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기쁨
2023년 3월, 저는 한 교회의 복음 사역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교회는 사역 성과가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한동안 노력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저는 몹시 조바심이 났습니다. 하루는 리더가 사역을 파악하기 위해 예배에 나온다고 해서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지난번 예배에서 리더랑 우리가 사람을 양성하는 문제를 교제했는데, 지금까지도 적당한 후보를 찾지 못했어. 리더가 보면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훈련하고도 사역을 제대로 못 한다고, 사역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 난 그 사람들한테 전혀 좋은 이미지를 남기지 못하잖아!’ 밤에 잠자리에 누웠는데, 리더가 사역을 파악하러 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하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리더가 사역을 파악할 때, 저는 사역 성과가 안 좋은 것을 보고, 그들이 제가 실제 사역을 못 한다고 생각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제가 어떻게 복음 전도 인원을 조정했는지, 또 어떻게 복음 사역을 점검했는지 서둘러 얘기했습니다. 그들이 파트너 자매 샤오린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할 때는, 옆에서 듣다가 샤오리가 대답하지 못하면 재빨리 이어서 보충했습니다. 리더에게 제가 사역 능력이 있고, 실제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생각이었습니다. 한참 이렇게 대응했더니 리더에게서 별 말이 없었고, 그제서야 저는 한숨을 돌렸습니다. 조금 있으니 리더가 저희에게 최근 복음 전도에 어떤 오류와 어려움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최근 내 담당 사역 성과가 좋지 않은데, 저들에게 상황을 파악하게 해 줘야 원인을 찾는 것을 도와주기가 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문제들을 얘기했다가, 저들이 내 본분에 있는 다른 문제들도 찾아 내면 내가 사역 능력이 없다는 것이 더 부각되지 않을까? 그러면 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니지?’ 이렇게 생각하니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이 쏙 들어갔습니다. 오후가 되자 리더는 저를 지적하며 나무랐습니다. “자매님은 본인이 이 사역도 했다, 저 사역도 했다 하면서 문제나 부족한 점을 보여주시지 않는데, 사역에 아직 성과가 없어요. 원인을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할 것 같군요.” 리더가 가고 난 뒤에는 마음이 영 편치 않았습니다. 사역의 실제 상황을 얘기하지 않은 것 때문에 속으로 자책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옥에 떨어질지언정 정직한 말을 하거나 정직하게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별도로 처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훈언 3칙> 중에서) 저는 본분에서 분명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리더가 예배드리러 왔을 때, 사역 능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 체면이 상할까 봐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아서 사역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아주 심각한 성질이고,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자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에 타는 것처럼 괴로웠습니다.
잠시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천성이 사악하다. 정직한 마음, 진리를 사랑하고 긍정적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추지 못했다. 언제나 음침한 구석에서 살면서 행동할 때 정직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말할 때 사실을 얘기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도 하나님에게도 사악한 마음, 간사한 마음을 품는다. 그는 사람도 속이고 동시에 하나님도 속이려 든다. 사람의 감독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감찰은 더더욱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그는 본인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할 계획인지,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진리에 대해 본인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등을 그 누구도 파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그 누구도 아는 것을 원하지 않고, 하나님에게도 거짓말로 속이고 감추려 한다. 따라서 적그리스도 부류에게 지위가 없을 때, 사람들 가운데서 정세를 통제할 기회가 없을 때는 누구도 그의 말과 행동을 속속들이 파악하기가 힘들다. 사람들은 말한다. “저 사람은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본분을 이행할 때 속셈이 있나? 패괴를 표출하나? 사람들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편견이 있나?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그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지? 이런 일을 만나면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 그는 결코 남들에게 실제 사정을 알게 하는 법이 없다. 어떤 일에 대해 관점을 몇 마디 밝히더라도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리고, 말을 이리저리 돌리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연유를 알 수가 없다. 그가 하려는 말이 뭔지, 그가 전달하려는 내용이 뭔지 알 수 없고,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지위가 생기면 사람들 사이에서 더더욱 은밀하게 행동한다. 그는 자신의 야심, 자신의 명망, 자신의 체면과 명성, 자신의 지위와 존엄성 등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행동의 동기가 무엇인지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설령 자기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패괴 성품을 드러내고, 행동의 동기와 속셈이 잘못되었어도 솔직하게 얘기해서 남들이 아는 걸 싫어하고, 언제나 억울하고 완벽한 이미지를 연출해서 형제자매들을 기만한다. 그리고 상부, 하나님에게도 입 발린 소리만 하고, 언제나 기만적인 수단과 거짓말로 상부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상부에 사역 보고를 할 때나 상부와 이야기할 때는, 듣기 좋은 소리만 해서 듣는 이가 허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만든다. 그가 아래에서 무엇을 했는지, 교회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했는지, 사역에 어떤 문제나 구멍이 있는지, 자기가 어떤 일을 잘 모르고 간파하지 못하는지, 한 번도 얘기하지 않고, 묻지도 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역을 얼마든지 감당하고 충분히 맡을 수 있다는 모습과 이미지만 보여 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 어떤 문제가 있어도 위에 보고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 아무리 큰 혼란이 발생하고 사역에 아무리 큰 구멍이 생기든, 자신이 아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든 그는 계속 감추면서 애써 상부에서 소문이나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하게 노력한다. 심지어 진실을 모두 감추기 위해 관련 있는 자나 실상을 아는 자를 멀리 보내 버리기도 한다. 이것이 어떤 방법이냐? 이것이 어떤 행위냐? 이것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이냐? 분명 아니다. 이것은 마귀의 행위이다. 자신의 지위와 명성에 영향을 미치는 이런 일들을 그는 필사적으로 가리고 덮는다. 사람이 아는 것도, 하나님이 아는 것도 원치 않는다. 이를 두고 위아래를 기만한다고 하는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1조>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천성이 사악하고 간사해서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본분에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본분에 아무리 커다란 손실을 입히더라도, 그것을 감추고 속이며, 나아가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체합니다. 이런 모습은 위 아래를 속이는 간사한 행위입니다. 저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저는 본인이 맡은 사역 성과가 좋지 않고, 사람을 양성하는 면에서 어려움이 있으면, 리더가 와서 예배드릴 때는 그것을 얘기해서 그들에게 해결하도록 도와 달라고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리더가 저를 사역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까 봐, 그래서 제 좋은 이미지가 사라질까 봐, 저는 그들이 사역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제가 어떻게 노력을 기울이며 사역을 점검했는지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제가 사역 능력이 있고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고, 성과가 안 좋은 것은 제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 주려 했습니다. 리더가 와서 복음 사역 상황을 파악할 때, 저는 어려움을 얘기해서 가급적 빨리 구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본분에서 생긴 오류와 빈틈이 드러나면 체면과 지위를 지키지 못할까 봐 입을 꾹 닫았습니다. 저는 원래 사역 능력이 부족하고 본분 이행에도 문제가 아주 많아서, 교회 사역에 이미 손실을 입혔습니다. 그런데도 체면과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거짓 이미지를 심어 주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나쁜 짓,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감추고 속일 수 있으며, 하나님 집 이익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지금 내가 실제적인 사역을 못 하는 실상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하고 속이는 행위가 적그리스도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자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저는 얼른 리더에게 편지를 써서 최근의 제 내적 상태와 본분에 성과가 없는 상황을 알렸습니다. 리더는 상황을 파악하고, 저더러 속임수를 썼다고 책망하기는 했지만, 제가 스스로를 반성하도록 이끌어 주고, 사역에 성과가 없는 원인을 찾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사역을 할 때 구호만 외치고, 정작 형제자매의 실제 어려움에 맞춰 교제하며 해결하지 못하고, 실제적인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제 문제를 알아내자 마음이 무척 밝아졌습니다.
그 후 저는 의식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훈련을 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여전히 패괴 성품에 얽매이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리더가 예배드리러 왔을 때, 저는 한 복음 전도자를 떠올렸습니다. 그 사람은 자질은 무척 좋지만, 본분을 자기 뜻대로 이행하며 원칙에 진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제가 몇 번 교제를 해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리더에게 얘기해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구하고 싶었지만,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리더가 내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나보고 사역 능력이 없다고 하지 않을까? 그럼 무슨 망신이야! 그냥 얘기하지 말자.’ 하지만 저는 지난 번 실패의 교훈을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리더 일꾼인 너희들은 하나님 집에서 너희 사역을 물어보거나 감독할까 봐 두려우냐? 하나님 집에서 너희 사역의 허점과 오류를 발견하고 너희를 책망할까 봐 두려우냐? 상부에서 너희의 실제 자질과 실제 분량을 파악한 후 너희를 달리 보고 발탁하지 않을까 봐 두려우냐? 만약 네게 이런 두려움이 있다면, 이는 너의 속셈이 교회 사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명예와 지위를 위해 사역하는 것임을 의미하며, 너에게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있으면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을 수 있고, 적그리스도가 행하는 모든 악을 너 역시 행할 수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가 체면과 지위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잔머리를 굴려 속임수를 쓰고, 하나님 집에 손해를 입히는 일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인식했고,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구하고자 하는 문제를 얘기했습니다. 리더는 제가 진리를 교제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자리에 서서 사람을 꾸짖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면 상대는 눈치만 보고, 본분을 이행할 때는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합니다. 리더가 이 문제를 지적하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저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인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정말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구나!’ 사실을 얘기한 것이 조금 후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얘기한 것은 원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려던 거잖아? 지금 또 체면에 얽매여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겠어?’ 저는 하나님께 스스로를 저버리고,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한편, 최근에 제가 그 복음 전도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태도를 취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이행한 본분 성과가 좋지 않자, 제가 어떤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반성하고 그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없는지 알아본 것이 아니라, 제 체면과 지위가 상했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야단치고 꾸짖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눈치를 주고 말았습니다. 저는 서둘러 형제자매에게 사과하고, 제 내적 상태를 솔직하게 교제했습니다. 복음 전도자도 내적 상태가 좀더 좋아졌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식하고는 더 나아지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사역을 점검할 때, 저는 원칙을 교제하는 일에 더욱 집중하고, 좋은 실행의 길을 많이 제공했습니다. 당시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면서 리더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려니 조금 창피하긴 했지만, 덕분에 제 문제를 인식하고 제때 바로잡을 수 있었고, 이것은 제 생명 진입과 본분 이행에 모두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정식한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왜 늘 남들이 얕잡아 볼 것을 겁내느라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꺼리는 걸까?’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하는데, 문득 하나님께서 가정에서 가르치고 주입한,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는 주장을 교제하고 해부하신 말씀이 떠올라서, 그 부분을 찾아서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에서 어른이 자주 말하는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것은 네가 명예를 중시하고 체면이 서는 삶을 살면서 망신당할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이끄느냐, 아니면 부정적으로 이끄느냐? 너를 진리로 이끌겠느냐? 네가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은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한다. 네가 과오를 저지르거나 잘못된 일을 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진리에 위배되는 일을 하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자기를 인식하여 끊임없이 자기를 해부하고 진정으로 회개한 다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 되려 할 때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과 상충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부분이 상충되겠느냐?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은 사람이 화려한 모습을 살아 내는 것을 중시하여 체면이 서는 일을 많이 하라고 하지, 옳지 않은 일, 불명예스러운 일을 해서 자신의 추한 면을 드러내라고 하지 않는다. 망신을 당하거나 존엄하지 않게 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체면과 체통, 명예를 위해 자기를 쓸모없는 사람처럼 말하면 안 되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어두운 면이나 떳떳하지 못한 부분을 남에게 말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체면을 세우고 존엄하게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존엄은 사람의 체면에 달려 있고, 사람의 체면은 가식과 포장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이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과 상충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정직한 사람으로 살 때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에 정확히 위배되는 것이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체면을 차리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체면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진리 앞에서 사람은 자신을 폭로해야지 위장이나 가식을 떨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진정한 생각과 잘못한 일, 진리 원칙에 위배되는 부분 등의 실상을 낱낱이 하나님에게 보이고 형제자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체면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진정한 피조물이 되기 위해,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 구원받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때 종종 가정의 교육에서 비롯된 것들에 지배되어 잘못된 일을 저지르면 포장하고 위장하며 생각할 것이다. ‘말하면 안 돼. 아는 사람도 말하면 안 돼.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끝장을 보겠어. 내 체면이 우선이야. 산다는 건 다른 걸 위한 게 아니라 바로 체면을 위한 거지. 체면이 무엇보다 중요해. 사람이 체면을 잃으면 존엄도 잃는 거야. 그래서 사실도 사실대로 말해서는 안 되고 위장하고 포장해야 하는 거야. 안 그러면 체면이나 존엄은 실추되고 삶의 가치도 없어지는 거야. 존중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싸구려가 되는 거야.’ 네가 이렇게 실행한다면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자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해부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정이 네게 교육한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을 따르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네가 만약 이 말을 내려놓고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한다면 이 말이 네게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할 것이고 더 이상 네 좌우명이나 행동 원칙이 되지 않을 것이니, 네가 하는 행동은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과 상반될 것이다. 네가 체면이나 존엄을 위해 살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며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산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 진정한 피조물 되기를 추구하기 위해 산다면, 네가 이런 원칙을 따른다면 너는 가정이 교육한 그런 것들을 내려놓게 될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2)> 중에서) 저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제가 늘 체면에 얽매여 정직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는 사탄 독소에 물들어 체면과 지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체면과 지위가 있어야 폼 나게 살 수 있고, 존엄성과 인격이 있다고 믿었으며, 자신의 부족한 점이 드러나면 위신이 떨어져서 남들에게 무시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잃는 것처럼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사실, 본분 이행 과정에서 생긴 문제를 얘기하고 구해야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할 수 있고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본분 이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 해결할지 구하지 않고,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잔꾀를 부리고 속임수를 썼습니다. 설령 이미 사역에 손해를 초래해 놓고도 숨기며 얘기하지 않고, 덮어 놓고 자기가 어떤 사역을 했다는 말만 늘어 놓았습니다. 그 때문에 리더는 제가 본분에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했고, 이는 문제가 제때 해결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저는 체면을 위해 거짓말을 했습니다. 리더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고, 교회가 손해를 입는 것도 불사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인격과 존엄성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사는 모습은 바로 귀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인격과 존엄성은 자신의 체면을 포장하고 지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여 부족한 점이나 모자란 부분이 무엇인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진리를 받아들여 실행하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겨야 바로 인격과 존엄성을 갖춘 사람입니다. 반면 사탄 독소에 의지해 사는 사람은 갈수록 사악하고 간사해지고 악행이 점점 늘어서 결국 하나님께 혐오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또다른 하나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럼 이익을 추구하는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은 이익을 그 무엇보다 높이 본다. 이익을 얻기 위해 간사한 짓을 하며, 간사한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먼저 이익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이익을 추구한 결과는 무엇인지 분별하고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밝히 알지 못하면 이익을 포기하기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이익을 포기하기가 그 무엇보다 어려울 것이다. 사람의 생명 철학이 바로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람은 누구나 이익을 위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이익이 없다면, 또는 이익을 잃는다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사람이 생존하려면 이익을 떠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오직 이익만을 좇으며, 이익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익을 위해 살아간다. 사람에게 이익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목숨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겠느냐? 반드시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진리를 깨달아야만 이익의 본질을 간파할 수 있고, 포기하고 저버리는 법을 배워 고통을 감내하면서 내려놓을 수 있다. 네가 고통을 감내하면서 내려놓고 이익을 포기한다면 어느 정도 홀가분하고 평안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육을 이긴 것이다. 만약 네가 한사코 이익을 끌어안고 놓지 않으며,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이익을 얻을 거야. 절대 손해 보지 않을 거라고. 이게 뭐가 잘못됐어? 하나님도 나를 벌하지 않으셨는데 사람이 나를 어쩌겠어?’ 누구도 너를 어쩌지는 못하지만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마지막에는 진리 생명을 얻을 수 없다. 그럼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큰 유감이 되지 않겠느냐? 이것이 바로 이익을 추구하는 자의 최종 결말이다. 사람이 명리와 지위,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영원히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한다.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자신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을 아는 것은 성품 변화의 기초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이 저를 일깨웠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해야 진리를 얻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체면과 지위를 얻는 것은, 비록 일시적으로 허영심을 만족시킬 수는 있어도 그것이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두 번 사실을 얘기했을 때, 비록 당시는 조금 창피했지만, 리더의 지적과 도움을 통해 제가 체면과 지위를 위해 사역하면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가 본분을 이행할 때의 오류를 깨닫고, 문제를 해결하는 원칙과 길을 찾았습니다. 비교해 보니, 체면을 잃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역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직면하고 바르게 대해서, 문제나 어려움이 있으면 사실대로 얘기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합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해야 발전이 있습니다. 반대로, 만약 제가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잔꾀를 부리고 속임수를 쓴다면 자기 문제를 정확히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본분 성과에도 영향을 주고 스스로도 과오를 남기게 됩니다. 이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요? 이 점을 인식한 뒤,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 구원의 길을 가기로 다짐했습니다.
잠시 후 저는 계속해서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늘 리더가 사역을 감독하고 파악하는 것을 겁냈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리더가 사역을 감독하는 의미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패괴되어 본분을 이행하면서 수시로 패괴 성품에 따라 행동합니다. 따라서 리더 일꾼이 자주 감독하고 확인하면서, 문제를 발견하면 즉시 교제로 도와주고, 수정하고,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제가 악을 행해서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는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는 보호가 됩니다! 그 밖에도, 저는 체면과 지위에 대한 욕심이 너무 큽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늘 눈앞의 성공과 이익에 급급해서 원칙을 어기며 일했고, 스스로가 본분에 퍽 부담을 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역 성과가 좋지 않아도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원인을 찾지 않았습니다. 사정을 파악한 리더에게 비록 책망과 폭로를 당하기는 했지만, 리더의 지적과 교제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리더의 감독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의식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훈련을 했습니다. 리더나 형제자매 누구와 함께 지내든 솔직하게 말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간혹 본분을 이행하다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모를 때, 솔직히 얘기하고 싶다가도 남들에게 무시당할까 두려울 때는, 얼른 자신을 저버렸습니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구하고 교제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본분 이행, 자신의 생명 진입에 모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의 체험을 통해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의 의미를 깨닫고, 제 간사한 성품에 대해 조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수확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이끄심 덕분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