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App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생명 진입에 관한 설교 (낭송)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151집 (a) 하나님 말씀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에 관한 설교 교통 (1)

【151-A-7】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마음속에 늘 하나님이 있고, 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하나의 개념을 언급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떤 것들이 갖춰져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마음속에 늘 하나님이 있고, 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요? 만일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 몇 가지 마음을 갖고 있을까요? 진리를 추구하지 않을 때도 갖고 있지만, 다만 그 마음이 작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방금 주님을 믿었을 때, 저는 자나 깨나 주님 믿는 일만 생각했습니다. 주님 믿는 일을 말하기 좋아하고, 주님의 말씀을 보기 좋아하고, 주님 믿는 사람을 찾아가기를 좋아했습니다. 말하자면 마음 속에 늘 주님이 있고, 하나님이 있었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긴 있었습니다. 조금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때는 경력이 깊지 않아 그 마음이 지금처럼 크지 않고 뚜렷하지 않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방금 믿었을 때는 누구나 마음이 단순합니다. 하나님이 택하고 예정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성령의 역사가 있게 되고,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그 몇 가지 느낌이 있게 됩니다. 그럼 그 몇 가지 느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성령의 역사에서 온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하나님을 믿을 때 그 몇 가지 느낌이 있게 됩니다. 만약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면, 그 느낌이 훨씬 더 강렬하고 뚜렷한데, 총체적으로 그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 도달한 효과입니다. 알아들으셨죠?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 왔지만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고, 입만 열면 바깥일을 말합니다. 제지하지 않으면 본론을 말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계속 바깥일을 말하며, 하나님 믿는 일은 입 밖에도 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있을까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에 부딪히든 어떤 어려움이 임하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단지 사람의 방법으로 이렇게 처리하고 저렇게 해결하며, 갖은 방법으로 연줄을 대어 길을 찾고 사람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하나님께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지위가 없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고 하나님께 득죄하는 것임을 알지만, 그 사람은 감각이 전혀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더구나 없습니다. 그럼 그런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 어떻게 봅니까? 첫 번째로 무엇을 봐야 합니까? 먼저 그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즉 그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연애할 때 연애 편지에 “당신의 마음속에 제 자리가 있어요? 마음 한구석에 쪼그만 자리가 있어도 되요. 그래도 당신의 마음에 제가 있다는 걸 증명하니까요”라고 합니다. 대상자를 찾을 때에는 이렇게 요구하지만, 하나님을 믿은 후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지위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마음속의 첫자리, 마음속의 중심을 차지해야 한다고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깥일은 끝도 없이 며칠 동안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입 밖에도 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께 득죄하는 것인데,자신은 감각이 없고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집에서 진리를 많이 교통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진리의 교통을 들을수록 더 많이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는데, 그 사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얼마나 조급한지, 하나님이 어떤 일에서 사람에게 어떻게 부탁하셨는지,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이셨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그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을 꺼내지도 않으며, 하나님 집의 사역을 3개월이나 6개월 지체해도 괜찮다고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데,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그 몇 가지가 모두 없으니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 몇 년 있었는데, 왜 그 사람을 도태시키지 않았을까요?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이 교회에 붙어 있기만 하면 그 사람을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적그리스도나 악인이었다면 교회에서 진작 출교시켰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출교시키지 않은 사람은 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논법이 맞습니까? 틀립니다. 왜 틀립니까? 교회에서 사람을 출교시키는 데는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방해하거나 악을 저지르는 사람만 출교시킵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어떤 뚜렷한 악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출교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큰 악을 저지르지 않았으니 출교시키지 않고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교당하지 않은 사람이 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그런 사람은 교회에서 출교당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대재난이 임하면 멸망됩니다. 대재난이 임할 때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모두 도태되고 징벌받고 죽게 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일을 처리할 때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고,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성미대로 하거나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성도의 품위에 맞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본분을 할 때, 일하거나 말할 때 다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일을 처리할 때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고,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성미대로 하거나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성도의 품위에 맞지 않는다.”라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을 믿으면 경건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경건’은 어떤 표현을 가리킵니까?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몇 가지 표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일을 처리할 때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고”, 여기서 신중하고 조심스럽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찾고 구하는 것이고, 기도를 통하여 진리를 찾고 구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근거를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찾고 구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중하고 조심하는 것입니다.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고”, 이것도 진리를 찾고 구함으로써 도달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습니까? 원칙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에 맞고 성도의 품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 아래에 “안 된다”라고 하셨는데, “안 된다”는 가장 큰 금물을 가리킵니다. 크리스천의 가장 큰 금물은 무엇입니까? 성미대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미대로 하거나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된다.” 성미대로 하는 것은 성도의 품위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바로 성미대로 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날 수 있으면, 성미대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진리를 찾고 구하면, 성미대로 하지 않게 됩니다. 크리스천이 범사에서 기도하고 진리를 찾고 구하면, 성미대로 하지 않도록 자신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성미대로 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제멋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까? 자신의 성미대로 하는 것은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까?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하면 성도의 품위에 맞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성도의 일처리 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보세요. 그렇게 하는 사람은 정상 사람의 표현이 조금도 없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 없으며, 그런 사람은 성도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도의 품위에 맞아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낸 것이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낸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 바로 성도의 품위입니다.

하나님은 또 “사람은 하나님의 명의를 내걸고 도처에서 제멋대로 날뛰어서는 안 되고, 도처에서 허세를 부리며 다른 사람을 기만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가장 패역한 행위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의를 내걸고’에는 몇 가지 논법이 있습니다. 직접 사람에게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장소에서나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 신변의 사람이에요” “저는 하나님과 관계가 가장 좋아요”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에요” 이 몇 가지 논법이 다 하나님의 명의를 내거는 것이 아닙니까? 다 하나님의 명의를 내거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저는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을 알아요. 그분은 저와 한 고향 사람이에요. 전에 저는 늘 그분을 대접했고, 그분이 제 집에 머문 적도 있어요. 저는 그분과 사이가 괜찮아요. 제가 그분에게 무슨 말을 하면 다 통하고, 다른 사람이 말하면 소용없어요. 제가 그분에게 고발하면 당신은 끝장이예요” 이것도 하나님의 명의를 내거는 것이 아닙니까? 60여세 된 사람이 “저는 하나님을 대접한 적도 있고 상면의 형제님을 대접한 적도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듣더니 “와! 대단하네요. 하나님을 대접한 적도 있고 형제님을 대접한 적도 있다니요. 우리가 이 사람을 잘 대해야겠네요. 이 사람에게 순복하고 이 사람을 공손한 태도로 상대해야겠네요. 이 사람을 득죄하면 안 되요. 이 사람 득죄했다가 뒤에서 고발하면 우리 큰일 나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공손한 태도로 상대하고 아주 잘 대접합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의를 내걸고 도처에서 제멋대로 날뛰고, 도처에서 허세를 부리며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그 사람을 폭로했습니다. 그 사람은 후안무치한 자입니다! 제가 그 사람을 만난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전혀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람을 발탁하지 않았고 중용한 적도 없습니다. 사실 저를 대접했던 사람은 많습니다.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있거나 혹은 그 집에 가서 좀 앉아 있거나 그 집에서 예배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대접이라 할 수 있습니까? 제가 그 사람들과 예배한 적이 있거나 혹은 거기서 잠시 이틀 머문 적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접의 명의를 내거는 것은 하나님의 명의를 내거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것들은 다 “하나님의 명의를 내걸고 도처에서 제멋대로 날뛰고, 도처에서 허세를 부리며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은 종종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대단하다고 여기면서 그 사람을 공손한 태도로 상대하고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다 순복하고 잘 대접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럼 다시 그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와, 하나님 믿은 시간이 꽤 오래 된 것 같네요. 그럼 하나님의 사역을 많이 경력했으니 얻은 게 많겠네요. 우리에게 경력한 간증을 좀 얘기해 주시겠어요? 하나님에 대해 어떤 인식이 있나요? 얘기해 주세요. 우리에게 진리가 부족해서 그러는데 좀 공급해 주시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그 말을 들으면 ‘아휴, 이번에 큰일 났네. 내가 하나님을 대접했다고 하니, 사람들은 내가 진리를 많이 아는 줄 아네. 난 진리가 없는데. 그동안 허세를 부리고 기만하기만 했지, 진리가 어디 있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면 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까? 그 사람에게 간증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말하라고 하면 난처할 것이고, 자신에게 진리가 없으니 그 때는 바로 말을 바꿀 것입니다. “대접한 적은 있어요. 하지만 저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별로 얻은게 없어요.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그동안 흐리멍덩하게 믿었어요. 제가 바로 흐리멍덩하게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제 말을 진담으로 여기지 마세요.” 이처럼 속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제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았죠?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가장 패역한 행위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가장 패역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증오하는 것이 바로 이 부류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뒤에서 그런 말을 하고, 게다가 다들 그런 사람을 높이 본다는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나서 바로 그 사람을 폭로하고 처리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본분을 하게 하면 안 됩니다. 만약 그 사람이 많은 악을 행했다면 바로 출교시킬 것입니다.

이전:151-A-6

다음:151-A-8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