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반드시 조화로운 협력을 이루어야 한다. 사람은 모두 패괴 성품을 갖고 있고 진리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조화로운 협력이 있어야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다. 조화로운 협력은 비단 사람의 생명 진입에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본분 이행이나 교회의 사역에도 이로운 점이 있다. 조화롭게 협력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인성이 훌륭하고 정직하다. 인성이 좋지 않고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이거나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은 남들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한다.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착실하지 않으며,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은 남들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없고,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며 함께 지내지도 못한다. 이런 사람은 인성이 없는 사람이고 짐승, 마귀, 사탄에 속한다. 인성이 훌륭하고 말에 잘 따르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본분 이행이 틀림없이 효과를 거둘 수 있고 남들과 쉽게 협력할 수도 있다.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말썽을 부리며, 또한 남들의 본분 이행을 교란하는 사람이 여러 번 가르쳐도 고치지 않고 회개하려는 마음도 없으며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방해하고 교란하고 인품이 저열하다면, 교회의 사역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화를 부르지 않도록 서둘러 제명해야 한다. 이것은 리더 일꾼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어떤 사람들이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책임을 다하지 않아 일을 다시 해야 하는데, 이것은 사역의 효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업무와 경험 부족 외에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다른 원인이 있느냐?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업무와 경험 측면의 문제라면 조금씩 배우며 쌓아 가면 되지만, 사람의 성품에 문제가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겠느냐?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느냐?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겪어야 합니다.)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겪어야 한다는 말은 옳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이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본분을 이행할 때 일을 항상 다시 해야 하는 것은 전문 지식의 불충분이나 경험 부족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극도로 독선적이고 교만하고 조화롭게 협력하지 않으며 독단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그 결과 사역을 망치고 아무런 성과도 없고, 모든 노력이 헛되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람의 패괴 성품이다. 패괴 성품이 지나치게 심각하다면 그런 자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악인이다. 악인의 성품은 일반적인 패괴 성품보다 훨씬 심각하다. 악인은 악을 행할 수 있으며,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할 수 있다. 악인이 본분을 이행하면 일을 엉망으로 만들고 사역을 망칠 뿐이다. 힘써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악인은 아니지만, 패괴 성품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또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패괴 성품은 사람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데 커다란 가로막음이 된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어떤 측면의 패괴 성품이 본분 이행의 효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겠느냐? (교만하고 독선적인 것입니다.) 교만하고 독선적인 것은 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 바로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자기 방식대로 하고 다른 사람의 제안에 귀 기울이지 않고,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타인과 조화롭게 협력하지도 않고, 최종 결정을 항상 자기가 내리려고 하는 것이다. 여러 형제자매가 각자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특정 본분의 이행에 협력하지만, 팀장이나 책임자 중에 항상 최종 결정을 자기가 내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하고, 교제하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지도 않은 채 성급히 일을 시작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말만 듣게 하려 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문제를 발견하고도 아무도 나서서 저지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본분 이행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사역이 엉망이 되어 모든 참여자가 덩달아 일을 다시 해야 하고 고생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누구의 책임이겠느냐? (책임자의 책임입니다.) 다른 참여자들에게는 책임이 없느냐? (있습니다.) 독단적으로 행동하면서 자기 방식대로만 일하겠다고 고집하는 책임자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도 그를 막지도 않고 더 심각하게는 그런 사람에게 맞춰 주기까지 한다면, 그들은 공범자가 아니겠느냐? 만약 네가 이런 사람을 제지하거나 막거나 폭로하지 않고, 오히려 따르면서 너를 조종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결국 사탄이 교회 사역을 교란하도록 용인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분명 너희의 문제다. 너희가 문제를 발견하고도 막거나 교제하거나 제약을 두지 않는다면, 또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무골호인이 된다면, 이는 불충한 태도 아니겠느냐? 무골호인이 하나님께 충성심이 있겠느냐? 일말의 충성심도 없다. 그는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늘 사탄과 한패가 되고, 사탄의 시종, 추종자가 되어 자신의 본분과 책임에 조금도 충실하지 않다. 그러면서 사탄에게는 무척 충성스럽게 군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본질이다. 업무 측면의 부족한 점은 본분 이행 과정에서 부단히 공부하고 경험을 종합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사람의 패괴 성품이다. 만약 너희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도 않은 채 늘 무골호인이 된다면, 누군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을 보고도 책망하거나 도와주지 않고, 드러내거나 폭로하지도 않으며 뒷걸음질 치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런 본분 이행은 교회 사역에 악영향을 끼치고 지장을 줄 뿐이다. 본분 이행을 애들 장난으로 여기고 조금도 책임지지 않으면 사역의 효과에도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교회의 사역을 계속 지연시킨다.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건성으로 하여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께 일말의 충성심이라도 있겠느냐?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줄곧 건성으로 하면서도 죽어도 회개하지 않으면 마지막에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 함께 진리를 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원칙을 파악하기만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문제가 있는데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고 사람의 관념과 상상만으로 행한다면 그것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이방 사회와 사탄 세상에서 일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하나님 집은 진리가 권세 잡고, 하나님이 권세 잡고 있다. 어떤 문제가 생기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의견 차이가 아무리 크고, 의견이 아무리 분분해도, 꺼내 놓고 교제해야 한다. 교제한 뒤에 공감대를 형성해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고, 또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화로운 협력도 이룰 수 있다.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이 모두 진리를 사랑한다면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종하기도 쉽다. 반면 사람이 교만하고 독선적이면 진리를 교제하더라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진리를 깨닫지 못했으면서도 남들이 항상 자기 말을 따르게 하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은 남들의 본분 이행을 교란할 뿐이다. 이것은 화근이며,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만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다.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교만하고 제멋대로이고, 남들과 의논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처리하며, 무슨 일이든 자기 뜻대로 함부로 처리하고, 남들과 상의하거나 협력하지 않고 진리 원칙을 구하지도 않는다면,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는 어떠하냐?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겠느냐? 만약 이런 사람이 아무리 책망과 훈계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계속해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회개하거나 변화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태도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성과 인품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인성이 없는 사람이다. 인성이 없는 사람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만약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고 교회의 사역을 교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악인이다. 그런 사람은 본분 이행에 적합하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본분을 이행하면 교란하고 파괴하는 역할만 할 뿐이며 득보다 실이 더 크므로, 그런 자들의 본분 이행 자격을 박탈하고 교회에서 정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는지는 사람의 자질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 그리고 사람의 인품이 어떤지, 인성이 좋은지 나쁜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달려 있다. 이것이야말로 근원적인 문제다. 네가 본분을 마음에 두고 있는지, 성의를 다하는지, 마음을 쓰는지, 또 본분에 대해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갖고 있는지, 참답게 대하고 공을 들이는지,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살펴본다. 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감찰한다. 대다수가 책임지지 않고 누구도 참답게 대하지 않으며,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적합한지 알면서도 원칙대로 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겠느냐? 이런 상황에서는 리더 일꾼이 체크하고 검사하고 지도하거나, 책임질 사람을 찾아 팀장이나 책임자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대다수를 이끌어 나갈 수 있고 본분 이행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교란하고 파괴하는 소수 사람들이 있을 때 곧바로 정리해서 화근을 해결하면 본분 이행이 쉽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자질은 있지만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책임지지 않고, 기술이 있고 업무를 잘 알지만 남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리더 일꾼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를 찾아가 교제하고 격려하여 남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게 하고, 사람들이 가능한 한 빨리 기술을 배우고 업무 지식을 습득하게 해야 한다. 업무를 아는 사람은 거드름을 피우거나 자격을 내세우지 말고, 초보자에게 기술과 업무를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어 모두 다 같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설령 네 업무가 가장 뛰어나고 기술적으로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그 역시 하나님이 네게 베풀어 준 은사이므로, 너는 본분 이행에 네 특기를 발휘해야 한다. 네 기술과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혼자서는 사역을 해낼 수 없다. 모든 이가 기술과 업무를 습득한다면 본분 이행에 더 큰 효과를 거둘 것이다. 뛰어난 사람도 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이들이 도와서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해낼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도 교만해서는 안 되고, 남들과 의논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해서도 안 된다. 모두가 육을 저버리고 자기 생각과 관점을 내려놓은 뒤 모든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해야 한다.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들을 도와주어 다른 사람들도 기술과 업무를 익힐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본분 이행에 이롭다. 기술을 제 밥그릇으로 생각하면서 남에게 가르쳐 주면 자신이 굶어 죽을까 봐 걱정하는 것은 이방인의 관점이자 이기적이고 비열한 행동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런 행동이 통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꺼이 힘쓰지도 않는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위해 기꺼이 충성을 다하고 싶다면, 자신의 특기와 기술을 바쳐 다른 사람들도 배우고 습득하여 본분을 더 잘 이행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 그런 사람이 바로 인성이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사랑받고 축복받는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반드시 마음과 힘을 다해야 한다.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은 오직 본분 이행에만 마음을 쓰고, 다른 일에 마음이 점유되지 않고 자신의 힘을 바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모든 힘을 전부 끌어내고, 자신의 자질과 은사, 특기 그리고 알고 있는 것들을 전부 발휘하는 것이다. 네게 이해 능력과 깨닫는 능력이 있고 좋은 생각이 있다면 반드시 모두와 소통해야 한다. 이것을 가리켜 조화로운 협력이라고 한다. 그러면 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있다. 너는 늘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혼자 큰일을 하며, 자신을 뽐내고 다른 이는 돋보이지 않게 하고자 하는데, 이것이 본분 이행이겠느냐? 이는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자 자신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는 사탄의 행위이지 본분 이행이 아니다. 사람에게 어떤 특기와 은사, 특별한 재능이 있든 혼자서 모든 사역을 도맡아 할 수는 없다. 반드시 조화롭게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교회 사역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은 본분을 이행할 때의 실행 원칙이다. 네가 온 마음과 힘을 다하고, 충성을 다해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친다면 그 본분을 제대로 이행한 것이다. 너만의 생각과 사고가 있을 때 그것을 모두에게 말한다면, 보류하거나 숨기거나 감추지 않고 건의가 있을 때 바로 말하고, 상대의 말이 진리에 부합할 때 바로 받아들이고 순종한다면, 조화롭게 협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본분 이행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본분 이행은 너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것도 아니고, 죽도록 고생하며 너 혼자 돋보이고 독보적인 자리에 오르는 것도 아니다. 조화롭게 협력하는 법을 배워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며, 온 힘을 다하는 것, 이것이 바로 본분 이행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자신이 가진 작은 힘과 빛을 전부 발휘하여 성과를 내면 된다. 늘 자신을 뽐내려 하거나 큰소리를 치고 제멋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다른 이와 협력하는 법을 배워 남의 건의에 귀 기울이고, 남의 장점을 찾는 데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조화롭게 협력하기도 쉽다. 늘 자신을 뽐내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든다면, 이는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무엇이겠느냐? 이는 교란하는 것이고 무너뜨리는 것이다. 교란하고 무너뜨리는 것은 사탄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본분 이행이 아니다. 만약 네가 교란하고 무너뜨리는 일만 한다면, 얼마나 많은 힘을 쓰고 얼마나 많은 마음을 기울였든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 역량은 보잘것없지만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고 올바른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올바른 마음을 갖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킬 수 있다면, 너는 옳은 사람이다. 때로는 네가 한 마디만 해도 문제가 해결되어 모든 사람이 이로움을 얻을 수도 있고, 또 때로는 네가 진리를 한 마디 교제했을 뿐인데 모두들 실행 가능한 방법을 얻어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고,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 노력하고 모두의 관점과 의견이 통일되어 사역이 매우 큰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비록 이것이 네 역할 덕분임을 모든 사람이 기억하지는 못하고, 너 자신도 네가 큰 힘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네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 원칙에 따라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본분 이행에 충성심이 있는 것이다. 사실, 본분 이행에 어떤 어려움이 있든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고 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며 진리를 구할 수만 있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 만약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누구든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부합하는 말을 한다면, 너는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절대로 교란하거나 무너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남들과 의논 없이 제멋대로 일을 처리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너는 악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네가 기억해야 할 것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네 개인 사업이나 네 개인 경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네 사적인 일이 아니라 교회의 사역이다. 너는 그저 자기 몫을 다하는 것일 뿐이며, 네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서 사람이 협력하는 아주 작은 부분에 속한다. 너는 한 귀퉁이에서 아주 작은 역할을 할 뿐이다. 네가 맡은 것은 이런 책임이며, 너는 마음속으로 이러한 이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몇 사람이 함께 본분을 이행하든,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든 가장 먼저 모두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고 교제하며 진리를 구한 다음 실행 원칙을 확실히 해야 한다. 그러면 본분을 이행할 때 길이 생긴다. 어떤 사람은 늘 자신을 뽐내려고 하고, 자신이 책임지는 사역에서 결정권을 가지려고 한다. 이는 어떤 행위겠느냐? 이는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가 어떻게 할 생각인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자기가 어떤 관점인지 사람들과 의논하지도, 알리지도, 털어놓지도 않은 채 마음속에 숨기고 있다가 일을 할 때 모두를 놀라고 기쁘게 할 깜짝 성공을 거둬 높이 평가받고 싶어 한다면, 이것이 본분 이행이냐? 이것은 자신을 뽐내려는 것이다. 그가 명성과 지위를 얻게 되면, 자신의 경영을 시작할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야심이 있지 않겠느냐? 일이 있을 때도 너는 왜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않는 것이냐? 이 사역이 네 개인의 것이 아닌데도 왜 일을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는 것이냐? 왜 일을 비밀리에 해서 사람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냐? 왜 모두가 너 한 사람의 말을 듣게 하려는 것이냐? 분명 너는 이 사역을 네 개인의 사역으로 여긴 것이다. 너는 사장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너를 위해 일하는 직원이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 이런 사람이 드러내는 것이 바로 사탄의 성품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언젠가 도태될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면 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하겠느냐? 어떤 효과를 거두어야 하겠느냐? 모든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고, 감정이나 혈기가 아니라 진리, 하나님 말씀, 원칙에 따라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 그러면 교회에서 진리가 권세를 잡은 것이 되지 않겠느냐? 진리가 권세를 잡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처리되지 않겠느냐? 너희가 말해 보아라.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지 않으냐? (유익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너희에게 굉장히 유익한 일이다. 우선 이것은 너희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도움과 가치가 있고, 또한 너희가 잘못된 일을 하거나 방해하고 교란하거나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너희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이 두려우냐, 두렵지 않으냐? (두렵습니다.) 두려워하기만 하는 것이 소용이 있느냐? 두려워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적그리스도의 길을 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정상이다. 이는 너희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 진리를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두려우면 너희는 마땅히 진리를 구하고 실행 길을 찾아야 한다. 우선은 남들과 조화롭게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교제와 의논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모두가 원칙을 알고 구체적인 생각과 방안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네가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일을 피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 외에도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선민들의 감독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그릇이 크고 마음이 넓어야 한다. 누군가가 너를 감독하며 네 사역을 검사하거나 뒤에서 너를 조사한다는 것을 알고, 혈기가 치밀어 오르고, 그 사람을 적으로 대하고, 경멸하고, 심지어 애물단지나 배신자로 여겨 공격하고, 처리하고, 그 사람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이건 문제가 된다. 이건 너무 악랄하지 않으냐? 이게 마왕과 다를 게 뭐가 있느냐? 이것이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이냐? 네가 바른길을 걷고 바르게 행한다면 다른 사람이 너를 조사하는 것을 두려워하겠느냐? 네가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네 마음속에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네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이성적이다. 네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이 너를 감독하고, 네 사역을 검사하고, 네 문제를 조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 비이성적이고, 너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이다. 그럼 네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하나님 선민이 너를 악인, 불신파로 분별한다면, 그 결과는 더 위험하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감독과 검사, 조사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고, 그릇이 크고, 정상 인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너 스스로 잘못된 행동을 한 것, 패괴 성품을 드러낸 것을 알아차렸을 때 모두에게 마음을 열고 교제할 수 있어야 주변 사람이 너를 감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감독을 받아들이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수시로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다. 특히 네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잘못된 일을 할 때, 네가 독단적으로 행동하려 할 때 누군가 곁에서 지적하고 일깨워 준다면 반드시 그것을 받아들이고, 얼른 자신을 반성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면 너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너를 도와주고 일깨워 준다면 그것은 알게 모르게 너를 지켜 주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분명 너를 지켜 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너는 항상 형제자매나 주변 사람을 경계해서는 안 되며, 남들이 너에 대해 알거나 너를 꿰뚫어 보지 못하도록 자신을 위장하거나 포장해서도 안 된다. 네 마음속으로 항상 사람을 경계하면 네가 진리를 구하는 데 영향을 미쳐 성령 역사를 잃고 온전케 될 많은 기회를 놓치기 쉽다. 또 네가 항상 사람을 경계하면 네 마음속에 꿍꿍이가 생겨 사람들과 협력할 수 없고, 잘못된 일을 하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쉽다. 잘못을 저지른 뒤에 당황해서 멍해지면 네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 ‘이럴 줄 알았다면 애초에 형제자매와 협력해 본분을 이행했을 텐데. 그랬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았겠지? 남들이 나를 꿰뚫어 볼까 봐 두려워 항상 남을 경계하는 바람에 남들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오히려 내가 먼저 잘못을 저질렀어. 이 얼마나 창피하고 어리석은 일이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진리를 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려움이 있을 때 형제자매와 마음을 활짝 열고 교제할 수 있다면, 너는 형제자매의 도움을 받아 올바른 실행 길과 실행 원칙을 알 수 있고, 본분 이행 중에 잘못된 길을 가지 않을 것이며 실패하거나 넘어지거나 하나님께 버림받아 도태되지 않을 수 있다. 또 보호를 받고 본분을 잘 이행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도 있다. 사람이 조화롭게 협력하면 얼마나 큰 이로움을 얻을 수 있겠느냐!
‘조화로운 협력’이라는 여섯 글자는 문자적으로는 이해하기 쉽지만, 실행하기는 무척 어렵다. 이 여섯 글자의 실제적인 측면을 살아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어째서 쉽지 않을까?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사람에게 있는 교만함, 사악함, 강퍅함 등의 패괴 성품이 진리의 실행을 가로막는다. 네가 사람들과 협력할 때 온갖 패괴 성품을 드러내게 된다. 예를 들면 ‘나한테 그와 협력하라니. 그가 어울리기나 해? 자질이 떨어진 사람과 협력하면 남들이 날 깔보지 않겠어?’라고 말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저 사람은 너무 둔해.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잖아!’, ‘내 말에는 사상과 식견이 담겨 있어. 그에게 말해 주고 배우게 하면 나를 드러낼 수 있겠어? 내 방법이 제일 좋은데 이걸 말해서 남들이 배워 가면 그게 내 공로라는 걸 누가 알겠어?’ 이런 생각과 관점, 마귀적인 말은 흔히 보고 듣는다. 만약 너도 이런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기꺼이 남들과 협력하려고 하겠느냐? 네가 사람들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겠느냐? 쉽지 않다. 어려운 일이다! ‘조화로운 협력’이라는 여섯 글자를 입으로 말하기는 아주 쉽지만, 실행하려면 그 속에 큰 걸림돌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또 금세 저렇게 생각하고, 기분이 좋을 때는 사람들과 조금 교제할 수 있지만, 기분이 좋지 않고 패괴 성품에도 가로막히면 조금도 실행해 낼 수 없다. 리더인데도 누구와도 협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항상 남들을 얕보고 지나치게 트집을 잡고, 남의 단점을 보면 그 사람을 평가하고 공격하다가 결국에는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쳐 교체된다. 그가 ‘조화로운 협력’이라는 여섯 글자의 뜻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겠느냐? 사실 그는 무엇이든 다 알고 있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째서 실행하지 못하겠느냐? 지위를 너무 사랑하고 성품이 너무 교만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지위를 꽉 쥐고 놓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지위를 가지면 자신은 실권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고, 남들에게 푸대접을 당하고 우러름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자기 말이 힘이 없고 권위가 없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의 교만함이 어느 정도이냐? 이성을 잃고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결국 어떻게 되겠느냐?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방해와 교란을 일으켜 조정되고 교체될 것이다. 이런 성품을 가진 사람을 어디로 배치해야 본분 이행에 적합하겠느냐? 아마 어디에 배치해도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할 것이다. 남들과 협력할 수 없는 사람이 혼자서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혼자서 본분을 이행하면 더더욱 단속받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할 것이다.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는지는 네게 어떤 재주가 있는지, 얼마나 훌륭한 자질을 가졌는지, 어떤 인성과 능력, 재능을 가졌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네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있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타인을 공정하게 대할 수 있으면, 사람들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다.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는지, 사람들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는지 관건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종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사람의 자질, 은사, 재주, 나이 등은 모두 주된 것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 진리를 실행하는지에 달렸다.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설교를 들으면 옳다고 인정하고, 현실 생활 속에서 사람과 일, 사물이 닥칠 때 이런 진리를 자기 스스로 실천하고 실행함으로써 자신의 실제이자 생명의 일부가 되게 하며,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준칙과 원칙이 되게 하고, 또 자신이 살아 내고 드러낼 것으로 삼는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설교를 들을 때는 옳다고 인정하고,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며, 도리를 마음에 새긴다. 하지만 일을 처리할 때 그가 판단하는 원칙과 준칙은 무엇이냐? 그는 항상 진리가 아닌 자신의 이익에 따라 판단하고, 진리를 실행하면 손해를 보거나 남들에게 평가당하고 얕보이고 체면을 구길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이리저리 따져 보다가 결국 ‘내 지위와 명예, 이익을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해. 이런 것들이 충족되면 마음 편하지만, 이런 것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내키지 않고 즐겁지도 않아.’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어떤 이들은 설교를 들을 때는 무척 진지하고 받아 적기도 하며, 핵심적이고 중요한 말들을 모두 노트에 적는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을 활용하지도 않고 실행하지도 않으며, 시간이 오래 흘러도 진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겠느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달으면 곧바로 실행할 수 있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깨달아도 실행하지 못한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는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의 여부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사실, 그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 누군가에게 은혜를 조금 베풀었는데 그 사람이 그의 이익에 저촉된다면, 그는 “이 사람은 너무 양심이 없어. 내가 도와준 적이 있는데 지금 내게 이렇게 하다니.”라고 말한다. 봐라. 그도 양심을 따진다. 하지만 그의 양심 기준과 시비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이냐? 누가 그에게 이롭고, 어떤 말과 일이 그에게 유리하다면 그것은 긍정적이고, 그에게 이로움이 없다면 그것은 부정적이다. 그는 이렇게 이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얻을 수 없습니다.) 어째서 얻을 수 없겠느냐? (일 처리에 원칙이 없고 진리에 따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에 따라 모든 일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궁리하기 때문에 진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진리를 얻을 수가 없다. 진리는 누구를 위해 예비된 것이냐?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예비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진리는 결국 이런 사람들에게 속하고, 이런 사람들에게 베풀어진다.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를 살아 내기 위해 그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고, 설사 자신의 절실한 이익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일지라도 다 내던지고 바칠 수 있다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 것은 무엇이냐? 사람의 목숨이겠느냐? (그렇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고 하면 너는 버릴 수 있느냐?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당장 죽으라고 한다면 너는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있는 이들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목숨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 정말로 어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절실한 이익이나 명예, 지위와 관련된 경우, 특히 장래 운명과 관련되어 있다면, 진리를 실행하고 자신의 육을 저버릴 수 있겠느냐? 이것은 가장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이익과 장래 운명입니다.) 그렇다. 목숨이 아니라 이익, 지위, 장래, 운명이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애지중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것도 그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너는 네가 하나님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지위의 복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 체면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 이 중 쉽게 바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목숨입니다.) 그렇다. 어떤 이들은 선택에 직면했을 때 자기 생명은 바칠 수 있어도, 지위의 복은 내려놓지 못하고, 자신이 가고 있는 잘못된 길도 포기하지 못한다. 만약 네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치자. 하나는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너는 진실한 말을 하고 마음속 말을 해야 하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거나 잘못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며, 사실의 진상을 털어놓아 사람들에게 네 패괴된 추한 모습을 보여 주고, 체면이 땅에 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생명을 바쳐 하나님을 위해 순교하고, 죽은 뒤 천국에 가는 것이다. 너는 어떤 길을 선택하겠느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걸 선택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죽겠습니다. 죽은 뒤에 상을 받고 천국에도 갈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만 힘써 노력해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네게 진리를 실행하여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면, 한 번 힘써 노력해서 이룰 수 있겠느냐? 아마 두 번 힘을 쏟아 노력해도 해낼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할 때는 의지가 있다면 한 번 힘을 쏟아 노력해서 잘 해낼 수 있지만,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은 한 번 진실한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고생으로 오랫동안 편안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성품 변화와 관련된 일이다. 이는 10년, 20년을 체험해야 하며, 거짓말하고 기만하는 간사한 성품을 벗어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기본적으로 정직한 사람의 기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은 누구에게든 무척 어려운 일이 아니겠느냐? 이것은 무척 큰 도전이다. 지금 하나님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온전케 하여 그들을 얻으려고 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의 간사한 성품을 해결해 정직한 사람,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것은 한 번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진실한 믿음이 있고, 수많은 시련과 연단의 고통을 겪어야 이룰 수 있다. 만약 지금 하나님이 너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어 솔직한 말을 하라고 한다면, 그 솔직한 말이 사실의 진상에 관한 것이고, 네 앞날 운명과 관계된 것이라면, 그것을 말한 결과가 너에게 불리하고, 남들이 더 이상 너를 우러러보지 않게 될 것이며, 네 명예가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네가 진실하고 솔직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이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한테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면 그건 할 수 없어. 사실대로 말하느니 차라리 하나님을 위해 죽겠어.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을 거야. 죽는 한이 있어도 사람들이 나를 깔보거나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여기게 할 수는 없어.” 이것을 보면 사람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것은 무엇이냐? 사람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것은 지위와 명예이며, 목숨은 그다음이다. 이것은 모두 사탄의 성품에 통제되는 것들이다. 상황이 궁지에 몰리면 목숨은 용맹스럽게 바칠 수 있지만, 지위와 명예는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반드시 진리를 받아들여야 하고 진실로 정직한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속으로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모두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한다. 이렇게 하기가 쉽겠느냐? (쉽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네게 목숨을 버리라고 하지 않는다. 네 목숨은 하나님이 준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네 목숨을 얻어서 무엇에 쓰겠느냐? 하나님은 원치 않는다. 하나님이 네게 원하는 것은 솔직한 말이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네가 말할 수 있느냐? 너는 어려운 점이 있을 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제게 힘을 내서 일하라고 하면 기운이 넘칩니다. 전 재산을 바치라고 해도 바칠 수 있고, 부모, 자식을 버리고 결혼과 직업을 포기하는 것도 모두 쉽습니다. 유일하게 마음속의 진실한 얘기를 하는 것만은 할 수가 없습니다.”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 말을 입 밖에 내면, 너를 알거나 너와 친한 모든 사람이 너에게 가진 생각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 너를 더 이상 우러러보지 않고, 네 체면이 구겨지고 땅에 떨어질 것이며, 네 인격과 존엄성이 사라지고, 네가 가지고 있던 사람들 마음속의 높은 위치와 명망도 모두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네가 아무리 해도 진실한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일이 닥치면, 사람의 마음속에서 전쟁이 벌어지는데, 결국 어떤 이들은 끝까지 싸워서 그 난관을 돌파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계속 돌파하지 못한 채 사탄의 패괴 성품과 자신의 지위, 체면, 소위 존엄에 통제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려운 일 아니겠느냐? 진실과 사실을 말하는 것은 큰일이 아니지만, 여기서 수많은 영웅호걸이 넘어졌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자기 일생을 바치겠다고 굳게 맹세했던 사람들, 하나님에게 호언장담했던 사람들이 넘어졌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무슨 뜻이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많은 일을 하고 큰 사업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뭔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착실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아주 위대해지는 것도, 존귀해지는 것도, 어떤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도 필요하지 않다. 또 하나님은 너에게서 그 어떤 놀라움을 보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다 필요 없다. 하나님은 오로지 네가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하기만을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했으면 바로 행하고, 듣고 깨달았으면 이행하고, 들었으면 마음속에 새기고, 그리고 실행해야 할 때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생명과 실제가 되고 그 말씀을 살아 내기를 원할 뿐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만족한다. 네가 언제나 위대해지는 것, 고상해지는 것, 지위를 얻는 것, 높은 위치에 서는 것을 추구하면, 하나님이 보고 무슨 느낌이 들겠느냐? 하나님은 혐오하고, 멀리할 것이다. 네가 위대해지고 고상해지기를 추구할수록, 남보다 뛰어나고 두각을 드러내며 출중해지고 훌륭해지기를 추구할수록 하나님은 너를 싫어한다. 네가 반성하거나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너를 혐오하고 버릴 것이다. 절대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성실하게 진리를 받아들이고, 피조물의 위치에 제대로 서고,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은 만족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야심을 품거나 헛된 꿈을 꾸지 말고, 명리나 지위를 추구하지 말고, 두각을 드러내기를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초인이나 위인이 되는 것, 사람들 속에서 남보다 돋보여 다른 사람의 숭배를 받는 것은 더더욱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패괴된 인류가 동경하는 것으로, 사탄의 길이다. 하나님은 그런 부류의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계속 명리나 지위를 추구하면서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구제 불능이고, 결말은 오직 하나, 즉 도태되는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지금 너희가 서둘러 회개한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만약 어느 날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고 재난이 점점 심해지면 회개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며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도태될 것이다. 하나님이 사역하여 어떤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는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의의가 무엇인지 너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과 분부에 따라 실행할 것을 요구한다. 즉, 사람 자신의 관념과 상상,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여전히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고 사탄의 성품 안에서 살며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을 따르는 것 역시 당연히 하나님이 너를 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를 택한 것이 무슨 의미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심으로 따르며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하라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사람, 사탄의 성품에서 벗어나 다시는 사탄을 따르며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살지 않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지만, 매사에 진리에 어긋나고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고 체험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맞설 수도 있다면 하나님이 열납할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리 없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겠느냐? 본분 이행은 사실 어렵지 않다. 본분 이행에 충실하고 본분 이행에 합격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목숨을 바친다거나 무슨 특별한 일이나 곤란한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성실하고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 분부대로 하면 된다. 자기 뜻을 갖지 말고, 자기 경영을 하지 말고 진리 추구의 길을 가면 된다. 여기까지 도달하면 기본적으로 사람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면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2019년 6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