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러분이 예수님이 육신으로 돌아오셨다고 증거하는데, 그럼 주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까? 듣기보다 직접 봐야 믿음이 간다고, 아직 우리 눈으로 확인된 일이 아니므로 주님은 돌아오지 않으신 겁니다. 눈으로 확인되면 믿겠습니다.

성경 참고: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6~11)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6~29)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는 말세에 사람에게 진리의 성령을 보낼 것이라고 하였는데, 지금이 바로 말세이다. 너는 진리의 성령이 어떻게 말씀하는지, 어디에 나타나 사역하는지 아느냐? 그 당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할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만 했지 신약시대에 ‘예수’라는 이가 강생할 것이라는 말은 없었다. 왜 ‘예수’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겠느냐? 구약에는 그런 단어가 전혀 없는데도 너는 왜 예수를 믿었느냐? 설마 예수를 보기라도 했단 말이냐? 아니면 계시라도 받은 것이냐? 하나님이 너를 그 정도로 은혜롭게 대해 주었단 말이냐? 너에게 그렇게 큰 축복을 내렸단 말이냐? 너는 무엇을 근거로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 그럼 오늘날의 성육신은 왜 믿지 못하느냐? 어째서 너는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못했으니 하나님이 성육신했을 리 없다고 말하느냐? 하나님이 사역할 때 반드시 사람에게 먼저 알려야 하느냐? 반드시 사람의 동의를 거쳐야 하느냐? 이사야는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고 말했을 뿐, 마리아를 통해 예수가 태어난다는 예언은 하지 않았다. 너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를 믿게 된 것이냐? 아무 생각 없이 믿은 것은 아니겠지?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중에서

도마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도 그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늘 의심하며 믿지 못했다. 하나님에 대한 도마의 믿음은 직접 보고 만져 봐야 하는 기반 위에 세워져 있었다. 예수는 이러한 자들의 믿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하늘의 하나님만을 믿을 뿐, 하나님이 보낸 성육신한 그리스도는 전혀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믿게 하기 위해, 예수는 도마에게 손을 뻗어 그의 옆구리를 만져 보게 한 것이다. 예수의 부활 전과 부활 후, 도마의 의심에 변화가 있었느냐? 그는 줄곧 의심하고 있었다. 예수의 영체가 친히 나타나 직접 몸에 난 못 자국을 만져 보게 하는 것 말고는, 도마의 의심을 해결하거나 내려놓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예수는 도마에게 자신의 옆구리를 만져 못 자국을 느껴 보게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도마의 의심은 완전히 사라졌고, 예수가 부활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한, 도마는 예수가 진정한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이 입은 육신임을 인정하고 믿게 되었다. 그때 도마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와 만나 함께하며 그를 따르고 알아 갈 기회와 그리스도에 의해 온전케 될 기회를 영원히 놓치고 말았다. 예수의 현현과 이 말씀은 의심 많은 자들의 믿음에 결론을 내렸고 심판을 행했다. 그는 의심 많은 자들과, 하늘의 하나님만을 믿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자신의 실제 말씀과 행사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 주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이 의심을 품은 채 따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완전히 믿게 되는 날은 오직 하나님의 사역이 대성공을 거둔 날일 것이며, 그날은 당연히 그들의 의심이 심판받는 날일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태도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었고, 완고한 의심으로 인해 그들의 믿음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강퍅함으로 인해 그들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하늘의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단지 그림 속 떡으로 허기를 채우려는 헛수고에 불과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의심이야말로 하나님을 대하는 그들의 진정한 자세이기 때문에, 설령 예수의 몸에 난 못 자국을 만졌을지라도 그들의 믿음은 헛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결말은 ‘깨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로 묘사할 수밖에 없다. 예수가 도마에게 한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아주 명확한 사실을 알려 주었다. 즉, 부활한 예수는 당시 33년 반 동안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한 바로 그 예수이며,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 부활했어도 그의 모든 면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몸에 못 자국이 생기고 부활하여 무덤에서 나왔지만, 그의 성품이나 사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사람에 대한 마음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사람에게 자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왔으며 죄와 고난과 죽음을 이겼음을 알려 주었다. 그의 못 자국이 바로 사탄을 이긴 증거이며, 속죄 제물이 되어 전 인류를 성공적으로 구속했다는 증거였다. 그는 사람에게 그가 이미 인류의 죄를 짊어졌으며, 구속 사역을 완수했음을 알려 주었다. 돌아와서 제자들을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의 현현으로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 나는 오늘 실제로 너희 앞에 서 있기에 너희가 보고 만질 수 있다. 나는 너희와 늘 함께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예수는 또 도마의 일을 통해 후세 사람들에게 훈계하고자 했다. 즉, 예수를 믿으면서 그를 보거나 만질 수는 없지만, 진실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고 예수를 볼 수 있으며, 그러한 사람은 복 있는 자임을 알려 준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가 도마에게 나타난 사건은 은혜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예수의 현현과 그가 도마에게 한 말씀이 후세 사람들에게 준 영향은 매우 크며, 그 의미도 영구적이다. 도마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의심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들은 의심이 많고 음흉하고 간교하여 하나님이 이룰 수 있는 일들을 믿지 않으며,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믿지 않고, 또한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그들의 의심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그들이 의심 많고 간교한 사람임을 깨닫고 인식하고 인정하며, 나아가 예수의 존재와 부활을 진실로 믿도록 기회를 주었다. 도마의 사건은 후세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이자 메시지로, 도마처럼 의심을 품으면 어둠 속에 빠지게 되니 그런 자가 되지 말라고 더 많은 사람에게 주의를 주고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도마처럼 주의 옆구리를 만져 보고 못 자국을 느껴 봐야만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고 검증하거나 가늠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떠날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사람에게 도마처럼 눈으로 확인해야만 믿는 그런 자가 되지 말고, 순수하고 정직한 자가 되라고 요구했으며,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오로지 믿고 따르는 자는 복되다고 했다. 이는 사람에 대한 예수의 아주 작은 요구였고,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 주는 훈계였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으냐?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만 믿었을 뿐 생명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메시야를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이유는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욱이 메시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본 적도, 메시야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에 메시야란 이름만을 헛되이 지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시야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또한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그들의 원칙은 ‘당신이 전하는 도가 아무리 대단하고, 당신의 권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관점 아니냐? 다시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는 예수를 털끝만큼도 알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너희도 당시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너무도 쉽게 저지르지 않겠느냐? 너는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느냐? 정말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 보증할 수 있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줄 아느냐?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지 않을지 모른다면, 나는 네가 이미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메시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대적하고, 저버리고, 비방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저버리고 모욕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여길 수도 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다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두렵지 않으냐? 너희는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훼손하고, 예수가 선포한 말씀을 경멸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너희가 이처럼 미망에 빠져 있는데 예수에게서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욥은 하나님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다

욥 9: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욥 23:8~9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욥 42:2~6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욥은 하나님의 주재를 믿었다

위의 구절들에서 주요 내용이 무엇인지 보았느냐?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 있느냐? 먼저 욥이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주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보자. 이 2가지 문제를 설명해 주는 구절이 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5~6). 이 구절에서 우리는 욥이 전해지는 말을 통해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을 뿐,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 후 그는 삶 속에서, 그리고 만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여기에서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무엇이냐? 욥이 비록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걷기는 했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본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의 사람들과 같지 않으냐? 욥은 하나님을 본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존재를 전해 듣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지,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이는 주관적인 요소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가 하나님을 따랐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그에게 나타나거나 그와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이것이 사실 아니더냐? 하나님은 그와 얘기를 나누지도, 그에게 어떤 명령을 하지도 않았지만, 욥은 만물을 통해서, 그리고 자신이 들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주재를 보았으며, 그것을 계기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삶을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욥이 하나님을 따르게 된 전말과 과정이다. …

하나님에 대한 욥의 믿음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았다

다음 구절에 또 욥의 이런 말이 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욥 23:8~9). 이 기록을 보면, 욥의 체험에서 하나님은 시종일관 숨어 있었고, 그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거나 아무 말씀을 한 적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욥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했다. 그는 늘 하나님이 그의 앞을 지나가거나 그의 우편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그의 곁에서 그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듯 욥은 하나님을 본 적이 없으면서도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 있었다. 이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그렇겠느냐?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지도, 나타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욥에게 진정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는 계속해서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도를 지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사실 아니겠느냐? 너는 욥의 이러한 말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느냐? 욥의 순전함과 정직함, 그가 하나님 앞에서 보인 의로움은 하나님이 과장한 것이 아니라 진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느냐? 그를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 나타나지 않았고, 그에게 말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의연하게 자신의 순전함과 정직함을 지키며, 하나님의 주재를 믿었다. 또한, 하나님께 죄지을까 두려워 항상 번제를 드리고,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였다. 하나님을 본 적이 없음에도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이 사실에서 욥이 얼마나 긍정적인 것을 좋아했는지, 얼마나 믿음이 확고하고 실제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욥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 적이 없고,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믿음을 잃거나 하나님을 버린 적도 없다. 그는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숨겨진 사역 가운데서 하나님의 존재를 체험했으며, 하나님의 주재와 능력을 느꼈다. 그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난 적이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가는 것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또 그는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현현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라고 요구한 적도 없다. 그는 이미 만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주재를 보았고, 다른 사람이 받지 못한 복과 은혜를 얻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하나님은 언제나처럼 그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욥의 믿음은 흔들린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어떤 사람도 얻지 못한 성과, 곧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의 자취를 찾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자취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이 나타나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자취를 찾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을 간과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진리를 얻고 나서도 하나님의 자취를 찾았다 생각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이 나타난 것으로 인정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인가! 하나님이 사람의 관념대로 나타날 리도 없고, 사람의 요구에 따라 나타날 리는 더더욱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택과 계획, 그리고 자신의 목표와 방식에 따라 사역을 한다. 그는 어떤 사역을 하든 사람과 의논할 필요가 없고, 사람의 의견을 구할 필요도 없으며,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알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자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바이다. 하나님이 나타난 것을 보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고자 한다면 먼저 스스로의 관념에서 빠져나와야 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을 너의 범주 안에 한정하거나 너의 관념 속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대신 하나님의 자취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하나님이 나타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에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아니며 또 진리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찾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뿐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1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 중에서

이런 일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우리 각 사람이 먼저 알아야 할 진리는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해야 할 사역을 가져오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어떠함을 나타낼 것이며, 성육신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생명을 베풀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않은 육신이라면 분명히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그가 나타내는 성품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혹은 참도가 맞는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의 본질로 판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아닌지의 핵심은 그 본질(사역, 말씀, 성품 등 훨씬 다양한 측면)에 있지, 겉모습에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겉모습을 살피느라 그 본질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무지몽매한 것이다. 겉모습은 본질을 결정할 수 없다. 더구나 하나님이 한 사역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할 리도 없다. 예수의 겉모습이 바로 사람의 관념에 어긋나는 모습 아니더냐? 예수의 용모와 차림새는 예수의 진짜 신분을 설명할 수 없지 않더냐? 당시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것도 예수의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의 겉모습만 봤기 때문 아니더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서문> 중에서

이전: 2. 주님의 재림에 관해서는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주님이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는데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알게 된 것입니까?

다음: 4. 오랫동안 주님을 믿으면서 우리는 주님 위해 열심히 일해 왔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깨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에게 먼저 계시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죠. 지금 당신들은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다고 증거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계시를 받지 못했습니까? 우리가 계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주님께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설마 우리가 잘못 이해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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