몸에 부작용을 일으키게 했다면 본분을 잘한 게 되지 못했어요. 또 음식물도 말려야 할 건 말리고 먹어야 하는 건 빨리 소비해서 낭비하지 말아야죠. 그리고 중국은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국가니까 접대하는 사람은 항상 경계심을 갖고 주변 상황을 잘 살피면서 형제자매들의 신변 안전을 지켜야죠. 이걸 깨닫게 된 뒤로 장 보러 갈 때에는 어떻게 하면 가성비 좋은 야채를 살지 고민했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걱정하지 않았어요. 또 밥을 할 때는 입맛에 맞게, 건강한 영양 식단을 원칙으로 생각했고 할 줄 모르는 요리는 형제자매들한테 물어보거나 강좌 영상을 보며 배웠어요. 그렇게 좀 하니까 밥을 하거나 위생 관리 측면에서 모두 과거에 비해 발전이 있었어요. 나중에 저는 한 형제님과 전자 제품 수리 일에 협력하게 됐는데, 그때에도 밥하고 청소하는 등 가사를 적극적으로 나서서 했어요. 가끔 형제자매들이 우리 집에 방문하면 “이 집은 어떻게 이렇게 깨끗해요?”, “이 요리는 정말 먹음직스럽네요.”라며 칭찬했죠.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이제는 본분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긴 부탁이니까 여기에는 성별 구분이 없으며 모두 사람이 다해야 할 책임이자 의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럼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완수해야죠. 그리고 또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중요한 건 그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 진리를 구하면서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것이고,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기를 구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였어요. 제가 얻은 이런 수확과 변화는 모두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인한 성과예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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