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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함에 있어서 반드시 20가지 관건적인 진리를 중요시하여 교통해야 한다

지금 해외의 복음 확장 사역이 전면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소규모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복음을 전하는 본분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말세의 국도 복음 확장이 정식으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각 교회는 반드시 사람을 최대한 많이 동원해 내막을 알아보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인원수를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10명에게 내막을 알아보는 본분을 시켰습니다.” “우리는 20명에게 내막을 알아보는 본분을 시켰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있는 사람만큼 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사람을 최대한 쓰는 것이고, 최대한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내막을 알아보는 사람을 선택해 쓰는 것에는 어떤 원칙과 기준이 있을까요? 첫째, 소질이 있고,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하며, 사람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에 적합한지, 하나님 집에서는 어떤 사람을 원하지 않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즉, 어떤 몇 부류의 사람은 전할 수 있고, 어떤 몇 부류의 사람은 전할 수 없는지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사람을 분별할 줄 알고 볼 줄 아는 소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 외, 말하고 일을 함에 지혜가 있어야 하고, 시험이 닥치고 마귀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며, 하나님 집 사역을 수호할 수 있어야 하고, 이익을 위해 하나님 집을 배반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구비한 사람은 내막을 알아보러 가도 좋습니다. 내막을 알아보는 사람에 대해서는 인성이 어떤지, 성정이 어떤지, 진리 실제가 있는지, 성실한 사람인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원칙상에서 본인이 원하고, 기꺼이 내막을 알아보려고 한다면 다 시켜도 됩니다. 그럼 어떤 사람에게 시키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반푼이, 지적 장애인, 말할 줄 모르는 사람, 지혜가 없는 사람에게는 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한 곳에 가서 내막을 알아볼 때, 누가 “그 교회는 사람이 몇 명입니까? 인솔자는 누굽니까?”라고 물으면, 그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알려 주는데, 그러면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유다가 되어 하나님을 배신하고 형제자매들을 배신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내막을 알아보는 본분을 하도록 안배하면 안 됩니다. 그런 몇 부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든 다 내막을 알아보도록 안배할 수 있습니다. 한 교회에 사람이 몇 명이 있든, 나가서 내막을 알아보는 사람이 70~80% 정도가 돼야 가장 바람직한데, 이 비율에 못 미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70~80%는 어떻게 본분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여가 시간에 본분하는 사람, 시간을 내서 본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누구나 다 24시간 본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 소부분 사람들만 전문적으로 내막을 알아봅니다. 전문적으로 내막을 알아보는 사람은 교계에 가서 좋은 사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찾아야 합니다. 이방인 가운데서 내막을 알아보는 사람에 대해서는 요구가 조금 낮습니다. 그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분별할 수 있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인지, 진심으로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인지를 분별할 수 있기만 하면 됩니다. 교계에서 내막을 알아보는 사람은 반드시 소질이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제가 말한 두 가지를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소질이 좋은 사람입니다. 첫째, 소질이 있어야 하고, 사람을 볼 줄 알고 사람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말하고 일을 함에 있어 지혜가 있어야 하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두 가지 방면에서 일반적이고 조금만 갖추고 있다면, 이방인들 가운데서 내막을 알아보게 하세요. 이것은 내막을 알아보는 사역으로서, 반드시 철저하게 실행해야 합니다.

왜 내막을 알아보는 사람을 최대한 훈련시키고 발전시켜야 할까요? 왜냐하면 내막을 알아보는 것은 복음 전도에서 관건적인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내막을 알아 온 사람 수가 적으면 간증인들은 복음을 전할 대상이 없습니다. 내막을 알아보는 것은 마치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는 것과 같은데, 그물을 치는 사역인 것입니다. 그러면 간증인은 골라내야 하는데, 좋은 물고기를 골라내고 좋지 않은 것을 놓아 버리는 것입니다. 내막을 알아보는 사람이 훈련이 잘되어 있을수록, 첫째는 내막을 알아 온 사람 수가 더 많아집니다. 둘째는 복음 대상자가 질적으로 좋아지는데, 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이고, 대부분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일 수 있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막을 알아본 질이 좋다는 것입니다. 말세 역사에서 하나님이 구원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며,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내막을 알아보고 복음을 전해 사람을 얻는 것에는 다 원칙적인 요구가 있습니다.

교회 인솔자는 하나님 선민을 이끌고 교회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 인솔자는 내막을 알아보는 사역의 책임자이고, 하나님 선민을 동원해 내막을 알아보게 하는 책임자입니다. 교회 인솔자는 이렇게 두 가지 본분을 담당합니다. 내막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고, 내막을 알아 온 효과가 좋을수록 그 교회의 인솔자가 복음 사역에 잘 협력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한 교회가 복음 사역을 잘할 수 있는지는 주로 두 가지에 달렸습니다. 첫째, 내막을 알아보는 사역을 한 효과가 어떠한지, 둘째, 간증인을 훈련시킨 효과가 어떠한지,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할 수 있는지입니다. 이것은 가장 관건적인 두 가지 사역입니다. 이 두 가지 사역을 잘하면, 그 인솔자는 합격입니다. 이 두 가지 사역을 잘하지 못한다면, 인솔자 일꾼은 불합격입니다. 복음팀의 지휘자가 합격인지의 여부 또한 이 두 가지 항목의 사역을 어떻게 했는지에 달렸습니다. 각 교회 인솔자들은 다 이 판단 기준을 알고 장악해야 합니다. 무릇 내막을 알아보는 사역을 잘하지 못하는 교회 인솔자들은 본분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하나님 집의 사역에서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이 중심인데,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이 일순위이고 교회 생활이 그다음입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요? 그것은 지금이 복음을 확장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교회 생활을 중요시했기에, 이제는 정상 궤도에 들어섰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다 교회 생활을 할 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압니다. 그런데 복음 사역 대확장 시기에, 만약 사람이 쓰일 곳에 유용하게 쓰이지 못하면 폐인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국도 복음이 확장될 때 만약 쓰일 곳에 유용하게 쓰이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본분을 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곧 도태됩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폐인을 원치 않고, 폐인이 존재하는 것을 용납치 않습니다. 무릇 국도 복음 확장에 조금도 협력하지 못하는 사람은 폐인에 속합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 것을 용납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산 사람의 증거이지 죽은 사람의 증거가 아니다. 그는 산 사람에게 그를 위해 사역할 것을 요구하지, 죽은 사람에게 사역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고, 산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은 다수가 모두 죽은 사람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다 죽음으로 뒤덮여 있는 속에서 살고 있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기에, 이길 수 없다. 그러한데 어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는가? 어찌 복음 사역을 확장할 수 있겠는가?』 국도 복음이 확장될 때가 바로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있는지의 여부가 가장 잘 드러날 때이고, 또한 사람이 합격되게 본분을 하는지의 여부가 가장 잘 드러날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마지막에 국도 복음이 확장되면서 완전히 드러납니다.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고, 진리 실제가 없는 사람은 글귀 도리와 텅 빈 이론만을 말하면서 대충 때울 수밖에 없는데, 그런 사람이 본분을 합격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 생활을 하든 아니면 국도 복음을 확장하든, 텅 빈 이론을 말하는 사람은 조금도 이익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텅 빈 이론을 말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국도 복음 확장은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다 드러내는 것입니다. 특히 인솔자 일꾼들에게 진리 실제가 없어 국도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에 협력할 줄 모르고, 직접 나서서 새 신자를 양육하지 못하고, 새 신자 교회를 공급하거나 부축하지 못한다면, 다 거짓 인솔자와 거짓 일꾼에 속합니다. 하나님 집의 모든 사역은 다 하나님의 요구에 근거하고, 또한 국도 복음 확장의 필요에 따라 성령의 인도 아래에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사람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이고, 하나님의 이끄심이며, 하나님이 친히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주재하고 안배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국도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만약 어느 인솔자 일꾼이 한 사역이 국도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의 요구와 효과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게 진리 실제가 없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 또한 직접 국도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진리를 교통하고, 국도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과 어떤 지혜를 써야 하는지를 교통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집에서 통일적으로 안배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또 직접 각지 교회의 새 신자들에게 설교하고 양육하고 공급해 줍니다. 그리고 매번 교통이 끝난 후에는 또 모든 새 신자 교회에 어떤 문제가 더 존재하는지, 어떤 관념이 있는지를 알아봅니다. 제가 이런 것들을 알아보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바로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로 새 신자에게 존재하는 모든 문제와 그들의 관념을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럼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여 도달하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바로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확신하게 하여 참 도에서 굳게 설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역하는 것이 실제적이지 않습니까? 저는 직접 새 신자 교회의 문제와 모든 새 신자의 관념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럼 각급 인솔자들도 이런 사역을 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중에 “제가 새 신자 교회에 가 봐야겠습니다. 그들의 상황을 알아봐야겠습니다. 새 신자와 함께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하면서 자신의 경력과 인식을 말해야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이렇게 사역한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어떤 문제를 설명합니까? 여러분은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의 본직 사역이 너무 바빠서 새 신자를 양육할 겨를이 없어요.” 이 말이 성립됩니까? 겨를이 없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지시할 겨를은 있고 구체적인 사역을 할 겨를은 없다는 겁니까? 사역이 너무 바빠서 새 신자들에게 교통도 해 주지 않고, 예배도 함께 드리지 않고, 설교도 해 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여러분이 한 달에 한 번씩 가서 새 신자들과 함께 예배드린다 해도 국도 복음을 확장하는 것에 부담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한 번이라도 갔습니까? 여러분은 높이 앉아 있으면서 형제자매들과 동떨어져 있고 새 신자들에게는 전혀 관심도 없으니, 이방인들의 말로 말하면 “지도자가 민중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민중과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관료가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관료입니다.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인솔자 일꾼들이 그렇게 바쁘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인솔자 일꾼들은 반드시 보름에 한 번씩 새 신자들과 함께 예배드리면서 새 신자들의 정황을 알아보고, 새 신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만약 새 신자들과 함께 예배드리지 않는다면, 그런 인솔자 일꾼들은 반드시 자발적으로 사직해야 합니다. 소구역 인솔자 일꾼들과 구역 인솔자 일꾼들은 모두 이렇게 실행해야 합니다. 교회 인솔자들도 마찬가지이고, 설교자들은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보름에 한 번씩은 반드시 새 신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집의 규정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아니고,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에 대해 부담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보름 동안 하루나 반나절의 시간마저도 낼 수 없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바쁘게 보냈는지, 보고해 보세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매일 어떻게 안배했는지, 모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보겠습니다. 보고할 수 있습니까? 구체적인 사역은 하지 않고, 온종일 실컷 먹고 마시며 사무적인 일로만 바쁘게 도는 사람은 완전히 거짓 인솔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공밥을 얻어먹고, 교회에 빌붙어 사는 사람이고, 절대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착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온종일 실컷 먹고 마시는데, 오늘은 이 사람이 한끼 대접하고 내일은 저 사람이 한끼 대접하다 보니 날마다 배불리 먹고 마시기만 해서 몸을 꽃같이, 옥같이 보양하였습니다. 이는 무슨 놈입니까? 교회에 빌붙어 사는 사람이고, 포도원 속의 여우이고 쥐이며, 개 부류이고, 거짓 인솔자와 거짓 일꾼입니다. 무릇 늘 하나님 선민의 집이나 섬김의 가정에서 실컷 먹고 마시는 사람 중에는 좋은 놈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도태되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앞으로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 집에서 일솔자 일꾼을 대접하는 사람이 있으면 적발할 권리가 있으니, 그 사람 이름을 보고하세요. 하나님 집에서 그런 사람을 처리할 것입니다. 누가 어느 섬김의 집에서 누구와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지, 혹은 누구 집에서 밥을 먹었는지, 그리고 몇 번을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간단하게 적어서 보고하세요. 저는 누가 실컷 먹고 마시면서 실제 사역을 하지 않았는지를 보고, 그런 인솔자와 일꾼들을 해임시키겠습니다. 필요 없으니 교회에서 내보내겠습니다. 또 누가 예배에서 글귀 도리만 말하면서 형제자매들과 마음을 나누지 않고, 사람의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런 상황도 보고하세요. 새 신자 교회의 인솔자에 대해서 반드시 보고를 해야 합니다. 어느 인솔자 일꾼이 교통하는 것에 실제가 있는지, 새 신자의 실제적인 문제와 관념을 해결해 주었는지,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어떤 반응과 체득이 있는지를 빨리 보고하세요. 소구역 인솔자가 내려가서 예배를 한 번 드리면서 교회 인솔자에게 그동안 예배드린 상황을 사실대로 보고하라고 하세요. 도대체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였는지, 어떤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였는지, 하나님 선민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도움이 되었는지, 이런 것들을 모두 보고하라고 하세요. 저는 교회 인솔자 일꾼에게 진리 실제가 있는지, 예배에서 진리로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이런 상황을 장악해야겠습니다. 무릇 글귀 도리만 말하면서 아무런 실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인솔자 일꾼을 반드시 도태시키고, 교체해야 합니다! 하나님 집의 인솔자 일꾼들은 공정하게 경쟁합니다. 끊임없이 도태시키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이 선출되어 마지막에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실제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남게 됩니다. 최후에 선출된 인솔자 일꾼이야말로 참으로 합격된 인솔자 일꾼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선민들이 지지하지 않는 인솔자 일꾼들은 전부 교체하여 밑에 내려가서 경력하게 하세요. 언젠가 다 경력하고 나서 하나님의 선민들이 선거해 줘서 다시 올라와야 인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면 좋지 않습니까? 인솔자 일꾼들은 실제가 없으면서도 높은 자리에 서려고 하고, 교회에 빌붙어 살려고 하는데, 어림도 없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착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며, 고생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이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선민들이 마음으로 탄복하는 사람입니다. 실제 사역을 할 수 없으면 얼른 자리에서 물러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 주세요.

그리고 관건적인 문제가 또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많은 사람들이 교통하는 진리에는 다 편차가 좀 있고, 핵심을 말하지 못합니다. 편차가 있고 핵심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관건적인 진리는 너무 적게 교통하고, 관건적인 진리가 아닌 것,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기본적인 진리가 아닌 것을 너무 많이 교통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핵심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격할 때, 너무 빗나가서 1점, 2점, 3점을 명중한다면, 핵심을 맞힌 것입니까? 핵심을 맞히지 못한 것입니다. 적의 심장을 맞히지 못하고 팔다리를 맞히면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 것입니다. 진리를 교통함에 있어, 가장 관건적인 진리와 가장 근본적인 진리를 교통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참 하나님임을 확신하게 할 수 있겠어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매우 많이 말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관건적인 진리입니까? 또 어떤 곳에서는 대전도회(따빵훙)에서 노아 방주를 연기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관건적인 진리입니까? 대전도회로 복음을 전하면서 이런 것들만 한다면, 복음 지휘자가 제멋대로 지휘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은 다 진리가 없고, 하나님을 증거할 줄도 모르며, 관건적인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런 간증인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관건적인 진리와 중요한 진리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환히 깨닫지 못했거나 혹은 글자 그대로만 깨달아서 투철하게 말할 수 없으니, 회피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느 부류의 문제를 투철하게 말할 수 있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으면, 전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서만 교통합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아마 그런 상황일 것입니다. 하나는 그 사람이 교통하기 좋아해서일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그 문제가 상대적으로 얕은 것이어서 분명하게 말하기가 쉽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런 간단한 문제만 골라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분명하게 교통할 수 없거나 깨닫지 못한 관건적인 진리는 회피하고 교통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분명하게 교통하지 못하면, 망신을 당하고 체면을 잃을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입니까? 합격되게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했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으니, 참된 간증인이 아닙니다. 참된 간증인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가장 관건적인 진리만 교통합니다. 그럼 하나님을 증거하는 가장 관건적인 진리에는 모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 문제는 너무 중요한데, 대부분 사람들이 모르고 있으니, 우리 오늘 우선 하나님을 증거하는 가장 관건적인 진리를 교통해 봅시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가장 관건적인 진리에는 20가지가 있습니다. 누가 이 20가지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하면,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몇 년을 믿었든 상관없이, 이 20가지 진리에 대해 아무리 교통해도 분명하게 교통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가장 관건적인 진리에서 첫 번째는 주님의 재림에 관한 진리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화제는 아주 간단하여 많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오신다면, 어떻게 오실까요? 도성육신해서 인자가 되어 재림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의 재림’, ‘도성육신’, ‘인자 되심’, 이 세 가지 화제에서 어떤 화제가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까? ‘도성육신’에 관한 진리가 가장 근본적인 진리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데에 대해 교통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도성육신에 관한 진리를 위해 길을 닦는 것입니다. 인자란 바로 말씀이 육신 되어 나타나신 것이라고 교통해 주면, 사람은 인자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과 인자 되심을 교통하는 것은 다 도성육신에 관한 진리를 교통하기 위해 길을 닦는 것으로, 중점 화제도 아니고 중심 화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증거함에 있어서 뿌리가 되고, 기초가 되는 것은 도성육신에 관한 진리입니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관건적인 진리입니다. 도성육신에 대해 교통하려면, 그 관련된 범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주님의 재림, 즉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과 주님이 다시 오시는 과정을 교통해야 합니다. 이런 예언을 해석한 다음에는 무엇을 교통해야 합니까? 도성육신에 대해 교통해야 합니다. 그럼 도성육신의 하나님은 겉으로 보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인자에 대한 설명입니다. 인자라고 하면, 사람에게서 태어나고 부모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고,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자(人子)는 사람의 아들이 아닙니까? 남자여야 ‘자(子)’라고 할 수 있고, 여자는 당연히 ‘여(女)’라고 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녀(子女)입니다. 자녀의 약칭도 ‘인자’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다 사람에게서 태어납니다. 사람에게서 태어난다면, 남녀를 막론하고 ‘자(子)’라고 총칭하지 않습니까? 이젠 ‘인자’에 대한 논법이 확정됐죠? 하나님이 도성육신하신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바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좋지 않습니까? 도성육신이란 무슨 뜻일까요? 첫째는 사람에게서 태어나셨고, 부모에게서 태어나셨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 자신이 육신에 오셨다는 것이며, 셋째는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자(人子)의 뜻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구체적이겠죠? 간단하게 말하면요?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신 것이 바로 인자입니다.

도성육신의 진리는 제일 관건적인 진리가 아닙니까? 하나님을 증거하면서 도성육신의 진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도성육신의 진리에 대해 몇 가지 방면을 교통해야 합니까?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부터 교통하면서 예언을 다 분명하게 교통한 다음, 도성육신이 곧 인자라는 것을 확실하게 교통해야 합니다. 그것을 다 교통한 다음에는 핵심을 교통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과 주님의 예언에 관한 것은 사람들이 깨닫기 쉬우니, 깨닫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은 핵심이 아니고, 진리의 관건적인 부분이 아니며, 표면적인 것이고, 길을 닦는 것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신다고 예언하셨는데, 도대체 어떻게 오시는지, 그리고 도성육신에 관한 진리가 바로 관건적인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도성육신의 진리를 교통하면서 반드시 예수님의 예언에 근거해 교통해야 합니다. 그 교통을 끝내고 나서 본론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예언을 교통해서 통했다면, 인자의 강림 또한 그렇게 교통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누가복음17:25) 그리고 주께서 은밀히 강림하시므로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교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24:42~44) 이런 말씀들로써, 사람이 하나님의 두 번째 강림을 알지 못한다는 것, 즉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인자가 오신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럼 이 방면을 교통하면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주께서 오셨다는데, 우린 왜 모르죠? 왜 그 어떤 낌새도 없었죠?”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태복음24:36)고 예언하신 것을 말해야 합니다.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아들이 모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아들이 모른다는 것은 바로 말씀이 육신 되신 그리스도 자신도 모른다는 것으로, 처음에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처음에는 자신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3년 전에야 알게 되셨던 것입니다. 그 3년 전에는 예수님도 자신이 바로 도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셨습니다.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분도 처음에는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르셨습니다. 언제 알게 되셨을까요? 진리를 어느 정도로 발표하시고, 도성육신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에야 알게 되셨습니다. 처음에 말씀을 발표하셨을 때에도 모르셨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모두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아무도 모르며,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 자신도 모르며, 오직 성령만이 아시고,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아신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렇게 교통하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이 듣고는 ‘그래서 내가 몰랐었던 거구나. 그래서 우리 미국 사람들도 다 몰랐구나. 그래서 우리 영국 사람들이 몰랐지. 그래서 세계 각국 사람들도 다 몰랐었구나. 하나님께서 도적같이 오셔서 아무도 몰랐던 거구나.’라고 합니다. 그 사람의 관념이 스스로 무너지면서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하면서 이렇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진리를 깨닫고 나서는, 전에 갖고 있던 생각들, 즉 ‘주님이 오셨는데 우린 왜 모르고 있었죠? 여러분들은 어떻게 아셨어요?’라는 문제에 대해서 대답하기 쉬워지지 않을까요?” 그럼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아, 그래요, 방금 말한 문제가 바로 제가 갖고 있던 문제예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주님이 도적같이 오시니 저는 당연히 모르죠. 주께서 공개적으로 강림하신다면, 틀림없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거예요. 주께서 공개적으로 강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강림하시기 때문에 모르는 건 정상이죠. 우리만 모르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몰라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은 “아니에요, 모든 사람들이 다 모른다고 했는데, 그럼 여러분들은 어떻게 알았나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다 서로 다른 때에, 복음을 전하는 간증인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말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나중에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저 이런 차이입니다. 먼저 받아들인 사람은 조금 먼저 알게 되고, 나중에 알게 된 사람은 조금 늦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습니까?

도성육신에 관한 진리는 하나님을 증거함에 있어서 가장 관건적인 진리입니다. 어떻게 교통해야 하는지는 제가 방금 말했습니다. 우선 예언부터 교통하다가 도성육신을 증거하고 마지막에 ‘도성육신이 바로 인자’라는 것을 알게 하는 효과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로 도달하는 효과입니다. 그다음 ‘도성육신이 바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두 번째 효과에 도달해야 합니다. 다음 계속 도성육신에 관한 진리를 교통하여 세 번째 효과에 도달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친히 사람과 접촉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시면서 사람을 양육하시고 목양하시고, 사람에게 공급하셔서 그분의 마음에 합하는 사람을 온전케 하신다는 것을 교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되셔서 하시는 가장 주된 사역입니다. 이 세 가지 방면을 분명하게 교통하면 도성육신에 관한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한 것입니다. 세부적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죠? 도성육신의 진리를 깨달으려면, 영화 <경건의 비밀>과 <경건의 비밀 (2)>를 보면 됩니다. 이 영화 두 편을 보고 나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증거함에 있어 두 번째로 큰 진리는 바로 3단계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3단계 역사에 관한 진리는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3단계 역사가 가장 중요하니 당연히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합니다.”라고 합니다. 이 말이 적합한가요? 이 말이 맞습니까? 어떤 사람은 맞지 않다고 합니다. 왜 맞지 않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아직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성육신을 교통하여 복음 대상자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교회에 들어온 뒤에 3단계 역사를 교통하세요. 그 사람이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에게 3단계 역사를 증거해도 의의가 없습니다. 3단계 역사를 교통하면서 개괄적으로 교통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각 단계 사역에서 어떤 사역을 하셨고, 어떤 성질의 사역을 하셨으며, 각 단계 사역 사이의 관계, 각 단계 사역의 의의, 어떤 효과에 도달하는지, 3단계 역사는 모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을 교통해야 합니다. 그리고 3단계 역사는 한 절차에 한 단계씩, 단계마다 점차 높아진다는 것을 교통해야 합니다.

율법시대 사역의 내막과 은혜시대 사역의 게시(揭示), 그리고 국도시대의 사역을 개괄적으로 교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율법시대에 사람을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무엇을 실행하라고 하셨습니까? 십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지켜야 했습니다. 또한 각종 제사를 드리는 방식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모두 율법시대의 사역입니다. 이 몇 가지 실행에서, 하나님이 인류를 인솔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땅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어떻게 계명을 지켜야 하는지와 사람됨의 원칙을 알려 주셨으며, 범죄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을 대적해서는 안 되며, 만약 범죄하여 하나님을 노엽게 한다면 어떻게 속죄제, 번제, 화목제 등 제사들을 드려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면 저주를 받게 되는데,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아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체현되는데,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르는 것을 용납치 않습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경배한다면, 복을 받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대까지 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만약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그 죄를 갚아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에 인류를 인솔하실 때, 하나님은 반포하신 율법과 계명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류를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하시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 복을 받고, 어떤 사람이 화를 당하는지를 알려 주셨고, 만약 죄를 범하였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출로를 하나 주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과오가 있고 죄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제사를 드려야 했는데, 단지 이 하나의 살길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은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사람을 사해 주셔서, 율법에 의해 죽음을 당하지 않게 되었고, 돌에 맞아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땅에서 생활하도록 이끄신 사역입니다.

은혜시대에 이르러, 사람은 늘 소와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것이 너무 번거로웠습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한 번으로 영원히 사람의 죄를 사해 주셨고, 사람의 속죄제로 되셨습니다. 이렇게 한 번 속죄제로 드려져, 인류는 다시 범죄해도 그 무슨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기도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아서, 각종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고, 제사를 드리는 번거로운 문제도 해결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쳐 친히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은혜시대의 사역이 율법시대의 사역에 비해 또 한 단계 높아지지 않았습니까? 그 밖에,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또 하나님께 간구할 수도 있었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도와 해결해 주셨습니다. 병이 있으면 병을 고쳐 주셨고, 귀신이 들렸으면 귀신을 쫓아내 주셨으며, 애로 사항이 있으면 해결해 주시면서 사람에게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셔서 사람과 접촉하시면서, 그분께 죄를 사하는 권병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사람의 죄를 사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사람은 기도하고 인정하기만 하면 됐습니다. 율법시대부터 은혜시대까지, 우리는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진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사람은 율법시대에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율법을 통해 사람을 인솔하셨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것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해 주신 것인데, 사람을 써서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신 것입니다. 율법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었는데, 어떻게 수천 년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어긴 사람들은 정말로 죽임을 당했고, 돌에 맞아 죽었고, 저주와 징벌을 받았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또한 정말로 복을 받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사람들은 비록 직접 눈으로 하나님을 본 적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솔하고 계시고,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수천 년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셨던 사역으로서, 각 단계의 사역이 도달한 효과를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시대에 말씀이 육신 되셔서 친히 사람과 함께 생활하시면서 직접 사람과 접촉하셨고, 직접 사람과 대화를 나누셨으며, 직접 사람에게 요구를 제기하시고 사람들을 인솔하고 양육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께서는 아주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제자들에게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지를 말씀하시면서 그 제자들에게 추구하는 목표와 실행의 원칙이 생기게 하셨고, 사람됨의 목표도 생기게 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들을 하시자,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 어떤 사람이 가장 복이 있으면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됨의 목표가 생긴 것이 아닙니까? 더 정확하게 말해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는지, 어떤 사람을 축복하시는지, 어떤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는지를 알게 되어, 사람됨에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시대에 도달한 효과입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한층 더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국도시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사역을 하셔서 6천년 이래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모든 심오한 비밀을 다 밝히셨습니다. 이것은 은혜시대와 율법시대에는 모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큰 일이 아닙니까? 심오한 비밀들을 전부 열어 놓으셨는데, 어떤 사람이 구원받는지, 어떤 사람에게 아름다운 귀숙이 있는지,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지, 어떤 사람이 징벌받는지, 인류는 어떻게 끝나는지, 그리고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 하나님께서 모든 재난을 가져오신 것, 마지막에 온전케 될 이 사람들이 어떤 고통들을 받아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사람들은 몇 개의 등급으로 나뉘는지, 또 그런 등급은 무엇에 근거해 확정하는지 등등, 이런 것들을 다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추구하는 길에서 더욱 분명해지게 하였습니다. 당신은 각 부류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안배를 보고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은 매우 공의로우셔. 각 사람에게 다 공평하고 공의로우셔!’라고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세에 발표하신 말씀들을 보고 나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역사하셨는데, 3단계 역사에서 어느 단계의 사역이 어떤 성질이고, 어느 단계의 사역이 어떤 효과에 도달하였는지를 전부 알게 되어 마음이 완전히 환해졌습니다. 특히,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세에 발표하신 진리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진리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는데, 바로 하나님 소유소시(所有所是)의 발표입니다. 그 진리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시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후, 처음으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전부의 뜻을 모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씀들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귀중합니다. 이는 율법시대나 은혜시대에는 하신 적이 없었던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말세에 다 발표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서 아주 큰 일을 하신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가장 큰 일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저는 하나님이 그 어떤 큰일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가 대재난이 내리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육안으로는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그럼 어떤 것만 볼 수 있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면 볼 수 있고, 어디에 쓰나미가 일어나면 볼 수 있고, 또한 어디에 큰 재난이 발생하면 볼 수 있고, 어디에서 사람이 처참하게 죽으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런 물질적인 현상을 제외하고 또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하나님의 발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사람은 소경입니다! 사람은 단지 물질세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과학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어느 국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런 것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관해, 하나님이 오시는 것에 관해, 하나님의 역사에 관해, 하나님이 얼마나 큰 일을 하시는지에 관해 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했지만, 별로 많이 보지도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이런 일을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이런 진리를 발표하셔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오려고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이런 이상(異象)과 이런 진리 그리고 이런 말씀으로 도달하게 되는 효과와 가져오게 되는 변화에 대해 보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의 권병을 보지 못하고, 이런 말씀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하고 무엇을 응하려고 하는지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다 보고 나서도 아무런 변화를 보지 못했다고 느끼면서 하늘은 여전히 원래의 하늘이고, 태양은 여전히 아침에 뜨고 저녁에 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병에 대하여 인식하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이 이런 진리를 발표한 의의와 마지막에 도달하려는 효과에 대하여 인식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너는 아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 이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이 얼마나 큰 일을 하셨습니까! 사람에게 영적인 안목이 없다면 볼 수 있겠습니까? 물질세계만 보는 그 눈으로 영계에서 얼마나 큰 일이 일어났는지 볼 수 있겠습니까? 어떤 방법을 써도 볼 수 없고,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영광을 동방에 가져오신다고 했는데, 저는 왜 보지 못했나요? 제가 이스라엘 쪽을 바라보니 다 구름뿐이던데. 영광이 언제 동방에서 나왔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럼 어떤 눈이 볼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마음의 눈,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지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눈을 세게 비비고 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세요. 말씀이 빛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 속의 밝은 빛이 얼마나 크게 빛나는지 보지 못하고, 눈부시게 빛나도 보지 못합니다. 믿어지십니까?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사람에게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없다면, 하나님 말씀이 빛을 발하는 것도, 하나님 말씀이 눈을 부시게 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세 번째 진리, 하나님의 말세 역사는 어떤 역사인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증거하고, 말세 심판 사역의 의의와 실질 그리고 도달하려고 하는 각 방면의 효과를 전문적으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말세 역사는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합니다. 다른 한 방면으로, 말세 사역은 시대를 끝마치는 사역이고, 사람에게 결말과 귀숙을 정해 주는 사역입니다. 이것이 관건입니다. 말세의 심판으로 사람의 결말이 정해지고, 각 부류 사람의 귀숙도 모두 안배됩니다. 이것이 말세의 사역이고,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사역입니다.

네 번째 진리, 국도시대에서 하는 사역과 은혜시대에서 한 사역의 뚜렷한 구별점은 몇 가지가 있는지?

다섯 번째 진리,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3단계 역사에서 각 단계마다 도달하는 효과는 무엇인지? 은혜시대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국도시대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또 구원을 얻는 것과 구원을 받는 것의 구별은 무엇인지?

여섯 번째 진리,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역사의 관계.

일곱 번째 진리,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성경을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과의 관계, 즉 성경과 하나님의 관계는 무엇인지?

여덟 번째 진리,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성경을 대해야 하는지? 성경의 참된 역할은 무엇인지?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를 대체할 수 있는지?

아홉 번째 진리, 종교란 무엇이고, 교회란 무엇인지? 하나님은 왜 그분을 믿는 교회만 축복하는지? 왜 교계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지?

열 번째 진리, 왜 참 도는 핍박을 받는지? 왜 교계는 늘 하나님을 대적하는 배역을 맡는지? 왜 집권자들은 하나님께 순복하지 못하고 도리어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지?

열한 번째 진리,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은 어떤 구별이 있는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열두 번째 진리, 진리란 무엇인지? 성경의 지식과 도리란 무엇인지? 왜 진리는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지만, 성경의 지식과 도리는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없는지? 사람이 성경의 지식과 도리에 근거해 살아간다면 어떤 결과와 어떤 결말을 가져오게 되는지?

열세 번째 진리, 영생의 도란 무엇인지? 말세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의 도를 가져왔는데, 율법시대와 은혜시대는 왜 영생의 도가 없는지?

열네 번째 진리,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것인지? 어떻게 진리를 깨달을 것인지? 어떤 것들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어떤 것들이 사탄에게서 온 것인지?

열다섯 번째 진리, 하나님은 왜 중국에서 도성육신하였는지? 어떤 성경의 예언과 하나님 말씀의 근거가 있는지? 하나님이 중국에서 도성육신한 의의와 목적은 무엇인지?

열여섯 번째 진리, 예수님은 왜 바리새인을 저주했는지? 바리새인의 실질은 무엇인지? 바리새인은 주로 어떤 죄를 범했는지? 바리새인이 행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선민을 쟁탈하는 것이 아닌지? 왜 교계의 목사들이 바리새인의 길을 가고 있고,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선민을 쟁탈하고 있다고 말하는지? 그럼 교계 목사의 실질은 또 무엇이겠는지?

열일곱 번째 진리, 왜 그리스도를 하나님 자신이라고 증거하는지? 그리스도는 도대체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인지?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실질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사람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 결과는 무엇인지? 사람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복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성질의 문제인지? 만약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만 대하고 하나님으로 대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닌지? 

열여덟 번째 진리,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인지 아니면 유일한 참 하나님인지?

열아홉 번째 진리, 하나님은 어떻게 인류를 오늘날까지 인솔해 왔는지? 하나님은 인류를 어떻게 주재하는지?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는 주로 몇 가지 방면에서 나타나는지?

스무 번째 진리, 들림받는 것에 대해. 참으로 들림받는 것이란 무엇인지? 공중에 들림받는다거나 천당에 들림받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관념과 상상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들림받는다’는 것이란, 주님이 오셔서 문을 두드리실 때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문을 여는 사람이 주님과 함께 잔치에 참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들림받는다’의 참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공중으로 들림받게 하거나 천당으로 끌어올린다고 말씀하신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말한 것입니다. 사람이 말한 것은 소용없는 것으로, 사람의 관념과 상상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들림받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신 ‘들림받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이 두 가지 근거를 찾아야 합니다. 종교인은 “주님이 오셨다면서, 우리는 왜 들림받지 못했나요?”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그분이 오시면 사람을 들림받게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사람에게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 앞에 와서 주님과 마주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게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들림받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 것을 볼 수 있고, 또한 인자를 보고 인자와 함께 생활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한 발짝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은 다 들림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들림받는 것에 관한 진리입니다. 공중에 들림받거나 천국에 들림받는다는 논법은 영원히 없습니다. 이후에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후에 사람이 땅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다 경력한 다음, 대재난을 경력하고 살아남게 되면, 땅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됩니다. 그때 살아남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고, 그리스도의 나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나라의 자민이 되는 것입니다.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 모든 이방인과 불신파, 그리고 적그리스도는 다 훼멸되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간단합니다. 시대를 끝마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대를 끝마친다는 것의 참된 함의(含義)입니다.

이 20가지 진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데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20가지 진리를 중심으로 교통하면 됩니다. 먼저 앞의 3가지 내용을 명확하게 교통한 다음, 뒤의 17가지 내용에 대해 교통하면 됩니다. 앞의 3가지 내용에 대해 제대로 교통하지 못했다면, 뒤의 그 몇 가지 내용은 교통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 도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3가지 진리는 도성육신에 관련된 진리, 3단계 역사에 관련된 진리, 그리고 말세의 역사에 관련된 진리입니다. 처음에 우리가 주동적으로 공세를 취할 때는 이 3가지 진리에 대해 계속 교통해야 합니다. 이 3가지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해 주면, 상대방은 나머지 그 17가지 진리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급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물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질문하면 계속해서 그것을 교통해 주면 됩니다. 20가지 진리 중에서 앞의 3가지 진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시작이 가장 어렵다고, 앞의 3가지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할 수 있으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은 다 증거하기 쉽고, 다 좀 공식적인 문제입니다. 복음을 전도하는 것에 관한 진리를 갖추려면, 주로 앞의 3가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기초를 다지는 진리이기에, 반드시 분명하게 교통해야 합니다. 분명하게 교통할수록 더욱 좋습니다. 앞의 3가지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한다면, 찾고 고찰하는 사람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나머지 부분은 다 부차적입니다. 만약 앞의 3가지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하지 못하면 나머지 17가지를 아무리 정확하게 교통해도, 상대방은 마음이 내키지 않고, 분명하게 깨닫지도 못하며, 참 도를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면서 이런 진리만 교통하고 다른 것은 교통하지 마세요.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본은 바로 이 3가지 진리에 있습니다. 이 3가지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하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에 속합니다. 이 3가지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하지 못하고, 나머지 그 몇 가지를 아주 잘 교통했다면, 기본을 갖추지 못했고 기초가 단단하지 못하기에 합격된 간증인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 가지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할 수 있을까요? 평소에 많이 상고하고 많이 교통하면서 그 진리를 장비하는 것 외에, 또 말하는 비결과 원칙을 좀 장악해야 합니다. 말할 때 어떻게 관건적인 말을 해야 할까요? 글귀를 하나하나 따지면서 말하면 되겠습니까? 문구를 하나하나 따지면서 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예를 들어, “주 예수님은 도성육신한 하나님이시고,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이는 도성육신한 하나님, 즉 그리스도는 사람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됩니다. 하지만 그분의 영은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온 것입니다. 그분의 영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고 온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자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끝났다고 합시다. 이런 식으로 한 번 말해서 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만약 세속적인 말을 하면 바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관한 말을 하면 두 번 말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믿으십니까? 그럼 진리를 교통하면서 가장 관건적인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듭 반복해야 하고 글귀를 하나하나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말씀이 육신 되어 사람이 되신 그분이 바로 인자입니다”라고 말하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소용없습니다. 그런 말은 들으면 불쾌합니다. 마치 당신이 어머니에게 “엄마! 들었어?”라고 말한다면 어머니가 ‘이게 약 잘못 먹었나? 엄마한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자식이 어딨어?’라며 반감을 가지고 싫어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엄마, 들으셨어요?”라고 말한다면, 어머니는 아이 말투가 부드럽다고 할 것입니다. 말투와 억양을 어떻게 하면 효과가 가장 좋을지 장악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진리를 교통할 때는 두세 번 반복하고, 인내심을 갖고 반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반복해야 할까요? 단조롭게 반복하지 말고, 한 글자도 빠짐없이 똑같은 구절을 반복하지 마세요. 그렇게 하면 효과가 좋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그 한 가지 사실을 여러 가지 말로, 여러 가지 표현 방식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방식은 효과가 가장 좋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두 가지 비슷한 말로 한 가지 사실을 말하면, 사람이 이해하는 데 더욱 효과적입니다. 두 가지나 세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건적인 말을 한 다음에는, 다시 한 글자도 빠짐없이 가장 중요한 그 말을 반복해도 됩니다. 도성육신 방면에서는 어느 말이 가장 중요합니까?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되어 사람이 되셨는데, 그분이 바로 인자이십니다.” 이 말이 가장 중요합니다. 듣는 사람에게 “모두들 기억하셨습니까?”라고 물어보세요. 다들 기억했다고 하면 다시 한번 말해 보게 하세요. 다시 한번 반복하게 하면 마음속으로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다시 한번 반복해 말하세요. 만약 그 사람이 기억하지 못했다면 다시 반복해서 말하라고 해도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대충 알아들은 것이지 정확하게 알아들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다시 알려 줘야 합니다. 알려 준 다음, 그 사람에게 다시 따라서 말해 보라고 하면 말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따라서 말하다 보면 진리에 관심을 갖고 그 말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교통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아셨죠? 제가 지금 하는 말들이 필요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도 아니고. 이런 말은 척 들으면 바로 알아듣습니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교만자대합니다. 사람은 진리 앞에서는 모두 어린아이입니다. 저도 어린아이이고 여러분들도 어린아이입니다. 그 누구라도 교만하지 말고, 잘난 척하지 마세요. 절대 극단적으로 말하지 마세요. 진리를 교통하면서 가장 중요한 말은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 다른 각도로 표현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말을 다 표현한 후, 또 교통을 들은 사람에게 다시 한번 말해 보게 해야 합니다. 이건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고, 사람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건 진리를 교통해서 효과에 도달하는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아셨죠? 제가 이렇게 말하고 교통하면서 여러분한테 배우라고 하는 것이 여러분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효과에 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 외에, 진리를 교통하는 효과가 어떠한지의 관건은 무게 있는 말과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말을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도성육신에 대한 진리를 이렇게 교통한다고 합시다. “만약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이 인자의 몸에 응하였다면 틀림없이 말씀이 육신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시대에 도성육신하여 이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나타나는 방식은 너무나 실제적입니다. 이것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는 사실입니다. 말씀이 육신 되신 것은, 하나님이 패괴된 인류에게 나타나는 유일한 방식입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더욱 은민한 건,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은연중에 그분의 행사를 나타내셔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주재하고 계심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이 말하는 ‘하느님(老天爺)’, 몽골 사람들이 말하는 ‘장생천(長生天)’, 서방 사람들이 말하는 ‘상제(上帝)’, 다른 이방인이 말하는 ‘창천(上蒼)’, ‘하늘(老天)’ 등은 모두 이 뜻인데, 그것은 가장 은밀한 논법입니다. 하나님이 은밀한 가운데 계시기에, 사람은 보지 못하지만 이런 느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영이 없는 짐승은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조금도 시인하지 않는 사람을 짐승의 부류에 나열했습니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모두 불신파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만 믿고 복만 얻으려고 하면서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불신파라고 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존재만 시인하고 하나님이 진리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거나 진리의 존재도 시인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불신파에 속합니다.” 이런 말이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중요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 몇 가지 방면의 뜻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힘 있게 표현할 수 있습니까? 힘이 없으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무게 있는 말 한마디가 강펀치 한 대 보다 더 세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고, 사람의 관념과 상상을 한번에 무너뜨릴 수 있어 철저히 인정하게 합니다. 제가 이렇게 비유를 해서 말하는 것은 효과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말 한 마디가 중점을 적중하고, 힘 있고 실제적으로 말해서 단번에 사람의 관념과 상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상대방은 ‘그래, 내 생각은 관념이었고 틀렸어.’라고 하면서 머리를 숙이고, 자신이 우매무지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교통한 것이 진리에 부합되고, 비교적 식견이 있고, 확실하게 교통했고, 표현해 낸 뜻이 똑부러지고, 사람의 관념을 무너뜨릴 수 있고, 사람을 정복하여 심복구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마치 권투 선수가 강펀치를 날려 단번에 사람을 쓰러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는 말이 너무 부드럽고 힘이 없어 한마디로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중점 부분을 명중시키지 못한다면, 상대방은 다 듣고도 눈만 깜박거리면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사람을 정복할 수 없고, 관념을 반박해 이길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간증인이 하나님을 증거하려면 진리를 확실하게 묵상한 다음, 합당한 언어와 제일 적절한 언어로 정곡을 찌르듯이 진리의 뜻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렇게 표현하면, 상대방이 듣고는 바로 이해하게 되고, “맞아, 이건 진리에 부합되고 정확하고 적절해.”라고 바로 인정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듣자마자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다 부인하고 포기하며, 진리에 부합되는 그 말을 받아들이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효과에 도달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함에 있어서 힘 있게 말해야 합니다. 힘이 있고, 무게가 있고, 중점 부분을 명중해서 교통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너무나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할 때 항상 중점 부분을 명중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진리를 교통하면서 감성적인 인식을 많이 말하고, 흐릿하게 말하고 미지근하게 말합니다. 또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중점 부분을 명중하지 못하고, 힘 있게 말하거나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고, 쉽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교통하면서 전부 필요 없는 자질구레한 말이나 반토막 말, 감성적인 말만 합니다. 그리고 분명하고, 힘 있고, 간결한 말은 한 마디도 못합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식견이 있고, 생각이 있고, 깨달음이 있는 말을 한 마디도 못합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그것은 어리석은 여인이 책상을 닦으면 닦을수록 더러워지는 꼴입니다. 여러분은 한 방면의 진리를 가장 실제적인 말로 확실하게 교통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 말하는 것은 다 자신의 생각이고, 두뇌의 사고를 거친 것입니다. 진리를 교통하는 데에 고정적인 말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고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상대방에게 하나님의 말씀만 읽어 주어도 안 됩니다. 다 읽어 준 다음 또 자신의 인식과 터득을 교통해야 합니다. 자신이 인식하고 터득한 것을 자신의 사상으로 말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생각을 거쳐서 분명한 말을 만들어 내고, 간결한 말을 하고, 생각이 있고 식견이 있는 말을 하여 상대방을 정복하고, 심복구복하게 하고,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관념과 상상, 그릇된 논리를 정말로 반박하고 무너뜨릴 수 있습니까? 이러한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만약 진리를 교통하여 이러한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면, 나중에 하나님의 간증인이 될 희망이 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소유소시와 하나님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이 발표하신 중요하고 관건적인 진리를 다 자신의 말로 확실하게 증거하고, 명확하게 증거하여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세 그리스도의 간증인, 이것은 피조된 인류로서 최고의 영예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박사나 대통령보다 백배, 천배 더 존귀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함에 있어, 각 방면의 중요한 진리에 대해 자기 개인의 말이 있습니까? 만약 자신의 인식이 있어 자신의 말로 각 항목의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할 수 있다면, 간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자기 개인의 말이 없고, 다 반토막 말이고 흐릿하고 불명확한 말이고, 진정으로 식견이 있고 사상관점이 있는 말을 하지 못한다면, 무슨 문제일까요? 그런 사람은 진리를 알지 못한다는 것, 즉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자기 개인의 말, 진정한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반토막 말, 애매모호한 말, 명확하지 않은 말, 흐릿한 말만 해서 한참을 말해도 듣는 사람은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대략적인 뜻만 좀 알 뿐이라면, 또 정확한 뜻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소질이 좋은 사람이라야 그가 어떤 뜻으로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다면, 진리를 교통하는 것이 효과에 도달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당신은 합격된 피조물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10여 년 동안 공부를 했고 사람됨의 도리도 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았고, 설교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힘이 나서 본분도 하게 됐죠. 저에게 진리를 깨달았느냐고 묻는데, 어느 정도는 깨달았습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힘이 생길 수 있겠어요? 본분을 하면서 어려움에 부딪치면 자주 소극적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서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하나님에 대해 어떤 인식이 있는지 얘기하라고 하는데, 마음속에 인식이 좀 있긴 해도 그것이 분명하지 않고, 아무리 말해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분명하게 말하지는 못해도 인식은 좀 있어요. 말재주가 없어서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이것이 바로 저의 경력입니다.” 이런 말은 어떻습니까? 이런 말에는 참된 것이 있습니까? 이런 말은 다 쓸데없는 말이고 허튼소리입니다. 아무것도 명확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10년, 20년을 믿어도 예배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면, 무슨 문제겠습니까? 그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구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가정과 직장을 버리면서 본분할 수 있었을까요?” 그 사람은 그저 힘만 있을 뿐입니다. 그는 교통을 듣고 나서 참 도라는 것만 인정합니다. 진리를 교통한 후, 깨닫기만 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하는 것을 듣고 나서 그저 진리가 좋고 맞다고만 느낄 뿐입니다. “난 하나님을 위해 화비해야 돼. 본분도 해야 돼, 본분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도태될까 봐 두려워.” 그는 그저 이 정도의 느낌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느낌의 지배하에, 그저 그렇게 따르기만 할 뿐이고, 진리가 그에게는 그저 그만한 효과에 도달했을 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런 사람에게는 실제적으로 증거하는 교통이 조금도 없고, 진실한 인식의 교통도 전혀 없으며, 하나님의 사역을 실제적으로 경력하여 도달한 효과에 대한 교통도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소질이 안 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럼 이런 사람이 인솔자 일꾼이 되기에 적합하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도태시켜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인솔자나 일꾼을 시키면 안 되고, 그저 따르게만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본분을 좀 한다면 아마 대부분 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일하는 것은 되고, 힘을 내는 것도 됩니다. 하지만 말할 줄 모르고, 참된 인식도 없고, 진실한 경력도 없으며, 진실한 간증도 없고, 또 말로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사역을 하지 못합니다. 인솔자나 일꾼이 진리를 교통하면서 쓸데없는 자질구레한 말로 1~2시간 교통하고 결론적으로는 아무것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교회 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선민의 시간을 지체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선민을 양육하는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단번에 진리를 명확하게 교통할 수 있겠어요? 누가 처음부터 명확하고 분명하게 교통할 수 있겠어요? 그것은 경력이 깊어지면서 도달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 사람은 소그룹 예배 때 교통하면 됩니다. 하지만 말이 너무 많아도 안 됩니다. 그러면 혼자 집에서 천천히 훈련해야 합니다.

그럼 집에서 어떻게 훈련해야 하겠습니까? 밀을 심을 때에는 밀에게 교통하고, 산에 가면 숲을 향해 교통하고, 풀밭에 가면 잡초를 향해 교통하면서 천천히 훈련해야 합니다. 언젠가 자신이 감동되어 눈물이 줄줄 날 정도로 교통할 수 있고, 성령의 감동을 느낄 수 있고, 진리도 좀 깨닫게 되면, 그때 교회에 가서 교통하세요. 그러면 됩니다. 그때 교통하면 효과가 좀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식이 어떻습니까? 좋지 않습니까? 누군가 말합니다. “저는 그럴 상황이 안 돼요. 출근하랴, 밥을 지어 먹으랴. 맨날 너무 바빠요.” 그럼 싱크대를 보고 교통하고, 대야나 그릇, 젓가락, 국자를 보고 교통해 보세요. 밥을 하고 야채를 볶으면서 부엌에서 교통하고, 아이에게 교통하고, 남편(아내)에게 교통하다 보면 나중에 그들이 듣고는 “엄마(아빠)가 점점 말재주가 좋아졌네요. 일리 있게 얘기 잘했어요. 들으면 들을수록 감동돼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정도로 훈련하면 됩니다. 그다음 교회에 가서 설교자가 되세요. 이렇게 훈련하면 좋지 않습니까? 당신이 하는 교통이 다른 사람에게는 허튼소리로 들린다면 모두가 인정하지 않을 텐데 교회에 가서 교통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죠. 그러니 실제적으로 교통을 잘하려면 훈련을 해야 합니다. 보세요, 누가 처음부터 교통을 잘하고 말을 하기만 하면 진리 실제가 있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려면 시간을 많이 들여 훈련해야 합니다!

진리를 교통하려면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러 해 동안 훈련을 했는데 식견이 있고 생각이 있고 인식이 있는 말을 몇 마디도 할 수 없다면,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소질이 부족한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예배에서 2~3시간 사이에 식견이 있는 말을 너무 적게 하고, 참된 인식과 간증이 있는 말을 너무 적게 한다면, 이 사람은 분량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한 말에 만약 참된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3분 5분 듣고는 ‘이 말이 중요하네. 빨리 빨리 메모해 둬야지.’라고 하고, 3~ 5분 듣다가 또 관건적인 말을 하면 ‘어, 이 말 무게 있어, 중요해. 진리를 알고 깨닫는 데에 있어 아주 중요한 말이야.’라고 할 것입니다. 3~5분 더 듣다가, 힘 있는 말을 한두 마디 발견하고는 '이 말 좋아.'라고 합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이 사람에게 분량이 좀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사람에게는 분량이 좀 있습니다. 말한 시간은 길지만 무게 있는 말이 한 마디도 없다면, 듣는 사람이 쉽게 졸게 됩니다. 만약 3분이나 5분 동안 한 마디의 무게 있는 말을 한다면, 듣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계속 놀라워하고, 기뻐하고, 보배 같은 말을 계속 발견하는데,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교통할수록 듣는 사람은 ‘야, 이 사람은 진리 실제가 있어. 이 사람에게는 생각이 있고 식견이 있어.’라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들을수록 눈이 점점 밝아지고 빛이 나서 ‘오늘 얻은 게 있어. 헛걸음 안 했네. 돌아가서 이 말씀 잘 묵상하게 되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어.’라고 합니다. 그럼 이런 집회가 어떻습니까? 어떻게 좋습니까? 사람이 진리에 대해 순수한 터득이 있고, 진실한 경력과 인식이 있어 그 말씀에 대해 교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참으로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진리에 대한 터득과 관건적인 빛 비춤을 가장 간결한 언어로 표현해 낼 수 있다면, 이것은 실제인 것입니다. 이런 언어가 바로 진실된 간증입니다. 그럼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하는 것은 무엇으로 체현할 수 있을까요? 한 바탕 해낸 허튼소리로 체현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한다는 것은 투철하게 말하고, 가장 명확하게 말하고, 가장 간단명료하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런 말을 듣자마자 바로 깨닫고, 바로 환해지고, 관건적인 부분을 말했고 핵심적인 부분을 말했다고 하면서 그 말이 너무 좋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몇 마디 말은 황금처럼 소중합니다! 말을 분명하게 하기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만약 몇 시간 교통했는데 분명하게 깨닫게 하는 말이나 힘 있는 말이 한 마디도 없고, 참된 인식의 말이나 참되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말이 한 마디도 없으며, 다 무의미한 말이고 불확실한 말, 애매모호한 말, 흐리멍덩한 말을 하거나 반토막 말을 하거나 완전치 못한 말만 한다면 안 됩니다. 그럼 아무런 인식도 없고 효과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묵상하려면 가장 참되고 가장 정확한 인식을 묵상해야 하고, 나중에 가장 적합하고 가장 적절한 언어로 표현해야 합니다. 이렇게 교통하고 표현(원문: 流露)하면, 듣는 사람은 빛 비춤이 생기고 실제가 있게 되며 아주 잘 말했고 멋지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예배는 자연히 효과가 좋아지게 됩니다.

예배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흐리멍덩한 말, 애매모호한 말, 불확실한 말, 흐리터분한 말을 가득 하는 것인데,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처음 예배를 시작했을 때는 마음이 맑고 환했는데, 말씀을 제대로 교통하지 못한 탓에 듣는 사람이 마음이 흐릿해서 들을수록 흐리멍덩해지고 마음이 초조하고 산란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결과입니까?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사람을 너무 심하게 해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그릇을 들고 와서 기름을 달라고 합니다. “기름 있으면 좀 주세요.” 그러자 상대방은 “제가 쓰기에도 부족해서 줄 수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마침 다른 어떤 사람에게 성령 역사가 있었고 기름이 있어서, 그 사람은 기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얼마를 얻든지 조금 얻어도 수확이 있고, 헛 오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기름을 조금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흐린 물을 한 대야 얻는다면, 괴로워하고 원망할 것입니다. 제가 왜 이 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증거하는 본분을 하려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하는데, 잘 찾고 구해 보고 잘 묵상해 본 다음 예배하러 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준비를 잘해서 간 것입니다. 예배하러 가서 대충 때우면 안 됩니다. 대충 때워 교통하면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합니다. 만약 당신이 준비해서 오고 진리를 잘 장비해서 진리를 깊이 묵상해 봤고 가장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말과 가장 능력이 있는 말씀을 노트에 적어 놓고 예배 때 교통한다면 사람들이 듣고 나서 ‘들을 말이 좀 있네. 참된 빛 비춤이 좀 있어. 인식도 있고 견식도 있고 상세하게 잘 말했어, 좋아. 멋져! 저분 교통 잘하시네. 나 오늘 헛걸음하지 않았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면 효과에 도달한 것이 아닙니까? 만약 준비도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가서 대충 교통한다면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내가 소구역 인솔자인데, 새 신자들에게 교통해 줄 거 준비할 필요 있어? 내가 가서 교통하면 새 신자들은 박수칠 것이고 즐거워할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준비도 하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예배하러 가는데,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어요. 너무 독선적이면 성령께서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경력이 좀 있어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헛수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신자에게 교통해 주려면 준비해야 합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뭘 말할까요? 먼저 새 신자의 문제를 잘 장악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어떤 관념들이 있고 어떤 문제들이 존재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하고, 사람 안의 관념과 상상을 완전히 깨끗하게 해서 하나님 말씀의 진리가 그 사람들 마음속에 뿌리박히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는지,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진리를 찾고 구하면서 깊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야 하나님을 흡족케 하고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간을 조금 허비하더라도 그런 방면에 노력을 기울이면 얻게 될 것입니다. 얻은 것을 요점만 써서 메모해 두면 좋습니다. 그런 다음 책임감을 가지고 새 신자와 예배 드리면 꼭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준비를 잘한 것이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사역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탁을 갖고 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예배 드리면서 교통할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비록 준비는 해왔지만 인식이 얕고 말재주도 없습니다. 겉면의 일은 좀 말할 수 있지만 생명 영 안의 일을 말하거나 하나님을 증거하는 건 잘 못합니다. 정말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지 않고 저를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예배를 축복해 주시고, 성령의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주셔서 하나님의 선민들이 유익한 점을 얻고 하나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면 마음이 많이 편해집니다. 그런 다음 교통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고 경건해지고 하나님의 부탁이 생겨서 마음이 침착해지고 편해집니다. 그리고 계속 진실한 말만 하고 건방지거나 교만방자한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알았죠?

하나님을 증거함에 있어 가장 피해야 할 말은 무엇일까요? 첫째, 자질구레한 말, 복잡한 말, 흐릿한 말 즉, 얼버무린 말, 애매모호한 말, 반토막 말, 두리뭉실한 말, 이런 말들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늘 이런 말을 한다면 얼른 버리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을 할 때 천천히 하고 그런 구두어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쨌든 그렇습니다.” “그니까” “그담에” 이런 것은 다 안 됩니다. “그건 있잖아요. 그거 말이에요.”에서와 같이 “잖아요. 말이에요.” 이런 것은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구두어는 한 마디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훈련하다 보면 당신이 하는 말은 차츰차츰 완전한 말이 되고, 알아듣기 쉬운 말이 되고, 깨끗한 말이 됩니다. 이 정도까지 훈련하면 성공한 것이고, 언어표현 능력을 갖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질구레한 말을 합니까? “그담에”, “그건 있잖아요. 그거 말이에요.”, “그니까”, “아무튼”, “잖아요. 말이에요” 이런 것들은 자주 쓰는 말이 아닙니까? 이런 말들은 안 쓰면 안 됩니까? 제가 말할 때 이런 말을 씁니까? 안 쓰죠? 저는 사투리를 쓰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느 지방의 사람이라고 해도 그곳의 사투리를 쓰지 마세요. 현지의 사투리나 입에 발린 말은 절대 하면 안 됩니다. 사투리를 쓰면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고 역겨워합니다. 사람은 본래 관념이 아주 깊습니다. “왜 우리 고장의 말은 하지 않아요? 우리 고장의 말이 가장 좋아요.” 사람에게는 다 이런 독선적인 관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표준어를 쓰고 사투리는 절대 쓰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곳의 사람이든 어투는 바꾸지 못해도 사투리나 지방 말은 안 쓰면 되지 않습니까? 표준어만 하고 또 무슨 말이든 다 제대로 하고,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분명하게 한다면, 말재주가 좋은 것이고 합격된 것입니다.

말재주가 좋은 것은 말이 빠르거나 느린 것에 상관없습니다. 만약 중요한 진리를 교통할 때, 그 진리에 대해 빛 비춤만 있고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면 천천히 말하면 됩니다. 천천히 말하면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요? 첫 번째, 말하면서 생각할 수 있어 더 침착하게 말할 수 있는데, 더 정확해지고 주제를 벗어나지 않게 됩니다. 두 번째, 다른 사람이 듣고 잘 이해할 수 있고 환히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어느 방면의 진리에 대해 익숙하고 또한 그런 것에 대해 능숙하게 말한다면 조금 빨리 말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너무 빨라도 안 됩니다. 듣는 사람이 이해(원문: 反應)하지도 못했는데 계속 말하고 그대로 지나간다면, 효과가 좋지 않습니다. 너무 빨리 말하면 효과가 좋지 않습니다. 빨리 말해야 하는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가장 간단한 일, 가장 얕은 일, 겉의 일을 말할 때, 사람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듣자마자 알 수 있는 이런 일들은 빨리 말해야지 천천히 말하면 안 됩니다. 천천히 말하면 지겨워하고 조급해합니다. 중요한 일이나 관건적인 일은 절대로 빨리 말하면 안 됩니다. 천천히 말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반복해서 말해야만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 말을 하는 원칙입니다. 아시겠죠? 이 원칙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 원칙은 중요합니다.

또 다른 문제 있습니까?

문제 (1) 어떤 복음 대상자는 주님이 오시는 예언이 다 응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이 마땅히 오셔야 한다는 말도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하나님께서 이미 오셨다고 교통해 주면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어떻게 교통해야 상대방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고, 주께서 이미 오셨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요?

답: 예언이 다 응했다는 것도 인정하고, 뭘 교통해 줘도 다 인정하면서 왜 주님이 오셨다고만 하면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까? 가장 주요한 것은 도성육신에 대한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첫째는 도성육신, 둘째는 3단계 사역, 셋째는 말세의 심판 사역, 이 세 방면의 기본적인 진리에 대해 분명하게 교통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이미 오셨고, 그분이 바로 하나님임을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 이 말씀을 교통했습니다. 이 말씀에서는 무슨 진리를 증거했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시인하게 되었는지를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셨을 때 처음에 사람들이 시인했습니까?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고 나서야 “이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계십니다.”라고 하면서 시인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그럼 이런 경력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줍니까?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겪어야만 인자이신 그분 즉, 말세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런 진리에 정복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정말 그리스도 앞에 오게 된다면,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시인할 수 있을까요? 시인할 수 없습니다. 그 인자이신 그리스도를 정말 뵙고,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시인하려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심판 형벌을 경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다 해서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고, 하나님을 시인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진리들이 다 맞아요. 저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시인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대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당신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해야 어느 날엔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고, 그분이 바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나타나심임을 시인하게 됩니다. 그때는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시인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보고 부득불 시인하게 된 것이지만, 마지막에는 심판 형벌을 경력하고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시인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과정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일부분 사람들이 설사 받아들였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들이 정말로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확신했습니까? 그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보고 어쩔 수 없이 시인하고 받아들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받아들인 것과 하나님을 알게 된 것, 받아들인 것과 확신한 것에 구별이 있지 않습니까? 구별이 있습니다.

누군가 또 질문합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교통하면 인정만 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하면 인정하고 받아들입니까?” 이것은 두 부류의 사람이 아닙니까? 이 두 부류의 사람은 성질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진리임을 인정하면서 진리를 인정할 때에야 하나님을 시인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것이 진리이고, 하나님의 음성임을 인정하게 되면 바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접 보는 것에 근거하고 진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할지라도 진리가 바로 하나님의 음성임을 시인하지 않고, 진리를 발표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리임을 인정하지 않고,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체를 꼭 봐야 믿겠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불신파가 아닌가요? 불신파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진리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음성을 발하실 수 있는 분임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교통해 주니 그 사람이 진리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받아들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셨네요. 이런 진리를 발표하신 분이라면 바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이고, 바로 인자이십니다.”라고 한다면, 바로 진리를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진리를 인정하지 못하는 그 사람들은 “뭐 따질 게 있어요? 제가 보기엔 무엇이든 다 진리예요. 성경의 말씀도 다 진리이고, 당신들이 교통한 것도 진리이기는 하죠. 저의 관념과 상상도 역시 진리이고,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과 좋아하는 지식도 모두 진리죠.”라고 합니다. 진리에 대해 깨닫는 것이 아주 모호하기에 이런 사람은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해 줘도 하나님이 오셨음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한 후에 하나님이 오셨음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구원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무릇 진리를 아주 분명하게 교통하는 것을 듣고도 하나님이 오셨다는 것을 믿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체라야 하나님이라고 믿으면서 도성육신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기껏해야 성령의 깨우침이지 하나님이 친히 발하신 음성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어떤 성질일까요? 하나님만 시인하고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역시 불신파입니다.

문제 (2) 우리가 한 복음 대상자에게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교통해 주면서 하나님께서 한 단계 말씀 사역을 하셔서 인류를 정결케 하셔야 한다고 하니, 그때 당시에는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 대상자에게 영화 한 장면을 보여 줬을 때, 그는 ‘하나님 말씀 책은 어떤 책이고, 누가 썼는지를 꽤 중히 여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도성육신하셔서 친히 발표하신 말씀이라고 교통하니, 그는 바로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다가 부정적인 선전을 보고 나서는 더 이상 우리의 교통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오지도 않았습니다. 이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영화의 장면을 골라 복음을 증거할 때, 어떤 면들을 고려해야 합니까?

답: 영화는 반드시 보여 줘야 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특별한 마귀이고, 기괴한 마귀입니다. 그럼 그를 상대하지 않으면 됩니다. 영화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그 마귀에게 문제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진리를 아무리 말해 주어도 믿지 않습니다. 그는 영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진리를 믿고 추구하게 하려고 하는 것은 환상이고 꿈꾸는 것입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가버리는 것은 아주 정상적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왜 그렇게 미련을 갖습니까? 마치 자신의 실수로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 앞에 데려오지 못해서 늘 후회하는 것 같은데,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여러분은 지금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다가 좋은 사람도 없으니, 마땅히 그런 사람을 구원해야 하고, 일부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여러분은 영이 통하지 않는 자들을 다 도태시키지 말아야 하고, 최소한 하나님 집에서 그런 자들을 일부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문제의 실질을 꿰뚫어 보지 못했고, 그들의 본성을 꿰뚫어 보지 못했습니다.) 꿰뚫어 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럼 그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런 사람이 가면 기뻐하고, 영원히 돌아오지 말라고 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영이 통하지 않는 자라면, 한 사람도 데려오지 마세요.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원하지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받아들여 뭐합니까? 전도해서 들어오면 오히려 큰 문젯거리입니다! 영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전도해 왔다면 대책을 세워 그 사람을 출교시켜야 하고, 도태시켜야 하고, 또 그 사람의 미움도 받아야 합니다. 그럼 더욱 골칫거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사람이 안 들어오면 잘된 일이고 더 편합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다시 제명해야 하니 그것이 더 힘듭니다. 그런 사람들은 들어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당신이 그런 사람에게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면서 진리를 더 분명하게 교통해 주어도 머리를 돌리고 달아나는데,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립니다.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영이 통하지 않는 그 사람들이 당신에게 달라붙어 꼭 믿겠다고 하면서 진심으로 믿지 않고, 또 교회를 교란시키고 예배드리는 것과 교통하는 것을 방해하는데, 이런 상황이야말로 골칫거리인 것입니다. 차라리 달아나서 종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니 이 말을 기억하세요. ‘영이 통하지 않는 자가 방해할까 걱정이지 달아날까 봐 걱정하지는 않는다’ 이 말을 마음속에 새겨두면, 그런 사람이 달아나서 찾을래야 찾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마음이 평안해지게 됩니다.

문제 (3) 우리가 갓 일부 사람들을 전도해 왔는데,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이심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분별하고 실증할 수 있냐고 묻습니다.

답: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다시 오신 가장 주요한 특징은 무엇일까요? 그분이 오셔서 진리를 발표하여 사역을 한다면, 이것으로 하나님이 다시 오셨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오셔서 표적과 기사만 나타내고 몇 마디 말씀만 한다면 아무런 의의도 없습니다. 그러면 절대로 하나님이 다시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신 것은 사역하러 오신 것이고, 진리를 발표하셔서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가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말씀이 아닌가요? 하신 것이 국도(왕국)시대의 사역이 아닌가요? 만약 맞다고 생각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이시고, 바로 그 영이 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듣고 “아, 맞아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발표해서 하신 것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고, 바로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시려던 사역이고,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서 하신 거라면, 맞는 거네요. 그러고 보니 그분이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이시네요. 맞을 거예요.”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들에게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의 구별은 무엇인지, 참 그리스도는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 그리고 거짓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교통한다면 적합할까요?) 그 방면을 교통해도 됩니다. 그러면 참 그리스도가 하시는 사역에 대해 분명하게 교통해야 합니다. 분명하게 교통하지 못해 복음 대상자에게 이 단계 사역은 주 예수님이 하신 사역과 관계없고, 주 예수님의 예언이 응한 것도 아니고, 이 단계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 아니고 진리도 너무 적게 발표했다는 생각을 주면 안 됩니다. 이 일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야 그 사람이 듣고 말씀 마디마디가 다 사리에 들어맞으니 참으로 주님이 오셔서 하신 사역이고, 정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라고 하면서 쉽게 인정하게 됩니다. 이방인에게 이 방면의 진리를 교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이라는 확신이 들게 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절대로 믿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가장 기본적인 3가지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해야 합니다. 이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분명하게 교통하지 못한다면, 복음 대상자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진리 교통을 많이 듣고 “다 진리네요. 이것은 틀림없이 그리스도의 발표이고, 주님의 재림이에요.”라고 한다면, 이런 사람은 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안 됩니다. 한 마디라도 적게 말하면 안 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세 방면의 진리를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면 복음 대상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임을 시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 (4) 이 두 달 사이에 부정적인 선전이 매우 심해졌고, 교계의 공격도 아주 심합니다. 지금 교계가 또 복음 대상자의 가족들까지 끌어들이는 바람에 방해가 아주 심합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복음 대상자에게 간증을 다 하고 나서 하루 이틀 지나 복음 대상자와 연락하면 그래도 왔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통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말을 흘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들으면, 어떤 이는 즉시 가 버리고, 어떤 이는 저촉하면서 아무리 교통해도 듣기 싫어합니다. 지금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을 전하는 형제자매들도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답: 지금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런 상황이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탄의 입에서 사람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구원할 때마다 여러 차례의 ‘톱질’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줄다리기’라는 놀이를 알고 있습니까? 이편에서 한 무리 사람들이 밧줄을 당기고, 저편에서 한 무리 사람들이 당기는데, 당신 편에 한 사람을 더하면 저편보다 힘이 더 커져 저편의 사람을 빼앗아 오게 됩니다. 사람을 빼앗아 오는 것은 바로 톱질하고 줄다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아주 정상적인 것입니다! 이후에 사탄과 싸워 사람을 빼앗아 오려면, 각 사람의 영혼에 모두 큰 노력과 대가를 치러야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비유하셨는지 봅시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마태복음 12:29) 말세에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얻는 것은 마치 한 악한 종이 한 무리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으니 나중에 더 건장한 사람이 와서 그 악한 종을 무너뜨려야 통제당하고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빼앗아 오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교계에서 사람을 빼앗아 오는 것은 바로 사탄의 입에서 사람을 빼앗아 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더 강한 용사가 아니면 악한 종을 무너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하나 얻으려면 세상에서 얻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교계에서 얻으려면 쟁탈전을 거쳐야 합니다. 마치 줄다리기처럼 겨루어야 하고, 경쟁을 벌여야 마지막에 얻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교계에서 한 사람을 얻는 것은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몇 사람을 전도한 뒤에는 그 사람들이 방비하면서 늘 신도들에게 부정적인 선전을 주입시킬 것입니다. 그러니 이후에는 한 사람을 전도해 올 때마다 아주 힘들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좋은 사람에게 전도해야 합니다.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 그릇되게 터득하는 사람, 진리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빼앗아 오든지 쓸모없습니다. 관건은 그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그 자신이 만약 진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옳은 사람이 아니고, 진리를 받아들여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가 그렇게 힘을 많이 들일 가치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을 얻어야 합니다. 좋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아무리 힘을 많이 들여도 가치 있습니다. 그러나 안 좋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힘을 조금이라도 들이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습니다. 거저 줘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럼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왜 이렇게 험난합니까? 늘 이렇게 전도해서 사람을 얻는 것이 언제면 끝나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2017년이 곧 다가오고 있습니다. 2017년 연말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있습니까? 세계 형세도 변화가 있을 것이고, 재난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시간도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복음 사역을 아직도 8년, 10년, 20년 더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여러분께 말씀 드리지만 기껏해야 1,2년입니다. 언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얼마큼이라도 전도해 올 수 있으면 됩니다. 아시겠지요? 이렇게 5년, 10년 전도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솔직하게 알려 주는데, 지금 환경이 굉장히 긴장된 상태입니다. 보세요. 지금 재난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고, 각 나라의 형세도 긴장 상태인데, 전쟁의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오랫동안 전도하려고 해도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내년에 어떻게 될지, 올해 장담할 수 없습니다. 2017년에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2018년은 더욱 위험할 것입니다. 2017년에 큰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도 2018년에는 반드시 발생할 것입니다. 복음 사역을 오랫동안 하려고 해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복음을 전하면서 대가를 치르고 고생하는 것은 다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몇 년 더 전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몇 년을 더 전도하고 싶어도 하나님은 그렇게 긴 시간을 주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율법사의 말에 따르면 이 2년 사이에 대재난이 있다고 합니다. 핏빛 달이 연속 네 번 나타나는 것이 응했습니다. 잇따라 대재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예언, 즉 아마겟돈 전쟁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전쟁만 끝나면 하나님의 행사는 전 인류를 향해 나타나게 되고, 대재난이 곧 내리게 될 것입니다. 그 전쟁부터 시작해서 잇따라 지진이 옵니다. 그러므로 대재난이 곧 내리게 될 것인데,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복음을 전하면서 고생을 좀 하는 것이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보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간증입니다. 지금 최선을 다한다면 어느 날엔가 재난이 닥치게 되어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때는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이제는 쉬겠구나. 복음을 전하려고 해도 기회가 없어. 전에 내가 있는 힘을 다해서 했길 다행이야.’ 만약 지금 힘을 다하지 않다가 재난이 닥치자 힘을 쓴다면 시간도 없고 본분도 할 수 없습니다. 그때는 후회할 것입니다. ‘일찍 알았더라면 일찍 힘도 쓰고 더 많이 버렸을 텐데!’ 늦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형세를 제대로 보았습니까? 여러분의 상상처럼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기껏해야 3~5년이지, 어쩌면 3~5년도 안 될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참 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재난 가운데서 죽게 됩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했다면 때가 돼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아이가 병에 걸리자 당신이 계속 치료해 주려고 하지만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도 치료가 안 되고, 또 가장 유명한 병원에 가서 아무리 치료해도 낫지 않아 마지막에 죽게 된 것과 같습니다. 후회하겠습니까?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이 아이는 죽을 운명인가봐요!”라고 합니다. 마음에 가책받는 것이 있겠습니까? 돈도 다 쓰고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럼 가책이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이방인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에 “죽을 팔자라면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많이 말해 줬는데도 기어코 죽겠다면 방법이 없습니다. 이방인이든 종교인이든, 무릇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진리를 교통하는 것을 듣고 “맞아요. 저도 얼른 잘 알아보고 많이 봐야겠어요.” 이렇게 말할 것인데, 그런 사람은 진리를 보면 바로 흥미를 갖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보면 볼수록 더 믿지 않고, 진리를 볼수록 더 의심합니다. 저쪽에 이익이 있다면 진리가 아니라 해도 받아들이고, 이쪽에 진리가 있고 영생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데,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이 사람은 진리에 대해 흥미가 없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흥미가 없는데 억지로 진리를 추구하라고 하면 합당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7장 6절에 보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렇지 않습니까? 당신이 얼굴까지 빨개지면서 지치도록 진리를 교통했는데, 그 사람이 당신의 뺨을 때리고 가 버립니다. 그런데 당신이 따라가서 “왼쪽 얼굴을 때리면 오른쪽 얼굴을 내밀게요. 더 교통해야겠어요. 당신이 믿을 때까지 교통할래요.”라고 하면서 계속 교통한다면 합당할까요? 당신의 뺨을 때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 사람이 진리를 증오하고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이런 진리를 교통하면, 저는 당신을 증오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뜻입니다. 알겠습니까? 이 정도까지 되면 “죽을 팔자라면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는 말이 증명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죽어야 할 팔자이니 말릴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큰 붉은 용이 그 사람을 잡아서 심문하고 혹형을 가하려고 하자 이렇게 생각합니다. ‘복음 전할 기회가 생겼어. 하나님을 증거해야지.’ 그렇게 증거하자 마귀는 더욱 심하게 고문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일입니까? 마귀에게 하나님을 증거해서 하나님 앞에 데려오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원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전도해서 200여 명을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200여 명이 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다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답하지 못하네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사람의 열정으로 함부로 전한다면 무지몽매한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까? 복음을 전하려면 복음 대상자를 정확하게 봐야 합니다. 전도해도 되는 복음 대상자에게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가치가 있지만, 전도하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는 한 마디를 더 말해도 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문제 (5) 한 새 신자가 있는데, 이 단계 사역을 시인하고 받아들였고, 또한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 자매가 소질이 아주 좋았기 때문에, 우리는 전에 그 자매를 양육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소질이 좋다고 칭찬했습니다. 그 자매는 지금 우리가 자신을 인솔자로 양성하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러면 자신이 나중에 가정도, 직장도 버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자매는 정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예배에도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이 문제의 실질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떤 방면의 진리를 교통해 자매를 도와줘야 할까요?

답: 그 사람은 딱 보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소질만 좋아 누가 칭찬해 주면 교만자대해지면서 추구하지 않는데, 그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누가 어떻게 말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누가 자신을 칭찬해도 추구하고, 칭찬하지 않아도 추구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누가 자신을 칭찬할수록, 좋다고 할수록 힘이 더 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양성하려고 할수록 더 뻐기고 뒷걸음치는데, 이런 것을 “끌면 가지 않고, 때리면 뒷걸음친다.”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다루기 어렵고 골칫거리입니다. 그는 자신을 인솔자로 양성하려고 한다니 뻐기면서 ‘나를 양성하겠다면, 나는 나서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양성할 가치가 없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듣고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양성할 가치가 없다면 희망이 없다는 거네. 그럼 추구해야지.’라고 하면서 또 힘을 낼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끌면 가지 않고, 때리면 뒷걸음친다.”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참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참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좋다고 하면 더욱 힘이 생기고, 또 자신을 나쁘다고 하면 도리어 힘을 불러일으켜 진리를 꼭 추구하려고 하고 그런 심지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진리를 추구할 재목이고, 옳은 사람입니다. 그 새 신자와 같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제 구실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혹시 겉으로 보면 좀 영리해 보이고, 말하는 것도 좀 소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말총으로 두부를 드는 격’과 같아 그 사람을 발탁할 수가 없는데, 그 사람은 별로이고 조화(造花)와 같아 진리를 추구하는 재목이 안 됩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에 대해 다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그저 섞여서 들어온 거짓으로 믿는 사람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상면에서 진리를 교통할 때, 계속 저촉하는 새 신자라면, 그런 사람은 정확하게 말해서, 진리라는 것은 시인하지만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또한 하나님의 존재만 시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러 왔지만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전혀 내려놓지 못하고 한사코 완고하게 고집한다면, 그런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집의 설교 교통에 대해서도 저촉하고 관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슨 문제일까요? 분별할 수 있으신가요? 바로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증오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분별력이 조금도 없어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을 달래면서 그의 관념과 상상을 해부하거나 반박하지도 않고 도리어 인정해 준다면, 그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우리는 왜 그런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따르지 않을까요? 진리는 진리이고, 관념은 관념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사람에게 분명하게 교통해 줘야 합니다. 분명하게 교통해 준 다음, 그가 받아들이지 않고 가버린다면, 그것은 좋은 일일까요, 아니면 나쁜 일일까요? 좋은 일입니다. 왜 좋은 일이라고 할까요? 가장 주된 원인은 바로 그런 사람이 하나님 집에 온 것은 목적이 있고, 사탄의 궤계를 갖고 왔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를 통제하려고 하고, 하나님과 권력을 다투고 하나님 선민을 쟁탈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복을 받으려는 희망을 품고 교회에 잠입하여 머리 숫자만 채운 것입니다. 물러가는 사람은 보통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불신파입니다. 또한 은사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 집의 사역과 하나님 말씀에 관념을 갖고 내려놓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적그리스도에 속합니다. 적그리스도는 무엇을 하러 왔겠습니까? 교회를 통제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교란하러 온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고질병이 재발한다면, 그것은 드러나 도태된 것인데,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처음에 꽤 많은 사람이 들어왔는데, 나중에 하나님 집에서 이렇게 양육하는 것을 통해 어떤 사람들은 드러났고,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바로 적그리스도이고 불신파입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상면의 설교 교통을 들을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깨닫게 되고, 참 도라는 것을 더 느끼게 되는데, 그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은 바로 이렇습니다. 매번 한 무리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집에 들어온 후, 통일적인 양육과 공급을 거쳐 나중에는 일부가 드러나 도태되는 것입니다.

2017년 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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