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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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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을 알아 가는 데 관한 대표적인 말씀

2)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관한 말씀

(259) 공의란 바로 거룩함이자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이다. 하나님은 더러운 자와 변화되지 않은 자를 모두 싫어한다. 공의로운 성품은 법률이 아니라 행정으로, 하나님나라의 행정이다. 이런 행정은 진리가 없고 변화가 없는 모든 자에게는 공의로운 징벌이어서 돌이킬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사람이 각기 부류대로 나뉠 때, 상선벌악(賞善罰惡)한다. 그때는 인류의 종착지가 드러나는 때이자 구원 사역이 끝나는 때이므로 그 후로는 더 이상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지 않고 악을 행한 모든 사람을 응징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260)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과 하나님의 위엄은 하나님 자신만의 본질이고,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 자신만의 성품이다. 하나님이 노하는 원칙은 하나님 자신만의 신분과 지위를 뜻하며, 그가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상징한다는 것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의 본질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고 지리적 위치로 인해 바뀌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고유의 성품은 하나님의 고유의 본질이다. 그가 누구에게 사역하든 간에 그의 본질과 공의로운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나님을 노하게 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 원래의 성품이다. 이때 하나님이 노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고, 그의 유일무이한 신분과 지위도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노하는 이유는 그의 본질에 변화가 생기거나 그의 성품에 다른 요소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사람이 공공연히 하나님께 도발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하나님이 봤을 때, 하나님에 대한 도전은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는 것이자 하나님의 노를 시험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할 때, 하나님과 겨룰 때, 계속해서 하나님의 노를 시험할 때가 바로 죄악이 범람할 때이며, 이때 하나님의 진노가 자연스럽게 발현하고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다는 것은 모든 사악한 세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모든 적대 세력이 멸망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이고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진노이다. 하나님의 존엄과 거룩함이 도전을 받을 때, 정의의 힘이 저지당하고 사람이 정의를 찾아볼 수 없을 때는 바로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낼 때이다. 하나님의 본질 때문에 땅에서 하나님과 겨루고 대적하고 맞서는 세력들은 모두 사악하고 패괴되고 정의롭지 않은 세력이며, 사탄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사탄에 속하는 세력이다. 하나님은 정의롭고 빛이며, 흠이 없이 거룩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악하고 패괴되고 사탄에게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게 되면 모두 소멸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261) 하나님의 진노는 감춰져 알려지지 않았지만,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지몽매한 온 인류를 주로 긍휼과 관용으로 대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대부분의 시간과 사건에서 가려져 있고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보기 아주 어렵고, 하나님의 진노를 알기도 매우 어렵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마지막 사역과 절차로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고 용서했을 때, 즉 마지막으로 긍휼을 베풀고 경고했을 때도 사람이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 대항하고 조금도 회개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으며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인내하지 않는다. 이때 하나님은 반대로 긍휼을 거두고 사람에게 진노만을 발한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의 진노를 표현할 수 있고 사람을 징벌하고 멸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불로 소돔 성을 멸망시켰다. 이 방식은 하나님이 인류나 물체를 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불을 이용해 인류를 멸한 것은 그 육체뿐 아니라 영, 혼, 육 전부를 멸하여 소돔 성 사람들이 물질세계와 사람이 볼 수 없는 세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진노를 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이런 발현은 하나님의 진노 본질의 일면이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노할 때 더 이상 그 어떤 긍휼과 자비, 관용을 베풀지 않고 인내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어떤 이유도 하나님이 계속 인내하도록 설득할 수 없고, 다시 긍휼과 관용을 베풀도록 설득할 수 없다. 그 대신 하나님은 한시도 지체 없이 그의 진노와 위엄을 나타내고, 그가 하려는 일을 하고 또한 깔끔하고 마음에 들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나타내는 방식이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일부를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걱정하고 사랑할 때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볼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느낄 수 없는데, 이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오직 긍휼, 관용, 사랑만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 성을 멸하고 인류를 증오하는 것을 보게 될 때, 인류를 멸하는 그의 노와 위엄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은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은 어떤 피조물도 상상할 수 없고, 피조물이 아닌 어떤 것도 간섭하거나 영향을 줄 수 없으며, 사칭이나 모방은 더욱 불가하다. 그러므로 이 부분의 하나님 성품을 인류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러한 성품을 갖추고 있으며 하나님만이 이런 성품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공의로운 성품을 갖춘 것은 하나님이 사악함, 암흑, 패역, 인류를 패괴시키고 집어삼키는 사탄의 온갖 악행을 증오하는 데에서 기인하며, 하나님께 대항하는 모든 죄악된 행위를 증오하는 데에서 기인하고 또 하나님의 거룩하고 무결한 본질에서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피조물이든 비피조물이든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대항하고 하나님과 겨루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설령 하나님이 긍휼히 여겼던 자일지라도, 설령 하나님이 택한 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인내와 관용의 원칙을 거슬렀다면 하나님은 가차 없이, 주저하지 않고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보여 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262)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한 측면의 표현이지만 하나님은 절대 원칙 없이, 대상의 구분 없이 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절대 쉽게 노하지 않고, 진노와 위엄을 쉽게 나타내지 않는다. 하나님의 진노에는 상당한 정도와 기준이 있다. 이는 사람이 화를 내고 울분을 쏟아 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성경에는 사람과 하나님의 대화 내용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이는 하는 말이 깊이가 없고 우매하여 어린아이 같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치지 않았고 정죄하지도 않았다. 특히, 욥이 시련을 겪는 동안 욥의 세 친구와 사람들이 욥에게 한 말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했느냐? 그들을 정죄했느냐? 그들에게 노했느냐?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욥에게 그들을 위해 간구하고 기도하라 하였고, 그들의 과실을 기억하지 않았다. 이는 패괴되고 무지한 인류를 대하는 하나님의 주요 태도를 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것은 절대 감정을 표현하거나 감정을 쏟아 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를 총체적으로 폭발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것은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기 힘들어서도, 울분이 극에 달해 쏟아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도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발현이자 참된 표현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하나님이 진노하는 분이어서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유와 원칙 없이 노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 이유도 원칙도 없이 함부로 화를 내는 것은 오히려 패괴된 인류의 전유물이다. 사람은 어떤 위치에 오르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트집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이유 없이 화를 냄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자신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어떤 자리에 오르지 못한 패괴된 인류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항상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하기 때문이다. 패괴된 인류는 항상 자신의 지위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쏟아 내고 교만한 본성을 드러낸다. 사람이 화를 내고 울분을 표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는 사람이 불만을 표현하는 방식이며, 여기에는 불순함, 음모와 계략, 패괴와 사악함, 심지어 야심과 욕망이 가득하다. 정의와 사악의 싸움에서 사람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화내지는 않는다. 바꾸어 말하자면 정의의 힘이 위협당하고 박해당하고 공격당할 때, 사람은 이를 무시하고 회피하거나 뒤로 물러선다. 하지만 사악한 세력 앞에서는 비위를 맞추고 비굴하게 굽실거린다. 그러므로 사람이 분풀이하는 것은 사악한 세력의 출구이며, 이는 육에 속한 사람의 악행이 넘쳐 나고 억제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반면,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날 때 모든 사악한 세력과 사람을 해하는 죄악은 저지당할 것이고, 하나님의 사역을 가로막는 모든 적대 세력은 드러나고 분리되고 저주받을 것이며, 하나님을 적대시한 사탄의 모든 공범자들은 징벌받고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 그에 반해 하나님의 사역은 막힘없게 되고, 하나님의 경륜은 정해진 대로 한 단계씩 앞으로 진행된다. 또한 하나님의 선민은 사탄의 교란도 미혹도 받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안정되고 평온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공급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사악한 세력이 더 이상 자생하고 판치지 못하도록 보장하며, 모든 정의와 긍정적인 사물이 존재하고 퍼져 나갈 수 있도록,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도록 보장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263) 하나님이 노할 때, 사악한 세력은 저지당하고 사악한 사물은 멸망되지만 정의롭고 긍정적인 사물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 계속 이어질 수 있다. 하나님이 진노하는 이유는 정의롭지 않고 부정적이고 사악한 사물이 정의롭고 긍정적인 사물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거나 교란시키거나 파괴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정의롭고 긍정적이며 아름답고 선한 사물의 존재를 수호하고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 규칙과 법칙을 수호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근본 원인이다. 하나님의 노는 하나님의 성품이 매우 정당하고 자연스럽게, 또 진실하게 나타난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 이면에 다른 속셈이나 교활함이나 음모가 없고 패괴된 인류에게 공존하는 욕망, 간사함, 악랄함, 폭력성, 사악함 등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노를 발하기 전에 이미 모든 일의 본질을 분명하고 뚜렷하게 보았고, 이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정의와 결론을 내렸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일에 대한 목표와 태도가 아주 명확하다. 두루뭉술하거나 맹목적이지 않고, 충동적이거나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지 않으며, 원칙이 없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 또한 하나님 진노의 실제적인 면이다. 인류는 바로 하나님 진노의 이 실제적인 면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잃게 되면 인류는 비정상적인 삶으로 추락하게 되고, 정의롭고 아름다우며 선한 모든 사물은 멸해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의 진노를 잃게 되면 피조물의 생존 법칙과 규칙이 파괴되고 심지어 완전히 뒤집어질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진 후, 하나님은 그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계속해서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을 지키고 유지하였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에는 진노와 위엄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악한 사람과 사물,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모든 것은 징벌받고 통제되고 멸망된다.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은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에서 그에게 대항하는 자, 사탄의 공범자 그리고 사탄의 종이 된 더러운 귀신과 악령을 그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끊임없이 치고 멸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해서 앞으로 이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기 때문에 인류 가운데 가장 정의로운 일이 지금까지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264)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컸든 간에,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은 그 순간 하나님의 마음은 점차 누그러져 뜻을 되돌리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을 멸할 것이라 선포하기 바로 직전, 즉 그들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 직전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점차 관용과 긍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두 성품이 하나의 일에서 동시에 나타났는데, 이는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여기서 모순되지 않음을 사람은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해야 하느냐? 완전히 다른 두 본질은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기 전과 후에 하나님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참되고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본질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태도를 통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이 어렵고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노할 때 하나님은 사람이 진실로 회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사람의 참된 회개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낌없는 긍휼과 관용을 베풀 것이다. 사람의 악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하는 자와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을 대한 일에서 하나님의 태도는 아주 명확하다. 즉,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고, 하나님은 사람의 참된 회개를 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면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리고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265) 니느웨 성 사람들도 소돔 성 사람들처럼 패괴되고 사악하고 아주 폭력적이었지만 그들이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렸고 그들을 멸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를 대하는 태도는 소돔 성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순종하고 회개하였고, 그리고 여러 면에서 진실하고 간절한 태도를 보여 주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끼는 마음이 우러나 상을 주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상을 주고 아끼는 마음을 갖는 것은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 그리고 인류에 대한 진심은 그 누구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네가 생각하는 위인이나 슈퍼맨 중에 높은 위치, 즉 위인의 입장이나 지고한 위치에 서서 인류나 피조물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가 있겠느냐? 인류 중에 누가 인류의 생존 현황을 손금 보듯 환히 알 수 있겠느냐? 누가 인류의 생존에 부담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겠느냐? 누가 성을 멸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겠느냐? 또 누가 성의 죄를 사할 자격이 있겠느냐? 누가 자신이 창조한 만물을 아낀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오직 창조주밖에 없다! 창조주만이 이 인류를 아끼고, 이 인류를 사랑하며, 창조주에게만이 이 인류를 내버리지 못하는 참된 마음이 있다. 또 창조주만이 이 인류를 긍휼히 여기고 모든 피조물을 아낀다. 그의 마음은 인류의 일거수일투족에 이끌린다. 그는 인류의 사악하고 패괴된 모습에 분노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며, 인류가 회개하고 신복하는 모습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마음을 되돌리고 축하한다. 그의 모든 마음과 생각은 인류를 위해 생기고 움직이며, 그의 소유와 어떠함은 인류를 위해 발현된다. 또한 그의 희로애락은 인류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인류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인류를 위해 조용하게 자신의 생명을 모두 바치며,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의 일분일초를 기여한다…. 그는 자신의 생명은 아낄 줄 몰랐지만 자신이 손수 창조한 인류는 늘 아껴 왔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인류에게 주었다…. 그가 조건도 보상도 없이 긍휼과 관용을 베푸는 것은 오로지 인류가 그의 눈 아래에서, 그의 생명의 공급 아래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언젠가 인류가 다시 그의 앞에 돌아와 그가 바로 인류에게 생존을 위한 자양분을 공급하고 만물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그분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266)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은 확실히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노할 때에도 사람에게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의 면을 보여 준다.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에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은 크게 긍휼을 베푼다. 사람이 심히 패괴되고 하나님을 매우 적대시하고 대적할 때 하나님은 크게 노한다. 그리고 그 노는 어느 정도로 분출될까? 그 사람의 대적과 악행이 더 이상 하나님께 보이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 눈앞에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노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노가 사라지게 된다. 즉, 누구를 막론하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의 몸과 생각이 외적으로, 또 주관적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따르고 순종하고 싶든지 간에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의 노는 끝없이 분출될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을 때, 하나님이 크게 노할 때, 하나님의 노는 걷잡을 수 없이 계속 분출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에게는 영원히 더 이상의 긍휼도 관용도 베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 성품의 일면이다. … 그는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관용과 긍휼을 베풀며, 악한 것과 죄에 속한 것, 사악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노하며, 그 노가 끊이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 성품의 가장 주된 부분이자 가장 두드러지고, 더욱이 하나님이 시종 나타내고 있는 주요 2가지 측면이다. 즉, 크게 긍휼을 베풀고 크게 노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267) 하나님은 니느웨 성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바뀌는 과정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모호함도 없었고, 순수한 진노에서 순수한 관용에 이르렀다. 여기서 하나님의 본질이 참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사역에 있어 단 한 번도 우유부단한 적이 없다. 그의 사역 원칙과 목적은 흠 없이 순결하고 투명하며, 여기에는 절대 그 어떤 계략과 음모도 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본질에는 어둠과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노한 것은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안중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진노를 거두고 그들에게 다시 관용을 베풀었을 때도 하나님이 나타낸 것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었다. 이 모든 변화는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로 인해 바뀐 것이다. 그 기간에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은 변하지 않았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고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의 본질도 바뀌지 않았다. 사람이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노하지만, 사람이 참된 회개를 하면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려 진노를 거둔다. 그러나 사람이 완고하게 하나님께 계속 대항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멸할 때까지 노를 멈추지 않는데, 하나님의 진노는 그렇게 조금씩 사람에게 가까워진다. 이 또한 하나님 성품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나타내는 성품이 진노든, 긍휼과 자비이든 모두 사람의 태도와 행동, 그리고 진심에서 우러난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 기인한다. 만약 하나님이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노한다면,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 사람이 참된 회개를 하거나 하나님께 ‘머리를 숙인’ 적이 없고 진심으로 신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항상 하나님의 보살핌 안에 있고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진실로 신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적대시한 적이 없을 것이다. 늘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늘 임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노는 임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268) 생생하게 나타나는 창조주의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에게 마음을 되돌렸을 때 하나님이 베푼 긍휼과 관용은 거짓이었느냐? 물론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하나의 사건에서 하나님의 두 측면의 성품이 전환되어 나타난 것을 보며 너는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성품은 분리된 것이 아닌 완전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진노하든, 긍휼과 관용을 베풀든 모두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생생하게 나타나며, 그는 일이 진행되는 상태에 따라 마음과 태도를 바꾼다. 그는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으로 그가 로봇이나 돌부처가 아니며 그에게도 마음과 생각이 있다는 것을 인류에게 알려 준 것이다. 또한 그는 살아 숨 쉬는 하나님 자신으로, 니느웨 사람들에게 진노할 수도 있고, 그들의 태도 변화에 따라 그들의 과거를 용서할 수도 있으며,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그들의 회개로 그 결정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도 알려 준 것이다. 사람은 규례에 끼워 맞추기를 좋아하고, 규례로 하나님을 규정하고 정의하기를 좋아하며, 공식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 가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이 생각할 줄 모르고 실질적인 견해도 없다고 여긴다. 사실상 사물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하나님의 마음은 계속해서 바뀌고, 그와 동시에 다양한 면으로 하나님의 본질이 나타난다. 바뀌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마음을 되돌리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인류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생생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실제적인 나타냄으로 인류에게 그의 진노와 긍휼과 자비 그리고 관용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물이 발전함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 그에게는 수사자 같은 진노도 있고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긍휼과 관용도 있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은 그 누가 의심하거나 침범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고, 그 누가 바꾸거나 곡해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만사 만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즉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 만물의 구석구석에서 생생하게 나타나고 있고, 모든 순간순간에 생생하게 시행되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즉,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시간이나 공간에 국한되어 기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발현되고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마음을 되돌려 더 이상 진노하지 않고 니느웨 성을 멸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만 베푸는 하나님이라 말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진노가 빈말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긍휼을 거두고 크게 진노할 때, 너는 하나님께 인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 사람의 악행으로 인해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며, 그의 진노에는 흠이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회개로 감동받고 사람의 회개로 마음을 돌이킨다. 그의 감동과 돌이킴 그리고 사람에 대한 그의 관용과 긍휼에는 모두 흠이 없고 깨끗하며 순수하고 순결하며 어떠한 불순물도 없다. 하나님의 관용은 곧 관용이고, 긍휼은 곧 긍휼이다. 사람의 여러 가지 태도로 인해, 사람의 회개로 인해, 하나님은 진노의 성품도 나타내고 긍휼과 관용도 나타낸다. 하나님이 어떠한 성품을 드러냈든지 그것은 모두 순결하고 직접적이며 그 어떤 피조물의 본질과도 다른 것이다. 하나님이 나타내는 사역의 원칙, 마음과 생각 혹은 하나님이 내린 어떤 결정, 하나님의 그 어떤 행동에서도 흠이나 오점은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은 결정한 대로 행하고 행한 대로 이룬다. 이 결과는 한 치의 틀림도 없이 정확한 것이다. 결과의 근원에 흠이 없고 오점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에는 흠이 없다.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도 피조물이 갖추지 못한 것인데, 거룩하고 흠이 없으며 어떤 연구와 검증(원문: 推敲與體驗)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니느웨 성 이야기를 알게 된 후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서 다른 측면의 본질을 보게 되지 않았느냐? 또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의 다른 측면을 보게 되지 않았느냐? 인류 중에 이러한 성품을 갖춘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의 이런 진노를 갖춘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의 이런 긍휼과 관용을 갖춘 사람이 있을까? 피조물 중에 크게 진노하여 인류를 멸하기로 결정하거나 인류에게 재앙을 내릴 수 있는 자가 누가 있더냐? 인류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고 죄를 사해 줌으로 인류를 멸하겠다는 결정을 바꿀 자격이 있는 자가 또 누가 있더냐? 창조주는 자신만이 갖고 있는 방식과 원칙으로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어떤 사람과 일, 사물에 좌지우지되거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만이 갖고 있는 성품으로 볼 때 그 어떤 사람도 그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 없고, 그 어떤 사람도 그를 설득하고 그가 내린 결단을 바꿀 수 없다. 피조물의 모든 행동과 생각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심판받는다. 그가 진노하든, 긍휼을 베풀든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오로지 창조주의 본질, 즉 창조주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결정된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이다!

니느웨 사람들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가 전후로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해석을 통해, 너희는 ‘유일무이’라는 단어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중의 긍휼을 설명할 수 있느냐?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의 한 측면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지금 나는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 이 두 측면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라 정의하였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거룩한 것으로, 사람이 거스르거나 그 누구든 의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피조물과 비피조물이 모두 갖추고 있지 못한, 하나님만이 특유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진노는 거룩하며 사람이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다른 측면인 긍휼도 거룩하고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하나님을 대신하거나 대표하여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을 대신하거나 대표하여 소돔을 멸하거나 니느웨를 구원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공의로운 성품의 참된 발현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269)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알아야 한다. 즉, 하나님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증오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관용과 긍휼을 베푸는지, 어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든지, 얼마나 많은 긍휼과 자비를 베풀든지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 하나님의 존엄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지만 총애하지는 않는다. 사람에게 사랑과 긍휼, 관용을 베풀지만 한 번도 지나치게 사랑한 적은 없다. 하나님께는 자신의 원칙과 범위가 있다. 너는 아무리 크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어도 절대 하나님을 사람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가장 가까운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람으로 여긴다면, 피조물과 같은 한 사람이나 친구, 혹은 숭상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감추고 너를 버릴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니 그 누구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해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자주 볼 수 있다. “네가 얼마나 먼 길을 달렸든, 네가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했든, 네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든, 일단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면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가장 가까운 대상으로 여기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친척이나 친구로 여기거나 하나님을 단짝 대하듯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네가 하나님의 사랑과 관용을 얼마나 많이 느꼈든 너는 영원히 하나님을 너의 친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7> 중에서

(270)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므로 끝까지 따르기만 하면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가장 공의로우신데, 끝까지 따른 사람을 어떻게 뿌리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공의로운 성품으로 모든 사람을 심판한다. 하지만 내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에는 적합한 기준이 있어서 누구든 그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나는 네가 얼마나 대단한 경력이나 관록을 갖고 있는지 보지 않고, 네가 나의 도를 행하는 사람인지 또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인지만 본다. 너에게 진리가 없고 오히려 내 이름을 모욕하며 나의 도에 따라 행하지 않고 그저 아무 생각도 없이 따르기만 한다면, 그때는 내가 너의 악을 이유로 너를 치고 징벌할 것이다. 그때 네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오늘 내가 한 말을 네가 다 지킨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칭찬할 것이다. 너는 네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따르면서 고난을 받고 비바람 속에서 하나님과 동고동락하며 환난을 함께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지 못했다. 또 너는 날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거나 헌신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 또 너는 “어쨌든 저는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시라는 걸 믿어요. 제가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헌신했는데,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했잖아요. 그러니 하나님은 꼭 저를 기억하실 거예요.”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공의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고, 사람의 뜻이 전혀 없으며, 육적인 것도, 사람처럼 거래하는 것도 섞여 있지 않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와 하나님의 도를 지키지 않는 자는 모두 징벌을 받아야 한다. 하나도 용서하지 않고 누구도 예외가 없다! 어떤 사람은 “제가 지금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니 나중에 제게 축복을 조금 베풀어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묻겠다. “너는 내가 한 말을 지켰느냐?” 네가 말한 공의는 거래를 전제로 한 것이다. 너는 내가 공의롭기에 그 누구도 차별할 리가 없고, 끝까지 따르면 구원을 얻고 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끝까지 따르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나의 말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 있다. 끝까지 따르는 사람이란 나에게 완전히 얻어지는 사람이고, 또 나에게 정복된 후 진리를 구해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너는 몇 가지를 해냈느냐? 끝까지 따를 수는 있지만 그 외의 것은 어떠냐? 너는 내 말을 준행했느냐? 너는 내가 내놓은 다섯 가지 요구 가운데 하나만 충족시켰고, 그 외의 네 가지는 추구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너는 가장 단순하고 쉬운 길을 찾아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추구한다. 나의 공의로운 성품은 너 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형벌이자 심판이고 공의로운 응징이며, 악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공의로운 징벌이다. 나의 도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설령 끝까지 나를 따른다고 해도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271)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앎에 있어 경험과 상상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네게 임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물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진노 이면에도 사연이 있고 불순물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성품이 다 공의로운 것은 아니라고 하나님을 비방할 수 있겠느냐? 우선 너는 하나님이 행한 모든 일, 하나님이 인류를 치거나 벌하거나 멸한 것을 포함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어떠한 불순물도 흠도 없고 거룩한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행한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고유 성품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는 인류의 지식, 전통, 철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완전히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의 발현으로서 패괴된 인류의 그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다. 사람은 고정 관념으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긍휼, 관용은 어떤 흠과 불순물 없이 거룩하다고 여길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에도 불순물이 없다는 것을 아는 이가 없고, 심지어 하나님이 왜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지, 왜 이렇게 크게 노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이도 없다. 반대로 어떤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패괴된 인류의 성질로 오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는 것을 패괴된 인류가 화를 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것이 마치 사람의 패괴 성품이 자연적으로 드러나는 것과 같고 패괴된 사람이 기분 나쁜 일이 생겼을 때 화를 내는 것과 같다고 착각하며, 하나님이 진노를 나타내는 것을 일종의 감정 표현으로 잘못 생각한다. 이번 교제를 통해 나는 너희 모두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오해하거나 상상하거나 추측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있는 진노에 대해 진정한 확신이 생기고, 이전에 가졌던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내려놓고 하나님 진노의 본질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견해를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너희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더 이상 그 어떤 의심도 품지 않으며, 하나님의 참된 성품에 대해 인위적으로 추리하거나 상상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하나님 자신의 참된 본질이지 사람이 만들거나 지어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곧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피조물과 그 어떤 관계도 관련도 없다. 하나님 자신은 곧 하나님 자신으로, 영원히 피조물로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피조물의 일원이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 고유의 성품과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어떤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것을 분석하는 것도 아니며, 어느 사람을 파악하는 것도 아니다. 사물을 인지하거나 사람을 알아 가는 관점 혹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아 간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을 알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체험이나 상상에 따르면 안 된다. 따라서 자신의 체험과 상상을 하나님께 덧붙여서는 절대 안 된다. 너의 경험과 상상력이 아무리 풍부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제한된 것이다. 더구나 너의 상상은 사실에도, 진리에도 부합하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의 참된 성품과 본질에 전혀 맞지 않는다. 너의 상상력으로는 영원히 하나님의 본질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의 본질을 아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 후에 천천히 체험하고 천천히 알아 가는 것이다. 너의 협력과 진리에 대한 갈급함 때문에 언젠가 하나님이 네게 하나님을 참되게 알고 이해하도록 깨우쳐 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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