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패괴 폭로[2]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36)

오늘 나의 이러한 경고는 너희의 생존을 위한 것이자 나의 사역을 순조롭게 펼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온 우주의 시작 사역을 더 적절하고 완벽하게 행하는 한편, 열국과 열방 사람에게 나의 말과 권병, 위엄, 심판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하는 나의 사역은 우주 전체에서 전개되는 사역의 시작이다. 지금을 말세라고 하지만, 여기에서 ‘말세’란 한 시대를 의미하는 대명사임을 알아야 한다. 말세란 율법시대나 은혜시대처럼 한 시대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지 마지막 때의 몇 년, 몇 달 정도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말세’는 은혜시대나 율법시대와 다르다. 말세에는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에서 사역한다. 이 사역은 이스라엘 밖의 각 나라와 족속의 사람을 정복하여 내 보좌 앞에 오게 함으로써 전 우주 아래의 나의 영광을 우주 궁창에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즉, 더 큰 영광을 얻기 위한 것인데, 땅의 모든 피조물이 나의 영광을 만방에 알리고 후세에 길이 전할 수 있게 하며, 하늘 위아래의 모든 피조물이 땅에서 얻은 내 모든 영광을 보게 하는 것이다. 말세에는 정복 사역을 한다. 백성들을 이끌고 땅의 삶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땅에서 수천 년간 겪어 온 고난의 삶을 끝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사역은 이스라엘에서 했던 사역처럼 수천 년이 걸리는 것이 아니고, 유대에서 몇 년간 사역한 후 두 번째로 성육신하기 전까지 2천 년 동안 지속되었던 것과도 같지 않다. 말세의 사람은 단지 말세에 육신으로 다시 나타난 구속주를 접하고, 하나님이 친히 한 사역과 말씀을 받아들였다. 말세는 예수가 유대에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전개했을 때처럼 짧은 기간으로, 2천 년 동안 지속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말세는 전체 시대를 끝내고, 6천년 경륜을 마무리하며, 고난으로 점철된 인류의 인생 여정을 끝내는 때이기 때문이다. 말세는 인류 전체를 다음 시대로 인도하거나 인류의 삶을 계속 이어지게 하는 때가 아니다. 말세가 그런 것이라면 나의 경륜과 사람의 생존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만약 인류가 계속 이대로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그 악마에게 모조리 잡아먹힐 것이고, 나에게 속한 영혼들도 결국에는 악마의 손에 파멸될 것이다. 나의 사역은 6천 년뿐이며, 내가 그 악한 자에게 인류를 지배하도록 허락한 시간 역시 6천 년뿐이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나는 더 이상 이대로 지속되는 것을 원치 않고 시간이 지체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말세에 나는 사탄을 크게 이겨 나의 모든 영광을 되찾아 올 것이며, 내게 속한 이 땅의 모든 영혼을 거두어들임으로써 슬픔에 빠진 영혼들을 고해에서 구해 내고 이 땅의 모든 사역을 끝낼 것이다. 그 후로는 다시 땅에 성육신하지 않을 것이고, 만유를 주재하는 나의 영도 땅에서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만 땅에서 인류를 다시 창조할 것인데, 그들은 거룩한 인류이자 땅에 있는 내 신실한 성읍이다. 하지만 너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세상을 전부 멸하거나 인류를 전부 멸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완전히 정복된, 나를 사랑하는 3분의 1의 사람들을 남겨 이 땅에서 번성하게 하고, 율법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내가 키운 많은 소와 양, 땅의 모든 부요함을 얻게 할 것이다. 그런 인류는 장차 나와 함께 영존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처럼 더럽기 그지없는 인류가 아니라 내게 얻어진 모든 사람의 집합체이다. 그들은 사탄의 파괴와 방해, 공격을 받지 않는 인류이며, 내가 사탄을 물리친 후 이 땅에서 유일하게 생존할 인류이다. 그들이 바로 오늘날 정복되고 약속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정복되는 자들은 살아남아 영원한 복을 받을 인류이며, 내가 사탄을 물리쳤다는 유일한 증거이자 전리품이다. 그 ‘전리품’들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내게 구원받은 사람들로, 나의 6천년 경륜의 유일한 결정체이자 커다란 열매이다. 그들은 각 나라와 각 교파, 전 우주 아래의 각 나라와 각 지역에서 온 자들로서, 민족도 언어도, 풍속도 피부색도 전부 다르다. 그들은 온 땅의 각 나라 각 교파, 나아가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다가 마지막에 한데 모여 완전한 인류를 이루고, 사탄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의 집합체를 이룰 것이다. 나의 구원과 정복을 거치지 않은 인류는 모두 바닷속에 조용히 가라앉을 것이며, 내 불길에 영원히 불사름 당할 것이다. 나는 극도로 더러운 옛 인류를 멸할 것이다. 마치 애굽에서 어린양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문 인방에 어린양의 피로 표시를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겨 두고, 애굽의 모든 장자와 초태생의 소와 양은 전부 멸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 정복된 내 가족 중의 사람 역시 내 어린양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내게 구속함을 받은, 나를 경배하는 사람들이 아니더냐? 이런 사람에게는 항상 나의 영광이 따르지 않더냐? 내 어린양의 살이 없는 사람들은 벌써 바닷속에 조용히 가라앉지 않았더냐? 오늘날 너희는 나를 대적하고 있다. 지금 나는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했던 것처럼 너희에게 말하고 있지만, 너희 마음의 강퍅함이 내 분노를 쌓고 있다. 너희는 자신의 육체가 받을 고통을 쌓고, 자신의 죄악으로 받을 심판을 쌓으며, 자신의 불의로 받을 내 분노를 더 많이 쌓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너희가 나를 이렇게 대하는데, 그 누가 내 분노의 날을 피할 수 있겠느냐? 그 누가 불의를 저지르고도 사람을 형벌하는 내 두 눈을 피할 수 있겠느냐? 그 누가 죄악을 저지르고도 나 전능자의 두 손을 피할 수 있겠느냐? 그 누가 나를 대적하고도 나 전능자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는 이방 족속의 자손인 너희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했던 모든 말을 능가하지만 너희는 그 애굽 백성들보다 더 강퍅하다. 내가 편안히 사역할 때 너희는 나의 분노를 쌓고 있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어찌 나 전능자의 날을 무사히 피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육에 속한 자는 누구도 그 분노의 날을 피할 수 없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37)

내가 너희들 가운데서 이렇게 사역하고 말하며 얼마나 많은 정력과 심혈을 쏟았더냐? 하지만 내가 분명히 알려 준 것을 너희가 언제 청종한 적이 있더냐? 너희가 나 전능자에게 엎드린 적이 있더냐?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이냐? 너희는 어찌하여 나의 분노를 사는 언행만 일삼는 것이냐? 너희는 어찌하여 이리도 마음이 강퍅한 것이냐? 내가 너희를 친 적이 있더냐?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슬프고 애타게만 하느냐? 설마 나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임할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냐? 내가 너희의 패역으로 인해 솟구친 분노를 쏟아 낼 때까지 기다리려는 것이냐? 내가 너희에게 한 것은 모두 너희를 위한 것 아니더냐? 하지만 너희는 나 여호와를 계속 이런 식으로 대하고 있다. 나의 제물을 훔쳐 먹고, 나의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훔쳐 집으로 가져가서는 이리 굴 속에 있는 이리의 자손들에게 먹인다. ‘백성’과 ‘백성’ 간에 서로 싸우고 죽이며, 분노의 눈길과 총칼로 서로를 대하고, 나 전능자의 말은 배설물로 가득 찬 변소에 던져 더럽힌다. 너희의 인격은 어디에 있느냐? 인간성을 잃고 모두 짐승이 되었구나! 너희의 ‘마음’은 이미 단단한 돌로 변했다. 내 분노의 날이 닥치면, 지금 나 전능자에게 행한 너희의 악행이 심판받게 된다는 것을 어찌 모르느냐? 너희는 이렇게 나를 속이며, 내 말을 청종하기는커녕 더러운 진흙에 던져 버린다. 그렇게 내 뒤에서 행동하면 내 분노의 눈길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너희가 나의 제물을 훔쳐 먹고 나의 재물을 탐낼 때 나 여호와가 두 눈으로 보고 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가 내 제물을 훔쳐 먹은 곳이 제물이 바쳐진 제단 앞이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가 어찌 잔머리를 굴리며 나를 기만할 수 있느냐? 나의 분노가 하늘에 사무치는 너희의 죄를 어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나의 진노가 너희의 악행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오늘 저지르는 악행은 자신의 살길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 받을 형벌을 쌓는 것이고, 나 전능자에게 형벌받을 짓을 하는 것이다. 너희의 그 악행과 악담이 어찌 나의 형벌을 피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간구하는 것이 어찌 나의 귀에 전해질 수 있겠느냐? 내가 어찌 너희가 불의를 저지르도록 길을 열어 줄 수 있겠느냐? 내가 어찌 나를 거역한 너희의 악행을 용서할 수 있겠느냐? 내가 어찌 독사 같은 너희의 입술과 혀를 자르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너희는 자신의 의를 위해 내게 간구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불의로 인해 나의 분노를 쌓고 있다. 그런데 내가 어찌 너희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나 전능자의 눈에 너희의 언행은 더럽고, 너희의 불의는 끝없는 형벌을 받을 대상이다. 그런데 내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이 어찌 너희를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너희가 이렇게 나를 대하므로 나는 슬픔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런데 내가 어찌 너희가 내 수중에서 달아나고 나 여호와의 형벌과 저주의 날을 피하게 할 수 있겠느냐? 너희의 모든 악한 말들이 이미 내 귀에 전해졌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불의가 이미 내 거룩한 의의 두루마기를 더럽혔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의 패역이 이미 가득 쌓인 내 분노를 자극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내가 너희 때문에 분노하고 또 인내한 지 오래되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가 내가 거하는 육신을 심하게 망가뜨렸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나는 지금까지 인내해 왔지만 이제는 분노가 폭발해 더 이상 너희를 용납해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희는 내가 이미 너희의 악행을 보았음을, 내 아버지가 나의 간청을 들었음을 알고 있느냐? 너희가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을 그가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행한 사역 중 너희를 위하지 않은 것이 단 하나라도 있더냐? 그런데 너희는 어떠하냐? 나 여호와의 사역을 위해 선한 마음을 쓴 자가 있느냐? 내가 어찌 나의 연약함과 받은 고난을 이유로 아버지의 뜻에 충성을 다하지 않겠느냐? 너희는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냐? 여호와가 너희에게 알려 주었던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말하겠다. 너희를 위한 내 헌신이 부족한 것이냐? 나는 아버지의 사역을 위해 이 모든 고초를 기꺼이 감내하고자 한다. 하지만 내가 고난을 겪었다고 해서 너희가 어찌 내가 너희에게 내릴 형벌을 피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나의 것을 누린 것이 아직도 부족하더냐? 내 아버지가 오늘날 나를 너희에게 주었거늘, 너희가 누리는 것이 어찌 나의 풍성한 말뿐이겠느냐? 너희의 생명과 너희가 누리는 것이 모두 내 생명으로 바꾸어 온 것임을 어찌 모르는 것이냐? 내 아버지가 나의 생명으로 사탄과 싸우며, 나의 생명을 너희에게 베풀어 백배로 얻게 하고 많은 시험을 면케 하였거늘, 너희는 어찌 모르는 것이냐? 나의 사역 덕에 많은 시험과 불의 형벌을 면케 되었건만, 너희는 어찌 모르는 것이냐? 내 아버지가 나를 생각해서 너희에게 지금까지 누리게 한 것임을 어찌 모르는 것이냐? 어찌하여 지금까지도 마음이 그렇게 강퍅한 것이냐? 그렇게 악행을 저질러 놓고, 내가 이 땅을 떠난 후에 닥칠 분노의 날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내가 어찌 이 강퍅한 무리가 여호와의 분노를 피하게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육에 속한 자는 누구도 그 분노의 날을 피할 수 없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38)

너희는 지난날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내가 눈을 부릅뜨고 너희에게 소리친 적이 있더냐? 너희와 작은 일까지 시시콜콜 따진 적이 있더냐? 또 너희를 이유 없이 부당하게 훈계한 적이 있더냐? 대놓고 질책한 적이 있더냐? 내가 나의 사역을 위해 너희가 모든 시험을 면하도록 아버지께 간청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너희는 어째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이냐? 내가 나의 권병으로 너희의 육을 친 적이 있더냐? 너희는 어째서 나에게 이렇게 보복하는 것이냐? 나에 대해 차가웠다가 뜨거웠다가 또 미지근하고, 나를 속이거나 나에게 뭔가를 감추곤 한다. 너희의 입에는 불의한 자의 타액이 가득하다. 너희의 혀가 나의 영을 기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희의 혀가 나의 분노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희의 혀로 나 여호와의 행사를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사람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하나님이냐? 너희처럼 미천한 구더기가 나를 모독하는 것을 내가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이런 패역의 자식들에게 내가 어찌 나의 영원한 복을 내릴 수 있겠느냐? 너희의 언행은 이미 너희의 실체를 폭로했고, 너희 자신을 정죄했다. 나는 하늘을 펴고 만물을 창조할 때부터 나 외의 어떤 피조물도 함부로 내 일에 참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더욱이 그 어떤 존재도 제멋대로 나의 사역과 경영을 교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도, 어떤 존재도 용납하지 않았거늘, 나에게 잔인무도하게 구는 자들을 어찌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내 말을 배반하는 사람을 어찌 사해 줄 수 있겠느냐? 나를 거역하는 사람을 어찌 그냥 둘 수 있겠느냐? 사람의 운명이 나 전능자의 손안에 있지 않느냐? 내가 어찌 너의 불의와 패역을 거룩하게 여길 수 있겠느냐? 너의 죄악이 어찌 나의 거룩함을 더럽힐 수 있겠느냐? 나는 그 불의한 자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불의한 자의 예물도 누리지 않는다. 네가 나 여호와에게 충성한다면 어찌 내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자기 것인 양 차지할 수 있겠느냐? 어찌 그 독사의 입술과 혀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모독할 수 있겠느냐? 어찌 이렇게 나의 말을 배반할 수 있겠느냐? 어찌 나의 영광과 거룩한 이름을 사탄, 그 악한 자를 위해 힘쓰는 도구로 삼을 수 있겠느냐? 나의 생명은 거룩한 자에게 누리라고 주는 것이거늘, 그 생명을 함부로 가져다가 노리개 취급을 하고 너희끼리 싸울 때 사용하는 도구로 삼는 것을 내가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어찌 이렇게 나에게 무자비하며 선인의 도마저 저버릴 수 있단 말이냐? 내가 너희의 모든 악행을 이 생명의 말씀에 기록하였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애굽을 형벌하는 내 진노의 날을 너희가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이처럼 계속 대적하고 거역하는 것을 내가 어찌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노니, 그날이 오면 너희는 애굽이 받은 것보다 더 중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너희가 어찌 내 분노의 날을 피할 수 있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의 인내는 본래 너희의 악행을 상대로 예비한 것이고, 너희가 그날에 받을 형벌을 상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너희는 나의 인내심이 바닥에 다다른 뒤 내 진노의 심판을 받을 대상이 아니더냐? 만물이 다 나 전능자의 손에 있지 않더냐? 너희가 하늘 아래에서 이렇게 나를 거역하는 것을 내가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너희의 날은 몹시 견디기 힘들 것이다. 너희는 오겠다고 했지만 온 적이 없는 메시야를 만났기 때문이다. 너희 모두 그와 적이 되지 않았더냐? 예수는 일찍이 너희와 벗이 되었건만, 너희는 메시야와 적이 되었다. 너희가 예수와 벗이 됐다고는 하나, 너희의 악행은 이미 가증스러운 자의 그릇에 가득 찼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너희가 여호와와 매우 친밀하다고는 하나, 너희의 악한 말이 이미 여호와의 귀에 상달되어 그의 분노를 사게 되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그가 어찌 너희와 친밀히 지낼 수 있겠으며, 또 어찌 악행으로 가득 찬 너의 그릇을 불태우지 않을 수 있겠느냐? 또, 그가 어찌 너와 적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육에 속한 자는 누구도 그 분노의 날을 피할 수 없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39)

지금 나는 네가 그 방종한 육체로 나를 기만하는 것을 보면서도 경계의 말만 할 뿐, 손을 들어 형벌로써 너를 ‘보살피지는’ 않는다. 너는 네가 내 사역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면 나는 만족할 것이다. 그것 말고는 네가 나를 대적하든, 내 돈을 쓰고 나 여호와의 제물을 먹든, 너희 구더기들끼리 서로 물고 뜯든, 개들처럼 서로 맞서고 공격하든 관심을 갖지 않겠다. 너희가 스스로 자신이 어떤 ‘물건짝’인지 알기만 해도 나는 만족한다. 그것 말고는 너희가 서로 간에 총검을 휘두르고 싶어 하든, 설전을 벌이든 상관하지 않겠다. 나는 그러한 것들에 간섭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인간 세상의 일은 나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는 내가 너희들 사이의 분쟁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너희 중의 일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 나는 본래 피조물이 아니고, 세상에 속해 있지도 않으므로 인간 세상의 시끄러운 삶과 사람들 사이의 무질서하고 정당하지 못한 관계를 혐오하며, 요란스러운 인간 군상들은 더더욱 혐오한다. 그러나 나는 모든 피조물의 마음에 있는 불순물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너희를 만들기 전부터 이미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남아 있는 불의를 알고 있었으며, 사람 마음속에 존재하는 교활함과 간사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의를 행하면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할지라도, 나는 너희 마음속에 남아 있는 불의가 내가 창조한 만물의 풍성함에 앞선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 각자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높이 올라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 너희는 또한 매우 난폭하여 모든 구더기 속에서 제멋대로 활개 치며 안락한 곳을 찾고, 자기보다 작은 구더기들을 삼키려고 망상한다. 너희의 마음은 음험하고 악랄하기가 창해의 깊은 물 속을 떠도는 유령들보다도 더하며, 거름 더미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 잡고 살면서 위아래의 모든 구더기들을 편안할 틈 없이 방해하고, 서로 살육전을 벌인 후에야 조용해진다. 너희는 자신의 지위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거름 더미 속에서 서로 공격을 일삼으니, 그렇게 싸운들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이냐? 너희에게 진실로 나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나를 등지고 서로 아귀다툼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네 지위가 아무리 높아 봤자 거름 더미 속에 사는 작고 더러운 버러지가 아니냐? 설마 날개라도 돋아 하늘을 나는 흰 비둘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느냐? 보잘것없는 너희 버러지들이 나 여호와의 제단에 있는 제물을 훔쳐 먹었다. 그런 너희가 바닥에 떨어진, 깨진 명성을 주워 이스라엘의 선민이 될 수 있겠느냐? 염치없고 천박한 것들아! 그 제단에 있던 제물은 사람들이 나에게 바친 것으로, 나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표시한 것이다. 그것은 원래 내가 지배하고 사용해야 하는 제물이었다. 그런데 네가 어찌 사람들이 내게 바친 작은 산비둘기를 훔쳐 간단 말이냐? 너는 유다가 되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 너의 밭이 ‘피밭’이 되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 부끄러움을 모르는 물건짝들아! 사람들이 바친 산비둘기가 너, 구더기의 더러운 배를 채우라고 준 것으로 생각했느냐? 내가 너에게 베푸는 것은 기꺼이 원해서 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주지 않는 것은 마땅히 내가 지배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함부로 내게 바쳐진 공물을 훔쳐 먹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역사하는 이는 나 여호와, 곧 창조주이다. 사람들은 나를 위해 제물을 바쳤다. 너는 그것이 네가 열심히 뛰어다닌 대가라고 생각하느냐? 정말 수치심도 없구나! 너는 누구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느냐? 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냐? 어째서 내 제물을 훔쳐 먹는 것이냐? 왜 내 주머니 속의 돈을 훔쳐 가는 것이냐? 너는 ‘가룟 유다의 자손’이 아니냐? 나 여호와의 제물은 제사장이 누릴 수 있게 주는 것들이다. 네가 제사장이냐? 감히 득의양양하게 나의 제물을 먹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 위에 차려 놓기까지 하다니, 정말 값어치 없는 존재구나! 쓸모없는 천것이구나! 나 여호와의 불길이 너를 깨끗이 불태워 버릴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낙엽이 뿌리로 돌아갈 때 네가 행한 모든 악행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40)

너희는 믿음이 아주 훌륭하여 내 사역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겠다느니, 기꺼이 목숨을 걸겠다느니 하는 말을 내뱉지만, 성품은 별로 변화하지 않았다. 그저 교만한 말만 할 뿐, 실제 행동은 형편없다. 마치 입술과 혀는 천상에 있고, 양발은 지상에 붙어 있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사람의 언행과 명성은 여전히 볼품없기 짝이 없다. 너희의 명성은 망가졌고, 너희의 행동거지는 비천하며, 너희의 말은 저속하고, 너희의 삶은 천박하다. 심지어 너희는 인성마저 저열하다. 너희는 사람에 대해 속이 좁고 무슨 일이든 옥신각신 따지고 들며,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 다투고, 그것을 위해 지옥이나 불 못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늘날, 너희의 이런 언행만으로도 너희를 정죄하기에 충분하며, 내 사역에 대한 너희의 태도만으로도 너희를 불의한 사람으로 규정하기에 충분하다. 또 너희의 모든 성품은 너희를 가증스러운 것들로 가득 찬 더러운 영혼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며, 너희가 나타내는 모든 모습은 너희가 더러운 귀신의 피로 배를 채운 사람임을 보여 준다. 천국에 가는 일에 대해 말하면 너희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현재 너희는 그런 모습으로 나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내게 언행을 검증받지 않고도 너희는 자유로이 내가 사역하고 말하는 성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누가 내 두 눈을 속일 수 있겠느냐? 너희의 비천한 행동거지와 저속한 말투가 어찌 내 눈을 피할 수 있겠느냐? 나는 너희의 삶을 더러운 귀신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 삶이라 규정했다. 너희는 날마다 내 앞에서 그 더러운 귀신의 몰골을 흉내 내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앞에서 더없이 저열한 작태를 보이는데 내가 어찌 혐오감이 들지 않겠느냐? 너희의 말에는 더러운 귀신의 불순물, 즉 사기와 기만, 아첨이 들어 있다. 그것은 사술(邪術)을 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간사한 짓을 벌이며 불의한 자의 피를 마시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모든 모습이 극도로 불의한데, 어떻게 그런 자들을 의인들이 거하는 그 거룩한 땅에 들일 수 있겠느냐? 너는 그 비열한 행위를 보이면서도 불의한 자들 가운데서 거룩하게 구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독사 같은 혓바닥이 결국에는 너의 그 멸망의 가증한 육체를 망칠 것이며, 더러운 귀신의 피로 물든 네 그 두 손이 결국에는 네 영혼을 지옥으로 끌어갈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이 기회에 더럽혀진 두 손을 깨끗이 씻지 않는 것이냐? 어찌하여 이 기회에 불의한 말을 하는 네 혀를 ‘잘라 내지’ 않는 것이냐? 네 두 손과 혓바닥 때문에 지옥 불에 불사름 당하겠다는 것이냐? 내 두 눈은 만인의 마음을 감찰한다. 나는 인류를 만들기 전부터 사람의 마음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전부터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거늘,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어찌 내 눈을 피할 수 있겠느냐? 또 어찌 내 영의 불사름을 피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41)

네 입술은 비둘기보다도 선량하지만, 네 마음은 옛 뱀보다도 음험하다. 더 나아가 네 입술은 레바논의 여인처럼 아름답지만, 네 마음은 가나안 사람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레바논의 여인만큼도 선량하지 않다. 네 마음은 너무나 간사하다! 내가 증오하는 것은 불의한 자의 입술과 마음이다. 사람에 대한 내 요구는 거룩한 자보다 높지 않다. 나는 다만 그 불의한 자들의 악행에 혐오감을 느낄 뿐이다. 나는 그저 그 불의한 자들이 더러움을 벗어던지고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나, 그 불의한 자들에게서 구별되고 의인들과 함께 거하며 함께 성결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너희는 나와 같은 경지에서 함께하지만 더러움으로 가득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태초에 지음 받았을 때의 모습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너희는 날마다 더러운 귀신의 꼬락서니를 흉내 내고, 더러운 귀신의 작태를 행하며, 더러운 귀신의 말을 입에 담는다. 그로 인해 너희의 온몸은 물론, 너희의 혓바닥까지 전부 그것의 오물로 더럽혀졌으며, 너희 전체가 그 얼룩으로 뒤덮였다. 너희에게는 내 사역에 사용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으니 참으로 가슴 아프구나! 그런데 너희는 이 짐승 같은 세상에서 살면서도 근심과 고뇌를 느끼기는커녕 환희로 가득 차 자유롭게 살고 있다. 또, 이 오물 속에서 헤엄치면서도 자신이 어떤 지경에 처해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매일 더러운 귀신과 왕래하고, ‘분뇨’와 왕래하는 저질스러운 삶을 살고 있음을 모르는구나. 네가 정녕 인간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너 스스로를 주관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인생은 진작에 그 더러운 귀신에게 유린당했음을 왜 모른단 말이냐? 네 인격은 이미 오래전에 그 오물로 더럽혀졌음을 왜 모른단 말이냐? 너는 네가 인간 낙원에서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하느냐? 자신이 평생 더러운 귀신과 함께 살아왔고, 그 귀신이 너를 위해 예비한 모든 것들과 일생을 함께했음을 왜 모르는 것이냐? 네 삶이 의의가 있겠느냐? 네 인생이 가치가 있겠느냐? 너는 그 더러운 귀신 아비 어미를 위해 지금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녔으면서도, 너를 해한 자가 실은 너를 낳고 길러 준 그 더러운 귀신 아비 어미임을 모르고, 너의 더러움은 그것이 네게 공급해 준 것임은 더더욱 모르는구나. 네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것이 네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뿐이다. 그것은 너를 형벌하지도 심판하지도 않으며, 더욱이 저주하지도 않는다. 또한 한 번도 네게 노발대발한 적이 없이 늘 ‘온화하고 상냥하게’ 대했다. 그것의 말은 네 마음을 적시고 네 정신을 쏙 빼 가 방향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너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게 빠져들어 기꺼이 그것을 위해 힘쓰게 되었고, 그것의 대변인, 그것의 노예가 되었다. 그럼에도 너는 어떤 원망조차 하지 않고 기꺼이 그것을 위해 온갖 충성을 다한다. 너는 그것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랬기에 내 사역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또 그랬기에 줄곧 내 손에서 빠져나가려 하고, 감언이설로 내 환심을 사려 했던 것이다. 너에게는 다른 타산과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나, 전능자의 행사에 대해 얼마간 알고 있지만, 나의 심판과 형벌에 대해서는 추호도 알지 못한다. 너는 내 형벌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저 나를 기만할 줄만 알 뿐, 내가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네가 나를 섬기기로 다짐한 이상, 나는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악을 증오하는 하나님이자, 사람을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네가 너의 말을 내 제단 앞에 놓은 이상, 나는 네가 내 눈앞에서 도망치는 꼴을 보고 있지 않을 것이며, 두 주인을 섬기는 것 또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네 말을 내 제단 위에, 내 눈앞에 놓은 후에는 다른 것을 사랑해도 된다고 생각했느냐? 사람이 그런 식으로 나를 놀리는 것을 내가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함부로 네 그 혓바닥을 움직여 내게 소원을 빌고 서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네가 어찌 나, 지극히 높은 자의 보좌를 가리키며 서원할 수 있단 말이냐? 너는 네 서언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느냐? 내가 알려 주겠다. 너희의 육체는 사라져도 너희의 서원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 때에 나는 너희의 서원에 따라 그 죄를 정할 것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말만 늘어놓고 대충 넘어가면서 마음으로는 그 더러운 귀신과 악령을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분노가 어찌 그 개돼지 같은 놈들의 기만을 용납하겠느냐? 나는 나의 행정을 집행할 것이다. 낡은 틀에 박혀 나를 믿는 그 ‘경건한’ 자들을 더러운 귀신의 손에서 되찾아 와 순순히 나를 ‘섬기게’ 하고 언제든 내게 도살될 수 있는 내 우마가 되게 할 것이다. 나는 네가 과거의 다짐을 모두 찾아 다시 나를 섬기게 할 것이고, 어떤 피조물도 나를 기만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내 앞에서 함부로 요구하고 거짓을 입에 담아도 된다고 생각했느냐? 내가 네 말을 듣지 못하고 네 행위를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네 언행이 어찌 내 눈을 벗어날 수 있겠느냐? 사람이 그런 식으로 나를 기만하는 것을 내가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42)

나는 너희 가운데서 몇 해를 다녔고, 또한 오랜 세월 너희 가운데서 생활하였다. 내가 너희와 함께 생활했는데, 너희의 비열한 행위가 내 눈앞에서 얼마나 사라졌느냐? 너희의 마음속 말은 내 귀에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너희의 다짐은 내 제단 위에 첩첩이 쌓여 그 수를 셀 수도 없다. 그러나 너희의 봉헌과 헌신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너희의 진심은 내 제단 위에 전혀 놓이지 않았다. 나에 대한 너희 믿음의 열매는 어디에 있느냐? 너희는 나에게서 한없는 은혜를 얻고, 한없는 하늘의 비밀을 보았다. 나는 너희에게 하늘의 불길까지 보여 주었으나 차마 너희를 불사르지는 못했다. 그런데 너희는 내게 얼마나 돌려주었느냐? 너희가 기꺼이 내게 준 것은 얼마나 되느냐? 내가 베풀어 준 음식을 다시 내게 바치는 주제에, 힘들게 피땀 흘려 얻은 것이라느니, 너의 모든 것을 바친다느니 하며 지껄이는구나. 네가 ‘바친’ 것이 전부 내 제단에서 훔쳐 간 것임을 모른단 말이냐? 오늘 그것을 다시 내게 바치니 이는 나를 기만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오늘 내가 누리는 것은 전부 내 제단 위에 놓인 제물이지, 네가 피땀 흘려 얻은 것을 내게 바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어찌 모르는 것이냐? 너희가 이렇게 나를 기만하는데, 내가 어찌 너희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어찌 계속 참을 수 있겠느냐? 나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었다. 나는 전부 공개하며, 너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여 너희의 시야를 넓혀 주었다. 그런데 너희는 양심을 저버리고 나를 기만하는구나. 나는 사심 없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베풀어 주었다. 너희는 비록 고통을 받기는 했지만, 내가 하늘에서 가져온 모든 것을 얻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너희는 조금도 봉헌하지 않는구나. 설령 조금 공헌했다고 해도 조금만 지나면 또 내게 ‘장부를 들이대니’, 너의 공헌이 전부 헛되지 않겠느냐? 네가 내게 바친 것은 모래사장에 있는 모래 한 톨이지만, 내게 요구한 것은 황금 만 냥이다. 이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냐? 나는 너희 가운데서 사역하지만, 많은 제물을 얻는 것은 고사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십일조마저도 받지 못했다. 또 경건한 사람들이 바친 십일조마저 전부 악한 자들에게 빼앗겼다. 그러니 너희는 모두 나와 함께 모이지 않는 자들이 아니겠느냐?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이 아니겠느냐? 내 제단을 파괴하는 자들이 아니겠느냐? 그런 자들이 어찌 내 눈에 귀하게 보이겠느냐? 그런 자들이야말로 내가 가장 혐오하는 개돼지가 아니냐? 내가 어찌 너희의 악행을 귀히 여기겠느냐? 나의 사역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겠느냐? 내가 너희를 쳐서 내 권병을 나타내려 하는 것뿐이겠느냐? 너희의 목숨은 전부 내 말 한마디에 달려 있지 않느냐? 내가 왜 말로만 너희를 타이를 뿐, 일찌감치 너희를 쳐서 말이 사실이 되게 하지 않았겠느냐? 내가 단지 사람을 치기 위해 말하고 사역하겠느냐? 내가 어찌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하나님이겠느냐? 오늘날, 너희 중 몇이나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내 앞에 와서 인생의 참길을 찾고 있느냐? 너희는 몸만 내 앞에 와 있을 뿐, 마음은 구만리 떨어진 곳에 있다. 내 사역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에 너희 중 많은 사람들이 나를 떠나려 한다. 나를 멀리하여 형벌과 심판이 없는 극락세계에서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바라는 것이 아니냐? 나는 강요하지 않겠다. 어떤 길을 가든 그것은 네가 택할 일이다. 오늘의 길은 심판과 저주가 수반되는 길이다. 하지만 너희는 알아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베풀어 주는 것은 심판이든 형벌이든 모두 최고의 선물이며, 너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43)

내가 땅에서 이렇게 많은 사역을 펼치고,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 사이를 오갔건만 나의 형상과 성품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내 사역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몹시 드물다. 인류는 부족한 것이 너무도 많으며, 아무도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경계심을 품고 있다. 사람은 모두 내가 사람을 다른 지경으로 이끌어 간 후 방치하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사람은 언제나 나에게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거나 나를 매우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다. 오늘날에 이르렀음에도 사람은 내가 하는 사역에 대해 모르고 있으며, 특히 내가 사람에게 한 말에 대해서는 더구나 ‘이해를 못 하기’ 때문이다. 두 손으로 내 말을 받쳐 들고는 흔들림 없이 믿어야 할지, 망설이다가 그냥 잊어야 할지 몰라 한다. 또한 실행에 옮겨야 할지, 바라보며 기다려야 할지 종잡지 못한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담대하게 따라가야 할지, 세상과 계속 ‘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 우왕좌왕한다. 사람의 내면세계는 복잡하기 그지없고 간교하기 그지없다. 많은 이들이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파악하지도 못하기에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도, 자신의 마음을 내 앞에 내놓는 것도 몹시 힘들어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육으로 살다 보니 연약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고, 객관적인 요인에 의한 어려움도 많이 있을 것이다. 너희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애를 쓰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육으로 사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나 역시 부인하지는 않는다. 나는 당연히 너희의 고충과 현실적인 분량을 감안하여 너희에게 요구한다. 지난날 사람들은 사역을 할 때 불순물이 담긴 ‘지나친’ 요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말과 사역에서 너희에게 ‘지나친 요구’를 한 적이 없으며, 사람의 본성과 육체, 사람의 필요를 감안하여 요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너희에게 확실히 고한다. 너희는 내가 사리에 맞는 사람의 생각과 원래의 본성에 맞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나의 요구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고, 내 말의 원뜻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내 말을 반신반의하는 것이다. 심지어 나의 말을 믿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으며, 나머지는 모두 불신파다. 또한 상당수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즐겨 듣는 사람들이고, 대부분은 구경꾼이다. 너희에게 경고한다. 나의 많은 말들이 나를 믿는 자에게 열린 지 오래되었고, 하나님나라의 미경(美景)을 ‘바라보기만’ 하고 하나님나라의 문밖에 서 있는 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나에 의해 내쳐졌다. 너희는 내게 미움을 받고 버려진 가라지가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나를 배웅하고 또 나의 귀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고한다. 니느웨 성 사람들이 여호와의 진노의 말씀을 들은 즉시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회개한 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너무 놀라고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회개한 것이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내가 한 말들을 ‘믿으며’, 또한 여호와가 오늘날 다시 너희 가운데에 왔다는 것을 믿기는 한다. 그러나 너희들의 태도는 거만하기 짝이 없다. 마치 수천 년 전에 유대에서 태어났다가 오늘날 다시 너희 가운데 임한 예수를 살펴보는 듯하다. 나는 너희 마음속에 자리한 간사한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너희 대부분은 호기심 때문에 나를 따르고, 공허함으로 인해 나를 찾는다. 너희의 세 번째 소망인 평안하고 행복한 삶이 산산조각 날 때 너희의 호기심도 함께 사라진다. 너희 모두가 품고 있는 간사한 마음은 언행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솔직히 말하면, 너희는 나에 대해 호기심만 느낄 뿐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말을 가려서 하거나, 행동에 신중을 기하는 법이 없다. 너희의 믿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 진실한 것이냐? 너희는 내 말을 그저 근심을 해소하고, 자신의 삶에 존재하는 허전함을 채우는 데 쓸 뿐이다. 내 말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누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냐? 너희는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라고 외치지만 너희가 마음으로 부르짖는 하나님이 나이긴 한 것이냐? 너희는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냐? 이것이 너희가 내게 보답하겠다고 하는 사랑이란 말이냐? 너희가 말로는 많은 것을 바쳤다. 그런데 너희가 바친 ‘제물’과 ‘선행’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너희의 말이 내 귀에 상달되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너희를 이토록 증오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믿는다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궁색한 처지로 전락했겠느냐? 너희는 음부에서 심문을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낙담하여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맥없이 진심을 이야기하는데 온통 원망과 악담뿐이다. 너희는 내가 하는 일에 믿음을 잃은 지 오래고, 너희가 원래 가졌던 믿음조차 모두 사라졌다. 이래서야 어떻게 끝까지 따를 수 있겠느냐? 어떻게 ‘구원 얻을’ 수 있다는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나이 든 자와 젊은 자들에게 전하는 말>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44)

나의 사역이 너희에게 크나큰 도움이 됨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항상 나의 말을 물거품이 되게 하기에 결실이 맺히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온전케 할 대상을 찾기가 힘든 나머지 오늘날 너희에게 가졌던 희망을 거의 잃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오랫동안 너희 가운데서 나의 지기(知己)를 찾고 또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너희에게 계속 역사할 자신이 없고, 너희를 사랑하는 마음도 사라진 듯하다. 나는 오래전부터 너희의 성적을 혐오해 왔기 때문이다. 너희가 거둔 성적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말을 하거나, 너희에게 역사를 한 적이 없는 것처럼 형편없기 짝이 없다. 너희의 성적은 역겹기 그지없다. 너희는 항상 철저히 실패하여 가치 있다고 할 만한 것이 거의 하나도 없다. 너희에게서 ‘사람’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너희의 상큼한 향기는 어디에 남아 있는 것이냐? 너희가 오랫동안 치른 대가와 헌신은 어디로 가고, 그 효과는 또 어디에 있는 것이냐?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냐? 오늘날 나의 사역은 새로운 기점을 맞이하여 새로이 시작되었다. 내가 큰 뜻을 펼치고, 더 큰 역사를 시작하려고 하건만 너희는 아직도 진흙탕 속에서 타락하고 있다. 예전처럼 구정물에서 살면서 곤경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너희가 여전히 나의 말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아직도 더러운 물이 고인 진흙탕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저 나의 말을 알기만 하고 내 말에 담긴 자유의 세계에 들어서지는 못했기 때문에 내 말이 몇천 년 동안 단단히 봉해져 있던 선지자의 예언서처럼 너희에게 열리지 않은 것이다. 나는 너희의 삶 속에 나타나지만 너희는 이를 알아차리는 법이 없고, 심지어 나를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하는 말의 거의 절반이 너희에 대한 심판이고, 효과는 절반에 불과한데도 너희는 모두 넋을 잃었다. 나머지 절반은 삶에 대한 것이나 올바른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이지만, 너희는 이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의 말을 들은 것처럼 언제나 ‘은근슬쩍’ 웃고는 그냥 넘어간다. 너희는 나의 말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고,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나의 행사를 살펴본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모두가 흑암에 빠져 빛을 찾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슬피 울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희의 순종, 무조건적인 순종을 원한다. 또한, 너희가 나의 말을 등한시하지 않고 굳게 믿기를 바란다. 나의 말을 이렇게 선별적으로 대하며 대충 넘어가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그러니 너희가 나의 말과 사역에 늘 무관심한 것은 어떻겠느냐? 나의 사역은 너희 가운데서 이루어졌고, 나는 말로 너희에게 수많은 것을 베풀었다. 그런데 너희가 이렇게 무성의하게 나를 대한다면 나는 너희가 얻은 적이 없거나 실행한 적이 없는 것 모두를 이방 족속에게 줄 수밖에 없다. 내 손안에 있지 않은 피조물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너희 중의 다수가 ‘연로하여’ 나의 사역을 받아들일 기력이 없다. 항상 한고조(寒苦鳥)처럼 계획 없이 살아갈 뿐 내 입에서 나온 말을 참답게 대하는 법이 없다. 또한, 젊은이들은 허영심과 방종함으로 가득하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잔칫상의 진수성찬을 맛보려 하지도 않으며, 새장을 벗어난 작은 새처럼 ‘타향’으로 멀리 날아가 버린다. 이런 노인과 젊은이가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나이 든 자와 젊은 자들에게 전하는 말>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45)

너희 젊은이들은 기운이 넘치는 어린 사자 같으나 마음속에 참도를 간직한 자는 몹시 드물다. 너희들은 젊음으로 말미암아 나의 역사를 더 많이 얻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의 반감을 산다. 너희는 나이가 어린데도 패기가 없는 것인지, 포부가 부족한 것인지 자신의 미래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다.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늘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너희에게서 젊은이가 가져야 할 패기, 이상, 주관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젊은이들은 자신의 주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도 전혀 없다. 싱그러운 느낌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고, 칙칙한 분위기만 풍길 뿐이다. 또한, 이런 젊은이조차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일의 진위를 가리지 못하며, 완벽을 기하는 법이 없다. 옳고 그름, 진리와 허위도 구분하지 못한다. 너희에게 남아 있는 종교적인 성향은 나이 든 자보다 훨씬 강하다. 심지어 너희는 거만하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며, 승부욕이 강하고 몹시 호전적이다. 이런 젊은이가 어떻게 진리를 알 수 있겠느냐? 주관도 없으면서 어떻게 증거할 수 있겠느냐? 옳고 그름을 분별할 능력이 없건만 어찌 젊은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젊은이의 패기, 생기, 싱그러움, 침착함, 진중함이 없건만 어찌 나를 따르는 자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진리와 정의감은 조금도 없고, 장난치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나의 증인이 될 자격이 있다는 말이냐? 젊은이는 간사함이 가득하거나 멸시로 가득한 눈빛을 지녀서는 안 된다. 파괴적이고 가증스러운 일을 행하는 사람이어서도 안 된다. 또한, 이상(理想), 기개, 힘차게 전진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젊은이는 앞날에 대해 낙담하거나, 삶에 대한 희망이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서도 안 된다. 오늘날 자신이 선택한 진리의 도를 위해 꿋꿋하게 걸어갈 끈기를 가져야 하고, 나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야 한다. 젊은이는 진리가 없어서는 안 된다. 허위와 불의를 감싸서도 안 되며, 마땅히 가져야 할 주관을 가져야 한다. 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행동하지 말고, 정의와 진리를 위해 과감히 헌신하고 노력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젊은이는 흑암 세력의 압제에 무릎 꿇지 않고, 자신이 살아가는 의의를 바꾸겠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또한 역경에 물러서서는 안 되며 허심탄회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이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 하는 요구이자 권고이며, 더 나아가 모든 젊은이를 향한 위로의 말이다. 너희는 마땅히 나의 말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 특히 젊은이는 사리를 분별하고, 정의와 진리를 찾는 의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는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모든 긍정적인 것의 실제를 얻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지 이를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사람이 세상에 와서 나를 한 번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고, 진리를 찾고 얻을 기회도 가지기 어렵건만 너희는 어찌하여 이토록 좋은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여 금생에 추구할 바른길로 삼지 않는 것이냐? 또 어찌하여 항상 진리와 정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냐? 어찌하여 늘 스스로를 짓밟아 사람을 우롱하는 불의와 불결함에 망쳐지게 하는 것이냐? 어찌하여 나이 든 자들과 똑같이 불의한 자의 행동을 하는 것이냐? 어찌하여 시대에 뒤처진 낡아 빠진 것을 따라 하는 것이냐? 너희의 인생은 원래 정의, 진리, 거룩함으로 가득한 것이어야지 이렇게 빨리 타락하여 음부에 떨어지면 안 되는 것이거늘 너희는 이것이 너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단 말이냐? 너희는 이것이 너희에게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나이 든 자와 젊은 자들에게 전하는 말>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46)

이렇게 많은 사역과 많은 말씀이 네게서 아무런 결실도 보지 못하고, 사역을 확장할 때 네가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너는 부끄러움에 수치까지 당하게 된다. 그때 너는 하나님께 너무 죄스러우며,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얄팍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이 사역 기간에 알려고 추구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추구하려고 해도 늦고 만다. 결국 머릿속에 든 것이 없고 아무런 인식도 말하지 못할 텐데, 네가 하나님께 무엇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볼 낯이 있겠느냐? 지금 열심히 추구하여 최종적으로는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사람에게 크게 이롭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없으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고, 이 더러운 땅에서 수렁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질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아귀다툼을 벌이고, 서로 짓밟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었다. 사람은 패역이 너무 크고, 관념이 너무 많아 전부 사탄에 속한다.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떠난다면 사람은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될 수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다. 성육신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에서 나타내는 것은 바로 영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고, 그가 한 사역은 영이 하는 대로 한 것이다. 오늘날, 이런 사역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너는 너무 어리석은 것이고 또 너무 많은 것을 잃은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얻지 못했다면 너의 믿음은 종교적인 신앙이고 너는 종교적인 기독교 신자다. 너는 죽은 규례를 붙잡고 지키는 바람에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잃어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추구함으로써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있지만, 너는 자신의 신앙으로 하나님께 칭찬받기는커녕 도리어 악을 행하는 사람, 멸망의 가증한 일을 행하는 사람, 또 사탄의 웃음거리이자 사탄의 노획물이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신앙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추구하고 경배해야 하는 대상이다. 지금 추구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때 저는 왜 하나님을 잘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지 못하고, 생명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을까요? 그때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럽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네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왜 추구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정말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너는 너 자신을 아주 증오하게 될 것이다. 너는 지금 내가 한 말을 믿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지만, 어느 날 이 사역이 전개되는 것을 전부 보게 되면 그때는 후회하고 아연실색할 것이다. 있는 복도 누릴 줄 모르고, 있는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겠느냐? 비록 아직은 다음 단계의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금 너에게 요구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그 사역과 무관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역과 진리가 모두 네가 알 가치가 없는 것이냐? 형벌과 심판은 너의 영을 깨어나게 할 수 없느냐? 형벌과 심판이 너로 하여금 너 자신을 증오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평안하고 즐겁고 육의 편안함을 조금 얻는 것에만 만족하느냐? 그런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아니더냐? 구원을 보고도 구원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 미련한 사람이고, 육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즐기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47)

너희의 육, 사치스러운 욕망, 탐욕, 정욕이 너희 몸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이런 것들이 계속 너희의 마음을 통제하고 있어 너희는 이 봉건적이고 타락한 생각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너희는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도,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도 없고, 그저 이런 것들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너희는 이 같은 인생이 고통스럽기 그지없고 이런 세상이 너무나 어둡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런 삶을 변화시킬 용기가 없다. 그저 이런 실생활에서 벗어나고 영혼을 제도(濟度)하여 하늘나라 같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에서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너희는 고생을 겪으며 자신의 현재 삶을 바꾸려 하지 않고, 이러한 심판과 형벌 속에서 자신이 진입해야 할 인생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 육체에서 벗어난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실제적이지 못한 공상만 품고 있다. 너희는 아무런 고통도 없이 쉽게 누릴 수 있는 그런 삶을 동경한다. 그것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너희가 바라는 것은 육체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려는 것도, 진리를 얻는 삶을 살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너희는 진리를 위해 살고 정의를 위해 굳게 서는 것이 찬란한 인생이라 생각지 않으며, 그런 인생이 빛나고 의미 있는 인생이라 여기지 않는다. 너희는 평생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비록 지금 너희가 이 형벌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너희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 진리를 얻고 진리를 살아 내기 위함이 아니라, 앞으로 육체에서 벗어난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함이다. 너희는 진리를 찾지 않고, 진리를 위해 굳게 서지 않으며, 더욱이 진리를 위해 살지도 않는다. 너희는 지금 진입할 것을 추구하지 않고, ‘먼 훗날’에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괴로운 눈물을 흘리면서 언젠가는 하늘에 갈 수 있기를 고대한다. 너희는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너희는 늘 구주가 큰 자비를 베풀어 언젠가는 세상에서 고난받고 있는 너를 데려갈 것이며, 틀림없이 억압을 당한 너를 위해 원한을 풀어 주고 복수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너의 죄가 적단 말이냐? 하늘 아래 고통받는 이가 어찌 너 하나뿐이겠느냐? 너 스스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고통받는 것인데, 하나님이 너를 위해 원한을 풀어 줘야 한단 말이냐?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냐?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의 좋은 행위가 그리 대단한 것이냐? 그렇다고 너에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 네가 좋은 일을 조금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억압을 당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너를 위해 원한을 풀어 주고 복수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선을 행했지만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자도 형벌을 받지 않았더냐? 너는 하나님을 믿기만 하고, 하나님께 너를 위해 원한을 풀어 주고 복수해 주고, 너를 출세하게 해 달라고만 할 뿐, 진리를 거들떠보지 않고 진리를 살아 내길 갈망하지 않는다. 더욱이 고통스럽고 공허한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죄에 빠진 육적인 삶을 살면서 하나님이 너를 위해 원한을 풀어 주고 네 앞에 드리운 짙은 안개를 거두어 주길 바란다. 이것이 가능하겠느냐? 너에게 진리가 있으면 하나님을 따를 수 있고, 진리를 살아 내면 하나님 말씀을 나타낼 수 있으며, 생명이 있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진리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고난을 겪은 자들을 위해서는 원한을 풀어 주지만, 자신만을 사랑하면서 사탄의 속임에 빠진 자들을 위해서는 원한을 풀어 주지 않는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어떻게 선함이 있겠느냐? 오로지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에게 어떻게 의로움이 있겠느냐? 선함과 의로움은 모두 진리를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냐? 이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해 예비한 것이 아니냐?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썩은 시체를 가진 자는 모두 악을 품고 있지 않느냐? 진리를 살아 내지 못하는 자는 모두 진리의 원수가 아니냐? 너희들은 또 어떠하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온전케 된 사람만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48)

사람을 경영하는 것은 내 본연의 사역이고, 나아가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내가 창세 때 이미 정해 놓은 것이다. 사람은 내가 말세에 그들을 철저히 정복할 것이란 사실을 모르고, 또한 내가 인류 중의 패역자를 정복하는 것이 곧 사탄을 물리친 증거가 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하지만 지난날 내 원수가 나와 싸울 때, 나는 사탄에게 사로잡혀 그것의 아들딸, 집지기가 된 충실한 종을 정복할 것이라고 알려 준 바 있다. 정복의 원뜻은 상대를 물리쳐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언어 표현법에 따르면 본래 상대를 철저히 물리치고 쳐부숴 다시는 내게 반항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었지만, 오늘날 이 사람들에게는 정복이란 뜻으로 쓰인다. 너희는 내 본래의 뜻이 인류의 악한 자를 철저히 멸하고 쳐부숴 다시는 나를 배반하지 못하게 하고, 내 사역을 방해하거나 어지럽힐 기운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정복이 된다. 하지만 그 내포된 의미가 어떠하든 결론적으로 말해 내 사역은 인류를 쳐부수는 것이다. 인류가 내 경영의 부속물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류는 내 원수요, 나를 대적하고 거역하는 악한 자요, 내게 저주받은 악한 자의 후예요, 나를 배반한 천사장의 후손이요, 일찍이 내게 버림받고 나와 첨예하게 맞서는 악마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전 인류의 상공은 혼탁하고 어두워 맑은 느낌이 전혀 없으며, 인간 세상 또한 칠흑같이 캄캄해 거기서 살면 한 치 앞도 볼 수 없고, 고개를 들어도 햇빛을 볼 수 없다. 발밑의 길은 질퍽거리고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하며, 도처에 송장이 즐비하다. 어두컴컴한 구석에는 죽은 자의 백골이 가득하고, 음산한 모퉁이에는 온갖 귀신이 머물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도처에 귀신들이 출몰한다. 더럽기 그지없는 온갖 짐승의 후손들이 서로 참혹하게 싸우고 죽이니, 그 소리가 간담을 서늘케 한다. 이러한 시대, 이러한 세상, 이러한 ‘인간 낙원’ 가운데 어디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겠느냐? 사람은 또 어디에서 인생의 종착지를 찾겠느냐? 이미 오래전에 사탄에게 짓밟힌 인류는 본래 사탄의 형상을 연기하는 존재이며, 나아가 사탄의 화신이자 사탄을 위해 ‘힘 있는 간증’을 하는 증거물이다. 이런 인류, 이런 인간 말종, 이런 ‘패괴된 인류 족속’의 자손이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느냐? 내 영광이 어디에서 나오겠느냐? 내 증거는 어디서부터 논하겠느냐? 나와 맞서며 인류를 패괴시킨 그 원수는 내가 창조한, 내 영광과 나를 살아 내는 모습이 충만했던 인류를 더럽히고 또 내 영광을 빼앗아 갔다. 그것이 사람에게 한 일이라고는 사탄의 추태로 가득한 독소와 선악과의 과즙을 채워 넣은 것뿐이었다. 태초에 나는 ‘인류’를 창조하였다. 즉, 인류의 조상인 아담을 만들었다. 아담에게는 형상이 있었고 생기와 활력이 넘쳤으며 더욱이 내 영광이 함께했다. 그날은 본래 내가 사람을 창조한 영광의 날이었다. 이어서 아담의 몸에서 하와가 ‘생겨났다’. 그녀 역시 사람의 조상이다. 이렇게 내가 창조한 사람은 나의 생기로 충만했고 나의 영광으로 가득했다. 아담은 내 손에서 ‘난’ 존재로, 본래 내 형상을 대표한다. 그렇기에 ‘아담’이란 본디 나의 활기가 넘치고, 나의 영광이 가득하며, 형태도 모양도 있고, 영과 생기를 갖춘 나의 피조물이란 뜻이었다. 또한 내가 창조한, 유일하게 나를 대표할 수 있고 내 형상을 지니고 나의 생기를 받은, 영이 있는 피조물이라는 뜻이었다. 한편, 하와는 내가 태초에 정해 놓았던, 두 번째로 지음 받은 생기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와’란 내 영광을 이어 가고 나의 생기가 가득하며, 나아가 내 영광을 지닌 피조물이라는 의미이다. 하와는 본래 아담에게서 왔으므로 그녀에게도 내 형상이 있었는데, 이는 그녀가 내 형상대로 지은 두 번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와’란 영이 있고 뼈와 살이 있는 산 사람이라는 의미로, 인류 중에 내 두 번째 증거이자 두 번째 형상이었다. 이들은 인류의 조상이면서 인류의 보배롭고 성결한 존재로, 본래 영이 있는 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악한 자가 인류 조상의 자손을 짓밟고 약탈했으며, 나아가 인간 세상을 어둠으로 뒤덮어 이 ‘후손’들이 더 이상 내 존재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더욱 혐오스러운 것은 그 악한 자가 사람을 패괴시키고 짓밟는 동시에 나의 영광과 증거, 내가 사람에게 준 생기, 내가 사람에게 불어넣은 숨결과 생명, 그리고 인간 세상의 내 모든 영광과 내가 인류에게 기울인 모든 심혈까지 무자비하게 빼앗아 갔다는 사실이다. 인류는 광명을 잃고, 내가 준 모든 것을 잃었으며, 내가 베풀어 준 영광을 버렸는데 어떻게 나를 피조물의 주라고 인정할 수 있겠느냐? 하늘에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또 땅에도 내 영광이 나타나고 있음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느냐? 이 ‘손자, 손녀들’이 어떻게 그들의 선조가 경외하던 하나님을 자신들의 창조주로 여길 수 있겠느냐? 뜻밖에도 이 가련한 ‘손자, 손녀들’은 내가 아담과 하와에게 베풀어 준 영광과 형상, 증거, 나아가 인류가 생존하도록 베풀어 준 생명까지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악한 자에게 ‘증여’하였다. 또한 그 악한 자의 존재를 조금도 개의치 않고 나의 이 모든 영광을 다 그것에게 주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 말종’이라는 호칭의 유래 아니겠느냐? 이런 인류, 이런 악귀, 이런 산송장, 이런 사탄, 이런 원수에게 어떻게 나의 영광이 있을 수 있겠느냐? 나는 내 영광은 물론이고 사람들 가운데 있었던 나의 증거와 이전에 인류에게 베풀었던, 원래 내게 속했던 모든 것을 다시 빼앗아 올 것이다. 즉, 사람을 철저히 정복할 것이다. 하지만 너는, 내가 지은 사람은 본래 내 형상과 영광을 지닌 성결한 사람으로, 사탄에게 속하지도 짓밟히지도 않았으며, 오롯이 나를 나타내는 존재로서 사탄의 독소가 조금도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사람이 다 알게 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은 오로지 내 손으로 지은 사람이고, 또한 내가 사랑하는, 본래 다른 것에 속하지 않은 성결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나는 그런 사람을 나의 기쁨과 영광으로 여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오늘날 사탄에 속한 그런 사람이 아니고, 내가 태초에 지은 그런 인류도 아니다. 나는 인간 세상의 내 영광을 빼앗아 올 것이므로 인류 가운데서 ‘요행히 살아남은 자들’을 철저히 정복함으로써 내가 사탄을 물리친 영광의 증거로 삼을 것이다. 나는 오로지 내 증거만을 나의 결정체로, 나의 기쁨으로 삼는다. 이것이 나의 뜻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49)

인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만 년 동안 발전해 왔다. 하지만 내가 지은 최초의 인류는 오래전에 타락하여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인류가 아니다. 그러므로 내 눈에 비친 사람은 더 이상 인류라고 할 수 없으며, 사탄에게 잡혀간 인간 말종, 사탄이 거하고 입는, 썩은 산송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전혀 내 존재를 믿지 않으며 내가 온 것도 환영하지 않는다. 마지못해 내 요구에 응대하며 잠시 그것을 들어줄 뿐, 진심으로 나와 고락을 함께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나를 알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억지로 웃어 주며, 비위를 맞춘다. 내 사역을 알지 못하며, 지금의 내 뜻은 더더욱 모르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그날이 오면, 나를 경배하는 사람은 누구든 너희보다 덜 고난받을 것이다. 지금 나에 대한 사람의 믿음이 욥은커녕 유대 바리새인보다도 못하기 때문에 불의 날이 오면, 너희의 날은 예수에게 질책받던 바리새인들보다 더 심할 것이고, 모세를 대적했던 250명의 족장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며, 불사름에 멸망한 소돔보다 더 심할 것이다. 모세가 반석을 쳤을 때 여호와가 베풀어 준 물이 솟아 나온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다윗이 비파와 수금으로 나, 여호와를 찬양했을뿐더러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던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욥이 산을 가득 채운 우양과 많은 가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난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나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나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영광의 증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요한이 인자의 영광의 형상을 보게 된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말세의 이상(異象)을 보게 된 것은 더더욱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이방의 백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나의 계시를 받고, 내가 이미 육신으로 돌아와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도 그들의 믿음 때문이다. 나의 엄한 말에 매를 맞아도 위안을 얻고 구원받는 사람들 또한 믿음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아니겠느냐? 나를 믿어 고난받는 사람들도 세상에서 버림받은 적이 있지 않더냐? 내 말 속에서 살지 않고 시련의 고통에서 도망친 자들은 모두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지 않더냐? 그들은 여기저기 떨어지는 늦가을의 낙엽처럼 발붙일 곳도 없고, 내 위로의 말은 더더욱 듣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내 형벌과 연단이 없지만, 그들이 바로 천국 밖에서 떠돌고 길거리에서 유랑하는 거지들 아니겠느냐? 세상이 정말로 네 안식처겠느냐? 네가 나의 형벌을 피한다고 세상에서 진정 위안이 되는 기쁨을 얻을 수 있겠느냐? 잠시의 누림으로 정녕 네 마음속의 감출 수 없는 공허함을 가릴 수 있겠느냐? 네가 가족은 속일 수 있어도 절대 나를 속일 수는 없다. 네 믿음이 너무 작기에 아직껏 삶의 낙을 찾지 못한 것이다. 너에게 권하노니, 육을 위해 평생을 무의미하고 바쁘게 보내면서 참기 어려운 온갖 고초를 겪느니 차라리 나를 위해 진심으로 반평생을 바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구태여 자신을 그렇게 아끼면서 내 형벌을 피할 필요가 있겠느냐? 내 일시적인 형벌을 피하기 위해 영원한 괴로움과 형벌을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나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사람이 정말 내 모든 안배에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나 또한 냉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욥이 나 여호와를 믿은 것처럼 사람들이 다 나를 그렇게 믿기를 바란다. 너희의 믿음이 도마보다 크다면 너희의 믿음 또한 내게 칭찬받을 것이다. 너희의 충성심에 나 또한 기뻐할 것이며, 너희의 날에도 반드시 내 영광이 함께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과 악마를 믿었던 자들은 마음이 소돔 성의 백성처럼 강퍅하여 눈에는 바람에 날리는 모래가 들어가고 입에는 악마가 준 제물을 물게 될 것이다. 속임을 당한 마음은 세상을 차지한 그 악한 자에게 이미 점령되었고, 사람의 생각은 거의 다 고대의 악마에게 빼앗겨 버렸다. 그로 인해 인류의 믿음도 바람에 흩날리듯 사라졌다. 내가 사역을 행해도 사람은 잠시 응대하거나 분석만 할 뿐 전혀 신경 쓰지도 못한다. 이는 사람이 이미 오래전에 사탄의 독소에 젖어 버렸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50)

내가 인류를 정복하는 이유는 사람이 내게 지음 받고 또한 내가 창조한 그 모든 풍성한 것들을 누렸음에도 나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은 나를 마음에 두지 않고 삶의 짐으로 여기고 있다. 심지어 사람은 분명히 나를 보았으면서도 저버리고, 온갖 수단으로 나를 ‘물리치려고’ 한다. 사람은 내가 진지하게 대하거나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사람의 불의를 심판하고 형벌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은 이를 새롭게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싫증을 낸다. 그렇기에 내 사역은 나를 먹고 마시고 누리면서도 나를 알지 못하는 인류를 쳐부숴 철저히 물리친 뒤, 나의 사자들, 나의 영광과 더불어 내 처소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의 행실이 이미 오래전에 내 마음을 만신창이로 만들었고, 내 사역도 깨뜨렸기 때문에 나는 악한 자가 빼앗아 간 영광을 되찾아 기쁜 마음으로 떠날 것이다. 그리고 더는 사람의 삶에 관여하지 않고 인류가 계속 자신의 ‘삶’을 살면서 ‘안거낙업’하며, ‘자신의 농토를 경작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영광을 악한 자의 손에서 완전히 빼앗아 올 것이다. 창세 때 사람에게 주었던 영광을 모조리 거두어 다시는 땅의 인류에게 베풀지 않을 것이다. 이는 사람이 내 영광을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내 영광을 사탄의 모습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내가 오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내 영광의 날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또한 내 형벌을 달갑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더욱이 나의 영광을 내게 돌려주려 하지도 않으며, 악한 자의 독소를 버리려 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나의 영광이 인류를 떠났을 때 인류가 얼마나 큰 어둠에 빠지게 될지 모르고, 나의 날이 전 인류에게 임했을 때 인류의 날이 노아의 날보다 훨씬 지내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도 모른 채, 여전히 이렇게 나를 기만하며,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다. 내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을 때 이스라엘이 얼마나 캄캄했는지, 동이 틀 때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는지 망각했기 때문이다. 해가 다시 숨고 어둠이 다가오면 사람은 다시 어둠 속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너희는 내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주한 고난의 날이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는 것을 잊었느냐? 지금은 너희가 나의 영광을 보는 때이며, 또한 나와 더불어 영광의 날을 함께 보내는 때이다. 그러나 내 영광이 이 더러운 땅을 떠날 때, 사람은 어둠 속에서 슬피 울 것이다. 지금은 내가 사역하는 영광의 날이고, 또한 인류에게 고난을 면케 해 주는 날이다. 나는 사람과 함께 고난과 고통의 날을 보내지 않으며, 오직 인류를 철저히 정복하고 인류의 악한 자를 완전히 쳐부수기만 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51)

나는 땅에서 많은 사람을 찾아 나를 따르는 자가 되게 하였다. 따르는 사람 중에는 제사장이 되는 사람도 있고, 리더나 아들들이 되는 사람도 있고, 백성이나 봉사자가 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나에 대한 사람의 충성심에 따라 사람을 각 부류로 나눈다. 모든 사람이 각기 부류대로 나뉘었을 때, 즉 각 부류 사람들의 본성이 죄다 드러날 때, 나는 그들을 각각 있어야 할 부류에 속하게 하고 가장 적합한 자리에 배치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내 목적을 이룰 것이다. 또한 나는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단계적으로 불러 모아 나의 집으로 돌아오게 한 다음, 모두가 내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하는 한편, 사람을 부류대로 나눈다. 그런 뒤 그들이 행한 대로 상벌을 내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사역하는 절차이다.

현재 나는 땅에서,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으며, 사람은 나의 사역을 체험하고 나의 말을 보고 있다. 이에 발맞춰 나는 나를 따르는 사람에게 모든 진리를 베풀어 내게서 생명을 얻게 하고, 이에 행할 길을 얻게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생명을 베풀어 주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내 오랜 사역 속에서 많은 것을 얻었고, 또 많은 것을 버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사람이 나를 진실로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은 입으로만 나를 하나님이라고 인정할 뿐, 내 입에서 나온 진리는 수긍하지 않고 내가 요구한 진리는 더욱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만 인정할 뿐, 진리와 생명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만 인정할 뿐 하나님의 본질은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의 열정 때문에 사람을 혐오한다. 사람은 듣기 좋은 말로 나를 기만하기만 할 뿐, 진심으로 나를 경배하는 이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의 말은 독사의 유혹을 품고 있으며, 극히 교만하여 천사장의 ‘소리’ 같다. 너희의 행실은 썩어 빠졌고, 너희의 사치스러운 욕망과 탐욕스러운 속셈은 듣기조차 민망하다. 너희는 모두 내 집의 좀 벌레, 내가 혐오하여 내치는 대상이 되었다. 너희는 전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하늘나라에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며, 그리스도가 땅에서 권세 잡는 장관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희같이 극도로 패괴되어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과연 하나님을 따를 자격이 있겠느냐? 너희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겠느냐? 전례 없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자격이 있겠느냐? 너희는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의 입에는 나를 기만하는 말과 더러운 말, 그리고 나를 배반하는 말과 교만한 말로 가득하다. 너희는 진실한 말로 나에게 간절히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거룩한 말도, 나의 말을 체험하여 나에게 순종하는 말도 한 적이 없다. 이런 너희의 믿음은 과연 어떠하냐? 너희의 마음속은 욕망과 돈으로 가득 찼고, 너희 머리는 물질로 가득 찼다. 너희는 날마다 어떻게 해야 내게서 뭔가를 얻을 수 있을지, 내게 얻은 돈과 물질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고 있으며, 더 많은 축복이 임하여 더 많고 좋은 물질을 누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너희가 매 순간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내게서 온 진리도 아니라, 너희의 남편(아내)과 아들딸, 그리고 너희가 먹고 입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더 잘 즐길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것을 즐길 수 있는지 등이다. 너희가 자신의 배를 가득 채운다고 해도 여전히 시체에 불과하지 않겠느냐? 너희가 겉으로 아주 화려하게 꾸민다고 해도 생기 없는 산송장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머리가 세도록 고생하면서도 내 사역을 위해서는 털끝 하나 바치려고 하지 않는다. 또 너희는 자신의 육체와 아들딸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고생하고 머리를 쥐어짜지만 내 마음을 생각하며 조급해하고 근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너희는 내게서 또 무엇을 얻으려고 하느냐?

나는 사역할 때 급하게 서두르는 법이 없다. 사람이 어떻게 따르든 나는 내 절차와 계획대로 사역한다. 그렇기에 너희가 이처럼 나를 거역하더라도 나는 나의 사역을 멈추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예정해 놓은 사람들을 전부 내 집으로 불러 모아 내가 하는 말을 듣는 대상이 되게 할 것이다. 그런 뒤에 내 말에 순종하고 내 말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든 사람을 다 내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또한 내 말에 등 돌리고, 내게 청종하지도 순종하지도 않으며, 나를 공개적으로 대적하는 사람은 죄다 한쪽에 두어 최후의 징벌을 기다리게 할 것이다. 사람은 모두 패괴 성품으로 살고 있고, 악한 자의 손아귀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나를 따르는 사람들 중에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시 말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리고 진리로 나를 경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도리어 패괴와 패역과 기만의 수법으로 나의 신임을 얻으려고 한다. 그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하는 것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모두 극도로 패괴된 사람이고,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택함을 입은 자는 진리를 믿고 인정하며 실행하는 일부의 사람들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는 이 사람들 가운데서 더 많은 영광을 얻을 것이다. 이런 말에 대조해 볼 때, 너희는 자신이 택함을 입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너희의 결말은 어떠할 것 같으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52)

나는 나를 따르는 사람은 많지만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어떤 사람은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를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까지 따를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너는 댈 만한 이유도 많을 것이고, 사랑도 아주 클 것이다. 하지만 네가 나를 사랑하는 본질은 어디에 있느냐? ‘사랑’이란 티 없이 순수한 감정이다. 마음으로 사랑하고 느끼고 헤아리는 것이다. ‘사랑’에는 조건도 간격도 거리도 없다. ‘사랑’에는 의심도 추측도 없고 기만도 간교도 없다. ‘사랑’에는 거래도 어떠한 불순물도 없다. 너에게 사랑이 있다면 기만도 원망도 하지 않을 것이고, 배반도 거역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무엇을 얻고자, 얼마큼 얻고자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너에게 사랑이 있다면 기꺼이 바치고, 고난을 감내할 것이다. 또한 나와 마음을 합할 것이며, 나를 위해 너의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다. 너의 가정과 앞날, 청춘과 결혼까지도 포기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기만이고 배반이다! 너에게는 어떤 사랑이 있느냐? 참된 사랑이냐, 거짓된 사랑이냐? 너는 얼마나 포기하였느냐? 얼마나 바쳤느냐? 내가 너에게서 얻은 사랑은 얼마나 될 것 같으냐? 너는 알고 있느냐? 너희 마음속에는 악과 배반, 기만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너희의 사랑에는 얼마나 많은 불순물이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위해 충분히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고, 나에 대한 사랑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어째서 너희의 언행은 늘 패역과 기만을 띠고 있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를 저버린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를 믿지 못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신분에 걸맞게 나를 대하지 않고 늘 나를 난처하게 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매사에 나를 속이고 기만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섬기면서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사사건건 내게 반기를 든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너희가 바친 것은 많지만 정작 내가 요구한 것들은 단 한 번도 실행한 적이 없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자세히 따져 보면, 너희에게서는 나를 사랑하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가 없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역했고 이토록 많은 말씀을 공급했는데, 너희가 얻은 것은 과연 얼마나 되느냐?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나는 너희에게 권고하고자 한다. 내가 불러 모은 이는 패괴된 사람이고, 내가 택한 이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너희는 마땅히 자신의 언행을 경계하고 속마음과 생각을 성찰하여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또 마지막 때에 온 힘을 다해 너희의 사랑을 내 앞에 바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진노는 영원히 너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53)

각 사람이 날마다 행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분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으며, 이는 또한 자신의 앞날을 위해 예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거쳐 가야 할 길이며, 내가 각 사람을 위해 예정해 놓은 것이다. 아무도 이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런 전례를 깨뜨릴 수도 없다. 나는 많은 말을 했고, 더욱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역을 했다. 나는 매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원래 본성과 심해지는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많은 사람이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 이 정상 궤도는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기 위해 내가 설정한 것이다. 나는 일찍이 각 부류의 사람을 모두 서로 다른 환경 속에 두었고, 그들은 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원래 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어느 누가 속박하지도, 유혹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자유로웠고, 드러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유독 그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의 말이었다. 그래서 그들 중 일부는 ‘죽지 않는’ 결말을 얻기 위해 나의 말을 억지로 읽어 볼 뿐 그대로 실천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또 다른 일부는 내 말의 인도와 공급을 받지 못하는 날들을 견디기 어려워 자연스럽게 내 말을 늘 받들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인생의 비밀과 인류의 종착지, 그리고 사람됨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게 되었다. 인류는 내 말 앞에서 이런 상태에 머물 뿐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길 뿐, 내 말을 생존의 토대로 삼으라고 강요하는 어떤 사역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양심도, 생존할 가치도 없는 자들은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과감하게 내 말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한다. 그들은 진리는 물론, 내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싫어하기 시작하였고, 내 집에 머무는 것은 더욱 싫어하였다. 그들이 힘을 쓴다 할지라도 그저 종착지를 위하여, 그리고 징벌을 피하기 위하여 잠시 내 집에 머무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속셈은 바뀐 적이 없었고, 그들의 행위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복을 받으려는 그들의 욕망을 더욱 부채질했고, 단번에 영구히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는 생각, 심지어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는 욕망을 더욱 부추겼다. 이렇게 나의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랄수록, 그들은 진리가 장애물과 걸림돌이 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단숨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천국의 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도 되고, 심판과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되며, 더욱이 내 집에서 굽신거리며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내 집에 들어온 것은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아니고, 나의 경영에 협력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다음 시대에 멸망되지 않는 일원이 되려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음속으로 진리가 무엇인지,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진리를 실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에도, 또한 자신이 심하게 패괴되었다고 여기지 않으면서도 처음부터 내 집에 머무르며 ‘종’이 된 이유이다. 그들은 ‘인내심’ 있게 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내 사역 방식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큰 노력을 했든, 어떤 대가를 치렀든 그들이 진리를 위해 고난을 받고 나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옛 시대를 폐하는 그날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 하는 마음뿐이며, 내 능력과 권병이 얼마나 큰지 알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바꾸고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서두른 적이 없다. 그들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며, 내가 증오하는 것을 소망하고 내가 혐오하는 것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들은 이 사악한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을 증오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게다가 또 내가 그것을 멸해 버릴까 봐 몹시 두려워한다. 그들에게는 모순되는 마음이 있다. 내가 혐오하는 이 세상을 좋아하면서도 내가 이 세상을 하루빨리 멸하기를 ‘바라는’ 그것이다. 그들이 참도를 떠나기 전에 운 좋게 재난을 피할 수 있고, 한순간에 다음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모두가 바로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내게서 온 모든 것을 싫어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복을 잃지 않으려고 한동안 ‘순한 백성’이 될지도 모르지만, 복을 받으려는 다급한 심리와 멸망되어 불 못에 던져질까 봐 두려워하는 속마음은 지금껏 감추지 못했다. 나의 날이 임박할수록 그들의 욕망은 더욱 강렬해지고, 재난이 커질수록 그들은 더욱 안절부절못하며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내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 오랫동안 바라 마지않던 복도 잃지 않을 수 있는지를 몰라 한다. 나의 손이 일을 시작하면, 그들은 바로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해 선봉이 되려고 한다. 행여 내 눈에 띄지 못할까 봐 두려워 대오의 가장 앞쪽으로 나설 궁리만 하며,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진리와 무관하며, 그들의 행위가 내 계획을 파괴하고 방해한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비록 그들이 있는 힘을 다할지라도, 고통을 감내하려는 의지와 속내가 아주 진실할지라도,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은 나와 무관하다. 나는 그들의 행위가 선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느낀 적이 전혀 없거니와 그들이 내 제단에 무엇이라도 올려놓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그 오랜 세월 동안 내 면전에서 행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54)

본래 나는 너희에게 더 많은 진리를 공급해 주려고 했지만, 진리를 대하는 너희의 태도가 너무도 차가워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심혈을 헛되이 낭비하고 싶지 않으며, 사람들이 내 말을 가지고 곳곳에서 나를 대적하고 비방하고 모독하는 상황을 보고 싶지도 않다. 너희의 갖가지 태도 때문에, 또한 너희의 인성 때문에 나는 그저 작은 부분, 너희에게 아주 중요한 말만 공급하여 인류 가운데서 행하는 시범적인 사역으로 삼을 뿐이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나는 내가 한 결정과 계획이 다 너희의 필요에 부합한 것임을 참으로 실증했고, 더욱이 인류를 대하는 내 태도도 옳았음을 실증했다. 너희가 오랜 세월 내 면전에서 행한 행위로 나는 지금껏 얻지 못했던 답을 찾았다. 그 답의 질문은 바로 ‘사람은 진리와 참하나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사람에게 쏟은 심혈로 사람을 향한 내 사랑의 본질이 실증되었다. 또한 사람이 내 면전에서 행한 모든 행위로 진리를 증오하고 나를 적대시하는 사람의 본질도 실증되었다. 나는 언제나 나를 따르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나를 따르는 각 사람은 언제나 내게서 비롯된 말을 깨닫지 못하며, 심지어 내게서 비롯된 ‘제안’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가장 가슴 아파하는 일이다. 내 태도가 진실했고 내 말이 부드러웠을지라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욱 없었다. 저마다 자기가 처음 생각한 대로 내가 맡긴 일을 하면서 나의 뜻을 찾지 않고, 나아가 나의 요구도 묻지 않는다. 그들은 다 나를 거역하면서도 충성을 다해 섬긴다고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며, 자신이 실천하지 못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서 나의 진리는 부인되고 버림받는 것이 되었다. 또한 나는 사람이 입으로는 하나님이라 인정하지만 진리, 길, 생명은 아니라고 여기는 제3의 존재가 되었다. 아무도 이런 이치를 모른다. 내 말은 영원불변한 진리이며, 나는 사람의 생명 공급자이자 인류의 유일한 인도자다. 또한 내 말의 가치와 의의는 인류가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말 자체의 본질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다. 설령 이 세상에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내 말의 가치와 인류에 대한 도움은 그 누구도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거역하고 반박하거나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나의 태도는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시간과 사실이 나를 증거하여, 내 말이 곧 진리이자 길이자 생명이며, 내가 한 모든 말은 옳은 것이고,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하고 또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실증할 것이다. 나는 나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알게 할 것이다. 즉, 나의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사람, 나의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에서 목표를 찾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내 말에 정죄받을 사람이고, 더욱이 내 구원의 은혜를 잃은 사람으로, 내 채찍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55)

인류에게 사회 과학이 생긴 이래, 과학과 지식은 인류의 마음을 차지했으며, 나아가 인류를 지배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로 인해 인류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유리한 여건을 잃게 되었고, 인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인류의 내적 세계는 어둡고 절망적이며 공허하다. 뒤이어 사회 과학자, 역사학자, 정치가들이 일어나 사회 과학론, 인류 진화론 등을 발표하여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했다는 진리에 어긋나는 관점을 인류의 머리와 마음에 채워 넣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만유 창조를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반대로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다. 또한 갈수록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역의 기록과 구약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나 전설로 대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존엄과 위대함은 희미해졌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한다는 믿음도 아득해졌다. 사람은 더 이상 인류의 존망이나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인류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공허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이 오늘날 어디에서 사역하는지, 인류의 종착지를 어떻게 주재하고 계획하는지를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느덧 인류의 문명은 이렇게 기대와 멀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많은 사람이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오히려 죽은 사람이 더 행복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지난날 문명이 발전했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조차 이런 원망을 품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기에 통치자나 사회학자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 그 누구도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없으므로 인류 마음속의 공허함을 메우지 못하고, 어떤 사회적 담론도 공허의 질곡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과학, 지식, 자유, 민주, 즐김, 안락으로 사람이 얻는 것은 그저 일시적인 위안에 불과하다. 인류는 이런 것들이 있어도 불가피하게 계속 죄를 짓고, 사회의 불공평을 원망한다. 또한 이런 것들이 있어도 인류의 탐구하려는 갈망과 욕망이 멈추지는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기에, 인류의 무의미한 희생과 탐구는 사람에게 점점 더 많은 고뇌를 안겨 줄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불안에 떨며 인류의 미래와 앞길을 어떻게 직면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과학과 지식을 두려워하고, 공허함을 더욱 두려워하기에 이르렀다. 네가 이 세상의 자유 국가에 있든, 인권이 없는 국가에 있든 너는 인류의 운명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네가 통치자이든, 통치를 받는 자이든 너는 인류의 운명, 비밀, 종착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떨쳐 버릴 수 없고, 영문 모를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도 없다. 사회학자는 인류의 이러한 공통적 현상을 가리켜 사회 현상이라 말하지만, 나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인은 한 명도 없다. 결국 사람은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리와 하나님의 생명은 어떤 사람도 대신하지 못한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사회,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정한 사회뿐만이 아니다. 인류에게는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 공급이 필요하다. 인류는 하나님의 생명 공급과 구원을 얻어야만 필요와 탐구욕, 그리고 심적 공허함을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이나 보살핌을 얻지 못하는 국가와 민족은 몰락과 흑암으로 나아갈 것이고, 종국에는 하나님에 의해 멸망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56)

네 마음에는 크나큰 비밀이 존재한다. 그러나 네가 빛이 비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왔기에 여태껏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너는 마음과 영을 악한 자에게 빼앗겼다. 너의 두 눈은 어둠에 가려져 하늘의 태양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지 못하며, 너의 두 귀는 거짓된 말에 막혀 여호와의 천둥 같은 음성과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많은 물소리를 듣지 못한다. 너는 가지고 있어야 할 모든 것과 전능자가 너에게 베푼 모든 것을 잃고 끝없는 고통의 바다에 빠져 스스로를 구원할 힘도 없고, 살아서 돌아갈 희망도 없다. 그저 발버둥 치며 정신없이 돌아다닐 뿐…. 그 순간부터 너는 악한 자에게 시달릴 운명에 처하게 되었고, 전능자의 축복과 공급에서 멀어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었다. 천만번 불러도 너의 마음과 영을 깨울 수가 없다. 너는 악한 자의 손에서 깊이 잠들었고, 그의 꼬임으로 끝없는 나락에 떨어져 방향과 이정표를 잃어버렸다. 그때부터 너는 원래의 순진무구함을 잃고, 전능자의 보살핌을 피하기 시작했다. 악한 자가 너의 마음속에서 네 모든 것을 조종하며 너의 생명이 되어 너는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거나, 피하거나, 의심하지 않게 되었고, 그를 마음속의 하나님으로 삼아 섬기고 숭배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생사를 같이하기로 약속했다. 너는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왜 태어났는지, 왜 죽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또 너는 전능자가 낯설게 느껴지고, 그의 근원과 그가 네게 행한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너는 그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적대시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그 가치를 알지도 못한다. 전능자의 공급을 받은 날부터 너는 악한 자와 동행해 왔고, 수천 년 동안 그자와 함께 풍파를 겪으며 네 생명의 근원이었던 하나님께 같이 ‘맞섰다’. 그러고도 회개할 줄 모르고, 자신이 파멸에 이르렀음은 더더욱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너는 악한 자가 너를 유혹하고 괴롭혔다는 사실을 잊고 자신의 근원을 망각한 채 오늘날까지 그 악한 자에게 잔인하게 짓밟혀 왔다. 마음과 영이 마비되고 부패한 너는 더 이상 세상의 번뇌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세상이 불공평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전능자의 존재 여부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너는 오래전부터 악한 자를 친아버지로 여기고, 그를 떠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네 마음속 ‘비밀’이다.

동이 틀 무렵 동쪽에서 샛별 하나가 반짝였다. 지금껏 없었던 그 별은 고요한 별하늘을 밝게 비추고, 꺼져 있던 사람들 마음속의 등불을 환히 밝혔다. 그 등불은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고, 너와 그를 밝게 비추었다. 그러나 너는 여전히 그 칠야 속에서 깊이 잠들어 음성을 듣지 못하고, 빛을 보지 못하며, 새 하늘과 새 땅,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네 아버지가 너에게 “얘야, 일어나지 말거라. 아직 때가 이르잖니. 날씨도 몹시 추우니 밖으로 나가지 말아라. 나갔다가는 칼과 창에 눈이 찔린단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너는 네 아버지만 옳다고 믿고, 그가 너보다 연장자이며 진심으로 널 사랑한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당부에만 귀를 기울인다. 이 같은 당부와 사랑으로 인해 너는 세상에 광명이 존재한다는 전설을 더 이상 믿지 않고, 이 세상에 진리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며, 전능자의 구원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현실에 안주할 뿐, 더 이상 광명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고, 전설 속 전능자가 강림하는지를 더 이상 살펴보지 않는다. 너는 모든 아름다운 것이 소생하거나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인류의 내일과 미래는 네 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너는 함께 걸어갈 동반자를 잃지는 않을까, 가야 할 먼 길의 ‘방향’을 잃지는 않을까 심히 두려워 아버지의 옷자락을 꼭 붙들고 그와 함께 고난을 견디려고 한다. 막막한 세상은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의지로 이 세상에서 각각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너 같은 이들을 줄줄이 길러 냈고,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들을 잇따라 키워 냈다. 또한, 왜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하는 무감각하고 병약한 사람들을 대거 배출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인류를 하나하나 살펴본 전능자는 고통으로 울부짖는 사람의 소리를 들었고, 상처를 입은 인간의 뻔뻔한 모습을 보았으며, 구원을 잃은 인류의 무력함과 두려움을 느꼈다. 인류는 전능자의 보살핌을 뿌리치고 제 갈 길을 가며, 그의 감찰을 피하면서 오히려 원수와 함께 심해의 쓴맛을 맛보고자 했다. 전능자의 탄식은 더 이상 사람들의 귀에 들리지 않고, 그의 두 손은 더 이상 비참한 인류를 어루만지려 하지 않는다. 수없이 되찾고 수없이 잃어버리며 그는 그렇게 사역을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치고 싫증이 난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더는 사람들 가운데서 오가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은 이 모든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전능자의 오고 감, 그의 슬픔과 실망 또한 알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전능자의 탄식>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57)

하나님의 경영이 사람에게 아주 심오하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경영과 관련되어 있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과 관련되어 있으며, 인류의 생명과 삶, 그리고 인류의 종착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 가운데서 행하고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 매우 현실적이고 의미가 있으며, 사람이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이 사람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사역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이런 경영이 또 어떻게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느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로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재난을 피할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나님의 사역과 경영을 언급하면 그들은 입을 다물고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지루한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이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영에 관한 메시지를 들어도 건성으로 대할 뿐 보배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생명의 일부로는 더더욱 여기지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복을 받는 것이다. 그 외에 그들의 목표와 전혀 무관한 일은 귀찮아하며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어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정당한 목적이며, 또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의 상태가 이렇다. 그들의 목적과 속마음은 얼핏 들으면 아주 정당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하고 희생하고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며,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심지어 오랫동안 외지에 나가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미도 인생관도 바꾸고, 심지어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까지 바꾸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바꾸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꿈을 경영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며, 그 길이 얼마나 멀든,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까지 불사한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토록 끊임없이 바치게 하는 것이겠느냐? 그들의 양심이겠느냐?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이겠느냐?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겠다는 결심이겠느냐?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그들의 믿음이겠느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충성심이겠느냐? 아니면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는 그들의 희생정신이겠느냐?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심혈을 쏟아붓고 대가를 치를 수 있다니, 그야말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바쳤는지는 차치하자. 그들의 행위만 해도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를 수 있다니, 거기에 사람과 밀접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겠느냐? 여기까지 말하다 보니, 우리는 지금껏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즉,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혈육의 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없고 베풂과 연민만 있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 상황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가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겠느냐? 또 이런 관계가 위험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확신컨대, 모두가 복을 받는 기쁨에 도취되어 있을 때,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난감하고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달은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류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슬픈 일은 하나님의 사역에서 자기 경영을 하면서 하나님의 경영을 등한시한다는 사실이고, 가장 크게 실패한 일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꿈꾸는 종착지를 구상하고, 어떻게 해야 가장 큰 복과 가장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을지 계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모든 사람이 비참하고 가증스럽고 가련한 자신의 모습을 알았다 해도, 자신의 꿈과 소망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고 더 이상 스스로를 위해 계산하지 않을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느냐?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그의 경영을 완성하는 데 긴밀하게 협력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몸과 마음을 쏟아붓는 사람이다. 날마다 하나님께 두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얼마간 헌신하고 빚을 받아 내려는 사람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얼마간 바친 뒤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 기대 살아가려는 사람을 증오하고,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늘에 올라가 복받는 일에만 관심 있는 냉혈 인간을 증오한다.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기회를 틈타 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은 더더욱 증오한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이 경영 사역을 통해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사역하는 틈을 타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채 자기 앞날과 운명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반감을 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 사역 밖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기억하지도, 칭찬하지도 않으며, 더욱이 좋아하지도 않는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58)

나의 사역은 곧 끝날 것이다. 함께 지냈던 오랜 시간은 떠올리기도 싫은 옛일이 되었다. 나는 끊임없이 나의 말을 되풀이하고, 쉼 없이 나의 새 사역을 진전시켰다. 물론 나의 충고는 내가 사역할 때마다 반드시 거기에 포함되는 내용이다. 충고가 없으면 너희는 모두 잘못된 길에 들어설 것이며, 더구나 어쩔 줄 몰라 할 것이다. 이제 사역이 막바지에 접어들어 곧 끝날 시점에서 나는 다시금 충고하는 것과 같은 일들을 하고자 한다. 즉, 너희가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충고 같은 말들을 하고자 한다. 나는 오로지 너희가 나의 심혈을 헛되지 않게 하고, 나의 고심을 이해하며, 나의 말을 너희가 사람이 되기 위한 근간으로 삼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너희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이든 아니든,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든 받아들이기 힘겨운 것이든, 모두 중요하게 여기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제멋대로이고 무신경한 성품과 태도가 나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할 것이며, 더구나 나의 미움까지 사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가 나의 말을 천만 번 이상 되풀이해서 읽고, 더 나아가 마음에 깊이 새기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너희에 대한 나의 기대가 헛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너희는 그렇게 살기는커녕 오히려 모두 주지육림의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으며, 나의 말로 마음과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이 없다. 이에 나는 사람의 진면목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사람은 언제든지 나를 배반할 수 있으며, 나의 말에 절대적으로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이미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패괴되었다.”라는 말은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에게 조금은 인정을 받았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서의 ‘인정’이 표면상의 동의에 불과할 뿐 참된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분석하지도 못한다. 그 때문에 너희가 항상 나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실로써 너희에게 존재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 즉 ‘배반’에 대해 설명하겠다. 너희 모두 방금 언급한 ‘배반’이란 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타인을 배반하는 일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남편은 아내를 배반하고 아내는 남편을 배반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배반하고 딸은 어머니를 배반한다. 종이 주인을 배반하고 친구끼리 서로 배반한다. 가족끼리 서로 배반하고 판매자가 구매자를 배반한다. 이런 것이 모두 배반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 사례이다. 요컨대 ‘배반’은 맹세를 깨고, 도덕규범을 위반하고, 세상의 윤리를 저버림으로써 인간성을 상실하는 행위이다. 한마디로, 네가 한 사람으로서 타인을 배반한 적이 있는지를 기억하든 못 하든, 혹은 네가 타인을 배반하는 일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든 없든, 너희가 세상에 태어난 이상 진리에 위배되는 일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네가 부모나 친구를 배반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배반할 수 있으며, 더구나 나를 배반하고 내가 증오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즉, 배반은 단순히 표면적으로 부도덕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진리와 모순되는 것들이다. 이야말로 사람이 나를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원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배반은 사람의 천성으로, 이 천성은 모든 사람이 나의 마음에 합하는 것을 가로막는 천적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1>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59)

나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행위는 배반이고, 나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지 못하는 행위는 배반이며, 나를 속이고 거짓말로 나를 기만하는 행위는 배반이다. 관념으로 가득하고 또한 이를 사방으로 퍼트리는 것은 배반이고, 나를 위한 증언과 이익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배반이며, 마음속으로는 나를 멀리하면서도 웃는 얼굴로 배웅하는 행위는 배반이다. 이는 너희가 으레 할 수 있는 행위이고, 또한 흔히 볼 수 있는 행위이다. 너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배반하는 일을 애들 장난으로 치부할 수 없고,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다. 지금 내가 너희 가운데서 사역해도 너희가 이럴진대, 상관하는 이가 없는 날이 오면 너희는 산을 차지하고 왕 노릇을 하는 마적이 되지 않겠느냐? 그때 너희가 하늘이 무너져 내릴 정도의 큰 화를 부른다면 그 뒷수습은 또 누가 하겠느냐? 너희는 몇몇 배반 행위가 간혹 있는 일일 뿐 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이렇게 진지하게 말을 꺼내어 너희의 체면을 구기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너희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무도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일수록 전형적인 배반의 표본이다. 사람의 본성은 사람의 생명이자 사람이 의존하고 있는 생존 원리로, 사람 스스로는 이를 바꿀 수 없다. 배반의 본성이 그 일례다. 네가 가족이나 친구를 배반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네 생명의 일부분이자 너의 타고난 천성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이를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즐겨한다면 ‘도둑질을 좋아하는 것’이 바로 그의 생명의 일부분인 것이다. 다만 남의 물건을 훔칠 때도 있고 훔치지 않을 때도 있을 뿐이다. 도둑질을 했든 안 했든, 이는 그가 한 도둑질이 일종의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한다기보다는 그의 생명의 일부분, 즉 그의 본성임을 증명한다. 혹자는 그것이 그의 본성이라면 왜 좋은 물건을 보고도 훔치지 않는 경우가 있냐고 물을 것이다.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하다. 그가 도둑질을 하지 않은 이유는 꽤 많다. 예를 들어, 물건이 너무 크고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어 가져갈 수 없었거나, 손을 쓸 만한 적절한 타이밍이 없었을 수도 있다. 혹은 고가의 물건이어서 물샐틈없는 감시가 이루어졌거나, 그가 그 좋은 물건에 구미가 당기지 않았거나, 그 물건을 어떤 용도로 쓸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그 이유일 수 있다. 어쨌든 도둑질을 했는지 안 했는지로 도둑질이 그가 머릿속에 잠시 떠올린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반대로 그것은 바꾸기 힘든 본성의 일부분인 것이다. 이런 사람은 절대 한 번의 도둑질에 만족하지 않으며, 좋은 물건이나 적당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남의 물건을 가로채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런 생각은 어쩌다 주워 온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본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1>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60)

모든 사람은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다. 그 진면목은 당연히 사람의 본성이다. 네가 말을 빙 돌려 하는 사람이라면 교활한 본성을 가졌을 것이다. 네가 매우 간사한 본성을 지녔다면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고 손쉽게 사람들을 기만할 것이다. 네가 악랄한 본성을 가졌다면 너의 말이 듣기에는 그럴싸해도 너의 행동은 너의 악랄한 수단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네가 게으른 본성을 가졌다면 너의 말은 모두 건성과 게으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내용들일 것이다. 네 행동은 매우 굼뜰 것이며 또한 상황을 모면하고 진실을 감추는 데 능할 것이다. 네가 이해심이 많은 본성을 지녔다면 너의 말은 아주 합리적일 것이며 네 행동 또한 진리에 부합할 것이다. 네가 누구에게나 매우 충성하는 본성을 가졌다면 너의 말은 분명 진정성이 넘칠 것이다. 또한 너는 착실하게 일을 하여 주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네가 호색하거나 금전을 탐하는 본성을 가졌다면 네 마음은 항상 그런 것으로 가득할 것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을 넘거나 부도덕한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너를 항상 기억하고 역겨워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말했듯이 네가 배반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 일을 피해 가기는 어렵다. 너희 모두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해서 자신에게 배반의 본성이 없지 않을까 하는 요행을 바라지 말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몹시 역겨운 일이다. 나는 매번 특정인이나 특정 부류의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상대로 말을 한다. 네가 어떤 일에서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일에서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결혼에 실패하여 진리 추구에 대한 믿음을 잃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정 파탄으로 나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는 의무를 저버린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일시적인 쾌락과 짜릿함을 즐기고자 나를 떠나고, 어떤 사람은 어둠의 절벽에서 구르는 한이 있어도 광명 속에서 살며 성령의 역사가 주는 기쁨과 위안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돈 욕심을 채우고자 친구의 만류도 뿌리치고 지금도 여전히 길을 헤매며 올바른 길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도 있다. 나의 보호만을 노리고 내 이름 아래 잠시 머무르는 사람도 있고, 삶에 대한 미련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억지로 나에게 조금 봉헌하는 사람도 있다. 이같이 사람의 부도덕하고 비인격적인 행위가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배반하는 행위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물론 나는 사람의 배반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닌 사람의 본성이 자연스레 드러난 것임을 알고 있다. 나를 배반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를 배반하는 일을 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으며, 오히려 전전긍긍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냐? 그럼 너희는 이런 배반을 어떻게 만회할지, 오늘날의 상황을 어떻게 전환시킬지 생각하고 있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1>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61)

사람의 본성과 나의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사람의 패괴된 본성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사람의 본성은 사탄에 의해 가공되고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사탄의 사악함과 추함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진리의 세상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도 아니며, 광명 속에서 생존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본성에 선천적으로 진리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본질을 가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반대로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며 진리를 싫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 본성이 바로 내가 말하려는 문제, 즉 배반이다. 배반은 모든 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이며, 이 문제는 사람에게만 존재할 뿐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혹자는 “똑같이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데 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고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으신 겁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너희에게 이 문제를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사람의 생존은 영혼의 반복적인 환생에 기반하여 이루어진다. 즉, 모든 사람은 영혼이 환생할 때 육의 생명을 갖게 된다. 그 생명은 육의 탄생과 함께 시작하여 육체의 최후, 즉 영혼이 빠져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되며, 사람의 영혼은 왔다 가고, 갔다 오는 것을 반복한다. 이렇게 전 인류의 생존이 유지되는 것이다. 육의 생명은 곧 사람의 영혼이 지닌 생명으로, 사람의 영혼은 사람 육의 존재를 지탱한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의 생명은 영혼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육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의 본성은 사람의 육이 아닌 영혼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어떻게 사탄에게 유혹되고, 괴롭힘을 당하고, 패괴되었는지는 오직 사람의 영혼만이 알 뿐, 사람의 육은 이를 알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인류는 자신도 모르게 갈수록 불결해지고, 사악해지며, 어둠에 빠지게 된다. 또한, 나와의 거리가 점차 벌어지고, 점점 더 암담한 날을 보내게 된다. 사람의 영혼이 사탄의 손아귀에 묶여 있으므로 사람의 육도 당연히 사탄에게 점령당해 있다. 이런 육, 이런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떻게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내가 사탄을 반공중으로 내친 이유는 나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인류라고 다르겠느냐? 이것이 바로 배반이 사람의 본성인 이유이다. 나는 너희가 이 이치를 깨달았으니 그리스도의 본질도 어느 정도 믿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육신이다. 하나님의 영은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그러므로 그의 육신 역시 마찬가지로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이 같은 육신은 오로지 공의로운 일, 인류에게 유익한 일, 거룩하고 빛나며 위대한 일만 할 수 있다. 진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할 리 없고, 하나님의 영을 배반하는 일을 할 리는 더더욱 없다. 하나님의 영은 거룩하므로 그의 육신 또한 사탄에 의해 패괴될 수 없으며, 그것은 사람과는 다른 본질을 가진 육신이다. 사탄이 패괴시키는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며, 게다가 사탄은 하나님 자신의 육신을 패괴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과 그리스도가 같은 공간에서 살아도 사람만 사탄에게 점령되고, 이용당하고, 해를 입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도는 절대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는다. 사탄은 영원히 가장 높은 곳에 이를 수 없고, 하나님께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너희는 나를 배반하는 존재는 오직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뿐이며, 이 문제는 그리스도와 영원히 하등의 관계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62)

사탄에게 패괴된 영혼은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만이 구별되어 사탄의 진영에서 구원받고 오늘의 하나님나라로 인도되었다. 이들은 더 이상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본성은 여전히 육에 뿌리박혀 있다. 즉, 너희의 영혼은 이미 구원받았지만 본성은 예전 그대로이며, 너희가 나를 배반할 가능성은 여전히 백 퍼센트이다.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사역하는 것 또한 너희의 본성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 너희는 모두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애를 쓰고 고난을 겪고 있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바로 너희 모두가 나를 배반하고 다시 사탄의 권세 아래로, 사탄의 진영으로 돌아가 예전의 삶을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때 너희는 지금처럼 인간미와 사람의 면모를 지니지 못할 것이다. 심각한 경우 멸망에 이를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을 것이며, 영원히 환생하지 못하고 중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 앞에 놓인 문제이다. 내가 이렇게 너희를 일깨우는 이유는 첫째, 나의 사역이 헛수고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둘째, 너희 모두가 빛이 있는 날들 속에서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사실 내가 헛수고를 하는지 아닌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너희가 행복한 삶을 살고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사역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네 영혼이 사탄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네 육은 평온한 날을 보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네 육을 지킨다면 네 영혼 역시 분명 나의 보살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너를 몹시 혐오한다면 네 영혼과 육은 즉시 사탄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다. 그때의 상태가 어떨지 상상할 수 있겠느냐? 어느 날, 나의 말이 너희에게서 물거품이 된다면 나는 노여움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너희를 사탄에게 넘겨 갑절의 고통을 받게 하거나 너희같이 구제 불능인 인간들을 친히 벌할 것이다. 너희는 나에 대한 배반의 마음을 바꾼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63)

이제 너희는 너희 자신에게 나를 배반하는 요소가 얼마나 더 있는지 하루빨리 성찰해야 한다. 나는 너희의 답을 절박하게 기다리고 있다. 너희 모두 나를 무성의하게 대해선 안 될 것이다. 나는 사람과 장난을 치는 법이 없다. 나는 말을 하면 반드시 그대로 옮긴다. 너희 모두 나의 말을 공상 과학 소설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참답게 대하길 바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너희의 실제 행동이지 상상이 아니다. 이제 모두 나의 질문에 답하여라. 1. 네가 정말로 봉사자라면 어떠한 속임수나 부정적인 요소 없이 나를 위해 충성을 다하여 봉사할 수 있겠느냐? 2. 내가 너를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때도 내게 머무르며 한평생 봉사할 수 있겠느냐? 3. 네가 많은 힘을 보탰음에도 내가 여전히 너를 차갑게 대한다면 그때도 계속해서 나를 위해 묵묵히 일할 수 있겠느냐? 4. 네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바쳤는데 내가 너의 요구를 단 하나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자. 그럼 나에게 믿음을 잃고 실망하거나 나아가 원망과 욕을 퍼부을 수도 있겠느냐? 5. 네가 줄곧 나에게 충성을 다하고 나를 사랑해 왔다고 하자. 그런데도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궁색한 삶을 살며, 가족과 친구에게 버림받거나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면 그때도 나에 대한 너의 충성과 사랑이 지속될 수 있겠느냐? 6. 네 마음속의 상상과 내가 행한 일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너는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가겠느냐? 7. 네가 얻고자 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면 그때도 계속해서 나를 따르는 자로 남을 수 있겠느냐? 8. 네가 나의 사역 목적과 의의를 전혀 알지 못한다면, 그때도 제멋대로 판단하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고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9. 내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한 말과 사역을 귀하게 대할 수 있겠느냐? 10. 나를 충실하게 따르는 자가 되어 아무것도 얻지 못하더라도 나를 위해 한평생 고난을 받을 수 있겠느냐? 11. 나를 위해 앞으로 너 자신의 생존의 길을 고려하거나 계획하거나 준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위의 질문은 너희에 대한 나의 마지막 요구이니 모두가 답해 주기 바란다. 네가 위의 질문 중 한 가지 또는 두 가지에 해당된다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위의 요구 사항 중 단 하나도 충족시킬 수 없다면 너는 분명 지옥으로 떨어질 부류일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무언가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분명 나의 마음에 합할 수 없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배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내가 어떻게 내 집에 둘 수 있겠느냐? 대부분의 상황에서 나를 배반할 수 있는 자들의 경우는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따로 처리할 것이다. 하지만 나를 배반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배반했든 다 기억할 것이며, 마음속에 하나하나 새겨 두었다가 적당한 시기에 그들의 악행을 응징할 것이다. 위에서 내가 요구한 것들은 전부 너희가 성찰해 봐야 할 문제에 해당한다. 나를 대충 속여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나의 요구와 너희가 나에게 한 답변을 대조할 것이다. 그때는 너희에게 더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간곡한 충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나의 권병을 행사하여 남길 사람은 남기고, 상을 내려야 할 사람에게는 상을 내릴 것이며, 사탄에게 넘겨야 할 사람은 넘기고, 중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중벌을 받게 하며, 멸망해야 마땅한 사람은 멸해 버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의 날을 방해하는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나의 말을 믿느냐? 인과응보를 믿느냐? 내가 나를 기만하고 배반한 모든 악인을 징벌할 것임을 믿느냐? 너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느냐, 아니면 천천히 오기를 바라느냐? 너는 징벌받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징벌받는 한이 있어도 나와 맞서고자 하는 사람이냐? 그날이 올 때, 네가 웃음과 환호 소리 속에 살고 있을지, 아니면 슬피 울고 이를 갈며 보내게 될지 상상할 수 있겠느냐? 너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 사람이고 싶으냐? 네가 나를 백 퍼센트 믿는지, 아니면 백 퍼센트 의심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의 모든 행동이 너 자신에게 어떤 결과와 결말을 가져올지 신중히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는 나의 말이 하나씩 이루어지길 바라느냐, 아니면 나의 말이 하나씩 이루어질까 봐 두려워하느냐? 내가 서둘러 떠나 나의 말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너는 스스로의 언행을 어떻게 해야겠느냐? 내가 떠나는 것도, 나의 말이 즉시 이루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면, 네 믿음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너 자신이 왜 나를 따르는지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이냐? 단지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가 없다. 복을 받거나 앞으로 닥칠 재난을 피하기 위함이라면 왜 자신의 행위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것이냐? 왜 스스로에게 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지 묻지 않는 것이냐? 또 왜 너 자신에게 앞으로 복받을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는 것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64)

내 앞에서 나를 섬기는 백성들은 모두 과거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나에 대한 사랑에 불순물이 섞여 있지는 않았느냐? 나를 향한 충성심이 순수했느냐? 나에 대한 인식이 참되었느냐? 너의 마음에 나의 자리가 얼마나 되느냐? 완전하였느냐? 내 말이 너희에게서 얼마나 이루어졌느냐?’ 나를 속이지 말라! 이런 것들을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오늘날 내가 구원의 음성을 발할 때 나에 대한 너희의 사랑이 조금 더 커지지 않았느냐? 나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은 더 순결해지지 않았느냐? 나에 대한 인식이 깊어졌느냐? 과거의 찬미가 오늘날 너희의 인식에 탄탄한 기초가 되었느냐? 나의 영이 너희 안에 얼마만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느냐? 나의 형상이 너희 안에 얼마만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느냐? 나의 음성이 너희의 정곡을 정확히 찔렀느냐? 너희는 정말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느냐? 진정으로 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만약 나의 이런 질문을 듣고도 깨닫는 바가 없다면 이것은 네가 한몫 챙길 기회만 엿보고 머릿수만 채우는 사람으로, 반드시 내가 예정한 시간에 도태되어 두 번째로 무저갱에 떨어지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것은 내 경고의 말이다. 이것을 흘려듣는 자는 누구든 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일정한 때가 되면 그에게 재난이 닥칠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내가 또 예를 들어 설명할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가 본보기로 삼을 수 있도록 분명히 짚어 줄 필요가 있겠느냐? 창세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이 내 말을 거역하여 회복의 흐름에서 버림받고 도태되었다. 결국 육체가 사라지고, 영체는 음부에 떨어져 지금까지도 중벌을 받고 있다. 많은 이들이 내 말에 순종하였으나 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어겼다. 그래서 나의 발길에 차인 뒤 사탄의 권세 아래로 떨어져 나를 대적하는 자가 되었다(오늘날 나를 직접 대적하는 자는 모두 내 말의 외면에만 순종할 뿐 내 말의 본질은 거역하고 있다.). 또 많은 자들이 내가 과거에 했던 말만 듣고 늘 과거의 ‘폐물’을 끌어안고 지키면서 현재의 ‘토산품’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런 인간은 사탄에게 잡혀갔을 뿐만 아니라 천고의 죄인이 되고 나의 원수가 되었다. 이들은 나를 직접 대적하는 자이며, 나의 진노가 극에 달할 때 심판받을 대상이다.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눈먼 상태로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부패되고 마비되고 사탄의 지배를 받는 시체들 가운데 있다. 그들은 나에게 눈이 가려졌기 때문에 여기에서 ‘눈먼 상태’라고 말한 것이다.). 내가 실례를 하나 들 테니 참고하여 교훈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

바울을 언급하면 너희는 그의 과거가 생각날 것이고, 그에 관한 부정확하고 실제에 맞지 않는 일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서 교육을 받고 나의 생명을 받아들였다. 그는 나의 예정으로 내가 갖추게 한 자질을 갖추었다. 그는 열아홉 살부터 생명에 관한 여러 서적들을 읽고 연구했다. 그래서 내가 자세히 말할 필요 없이 바울은 그의 자질로 인해, 그리고 나의 깨우침과 빛 비춤으로 인해 영적인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고 나의 뜻을 찾을 줄도 알았다. 물론 이것은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이 결합된 결과였다. 하지만 옥에 티라면, 그는 타고난 재능 때문에 늘 큰소리쳤다는 점이다. 그의 패역으로 인해 어떤 것은 직접 천사장을 대변했다. 그러므로 내가 처음 성육신했을 때 그는 온 힘을 다해 나를 대적했다. 그는 나의 말을 알지 못한 자로, 그의 마음속에서 나의 자리는 이미 사라졌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그런 까닭에 직접 나의 신성에 대적하여 내게 맞고 결국 엎드려 죄를 자백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그의 장점을 이용한 뒤, 즉 그가 나를 위해 한동안 사역한 후 그의 고질병이 또 재발했다. 비록 그가 나의 말을 직접 거역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내적인 인도와 깨우침은 거역했다. 그래서 그가 이전에 했던 일들이 모두 헛수고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말한 영광의 면류관은 공허한 말이 되고 혼자만의 상상이 되었다. 그가 지금도 나에게 결박당한 채 나의 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예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듯이, 누구든 나(육신을 입은 나뿐만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나의 말과 나의 영, 즉 나의 신성임)를 대적하는 자는 육체에서 나의 심판을 받게 된다. 나의 영이 너를 떠날 때 너는 일락천장하여 곧장 음부에 떨어질 것이다. 비록 육체는 땅에 있지만, 정신병자처럼 이성을 잃게 되어 즉시 자신이 죽은 사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심지어 육체를 당장 없애 달라고 내게 애원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너희처럼 영이 있는 많은 사람이 깊이 체험했을 것이므로 내가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다. 과거에 내가 정상 인성으로 사역할 때, 많은 사람이 이미 나의 진노와 위엄과 ‘겨룬’ 적이 있기 때문에 나의 지혜와 성품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 오늘 내가 신성으로 직접 말하고 일해도 여전히 나의 진노와 심판을 직접 보게 될 사람들이 일부 있다. 게다가 심판 시대에 하는 두 번째 주된 사역은 모든 백성이 내가 육신으로 하는 행사를 직접 알게 하는 것이고, 너희 모든 사람이 나의 성품을 직접 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육신에 있는 까닭에 나 역시 너희의 연약함을 이해한다. 나는 너희가 자신의 영, 혼, 육을 장난감으로 삼아 함부로 사탄에게 ‘바치지’ 않길 바라며, 자기가 가진 것들을 어린애 장난처럼 대하지 말고 귀하게 여기길 바란다. 이런 것들이 너희의 운명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정말로 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느냐? 나의 진실한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릴 수 있느냐?

너희는 땅에서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은 복을 누리기를 원하느냐? 나에 대한 인식과 내 말을 누리고 나를 아는 것을 너희 일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로 삼고 싶으냐? 진정으로 자신의 앞날을 위하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 순종할 수 있느냐? 너희는 진정으로 스스로를 양처럼 여겨 내가 죽이고 끌고 다니도록 맡길 수 있느냐? 너희 가운데 누가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느냐? 나에게 열납되고 내 약속을 받은 자라고 다 복을 받은 자이겠느냐? 나의 이 말에서 너희는 뭔가를 깨달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시련을 준다면 너희는 진정으로 나의 지배를 따르고, 시련 속에서 나의 뜻을 찾고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입으로 얼마나 많은 감동적인 말이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반대로 나는 네가 나를 위해 아름답게 증거하고 모든 면에서 실제에 깊이 진입할 수 있길 바란다. 내가 직접 말하지 않는다면, 네가 너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버리고 너를 내게 맡겨 쓰도록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내가 요구하는 실제가 아니란 말이냐? 누가 내 말의 의미를 알 수 있겠느냐? 나는 너희가 내 말을 오해하거나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나의 행정을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더는 걱정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진입하여 내 말의 본질을 깨닫기를 바란다. 나는 너희가 내 앞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겠다’고 세운 뜻과 같이, 더는 자신의 앞날을 위해 생각하지 말고 내 말에서 너희에 대한 나의 뜻을 알기를 바란다. 나의 집에서 굳게 선 모든 사람은 마땅히 자신의 능력을 다하여 내가 땅에서 하는 마지막 사역을 위해 자신의 가장 훌륭한 것을 바쳐야 한다. 너는 진정으로 이렇게 실천하기를 원하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4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65)

온갖 악령들이 땅에서 시시각각 안식할 곳을 찾고 있고, 삼킬 자의 시체를 찾고 있다. 내 백성들아! 너희는 반드시 나의 보호와 보살핌 아래에 있어야 한다. 절대 방종하지 마라! 절대 제멋대로 행하지 마라! 마땅히 내 집에서 충성을 바쳐야 한다. 충성심이 있어야만 마귀의 간계에 반격할 수 있다. 더는 예전처럼 내 앞뒤에서 서로 다르게 행해선 안 된다. 그러면 구제 불능이 된다. 내가 이런 말을 적게 했느냐? 누누이 타일러도 사람의 옛 성품이 고쳐지지 않기에 누차 일깨워 주는 것이다. 지겹다고 하지 마라! 전부 너희의 운명을 생각해 말하는 것이다! 사탄은 불결하고 더러운 곳을 원한다. 구제 불능이 될수록, 절제하지 못하고 방종할수록 온갖 더러운 귀신이 기회를 틈타 침입한다. 그 지경에 이른다면 너희의 충성심은 조금도 실제적이지 않은 허튼소리가 될 것이다. 또한 너희의 ‘의지’도 더러운 귀신에게 삼켜져 ‘패역’이 되고 사탄의 ‘간계’로 변질돼 나의 사역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 일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전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 전혀 신중히 대하지 않는다. 나는 네 지난 행실을 기억하지 않는다. 설마 그래서 내가 또다시 ‘기억하지 않고’ 관용을 베풀어 주길 기다리는 것이냐? 사람이 나에게 대항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사람의 분량이 너무 작기 때문에 나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절제하며 방종하지 말라고 할 뿐이다. 이것조차 못 하겠단 말이냐? 많은 사람이 내가 더 많은 비밀을 열어 주어 ‘눈 호강’을 시켜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하늘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그렇다고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이 커지기라도 하겠느냐? 나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기라도 하겠느냐? 나는 사람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며, 사람에 대해 경솔하게 결론을 내리지도 않는다. 사람이 실제로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절대 아무렇게나 사람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우지 않는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누명을 씌운 적이 있더냐? 너희를 과소평가한 적이 있더냐? 너희의 실제 사정에 맞지 않게 너희를 감찰한 적이 있더냐? 내가 한 말이 너희를 진심으로 탄복시키지 않은 적이 있더냐? 내가 한 말이 너희의 심금을 울리지 않은 적이 있더냐? 내 말을 볼 때 무저갱에 떨어질까 봐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은 사람이 있더냐? 내 말로 인해 시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더냐? 나의 말에는 권병이 있지만, 나는 사람을 함부로 심판하지 않는다. 사람의 실제 사정을 감안하여 내 말의 뜻을 끊임없이 사람에게 나타낸다. 실제로 그 누가 내 말에서 나의 전능을 알 수 있겠느냐? 그 누가 내 말의 정금(正金)을 깨달을 수 있겠느냐? 그토록 많은 말을 했건만, 내 말을 소중히 여긴 자가 있더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0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66)

나는 날마다 우주 위에 서서 살펴보고, 또 자신을 낮추고 감추어 내 처소에 거하면서 인생을 겪으며 사람의 모든 행위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진정으로 나를 위해 자신을 내놓지 않았고, 그 누구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 진지하게 임한 사람도 없었고, 내 앞에서 의지를 다지며 자신의 본분을 지킨 자 역시 없었다. 또한 그 누구도 나를 자신의 마음에 거하게 하지 않았고, 자신의 생명처럼 나를 중시하지 않았다. 아무도 실제 속에서 내 신성의 모든 어떠함을 보지 못했고, 실제 하나님 자신과 접촉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사람의 온몸이 물에 잠길 때 나는 사람을 그 죽은 물에서 구해 내 다시 생명을 얻을 기회를 주었다. 사람이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을 때, 나는 사람을 죽음의 벼랑 끝에서 끌어 올려 삶의 용기를 주었고, 나를 생존의 근본으로 삼게 했다. 사람이 나를 거역할 때, 나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역 속에서 나를 알게 했다. 사람의 옛 성품 때문에, 또한 나의 긍휼 때문에 나는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지 않고 개과천선하게 했다. 사람이 기근에 빠졌을 때, 숨이 넘어가기 직전일지라도 사탄의 간계에 빠지지 않도록 나는 그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빼앗아 왔다. 사람이 나의 손길과 자비로운 얼굴과 웃는 얼굴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또 나의 위엄과 진노를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른다. 사람은 나를 알지 못했지만, 나는 사람의 연약함을 ‘트집 잡을 기회’로 삼지 않았다. 나는 인간 세상의 고통을 살피기에 사람의 연약함 역시 헤아려 준다. 다만 사람이 패역하고 배은망덕하기 때문에 정도에 따라 합당한 형벌을 줄 뿐이다.

나는 사람이 바쁠 때 모습을 감추고, 사람이 한가할 때 그들에게 나타난다. 사람의 상상 속에서 나는 ‘만물박사’이고, 구하면 반드시 들어주는 하나님 자신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단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내 앞에 올 뿐, 내 앞에서 나를 알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사람은 병세가 위중할 때 다급히 내게 도움을 청하고, 환난 속에 있을 때 역경에서 벗어나려고 최대한 내게 고충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편안할 때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평안하고 행복할 때 자신과 더불어 즐기자며 나를 찾아오는 사람 역시 없다. ‘집안’에 행복이 가득할 때, 사람은 일찌감치 나를 한쪽에 내버려 두거나 문전 박대 하고서는 즐겁게 온 집안의 행복을 누린다. 사람은 옹졸하고 속이 좁아 이렇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며 사람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하나님인 나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이 즐겁게 웃을 때 내가 몇 번이나 그들에게 버림받았는지 모르고, 사람이 넘어졌을 때 몇 번이나 그들의 지팡이로 사용되었는지 모른다. 또한 사람이 병마에 시달릴 때, 내가 몇 번이나 그들의 ‘의사’로 불려 갔는지 모른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인류더냐! 그야말로 이성도 없고 도의도 모른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인정’을 조금도 볼 수 없고, 인간미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가 어렵다.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오늘날과 견주어 보아라. 너희는 조금이라도 변화했느냐? 과거의 성분들이 오늘날에는 줄어들었느냐? 여전히 새로운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냐?

나는 온갖 모진 시련과 고난, 그리고 인간 세상의 모든 우여곡절을 겪었고, 사람들 가운데서 오가며 여러 해를 사람과 함께 생활했다. 하지만 사람의 성품은 얼마 바뀐 것 같지 않다. 또한 옛 성품이 사람의 내면에 뿌리내려 싹트기라도 한 듯 사람의 옛 성품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그저 원래 상태보다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본질은 바뀌지 않고 방식만 많이 바뀐 셈이다. 사람은 모두 나의 눈을 어지럽게 함으로써 어물쩍 넘어가 나의 기쁨을 사려고 나를 속이는 것 같다. 나는 사람의 ‘수작’을 기뻐하지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나는 그로 인해 격노하지 않으며, 알면서도 내버려 둔다. 나는 사람을 어느 정도 느슨하게 풀어 주었다가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처리’할 것이다. 사람은 모두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천박한 존재이기에 본인조차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또다시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한단 말이냐? 사람은 모두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니, 저울에 달아 보아야 한다. 사람이 나를 거들떠보지 않으니 나 역시 사람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사람이 나를 중시하지 않으니 나 역시 사람에게 많은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 이러면 서로에게 좋은 일 아니겠느냐? 나의 백성이 된 너희 역시 이런 상황 아니더냐? 내 앞에서 다짐을 했다가 폐하지 않은 자가 누가 있더냐? 내 앞에서 수시로 다짐을 반복하지 않고 한 번 세운 다짐을 변함없이 오래 지킨 자가 누가 있더냐? 사람은 상황이 순조로울 때는 내 앞에서 다짐을 세우지만, 역경에 처하면 그것을 백지화했다가 일이 지나간 후에 다짐을 다시 주워 내 앞에 내놓는다. 내가 사람이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 온 폐품을 마구 받아들일 정도로 그렇게 천하단 말이냐? 사람 중에 자신의 다짐과 정절을 지키는 자는 매우 적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게 제물로 바치는 자도 매우 드물다. 너희 또한 이러하지 않더냐? 하나님나라 백성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지 못한다면 내게 미움받고 버림받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4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67)

사람은 모두 자신을 정확히 아는 능력이 없는 것들이라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제 손금 보듯 한다. 마치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 모두 그의 앞에서 ‘검열’을 받았거나 먼저 그의 승낙을 받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심리 상태까지 모두 훤히 꿰뚫는 듯하다. 사람은 모두 이러하다. 오늘날,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본성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여전히 내 앞에서는 내가 하는 것을 하지만, 내 뒤에서는 또 자신만의 독특한 ‘사업’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도 내 앞에 왔을 때는 또 다른 사람인 양 거리낌도 두려움도 없는 듯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추태가 아니더냐? 많은 사람이 내 앞에서와 내 뒤에서 전혀 딴 사람 같다. 많은 사람이 내 앞에서는 갓 태어난 양 같지만 내 뒤에서는 사나운 호랑이 같고 또 산속의 새처럼 ‘신이 나서 깡충거린다’. 또 많은 사람이 내 앞에서 의지를 다지며 내 말을 찾고 갈망하지만, 뒤에서는 내 말을 싫어하고 포기한다. 마치 나의 말이 그들에게는 짐이 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원수’에 의해 패괴된 인류를 바라보며 그들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또 사람들이 내 앞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내게 용서를 구하는 것도 수없이 보았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품위를 지키지 않고, 또 몇 번을 타일러도 고치지 않기에 그 마음이 아무리 진실하고 그 뜻이 아무리 간절해도 분노를 띠고 사람의 행위를 외면했었다. 나는 사람이 나와 협력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내 앞에서 내 품에 안긴 듯, 내 품의 따스함을 느끼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나는 선민들의 활발하고 순진하며 사랑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어찌 그것으로 기뻐하지 않겠느냐? 사람은 내 손안에서 정해진 복을 누릴 줄 모른다. 이는 무엇이 ‘복’인지, 무엇이 ‘고통’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나를 참되게 추구하지 않는다.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희 중에 그 누가 내 앞에서 눈같이 깨끗하고 옥같이 순결할 수 있겠느냐? 나에 대한 사랑을 맛있는 음식으로 바꿀 수 있겠느냐?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옷으로 바꿀 수 있겠느냐? 높은 직위와 후한 급여로 바꿀 수 있겠느냐? 또는 너를 향한 다른 사람의 사랑과 맞바꿀 수 있겠느냐? 설마 사람이 시련 때문에 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게 되겠느냐? 설마 사람이 고난과 환난 때문에 나의 안배를 원망하게 되겠느냐? 그 누구도 내 입의 날 선 검을 진실로 깨닫지 못했다. 그저 그 겉면의 뜻만 알 뿐, 내면의 뜻은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다. 사람이 정말 날 선 검의 예리함을 봤다면, 모두 쥐가 땅굴을 파고 들어가듯 했을 것이다. 사람은 무감각해져서 내 말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므로 내 말의 엄준함을 모르고, 내 말이 사람의 본성을 얼마나 많이 드러내는지, 사람의 패괴를 얼마나 많이 심판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내 말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이해하여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5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68)

역대로 수많은 사람이 실망과 미련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 왔다. 나는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것을 계획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내 손을 거쳐 갔다. 많은 영들이 저승에 떨어졌고, 많은 영들이 육신에서 살고 있으며, 많은 영들이 땅에서 죽었다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나라에서 복을 누릴 기회는 얻지 못했다. 내가 사람에게 준 것은 적지 않으나 사람이 얻은 것은 많지 않다. 사탄 세력의 공격으로 사람은 나의 모든 풍요로움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바라만 볼 뿐 다 누리지는 못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하늘의 풍요로움을 받을 수 있는 보물 창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에 내가 내린 복을 놓쳐 버렸다. 사람의 영은 나의 영과 통하는 기관(器官)이 아니더냐? 왜 사람은 늘 영을 통해 나와 접촉하지 못하느냐? 왜 육신에서는 나를 가까이하면서 영을 통해서는 그러지 못하느냐? 설마 나의 본래 모습이 육신이기라도 하단 말이냐? 왜 사람은 나의 본질을 알지 못하느냐? 사람의 영 안에 나에 대한 기억이 조금도 없단 말이냐? 내가 사람의 영 안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냐? 사람이 영계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나의 뜻을 알 수 있겠느냐? 설마 사람의 눈은 영계까지 볼 수 있단 말이냐? 나는 영을 통해 수없이 사람을 불렀다. 그러나 사람은 나에게 자상이라도 입은 듯, 내가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할까 몹시 두려워하면서 먼발치에서 나를 바라만 보았다. 나는 사람의 영을 통해 사람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사람은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내가 사람의 집에 들어가 모든 물건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나를 문밖에 세워 두었다. 내가 마주한 것은 굳게 닫힌, 차가운 ‘대문’뿐이었다. 나는 사람이 길을 잃었을 때, 사람을 수없이 구했다. 그러나 사람은 정신이 든 순간 나를 떠났다. 나의 자비에 감동하기는커녕 사람은 나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일 수 없었다. 사람은 감정이 없는 냉혈 동물이다. 나의 품에서 따뜻함을 느껴도 감동하지 않는다. 사람은 산속의 야만인 같아 내가 사람을 ‘아껴’ 주는 것을 귀하게 여긴 적이 없다. 나를 가까이하느니 차라리 산속에 묻혀 살기를 원한다. 산짐승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나에게 의지하고자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사역을 행할 뿐이다. 모든 사람이 망망대해에서 나의 곁으로 헤엄쳐 와 육지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바닷물에 삼켜질 위험에서 벗어날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0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69)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자 했으나 그들의 ‘마음’이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탓에 뜻대로 하지 못했다. 또 많은 사람이 내가 준 시련 속에서도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지만 늘 내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저 공허함 속에서 나를 사랑했지, 내가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마음을 내 앞에 두고도 거들떠보지 않은 탓에 사탄에게 틈을 주어 마음을 빼앗겼고, 결국 나를 떠나가 버렸다. 많은 사람이 내가 말씀을 공급할 때는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내 말을 귀하게 여기며 영 안에서 소중히 여기지 않고, 공공재처럼 아무렇게나 쓴 후 아무 때나 원래 있던 자리에 던져 버렸다. 사람은 고통 속에서 나를 찾고, 시련이 닥쳤을 때 나를 앙망하며, 평안할 때 나를 누리다가, 위험할 때 나를 부정하고, 바쁠 때 나를 잊고, 한가할 때 나를 무성의하게 대한다. 평생토록 나를 사랑하는 자는 없었다. 나는 사람이 내 앞에서 진지하기를 바란다. 나는 사람에게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를 진심으로 대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사람이 나를 기만하지 않고, 네게 진심을 주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에게 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퍼져 있고 내가 기울인 심혈이 스며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의 모든 행위의 ‘진상’과 나를 향한 기만이 차 있다. 마치 사람은 모태에서 ‘기만의 성분’을 갖고 나오고, 독특한 ‘사기술’을 타고난 듯하다. 그 ‘사기술’은 한 번도 정체를 드러낸 적이 없어 아무도 그 근원이 어디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기만 속에서 살면서 본인이 원해서 나를 속인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안배’였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나를 기만하는 근원 아니겠느냐? 사람의 간계 아니겠느냐? 나는 사람의 감언이설에 속아 우왕좌왕한 적이 없다. 사람의 본질을 일찌감치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핏속에 불결한 성분이 얼마나 많은지, 또 사람의 골수에 사탄의 독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세월을 거듭하며 그것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은 사탄의 괴롭힘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건강하게 사는 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1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70)

사람은 빛 속에 살지만 빛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빛의 본질도 모르고, 빛의 출처도 모르며, 빛이 어디에 속하는지는 더 모른다. 나는 인간 세상에 빛을 내린 후 바로 세상의 모습을 관찰했는데, 모든 사람이 빛으로 인해 변화되고, 빛으로 인해 성장하고, 빛으로 인해 어둠에서 벗어났다. 온 우주 곳곳을 살펴보니 산은 안개 속에 잠겨 있고, 물은 혹한 속에 얼어 있었다. 사람은 빛의 도래로 동방을 바라보며 더 귀중한 것을 찾고자 했지만, 짙은 안개 속에서 좀처럼 방향을 구별하지 못했다. 온 세상이 짙은 안개로 덮여 있었기에 내가 구름 위에서 세상을 살필 때 내 존재를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모두 땅 위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먹을 것을 찾는 것 같기도 하고, 일부러 나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날을 모르기에 수시로 동방의 희미한 빛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만민 가운데서 진정 내 뜻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고자 만민 사이를 돌아다니고 만민과 함께 생활했지만, 땅에 있는 모두가 근심 없이 평안함에 빠져 있어 진정 내 뜻에 부합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가 하는 일을 관찰하지 못하고, 빛 안에서 행하며 빛 비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은 한때 내 말을 소중히 했으나 사탄의 간계를 꿰뚫어 보지 못했고, 분량이 너무 작아 자신이 마음으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 내가 사람을 높여 주었을 때 모든 사람은 스스로 자격이 없음을 느꼈으나 그로써 나를 만족게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준 ‘지위’를 두 손으로 받쳐 들어 자세히 연구했고, 나의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지위의 복을 ‘탐할’ 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부족한 점 아니겠느냐? 산이 움직일 때 네 ‘지위’ 때문에 너를 피해 돌아가겠느냐? 물이 흐를 때 사람의 ‘지위’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겠느냐? 천지가 사람의 ‘지위’ 때문에 뒤집힐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람에게 거듭 긍휼을 베풀었지만 사람은 그저 ‘이야기’ 삼아 듣고, ‘소설’ 삼아 볼 뿐 아무도 아끼거나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내 말이 사람의 심금을 울리지 못한 것이냐? 내 말이 아무 효과도 없는 것이냐? 설마 내 존재를 믿는 자가 없는 것이냐?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사탄과 영합하여 내게 반격하며, 사탄을 자신의 ‘자산’으로 삼아 나를 섬긴다. 나는 사탄의 모든 간계를 간파해 땅에 있는 사람이 다시는 사탄에게 미혹당하지 않고, 사탄의 존재로 인해 나를 대적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2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71)

내 마음속에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 나는 사람에게 작지 않은 권병을 주어 산속의 초목, 숲속의 동물, 수중의 물고기 등 지상 만물을 다스리게 했으나, 사람은 이를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늘 근심으로 가득하다. 사람의 일생은 한없이 서글프고, 한없이 분주하며, 또 공허와 기쁨이 뒤섞여 있을 뿐 새로운 ‘발명과 창조’는 없다. 아무도 공허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고, 아무도 의미 있는 삶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아무도 ‘실제적인 삶’을 체험해 보지 못했다. 비록 오늘날의 사람들이 모두 나의 빛 아래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하늘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만약 내가 긍휼을 베풀지 않고, 내가 인류를 구원하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은 헛되이 이 땅에 와서 무의미하게 살다가 자랑할 만한 것 하나 없이 헛되이 사라질 것이다. 각 종교, 각 분야, 각 나라, 각 교파의 사람들은 모두 땅의 공허함을 알고 나를 찾으며, 내가 다시 올 것을 기다리고 있지만, 내가 올 때 누가 나를 알아볼 수 있겠느냐? 나는 만물을 창조하고 또 인류를 창조했으며,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 임하였으나 사람은 도리어 나를 공격하며 내게 ‘보응’하고 있다. 설마 내가 사람에게 한 일들이 모두 사람에게 무익했다는 말이냐? 설마 나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말이냐? 사람은 왜 나를 버리는 것이냐? 사람은 왜 내게 그토록 얼음처럼 차가운 것이냐? 어찌하여 땅에 시체들이 즐비한 것이냐? 설마 이것이 내가 사람에게 만들어 준 세상의 모습이란 말이냐? 나는 사람에게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주었거늘 어째서 사람은 내게 빈손으로 보답하는 것이냐? 사람은 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냐? 사람은 왜 언제나 내 앞에 있지 않는 것이냐? 설마 나의 말이 모두 헛된 것이란 말이냐? 설마 나의 말은 ‘수증기’처럼 사라지고 없단 말이냐? 왜 사람은 나와 협력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냐? 설마 나의 날이 왔을 때가 사람이 죽을 때라는 말이냐? 하나님나라가 모습을 갖췄을 때 설마 내가 사람을 몰살시키겠느냐? 왜 나의 모든 경륜 안에서 나의 뜻을 찾은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이냐? 내 입에서 나온 말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싫어하여 내버리는 이유가 무엇이냐? 나는 그 누구도 정죄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사람이 냉정하게 자신을 반성하게 할 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5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72)

사람은 일찍이 나의 따듯함을 체험하고 진실로 나를 섬겼으며, 내 앞에서 진실로 나에게 순종하며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단지 영 안에서 슬피 울기만 한다. 굶주린 이리에게 잡혀간 것처럼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부르짖지만 늘 곤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예전에 사람이 내 앞에서 한 약속과 굳은 맹세를 회상한다. 사람은 자신의 정으로 내 뜻에 보답하겠다고 했고,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그 통곡 소리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람의 의지 때문에 나는 늘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 사람이 수없이 내 앞에 와서 나에게 순종하니,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잊기 어렵다. 수없이 나를 사랑하고 충정을 굽히지 않으니, 그 진실한 마음에 탄복했다. 수없이 죽음을 무릅쓰고 나를 사랑하니, 자기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진실함을 보고 나는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수없이 내 앞에 와서 자신을 바치고 나를 위해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나는 사람의 수심에 찬 얼굴을 어루만지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내가 사람을 애지중지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고, 원수를 대하듯 미워했던 적도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랬음에도 사람은 나의 마음을 여전히 알지 못한다. 사람이 근심하고 슬퍼할 때 내가 위로해 주었으며, 연약할 때도 내가 붙들어 주었다. 또 사람이 길을 잃었을 때 내가 그 길을 인도해 주었으며, 통곡할 때도 내가 눈물을 닦아 주었다. 하지만 내가 근심하고 슬퍼할 때 누가 마음으로 나를 위로할 수 있겠느냐? 내가 애간장을 태울 때 누가 내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내가 상심할 때 누가 내 마음의 상처를 메워 줄 수 있겠느냐? 내가 사람을 필요로 할 때 누가 자진해서 나와 협력할 수 있겠느냐? 설마 사람들이 예전에 나를 대하던 태도를 오늘날에는 더는 볼 수 없단 말이냐? 왜 사람의 기억에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이냐? 왜 사람은 이런 것들을 모두 망각하였느냐? 이는 인류의 원수가 패괴시킨 까닭이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7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373)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지만, 사람은 인간 세상에 온 하나님을 전력으로 대적하면서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하나님은 사방을 떠도는 고아 같기도 했고, 또 국적 없이 세상을 떠도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그리워하거나 진실로 사랑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돌아온 하나님을 환영하지 않았다. 돌아온 하나님을 보았을 때, 웃음 가득했던 얼굴엔 삽시간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마치 폭풍우가 곧 휘몰아치기라도 할 듯, 하나님이 사람의 집에 있는 행복을 빼앗아 가기라도 하는 듯, 하나님이 지금까지 사람에게 축복은 주지 않고 재해만 주기라도 한 듯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유익하지 않고 계속 사람을 저주하기만 했다는 인상만 남아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외면하고 반기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쌀쌀맞게 대하는 태도가 바뀐 적이 없었다. 사람의 마음속에 그런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이 이성도 없고 도의도 모르며,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인정’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씀했다. 사람은 하나님에게 매정했으며, 이른바 ‘공의’를 취하여 하나님을 건성으로 대했다. 수많은 세월, 사람은 언제나 그랬으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성품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씀했다. 여기에서 사람의 무게가 깃털 몇 개의 무게밖에 되지 않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천박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을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설마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망치는 짓이 가치 있는 것이란 말이냐? 사람은 모두 음녀처럼 스스로를 우롱하고, 자신을 임의로 다른 자의 손에 넘겨주어 유린하게 했다. 그럼에도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비천함을 모르고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해 주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여 자신을 다른 사람이 장악하게 그들에게 넘겨 주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더러운 부분이 아니냐? 나는 인간 세상의 생활을 겪어 보지 않았고, 인생을 진정으로 체험해 보지도 않았어도 사람의 말과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는 오히려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다. 심지어 사람을 몸 둘 바 모를 정도로 해부할 수 있고, 나아가 두 번 다시 자신의 수작을 과시하지 못하고 두 번 다시 자신의 정욕을 방종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또한 달팽이가 껍질 안으로 움츠러드는 것처럼 두 번 다시 자신의 추태를 드러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사람이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가장 큰 허물은 바로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용모와 추악한 몰골을 자랑하기 좋아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장 혐오한다. 사람 간의 관계가 비정상이고, 서로 정상적인 대인 관계도 없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 말할 나위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한 주목적은 그것을 통해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사람 마음속에 있는 모든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전 인류 가운데서 권세를 잡아 하나님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을 이룬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14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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