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밝힌 말씀

331)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극히 적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사람은 ‘하나님’이라는 글자를 알고 ‘하나님의 사역’과 같은 말도 알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사역은 더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모두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도 당연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일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일이 사람에게 너무 생소하고 낯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요구에서 한참 멀어지게 됐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사역을 모르면,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임 받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것의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 단순한 신앙으로,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띤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로 믿는 것을 기초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체험하여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종종 하나님을 믿는 일을 아주 쉽고 가볍게 본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의미를 잃었으며, 마지막까지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들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도 글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텅 빈 도리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에게 하나님을 믿는 실체가 없고 자신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평안과 풍성한 은혜를 얻을 수 있게 지켜 달라고 하느님(원문: 上帝)에게 기도하고 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차분히 하고 생각해 보자. 하나님을 믿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겠느냐?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함의가 고작 더 많은 은혜를 얻는 것에만 국한되겠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332) 오늘날,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너의 생명 실제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를 알고 진실로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존경스러움을 알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행하는 사역이 구원이요, 온전케 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데에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로 육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고, 패괴된 삶에서 하나님 말씀의 생명 안에서 사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다. 또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돌봄과 보호 아래에서 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육체를 따르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함으로써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영광이 너에게 나타나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이적과 기사를 보려고 하거나 육적인 것을 위하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주로 이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하나님에 대해 더 알게 되는데, 그런 뒤에야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목적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이적과 기사를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의 실제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실행하고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목적에 이른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 매사에 순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네가 불평 없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베드로의 분량에 이르러 하나님이 말씀한 것과 같은 베드로의 풍격을 갖게 되면, 이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이는 네가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의미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 중에서

333)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체험하며 그의 말씀을 살아 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떠벌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도 못하고 실제적인 것을 내놓지도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떡으로 배를 불리는 것’에 불과하다. 사소한 간증과 쓸모없는 것, 외적인 것들만 말하고 실제적인 것이 조금도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길을 전혀 찾지 못한 것이다. 어째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셔야 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는 않고 하늘나라에 가려고만 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아도 온전케 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 말씀이 실제가 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이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최소한 갖춰야 할 것은 겉으로 보기에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갖추는 것이다. 어찌 됐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못한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것도 전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룰 수 있다. 앞으로는 각 나라 각 교파, 각 종교 각 분야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복될 것이다. 하나님은 직접 말씀할 것이며, 모든 사람은 손에 하나님 말씀을 받들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할 것이므로 안팎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될 것이다.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실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며, 마음속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있으니, 이것이 곧 안팎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젖어 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온전케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실제로 행하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나라시대는 말씀 시대이다> 중에서

334) 오늘 실제 하나님을 믿고자 한다면 반드시 정상 궤도에 진입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저 복만 얻고자 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나님을 알고자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깨우침과 개인의 추구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을 참되게 알며, 진심에서 우러나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이 생겨날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하나님에 대한 네 사랑이 가장 참되어 아무도 그 사랑을 파괴하거나 방해할 수 없을 때, 하나님에 대한 너의 믿음은 정상 궤도에 진입했고, 네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이 입증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네 마음이 이미 하나님께 사로잡혀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너를 점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의 체험을 통해, 너의 대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너에게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우러날 때면, 너는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 말씀의 빛 속에서 살게 된다. 어둠의 권세를 벗어나야 하나님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러한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너희들 개개인의 책무이다. 너희는 현재 모습에 만족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딴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마땅히 어디서든 하나님을 생각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마음에 두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위하고, 말하고 일할 때 하나님 집의 이익을 우선으로 해야만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는다면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 중에서

335)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고난받는 것,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 또는 육체가 평안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우며 편안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져야 할 목적이 아니다. 네가 이렇게 믿고 있다면 너의 관점은 바르지 않은 것이며, 너는 절대로 온전케 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묘함과 난측함에 대해 알아야 한다. 또한 이런 인식을 통해 네 마음속에 있는 개인적인 요구와 소망, 관념을 없애야 한다. 이런 것을 없애야만 하나님이 요구한 조건을 갖출 수 있고, 이것을 통해서만 생명을 가질 수 있으며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고, 하나님이 요구한 성품으로 살기 위함이다. 그래서 자격 없는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통해 그의 행사와 영광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옳은 관점이자 네가 추구하는 목표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관점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얻고자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대로 살아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보고, 하나님이 우주 전체에서 행하는 기묘한 행사와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실제 사역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실제 체험을 통해 그가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하는지, 사람에 대한 그의 뜻이 무엇인지 느끼게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하기 위함이다. 네 안의 불결하고 불의한 것을 벗어 버리고 너의 옳지 못한 속셈을 버리며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참된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를 믿지 않는다면 그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 이왕에 하나님을 믿는다면 흐리멍덩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믿어서 복을 받을 수 있겠다 싶으면 바로 열의가 생겨나고, 연단받는 것을 보면 바로 열의가 사라지는 이들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하나님을 믿으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있고, 수많은 종교 관념을 버리지 못하며, 개인적인 이익을 놓지 않고, 육적인 복이 내리기를 바라면서 하나님께 너의 육과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한다면, 이는 전부 관점이 바르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육적인 이익만 추구할 뿐,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종교 신앙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이는 전혀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겠다는 마음과 자기를 버리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이 두 가지를 갖추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고, 성품이 변화될 수도 없다.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336) 오랜 세월 나는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을 보아 왔다. 그들은 하나님을 무엇으로 믿어 왔느냐?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공기처럼 대하며 믿어 왔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답이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느끼지도 의식하지도 못했고, 분명한 깨달음과 인식은 더 말할 나위도 없으며, 잠재의식상에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람처럼 대하며 믿어 왔다. 즉,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은 하나님도 하지 못한다고 여기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하나님도 생각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또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을 목석으로 대하며 믿어 왔다. 그들은 하나님에겐 희로애락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석상 같아서 어떤 일에도 태도나 관점이나 생각이 없고, 사람의 뜻에 지배당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위대한 존재로 여겼다가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겼다가 하며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과 사랑이 필요할 때는 하나님이 마땅히 긍휼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머리로 ‘하나님’을 상상해 낸다. 그렇게 상상해 낸 ‘하나님’이 자신들의 필요를 공급할 수 있게 하고, 자신들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게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이런 상상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을 믿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으면서도 하나님이 구원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량없고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로우니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거슬러도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잘못, 과오, 패역은 일시적으로 드러난 성품이니 하나님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관용을 베풀고 인내할 것이고, 예전처럼 사랑할 것이므로 여전히 구원받을 가망이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믿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입장에선 사람에 대해 부정하는 태도를 취한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동안 하나님 말씀 책을 보배처럼 여기면서 날마다 보고 읽었겠지만, 막상 진정한 하나님은 한쪽에 방치해 두고 그를 공기처럼, 사람처럼 여겼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아예 목석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내 눈으로 본 바에 의하면 일이 닥치든, 어떤 환경을 만나든, 너희의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과 내면에서 나오는 것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무관했기 때문이다. 너는 그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자신의 관점이 무엇인지만 안다.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억지로 하나님께 씌워 하나님의 관점이라고 할 뿐만 아니라 그 관점을 준칙으로 여겨 고수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너는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337) 하나님을 믿는 것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냐? 많은 이들은 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실제 하나님과 하늘의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또는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께 어느 정도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순종은 조건부 순종이자, 개인의 앞날을 전제로 한 순종이며, 어쩔 수 없이 순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대체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느냐? 네가 그저 장래와 운명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면 차라리 믿지 않는 것이 낫다. 너의 그런 ‘믿음’은 자기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고, 자기 위안이며 자아도취다. 너의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너는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인해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구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실천하라고 요구하는데, 이는 모두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만약 네 본심이 정말 이러하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를 높이고 너에게 은혜를 베풀 것이다. 이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고, 누구도 바꿀 수 없다. 만약 네 본심이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네가 말하고 행동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 심지어 너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너의 말투가 부드럽고, 태도가 온화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너의 일거수일투족과 표정이 적절하여 순종하는 자처럼 보이더라도, 너의 본심과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서 본다면 네가 한 모든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것이다. 겉으로 양과 같이 순종하면서 마음속에는 악의를 품고 있다면, 그런 사람은 양의 탈을 쓴 늑대이며, 직접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단 한 명도 용서하지 않는다. 성령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이들을 한 명씩 드러낼 것이다. 외식하는 자는 반드시 성령께 버림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처벌하고 해결할 것이니 누구도 걱정하지 말라.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중에서

338)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가장 큰 병폐는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실생활 속에 하나님이 전혀 없는 것이다. 사람은 분명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서 사람의 실생활 속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입으로는 하나님께 적잖게 기도하지만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는 매우 하찮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사람에게 시련을 준다. 이는 사람이 정결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사람에게 시련을 주는 것인데, 사람들이 시련 속에서 부끄러움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인식하게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모두 천사장의 후예가 되어 날이 갈수록 패괴될 것이다. 사람마다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끊임없는 정결 과정을 거쳐 개인의 많은 속셈과 목적을 제거하게 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어느 한 사람도 전혀 쓸 수 없으며, 하나님이 해야 할 사역을 사람에게 전혀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정결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스스로를 알게 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런 다음에야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의 내면에 만들어지고,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일이 사람들이 말하듯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네가 그저 인식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으며, 자신의 인식에만 머물러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을 뜻하고, 네 마음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최종 목적이고 사람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너는 살아 내는 면에서 노력을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네가 그저 도리만 안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야말로 공허한 일일 뿐이다. 네가 여기서 더 나아가 실행하고 살아 내야만 완전한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다고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는다면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 중에서

339) 네가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고자 해야 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이상, 너는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고, 개인적인 선택과 요구가 없어야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야 한다. 너는 지음 받은 사람인 이상 너를 지은 창조주께 순종해야 한다. 너는 원래부터 너 자신을 주관할 수 없고, 너의 운명을 지배할 본능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이상 성결해지고 변화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너는 피조물인 이상 자신의 본분을 지키고 분수를 알아야 하며 자신의 본분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 이것은 너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고 교조적인 것으로 너를 억압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네가 본분을 이행하는 경로이자, 의를 행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340)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기본은 마음이 정직하며, 완전히 헌신하고 진심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하기 힘든 일은 일생을 바쳐 참된 믿음을 얻음으로써 모든 진리를 얻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패한 사람들이 도달하지 못한 것이고, 더욱이 그리스도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는 것에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창조주를 위해 본분을 이행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보고서도 피해 자기 자신의 길을 가기 때문에, 늘 실패한 사람이 갔던 길을 따라 추구하기 때문에, 또 늘 하늘을 거역하기 때문에 항상 실패하고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며 자신의 올무에 빠진다.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를 이해하고 체험하는 데에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바울을 너무나 숭상하는 데다가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늘 무턱대고 그리스도가 사람에게 순종하기를 바라고 하나님을 좌지우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위대한 위인들과 인간 세상의 풍파를 겪은 사람들마저도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형벌 속에서 죽었다. 나는 그들이 모두 비명에 죽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결말, 즉 그들의 죽음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들의 실패는 더더욱 하늘의 이치로 용납할 수 없는 일 아니겠느냐? 진리는 인간 세상에서 온 것이지만, 인간 세상의 진리는 그리스도가 전한 것이고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진리를 공급할 뿐, 사람이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까지는 결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리를 얻는 데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본래 그리스도와는 무관한 일이며,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사람의 종착지나 성패를 모두 하나님께 떠맡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일이 아니라 피조물이 이행해야 하는 본분과 직접 연관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울과 베드로, 이 두 사람의 추구와 종착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그들의 결과만 알 뿐, 그들의 성공 비결이나 실패의 원인은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이 추구한 본질에 대해 명확하게 알지 못하면 너희의 추구도 대부분 실패할 것이고, 설령 소수의 사람들이 성공할지라도 베드로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네가 추구하는 길이 옳은 길이라면 성공할 희망이 있지만, 네가 진리 추구를 위해 가는 길이 잘못된 길이라면 너는 영영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또 바울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341)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또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진리를 실천하며 네 본분을 다 이행해야 하며, 그뿐만 아니라 네가 체험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책망, 징계, 심판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누릴 줄만 알 뿐, 하나님이 언제 너를 징계하고 책망하는지 느끼지 못해서는 안 된다. 네가 이번 연단에서 바른 입장을 견지했더라도 거기서 그치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공과는 끝이 없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일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후에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사람의 상상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사역을 통해 사람을 연단하면 사람은 고통을 받는다. 사람이 받는 연단이 클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지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큰 능력이 더 많이 나타난다. 반대로 받는 연단이 적을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작아지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큰 능력도 더 적게 나타난다. 많은 연단을 받을수록, 큰 고난을 받을수록, 많은 시달림을 받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더 갖게 되며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된다. 체험하는 과정에서, 너는 큰 연단과 고통을 받고 많은 책망과 징계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고 하나님에 대해 더 깊고 분명하게 알게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책망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인식이 매우 얕은 관계로 “하나님은 참 좋은 분이십니다.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어 그분을 누리게 하십니다.”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한다. 책망과 징계를 겪은 후에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기묘할수록 더욱 가치와 의의가 있고, 네가 헤아릴 수 없고 너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을수록 더욱 너를 정복하고 얻을 수 있으며 온전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매우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사람을 이렇게 연단하지 않고 이 방식대로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성과도, 의미도 없을 것이다. 예전에 하나님은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택하였고 또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세에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 특별한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너희에게 큰 사역을 행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사랑이 더 깊어지고 순결해지며, 하나님이 큰 사역을 행할수록 사람이 그의 지혜를 더 잘 깨닫게 되고 그에 대한 인식도 깊어진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342)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야 한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하는 그 수많은 사역이 모두 온전케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연단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더욱이 형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며, 사람이 누리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엄한 말씀이다. 하나님이 왔으니 사람은 하나님의 위엄과 진노를 누려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엄하든,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기 위해서 왔다.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고, 연단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며, 시련이 있을 때마다 사람이 가져야 할 간증을 지키고, 하나님을 위해 힘 있게 증거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기는 자다. 하나님이 어떻게 연단하든 너는 믿음이 넘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즉, 사람이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고 항상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기는 자다. 하나님이 말하는 이기는 자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탄의 포위 공격 아래에서, 그러니까 흑암 세력 속에서도 굳게 설 수 있고 원래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다.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을 지킬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말하는 이기는 자다. 하나님이 너를 축복해 줄 때는 잘 추구하다가 하나님이 축복해 주지 않을 때 물러선다면, 이것이 정결한 것이겠느냐? 참도라고 확신했다면 끝까지 가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지켜야 하며, 하나님이 친히 너를 온전케 하려고 이 땅에 왔음을 알았다면 마땅히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혹여 마지막에 네게 나쁜 결말을 주더라도 네가 계속 따를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결을 지킨 것이다. 거룩한 영체, 정결한 동정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진심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진심이 곧 정결함이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바로 정결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네가 실천해야 하는 바이다. 기도해야 할 때는 기도하고, 예배하고 교제해야 할 때는 예배하고 교제하며, 찬송을 불러야 할 때는 찬송을 부를 수 있다면, 육을 버려야 할 때 육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할 때 건성으로 하지 않으며, 시련이 닥쳤을 때 굳게 설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지켜야 한다> 중에서

343) 모세가 반석을 쳤을 때 여호와가 베풀어 준 물이 솟아 나온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다윗이 비파와 수금으로 나, 여호와를 찬양했을뿐더러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던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욥이 산을 가득 채운 우양과 많은 가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난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나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나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영광의 증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요한이 인자의 영광의 형상을 보게 된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말세의 이상(異象)을 보게 된 것은 더더욱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이방의 백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나의 계시를 받고, 내가 이미 육신으로 돌아와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도 그들의 믿음 때문이다. 나의 엄한 말에 매를 맞아도 위안을 얻고 구원받는 사람들 또한 믿음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아니겠느냐?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것을 얻었다. 꼭 복만 얻은 것은 아니다. 다윗처럼 기쁨과 환희를 얻었을 수도 있고, 모세처럼 여호와가 베풀어 준 물을 얻었을 수도 있다. 욥과 같은 경우도 있다. 그는 믿음으로 인해 여호와가 베풀어 준 복도 얻었고, 재앙도 입었다. 하지만 복을 받든 화를 입든 다 복이 있는 일이다. 믿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너는 이 정복 사역을 받아들일 수 없고, 오늘날 너의 눈앞에 나타난 여호와의 행사는 더더욱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볼 수도 없고 더욱이 얻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화와 재난, 모든 심판이 너에게 임하지 않았다면, 네가 오늘날 여호와의 행사를 볼 수 있었겠느냐? 오늘날 너는 믿음으로 인해 정복되었고, 또 정복됨으로 인해 여호와의 모든 행사를 믿게 되었다. 너는 믿음으로 인해 이런 형벌과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또한 너는 이런 형벌과 심판으로 인해 정복되고 온전케 된다. 오늘날의 이런 형벌과 심판이 없었다면 너의 믿음은 모두 부질없을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믿는다고 한들 실제가 없는 텅 빈 글귀이기 때문이다. 네가 이런 정복 사역을 받아들이고 완전히 순종하게 되어야만 너의 믿음이 진실하고 확실한 것이며, 너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 것이다. ‘믿음’ 때문에 많은 심판이나 저주를 받았을지라도 너는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가장 참되고 가장 알차고 가장 귀한 것을 얻게 되었다. 너는 심판 가운데서 비로소 피조물의 종착지를 알게 되었고, 창조주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되었다. 또 너는 이러한 정복 사역 가운데서 하나님의 팔을 보게 되었으며, 인생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 가운데서 인생의 바른길을 얻었고, ‘사람’의 참뜻도 깨닫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 가운데서 전능자의 공의 성품과 아름다운 얼굴을 보게 되었으며, 사람의 근원과 전 인류의 ‘불후의 역사’도 알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 가운데서 인류의 조상과 인류가 패괴된 기원을 알게 되었으며, 희락과 위안을 얻었다. 또한 끝없는 채찍질과 징계도 받았고, 창조주가 지음 받은 인류에게 하는 질책의 말씀도 듣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 사역 가운데서 축복은 물론,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화도 입었다…. 이 모든 것이 너의 그 작은 믿음으로 인한 것 아니더냐? 이런 것들을 얻음으로 인해 너의 믿음도 커지지 않았더냐? 네가 얻은 것이 매우 많지 않더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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