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목차

성령의 역사와 사탄의 역사

어떻게 영 안의 세부적인 것을 더듬어야 할까? 성령은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하는 걸까? 사탄은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하는 걸까? 악령은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하는 걸까? 여기에는 어떤 표현들이 있을까? 일이 닥치면 그 일이 성령에게서 온 것일까? 네가 순복해야 할까, 아니면 배반해야 할까? 사람의 실제 실행 가운데 사람의 뜻이 많이 나왔어도 늘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여기고, 어떤 것들은 악령에게서 온 것인데도 늘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여긴다. 어떤 때에는 성령이 안에서 인도하는데도 그것이 사탄에게서 온 것일까 봐 감히 순복하지 못하는데, 실제로는 여전히 성령의 깨우침인 것이다. 그러므로 분별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실제 경력(역주: 체험) 중에서 경력할 수가 없고, 경력 중에서 분별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생명을 얻을 수가 없다. 성령은 어떻게 역사하는 걸까? 악령은 어떻게 역사하는 걸까? 어떤 것이 사람의 뜻에서 온 것일까? 어떤 것이 성령의 인도와 깨우침에서 온 것일까? 네가 사람에게 하는 성령의 역사 법칙을 더듬게 되면, 일상생활과 실제 경력 중에서 식견이 늘어나고 분별력이 있게 되며,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고 사탄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게 되며, 흐리멍덩하게 순복하지 않고 흐리멍덩하게 추구하지 않게 되며, 마음이 맑은 사람이 되고 성령이 하는 사역에 순복하는 사람이 된다.

성령 역사는 적극적인 방면으로 인도하고 긍정적인 면으로 깨우쳐 주어 사람이 소극적이 되지 않게 하고, 마음에 위로를 받게 하며, 믿음과 심지(心志)가 있게 하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할 수 있게 한다. 성령이 역사할 때에 사람은 적극적인 방면에서 진입할 수 있는데, 피동적이 아니고 강박적인 것도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다. 성령이 역사할 때 사람은 기꺼이 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기꺼이 순복하려고 하고 기꺼이 낮추려고 하는데, 설사 내면이 고통스럽고 연약할지라도 협력하려는 심지가 있고, 그 고난을 기꺼이 받으려고 하며, 순복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의 뜻과 생각이 섞여 있지 않고, 더욱이 사람의 소망이나 속셈도 섞여 있지 않다. 사람이 성령 역사를 경력할 때는 내면이 아주 성결하다. 성령 역사가 있는 사람이 살아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고 형제자매들에 대한 사랑이 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을 혐오하는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여 감동시키는 사람은 인성이 정상일 뿐만 아니라 평소에 진리를 추구하는 인성이 있는 사람이다. 성령이 사람에게 역사하면 사람의 정경이 갈수록 좋아지고 인성이 갈수록 정상이 된다. 비록 우매한 협력도 있기는 하지만, 사람의 속마음은 바르고 적극적인 방면에서 진입하는 것이지, 결코 방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나쁜 심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성령 역사는 정상적이고 실제적이기에 정상 사람의 생활 법칙에 따라 사람에게 역사하고, 정상 사람의 실제적인 추구에 따라 성령이 사람 안에서 깨우쳐 주고 인도한다. 성령이 사람에게 역사할 때는 정상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인도하고 깨우쳐 주고, 사람의 필요에 근거하여 공급해 주며, 사람의 결핍함과 부족함에 근거하여 적극적인 방면에서 인도하고 깨우쳐 준다. 역사할 때에 정상 사람의 생활 법칙에 따라 역사하므로 사람은 실생활 속에서만이 성령 역사를 볼 수 있다.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적극적인 정형에 있고 정상적인 영 생활이 있으면 성령 역사가 있게 된다. 이런 정형 속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믿음이 있게 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격려받게 되며, 어떤 일이 닥쳐도 소극적이 되지 않는다. 또한 일에서 하나님이 너에게 배우라는 공과를 볼 수 있게 되고, 소극적이 되지 않고 연약해지지 않으며, 비록 실제적인 어려움도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를 원하게 된다.

성령이 역사하면 어떤 효과에 도달할까? 우매하든 분별력이 없든, 성령이 역사하기만 하면 사람은 믿음이 생기게 되고, 늘 하나님을 아무리 사랑해도 더 사랑하고 싶다고 느끼게 되어 협력하려고 하며, 앞으로 닥칠 어려움이 얼마나 크든 기꺼이 협력하려고 한다. 일이 임하면 그것이 도대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아니면 사탄에게서 온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기다릴 수 있고 소극적이 되지 않고 태만하지도 않는다면, 이것은 성령의 정상 역사에 속한다. 성령이 역사한다고 할지라도 사람에게 실제적인 어려움이 있기에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일들을 이겨 내지 못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모두 성령이 평소에 역사하는 단계에 속한다. 비록 그 당시에 이겨 내지 못해 연약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백배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너의 소극적인 것이 정상적으로 경력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어떻게 너를 공격하든, 너는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기도할 때면 늘 이전에 하나님께 너무 많이 빚졌다고 느끼고, 이후에 또다시 그런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육체를 배반해야겠다고 심지를 세우는데, 이 힘은 그 사람에게 아직도 성령 역사가 있음을 설명한다. 이것은 성령이 역사하는 정상적인 정형이다.

어떤 것이 사탄의 역사에서 온 것일까? 사탄에게서 온 것이면 사람 안에는 이상(異象)이 모호하고, 정상 인성이 없으며, 일을 함에 있어 속마음이 바르지 않다. 비록 하나님을 사랑하려고도 하지만 안에는 항상 참소가 있다. 이런 참소와 생각이 늘 안에서 방해하여 사람의 생명이 자라는 것을 통제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정경이 정상적인 것을 가로막는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 사탄의 역사가 있기만 하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몰라 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예배하는 것을 보면 뛰쳐 나가려 하고, 다른 사람이 기도하면 눈을 감지 못한다. 악령의 역사는 사람과 하나님의 정상 관계를 파괴하고, 사람에게 있었던 기존의 이상이나 생명 진입의 길을 혼란스럽게 하여 마음으로 언제나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없게 하고, 언제나 어떤 일에 방해받고 통제받게 하여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을 사랑함에 힘이 없게 하고 영 안이 가라앉게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사탄의 역사에서 온 표현이다. 사탄이 역사할 때 나타나는 표현은 입장을 고수하지 못하고, 간증을 굳게 서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 충심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사탄이 방해하기만 하면 너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충심을 잃게 되고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가 없어지며,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자라기를 추구하지 않으며, 후퇴하고 소극적이 되고 자신과 타협하며, 죄가 만연되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죄를 증오하지 않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너를 방탕하게 하고, 네 안에서 하나님의 감동이 사라지게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게 할 수 있어 하나님을 의심하고 심지어 떠나갈 위험까지도 초래하게 된다. 이것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일이 닥치면 성령의 역사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사탄의 역사에서 온 것인지를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 사람의 정경이 정상일 때는 영 생활도 정상이고 육체 생활도 정상이며, 사람의 이지(理智)도 정상이고 법칙이 있다. 일반적으로 그때에 경력한 것과 인식하게 된 것은 모두 성령의 감동에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심에 깨달음이 있다든가, 얕은 인식들이 있다든가, 어떤 일들에서 충성한다든가, 어떤 일들에서 하나님을 사랑함에 힘이 있다든가 하는 이것은 모두 성령에게서 온 것이다). 성령은 사람에게 아주 정상적으로 역사한다. 사람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여 다 자신이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성령이 역사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성령은 각 사람에게 다르게 역사하는데, 정도가 다를 따름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질이 좋아 터득하는 것이 빠르기에 성령이 그 사람 안에서 특별히 깨우쳐 준다. 어떤 사람들은 소질이 낮아 터득하는 것이 좀 느리지만 성령이 그 사람 안에서 감동시키면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다. 성령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역사한다. 일상생활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경영을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영은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정도로 역사하여 사람을 감동시키고 사람을 깨우쳐 주고 사람에게 믿음과 힘을 주며, 사람을 감동시켜 적극적인 방면에서 진입하게 하고 나태해지지 않게 하고 육체적인 누림을 탐내지 않게 하며, 진리를 실행하기 원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한다. 이런 것은 모두 성령의 역사에서 온 것이다.

너의 정형이 비정상일 때는 성령께 버림받는다. 사람 안에 있는 원망하는 마음, 바르지 않은 속셈, 나태, 육체의 방종, 진리를 배반하는 마음과 같은 이런 것은 다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사람의 정경이 비정상이면 내면이 흑암하여 정상 이지를 잃게 되고 성령께 버림받으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더듬을 수 없게 된다. 그때면 사탄이 사람 안에서 역사하게 된다. 사람이 항상 안에 힘이 있고 항상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일반적으로 어떤 일이 임하든 그것은 다 성령에게서 오는 것이고, 어떤 사람을 만나든 그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안배에서 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너의 정경이 정상일 때, 성령이 크게 역사할 때는 사탄이 너를 요동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 기초에서는 모든 것이 다 성령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록 바르지 않은 생각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배반하고 그것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모두 성령의 역사에서 온 것이다. 사탄은 어떤 상황에서 개입하느냐? 너의 정경이 비정상이 되고, 하나님의 감동이 없고, 하나님의 역사가 없으며, 내면이 무미건조하여 하나님께 기도해도 더듬을 수 없다고 느껴지며,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도 아무런 깨우침과 빛 비춤이 없을 때이다. 이럴 때 사탄은 사람 안에서 역사하기 쉽다. 다시 말해, 성령이 떠나고 네가 하나님을 더듬을 수 없게 되면 많은 일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시험이 된다. 성령이 역사할 때 사탄도 동시에 역사하는데, 성령이 사람 안에서 감동시키면 사탄은 사람 안에서 방해한다. 그러나 그때에 성령 역사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에 정경이 정상인 사람은 다 이겨 낼 수 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사탄의 역사를 이긴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할 때는 사탄의 역사가 거의 없다. 성령이 역사할 때에도 사람 안에는 여전히 패역 성정이 있고,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은 성령이 역사할 때에도 여전히 있다. 그러나 성령 역사가 있기에 사람이 모두 사람의 본질적인 것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성정을 쉽게 인식하게 되지만 벗어 버리는 것은 점진적인 역사에서라야 차츰차츰 될 수 있다. 성령 역사는 아주 정상적이다. 성령이 역사하는 동안에도 사람에게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고 눈물이 있고 고통이 있고 연약이 있으며, 또 꿰뚫어 볼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정형에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계속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괴롭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다. 성령 역사는 아주 정상적이고 전혀 초자연적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이 역사하기만 하면 사람의 정형이 다 바뀌고 본질적인 것들도 벗겨진다고 여기는데, 이런 인식법은 그릇된 것이다. 성령이 사람에게 역사할 때에도 사람의 소극적인 것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분량도 여전히 그만하다. 다만 성령의 빛 비춤과 깨우침이 있어 사람의 적극적인 정형이 많아지고, 사람 안의 정경이 정상이 되고, 사람이 빨리 변화될 뿐이다. 사람이 실제적으로 경력하는 가운데서 주로 경력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나 사탄의 역사이다. 사람이 이런 정형을 파악하지 못하고 분별이 없다면 실제적인 경력에 진입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성정 변화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력함에 있어 관건은 이런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경력하기 쉽다.

성령 역사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향상하게 한다. 사탄의 역사는 사람을 후퇴하게 하고, 소극적이 되게 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게 하며, 노래도 부르기 싫고 춤도 추기 싫어지게 한다. 성령의 깨우침에서 온 것이라면 너를 강박하지 않을 것이고 아주 자연스럽다. 네가 따르면 진리가 있게 되고, 따르지 않으면 후에 가책을 받게 된다. 성령의 깨우침이라면 네가 무슨 일을 해도 방해받거나 통제받게 하지 않고 해방받게 하며, 일을 할 때 실행 길이 있게 하고, 또한 시름 놓고 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하게 한다. 사탄의 역사는 네가 많은 일에서 방해받게 하며, 기도도 하기 싫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도 싫어지게 하고, 교회 생활도 하기 싫어지게 하여 영 생활과 멀어지게 한다. 성령 역사는 너의 일상생활을 방해하지 않고, 너의 정상적인 영 생활의 진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많은 일은 그 당시에 분별해 낼 수 없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 겉으로 어느 정도 살아낼 수 있고, 어느 정도 표현할 수 있으며, 속으로 어떤 일들에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런 표현에 근거하여 내면의 생각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아니면 사탄에게서 온 것인지를 분별하게 된다. 너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게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게 하는 이런 뚜렷한 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뚜렷하지 않은 어떤 것들을 당시에 분별해 낼 수 없다면 나중에 표현을 보면서 어떤 일들이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어떤 일들이 성령의 지배에서 온 것인지를 분별하면 된다. 이런 것들을 밝히 분별한 다음 경력한다면 쉽게 치우치지 않게 될 것이다. 어떤 때에는 정경이 나쁘지만 너의 안에 어떤 생각이 있게 되어 네가 소극적인 정형에서 나오게 되는데, 이것은 네가 정경이 나쁠 때에도 성령으로부터 올 때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네가 소극적이 되었을 때의 모든 생각이 다 사탄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네가 언제 적극적인 정형으로 바뀌겠느냐? 한동안 소극적이 되면 성령이 너에게 온전케 될 기회를 주고 감동을 주어 그 소극적인 정형에서 나오게 한다.

성령 역사란 무엇이고 사탄 역사란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너는 경력 중에서 자기의 정형을 대조하고, 자기의 경력을 대조할 수 있다. 그러면 너는 경력하면서 원칙에 관한 진리가 많아질 것이다. 네가 이런 것을 깨닫게 되면 자기의 진실한 정형을 파악할 수 있고, 사람을 분별하고 일을 분별할 수 있다. 물론, 너의 속마음이 옳고, 네가 찾고 구하고 실행하려고 하기만 하면, 그다지 애쓰지 않아도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다. 원칙 부류에 관련되는 이런 말씀은 다 네가 경력할 때 있어야 할 것들이다. 네가 이런 것을 갖추지 못한다면 너의 경력 중에 사탄의 방해가 가득하고 우매한 인식이 가득할 것이다.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사탄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모르면 너의 발걸음을 어떻게 신중히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게 된다.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사탄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하는 이런 것은 사람이 마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이고, 사람의 경력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비록 네가 믿는 분이 확실히 하나님이지만, 너는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가 있느냐? 어떤 사람은 “저는 다른 사람과는 어떻든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있으면 충분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럼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있는 표현은 어떤 것이냐? 이런 사람은 실제적인 인식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 아니냐?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심지가 큰지, 진실로 육체를 배반하는지에 대해 언급하겠느냐? 바로 네가 형제자매들에 대해 선입견이 있는지, 선입견이 있을 때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형제자매들과의 관계가 정상이면 하나님 앞에서의 정경도 정상인 것이다. 형제자매가 연약할 때 네가 혐오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으며, 비웃지 않고, 싫은 내색을 내비치지 않으며, 돌볼 수 있다면 이렇게 많이 교통하여라. “저도 이전에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져 예배하기 아주 싫어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통해 저를 깨우쳐 주시고 징계하시니 저는 책망을 받고 깊이 뉘우치게 되었고, 늘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느꼈어요. 그 후에는 교회 생활을 잘하게 되었는데, 형제자매들을 접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떠날 수 없음을 느꼈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있으니 더 이상 외롭지 않았어요. 혼자 집 안에 틀어박혀 있었을 때는 늘 외롭고 적적했으며, 늘 인생의 공허함을 느꼈고 게다가 죽을 생각까지 했었지요. 나중에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있으니 사탄도 감히 역사하지 못하였고 저도 외롭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저는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그렇게 큰 것을 보고 격려받기도 했어요. 늘 형제자매들과 함께 있으니 소극적인 정형이 자연스레 없어졌어요.” 그가 듣고는 자기도 집에서 기도하려고 할 때 잘 되지 않고, 형제자매들 사이에 사랑이 없는 것 같고, 늘 인생이 공허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께 기도만 해서는 소용없다고 느꼈었는데, 네가 이렇게 교통해 주니 그에게도 실행 길이 있게 되었다. 네가 그에게 공급해 줄 수 없다고 느낀다면 그를 찾아가 보는 것도 괜찮다. 이런 일은 교회 인솔자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형제자매들이라면 누구나 다 이 사역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어느 형제나 자매의 정형이 좋지 않은 것이 보이면 찾아가 보아라. 이것은 각 사람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