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당신들은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돌아오셨고, 중국인의 형상으로 오셨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성경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떠나실 때는 유대인의 형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실 때도 당연히 유대인의 형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중국인의 형상일 수 있습니까?
관련된 하나님 말씀:
전 우주 위아래에서 하나님이 가장 큰 존재인데, 육신 하나의 형상으로 하나님 자신을 모두 설명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육신을 입은 것은 한 단계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육신의 형상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시대의 변천이나 하나님의 성품과도 관계가 없다. 당시에 예수가 왜 그의 형상을 남기지 않았겠느냐? 왜 사람들에게 그의 형상을 그려 영원히 전하도록 하지 않았겠느냐? 왜 사람들에게 예수의 형상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임을 인정하도록 하지 않았겠느냐? 사람의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은 맞지만, 사람의 모습이 어찌 하나님의 위대한 형상을 대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하늘에서 하나의 특정한 육신에 내려온 것에 불과하다. 이는 그의 영이 육신에 임한 후 육신에서 영의 사역을 하는 것이고 영이 육신에서 발현하는 것이며, 영이 육신에서 역사하는 것이다. 육신이 행하는 사역은 오롯이 영을 대표한다. 육신은 사역을 위한 것이지만 육신의 형상으로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형상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목적과 의의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가 성육신하는 목적은 단지 영이 역사하기에 적합한 거처를 찾아 육신의 사역을 하는 데 있으며, 또한 사람이 그의 행사를 보고 그의 성품을 깨달으며,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기묘한 사역을 알게 하는 데 있다. 그의 이름은 그의 성품을 대표하고 그의 사역은 그의 신분을 대표한다. 하지만 그는 육신의 모습이 그의 형상을 대표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것은 사람의 관념일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의 핵심은 바로 그의 이름과 사역, 성품, 그리고 그의 성별에 있으며, 이로써 그 시대의 경영을 대표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성육신한 모습은 단지 그 당시의 사역을 위한 것일 뿐 그의 경영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성육신한 하나님에게는 특정한 모습이 있어야 하기에, 그는 적합한 가정을 택하여 그의 모습을 결정한 것이다. 모습에 대표적인 의의가 있다면, 그와 비슷하고 용모가 단정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말인데,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 아니냐? 예수의 초상화는 사람들이 스스로 경배하려고 그렸다. 당시에 성령도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상해서 그린 그 초상화를 오늘날까지 전해 온 것이다. 사실 하나님의 원뜻에 따른다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지만, 사람의 지나친 열성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초상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므로 사람은 영원히 그가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개괄할 수 없다. 그저 그의 성품으로 그의 형상을 대신할 뿐이다. 그의 코와 입, 눈은 어떻게 생겼고, 머리카락은 어떠한지, 너는 이러한 것들을 개괄할 수 없다. 지난날 요한은 계시를 받아 인자의 형상을 보고서는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었느니라”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아주 구체적으로 말했지만, 그가 묘사한 하나님의 형상은 결코 피조물의 형상이 아니다. 그가 본 것은 물질세계에 있는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이상(異象)에 불과하다. 요한이 이상을 보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모습’을 참으로 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형상은 피조물의 형상에 속하므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표할 수 없다. 여호와는 인류를 창조할 때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했으며,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고 했다. 이렇듯 당시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고 말했지만, 사람의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과 비슷하다고 해서 사람의 모습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네가 인류의 언어로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하게 개괄해 내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높고 크며, 너무나 위대하고 너무나 기묘하여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 이상 3> 중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한 후에는 반드시 땅을 떠나야 한다. 성육신 하나님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러 온 것일 뿐 그의 형상을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두 차례 성육신을 통해 성육신한 의의를 완전케 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본 적 없는 다른 어떤 족속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는 두 번 다시 유대인에게 공의로운 해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감람산에 올라 만민에게 나타나지도 않을 것이다. 유대인이 본 것은 오직 예수가 유대에 있었을 때의 초상화뿐이다. 성육신한 예수의 사역은 이미 2천 년 전에 끝났으므로 그는 다시 유대인의 형상을 지니고 유대에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며, 유대인의 형상으로 이방의 다른 어떤 족속에게 나타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성육신한 예수의 형상은 요한이 보았던 ‘인자’의 형상이 아니라 유대인의 형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수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더라도 그가 유대인의 형상을 지니고 이방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희는 ‘성육신’의 사역은 시대를 여는 사역이고 한정된 몇 년간의 사역이므로 하나님 영의 모든 사역을 끝낼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예로, 예수의 유대인 형상은 유대에서 사역한 하나님의 형상만을 대표할 수 있고, 오직 십자가의 사역만 할 수 있었다. 예수는 육신에 거하는 동안 시대를 끝내고 인류를 멸하는 사역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자신의 사역을 끝낸 후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가 사람에게 영원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때부터 이방의 충성스러운 신자들도 예수가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벽에 붙여 놓은 예수의 초상화만 보았는데, 그 초상화는 하나님 자신이 사람 앞에 나타난 형상이 아니라 사람이 그린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두 차례 성육신한 형상을 지니고 만인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한 사역은 사람들에게 그의 성품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서로 다른 시대의 사역을 통해 사람에게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그가 공개한 성품과 행한 사역으로 도달한 것이지 예수의 현현을 통해 이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에게 공개할 때는 성육신의 형상을 통해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이 있는 성육신 하나님이 행한 사역을 통해 공개한다는 뜻이다. 그가 한 사역으로 사람들에게 그의 형상을 나타내고 그의 성품을 공개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성육신하여 행하려는 사역의 의의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의 비밀 2> 중에서
예수와 나는 같은 영에서 왔다. 육신은 서로 관련이 없지만 영은 하나이며, 사역의 내용과 담당하는 사역이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서로 다른 모습의 육신을 취한 이유는 시대가 다르고, 사역의 필요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직분이 다르기에 가져온 사역도 다르고, 사람에게 보여 주는 성품 역시 다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이 보고 깨닫는 것 역시 예전과 다르다. 이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 차이이다. 두 육신은 성별도, 모습도 다르고, 같은 가문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며, 같은 시기에 태어난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그들의 영은 하나이다. 둘의 육신은 어떤 혈연관계도, 육적인 관계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서로 다른 시기에 입은 육신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둘 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둘은 같은 혈통도 아니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도 않는다(한 사람은 유대어를 쓰는 남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중국어만 쓰는 여자임). 이 때문에 둘은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나라에서 각자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다. 둘은 하나의 영, 그러니까 같은 본질을 지니고 있으나, 육신의 겉모습은 닮은 부분이 전혀 없다. 똑같은 인성을 지녔을 뿐, 육신의 생김새나 출생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각자의 사역이나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결국 하나의 영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들을 분리시킬 수 없다. 둘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다고 해도, 그들의 영이 그들의 전 존재를 지배하여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사역을 담당하게 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육신은 같은 혈통이 아니다. 여호와의 영이 예수 영의 아버지가 아니고, 예수의 영 또한 여호와 영의 아들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결국 하나의 영이다. 오늘날 성육신한 하나님과 예수 역시 그 어떤 혈연관계도 없다. 그러나 둘의 근원은 하나이다. 이는 둘의 영이 원래부터 하나이기 때문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 중에서
이런 일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우리 각 사람이 먼저 알아야 할 진리는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해야 할 사역을 가져오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어떠함을 나타낼 것이며, 성육신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생명을 베풀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않은 육신이라면 분명히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그가 나타내는 성품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혹은 참도가 맞는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의 본질로 판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아닌지의 핵심은 그 본질(사역, 말씀, 성품 등 훨씬 다양한 측면)에 있지, 겉모습에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겉모습을 살피느라 그 본질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무지몽매한 것이다. 겉모습은 본질을 결정할 수 없다. 더구나 하나님이 한 사역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할 리도 없다. 예수의 겉모습이 바로 사람의 관념에 어긋나는 모습 아니더냐? 예수의 용모와 차림새는 예수의 진짜 신분을 설명할 수 없지 않더냐? 당시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것도 예수의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의 겉모습만 봤기 때문 아니더냐? 나는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는 모든 형제자매가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하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현대의 바리새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하나님의 재림을 어떻게 맞이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어떻게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이 될지 정신 차리고 고민해 보길 바란다. 이는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모든 사람의 책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