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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의 공의 성품 방면의 대표적인 말씀

36.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거룩하고,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고 그 어떤 사람이 의심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며,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고, 하나님의 특유한 것이자 하나님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진노는 거룩하며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공의 성품의 다른 한 방면, 즉 하나님의 긍휼도 거룩한 것이고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도 하나님을 대신하거나 대표하여 하나님이 하려는 일을 할 수 없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유일한 공의 성품의 참된 발표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37.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실질이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고, 지리적 위치가 바뀐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의 원래 성품은 그의 고유한 실질이다. 그의 역사 대상이 누구이든 그의 실질과 공의 성품은 바뀌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38. 인류는 극도로 패괴되어 누가 하나님인지도 모르고, 자기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네가 하나님을 언급할 때, 그 사람들은 공격하고 훼방하고 모독할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러 갔을 때에도 그 패괴된 사람들은 회개의 표현이 추호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행하던 악에서 떠나지도 않았고, 오히려 제멋대로 하나님의 종을 해하고자 했다. 그들이 드러내고 유로한 것은 하나님을 극도로 증오하는 그들의 본성 실질이다. 보다시피, 하나님에 대한 그 패괴된 사람들의 대적은 단순히 패괴 성정의 유로가 아니고, 단순히 진상을 모르고 한 훼방이나 비웃음도 아니다. 그들의 악행은 우매 무지로 인한 것이 아니고, 속임당함으로 인한 것도 아니며, 더욱이 미혹당함으로 인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제멋대로 하나님과 대립하고 대항하며 마구 날뛸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의심할 바 없이, 사람의 이런 표현은 반드시 하나님을 노하게 할 것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건드리게 될 것이며,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을 건드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이 공개적으로 직접 그들에게 발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 성품의 참된 유로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39. 하나님이 불사름의 방식으로 소돔 성을 멸하였는데, 그 방식은 하나님께 있어 한 인류나 한 물체를 철저히 멸하는 가장 빠른 방식이다. 그 인류를 불로 사른 것은 그들의 육체만 멸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더욱이 그들의 영, 혼, 체를 전부 멸하여 그로부터 그 성의 인류가 물질세계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도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한 가지 방식으로 유로되고 표현된 것이다. 이런 방식의 유로와 표현은 하나님 진노의 한 방면 실질이자 당연히 하나님의 공의 성품 실질의 유로이다. 하나님이 진노를 발할 때,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어떤 긍휼과 자비도 유로하지 않고, 그의 관용과 인내도 더 이상 나타내지 않는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일로도, 그 어떤 이유로도 하나님을 계속 인내하도록 설득시킬 수 없고, 긍휼과 관용을 재차 베풀도록 설득시킬 수 없다. 그 대신 하나님은 일분일초도 늦추지 않고 그의 진노와 위엄을 공표하고 그가 하려는 일을 하는데, 깔끔하게, 마음에 꼭 들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의 발표 방식이자, 공의 성품의 한 방면 표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40. 소돔 성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을 해하고자 한 일은 그들의 모든 악행 중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고, 여기에서 폭로된 그들의 사악한 본성은 바닷물의 한 방울에 불과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을 불로 멸할 것을 택하였다. 하나님은 그 성을 홍수로 멸한 것이 아니고, 태풍, 지진, 해일로 멸한 것도 아니며, 더욱이 다른 방식으로 멸한 것도 아니다. 불사르는 방식으로 그 성을 멸하였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불사름은 그 성이 완전히 훼멸됨으로 지구상에서 철저히 사라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의 ‘훼멸’은 형체나 외관상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안 모든 사람들의 영혼까지도 철저히 없어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성과 관련된 모든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이 다 훼멸되었는데, 그들은 내세나 윤회가 다시 없고, 피조된 인류 중에서 하나님에게 단번에 영구적으로 제거된 것이다. ‘불사름’은 죄악이 그곳에서 제지되고 종결되어 다시는 존재하지 않고 파생될 수 없음을 의미하고, 사탄의 사악이 번식할 토양과 머물러 거할 무덤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에서 사탄에게 하나님의 승리로 낙인이 되었다. 소돔 성의 훼멸은 사람을 패괴시키고 삼킴으로 하나님께 대항하려고 야심을 품었던 사탄의 대실패작이고, 인류 발전사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거절하고 스스로 타락한 인류의 수치스러운 기호이며, 아울러 실제로 유로(역주: 흘러나옴)된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한 실제 기록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41. 하나님이 한 성을 증오할 때는 징벌을 내릴 것이고, 하나님이 한 성을 증오할 때는 거듭 경고를 주어 사람에게 그의 노를 알게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 성을 없애고 훼멸하기로 뜻을 정했을 때는, 즉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을 거슬렀을 때는 더 이상 징벌하거나 경고하지 않고 직접 훼멸시켜 철저히 사라지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42. 하나님이 사람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될 때, 하나님의 진노를 발견할 수 없고 하나님의 위엄을 볼 수 없으며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음을 느낄 수 없는데, 그런 것이 사람에게 계속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는 오로지 긍휼과 관용, 사랑만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 성을 멸하고 한 인류를 증오하는 것을 사람이 보게 될 때, 인류를 멸하는 그의 노와 위엄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공의 성품의 다른 한 측면을 보게 할 것인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은 그 어떤 피조물도 상상할 수 없으며, 그 어떤 비피조물도 간섭하거나 영향을 줄 수 없고 더욱이 사칭하거나 모방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방면의 성품은 인류가 반드시 인식해야 할 한 방면의 성품이다.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이런 성품이 있고, 또한 하나님 자신에게만 이런 성품이 갖추어져 있다. 하나님이 이런 공의 성품을 갖춘 것은 그가 사악과 흑암, 패역을 증오하고, 인류를 패괴시키고 인류를 삼키는 사탄의 온갖 악행을 증오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에게 대항하는 모든 죄악된 행위를 증오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의 거룩하고 흠 없는 실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그는 어떤 피조물이든 비피조물이든 그에게 공개적으로 대항하고 겨루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설령 그가 전에 긍휼히 여겼던 사람일지라도, 설령 그가 택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성품을 건드리고 그의 인내와 관용의 원칙을 거스르기만 하면, 그는 가차 없이, 조금도 망설임 없이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 그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유로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43.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것은 모든 사악한 세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고, 모든 적대 세력이 훼멸되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공의 성품의 유일함이고, 하나님 진노의 유일함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44.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발해질 때는 모든 사악한 세력과 사람을 해하는 모든 죄악이 제지당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가로막는 모든 적대 세력이 드러나 분리되고 저주를 받으며,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탄의 모든 공범자들이 징벌을 받고 철저히 제거될 것이다. 그 대신에 하나님의 사역은 막힘없게 되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은 한 단계씩 예정대로 앞을 향해 전개되며, 하나님의 선민은 사탄의 방해와 미혹을 받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안정되고 평온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공급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사악한 세력이 번식하거나 범람할 수 없는 보장이 되고, 또한 모든 정의와 긍정적인 사물이 존재하고, 전해지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전복되지 않는 보장이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45.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까닭은 정의롭지 않은 것과 부정적인 것과 사악한 것이 정의로운 것과 긍정적인 것의 정상적인 진행과 발전을 가로막고 방해하고 파괴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노를 발하는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정의롭고 긍정적이고 아름답고 선한 것의 존재를 지키기 위함이고,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 규칙과 법칙을 지키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근원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46. 인류가 피조된 이래,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의 공의 성품으로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을 지키고 유지해 왔다. 그의 공의 성품에 진노와 위엄이 있기 때문에, 사악한 모든 인ㆍ사ㆍ물,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모든 것은 다 그의 진노로 인해 징벌받고 통제되고 훼멸된다. 수천 년 이래, 하나님은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에서 끊임없이 그의 공의 성품으로 그에게 대항하는, 사탄의 공범자와 사탄의 심부름꾼 역을 맡은 각 부류의 더러운 귀신과 악령들을 격살하고 훼멸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류 가운데서 가장 정의로운 사업이 하나님의 진노가 존재함으로 인해 지금까지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47. 비록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것은 공의 성품의 한 방면 표현이지만, 절대 하나님이 노를 발하는 것에 원칙이 없거나 대상을 구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절대로 쉽게 노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진노와 위엄도 절대로 쉽게 유로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진노는 매우 적당한 한도와 척도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화를 내거나 울분을 토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대화한 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사람은 말을 하는 것이 깊이가 없고 아주 우매하여 어린아이와 같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격살(擊殺)하지 않았고, 그들의 죄를 정하지도 않았다. 특히, 욥이 시련을 받는 기간에 욥의 세 친구와 다른 사람들도 욥에게 얼마간의 말을 했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그런 말을 들은 후 그들을 어떻게 대하였더냐? 그들을 정죄하였더냐? 그들에게 노를 발하였더냐? 그러지 않았다! 하나님은 욥에게 그들을 위해 간구하고 기도하라고 알려 주고 그들의 과실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모두 패괴된 무지한 인류를 대하는 하나님의 주요한 태도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는 것은 절대 정서적인 표현이나 발산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이 이해하는 노의 총폭발이 아니며, 그가 진노를 발하는 것은 정서를 스스로 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고, 또한 울분이 극도에 달하여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도 아니다. 반대로, 그의 진노는 그의 공의 성품의 공표이고, 또한 공의 성품의 참된 표현이며, 그의 거룩한 실질의 상징적인 유로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48.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노가 그때 얼마나 컸든, 니느웨 성 사람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은 그 순간, 하나님은 마음이 점점 누그러져 뜻을 돌이키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 성을 멸할 것이라고 선포하기 직전, 즉 그들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 바로 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에게 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일련의 회개를 한 후에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노는 점차 관용과 긍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이 두 가지 방면의 성품이 한 가지 일에서 동시에 유로되었는데, 이는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여기의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은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해야 하느냐?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기 전후에 하나님에게서 이 두 가지 확연히 다른 실질이 나타나고 유로되어, 사람은 하나님의 실질이 참되고 사람의 범함을 용납하지 않는 것임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태도로 사람에게 알려 주고 있다. 즉, 하나님이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기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참으로 회개할 때가 드물고,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진정으로 떠날 때가 드물다고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노할 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참된 회개가 있기를 바라고, 사람의 참된 회개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사람에게 긍휼과 관용을 아낌없이 베풀어 줄 것이다. 즉, 사람의 악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 베풀어 주고,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사람에게 베풀어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을 대한 일에서 하나님의 태도는 아주 명확하게 유로되었다. 즉,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고, 하나님은 사람의 참된 회개를 원하며, 사람이 악한 길과 강포에서 떠나기만 하면 마음을 돌이키고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49.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은 확실히 존재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는 하나님이 노할 때에 사람에게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면을 보게 한다.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의 분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널리 긍휼을 베풀어 준다. 사람이 패괴로 가득 차고 하나님을 원수로 보며 극히 적대시할 때, 하나님은 심히 노를 발한다. 그러면 그 노를 어느 정도까지 발할까? 그 사람의 대적과 악행이 더 이상 하나님에게 보이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의 눈앞에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이다. 그때에야 하나님의 노기가 사라지게 된다. …하나님은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관용하고 긍휼히 여기지만, 악하고 죄에 속한 것과 사악한 것에 대해서는 심히 노를 발하는데, 심지어 그 노는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 성품의 가장 주요하고 또한 가장 두드러진, 더욱이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로한 두 가지 주된 부분이다. 곧, 널리 긍휼을 베풀고, 심히 노를 발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50. 사실상, 사물의 변화로 인해, 환경의 변화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도 끊임없이 전환된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 실질의 다른 면을 유로하게 된다. 전환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는 그 순간에 하나님은 인류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또한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생생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동시에 하나님은 자신의 실제 유로로 인류에게 그의 진노, 그의 긍휼과 자비, 그의 관용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임을 실증하고 있다. 그의 실질은 사물의 발전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 유로될 것이다. 그에게는 수사자와 같은 진노가 있고,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긍휼과 관용도 있다. 그의 공의 성품은 누구든 의심하거나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누구든 바꾸거나 곡해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만사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 성품, 즉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긍휼은 언제 어디서나 유로되는데, 만물의 구석구석에 생생하게 발표되고 있고 시시각각 생생하게 시행되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즉,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시간이나 공간의 제한에 따라 기계적으로 발표되고 유로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자재로 언제 어디서나 발표되고 유로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51.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한 바와 같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 …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이 요나를 책망하는 말씀이지만 모두 실정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그 참된 고백은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긍휼을 완전하게 나타냈다. 그 고백은 인류에게 ‘창조주의 긍휼’이 공허한 어휘나 입으로만 하는 약속이 아니라, 구체적인 원칙과 방식, 목표가 있는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아주 확실하고 참되며 거짓이나 가식이 없다. 그는 이렇게 시기마다, 시대마다 끊임없이 인류에게 긍휼을 베풀고 있지만, 요나와의 대화는 그가 왜 인류를 긍휼히 여기는지, 어떻게 인류를 긍휼히 여기는지,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관용과 진심을 베풀었는지에 대해 지금까지 창조주가 언어로 표현한 유일한 서술인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 간결한 대화에서 표현한 것은 인류에 대한 그의 완전한 마음이고, 인류에 대한 그의 마음속 태도의 실정이며, 또한 인류에게 널리 긍휼을 베푸는 구체적인 실증이기도 하다. 그는 인류의 선조들에게 긍휼을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한 세대 또 한 세대 인류의 후손들에게도 베풀어 주고 있다. 비록 하나님의 진노가 늘 인류의 어느 구석, 어느 시대에 임했을지라도 하나님의 긍휼은 멈춘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긍휼로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피조된 인류를 이끌고 인도하며,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피조된 인류에게 공급하고 자양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류에 대한 그의 진심은 영원불변하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라고 말씀한 것처럼 그는 계속 자신이 친히 만든 만물을 아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공의 성품에 있는 긍휼이다. 이것 역시 틀림없는 창조주의 유일함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52.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든,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 그리고 사랑을 얼마나 베풀든,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하나님의 존엄을 범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비록 사람을 사랑하지만 오냐오냐하지는 않고, 비록 사람에게 사랑과 긍휼을 베풀고 관용을 베풀어 주지만 절대로 사람을 지나치게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에게는 그의 원칙이 있고 그의 범위가 있다. 네가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느끼고 얼마나 깊이 느끼든, 너는 영원히 하나님을 사람으로 대하지 말라. 하나님이 사람을 지친(至親)으로 여기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람으로 여기고 피조물과 동등한 사람으로 여기고 혹은 친구나 숭상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하나님은 너를 향해 얼굴을 가릴 것이고, 너를 버릴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 누구도 이 점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7>에서 발췌

53. 창조주는 자신만이 갖고 있는 방식과 원칙으로 그의 공의 성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그는 어떤 인ㆍ사ㆍ물의 지배와 제한도 받지 않는다. 그만이 갖고 있는 성품이기에 그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없고, 그를 설득시키고 그의 어떤 결단을 바꿀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피조물의 모든 행위와 생각은 다 그의 공의 성품에 의해 판결되는데, 진노를 발할 것인지 아니면 긍휼을 베풀 것인지를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오직 창조주의 실질, 즉 창조주의 공의 성품만이 그것을 결정한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공의 성품의 유일함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ㆍ유일한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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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②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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