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 박해 치사 사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2018.10.3

목 차


1. 크리스천 셰융장, 경찰의 가혹한 고문으로 사망한 사례

1997년 5월 초, 안후이(安徽)성 화이베이(淮北)시에서 경찰에게 체포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이 고문받다 사망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셰융장(謝永江)은 43세 남성으로, 안후이성 화이베이시 쑤이시(濉溪)현 우거우(五溝)진 다천(大陳)촌 세웨이(謝圩)마을 사람이다. 지방교회에서 예수를 믿다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그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체포, 고문받다 사망

1997년 4월 29일, 셰융장은 같은 교회 크리스천 뤄(羅) 모 씨(당시 36세, 우거우진 사람)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체포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뤄 씨 집에 보관된 교회 물품을 경찰이 가져갈까 우려된 셰융장은 사위 가오(高) 모 씨(당시 24세), 가오 씨의 아버지(당시 54세, 이미 병환으로 사망)와 함께 밤중에 물품을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다음 날 새벽 2시경에 마무리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세 사람은 우거우진 근처를 지나가다 마침 순찰을 돌던 그 지역 파출소 경찰에게 잡혔다. 과거 신앙 때문에 2차례 체포당한 전력이 있는 셰융장을 바로 알아본 경찰은 그 자리에서 ‘불법 전도 혐의’로 세 사람을 체포해 우거우진 파출소로 끌고 갔다.

가오 모 씨의 기억에 따르면, 4월 30일 새벽 3시경, 쑤이시현 우거우진 파출소에 압송된 그와 아버지, 장인 셰융장 세 사람은 몸수색을 당한 뒤 각각 따로 심문을 받았다. 두 남자 경찰이 허리띠로 그를 심하게 구타하고, 다리를 걷어차며 말했다. “오늘 니네 셋, 전도했다고 인정할 때까지 때릴 거야. 인정하지 않으면 죽을 줄 알아!” 구타는 허리띠가 끊어지고 나서야 멈춰졌다. 5월 1일, 경찰은 지름 2cm, 길이 70cm 정도 되는 쇠파이프로 가오 씨의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들도록 구타했다.

5월 2일 오전, 가오 씨와 그의 아버지는 현(縣) 공안국으로 끌려가 관련 수속을 진행했다. 공안국으로 가는 도중 아버지는 가오 씨에게 셰융장한테 일이 생겼다고 몰래 말했다. 공안국에 도착 후 형사경찰 대대의 양(楊) 모 과장이 가오 씨의 진술 내용을 확인했다. 가오 씨는 그의 장인 셰융장의 상황을 물어보았지만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다. 5월 2일 저녁, 가오 씨는 또 경찰차 기사에게 장인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기사는 사납게 그를 노려보며 차에서 드라이버를 꺼내 “한 번만 더 물으면 이걸로 찔러 죽여 버릴 거야!”라고 소리지르며 위협했다. 놀란 가오 씨는 더는 장인에 대해 물을 수 없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쑤이시현 구치소로 옮겨져 15일간 수감되었다.

당시 사정을 알고 있는 다챠오(大橋, 가명)의 말에 의하면, 5월 1일, 셰융장이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파출소로 갔는데, 작은 창구멍 하나밖에 없는 어두운 방 안에 갇혀 있는 그를 보았다고 한다. 셰융장은 조그만 소리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심하게 구타당했다고 말했다.

셰융장의 부인은 5월 1일 오후 남편에게 이불을 전해 주기 위해 우거우진 파출소를 찾았다가, 파출소 마당에서 경찰차를 세차하는 그를 보았다고 한다. 경찰은 셰융장에게 부인과의 대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부인은 그때 셰융장이 다리를 절며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5월 2일 아침, 셰융장의 식사를 가지고 파출소를 찾은 부인에게, 경찰은 셰융장이 이미 쑤이시현으로 이송되었다고 말했다. 그날 오후, 셰융장의 가족은 셰융장이 새벽 2시에 파출소에서 목매어 자살했고, 시신은 화장터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셰융장의 유족들은 시신을 보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였다.

거짓말을 날조해 악행을 덮으려는 중국 정부

5월 10일 화장하는 날이 되어서야 유족들은 지인을 통해 쑤이시현 바이산(百善) 화장터에서 셰융장의 시신을 볼 수 있었다. 시신의 참혹한 상태를 본 유족들은 오열했다.

셰융장의 아들은 “속옷만 입고 있는 아버지의 몸에는 온통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목과 어깨 사이에 졸린 흔적이 깊게 나 있었고, 그 주변 피부는 완전히 터져 피가 흘렀습니다. 들것에는 핏자국이 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왼쪽 관자놀이에는 4cm 길이의 찢긴 상처가 있었고, 머리의 오른쪽에는 가로 3cm, 세로 2cm 크기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모두 둔기로 맞은 듯한 상처였습니다. 오른쪽 눈가와 콧대에도 2군데 검은 색을 띠는 상처가 있었는데, 곤봉이나 쇠로 된 모서리로 낸 상처같았습니다. 허리 뒤에도 뭔가에 베여서 벌어진 4cm 이상의 상처가 네 군데나 있었습니다. 반쯤 떠진 안구는 튀어나와 있었고, 입은 벌려져 있었으며, 주먹은 꽉 쥐어져 있었습니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돌아가신 것이 너무 분명했습니다.”라고 밝혔다.

셰융장의 사인에 대해 얘기할 때, 그의 아들은 “경찰은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하지만, 맞아서 생긴 게 분명한 상처들이 온몸에 있었습니다. 왼쪽 관자놀이에는 굉장히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특히 목에 있는 졸린 흔적은 목젖 밑으로 나 있는 데다가 피를 많이 흘린 상태였어요. 목을 맸다면 어떻게 목젖 밑으로 흔적이 남겠습니까? 왜 목에 피가 났겠습니까? 이건 분명히 자살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분명히, 경찰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경찰의 잔인함에 분개한 유족들은 힘을 합쳐 우거우진 파출소를 고소하고 해명을 촉구했다. 파출소 측은 촌의 간부와 셰융장의 사촌 형을 매수하여 유족들을 설득시켜 합의를 보려 하였다. 하지만 유족들은 돈도 거절하고 단호한 태도로 살인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금전적 유혹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본 파출소의 앞잡이들은 유족들을 위협하고 협박했다. 셰융장의 자녀들은 밤에 외출도 할 수 없었다. 셰융장의 부인은 남편의 비보 때문에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정신도 온전치 못한 채로, 매일 마당에 앉아 눈물만 흘리며 지냈다.

셰융장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은 현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쑤이씨현 검찰원은 셰융장을 고문했다고 시인한 우거우진 파출소 청원 경찰 왕민(王民, 우거우진 멍지(孟集)촌 왕자(王家)마을 사람)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하였다. 하지만 사건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왕민은 자신은 파출소에 이용당해 죄를 뒤집어썼을 뿐이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민은 소환이 있을 경우 즉시 응하겠다는 보증을 하고 풀려났다. 그 후, 왕민과 셰융장의 유족들은 쑤이시현 인민 법원에서 민사 조정을 진행하였다. 조정서에 쓰인 내용을 보면, “왕민은 심문 기간 허리띠로 셰융장의 등을 네 차례 때리고, 두 차례 발길질을 했다. 다음 날 새벽 셰융장은 목을 매 자살하였다. 왕민은 셰융장의 유족들의 경제적 손실에 대해 41,000위안(한화 약 688만 원)을 배상한다.”라고 나와 있었다. 셰융장의 사인이 자살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억울함을 풀 길을 찾지 못한 유족들은 주위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조정에 동의하였다.

이 참혹한 사건이 일어난 지 이미 20여 년이 흘렀지만, 억울함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2. 크리스천 잔훙메이, 경찰의 극심한 구타로 사망한 사례

잔훙메이(展洪美)는 1970년생 여성으로, 산둥(山東)성 핑두(平度)시 주뎬(舊店)진 둥마오둥(東廟東)촌 사람이다. 잔훙메이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따라 예수를 믿었고, 1998년 가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하였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사리 밝았던 그녀는 동네에서도 평판이 좋았다. 2003년, 그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체포되어 극심한 구타를 당하다가 향년 3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003년 10월 29일 오전 8시경, 잔훙메이는 주뎬(舊店)진 주리쾅(九里夼)촌에 있는 저우샹산(周祥善)의 집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저우 씨의 가족에 의해 신고를 당했다. 주리쾅촌의 치안 주임 장셴강(姜顯剛, 남, 41세)은 성춘샹(生春香), 저우펑강(周豊剛), 저우레이(周磊) 등 세 명의 남성 치안 요원과 함께 현장에서 잔훙메이를 잡으려고 했다.

잔훙메이는 도망치려고 젖먹던 힘까지 다해 뛰었지만, 체력이 떨어져 결국 잡히고 말았다. 장셴강 등 네 명은 잔훙메이를 잡아 넘어뜨리고는 가차 없이 폭행하고, 몸을 수색해 전도 서적을 몰수했다. 그리고 잔훙메이를 주리쾅촌 위원회로 끌고 가서(발꿈치가 땅에 끌림) 두 번째 구타를 가했다.

오전 11시경, 장셴강 일행은 110에 신고했고, 제보를 받고 온 주뎬진 파출소 소속 경찰들은 잔훙메이를 파출소로 연행해 갔다. 진파출소 소장 리린즈(李林誌), 경찰 양즈레이(楊芝磊), 기사 정산탕(鄭善唐) 등은 또 잔훙메이를 구타하였다(사람을 철판으로 눌렀다고 한다).

그날 오후, 주뎬진 파출소의 경찰 장파윈(張發雲, 남, 당시 58세)은 경찰 몇 명을 데리고 잔훙메이 집을 뒤져 성경 한 권을 찾아냈다.

다음 날(30일) 오전, 잔훙메이의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주뎬진 파출소로 찾아갔지만, 경찰은 시어머니만 들어가 볼 수 있게 하였다. 시어머니가 잔훙메이를 봤을 때 그녀는 수갑과 족쇄를 찬 채 고문 의자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고 한다. 손발은 부어 있었고, 얼굴도 맞아서 부어 자줏빛으로, 귀도 맞아서 검푸른 색을 띠고 있었다. 바지는 소변으로 젖어 있었다…. 며느리의 생명이 위급한 것을 본 시어머니는 경찰에게 잔훙메이를 풀어 달라고 간청했다. 장파윈은 잔훙메이가 아픈 척하는 것이라며, “잔훙메이는 ‘동방번개’를 믿었어. 3,000위안(한화 약 50만 3천 원)을 가져오면 풀어 줄 수 있어!”라고 덧붙였다.

10월 31일, 가족들은 잔훙메이가 경찰에게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잔훙메이가 갑작스럽게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나중에는 독극물을 먹고 자살했다고 말을 바꿨다.

잔훙메이의 유족들은 사건의 공정한 해결을 위해 부검을 요구했다. 유족의 말에 의하면, 부검은 핑두(平度)시 인민병원에서 진행되었고, 검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전신이 상처투성이로 온전한 피부가 없음. 전신이 검푸른 빛을 띠며, 피하 조직에 어혈이 맺힌 곳이 다수. 늑골 하나가 골절되면서 폐를 찔렀고, 폐출혈로 인한 심부전이 사망에 이르게 된 원인임.”

사건의 공정한 해결을 원한 잔훙메이의 유족들은 기관에 민원을 넣으려 하였다. 이에 핑두시 정부는 폭동 진압 부대를 보내 민원을 넣으러 가는 차량을 가로막고 위협하며 유족들이 마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고 전화를 감청하였다. 경찰의 저지를 피해 핑두시 시정부로 가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유족들을 향해 핑두시 정부 측 한 간부는 “그러게 누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라 했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다 엄하게 단속해야 해.”라며 질책하기까지 했다.

그 후, 잔훙메이 가족은 법적인 수단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 했다. 변호사가 증거를 모으고 조사하려 하자 주뎬진의 경찰은 갖가지 수단으로 방해하고 관련 정보를 차단했다. 심지어 잔훙메이가 국가 정치에 개입해 반(反)당 반(反)사회 행위를 한 정치범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잔훙메이가 경찰의 구타로 사망한 사건은 현재까지도 방치 상태에 있다.

3. 크리스천 가오추이친, 경찰이 가한 전기 충격으로 사망한 사례

2014년 7월 15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 가오추이친(高翠芹, 가명 장핑(張萍), 여)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에 체포되었다가 구금 기간에 변고를 당했다. 향년 53세였다. 2003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한 가오추이친은 사건 발생 전까지 중국 산둥(山東)성 쯔보(淄博)시 환타이(桓臺)현 숴(索)진에서 살았다.

체포 후 바로 변고를 당한 가오추이친

2014년 7월 15일 새벽 6시 30분경, 가오추이친이 집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산둥성 환타이현 공안국 국가안전보위 대대 부대장 궁웨빙(鞏曰兵)을 필두로 한 6명의 사복 경찰(남성 4명, 여성 2명)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당시 시어머니와 사촌 동서가 문 앞에 있었다. 가족들의 말에 의하면, 경찰은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가오추이친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강제로 환타이현 숴진 파출소로 끌고 갔다가 수속을 끝낸 후 환타이현 구치소로 이송했다. 당일, 가오 씨와 함께 잡힌 사람으로는 같은 마을에 사는 크리스천 왕 모 씨(가명 리민(李敏), 여, 67세)와 류 모 씨(가명 우타오(吳濤), 남, 50세)가 있었다. 그날 정오, 경찰은 또다시 가오추이친의 집으로 와 시어머니에게 체포한 가오추이친의 생활비를 요구했는데, 시어머니는 주지 않았다.

가오추이친은 체포당한 다음날 경찰에게 무참히 맞아 죽었다.

환타이현 성결병원의 한 응급구조원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7월 17일 오전 11시경, 경찰은 성결병원의 구급차를 불러 응급처치를 요청했다. 의사가 급히 가 보았으나, 이미 사망한 후여서 데려가지 않았다. 경찰은 또다시 산둥 치루(齊魯)병원 환타이 분원의 구급차에 연락해 피해자를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하였다.

7월 17일 오후 1시, 환타이현 숴진 파출소 소장 자오쉐펑(趙學鵬)은 가오추이친의 남편 류(劉) 모 씨에게 전화해 가오추이친이 병원에 있으니 가 보라고 하였다. 하지만 통화 중 가오추이친이 이미 사망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1시간쯤 지나 가오추이친의 여동생과 오빠, 올케가 병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병원에 가오추이친이 입원 환자로 등록되어 있지 않아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날 저녁 6시, 가오추이친의 남편 류 씨가 경찰을 만나 아내의 상태를 물었지만 경찰은 대답이 없었다. 경찰은 그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류 씨는 아내가 코에 호스 2개를 끼운 채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심전도의 그래프는 일직선을 그리고 있었고 아내의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목은 위로 향하고 있었다. 몸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이미 사망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의사는 심장 충격기를 사용해 응급처치하는 시늉을 내고 있었다. 류 씨는 현장에 있던 한 의사가 무심결에 아내가 병원에 왔을 때는 이미 숨이 붙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류 씨는 아내의 당시 사진을 찍어 두었다.

응급실의 한 의사는 가오추이친이 병원에 실려 왔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얼굴 전체가 검푸렀고 심각하게 부어 있어, 구타당한 흔적이 역력했다고 털어놓았다.

가오추이친과 같은 구치소에 갇혔던 크리스천 리민(李敏, 가명)의 말에 의하면, 7월 16일 새벽 5시경, 가오추이친이 심문받는 옆방에서 쇠고랑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등골이 오싹해지도록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났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체포당한 또 다른 크리스천 류윈(劉雲, 가명)은 16일 당일 숴진 파출소에 잡혀갔을 때, 한 경찰이 파출소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는 통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XX가 그랬습니다. 생각 없이 전기봉으로 마구 찔러대다 그만….” 시간이 흐른 후에야 류윈은 경찰이 가오추이친을 누가 때려죽였다고 보고하던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7월 18일 오후,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정리하던 유족들은 가오추이친의 등에 무수히 많은 붉은 점과 시커멓게 변한 겨드랑이, 퍼렇게 된 얼굴을 보았다. 고개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아무리 해도 똑바로 누일 수 없었다. 공안국에서 여러 해 근무한 경력이 있는 한 인사는 시신의 상태를 분석해 본 후, 가오추이친은 의자에 묶인 채 전기봉의 초고압 전류에 의한 전기 충격으로 사망했다고 결론 내렸다.

정보를 차단한 중국 정부

가오추이친의 사망 후, 경찰은 촌의 서기를 내세워 남편 류 씨와 협상하려 하였다. 7월 18일, 류 씨는 시장에게 아내가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일을 고발했다. 하지만 정부 측 간부는 공안국과 기율검사위원회의 위원 3명을 보내 류 씨와 협상을 하게 하였다. 그들은 경찰에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가오추이친을 체포할 의무가 있었으니, 사건을 마무리 짓자고 요구했다. 류 씨는 응하지 않았다.

가오추이친이 변을 당한 사건은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가오추이친을 죽인 두 경찰은 사건 후 자취를 감춰 버렸다.

가오추이친의 유족들은 심문할 때 녹화한 영상을 보여 달라고 경찰 측에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경찰은 가오추이친의 사망 원인을 한사코 감추려 들었다. 그들은 가오추이친은 원래 심장병을 앓고 있었고, 심장 기능 이상으로 인한 발작성 호흡 곤란으로 급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가오추이친은 심장병을 앓았던 이력이 없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가오추이친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가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경찰이 어떻게 신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정직한 사람을 때려죽일 수 있습니까?”라며 분개했다.

경찰은 계속해서 류윈 씨와 유족들에게 압박을 가했고, 가족들의 직장과 아이들의 앞날을 들먹이며 류 씨를 위협했다. 중국 정부의 압박에 류 씨는 어쩔 수 없이 이 사건을 마무리 짓는 데 동의했다.

4. 교회 리더 허청룽, 경찰에게 고문받다 사망한 사례

2012년 12월 21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 허청룽(何成榮)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비밀리에 체포당했다가 구금 기간에 변을 당해 향년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허청룽(何成榮, 가명 샤오란(小冉), 여)은 신장(新疆) 아커쑤(阿克蘇)시 스옌(實驗)임장 성위안(盛苑) 1구에 살았다. 2004년 연말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고 사망 전까지 교회에서 리더를 맡고 있었다.

전화를 감시당해 체포된 허청룽, 구금 중 봉변

2012년 12월 21일 오후 1시경, 경찰은 허청룽의 전화를 감시해 그녀의 위치를 추적해 냈다. 교회로 가는 길에서 허청룽은 경찰을 따돌리지 못하고 잡히고 말았다. 허청룽은 갖고 있던 700위안(한화 약 11만 7천 원), TF 카드 2장, 전도 자료 및 개인 물품을 전부 압수당하고 아커쑤시 공안국 국가안전보위 대대에 구금되었다.

아내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남편은 소식을 듣고 아내를 빼내기 위해 공안국 직원에게 금품을 전하고 식사를 대접했고, 경찰에게는 3, 4만 위안(한화 약 5~600만 원)가량의 보석금을 지불했다. 경찰 측에서는 4, 5일 후 허 씨를 석방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허청룽의 유족들에 의하면, 2013년 1월 9일 정오 12시경에 아커쑤시의 공안국 국가안전보위 대대 소속 남성 경찰 3명이 갑자기 허청룽 집으로 찾아와 8일 저녁 허청룽이 심근경색으로 아커쑤 눙이스(農一師) 인민병원으로 실려 가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고 알려 왔다. 비통함과 분노를 겨우 억누르며 왜 응급처치 시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는지 묻는 유족들에게 경찰 측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변명했다.

1월 10일 오후 4시경, 유족들은 허청룽의 시신을 보게 되었다. 시신의 참혹한 상태에 유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온몸은 상처투성이였고, 두 귀 뒤로는 2cm 너비의 검붉은 상흔이 있었다. 목의 양쪽에는 손가락 너비의 세로로 긴 상흔이 나 있었고, 등은 검푸른 상처로 뒤덮여 있었다. 정상적인 피부색이라곤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양팔에도 검붉은 상흔들이 줄처럼 여기저기 나 있었고, 하반신 전체는 부어 있었다. 두 다리는 너무 부어 평소보다 2배는 더 굵어진 상태였다.

구금 기간, 허청룽의 옆 방에 있었던 한 크리스천이 밝힌 데 의하면, 경찰은 허청룽이 맞다가 기절하면 찬물을 부어 깨웠다고 한다. 허청룽이 사망한 그날 저녁, 그녀는 허청룽이 밤새도록 큰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다. 심한 고통에 못 이겨 제대로 소리도 지르지 못해 내는 소리였는데, 허청룽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알 수 있었다! 새벽에 그녀는 허청룽이 갇힌 방에서 누군가 “안 되겠어요. 바로 죽을 것 같아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허청룽과 같은 수감실에 갇혀 있었던 여죄수(왕 모 씨, 여, 45세, 은행 직원이었음)는 국가안전보위국의 경찰이 허청룽에게서 교회의 상황 및 다른 크리스천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심문할 때마다 구타를 일삼았다고 전했다. 주먹질과 발길질은 물론, 사납게 뺨을 때리기도 했다. 밤낮 잠을 못 자게 하고, 심지어 고춧가루 푼 물을 주입하기도 했다. 매번 심문이 끝나면 허청룽은 들것에 실려 수감실로 돌아가야 했다.

마지막 심문 중 경찰이 주입한 고춧가루 물 때문에 위에 심한 자극을 받은 허청룽은 음식물을 넘기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구치소의 여 교도관 웨얼니사(月兒尼莎, 위구르족)는 허청룽이 일부러 단식을 한다며 발에 쇠고랑을 채워 대소변도 볼 수 없게 하였다. 그러고는 수감실의 남죄수를 시켜 허 씨를 침상에 묶고 고무호스를 끼워 강제로 뜨거운 음식물을 식도에 들이부었다.

1월 7일 저녁 8시경, 허청룽은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고, 고열이 가라앉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허청룽은 생명이 위급했다. 다른 죄수들이 아무리 이 사실을 알려도 교도관은 허청룽이 아픈 시늉을 낸다며 신경 쓰지 않았다. 1월 8일 새벽, 허청룽은 병원으로 실려가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1월 10일, 경찰의 통보를 받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한 허청룽의 유족들은 시신의 상태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겼다. 경찰은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현장의 유족들을 사진 찍은 뒤 “만족할 만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겠소.”라고 둘러대며 강제로 돌려보냈다. 경찰 측은 허청룽의 유족들이 죄증을 확보하면 그들에게 불리할까 봐 허청룽의 셋째 자형만 남아 자리를 지키게 했다.

그날 저녁 6시경, 신장의 경찰 측은 유족의 동의도 없이 법의학자를 장례식장으로 보내 ‘사인 조사’를 명목으로 허청룽의 두개골을 절제해 대뇌를 빼 가고, 복부를 갈라 심장, 폐, 위, 간, 장의 일부를 취해 가져갔다.

허청룽의 셋째 자형은 시신 해부 현장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전했다. 당시 현장에는 아커쑤시의 공안국 부국장 자오유펑(趙有鵬, 남, 54세), 공안국 비서, 난청(南城) 파출소 부소장, 국가안전보위국 부국장 등의 인물들도 있었다.

그 후 경찰은 유족들이 시신을 보게 허락하지 않았다.

무장 경찰을 동원해 유족을 위협한 중국 정부

허청룽의 사망 후, 아커쑤시의 공안국 부국장 자오유펑이 사건 처리를 맡았다. 그는 아커쑤시 법원, 시 검찰원, 시 국가안전보위국의 인사 및 법의학자와 함께 유족들을 찾아 사망 사건을 처리하려 하였다. 자오유펑은 유족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허청룽은 반(反)공산당, 반(反)사회적인 행위를 한 정치범이고, 심근경색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경찰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평소 허청룽은 위장병만 있었을 뿐 심장병이나 심근경색 같은 병은 아예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 후에도 허청룽의 유족들은 여러 차례 아커쑤 경찰 측에 해명을 요구했다. 실탄총을 든 무장경찰을 동원한 경찰 측은 허청룽의 사망이 경찰 측과 관련이 없다고 강압적으로 의견을 표시했다. 그리고 “허청룽은 폐경색으로 사망했다”고 적힌 검안서를 가져와 유족들에게 서명할 것을 요구하고 “돌아가지 않으면 가둬 버리겠다!”라며 협박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허청룽이 심근경색으로 응급처치를 받다가 사망했다고 말했는데, 이제 와서 폐경색이 사망 원인이라며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했다. 유족들은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그 후 경찰은 허청룽의 남편을 파출소로 호출했다. 자오유펑은 그에게 “정치범 한 명이 죽었을 뿐이야. 똑똑히 알아둬. 여기는 신장이야!”라고 경고했다. 그러고는 허청룽의 남편에게 검안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허청룽의 남편은 서명을 거부했다.

2013년 2월 5일, 아커쑤의 경찰 측은 시다챠오(西大橋) 화장터에서 시신 화장을 강행했고, 허청룽의 사망 사건은 이렇게 아무 결실 없이 끝을 맺게 되었다.

5. 크리스천 리솬솬, 중국 정부의 박해로 사망한 사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 리솬솬(李算算, 과거명 리아이핑(李愛平))은 1966년 12월생 여성으로, 사망 전까지 신장 위구르(新疆維吾爾)자치구 투르판(吐魯番)시 쥔민궁젠(軍民共建)로에 살았다. 2012년 3월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고, 체포 당시에는 형제자매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교회에서 접대 본분을 했었다.

2013년 7월 14일경, 리솬솬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투르판시의 성리(勝利) 파출소로 잡혀갔다. 경찰은 그의 집에서 하나님 말씀 서적 여러 권을 수색해 냈다. 7월 20일, 경찰은 그 가족들에게 리솬솬이 파출소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유족들이 서둘러 퉈커쉰(托克遜) 중심병원에 도착하자 경찰은 리솬솬이 심장병 발작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생전에 매우 건강했고 심장병 병력(病歷)이 없었던 리솬솬이 어떻게 심장병 발작으로 사망했다는 건지 유족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 유족들은 리솬솬의 시신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번번이 경찰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약 15일 후, 퉈커쉰현 공안국은 리솬솬의 유족들에게 시신을 보러 병원으로 오라고 알렸다. 경찰은 유족들이 시신의 사진을 찍을 것을 우려해 휴대폰을 모두 압수했다(나올 때 다시 돌려주었다). 유족들은 흰 천에 덮여 있는 리솬솬의 시신을 보았다. 머리털은 다 밀려 있었고, 머리에는 흰색 망이 씌어 있었다. 시신을 본 유족들은 침통해하며 절망했다. 리솬솬의 남동생은 퉈커쉰현 공안국 국장에게 따지고 들었다. “중국은 종교 신앙의 자유를 선전합니다. 그런데 우리 누나가 하나님을 믿은 게 무슨 범법 행위입니까? 멀쩡하던 사람을 때려죽이다니, 이게 공정한 처사입니까?” 공안국 국장은 딱딱한 말투로 답했다. “파출소 책상에 있는 책들을 보시오. 그게 증거요!” 남동생이 계속 따지고 들자 경찰은 그를 잡아 구류시켰다.

리솬솬의 남동생은 사건의 공정한 해결을 위해, 법적 절차를 밟아 고소하려고 준비하였다. 그가 두 변호사를 찾아 사건에 대해 설명하자 변호사는 “리솬솬이 파출소에서 사망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거기다 시신에 구타당한 흔적이 있었고, 경찰이 급히 시체를 부검해 버린 등 의심스러운 점들이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피해자의 사인은 현지 경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해요. 하지만 공안국 측이 이미 이쪽의 법원에 손을 써놔서 소송을 걸어도 이길 확률이 없습니다. 법정을 여는 것조차 불가능할 겁니다.”라고 답변했다. 리솬솬의 남동생은 소송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리솬솬의 남편도 소송을 준비하려 했다. 그러나 변호사를 찾아 자문을 구하는 동안 어디를 가든 경찰이 따라붙었고 협박까지 했다. “얌전히 있지 않으면 당신도 체포할 거야! 이 공산당 천하에서 어디를 가든 이기지 못할 소송이야. 특히 하나님을 믿는 자는 맞아 죽어도 상관할 사람이 없으니까!” 겁에 질린 남편은 소송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의 전화는 감청당하고 먼 곳으로 외출하는 것조차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40일 후, 경찰 측은 리솬솬의 유족들에게 시신을 매장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시신에 옷을 입히려던 남동생은 시신에 온통 흙이 묻어 있고, 머리에는 그물로 된 모자가 씌워 있는 것을 보았다. 눈썹 사이에 기다란 구멍이 나 있어서 뼈가 드러났다. 몸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고, 목의 아래쪽부터 복부까지 길게 봉합된 흔적이 있었다. 시신의 심장, 간, 폐, 심지어 뇌까지 적출된 것이다. 경찰은 리솬솬의 시신을 투루판의 헤이산터우(黑山頭)에 묻도록 하였다. 그동안 경찰들은 계속 뒤를 따라다니며 지켰고 촬영기사가 계속 촬영하고 있었다. 리솬솬의 시신이 묻힌 후에야 경찰은 그곳을 떠났다. 리솬솬의 묘비에는 그녀의 옛 이름, 리아이핑이 새겨졌다.

크리스천 리솬솬이 중국 공산당에게 고문받아 사망한 사건은 이렇게 흐지부지 끝이 났다.

6. 크리스천 장자오치, 중국 경찰의 구타로 사망한 사례

2005년 9월 8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 장자오치(張照奇)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예배를 드린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다음 날 구금되어 있던 구치소의 소장에게 몽둥이로 구타당해 무참한 죽음을 맞았다!

피해자 장자오치(가명 라오가오(老高))는 50세 남성으로, 산시(山西)성 창즈(長治)시 친(沁)현 청관(城關)진 퍼터우(坡頭)촌 사람이다. 2001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하여, 사망 전까지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2005년 9월 8일 저녁 9시가 좀 지났을 때, 장자오치는 친위안(沁源)현의 자오커우(交口)향 상이(尙義)촌 리춘(李村)조의 자오(趙) 모 씨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때, 촌 주임 시산후(蓆三虎), 촌민 조장 한화이관(韓懷管), 민병 중대장 왕샹루이(王祥瑞)가 자오커우향 파출소의 소장 웨이수민(衛樹民)과 두 명의 남성 사복 경찰을 데리고 실내로 들이닥쳤다. 경찰은 영장도 제시하지 않고 집안 곳곳을 수색했고, 찬송가, CD, 심지어 VCD 플레이어까지 모조리 압수하였다. 그리고 장자오치의 몸을 수색하고 심문하였다. 그들이 개인 정보를 털어놓으라고 강하게 명령했지만 장자오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경찰은 장자오치에게 수갑을 채우고 친위안현 자오커우향 파출소로 연행했다.

공안국 내부 직원이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9월 9일 오후 1시가 좀 지났을 때, 장자오치는 친현의 공안국 사무실에 붙잡혀 있었다. 그때, 리제(李杰), 자오웨이(趙偉), 리옌빙(李燕兵), 후하이룽(胡海龍) 등 4명의 남성 경찰이 장자오치를 심문하며 구타했다.

그날 저녁 6시가 좀 지나, 경찰은 장자오치를 친위안현 구치소로 이송하였다. 친위안현 공안국 정보(政保)과 과장 스젠예(史建業)가 심문을 맡았지만 진전이 없었다. 친위안현 구치소 소장 하오밍주(郝明珠, 남, 당시 약 50세)는 마침 그때 밖에서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구치소로 심문을 하러 오라는 동료의 전화를 받았다. 가뜩이나 장자오치 때문에 술자리를 망친 하오밍주는 장자오치가 교회 정보를 털어놓지 않자, 나무 몽둥이로 장자오치의 온몸을 1시간 동안이나 구타하였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장자오치는 그날 밤 9시경 친위안현 구치소에서 참혹하게 죽음을 맞았다. 하오밍주가 장자오치를 무시무시하게 구타해 죽음에 이르게 한 동기는 하오밍주의 처가 마작 친구와 수다를 떨던 중 털어놔 밝혀졌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장자오치의 사망 다음 날, 산시성 창즈시 검찰원 담당자가 구치소로 와 장자오치의 시신을 보았다. 온몸에 가득한 상처는 누가 봐도 고문을 받다 죽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하오밍주는 친현 구치소에 구금되었다. 하지만 친위안현 공안국 국장 자원징(賈文靜)은 공안국 회의에서 사건 당시 아무도 하오밍주를 말리지 않아 장자오치가 사망하게 되었다며, 공개적으로 하오밍주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공안국 내부 인사의 말에 의하면, 이 사안의 사후 처리는 친위안현 공안국 정치위원 왕청더(王成德)가 맡았다고 한다. 경찰은 먼저 친현 청관(城關) 파출소 소장 장수웨이(張樹偉)와 친위안현의 한 여경을 보내 장자오치의 유족들과 협상을 하게 했다. 두 사람은 장자오치가 사망한 지 4일이 지나서야 장자오치의 큰형 집을 찾았다. 큰형에게 장자오치의 사진을 보여 주고 신원 확인을 하게 한 뒤, 동생이 이미 죽었음을 알렸다. 하지만 장자오치의 사인(死因)이나 시신이 있는 위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장자오치의 유족들에게 안장비용 명목으로 19,000위안(한화 약 319만 원)만을 보상하고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신을 화장해 버렸다. 유족들은 그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시신을 보지 못했다.

사건 후, 장자오치의 조카와 큰 형은 산시성 공안청, 성(省) 위원회와 여러 사법부서에 서신을 보내 하오밍주가 장자오치를 살해한 사건을 고발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살인자 하오밍주는 친현 구치소에서 몇 개월 구속되어 있다가 친위안현 공안국 경찰견 사육센터로 보내졌고, 2011년에는 국가안전보위 대대로 발령이 났다.

7. 교회 리더 장구이즈, 중국 정부의 박해로 사망한 사례

2013년 1월 4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리더 장구이즈(姜桂枝)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정부 당국에 구금당한 기간에 변을 당해 향년 46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장구이즈는 허난(河南)성 주마뎬(駐馬店)시 핑위(平與)현 칭허(淸河)구 젠캉(健康)로에 살았던 여성이다. 2002년 11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하였고, 사망 전까지 교회에서 리더를 맡았었다.

민가 불법 침입, 비밀 체포

2013년 1월 4일 오후 1시경, 장구이즈는 허난(河南)성 신미(新密)시 도심에 있는 칭핑(靑屛) 광장 동남쪽에 위치한 크리스천 정(鄭) 모 씨(여, 63세)가 지내는 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저녁 7시가 좀 지나, 신미시 국가안전보위 대대 대장 위훙차오(于紅超)를 필두로 한 8명의 경찰이 열쇠로 문을 열고 실내로 급습해 들어왔다. 정 씨의 말에 의하면, 경찰들은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안에 있던 3명을 제압하고, 장구이즈와 장리(張莉)에게 수갑을 채웠다고 한다. 경찰은 실내를 온통 뒤집어 놓았다. 화장실의 휴지통까지 뒤지고 심지어 칼로 소파를 갈라 가며 집 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경찰은 그렇게 찾아낸 하나님 말씀 책과 현금 10,000위안(한화 약 168만 원), 컴퓨터, 휴대폰, 의류, 그리고 일용품, 취사도구, 식료품까지 모조리 가져가 버렸다.

그날 저녁 9시경, 장구이즈 등 세 명은 신미시 공안국으로 끌려갔다.

끔찍한 고문으로 참혹하게 살해

2013년 1월 6일, 신미시 공안국의 국가안전보위 대대 대장 위훙차오 및 선커(瀋可), 왕레이(王磊), 바이솽펑(白雙峰) 등은 장구이즈와 장리를 비밀리에 신미시의 시위안(西苑) 호텔에 끌고 가 심문하였다. 갇힌 후로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장구이즈는 이미 사망하여 그녀가 고문당한 자세한 상황은 알 길이 없어졌다. 그녀와 같이 잡혀 시위안 호텔에서 위훙차오 등에게 심문당했던 한 크리스천은 그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여전히 끔찍하다고 말했다. 크리스천 왕팡(王芳, 가명, 여)의 말에 따르면, 시위안 호텔에서 위훙차오, 왕레이 등의 경찰들은 교회 리더와 헌금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밤새도록 잠을 재우지 않았다. 그녀의 눈이 감기면 바로 주먹질과 발길질이 날라왔다. 극도의 피곤함과 공포 속에 왕팡의 의식은 흐릿해졌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경찰은 왕팡의 옷을 벗기고 온갖 저속하고 더러운 말들로 모욕했다. 그리고 화장실도 못 가게 하여 그녀가 소변을 가리지 못하자 바닥에 흘린 소변을 핥게 했다. 또 한 명의 크리스천 머원(默文, 가명, 여) 역시 시위안 호텔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 경찰 선커 등이 강제로 두 다리를 일직선으로 벌리게 하기도 하고, 곤봉 위에 꿇어앉히기도 했다. 그리고 허리띠로 그녀의 얼굴과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또한 그녀를 매달아 한쪽 발끝으로만 간신히 바닥을 딛고 버티게 하고, 다른 한 발은 쇠사슬로 철제 선반에 묶어 놓았다. ‘양 통구이’ 고문(수갑을 채운 채 양팔로 다리를 안게 하고 무릎 뒤로 쇠파이프를 끼우고 들어올려 사지가 위로 향하도록 하는 고문)을 가하기도 했다…. 경찰이 다른 크리스천들을 고문할 때 쓴 각종 수법을 보면 장구이즈 역시 어떤 참혹한 일들을 겪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비밀리에 심문을 받은 지 21일 후인 2013년 1월 25일, 장구이즈는 정저우(鄭州)시 제2 구치소로 옮겨졌고 그로부터 18일 후 사망하였다.

구치소에서 장구이즈와 같은 방에 구금되었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한 크리스천의 말에 따르면, 7호방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의 장구이즈는 시름에 잠겨 말수가 적어서, 그녀가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고 한다. 며칠 후, 장구이즈는 밥을 먹다 그릇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몇 번이나 그릇을 주우려 했지만 줍지 못했다. 또 며칠이 지나자 이번엔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반응 속도가 느렸다. 감방장 천린(陳琳)이 사람을 불러 장구이즈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장구이즈는 옷 입는 법도, 밥그릇을 들고 밥 먹는 법도 모르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다. 그녀가 장 씨에게 여러 번 물으니 그제서야 장구이즈는 경찰들이 그녀를 호텔로 끌고 가 고문을 하고 강간했으며, 심지어 장구이즈의 질 속에 물건들을 집어넣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몇 마디를 한 후 장구이즈는 혀가 더는 말을 듣지 않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콩물을 먹일 때는 숟가락으로 입을 비틀어 열어야 겨우 입에 흘려 넣을 수 있었다. 장구이즈의 상태를 보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교도관 궈샤오윈(郭曉雲)은 사람을 몇 명 불러 침대보로 장 씨를 싸서 내보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다시는 장구이즈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고 악행을 덮으려는 경찰

경찰 측은 장구이즈가 2013년 2월 12일 새벽에 사망했다고 했다. 장구이즈가 체포당한 2013년 1월 4일 저녁부터 그녀가 사망하기까지, 가족들은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장구이즈가 사망한 다음날, 허난성 주마뎬시 핑위현 핑우(平五) 파출소에서는 그제야 경찰을 보내 가족들에게 사망 소식을 알렸다. 경찰은 장구이즈가 정저우시 제2구치소에서 심장병 발작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정저우 대학 제4부속병원 영안실에서, 장구이즈의 시신을 본 유족들은 분노와 슬픔에 휩싸였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장구이즈는 입에 흰 거품을 물고 있었고,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고 했다. 유족들은 장 씨의 사망 진단서를 요구했다. 진단서에는 고혈압, 심장병, 뇌경색 등의 증세가 적혀 있었지만, 모든 증세 뒤에는 물음표가 써 있었다. 진단 결과로는 장기가 쇠약해져 사망에 이르렀다고 쓰여 있었다. 사망 진단서를 본 유족들은 경찰 측이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책임을 피하기 위해 심장병 발작으로 사망했다고 거짓말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증거를 찾기 위해, 유족들은 장구이즈의 심문 기록을 보여 줄 것을 요구했다. 경찰은 이를 한사코 거절하며, 구치소 생활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만을 보게 했다. 영상에는 장구이즈가 사망하기 며칠 전부터 몸 상태가 심각하게 나빠져, 마신 물이 입으로 도로 새어 나오고, 스스로 옷도 입지 못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제대로 설 수조차 없어 다른 사람이 바지를 올려 주어야 했다. 유족들이 경찰 측에 장구이즈의 상태가 이렇게 악화되었는데도 왜 제때 응급처치를 하지 않았는지 추궁하자 구치소 담당자는 그녀에게 병이 있는지 몰랐다고 핑계를 댔다. 장구이즈를 체포한 원인과 사안의 결론에 대해 묻는 유족들에게, 사건 처리를 맡은 신미시 공안국 바이솽펑(白雙峰)은 장구이즈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고 교회의 리더였기 때문에 체포했다고 말할 뿐 그 외에는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그 후, 죄상을 은폐하기 위해 사건을 서둘러 종결하려고 정저우 경찰 측은 몇 차례나 핑위현을 찾아와 장 씨 가족들과 협상하려 하였다. 또 현지의 현(縣) 위원회와 현 정부 관련 인사들 그리고 장구이즈의 자형, 매부, 아들의 직장 상사까지 동원해 장구이즈의 유족들을 회유하며, 살인 사건을 개인적으로 상의해 마무리 지으려 하였다. 그리고 유족들에게 이미 그들의 전화를 모두 감청 중이니, 이 사건이 외부로 새어나가면 그 결과는 다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협박하였다. 공산당의 압박을 못 이긴 유족들은 결국 합의를 보았고, 다시는 이 사건을 추궁할 수 없었다.

2013년 3월 5일, 장구이즈의 시신은 정저우시 화장터에서 화장되었다. 3월 9일, 고향 핑위현으로 돌아온 장구이즈의 유골은 화장터 동편에 위치한 바이묘(白廟)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8. 설교자 예아이중, 중국 경찰의 전기 충격으로 사망한 사례

2012년 3월 장쑤(江蘇)성 쑤첸(宿遷)시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한 크리스천이 다른 크리스천을 도와 전자제품을 구입, 교환하던 중 경찰에게 잡혀 암암리에 죽임을 당한 참극이 발생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피해자는 예아이중(葉愛中)은 42세 남성으로, 장쑤성 쑤첸시 수양(沭陽)현 웨라이(悅来)진 사람이다. 1999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하여, 변을 당하기 전까지는 교회의 설교자였다. 다음은 경찰에게 미행당한 예아이중이 체포당해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기까지의 전과정이다.

전자상가에서 체포, 참혹한 죽음

사정을 아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예아이중은 따뜻한 마음씨에 남을 돕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평소 찬양 및 설교 청취용 PMP를 구매하거나 교환하려는 크리스천들을 자주 도와주곤 했고, 그의 이러한 행동이 경찰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2012년 3월 26일 오전 8시가 좀 지나, 예아이중은 같은 진에 사는 크리스천 펑(馮) 모 씨(남, 48세)와 함께 수양현의 전자상가에 가서 교회의 한 크리스천의 PMP를 고쳐 주려고 했다. 두 사람은 전자상가 밖에서 수양현 난관(南關) 파출소 소속의 두 사복 경찰(30세가량)에게 잡혔다. 경찰은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예아이중과 펑 씨를 강제로 검은색 차량에 태웠고, 이들의 눈을 가리고 수양현 구치소로 데려갔다. 그 과정에서 PMP 한 대와 예아이중의 5,000위안(한화 약 84만 원)을 압수했다.

구치소에서 경찰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내부 상황 및 교회 헌금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틀 동안 예아이중과 펑 씨에게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3월 27일 저녁 10시경, 경찰은 두 사람을 수양현 공안국 형사경찰 대대 2층으로 끌고 가 따로 심문하였다. 펑 씨의 말에 의하면, 그날 총 6명의 경찰이 3개 조로 나눠 돌아가며 그를 고문했다고 한다. 그들은 몇 번이나 전기봉으로 그의 가슴팍과 어깨, 등, 허리, 발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 결국 펑 씨는 전신이 마비되어 감각을 잃었다. 뒤를 이어, 또 다른 조의 경찰이 펑 씨를 바닥에 앉히고 두 다리를 모아 앞으로 뻗게 했다. 그러고는 전원을 끈 전기봉을 펑 씨의 두 다리 위에 가로로 올린 뒤 전기봉을 족히 30분을 비비듯 힘껏 밟아댔다. 두 다리의 가죽은 벗겨져 피가 흘렀다. 이어서 경찰은 전기봉으로 펑 씨가 기절할 때까지 그의 뒤통수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 펑 씨가 깨어난 후 경찰은 그에게 눈을 붙이지 못하게 했다. 펑 씨가 눈을 감기만 하면 그를 구타하거나 전기봉으로 전기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가혹 행위는 새벽 4시까지 계속되었다.

펑 씨가 고문받던 시각, 경찰은 펑 씨의 심문실에 있던 전기의자를 예아이중이 갇혀 있는 옆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아이중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1시간 가까이 이어지던 비명소리는 그 후 점점 작아졌다.

3월 28일 밤, 펑 씨는 의자 다리에 묶인 채 어렴풋이 예아이중을 가둔 방에서 흘러나오는 경찰의 심문 소리, 사람을 때리는 소리와 비명소리를 들었다.

3월 29일, 날이 밝자마자 경찰은 펑 씨를 데리고 나갔다. 예아이중이 잡혀 있는 방문 앞을 지날 때, 예아이중은 머리가 앞으로 꺾인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전기의자에 앉아 있었다. 펑 씨가 그를 불렀지만 예아이중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날, 경찰 측은 ‘미신을 이용해 법률 실시를 파괴한 혐의’라는 죄목으로 펑 씨를 수양현 구치소에 15일간 구금하였다.

3월 30일, 수양현 형사경찰대대의 경찰은 예아이중의 가족들에게 그가 3월 29일 사망했음을 알렸다. 뜻밖의 비보를 접한 둘째 남동생은 간신히 슬픔을 누르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것이 범법 행위도 아닌데 왜 잡아서 때려죽였냐고 경찰에게 따졌다. 30세 정도 된 경찰은 뻔뻔하게도 이렇게 말했다. “맞아 죽은 게 아니오! 병 때문에 검사하려고 피를 뽑다 죽은 거요!” 당시 유족들이 경찰에게 병원의 진단서를 요구하자, 경찰은 우물쭈물하며 꺼내질 못했다. 유족들은 예아이중이 경찰에게 구타당해 죽었다는 의심을 더욱 굳혔다. 예아이중이 원래 건강했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검사 때문에 피를 뽑다가 죽을 수 있겠는가? 유족과 경찰은 이 문제로 계속 대치했다.

악행을 은폐하려는 경찰, 유족에게 서명 강요

일이 커지면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을 우려한 경찰 측은 예아이중의 유족들에게 “동의한다면 서명하시오. 그러면 시신을 보게 해 주겠소. 동의하지 않으면 시신은 보여 줄 수 없소!”라며 을러댔다. 그리고 합판 공장을 연 사촌 형제와 친척을 위협하여, 그들이 예아이중의 유족을 위해 나서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장을 폐쇄하고, 그들을 잡아 가두겠다고 협박했다. 예아이중의 유족들은 그저 눈물을 머금고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4월 5일이 되어서야 유족들은 허가를 받고 예아이중의 시신을 보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얼마 전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황색 시신 수습용 백에 들어 있었다. 심한 구타로 모습이 변형되어 멀쩡한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가득한 시신을 본 유족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분노와 슬픔에 오열했다.

그날 정오 12시경, 예아이중의 시신은 수양현 장례식장에서 화장되었고, 유골은 유족들이 가져가 가족 묘지에 안장하였다.

9. 크리스천 장루이샤, 중국 정부의 잔인한 고문으로 사망한 사례

장루이샤(張瑞霞)는 1961년생 여성으로, 허난(河南)성 푸양(濮陽)시 칭펑(淸豊)현 사람이다. 1991년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하였으며, 2014년 6월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린저우(林州)시 공안국 국가안전보위 대대 대장 마즈훙(馬志紅)을 필두로 한 10여 명의 경찰에게 잡혔다. 장루이샤는 구금 중 잔인한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53세였다. 반년이 지나고 나서야 장루이샤의 가족들은 사망 소식을 들었다. 유족들의 말에 의하면, 장루이샤의 시신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말라서 이미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했다. 온몸에 피멍이 들어 있었고, 장기들이 적출된 듯 오목하게 패인 복부에는 기다란 봉합 흔적이 있었는데, 흔히 내장이 적취된 다음 남는 흔적이었다. 다음은 장루이샤가 경찰에게 박해받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이다.

2014년 6월 25일 오후 5시경,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 장루이샤와 샤오잉(小英, 가명)은 허난성 린저우시의 어느 주택가에 위치한 한 크리스천의 가정을 방문했다. 약 1시간 후, 허난성 안양(安陽)지구 린저우시 공안국 국가안전보위 대대 대장 마즈훙을 필두로 한 10여 명의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집안을 수색했고, 장루이샤와 샤오잉을 체포하여 린저우시 공안국 형사정찰 대대로 끌고 갔다. 어느 경찰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신샹(新鄕)1로에서 린저우까지 장루이샤를 미행했다고 한다.

6월 25일 오후 7시경,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 샤오칭(小靑, 가명), 샤오훙(小紅, 가명) 역시 경찰의 미행으로 잡혔다.

샤오칭의 기억에 의하면, 6월 25일 밤 11시경, 그녀는 린저우시 공안국 형사정찰 대대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화장실 가는 길에 장루이샤, 샤오잉, 샤오훙이 3개의 방에 각각 갇혀 있는 것을 보았다. 장루이샤는 고문 의자에 묶인 채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었다. 방에는 20대 정도로 보이는 사복 경찰 4, 5명 있었다. 경찰이 장루이샤에게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말도 안 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지 말란 말이야. 본 때를 보여 줄 방법은 많아!” 심문실로 막 돌아온 샤오칭은 장루이샤가 ‘악’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었고, 그 후로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어느 경찰의 말이 들렸다. “이 여자 독종이네. 아무리 때려도 울지를 않아. 길들이기 쉽지 않을 것 같아.” 그 이후로 샤오칭은 다시는 장루이샤를 보지 못했다.

약 2, 3개월 후, 샤오칭은 구치소에서 장루이샤와 함께 잡혀 들어왔던 샤오잉을 만났다. 샤오잉은 장루이샤가 이미 경찰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다.

장루이샤가 체포된 지 20여 일 후, 허난성 푸양시 칭펑현 마춘(馬村)향 파출소 소속 경찰 4명이 장루이샤의 집을 뒤지러 갔다. 장루이샤네 집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본 경찰은 옆집에서 사다리를 빌려 담을 넘으려 했지만, 이웃은 이를 거절했다. 경찰은 다시 장루이샤의 시댁으로 가 집 안을 헤집었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가족들은 장루이샤의 체포 소식을 듣고, 여러 차례 촌 간부 류(劉) 모 씨에게 장루이샤가 구금된 곳을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2015년 1월 말, 장루이샤와 함께 잡혔던 샤오칭이 석방된 후에야 장루이샤의 가족들은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때는 이미 장루이샤가 사망한 지 반년이 흐른 후였다. 중국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르면, 구금 후 24시간 내 가족들에게 구금 소식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허난성 린저우시 공안국은 장루이샤를 체포한 후 가족에게 소식을 알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장루이샤가 사망한 후에도 알리지 않았다.

그 후, 장루이샤의 유족 6명은 린저우시 공안국 건너편 호텔에서 장루이샤를 체포했던 린저우시 공안국 국가안전보위 대대 대장 마즈훙을 만났다. 시신을 보게 해 달라는 유족들의 요구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부하던 마즈훙은 결국은 한 사람만 가서 시신을 보도록 허락했다. 장루이샤의 남동생이 가서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윈 시신을 보게 되었다. 시신의 얼굴과 손, 발은 어린아이처럼 작았고, 살이라고는 붙어 있질 않아 이미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턱과 치아만이 생전 장루이샤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시신은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고, 장기들이 적출된 듯 오목하게 패인 복부에는 기다란 봉합 흔적이 있었는데, 흔히 내장이 적취된 다음 남는 흔적이었다. DNA 검사를 거쳐 시신이 장루이샤 본인임이 확인되었다.

그 후, 유족들은 다시는 장루이샤의 시신을 볼 수 없었다. 장루이샤의 사망 원인과 사망 후 반년이 지나도록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를 묻는 유족들에게, 마즈훙은 “장루이샤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것은 반(反)혁명적 범법 행위요. 그리고 장루이샤는 교회 리더요. 장루이샤를 2년간 추적했소.”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장루이샤의 집 주소를 몰라서 알리지 못했다고 거짓말하고, 장루이샤는 병 때문에 체포된 지 이틀 만에 입원을 했는데, 심문 영상이 그 증거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장루이샤의 아들이 심문 영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자 마즈훙은 상부에 물어봐야 한다며 발뺌했다. 결국, 심문 영상은 끝까지 볼 수 없었다.

2015년 3월, 장루이샤의 유족과 이웃 등 20여 명은 화환과 현수막을 들고 린저우시 공안국 입구에서 사건의 해명을 요구했다. 경찰은 장루이샤의 여동생과 조카를 구타하고 “사회 치안을 어지럽히니, 돌아가지 않으면 다 체포하겠다.”라며 위협했다.

유족들은 장루이샤의 시신을 집으로 가져오고 싶었으나 린저우시 공안국은 이를 거절했다. 결국 장루이샤의 시신은 린저우시에서 화장되었다.

10. 크리스천 장훙타오, 중국 경찰의 혹독한 고문으로 사망한 사례

피해자 장훙타오(張紅濤, 여)는 간쑤(甘肅)성 톈수이(天水)시 사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반 크리스천이었다. 2012년 12월 6일,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중국 경찰에게 잡혀가 그날 참혹한 죽임을 당했다. 향년 55세였다.

복음을 전하다 체포, 4시간 만에 고문으로 사망

2012년 12월 6일 오전 9시가 좀 지나, 장훙타오를 비롯한 여러 명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들은 간쑤(甘肅)성 청(成)현 샤오촨(小川)진에서 전도하기로 약속했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한 장훙타오 일행 몇이 길거리 노점상에게 전도하는 것을 어느 사복 경찰이 듣고 말았다. 오전 10시경, 장훙타오는 불법 체포를 당해 샤오촨진 파출소에 갇히게 되었다.

그날 오후 2시경, 샤오촨진 파출소 경찰은 장훙타오의 휴대폰에 있는 지인(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장훙타오가 병 때문에 입원했고 현재 청현 병원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 4시가 좀 지나, 또 전화를 걸어 장훙타오가 죽었다고 알렸다.

12월 7일, 청현 공안국의 경찰은 장훙타오의 남편 동(董) 모 씨를 찾아 “장훙타오가 청현에서 전도를 하다 체포되었다가 급성 뇌출혈로 사망했다.”라고 알렸다. 청현 공안국에 도착한 동 씨는 작은 방에 뉘여져 있는 아내의 시신을 보았다. 나체인 시신의 두개골은 가족의 동의도 없이 이미 열려져 있었고, 머리에는 달걀 크기만 한 혹이 있었다. 얼굴, 목, 등, 어깨 그리고 다리에는 여러 군데 피멍이 나 있어 구타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동 씨가 경찰에게 시신의 상태가 왜 이러냐고 물었더니 경찰은 시신을 해부한 것은 사인을 규명하기 위함이라고 발뺌하며, 그 외의 상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시신에 있는 상흔들을 본 동 씨는 아내가 경찰에게 맞아 죽었다고 의심했다. 다음날, 바로 친지와 촌의 이웃들에게 연락해 함께 현(縣) 공안국 간부, 정치법률위원회 간부, 그리고 관리 상담부서를 찾아 사건을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각 부서는 모두 “간부가 출장을 갔다”며 이들을 피했다. 분개한 유족들은 청현 공안국으로 가 문제 해결을 촉구했지만, “12월 6일, 장훙타오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교리를 전도해서, 공안국으로 데려와 심문하였지만 아무 답도 듣지 못했다. 그러다 죽었다. 부검을 해 보니 사인은 뇌출혈로 일반 사망에 속한다. 공안국에는 어떤 책임도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유족들은 경찰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장훙타오의 시신에는 분명 상처가 가득했고 머리에는 커다란 혹이 나 있었다. 이것이 어떻게 일반적인 사망이란 말인가? 사망 당일 장훙타오는 그저 가벼운 감기만 앓고 있던 상태였다. 오전 10시에 체포되어서부터 오후 2시가 지나서까지 겨우 4시간 넘는 동안, 신체적인 가학 행위가 없었다면 어떻게 갑자기 사망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경찰 측은 장 씨 몸의 상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악행을 덮으려는 경찰,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장훙타오의 유족들은 현(縣) 정부와 성(省) 공안청에 고발해 보았지만 성과가 없었다. 12월 10일 이들은 다시 청현(縣) 정부 마당에서 해명을 촉구했다. 간부처럼 보이는 어느 인사가 강경한 태도로 여럿이 모여 소란을 피운다며 다 잡아들이겠다고 위협했다. 정치법률위원회 서기는 “상의 후 답변을 주겠다”라며 유족들을 돌아가도록 권고했다.

그 후, 정부가 파견한 비서 1명과 변호사 1명이 두 차례 장훙타오의 집을 방문해 사건을 해결하려 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국가에서 엄격히 단속하는 대상입니다. 장훙타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이를 전도했으니 위법 행위에 속합니다.”라고 정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 씨 유족들에게 10만 위안(한화 약 1680만 원)을 한 번에 배상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시신을 유족이 가져가지 않고 정부가 처리하도록 하는 조건이라고 했다. 하소연할 곳 없는 장훙타오의 유족들은 할 수 없이 합의를 볼 수밖에 없었다.

11. 크리스천 장라이구, 구금 기간 사망한 사례

피해자 장라이구(張來姑)는 35세 여성으로, 안후이(安徽)성 우후(蕪湖)시 난링(南陵)현에 거주하였다. 2003년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고, 교회에서 복음을 전했었다. 생전에는 활발하고 명랑한 성격이었다. 2012년 연말, 상하이(上海)시에서 전도하다가 억울하게 체포당한 장라이구는 불법 구금 기간 변을 당했다. 다음은 장라이구가 경찰에게 체포된 후 사망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전도 중 억울하게 체포, 구금 기간 사망

2012년 12월 12일 저녁 8시경, 상하이(上海)시 펑셴(奉賢)구 펑청(奉城)진의 한 동네에서 전도하던 중, 장라이구는 약 여덟 명 정도 되는 펑청진 파출소 소속 사복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펑셴구 펑청 파출소로 끌려갔다가 그날 저녁 상하이시 민항(閔行)구 구치소로 보내졌다.

크리스천 리(李) 씨(당시 장라이구의 수감실 옆 방에 갇혀 있었음)는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장라이구를 구치소 사람들은 무명씨(無名氏)라고 불렀다. 그녀는 교도관에게 자주 욕설을 들었고, 간수의 괴롭힘을 당했다. 학대도 받았고 추운 겨울날 따뜻한 식수를 얻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피커에서 “36호 무명씨 나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 씨는 자신의 수감실 앞을 지나는 장라이구를 보았다. 장라이구는 고개를 돌려 리 씨를 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그것이 리 씨가 마지막으로 본 장라이구의 모습이었다. 장라이구의 표정은 어두웠고, 얼굴색은 누렇게 떠 있었다. 축 처진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해, 심히 억울한 일을 당한 듯해 보였다. 리 씨는 장라이구를 향해 눈짓을 보내고 고개를 끄덕이며 격려해 주었지만 장라이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후 리 씨는 다시는 그녀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출소 후에야 장라이구가 구금 기간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찰은 장라이구의 가족들에게 그녀가 바지를 찢어 꼬아 만든 끈으로 화장실에서 목매 자살했다고 알려 왔다. 리 씨는 “경찰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저와 장라이구가 갇혀 있던 민항 구치소의 화장실 전등은 모두 벽에 삽입된 형태예요. 전체가 미끄러운 타일로 돼 경사가 있는 아치형 벽이라, 모서리나 튀어나온 부분이 없었습니다. 거기다 4m 높이의 벽에는 뭔가를 걸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그 안에서 목매 자살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악행을 덮으려는 경찰, 유족을 억류하고 협박

장라이구의 사망 후, 상하이시 민항구 구치소는 가족들에게 장라이구가 구치소에서 자살했다고 알렸다. 유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유족들은 장라이구가 명랑하고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살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분개한 유족들 이삼십 명이 상하이시 민항구 구치소로 몰려가 공정한 해결을 촉구하며 장라이구의 시신을 보여 줄 것을 요구했다. 시신을 본 유족들이 시신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 즉각 경찰이 나서 이를 제지했다. 분노한 유족들과 경찰 사이에 시비가 붙었고, 경찰은 “소란을 피우면 바로 잡아들일 겁니다!”라고 유족들을 위협했다. 이어서 경찰은 유족들을 구치소의 어느 강당 같은 곳에 억류하고는, 장라이구와 무슨 관계인지 한 명 한 명에게 캐물었다. 그동안은 누구도 문밖을 나가지 못하게 했다.

2013년 1월 12일, 장라이구의 시신은 민항구 화장터에서 화장되었고, 상하이시 공안국은 유족들에게 70만 위안(한화 약 1억 1,784만 원)을 배상했다.

장라이구의 사망 후, 상하이시 공안국과 안후이성 우후시 난링현 공안국은 경찰차 4대와 경찰 8명을 장라이구의 친정집으로 보내 마을의 어느 집에서든 예배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했다.

12. 교회 리더 마숴핑, 정부의 박해로 사망한 사례

마숴핑(馬鎖萍, 종교명 유링(有靈))은 40세 여성으로, 산시(山西)성 린펀(臨汾)시 샹닝(鄕寧)현 쐉허(雙鶴)향 쐉펑옌(雙鳳淹)촌 출신이다. 1999년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고, 변을 당하기 전에는 중국 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주요 리더였다.

2009년 7월 17일 오후 2시경,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시 롼(灤)현에 있는 크리스천 류(劉) 씨의 집에 경찰봉과 몽둥이를 든 20여 명의 사복 경찰이 경찰견을 끌고 들이닥쳤다. 경찰은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류 씨와 마숴핑, 린린(琳琳) 등 다섯 명의 크리스천을 체포했다. 170cm 정도 신장에 40세가량의 남성 사복 경찰이 마숴핑의 머리채를 잡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년이야! 화장을 해도 알아볼 수 있지!” 경찰은 다섯 명을 거실로 끌고 가 꿇어앉으라고 명령했다. 옷과 이불로 그들의 머리를 덮어씌운 경찰은 경찰견을 데리고 집 안을 닥치는 대로 뒤졌다. 그러고는 류씨 집에 있던 12만 위안(한화 약 2,020만 원), 교회 관련 서적 2박스, 노트북 4대, 휴대폰 5개와 의복이 담긴 가방 2개, 건강식품 몇 상자 등 찾아낸 물품들을 모조리 압수했다. 그 후, 경찰은 머리가 가려진 마숴핑 일행을 각각 차에 태워 탕산(唐山)시 군사 관리 지역의 초대소(招待所)로 끌고 가 비밀리에 심문했다.

류씨의 이웃은 마숴핑이 체포된 당일 4, 50대가량의 경찰차와 승용차, 수백 명의 경찰과 특수 경찰이 류씨 집 문 앞으로 난 길 양쪽을 엄밀하게 봉쇄했다고 말했다. 류씨의 집 앞에서부터 60m까지, 길에는 무장한 특수 경찰이 가득했다고 한다.

제보자에 따르면, 경찰 측은 일찌감치 마숴핑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주요 리더임을 파악하고 그녀를 ‘국가 지도자급 인물’로 지정했다고 한다. 2008년 7월, 공안 네트워크에서는 이미 그녀를 지명수배하기 시작했고,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 공안국에서 여러 차례 마숴핑을 체포하려 했지만 실패했었다. 2009년, 경찰 측은 휴대폰 감청과 미행 등을 통해 탕산에 있는 마숴핑의 위치를 알아내고 바로 체포 작전에 들어갔다. 중국 공안국의 직접적인 배치와 지휘 아래 허난, 허베이 두 성(省)의 공안청 및 탕산시 공안국 등 병력이 동원되어 탕산시에 도착한 다음 급습했다.

마숴핑과 같이 체포되었던 다른 크리스천들은 체포 후 다시는 마숴핑을 보지 못했다. 그 후 행적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어, 마숴핑이 사망 전까지 어떤 가혹한 고문을 당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함께 잡힌 린린과 왕(王) 씨에 의하면, 경찰은 마숴핑이 관리하는 교회 재산이 얼마인지, 그리고 구체적인 보관 장소가 어디인지 털어놓으라며 그들을 고문했다고 한다. 고문 수법으로는, 두 손을 뒤로 묶은 뒤 갑자기 들어 올리기, 이쑤시개로 몸과 팔 찌르기, 머리를 잡고 바닥에 찧기 등이 있었다. 해당 기간, 고문을 견디지 못한 린린은 목숨을 끊으려 벽에 머리를 박았고 머리에서 피가 흥건히 흘렀다. 하지만 얼마 후 경찰은 다시 자백을 강요하며 심문을 계속했다. 린린과 왕 씨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반 크리스천이었음에도 이렇게 가혹한 고문을 당했으니, 교회 리더인 마숴핑은 어떤 악랄한 짓을 당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7월 22일, 마숴핑은 경찰에게 죽임을 당한다.

7월 24일, 경찰 측은 그제야 마숴핑의 사망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렸다. 그녀의 시신은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 황허(黃河) 중심병원의 영안실에 안치돼 있었다. 시신을 살피던 마숴핑의 남편 송(宋) 씨와 쐉펑옌촌 서기 양진주(楊金柱)는 시신에서 구타당한 흔적을 발견했다. 하지만 경찰은 구타 사실을 부인했다. 경찰은 마숴핑은 7월 21일에 혼자 체포되었으며, 22일 오후 5시에 정저우시로 옮겨졌다가 6시경 급성 심장병을 일으켜 급사했고, 몸의 상처는 사후 생긴 것이라고 거짓말했다.

남편 송 씨는 아내가 살아생전 건강했고 심장병은 걸려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경찰 측의 해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시신을 산시로 가져가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저우시 공안국 중원분국 국장 등 세 명은 여러 차례 송 씨와 협상을 하며, 그를 위협도 해 보고 회유도 해 보았다. 하지만 7월 26일 오후, 송 씨와 딸은 결국 마숴핑의 유해를 산시로 가져왔고, 7월 29일 안장했다.

13. 크리스천 왕펑톈,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례

2009년 초, 산둥(山東)성 웨이팡(潍坊)시에서 중국 정부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을 비밀리에 체포 살해한 참극이 발생했다.

피해자 왕펑톈(王風田)은 1970년 7월생 여성으로, 산둥(山東)성 웨이팡(潍坊) 창이(昌邑)시 줘산(岞山)진에 거주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반 크리스천이었다. 다음은 왕펑톈이 경찰에게 체포되어 잔혹하게 살해되기까지의 전 과정이다.

2009년 1월 16일 저녁 7시경, 산둥(山東)성 웨이팡(潍坊)시 샤산(峡山)구 줘산(岞山)거리 파출소 소속 경찰 몇 명이 왕펑톈의 집에 들이닥쳤다.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경찰은 바로 집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교회 관련 물품을 찾아내지 못했음에도 경찰은 강제로 왕 씨를 줘산거리 파출소로 연행해 갔다. 그 후 경찰 몇 명이 다시 왕 씨의 집에 들이닥쳐 거실, 침실, 마당 등을 샅샅이 뒤졌다. 화장실의 타일까지 전부 뜯어냈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날 저녁 7시 50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 하이어우(海鷗, 가명)와 그의 부모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잡혀 왕 씨와 함께 구금되었다.

줘산거리 파출소에서 경찰은 교회 상황을 알아내기 위해 하루 내내 왕 씨를 고문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그러는 동안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하이어우는 파출소에서 심문을 받을 때, 다른 심문실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하이어우를 심문하던 경찰이 왕펑톈을 고문하는 소리라고 알려 주었다.

1월 17일 새벽 2시경, 고문이 끝나고, 왕펑톈과 하이어우, 그리고 하이어우의 부모는 2m 높이의 대형 철창에 갇혔다. 그날로 그들 4명은 웨이팡시 구치소로 옮겨졌다.

하이어우의 기억에 의하면, 구치소에서 왕펑톈은 계속 보석처리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응하지 않았다. 왕펑톈은 구치소에서 네 차례 심문을 받았다. 하이어우는 심문받는 왕 씨의 울음소리를 들었고, 굉장히 무거운 쇠고랑을 발에 차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왕펑톈과 같은 수감실에 있었던 크리스천 밍후이(明慧, 가명)의 말에 의하면, 왕 씨가 차고 있는 2cm 정도 굵기의 쇠고랑은 수갑과 사슬로 연결되어 있어서 걷기가 매우 힘들어 보였다고 한다. 매번 심문이 끝날 때마다 경찰은 왕 씨의 수갑과 쇠고랑을 연결한 쇠사슬 길이를 줄여 제대로 설 수도 없고, 걸을 때는 허리를 펼 수도 없게 만들었다.

2월 16일, 왕펑톈과 다른 사람들이 구금된 지 한 달이 되었지만 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자, 구치소에서는 왕펑톈, 하이어우, 밍후이를 석방시키려고 ‘무죄 석방’이라고 쓰인 종이에 서명을 하게 했다. 서명이 끝나자 마자, 옆에 서 있던 줘산거리 파출소 경찰 10명이 세 사람에게 달려들어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검은 복면을 씌운 다음 사형수를 호송하는 것처럼 차량에 태웠다. 구치소의 경찰마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무죄 석방 아니었습니까?”라고 말했다.

경찰은 왕펑톈 등 세 명을 비밀리에 어느 호텔(나중에 징즈(景芝)의 ‘수이윈톈(水雲天) 호텔’이었다는 게 밝혀짐)에 불법 감금했다. 호텔에 감금된 하이어우는 옆방에서 들려오는 경찰의 고함소리와 뭔가 부딪혀 깨지는 소리, 그리고 왕 씨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한(韓)씨 성을 가진 경찰이 “왕펑톈이가 하도 자백을 안 해서 얼굴이 돼지처럼 붓도록 심하게 맞았어!”라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 이를 들은 하이어우는 소리 없이 울었다. 경찰이 불법으로 심문실까지 차리고 가혹하게 심문했지만, 그들 셋은 그 무엇도 털어놓지 않았다.

약 15일 후인 3월 초, 왕펑톈은 경찰 측의 참혹한 고문을 못 이기고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왕펑톈이 무참히 맞아 죽은 후, 경찰 측은 바로 유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사망 사실을 숨겼다. 여러 차례 왕펑톈의 집과 친정, 그리고 다른 친지들의 집을 방문해 예수를 믿는지,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 묻고, 왕 씨의 집안 배경에 대해 파악했다. 악행을 덮기 위해, 경찰은 심지어 구타로 얼굴이 심각하게 변형된 왕 씨의 시신을 병원으로 보내 성형수술을 시키기도 했다. 성형 수술에 참여했던 한 간호사(왕리(王麗), 여, 44세, 친정이 왕펑톈과 같은 마을이었음)가 왕펑톈을 알아보았다. 소식이 새 나갈까 두려워한 경찰은 즉시 왕리를 수술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격리시켰다.

그 후, 왕펑톈의 시신을 확인하러 온 여동생은 온통 시퍼렇게 멍이 든 등을 보았다. 살아 있을 때 잔혹한 가혹 행위를 당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현지 경찰의 삼엄한 감시와 협박 때문에 부당함을 하소연할 곳을 찾지 못한 유족들은 왕펑톈 사건의 공정한 해결을 위해 나설 수 없었다.

14. 칠순의 크리스천 난샹밍 구금 기간 경찰의 고의적인 치료 지연으로 사망한 사례

난샹밍(南相明)은 1942년생 남성으로, 산시(陝西)성 셴양(咸陽)시 리취안(禮泉)현 쥔마(駿馬)진 퍼디(坡底)촌 퍼난(坡南) 1조에 거주했다. 난샹밍 부부는 1994년 10월부터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고, 1999년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그들은 정직하고 올곧은 성품의 소유자로 남을 돕길 좋아해 나서서 교회의 찬양과 설교 CD를 복사하는 작업을 도왔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대한 중국 정부의 핍박이 심해지자, 난샹밍 부부는 경찰의 수색을 피하고자 2003년 자신의 집에 지하실을 만들어, 교회 서적과 CD, CD 레코더를 보관했다.

2014년 7월 24일, 세 명의 크리스천이 난샹밍 부부의 집을 찾아 지하실 보수를 도왔다. 부주의로 이 사실이 경찰에 발각되어 다섯 명은 모두 잡혀갔다. 난샹밍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징역 3년 형에 처해져, 감옥에서 장기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당뇨병 병세가 악화되었다. 경찰은 치료를 위한 보석을 거절했고 난샹밍은 결국 치료시기를 놓치게 되었다. 2016년 2월, 난샹밍은 결국 74세의 나이로 옥중에서 사망하게 되었다.

다음은 난샹밍이 공산당의 박해로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다.

2014년 7월 24일 오후 1시경, 난샹밍의 아내 왕(王) 씨(당시 67세)는 점심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난샹밍과 다른 크리스천 세 명은 거실에서 쉬고 있었다. 갑자기 셴양시 리취안 쥔마진 파출소 소속 경찰 류장(劉江) 등 다섯 명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경찰들은 영장을 제시하지도 않은 채 집을 뒤지기 시작해, 난 씨의 집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들은 집에서 교회 서적 118권, CD 레코더 2대, CD 86장, 공 CD 2,795장, CD 리스트용 도장 53개, MP4 플레이어 4개, DVD 플레이어 2대, 새로 구입한 삼륜 오토바이 1대, 전동 삼륜차 1대, 모터바이크 1대, 휴대폰 1개 및 현금 500위안(한화 약 8만 4천 원)을 찾아내 모두 압수했다. 경찰은 난샹밍 부부와 다른 세 명을 강제로 체포하여, 리취안현 쥔마진 파출소로 연행해 갔다.

그날 저녁 8시경, 리취안현 쥔마진 파출소 소장 양차오(楊超)를 비롯한 경찰들은 난샹밍 등 다섯 명을 차례로 심문했다. 경찰은 집에 있던 교회 물품들이 어디서 났는지, 교회의 상부 책임자는 누구인지 심문했지만, 난샹밍은 대답하지 않았다. 심문은 밤 12시 넘도록 계속되었다. 원래 당뇨병을 앓고 있었던 난샹밍은 경찰의 협박에 시달리고 오랜 시간 음식을 먹지 못한 탓에 완전히 기력을 잃었다. 그는 구석에 앉아 날이 밝을 때까지 힘겹게 버텼다.

7월 25일 오전 8시경, 난샹밍 등 다섯 명의 크리스천은 리취안현 공안국으로 압송되었다. 그 후, 난샹밍은 리취안 구치소에 구금되었다.

8월 2일, 난샹밍 등은 죄수복을 입고 수갑과 쇠고랑을 찬 채로 경찰에게 난샹밍이 살던 마을로 호송되어 마을 사람들 앞에서 조리돌림을 당했다.

8월 29일, 난샹밍은 정식 체포되었다.

2015년 5월 14일 오후 3시, 산시성 리취안현 인민법원에서 난샹밍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사교 조직을 이용해 법률 실시를 파괴했다”라는 죄목으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7월 13일, 난샹밍은 산시성 웨이난(渭南) 교도소에 이송되어 복역하게 됐다.

7월 16일, 교도소 측은 난 씨의 딸에게 전화해 난 씨에게 당뇨병약을 전달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 교도소 측은 가족들의 면회를 거절하고, 매월 난샹밍의 카드로 돈을 보내는 것만 허락했다. 다른 물품들은 보내지 못하게 했다.

2016년 2월 1일, 웨이난 교도소는 딸에게 다시 전화해 2만 위안을 보내라고 했다.

다음날, 교도소를 찾은 난 씨의 딸은 난 씨의 병세가 위중해져 산시성 시안(西安)시 신안(新安) 중심병원(교도소 부속 병원)으로 옮겨졌음을 알게 되었다.

병원 면회실을 찾은 딸에게 난샹밍은 교도소에서 오랜 시간 제대로 먹지 못해 당뇨병이 계속 악화되었다고 몰래 털어놓았다. 검사를 해 보니 혈당이 이미 최대 14~15mmol/L(집에 있을 때 난 씨의 혈당은 정상 수준인 3~5mmol/L를 유지하고 있었음)까지 치솟았고, 최근에는 음식을 먹는 족족 토한다고 말했다. 난 씨의 딸은 교도소 경찰 측에 아버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 치료할 것과 제대로 치료를 받도록 보석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교도소 측은 “공산당 정책상, 당뇨병의 경우 ‘눈이 멀거나, 발이 썩어야’ 치료를 위한 보석 수속을 밟을 수 있다!”라고 답했다.

2월 7일 저녁 9시경, 난 씨의 가족들은 웨이난 교도소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교도소 측은 난샹밍이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사망했다고 전해 왔다.

그 후, 유족들은 병원에서 난샹밍의 혈당이 너무 높아 당뇨 합병증이 발생했고, 이로 인한 관상 동맥 질환으로 결국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족들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웨이난 교도소는 그제야 화장비 8천 위안을 지급하고 사건을 유야무야 마무리 지었다.

15. 크리스천 천옌링 경찰 측의 의도적인 치료 지연으로 구금 기간 사망한 사례

천옌링(陳艳玲)은 1972년생 여성으로, 지린(吉林)성 숭위안(松原)시 쳰안(乾安)현 옌즈(嚴字)향 사람이다. 1997년에 예수를 믿기 시작해, 2000년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03년 5월 중순의 어느 날, 숭위안시 쳰안현 정보과(政保科)는 천옌링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후 바로 경찰 예닐곱 명을 천옌링의 집으로 보냈다. 경찰들은 천 씨를 강제로 체포하여 쳰안현 구치소에 가뒀다. 구금 기간, 천옌링은 한 차례 심문을 당했고, 경찰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서류에 사인할 것을 강요했지만, 천옌링은 서명하지 않았다.

천옌링과 같은 수감실에 있었던 크리스천 류팡(劉芳)에 의하면, 체포되었을 당시 천옌링은 아주 건강했으며, 집에 있는 두 어린 자식(당시 딸 12세, 아들 10세)을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매일 밤 슬프게 울었다고 한다.

6월 19일 아침, 천옌링은 류팡에게 머리가 너무 아프고 속이 메슥거려 토하고 싶다고 말했다. 말하던 도중 참지 못하고 구토를 했으며, 얼굴이 온통 새빨갰다. 같은 수감실에 있던 수감자가 교도관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교도관은 진통제 한 알만 주었을 뿐, 의사를 불러 주지 않았다. 천옌링의 증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오전에만 서너 번 구토를 했다. 게워내는 것이라고는 물이 전부였다. 오후 5시가 되자 천옌링의 병세는 더 심해져, 구토뿐 아니라 경련 증세까지 일어났다. 천옌링의 배 속에는 게워 낼 물조차 남아 있지 않아 이제는 경련만 일으킬 뿐이었다. 처음에 천 씨는 인중 부분을 꼬집으면 곧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갈수록 발작 시간이 짧아져 나중에는 10분도 안 되어 한 차례씩 의식불명 상태로 발작을 일으켰다. 주위에서 아무리 인중을 꼬집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수감자들은 하루 종일 교도관을 불렀지만, 교도관은 수감실에 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 7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수감자들은 일고여덟 차례 계속 교도관을 불렀다. 구치소 부소장 리(李) 씨와 세 명의 남 교도관, 여의사 한 명이 그제서야 느릿느릿 수감실을 찾았다. 천옌링의 체온을 재고 여의사는 그다지 열이 높지 않다며 알 수 없는 약물을 투여하고는 곧 떠났다. 그 사이에 교도관 장보(張波)는 꾀병을 부린다며 천옌링에게 발길질을 해댔다. 이들이 수감실을 막 떠나려는데, 천옌링이 또다시 경련을 일으켰다. 교도관 한 명이 주삿바늘로 천옌링의 다리를 사납게 찔러 대자 천옌링의 다리가 움찔하더니 이내 다시 경련을 일으켰다. 이어서 부소장 리 씨가 천 씨의 인중을 꼬집었고 경련이 멈추자 일행은 바로 수감실을 떠나버렸다. 그 후에도 천옌링의 경련은 계속되었다. 인중을 꼬집으면 깨어났지만 1, 2분이 지나면 또 경련을 일으켰다. 같은 수감실의 수감자들은 천 씨의 상태가 위급함을 보고 울며 교도관을 불렀지만, 아무리 불러도 교도관은 오지 않았다.

이날, 수감자들은 최소 20여 차례 교도관을 불렀지만, 그때까지 구치소 측에서는 천옌링을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다.

밤 9시까지 천옌링은 계속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다. 그제야 구치소의 소장 왕후이(王輝)는 천옌링을 병원으로 옮겼다.

이튿날, 여 교도관은 천옌링이 있었던 수감실의 수감자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경고했다. “내일 누군가 와서 천옌링에게 약을 주고 주사를 놔주었냐고 물으면, 꼭 그렇게 했다고 대답해야 해.” 하지만 류팡은 교도관의 말을 듣지 않고, 사건을 기록하러 온 경찰에게 천옌링의 병세가 악화되어 간 과정을 모조리 말했고, 이 때문에 교도관의 질책을 들어야 했다.

제보자에 의하면, 천옌링이 병원에 실려 간 후, 공안국은 천옌링의 가족들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알렸다. 막 병원에 도착한 가족들은 천옌링이 얼굴이 시퍼렇게 부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말도 못 하는 채로 병상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천옌링의 치료에 비용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았던 공안국은 이틀만 치료를 하고 삼 일째부터는 약 투여를 중지했다. 이 사실을 안 천 씨의 가족들은 병원을 옮겨 계속 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6월 24일 저녁, 천옌링은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천옌링의 사망 후, 경찰은 천 씨가 선천성 뇌혈관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천옌링은 건강했고, 선천성 뇌혈관 질병 따위는 없었다. 모든 정황을 보았을 때, 천옌링은 집에 있는 어린 자녀들에 대한 걱정으로 급성 뇌출혈을 일으켰고, 경찰 측의 늑장 대응이 병세를 악화시켜 사망에 이른 것이 분명하다. 경찰 측은 천 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16. 크리스천 우샤, 중국 정부의 박해로 사망한 사례

2009년 8월 23일, 우샤(吳俠)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 기간 향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우샤는 장쑤(江蘇)성 쑤첸(宿遷)시 쑤청(宿城)구 사람으로, 2003년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하여 본인의 집에서 크리스천들이 숙식할 수 있도록 성심껏 대했다. 생전 우샤는 듬직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덕망이 높았다고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체포당한 후 사망

2009년 8월 중순, 쑤첸(宿遷)시 수양(沭陽)현 시관(西關) 파출소의 경찰이 현지 크리스천 두 명을 미행 끝에 체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우샤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이고, 다른 크리스천들을 본인의 집에 숙식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8월 23일 오후 3시, 쑤첸시 공안국 경제기술개발구 분국의 경찰이 우샤의 집에 들이닥쳐, 파악할 일이 있다는 명목으로 집에 혼자 있던 우샤를 체포했다.

가족들의 말에 의하면, 며칠 후 경찰은 우샤의 딸과 사위에게 연락해 쑤첸시 쑤청구 리위안(梨園) 파출소(현재 쑤첸시 쑤청구 황허(黃河) 파출소와 병합)로 오라고 했다. 경찰은 딸과 사위에게 우샤가 집으로 들인 크리스천 두 명의 행방을 털어놓도록 설득하라고 했다. 경찰의 목적은 그 두 명의 컴퓨터에 있는 교회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우샤는 딸과 사위에게, 경찰이 초강빛 램프로 눈을 비춰 잠을 못 자게 하면서 크리스천들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하나님을 배신하는 유다 같은 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그녀는 몸에 지닌 금귀고리와 금반지 등 장신구를 빼내 딸에게 건네 주며, 딸과 사위에게 뒷일을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는 자기를 설득하지 못하게 했다. 우샤의 태도는 강경했고, 파출소도 우샤를 풀어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딸과 사위는 어쩔 수 없이 파출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해명을 요구하는 유족들, 책임을 피하는 중국 정부

8월 31일 밤 9시경, 우샤의 가족들은 우샤가 고혈압 때문에 상태가 심상치 않아 쑤첸시 인민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경찰 측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경찰과 의사가 우샤를 보려는 가족들을 가로막았다. 밤 12시가 지나서야 의사가 와서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우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경찰은 우샤의 유족들을 협박했다. “우샤가 파출소에서 고문당해 죽었다고 말하고 다니면, 파출소 측에서는 우샤가 전능하신 하나님 크리스천이라고 공개적으로 알릴 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정부에서 금지한 교회예요. 정부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전능하신 하나님 믿는 자들이고 이 자들은 정부에게 있어 중범죄자입니다. 그러니 입 함부로 놀리면 집안 사람들 모두 큰일 날 줄 아십시오!” 경찰 측의 엄포에 우샤의 유족들은 이 일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그날 밤, 경찰은 우샤의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다음날, 경찰 측은 우샤의 일부 친지들에게만 시신을 잠깐 보이고는 바로 화장을 시키려 했지만, 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우샤의 외조카가 이를 저지했다. 그는 여러 차례 쑤첸시 쑤청구 리위안 파출소와 쑤첸시 쑤청구 공안분국, 쑤첸시 공안국, 성(省) 공안청을 찾아가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 측은 똑같은 대답만 반복할 뿐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체포되었고, 그러다 병으로 죽었으니 우샤의 사망은 파출소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따라서 파출소에는 그 어떤 책임도 없는 죽음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것은 죄질이 무거운 행위로, 어디를 가든 사건을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샤의 외조카는 상고를 계속하며, 중국에서 소송에 이기지 못한다면, 학우들을 통해 해외에서 소송을 걸겠다고 했다. 일이 커질 것을 우려한 경찰 측은 할 수 없이 우샤의 유족들에게 30만 위안(한화 약 5,050만 원)을 배상하는 데에 동의했다.

17. 크리스천 장환푸, 노동교화 기간 모욕과 가혹 행위 끝에 사망한 사례

피해자 장환푸(張煥福)는 50세 여성으로, 충칭(重慶)시 장진(江津)구 주양(朱楊)진 챠오핑(橋坪)촌 사람이다. 2000년 5월에 남편 차오번셴(曹本賢)과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한 일반 크리스천이었다. 다음은 장환푸가 경찰에게 불법 체포되어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기까지 전과정이다.

크리스천들이 예배하도록 집을 제공한 것으로 인해 노동교화형 판결 구금 기간 가혹 행위로 사망

장환푸 부부는 성실하고 정직한 농민이었다. 부부가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된 후 근처에 사는 크리스천과 함께 자주 예배를 드리곤 했다. 하지만 즐거운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고, 누군가 장환푸의 집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을 고발했다.

2008년 8월 18일 오전 10시경, 충칭(重慶)시 융촨(永川)구 공안국의 경찰 몇 명이 장환푸의 집을 수색해 교회 서적과 찬양 CD를 찾아내고, 장환푸를 불법 체포해 융촨구 공안국으로 연행해 갔다.

그 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장환푸는 법적 절차를 거치지도 않은 채 노동교화 1년 형에 처해졌고, 충칭시 장베이(江北)구 스마허(石馬河) 여자 노동교화소에 수감되었다.

노동교화소로 첫 면회를 간 남편 차오번셴은 부인이 맞아서 얼굴이 시퍼렇게 붓고 변형까지 되어 못 알아볼 지경이 된 것을 보게 되었다.

2009년 4월의 어느 날, 스마허 여자 노동교화소 측은 차오번셴에게 전화를 걸어, 장환푸가 중병에 걸렸음을 알렸다. 차오 씨가 노동교화소에 도착하자 경찰들이 그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까맣고 더러운 낡은 이불로 덮여져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저게 당신 아내요. 목매달아 자살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차오 씨는 아내의 시신을 보고 싶었지만 경찰에게 제지당했다. 차오번셴이 그 자리에 있었던 시간은 2분 남짓했다. 경찰이 곧 참을성 없는 말투로 “됐어요. 당신이 확인했으니, 이제 시신을 화장터로 보내 화장할 거요.”라고 말했다. 차오 씨는 함께 화장터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유족의 이런 기본 권리조차도 박탈해 버리고 차오 씨를 차 안에서 기다리게 했다.

오후 5시, 장환푸의 유골이 나왔지만 경찰은 시간을 끌며 출발하지 않았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사람이 없는 틈을 타 경찰은 그제야 차를 끌고 차오 씨를 챠오핑촌 길가로 데려가 말했다. “유골을 가져가 묻어 버리세요. 다른 친지들에게는 알리지 말고.”

당시 장환푸와 같은 기간 복역했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 양(楊) 씨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저와 장환푸는 둘 다 스마허 여자 노동교화소 3대대에서 복역했고, 장환푸는 제 옆 방이었어요. 노동교화소에는 새로 들어온 죄수에 대한 규칙이 하나 있어요. 첫 번째 달에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세수를 끝내고 수감실 규율 23조를 외워야 했죠. 다 외우지 못하면 체벌을 받았어요. 장환푸는 기억력이 나쁜 편이었는데, 처음 다 외우지 못했을 때는 벌로 1시간 동안 서있었어요. 두 번째로 외우지 못했을 때는 30분 동안 앉았다 일어서기를 했어요. 세 번째도 외우지 못하자, 운동장을 20바퀴 돌아야 했죠. 네 번째로 못 외웠을 땐 식사를 못하게 했고, 다섯 번째에는 화장실을 못 가게 하는 바람에 대소변을 모두 바지에 싸고 말았어요…. 규율을 외우지 못한 장환푸는 배를 곯는 적이 많았고, 배가 고파 쓰러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대장은 장환푸가 일부러 멍청한 척하고 꾀병을 부린다며,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어요. 한 번은 장 씨를 불쌍히 여긴 한 죄수가 자신의 돈으로 음식을 사 준 적이 있는데, 대장 류(劉) 씨가 이를 발견하고는 그 죄수에게 앉았다 일어서기 300번을 시켰어요.

둘째 달부터는 생산량을 채워야 해요.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0시 반까지 작업을 하는데,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면 밥도 먹지 못하고 잔업을 해야 했어요.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형량이 늘어나요. 매일 식사 시간은 모두 합쳐 30분이었고, 한 끼를 먹는 데 10분 밖에 없었어요. 밥을 담고, 먹고, 설거지를 마치는 것까지 합쳐 10분이었어요. 시간이 되도록 다 먹지 못하면 더 이상 먹을 수 없었어요. 일을 끝내고 씻는 시간은 8분이었어요. 샤워하고 옷을 빨고 얼굴과 발을 씻는 것을 다 포함해서요. 시간이 다 되면 더 이상 씻을 수 없었어요. 화장실 가는 것 역시 시간이 정해져 있었어요. 하루에 2번씩, 한 번에 10분을 넘길 수 없었죠. 장환푸는 오랜 시간 생산량을 채우지 못해 대장의 질책을 받았어요. 배를 주리는 와중에 형이 늘어날까 걱정까지 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었을 거예요.”

2009년 4월, 장환푸가 목을 매 자살한 후, 교도관은 장 씨가 있었던 감방의 죄수들을 모아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 누구도 이 사건을 소문 내거나, 감방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경찰은 “이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밖에 흘리는 자는 그 즉시 죽을 줄 알아!”라고 위협했다.

해명을 요구하는 유족들, 협박과 위협을 일삼는 경찰

장 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친지들은 비통해하고 분개했다. 진상 해명을 바라는 친지 16명이 스마허 여자 노동교화소로 향했다. 스마허 여자 노동교화소의 경찰은 총을 들고 친지들을 포위한 후 위협했다. “사람 죽이는 거야 늘 있는 일이지. 며칠 전에도 사람 하나를 죽여서 밖에다 버려 놨는데, 아무도 신경 안 쓰더군.”

장환푸의 유족들은 노동교화소 입구에서 한 달하고도 이틀을 농성했다. 경찰은 장환푸 작은 딸의 직장을 가지고 위협을 하며 농성을 중단하도록 압박했다.

장환푸의 억울한 죽음에 오랜 시간 괴로워하던 차오번셴은 결국 정신 이상이 되어 충칭시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성실하고 정직했던 부부를, 평화로웠던 한 가정을 공산당 정부는 이렇게 짓밟아 버렸다!

18. 크리스천 덩슈펀, 노동교화 기간 사망한 사례

2002년 9월, 크리스천 덩슈펀(鄧秀芬, 가명 저우민(周敏))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체포된 후 노동교화 1년 형을 선고받았다. 2003년 5월 어느 날, 오랜 시간 과중한 노동과 영양 결핍 상태에 시달리던 덩슈펀은 병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저장(浙江)성 후저우(湖州)시 우캉(武康)진 모간산(莫干山) 노동교화소 측의 고의적인 치료 지연으로, 덩슈펀은 발병 3시간만에 옥중에서 급사하고 말았다. 향년 35세였다.

덩슈펀(여, 1968년생)은 원래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시 원청(文成)현에 살았다가, 후에 저장성 루이안(瑞安)시 하이안(海安)진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었던 덩슈펀은 2001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생전에 마음씨가 곱고 성실했던 덩슈펀은 친지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신앙 때문에 체포, 복역 중 가혹 행위 이어져

2002년 9월 26일,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시 공안국 어우하이(甌海)구 분국 국장 선챵(瀋强, 남, 40세), 민경 핵심요원 젠밍(建明) 등 경찰 네 명이 덩슈펀의 집으로 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관련 서적을 보관하고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라며 덩슈펀을 체포했다. 그 후, 경찰은 덩 씨에게 “사교 조직에 참가하여 사회 치안을 교란시켰다”라는 죄목으로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노동교화 1년 형을 선고했다.

덩슈펀과 같은 감방에 있었던 크리스천 레이레이(磊磊, 저장성 원저우시 어우베이(甌北)진 사람, 당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형을 사는 중이었고, 현재 미국으로 망명)의 말에 의하면, 2002년 11월, 덩슈펀은 저장성 모간산(莫干山) 노동교화소로 보내졌고, 그 후에는 2대대 1중대의 재봉조로 배치되었다. 레이레이와는 같은 조였다. 노동교화소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들은 모두 가슴에 ‘특별 관리’라고 적힌 노란 명찰을 달고 다녔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덩슈펀, 레이레이 등 크리스천들은 감옥 경찰들의 학대와 차별, 박해를 받으며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했다.

그들은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집합했고 작은 찐빵과 알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죽을 아침 식사로 먹었다. 매일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10시간 이상 일을 해야 했는데, 작업 강도가 강해 체력이 빨리 소모되었다. 자주 허기가 져 머리가 어지럽고 기력이 없었다.

교도관이 덩슈펀이 속한 조를 ‘특별 관리’하고 있었던 탓에 덩슈펀은 자주 잔업을 해야 했다. 그녀의 작업 시간은 다른 사람보다 2시간 정도 많았다. 하루에 14시간가량 작업을 한 것이다. 밥 먹을 시간에 제때 맞춰 오지 못할 때가 많아 차갑게 식어 버린 음식을 먹거나 아예 식사를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매번 작업이 끝나면, 덩 씨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노동교화소 대청에서 강제로 세뇌 교육을 받아야 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벌을 받았다.

경찰은 크리스천들에게 매월 10위안만 쓸 수 있게 했다. 이 10위안으로는 일상용품을 사기도 부족했으니 음식을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매일 14시간에 이르는 고강도 작업과 심각한 영양 결핍으로, 원래 건강했던 덩슈펀의 몸은 급속도로 약해졌다.

병을 부른 고강도 작업, 지체된 치료로 감옥에서 급사

2003년 5월 초 어느 날 저녁 8시경, 잔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덩슈펀은 갑자기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느꼈다. 온몸이 아프고 토하고 싶었다. 레이레이는 얼굴이 새빨갛고 목이 부어오른 덩슈펀이 바닥에 꿇어앉아 가쁜 숨을 내쉬는 것을 보고, 서둘러 덩 씨를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당시 덩 씨는 말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녀의 상태를 본 레이레이는 서둘러 당직 요원(그 역시 죄수)을 불러 함께 덩 씨를 부축해 당직실 입구에 앉혔다. 레이레이는 당직 요원을 시켜 덩슈펀을 의무실로 데려가게 하고 싶었지만, 밖으로 통하는 두 개의 철문이 굳게 잠겨 있어 나갈 수가 없었다.

의자 위에 축 늘어져 있는 덩슈펀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두 손은 차가웠다. 일초 그리고 일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레이레이는 마음을 졸이며 감옥 경찰이 와서 문을 열어 주기만을 기다렸다. 일분이 한 시간 같은 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덩슈펀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힘없이 늘어진 손을 따라 차가운 땀이 뚝뚝 떨어졌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교도관과 의사가 느긋하게 노동교화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1시가 넘었다. 덩슈펀의 증세가 나타난 지 3시간 만이었다. 경찰은 두 죄수에게 덩슈펀을 부축하게 했지만 덩 씨의 두 발은 이미 감각을 잃은 상태였다. 죄수들은 덩 씨를 질질 끌며 의무실로 데려갔다.

당직 요원은 다른 죄수에게 당시 덩슈펀의 상태에 대해 몰래 털어놓았다. 당시 덩슈펀은 심각한 탈진 증세가 나타나 옷을 비틀면 물이 나올 정도로 식은땀을 흘렸고, 이미 가장 중요한 응급처치 시간을 놓쳐 살아나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덩슈펀의 사망 전 상황을 목격한 모간산 노동교화소 2중대의 어느 죄수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덩 씨가 의무실에 실려 갔지만 의무실에는 의사가 없었고, 경찰은 병상 위에 덩 씨를 눕혀 놓은 뒤 그곳을 떠났다. 침대 위에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덩 씨의 얼굴색이 창백했다. 이미 아무 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 30분 후, 의사와 2대대의 서기 리밍(李明)이 의무실에 왔지만 덩 씨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덩 씨의 사망 증명서에는 ‘심근경색, 즉시 응급처치를 했지만 사망’이라고 쓰였다.

덩슈펀의 사망 후, 경찰은 죄수 2명을 시켜 레이레이를 24시간 감시하며 그녀가 덩슈펀의 진짜 사망 원인에 대해 말을 꺼내지 못하도록 했다. 35세의 젊은 크리스천 덩슈펀은 이렇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19. 크리스천 장샤오웨, 신앙을 지키다 굶주림과 구타로 사망한 사례

장샤오웨(張小月)는 1964년생 여성으로, 안후이(安徽)성 황산(黃山)시 황산(黃山)구 산커우(三口)진에 거주했다. 1996년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하여 1997년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14년 9월 2일, 장샤오웨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잡혀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복역 기간 중 변을 당해 향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다음은 장샤오웨가 박해로 사망하기까지의 전과정이다.

2014년 9월 2일 새벽 5시경, 안후이성 황산시 황산구 경찰들은 합동작전을 펼쳐 현지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 다섯 명을 체포했다. 장샤오웨는 그중 한 명이었다.

그날 아침 8시 후, 장 씨의 집을 찾아간 장 씨의 어머니는 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전화를 통해 교회 크리스천 리루(李茹, 가명, 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가고, 집에 있던 교회 서적을 모두 압수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전화를 끊은 장 씨의 어머니는 다시 딸의 집으로 가 집 안을 뒤져 보았다. 장샤오웨가 평소 읽던 교회 서적이 보이지 않았다. 딸 역시 경찰에게 잡혀간 것이 분명했다.

3, 4일 후, 촌의 간부 위저(餘哲)가 경찰 두 명을 데리고 장 씨 어머니의 집을 찾아갔다. “당신 딸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 체포되었습니다. 지금 구치소에 갇혀 있으니 가서 옷가지나 좀 넣어 주세요.” 걱정이 되고 분개한 어머니는 “내 딸이 하나님을 믿는 게 무슨 범죄라고 그 애를 잡아가뒀소? 그 애는 소뇌실조증 병을 앓고 있는데 그런 애를 잡아가두다니, 이건 그 애보고 죽으라는 거 아니요?”라고 따졌다. 하지만 경찰은 조금의 동정심도 보이지 않고 말했다. “당신 딸이 믿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국가에서 금지한 종교니 당신 딸은 위법을 저지른 게 맞습니다. 거기다 여기저기 전도를 하고 다녔으니, 체포당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지. 그런 자들은 다 잡아 가둬야 해!” 곧 장 씨의 어머니는 옷가지들을 챙겨 장샤오웨를 만나러 갔지만,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한 달 후, 촌 간부 위저가 다시 장 씨의 어머니를 찾아 겨울옷을 장 씨에게 전달해 주라고 했다. 옷가지를 챙겨 황산구 공안국을 찾아간 어머니에게 경찰은 장 씨가 “사교 조직을 이용해 법률 실시를 파괴했다”라는 죄목으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음을 알렸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장샤오웨의 체포증만을 줄 뿐 판결서를 주지 않았다. 장샤오웨는 안후이성의 창펑(長豊)현 여자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됐다.

2015년 12월 어느 날 새벽 3시, 안후이성 창펑현 여자 교도소 측에서 장샤오웨의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장 씨가 중병에 걸려 생명이 위급하니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했다. 장 씨의 오빠와 남편이 교도소에 도착했을 때, 교도소 책임자는 그녀가 이미 사망했다고 말했다. 장 씨의 유족들이 시신을 보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경찰은 그들을 한 방으로 안내했다. 경찰 측은 유족들에게 장샤오웨의 머리 부분만 보게 하고, 신체는 보지 못하게 했다. 유족들은 피골이 상접하도록 말라 입술이 치아를 덮지 못할 지경이 된 시신을 보았다. 유족들이 시신을 확인한 후, 경찰은 즉시 장 씨의 시신을 화장터로 보내 화장시켜 버렸다. 장샤오웨의 유족들은 그녀의 유골함을 고향으로 가져가 매장했다.

당시 장 씨와 같은 감옥에 수감되었던 크리스천의 말에 의하면, 경찰은 장 씨에게 신앙을 포기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3서(보증서, 결렬서, 회개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지만 장샤오웨는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교도관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지 않고, 장 씨와 같은 조의 죄수 4명에게 그녀를 잘 감시하라고 하면서 감시가 허술하면 그녀들의 점수를 깎을 것이라고 협박하였다(점수는 죄수의 출소 여부와 관련됨). 네 명의 죄수들은 점수를 깎이지 않으려고, 낮에는 장샤오웨를 번갈아 감시하며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 밤에는 장 씨에게 보초를 세우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원래 건강하지 못했던 장샤오웨는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자 걸음을 걷지도 못할 정도로 허약해졌다. 매번 세뇌반에 갈 때마다 누군가 그녀를 부축해 주어야 했다. 그 밖에도 교도관은 만약 장샤오웨가 ‘3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모든 죄수의 점수를 깎고 벌을 줄 것이라고 말하며 죄수들이 장샤오웨를 미워하도록 선동했다. 죄수들은 미친 듯이 장샤오웨를 구타하고, 신발로 입을 틀어막았다. 플라스틱 의자로 그녀의 명치를 때리고, 구둣솔을 질에 쑤셔 넣기도 했다. 2015년 12월 어느 날 밤, 장샤오웨는 갑자기 피를 토하고, 출혈을 보였다. 경찰은 그녀를 교도소 병원으로 옮겼지만, 새벽 5시경,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경찰은 대외적으로 장샤오웨는 하나님을 믿어 심신에 몹쓸 병이 나 죽게 된 것이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고인을 모독했다. 그야말로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며 진실을 왜곡한 것이다!

20. 크리스천 왕팡, 구금 기간 경찰의 박해로 사망한 사례

왕팡(王芳, 가명 자자(佳佳))은 1980년 9월 13일생 여성으로, 간쑤(甘肅)성 우웨이(武威)시 량저우(凉州)구 진양(金羊)진 사람이다. 신장(新疆) 산산(鄯善)현 훠처잔(火車驛)진의 굴착 회사 기숙사에 살았고, 2011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12년 12월 어느 날, 왕팡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신장(新疆) 위구르(維吾爾) 자치구 산산(鄯善)현에서 경찰에게 잡혔다. 12월 24일, 왕팡은 투하(吐哈) 공안국에서 “사교 조직을 결성하고 이용해 법률 실시를 파괴했다”라는 죄목으로 형사 구류에 처해진다.

2013년 8월 30일, 산산현 법원은 왕팡이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도했다는 이유로 “사교 조직을 결성하고 이용해 법률 실시를 파괴했다”라는 죄목으로 징역 3년 형을 선고했다.

2013년 10월 13일, 왕팡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여자 교도소로 보내져 복역하게 됐다.

왕팡과 함께 복역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 정전(鄭珍, 가명)의 말에 의하면, 교도소에서 그녀와 왕팡 등 크리스천들은 6감구(監區) 12분감구(分監區)에서 3개월 동안 세뇌 교육을 받았다. 2014년 1월에는 노동 강도가 가장 높기로 유명한 3감구 6분감구로 배치되어 노동 개조를 받았다. 매일 아침 7시 30분부터 8시 사이 작업장으로 나갔고, 작업은 다음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매일 평균 작업 시간은 18시간 이상이었다. 어떤 때는 3일 밤낮을 쉬지도 못하게 하며 작업을 시키기도 했다.

왕팡과 같은 감구에서 복역한 크리스천 원원(文文, 가명)에 의하면, 6분감구에서 복역하는 가장 큰 고통은 오랜 시간 수면부족에 시달린다는 점이었다. 교도소의 경찰은 때때로 밤새도록 쉬지 못하게 했고, 거기다 전기봉으로 “지지직 지지직” 소리를 내며 죄수들에게 공포감을 주었다. 극도로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심한 압박감에 고통받은 죄수들은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갔다.

같은 시기 복역한 크리스천의 말에 의하면, 왕팡은 자신의 호감(互監,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을 감독하는 죄수)에게 자주 욕을 먹어 말수가 없어졌다고 한다. 2014년 10월의 어느 날, 왕팡의 호감은 왕팡이 말이 없다며 교도관에게 말했다. 그날 교도관이 왕팡에게 왜 그런지 물어도 왕팡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2시 작업이 끝나고 인원 보고를 할 때, 왕팡은 보고를 하지 않았다. 경찰은 200명의 죄수 앞에서 왕팡은 개조를 거부하고 있으며, 이렇게 관리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한 자는 압호(押號, 교도관이 교도소 질서를 위반한 죄수를 대상으로 마련한 처벌 장소)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숙소로 돌아온 왕팡에게 수갑을 채워 침대에 묶어 놓고, 호감에게 왕팡이 잠을 자지 못하게 감시하라고 시켰다. 당시 왕팡은 반항하며 “나한테 왜 이래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라고 외쳤다. 경찰은 왕 씨에게 “너는 개조를 거부했잖아. 우리에겐 이럴 힘이 있어!”라고 윽박질렀다(원원은 당시 왕팡의 옆방에 있어서, 왕팡과 경찰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음).

죄수들이 작업에 나가는 아침 시간, 갑자기 왕팡이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었고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호흡이 멈췄다. 의사는 왕 씨가 급사했다고 했다. 장기간 과도한 노동에 왕팡의 몸이 허약해졌고, 주변의 괴롭힘과 밤새 잠을 자지 못한 탓에 병이 생겨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 분명했다.

사건 발생 후, 교도소에서는 사망 관련 정보가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막았고, 죄수들이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왕팡의 물품들을 비밀리에 처분해 버렸다. 교도소는 왕팡의 유족들에게 왕팡의 죽음은 교도소 측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34세밖에 되지 않은 젊은 크리스천은 이렇게 공산당 정부의 박해로 죽음을 맞고 말았다.

21. 크리스천 선슈룽, 심문 기간 의문의 추락으로 사망한 사례

피해자 선슈룽(瀋秀榮)은 42세 여성으로, 산둥(山東)성 더저우(德州)시 핑위안(平原)현 왕먀오(王廟)진 샤오추이(小崔)장에 거주하였다. 1998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하였고, 교회 리더를 맡았었다. 주변 이웃들과 크리스천들의 평에 의하면, 선 씨는 매우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어려움을 만나도 비관하거나 위축되는 법이 없었다. 2008년 3월 6일, 선슈룽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체포되어 더저우시 핑위안현 공안국으로 연행되어 심문을 받았는데, 공안국에 도착한 지 4시간 만에 갑자기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당시 자세한 상황은 다음과 같다.

2008년 3월 6일 오전 11시 30분경, 산둥성 더저우시 핑위안현 공안국의 국가안전보위 대대의 기사 천광(陳光)이 검은색 승용차에 사복 경찰 두 명과 핑위안현 첸차오(前曹)진에서 체포한 크리스천 옌(鄢) 씨(남, 60세)를 태우고 선슈룽의 집 앞에 도착했다. 사복 경찰 두 명은 집 안에 들이닥쳐 선 씨를 체포하고,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집 안을 닥치는 대로 뒤졌지만 아무것도 수색해 내지 못했다. 경찰은 선 씨의 CD 플레이어 및 그 안에 들어 있던 낭송 CD를 압수했고, 선 씨를 핑위안현 공안국 국가안전보위 대대로 연행해 갔다.

선슈룽과 옌 씨가 핑위안현 공안국에 끌려왔을 때는 정오 12시 30분경이었다. 차에서 내린 후, 사복 경찰은 선 씨에게 CD 플레이어를 주고 위층으로 올라가게 했다. 계단을 오르던 선 씨는 재빠르게 플레이어 안에 있던 CD를 꺼내 둘로 쪼개 버렸고, 격분한 경찰은 선 씨를 향해 소리를 질러 댔다. 3층에 도착한 선 씨와 옌 씨는 각기 나뉘어 심문을 받았다.

옌 씨의 기억에 따르면, 그날 오후 3시경 그가 심문을 받고 있는데, 그를 체포했던 키가 큰 경찰이 심문실로 들어오더니 흥분해 씩씩거리며 말했다고 한다. “저년(선 씨를 가리키며) 보통내기 아니야. 차라리 그냥 구류시켜!”

낮 12시가 넘어 귀가한 선슈룽의 남편은 아내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다 오후 4시쯤, 핑위안현 법원에서 일하는 선 씨 큰외삼촌에게서 걸려온 연락을 받았다. 선 씨가 공안국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했고 시신이 지금 화장터 냉동실에 안치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3층 화장실 창문에서 추락한 선슈룽은 땅에 있던 쓰레기통에 머리부터 떨어져 사망했다고 한다. 핑위안현 공안국의 경찰은 유족들에게 선 씨가 투신자살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생전 아내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선 씨의 남편은 “분명 당신들이 죽인 거야!”라며 항의했다. 하지만 경찰 측은 자신들의 책임을 부인하며 선 씨는 자살했다고 말할 뿐이었다. 한 현장 검증 전문가는, 3층에서 지면까지의 거리가 너무 짧아 선 씨처럼 머리부터 떨어져 죽은 경우는 자살일 수가 없다고 분석하였다. 하지만 선 씨는 이미 죽은 뒤라 그녀가 사망한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졌다.

3월 10일, 선슈룽의 시신은 화장되었고, 5일 후 유골이 안장되었다. 사건 발생 후, 핑위안현 공안국은 선 씨의 유족들에게 22만 위안을 배상하고 사건을 마무리 지으면서, 다시는 이 일을 문제 삼지 말라고 경고했다. 선슈룽의 사망 사건은 이렇게 흐지부지 끝이 나고 말았다.

22. 크리스천 웨이슈윈,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례

피해자 웨이슈윈(韋秀雲)은 1952년 6월 8일생 여성으로,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 페이둥(肥東)현 뎬부(店埠)진 룽시(龍西)촌에 거주했다. 1998년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14년 11월 17일, 웨이슈윈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안후이성 허페이시 페이둥현 공안국에 잡혔고, 바로 다음날 고문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 상태로 6개월간 버티던 웨이 씨는 2015년 5월 18일, 향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웨이 씨의 사망 후, 페이둥현 공안국은 범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5, 60명가량의 무장 경찰을 동원해 병원을 에워싸고 시신을 빼돌렸다. 시신을 보게 해 달라는 유족들의 요청도 거절하였다. 6개월 후, 페이둥현 공안국은 유족들을 압박하여 고소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하게 했고, 그제서야 시신을 유족들에게 돌려줘 화장하게 했다.

다음은 웨이슈윈이 경찰에게 체포되어 사망하기까지의 과정이다.

경찰이 민가를 덮쳐 집을 수색하고 크리스천을 체포하다

2014년 11월 17일 오후 4시, 웨이슈윈은 며느리와 함께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페이둥현 뎬부진 룽시촌의 서기 웨이방파(韋邦發)가 페이둥현 공안국의 경찰 두 명을 데리고 집으로 들이닥쳐 영장도 제시하지 않고 웨이 씨를 체포했다. 이어서 페이둥현 정치법률위원회 부서기 류차오(劉超) 및 경찰 십여 명이 차례로 웨이 씨의 집에 도착했다.

얼마 후, 웨이 씨의 남편과 손자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경찰은 이들도 제압하였다.

경찰은 웨이 씨의 집을 2시간 동안 수색해, 복사기 1대, A4 용지 2박스와 잉크 등 복사 물품, PMP 기기 4대, 휴대용 라디오 2대, TF 카드 6장을 찾아냈다.

그 후, 경찰은 웨이 씨와 남편, 며느리, 손자를 페이둥현 공안국으로 연행해 갔다.

혼수상태에 빠진 크리스천, 경찰의 삼엄한 통제

그날 저녁 7시, 웨이슈윈과 남편은 페이둥현 초대소(招待所)로 끌려가 각각 다른 방에서 비밀리에 심문을 받았다.

다음날(11월 18일) 오후 6시경, 웨이슈윈은 허페이시 제2구치소로 이송되었다. 이 기간 경찰이 웨이 씨에게 어떤 가혹 행위를 가했는지, 가족들은 알지 못했다.

웨이 씨 아들의 말에 따르면, 11월 18일 밤 9시, 허페이시 제2구치소의 경찰이 전화를 걸어와 어머니가 몸이 아파 안후이 성립(省立)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라 알렸다고 한다. 10시경, 병원에 도착한 웨이 씨의 아들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얼굴은 창백했고 몸이 조금 부어 있었으며 옷에는 구토한 흔적이 있었다. 뇌간 출혈로 인한 의식불명 상태라고 의사가 설명했다.

유족의 말에 의하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웨이슈윈의 얼굴과 손에는 부기가 있었고, 몸에는 심전계 튜브가 연결되어 있었으며, 인공호흡기, 영양공급관, 영양액에 의지해 생명을 유지했다고 한다.

두 달 후의 어느 날, 웨이슈윈의 머리를 빗겨 주던 딸은 어머니의 오른쪽 귀 위쪽으로 3cm 길이의 흉터가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흉터 부위에는 머리카락이 나 있지 않았다. 딸은 의사에게 구타로 생긴 흉터가 아닌지 물었지만, 의사는 맞아서 생긴 게 아니라 누워 있어서 생긴 자국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웨이슈윈은 안후이 성립 병원에서 6개월간 계속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결국 2015년 5월 18일 사망했다. 병원 측에서 작성한 진료 기록에는 ‘웨이슈윈 사망 원인, 뇌간 출혈로 내장 기능 쇠약’이라고 나와 있었다.

시신을 빼돌리고 합의서에 서명을 강요한 경찰 측

2015년 5월 19일 새벽 1시, 웨이슈윈의 유족들은 그녀의 시신을 병원 영안실로 옮기려 하고 있었다. 그때 허페이시 구치소 소장 가오위안즈(高遠枝)가 불쑥 나타나 말했다. “웨이슈윈의 사망은 외인사이니, 시신을 유족들에게 돌려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처리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복 경찰 대여섯 명이 웨이 씨의 시신이 뉘어진 환자이동침대를 끌고 가려 했다. 그것을 본 웨이 씨의 딸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우리 엄마를 데리고 가버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살아 계실 때도 놔주질 않더니, 죽어서도 평안히 가시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자 경찰들은 순순히 시신을 유족들에게 돌려주었고, 유족들은 시신을 영안실로 옮겼다.

영안실에서 나와 병원 로비에 막 도착한 웨이 씨의 유족들은 허페이시 구치소 정치위원 탕(唐) 씨와 병원 영안실 관리원에게서 연달아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시신을 이미 페이둥현 공안국에서 가져가 페이둥현 장례식장으로 옮겼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서야 웨이 씨의 남편은 방금 병원 입구에서 전신 무장한 경찰 5, 60명이 움직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경찰은 시신을 옮기려고 온 것이었다.

더 침통하게도 페이둥현 공안국은 유족들이 장례식장으로 와 시신을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2015년 12월 10일,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 짓고자 페이둥현 공안국 국가안전보위 대대의 부대장 황타오허(黃濤和)는 룽시촌 위원회 서기 웨이방파와 웨이슈윈의 유족들을 찾아 시신 화장 건을 협상하려 하였다.

당시 촌 위원회의 서기 웨이방파가 합의서의 초안을 썼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웨이슈윈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 페이둥현 공안국에 체포되었고, 구치소 구금 기간 발병하여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사망하였다. 이후 유족 측이 고소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페이둥현 공안국은 웨이슈윈의 유족에게 15만 위안을 보상한다. 이에 동의한다면, 시신은 유족에게 전달해 화장하도록 한다.”

중국 정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웨이슈윈의 유족들은 어쩔 수 없이 합의서에 서명을 하고, 웨이슈윈의 시신을 가져다가 화장했다.

23. 크리스천 선수핑, 경찰에게 속아 파출소에서 박해로 사망한 사례

2013년 11월, 장쑤(江蘇)성 루가오(如皋)시의 크리스천 선수핑(申素平)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의 속임수에 넘어가 체포된 후 비밀리에 죽임을 당했다. 향년 57세였다.

피해자 선수핑(가명 장핑(章平))은 1957년 6월 14일생 여성으로, 장쑤성 루가오시 장안(江安)진 중신(中心)촌 사람이다. 2007년 5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고, 피해를 당하기 전까지 교회에서 전도인으로 있었다. 다음은 선수핑이 경찰의 속임수에 넘어가 파출소에 갔다가 살해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후, 선수핑은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녀의 이런 행적은 경찰의 주의를 끌었고, 체포 대상으로 지정되고 말았다.

2013년 11월 25일 오전 11시경, 선수핑은 친정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루가오시 장안 파출소 소속 경찰 황쿠이딩(黃奎頂, 남, 50대), 구펑(顧鋒, 남, 40세가량, 청원경찰) 및 남성 사복 경찰 1명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황쿠이딩은 “파악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파출소로 가 협조를 좀 해 줬으면 합니다.”라는 말로 선 씨를 속였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서로 다 아는 사이 아니요. 저녁 식사 전에 집으로 돌려보낼 테니 안심하시오!”라고 약속했다. 가족들은 황 씨의 약속을 믿고 막아서지 않았고, 경찰들은 선 씨를 장안 파출소로 데려갔다.

오후 5시가 좀 지나, 선수핑을 데리러 파출소에 도착한 남편은 입구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아내가 나오지 않자, 황쿠이딩에게 전화를 걸었다. 황 씨는 선 씨가 루가오시 공안국으로 옮겨졌다며, 내일 아침 파출소로 돌아올 테니, 일단 집으로 돌아가 연락을 기다리라고 말했다.

11월 26일, 저녁이 되도록 선수핑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남편은 다시 황쿠이딩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날 저녁 8시, 선 씨의 남동생은 공동방위대의 지인과 함께 루가오시 공안국에 찾아갔다가 공안국 경찰로부터 “선수핑이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켰고, 응급처치를 했지만 결국 사망했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예상치 못한 비보에 경악한 가족들은 도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멀쩡하던 사람이 경찰들과 함께 간 지 하루도 채 안 돼서 사망했다니, 거기다 사인이 ‘심근경색’이라니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유족들은 경찰의 해명을 믿을 수 없었다. 선 씨는 매우 건강했고, 심혈관 관련 질병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거기다 선 씨를 데려간 경찰 황쿠이딩은 사망 사건 후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졌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무언가 피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경찰들의 말과 행동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분노한 유족들은 “멀쩡하던 사람을 보내 줬더니 어떻게 죽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을 믿은 게 죽을죄입니까?”라며 항의했지만, 경찰은 차갑게 대답했다. “어차피 죽은 사람이니 다시는 이 일에 대해 캐묻지 마세요! 합의를 통해 사건을 마무리 짓는 데 동의한다면, 시신은 보게 해 주겠습니다!” 유족들은 시신을 보기 위해 경찰 측과의 합의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11월 29일, 선수핑의 남편, 남동생, 올케 등 유족들이 시신을 보기 위해 루가오시 청시(城西) 장례식장을 찾았다.

11월 25일에 선수핑과 같이 체포되었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 란란(蘭蘭, 가명)은 체포된 그날 저녁, 청원경찰 두 명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저 할머니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대(선 씨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사망했음). 경찰은 저 불쌍한 사람을 놔주지도 않고 고문까지 하더라니까.” 12월 5일, 풀려난 란란은 선 씨가 체포된 다음날 경찰의 가혹 행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제서야 체포된 당일 저녁 청원경찰들이 말하던 할머니가 바로 선 씨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찰 천젠쥔(陳建軍)이 란란에게 “장핑(선수핑) 어디 갔는지 알아?”라고 묻자 란란은 “당신들이 때려죽이지 않았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천젠쥔은 황급히 “집에 가서는 절대 그 일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 후, 선 씨의 유족들은 고인이 란톈(藍天) 여관에서 심문받던 모습과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 측은 시간이 늦었다고 핑계를 대며 한사코 보여 주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가 제작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비방하는 내용이 담긴 영상을 유족들에게 보여 주었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사인이 ‘심근경색’이었다는 경찰 측의 말을 더 의심하게 되었다.

공안국의 부국장인 주(朱) 씨는 선수핑의 남동생에게 “당신 누나가 믿은 전능하신 하나님은 국가에서 금지한 종교요. 일을 시끄럽게 만들면 당신들도 체포하겠소!”라고 위협했다. 경찰의 압박에 선 씨의 유족들은 합의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루가오시 공안국은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유족들에게 35만 8천 위안을 배상하였다.

24. 크리스천 우하이옌, 구금 기간 의문의 추락으로 사망한 사례

2014년 7월, 산시(山西)성 윈청(運城)지구 허진(河津)시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이 정부에 불법 체포되었다가 박해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우하이옌(吳海燕, 여)은 산시성 윈청지구 허진시 칭젠(淸澗)진 두자거우(杜家溝)촌 사람으로 향년 57세였다. 사건 발생시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교회에서 리더를 맡고 있었다.

다음은 우하이옌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이다.

2013년 3월 초, 경찰은 우하이옌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리더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우 씨를 대상으로 체포 작전을 세 차례나 펼쳤지만 모두 실패했다.

체포를 피해 외지로 도피 갔던 우 씨는 9개월 후 집으로 돌아왔다. 2014년 7월 7일 저녁 6시경, 우 씨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허진시 국가안전보위 대대 경찰이 집으로 들이닥쳐 우 씨를 체포하였다. 경찰은 허진시 기율검사위원회 법률교육센터 2층에 있는 방에 우 씨를 가두었다. 이 방에서 경찰은 밤낮 가리지 않고 수시로 우 씨를 심문하며 신앙을 포기할 것과 다른 크리스천의 신상 정보와 교회 정보를 넘길 것을 요구했지만 우 씨는 이에 따르지 않았다. 허진시 국가안전보위 대대 대장 창청페이(長程飛)는 우 씨의 두 딸을 데려다 어머니에게 교회 정보를 넘길 것을 설득하게 했지만 이 역시 성과가 없었다.

7월 17일, 경찰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 리후이(李慧, 가명)를 체포해, 우 씨와 함께 감금하였다.

7월 19일 정오, 국가안전보위 대대 대장 창청페이는 리후이의 옆방에서 우 씨를 심문하였다. 리 씨는 창청페이가 “네 상위 리더가 누구야? 집 떠나서 몇 달 동안 어디에 있었어?”라고 묻는 것을 들었다. 우 씨가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자, 격분한 창청페이는 씩씩거리며 성난 목소리로 우 씨를 위협했다. “이미 다 알고 있어. 너 허진시에서 제일 높은 교회 리더잖아!” 그러다 또 “너희 교회 안에 우리 쪽 사람이 있어. 소구역 리더(일찍이 공산당의 탄압을 피해 집을 떠났음)가 바로 우리가 심어 놓은 사람이야. 네가 자백을 안 해도 우리는 너한테 10년이고 8년이고 징역을 때릴 수 있다고. 내일 당장 성러우(僧樓, 현(縣) 구치소 소재지)로 보낼 거야!”라고 떠보았다. 어머니가 징역형에 처해질까 걱정이 된 우 씨의 큰딸은 경찰에게 협조하라고 그녀를 설득했지만 우 씨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날 저녁 8시가 좀 넘어 경찰이 또 우 씨와 리 씨를 찾아 신앙을 포기하고 교회 정보와 다른 크리스천의 신상 정보를 넘기라고 회유했지만, 두 사람은 단호히 이를 거절했다.

7월 20일 새벽 5시가 좀 지나 경찰은 우 씨와 리 씨 두 사람에게 청소를 시켰다. 두 사람이 마당 청소를 끝내자, 경찰은 우 씨에게 위층으로 올라가 유리를 닦게 하고 리 씨에게는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 지 십여 분도 안 되어 리 씨는 누군가 “우하이옌이 투신했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사고에 놀란 리 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고 말았다.

그날, 리 씨의 친척이 와서 그녀를 데려갔다. 리 씨가 떠나기 전, 경찰은 우 씨의 일을 발설하면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리 씨를 여러 번 위협했고 친척에게는 각서를 쓰게 했다. 경찰은 리 씨에게 “니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일은 아직 마무리된 게 아니야. 그저 잠시 놓아주는 것뿐이니까 언제든 부르면 바로 와야 해!”라고 경고했다.

경찰 측은 우 씨가 투신자살했다고 말하지만, 리 씨가 보기에 우 씨의 사망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일단 사건 발생 전까지 우 씨에게는 자살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정말 자살이었다면 왜 경찰은 리 씨가 이 일에 대해 말하지 못하도록 여러 차례 위협한 것일까? 거기다 지금까지도 경찰은 리 씨를 미행하며 감시하고 있다!

우 씨의 사망 후, 우 씨가 살던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사법기관이 유족들에게 배상할 것을 요구했고 관련 부서의 간부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2014년 7월 25일 우 씨의 시신을 화장한 후에도 경찰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오늘날까지도 유족들은 배상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경찰은 우 씨 남편의 휴대폰을 계속 감청해 왔다. 현직 촌장은 경찰이 “배상을 한다 해도, 그 돈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사람한테서 짜낼 거야.”라고 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25. 크리스천 쉬신야오, 감금 기간 폭행으로 사망한 사례

2012년 12월 10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 쉬신야오(胥新要, 가명 리훙(李宏))은 1964년 7월 16일생 남성으로, 산시(陝西)성 웨이난(渭南)시 푸청(蒲城)현 룽츠(龍池)향 둥서(東社)촌 3조에 거주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중국 공산당 당국에 체포되었다. 2013년 1월 7일, 쉬 씨는 구금 기간 변을 당해 향년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02년 9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고, 사망 전까지는 교회에서 복음을 전했다.

체포된 후 사망

2012년 12월 10일 오후 2시경, 쉬 씨와 크리스천 2명은 웨이난(渭南)시 다리(大茘)현 펑춘(馮村)진 레이(雷)촌에서 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소식을 듣고 온 펑춘진 파출소 소속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경찰 측은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3명을 진(鎭) 파출소로 연행해 갔다.

파출소에 도착한 후, 경찰은 이들에게 강제로 수갑을 채우고, 신앙에 대해 심문하였다. 경찰은 심문하는 중에 거세게 뺨을 때리고 발길질을 하였다.

저녁 7시경, 쉬 씨 등 세 사람은 다리현 공안국 국가안전보위 대대로 옮겨졌다.

쉬 씨와 함께 체포되었던 한 여성 크리스천의 말에 의하면, 그들 세 사람은 각각 나뉘어 심문을 받았는데, 그녀가 심문을 받는 동안 옆 심문실에서는 발길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 저녁 11시경, 경찰은 ‘사교를 믿음’이라는 죄목으로 세 명을 행정 구류 15일에 처한 뒤 다리현 구치소에 구금했다. 구류 기간 내내 자신의 본명과 집 주소를 말하지 않았던 쉬 씨는 구류 기간이 끝난 후에도 형사 구류로 넘어가 수감 기간이 2013년 1월 22일로 늘어났다.

2013년 1월 7일 아침, 16호 남자 수감실에 갇혀 있던 쉬 씨는 갑자기 흰 거품을 물더니 숨을 거두었다.

16호 수감실의 한 죄수는 경찰이 수감실의 죄수들을 부추겨 늘 쉬 씨를 구타하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쉬 씨가 찬송을 부르기만 하면, 같은 방 죄수들은 그에게 집단 린치를 가했다. 7일 아침에도 쉬 씨는 한바탕 집단 구타를 당했고, 결국 그날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중국 정부, 정보를 막고 증거를 없애려 시신 훼손

쉬 씨의 사망 후, 경찰은 이 사건이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막고자, 사건 당일(7일) 저녁 7시경, 16호 수감실 죄수들을 다른 방으로 이동시켰다. 여죄수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검찰원 측이 죄수들에게 쉬신야오의 사망 원인에 관해 물어볼까 겁이 나 이러는 게 분명해.” 2013년 1월 10일 오후 4시 30분경, 구치소는 쉬 씨처럼 구금 기간이 연장된 모든 크리스천을 석방시켰다.

이보다 앞서 2012년 12월 말, 쉬 씨의 가족들은 쉬 씨와 같은 수감실에 있다가 석방된 어느 죄수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전화를 받은 쉬 씨의 형부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쉬신야오가 감옥에서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온종일 구타를 당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일을 겪고 있으니 어서 꺼낼 방법을 찾아보세요.” 그제서야 쉬 씨가 체포되어 구금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서둘러 돈을 모아 대책을 구했다. 하지만 쉬 씨를 만나러 가기도 전인 1월 7일 오전, 가족들은 다리현 공안국으로부터 사람을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가족들이 구치소에 도착하자, 구치소 소장은 쉬 씨가 당일 아침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고 했다. 그리고 시신은 다리현 병원 영안실에 있다고 덧붙였다.

쉬 씨의 유족들이 서둘러 다리현 병원으로 도착했을 때, 시(市) 검찰원 소속 요원 2명(남, 50대, 신장 165cm. 또 다른 한 명의 직급은 처장, 남, 40대, 신장 180cm)과 구치소 경찰 8~9명이 이미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경찰이 유족 중 두 명만 영안실로 들어가게 하는 바람에 쉬 씨의 형부와 매부가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들은 영안실 문 앞에 뉘어진 쉬 씨의 시신을 보았다. 알몸은 옷가지로 덮여 있었다. 질끈 감긴 두 눈에는 퍼런 멍이 들어 있었고, 얼굴에는 고통스럽고 경련을 일으킨 듯한 표정이 남아 있었다. 오른쪽 귀는 멍이 들어 파랬고, 왼쪽 명치에는 주먹 크기의 검푸른 타박상이 있었으며, 두 귀는 동상으로 괴사가 진행되어 있었다. 오른쪽 손은 머리 위로 들려 있었고 왼손은 배꼽 위에 올려져 있었다. 시신의 끔찍한 상태를 본 유족들은 고인이 구타로 사망했음을 알아차렸다. 유족들은 시신의 사진을 찍게 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검찰원 측 요원은 ‘국가의 서면화된 규정상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1월 8일 오전 9시경, 쉬 씨의 유족 30여 명이 산시성 웨이난시 다리현 구치소를 찾았다. 그들은 쉬 씨의 두 아이에게 아버지의 시신을 보게 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구치소 측은 이를 거절했다.

1월 9일 정오 12시경, 경찰은 쉬 씨의 유족들과 협상을 하였다. “이 사건을 사법기관으로 보내 처리한다면, 구치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합의를 보아 해결한다면, 33만 위안(한화 약 5,545만 원)을 배상해 줄 것이오. 대신 조건 하나 있는데, 고인이 질병으로 사망했음을 인정하고 유족이 시신을 찾아갈 경우 배상받을 수 없다는 내용의 배상 합의서에 서명을 해야 하오.” 쉬 씨의 유족들은 어쩔 수 없이 합의했다. 양측은 합의를 보았고, 경찰은 유족들에게 33만 위안을 배상해 주었다.

2013년 1월 10일, 쉬신야오의 시신은 강제로 화장되었다.

26. 크리스천 젠즈샹, 고강도 조명 아래 심문받다 사망한 사례

젠즈샹(剪治香, 가명 천팡(陳芳))은 1953년 2월 4일생 여성으로,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시 우펑(五峰) 투자(土家)족 자치현 런허핑(仁和坪)진 성즈핑(昇子坪)촌에 거주했다. 1996년부터 예수를 믿었고, 2005년 9월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17년 12월 14일 저녁 8시가 좀 지나 젠 씨와 남편은 집에서 만두를 빚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촌의 주임 정리빈(鄭禮彬)이 런허핑진의 파출소 소장 창예빈(長葉斌) 및 경찰 세 명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창예빈은 수색증을 제시하며 젠 씨에게 말했다. “우펑현 공안국에서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왔다.” 말이 끝나자마자, 경찰들은 방마다 다니며 샅샅이 뒤졌다. 옷주머니 속까지 뒤져, PMP 1대와 TF 카드 한 장을 찾아낸 그들은 젠 씨를 강제로 연행해 갔다.

밤 10시가 좀 지나 경찰은 젠 씨를 현(縣) 공안국으로 이송했다.

그날, 같은 촌에 사는 크리스천 셰린(謝琳, 가명)과 리린(李林, 가명)도 차례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젠 씨와 같은 날 체포된 셰 씨의 말에 의하면, 12월 15일 새벽 3시경 심문실에 있던 그녀는 바깥 복도에서 젠 씨의 화난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나를 잡고 갈 필요 없어요. 도망가지 않는다고요.” 셰 씨는 문틈 사이로 남녀 경찰 2명에게 잡혀 화장실에 가는 젠 씨의 뒷모습을 보았다.

같은 날 잡힌 리린의 말에 의하면, 12월 15일 밤 11시가 좀 지나 심문실에서 나온 그녀는 맞은편 심문실 입구 쪽 벽에 기대어 있는 젠 씨를 보았다. “잡아끌지 마요. 도망 안 가요.” 경찰에게 말하는 젠 씨는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리 씨가 그 앞을 지나며 흘끗 본 젠 씨의 낯빛은 퍼렇게 변해 있었고 몸 상태가 매우 나빠 보였다. 경찰은 젠 씨와 리 씨를 차에 태웠다. 차가 현(縣) 구치소 입구에 다다라 그들이 차에서 내려 대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젠 씨가 천천히 주저앉는 모습이 보였다. 가쁜 숨을 내쉬는 젠 씨의 몸이 뒤로 젖혀지며 땅에 쓰러질 듯하자 리 씨가 얼른 두 손으로 등 뒤를 받쳐 주었다. 창예빈이 젠 씨를 안아 다시 차에 앉힐 때, 젠 씨는 이미 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좌석에 금방 앉은 젠 씨는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팔을 올리고 고개를 든 채 몇 차례 크게 탄식하고는 바로 기절해 버렸다. 얼굴은 흙빛이 되어 있었다. 구치소의 대문이 열렸을 때는 이미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리 씨는 경찰에게 젠 씨를 병원으로 데려갈 것을 요청했다. 그제야 경찰 두 명은 차 방향을 돌려 젠 씨를 현(縣) 인민병원으로 데려갔다.

12월 16일 새벽, 소식을 들은 젠 씨의 두 아들과 두 며느리가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검푸른 얼굴색의 젠 씨는 두 눈을 감고 있었고 입은 벌려져 있었으며, 옷소매와 윗옷은 가위로 잘려져 있었다. 응급실에서 의사가 젠 씨의 가슴을 압박하며 심폐소생술을 하는 중이었다. 링거병이 걸려 있고 콧구멍에는 산소 튜브도 꽂혀 있었으나 심전계의 그래프는 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젠 씨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던 것이다.

젠 씨는 집에서 일을 도맡아 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다. 잡히기 전날까지도 밭에 감자를 심었고, 체포 당일에도 아들의 새집 청소를 거들어 주었다. 그런 사람이 경찰에게 체포된 지 하루 만에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제보자에 의하면, 12월 14일 저녁 젠 씨가 공안국에 끌려간 후, 경찰은 젠 씨를 네 벽면이 부드럽게 처리된 방(죄수의 자살 방지)에 가두고 안에 고강도 전등을 두었다고 한다. 그런 강한 조명으로 죄수를 오래 비추면, 의식이 흐려지고 정신이 이상해질 수도 있는데, 경찰은 이런 방식을 이용해 젠 씨를 심문한 것이다. 심문을 받기 전, 젠 씨는 자신에게 심장병이 있다고 말했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젠 씨를 24시간 동안 심문했고, 젠 씨는 결국 급성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여러 차례 협상을 거쳐, 공안국은 젠 씨의 유족들에게 20만 위안을 배상하였다. 12월 23일, 젠 씨는 안장되었다.

27. 육순의 크리스천 쉬샤오롄 경찰의 박해에 급성 뇌출혈로 사망한 사례

쉬샤오롄(徐孝蓮)은 1945년 4월 13일생 여성으로, 산둥(山東)성 린이(臨近)시 핑이(平邑)현 바이옌(白彦)진에 거주했으며, 1999년 12월 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그녀는 온화하고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2008년 5월, 쉬 씨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공산당 당국에 잡혀 구금되었다가 6월 15일 노동교화 1년 형을 선고받았다. 평소 낙천적이었던 쉬 씨도 이때는 충격을 받아 낙담하며 울었다고 한다. 6월 20일, 지난(濟南) 여자 노동교화소로 압송되던 쉬 씨는 갑자기 급성 뇌출혈을 일으켰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경찰이 쉬 씨를 들어 차에서 내린 후 쉬 씨는 땅바닥에 누워 미동이 없었다. 쉬 씨를 호송하던 경찰은 그녀를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바람에 치료 시간을 지체했다. 쉬 씨는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2008년 5월 31일, 핑이현 공안국 도심 지역 파출소 소속 지휘관 원밍촨(文明傳)을 필두로 한 경찰들이 쉬 씨의 집에서 그녀를 파출소로 연행해 가 심문하였다. 심문은 아무 결과가 없었고, 쉬 씨는 핑이현 구치소로 이송되었다. 당일 쉬 씨와 함께 체포된 진위샹(金玉香)의 말에 의하면, 구치소로 보내진 쉬 씨는 자신의 나이가 많기 때문에 며칠 후 풀려나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경찰이 판결문을 읽을 때, 쉬 씨는 노동교화형을 받아 지난(濟南)으로 보내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크게 낙심한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구치소에서 쉬 씨와 같은 수감실에 갇혀 있었던 크리스천 린옌(林艶)은 다음과 같이 전했다. 6월 20일 아침, 경찰은 지난으로 가 검사를 받은 후 아침을 먹으라며 그들에게 아침 식사를 주지 않았다. 노동교화소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쉬 씨의 다리가 자꾸만 움찔거렸다. 린 씨는 쉬 씨가 차에 오래 앉아 있어 너무 피곤해 그러는 줄 알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쉬 씨는 차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경찰이 쉬 씨를 차에서 내리게 한 후에도 그녀는 땅바닥에 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리는 다소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린 씨가 아무리 불러도 쉬 씨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경찰은 쉬 씨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3일 후, 쉬 씨는 사망했다.

현지 크리스천과 쉬 씨 남편의 말에 의하면, 쉬 씨는 평소 낙천적인 사람이었고, 몸도 건강해 심장병이라고는 앓아 본 적이 없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노동교화형 선고를 받은 것이 쉬 씨에게 큰 충격이었다. 거기다 오전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굶주림까지 더해져 급성 뇌출혈 증상을 일으킨 것이다. 경찰은 쉬 씨가 위급한 병에 걸린 것을 알면서도 제때 병원으로 옮기지 않아 치료를 지체시켰다. 의사는 뇌출혈 증상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응급처치를 했다면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응급처치는 즉시 이루어지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쉬 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쉬 씨는 결국 향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28. 크리스천 장젠서, 경찰의 구타로 사망한 사례

장젠서(張建設)는 1966년생 남성으로, 간쑤(甘肅)성 핑량(平凉)시 쿵퉁(崆峒)구 쿵퉁(崆峒)진 톈먼(天門)촌에 거주했다. 1995년 1월에 예수를 믿었고, 2004년 8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08년, 장 씨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에 잡혀 고문을 받았다. 경찰 두 명이 쇠파이프로 장 씨의 발목부터 명치에 이르는 부위를 사정없이 밀어 댔다. 명치를 주먹으로 가격하기도 해 내장이 파열되었다. 그때부터 장 씨는 흉강 쪽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는데 풀려난 후에도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검진 결과 간경화로 인해 복수가 찬 것이 드러나 병원에 입원하여 세 차례 치료를 받았다. 그 후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병세가 나쁠 때는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에 가 복수를 뺐다. 이 과정에서 약 37,000위안(한화 약 625만 원)의 치료비가 들었다. 하지만 치료에도 불구하고 병세는 계속 악화되었고, 결국 장 씨는 2011년 5월 23일 향년 45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2008년 11월 2일 오전 9시경, 간쑤성 핑량시의 경찰 세 명이 장 씨의 집으로 들이닥쳐 집을 뒤졌다. 교회 서적, 설교와 찬송가 CD를 찾아낸 경찰은 장 씨를 강제로 연행하였다. 심문 기간, 경찰은 교회 서적과 설교 CD, 찬송가 CD 등이 어디서 난 것인지, 교회의 리더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들과 만나는지 등 교회 관련 정보를 캐내기 위해 장 씨에게 가혹한 고문을 가하였다.

장 씨는 생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 네 명에게 자신이 경찰에게 당했던 끔찍한 고문과 구타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체포 당일, 경찰은 그를 강제로 유리 조각들 위에 꿇어앉게 했다. 유리 조각에 찔려 무릎이 빨갛게 붓고 살이 찢어졌다. 또 그를 고문 의자에 앉히고 손과 팔뚝, 다리를 사정없이 누르고 때렸으며, 장 씨가 극심한 고통에 기절하면 온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냉수를 끼얹어 깨웠다.

다시 심문할 때에도 장 씨가 교회 정보에 대해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자 경찰은 또 그를 고문하였다. 그를 기다란 걸상 위에 눕히고 경찰 두 명이 장 씨의 양쪽에 서서 쇠파이프로 그의 발목부터 명치까지 반죽을 밀 듯 밀어 댔다. 쇠파이프가 닿는 곳마다 끔찍한 고통이 전해졌다. 특히 정강이를 밀 때의 고통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또 몽둥이로 그의 하반신과 가슴팍을 사납게 찔러 대는 바람에 장 씨는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경찰의 주먹질과 발길질 세례도 이어졌다. 그리고 복싱 연습을 하듯 장 씨의 명치를 두들겨 패는 바람에 장 씨의 내장이 파열되었다. 그 후 숨을 쉴 때마다 장 씨는 흉강 쪽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경찰이 옷을 입지 못하게 해 감기에 걸렸었는데 기침을 할 때마다 흉강의 통증 때문에 괴로웠다. 심문을 해도 아무것도 얻어 낸 게 없자 경찰은 장 씨를 핑량시 치리뎬(七里店) 구치소(현 명칭: 핑량시 공안국 쿵퉁 분국 쿵퉁 구치소)에 보내 15일간 구류시켰다. 구류 중에도 흉강의 통증은 계속되었다.

11월 18일 오후, 장 씨는 풀려났다.

풀려난 후에도 흉강의 통증은 가시질 않았다. 치료비를 모으기 위해 그는 아픈 몸을 끌고 채소를 팔고 양을 키웠다. 흉강의 결리는 듯한 통증은 점점 심해져 그의 행동은 하루가 다르게 굼떠졌다. 그러다 2009년 봄, 핑량시 중의(中醫) 병원에서 간경화로 인한 복수 확진을 받고 세 차례 입원 치료를 받았다.

2010년 6~7월, 장 씨는 끈끈하고 검붉은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각혈 증상은 6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복수를 빼러 병원을 찾았고, 증세가 심할 때는 일주일에 두 번 복수를 뺐다. 그의 몸에는 앞뒤 할 것 없이 침에 찔린 자국이 가득해 차마 보기 힘들 정도였다. 장 씨가 치료에 쓴 비용은 약 37,000위안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었고, 결국 장 씨는 2011년 5월 23일, 향년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건강한 장년이었던 장젠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의 고문과 가혹 행위 끝에 중병을 얻어 결국 이렇게 사망하고 말았다.

29. 크리스천 멍광췬, 경찰에 쫓기다 중상을 입어 사망한 사례

멍광췬(孟光群)은 허난(河南)성 신양(信陽)시 뤄산(羅山)현 사람으로, 대찬미(大讚美)파 신도였다가 2000년 10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마음씨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전한다.

2012년 12월의 어느 날, 신양시의 시(息)현에서 복음을 전하던 멍 씨와 크리스천 몇 명은 현지 공안국의 경찰 네 명에게 체포되어 신양시 시현 공안국으로 연행되어 심문을 당했다. 체포 과정에서 크리스천 한 명은 다행히 도망칠 수 있었다. 신양시 시현 공안국은 ‘불법 포교’와 ‘사회 치안 교란’이란 죄목으로 멍 씨를 15일 구류형에 처했고, 15일 후 풀려났다.

다시 잡혀가 가혹 행위 당해

2017년 7월 15일 오전 8시경, 멍 씨가 혼자 집에 있는데, 신양시 시현 공안국의 경찰 세 명이 그의 집에 찾아왔다. 그들은 찾아온 이유도 말하지 않고 체포영장도 보이지 않은 채 무작정 멍 씨를 시현 공안국으로 연행해 가 심문하였다.

경찰은 2012년 12월 시현에서 도망친 크리스천이 누구인지, 교회 리더의 행방과 교회 상황에 대해 심문했지만, 멍 씨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경찰은 멍 씨에게 옷을 다 벗고 바닥에 엎드리라고 큰 소리로 명령했다. 경찰 세 명이 곤봉과 구둣발로 멍 씨의 둔부와 등을 세게 때렸다. 구타 중 곤봉 하나가 부러졌고, 멍 씨는 전신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제대로 일어설 수도 없었다. 경찰이 구둣발로 멍 씨의 다리를 세게 걷어차는 바람에 멍 씨는 왼쪽 종아리를 다쳤고 다리에는 온통 시퍼런 멍이 들었다.

7월 18일, 멍씨는 무장을 한 시현 공안국 경찰의 압송하에 집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멍 씨에게 “잘 생각해 봐. 아는 게 있으면 털어놓는 편이 좋을 거야. 그리고 매주 월요일마다 상황 보고해. 또 하나님 믿었다간 진짜 죽을 줄 알아!”라고 경고했다. 다시 경찰에게 체포될 것을 걱정한 멍 씨는 그날 저녁 집을 떠나 도피했다.

도피 중 추격당해 중상 입고 사망

7월 19일, 멍 씨는 크리스천 리(李) 씨의 집에 몸을 숨겼다. 그는 리 씨 부부에게 경찰에 잡혀 구타당한 일을 털어놓았다. 리 씨 부부는 멍 씨가 둔부를 심하게 맞아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손 역시 멍투성이인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서둘러 음식을 차렸지만, 멍 씨는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온몸이 아프고,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겠어요. 너무 괴로워요. 하나님을 믿으며 뭘 훔친 적도 뺏은 적도 없는데, 경찰은 저를 이 꼴이 되도록 구타했어요.” 그날 저녁 9시 반경, 멍 씨는 리 씨 부부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되어 서둘러 그 집을 떠났다.

7월 23일 저녁 8시 30분경, 몸을 숨길 곳이 없었던 멍 씨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막 집에 다다를 무렵, 그는 집 근처에 세워진 경찰차를 발견했다. 경찰 두 명이 그를 보자 차에서 뛰어내려 쫓아왔다. 놀란 멍 씨는 자전거를 타고 도망치다가 나무에 부딪혔다. 멍 씨는 땅에 곤두박질쳤고 자전거의 앞부분과 바퀴가 완전히 망가졌다. 머리에 커다란 혹이 생기고 온몸은 물과 진흙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그는 통증을 가까스로 참으며 죽을힘을 다해 숲속으로 도망쳤다. 경찰도 늦은 밤까지 계속 그의 뒤를 쫓았다. 나중에 멍 씨는 어쩔 수 없어 3m 높이의 언덕에서 논으로 뛰어내렸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멍 씨는 빈사 상태였고, 그제서야 경찰은 추격을 멈추었다. 경찰이 떠난 후 멍 씨는 가까스로 일어나 새벽 4시 30분경 작은 이모네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멍 씨 이모부의 말에 따르면, 7월 24일 새벽에 현관문을 열자 진흙투성이인 멍 씨가 엉망이 되어 서 있었다고 한다. 어찌할 바 몰라 불안해하는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이마에는 피가 뭉친 듯한 자주색 혹이 나 있었고, 팔과 얼굴, 손은 가시투성이였다. 발에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헤진 양말만 신고 있었고 바지는 터져 기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이모부는 경찰에 쫓기다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서둘러 그의 상처를 깨끗이 씻겨 주었다. 멍 씨는 이모부에게 “저 좀 의사한테 데리고 가주세요.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데 이러다 식물인간이라도 될까 두려워요.”라고 말했다. 멍 씨의 부상이 심각한 것을 본 촌(村) 진료소의 의사는 일단 상처 부위를 동여맨 후 이모부에게 멍 씨가 뇌를 다쳤을 수도 있으니 큰 병원으로 가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경찰에게 쫓기는 중인 멍 씨는 병원에 입원하려고 신분증을 보였다가 자칫 체포될까 걱정이 되었다. 결국, 병원에는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멍 씨는 이미 걸음조차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날 정오 이모부가 삼륜전동차로 그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크게 놀란 멍광췬은 집으로 돌아가서도 경찰이 와서 자신을 체포할까 봐 늘 불안해하며 지냈다. 거기다 상처까지 악화된 상태라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했다. 7월 27일, 멍 씨를 보러 온 이모부는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멍 씨를 보았다. 얼굴색은 흙빛이었고 몸 상태가 매우 나빠 보였다. 이모부를 본 멍 씨는 벌떡 일어나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모부, 다시는 오지 마세요. 경찰이 여기저기에 있어요.” 멍 씨의 형이 슬퍼하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부터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경찰, 경찰’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만 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물어도 대답을 안 해요. 저렇게 곧 죽을 사람처럼 여위어 가지고, 저랑 엄마는 걱정돼서 미칠 지경이에요.”

2017년 8월 5일 아침, 멍 씨 어머니가 아들에게 아침밥을 가져다주러 갔는데, 아들은 침상에서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향년 52세였다.

30. 크리스천 톈지안, 경찰의 구타로 장애 입고 결국 사망한 사례

톈지안(田吉安)은 1953년 9월 27일생 남성으로, 충칭(重慶)시 스주(石柱)현 화펑(華豊)향 사람이다. 1997년부터 예수를 믿었고, 2002년 6월 8일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06년 6월 5일, 경찰에 체포된 톈 씨는 구타를 당해 척추 부상을 입고 일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거기다 폭행으로 부서진 두개골 뼛조각이 뇌를 찔러 출혈을 일으켰고, 피가 굳으며 혈관을 막아 버려, 이로 인한 신경 착란과 정신 이상에 시달렸다. 톈 씨는 9년간 병마와 싸우다 2016년 4월 2일 향년 6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2006년 6월 5일, 톈 씨의 아내 진정화(金正華)는 집에서 크리스천 두 명과 함께 주민 네 명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오후 4시, 갑자기 대문이 열리며 충칭시 스주현 국가안전보위 대대 대장 순젠밍(孫建明), 주임 류즈쿠이(劉志奎), 비서 저우스차이(周世財)를 필두로 한 경찰 십여 명이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실내에 있던 크리스천들을 제압하고 진 씨를 구타했다. 이어서 경찰은 톈 씨를 바닥에 고꾸라뜨리고 등 뒤로 수갑을 채운 후 주먹질과 발길질을 퍼부었다. 그리고 경찰 한 명이 톈 씨의 등과 어깨 위에 서서 그를 힘껏 밟았다. 다른 경찰도 이어서 톈 씨의 등과 허리를 밟고 서서 그를 세게 밟아 댔다. 또 다른 경찰은 톈 씨의 머리를 밟았고 다른 경찰 몇 명은 구둣발로 톈 씨의 몸을 걷어차며 외쳤다. “죽여 버려! 망할 자식, 죽여! 제기랄….” 톈지안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젊고 건장한 경찰 십여 명의 집단 구타는 한 시간 동안 이어지다가 겨우 멈추었다. 가쁜 숨을 내쉬는 톈 씨의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이어서 저우스차이 등 경찰 세 명이 집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교회 서적 4권, 교회 CD 1세트 등 물품을 찾아냈다. 경찰은 톈 씨와 진 씨 등 크리스천들을 경찰차에 태우고 스주현 국가안전보위 대대로 연행해 가 심문하였다. 그날 저녁, 톈 씨의 상태가 위중한 것을 본 경찰은 그가 국가안전보위 대대 안에서 사망이라도 하면 번거로워질 것을 우려해 톈 씨를 귀가 조치시켰다. 사흘 후, 톈 씨는 몸이 심각하게 망가졌음을 느꼈다.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졌고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기침을 하면 핏덩이가 나왔고, 혈변을 보았다. 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7월 5일, 진 씨는 ‘사회 치안 질서 교란죄’란 죄목으로 불구속 집행유예 1년 판결을 받았다.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온 진 씨는 남편 톈 씨에게 약을 발라 주려다 경찰에게 맞아 온통 검푸른 멍이 든 톈 씨의 몸을 보았다. 허리에는 주먹 크기의 움푹 패인 자국이 있었고 어깨에는 새알심 크기의 혹이 나 있었다.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없는 곳이 듬성듬성 있었다. 3cm 길이에 너비 1.5cm 정도 되는 탈모 부위가 두 군데 있었고, 작은 경단 크기의 탈모 부위는 십여 곳이 있었다. 눈빛은 풀려 있었고 말에 두서가 없이 횡설수설했다. 진 씨는 주변에서 1천 위안(한화 약 17만 원) 정도를 구해 톈 씨를 스주현 병원으로 데려갔다. 검진 결과, 톈 씨는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뇌 쪽에 출혈이 있었고 그 피가 굳으면서 신경을 누르고 혈관을 막아 종양이 생겨 있었다. 척추뼈도 파열되어 있었고, 머리에는 엄지손가락 크기만 한 부위가 움푹 패여 있었다. 두개골이 부서져 엄지손가락 크기의 뼛조각이 뇌를 찔러 출혈을 일으켰고, 그 피가 굳어 혈관을 막았는데 이 부분이 신경 착란과 정신 이상을 일으켰던 것이다. 의사는 “두개골 뼈가 뇌를 찌른 이 부위는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손을 대었다가는 생명이 위험해요. 수술을 하지 않고서는 6, 7년 정도 살 수 있을 겁니다.”

건강하고 튼튼했던 톈 씨는 경찰의 폭행 이후 척추와 흉부, 뇌 부위에 자주 통증을 느꼈고, 이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거기다 신경 착란과 정신 이상 증세까지 더해져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밭에 나가보고 싶어도 막상 어디가 자신의 밭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밭에서 휘청대며 잡초를 뽑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자신의 밭에 데려다 놓고 잡초를 뽑게 해도, 잡초가 아닌 농작물의 싹을 뽑아버리기 일쑤였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제대로 치료받을 돈이 없었던 톈 씨는 약물에 의지해 버틸 수밖에 없었다. 톈 씨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어 나중에는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하고 사고 능력마저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이따금 참을 수 없을 만큼 극심한 통증에 진 씨를 때리고 욕하기도 하였다.

2016년 4월 2일, 결국 톈 씨는 세상을 떠났다.

31. 크리스천 예젠쥔, 경찰의 박해를 받아 정신 분열증으로 사망한 사례

예젠쥔(葉建軍)은 1950년 12월 9일생 남성으로, 산둥(山東)성 룽커우(龍口)시 룽커우(龍口) 경제 개발구의 유리 공장 직원이었다. 1987년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하여 1998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하였다. 성실한 성격의 예 씨는 교회 일에도 열심이었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좋아해 자주 산둥(山東)성 펑라이(蓬萊)시, 옌타이(煙台)시 일대로 전도를 다녔다. 1999년 외지에서 전도하다 체포된 예 씨는 중국 경찰에게 가혹한 고문을 당해 정신 분열증을 앓게 된다. 그리고 13년 후 예젠쥔은 결국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예젠쥔의 아내 쥐화(菊花, 가명)는 1999년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1999년 5월, 외지로 떠났던 예젠쥔이 10여 일 만에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눈빛이 흐리멍덩해진 예 씨는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쥐화가 대신 택시비를 내주고 그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앙상해져서 돌아온 예 씨는 정신도 온전치 않아 보였다. 쥐화가 어찌 된 영문인지 캐묻자 예 씨는 전도를 하다 경찰에게 체포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예 씨는 경찰이 그를 철제 의자에 묶어 놓고 두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고 말했다. 하도 맞아 귀가 안 들릴 지경이 되어서야 구타를 멈추었다고 했다. 심문 기간, 경찰은 처음 5일 동안 그에게 물과 음식을 주지 않았다.

남편이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쥐 씨는 서둘러 쌀죽을 끓였다. 예젠쥔은 그릇을 들고 죽을 몇 술 떠먹더니 이내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그는 그릇을 든 채로 마당에 나가 죽을 땅에 뚝뚝 떨어뜨렸다. 바닥에 죽을 다 떨어뜨리고는 갑자기 그릇을 던져 깨 버렸다. 쥐 씨는 발 씻을 물을 떠 와 예 씨에게 몇 차례 씻으라고 권했지만 예 씨는 대야를 발로 걷어 차버리고는 쥐 씨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때 쥐 씨는 남편의 정신이 온전치 않음을 느꼈다. 예 씨의 가족들은 그를 산둥성 룽커우시 황산(黃山) 정신 병원에 데려갔고, 예 씨는 ‘정신 분열증’ 판정을 받았다. 몇 년간, 쥐 씨는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가지고 있던 집을 한 채 팔고 치료비로 3만 위안(한화 약 500만 원)이나 썼지만 예 씨의 병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정신이 온전치 못한 예젠쥔이었지만, 가혹한 고문이 그의 마음속에 남긴 상처와 억울함은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2009년, 예 씨는 베이징으로 가서 탄원을 넣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그해 5월 결국 가출을 했다. 그로부터 10여 일 후, 가족들은 랴오닝(遼寧)의 한 수용소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수용소로 가 예 씨를 데려왔다. 집으로 돌아온 예 씨는 탄원을 하러 베이징으로 가던 중, 랴오닝에서 병으로 쓰러졌다고 털어놓았다. 때마침 어느 노인이 그를 수용소에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경찰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받아 정신 이상이 된 예 씨는 주위 사람들의 차별과 멸시를 당해야 했다. 2012년 2월, 예젠쥔은 향년 63세의 나이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32. 크리스천 허우커취안 중국 경찰의 구타로 정신 이상이 되어 사망한 사례

허우커취안(侯克全)은 1949년 5월 18일생 남성으로, 허난(河南)성 탕허(唐河)현 사람이다. 1994년 예수를 믿기 시작해, 2002년 10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하였다. 2003년 5월 18일, 허우커취안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체포되어 감옥에서 1년 9개월간 복역하였다. 복역 기간 경찰의 가혹 행위로 늑골 두 개와 허리가 부러졌으며 치아도 모두 빠져 버렸다. 2005년 2월 8일 석방된 허우 씨는 정신 이상이 되어 2011년 8월 향년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2003년 5월 18일 저녁 7시경, 촌(村)의 치안주임 옌전화(閆振華)가 후양(湖陽)진 파출소 소속 경찰 두 명을 데리고 허우커취안의 집에 들이닥쳤다. 마침 허우 씨는 설교를 듣던 중이었다. 경찰은 집 안에 있던 VCD, 교회 CD를 압수해 갔고, 허우 씨를 후양진 파출소로 끌고 갔다.

파출소에서 경찰은 교회에 관해 캐물었지만 허우 씨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날 밤 허우 씨는 탕허 구치소로 옮겨졌다가 다시 쉬창(許昌) 교도소로 압송된다. 아무리 심문해도 허우 씨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경찰 세 명은 각자 전기봉, 쇠몽둥이, 전기 채찍을 들고 허우 씨를 사정없이 때리고 구둣발로 허우 씨의 얼굴과 머리를 걷어찼다. 가혹한 구타로 인해 허우 씨의 얼굴이 심하게 부어올랐고 늑골 두 개가 부러졌다.

같은 해 7월, 허우커취안은 노동교화 1년 9개월 형에 처해져 쉬창 노동교화소로 압송되었다.

2005년 2월 8일, 허우 씨는 석방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을 보고 아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초라한 행색에 몸은 앙상하게 여위어 있었다.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는 온통 하얗게 새어 있었고, 누렇게 변한 얼굴에 두 눈은 움푹 패어 있었다. 걷는 것도 힘들어했고, 입은 노인처럼 합죽했다. 쉰 살 밖에 안 된 사람이 마치 일흔이 넘은 노인처럼 변해 있었다. 허우 씨는 경찰에게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은 그를 쇠사슬로 때리고, 구둣발로 얼굴을 걷어차 그의 치아가 전부 빠져 버렸다. 또 굵은 몽둥이로 그의 허리를 있는 힘껏 때리는 바람에 몽둥이도 두 동강 나고, 그의 허리도 부러지고 말았다. 노동교화소에서 경찰은 늘 죄수들을 부추겨 그를 구타하게 했다. 경찰의 강요로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가발을 만들었고 밤늦게까지 잔업을 해야 했다.

체포되기 전까지 허우 씨는 아주 건강해 병이라곤 없었다. 집안의 농사일도 도맡아 했고 정신도 온전했다. 주위 이웃들은 활기가 넘치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허우 씨와 어울리길 좋아했다. 하지만 석방 후 뇌에 문제가 생긴 허우 씨는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며, 어떤 때는 극도의 공포를 느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실성한 듯 울어 대기도 했다. 밖에 나가고 싶으면 나갔고, 아무 데나 돌아다녔는데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온종일 먹어도 배부른 줄 모르고 밥을 먹자마자 간식을 찾았다. 저녁에는 광산용 램프와 대나무 장대를 들고 새벽 2, 3시까지 마구 돌아다녔고, 심지어 새벽 3, 4시까지 밖에 돌아다닌 날도 있었다. 그러다 어떤 때는 이틀을 꼬박 잠만 자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체포와 가혹 행위로 정신 이상자가 된 허우 씨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허우 씨는 2011년 8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33. 크리스천 리궈옌, 중국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2003년 9월 중국 당국에 체포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 리궈옌(李國彦)은 불법 구금 기간 경찰의 고문에 장시간 시달렸다. 끔찍한 고문으로 리 씨의 두 다리는 퉁퉁 붓고 심장병 증세도 악화되었다. 리 씨가 감옥에서 사망하면 책임을 추궁당할까 우려한 경찰은 리 씨를 석방시켰다. 리 씨는 집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았지만 2004년 2월 19일 향년 42세의 나이로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리궈옌은 1962년 10월 14일생 남성으로, 난양(南陽)시 시촨(淅川)현 라오청(老城)진에 살았다. 리 씨는 1980년 부모님을 따라 예수를 믿기 시작했고, 2001년 4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03년 9월 2일 즈음인 어느 날이었다. 정오 12시쯤,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온 리궈옌은 시촨현 종교국 국장 저우롄자오(周連照)와 시촨현 파출소 소속 경찰 등 경찰 네 명이 집안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저우롄자오가 리 씨를 향해 말했다. “리궈옌, 너는 ‘동방번개’를 믿는 잘못을 저질렀다.” 겁을 먹은 리 씨와 가족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한 쪽에 서 있었다. 저우롄자오와 일행은 집안을 샅샅이 뒤져 교회 서적 2권과 돌돌 말아 놓은 그림 한 장을 찾아냈다. 그림 뒷면에는 교회 서적 배포 정보를 기록한 표가 그려져 있었다. 이어서 경찰은 리 씨 부모의 집에 쳐들어가(두 집은 20m 거리에 있었음) 부모가 쓴 필사본을 찾아냈다. 뒤이어 두 경찰이 리궈옌의 팔을 비틀어 잡고 경찰차에 태워 시촨현 청자와(程家窪) 구치소로 끌고 갔다.

이 광경을 본 마을 주민들은 겁을 먹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우롄자오는 주민들에게 경고했다. “샤오샤오(小小, 리궈옌의 여동생,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와 이 마을에 사는 류펑(劉鵬, 가명,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을 보면 바로 신고하시오. 체포 시 한 명당 2,000위안(한화 약 33만 3천 원)을, 두 명 다 잡으면 4,000위안(한화 약 67만 원)을 포상금으로 주겠소. 그들이 돌아오는 대로 바로 잡으시오.” 그래서 리궈옌의 누나와 여동생은 모두 집을 떠나 몸을 숨겨야 했다.

구치소에서 경찰은 리궈옌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교회 서적이 어디서 난 것인지 물었다. 리 씨는 생전에 한 크리스천에게 구금 기간 경찰에게 ‘전갈 자세(가혹 행위의 일종. 죄수의 두 팔을 벌려 몸과 얼굴을 벽에 붙이게 한 상태로 무릎을 꿇고 발끝을 들게 함)’를 당했으며, 경찰은 그 상태로 리 씨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소리를 질러댔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구치소의 음식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매 끼니로 작은 찐빵과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말간 옥수수죽이 나올 뿐이었다. 오랜 기간 가혹 행위와 굶주림에 시달린 탓에 리 씨의 발은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몸도 극도로 쇠약해졌다.

리궈옌이 불법 구금된 지 20일이 지나는 동안 리 씨의 몸은 바싹 여위고 얼굴과 발은 심각하게 부어 걸을 수조차 없었다. 리 씨가 구치소에서 사망할까 우려한 경찰은 그의 아내에게 보석금을 내면 남편을 풀어 주겠다고 편지를 보냈다. 리 씨의 아내는 주변에서 빌려 마련한 2,000위안(한화 33만 5천 원)을 경찰에게 전달했고, 그제야 경찰은 리 씨를 풀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리궈옌은 집 근처 보건소에서 심장병과 발 부종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워낙 병세가 심각해서 어떤 약을 먹어도 상태가 좋아지질 않았다.

2004년 2월 19일 오전, 리궈옌은 정맥 주사를 맞던 도중 사망한다.

효심이 깊었던 리궈옌은 부모님이 슬퍼할 것을 염려하여 생전에 한 번도 구치소에서 당했던 일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의 부모 역시 구치소에서의 일을 물었다가 리 씨가 괴로워할까 봐 묻지를 못했다. 이 때문에 리궈옌이 구금 기간 얼마나 많은 가혹 행위를 당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리궈옌의 어머니는 슬픔에 잠겨 말했다. “잡히기 전에도 류머티즘성 심장 질환을 앓고 있기는 했지만 궈옌이는 몸 쓰는 일은 다 할 수 있었어요. 경찰이 이렇게까지 악랄할지는 생각도 못 했어요. 오죽 괴롭혔으면 사람이 죽었겠어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을 견디지 못한 리 씨의 아버지는 내내 우울감에 시달리다 결국 병에 걸려 리 씨 사망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34. 크리스천 장멍링, 강제 노역에 의한 질병으로 사망한 사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 장멍링(張孟令)은 하나님을 믿고 전도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불법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구금 기간 중병에 걸렸지만 치료를 받지 못해, 출옥 후 5개월도 안 되어 향년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멍링(가명 저우핑(周平))은 1963년생 남성으로, 허난(河南)성 저우커우(周口)시 루이(鹿邑)현 타이칭궁(太淸宮)진 스양자이(四羊寨)촌 사람이다. 1993년 예수를 믿기 시작해 1999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다. 성실하고 남을 돕길 좋아했던 장 씨는 생전 하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즐겨 하였다.

2012년 8월, 장멍링은 전도를 하러 쓰촨(四川)성으로 갔다.

2013년 4월 2일 저녁 7시경, 장멍링은 쓰촨(四川)성 화잉(華鎣)시 솽허(雙河)진 화룽(華龍)가도 베이산(碑山)촌에 있는 크리스천 왕중즈(王忠之, 가명, 남)의 집을 방문한 참이었다. 그때 갑자기 경찰 아홉 명이 집안으로 들이닥쳐 장 씨를 체포하고 집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교회 관련 서적과 복음 자료, SD 카드 2장, 휴대폰 등을 찾아내 압수했다. 그러고 나서 경찰은 장 씨에게 수갑을 채워 왕중즈와 같이 화잉시 공안국으로 끌고 갔다.

화잉시 공안국에 도착한 후, 경찰은 장멍링에게 철제 의자에 앉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의 두 손과 두 발을 각각 철제 의자 위아래에 있는 쇠고리 안에 끼워 넣었다. 화잉시 국가안전보위 대대 경찰 후융(胡勇)과 덩제(鄧杰)가 장 씨를 두 차례 심문했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두 명 다 30세가량의 남성으로, 덩제는 교통경찰 대대 대장, 후융은 일반 경찰이었음).

4월 3일, 후융과 덩제는 장멍링을 쓰촨(四川)성 우성(武勝)현 내에 있는 세뇌기지로 데려갔다.

해당 기간, 후융과 덩제는 장 씨의 뺨을 때리고 명치를 가격했다. 한쪽 팔은 어깨 위로, 다른 팔은 등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워 놓기도 했다. 그들은 여기서도 장 씨를 4차례 심문했다. 쓰촨성에서 몇 명에게 전도했고, 이들은 누구이며 어디 사는지, 연락처는 어떻게 되는지 물었지만, 장 씨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후융과 덩제는 장 씨를 철제 의자로 끌고 갔다. 그의 발목에 쇠고랑을 채우고 두 팔은 의자 뒤로 돌려 등 뒤로 수갑을 채웠다. 수갑을 잔뜩 조여 살을 파고들 정도였다. 장 씨의 열 손가락은 퉁퉁 부어 구부려지지 않았고, 두 발 역시 신발이 신겨지지 않을 정도로 부었다.

장멍링은 철제 의자 위에 15일가량 묶여 있었다. 이 기간 경찰은 장 씨에게 잠을 재우지 않았고, 장 씨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덩제는 장멍링을 위협하며 말했다. “여기서 누구한테 전도했고 어떻게 연락을 취했는지, 네 리더가 누구인지만 얘기하면 바로 풀어 줄게. 계속 말을 안 하면, 너만 더 괴로워질 거야!” 후융 역시 “아무 말 안 해도 상관없어. 자백을 안 해도 너는 징역감이야!”라고 장 씨를 협박했다.

5월 10일 오후, 후융과 덩제는 장멍링을 화잉시 구치소로 압송하여 21호 수감실에 가두었다.

6월 14일, 장 씨에 대한 체포 영장이 내려졌고, 그날로 장 씨는 15호 수감실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장 씨는 매일 굶주림에 시달리며 바닥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해야 했다. 아침 식사로는 얼굴이 비칠 정도로 멀건 미음을 먹었고, 점심과 저녁에는 찐쌀 한 덩어리가 나올 뿐이었다. 매끼 식사에는 반찬 조금과 채소 몇 잎이 나왔고 그 외에는 물이 전부였다. 장 씨는 자주 어지러울 정도로 허기를 느꼈다. 심각할 때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고 용변을 볼 때도 다른 두 명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상태로 매일 저녁 2시간씩 당직까지 서야 했다. 어느 날 밤, 당직을 서다 쓰러진 장멍링은 의식을 잃었다가 4시간 만에 겨우 깨어났다.

9월 9일, 화잉시 법원에서 장멍링 사건 처리를 위한 법정이 열렸다. 법정에 선 장멍링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당일에는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다.

11월 18일, 장멍링은 화잉시 구치소 대문 밖으로 끌려갔다. 한 경찰이 그 자리에서 판결 결과를 읽어 주었다. “<중화인민공화국 형법> 제300조 ‘사교 조직을 이용하여 국가 법률 실시를 파괴한 죄’에 근거하여 장멍링을 징역 3년 형에 처한다.”

12월 18일, 장멍링은 쓰촨(四川)성 러산(樂山)시 자저우(嘉周) 교도소로 옮겨져 5감구(監區)에서 복역하며 노동교화를 받게 된다. 노동교화 기간, 장 씨는 과중한 노동뿐 아니라 교도소 경찰의 욕설까지 감내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그의 병세를 더 악화시켰고, 한번은 혈압이 치솟아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간 적도 있었다. 장 씨는 하루를 꼬박 의식 불명 상태로 있었다가 가까스로 깨어날 수 있었다. 깨어난 후에는 바로 교도소로 돌아가 작업을 계속해야 했다.

이 사실을 안 장 씨의 아내는 남편에게 약을 부쳤지만, 교도소 측에서는 외부에서 보낸 약을 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 가족들은 교도소 내에서 약을 살 수 있게 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3년 동안 이렇게 보낸 돈이 15,000위안(한화 약 252만 원) 정도이다. 그리고 이 기간 가족들은 두 차례 면회를 갔는데, 장 씨는 눈에 띄게 여위고 나이가 든 모습이었다.

2016년 5월 9일, 형기를 마친 장멍링은 석방되었다.

석방 당일, 장 씨의 아내, 아들, 촌(村) 서기, 이렇게 세 명이 그를 맞으러 교도소로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장 씨의 혈압이 치솟아 걸음을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택시 안에서 극심한 어지럼증을 느낀 장 씨는 세 번이나 구토를 하였다. 집에 돌아온 그는 약을 복용하며 치료를 받았지만, 혈압은 내려오질 않았다.

9월 22일, 장멍링은 고혈압으로 인한 뇌혈관 파열(뇌동맥류)을 일으켜 상추(商丘)시 제1 인민병원으로 실려 가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2016년 10월 5일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35. 크리스천 천쥔, 중국 정부의 노동 교화 중 박해로 사망한 사례

1991년 3월 27일, 허난(河南)성의 크리스천 천쥔(陳俊)을 비롯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 14명은 함께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에서 열린 예배에 참가하였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그 후 천쥔은 허난성으로 돌려 보내져 노동교화 2년 형에 처해진다. 천 씨는 노동교화소에서 가혹 행위를 당해 중병을 얻게 되었지만, 경찰 측은 치료를 허가해 주지 않았다. 출옥 후에도 천 씨는 2차례 더 체포를 당했고, 병세는 갈수록 악화되었다. 1996년 9월, 46세에 불과했던 천 씨는 중국 정부의 박해에 시달린 끝에 결국 사망하고 만다.

피해자 천쥔은 남성으로, 허난(河南)성 융청(永城)시 망산(芒山)진 사람이다. 1987년 예수를 믿기 시작했고 원래는 회복류파의 사역자였다가, 1991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하였다. 다음은 천 씨가 중국 정부의 박해로 사망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신앙 때문에 반혁명죄로 몰려 고문과 조리돌림 당해

1991년 3월 27일, 천쥔과 13명의 크리스천은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 융위안(永源)진에서 1주일 동안 진행되는 예배에 참석했다. 교회 서적 200여 권을 가지고 허난성으로 돌아가려 기차역을 찾은 천 씨는 그곳에서 경찰에게 체포되어 현지 구치소로 압송되었다.

당시 헤이룽장 지역은 영상 4, 5도 정도의 쌀쌀한 날씨였다. 경찰은 천쥔에게 목이 긴 장화를 신기고 시멘트 기둥에 세워 등 뒤로 톱니 달린 수갑을 채운 후 끊임없이 그의 머리와 몸, 신발 안에 냉수를 들이부었다. 그리고 33일 동안 차가운 바닥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게 했다. 그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경찰의 주먹질과 발길질이 날라왔다. 그 밖에도 경찰은 다른 죄수들을 시켜 꼼짝도 못 하고 앉아 있는 천 씨를 구타하게 했는데, 그 바람에 천 씨의 복사뼈 주변 피부가 모두 닳아 버렸다.

1991년 4월 8일,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융위안진 정부는 ‘반(反)당, 반(反)혁명, 반(反)인류, 반(反)정부, 정권 전복’ 등의 죄명으로, 천 씨를 포함한 14명의 크리스천을 길거리로 데려가 대중 앞에서 조리돌림을 시켰다. 조리돌림을 당한 후에도 그들은 계속 구금되어 있었다. 33일 후, 천쥔은 허난성 융청시 공안국으로 압송되었고, 그 외 13명의 크리스천도 각자 고향으로 보내져 구금되었다.

1991년 6월 말, 공안국 요원은 천 씨의 가족들에게 7천 위안(한화 약 117만 원)을 보석금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경제 사정이 어려웠던 가족들은 돈을 구할 수 없었다.

1991년 7월 6일, 융청시 공안국 국가안전보위 대대 소속 경찰 두 명이 천쥔을 집으로 데려왔다. 천 씨의 얼굴은 창백하고 초췌했고, 걸음걸이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경찰은 천 씨의 아내에게 350위안(한화 약 6만 원)을 요구하며 말했다. “다시 하나님을 믿었다간 자식들이 봉변을 당할 거야. 당신 자식들은 군대에도 못 가고, 대학에도 못 들어가!” 경찰의 으름장에 아내는 할 수 없이 두 아이의 학비와 생활비 전부를 꺼내 경찰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수취증은 받지 못했음). 하지만 돈을 받아 든 경찰은 천 씨를 다시 융청시 공안국으로 끌고 가 버렸다.

고통 속에 시달린 노동교화 2년

1991년 7월 7일, 허난성 융청시 공안국은 ‘사회 치안 교란, 반(反)혁명, 반(反)당, 반(反)정부, 국가정권 전복죄’로 천쥔을 노동교화 2년 형에 처한다. 그리고 석탄수송차량에 천 씨를 태워 몰래 허난성 상추시 노동교화 관리소로 보내 복역하게 했다. 천 씨의 가족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8월말이 되어서야 천 씨의 복역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동교화소의 경찰은 수시로 죄수들을 부추겨 천쥔을 구타하고 그의 식사를 빼앗게 했다. 극심한 굶주림에 천 씨는 쓰레기통을 뒤져 다른 사람이 먹다 버린 찐빵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그뿐만 아니라, 천 씨는 매일 시멘트를 지고 나르는 막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오랜 시간 과중한 육체노동에 시달린 탓에 천 씨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1992년 8월의 어느 날, 면회를 간 천 씨의 아내는 남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보았다. 얼굴뿐 아니라 안구색까지 노랗게 변했고, 얼굴과 전신이 퉁퉁 부어 있었다. 천 씨는 자신이 장염에 걸려 시멘트를 지지 못하자 경찰은 그에게 매일 마늘을 까게 한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식사도 하지 못하고 잠도 잘 수 없었다. 손가락 끝 피부가 다 벗겨졌지만 천 씨는 통증을 참으며 작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1993년 8월 하순, 형기를 마친 천쥔은 석방되었다. 병원 검진 결과, 천 씨는 황달성 간염을 앓고 있었다. 감옥에 있을 때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집으로 돌아온 후 그의 몸은 심각하게 부어올랐다. 기력을 잃은 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경찰은 천 씨에게 매월 한 번씩 망산진 정부로 출석하게 하고 강제로 세뇌 교육을 받게 했다. 이 기간 천 씨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었다. 천 씨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족들은 집안에 돈이 될 만한 물건은 모두 팔고 8000위안(한화 약 134만 원)의 빚까지 졌다. 천 씨 가족의 생활은 매우 곤궁해졌다.

계속된 체포와 박해로 결국 사망한 천쥔

1994년 3월 어느 날 밤 12가 좀 지나 망산진 파출소 소속 경찰 세 명이 갑자기 천 씨의 집을 찾았다. 영장을 제시하지도 않은 채 집안을 뒤지기 시작한 그들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자 천쥔이 전도를 하고 다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며 무작정 그를 현지 구치소에 잡아 가두었다. 천 씨가 구류된 동안, 경찰은 천 씨의 가족들에게 100위안(한화 약 1만 7천 원)을 요구했다. 구류 17일째, 천 씨의 병세가 위중한 것을 본 경찰은 행여 책임져야 할 상황이 생길까 우려하여 그를 석방시켰다.

1995년 3월의 어느 날 밤 12시가 좀 지나 망산진 파출소 소속 경찰 두 명이 담을 넘어 천 씨 집 마당으로 들어와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천 씨를 망산진 파출소로 끌고 갔다. 다음 날 아침, 천 씨가 언제든 사망할 수 있는 상태임을 본 경찰은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다시는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1995년 말, 중국 정부의 끊이지 않는 박해로 병세가 악화되어 쓰러진 천쥔은 결국 1996년 9월 19일 향년 4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36. 크리스천 마파딩, 중국 정부의 고문과 강제 노역으로 사망한 사례

마파딩(馬法定)은 1955년생 남성으로, 허난(河南)성 난양(南陽)시 시촨(淅川)현 청관(城關)진 사람이다. 2002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05년 9월 28일 저녁 10시경, 시촨현 국가안전보위 대대 대장 마화민(馬華敏)을 필두로 한 경찰 다섯 명이 마파딩의 집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교회 서적 십여 권과 그 외 신앙 관련 물품들을 압수했고, 마 씨 부부를 경찰차에 태워 시촨현 공안국으로 끌고 갔다.

그날 밤, 경찰은 마 씨 부부를 각각 나누어 심문하였다.

마 씨 부부가 다른 크리스천들의 신상 정보를 넘기지 않자, 다음날 정오 12시경, 경찰은 두 사람을 시촨현 청와(程洼) 구치소로 보내 나눠서 구금하였다.

구치소에서 마 씨 부부는 세 차례 심문을 당했다. 세 번째에는 허난성 공안청의 경찰이 직접 마파딩을 심문했다. 경찰은 그를 구치소 마당으로 데려가 심문했는데, 마 씨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이어서 마 씨의 아내도 마당으로 끌려와 심문을 받았다. 마 씨의 아내는 땅에 마 씨의 사진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사진 속 마 씨는 이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인해 행색이 말이 아니었고 정신도 온전치 않아 보였다. 예전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마 씨는 체포되기 전까지만 해도 혈색이 밝고 건강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으로 변하다니, 경찰이 그에게 고문을 가한 것이 분명했다. 마당에서 경찰이 아무리 윽박지르며 심문해도, 마 씨의 아내는 다른 크리스천의 정보를 넘기지 않았다.

2005년 11월 9일 오후, 경찰 측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사회 치안을 교란시킴’이라는 죄목으로 마파딩을 노동교화 1년 형에, 그 아내는 노동교화 1년 6개월 형에 처한다. 그들 부부는 바로 난양시 구치소로 압송되었다.

구치소에 갇힌 15일 동안, 마파딩 부부는 장시간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의 체중은 눈에 띄게 급감했다. 구치소에서 아내는 노랗게 변한 얼굴색에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고 말하는 데 기운이 하나도 없는 마 씨를 보게 되었다. 너무 여위어서 10kg은 빠진 듯 보였다.

2005년 11월 24일, 경찰은 마 씨를 쉬창(許昌) 노동교화소로 보내 1년간 복역하게 한다. 마 씨는 가발 제작 작업에 투입되었다. 할당량을 완수하지 못하면 ‘전갈 자세(고문의 일종. 두 손을 벌리고 얼굴은 벽에 붙인 채 까치발을 든 채 서서 몸을 움직이면 안 됨)’를 하거나 욕을 먹고 구타를 당해야 했다. 가발을 만들려면 장시간 유독 물질이 든 약물에 노출되어야 했는데, 아마 이 과정에서 그의 몸이 많이 망가졌을 것이다.

8개월 후, 그의 가족들이 인맥을 통해 관계자에게 금품을 주며 손을 쓴 덕에 마 씨의 아내는 석방될 수 있었다. 아내는 출옥 후 노동교화소로 마 씨의 면회를 갔다. 마 씨는 “경찰이 감옥의 죄수들을 시켜 나를 때리고 욕하게 해요.”라고 털어놓았다. 그 후 아내가 다시 면회를 갔을 때, 마 씨는 수화기를 들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감옥에서 매우 억울하고 힘든 일들을 겪은 게 분명하다고 마 씨의 아내는 전한다.

2006년 9월 28일, 1년 형기를 마친 마파딩은 석방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마 씨는 온종일 정신이 온전치 않았고, 늘 침울해했다. 기력이 없었고 자주 감기에 걸렸다. 2007년 8월 초가 되자 마파딩의 몸은 점점 더 나빠졌다. 걷는 것도 힘들어했고, 종일 기침과 열에 시달렸다. 약을 먹고 링거를 맞아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시촨현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아 보았다. 검진 결과는 백혈병이었다. 15일 후, 마파딩은 치료에도 불구하고 결국 향년 52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그 후, 마 씨의 아내는 정부의 체포를 피해, 아직 미성년자인 아이를 놔두고 도망 길에 오른다. 중국 정부의 박해로 마파딩의 가정은 파탄이 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이다.

37. 크리스천 왕밍츠, 중국 정부의 구타와 강제 노역으로 사망한 사례

왕밍츠(王明池, 남), 가명은 천하오(陳浩), 산둥(山東)성 랴오청(聊城)시 선(莘)현 옌뎬(燕店)진 마자이(痲寨)촌 사람으로, 2002년 5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받아들였다. 2006년, 왕밍츠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체포되어, 구금 기간 구타와 가혹 행위를 당했다. 왕 씨가 그 과정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자, 책임질 것을 우려한 경찰은 형기를 다 채우지도 않은 그를 석방시켰다. 석방 후 왕 씨는 결국 향년 45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2006년 5월, 랴오청(聊城)시 양구(陽谷)현에 사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에게 말씀 서적을 전달하는 왕밍츠를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다. 그곳에서 책을 배부하던 왕 씨는 계속 그를 미행하던 양구현 국가안전보위 대대의 경찰들에게 체포되었다.

왕밍츠는 생전에 자신이 당한 가혹 행위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양구현 공안국으로 끌려간 후, 경찰 몇 명이 돌아가며 그의 따귀를 때리고 발길질과 주먹질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각종 형구(刑具)를 가져다가 그를 며칠 간이나 잔혹하게 고문했다. 고문은 경찰이 지쳐야 비로소 멈췄다고 한다. 경찰은 왕 씨의 개인 정보와 하나님 믿는 데에 관해 심문했지만 왕 씨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경찰의 구타와 고문은 더 악랄해졌고, 왕 씨는 그 과정에서 여러 번 혼절하였다. 하지만 교회의 정보는 조금도 털어놓지 않았다.

양구현 경찰은 아무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으면서 ‘치안 파괴, 서적 암거래’라는 죄목으로 왕밍츠를 노동교화 3년 형에 처했다. 왕 씨는 산둥(山東)성 쯔보(淄博)시의 노동교화소로 압송되었다. 압송 전에도 고문 때문에 온몸이 상처투성이이고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던 왕밍츠는 노동교화소에서 과중한 노동에 시달린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쓰러지고 만다.

2006년 12월 15일, 쯔보시 노동교화소의 경찰은 왕밍츠가 교화소 내에서 죽어 그 책임을 추궁당할까 우려하여 가족들에게 연락해 왕 씨를 데려가게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측은 형기가 다 차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2만 위안(한화 약 336만 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왕 씨의 가족들은 아무리 주변에서 돈을 구해도 2만 위안을 다 마련하지 못했다.

다음날, 쯔보시 노동교화소의 경찰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왕 씨를 보고 할 수 없이 가족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돈은 필요 없으니 어서 사람을 데려가라고 말했다.

17일, 마자이촌의 촌 서기와 왕밍츠의 가족은 서둘러 쯔보시 노동교화소로 향했다. 그들은 고작 반년 만에 몰라보게 변한 왕 씨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왕 씨는 원래 키 180cm에 몸무게 90kg의 거구로 통통한 편이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체중이 50kg도 안 되게 살이 빠져 있었다. 희었던 얼굴색은 노랗게 변해 있었고 눈빛이 풀린 허약한 병자가 되어 있었다. 왕 씨의 가족들을 더 안타깝게 한 것은 그의 옷차림이었다. 당시 북방 지역은 추운 겨울이었는데 왕 씨는 여름철 반팔 셔츠만 입고 있었다. 바싹 여윈 그의 몸은 한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노동교화소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왕밍츠는 집으로 돌아온 지 8일 만에, 즉 2006년 12월 24일 밤 9시가 좀 지나 결국 사망하고 만다.

38. 크리스천 위푸팅, 중국 정부의 강제 노역으로 사망한 사례

위푸팅(餘福廷)은 충칭(重慶)시 창서우(長壽)구 룽허(龍河)진 사람으로, 2005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09년 9월 10일 오전, 위푸팅은 크리스천 류(劉)모 씨의 집을 찾아 예배를 드렸다. 오전 11시가 좀 지나 허싱(合興) 파출소 소장 장뱌오(張彪), 창서우(長壽)구 두저우(渡舟)진 파출소 소속 경찰 등 4명과 이들에게 협조한 촌(村) 간부 7명이 류 씨 집에 쳐들어왔다. 마음대로 집을 뒤진 경찰은 위푸팅과 류 씨를 체포해 창서우구 두저우진 파출소로 끌고 갔다.

오후 4시, 사복 경찰 한 명과 통일전선 공작부 소속 경찰 등이 위푸팅의 집을 수색해 교회 헌금 16,000위안(한화 약 268만 원) 영수증을 찾아내었다.

위푸팅이 살아 있을 때 썼던 글을 보면, 경찰은 집에서 찾아낸 영수증을 가지고 그와 류 씨를 심문했다고 나와 있다. 그래도 위 씨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경찰은 구두를 신은 채로 그를 걷어차고 전기봉으로 구타하며 협박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더라도 우린 네가 사교를 믿은 걸로 징역형에 처할 거야!”

결국, 경찰은 ‘사교 조직에 참가하여 사회 치안 질서를 교란시킨 죄’로 위 씨에게 노동교화 1년 형을 선고한다.

2009년 9월 30일, 위푸팅은 푸링(涪陵)구 장둥(江東) 노동교화소로 이송된다.

위 씨는 후에 노동교화소에서의 생활에 대한 글을 남겼다. 글을 통해 본 노동교화소에서의 생활은 매우 열악했다. 평소 먹을 것이라곤 약간의 채소가 나올 뿐이었는데, 어떤 때는 그마저도 나오지 않아 고추만 반찬 삼아(위 씨는 원래 고추를 먹지 않았음) 밥을 먹곤 했다. 감찰 담당자가 교화소 감찰을 올 때만 토마토와 달걀을 넣은 국을 먹을 수 있었다. 이게 교화소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생활이었다. 매끼 밥을 담은 후에는 교화소 규율을 다 읽어야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그때는 이미 음식이 차갑게 식은 후였다(사계절 항상 이렇게 식사를 했음).

노동교화소의 경찰들은 죄수들을 시켜 위 씨를 괴롭히게 했다. 추운 겨울날, 사전에 알리지 않고 몸을 씻었다는 이유로 위 씨는 죄수들에게 두 번 벌을 받았다. 그들은 대야에 담긴 차가운 물을 위 씨의 머리 위에 들이부은 후 위 씨를 향해 선풍기를 틀었다. 위 씨는 이날 이후 병을 얻었다(위 씨는 교화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무 병이 없었고 집에서 중요한 생산 활동을 도맡아 했었음).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거기다 과중한 육체노동에 시달린 탓에 위 씨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하지만 위 씨에 대한 경찰의 가혹 행위는 줄어들지 않았다. 한 번은, 작업을 하러 가는 위푸팅의 걸음이 느리다는 이유로 경찰은 엉덩이에 온통 멍이 들 정도로 발길질을 퍼부었다. 경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무 몽둥이로 다리를 사정없이 때려 위 씨의 다리가 퍼렇게 부어올랐다. 당시 위 씨는 견디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때의 구타로 위 씨는 계단도 오르지 못할 지경이 되었지만, 경찰은 치료를 해 주지 않았다.

2010년 4월 24일,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작업도 못 하는 위푸팅이 별 쓸모가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아내에게 전화해 위 씨를 데려가라고 했다. 위 씨의 사위가 와서 그를 집으로 데려갔다. 당시 위 씨는 몸 전체가 퉁퉁 부어 있었는데 머리 쪽과 복부 쪽의 붓기가 특히 심했고 딱딱하기까지 했다. 경찰의 가혹 행위로 위 씨에겐 성한 모습이라곤 남아 있질 않았다.

한 달 후, 위푸팅은 충칭 시난(西南)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검진 결과는 간암 말기였다. 뒤늦은 치료에도 불구하고 위푸팅은 결국 2010년 10월 5일 향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39. 크리스천 류지샤,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례

크리스천 류지샤(劉紀霞)는 1965년 5월 19일생 여성으로, 산둥(山東)성 랴오청(聊城)지구 린칭(臨淸)시 다이완(戴灣)향 다이완베이(戴灣北)촌 사람이다. 사람됨이 성실하고 온화했던 류 씨는 1999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고, 교회에서는 리더를 맡고 있었다. 2007년, 류 씨는 산둥(山東)성 랴오청(聊城)시 관(冠)현에서 전도를 하던 중 경찰에게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복역 기간 신장염을 앓게 되었는데 감옥 측에서는 어떤 치료도 해 주지 않고 고강도 노역을 강요했다. 출옥 후에도 경찰은 집에 찾아와 집안 곳곳을 뒤져대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고, 그 때문에 류 씨의 병세는 만성 신부전증으로 발전하게 되어 2012년 8월 향년 47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다음은 류지샤가 체포되어 중국 정부의 박해로 사망하기까지의 과정이다.

2007년 9월 9일, 류지샤는 다른 크리스천 한 명과 함께 산둥성 랴오청시 관현 베이관타오(北館陶)진 샤오궈장(小郭莊)촌에서 전도를 하던 중 사복 경찰 세 명에게 붙들리고 만다. 경찰은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류지샤 등 두 명을 관현 베이관타오진 파출소로 연행해 갔다. 그날 두 사람은 관현 공안국에 구류되어 관현 구치소에 갇히게 된다.

제보자에 의하면, 구금 기간 경찰 측은 류지사에게 교회 서적이 어디서 났는지, 누가 그들에게 전도를 하게 시킨 건지, 같이 붙잡힌 크리스천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어디서 만났는지 등을 심문했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한 달 후, 경찰은 ‘사교 조직을 이용해 법률 실시를 파괴했다’라는 죄목으로 류지샤에게 노동교화 1년 6개월 형과 벌금 300위안(한화 약 5만 원)을 선고한다. 그 후 류 씨는 지난(濟南) 여자 노동교화소에서 복역하게 된다.

복역 기간, 류지샤는 완구용 말을 만드는 일에 배치되어 매일 17시간 동안 작업을 해야 했다. 잔업이라도 해야 하면 작업 시간은 20시간으로 늘어났다. 거기다 교화소 내 식사는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대부분 식사는 옥수수죽, 마른 찐빵, 무절임과 배추절임이 전부였다. 오랜 시간 고강도 육체 노동에 시달리고 게다가 영양 결핍까지 더해져 류지샤는 교화소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장염(요단백 양성)을 앓게 되었다. 하지만 교화소 경찰은 여전히 류 씨에게 작업을 강요하였다.

류지샤의 남편 창(常) 모 씨는 2008년 면회를 하러 갔을 때 류 씨의 얼굴이 노랗게 변해 있었고 몸도 쇠약해져 있었다고 말한다. 그제야 남편 창 씨는 류 씨가 병에 걸렸지만, 교화소 측이 치료를 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창 씨에 의하면, 감옥에 들어가기 전 류 씨는 신장병을 앓아 본 적이 없었고, 그 외 아픈 곳도 없이 건강해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2009년 2월 9일, 형기를 마친 류지샤는 석방되었다. 당시 그녀의 얼굴색은 검누렜고, 몸은 약하고 여위어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많이 위축된 상태였다.

같은 해 10월 14일, 류 씨의 남편은 류 씨를 데리고 랴오청시 제2 인민병원(현 화메이(華美)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아 보았다. 검진 결과 신장염과 하지부종인 것으로 드러났다. 2개월 간 약을 복용하자 류 씨의 병세는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하지 부종 증상도 사라지게 되었다. 허베이(河北)성 싱타이(邢台)시 린시(臨西)현의 한 중의사(中醫師)는 류 씨의 병은 과로와 공포심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던 2010년 7~8월, 린칭시 다이완향 파출소 소속 경찰 세 명이 류지샤의 집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당시 집에는 류 씨의 딸만 있었는데, 교회 서적을 찾아낸 경찰은 류 씨가 돌아오거든 반드시 현지 파출소로 출석하게 하라고 딸을 위협했다.

이 사실을 들은 류 씨는 충격을 받아 병세가 더 심해지고 말았다. 하반신이 다시 붓기 시작했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빴으며, 가슴 통증, 어지러움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똑바로 누울 수도 없었다. 류 씨의 남편은 그녀를 데리고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병세는 나아지질 않았다.

2011년 7월 18일, 류지샤의 병세가 나날이 악화되던 중, 랴오청시 제2 인민병원은 신부전 확진을 내렸다.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자 웨이팡(濰坊) 신장병 전문 병원에서 58일간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 매주 류 씨에게 2회에서 3회 혈액 투석을 진행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2012년 8월 20일, 류지샤는 린칭시 제1 인민병원에서 사망하고 만다.

류지샤의 가족들은 류 씨의 치료비로 약 15만 위안(한화 약 2500만 원)을 사용했다고 한다. 류 씨의 사망 후, 남편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지금도 아내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한다.

40. 크리스천 쉬안쥔링, 중국 경찰의 지속적 협박으로 사망한 사례

쉬안쥔링(宣俊玲)은 1951년 5월 28일생 여성으로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린퉁(臨潼)구 사람이다. 1994년 하나님을 믿기 시작해 1998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하였다.

2015년 9월 22일 밤 9시 40분, 쉬안쥔링과 남편은 집에서 손자를 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시안시 공안국 린퉁분국 시취안(西泉) 파출소의 장광청(張廣城)을 필두로 한 경찰 여섯 명이 실내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부부를 제압하고는 집안을 뒤져 교회 서적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파출소로 끌고 갔다.

파출소에서 경찰은 쉬안쥔링과 남편을 나눠 가두었다. 다음 날 오전 10시, 경찰은 두 사람을 나눠 교회와 교회 서적에 대해 심문하였다. 심문이 아무 성과가 없자 경찰은 그날 밤 11시, ‘사교를 믿음’이라는 죄목으로 쉬안 씨와 남편을 린퉁구 구치소로 보내 한 달 동안 구금한다.

10월 23일, 형기를 마쳤음에도 쉬안 씨와 남편은 석방되지 않았다. 그날 정오 12시, 경찰은 그 두 사람을 산시성 시안시 법제교육 양성센터로 보내 23일간 세뇌 교육을 시킨다. 두 사람은 매일 강제로 무신론 사상을 주입받았고 신앙을 포기할 것을 강요당했다. 11월 16일이 되어서야 그들은 풀려날 수 있었다.

남편의 기억에 의하면, 그들은 세뇌기지에서 24시간 동안 밀착 감시를 당해 기도를 드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매일 무신론 자료를 강제로 학습하며 큰 정신적 압박을 받았다. 이 때문에 쉬안 씨는 집에 돌아와서도 자주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고 한다. 석방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쉬안 씨의 혈압은 200mmHg로 치솟았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그들에 대한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고 일주일 후, 현지 경찰은 쉬안 씨 부부와 같은 촌에 사는 친척, 이웃 및 촌장 등 네다섯 명을 보내 그들을 감시하게 했다. 외출 시에도 누군가 그들을 미행하며 감시하였다.

2016년 1월 23일 오후, 3월 14일과 5월 10일 오후, 시촨 파출소의 경찰은 세 차례 쉬안 씨의 집을 찾아 영상을 찍고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지, 누구와 접촉했는지 캐물었다. 이는 쉬안 씨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주었다. 쉬안 씨와 같은 교회를 다니던 크리스천 쉐리(雪利, 가명)는 이 기간 쉬안 씨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안색이 창백하고 관자놀이 밑 부분 피부색이 눈에 띄게 노란 것이 큰 충격을 받고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2016년 6월 16일 오전 10시경, 취안 파출소의 경찰 한 명이 다시 쉬안 씨의 집을 찾아 파출소로 와서 서류를 작성하라고 명령했다. 오전 11시경, 쉬안 씨와 남편이 파출소에 도착하자 경찰은 강제로 그들의 손가락을 잡고 이미 내용이 다 작성된 서류에 지장을 찍게 하고(서류는 경찰이 미리 작성해 놓은 상태였고 모든 손가락의 지장을 다 찍었음) 피를 뽑았다. 경찰은 부부에게 측정기 위에 서라고 명령하고는 두 사람의 키와 체중을 재고 사진을 찍었다. 당시 쉬안 씨는 두 다리가 자꾸 후들거려 똑바로 서 있지 못했다. 안색은 창백했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다. 남편이 부축해 겨우 쉬안 씨를 측정기 위에 세웠다.

6월 17일 새벽 6시경, 쉬안 씨는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소파에 앉아 신발도 바꿔 신지 못했다. 가족들이 서둘러 그녀를 린퉁구 인민병원으로 데려가 응급처치를 했고 쉬안 씨는 겨우 의식을 되찾았다. 의사는 가족들에게 쉬안 씨가 최근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고, 가족들은 어제 막 파출소를 다녀왔다고 털어놓았다. 의사는 “이런 증상은 파출소를 다녀온 것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공황 장애일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6월 18일 정오 12시경, 쉬안 씨의 병세가 악화되어 시안시 제4군의(軍醫)대학 탕두(唐都) 병원으로 가서 응급 처치를 받았다. 엑스레이 촬영 후 병원 측에서는 뇌경색 확진 판정을 내렸다. 그날 저녁 7시 쉬안 씨는 치료에도 불구하고 사망하고 말았다.

가족과 교회 사역자들의 말에 의하면, 체포되기 전까지 쉬안쥔링은 매우 건강했었고 혈압도 정상(90~120mmHg 수준을 유지했음)이었다고 한다. 정신도 온전했고 평소 교회 사역을 처리할 때 어지럼증 같은 증세도 보이지 않았다. 오랜 기간 경찰의 괴롭힘과 박해 때문에 쉬안 씨의 신경은 극도로 긴장해 혈압이 올랐고 그 때문에 급성 뇌경색을 일으켜 결국 사망하게 된 것이다.

41. 크리스천 류진화, 중국 경찰에게 참혹히 살해된 사례

피해자 류진화(劉金花)는 1987년 6월 18일생 여성으로, 후난(湖南)성 헝양(衡陽)시 헝둥(衡東)현 룽환(榮桓)진 핑충(坪冲)촌 사람이다. 2012년 9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하였다. 2014년 8월, 류 씨는 헝양(衡陽)시 헝둥(衡東)현 청관(城關)진 헝웨(衡岳) 남로 61호에 있는 셋방에서 교회 자료를 복사하다가 집주인 후얼메이(胡二美)에게 발각되고 만다. 후얼메이의 신고를 받은 중국 경찰은 그때부터 류 씨를 몰래 미행하며 감시하였다. 2015년 2월 12일 새벽, 류진화는 28세의 젊은 나이로 셋방 마당에서 참혹히 살해당했다.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천후이(陳卉, 가명)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15년 2월 11일, 천 씨는 류 씨의 셋방을 찾아 함께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곳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다음날(12일)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 6시 5분, 화장실에 간다며 나간 류 씨가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전 8시 5분, 천 씨도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다가 얼굴을 위로 향한 채 마당에 대자로 쓰러져 있는 류 씨를 발견했다. 류 씨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왼쪽 눈 아래에 자그마한 자흑색의 어혈이 나 있었고, 왼쪽 콧구멍에는 피를 흘린 흔적이 있었다. 놀란 천 씨는 비명을 질렀고, 이때 갑자기 주변에 잠복해 있던 청관진 파출소의 허젠헝(何建衡), 탕징(湯竟), 옌차오(顔橋) 등 남자 경찰 네 명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천 씨를 체포해 헝둥현 공안국으로 데려가 심문하였다. 경찰 탕징은 천 씨와 죽은 류 씨가 무슨 관계인지 계속 캐물었고, 천 씨가 류 씨를 살해했다고 죄를 뒤집어씌웠다!

사건의 진상을 감추려는 경찰, 그럴수록 드러나는 진실

류 씨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2015년 2월 12일 오전 11시 30분, 류 씨의 삼촌이 다급하게 찾아와 그녀와 남편을 향해 외쳤다. “방금 경찰이 촌 서기한테 전화를 걸어서 하는 얘기가, 진화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대요. 시신을 이미 헝둥현 화장터로 옮겼대요!”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서둘러 헝둥현 장례식장을 찾았다. 류 씨의 어머니는 1호 냉동고에 안치된 딸의 머리 중앙 부위에 달걀 크기만 한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부위의 두피는 벗겨져 없었고 두개골도 움푹 패여 있었는데, 망치 같은 둔기로 맞아 생긴 상흔이 분명했다. 이를 본 류 씨의 어머니는 오열했다. “이건 자살이 아니야. 진화는 살해당한 거야!”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자 헝둥현 청관진 파출소의 경찰 허젠헝은 류 씨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류 씨의 어머니를 협박했다. “2, 3개월간 수사해 보니 류진화는 나라에서 금지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었소! 며칠 전 몇 사람이 류 씨의 셋방에서 얘기하는 걸 듣고 오늘 새벽 5시경 건물을 포위해 잡은 거요!”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반(反)당, 반(反)사회적 종교로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고, 이를 믿는 자는 바로 체포요. 당신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니 체포해야겠지!”라고 위협했다.

사건 발생 현장을 조사해 보던 류 씨의 유족들은 류 씨의 방 창문에 철제 방범창이 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창문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류 씨의 아버지가 이에 대해 따지자,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던 경찰은 류 씨가 농약을 마시고 괴로움을 참지 못해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내린 것이라고 또 거짓말을 했다. 유족들은 경찰의 말을 믿지 않았고, 양측은 오후 4시까지 이 문제로 대치하였다. 그러다가 류 씨의 아버지는 딸의 음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괴로운 마음을 누르고 시신의 부검을 요청했다.

그날 오후 6시가 좀 지나 헝둥현 공안국의 법의학자 천징취안(陳景泉), 청더(曾德) 등 네 명이 시신의 두개골과 복부를 가르고 부검을 했다. 부검 과정 중 류 씨의 아버지는 농약 냄새를 조금도 맡지 못했다. 시신의 왼쪽 다리에는 커다란 멍이 들어 있고, 왼쪽 종아리에도 조그만 멍이 나 있었다. 분명 죽기 전 누군가에게 맞은 흔적이었다. 류 씨의 남편은 시신의 오른쪽 바지 바깥 허벅지부터 종아리 부분까지 닳아 있는 것을 보았다. 부검은 끝났지만 헝둥현 공안국은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아직까지도 부검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3월 2일, 류 씨의 아버지는 친지 10여 명과 함께 사건 발생 현장을 다시 찾았다가 류 씨가 머물던 건물 1층 입구에 두 군데 커다란 핏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1층부터 4층 옥상에 이르는 계단에도 핏자국이 나 있었다. 옥상에는 사람 얼굴 크기만 한 핏자국이 두 군데나 있었는데 모두 모래로 덮여 있었다. 현장을 둘러본 후 류 씨 유족들은 류 씨의 사인(死因)은 음독도, 투신자살도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1층 입구부터 4층까지 끌려온 후 옥상에서 밀려 떨어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제 발 저린 경찰, 허위 사실을 날조해 발뺌

명백한 증거들 앞에서 반박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범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가짜 CCTV 화면을 조작해 유족들을 속이려 들었다. 3월 15일, 헝둥현 공안국 경찰은 류 씨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사람들과 와서 류 씨가 사망할 당시 촬영된 CCTV 영상을 확인하라고 했다.

영상을 본 류 씨 아버지는 경찰이 조작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분노를 금치 못한 그는 따져 물었다.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은 사람 머리에 어떻게 구멍이 나 있을 수 있소? 건물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어떻게 1층부터 4층까지 내내 피를 흘렸을 수 있소? 딸은 떨어져 죽은 게 아니오. 누군가에게 맞아 죽은 거라고!” 법의학자 천 씨는 변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누군가 때려죽였다고 확신하시죠?” 이어 천 씨는 류 씨 가족들에게 류 씨가 농약을 먹고 죽었음을 보여 주는 거짓 증거를 내밀었다. 하지만 여전히 두개골을 열고 검사한 부검 결과는 보여 주지 않았다.

경찰이 한사코 범행 사실을 부인하자, 류 씨의 유족들은 헝둥현 정부에서 일하는 친척 캉(康) 모 씨를 찾아 도움을 청했다. 상황을 확인해 본 캉 씨는 “헝둥현 형사경찰 대대 대장 빈젠펑(賓劍鋒)한테 사건에 대해 물었더니 진화가 내 친척이라는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때려죽이지 않았을 거고 설령 구타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심하진 않았을 거라고 말했어요.”라고 전했다. 이어서 캉 씨는 류 씨의 아버지를 비난했다. “딸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서 정부에서 잡아간 건데, 뭘 더 얘기할 게 있어요? 이건 제 능력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일이에요.”

2015년 3월 18일, 류 씨의 유족들은 다시 헝둥현 공안국을 찾아 류 씨의 사인에 관해 물었지만, 공안국 경찰들은 입을 모아 음독자살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억울함을 호소할 곳을 찾지 못한 유족들은 결국 포기하고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날(18일), 유족들은 류진화의 시신을 화장했다.

42. 크리스천 장춘디, 중국 정부의 박해로 사망한 사례

장춘디(蔣春娣)는 63세 여성으로, 장쑤(江蘇)성 양중(揚中)시 신바(新壩)진 융핑(永平)촌 사람이다. 2008년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한 일반 크리스천이었다. 다음은 장춘디가 경찰의 박해로 사망하게 된 과정이다.

제보자에 따르면, 장춘디는 성실히 본분을 지키며 살아가던 촌사람으로 딸인 장췬(張群, 40세)과 서로 의지하며 지냈고, 농사일을 마치면 곧잘 근처 마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곤 했다고 한다.

2012년 12월 13일 오후 2시경, 장춘디, 장췬 모녀는 같은 마을에 사는 크리스천 몇 명과 함께 마을 노인정을 찾아 복음을 전했다. 노인정에서 나오는 그들 일행을 양중시 신바 파출소의 경찰차가 가로막았고, 이어서 양중시 국가안전보위 대대의 경찰차가 신속히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은 장춘디와 장춘 모녀 등 일행을 체포하고 모두 신바 파출소로 끌고 갔다.

신바 파출소에서 장춘디 일행은 각각 나뉘어 심문을 받았다. 장 씨와 같이 체포된 한 크리스천은 “체포된 당일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계속 심문을 받았습니다. 국가안전보위 대대의 어느 경찰(40세가량, 통통한 체격)이 저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사정없이 발길질을 하며 전도한 일을 자백하라고 강요했어요. 온몸을 두들겨 맞아 참을 수 없이 아팠죠.”라고 당시의 상황을 털어놓았다. 제보자의 말에 의하면, 그날 장 씨 역시 다음날 새벽까지 심문을 받았다고 한다. 경찰은 장 씨를 위협하고, 장 씨의 집을 수색하기 위해 그녀를 끌고 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 연로한 장 씨는 땅에 주저앉아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그녀를 부축해 기어이 집으로 끌고 갔고, 집에서 PMP 플레이어 4대, TF 카드 4장 및 딸 장췬의 노트 몇 권을 찾아 압수했다.

12월 17일, 장춘디의 이웃은 우연히 집 뒷문 앞으로 흐르는 강에서 등이 위로 향한 채 떠 있는 시신 한 구를 발견하고 황급히 경찰에 이를 신고한다. 시신은 장춘디로 밝혀졌다.

장춘디가 사망하자 딸 장췬은 뒷일을 수습하기 위해 앞당겨 풀려났다.

장춘디의 딸 장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치소에서 풀려난 다음 날인 12월 18일, 저는 장례식장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무렵, 촌장 왕더훙(王德宏)이 파출소 부소장과 자칭 법의학자라는 사람을 데리고 갑자기 집에 찾아왔어요. 법의학자라는 사람은 손에 든 기기(녹화 및 녹음용)를 계속 저를 향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부소장은 잔뜩 굳은 얼굴로 강경하게 말했어요. ‘사람이 죽은 건 큰일이지만, 당신 모친은 타살이 아니라 자살이오!’ 그리고 긴장된 눈빛으로 저를 뚫어지게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 일을 어떻게 할 작정이오?’라고 묻더군요. 그때 집에는 교회 서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다시 집을 뒤질까 걱정이 된 저는 어떻게 할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그 사람들의 얼굴이 바로 풀리더군요. 말투도 훨씬 부드러워졌고요. 사실 그 사람들은 제가 어머니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물을 생각인지 확인하려고 온 것이었어요. 그 후에도 제가 생각을 고쳐먹을까 걱정이 된 그 사람들은 사람을 보내 어머니의 사망 수속을 함께 진행하게 했어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장췬은 울분에 차 말했다. “어머니는 의지가 강한 분이에요. 평생 수많은 불행과 충격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끊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으세요. 예전에 투병할 때도, 극심한 통증 때문에 나약해지신 적은 있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어요. 제 언니의 죽음이 어머니에게 큰 충격을 줬던 적도 있지만, 어머니는 그때도 자살을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이런 분이 어떻게 자살을 할 수 있겠어요! 경찰 측의 말은 정말 황당무계합니다. 어머니의 참혹한 죽음을 보면서도 저는 속으로만 울어야 했어요. 공산당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으니까요!”

43. 크리스천 훙자오원, 중국 경찰의 학대로 암이 재발해 사망한 사례

2012년 12월 11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 훙자오원(洪招文)은 저장(浙江)성 린안(臨安)시 톈무산(天目山)진 탄상(坦上)촌에서 복음을 전하던 중, 린안시 위첸(於潜)진 파출소 소속의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훙 씨를 체포할 때 경찰은 거칠게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웠고, 그 바람에 훙 씨의 왼쪽 가슴에 있던 유방암 수술 상처가 심하게 찢어졌다. 후에 암이 재발하여 훙 씨는 결국 2013년 7월 2일 향년 50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피해자 훙자오원은 1964년 3월 28일생 여성으로, 저장성 린안시 톈무산진 탄상촌 사람이다. 2008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이후 교회 사역자로 뽑히게 된다. 훙 씨는 마음씨가 곱고 집안을 성실히 돌보던 사람이었다. 가족 및 이웃과도 사이가 좋아 말썽 한 번 일으킨 적이 없어서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2009년 정월 그믐께, 유방암 판정을 받은 훙자오원은 좌측 유방 절개 수술과 화학 치료를 받았고, 반년 후(2009년 7월) 병세가 회복되어 퇴원하게 되었다. 퇴원할 때, 의사는 ‘힘든 일을 하지 말 것, 절대로 왼팔로 무게가 2.5kg 이상 나가는 물건을 들지 말 것, 격렬한 운동을 하지 말 것, 감기에 걸리지 말 것’ 등 여러 주의 사항을 일러 주며 꼭 지키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수술을 받은 훙 씨의 몸은 약해졌고 면역력도 심각하게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의사가 주의한 사항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기면 암이 재발할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재치료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훙 씨의 몸은 많이 회복되어, 어느새 축전지차를 타고 예배소로 가 예배를 드리고, 사람을 태워 전도를 다닐 수도 있게 되었다. 빠르게 일상생활을 회복한 덕에 사람들은 그녀가 수술과 여러 차례 화학 치료를 받았던 암환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심하게 손상된 수술 상처

2012년 12월 11일 오전 11시 30분경, 훙자오원은 다른 크리스천 두 명과 함께 저장성 린안시 톈무산진 탄상촌의 한 농가에서 복음을 전하던 중, 린안시 위첸진 파출소 소속 경찰 두 명에게 체포되었다. 경찰은 훙 씨의 두 손을 거칠게 뒤로 당겨 수갑을 채웠다. 이 과정에서 훙 씨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훙 씨의 상태를 아는 주민이 경찰을 향해 외쳤다. “그 사람은 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렇게 수갑을 채우면 안 됩니다!”, “이렇게 병이 있는 사람을 체포해서는 안 돼요!” 하지만 두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훙 씨를 끌고 갔다.

위첸진 파출소에 도착한 후, 경찰은 강제로 크리스천 세 명을 나체 검사하고 유치장에 가두었다. 유치장에 갇힌 훙 씨는 다른 크리스천에게 말했다. “수갑을 채운 이후부터 수술한 부위가 계속 아파요.”

30분가량이 지난 후, 경찰은 세 사람을 돌아가며 심문했다. 심문이 끝나고 훙 씨는 수술 부위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는지 온몸을 계속 떨었다. 훙 씨는 두 손으로 가슴을 에워싸고 땅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두 크리스천은 훙 씨가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반적인 통증이라면 훙 씨는 울기는커녕 주변에 아프다고 말도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들은 훙 씨에게 서둘러 다가가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훙 씨는 온몸을 떨며 말했다. “가슴 쪽이 너무 아프고 견딜 수 없이 추워요.” 당시 훙 씨는 추위를 느끼지 않을 만큼 따뜻하게 입고 있었고, 겉에는 패딩 재킷까지 걸치고 있어서 평소라면 추울 리가 없었다.

나중에 경찰은 ‘사회 치안 교란’이라는 죄목으로 훙 씨를 구류 10일형에 처하고, 그날 저녁 6시가 좀 지나 린안시 구치소로 압송했다.

그날 저녁, 훙 씨의 언니가 손을 쓴 덕에 훙 씨는 보석으로 풀려나게 됐고, 저녁 8시가 좀 넘어 린안시 구치소에 도착한 가족들이 훙 씨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손상된 상처, 암이 재발해 치료에도 불구하고 사망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훙자오원은 수갑이 채워질 때 수술한 부위가 심하게 찢긴 탓에 계속해서 통증이 느껴져 두 손을 들 수가 없었다. 체포되기 전 훙 씨는 축전지차에 사람도 태우고 다닐 수 있었지만, 이제는 축전지차에 앉는 것도 다른 사람이 부축해 주어야 했고, 차가 조금만 흔들려도 가슴 부위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2013년 2월, 훙 씨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열이 가라앉지 않고 구토 증세가 멈추지 않았다. 2013년 4월 5일, 훙 씨는 린안시 인민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2013년 6월 5일, 의사는 훙 씨의 남편에게 훙 씨가 이미 암 말기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데리고 돌아가라고 말했다. 훙 씨의 남편은 훙 씨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요양을 시켜 줄 수밖에 없었다.

퇴원 후, 훙 씨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다가 6월 26일이 되어서야 약간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7월 2일 새벽 4시경, 훙자오원은 집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7월 4일, 시신은 린안시 링룽(玲瓏) 화장터에서 화장되었다.

훙 씨의 유족들은 힘이 없었다. 그들은 파출소와 협상을 할 수도, 상고를 할 수도 없었고, 아무런 배상도 받을 수 없었다.

44. 크리스천 허수이인 구류 기간 경찰의 의도적인 치료 지연으로 사망한 사례

허수이인(何水銀)은 1967년 10월 19일생 여성으로, 사망 당시 46세였다.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시 푸양(富陽)구 룽먼(龍門)진 5촌에 살았던 그녀는 2008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09년 6월, 허수이인은 위악성 림프종 판정을 받았지만, 화학 요법과 약물 치료를 받고 병세가 안정되었다. 2010년 4월경, 허 씨는 퇴원하였다. 의사는 허 씨의 가족들에게 집에 가서 몸조리를 잘 시키고 중약(中藥)을 계속 복용하게 하라고 일렀다. 집으로 돌아온 허 씨는 집안일도 하고, 축전지차를 타고 예배에 나가거나 복음을 전하러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몸 상태가 괜찮아졌다.

2012년 12월, 허 씨는 전도하다 경찰에게 체포돼 15일간 구류된다. 경찰은 허 씨가 위악성 림프종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구류 기간 약을 주지 않았다. 거기다 구치소의 음식은 너무 열악했고 양은 부족했다. 호전되어 가던 허 씨의 병세는 다시 악화되었고, 석방 후에는 암세포가 이미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퍼진 상태였다. 2013년 11월 9일, 허 씨는 결국 향년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다음은 허 씨가 박해를 받다 사망에 이르게 된 과정이다.

2012년 12월 16일 오후, 허수이인은 다른 크리스천과 함께 푸양구 룽먼진 5촌에서 복음을 전하던 중, 룽먼진 파출소 소속 경찰 두 명에게 체포되어 룽먼진 파출소로 끌려가게 된다.

파출소에 도착한 경찰은 허 씨 일행의 몸을 수색하고 사진을 찍은 뒤 심문을 시작했다. 경찰은 허 씨가 암 환자고, 매일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사회 치안 교란’이라는 죄목으로 15일 구류형에 처하였다. 12월 17일 새벽, 허 씨는 푸양구 추펑(秋豊) 구치소로 압송되었다.

구치소의 음식은 매우 열악했다. 아침으로는 묽은 국밥과 약간의 반찬이 나왔다. 점심과 저녁은 모두 노랗고 거친 쌀밥에 폐기육과 무 볶은 것이 나왔는데, 누린내가 심하고 무에는 진흙이 묻어 있었다. 볶은 채소는 노란빛을 띠며 기름기라곤 없었고, 토마토 달걀국에 든 달걀은 이미 상해서 더러는 검게 변해 있었다. 구치소에서 허 씨는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했다. 거기다 습하고 차가운 수감실에서 얇고 더러운 솜이불 한 장만 덮고 잤는데 너무 추워서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허 씨의 몸은 점점 저항력이 떨어지며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고, 목과 허리의 림프선이 염증을 일으켜 붓기 시작했다.

허 씨가 갇힌 지 7~8일 되었을 때, 허 씨의 남편은 면회를 갔다가 아내의 목 림프선이 부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남편은 구치소의 경찰에게 약을 주며 아내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경찰은 약을 전해 주지 않았다.

12월 24일, 허 씨는 같은 수감실의 크리스천 장싱천(蔣星辰)에게 자신의 위악성 림프종이 발작해 견딜 수 없이 아프다고 하며, 남편과 언니가 병상 보고서를 전달했는데도 경찰은 끝내 15일 구류 기간을 다 채우게 한다고 말했다. 장싱천은 경찰에게 약을 달라고 하자며 벨을 눌렀다. 벨 소리를 들은 경찰이 들어와 험악하게 외쳤다. “무슨 약을 달라는 거야. 죽어도 싸!”

그 후 며칠간, 허수이인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목과 가슴의 림프는 메추리 알 크기만큼 커졌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그래서 허 씨가 침상에 반쯤 드러누워 있었는데, 이삼 분 후 경찰이 사납게 고함을 질러댔다. “일어나서 이불 개켜! 너희들은 죄수들이야. 어디 마음대로 눕고 싶다고 누워!” 허 씨는 통증을 참고 서둘러 일어났다.

구치소의 경찰이 허 씨에게 약을 전해 주지 않은 데다가 영양 결핍까지 더해져 허 씨의 병세는 급속히 악화되었고, 목과 허리의 림프는 부기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허 씨는 매일 병마의 고통과 싸우고 밤에는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석방일까지 힘겹게 버텼다.

2013년 1월 1일, 허 씨는 형기를 채우고 풀려났다. 허 씨의 남편은 바로 그녀를 푸양시 인민병원으로 데려가 검진을 받게 했는데, 의사는 암세포가 이미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어 화학 요법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고 진단했다. 허 씨는 병원에서 15일가량 수액을 맞았지만 잔뜩 부은 림프는 가라앉지 않았고,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약물 복용 기간, 허 씨의 몸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고,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곤 유동식 약간이 전부였다.

2013년 7월경, 허 씨의 몸은 나빠질 대로 나빠졌고, 겨드랑이와 두 허벅지 안쪽 림프는 성인의 주먹 크기만큼 부어올랐다. 양 볼 아래 림프도 한 손으로 쥐어지지 않을 만큼 부었다.

2013년 11월 9일, 병마에 시달리던 허수이인은 향년 46세의 나이로 결국 사망하고 만다.

45. 크리스천 류진성, 중국 정부의 박해로 병들어 사망한 사례

류진성(劉金生)은 1940년 10월 17일생 남성으로, 장시(江西)성 이춘(宜春)시 완자이(萬載)현 출신이다. 2004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한 류진성은 동네 외과 의사로 신체가 건강하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2009년 9월, 류진성이 교회 재산 16만 위안(한화 약 2,694만)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완자이현 공안국 경찰은 두 차례 류 씨의 집을 찾아 닥치는 대로 뒤져 류 씨가 모은 돈을 모두 몰수해 갔다. 그 바람에 생활이 힘들어진 류 씨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69세의 고령의 몸을 이끌고 힘든 육체노동을 해야 했고, 이웃의 비웃음과 조롱에 시달려야 했다. 정신적 학대와 과중한 노동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류 씨는 결국 간암에 걸려 2011년 9월 16일 세상을 떠난다. 다음은 류 씨가 경찰의 가택 수색과 체포 등 박해를 당해 사망하게 된 과정이다.

두 차례 가택 수색, 칠순 크리스천의 전 재산을 앗아간 경찰

2009년 9월 어느 날 밤 9시가 좀 지나 장시성 세 곳의 경찰 다섯 명(핑샹(萍鄕)시 국가안전보위 대대, 이춘시 공안국, 완자이현 공안국)이 류진성의 집을 급습해,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닥치는 대로 집안을 뒤져 교회 서적과 3만 위안(한화 약 505만 원)을 찾아냈다. 류 씨는 자신이 평생 힘들게 모은 돈을 가져가지 말라고 경찰에게 애원했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집을 뒤졌다.

경찰 한 명이 쇠갈고리를 휘두르며 새 면이불을 찢고, 수납장과 나무 궤짝을 부숴 망가뜨렸다. 그래도 교회 재산을 찾지 못하자 류 씨 부부에게 악을 썼다. “어서 말해! 교회 돈 16만 위안 어디다 숨겼어?” 겁을 먹은 류 씨 부부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류 씨의 아내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류 씨도 무섭긴 했지만, 끝끝내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았다.

밤 12시가 좀 지나 경찰은 찾아낸 3만 위안과 교회 서적뿐 아니라 집에 있던 손전등과 식료품 봉투에서 찾아낸 푼돈까지 남김없이 가져가 버렸다. 류 씨도 그 길로 완자이현 공안국으로 끌려갔다.

다음날 오전 9시경, 경찰 세 명이 다시 류 씨 집을 찾아 집에 남아 있던 생활비 1천 위안(한화 약 17만 원)까지 뒤져 가져가 버렸다. 경찰은 류 씨 아내에게 교회 재산 16만 위안의 영수증이 어디 있는지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하자 그제야 집을 떠났다.

주위의 조롱과 중노동에 시달리다 병으로 사망

경찰은 류진성을 노동교화소로 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고령인 류 씨에게 사고라도 나면 책임을 물을까 우려한 경찰은 류 씨를 잡아온 지 3일 후 가족들에게 강제로 6천 위안(한화 약 1,010만 원)을 받아내고 그를 풀어 주었다.

류 씨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에 모아뒀던 돈을 모조리 빼앗기고 교회 서적도 몰수당한 상태였고, 친지와 친구, 이웃들은 류 씨를 비웃고 조롱하기 시작했다. 서너 살 먹은 이웃집 아이조차도 조그만 회초리로 그를 쫓아다니며 때렸다. 류 씨는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경찰에게 재산 몰수와 체포되기 전, 류 씨는 매끼 밥을 두 그릇씩 비울 정도로 건강했고 성격도 쾌활했지만, 석방된 후에는 말수가 적어지고 성격도 침울하게 변했다. 작은 공기에 든 밥도 다 먹지 못했고 어떤 때는 식사도 하지 않고 잠도 이루지 못하며 남몰래 울곤 했다. 몸도 점차 쇠약해졌다. 한 달이 지나자, 류 씨의 몸은 급격히 앙상해졌고, 얼굴은 마치 근육이 깎여 나간 것처럼 변했다.

그 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류 씨는 채소를 키워 팔고, 산에 올라 삼나무 가지를 주워다가 팔기도 했다. 육체노동이라곤 해 본 적이 없던 그는 지쳐 기진맥진했다. 류 씨는 배에 통증을 느꼈지만, 집에 있던 돈을 경찰이 깡그리 가져가 버린 탓에 치료를 받을 여윳돈이 없었다. 류 씨는 돈을 아끼려고 통증을 참고 일을 하러 나갔다.

2011년 7월, 류 씨는 배의 통증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병원에 가 검진을 받아보았다. 의사는 간암 말기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2011년 9월 16일, 류진성은 향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46. 크리스천 웨이슈샹, 경찰의 가혹 행위로 병세가 악화돼 사망한 사례

웨이슈샹(魏秀香)은 1965년 9월 26일생 여성으로, 랴오닝(遼寧)성 번시(本溪)시 난펀(南芬)구 출신이다. 2004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12년 10월 간경변 및 결절이 발견되어 입원한 웨이슈샹은 치료를 받고 병세가 안정되자 교회 크리스천을 접대하는 본분을 이행했다. 그러던 2013년 6월 22일, 웨이 씨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에 체포된다. 체포 후, 경찰은 웨이 씨가 중증 간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밥을 주지 않은 채 고문 의자에 앉히고 2박 3일 동안 괴롭힌다. 웨이 씨의 얼굴색은 검푸르게 변하고, 눈가도 검어졌다. 온몸이 붓고, 특히 다리는 부기 때문에 걸을 수조차 없었다. 웨이 씨가 파출소에서 죽으면 책임을 질까 우려한 경찰은 6월 24일 밤에 그녀를 석방했다. 웨이 씨가 풀려난 후에도 경찰은 여전히 그녀를 미행하고 감시했다. 항상 공포 속에서 생활하며 제대로 몸조리를 하지 못해 결국 병세가 악화된 웨이 씨는 2015년 향년 50세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다음은 웨이슈샹이 박해로 사망하게 된 상세한 과정이다.

간경변을 앓던 웨이슈샹, 체포된 후 사흘간 심문당해

2013년 6월 22일 오전 8시, 누군가 웨이슈샹의 집 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며 위생비를 걷으러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뭔가 의심스럽다고 여긴 웨이 씨는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30분가량이 지난 후, 웨이 씨 현관문에 달린 외시경이 폭발하며 3cm가량의 구멍이 뚫렸고, 놀란 웨이 씨는 심장병이 발작하고 말았다. 이어서 경찰 예닐곱 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집안에 있던 웨이 씨와 여성 크리스천 두 명을 체포했다. 그리고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집안을 수색해 돈이 될 만한 물건은 전부 압수해 갔다.

웨이 씨는 번시(本溪)시 시후(溪湖)구 허시(河西) 파출소로 끌려가, 고문 의자에 묶여 집중 심문을 받았다. 심문 과정에서 웨이 씨는 경찰이 이미 자신을 4개월간 미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웨이 씨는 경찰들이 집 건물 아래에서 고기구이 점포를 운영하는 척했던 것임을 알아차렸다. 경찰은 간경변을 앓고 있는 웨이 씨를 2박 3일간 심문하면서 음식을 주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웨이 씨의 얼굴은 검푸르게 변했고, 눈가도 검어졌다. 온몸이 부었고, 특히 다리는 부기 때문에 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경찰은 웨이 씨가 파출소에서 죽으면 책임을 물게 될 것을 우려하여 2013년 6월 24일 한밤중에 그녀를 석방하였다. 파출소에서 나왔을 때 방향을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웨이 씨는 어렵사리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경찰의 미행과 감시, 괴롭힘을 피해 장기간 도피 생활 중 결국 병사한 웨이슈샹

2013년 7월, 베란다에서 운동을 하던 웨이슈샹은 맞은편 건물에서 누군가 망원경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이 여전히 자신을 감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2013년 8월, 웨이 씨는 번시시 난펀구에 있는 어머니 집에 15일 정도 머물렀는데, 이 기간 난펀 주민 센터와 난펀구 파출소의 경찰이 어머니 집을 찾아와 호구 조사를 하였다.

2013년 9월 말, 웨이 씨는 경찰의 감시와 체포를 피해 궈자바오(郭家堡) 지역에 몸을 숨긴다. 하지만 그녀의 행적을 빠르게 파악한 경찰은 웨이 씨가 세 들어 사는 집 창문 맞은편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앞 건물에 사람을 배치해 웨이 씨를 감시하게 했다. 경찰이 여전히 자신을 감시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리던 웨이씨는 다시 안후이(安徽) 지역으로 도망쳤다.

2014년 7월 23일 오후, 피를 토하고 병원에 실려 간 웨이 씨는 5일간 정신을 잃었다가 가까스로 깨어났다. 웨이 씨가 입원한 동안, 파출소와 해당 주민 센터에서는 열쇠 수리공을 찾아 웨이 씨 셋방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수리공이 문을 열어 주지 않자, 경찰은 집주인을 시켜 웨이 씨의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웨이 씨의 집에 들어가 그녀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한다.’고 전하게 했다.

2015년 1월 22일, 웨이 씨는 다시 피를 토하고 입원했다. 2015년 3월 초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간 웨이 씨는 집의 자물쇠가 비틀려 있고, 전기 스위치가 내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 문을 따고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경찰은 2년간 웨이 씨를 미행하고 감시했고, 웨이 씨는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일곱 차례나 이사를 다니며 두려움으로 마음 졸이는 생활을 해야 했다. 제대로 요양을 하지 못한 탓에 몸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계속되는 도피 생활과 이로 인한 공포감, 괴로움으로 웨이 씨의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결국 간암 말기로 발전하게 된다.

2015년 11월 29일, 웨이 씨는 병원에서 향년 5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47. 크리스천 장궈화, 중국 정부의 박해로 병세가 악화돼 사망한 사례

장궈화(張國華)는 1959년 9월 17일생 남성으로, 장시(江西)성 장수(樟樹)시 장자산(張家山)거리 저우상(洲上)촌 출신이다. 2003년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가 2009년 4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12년 12월 12일 오전, 장궈화와 크리스천 네 명은 장시(江西)성 가오안(高安)시 신제(新街) 농산물 시장에서 전도하던 중 경찰에게 체포되어 신제 파출소로 끌려갔다.

파출소에 도착한 경찰은 장궈화의 몸을 뒤져 휴대폰 한 대와 고혈압약 등을 찾아내 압수하고 심문을 시작했다.

심문 후, 신체검사를 진행하던 경찰은 장 씨의 혈압이 180mmHg에 이르고 상태가 위험함을 발견했지만, 예정대로 장 씨를 가오안시 구치소로 압송했다. 장 씨는 지난 2년간 고혈압을 앓고 있었고, 계속 약물로 병세를 다스려 오던 차였다. 구금 기간, 경찰은 장 씨에게 가장 싼 고혈압 치료제만 제공했는데, 병세를 다스리긴 역부족이었다.

2013년 4월 26일, 가오안시 법원은 ‘사교 조직을 이용해 법률 실시를 파괴한 죄’로 장 씨에게 징역 5개월 형을 선고한다. 장 씨는 가오안시 구치소로 압송되었다.

4월 28일,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고 기온은 30도까지 올라갔다. 감옥 바깥 공기는 찌는 듯이 뜨거웠다. 가오안시 구치소 소장 차오(曹) 모 씨는 장궈화와 다른 죄수들에게 구치소 외벽 쪽 채소밭에서 김매는 일을 시켰다. 오후 1시 30분경, 혈압이 치솟기 시작한 장 씨는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렸다. 몸이 흔들거려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지만 소장 차오 씨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저녁 7시가 좀 지나 장 씨의 병세는 한층 악화돼 머리가 어지럽고 계속 침이 흘렀다. 같은 방 죄수들이 재빨리 당직 경찰에게 이를 알렸다. 장 씨가 발병하고 악화되기까지 경찰은 장 씨에게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고, 경찰 두 명이 장 씨를 가오안시 인민병원으로 데려갔을 때는 이미 의식 불명 상태였다. 진단 결과, 우측 머리의 넓은 부위에 뇌경색이 나타났고, 고혈압은 3기로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병세가 심각해 장 씨는 다음날 장시성 인민병원으로 옮겨졌다.

입원한 지 20일 후,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고액의 치료비를 피하기 위해, 구치소 측은 경찰 두 명을 병원으로 보냈다. 병원에 도착한 경찰들은 편지지에다 대충 석방증을 작성한 후 장 씨에게 서명하게 하고는 장 씨를 병원에 버려두고 떠나 버렸다. 의사는 장 씨의 아들에게 치료 시기를 놓쳐 발생한 후유증은 회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2013년 6월 14일, 48일간 치료를 받고 장 씨는 퇴원했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좌반신이 마비되어 생활 능력을 잃어버렸다. 청력도 현저하게 떨어졌고 말도 분명치 않았다. 기억력은 심각하게 감퇴했고, 여러 신체 기능이 모두 손상되었다. 장 씨의 아들은 아버지의 치료비로 약 6만 위안(한화 약 1,010만 원)을 썼는데, 비싼 치료비를 대느라 원래 가난했던 가정 형편은 더욱 힘들어졌다.

퇴원 후에도 장 씨의 가족들은 돈을 주고 사람을 써 장 씨를 돌보게 했다.

그 후에도 장 씨의 몸은 계속 나빠졌고, 2018년 2월 17일에 고혈압이 다시 발병했다. 치료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인 21일, 장 씨는 향년 59세의 나이로 결국 사망하였다.

48. 크리스천 저우청인, 중국 정부의 계속된 위협으로 사망한 사례

저우청인(周成寅)은 1938년 12월 30일생 남성으로, 충칭(重慶)시 중(忠)현 황진(黃金)진 간톈(甘田)촌에 살았다. 저우청인은 칭하이(靑海) 문교국에서 근무했었고, 그 후에는 줄곧 농사를 지었다. 2000년 6월 예수를 믿기 시작했고, 2001년 5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저우청인은 중국 정부에 체포돼 자백을 강요받으며 고문에 시달렸고, 가택 수색도 세 차례나 당했다. 2015년 5월 5일, 저우 씨가 중병으로 앓아누워 있던 중에도 경찰은 집에 찾아와 그를 협박하였다. 그 후 저우 씨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결국 사흘 후 사망하였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체포된 저우청인, 사흘간 고문에 시달려

2002년 3월 초 어느 날 저녁 8시경, 저우청인은 집 2층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필사하고 있었다. 그때 충칭(重慶)시 중(忠)현 간징(干井)진 파출소 소속 남자 경찰 네 명이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경찰 한 명이 근무증을 보여 주며 말했다. “당신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제보가 있었소!” 말이 끝나자마자 경찰 네 명은 2층으로 올라가 집을 수색하기 시작해, 집 안에 있던 동화(銅幣), 동전(銅錢), 경화(硬幣) 일부와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필사본 너덧 장을 찾아내 압수했다. 밤 10시, 경찰은 저우 씨를 충칭시 중현 간징진 파출소로 끌고 갔다.

파출소에 도착해서, 경찰은 다른 크리스천들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사흘 밤낮을 음식과 물도 주지 않으며 저우 씨를 심문했다. 공중에 6시간이나 매달아 놓고(발끝으로만 바닥을 디디게 함) 심문하기도 했다. 그래도 저우 씨가 아무 정보도 털어놓지 않자, 경찰은 그의 다리를 거세게 걷어차며 64세의 저우 씨를 숨이 넘어갈 정도로 괴롭혔다. 경찰은 심문에 성과가 없고, 또한 저우 씨가 혹여나 파출소에서 죽어 번거로운 일이 생길까 우려하여 벌금 200위안(한화 약 3만 4천 원)을 받고 저우 씨를 풀어 주었다.

다시 집을 급습해 수색한 경찰, 도망 길에 오른 저우청인 부부

013년 4월 5일 오전 9시경, 촌장 레이샤오화(雷小華)가 충칭시 중현 황진진 파출소 소속 경찰 여섯 명을 데리고 저우청인의 집을 찾았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경찰은 집안 곳곳을 닥치는 대로 뒤져 MP4 플레이어 1대, TF 카드 1장, 교회 자료 10부를 압수했다. 또 서류 한 장을 꺼내 저우 씨의 아내 저우전(周珍, 가명)에게 서명을 강요했지만 저우전은 거부했다. 경찰은 위협적으로 말했다. “4월 18일 오전 저우청인과 함께 황진진 파출소로 출석하시오. 오지 않으면, 그땐 지금처럼 대하지 않을 것이오!” 집으로 돌아와 상황을 들은 저우청인은 아내와 함께 집 뒤편에 있는 대나무 숲에 사흘 밤낮을 숨어 지내며 매일 약간의 과자와 물로만 배를 채우며 버텼다. 경찰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저우 씨 부부는 결국 집을 떠나 이리저리 도망을 다니며, 매일 두려움으로 마음 졸이는 생활을 해야 했다.

2다시 집에 찾아온 경찰의 협박에 병이 악화돼 사망한 저우청인

오랜 기간 압박감과 공포심에 시달린 끝에 저우청인은 고혈압과 심뇌혈관 질환을 앓게 되었다. 발병 때마다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나, 누군가 두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인공호흡 하는 것처럼 압박해 줘야 했다.

2015년 2월, 병세가 악화되어 몸이 붓기 시작한 저우 씨는 몸져눕게 되었다.

2015년 5월 4일, 저우 씨 집에 찾아온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 두 명을 본 이웃이 황진진 파출소에 이를 신고했다.

5월 5일 오전 8시경, 촌 서기는 황진진 파출소의 남자 경찰 네 명을 데리고 저우 씨 집을 찾았다. 병석에 누워 있는 저우 씨의 몸은 잔뜩 부어 볼품이 없었다. 경찰은 저우 씨의 병세는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추궁했다. “당신 집에 온 자들이 누구야? 얼마 만에 한 번씩 이 집에 오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어디다 숨겼어?” 저우 씨는 대답했다. “병으로 이 모양이 되었는데 어떻게 사람을 숨길 수 있겠어요!” 경찰은 저우 씨의 눈앞에 수갑을 흔들며 큰 소리로 위협했다. “죽지도 않는 영감 같으니, 누구랑 연락했어? 그 두 사람이 누군지 말하지 않으면 다시 잡아가서 징역을 살게 할 거야!” 그래도 저우 씨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경찰은 온 집을 이 잡듯 뒤져 교회 자료 8부를 찾아냈다. 경찰은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떠났다. 경찰들이 떠난 후, 저우 씨는 두려워 침대 위에 앉아 있기만 했다. 그 후 병세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더니 사흘 후(2015년 5월 8일) 갑자기 사망하고 말았다. 향년 77세였다.

49. 크리스천 류리메이, 중국 정부의 오랜 감시와 협박에 정신 이상으로 강에 투신자살한 사례

22014년 11월 16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 류리메이(劉立梅, 가명 리징(李靜))는 5년간 지속된 경찰의 감시와 협박,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산시(山西)성 뤼량(呂梁)시에서 강물에 투신해 자살하고 만다. 향년 44세였다.

류리메이는 산시(山西)성 숴저우(朔州)시 핑숴(平朔) 중국매탄그룹 생활 지역에 살았던 여성으로, 의료업계에 종사했다. 2006년 4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한 류 씨는 집에서 정성껏 형제자매를 접대했다. 류 씨는 시원시원하고 친절한 성품의 소유자로 밝고 명랑했었다고 그녀의 친구와 직장 동료들은 전한다.

불법 구류된 류리메이

2009년 7월 17일 저녁 무렵, 남편과 집으로 돌아가던 류리메이는 녹지 구역에 잠복해 있던 경찰 십여 명에게 저지당한다. 경찰들을 이끄는 자는 산시성 숴저우시 공안국 국가안전보위 대대 대장 차오르원(喬日文)과 숴저우시 공안구 처장 셰(謝)모 씨였다. 류 씨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경찰 두 명이 달려들어 류 씨의 팔을 하나씩 비틀어 잡았다. 그리고 또 다른 경찰이 뒤에서 류 씨의 목을 눌러 강제로 차에 태웠다. 그들은 숴저우시 공안국 지하 심문실로 류 씨를 데려갔다.

셰 처장은 류 씨의 남편에게 수배 영장을 보여 주고, 뒤를 이어 온 숴저우시 공안국 국가안전보위 대대 대장 차오르원이 경찰 몇 명을 데리고 류 씨의 집을 수색하러 갔다. 그들은 노트북 2대, VCD 플레이어 1대, 컴퓨터 본체 2대, MP3 플레이어 2개, 교회 서적 10여 권 및 교회 CD 60여 장을 찾아내 압수했다.

경찰 내부 인사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전화를 감시해 류리메이가 교회 상급 리더를 집으로 맞은 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교회 리더 및 교회 내부 정보를 털어놓게 하기 위해, 차오르원 대장, 여경 가오르화(高日華)와 장링쥐안(張玲娟) 등은 2박 3일간 류 씨를 심문했다. 심문 기간, 경찰은 류 씨에게 잠을 재우지 않고, 장시간 기마자세를 취하도록 했다. 부정맥과 위염, 허리 디스크 등을 앓고 있었던 류 씨는 체력이 달려 몇 번이고 땅에 쓰러졌지만, 경찰은 이를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류 씨의 인격을 모욕하기도 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독하고 비방하는 말과 교회를 공격하는 말로 류 씨를 세뇌했다. 또 류 씨의 아들과 연로한 부모를 들먹이며 교회 정보를 털어놓으라고 협박했다. 심문은 9일간 이루어졌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7월 26일, 류 씨 가족들의 요구로 숴저우시 공안국은 보석처리를 진행해, 류 씨 사건을 숴저우시 공안국 신설 분국으로 넘기고 류 씨 가족들에게 5만 위안(한화 약 838만 원)을 요구했다. 경찰 측은, 류 씨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사교 조직을 이용해 법률 실시를 파괴한 죄’에 해당한다며, 사건 조사 기간 류 씨는 해당 지역을 떠나서는 안 되고 정기적으로 분국에 출석해 사상 보고를 써야 하며, 언제든 부르면 출석하라고 경고했다.

류리메이를 5년간 엄중히 감시한 경찰

생전 류리메이는 묵상 노트에, ‘석방 후에도 숴저우시 신설 분국 경찰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았다.’라고 남긴 적이 있다. 류 씨 가족들의 휴대폰은 일 년 내내 감시를 받았고, 류 씨는 색깔이 다른 낯선 차들이 번갈아 가며 그녀의 집 근처에 주차된 것을 자주 목격했다. 류 씨가 외출할 때마다 그 뒤를 쫓는 차량이 있었다. 직장에서도 수상한 사람이 사무실 바깥을 배회하는 것을 보았는데, 류 씨가 사무실에서 나오면 그 사람은 깜짝 놀라며 사라지곤 했다. 이후 반년 간, 숴저우시 신설 분국 국장 왕쥔우(王俊武), 경찰 간부 류룬팡(劉潤芳)은 삼사일에 한 번씩은 류 씨의 직장을 찾아 류 씨에게 다른 크리스천과 연락하는지 캐묻고 누군가 류 씨에게 연락을 취해 오면 바로 자신들에게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왕쥔우는 류 씨의 상사에게 류 씨를 압박하라고 명했고, 류 씨는 신앙 때문에 상사의 질책과 동료들의 비웃음을 당해야 했다. 이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었고, 반년 후 류 씨는 어쩔 수 없이 응급과 주임 자리에서 사직해야 했다.

10개월 후, 경찰은 또 류 씨의 이웃집 벽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24시간 류 씨를 감시하였다. 그 이후 이삼 년간, 숴저우시 신설 분국의 경찰 가오르화, 류룬팡 등은 각종 구실로 류 씨의 집에 들이닥쳐, 신앙 상황과 최근의 행적에 대해 캐묻고 또 하나님을 믿었다간 잡아가겠다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류 씨 가족들은 매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지내야 했다. 경찰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류 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을 나가 몸을 숨겼다.

오랜 기간 고도로 긴장되고 억압된 상태로 지낸 탓에, 류 씨는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외향적이고 활달하던 성격은 조용하고 침울하게 변했다. 거기다 구금 기간 경찰에게 당한 학대 때문에 몸과 정신 상태가 갈수록 나빠졌다. 2년 후, 류 씨는 병으로 쓰러져 요양을 해야 했다.

막다른 길에 몰린 류리메이

2014년 6월경, 중국 정부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크리스천을 대상으로 대규모 연합 체포 작전을 펼친다는 소식을 들은 류 씨는 그 달 22일 다시 집을 떠나 숴저우시 산인(山陰)현에 있는 60제곱미터도 안 되는 작은방에 숨어 지냈다고 류 씨의 남편은 전했다.

류 씨가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안 가오르화는 여러 차례 남편에게 그녀의 행적에 대해 캐물었고, 남편의 직장 상사를 부추겨 그에게 압력을 가하게 했다. 하지만 박해로부터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남편은 류 씨의 행방을 밝히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류 씨는 극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불안감에 휩싸였다. 누군가 방 안에 사람이 있다고 신고할까 봐 낮에 외출도 하지 못하고, 밤에는 불도 켜지 못했다. 음식을 할 엄두는 더욱이 내지 못했다. 류 씨의 남편도 경찰에게 미행당할 것을 우려해 마음대로 아내를 보러 가지 못했다. 비 오는 날이나 오후의 낮잠 시간, 밤 시간을 틈타 몰래 택시를 타고 가 류 씨에게 일용품을 전해 주었다. 아내를 만나는 시간은 고작 2시간 남짓했다. 이렇게 류 씨는 많은 시간 홀로 작은방에 숨어 지냈다. 대화 상대도 없이 혼자 불안감에 시달리던 류 씨의 정신 상태는 날이 갈수록 불안정해졌다. 오랜 시간 겁을 먹고 지낸 탓에 류 씨의 몸은 심하게 쇠약해졌고 음식물을 넘기기도 힘들어했다.

결국 류 씨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2014년 11월 16일 산시성 뤼량시의 강에 투신해 자살하고 만다.

류 씨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도 신설 분국은 류 씨에게 출석해 사상 보고를 할 것과 신앙을 포기할 것을 강요했다. 44세 밖에 되지 않은 크리스천은 이렇게 중국 정부의 박해로 죽고 말았다.

50. 크리스천 바이융롄 중국 정부의 박해로 압박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례

바이융롄(白永連, 가명 샤오정(小鄭))은 1979년 8월 5일생 여성으로, 칭하이(靑海)성 후주투(互助土)족 자치(自治)현 웨이위안(威遠)진에 살았다. 2005년부터 예수를 믿었고, 2010년 10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입교했다. 2012년, 바이융롄은 전도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39일간 구류되었다. 친정 식구들이 여기저기 금품을 전하며 손을 쓴 끝에 보석처리로 풀려났는데, 후에 다시 징역 3년 형 및 집행 유예 4년 형을 선고받는다. 석방된 후에도 바이 씨는 오랜 기간 중국 정부의 엄밀한 감시를 받았고, 친지들의 모욕과 비웃음,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남편과 이혼하라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여러 압박을 견디지 못한 바이 씨는 2016년 37세의 나이로 자살하고 만다. 다음은 바이융롄이 중국 정부에 박해받아 사망하기까지의 과정이다.

2012년 12월 13일 오후 3시경, 후주(互助)현 청둥(城東) 농업 은행 저축소에서 돈을 찾던 바이융롄은 한 크리스천에게 함께 전도하러 가자고 전화를 걸었다가 경찰에게 위치를 추적당하고 만다. 후주현 공안국 국장 위위안쿠이(俞元奎)를 필두로 한 사복 경찰 네 명이 은행 입구에서 바이 씨를 체포해(영장은 제시하지 않았음), 후주현 형사경찰 대대로 끌고 갔다.

그날 저녁 7시경, 국가안전보위 대대 대장 짠훙쿠이(昝洪奎)와 경찰 두 명이 전도에 대해 심문했지만 성과가 없자, 채찍을 들고 바이 씨를 위협했다. 그리고 딸의 학교를 거론하며 바이 씨와 남편이 하나님을 믿어 체포된 일을 전교 선생님과 학생에게 알리면 딸은 고개도 못 들고 다닐 것이라고 협박했다. 심문은 12월 14일 오전 7시, 바이 씨가 자신과 가족들이 전도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그날 저녁, 바이 씨는 후주현 구치소로 압송되어, 12월 15일 ‘사교 조직을 조직 및 이용하여 법률 실시를 파괴한 죄’로 형사 구류된다. 12월 31일, 경찰은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바이 씨가 잠시 친정에 가져다 둔 교회 서적 20여 권, 전도 자료 50여 부 등 물품을 찾아내 압수했다.

2013년 1월 21일 저녁, 바이 씨는 보석처리로 풀려났다. 1월 22일, 바이 씨는 후주현 공안국의 명령으로 보증금 5천 위안(한화 약 83만 원)을 냈다(이후 1천 위안(한화 약 16만 8천 원)만 돌려받고, 나머지 4천 위안(한화 약 67만 원)은 ‘벌금’이라는 명목으로 돌려받지 못함).

2013년 6월 하순의 어느 날, 국가안전보위 대대의 경찰이 바이 씨를 소환하여 그녀가 징역형을 선고받을 거라고 알렸다. 바이 씨의 투옥을 막기 위해 친정 가족들은 관계자에게 6천 위안(한화 약 100만 원)을 썼고, 법원에도 1만 5천 위안(한화 약 252만 원)을 보냈다. 2013년 12월 5일, 후주현 법원은 ‘사교 조직을 이용해 법률 실시를 파괴한 죄’로 바이 씨에게 징역 3년 형 및 집행 유예 4년 형을 선고한다. 경찰은 바이 씨에게 한 달에 한 번 웨이위안진 사법소에 와서 사상 보고서를 내고, 파출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출석하라고 명했다. 그리고 휴대폰은 항상 켜두고 언제든 부르면 출석하라고 일렀다. 날짜가 지나도 바이 씨가 출석하지 않으면 경찰은 바로 바이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후, 바이 씨의 휴대폰은 늘 경찰에게 위치 추적과 감시를 당했고, 그녀의 모든 행적은 경찰의 감시 아래 있었다. 한 번은, 한 크리스천이 바이 씨 집을 방문한 것을 경찰이 알게 되었다. 후주현 안보 대대의 여경(바이융롄의 동창)은 바이 씨의 가족들을 시켜 ‘만일 크리스천이 집에 온 게 발각되면 그자를 잡아다가 징역형에 처할 것’이라는 경고를 바이 씨에게 전하게 했는데, 이 일은 바이 씨에게 큰 두려움을 가져다주었다. 경찰은 이후에도 자주 휴대폰 메시지를 보내며 바이 씨를 감시했다. 오랜 시간 경찰의 엄격한 감시로 바이 씨는 늘 긴장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에서 힘들게 생활해야 했다.

바이 씨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위로하기 위해 그녀를 집으로 불러 맛있는 음식을 해 먹으려고 했지만 바이 씨는 마음이 지쳐 음식을 해 먹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서 바이 씨는 말했다. “그들이 쓰라고 시킨 걸(사상보고를 가리킴) 아직도 못 쓰고 있어요. 하지만 시간 맞춰 제출해야 해요.” 가끔 시어머니는 바이 씨와 함께 우체국을 찾아 복역 중인 아들(바이 씨의 남편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징역 3년 형에 처했음)에게 물건을 부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바이 씨는 시어머니에게 경찰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며 창피해서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고 말했다.

바이 씨와 남편이 하나님을 믿고 전도를 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친정 가족들은 바이 씨를 비웃고 모욕하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도 그녀를 멸시하였다. 딸이 또 신앙 때문에 체포될까 우려한 어머니는 바이 씨를 여동생이 연 유치원에서 일하게 하며, 남편과 이혼하라고 압박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압박에 바이 씨는 항상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바이 씨는 주위의 크리스천들에게 하소연했다. “항상 경찰에게 감시당하고 있어요. 매번 경찰에게서 전화가 올 때마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요. 괜히 여러분까지 잡혀갈 수도 있으니 이제 여기 오지 마세요. 지금 친정 식구들은 다 저를 비난하고, 어머니마저 저를 멸시해요. 공안국에 있는 동창도, 지인들도 모두 저를 비난하고 있어요. 저는 이제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오랫동안 계속된 정부의 엄격한 감시와 주변 친지들의 비웃음, 모욕을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바이융롄은 2016년 7월 13일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당시 그녀는 겨우 3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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