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네 성품에 변화가 생길 수 있는지 여부는 네가 성령의 현재 말씀을 따를 수 있는지, 네게 참된 인식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는 너희가 과거에 이해한 것과는 다르다. 과거에 이해했던 성품 변화는 남을 쉽게 판단하던 네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더 이상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저 한 가지 측면의 변화일 뿐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로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다. 사람은 성품을 스스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고난과 연단, 또는 책망과 훈계, 징계를 겪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며,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거나 기만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연단을 받아야 성품에 다소 변화가 보인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징계와 책망을 겪은 사람만이 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침착하며 진중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현재 말씀과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을지라도 관념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말한 성품 변화란 주로 자신을 저버리는 것이었다. 즉, 육신이 고난받고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키며 육적인 취향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도 성품 변화의 일면이다. 지금은 모두 성품 변화의 실제적인 모습이 하나님의 현재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새 사역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갖는 것임을 알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여태까지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관념적 인식을 벗어던져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품 변화의 참된 모습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 중에서

『사람이 행위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진리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열정으로는 그저 도리에 근거해 규례를 지킬 수 있을 뿐, 진리가 없는 사람은 본질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도리는 진리를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다르다.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으며, 모든 일을 분별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어떻게 해야 진리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또한, 자신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이 어떤 성질인지 알고 있으며, 사람의 생각과 관념이 드러날 때 그것을 분별하여 육을 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성품이 변화된 사람의 모습이다. 성품 변화의 가장 주된 모습은 진리를 밝히 깨닫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진리 실행이 비교적 정확하며, 패괴된 성품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행위가 남달리 이성적이고 분별력이 있다. 진리를 깨달았기에 교만하고 독선적인 모습을 적게 드러내며, 드러내는 많은 패괴된 성품을 명확히 알고 분별할 수 있기에 교만해질 수 없다. 사람이 마땅히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이성적인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본분을 지키는 것인지,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러한 일들을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비교적 이성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품이 변화된 사람만이 진실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낸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진리가 있기에 말을 할 때도, 어떤 일을 하거나 일을 바라볼 때도 진리에 근거해 할 수 있으며, 무슨 일을 하든 원칙이 있다. 또한, 어떤 사람과 일, 사물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주관을 지키며, 진리의 원칙을 견지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성품은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쉽게 끓거나 식는 일이 없으며, 어떤 환경에서든 어떻게 해야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겉으로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일지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를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은 것 같고, 큰일을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지만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의의와 가치, 그리고 실질적 성과가 있다.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틀림없이 많은 진리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그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일을 처리하는 원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진리가 없으면 결코 성품이 변화되지 못한다. 성품 변화는 인성이 성숙하고 노련해진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주로 사람의 본성 안에 있는 사탄의 독소가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바뀐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탄의 독소가 정결케 되고,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가 그 사람의 내면에 뿌리내려 생명과 생존 토대가 됨으로써 그를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성품이 변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품 변화는 사람의 외적인 성품이 전보다 온순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교만한 편이었는데 지금은 이성적으로 말한다든가, 예전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래도 다른 사람의 말을 좀 듣는다든가 하는 외적인 변화로 성품이 변화되었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성품 변화에는 당연히 이러한 변화도 포함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적 생명에 변화가 생기고,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가 그 사람의 내면에서 생명이 된 것이다. 내면에 있던 사탄의 독소가 없어지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져 세상의 관점과 맞는 것이 하나도 없으며, 큰 붉은 용의 음모와 독소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고, 인생의 참뜻을 깨달아 가치관이 바뀐 것,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변화이며 성품 변화의 본질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외적인 변화와 성품 변화의 차이> 중에서

『성품의 변화는 한 가지 특징을 보인다. 그것은 바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옳은 것, 진리에 부합하는 것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에게 의견을 내는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이 나이가 있든 어리든, 너와 잘 맞든 맞지 않든, 너와 그 사람 사이에 불화가 있든 없든, 그의 말이 옳고 진리에 부합하며 하나님 집의 사역에 도움이 된다면, 너는 그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그 과정에서 어떤 요소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이것이 첫 번째 태도이다. 다음으로는 어떤 일을 맞닥뜨렸을 때 진리를 찾고 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새로운 일을 마주하여 아무도 그것을 명확하게 알지 못할 때,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어떻게 실행하는 것이 진리의 원칙에 맞는지 진리를 찾고 구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또 다른 태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리느냐 하는 문제는 너의 본분 이행과 관련된다. 네가 이행하는 본분에 대해 하나님이 어떤 요구를 하든 본분 이행 과정에서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하며, 만족게 하는 방향으로 행해야 한다. 이 원칙을 유념하여 하나님의 뜻은 어떤 것인지, 어떤 성과를 내야 하는지 이해하며 나아가 책임과 충성을 다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 일에 있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기 위해 찾고 구해야 한다. 이 세 가지의 원칙을 실행하고 실생활에 대조한다면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 처리에 원칙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어떤 일을 마주하든 어떤 문제를 처리하든, 어떤 실행 원칙이 있는지, 각각의 원칙에는 어떤 세부적인 내용이 있는지, 어떻게 실행해야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지를 찾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확실히 하면 자연스럽게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패괴된 성품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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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왜 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졌다고 하는가?

첫 번째 성육신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였는데,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한 것이다.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한 것이다. 하지만 사탄의 패괴 성정은 여전히 사람 안에 존재한다. 두 번째 성육신은 더 이상 속죄제가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해 온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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