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제 결점을 담담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중국 자오천(趙辰)

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저는 말을 더듬었습니다.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사람이 많아지면 긴장하기 시작했고, 그러면 말을 더듬었습니다. 제가 말을 유창하게 못 하는 것을 보고 가족들은 “좀 천천히 말하면 안 되니? 누가 끼어들기라도 한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자존심이 상해서 더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생님이 저에게 질문을 하면 긴장한 탓에 원래는 아는 문제도 입을 떼지 못하고 말을 더 심하게 더듬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반 친구들은 제 말투를 즐겨 흉내냈습니다. 중학교 때 일입니다. 당시 저는 반장이었는데, 한번은 선생님이 오셨는데 긴장한 나머지 ‘일어서’라고 외치다 또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러자 반 친구들과 선생님이 박장대소했고, 저는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저는 열등감 때문에 거의 외출도 하지 않았고 말수도 줄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된 후, 형제자매들은 제가 말을 더듬고 교제도 잘 못 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격려해 주었습니다. “말을 더듬는 건 괜찮아요. 좀 천천히, 형제자매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만 말하면 돼요.” 저는 형제자매들의 격려에 힘입어 교제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점차 형제자매들과 가까워지면서 말을 할 때 긴장도 많이 풀렸습니다. 그때 저는 이제껏 느껴 보지 못했던 해방감과 자유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점차 예배에서 교제할 때면 형제자매들이 자주 제게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잘 못 들었는데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라고 묻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두 번은 별 생각이 없었는데, 형제자매들이 자꾸만 그렇게 얘기하니까 그들이 저를 얕잡아보며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말을 더듬고 똑바로 말도 못 한다고 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교제할 때면 무척 긴장됐고, 결국 말을 더 심하게 더듬었습니다. 저는 너무 창피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저를 쓸모없는 폐물이나 쓰레기처럼 여기지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그 후로는 예배에서 교제할 때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또 제 말이 분명하지 않아서 못 알아듣겠다고 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예배에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다가 깨달은 것이 있어 교제하고 싶었지만, 제가 말을 더듬는다는 생각에 말이 입안에서만 맴돌 뿐 차마 교제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별종처럼 느껴졌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유창하게 말을 잘하는데, 저는 말도 똑바로 못하니,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을 받아 주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점차 저는 예배 때 갈수록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 깨우침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고, 어떤 수확이나 누림도 없었습니다. 매번 예배 때마다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습니다. 교제를 피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피했고, 정 피할 수 없을 때만 마지못해 한두 마디 했습니다. 마음은 너무나 괴롭고 억눌렸으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오해도 생겼습니다. ‘왜 다른 사람들은 다 말을 똑똑하고 유창하게 하는데, 저는 유창한 것은 고사하고 막히기만 할까요? 어떻게 해야 다른 형제자매들처럼 유창하게 말해서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나중에 교회에서 선거가 있었는데, 형제자매들이 저를 리더로 선출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리더 본분을 이행하면 더 많은 사람과 접촉해야 할 텐데, 그럼 더 많은 형제자매가 내가 말을 더듬는 결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잖아? 안 되겠어. 이 본분은 못 해. 또 창피를 당할 순 없어.’ 저는 그 본분을 거절했다가 나중에 리더와 교제한 후에야 마지못해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말을 더듬는 탓에 저는 늘 형제자매들보다 한 수 아래인 것 같았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매일 서리 맞은 배추처럼 시들했고, 예배 때도 기운이 나지 않았으며 교제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때로 형제자매가 어려움을 겪으면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면서도, 제가 말을 더듬으면 사람들이 저를 얕잡아볼까 봐 교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파트너 자매에게 문제를 알려주고 해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한 자매가 제가 예배 때 교제하지 않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저는 말을 더듬는 것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는 내적 상태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자매는 저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누구나 다 결함이 있어요.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데는 영향을 주지 않아요. 말을 더듬는 건 긴장해서 그런 거예요. 사실 말할 때 하나님께 많이 의지하고, 조급해하지 않고, 좀 천천히 말하면 형제자매들도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자매의 말을 듣고 저는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를 통해 저를 돕고 계심을 알게 되자, 더는 말을 더듬는 것 때문에 소극적으로 지낼 수 없었습니다. 제 상태를 바로잡고 제 결함을 올바로 마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후 다른 자매들도 저와 교제해 주었고, 저는 사람들을 대할 때 제가 긴장하는 이유가 남들에게서 교제를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모두 제가 체면을 너무 중시한 탓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상태를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며 이 문제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루는 묵상 시간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잔머리는 쓸 줄 알지만 진리를 구할 줄 모르는데, 자신의 이익과 체면, 다른 사람 마음속의 자신의 위치 또는 무게를 특히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가 유일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는 이런 것들을 자신의 목숨줄로 여기고 꽉 움켜쥐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볼지, 어떻게 대할지는 그다음이라 일단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이 무리에서 우두머리인지,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자신의 말이 무게가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이 위치를 선점하려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무리에 오게 되면 다들 이런 위치와 기회를 차지하려 한다. 자신이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려 하고, 능력이 평범해도 무리 속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 한다. 무리 중에서 능력이 낮은 편이며 자질과 재능이 보통이어도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의 체면과 존엄, 이 최후의 보루를 반드시 굳게 지키려 하는 것이다. 설령 인격을 잃고 하나님의 인정과 열납을 잃더라도, 무리에서 쟁취하려는 체면, 지위, 남들의 우러름은 절대 잃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성품이다. 하지만 사람은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마지막 남은 체면마저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헛된 것들을 완전히 버리고 포기해야 진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마땅히 버려야 할 이런 것들을 생명처럼 지키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그는 이런 이해관계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비장의 카드를 남겨 놓는데,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전부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런 것들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자신을 위해 변명과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영예로운 일에는 늘 앞으로 나서 자신도 한몫했다는 것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만, 사실 그 일은 그와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는 늘 뒤처지기 싫어하고, 늘 무시당할까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이 그가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재능도 없다고 말할까 두려워한다. 이는 사탄 성품의 지배를 받은 것 아니겠느냐? 네가 체면과 지위와 같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네 삶이 홀가분해지고 자유로워지며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보자. 화면을 통해 얼굴을 알릴 때, 사람은 다들 앞다투어 나선다. 다들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좋아해 많이 알려질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얼굴 알릴 기회가 적을까 봐 걱정한다. 얼굴 알릴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다. 이는 사탄 성품의 지배를 받은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사탄의 성품이다. 네가 얼굴이 알려진들 뭘 어쩌겠느냐? 사람들이 너를 우러러본들 뭘 어쩌겠느냐? 사람들이 너를 숭배한들 뭘 어쩌겠느냐? 이것이 네게 진리 실제가 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겠느냐? 이는 가치가 별로 없다. 사람이 이것들을 이겨 낼 수 있고, 담담하게 대할 수 있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을 때, 체면, 허영심, 지위, 사람들의 우러름이 더 이상 너의 생각과 행위를 좌우하지 못할 때, 더 나아가 너의 본분 이행 방식을 좌우하지 못할 때, 너의 본분 이행 성과가 나날이 좋아질 것이며, 순결도도 점차 높아질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자질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 마음속에 자기 자리가 있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에게 얕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 역시 말을 더듬는 결함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얕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을 또렷하게 하지 못 해서 형제자매들이 제 교제를 듣다가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저는 남들이 저를 싫어하고 무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으로 깊은 열등감을 느꼈고, 심지어 소극적이 되어 본분도 이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체면을 너무 중시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철이 든 후부터 가족의 영향과 학교의 교육을 통해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와 같은 사탄 독소가 제 마음속 깊이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살려면 체면이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얕보여서는 안 된다고 잘못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들과 만날 때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비웃음을 당하면, 저는 다른 사람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 될 수 있는 한 나가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하더라도 간단히 한두 마디만 하거나 그저 웃거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형제자매들과 만날 때 말을 더듬기라도 하면, 저는 속으로 ‘저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하고 추측했습니다. 늘 모두가 저를 무시한다고 느끼며 너무나 고통스럽고 억눌린 채 살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도 깨닫고 알게 된 것이 있었지만, 교제할 때 말을 더듬으면 형제자매들에게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성적이지 못하게 하나님께 말을 더듬는 결함을 없애 달라고 요구하고, 심지어 본분을 거절하려고 하고, 형제자매에게 어려움이 있어도 교제로 해결해 주지 않는 등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제게 이성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대항하고 있었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었습니다. 설령 다른 사람이 저를 우러러보고, 제 체면이 꽃처럼 화려하게 빛난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것은 제 생명 성품에 변화를 가져다줄 수 없고, 그저 제가 체면에만 목을 매느라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나중에는 하나님께 혐오받고 도태되도록 만들 뿐입니다. 체면을 지키는 것이 제게 이렇게 큰 해를 끼친다는 것을 깨달은 후, 저는 더 이상 형제자매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제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만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남들과 대화할 때 쉽게 긴장하거나 어떤 일을 맞닥뜨릴 때 자신의 생각과 관점이 있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 많은 사람 앞에서 극도로 긴장하며 두서없이 말하고 입술까지 덜덜 떨리는 것 등이 있다. 심지어 말을 더듬는 사람도 있고, 이성이 있는 자리에서는 더욱 말실수를 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가 쉽겠느냐? (쉽지 않을 것입니다.) 최소한 단기간 내에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너의 선천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만약 몇 달 동안 연습해도 여전히 긴장한다면, 그 긴장은 압박감으로 변할 것이다. 그 압박감은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와 네가 말을 하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예배에 참석하는 것, 설교하는 것 등을 두려워하게 할 것이며, 이런 두려움은 너를 무너뜨릴 것이다. … 그러니 이 결함과 문제점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다면 극복하고, 극복하기 힘들다면 그냥 신경 쓰지 마라. 그것과 힘겨루기를 하거나 자신에게 도전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서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서도 안 된다. 네가 평생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그것은 패괴 성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소 공포증을 갖고 긴장하며 두려워하는 것, 이런 모습은 패괴 성품이 아니다. 그것이 선천적인 것이든 후천적으로 어떤 환경 때문에 생겨난 것이든, 기껏해야 인성의 한 가지 결함이자 문제점일 뿐이다. 오랫동안, 혹은 평생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을 마음에 둘 필요는 없다. 그것에 속박되지 말고 그것 때문에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지도 마라. 그것은 패괴 성품이 아니니 바꾸려 하고 힘겨루기를 해 봤자 소용이 없다. 그것을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존재하도록 내버려두며,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너는 그 결점, 문제점과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점과 문제점이 있어도 네가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할 수만 있다면 여전히 구원받을 수 있다. 그것은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구원받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성의 어떤 결점이나 문제점 때문에 늘 속박받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거나 낙담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본분과 진리 추구를 포기하여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그것은 하등의 가치가 없으며, 그런 자는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저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는 결점 때문에 사람이 많아지거나 조급해지면 말을 더듬었고, 남들이 얕잡아보면 열등감을 느끼며 인위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저는 더욱 소극적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본분도 이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왜 말을 더듬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말을 더듬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므로 본인이 극복하고 싶다고 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더듬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패괴 성품이 아니므로 제가 진리를 추구하는 데 지장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제게 있는 하나의 결함일 뿐이니, 올바로 마주하기만 하면 됩니다. 만약 형제자매들이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건의를 하면, 저는 담담히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말하거나 말하는 속도를 늦춰야 합니다.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소극적이 되어 본분을 이행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요컨대, 결점이 있는 것은 괜찮습니다. 극복할 수 있으면 극복하고, 극복할 수 없으면 자신의 문제를 담담히 마주하며, 의연하게 교제하고 본분을 이행하면 됩니다. 말을 더듬는 문제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전에는 제가 제 결함을 올바로 대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으면 쓸모없는 폐물이나 쓰레기여서 본분을 이행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을 원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교회는 제가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제가 본분을 이행할 자격을 박탈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제 결함을 올바로 대하지 못하고 늘 그것과 힘겨루기를 하며, 극복하지 못해서 소극적으로 변하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사실 제가 그 버릇을 애써 바꾸려 하지 않을 때는 말을 좀 천천히 하면 형제자매들도 알아들을 수 있었고, 저도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것처럼 말을 더듬으면 본분을 이행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라서까지 저는 줄곧 말더듬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친구들은 비웃었고, 가족들은 싫어했습니다. 차가운 시선과 차별을 겪으며 저는 깊은 열등감 속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은 후 형제자매들이 저를 돕고 격려해 주었고, 제가 소극적이고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저를 이끌어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가장 사랑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늘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했으니, 하나님께 너무나 큰 빚을 졌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뒤,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말씀을 통해 결함이 있어도 두렵지 않고, 결함이 있다고 해서 본분을 이행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평온한 마음으로 제 결함을 대하고, 당신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여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하루는 묵상 시간에 다음과 같은 두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대단한 은사나 재능을 추구하지 말고, 자신의 자질이나 본능을 바꾸려 하지도 마라. 대신 자신이 원래 가진 자질, 능력, 본능 등의 조건하에서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이행하고 모든 일을 하여라. 하나님은 네 능력이 미치지 못하고 네 자질로 이룰 수 없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너도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말고, 네가 인식하고 할 수 있는 것에 따라 최선을 다해 하고, 네 조건에 맞춰 할 수 있는 만큼만 실행하면 된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네 인성과 이성이 정상이라면 자신의 결함과 문제를 바르게 마주하며,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속박되는 것이 아니며, 그것 때문에 늘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에 속박되지 않고, 자신이 그저 평범한 패괴 인류 중 한 명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너 자신에게 문제와 결함이 있고 아무것도 자랑할 게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높여 주어 본분을 이행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과 생명을 사람 내면에 만들어 사람이 구원에 이르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이는 완전히 하나님의 높여 줌이다. 누구나 문제와 결함이 있다. 그 문제와 결함이 자신과 공존하도록 허용해야지, 그것을 회피하거나 감춰서는 안 되며, 그것 때문에 늘 마음이 억눌리거나 심지어 자기는 남보다 못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너는 결코 남보다 못하지 않다. 본분 이행에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고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며 진실한 마음을 보인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황금같이 귀한 존재일 것이다. 반면, 본분 이행에 대가를 치르지 않고 충성심도 보이지 않는다면, 설령 네가 타고난 조건이 남보다 좋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너는 귀하지 않으며, 모래만도 못한 존재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결함과 문제가 있고, 결함이 있는 것은 괜찮으니 스스로가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올바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말을 더듬는 결함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니 제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며 늘 그것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단순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마음과 뜻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말을 더듬으면 형제자매들에게 무시당할까 봐 늘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이 말더듬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여 제 결함을 올바로 대하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들었던 한 자매의 체험이 생각났습니다. 그 자매는 저보다 더 심하게 말을 더듬어서 늘 떠듬떠듬 말을 했고 듣기조차 힘들 정도였습니다. 당시 한 교회에 중공의 체포가 닥쳐 모든 사역이 마비되었고, 형제자매들은 아무도 감히 그곳에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자매는 그 소식을 듣고 그 교회를 붙들어 주러 가겠다고 자진해서 나섰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제대로 붙들어 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매는 말더듬에 얽매이지 않고 그 교회에 가서 리더를 찾아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보편적으로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자매는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 그들과 교제했습니다. 리더는 자매가 말을 조금 불분명하게 하는 것을 보고 자발적으로 협력하여 교제했습니다. 자매가 세부적으로 점검하고 사역을 독촉하자 리더 일꾼들은 부담을 갖게 되었고, 형제자매들도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비록 말을 더듬었지만 얽매이지 않았고, 본분을 이행하여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 자매처럼 진실한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인도를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난 후, 저는 결함이 있는 것은 두렵지 않고, 중요한 것은 올바로 마주하며, 제 자질이 허락하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역을 실행하고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며 그들의 상태를 해결해 줄 때, 저는 더 이상 말더듬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모두의 문제를 보면 책망할 것은 책망하고, 도와줄 것은 교제로 도우며,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 제 체험과 결부하여 교제로 해결해 주고, 하나님 말씀을 본 후 깨달은 만큼 교제합니다. 때로 마음이 조급해져 말을 더듬을 때면,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체면에 얽매이지 않도록 이끌어 달라고 구하고, 형제자매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좀 더 천천히 말해서 사역을 확실하게 이행합니다. 형제자매들은 제가 말을 더듬는 것을 보고도 제가 상상했던 것처럼 저를 얕보지 않았고, 오히려 제 교제에 실행의 길이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때로 윗선 리더가 제 사역을 점검할 때 긴장해서 말을 더듬기도 하지만, 그럴 때 제 단점을 담담히 마주하면 말할 때도 긴장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저는 말더듬 때문에 시달렸고, 내면은 깊은 열등감과 억압감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길을 걸어오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중시하시는 것이 사람의 외적인 말솜씨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단순하고 정직한 마음을 갖는 것이라는 점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외적으로 어떤 결함이 있든지, 본분에 마음과 힘을 다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처럼 말입니다. 『누구나 문제와 결함이 있다. 그 문제와 결함이 자신과 공존하도록 허용해야지, 그것을 회피하거나 감춰서는 안 되며, 그것 때문에 늘 마음이 억눌리거나 심지어 자기는 남보다 못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너는 결코 남보다 못하지 않다. 본분 이행에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고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며 진실한 마음을 보인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황금같이 귀한 존재일 것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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