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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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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22. 어떤 것이 진실한 기도일까? 바로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더듬으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 네 앞에 있다고 느끼게 되며, 하나님께 할 말이 있다고 느끼게 되고, 마음속이 아주 환하게 되며, 하나님이 매우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고, 특별히 격려받게 되며, 형제자매들이 듣고는 누림이 있어 네가 하는 말이 곧 그의 마음속 말이고 그가 하려는 말이라고 느끼게 되고, 네가 하는 말이 곧 그가 하려는 말을 대신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한 기도이다. 네가 진실한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속에 평안을 얻게 되고 누림이 있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은 너의 기도가 효과가 있음을 증명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23.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안정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진실하게 교통하고 기도하라는 것이지,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속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루려는 것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너를 많이 깨우치고 빛 비추어 달라고 기도하여라. 하나님께 세운 심지와 자신의 실제 정형과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기도하여라. 기도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너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에게 배치해 준 환경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증오하고 배반할 수 있도록, 너의 마음을 보호해 달라고 구하여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있게 하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24.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가장 낮은 기준은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진솔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정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 기도의 제일 낮은 기준은 반드시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되고,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마 이 단계에서는 너에게 더 새롭고 더 높은 깨달음이 없을 수 있겠지만, 너는 반드시 기도로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이것은 최소한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25. 기도는 형식을 따르고 과정을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도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눔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을 토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해야만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에 도달하기 원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을 증오할 수 있으며, 이 기초에서 인식을 더하여 하나님이 천명한 진리에 흐리멍덩하지 않고 인식이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기도한 후에 심지와 믿음이 있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라고 한다. 이런 기도라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누리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할 수 있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다면, 이런 기도는 이미 하나님과 진실하게 교통하는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26. 하나님은 사람을 만든 다음 사람에게 영을 주었고 또한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과 연결될 수 없어 하늘의 ‘위성 송신기’가 땅에 수신될 수 없다고 당부하였다. 사람의 영 안에 하나님이 없으면 다른 물질에게 빈 자리를 남겨 두게 되는데, 그러면 사탄이 기회를 틈타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과 교제할 때는 사탄이 갑자기 당황하여 허둥대며 황급히 도망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부르짖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베풀어 준다. 하지만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 안에 ‘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사람의 부르짖음 때문에 늘 사람을 도와줄 뿐이다. 사람은 내재적인 힘의 존재로 인해 굳세질 수 있다. 그러므로 사탄은 함부로 거기에 와서 ‘유람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니 사람이 늘 하나님의 영과 연결된다면 사탄은 감히 방해하러 오지 못한다. 사탄의 방해가 없다면 사람의 모든 생활이 정상이 되므로 하나님은 사람 안에서 아무런 장애도 없이 역사할 기회가 있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려는 것을 사람을 통해 이룰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17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 발췌

27. 네가 가장 어려울 때, 가장 하나님을 가장 더듬을 수 없을 때, 가장 고통스러울 때, 가장 고독할 때, 네가 겉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것 같다고 느껴질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힘이 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주재를 느끼게 된다. 네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네 목숨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면, 너는 하나님이 바로 네 곁에 있고, 너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실한 순복이 갖춰져야 진정한 믿음인 것이다>에서 발췌

28. 기도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네 속의 진실한 정형과 성령이 역사하는 데에 따라 한 걸음씩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기도를 훈련할 때에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 더듬기를 구하지 말고 마음속 말을 하나님께 고할 수 있기만을 구하여라. 너는 하나님 앞에 와서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는 전에 당신을 거역했습니다. 오늘에야 제가 정말 패괴되어 가증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시간을 헛되이 보냈지만, 지금부터는 당신을 위해 살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어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영이 늘 저에게 역사하시고, 늘 빛 비춰 주시고 깨우쳐 주셔서 당신 앞에서 굳세고 드높은 간증을 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이 우리에게서 당신의 영광을 보고, 당신의 간증을 보고, 당신이 이긴 증거를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면, 너의 마음이 완전히 해방받을 것이다. 네가 이런 기도를 하고 나면 너의 마음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다. 네가 항상 이렇게 기도할 수 있으면, 성령은 반드시 너에게 역사할 것이다. 언제나 이렇게 부르짖고 하나님 앞에서 심지(心志)를 세우면, 언젠가 너의 심지가 하나님 앞에 열납될 수 있고, 너의 마음과 전인(全人)까지도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으며, 나중에 너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29. 기도할 때에는 말을 얼마나 멋지게 하는지를 보지 않는다. 오로지 마음속의 말을 하고 솔직한 말을 하며, 자신의 어려움에 근거해 사실대로 말하고 피조물의 각도에 서서, 순복하는 각도에 서서 말하면 된다. “하나님, 당신은 사람의 마음이 너무나 강퍅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 이 일에서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제가 연약하고 부족함이 너무 많아 당신의 쓰임에 합당치 않음을 당신은 아십니다. 저에게 패역이 있어 일을 하기만 하면 당신의 사역을 방해하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당신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자신의 사역을 하시기 원합니다. 저희는 다만 협력할 뿐입니다…” 이런 말마저도 하지 못한다면 너는 끝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기도할 때에도 기도하는 것이 이지가 있는지 분별해야 한다니 기도할 수도 없겠네.’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동안 훈련하면 되는데, 기도하다가도 어떤 말이 적합하지 않으면 자연히 알게 된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직접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30.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

1. 맹목적으로 마음대로 몇 마디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자신의 마음속에 부담이 있어야 한다. 즉, 반드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2.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의 기초에서 기도해야 한다.

3. 기도는 늘 하던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낡아빠진 것들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 전적으로 성령의 현실적인 말씀으로 말하기를 훈련해야만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다.

4. 단체 기도는 반드시 하나의 중심을 둘러싸야 하고, 반드시 성령의 현재 사역이어야 한다.

5. 모든 사람은 다 대표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서 대표 기도할 부분을 찾아야 하며, 또한 이 기초에서 부담을 가지고 항상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표현이다.

개인의 기도 생활은 기도의 의의와 기도의 상식을 깨달은 기초 위에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항상 자기의 결함 때문에 간구하며 기도하고, 생명 성정이 변화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한 기초에서 기도하여라. 사람마다 자기의 기도 생활을 확립해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할 수 있기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기를 찾고 구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자기의 실제 상황을 하나님 앞에 내놓으며 실사구시하고, 방식을 중요시하지 말라. 가장 중요한 점은 진실한 인식이 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실제 체험이 있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31. 일이 임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서둘러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마음을 쓰지 않고 입으로만 중얼중얼하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그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아마 네가 이렇게 3~5차례 혹은 8~10차례 기도해도 아무런 수확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는 낙담하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한다. 일이 임할 때 먼저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네가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었다는 것을 뜻한다. 일이 임하면 먼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알게 하고, 하나님이 결정하게 하고 너를 돕게 하며, 하나님이 너에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방향을 가리켜 주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고,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것이다. 네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일이 임할 때 먼저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며, 싫어하고 소극적이 된다. 이것이 바로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표현이다. 실제 생활 속에서 어떤 일이 임하든 다 기도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인데, 이것이 가장 관건이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의 너의 태도를 의미하는데, 네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기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이 임할 때 가장 먼저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찾고 구하는 태도로 구하고 모색하면서 자신의 생각, 관점, 태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하는데, 이것은 기도에 마땅히 있어야 할 내용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모든 일은 다 진리의 안목으로 대해야 한다>에서 발췌

32. 기도할 때에는 주로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 당신은 사람의 패괴를 아십니다. 오늘 또 이지 없는 일을 했는데, 저에게는 속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궤사하여 그때에 당신의 뜻대로, 진리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뜻에 따라 했으며 변명까지 했습니다. 저는 지금 자신의 패괴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더욱 깨우쳐 주셔서 제가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여 이런 것을 벗어 버릴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원합니다…”, 바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실제적인 일을 실제적으로 고백하고 실제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저는 패괴를 벗어 버리기 원하고, 성정이 변화되고 진리를 실행하기 원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은 진실하게 기도하지 않고 돌이켜 보기만 하고, 의식상에서만 인식하고 회개할 뿐 진리 면에서는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이런 것은 기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기도를 한 후의 인식 정도는 네가 돌이켜 보면서 인식한 것보다 훨씬 깊은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여 감동받게 된 그런 정형과 느낌과 감동으로 너는 그 일에 대해 매우 깊게 인식하고 뉘우치게 된다. 네가 깊이 뉘우치게 되면 그 일에 대해 밝히 인식하게 된다. 네가 대충대충 성찰하고 후에 적합한 실행의 길도 없고 또한 진리에서 그 어떤 진보도 없다면, 여전히 변화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33. 어떤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이런 효과를 보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본 후에 교통하면 마음이 환해지고, 어느 정도 길이 생기게 된다. 만약 성령이 너에게 좀 더 감동을 주고, 부담을 주고, 너를 인도해 준다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네가 혼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좀 감동을 받았다면 그 당시에는 눈물을 흘리겠지만, 일을 좀 하고 나면 그런 일시적인 감동은 곧 없어진다. 하지만 네가 눈물의 기도, 간절한 기도 또는 진심의 기도를 한 번 하고 나면 3일이 지나도 그 열의는 식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이런 체험이 있지 않았느냐? 이것은 기도로 생긴 효과이다. 사람이 기도를 하는 목적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네가 늘 기도하고 늘 하나님 앞에 온다면, 늘 하나님과 관계가 있게 되고, 내면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감동이 있고 언제나 하나님의 공급을 받게 된다. 계속 받아들이게 되면, 사람이 변화되고 정형도 점점 좋아지고 가라앉지 않게 된다. 특히 형제자매들이 함께 기도하면, 기도가 끝난 후에 아주 힘이 나고, 얼굴 가득 땀이 맺히며,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고 느끼게 된다. 사실, 며칠 동안 함께 있으면서 교통한 것은 별로 없지만, 기도로 사람의 힘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가정이든 세상이든, 단번에 다 포기하고 싶어지고,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하나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힘이 얼마나 큰지 보아라! 성령이 역사하면 사람에게 이런 힘을 주는데, 사람은 영원히 다 누리지 못한다! 네가 이런 힘에 의지하지 않고 무리하게 목을 곧게 세우거나 자신의 의지력과 심지에 의지하여 간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겠느냐!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얼마 가지 못하여 넘어지고 타락될 것인데, 가다가 그 힘이 없어지게 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34. 진솔한 사람이 되려면 궤사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 수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면, 너의 성정은 그에 따라 조금씩 변화된다. 진정한 영 생활은 기도하는 생활이고, 성령께 감동받는 생활이다. 성령께 감동받는 과정이 바로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는 과정이다. 성령의 감동이 없는 생활은 영 생활이 아니라 여전히 종교 의식에 속한다. 자주 성령의 감동이 있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영 생활에 진입한 사람이다. 사람의 성정은 기도에 따라 부단히 변화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될수록 적극적인 성분과 순복의 성분이 더 많아지고, 사람의 마음도 점차 정결함을 받게 되며, 성정도 그에 따라 점차 변화된다. 이것은 진실한 기도로 가져온 효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35.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경로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사람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 과정이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기도가 없으면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도 없다. 또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많을수록, 즉 하나님의 감동을 많이 받을수록 그런 사람은 더욱 심지가 있게 되고, 더욱 하나님의 가장 새로운 깨우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만이 성령께 빨리 온전케 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36. 기도는 의식이 아니라 거기에는 많은 의의가 있다. 사람의 기도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네가 만약 이 일을 의식으로 간주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여 기도하지 않고 진실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편에서 너는 열외로 취급받는데, 하나님께는 너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찌 너에게 성령 역사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사람이 사역을 하다가 맥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기도하지 않으면 사역도 하지 못한다. 기도를 해야 사역을 잘할 수 있고, 기도를 해야 잘 섬길 수 있다. 너는 인솔자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전혀 기도에 공을 들이지 않고 기도를 참답게 대하지 않는데, 그렇게 섬기다가는 넘어지게 될 것이다. …사람이 늘 하나님 앞에 올 수 있고 늘 기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네가 늘 혼자 하고, 늘 기도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등지고 이것저것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경영을 하면 정죄받는 것이 아니겠느냐? 겉보기에는 네가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았고 아무 모독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너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네가 엇나가는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않으냐? 비록 겉으로 보면 네가 엇나가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성질은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37. 비록 사람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무형의 공간에서 말하고 기도하는 것이지만, 너는 사람의 기도도 성령 역사의 한 가지 경로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람이 옳은 정형에서 기도하고 찾고 구하면 성령도 동시에 역사한다. 이것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각도에서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묵계인데, 사람이 어떤 일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도와주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 협력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며, 더욱이 사람의 생명 진입의 경로이지 어떤 의식이 아니다. 기도는 그저 사람의 힘만 불러일으키거나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할 뿐이라면 형식적으로 구호만 외치면 된다. 무엇을 구할 필요가 없고, 경배할 필요도 없으며, 경건할 필요도 없다. 기도의 의의는 아주 깊다! 사람이 자주 기도할 뿐만 아니라 기도할 줄 알고 항상 순복하는 기도와 이지적인 기도가 있으면 사람 내면은 언제나 매우 정상적이다. 네가 늘 입으로 구호를 외치면서 기도하고, 아무런 부담도 없고, 기도할 때 어떻게 말하는 것이 이지가 있는 것인지, 어떻게 말하면 이지가 없는 것인지, 어떻게 말하면 참된 경배가 되지 않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이런 일을 전혀 참답게 대하지 않는다면, 너의 그 기도는 성공할 때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네 정형은 언제나 비정상이고, 어떤 것이 정상 이지이고 참된 순복이고 참된 경배인지, 마땅히 어떤 각도에 서야 하는지 하는 이런 방면의 공과와 진입은 영원히 깊어질 수 없다. 이것은 다 세밀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38. 이제 너희는 기도할 때 하는 말에 이지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네가 우매했든, 일부러 그렇게 했든, 너의 기도에 이지가 없으면 성령은 네게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이지 있게 말해야 하고, 어조가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당신께서 저의 연약함을 아시고 저의 패역을 아십니다. 저에게 힘을 더해 주셔서 이런 환경을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시기만을 구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뜻대로 이루십시오. 저는 그저 이렇게 구할 뿐입니다. 저는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설사 저로 효력을 하게 하시고, 부각물이 되게 하실지라도 저는 기꺼이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힘과 지혜를 더해 주셔서 이 일에서 당신을 만족게 하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안배에 순복하기만을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하고 나면 매우 편안한 느낌이 들 것이다. 만약 네가 계속 구하기만 한다면 구한 후에도 빈말 무더기뿐이다. 왜냐하면 너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너는 무릎 꿇고 기도할 때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당신께서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고 사람의 정형을 아십니다. 이 일에서 저를 깨우쳐 주셔서 당신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를 원하고, 마음으로 당신께 순복하기를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하면 성령은 너를 감동시킨다. 만약 네가 기도하는 방식이 옳지 않다면 무미건조하고, 성령이 너를 감동시키지 않을 것이다. 네가 중얼거리기만 하고 묵도하거나 눈을 감고 아무렇게나 몇 마디 말할 뿐이라면, 그것은 순전히 대충대충 하여 속이는 것이다. 네가 대충대충 하여 속이는데 성령이 역사할 리가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면 모두 공손하고 정직해야 하고, 경건하게 하나님 앞에 와야 한다. 율법시대에 제사장들은 제물을 바칠 때 모두 무릎을 꿇었다. 기도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도 여전히 제멋대로이고 또한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워서 눈을 감고 기도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되겠느냐?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 반드시 어떤 규례를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39. 너희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모두 대충대충 하고, 일하는 한편 기도하는 것인데, 그러면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속으로 가정의 일과 육체의 일을 생각하면서 늘 마음이 분산되는데, 이것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것이냐? 너의 마음이 늘 바깥 사물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마음을 진실로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려면 반드시 의식적인 협력 사역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너희는 각자 자신의 영적 수양 시간이 있어야 하고,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피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야 한다. 각자는 반드시 개인의 영적 수양 노트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과 영 안의 감동을 깊든 얕든 다 기록해 놓아야 하는데, 의식적으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야 한다. 만일 너에게 하루에 한두 시간의 진실한 영 생활이 있다면, 너는 하루의 생활이 충실하다고 느끼고 마음이 환해질 것이다. 만일 날마다 이런 영 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더 많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면, 너의 영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고, 성령이 이끄는 길로 더욱 나아갈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은 갑절로 너를 축복해 줄 것이다. …영 생활이 많을수록 너의 마음은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점유되어 늘 이런 일들을 마음에 두고 늘 이런 일들을 부담으로 하게 된다. 그런 후 영 생활을 통해 네 마음속 말을 하나님께 다 털어놓아라. 네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떤 인식이 있고 어떤 견해가 있는지를 조금도 숨기지 말고 다 하나님께 말씀드려라.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는 것과 진정을 토로하는 것을 훈련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것은 얼마든지 다 말씀드려라. 네가 그렇게 말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더욱 느끼게 되고, 너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더욱 끌리게 되는데, 그때에 너는 오직 하나님만이 가장 친근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고 느끼게 된다. 너는 날마다 이런 영적 수양을 하면서 그것을 평생에 관계되는 큰일처럼 늘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너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점유될 수 있다. 이것을 비로소 성령께 감동된 것이라고 한다. 너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께 점유된 것 같고, 너의 마음속에 언제나 너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있어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게 된다면 그때 하나님은 진정 네 안에서 살게 된 것이고, 네 마음속에서 자리가 있게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처소로 이끌어 들어간다>에서 발췌

40.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진입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모든 사람이 지금 급히 진입해야 할 공과이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데에 진입하는 경로는 다음과 같다.

1. 마음을 겉면의 일에서 거두어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고, 전념하여 하나님께 기도한다.

2.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누린다.

3. 평소에 혼자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겨 보고 그리워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묵상한다.

먼저 기도하는 방면에서 시작하여라. 시간을 정해 마음을 전념하여 기도하고, 시간이 아무리 촉박하더라도,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날마다 정상적으로 기도하고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도록 하여라.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만 하면 영 안에 특별히 누림이 있고, 또한 주위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에 방해받지 않으며, 평소에 마음으로 하나님을 그리워할 때 겉면의 일에 지장받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분량이 있는 것이다. 먼저 기도하는 방면에서 시작하여라. 하나님 앞에 안정하여 기도하면 가장 큰 효과가 있게 된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묵상을 통해 깨우침을 얻을 수 있고,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말씀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터득하는 것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된다. 평소에 마음으로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으면, 바깥 사물의 방해를 받지 않게 된다. 네가 마음을 일정한 정도까지 안정시킬 때면 조용히 생각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어 어떤 상황에서든 속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을 진실로 가까이할 수 있다. 나중에는 어느 정도까지 도달하게 되어 마음속에서 찬미가 흘러나오게 되는데 심지어 기도하는 것보다도 더 좋다. 그것은 일정한 분량이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그런 정형에 도달할 수 있으면, 너의 마음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안정되었음을 증명한다. 이것은 첫 단계의 기본기이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된 후에야 성령의 감동,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을 수 있고, 하나님과 진실한 교통이 있을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인도를 더듬을 수 있다. 그러면 영 생활의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을 훈련하여 어느 심도에 이르게 되면, 자신을 배반할 수 있고 증오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살 수 있다. 그것은 참으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킨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것에 관하여>에서 발췌

41. 만일 너의 마음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 안정된다면, 외부의 어떤 일에도 방해받지 않고, 어떤 인ㆍ사ㆍ물에도 점유되지 않는다. 이 방면에서 진입이 있다면, 소극적인 정형이나 사람의 관념, 처세 철학, 사람 사이의 비정상적인 관계, 마음과 생각 등등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자연히 없어진다. 왜냐하면 네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으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마음이 늘 하나님의 현실적인 말씀에 점유되면, 소극적인 것들은 부지중에 없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과 긍정적인 것이 너를 점유하면, 낡은 것과 부정적인 것은 자리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너는 그런 소극적인 것들을 중요시하지 말라. 그런 것은 너 자신이 애써 억제할 필요가 없다. 너는 하나님 앞에 안정하는 것을 중요시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고 누려야 하며, 하나님을 많이 찬양하고 찬미해야 하고,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할 기회가 있게 해야 한다. 오늘날 하나님이 친히 사람을 온전케 하려 하고 너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기에 하나님의 영은 너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네가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되면 하나님을 만족게 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것에 관하여>에서 발췌

42. 어떻게 성령의 감동을 찾고 구해야 할까? 하나님의 현실적인 말씀 속에서 사는 것과 하나님이 요구한 기초에서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기도하고 나면 성령은 반드시 너를 감동시켜 줄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현재 말씀의 기초에서 찾거나 구하지 않는다면 소용없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대적하였고, 당신께 정말 많은 빚을 졌습니다. 저는 너무나 패역하여 늘 당신을 만족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시기 원합니다. 저는 끝까지 당신을 위해 효력하고, 당신을 위해 죽기 원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심판하시고 형벌하셔도 저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당신을 대적하였으니 죽어도 마땅합니다. 저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공의 성품을 보게 하소서.” 네가 이렇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할 때면, 하나님이 들어줄 것이고 또한 너를 인도해 줄 것이다. 만약 성령의 현재 말씀의 기초에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성령이 너를 감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것에 따라 “하나님, 저는 당신의 부탁을 받아들여 그 부탁에 충성하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영광을 위해 일생을 바치기 원하오니, 저의 모든 행위가 자민의 기준에 이를 수 있도록, 제 마음이 감동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또한 저의 모든 행실로 사탄을 수치당하게 하고 제가 마지막에 당신께 얻어질 수 있도록 당신의 그 영이 항상 깨우쳐 주시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이런 기도를 하면 성령은 반드시 역사할 것이다. 기도할 때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관건은 네가 하나님의 뜻을 더듬어 냈느냐가 중요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에서 발췌

43.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먼저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야 하는데, 이것은 선결 조건이다. 나는 형제자매들이 나와 함께 기도하기를 바란다. “하나님, 하늘에 계신 당신의 영이 땅에 있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사 저의 마음을 전부 당신께 돌려 드리게 해 주시고, 저의 영이 당신께 감동받아 마음과 영으로 당신의 사랑스러움을 볼 수 있게 해 주시고, 땅의 사람에게 당신의 아름다움을 볼 복이 있게 해 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 당신의 영이 재차 우리의 영을 감동시키사 우리의 사랑이 영원히 계속되고 영구불변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것은 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검증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전부 그분께 기울일 때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감동시키시기 시작한다. 오직 영 안에서라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지고함과 위대함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성령이 사람들에게서 역사하시는(직역: 가시는) 길이다. 너에게는 이러한 생활이 있었는가? 너는 성령의 삶을 체험한 적이 있는가? 너의 영은 하나님께 감동받았는가? 너는 성령이 사람에게서 어떻게 하시는지를 보았는가? 너는 마음을 전부 하나님께 돌려 드렸는가? 네가 마음을 전부 하나님께 맡길 때 성령의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고, 또한 성령의 사역이 부단히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그때면 너는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너는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나의 기억 속에, 내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처음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나는 하나님 앞에 부복하여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하나님, 당신이 저의 두 눈을 열어 당신의 구원을 알게 하셨습니다. 저는 마음을 전부 당신께 맡기길 원합니다. 저는 오로지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저의 마음이 당신 앞에서 인정을 받기 원하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를 원합니다.” 이 한 차례의 기도가 나로 가장 잊기 어렵게 하고 깊은 감동을 받게 하여 나는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였다. 이는 나, 곧 하나님께 구원받은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기도이자 나의 첫 염원이었다. 그 후의 날들에서 나는 항상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너에게는 이러한 체험이 있었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길 … (3)>에서 발췌

44. 때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누릴 때, 영이 감동을 받아 꼭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면의 힘도 매우 커지고 내려놓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고 느낀다. 너에게 이런 느낌이 있으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것이고, 너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한 것이다. 그때면 너는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 정말 당신께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택해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의 영광으로 인해 자부심을 느끼고, 당신의 자민이 되어 영광스럽습니다. 저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완전히 당신을 위해 헌신하고 당신을 위해 바치기 원하고, 저의 일생과 평생의 정력을 다 당신께 바치기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할 때면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참된 순복이 있게 될 것이다. 너에게는 이런 체험이 있었느냐? 사람이 늘 하나님의 영에 감동을 받게 되면 특별히 헌신하는 기도를 드릴 것이다. “하나님, 저는 당신이 영광받으시는 날을 보기 원하고, 당신을 위해 살기 원합니다. 당신을 위해 사는 것은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의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절대로 사탄을 위해, 육체를 위해 살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날 당신을 위해 살 수 있는 것은 당신께서 높여주신 것입니다.” 네가 이런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을 하나님께 꼭 드려야 되겠고, 하나님을 꼭 얻어야겠으며,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얻지 못하면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런 기도를 한 번 하고 나면 안에는 끝없는 힘이 생긴다. 하지만 너는 그 힘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는데, 안에는 무궁무진한 힘이 생겨 특별히 하나님이 사랑스럽고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면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런 체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다. 늘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사람은 생명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완전히 얻겠다는 심지(心志)를 세울 수 있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좀 더 굳세지고,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어 가정, 세상, 얽매임, 앞날 따위는 저 멀리 내버리고 일생의 정력을 하나님께 바치기 원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에서 발췌

45. 참된 경배는 어떻게 생기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보았을 때 참으로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을 자가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자가 없으며, 하나님을 보기만 해도 두려워할 것이다. 지금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역사하는 기간에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소시에 대해 인식이 있을수록 더 귀히 여기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더 생기게 된다. 흔히 하나님에 대해 모를수록 덜렁거리면서 하나님을 사람으로 대하게 된다.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을 알고 정말로 하나님을 보게 된다면 두려워 벌벌 떨게 될 것이다. 왜 요한이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말했겠느냐? 그는 비록 그리 깊은 인식은 없었지만 하나님이 두려운 분임을 알고 있었다. 지금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그리스도의 실질을 모르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께 진실로 경배한다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겉모습이 평범하고 정상인 것만 보았지 그의 실질에 대한 인식은 없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보통 사람으로 여겨 경만한 태도로 대할 수 있고, 기만할 수 있으며, 대적하고 거역하고 논단할 수 있고, 독선적일 수 있다. 또한 그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그의 육신을 마음대로 대하며, 관념이 생기고 모독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그리스도의 실질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의 주요 방면이고, 실제의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진입하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육신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46. 영과 영이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고, 모두 접근하고 싶어 하고 모두 마음을 토로하며 이야기하고 싶어 하면서도 접촉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두려워한다. 이는 다 영의 끌어당기는 힘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본래 사람에게 사랑받는 하나님이고, 하나님께는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무궁무진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고 모두 하나님 앞에서 진심을 토로하고 싶어 한다. 사실, 사람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만 사탄의 방해로 마비되고 멍청하고 가련한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됐을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혐오한 적이 없고 오히려 영의 깊은 곳에서 나를 그리워하였다… 나의 ‘실제’는 사람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도 달갑게 받아들이게 하였다.”라고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진심을 밝혔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심령 깊은 곳에 있는 실제 상태이다.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알게 될 때가 되면 하나님에 대한 태도도 자연히 다르게 바뀔 것이다. 또한 사람은 영의 역할로 말미암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찬미를 올릴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15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 발췌

47. 베드로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저를 너그럽게 대하실 때 저는 기쁘고 위로를 받았고, 저를 형벌하실 때 제 마음에는 더욱 큰 위로와 기쁨이 있었나이다. 비록 저에게 연약과 말 못할 고통이 있고, 눈물과 슬픔이 있지만, 당신은 저의 슬픔이 저의 패역과 연약 때문임을 아시나이다. 저는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없어 흐느끼고, 당신의 요구에 닿을 수 없어 슬퍼하고 통회하나이다. 그러하나, 그 경지에 이르기를 원하옵고, 저의 온 힘을 다해 당신을 만족게 하기를 원하옵니다. 당신의 형벌은 저의 보호가 되었고, 가장 좋은 구원이 되었으며, 당신의 심판은 당신의 포용과 인내를 능가하나이다. 당신의 형벌과 심판이 없다면 저는 당신의 긍휼과 자비를 누릴 수 없나이다. 오늘에 이르러, 저는 또 당신의 사랑은 모든 하늘을 뛰어넘고, 모든 것을 능가하며, 긍휼과 자비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형벌과 심판임을 보았나이다. 제가 당신의 형벌과 심판 속에서 얻은 것은 너무나 많나이다. 당신의 형벌과 심판이 없다면 아무도 정결함을 받을 수 없고, 아무도 창조주의 사랑을 체험할 수 없나이다. 제가 온갖 시련과 환난을 겪고 구사일생했어도 진정으로 당신을 알게 되었고, 크나큰 구원을 얻게 되었나이다. 당신의 형벌과 심판과 징계가 저를 떠난다면 저는 흑암 속에서 살게 되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리이다. 사람의 육체에 무슨 유익한 점이 있사오리이까? 당신의 형벌과 심판이 저를 떠나면, 당신의 영이 저를 버린 것과 같고, 또 당신께서 더 이상 저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과 같나이다. 그러면 제가 어찌 살아갈 수 있겠나이까? 저에게 질병을 주시고 또 저의 자유를 박탈해 가셔도 살아갈 수 있사오나, 당신의 형벌과 심판이 저를 떠난다면 살아갈 수가 없나이다. 저에게 형벌과 심판이 없다면 당신의 사랑을 잃은 것이니이다. 당신의 사랑은 너무나 깊어 표현할 수가 없나이다. 당신의 사랑을 잃으면 저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고, 당신의 영광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는데, 제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으리까? 그런 어두움과 삶 속에서는 살아가기가 어렵나이다. 당신과 함께하면 당신을 보는 것과 같은데, 제가 어찌 당신을 떠날 수 있사오리이까? 진심으로 간구하나이다. 저의 가장 큰 위안을 거두어 가지 마옵소서. 아주 적은 당신의 위로의 말씀일지라도 말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누리게 되어 지금 당신을 떠날 수 없게 되었는데, 어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사오리이까? 당신의 사랑 때문에 슬픔의 눈물을 많이 흘렸지만, 저는 언제나 이런 삶이 더욱 의의 있고, 제 자신을 더 충실케 하고 변화시킬 수 있으며, 더욱더 피조물이 갖춰야 할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48. 이것은 베드로가 체험한 것과 같다. 그는 가장 연약했을 때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은 제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그리워하고,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사랑하기 원한다는 것을 아시나이다. 그러나 저의 분량은 너무나 작고 연약하고 힘이 없으며, 저의 사랑은 너무나 유한하고, 당신에 대한 진심은 참으로 너무나 적어 당신의 사랑과 비교하면 저는 정말 살 자격이 없나이다. 저는 오로지 이 일생을 헛되이 살지 않기를 바라고, 당신의 사랑에 보답할 뿐만 아니라 저의 모든 것을 전부 당신께 바칠 수 있기를 바라나이다. 저는 피조물로서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기만 하면 마음에 평안을 얻나이다. 다른 요구는 없나이다. 비록 제가 지금 연약하고 무기력하오나 당신의 부탁을 잊을 수 없고, 당신의 사랑을 잊을 수 없나이다. 저는 지금 당신의 사랑에 보답할 뿐이나이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당신께 마음의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능력을 다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만족게 하고 저의 모든 것을 다 당신께 바칠 수 있을지 몰라 마음이 괴롭기 그지없나이다. 사람의 연약은 당신께서 다 아시나이다. 제가 어떻게 해야만 당신의 사랑에 닿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나님, 당신은 저의 분량이 작음을 아시고, 저의 사랑이 너무나 적음을 아시나이다. 이런 환경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저의 능력을 다할 수 있사오리이까? 저는 제가 당신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당신께 드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나이다. 그러하나 지금 저의 분량은 정말 너무나 작나이다. 당신께서 저에게 힘과 믿음을 더해 주셔서 제가 더욱더 당신께 순결한 사랑을 바칠 수 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당신의 사랑에 보답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형벌, 심판, 시련을 체험하고, 더 심한 저주도 맛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제게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셨사오니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나이다. 저는 지금 비록 연약하고 무기력하지만, 어찌 당신을 잊으오리이까? 당신의 사랑, 형벌과 심판으로 제가 당신을 알게 되었사오나 당신은 너무나도 위대하시어 당신의 사랑에 만족드릴 수 없음을 느끼나이다. 제가 어떻게 해야만 저의 모든 것을 창조주께 바칠 수 있사오리이까?’ 베드로에게 이런 바람은 있었지만 분량은 부족했었다. 그때 베드로는 마음이 칼로 도려내는 듯 몹시 고통스러웠고,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지만 여전히 계속 기도했다. ‘하나님, 사람의 분량이 작고 사람의 양심도 연약하여 저는 단지 당신의 사랑에 보답만 할 뿐이나이다. 지금 저는 어떻게 해야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저의 능력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제 모든 것을 다 당신께 바치리이다. 당신이 심판하시든, 형벌하시든, 베풀어 주시든, 거두어 가시든, 제게 조금의 불평도 없게 하셨나이다. 당신이 저를 형벌, 심판하실 때, 제 안에 늘 불평이 있어 언제나 순결에 이르지 못하고, 당신이 바라시는 것을 만족게 해 드리지 못하고, 그저 마지못해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게 된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나이다. 저는 지금 제 자신을 더욱 증오하나이다.’ 베드로는 더 순결한 사랑을 찾고 구했기에 이런 기도를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찾고 구하며 간구도 하고 더욱이 자책도 하면서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였고, 하나님께 빚졌다고 느꼈고 자신이 증오스럽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또 근심과 소극적인 것도 조금 있었다. 그는 늘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이르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 환경에서도 베드로는 여전히 욥의 믿음을 추구하였다. 베드로는 욥이 당시에 그토록 믿음이 컸던 이유를 알고 있었는데, 욥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이기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시는 것은 당연하고, 하나님이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임을 보고 아무런 불평 없이 여전히 하나님을 칭송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지금 저는 양심으로 당신의 사랑에 보답해 그 사랑을 조금 돌려드리는 것에만 만족할 수 없나이다. 저의 생각이 너무나도 패괴되어 당신을 창조주로 여기지 못하나이다. 저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없사오니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기꺼이 바치고, 아무런 선택도 없이 당신께서 하신 모든 것을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나이다. 제가 당신의 사랑을 보고, 또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칭송하고, 제게서 당신을 찬미하는 소리가 나오게 하사 제게서 큰 영광을 얻으시옵소서. 저는 당신을 위해 이 증거를 서기 원하옵나이다. 하나님, 당신의 사랑이 그토록 보배롭고, 또 그토록 아름다운데, 제가 어찌 악한 자의 손아귀에서 살기를 원하오리이까? 저는 당신께서 지으신 것이 아니나이까? 제가 어찌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리이까? 차라리 저의 온 몸과 마음이 당신의 형벌 속에서 살지언정, 그 악한 자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싶지는 않나이다. 저의 몸과 마음을 당신의 심판과 형벌에 드리기를 원하옵나이다. 제가 정결케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칠 수 있나이다. 저는 사탄을 혐오하오니 그것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싶지 않나이다. 저는 저를 심판하여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발표하시기를 기꺼이 원하옵고 원망하지 않겠나이다. 피조물의 본분을 할 수만 있다면 일생 동안 당신의 심판을 동반하여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알고, 악한 자의 권세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옵나이다.’ 그는 늘 이렇게 기도하고, 늘 이렇게 찾고 구하여 비교적 높은 경지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하였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으며, 또한 양심의 기준보다 높을 수 있었다. 그의 이런 기도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그의 심지는 갈수록 커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갈수록 커졌다. 비록 그는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여전히 하나님 사랑하기를 잊지 않았고, 여전히 찾고 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기도에 이런 말이 있다. “저는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기만 했을 뿐, 전혀 당신을 위해 사탄 앞에서 증거하지 못했나이다. 저는 사탄의 권세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여 아직도 육체에서 살고 있나이다. 저의 사랑으로 사탄을 패배시키고 사탄을 수치스럽게 하여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하리이다. 사탄은 당신의 원수이오니 저는 저의 전부를 다 당신께 드리기 원하옵고 사탄에게는 털끝만큼도 주고 싶지 않나이다.” 그는 이 방면으로 찾고 구할수록 더욱 감동을 받았고, 이런 일들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깊어졌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가 도달한 경지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49. 베드로는 형벌 속에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 저의 육체가 패역하오니 저를 형벌하시고, 저를 심판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당신의 형벌과 심판을 기쁨으로 여기나이다. 설령 당신께서 저를 버리신다고 해도 저는 당신의 심판 속에서 당신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나이다. 당신이 저를 심판하실지라도 다른 사람이 당신의 심판에서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하나이다. 오직 당신의 성품을 발표하시어 모든 피조물이 당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고, 또한 저도 당신의 심판을 통해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순결해질 수 있어 의인의 형상에 이를 수만 있다면, 당신의 이런 심판은 아름답고 선한 것이니이다. 당신의 아름다운 뜻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니이다. 저는 저에게 아직도 패역이 너무 많아 여전히 당신 앞에 올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나이다. 저는 당신께서 더 많이 심판해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열악한 환경이든, 큰 환난이든, 당신께서 어떻게 하시든지 저에게는 다 귀한 것이니이다. 당신의 사랑은 너무나도 깊나이다. 저는 아무런 불평 없이 당신의 지배에 맡기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여 얻은 인식이자, 베드로가 하나님을 사랑한 간증이기도 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50. 당시의 역사는 지금처럼 대면하여 말씀한 것이 아니다. 은혜시대에 성령의 역사는 매우 은밀하여 베드로 역시 적지 않게 고난을 겪었다. 어떤 때는 심한 정도에 이르러 그는 “하나님, 저에게는 오로지 목숨 외에 다른 것은 없나이다. 제 목숨이 당신의 손에서는 가치 없을지라도 당신께 바치기를 원하나이다. 비록 사람에게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없고 사람의 사랑과 마음이 다 가치 없지만 당신께서 사람의 마음을 아시리라 믿나이다. 비록 사람의 육체는 당신께 열납될 수 없지만 저의 마음은 열납해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기만 하면 격려를 받았다. 특히, “마음을 전부 하나님께 바쳐도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나이다. 하지만 저는 충심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님을 위하겠나이다.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을 감찰하시리라 믿나이다.”라는 이런 기도에서 더 격려를 받게 되었다. “저는 일생 동안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각과 저의 마음에 소망하는 것이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기만을 구하나이다. 주님과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냈어도 지금까지 사랑해 본 적이 없나이다. 이것은 제가 가장 크게 빚진 것이나이다. 비록 주님과 함께 있었으나 주님을 알지도 못했고, 더군다나 뒤에서 당치 않은 말도 조금 하였나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주님께 더욱 빚졌다고 느껴지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늘 이런 면에서 “저는 진토만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나이다. 저는 오직 충심만을 하나님께 바치나이다.”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한 사역과 지금의 분량을 회상하면서 늘 예수 앞에 와서 기도했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기준에 이를 수 없는 것으로 인해 늘 후회하며 빚졌다고 느꼈는데, 이런 일들이 그에게는 가장 큰 부담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저의 *소유소시를 꼭 당신께 바치겠나이다. 어떤 것이 가장 귀중하면 그것을 바치겠나이다.” “하나님, 저에게는 믿음과 사랑밖에 없나이다. 저의 목숨과 육체는 가치가 없나이다. 저에게는 믿음과 사랑밖에 없나이다. 저의 생각 속에는 당신에 대한 믿음이 있고 저의 마음속에는 당신에 대한 사랑이 있나이다. 제가 당신께 바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둘뿐이고, 그 외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그 후에 베드로의 고통이 극도에 달했을 때 예수가 그에게 “베드로야, 설마 네가 잊었단 말이냐? 나는 세상에 속하지 않느니라. 다만 사역으로 인해 한 걸음 앞서 떠났을 뿐이니라. 너도 세상에 속하지 않느니라. 네가 정말 잊었느냐? 내가 두 번이나 너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기억나지 않느냐?”라고 일깨워 주었다. 베드로가 듣고는 “잊지 않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예수가 또 “너는 나와 함께 하늘 위에서 즐겁게 만난 적이 있었고 한동안 함께 지낸 적도 있었느니라. 너도 나를 그리워하였고 나도 너를 그리워하였느니라. 비록 피조물이 내 눈에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하지만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내가 어찌 사랑하지 않겠느냐? 너는 나의 약속을 잊었느냐? 너는 땅에서 나의 부탁을 받아들여야 하고 너에게 준 나의 부탁을 완수해야 하느니라. 언젠가 나는 반드시 너를 내 곁으로 데려오리라.”라고 말했다. 그 후에 베드로는 이로 인해 더 큰 격려와 일깨움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 저는 당신을 아무리 사랑해도 더 사랑하렵니다. 당신이 저를 죽으라 한다 해도 여전히 당신을 더 사랑하렵니다. 당신이 저의 영혼을 어떤 곳으로 데려가시든, 당신의 이전 약속대로 이루시든 아니든, 이후에 어떻게 하시든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믿겠나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가 지킨 것은 믿음이었고, 지킨 것은 진정한 사랑이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가 ‘예수’를 알아간 과정>에서 발췌

51. 나는 베드로에게 얼마나 많은 시련을 주었는지 모른다. 물론, 베드로 또한 시련 속에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수백 번의 시련 속에서 단 한 번도 믿음을 잃어버려 나에 대해 실망한 적은 없었다. 설령 내가 그를 이미 버렸다고 말했을지라도 그는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여전히 이전의 실행 원칙에 따라 실제적으로 나를 사랑하였다. 내가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해도 칭찬하지 않고 마지막에는 사탄의 손에 내버리겠다고 알려 주었지만, 육신에 실제로 임하지는 않는 말씀의 시련 속에서 베드로는 여전히 나에게 ‘하나님, 천지 만물 중에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이 전능자의 손에 있지 않겠나이까? 당신이 저에게 긍휼을 베푸실 때, 저의 마음은 당신의 긍휼로 매우 기쁘나이다. 당신이 저를 심판하실 때, 저는 비록 자격이 없지만 당신의 행사가 얼마나 심오한지 더욱 느끼나이다. 이는 당신께 권병과 지혜가 가득하기 때문이나이다. 저는 비록 육체가 고통받지만 영은 위로를 받나이다. 제가 어찌 당신의 지혜와 행사를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설령 제가 당신을 알고 난 후에 죽게 된다 해도 어찌 기꺼이 원하지 않겠나이까? 전능자시여! 당신은 정말 저에게 보이기 싫어하시나이까? 저는 정말 당신의 심판을 받을 자격이 없나이까? 혹시 저에게 당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니나이까?’라고 기도하였다. 베드로는 그런 시련 속에서 비록 나의 뜻을 정확하게 더듬을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쓰임받는 것으로(나에게 심판받아 사람에게 나의 위엄과 진노를 보게 할지라도) 스스로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고, 시련으로 낙담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내 앞에서 보인 그의 충성심으로 말미암아, 그에 대한 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베드로는 몇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푯대와 모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본받아야 할 바가 아니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6편 말씀>에서 발췌

5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한 모든 것은 다 심히 좋은데, 어찌 이때에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만약 어느 경지에 이르거나 어느 날에 이른다면, 너는 정말 베드로처럼 시련 속에서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를 할 수 있겠느냐? 베드로처럼 사탄의 손아귀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사탄의 결박에서 해방받고 육체를 이기고 사탄을 이겼다.”라는 말의 진실한 함의이다. 이것은 더욱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제32편의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 발췌

53. 진실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시련 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미를 발할 수 있고, 완전히 하나님께 순복하고 자신을 배반할 수 있으며, 따라서 진실하고 단일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고 하나님이 성취하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 역사의 절차에 관하여>에서 발췌

54. 만약 어느 날,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면, “아, 이제 보니 내가 이렇게 깊이 패괴되었었구나. 이제야 알겠어. 다행히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서 지금에야 밝은 인생을 보게 되었고, 인생의 바른길에 들어서게 되었어.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마치 꿈속에서 막 깨어난 듯 문득 깨닫게 된다. 그것은 크나큰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냐?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에는 공통성도 있고 차이점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에서 발췌

55. 수년간의 체험이 지나가면서 연단과 형벌의 고통을 겪은 인류는 온갖 풍상을 다 겪었다. 비록 지난날의 ‘광채’와 ‘낭만’은 잃었지만 부지중에 사람됨의 이치를 알게 되었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오래된 깊은 마음을 알게 되었다. 차츰차츰, 사람은 야만스럽고 길들이기 어려운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하였고, 여러모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께 사치한 요구를 했던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하였다. 시간은 되돌리지 못한다. 지난 일들은 사람이 참회하는 기억이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랑도 사람의 새 삶의 동력이 되었다. 사람의 상처가 날마다 아물어 가고 몸이 건강해져 사람은 일어나 전능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계속 내 곁에서 지키고 계셨다. 그의 웃는 얼굴과 아름다운 모습은 여전히 그렇게 마음을 설레게 하고, 그의 마음은 여전히 자신이 만든 인류를 그토록 걱정하며, 그의 두 손은 여전히 처음과 같이 그렇게 따뜻하고도 힘이 있었다. 사람은 마치 에덴동산에 있었던 때로 돌아간 것 같다. 하지만 이때의 사람은 더 이상 뱀의 유혹을 따르지 않고, 더 이상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웃는 얼굴을 맞이하며 가장 진귀한 제물을 바친다 ―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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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④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⑤부각물: 원문은 襯托物, 한 사물을 통해 다른 한 사물을 두드러지게 하는 존재.

⑥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⑦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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