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App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말씀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13) 어떻게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을 겪어야 하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331. 사람의 정형에 비추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비추어,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여 사람에게 그에 대한 인식과 순복이 있게 하고, 사랑과 간증도 있게 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려면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연단을 겪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훈계, 책망을 겪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영원히 알지 못하고, 영원히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간증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연단하는 것은 한 방면의 효과만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방면의 효과를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심지와 사랑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도록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연단 사역을 하게 되었다. 이런 연단은 진리를 찾고 구하려 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의의 있는 일이 되었고,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332. 사람의 성정은 저절로 변화되지 않는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 고난, 연단, 혹은 훈계, 징계, 책망을 거친 후에야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건성으로 대하거나 속이지 않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연단 속에서 성정이 어느 정도 변화된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징계와 훈계를 겪은 사람이라야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고 침착하고 듬직하다.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현실적인 말씀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 것이다. 설사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관념을 버리고 진심으로 순복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에서 발췌

333.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사람다운 모습이 있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이런 말씀의 폭로, 형벌, 심판을 겪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최종에 변화될 수 있는데, 이것이 길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이 변화될 수 없기에 반드시 이렇게 조금씩 해야 한다. 사람은 반드시 심판과 형벌을 겪어야 하고, 또한 끊임없이 훈계와 책망을 받아야 한다. 사람의 본성에서 어떤 것이 유로되면 반드시 폭로해야 한다. 폭로한 다음, 사람이 듣고 깨달은 후에야 바른길을 갈 수 있고, 한동안 체험하여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아야만 굳게 설 확신이 있게 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에는 공통성도 있고 차이점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에서 발췌

334.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아픔을 두려워하지 말며,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찌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 형벌 방면의 말씀과 패괴된 실질을 폭로한 말씀을 많이 보아야 한다. 많이 보면서 많이 맞추어 보되, 다른 사람에게 맞추지 말고 자신에게 맞추어야 한다. 어느 것이나 다 우리에게 적지 않게 있기에 모두 맞추어 볼 수 있다. 믿지 못하겠으면 네가 체험해 보아라.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이 한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이 듣기 싫든 좋든, 쓰든 달든, 쓰리든 아프든,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있어야 할 태도이다. 그렇지 않으냐? 이것은 어떤 태도이냐?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대함에 있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인 이상 우리는 마땅히 이지(理智)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든 없든, 시인할 수 있든 없든, 우리의 우선적인 태도는 바로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에는 모두 그 한 마디 말씀의 상황이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 말씀마다 겉면의 현상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겉면의 규례나 사람의 간단한 행위에 대해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이 아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이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으로 사람의 행위를 드러내고, 사람의 간단한 행위와 겉면의 현상을 드러낸 것으로 본다면, 너는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오한데, 그 심오함이 어디에 있느냐? 바로 하나님이 한 마디 한 마디 말씀으로 말하고 폭로한 것은 사람의 패괴 성정과 생명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실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실질적인 것이지 겉면의 현상이 아니고, 더욱이 겉면의 행위도 아니다. 겉면의 현상으로 볼 때 아마 너는 누구나 다 아주 좋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왜 어떤 사람들은 악령이라고 말씀하고, 어떤 사람들은 더러운 귀신이라고 말씀하겠느냐? 이것은 네가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상이나 겉으로 본 것에 근거해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하는 중요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서 발췌

335.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중시한 것은 도리를 아는 것이 아니고, 신학 지식을 얻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반대로 베드로가 중시한 것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어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아는 것이었다. 동시에 또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의 여러 가지 패괴 정형과 패괴 본성과 진정으로 부족한 면을 알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각 방면의 요구대로 하여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많이 정확하게 실행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함에 있어 가장 훌륭하게 협력한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신 수백 번의 시련을 겪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말씀, 사람을 드러내는 말씀, 사람에게 요구한 말씀은 다 엄격하게 자신에게 비추어 보고 자신을 성찰하였으며, 하나님 말씀의 뜻을 더듬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하신 예수의 모든 말씀을 진지하게 되새겨 보고 마음에 새겨 아주 좋은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베드로는 이렇게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는데, 사람의 여러 가지 패괴 정형만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실질과 본성도 알게 되었고, 사람의 여러 가지 부족한 면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참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방면으로는 진정으로 자신을 알게 되었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발표한 하나님의 공의 성품,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이 역사하는 뜻,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서, 이런 말씀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다. 비록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날처럼 이렇게 많지 않았지만, 베드로에게서는 이 몇 가지 방면의 효과를 보게 되었는데, 이것은 매우 귀한 것이다. 베드로가 겪은 수백 번의 시련은 헛된 고난이 되지 않았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역사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아주 중요시하였고,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하나님을 만족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하는지도 아주 중요시했다. 베드로는 이 방면에서 분명히 알게 되기까지 대단한 노력을 들였다. 이것은 베드로 자신의 진입에 매우 유익하였다. 어떤 방면의 하나님 말씀이든, 베드로는 자신에게 생명이 되는 말씀, 곧 진리에 속하는 것이면 다 마음에 새기고 늘 묵상하면서 깨달아 갔다. 베드로는 예수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두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중시하였음을 설명한다. 나중에는 확실히 효과를 보게 되었는데, 즉 하나님의 말씀을 능숙하게 적용하여 실행할 수 있었고, 진리를 정확히 실행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정확히 행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주장과 상상을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336.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는 그렇게 많은 사역이 사람에게는 다 온전케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연단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더욱이 형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마다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데, 사람이 누리게 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엄한 말씀이다. 하나님이 왔으니 사람은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를 누려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엄하든,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온 것은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하고, 연단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시련이 있을 때마다 사람에게 있어야 할 간증을 지키고,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증거를 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긴 자이다. 너는 하나님이 어떻게 연단하든 자신감이 넘치고,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잃지 않으며, 사람이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인데,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여 시시각각 마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긴 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한 너의 충심을 지켜야 한다>에서 발췌

337. 너희는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오로지 하나님 말씀에 진입하기만 하여라. 그러면 너희의 생명에 더욱 유리한데, 모든 것은 너희 성정이 변화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에 진입하면, 너의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되어 하나님이 이 단계 역사에서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도달할 심지도 있게 된다. 형벌시대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역사 방식이라고 여기면서 믿지 않다가 결국은 연단을 받지 못하였고, 형벌시대를 거치고서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아무런 인식도 없었다. 어떤 사람은 정말 그 말씀에 들어갔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하나님 말씀은 엄연한 사실이니 마땅히 형벌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거기에서 한동안 몸부림치다가 앞날과 운명을 다 내려놓았고, 그런 것을 거친 후 성정이 많이 변화되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더 깊은 인식이 있게 되었다. 형벌을 겪은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그는 하나님의 그 단계 역사는 하나님의 큰 사랑이 임한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정복이고 사랑의 구원임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좋은 것이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것은 다 사랑으로 인한 것이지 미움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사람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시하지 않은 사람들은 형벌시대에서 연단을 받지 못해 결국 성령이 그들을 따르지 않게 됨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형벌시대에 들어간 사람들은 비록 연단을 받았을지라도 성령이 그들 안에서 은밀히 역사하여 결국에는 생명 성정이 변화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겉으로 보면 아주 적극적이고 하루하루 즐겁게 지낸 것 같지만 하나님 말씀이 연단하는 그 정형에 들어가지 못하여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은 결과이다. 네가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성령이 너에게 역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기에, 하나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정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에서 발췌

338. 하나님의 말씀은 마디마다 우리의 급소를 찔러 우리를 슬프게 하고 두렵게 하였다. 그는 우리의 관념과 상상을 드러냈고, 우리의 패괴 성정을 드러냈다. 일언일행, 일거일동에서 마음과 생각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그의 말씀 속에서 우리의 본성 실질이 드러나게 하여 우리를 두려워 떨게 하였고, 몸 둘 바를 모르게 하였다. 그는 우리의 모든 행위, 우리의 속셈과 목적, 심지어 우리 스스로도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패괴 성정까지도 일일이 우리에게 알려 주어 우리로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 들게 하였고, 또한 심복구복하게 하였다. 그는 그에 대한 우리의 대적을 심판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모독과 정죄를 형벌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의 눈에서는 우리가 옳은 게 하나도 없고, 우리가 바로 숨 쉬고 있는 사탄임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의 희망은 깨지고 말았다. 우리는 더 이상 그에 대해 감히 그 어떤 무리한 요구나 의도를 갖지 못하게 되었고, 심지어 우리의 꿈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 중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실이다. 일순간, 우리의 마음은 평형을 잃어 앞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 몰랐고,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이어 가야 할지 몰랐다. 우리의 신앙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듯하였고, 또 우리는 주 예수와 ‘만난 적도, 알고 지낸 적도’ 없는 듯하였다. 눈앞의 그 모든 것은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하였고, 우리를 방황하게 하였다. 우리는 낙심하고 실망하였으며,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굴욕이 생겼다. 우리는 그것을 쏟아 내려 시도했고, 다른 길을 찾으려고 시도했으며, 더욱이 우리의 구주 예수를 계속 기다렸다가 그에게 속사정을 하소연하려고도 시도했다. 때로 우리의 겉모습은 대범하였지만 마음은 전례 없이 낙담되었고, 때로 우리의 겉모습은 아주 침착해 보였지만 마음은 바다가 뒤집어지듯이 갑절로 괴로움을 받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에, 우리는 모든 꿈과 희망을 빼앗겨 더 이상 지나친 욕망을 갖지 못하였고, 그가 바로 우리의 구주이고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도 믿고 싶지 않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말미암아 그와 우리 사이에 깊은 골이 생겼는데, 아무도 넘어가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말미암아 우리는 난생처음으로 그렇게 큰 좌절을 겪고 그렇게 큰 굴욕을 받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에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함과 거스를 수 없음을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고, 반대로 우리는 얼마나 비천하고 얼마나 더러운지를 알게 되었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처음으로 우리에게 우리의 오만과 자대(自大)를 알게 하였고, 또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동등할 수 없고 같이 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이러한 패괴 성정 속에서 살지 않고 하루속히 이러한 본성 실질에서 벗어나 더 이상 그에게 미움받지 않고 혐오받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구하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그의 말씀에 순복하고 그의 말씀을 듣게 하였으며, 더 이상 그의 지배와 안배를 거역하지 않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고, 우리로 하여금 달갑게 그를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우리는 정복 사역에서 걸어 나왔고, 지옥에서 걸어 나왔으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걸어 나왔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이 무리 사람들을 얻으셨다! 그는 사탄을 이기셨고, 모든 원수를 패배시켰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339. 그는 사탄의 권세를 초월하였고, 육체적인 누림과 취향에서 벗어나 형벌이든 심판이든 더 깊이 체험하기를 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당신의 형벌과 심판 속에서 살고 있어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고 싶지는 않나이다. 저는 당신의 저주 속에서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사탄의 축복 속에서 사는 것을 고통으로 여기나이다. 당신의 심판 속에서 살면서 당신을 사랑하게 되어 저의 마음은 대단히 기쁘나이다. 당신의 형벌과 심판은 공의롭고 또한 거룩한데, 그것은 저를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더욱이 저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나이다. 저는 한평생 당신의 심판 속에서 살면서 당신의 보살핌을 받을지언정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는 한시도 살고 싶지 않나이다. 저는 당신께 정결케 되기 위해 고통받더라도, 사탄에게 이용당하거나 우롱당하고 싶지 않나이다. 저는 피조물로서 당신께 쓰임받고 점유되어야 하며, 심판과 형벌도 받고 저주까지도 받아야 하나이다. 당신께서 저를 축복하려고 하실 때, 저의 마음은 그로 인해 기쁘나이다. 이는 제가 당신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나이다. 당신은 창조주이시고 저는 피조물이오니 당신을 배반해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서는 안 되고, 사탄에게 이용당해서는 안 되나이다. 당연히 당신을 위해 우마가 되어야지, 사탄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되나이다. 당신의 형벌 속에서 살면서 육체적인 복락이 없을지라도, 당신의 은혜를 잃었을지라도, 저는 여전히 그것을 누림으로 여기겠나이다. 비록 당신의 은혜가 저를 따르지 않지만, 저는 당신의 형벌과 심판을 누림으로 여기오리이다. 이것은 당신의 가장 좋은 축복이고, 가장 큰 은혜로소이다. 비록 당신이 저에 대해 언제나 위엄과 진노이시오나 저는 여전히 당신을 떠날 수 없고 여전히 더 사랑하리이다. 저는 차라리 당신의 집에서 살면서 당신께 저주받고, 형벌받고, 타격받더라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싶지 않고, 육체만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바쁘게 보내고도 싶지 않으며, 더욱이 육체를 위해 살아가기도 원치 않나이다.” 베드로의 이러한 사랑은 순결한 사랑이다. 이것은 온전케 되는 체험이고, 온전케 되는 최고의 경지인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의의 있는 인생인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귀하게 여긴 것은 그에게 있어 가장 귀한 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340. 베드로는 말했다. “사탄이 내게 물질적인 누림을 주어도 나는 그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노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임하면 그것을 은혜로 여기고, 누림과 축복으로 여기노라.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면 나는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계속 그것의 통제를 받고 그것에게 장악될 것이노라. 그러면, 나는 영원히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없노라. 이는 내가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없고, 내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까닭이노라. 설령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시지 않아 내가 위로를 잃고 속이 불타는 듯하여 평안과 기쁨이 없고 늘 하나님의 형벌과 징계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 해도 나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볼 수 있어 이것을 기쁨으로 여기노라. 이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노라. 비록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이 무정한 형벌, 심판, 저주, 채찍으로 바뀌었으나 나는 여전히 이런 것을 누림으로 여기노라. 이는 이런 것이 나를 더욱 정결케 하고 변화되게 하며,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게 하고,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 순결하게 사랑하게 하기 때문이며, 또 피조물의 본분을 할 수 있게 하고, 나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 수 있으며,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탄을 위해 힘쓰지 않게 하기 때문이노라. 언젠가 내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지 않고, 내 모든 것과 모든 힘을 조금도 남겨 놓지 않고 다 하나님께 바칠 수 있으면, 그때는 매우 흡족할 것이노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나를 구원했으니 일생 동안 살면서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떠날 수 없노라. 내가 땅에서 살고 있는 것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는 것이노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나를 보살피거나 보호하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을 것이고, 또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낼 기회도 없고 살아낼 수도 없을 것이노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나를 떠나지 않아야만 내가 언제나 하나님의 정결케 함을 받을 수 있노라. 나는 하나님의 엄한 말씀과 공의로운 성품 그리고 하나님의 위엄 있는 심판이 있어 지극히 큰 보호를 받게 되었고 빛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노라. 내가 정결케 되고 사탄에게서 벗어나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 것은 금생의 가장 큰 복이노라.” 이것이 베드로가 체험한 최고의 경지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341. 네가 추구하는 것은 형벌과 심판 후에 정복되는 것인가, 아니면 형벌과 심판 후에 정결케 되고 보호와 보살핌을 받는 것인가? 네가 추구하는 것은 도대체 어느 것인가? 너의 일생은 의의 있는 일생인가, 아니면 가치도 의의도 없는 일생인가? 너는 육체를 원하는가, 아니면 진리를 원하는가? 너는 심판을 원하는가, 아니면 안일을 원하는가? 네가 이렇게 많은 역사를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를 보았는데, 너는 마땅히 어떻게 추구해야 하겠는가? 너는 도대체 어떻게 이 길을 가야 하겠는가? 너는 어떻게 하나님 사랑하기를 실행해야 하겠는가? 형벌과 심판이 네게서 효과에 도달했는가? 네가 형벌과 심판에 대해 인식이 있는지는 네가 살아내는 것에 달렸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도에 달렸다! 네가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살아내는 것은 오히려 옛 패괴 성정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으며, 더욱이 양심적이지도 않은데,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겠는가? 이런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충성심이 있겠는가?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인 사람이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자신의 관념을 고집하고 내려놓지 않으며, 사역과 진입에, 말을 함에, 너의 삶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 조금도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데, 이것이 형벌과 심판을 받은 사람인가? 이런 사람이 베드로일 수 있겠는가? 베드로와 같은 사람은 인식만 있고 살아냄이 없는 사람인가? 지금 사람에게 진정한 인생을 살아내라고 요구하는데, 그 조건은 무엇인가? 베드로의 기도는 입술로만 한 것인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는가? 베드로는 기도할 줄만 알고 진리를 행하지 않은 사람인가? 너의 추구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너는 형벌과 심판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보호받게 하고 정결케 해야 하겠는가? 형벌과 심판은 사람에게 모두 무익한 것인가? 심판이라면 다 징벌인가? 설마 평안과 희락, 물질적인 축복과 일시적 평안만이 사람의 생명에 유익하단 말인가? 사람이 안일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살면서 심판받는 삶이 없다면 정결케 될 수 있겠는가? 사람이 변화되고 정결케 되려면 어떻게 온전케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너는 지금 마땅히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342. 네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너에게 간증이 있게 되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비록 하나님의 이 한 단계 한 단계 역사에서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지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을 얻게 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인식하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형벌이 저를 구원했어요.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저에게 임하여 축복과 은혜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저를 보호하고 정결케 했어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없고, 하나님의 엄한 말씀이 저에게 임하지 않았다면 저는 하나님을 알 수도, 구원을 받을 수도 없어요. 오늘 저는 피조물로서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누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피조물이라면 하나님의 공의 성품과 공의의 심판을 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누릴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사탄에게 패괴된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누려야 하지요.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는 심판과 형벌도 있고, 더욱이 지극히 큰 사랑도 있어요. 비록 지금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얻지는 못했지만 운 좋게 볼 수 있어요. 이것은 저의 복이지요.” 이것이 바로 온전케 되는 것을 체험하는 사람이 가는 길이고, 말할 수 있는 인식이다. 이런 사람은 베드로와 같은 사람에 속하고, 베드로의 체험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이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마지막까지 체험하면 반드시 심판을 받는 중에 완전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343.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역사함에 있어서 어떤 방식이든, 어떤 형식을 사용하든, 사람에게 어떤 말투로 말씀하든 간에 최종 목적은 오로지 하나, 바로 너를 구원하려는 것이다. 너를 구원하기 전에 너를 변화시키려고 하는데 네가 고생을 하지 않으면 되겠느냐? 너는 고생을 좀 해야 한다. 고생을 한다고 하면 포함되는 것이 많은데, 하나님이 주변의 인ㆍ사ㆍ물을 일으키고 환경을 배치하여 너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직접 책망하고 훈계하고 들춰내어 마치 수술대에 오른 것처럼 조금 아프게 할 것인데 느낌이 없으면 되겠느냐? 매번의 훈계와 책망, 매번 하나님이 일으킨 인ㆍ사ㆍ물은 너에게 있어서 다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또한 촉진시키는 것이다. 네가 이렇게 체험하면 옳은 것이고 너에게 분량이 있게 되며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된다. 매번의 훈계와 책망, 매번 하나님이 일으킨 환경이 너에게 있어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고 느낌이 없으며 네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으며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너무나도 마비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인사물에서 공과를 배워야 한다>에서 발췌

344. 책망과 훈계를 받은 후에 소극적이 되어 본분을 해도 힘이 나지 않고 충성심도 없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일까? 한 방면은 사람이 자신이 일 처리하는 방식의 실질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여 책망과 훈계에 불복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방면은 사람이 지금까지도 책망과 훈계의 의의를 깨닫지 못하여 모두 책망과 훈계를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 표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두 하나님에 대해 충성심이 조금이라도 있기만 하면 책망과 훈계가 따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훈계가 따르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라고 그릇되게 생각한다. 그런 오해로 많은 사람들은 주저하며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사람이 너무 궤사하여 고통은 전혀 받지 않고 수월하게 복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공의를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공의로운 일을 한 적이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공의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 사람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한 일이 공의로운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한 일이 사람의 뜻에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이 한 일이 인지상정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을 공의롭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사람은 지금까지도 자신이 행한 것이 합당하지 않고,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사람이 행한 것이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의 과오를 전혀 책망, 훈계하지 않고, 사람의 잘못을 꾸짖지도 않으며, 부드럽고 온화하게 건드리지 않고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며, 사람의 상처를 들추지 않으면서 하나님과 함께 먹고 함께 누리게 해 주기까지 한다면, 사람은 다 하나님을 공의롭지 않다고 원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식적으로 하나님을 아주 공의롭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변화된 모습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대로 나아간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조금이라도 꾸짖으면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의 변화된 모습을 보려고 한다는 것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공의롭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변화되려는 마음이 사라진다. 만약 이런 정형이 지속된다면, 너희는 모두 자신의 관념에 미혹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표현에 따라 결말을 정한다는 말씀에 내포된 뜻>에서 발췌

345. 어떤 사람들은 심판과 형벌, 훈계와 책망을 겪거나 진면목이 드러나면, 그것으로 끝이고 결말이 정해졌다고 여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다 여기에 걸려 앞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른다. 평소에 훈계와 책망을 받지 않고 어떤 좌절도 당하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을 믿으면 당연히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일단 충격을 좀 받고 어려움에 부딪히면 사람의 배반 본성이 유로(역주: 흘러나옴)되어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주 혐오스럽고, 나중에는 스스로도 몹시 혐오스럽다고 느낀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스스로 자신의 결말을 정한다. ‘끝이야, 나 같은 사람은 끝이야. 이런 일까지 저지르게 되었으니 끝난 거 아니겠어? 하나님은 틀림없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실 거야.’, 이런 정형이 있는 사람은 소수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렇다고 할 수 있다. 왜 사람은 이렇게 규정지을까? 그것은 아직도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너를 한 번 훈계하면 한동안 진리를 추구하지 않을 수 있고, 작은 일을 하나 잘못한 것 때문에 본분을 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작은 상황 하나 때문에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이 완벽하게 추구해야만 힘이 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이 너무 패괴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추구할 마음이 없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다 낙심하면서 소극적인 말을 한 적이 있다. “아! 난 끝났어. 틀림없이 끝이야. 구원받을 수가 없어. 설사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다고 해도 나 스스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나 같은 사람은 변화될 수 없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사실, 인류가 정상적으로 진입하는 중에 간혹 일부 패괴 성정이 유로된다든가, 일을 할 때 뒤섞임이 있고 무책임하고 충성심이 없고 대충대충 하여 속인다든가 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모두 필연적인 법칙이다. 그런 유로가 없다면 어찌 패괴된 인류라고 하겠느냐? 인류에게 패괴가 없다면, 하나님이 하는 구원 사역도 의의가 없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사람에게 진리가 없기 때문에 아직도 자신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고, 자신의 정형도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드러내어 분명히 지적해 주어야 한다. 오직 드러내야만 너희가 문득 크게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마비되고 멍청해져 이렇게 역사하지 않으면 변화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에는 공통성도 있고 차이점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에서 발췌

346. 한 가지 일을 네가 인식하자마자 실행할 수 있느냐? 즉시 실행할 수 없다. 인식하는 그 기간에 어떤 사람은 너를 책망하고 어떤 사람은 너를 훈계하며, 게다가 환경의 핍박으로 너를 하는 수 없이 이렇게 저렇게 하게 한다. 어떤 때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왜 해내지 못할까?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 다른 사람이 말해 준다.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해요.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만 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되는 거예요.” 나중에 어느 정도에 이르러 다시 시련을 좀 겪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고 나서 다시 하면 좀 기꺼이 할 수 있다. 그래도 처음에는 좀 마지못해 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정 변화에 대해 있어야 할 인식>에서 발췌

347. 어느 때를 막론하고 드러나거나 훈계와 책망을 겪거나 혹은 상면의 책망과 훈계를 받았거나 혹은 형제자매들에게 책망받았으면 너는 이 일을 기억하라. 사람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정죄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이다. 이것은 자신을 알아가는 가장 좋은 기회이고 네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전환점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자신의 진상(眞相)을 아는 데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와 이런 조건과 배경도 없게 된다. 네가 자신 안의 것들, 자신의 여러 가지 면들, 그리고 자신이 인식하기 어려운 깊숙한 곳에 있는 것들, 파헤치기 어려운 것들을 인식했다면 이것은 좋은 일이고, 네가 모습을 바꾸어 새 사람이 될 가장 좋은 기회이자 새 생명을 얻을 가장 좋은 기회이며, 네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이 한 고비를 넘어선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좋은 일이다! 만약 네가 이 기회를 붙잡을 수 있고 이런 일로 말미암아 진리를 많이 구하며 기도를 많이 하고 진지하게 책임을 다하는 태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네가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이 한 고비를 넘어선다면 너는 한 걸음 크게 진보할 수 있다! 다 나쁜 일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인사물에서 공과를 배워야 한다>에서 발췌

348. 네가 만약 하나님의 주재를 믿는다면 매일 발생하는 일들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고, 누가 일부러 너를 괴롭히거나 일부러 너를 겨냥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안배하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너의 몰골을 드러내거나 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너를 드러내는 것은 최종 목적이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려 하고 너를 구원하려 하는 것이 목적이다. 너를 어떻게 온전케 하느냐? 너를 어떻게 구원하느냐? 우선 너로 하여금 자신의 패괴 성정을 알게 하고 자신의 본성 실질과 자신의 부족함과 결점을 알게 한다. 네가 이것을 알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인데, 너는 기회를 잡는 것을 배우고 알아야지 소처럼 떠받지 말고 맞서지도 말아야 한다. 만약 하나님이 네 주변에 안배한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에 대해 네가 늘 맞서고 늘 벗어나려 하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늘 생각하고 늘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늘 오해한다면 너는 진리에 진입하기가 매우 어렵다. 네가 순복하고 구하며 기도를 많이 하고 영 안으로 돌아와 하나님 앞에 오면 부지중에 네 안의 정형은 변화된다. 이 기간에 진리 실제를 네 안에 만들어 넣으면 너는 진보하게 되고 생명 정형에 변화가 생긴다. 너에게 변화가 생기고 이러한 진리 실제가 있으면 분량이 있게 되고, 분량이 있으면 생명이 있게 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인사물에서 공과를 배워야 한다>에서 발췌

349. 만약 하나님이 너에게 약간의 환경과 인ㆍ사ㆍ물을 배치하거나 혹은 너를 훈계하고 책망하여 네가 이 가운데서 공과를 배우고 하나님 앞에 오는 것을 배우고 진리를 구하는 것을 배우며 부지중에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아 진리를 얻고, 이런 환경 가운데서 변화가 있고 수확이 있고 진보가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원망치 않는다면, 즉 이런 환경과 시련에서 굳게 서고 시련을 견딜 수 있다면 된 것이고 네가 기준을 통과한 것이다. 기준을 통과한 사람을 하나님 편에서는 어떻게 보느냐? 이 사람은 참된 마음이 있고 이런 고생을 할 수 있으며 그의 마음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 대해 이런 평가가 있으면 너에게 분량이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런 사람은 생명이 있지 않느냐? 이 생명은 어떻게 얻은 것이냐?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어떻게 베풀어 주었느냐? 하나님이 친히 밥 한 그릇을 들고 네 입에 떠 넣어 줘서 먹게 한 후에 배불리고 굳세게 설 수 있게 한다. 너는 이런 것을 다 이렇게 보고 이렇게 깨달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것에 순복하는 것이다. 너는 이러한 마음 상태와 태도를 갖춰야 하고 진리를 구하는 것을 배워야지 외부에서 원인을 찾아서는 안 되고 늘 사람을 귀찮게 해서는 안 되며 늘 다른 사람의 흠을 잡아서는 안 된다. 겉으로 보기엔 일부 사람들이 너에 대해 견해가 있지만 그런 각도에서 보지 말아야 한다. 네가 만약 그 각도에 서서 본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네가 다른 각도에서 보고 너의 관점을 바로잡고 너의 마음 상태를 바로잡으면 진리를 얻게 되는데, 이건 기뻐할 일이 아니냐?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인사물에서 공과를 배워야 한다>에서 발췌

350. 하나님이 심판하든 저주하든, 어쨌든 사람에 대해서는 온전케 하는 것이고 사람 안의 불결한 것들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에게 연단을 가져다주었고, 사람 안의 결핍한 것이 그의 말씀과 역사로 온전케 되었다. 하나님이 하는 각 단계의 사역이 엄한 말씀이든, 심판이든, 형벌이든 사람에게는 다 온전케 하는 것이기에 실로 너무나 적합하다. 하나님은 역대에 이런 사역을 한 적이 없는데, 오늘날 너희에게 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실감하게 하였다. 비록 너희가 속으로 어느 정도 고통을 받기는 하였지만 늘 마음속이 안정되고 평안하다고 느낀다. 너희가 하나님의 이 단계 역사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너희의 행복이다. 이후에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에 상관없이, 어쨌든 오늘날 하나님이 너희에게 하는 사역이 전부 사랑이라는 것을 보았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연단을 겪지 않으면 언제나 겉으로만 하고, 겉으로만 열성적이며, 언제까지나 성정에 변화가 없다. 이것을 하나님께 얻어졌다고 할 수 있겠느냐? 지금 비록 사람 안에 아직도 오만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사람의 성정은 이전보다 많이 안정되었다. 하나님이 너를 훈계하는 것도 역시 너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에는 네가 아마 어느 정도 고통을 받겠지만 어느 날이 되면 너의 성정이 변화될 것이다. 그때에 뒤돌아보면 하나님이 한 사역이 너무나 지혜롭다고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하나님의 뜻을 진정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351. 사람이 산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아래에 달갑게 순복해야 하며,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를 달갑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요구한 모든 진리를 실행할 수 있으며, 그래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진정으로 산 사람이 될 수 있다. 산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겪은 사람이며, 자신을 기꺼이 봉헌하고 하나님을 위해 달갑게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달갑게 바치는 사람이다. 산 사람이 하나님을 증거해야만 사탄을 수치당하게 할 수 있으며, 산 사람만이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확장할 수 있다. 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고, 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살아난 사람인가?>에서 발췌

352.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훗날의 복을 얻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사람에게는 다 이런 속셈과 바람이 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에 있는 패괴된 것은 반드시 시련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어떤 것이 해결받지 못했으면 반드시 거기에서 연단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안배이다. 하나님은 너에게 환경을 배치해 주어 네가 어쩔 수 없이 그 환경 속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자신의 패괴를 인식하게 함으로 나중에는, 죽는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의도와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몇 년간의 연단이 없고 어느 정도의 고난이 없다면, 사상 면에서, 심령에서 패괴된 육체의 통제를 벗어날 수가 없다.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아직도 사탄의 통제를 받고, 어떤 방면에 아직도 자신의 욕망이 있고 아직도 자신의 요구가 있다면, 그 방면에서 고통을 받아야 한다. 오직 고난 속에서만 공과를 배울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속에서 진리를 얻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진리는 다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안일한 환경에서, 순탄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시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게 할 것인가>에서 발췌

353.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하고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려고 한다면, 반드시 많은 고통과 환경의 시달림을 겪어야 한다. 너를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해야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참된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다. 한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이 있는지는 바로 고난과 연단 가운데서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사랑을 순결하게 하는 것도 고난과 연단을 통해야 비로소 도달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사랑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354. 연단은 각 사람에게 있어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이고,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공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이 깨우쳐 주고, 더 많이 실제적으로 책망하고 훈계하며, 사실과 진리의 대조를 통해 사람에게 더욱 자신을 알게 하고, 진리를 인식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더 참되고 더 순수한 사랑이 있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연단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355. 하나님이 연단할수록 사람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는데, 사람이 마음으로 고통받는 것은 다 사람 생명에 유익하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더 안정할 수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밀접해질 수 있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사랑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도 볼 수 있다. 베드로가 연단을 수백 번 겪었고, 욥도 시련을 여러 번 겪었듯이, 너희도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연단을 수없이 겪어야 하고,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드시 이 절차를 거쳐야만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연단은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오직 연단과 고통스러운 시련을 통해야만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우러나오게 할 수 있다.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있을 수 없다. 사람에게 시련이 없고 진실한 연단이 임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밖에서 떠돌게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연단받으면 너는 자신의 연약함과 어려움을 보게 되고, 부족함이 너무나 많아 자신에게 많은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이겨 나갈 수 없음을 보게 되며, 자신의 패역이 너무나 많음을 보게 된다. 시련 속에서라야 참으로 자신의 실제 정형을 인식할 수 있다. 시련은 사람을 더욱 온전게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356. 연단받을 때는 적극적인 방면에서 진입하고, 배워야 할 공과를 배우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자신의 정형에 대조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자신이 배워야 할 공과가 아주 많다는 것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연단 속에서 진실하게 추구할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더 잘 발견할 수 있다. 연단 속에서 많은 일들이 너에게 임하게 될 때, 너는 그것을 꿰뚫어 보지 못해 원망하며 자신의 육체를 드러내게 된다. 그러면 너는 그로 인해 비로소 자신에게 패괴 성정이 너무나 많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한 너의 충심을 지켜야 한다>에서 발췌

357. 시련 속에서 한편으로는 사람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하고, 자신이 보잘것없고 비열하고 미천하고 일무소유이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환경을 배치하여 그 환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더욱 체험할 수 있게 한다. 비록 고통이 매우 커서 때로는 이겨 낼 수 없고 심지어 극도로 비통할지라도 겪은 후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한 사역이 참으로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 기초에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비로소 진실한 사랑이 생기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358. 설령 네가 지금은 사역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피조물의 본분을 해야 하고,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지배에 따르기를 추구해야 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다 순복해야 한다. 어떤 환난과 연단이든 너는 겪어야 하고, 비록 연약하지만 마음으로는 한결같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피조물의 본분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추구하는 관점은 바른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359. 하나님은 적극적인 방면에서든 소극적인 방면에서든 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데, 그것은 네가 체험할 줄 아는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달렸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진정으로 추구한다면, 소극적인 방면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실제적인 것들을 얻을 수 있고, 더욱이 자신의 부족함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실제 정형도 파악할 수 있으며, 사람이 일무소유이고 아무것도 아님을 볼 수 있다. 시련을 겪지 않으면 모르고, 시련을 겪지 않으면 늘 자신이 남보다 대단하고 누구보다도 좋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 너는 이전에는 다 하나님이 하였고, 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련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랑도 없어지고 믿음도 없어지며, 기도도 부족하고 찬양도 할 수 없게 되는데, 부지중에 너는 그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360. 하나님이 역사하여 사람을 연단하면 사람은 고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하나님의 큰 능력이 사람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사람이 받는 연단이 작을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작아지고 하나님의 큰 능력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것도 작아진다. 받는 연단이 클수록, 받는 고통이 클수록, 받는 시달림이 많을수록, 하나님에 대해 생기는 참된 사랑이 더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이 더 있게 되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더 깊어진다. 너는 체험하는 가운데서 연단과 고통을 크게 받는 사람들, 훈계와 징계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점점 더 깊어지고 점점 더 투철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훈계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가 인식하는 것은 아주 얕다. 그는 “하나님은 참 좋아요. 그분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분을 누리게 하시지요.”라고 말할 줄밖에 모른다. 훈계와 징계를 받고 나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는 사역이 기묘할수록 더욱 가치가 있고 더욱 의의가 있으며, 너로 하여금 측량할 수 없게 할수록,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을수록, 더욱 너를 정복할 수 있고 너를 얻을 수 있으며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361. 시련을 겪는 중에 사람이 연약하든, 내면이 소극적이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든, 실행 길에 대해 별로 명확하지 못하든, 이런 것은 다 정상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이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던 것처럼 해야 한다. 욥이 비록 연약하여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지만,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소유한 것들은 다 여호와가 베풀어 준 것이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분도 여호와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떻게 시련하든 그는 그렇게 인정하였다. 네가 체험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연단을 받든, 한마디로 말해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을 요구한다. 그가 그렇게 하여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믿음이고, 또한 사람의 심지이다. 그는 네가 더듬을 수 없고 볼 수 없게 하는데, 네가 더듬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의 육안에 보이지 않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버리지 못할 때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깨닫지 못할 때 믿음이 필요하며, 이 입장을 확고히 하고 이 간증을 굳게 서야 할 필요가 있다. 욥이 이 정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였다. 다시 말해, 네가 믿음 안에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너에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은 너를 온전케 하며, 너에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도 너를 온전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362. 하나님이 하는 사역마다 사람이 협력해야 할 길이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을 연단하면 연단 속에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고,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연단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훈계와 책망을 흔쾌히 받아들이라는 것이며, 또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역사하여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주면 협력하고 실행하라는 것이다. 연단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고 음성을 발하지 않아도 사람은 여전히 해야 할 사역이 있는데, 네가 원래의 것을 지키면서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여전히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고,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간증을 굳게 설 수 있으면, 자신의 본분을 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한 너의 충심을 지켜야 한다>에서 발췌

363. 연단 사역은 주로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사람이 떠나려고 해도 떠나지 못하게 되고, 한 가닥의 희망조차 없을 때도 여전히 믿음이 있게 되며, 자신의 앞날에 대해 희망을 전혀 갖지 않게 되는데, 그때에야 하나님의 연단이 끝나게 된다. 사람이 아직 죽도록 힘든 지경에 이르지 않았고 죽음의 맛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이 연단은 끝나지 않는다. 효력자 단계에서도 끝까지 연단하지는 않았다. 욥은 끝까지 연단을 겪어 의지할 데가 전혀 없었다. 반드시 사람을 희망이 전혀 없고 의지할 데도 전혀 없는 그 지경까지 연단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야말로 진실한 연단이다. 효력자 때에 마음을 늘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 늘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하면서 길 끝까지 오니 모든 것을 다 깨닫게 되었다. 너는 욥의 시련을 겪는 동시에 베드로의 시련도 겪는 것이다. 욥이 시련을 받을 때 간증을 굳게 섰기에 마지막에는 여호와가 그에게 나타났으며, 그는 간증을 굳게 섰기에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이 있게 되었다. …네가 만약 욥처럼 시련 속에서 자신의 육체를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를 증오하고 절대 불평하지 않고 입으로 범죄하지 않는다면 간증을 굳게 선 것이다. 네가 어느 정도 연단을 받아도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고분고분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해 다른 요구가 없고 관념도 없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이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364. 너희는 하나님의 역사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시련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께 더 많이 기도하고 더 자주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누려야 한다. 하나님이 너를 깨우쳐 주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었음에도 네가 전혀 실행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을 누릴 때 늘 하나님 앞에서 찾고 구하면,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충만하여 낙담하지 않게 되고, 쓸쓸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예배할 때는 힘이 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어둠에 빠진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예배하는 것마저도 싫어한다.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너는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를 때에도 자신의 본분을 지키고, 기도해야 할 때는 여전히 기도하고 진리를 실행해야 할 때는 여전히 진리를 실행하면서 사람이 해야 할 것을 다 하고 원래의 이상(異象)을 굳게 지킨다면, 하나님의 다음 단계 사역을 받아들이기 쉽게 된다. 하나님이 은밀하게 역사할 때, 네가 추구하지 않으면 곤란하게 된다. 하나님이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고 예배에서 설교하면 아주 열의가 넘치다가도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면 열의가 식어버리고 후퇴하는데,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에 속하느냐? 이들은 대세를 따르는 사람들로, 입장이 없고 간증이 없으며 이상도 없다! 많은 사람이 다 이러하다. 계속 이렇게 나갈 경우, 어느 날 큰 시련이 임하면 너는 징벌 속에 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온전케 할 때 입장을 가장 중요시한다. 네가 하나님이 하는 사역마다 의심하지 않고, 사람의 본분을 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이 너에게 실행하라는 것을 지키면, 다시 말해 하나님의 당부를 기억하고, 지금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 하나님의 당부를 잊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의심하지 않으며, 입장을 굳게 지키고, 간증을 굳게 지키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승리하게 되면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이긴 자로 온전케 될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하나의 시련에서 네가 모두 굳게 서고 마지막에 가서도 여전히 굳게 서면, 이런 사람은 이긴 자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한 너의 충심을 지켜야 한다>에서 발췌

─────────

①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소유소시(所有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④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⑤심복구복(心服口服):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함.

⑥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⑦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이전:(12)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실행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다음:(14)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증거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