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안일을 탐해서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
2021년 7월, 저는 영상 사역의 책임자가 됐습니다. 당시 저는 형제자매들한테 수시로 본분 이행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나 어려움에 대해 물어보고, 함께 진리를 구해 해결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사역 성과가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저는 ‘이제 사역 성과가 안정적으로 올라가고 있으니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야. 문제가 생겨도 당장 눈앞의 성과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테니까 천천히 해결하면 돼.’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니 너무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죠. 게다가 저는 그동안 사역을 체크하느라 늘 늦게 잠이 들었고, 제때 끼니를 챙겨 먹기조차 힘들 정도로 바쁠 때도 있었기 때문에 정말 피곤했습니다. 원체 몸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좀 쉬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는 사역할 때 긴장감이 풀려 그리 자주 체크하지 않았습니다. 형식적으로 몇 마디 물어보기만 할 때도 있었고, 형제자매들에게 본분 이행 상황에 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사역 성과를 더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열심히 고민하지 않았죠.
얼마 후, 형제자매들이 제작한 영상 몇 개에 연달아 문제가 발생해 다시 제작하게 되면서 사역 진도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자 마음이 무척 조급해졌습니다. 이 일이 닥친 것이 우연이 아니며, 거기에는 분명 제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저는 팀장에게 문제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팀장은 “우선 형제자매 몇 명이 눈앞의 성과에만 급급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원칙을 따르지 않았고, 사역 진도만 신경 쓰면서 완성물의 품질을 생각하지 않은 거죠. 또 다른 이유는 저한테 있습니다. 제가 제대로 사역을 체크하지 않아 제때 발견하지 못한 문제들도 있고요.”라고 말했습니다. 팀장의 답변을 듣자 좀 화가 났습니다. 그 문제들은 몇 번이나 지적했던 것들인데 왜 아직도 제대로 체크하지 않았나 싶었죠. 하지만 팀장을 질책하려고 할 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팀장의 문제는 곧 내 문제 아닐까? 나도 제대로 사역을 체크하지 않았잖아.’ 이렇게 생각한 저는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켰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모두가 제작한 영상들을 급히 검토해 보았습니다. 본분 이행 과정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실력이 퇴보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분명한 문제를 여태까지는 왜 몰랐을까요? 이는 제가 실제 사역을 하지 않아 생긴 문제가 분명했습니다. 저는 깊이 후회하며 하나님께 저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튿날, 영 생활 시간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힘만 쓰고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며 이것을 밑천으로 삼을 것이다. 또 매일 대충 흐리멍덩하게 살아가면서 틀에 박힌 대로 일하고 공을 들이지 않으며 마음을 다하는 법 없이 늘 건성으로 임할 것이다. 그런 식의 본분 이행은 결코 합격할 수 없다. 힘을 다하려면 먼저 마음을 다해야 한다. 마음을 다해야 힘을 다할 수 있고 또 제대로 힘을 다할 수도 있다. 지금 본분을 이행하면서 마음을 다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을지, 소극적이고 나태하게 굴지 않고 수동적으로 상부의 명령만 기다리지 않으며 자발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너희의 본분 이행을 보면 전보다 성과가 좋아졌다. 비록 합격점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얼마간 발전을 했으니 아주 훌륭하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모색하며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본분을 더 잘 이행하여 합격점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하거나 온 힘을 다 들이지 못하고 그저 50~60%의 힘만 쓰면서 대충 건성으로 이행하면 그만이다. 항상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감독하고 붙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긴장이 풀리고 해이해진다. 누군가 진리를 교제해 주면 힘이 생기겠지만, 한동안 진리를 교제해 주지 않으면 또 힘이 빠질 것이다. 늘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건 무엇이 문제겠느냐? 사람이 진리를 얻지 못하면 이렇게 된다. 항상 의욕적으로 살아가지만 그 의욕은 유지하기가 힘들다. 누군가 매일 설교하고 교제해 줘야 한다. 양육하고 공급하고 붙들어 주는 사람이 없어지면 또다시 마음이 식고 긴장이 풀리게 된다. 마음에 긴장이 풀리면 본분 이행 성과도 떨어진다. 분발한다면 효과가 좋아지고, 본분 이행 성과도 많아지며, 더 큰 수확도 거두게 될 것이다. 너희는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지 않으냐? 어쩌면 너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저희는 본분을 이행할 때 왜 늘 어려움에 부딪힐까요? 어려움을 해결하면 힘이 생기고,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하면 힘이 나지 않습니다. 저희가 본분 이행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또 저희가 성장했다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신다면 저희는 무척 기뻐하고, 드디어 성장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어려움에 부딪히면 또 소극적이 됩니다. 왜 이런 내적 상태를 늘 반복하는 걸까요?” 사실, 주된 원인은 바로 깨달은 진리가 너무 적고 체험과 진입도 너무 얕기 때문이다. 많은 진리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이렇다 할 의지도 없이 그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걸로 만족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데 어떻게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있겠느냐? 사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전부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양심의 기능을 발휘하고, 양심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기만 하면 쉽게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으면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있다. 너희들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그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엄청난 수확을 거뒀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축복은 너무도 커. 나는 하나님의 손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와 주재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어. 하나님이 나에게 이 숨결을 주셨으니, 나는 마땅히 마음을 다해야 해. 온 힘을 바쳐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사람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의지가 있는 사람만이 진리에 도달하려고 노력할 수 있고, 진리를 깨달아야만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며 사탄에게 수치를 안겨 줄 수 있다. 네가 이런 진심을 갖고 자신을 위해 머리를 굴리지 않고 오직 진리를 얻고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는 데만 목적을 둔다면, 네 본분 이행은 정상적일 것이며 언제나 한결같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 임하든 본분을 이행해 나갈 수 있다. 너를 미혹하거나 교란하는 자가 있든 없든, 기분이 좋거나 나쁠 때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네게 마음을 놓을 것이고, 성령도 너를 깨우쳐 주어 진리 원칙을 깨닫게 할 것이며, 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네 본분 이행은 틀림없이 합격할 수 있다. 네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착실히 본분을 이행하며 몸을 사리지만 않는다면 하나님 편에서는 통과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고, 사람의 모든 생각과 마음가짐, 동기를 감찰한다. 네 마음이 진리를 사모하고 네가 진리를 구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너를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본분 이행 과정에서 약간의 성과가 나자 스스로 만족하면서 육을 좇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무척 바빴으니 저 자신한테도 시간을 줘야 한다며 긴장을 풀고 나태하게 본분을 대하기 시작했죠. 직책은 있었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형제자매들의 본분 이행 상황을 제때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사역 과정에 해결이 필요한 문제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급해하지 않았고, 눈앞의 성과에 지장만 주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모두 건성으로 임하기에 본분 이행 과정에서 긴장이 풀려 느슨해지기 쉽습니다. 저는 사역을 체크하지 않고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했으며, 마음을 다하지도, 책임을 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사역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교회에서는 제게 훈련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를 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제가 마음을 다해 책임감 있게 본분을 잘 이행하길 바란 거였죠. 본분을 대할 때 전력을 기울여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를 말입니다. 그렇게 본분을 이행해야 성장할 수 있을 테고요. 하지만 저는 삯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본분을 대했습니다. 머리를 덜 쓰는 방법, 힘을 덜 들이는 방법이 있으면 그 방법을 택했죠. 본분을 이행하면서 조급해하지도, 열을 올리지도 않았으며, 어떻게 해야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떻게 해야 덜 고생하고 덜 힘들지만 생각할 뿐,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제야 제 본분 이행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하나님께 속셈을 숨기고 교활한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번은 예배 때, 거짓 리더를 폭로하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리더는 사역 진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사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제때 발견하지 못하며, 해결은 더더욱 못하기에 수시로 사역을 지연시킨다. 사람이 원칙을 파악하지 못하고, 적합한 자가 책임지고 주관하지 않으며, 사역자가 종종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기다리기만 하는 상태에 빠지는 등의 이유로, 사역의 진도는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만약 리더가 책임을 다해 주관하고 추진하고 독촉하는 한편,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을 찾아 해당 사역을 지도하게 한다면 사역 진도는 계속 지연되지 않을 것이며, 상대적으로 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로서 사역 현황을 알아보고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사역 진도도 알아보고 파악하는 것 또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사역 진도는 사역 효율이나 그 사역이 내야 할 성과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리더 일꾼이 교회 사역의 진도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체크하거나 감독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사역 진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본분을 이행하는 많은 인원이 불량 기질을 지니고 있으며, 부담이 없고, 수시로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으로 굴고, 대충 건성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부담이 있고 업무 능력이 있는 사람이 사역을 책임지지 않고, 제때 사역의 진도를 알아보면서 본분 이행 인원에 대해 지도하거나 감독하지 않고, 징계와 책망도 하지 않는다면 사역 효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고, 사역 성과 또한 크게 떨어지게 된다. 리더 일꾼이 이런 일조차 간파하지 못한다면, 어리석고 눈먼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 일꾼은 반드시 사역 진도를 제때 알아보고 체크하고 파악해야 하고, 본분 이행 인원에게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야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이런 것은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리더라면 이러한 일들을 반드시 꿰뚫고 있어야 한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절대 거짓 리더처럼 표면적인 일만 좀 하고서 본분을 제대로 이행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거짓 리더는 사역할 때 대충 형식만 취할 뿐,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지 않고, 어떤 사역을 하든 주마간산 식으로 대충 넘어간다. 그저 큰소리만 치고 도리와 빈말을 늘어놓으며 형식만 따를 뿐이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거짓 리더는 이런 상태로 사역을 한다. 적그리스도와 비교해 보면, 거짓 리더는 눈에 띄게, 고의로 악을 행하지는 않지만, 사역 성과 면에서 보면 일을 건성으로 하고 부담을 갖지 않으며, 본분에 무책임하고 충성심도 없다고 규정하는 것이 적절하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무척 자책이 됐습니다. 제 태도는 거짓 리더와 똑같지 않을까요? 저는 게으름을 피우고 육을 좇았으며, 사역을 체크하지도 감독하지도 않아 전체 사역 성과와 진도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여태까지 저는 제 상상대로 ‘사역할 때 이 정도면 됐어. 그렇게 문제가 많지도 않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척 많았습니다. 제가 부담도, 책임감도 갖지 않았기에 눈멀고 마음까지 멀어 문제를 보지 못했을 뿐이죠. 자신을 돌아보면서 저는 또 제게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모두 자발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니 감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찍이 이렇게 폭로한 바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타성이 있는 데다가 패괴 성품이 깊이 뿌리박혀 있어 진리를 얻고 성품 변화를 이루기 전까지는 육을 좇고 안일을 탐한다고요. 또 본분을 이행할 때 대충 건성으로 임하고 잔꾀를 부리며, 때로는 자기 뜻을 따르면서 원칙대로 실행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저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그리고 형제자매들의 일깨움과 독촉이 없다면 나태해지기 쉽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사역을 체크하고 감독해서 문제점과 오류를 제때 발견하고 해결해야만 사역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의 패괴 본성을 깨닫지 못했고, 일과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상상에 기댄 채 실제적으로 사역을 검토하거나 체크하지 않았고, 제때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았죠. 그러면서 가만히 앉아서 성과를 누리려고 했습니다. 이는 실제 사역을 하지 않는 거짓 리더의 모습입니다. 비록 눈에 띄는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무책임한 태도로 사역에 영향과 지장을 주었습니다. 그 손해는 만회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깨달은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솔직히 제 내적 상태를 털어놓고 교제했습니다. 또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발전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건성으로 임하는 문제에 관해 지적하며 모두 함께 구하고 해결하고자 했죠. 그 후로는 본분을 이행할 때 예전보다 열심히 임했습니다. 일을 끝낸 후에는 개선할 여지가 없는지 생각했고, 수시로 사역을 체크하며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사역 성과가 예전보다 어느 정도 좋아졌습니다.
얼마 후, 형제자매들이 영상을 제작하다가 난관에 봉착했고, 팀장은 제게 좋은 방법이나 의견이 없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네요.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바로 그 문제에 관해 찾아보고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 난관을 해결하는 것이 간단하게 말 몇 마디, 입 몇 번 움직여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또 고민하면서 연구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시간과 정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테스트하면서 결과를 종합해야 했고요. 그래도 성과가 좋을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성과가 좋지 않다면 제가 들인 노력은 헛수고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리저리 따져 본 저는 그것이 고생스러운 일이라고 판단하고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단 그렇게 두자고 생각했죠. 어쨌든 당시의 사역 성과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으니까요.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었고요. 저는 그 문제를 한쪽으로 미뤄 두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사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좀 치르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팀장도 “지금 형제자매들이 난관에 봉착해 있으니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팀장이 일깨워 준 덕에 저는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책임자라면 마땅히 앞장서서 난관을 헤쳐 나가고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런데 나는 조금의 책임감도 없이 어려움 앞에서 도망쳤어.’ 자책을 느낀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역 과정에 마주한 난관 앞에서 노력하려 하지 않고 언제나 제 육적인 이익만 생각했습니다. 이래서는 당신의 뜻에 부합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자신을 돌아보고 인식하며, 그릇된 내적 상태를 되돌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영 생활 시간에 저는 계속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본분을 이행하면서 항상 육을 좇기만 하는 걸까? 왜 대가를 치르고 실제 사역을 하지 못하는 거지?’ 하루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의 독소는 무엇이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미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되었다. 바로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인 것이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생존의 토대가 되었다. 몇천 년간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이 독소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사람의 육은 뱀과 같아 본질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해친다. 네가 육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을 때가 곧 목숨을 잃는 때이다. 육은 사탄에 속하는 것으로, 그 안에는 언제나 사치스러운 욕망이 들어 있어 항상 자신만 생각하고, 호강하길 원하며 안락한 생활을 탐내고, 초조해하지도 않은 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어느 지경까지 육을 만족시키다 보면 종국에는 육에 삼켜지고 만다. 다시 말해, 네가 이번에 육을 만족시켰다면 육은 다음에도 네가 만족시켜 주길 바란다. 육 안에는 늘 사치스러운 욕망과 새로운 요구가 있으며, 네가 육을 생각하는 기회를 틈타 육을 더욱 아끼며 육의 안락 속에서 살게 한다. 그러니 네가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결국 너 자신을 망칠 것이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을지, 마지막에 어떤 결말일지는 육을 어떻게 저버리느냐에 달렸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고 또 너를 선택하고 예정했다 해도 네가 지금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 하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려 하지 않으며,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 육을 저버리려 하지 않아 결국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면, 너는 극한의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네가 항상 육을 생각한다면, 너는 천천히 사탄에게 잠식될 것이고, 생명도 영적 감동도 없다가 언젠가 내면이 완전히 어두워질 것이다. 어둠 속에서 살면 사탄에게 사로잡혀 더 이상 마음속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때 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떠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제 내적 상태가 정말 무척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사탄의 철학으로 살면서 몹시 이기적으로 굴었습니다. 무슨 일이 닥치든 먼저 제 육적인 이익만 고려했죠. 본분을 이행하다가 문제가 생겨서 노력을 기울여 해결해야 할 때면 어떻게 하면 교회 사역에 도움이 될지는 생각하지 않고, 늘 육을 생각하면서 덜 고생하고 대가도 적게 치르고자 했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고 시간을 들이며 노력하고 연구하고 고민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나치게 육을 좇으면서 고생하지 않으려 했으며, 업무에 대해 알아보려면 머리를 너무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줄곧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사역 상황도 호전되지 않았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육체 본질이 사탄에게 속한다고 폭로한 바 있습니다. 육은 늘 수많은 욕망과 요구를 품고 있습니다. 육을 만족시킬수록 그 욕망은 더욱 커지죠. 육적인 이익과 본분 이행이 충돌할 때마다 안일을 탐한다면 육을 따르는 것을 선택하게 되고 교회 사역은 한쪽에 미뤄 두게 됩니다. 그러면 육은 만족시키겠지만 교회의 사역을 망치게 되며, 자신 역시 어둠 속에 떨어져 생명에 해를 입게 됩니다. 육을 좇고 안일을 탐한 결과는 너무나 심각합니다. 저는 육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 채 늘 안일을 탐하며, 육적인 누림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 이런 추구와 일을 보는 관점은 이방인들과 같지 않을까요? 이방인들은 늘 “자기 자신을 아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즉, 자신의 육을 고생시키지 말고, 육적인 욕망과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라는 거죠. 그들은 오직 육을 위해서 살아갈 뿐, 사람이 살아가는 가치와 의미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인생의 올바른 방향과 목표도 없고요. 그저 공허하게 인생을 흘려보내고, 되는대로 살아갈 뿐이죠. 이런 삶에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교회에는 언제나 육적인 누림을 탐하며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직무를 소홀히 한 채 잔꾀를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 사역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면 결국 교체되고 내쳐지게 되죠. 그 결과는 정말 심각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었지만 일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기지 않았고, 육적인 이익을 진리보다 중요하게 여겼으며, 오직 안일만을 탐하고자 했습니다. 본분을 대할 때도 형식만 차리며 건성으로 넘어갔고요. 계속 이런 식으로 나아간다면 저 역시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되지 않을까요? 여기까지 깨닫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더는 육을 좇을 수 없었죠. 저는 착실히 본분을 이행하며 제 책임을 다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본분을 이행하고 개인의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본분을 이행할 때 늘 양심적이고 이성적이며 진실로 공을 들여야 한다. 무엇이 진실로 공을 들이는 것이겠느냐? 힘이나 좀 쓰고 육적으로 고난을 좀 겪는 것에 만족할 뿐, 본분을 이행할 때 진지하게 대하는 법이 없고 진리 원칙을 구하지도 않는다면 이는 그야말로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것이지, 진실로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니다. 공을 들이는 핵심은 마음을 다하는 데 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을 거역했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봐 두려워해야 한다. 또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면 어떤 고난을 겪든 상관없으며,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만약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때 부담을 갖지 않으며 흥미도 느끼지 못한다면, 분명 대충 건성으로 임하면서 형식만 갖추고 실제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이는 본분 이행이 아니다. 정말 부담을 갖고 본분 이행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느낀다면,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도 없으며 그건 짐승과 같다고 생각한다면, 또 제대로 본분을 이행해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고 여긴다면, 이런 부담을 갖고 본분을 이행한다면, 모든 일을 열심히 해낼 것이며 진리를 구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그 사명과 하나님이 너를 위해 치른 모든 대가, 그리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실로 공을 들이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네가 사심이 생겨 자신을 위해 이익을 꾀하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바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먼저 그와 같은 행동의 본질은 진리 원칙을 어기는 것이고, 그런 짓은 교회 사역에 불리한 이기적이고 비열한 수법임을,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마땅히 자신의 이익과 사심을 내려놓고 교회 사역을 생각하는 것이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 자신을 반성한 후, 만약 그렇게 하는 것이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하게 되면 쉽게 자신의 사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 네가 사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위해 이익을 도모하지 않게 되면 마음이 안정되어 평안하고 즐거워진다. 또한, 사람이 양심과 이성이 있다면 마땅히 교회 사역을 고려해야 하지, 개인의 이익에만 집중하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양심과 이성이 없는 짓이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자각하게 된다. 일을 할 때 사심을 버리고 교회 사역을 생각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일을 하면 언제나 당당하고, 보람 있게 살 수 있다. 이렇게 세상을 당당하게 살고 정상 인성,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내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베풀어 준 모든 것에도 떳떳하다. 네가 이런 모습으로 살수록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고, 평안하고, 밝아질 것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로 들어선 것 아니겠느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저는 본분을 잘 이행하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겉으로만 힘을 쓰고 대가를 치르는 게 아니라 마음속으로 부담을 갖는 게 중요했습니다. 교회 사역을 1순위에 놓고 마음과 힘을 다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비록 본분 이행 과정에서 갖가지 난관과 문제에 봉착했지만 그 난관 덕에 제가 안일을 탐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타락한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제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추구 관점을 돌아보고 알게 되어 회개하고 바뀔 수 있었고요. 이는 진리를 얻고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좋은 기회였습니다. 한편, 업무 측면에서 제 부족함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업무 능력을 향상시켜야 본분 이행 성과도 개선되겠죠. 제가 이 난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면 이건 좋은 일 아닐까요? 하나님의 뜻을 깨닫자 마음속에 힘이 생겼습니다. 그 후, 저는 직면한 문제와 어려움에 관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한편, 형제자매들과 함께 해결 방안을 상의했습니다. 더는 직책만 갖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업무 연구에도 힘썼습니다. 난관에 봉착해서 또다시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하나님께 기도하며 육을 저버리고 실제적으로 대가를 치러 해결법을 찾으려 했죠.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고, 문제가 아주 빨리 해결됐습니다. 영상 효과도 예전보다 좋아졌고요.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자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습니다. 사실, 문제를 해결하고 실제 사역을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고생스럽지도 않고요. 본분 이행에 조금만 더 마음을 기울이면 하나님의 인도를 얻을 수 있죠. 지금 저는 아직 많이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데 매진하고, 마음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함으로써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