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App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생명 진입에 관한 설교 (낭송)

색상

테마

폰트

크기

줄 간격

페이지 너비

검색결과 0개

관련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154집 (a) 하나님 말씀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 관한 설교 교통 (2)

【154-A-3】

일부 사람들은 설교도 열심히 듣고 예배도 잘 하며 본분도 하기 좋아하지만 진리 추구에서 힘이 나지 않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진리 추구에서 힘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진리를 증오하는 것도 아니고 진리 추구를 원하기는 하지만 진리 추구에서 힘이 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근거로 힘이 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10년, 20년 진리를 추구했다는 사람이 진리를 얻지 못했는데, 그것이 진리 추구에 힘이 나지 않는 게 아닐까요? 제가 말한 것이 사실 아닙니까? 10년, 20년 믿었어도 진리를 얻지 못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맞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속으로는 진리 추구를 원하고 또한 진리를 좋아하고 진리 얻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어째서 진리를 얻지 못하는 것일까요? 진리에 대해 흥미도 좀 있고 설교도 듣기 좋아하지만, 진리를 실행해 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기 싫어합니다. 이것은 어떤 문제입니까? 지금 많은 사람이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진리 추구를 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 줄 몰라 오래 믿었어도 진리를 얻지 못했고, 글귀 도리만 외치는 것입니다. 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어째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지 않을까요? 어째서 진리와 관련되는 일이 임하면,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진리에 순복하지 않는 걸까요? 심지어 책망과 훈계가 임할 때에도, 입으로는 자신에게 진리가 없고 늘 자기 뜻대로 행하는 것을 인정하며 회개하겠다고 하지만, 한동안 지나면 여전히 진리를 실행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데 실패하는 이유가 몇 가지 되지만, 이것도 주된 이유 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바울과 같은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증오하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저주받고 도태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바울과 같은 악인이 아닙니다. 진리 추구를 원하면서도 결국에는 진리를 얻지 못한 것이죠. 이 같은 실패는 매우 가련합니다. 그렇다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겉보기에는 진리 추구를 좋아하고 진리 추구를 원하며 진리에 대해 반감도 없습니다. 설교도 열심히 듣고 예배에도 꼬박꼬박 참석합니다. 하지만 어째서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면, 일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비슷한 정형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이런 정형에 속한 사람은 손을 들어보십시오. 꽤 많군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바로 이러한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진리 추구를 원하지만 일이 임하면 진리를 찾고자 하는 심지가 없습니다. 소질이 좋고 심지가 있는 베드로처럼 일이 임하면 진리를 깨달을 때까지 묵상하고 찾고 구하는 것이 아니죠.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 진입이나 본분에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진리를 찾고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규례만 좀 지키고 정형만 좋으면 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많은 일을 경력했지만 진리를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정형은 일부분 사람을 대표합니다. 어쩌면 대부분 사람이 이런 정형일지도 모릅니다. 이 말씀을 나누다 보니 제9회 합창 찬양이 떠오르네요. 그 찬양 가사는 <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는가?ㆍ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랜 세월, 사람이 믿고 생존해 온 사상이 사람의 심령을 부패시켜 사람은 간사해지고 나약해지고 또 비열해졌다. 사람은 의지력과 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고 거만해졌으며, 자아를 초월하려는 심지가 전혀 없고, 더욱이 이 흑암 권세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용기도 전혀 없다. 사람의 사상이 부패되고 삶이 타락되어 하나님을 믿는 관점까지도 여전히 추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대해 말하면 그야말로 듣기조차 민망하다. 사람은 모두 나약하고 무능하고 비열한 데다가 취약하여 흑암 세력을 혐오스러워하지 않고 빛과 진리를 사랑스러워하지 않으며 있는 힘껏 몰아낸다.』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 실패한 원인을 정리하려면 그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보고 나서 근원을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근원을 어떻게 정리하고 설명해야 할까요? 바로 사람이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마음으로는 진리 추구를 원하지만 진리를 실행해 내지 못하고, 마음으로는 진리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지만 추구하는 데서 힘이 나지 않습니다. 마음은 충분히 있지만 힘이 모자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하나님을 오래 믿었지만 진리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 실패한 이유이자 근원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먼저 이 정형을 꿰뚫어 봐야 합니다. 이렇게 실패한 이유는 바울이 실패한 이유와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바울은 진리를 증오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 추구를 원하지만 힘이 나지 않고 심지가 없으며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패괴되어 나약하고 무능해지고 비열하면서도 취약해진 것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나약함이란 고통을 견딜 수 없고 너무 약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버티지 못하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무능함이란 어떠한 힘도 능력도 없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열함이란 항상 복을 얻기만을 바라고 간단하고 힘들지 않은 방법으로 천국에 들어가기만을 원하는 것입니다. 취약함이란 비바람과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시련이 다가오면 바로 넘어지는 것입니다. 가장 취약한 사람은 바로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타격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비꼬는 말을 좀 듣거나 혹은 어떤 어려움에 좀 부딪혀도 불신하려는 나쁜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책망과 훈계를 좀 받아도 하나님에게 불평을 합니다. 이런 것들이 가장 취약한 모습이 아닐까요? 취약한 것이란 바로 이러한 모습입니다. 사람이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었기 때문에 이 같은 모습과 추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이제 확실히 아셨습니까? 사람의 성정에 이 같은 약점이 있기 때문에 흑암 세력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붉은 용에 대해서도 혐오감을 느끼지 못하고, 세계의 풍조에 대해서도 혐오감을 느끼지 못하며 여러 가지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도 혐오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빛과 진리를 사랑스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긍정적이고 광명한 것 혹은 진리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이에 대해 사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적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있는 힘껏 몰아내는” 것입니다. 즉 늘 진리와 빛에서 벗어나려 하고 풍조와 대세만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미 위험의 벼랑 끝에 놓여 있는 게 아닐까요? 이러한 사람은 구원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 일부 사람은 본분을 하지만 힘이 나지 않습니다. “본분을 하라고요? 대충대충 하는 건 그런대로 할만 해요. 근데 전력을 다하라고 하면 별로 내키지가 않아요. 제가 열심히 하면 돈을 줄 건가요? 은혜를 줄 건가요? ”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과 이 정도로 거래하는 사람은 광명과 진리를 몰아내는 사람이 아닙니까? 참으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얻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이를 통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은 생명을 얻는 일에는 힘을 쓰기 싫어하고 땀도 흘리기 싫어합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일에는 땀과 힘을 아끼지 않으며 자녀의 학비를 대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합니다. 진리를 위해서는 땀과 힘을 아까워하는데, 이러한 사람이 진리를 얻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집에서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도 강요하지 않으니,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가고 싶으면 나가세요. 그런 사람은 안 믿는게 낫습니다. 어차피 믿어도 소용없으니까요. 아무리 오래 믿어도 진리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차라리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습니다.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 집에서는 나가라고 권하고 믿지 못하게 합니다. “진리를 사랑합니까?”, “아무리 해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럼 나가기를 원합니까?” 나가기를 원한다면 나가도 됩니다. 한 마디면 나갈 수 있습니다. 누구도 그런 사람을 가로막지 마세요. 억지로 본분을 하고 억지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그리스도를 따르기 싫어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나가도 됩니다. 하나님의 집은 절대 사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에 실패하는 여러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고, 이 방면의 교훈도 얻었습니다. 어떤 교훈을 얻었습니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오래 믿어도 진리를 얻을 수 없고,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오래 믿어도 변화가 없으며, 명예와 지위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오래 믿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사악한 자는 아무리 오래 믿어도 변하지 않고 역시 사악합니다. 인성이 좋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믿어도 소용없습니다! 인성이 좋은 사람도 패괴 성정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진리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며 진리에 순복하기 때문에 성령이 그에게 역사하여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진리를 깨달으면 패괴 성정이 정결케 되고 생명 성정이 변화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좋은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은 하나님을 믿을수록 더욱 정결케 되고, 정결케 될수록 더욱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살수록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성이 나쁘고 악한 사람은 아무리 오래 믿어도 변화가 없고 결국 도태되고 맙니다. 어떤 사람은 10년 믿었지만 결국 넘어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20년, 30년 믿었지만 결국 드러나 도태되었습니다.

도태된 사람들 중, 실패된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진리를 증오하기 때문이고, 어떤 사람은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겉보기에는 진리를 싫어하는 것 같지 않지만, 즉 예배도 잘 하고 설교도 열심히 듣지만, 전혀 진리를 실행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넘어지지 않았습니까? 늘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넘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넘어지고 실패한 사람 중, 어떤 사람이 가장 불쌍할까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니고 진리를 증오하지도 않는데 왜 넘어졌을까요?”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인성이 좀 좋다 하더라도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 그 편 말씀에서 언급되지 않았습니까? 언급되었습니다. 이는 실패의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요? 악인이 드러나 도태되고 저주받을 때는 모두 손뼉을 치며 “악한 사람은 그렇게 처리하는 게 마땅합니다!”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은 악인이 아니고, 겉보기에는 열심도 있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 같지만, 오랫동안 믿으면서 진리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태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을 볼 때 심정이 어떻습니까? 마음이 아주 무거울 것입니다. “나쁜 사람도 아닌데 어째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일까요?” 동정심이 생겨 나오겠죠? 여러분,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겉보기에는 악인도 아니고 좋은 사람 같은데 어째서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일까요? 진리를 행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훈계할 때 아무리 옳은 말을 하고 사실을 말해도, 그 사람은 “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전 당신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누군가 그 사람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마음을 들여 본분을 하라고 하니 “싫어요. 대충 얼버무리면 되죠. 이 정도면 훌륭한 겁니다.”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효과가 없어요.”, “효과가 없어도 저는 이렇게 할 겁니다. 효과가 있든 없든 하면 되는 거 아니예요? 이 정도면 대단한 거죠!” 이런 사람이 진리를 행하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마치 접대 본분을 하는 사람이 “음식을 해 드릴게요. 맛이 있든 없든 그냥 만들기만 하면 되죠. 당신의 입맛에 맞든 맞지 않든 상관없어요. 어차피 만들기는 다 만들었으니까요.”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효과가 있든 없든 전하기만 하면 되죠. 어쨌든 전 전도했어요.”라고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또 간증을 하는 사람이 “어쨌든 전 간증했어요. 상대방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간증만 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본분을 하는 데에 원칙이 있을까요? 이것은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아닙니까? 대충 얼버무리며 본분을 하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전 힘을 썼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힘을 썼어도 원칙에 따라 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힘을 쓰는 것이 진리의 실행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은 겉보기에는 좋은 사람 같지만,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이유로 도태되었습니다. 이것이 대부분 사람이 실패한 원인이 아닐까요? 대부분 사람은 바로 이 방면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그중 한 사람이 아닌지요? 실패의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이 아닌지요? 자신을 반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인솔자로 있으면서 악인을 씁니다. “당신은 그 사람이 악인이라고 하지만, 제 눈에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진실로 회개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사람을 씁니다.”라고 합니다. 누군가 그에게 “그 사람을 쓰면 하나님의 집 사역을 방해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그건 모르는 일이죠. 하나님의 집 사역에 도움이 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대로 악인을 쓰며 정에 치우쳐 일을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진리를 행하는 사람입니까?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에서 말씀하셨듯이,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악인만 뜻할까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포함될까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포함됩니다.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표현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본분을 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련과 연단이 임할 때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리를 이해하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것도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의 사역 안배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또 어떤 사람은 진리를 증오하기 때문에 진리를 실행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고생할까 봐 두려워하고 체면과 정을 중요시하며, 진리를 위해 고생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진리를 실행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겉보기에는 좋아 보이고 인성도 그만하면 괜찮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어쨌든,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양심과 이지가 없고, 인성도 없으며, 좋은 사람이 아니므로 다 하나님께 징벌받아 멸망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자, 가장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사람이 실패한 원인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교통하겠습니다.

이전:154-A-2

다음:154-A-4

추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