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고난받았는가

이탈리아 안젤라(Angela)

저는 하나님을 믿은 후, 기꺼이 고난을 감내하는 리더 일꾼들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이 사역하며 본분을 이행했고, 형제자매들은 모두 그들에게 동조하고 감탄했습니다. 그들이 무척 부러웠던 저는, 저 역시 그렇게 고난을 감내하고 대가를 치를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추구했고, 나중에는 교회 리더로 발탁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쉴 새 없이 바쁘게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러자 저한테 고난을 감내할 줄 알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해 주는 형제자매도 있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무척 기뻤고, 고난을 겪는 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제가 담당하는 업무 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업무량도 많아졌습니다. 협력하는 자매 몇 명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를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밤늦게까지 본분을 이행했는데, 때로는 시간이 없어 점심까지 거르며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녀들을 가리켜 책임감 있게 본분을 이행하고 고난을 겪을 줄 안다고 칭찬하는 형제자매들을 보면서 저는 형제자매들이 그런 사람을 좋아하니 하나님께서도 분명 그러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밤을 새워 가며 본분을 이행했죠.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 제 몸에는 과부하가 걸렸습니다. 밤 12시쯤 되면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협력하는 자매들이 계속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차마 쉬러 갈 수 없었습니다. 육적인 것만 생각하며 본분에 책임감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까 봐 억지로 버텼죠. 하지만 툭하면 저도 모르게 졸았고, 업무 효율도 바닥을 쳤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쉬지 않고 스스로를 격려했습니다. ‘육적인 것만 생각해선 안 돼. 형제자매들에게 무시당할 순 없잖아.’ 가끔은 밤을 새우고도 아침 일찍 예배에 참석하느라 오토바이를 타면서도, 예배를 드리면서도 졸았습니다. 점심때는 쉬고 싶었지만 또 육을 탐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걱정이 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매일 억지로 밤을 새우며 버텼습니다. 하루는 오토바이를 타고 예배에 가다가 너무 졸려 정신이 몽롱해졌습니다. 결국 오토바이와 함께 도랑에 처박힌 후에야 정신을 차렸죠. 길을 걸으면서 저는 계속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태는 문제가 있어.’ 그리고 반성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리더로 발탁된 후, 제가 매일같이 골몰한 것은 표면적으로 고난을 겪고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남들에게 육적인 것만 생각하는 사람, 안일을 탐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까 봐 걱정했고, 그 결과 생활이 불규칙해지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바리새인을 드러내신 말씀을 보면서 저 자신이 대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대체 어떤 자가 바리새인인 줄 아느냐? 너희 주변에 바리새인이 있느냐? 그들은 왜 ‘바리새인’이라 불리는 것이냐? ‘바리새인’이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 바로 외식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가식적이고 위장한다. 어떻게 위장하느냐? 훌륭한 사람인 양, 선하고 긍정적인 사람인 양 위장한다. 사실, 그가 훌륭하고 선하고 긍정적인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다. 가식이라고 하면 모든 모습과 드러내는 것이 거짓되고 위장한 것으로,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한 면은 어디 있느냐? 드러내지 않고 속에 깊이 감춰둔 것이다. 겉모습은 전부 위장한 것이고 모조리 거짓된 것이다. 이는 사람만 속일 수 있을 뿐 하나님을 속이지는 못한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그러면 그가 하는 말은 아무리 듣기 좋아도 다 진리 실제가 아닌 글귀와 도리이다. 어떤 사람은 글귀와 도리를 떠들어 대는 것만 중요시한다. 누가 수준 높은 설교를 한다면 바로 따라 한다. 그 결과,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도 글귀와 도리를 말하는 수준이 점점 높아져 많은 사람이 탄복하고 숭상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언행에 각별히 신경 쓰며 무척이나 경건하고 영적인 척한다. 그는 이런 소위 영적인 이론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어디를 가든 그따위 것들을 말하는데, 진리 실제가 전혀 없이 모두 사람의 관념에 맞는 사이비한 것들이다. 그는 사람의 관념과 입맛에 맞는 그런 것들을 전하여 수많은 사람을 미혹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그의 경건함과 겸손함은 실은 가짜다. 그의 포용과 인내, 사람을 향한 사랑은 꾸며 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의 말도 거짓된 것이다. 사람은 그를 성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성결함 역시 가짜다. 진정으로 성결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전부 거짓된 것으로, 전부 꾸며 내고 포장한 것이다. 겉으로 볼 때 그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듯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연기한 것이다. 사람 뒤에서는 전부 건성으로 일을 하는데, 충성심이라고는 전혀 없다. 또한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가정과 직장을 버렸지만 뒤에서는 무엇을 하겠느냐? 교회에서 개인의 사업과 경영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역한다는 기치하에 교회 밥만 먹고 제물을 훔쳐 먹는다…. 이런 자들이 바로 외식하는 현대판 바리새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바리새인을 폭로하신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저는 마음이 찔리고 괴로웠습니다. 제 행동은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좋아 보이는 겉면의 행위로 스스로를 위장하는 데 몹시 능합니다. 그들은 일부러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고 항상 하나님 말씀을 전했죠. 그렇게 해서 매우 경건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행동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고 사람들의 존경과 숭배를 얻기 위한 것이었죠.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형제자매들 마음속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 표면적인 행위에 골몰했으니까요.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러 모두에게 동조받고 감탄을 자아내는 형제자매들을 보면서 저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리더로 발탁된 후에는 협력하는 자매가 밤늦게까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보며 그녀한테 뒤처질까 봐 저 역시 억지로 밤을 새우면서 아무리 졸려도 버텼고요.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를 줄 안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점심 휴식 시간까지 포기했습니다. 저는 매사에 스스로를 포장하고 위장하면서 표면적인 좋은 행위로 형제자매들의 존경을 얻어 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난받고 헌신하는 것은 전부 거짓이자 기만이었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은 바리새인의 길이었고요. 그런 제가 어떻게 하나님의 혐오를 사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후, 저는 스스로를 포장하거나 위장하고 싶어질 때마다 의식적으로 자신을 저버리고 사람 앞에서 살지 않으려 했습니다. 평소에도 시간을 조정하며 쉬었고요. 그날 사역을 마치면 정상적으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실행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1년 후, 저는 해외에 가게 됐는데, 거기에서는 주변 형제자매 모두 본분을 이행하면서 기꺼이 고난을 감내했습니다. 모두가 매일 늦은 시간까지 본분을 이행했죠. 저는 본분을 마치면 일찍 쉬고 싶었지만 형제자매들이 육적인 것만 생각한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됐습니다. 게다가 저는 리더였습니다. ‘리더인 내가 형제자매들보다 일찍 휴식하면 모두 나를 어떻게 보겠어? 고난을 겪을 줄 모르고 책임감 없이 본분을 이행한다고 하지 않겠냐고.’라고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또 위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밤을 새웠습니다. 하지만 새벽 1시가 되자 너무 졸려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한 자매가 얼른 쉬라고 했지만 저는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으며 “괜찮습니다. 버틸 수 있어요. 잠은 이따가 자면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또 정신이 몽롱해졌습니다. 가끔은 도저히 졸음을 참을 수가 없어 책상에 엎드린 채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지만 형제자매들이 그런 저를 보고 뭐라고 말할지 걱정되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얼른 일어나 다시 본분을 이행했죠. 또 가끔은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 늦은 시간에 일부러 단체 채팅 메시지를 보내 제가 아직 쉬지 않고 밤을 새워 본분을 이행하고 있다는 걸 암시하곤 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영양제를 사고 싶었지만 몸을 아끼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까 봐 구입하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한번은 예배 때, 한 자매의 상태가 좋지 않아 진리 교제로 돕고 붙들어 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녀는 다른 나라에 살아 제가 있는 곳과는 시차가 있었는데, 당시 제가 있는 곳은 한밤중이었습니다. 원래는 다음 날 교제해 줄 생각이었지만 문득 ‘밤에 교제하면 내가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게 더 잘 드러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바로 자매에게 연락했습니다. 교제를 마쳤을 때는 새벽 2시가 다 된 시간이었습니다. 자매는 “지금 그쪽은 무척 늦은 시간이죠? 얼른 주무세요. 자주 그렇게 밤을 새우면 건강에 좋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무척 흡족했습니다. 몸은 좀 힘들어도 책임감과 부담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 줄 수 있었으니 헛수고가 아니다 싶었죠. 얼마 후, 제 몸에는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너무 자주 밤을 새워서 그런 거라고 했지만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계속 수시로 철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러자 윗선 리더도 주의를 주었습니다. “너무 늦게 주무시지 마세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도 사역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는답니다.” 하지만 ‘내가 일찍 자면 형제자매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리더가 돼서 다른 사람보다 고난을 겪지 않는다고 생각할 거 아냐. 그런데도 그들이 나를 존경할까?’라고 생각한 저는 리더의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한 자매는 몸이 안 좋은 저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은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매일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그렇게 많으니 업무적 압박감도 많겠죠. 그러니까 몸이 안 좋아지는 거예요. 정말이지 리더 분들은 신경 쓸 게 너무 많다니까요!” 저는 자매의 말을 들으며 무척 흡족했습니다. 대가를 치르고 고난을 겪는 모습을 인정받았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던 중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고 나서야 제가 그릇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얼마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기에서 하나의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적그리스도는 결코 진리 원칙대로 행하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명예와 지위, 복과 상을 얻는 것 외에, 육적인 안락함과 지위의 복을 누리는 것이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방해하고 교란하는 짓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추구, 그의 행위와 태도가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방식과 행위가 절대 아님을 보여 준다. 바울과 같은 적그리스도들을 예로 들어 보자. 그들은 본분을 이행할 때 고생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 침식을 잊은 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사역할 수 있고,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켜 몸이 불편하고 병이 나도 모두 참을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냐? 자신이 하나님이 맡긴 일을 대함에 있어 자신을 잊고 오직 본분만을 생각하는 무아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다. 그는 이런 행동을 사람들 앞에서 한다.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쉬어야 할 때 쉬지 않고, 심지어 일부러 사역 시간을 연장하기까지 하며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을 잔다. 적그리스도가 이렇듯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바쁘게 보내면 그 사역 효과와 본분 이행 성과가 어떻겠느냐? 이런 것은 그의 고려 사항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하여 자신이 고생하고 있고, 이렇게 자신을 잊은 채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싶은 것뿐이다. 그가 이행하는 본분과 하고 있는 일이 정말로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해지고 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겉으로 보이는 자신의 좋은 행위를 모든 사람이 봤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지만 생각한다. 그리고 모두의 마음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그 인상으로 인해 모두가 속으로 그에 대해 감탄하고 인정하는지, 심지어 뒤에서 은근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이 사람은 정말 고생할 줄 아는 사람이야. 고생을 감수하는 정신과 범상치 않은 끈기는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지. 이 사람이야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자 고생하며 중임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야. 이런 사람이 교회의 기둥이지.”라고 칭찬하는지만 따진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칭찬을 들으면 만족해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위장한 건 너무 똑똑한 짓이었어. 이렇게 하다니 난 정말 지혜로워! 사람들이 겉모습만 볼 줄 알았어. 사람들은 이런 좋은 행위를 좋아해. 이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줄 알았어.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마음속 깊이 내게 감탄하고, 나를 다시 보게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고. 앞으로 더 이상 아무도 나를 얕보지 않을 거야. 언젠가 상부에서 내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를 교체하려고 하면, 분명 많은 사람이 나를 위해 울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를 붙잡고, 나를 대변해 주려고 할 거야.’ 그는 속으로 자기 위장 행위를 즐거워하고 있는데, 즐거워하는 동시에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드러내고 있지 않느냐? 그게 어떤 본질이냐? (사악함입니다.) 맞다. 이것이 바로 사악한 본질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10)> 중에서) 하나님은 적그리스도가 극도로 사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사람을 지배하고 사람의 숭배를 얻어 내기 위해 온갖 수법으로 자신을 포장하여 거짓된 모습을 보여 준다고 폭로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고의로 사역 시간을 늘린다거나 밤을 새운다거나 일찍 일어난다거나 하는 등의 행위로 말입니다. 그런 것들은 겉으로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먹고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니까요. 그들은 그렇게 사람들의 감탄과 숭배를 얻고, 마지막에는 사람들을 자신의 앞으로 데려갑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그러한 행위를 혐오하고 정죄하십니다. 하나님 말씀과 제 모습을 대조해 보며 저는 마음이 찔리고 괴로웠습니다. 제 모습은 적그리스도와 똑같았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고난을 겪을 줄 알고 육을 생각하지 않으며 사역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줘서 그들이 마음속 깊이 저를 좋은 리더라고 여기고 탄복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쉴 때도 먹을 때도 머리를 쥐어짜 쇼를 했습니다. 쉬어야 할 때 쉬지 않았고, 굳이 밤을 새울 필요가 없는데도 일부러 밤을 새웠으며, 몸에 병이 났는데도 억지로 버텼습니다. 심지어는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거나 이미지가 안 좋아질까 봐 걱정돼서 영양제조차 사지 않았습니다. 저는 겉면의 좋은 행위,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르는 행위로 교묘하게 제 이미지를 만듦으로써 사람들이 저를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착실하고 충성스럽게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으로,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게 하고, 저를 다시 보게 했습니다. 제가 치른 대가와 헌신은 전부 위장이자 기만이었고, 저 자신을 미화하고 거짓된 모습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간 길은 적그리스도의 길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하며 제 잘못된 내적 상태를 돌이키고자 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제가 왜 이렇게 표면적으로 고난을 겪는 것에 신경을 쓰는지 되돌아보면서 제 내면에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늘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를 줄 알며 표면적으로 좋은 행위를 보이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서 비로소 그런 관점이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외적인 좋은 행위란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육을 의미한다. 외적인 행위는 제아무리 훌륭해도 그 사람의 성품만을 의미할 뿐, 생명을 의미할 수는 없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도 없다. … 겉으로만 행동을 취하는 것은 네가 누구보다 가식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외적인 좋은 행위만 있을 뿐 실제가 없는 자들이 어떤 사람이냐? 외식하는 바리새인이요, 종교 인사이다! 외적인 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한다면, 가식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가식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을 더욱 대적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결국 도태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종교 의식이 아닌 실제를 중요시해야 한다> 중에서), 『지금 어떤 이들은 본분 이행을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침식을 잊고 몰두할 수 있다. 육을 쳐서 복종시키고 육의 어려움도 저버릴 수 있다. 심지어는 병을 앓으면서 사역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렇게 배울 점들이 있는 좋은 사람, 옳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도 아직 내려놓지 못한 것들이 있으니 바로 명예와 지위, 허영이다. 이런 것들을 끝내 내려놓지 못한다면, 그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냐? 이런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힘든 일은 성품 변화에 이르는 것이다. 아마 너는 평생을 결혼도 하지 않고, 좋은 음식, 좋은 옷 없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평생 고생하고, 평생을 외롭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묵묵히 견디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곁에 함께하시니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육적인 고통과 어려움은 쉽게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다.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바로 사람의 패괴 성품이다. 패괴 성품은 극복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은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훗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이런 육적인 고통은 다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고통받고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해서 사람의 성품이 변화했다고 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의 성품 변화 여부를 가늠하려면 그 사람이 겉으로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좋은 행위가 얼마나 있는지를 볼 게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의 출발점이 어떤 것인지, 의도와 동기가 무엇인지, 일 처리의 원칙과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 등을 봐야 한다. 이 몇 가지 부분을 통해 판단해야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좋은 행위가 성품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례로, 은혜시대의 바울은 겉으로 볼 때 고난을 겪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의 표면적인 행위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하지만 그가 고난을 겪고 헌신한 것은 전부 하나님과 거래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난을 겪음으로써 면류관과 천국의 복을 얻으려는 거였죠. 그의 ‘좋은 행위’는 그의 성품이 변화했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표면적인 좋은 행위로 인해 그는 어디를 가든 자신을 나타내고 증거했으며 점점 더 교만하고 방자해졌습니다. 심지어는 공개적으로 자기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다가 결국 하나님께 정죄되고 징벌받았죠. 자신을 반성해 보면 저 역시 표면적인 좋은 행위로 스스로를 위장해 남들의 존경을 얻는 데만 매진했을 뿐, 진리를 실행하고 제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점점 더 외식하게 되었고, 생명 성품에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추구한다면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할 게 분명했습니다. 바울처럼 하나님께 내쳐질 수밖에 없죠. 여기까지 생각하자 한시바삐 제 그릇된 추구 관점을 바로잡고 싶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육을 주었다. 육은 생리적으로 일정 범위 내에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지만, 이 범위를 벗어나거나 법칙을 어기면 바로 문제가 생긴다. 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 준 법칙은 깨뜨리지 마라. 이 법칙을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경(不敬)이요, 무지몽매한 짓이다. 이 법칙을 깨뜨리고 함부로 행동하면 하나님은 너를 보호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의 이런 행동을 혐오한다. … 본분은 정상적으로 휴식하면서 이행하는 것이 제일 좋다. 가끔 본분이 바빠지면 육이 어느 정도 고생해야 한다. 참고 견뎌야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안 된다. 그러면 지치기 쉽고, 이행하는 본분의 성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므로, 이럴 때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 휴식의 목적이 무엇이냐? 바로 몸을 잘 추슬러서 본분을 더 잘 이행하기 위함이다. 몸이 피곤하지도 않은데 본분이 바빠도 상관하지 않고 늘 게으름을 피우려 한다면, 이는 충성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충성을 다해 하나님이 네게 맡긴 본분을 잘 이행하는 동시에 몸을 지치지 않게 해야 한다. 이 원칙을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본분이 바쁘지 않을 때는 제때 쉬고, 아침에 일어나 정상적으로 영 생활을 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또, 함께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를 교제하거나 찬양을 배워라. 본분이 바빠지면 본분 이행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며 하나님 말씀을 현실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라. 이렇게 하면 쉽게 진리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으며, 이래야 하나님 사역을 진실로 체험할 수 있다. 이렇게 조절해야 한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자 마음속이 환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이 정해 놓은 생존 법칙대로 살아가며, 정상적인 삶과 휴식을 전제로 본분을 이행하게 하십니다. 사역하면서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러야 할 때는 육을 저버리고 최선을 다해 그 사역을 완수해야겠죠. 하지만 밤을 새울 필요가 없을 때는 정상적으로 휴식하면서 양호한 정신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해야 효율도 생기고요. 저는 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8)라는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본분 이행 과정에서 그분의 뜻을 헤아리고, 진실한 부담을 가지며, 마음과 뜻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일이고요. 하나님이 가리켜 주신 길을 묵상하며 저는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분명한데 저는 그것을 실행하기는커녕 늘 제 관념과 상상대로 일하면서 무의미한 고통을 겪었으니까요. 이제 저는 표면적으로 좋아 보이는 행위에 골몰하지 말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사에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며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을 다해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 후, 저는 예배 때 제가 걸어온 잘못된 길과 치우친 사상 관점에 대해 해부하여 형제자매들이 분별력을 키우게 했습니다. 평소에도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데 집중했고요. 더는 표면적으로 고난을 겪으면서 남들에게 존경받기 위해 골몰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사역에 부담을 가질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원칙대로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에 마음을 썼습니다. 조금씩, 저는 남들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게 됐고, 보여 주기식의 행동도 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이런 체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 말씀이야말로 사람으로서 행동해야 할 방향이자 준칙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면 자유롭고 홀가분해진다는 것을, 매일 스스로를 포장하고 위장할 필요가 없어 삶이 그렇게 피곤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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